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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고감성은, 이미 고찰해 본 우리 본성의 이중성에 부합한다. 우리가 우주의 보편적 사건에 참여하는 것은 바로 사고를 통해서다. 우리의 고유한 본성의 협곡 속으로 물러나는 것은 바로 감성을 통해서 가능해진다. 사고는 우리를 세계와 연결한다. 감성은 우리의 자아로 데려다 주며, 우리를 비로소 개인이 되도록 한다.


우리가 오로지 사고하고 지각하기만 하는 존재라면, 전체 삶이 차별이 없이 무관심한 것으로 흘러 지나갈 것이다. 우리 자신을 오로지 자아로만 인식할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완전히 무관심할 것이다. 자아 인식과 더불어 자아 감성을, 사물의 지각과 더불어 쾌감과 고통을 감지함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현존재가 그 안에 나머지 세계에 대하여 서 있는 개념 관계와 함께 소진되지 않고, 스스로를 위해서 특별한 가치를 지니는 개인적 존재로서 생활하는 것이다.


감성 생활에서, 세계를 사고하면서 관찰하는 것보다 실재가 더 풍부하게 채워져 있는 요소를 보려고 하는 유혹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감성 생활은 역시 내 개인을 위해서만 더 풍부한 의미를 지닌다고 대답할 수 있다. 세계 전체를 위해서 내 감성 생활은, 감성이 내 자아에 대한 지각으로서 개념과 관계를 맺고, 이 우회로를 통해서 우주에 편입되는 경우에만 가치를 얻게 된다.


우리의 삶은 보편적 세계 사건에의 참여와 개인적 존재 간의 끊임없는 왕래다. 사고의 그 보편성에 더 높이 올라갈수록, 개인적인 것은 결국 실례로서, 개념의 본보기로서만 우리에게 흥미로운 것이 되며, 우리 내부에 존재하는 특정 존재의, 아주 특정한 각 인격의 성격이 점점 더 소실된다. 우리의 고유한 삶의 저층으로 더 깊이 내려가서, 우리의 느낌을 외부 세계의 경험에 더욱 더 공명토록 할수록, 우리는 삼라만상의 존재로부터 더 멀리 떨어져 나오는 것이다. 


진정한 개인이란, 자신의 느낌과 함께 관념적인 영역으로 가장 멀리 올라가는 사람을 일컫는 것이다. ············


·········· 내가 표상을 형성할 수 있는 것들의 총계를 경험이라고 명명할 수 있다. 더 많은 개인화된 개념을 지닌 사람이 더 풍부한 경험을 지니는 것이다. 


아무 직관 능력이 없는 사람은 경험을 얻을 능력도 없다. 그는 대상물을 다시 시야에서 잃어버리고 마는데, 그에게는 대상물과 관계를 맺도록 하는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잘 발달된 사고 능력은 있지만, 조야한 감각 기관으로 인해서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지각을 지닌 사람 역시 마찬가지로 경험을 모을 수 없다. 그는 말하자면, 어찌해서든 개념은 얻을 수는 있지만, 그의 직관에는 특정한 사물에 대한 생동하는 관계가 부재한다. 


생각 없는 관광객과 추상적 개념 체계 속에 살고 있는 학자, 양자 모두 풍부한 경험을 얻을 수 없다.


지각과 개념으로 실재가 우리에게 나타나며, 표상으로 이 실재의 주관적 대리가 나타난다. 


우리의 개인성이 단지 인식하는 것으로만 나타난다면, 지각, 개념 그리고 표상 속에 모든 객체의 합계가 주어질 것이다.


우리는 지각을 사고의 도움으로 개념과 연관시키는 것에 만족하지 않으며, 지각을 우리의 특수한 주체성, 우리의 개인적 자아에 연관시킨다. 이 개인적 관계의 표현이, 쾌감이나 불쾌감으로 펼쳐지는 느낌이다. ··········


현재까지 시행되었던 단체의 방침이 개인의 판단과 어긋나고, 시간이 지날수록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책임감을 느낀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 


성인이라면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견해를 자유롭게 알릴 수 있어야 한다. 신문, 방송, 언론의 자유는 이럴 때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것을 실천에 옮길 때 다른 사람도 그 일에 참여하도록 강요해서는 안 된다. 자신이 자유를 누리기 위해 다른 사람의 자유를 억압한다면 이 자유는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그 사람의 자유의사에 전적으로 맡겨야 한다. 예컨대, 제도교육에 불만을 품고 있는 한 부모가 설득력이 약해서 아니면 다른 이유로 자신의 의견을 충분히 알리지 못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지지를 못 받을 때라도 스스로 대안을 찾아 나설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어린아이들은 요구할 뿐이지만 어른은 스스로 새로운 안을 내어 일의 추진을 꾀해야 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거의 모든 일을 다수결로 진행하면서 소수의 의견은 으레 무시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소수는 다수의 의견을 울며 겨자 먹기로 따라야 한다. 이를 다른 말로 하자면 소수에 대한 억압이라도 밖에 할 수 없다. 비록 이 억압이 제도상 어쩔 수 없이 따라오는 것이지, 소수의 인권을 일부러 억압하려했던 것이 아닐지라도 누구라도 현 사회를 잘 살펴보면 어떤 일을 스스로 판단해서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밀고 나갈 수 없는 사람일수록 국가가 자기 대신 자기의 문제를 해결해 주길 바라고 또 이런 사람이 늘어날수록 국가가 떠맡아야 하는 사회과제는 점점 더 많아지는 악순환 현상을 잘 알 수 있다.


스스로 판단할 능력을 갖추고 있는 사회 구성원이 늘어나서 문제 해결을 위해 스스로 일을 계획하고 추진하는 것이 현 사회의 불화와 갈등을 풀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치료제이다.



스웨덴에서는 개인의 사회적 문제를 국가가 거의 떠맡다시피 하는 전면적 사회보장제도를 실시했다. 그러나 국민의 모든 사회문제를 국가가 대신 맡아서 해결해 주려는 이 방안도 끝내는 최선의 방안이 되지 못했다. 국가가 제공하는 것을 별 노력 없이 받아들이는 소비성의 수동적 자세는 나중에 무기력, 무책임, 체념, 폭력, 파괴를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되었다. 이런 현상은 국가가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으로 국민들을 자기의 행동을 스스로 책임지는 자율국민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막은 데서 온 것이다. ·········· 국가가 아무리 뛰어난 사회보장제도를 갖고 국민의 어려움을 다 해결해 준다고 해도 이는 오히려 삶의 역동성을 억누르는 결과를 가져온다. ·········· 자유로운 정신, 문화, 교육 영역 그리고 국민생활 필수품 욕구충족이 원래 과제인 경제 영역의 자율 그리고 준법정신에 따르는 공정한 민주국가


··········


개인의 자아의식과 판단능력이 커짐에 딸라 이 상황은 하루 아침에 달라졌다. 현대인은 자신의 주관이 다른 사람들과 달라 고립될지언정 자기에게 맞는 삶을 스스로 찾아가려 한다. 현대인은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자신이 무엇을 이룰 수 있고, 자기가 꼭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결정하려 한다. 이런 개인의 관점에서 보면 정신, 문화, 교육 영역은 지금보다는 훨씬 다르게 변해야 한다. 


헌법으로 만민에게 보장하고 있는 자유는 개인의 자유가 그 밑바탕이다. 비록 모든 개인이 꼭 같이 사물의 이치를 꿰뚫어 볼 수 없을 지라도 자기 스스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때라야 비로소 성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내가 옳다고 여기는 대로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라는 마틴 루터의 말은 성인이 된 한 사람의 의식상태를 잘 나타내 준다. 어떤 사람이 일을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처리해야 할 일에 관한 명확한 이해이지, 다른 사람의 인정여부는 결코 아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무조건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 옳다고 인정할 때라야 받아들인다. 대다수가 결정했다 해서 그 의견이 개인생각보다 더 낫다거나 모자르다고 볼 수 없다. 어떤 판단의 옳고 그름이 꼭 대다수의 결정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다수가 결정한 교육 내용을 일방적으로 모든 개인에게 주입하는 것이 교육의 이상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오히려 스스로 판단해서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자질을 함양하는 것이 교육의 이상이 되어야 한다.


정신, 문화, 교육 영역의 자유는 개인이 개인에게 주어진 조건과 이상에 맞게 개인의 뜻을 자유로이 펼쳐야 하는 영역에 단체, 사회, 국가가 다수결의 이름으로 행했던 일방적 강요가 그쳐야 함을 뜻한다. 


··········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성인이라면 이 다양성이 오히려 고유한 자기 삶의 표현이라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이 영역에서는 '다수의 결정은 무조건 따라야 한다.' 는 말이 자유의 속박에 지나지 않는다. 기본인권 보장은 개인의 권익보장이 목적이지, 다수의 권익을 옹호하자는 것은 아니다. 


국가라는 것은 정해진 테두리 안에 사는 사람들이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 라는 전제 아래 모여 사는 큰 약속단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법의 만민평등성을 정신, 문화, 교육 영역에까지 확대적용을 하면 이는 결국 소수자 억압이 될 수밖에 없다. 모든 사람의 소질과 취향과 능력을 꼭 같게 맞출 수는 없지 않은가? 국민의 문화적 관심을 한쪽으로 몰려는 시도 자체도 이미 소수의 권익침해에 들어간다. 자유, 자율, 자체로 정신, 문화, 교육이 이루어지는 곳에서는 다수가 소수를 억압하는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것은 앞서 오늘날 많은 국가들이 안고 있는 갈등을 풀어 주는 지름길이다. 


자신들만이 옳다고 남들에게 내세울 필요도 없고 오직 자유롭게 자기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현하도록 해야 한다. 국가는 정신, 문화, 교육 단체의 방향을 정해 줄 필요도 없고 특정단체에 특권을 줄 필요도 없으며 주어서도 안 된다. 그렇다고 공동사회가 잃을 것은 하나도 없다. 다만 다른 사람을 자기 의견대로 따라오길 강요하는 사람만이 잃을 뿐이다. 사실 이 강요는 바로 기본인권 침해가 되고, 따라서 법의 심판이 있어야 한다.


현대 인간의 건강은 그가 어떻게 자신에 관해 인간으로서 생각하는지, 그가 어떤 발달의 길을 가는지에 크게 좌우됩니다.


각각의 사람이 자신 안에서 신적이고 정신적인 존재의 영역을 스스로의 힘으로 의식하고 '깨워' 낸다면, 더 건강하고 더욱 더 인간적으로 되는 방법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이해했다면, 자신의 힘에 의한 발달이 가지는 의미는 삶을 경험하고 모든 측면에서 높고 깊게 삶을 새롭게 발견하며, 이 삶을 자신의 고유한 발달과 더 나은 사람으로 되는 과정에서 동료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기회로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최종적으로 인간이 얻게 되는 고유한 특성, 즉 존경심, 내적인 고요, 용기와 확신, 희망, 신뢰, 경건, 사랑과 진실 그리고 자율성과 순수성에 이르기까지 얻을 수 있습니다.


··········


루돌프 슈타이너가 자유의 철학에서 "자연은 인간에 의해 자연의 존재가 된다. 사회는 인간에 의해 법칙을 가지고 움직이는 존재가 된다. 인간 각자는 단지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에 의해서만 자유로운 존재가 된다." 이렇게 스스로 일으킨 자유는 오늘날 높은 가치로 평가되는 사회적인 능력과 존망을 함께 합니다. 자신의 의견이 분명한 사람만이 다른 사람에 대해 맞설 수 있습니다. 


독립적으로 설 수 있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에게 이용당할까 걱정할 필요 없이, 다른 사람이나 과제를 위해 아낌없이 진정으로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사람은 자유로운 인간이라는 모토에 따라 살 수 있습니다. 즉, 실천하기를 사랑하며 살고 다른 사람의 의지를 이해하며 사는 것은 자유로운 인간의 기본적인 태도입니다.


삶을 강에 비유합니다. 강은 아주 깊을 수도 있고, 물살이 빠를 수도 있으며, 암초가 있을 수도 있지만 우리는 이 모든 것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강에서 살아가려면 어떻게 이 위험에 대항할 것인가?'가 아닙니다. 오히려 '나는 어떻게 수영을 잘할 것인가?'입니다. 


··········


"결속감이 발달할수록 나는 내가 몸을 던진 삶의 소용돌이에서 성장한다. 물 속에 몸을 던질 사람은 수영을 배워야 하거나 배웠어야 한다. 삶을 사는 사람은 관계 속에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것의 기초는 이미 언급했듯이 어린 시절에 배웠어야 한다."


의사가 한 사람을 돕고자 한다면, 전체 인류의 치유를 의식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각각의 인간은 전체의 부분이기 때문에 내면적으로 자신을 만나고 밖에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서 부지불식간에 이런저런 영향을 서로 주고 받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각각의 사람은 지구와 인간의 발달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포괄적인 관점에서 가장 작은 것까지 놓치지 않고 행동할수록, 또 그것에 성공하면 할수록 우리는 전체를 치료하고 전체의 번영에 더 많이 기여하게 됩니다. '내가 전체로부터 떨어져 있을수록, 내가 함께 관계를 맺지 않은 채 행동하고 일할수록' 인류 발달의 과정에 병적인 요소가 될 수 있는 위험에 더 많이 빠지게 됩니다.


우리의 과제는 우리의 작은 행동, 우리의 일상적인 행위를 통해 커다란 인류의 목표를 따라가면서 이 목표에서 눈을 떼지 않는 것입니다.



·········· 해부학에 따르면, 사람 몸의 근육 구조는 두 종류가 있다. 근육의 가장 작은 부분에서 매끈매끈한 실들을 보여주는 민무늬근이 있고, 가장 작은 부분에서 규칙적인 가로무늬를 보여주는 가로무늬근이 있다. 그런데 민무늬근은 일반적으로 인간의 의지와 관계없이 움직이는 근육이다. 예를 들어 매끄러운 내장의 근육은 규칙적인 운동을 통해 으깨어진 음식물을 앞으로 밀어 보내는데, 인간의 의지는 이 운동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밖에 눈의 홍채에 있는 근육도 매끄럽다. 눈은 이 홍채 근육에 의한 움직임을 통해서 적은 빛에 노출되면 동공이 확장되고 많은 빛이 흘러들면 동공이 수축된다. 이런 움직임 또한 인간의 의지와는 관계가 없다. 


반면에 인간의 의지에 따라 움직임을 조정하는 근육, 예컨대 팔다리를 움직이는 근육은 가로무늬근이다. 심장은 근육이면서도 이런 일반적인 특성에서 예외인 경우이다. 현재의 인간 발달기에는 심장이 의지의 지배를 받아 움직이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심장은 가로무늬근이다. 정신과학은 나름대로 그 이유를 제시한다. 심장이 늘 지금처럼 그렇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심장은 미래에 전혀 다른 형태와 변화된 기능을 갖게 될 것이다. 심장은 수의근이 되어가는 중이다. 미래에 심장은 인간 내면의 영혼적 충동의 결과가 될 그런 움직임을 실현할 것이다. 바로 지금 심장은, 심장의 움직임이 현재 팔을 들어 올리거나 발을 앞으로 내딛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 의지의 표현이 될 미래에 얼마만한 중요성을 가질 것인지를 이미 그 구조를 통해 보여준다.


심장을 이와 같이 바라보는 것은, 이른바 혈액 순환과 심장의 관계에 대한 정신과학의 포괄적인 인식과 관련이 있다. 기계론적 · 물질주의적 생명론에서는 심장을 규칙적으로 혈액을 온몸에 보내는 일종의 펌프 장치로 본다. 여기서는 심장이 혈액 이동의 원인이다. 정신과학적인 인식은 매우 다른 것을 보여준다. 정신과학적 인식에서 혈액의 맥박과 전체적인 내적 가동성은 영혼적 과정의 표현이자 작용이다. 영혼적인 것은 혈액이 특정한 상태에 이르게 된 원인이다. 공포감으로 얼굴이 하얗게 되고 부끄러움을 타서 얼굴이 붉어지는 것은 핏속에서 영혼적 과정들이 거칠게 작용한 결과이다. 핏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영혼 활동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표현일 뿐이다. 다만 혈액의 맥박과 영혼의 내적 자극들 사이의 관계가 신비스러울 만치 아주 깊을 뿐이다. 그리하여 심장의 움직임은 맥박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다. 미래에는 심장이 인간의 영혼 속에 짜 넣어진 것의 효과를 자발적인 움직임을 통해서 외부세계로 운반할 것이다.


·········· 발달의 오르막에 있는 또 다른 기관이 호흡기관, 그러니까 발화 도구인 호흡기관이다. 오늘날 인간은 이 호흡기관을 통해서 자신의 사고를 공기의 파동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이로써 인간은 내면에서 체험하는 것을 외부 세계에 새겨넣는다. 인간은 자신의 내적인 체험을 공기의 파동으로 변화시킨다. 이 공기의 파상운동은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의 재현이다. 미래에 인간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내적인 본성을 점점 더 많이 바깥으로 형상화할 것이다. 그리고 이 방향의 발달에서 마지막으로 나타날 결과는 인간이 완벽의 경지에 도달한 자신의 발화기관들을 통해서 자기 자신 - 자기 같은 사람 - 을 산출해내는 일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이 현재 발화기관들은 미래에 생식기관을 자기 안에 배아로 품고 있다. 그리고 남성 개체의 경우 사춘기에 변성(목소리의 변화)이 나타난다는 사실은 발음 도구와 생식의 본질 사이에 존재하는 신비로운 관계의 결과이다.

·········· 내가 어떤 소식을 듣고 그에 관해 곧바로 어떤 판단을 내린다고 가정하자.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동일한 사태에 관해 첫 번째 소식과는 일치하지 않는 더 많은 소식을 듣게 된다. 이 때문에 나는 이미 내린 판단을 바꾸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 결과, ·········· 불리한 영향이 미친다. 맨 처음에 판단을 자제했더라면, 완전히 확실한 판단 근거를 가질 때까지 일 전체에 관해 내적으로 생각하는 데에서나 외적으로 말하는 데에서 ‘침묵’했었더라면, 사태는 전혀 다르게 되었을 것이다. 판단하고 말할 때 신중을 다하는 것은 점차 ·········· 수행자의 특징이 된다. 

   ·········· 수행에서는 어느 한쪽의 감각만 육성되는 법이 결코 없다. ·········· 자연의 운행 과정에 대한 깊은 이해도 나타난다. 성장과 발전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은 모두 영혼의 온기를 발산한다. 쇠퇴와 파괴와 몰락 가운데 있는 것은 모두 영혼의 냉기라는 특성을 띠고 나타난다.

   이러한 감각의 육성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촉진된다. 이와 관련하여 ·········· 수행자가 준수하는 첫 번째 일은, 사고의 진행 과정을 통제하는 것이다(이른바 사고의 제어). ·········· 의미 있는 진실한 사고를 통해 개발되듯이, ·········· 사고의 진행을 내적으로 지배함으로써 개발된다. 의미 없고 논리적이지 못하고 순전히 우연적으로 어우러져 오락가락하는 사고가 ·········· 형태를 망쳐 놓는다. 하나의 생각이 다른 생각에서 논리적으로 전개되면 될수록, 비논리적인 것이 배제되면 될수록, 이 감각 기관은 그만큼 더 그에 합당한 형태를 띠게 된다. 비논리적인 생각을 듣게 될 경우 ·········· 수행자는 곧바로 올바른 것을 차근히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발달을 촉진할 목적으로, 어쩌면 비논리적일 수 있는 주변 환경으로부터 아무런 애정도 없이 벗어나서는 안 된다. 또 자기 주변에 있는 비논리적인 것을 즉각 교정하고자 하는 충동을 느껴서도 안 된다. 그는 오히려 아주 조용하게 자신의 내면 속에서, 외부로부터 자기에게 밀려들어 오는 생각들에 대해 논리적이고 시종일관한 방향을 부여한다. 그리고 그는 자기 자신의 생각 속에서 늘 이러한 방향을 엄수하려고 노력한다.

   두 번째 일은 자신의 행동에도 그와 똑같은 일관성을 부여하는 것이다(행동의 제어). 행동에서의 불안성과 부조화는 지금 말하고 있는 ·········· 망쳐 놓는다. ·········· 수행자가 어떤 행동을 할 때, 이어지는 행동이 앞선 행동에 대해 논리적인 일관성을 가지도록 한다. 어제와는 다른 의미에서 오늘 행동하는 사람은, 앞서 그 특징을 말한 감각을 결코 개발하지 못한다.

   세 번째 일은 지속력을 강화하기 위한 교육이다. ·········· 수행자는 이런저런 영향 때문에 자신이 설정한 목표에서 멀어질 수 없는 법이다. 그가 그 목표를 올바른 것으로 여기는 동안에는 말이다. 그에게 장애란 그것을 극복하려는 요구이지, 포기의 이유가 될 수 없다.

   네 번째 일은 인간들, 다른 존재와 사물들에 대한 관대함(관용)이다. ·········· 수행자는 불완전한 것, 악한 것과 나쁜 것에 대한 불필요한 비판을 일체 억제하며, 오히려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것을 파악하고자 애쓴다. 태양이 나쁜 것과 악한 것 모두에 두루두루 그 빛을 던지듯이, 그는 모든 일에 대해 이해심에 찬 관심을 보인다. 어떤 불쾌한 일을 당하더라도 그는 부정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내포되어 있는 필연적인 것을 의연히 받아들이고 그의 힘이 미치는 한 사태를 좋은 쪽으로 돌리고자 노력한다. 자신과는 다른 의견들을 자신의 입장에서만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처지를 바꾸어서 생각하려고 한다.

   다섯 번째 일은 생활 현상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믿음’ 또는 ‘신뢰’ 라고들 말하기도 한다. ·········· 수행자는 어떤 인간, 어떤 존재에 대해서도 이러한 신뢰로써 대한다. 행동할 때 그는 그러한 신뢰로 가득 차 있다. 어떤 일을 전해 듣게 될 경우, ·········· 수행자는 그것이 기존의 자기 견해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믿지 못하겠다고 생각하는 법이 결코 없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생각과 견해를 새로운 견해에 비추어 항상 시험하고 바로잡을 태세가 되어 있다. 그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일에 대해 늘 마음을 열어 두고 있다. 그리고 그는 자기가 하는 일의 유효성을 신뢰한다. 소심증과 의심벽을 자신의 존재에서 추방한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다면, 그는 이러한 의도의 힘에 대한 믿음 역시 가지고 있다. 수백 번 실패한다 하더라도 그는 이러한 믿음을 잃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산이라도 옮길 수 있는 믿음’이다.

   여섯 번째 일은 생활에서 확실한 균형(침착함)을 획득하는 것이다. ·········· 수행자는 고통이 닥치는 기쁜 일이 닥치든 한결같은 기분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하늘을 오를 듯이 기뻐함과 죽고 싶은 만큼 슬퍼함’ 사이를 오가는 버릇을 버린다. 그는 불행이나 위험에 처해도 행운이나 후원을 만난 것과 마찬가지의 마음가짐을 가진다.



   꽃잎들의 발달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보통 때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영혼이 어떤 특정한 과정에 주목하고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데, 그 과정은 여덟 가지가 있다. 


   첫 번째 과정은 관념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방식이다. 이와 관련하여 보통 인간은 전적으로 우연에 자기를 내맡긴다. 그는 이러저러한 것을 듣고 보며, 그에 따라 자신의 개념을 만들어 낸다. 그가 그런 식으로 처신하는 한, 열여섯 장의 꽃잎을 지닌 그의 연꽃은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은 채 있다. 여기서 말하는 방향에 따라 자기 교육에 착수할 때 비로소 그의 연꽃은 활동적으로 되기 시작한다. 이를 목적으로 그는 자신의 관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각각의 관념이 그에게 의미를 갖게끔 되어야 한다. 그 속에서 그는 외부 세계의 사물들에 관한 특정한 메시지나 정보를 보아야 한다. 그는 그와 같은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관념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그는 자신의 개념 생활 전체를 조정해서, 그것이 외부 세계의 충실한 거울이 되게끔 해야 한다. 그는 잘못된 관념을 자신의 영혼에서 멀리 떼어놓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영혼의 두 번째 과정은, 첫 번째 과정과 비슷한 방향에서, 인간의 결단과 관계 있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충분히 숙고하여 근거를 가지고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아무런 생각도 없는 모든 행동, 아무런 의미도 없는 모든 행위를 자기 영혼에서 멀리 떼어놓아야 한다. 모든 일에 대해 그는 충분히 숙고된 근거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는 의미 있는 근거가 없는 일이라면 그만두어야 한다. 


   세 번째 과정은 말과 관계 있다. ·········· 수행자는 의미와 중요성을 지닌 말만을 해야 한다. 말을 위한 말은 그를 수행의 길에서 멀어지게 할 뿐이다. 수행자는 무분별하고 잡다하게 모든 것이 뒤죽박죽 말해지는 통상적인 대화를 피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주위 사람과 교류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바로 그 교류 속에서 그의 말이 의미 있게 전개되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어떤 사람과도 대화를 나누지만 생각을 충분히 하고 모든 방향에서 숙고하여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는 근거 없는 말은 결코 하지 않는다. 그는 말을 너무 많이 하려하지 않으면서 너무 적게 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영혼의 네 번째 과정은 외적 행동의 조절이다. ·········· 수행자는 주위 사람의 행동과 주변 상황에 걸맞게 행동하려고 노력한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방해되거나 자기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과 모순되는 행동은 자제한다. 그는 자기 행동이 주변과 생활 상황 등등에 조화롭게 편입되도록 행동하려고 한다. 자기에게 속하지 않는 무언가 다른 것에 의해 행동이 유발될 때, 그는 어떻게 하면 그 유발 동기에 가장 잘 부합할 수 있을지를 깊게 생각하고 신중하게 관찰한다. 자발적으로 행동할 때에는 자신의 행위 방식이 끼치는 효과를 아주 명학하게 고려한다.


   여기에서 고찰되는 다섯 번째 과정은 생활 전체의 수립과 관련된다. ·········· 수행자는 자연과 정신에 부합되게 살려고 노력한다. 그는 너무 서두르지도 않고 너무 게으르지도 않다. 지나치게 많이 일하는 태도와 지나치게 게으른 태도 모두 다 그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생활을 수련의 수단으로 여기며, 이에 부합하도록 살아간다. 건강 관리, 습관 등등을 조정해서 조화로운 생활이 되도록 한다.


   여섯 번째 과정은 인간적인 노력과 관계 있다. ·········· 수행자는 자신의 역량과 능력을 시험하며, 그러한 자기 인식의 의미에서 행동을 취한다. 그는 자기 힘이 닿지 않는 일은 하려고도 하지 않지만, 자기 힘이 미치는 일을 그만두려고도 하지 않는다. 다른 한편 그는 여러 가지 이상, 인간의 위대한 의무와 관련된 목표를 설정한다. 그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자기를 하나의 톱니바퀴로서 인간 동력 장치 속에 끼워 넣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차원을 넘어서 있는 자신의 과제를 파악하고자 한다. 그는 자신의 의무를 점점 더 훌륭하고 완벽하게 수행하고자 노력한다.


   영혼 생활에서의 일곱 번째 과정은, 인생에서 가능한 한 많은 것을 배우려는 노력과 관계 있다. ·········· 수행자에게는, 그의 삶에 유익한 경험을 모을 계기를 제공하지 않고 지나가는 일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다. 그가 어떤 일을 부정확하고 불완전하게 행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나중에 비슷한 일을 정확하게 또는 완벽하게 하는 하나의 계기가 된다. 다른 사람들이 행동하는 것을 볼 때에도 그는 이와 비슷한 목표를 가지고 그들을 관찰한다. 그는 경험이라는 풍성한 보물을 모으고, 그것을 끊임없이 신중하게 이용하고자 한다. 그는 결단을 내리고 실행에 착수할 때 도움이 될 수 있는 체험들을 되돌아보지 않고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 수행자가 매순간 자기 내면을 응시해야 한다는 것이, 마지막 여덟 번째 과정이다. 그는 자기 안에 깊이 들어가 신중하게 자기 자신을 성찰하고, 생활 원칙을 세우고 시험하며, 경험적 지식을 철저히 사고하고 그의 의무를 숙고하며 인생의 내용과 목적에 관해서 깊게 사유하는 등등의 일을 해야 한다.


   이 모든 일은 이미 앞에 있는 장에서 말했다. 여기에서는 열여섯 장의 꽃잎을 지닌 연꽃의 발달과 관련해서 열거할 따름이다. 수행을 통해서 연꽃은 점점 더 완전하게 된다. ·········· 능력의 육성이 그러한 수행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외부 세계에서의 발전 과정과 일치하면 할수록, ·········· 능력은 더 빨리 개발된다. 참되지 않은 것을 생각하거나 말하는 사람은, 열여섯 장의 꽃잎을 지닌 연꽃의 싹을 죽이는 행위를 하는 사람이다. 진실성, 올곧음, 정직성은 이러한 측면에서 건설적으로 작용하는 힘이며, 허위, 기만, 불성실은 파괴적으로 작용하는 힘이다.


   ·········· 수행자는 이때 ‘좋은 의도’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행동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내가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 것을 사고하고 말하면, 비록 여전히 좋은 의도를 갖고 있다는 믿음이 있더라도, 정신적 감각 기관 속에 있는 무언가를 파괴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어린아이가 비록 모르고 한 일이라도 불 속에 손을 집어 넣으면 화상을 입는 것과 같다. 


   앞서 말한 영혼의 과정이 그 특징이 묘사된 방향으로 실행된다면, 열여섯 장의 꽃잎을 지닌 연꽃은 장려한 색채로 빛을 발하게 되고 합법칙적인 운동을 부여받게 된다. 그렇지만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은, 영혼이 일정 정도 육성되기 전에는 ·········· 능력이 나타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생활을 이러한 방향으로 이끌려고 여전히 애쓰는 동안에는 이러한 능력이 드러나지 않는다. 앞서 서술된 과정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한, 그는 아직 성숙하지 않은 것이다. 언급된 방식의 삶을, 마치 습관적으로 하듯이, 그렇게 살 수 있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 첫 흔적이 나타난다. 그러면 그런 일들은 더 이상 애쓸 필요가 없는 자명한 생활 방식이 되었음에 틀림없다. 자기 자신을 계속 관찰하고 몰아쳐 가며 그런 식으로 살도록 할 필요가 없게 된다. 모든 것은 습관이 되었음에 틀림없다. 


   열여섯 장의 꽃잎을 지닌 연꽃을 다른 방식으로 발달시키는 모종의 지침들이 있다. 참된 신비학은 그러한 모든 지침들을 포기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몸의 건강을 파괴하고 도덕적 파탄을 낳기 때문이다. 그 지침들은 여기에서 서술되는 것보다 실행하기가 더 쉽다. 여기에서 서술되는 것은 시간이 걸리고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은 확실한 목표로 인도해 주며 도덕적인 힘을 강화시킬 수 있다.


   연꽃의 왜곡된 육성은 모종의 ·········· 능력이 나타날 경우에 환상과 공상적 관념을 낳을 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을 미망을 빠뜨리고 불안정하게 만든다. 그런 식의 육성을 통해서 사람들은 겁이 많고 질투와 허영심이 강하며 거만하고 아집에 가득 찬 사람이 되는데, 이 모든 속성은 이전에는 없었던 것이다.


   열여섯 장의 연꽃잎 가운데 여덟 장은 이미 아주 오래 전에 개발되었으며 이것들이 ·········· 수행 과정에서 다시 저절로 나타난다는 것은 앞에서도 말했다. 이제 ·········· 수행자의 노력에서 모든 관심은 다른 여덟 장의 꽃잎에 쏟아져야 한다. 잘못된 수행에서는 이전에 개발된 꽃잎들만 쉽게 나타나며 새로이 형성되어야 하는 꽃잎들은 위축되어 있다. 이는 수행 과정에서 논리적, 이성적 사유에 너무 무관심할 때 특히 자주 생기는 일이다. ·········· 수행자가 명료한 사유를 중시하는 합리적 인간이라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말을 할 때 최대한 분명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더더욱 중요하다. 뭔가 초감각적인 것을 예감하기 시작하는 사람들은 이에 관해 말하기를 좋아하게 된다. 그로써 그들은 자신들의 올바른 발달을 가로막는다. 이 일에 관해 말을 적게 하면 적게 할수록 더 낫다. 어느 정도 분명한 인식을 얻게 되었을 때 비로소 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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