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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샤머니즘은 고대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시대마다 불교, 유교, 기독교 등의 종교적 외피를 입고 습합(習合)돼왔다. 변천과정에서도 샤머니즘의 역할과 기능은 각 시대마다 다르게 나타났다. ············ 고대시대(신석기-삼국시대)의 샤머니즘은 정치, 사회, 개인을 포괄하는 공적 문화였으나, 중세시대(남북국시대-조선중기)의 샤머니즘은 사회, 개인의 범주로 축소돼 기능했다. 근대 · 현대시대(조선중기-현대)의 샤머니즘은 주로 개인의 길흉화복에 초점을 맞추는 기복신앙으로 변화해 왔다.


············ 네오샤머니즘은 고전샤머니즘과 공통의 종교적 유산을 공유하면서 현대인의 진화된 종교문화적 세계관과 인간의 다양한 의식변형의 경험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영성운동이다. ············ 마음 치유, 트라우마 극복, 영적 수행의 대중적 필요와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이는 종교적 교리나 사회적 통념보다는 만물과의 공감과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을 통해 온전한 인간의 자유를 추구하는 생태적 영성이다. ············ 사상적 흐름은 과거 고등종교로부터 소외되었던 샤머니즘, 영성주의, 동양철학, 연금술, 신화 등의 전통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 수행자들의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회합과 자율적 의례를 강조한다. ············ 특정 종교에 속해있지 않으면서도, 내면의 신성함을 복원시키는 수행적 영성운동이다.


············ 네오샤머니즘은 인간 의식변형을 통한 고차원적 인식의 지평을 강조한다. ············ 인간 내면세계의 탐색과 성찰을 통한 성스러운 경험을 강조한다. ············ 인간 내면의 성스러운 마음을 '누미노제(Numinose)'로 표현한다. 누미노제는 모든 인간의 내면에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성스러움의 감정과 공감의 마음이다. ············ 성스러움의 감정은 일상의 희로애락의 감정과는 구별된다. 누미노제는 우주만물의 원초적 공감을 상호 연결시키는 본질적인 신비의 감정을 의미한다. ············ 네오샤머니즘은 고대시대부터 내려온 내면의 성스러움을 찾아 인간의 고통을 스스로 치유하고 승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배양시킨다. 


············ 진정한 샤먼은 두 가지 의식체계를 지닌다. 하나는 '의식의 일상의식'이고, 다른 하나는 '의식의 통합의식'이다. 통합의식은 의식과 무의식의 통합을 의미한다.


············ 진정한 누미노제의 경험은 개인을 '성인다운 성품'으로 변화시킬 뿐 아니라, 고통 받는 이웃과 세상을 향한 봉사와 연민의 감정을 성숙시킨다고 강조한다. 이런 자아변형의 진위여부는 자연스럽게 '이웃에 의해' 알아차려지게 된다. ············ 엄격한 내면수행이 부재된 샤먼적 누미노제는 신성과 자아를 동일시하는 '자아팽창'의 영적 도취에 빠져 스스로를 '영웅적 착각'에 빠지게 한다. 이는 샤먼적 인물 뿐 아니라 역사상 다양한 종교집단의 타락한 종교지도자와 정치인, 시민운동가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자아절대화의 병적 현상이다. 


············ 누미노제의 진정성은 개인적 수행이 뒷받침되는 초월적 겸애와 이타적 사랑이 수반돼 맺어지는 사회정치적 열매여야 한다. ············ 내면적 개인 수행이 외면적 사회적 수행을 결코 배제하지 않는 원리이기도 하다. 누미노제의 매혹성은 개인적 누미노제의 경험이 사회정치적 공공성과 결별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우주적 미소를 보내는 신성한 유혹인 것이다.


············ 네오샤머니즘은 현대인의 공허감과 소외감을 영적 위기로 진단하며 누미노제의 자아 초월적 경험을 통한 영성의 진보가 일상의 삶 속에서 지속될 것을 강조한다. 원초적 공감의 회복은 호모엠파티쿠스가 추구하는 치유의 시작이고 과정이며, 또한 완성이다. 존재의 근원과 의식 · 무의식의 변형을 통한 궁극의 존재 체험은 삶의 고통을 신성화할 수 있는 영성세계를 열어주는 치유의 의식변형이다.


············ 개인의 신성화 없이 사회의 신성화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 신성의 주체화와 인식 에너지의 재구성을 통해 자아의 영적 진보와 사회적 진보를 동시에 추구한다. 사회적 통합의 근본에는 인간의 내면적 통합이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 오늘날 개혁과 진보를 부르짖는 많은 이들의 혁명적 구호 속에는 성스러움이 결여돼있다. 외적 인격인 페르소나와 자신을 동일시해 정의에 대한 독점의식과 근거 없는 특권의식, 자아 팽창의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있다. 불안한 인격성으로 사회개혁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거기에는 연민의 공감과 감동의 신비로움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 오늘날 진정한 샤먼은 누구인가? 그는 더 이상 영적 능력을 부여받은 소수의 선택받은 자가 아니라, 일상의 삶을 오직 진실하게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수많은 '상처받은 치유자'들이다. 호모엠파티쿠스는 인간이 신의 은혜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신성한 공감을 회복하는 네오샤먼이 되는 것이다. 사회 변혁으로 연결되는 영성 체험은 더 이상 개인의 복을 비는 기복이나 축신 행위에만 머물지 않고,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회, 인간과 우주 사이의 영적 통일성을 회복해 좀 더 숭고한 영성 세계로의 전이와 고양된 사회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다. 


············ 호모엠파티쿠스의 치유란 고통을 제거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고통의 세계를 이해하고 공감함으로서 고통이 전제된 근원적 깨달음을 얻는 '통각(痛覺)'의 영성을 의미한다. 호모엠파티쿠스는 개인의 영적 수행을 통한 원초적 공감의 회복은 무한한 우주의 사랑 에너지를 빛의 인식으로 확산하며 생과 생을 통합시키려는 도덕적 요구를 수용한다. ············ 진정한 자아는 내적 통합을 이루기 위해 전념해야 하며, 스스로 다른 자아들과의 통합을 위해 그들과 조화를 이뤄야만 한다. 


············ 누미노제의 감정은 개별적인 신비성과 주술성으로만 기능할 수 없다. 인간은 직관적 공감을 통해 신과 인간이 궁극적으로 합일되는 원초적 공감을 회복함으로, 인간의 역사 속에 새롭게 개입하는 성스러움의 역사성을 구현해야 한다. 원초적 공감의 회복이란 문명화 이전의 상황으로 회귀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문명화된 현재의 삶 안에서 원초적 영성을 회복하는 관계적 공감을 의미하는 것이다. 


공감과 누미노제는 한 개인이 어떤 신비적 경험을 했는가의 경중보다, 얼마만큼 개인이 우주적인 신성의 세계로 변화하고 승화했는가에 관한 자기 수양적 '무의(無爲)의 공감'을 강조한다.

- 출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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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고감성은, 이미 고찰해 본 우리 본성의 이중성에 부합한다. 우리가 우주의 보편적 사건에 참여하는 것은 바로 사고를 통해서다. 우리의 고유한 본성의 협곡 속으로 물러나는 것은 바로 감성을 통해서 가능해진다. 사고는 우리를 세계와 연결한다. 감성은 우리의 자아로 데려다 주며, 우리를 비로소 개인이 되도록 한다.


우리가 오로지 사고하고 지각하기만 하는 존재라면, 전체 삶이 차별이 없이 무관심한 것으로 흘러 지나갈 것이다. 우리 자신을 오로지 자아로만 인식할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완전히 무관심할 것이다. 자아 인식과 더불어 자아 감성을, 사물의 지각과 더불어 쾌감과 고통을 감지함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현존재가 그 안에 나머지 세계에 대하여 서 있는 개념 관계와 함께 소진되지 않고, 스스로를 위해서 특별한 가치를 지니는 개인적 존재로서 생활하는 것이다.


감성 생활에서, 세계를 사고하면서 관찰하는 것보다 실재가 더 풍부하게 채워져 있는 요소를 보려고 하는 유혹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감성 생활은 역시 내 개인을 위해서만 더 풍부한 의미를 지닌다고 대답할 수 있다. 세계 전체를 위해서 내 감성 생활은, 감성이 내 자아에 대한 지각으로서 개념과 관계를 맺고, 이 우회로를 통해서 우주에 편입되는 경우에만 가치를 얻게 된다.


우리의 삶은 보편적 세계 사건에의 참여와 개인적 존재 간의 끊임없는 왕래다. 사고의 그 보편성에 더 높이 올라갈수록, 개인적인 것은 결국 실례로서, 개념의 본보기로서만 우리에게 흥미로운 것이 되며, 우리 내부에 존재하는 특정 존재의, 아주 특정한 각 인격의 성격이 점점 더 소실된다. 우리의 고유한 삶의 저층으로 더 깊이 내려가서, 우리의 느낌을 외부 세계의 경험에 더욱 더 공명토록 할수록, 우리는 삼라만상의 존재로부터 더 멀리 떨어져 나오는 것이다. 


진정한 개인이란, 자신의 느낌과 함께 관념적인 영역으로 가장 멀리 올라가는 사람을 일컫는 것이다. ············


·········· 내가 표상을 형성할 수 있는 것들의 총계를 경험이라고 명명할 수 있다. 더 많은 개인화된 개념을 지닌 사람이 더 풍부한 경험을 지니는 것이다. 


아무 직관 능력이 없는 사람은 경험을 얻을 능력도 없다. 그는 대상물을 다시 시야에서 잃어버리고 마는데, 그에게는 대상물과 관계를 맺도록 하는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잘 발달된 사고 능력은 있지만, 조야한 감각 기관으로 인해서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지각을 지닌 사람 역시 마찬가지로 경험을 모을 수 없다. 그는 말하자면, 어찌해서든 개념은 얻을 수는 있지만, 그의 직관에는 특정한 사물에 대한 생동하는 관계가 부재한다. 


생각 없는 관광객과 추상적 개념 체계 속에 살고 있는 학자, 양자 모두 풍부한 경험을 얻을 수 없다.


지각과 개념으로 실재가 우리에게 나타나며, 표상으로 이 실재의 주관적 대리가 나타난다. 


우리의 개인성이 단지 인식하는 것으로만 나타난다면, 지각, 개념 그리고 표상 속에 모든 객체의 합계가 주어질 것이다.


우리는 지각을 사고의 도움으로 개념과 연관시키는 것에 만족하지 않으며, 지각을 우리의 특수한 주체성, 우리의 개인적 자아에 연관시킨다. 이 개인적 관계의 표현이, 쾌감이나 불쾌감으로 펼쳐지는 느낌이다. ··········



누구든지 어떤 일을 새로 기획해서 추진하려면 스스로 그 일을 도맡아 관리할 뿐만 아니라 실제 경제적으로도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게끔 신경을 써야 한다. 운영까지 스스로 책임져야 단체의 뿌리가 단단히 사회에 내릴 수 있고 단체구성원이 갖는 단체의 근본이념에 대한 인식도 높아진다.


··········


사람이 어떤 일에 대해 전혀 모를 때는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없고, 남의 판단에 의지해야 하는 부자유한 인간이 된다. 그러므로 깊은 이해가 선행된 행동이 자유인이 갖춰야 할 기본 태도이다.


현재까지 시행되었던 단체의 방침이 개인의 판단과 어긋나고, 시간이 지날수록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책임감을 느낀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 


성인이라면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견해를 자유롭게 알릴 수 있어야 한다. 신문, 방송, 언론의 자유는 이럴 때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것을 실천에 옮길 때 다른 사람도 그 일에 참여하도록 강요해서는 안 된다. 자신이 자유를 누리기 위해 다른 사람의 자유를 억압한다면 이 자유는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그 사람의 자유의사에 전적으로 맡겨야 한다. 예컨대, 제도교육에 불만을 품고 있는 한 부모가 설득력이 약해서 아니면 다른 이유로 자신의 의견을 충분히 알리지 못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지지를 못 받을 때라도 스스로 대안을 찾아 나설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어린아이들은 요구할 뿐이지만 어른은 스스로 새로운 안을 내어 일의 추진을 꾀해야 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거의 모든 일을 다수결로 진행하면서 소수의 의견은 으레 무시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소수는 다수의 의견을 울며 겨자 먹기로 따라야 한다. 이를 다른 말로 하자면 소수에 대한 억압이라도 밖에 할 수 없다. 비록 이 억압이 제도상 어쩔 수 없이 따라오는 것이지, 소수의 인권을 일부러 억압하려했던 것이 아닐지라도 누구라도 현 사회를 잘 살펴보면 어떤 일을 스스로 판단해서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밀고 나갈 수 없는 사람일수록 국가가 자기 대신 자기의 문제를 해결해 주길 바라고 또 이런 사람이 늘어날수록 국가가 떠맡아야 하는 사회과제는 점점 더 많아지는 악순환 현상을 잘 알 수 있다.


스스로 판단할 능력을 갖추고 있는 사회 구성원이 늘어나서 문제 해결을 위해 스스로 일을 계획하고 추진하는 것이 현 사회의 불화와 갈등을 풀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치료제이다.



스웨덴에서는 개인의 사회적 문제를 국가가 거의 떠맡다시피 하는 전면적 사회보장제도를 실시했다. 그러나 국민의 모든 사회문제를 국가가 대신 맡아서 해결해 주려는 이 방안도 끝내는 최선의 방안이 되지 못했다. 국가가 제공하는 것을 별 노력 없이 받아들이는 소비성의 수동적 자세는 나중에 무기력, 무책임, 체념, 폭력, 파괴를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되었다. 이런 현상은 국가가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으로 국민들을 자기의 행동을 스스로 책임지는 자율국민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막은 데서 온 것이다. ·········· 국가가 아무리 뛰어난 사회보장제도를 갖고 국민의 어려움을 다 해결해 준다고 해도 이는 오히려 삶의 역동성을 억누르는 결과를 가져온다. ·········· 자유로운 정신, 문화, 교육 영역 그리고 국민생활 필수품 욕구충족이 원래 과제인 경제 영역의 자율 그리고 준법정신에 따르는 공정한 민주국가


··········


개인의 자아의식과 판단능력이 커짐에 딸라 이 상황은 하루 아침에 달라졌다. 현대인은 자신의 주관이 다른 사람들과 달라 고립될지언정 자기에게 맞는 삶을 스스로 찾아가려 한다. 현대인은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자신이 무엇을 이룰 수 있고, 자기가 꼭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결정하려 한다. 이런 개인의 관점에서 보면 정신, 문화, 교육 영역은 지금보다는 훨씬 다르게 변해야 한다. 


헌법으로 만민에게 보장하고 있는 자유는 개인의 자유가 그 밑바탕이다. 비록 모든 개인이 꼭 같이 사물의 이치를 꿰뚫어 볼 수 없을 지라도 자기 스스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때라야 비로소 성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내가 옳다고 여기는 대로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라는 마틴 루터의 말은 성인이 된 한 사람의 의식상태를 잘 나타내 준다. 어떤 사람이 일을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처리해야 할 일에 관한 명확한 이해이지, 다른 사람의 인정여부는 결코 아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무조건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 옳다고 인정할 때라야 받아들인다. 대다수가 결정했다 해서 그 의견이 개인생각보다 더 낫다거나 모자르다고 볼 수 없다. 어떤 판단의 옳고 그름이 꼭 대다수의 결정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다수가 결정한 교육 내용을 일방적으로 모든 개인에게 주입하는 것이 교육의 이상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오히려 스스로 판단해서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자질을 함양하는 것이 교육의 이상이 되어야 한다.


정신, 문화, 교육 영역의 자유는 개인이 개인에게 주어진 조건과 이상에 맞게 개인의 뜻을 자유로이 펼쳐야 하는 영역에 단체, 사회, 국가가 다수결의 이름으로 행했던 일방적 강요가 그쳐야 함을 뜻한다. 


··········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성인이라면 이 다양성이 오히려 고유한 자기 삶의 표현이라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이 영역에서는 '다수의 결정은 무조건 따라야 한다.' 는 말이 자유의 속박에 지나지 않는다. 기본인권 보장은 개인의 권익보장이 목적이지, 다수의 권익을 옹호하자는 것은 아니다. 


국가라는 것은 정해진 테두리 안에 사는 사람들이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 라는 전제 아래 모여 사는 큰 약속단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법의 만민평등성을 정신, 문화, 교육 영역에까지 확대적용을 하면 이는 결국 소수자 억압이 될 수밖에 없다. 모든 사람의 소질과 취향과 능력을 꼭 같게 맞출 수는 없지 않은가? 국민의 문화적 관심을 한쪽으로 몰려는 시도 자체도 이미 소수의 권익침해에 들어간다. 자유, 자율, 자체로 정신, 문화, 교육이 이루어지는 곳에서는 다수가 소수를 억압하는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것은 앞서 오늘날 많은 국가들이 안고 있는 갈등을 풀어 주는 지름길이다. 


자신들만이 옳다고 남들에게 내세울 필요도 없고 오직 자유롭게 자기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현하도록 해야 한다. 국가는 정신, 문화, 교육 단체의 방향을 정해 줄 필요도 없고 특정단체에 특권을 줄 필요도 없으며 주어서도 안 된다. 그렇다고 공동사회가 잃을 것은 하나도 없다. 다만 다른 사람을 자기 의견대로 따라오길 강요하는 사람만이 잃을 뿐이다. 사실 이 강요는 바로 기본인권 침해가 되고, 따라서 법의 심판이 있어야 한다.


현대 인간의 건강은 그가 어떻게 자신에 관해 인간으로서 생각하는지, 그가 어떤 발달의 길을 가는지에 크게 좌우됩니다.


각각의 사람이 자신 안에서 신적이고 정신적인 존재의 영역을 스스로의 힘으로 의식하고 '깨워' 낸다면, 더 건강하고 더욱 더 인간적으로 되는 방법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이해했다면, 자신의 힘에 의한 발달이 가지는 의미는 삶을 경험하고 모든 측면에서 높고 깊게 삶을 새롭게 발견하며, 이 삶을 자신의 고유한 발달과 더 나은 사람으로 되는 과정에서 동료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기회로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최종적으로 인간이 얻게 되는 고유한 특성, 즉 존경심, 내적인 고요, 용기와 확신, 희망, 신뢰, 경건, 사랑과 진실 그리고 자율성과 순수성에 이르기까지 얻을 수 있습니다.


··········


루돌프 슈타이너가 자유의 철학에서 "자연은 인간에 의해 자연의 존재가 된다. 사회는 인간에 의해 법칙을 가지고 움직이는 존재가 된다. 인간 각자는 단지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에 의해서만 자유로운 존재가 된다." 이렇게 스스로 일으킨 자유는 오늘날 높은 가치로 평가되는 사회적인 능력과 존망을 함께 합니다. 자신의 의견이 분명한 사람만이 다른 사람에 대해 맞설 수 있습니다. 


독립적으로 설 수 있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에게 이용당할까 걱정할 필요 없이, 다른 사람이나 과제를 위해 아낌없이 진정으로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사람은 자유로운 인간이라는 모토에 따라 살 수 있습니다. 즉, 실천하기를 사랑하며 살고 다른 사람의 의지를 이해하며 사는 것은 자유로운 인간의 기본적인 태도입니다.


삶을 강에 비유합니다. 강은 아주 깊을 수도 있고, 물살이 빠를 수도 있으며, 암초가 있을 수도 있지만 우리는 이 모든 것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강에서 살아가려면 어떻게 이 위험에 대항할 것인가?'가 아닙니다. 오히려 '나는 어떻게 수영을 잘할 것인가?'입니다. 


··········


"결속감이 발달할수록 나는 내가 몸을 던진 삶의 소용돌이에서 성장한다. 물 속에 몸을 던질 사람은 수영을 배워야 하거나 배웠어야 한다. 삶을 사는 사람은 관계 속에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것의 기초는 이미 언급했듯이 어린 시절에 배웠어야 한다."


의사가 한 사람을 돕고자 한다면, 전체 인류의 치유를 의식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각각의 인간은 전체의 부분이기 때문에 내면적으로 자신을 만나고 밖에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서 부지불식간에 이런저런 영향을 서로 주고 받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각각의 사람은 지구와 인간의 발달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포괄적인 관점에서 가장 작은 것까지 놓치지 않고 행동할수록, 또 그것에 성공하면 할수록 우리는 전체를 치료하고 전체의 번영에 더 많이 기여하게 됩니다. '내가 전체로부터 떨어져 있을수록, 내가 함께 관계를 맺지 않은 채 행동하고 일할수록' 인류 발달의 과정에 병적인 요소가 될 수 있는 위험에 더 많이 빠지게 됩니다.


우리의 과제는 우리의 작은 행동, 우리의 일상적인 행위를 통해 커다란 인류의 목표를 따라가면서 이 목표에서 눈을 떼지 않는 것입니다.



수천 년의 왜곡과 착각, '오리엔탈리즘'의 신화

'야만과 문명'이분화…'서구 문명의 연원은 동양' 외면


'서구문명의 운명, 너무나 짧은 인간의 운명이 현재 위협 받고 있다.(…) 오래 전부터 극동에서 온 여행자들,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이를 극명하게 확인시켜 준다. 10세기 만에 이루어진 정신적인 변화보다 10년 만에 이루어진 정신적인 변화가 훨씬 강력하고 크다. 고분고분하다고만 알려진 아시아가 사실은 증오를 은근히 감추고 있었고, 그 증오를 행동으로 옮길 적절한 때만 기다리고 있었다.(…) 아시아 전역은 해방되고 싶다는 마음을 은밀히 갈고 닦아 왔다.(…) 이제 아시아인들은 더 이상 서구가 우월하다고 인정하지 않는다. 아시아인들은 다시 서로 손을 잡고 백인들과 대결하고 싶어 한다.'


다작을 통해 영향력을 확보한 작가 앙리 마시스가 1927년에 쓴 글이다. 앙리 마시스는 유럽의 가치와 정신이 점점 위협을 당하고 있다며 우려했다. 사실 앙리 마시스의 글이 완전히 틀린 것만은 아니다. 실제로 서구의 식민 지배에 놓였던 동방의 민족들이 여기저기서 일어서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현대는 제1차 세계대전 직후와는 상황이 엄연히 다르다. 그러나 냉전의 종식, 9·11 테러, 이라크전, 아프가니스탄전 등 세상을 뒤흔들만한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특히 중국과 인도 같은 새로운 강국이 부상하며 세계가 재편되면서 서구는 다시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문명과 야만의 대결이라는 이분법적인 역사관에 영향을 받은 여러 작가들은 이 같은 '2천500년의 전쟁'이 도대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알아보고자 과거를 돌아본다. '2천500년의 전쟁'은 안토니 파그덴의 저서 <전쟁 중인 세계>의 소제목이기도 하다.



서구 역사가들 '이분법적 사관'

안토니 파그덴은 5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저서를 통해 세계 역사를 전반적으로 묘사했다. '트로이에서 빛나던 불꽃은 몇 세기 동안 계속 탔지만 트로이인들, 페르시아인들, 페네키아인들, 파르티아인들, 사산조의 페르시아인들, 아랍인들, 터키인들이 차례로 세계의 주도권을 가졌다.(…) 이제 동양과 서양의 대결 라인은 변했다.(…) 하지만 동양과 서양이라는 양대 축을 나누는 방식은 여전히 공고하다. 오랜 세월 동안 쌓여 온 역사적인 기억이 기본을 이룬다. 정당한 역사적인 기억도 있고 왜곡된 역사적인 기억도 있다.'

저자 안토니 파그덴도 약간은 왜곡된 역사적 기억을 보이긴 한다. 기본적으로 그 역시 헤로도토스의 시각을 이어 받아 그리스인과 페르시아인의 대결 구도라는 이분법적 시각을 갖고 글을 풀어가기 때문이다. 

안토니 파그덴에 따르면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인과 그리스인 혹은 아시아인과 유럽인을 나누는 것은 단순히 소소한 정치적인 분쟁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란 사실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그리스의 도시, 나아가 유럽 도시들은 성격이나 사회 구조가 다르긴 했지만 개인주의적 관점으로 인간을 보는 등 공통점도 안고 있었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그리스 역사를 강의하는 폴 카틀지 교수도 테르모필레 전투1)에 관한 자신의 저서에서 비슷한 주장을 펼쳤다. 테르모필레 전투는 세상을 바꿔 놓은 전투였다. 다음 글은 폴 카틀지 교수 저서의 소개글이다. '테르모필레 전투, 즉 스파르타인과 그리스인들과 페르시아인들 간에 벌어진 전투는 자유와 노예제 사이의 충돌이었다.(…) 테르모필레 전투는 한 마디로 고대 그리스 역사뿐만 아니라 세계 역사를 바꿔 놓은 전환점이었다.'

폴 카틀지 교수는 저서의 서문에서 이데올로기적인 관점을 그대로 드러냈다. '뉴욕에서 일어난 9.11 테러와 7월 달 런던에서 일어난 테러를 통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동양 문화와 서양 문화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테르모필레 전투의 의미를 이해하는 일이 대단히 시급하고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말하는 '만남'이란 전제군주제와 자유 사이의 충돌을 의미할 뿐이다.

이 같은 폴 카틀지 교수의 관점은 2007년에 개봉된 잭 스나이더 감독의 영화 '300'을 통해 대중적이 되었다. 테르모필레 전투를 다룬 2시간짜리 이 영화는 미국에서 인기를 모았는데, 마치 근육질의 남자들이 흑인 혹은 중동 사람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야만인들과 한 판 승부를 벌이는 비디오 게임 같다는 인상을 준다. 스파르타의 레오니우스 왕은 페르시아의 대사를 죽이기까지 한다. 마치 야만인들은 고귀한 인간의 법의 혜택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듯한 논리를 보여주는 것 같다.



'야만'적 서구와 '문명'적 동양

그러니까 야만인들을 학살하는 게 서구가 말하는 문명인가! 이미 1898년에 독일의 정치학 전문가 하인리히 폰 트레이슈케는 다른 여러 동시대인들과 마찬가지로 다음과 같은 논리를 당연하게 생각했다. 

'야만인들에게 국제법의 원칙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국제법은 한낱 미사여구로만 전락하게 된다. 검둥이 종족들을 처벌하려면 마을을 불태워야 한다. 그러한 혹독한 본보기를 보여주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이룰 수가 없다. 만일 독일 제국이 야만인들에게 국제법을 적용한다면 그건 독일 제국이 인간적이거나 정의로워서가 아니라 약해 빠졌기 때문이다. 약한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독일인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이미 아프리카 남서부에 있는 나미비아에서 헤데로족을 무자비하게 학살하여 20세기 최초의 인종 청소라는 기록을 세운 바 있고 그 후에는 나치즘을 내세워 유대인을 잔인하게 학살하지 않았는가. 

영화 '300'을 보면 스파르타인들도 결코 약하지 않았다. 기형아들을 죽이고 여성이 원로원에 진출하는 것을 금지시킨 무서운 스파르타인들이 아니던가! 영화에 등장하는 테르모필레 전투야말로 남성들의 정복 욕구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다. 영화 '300'의 원작 만화를 지은 프랭크 밀러는 이데올로기적인 선택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우리나라(미국을 지칭함)와 서구 세계는 현재 뭐든 할 수 있는 위험한 적과 마주하고 있다.'

폴 카틀지 교수는 페르시아 전쟁에 관한 페르시아의 자료는 없다고 한다. 하지만 페르시아 제국에 관한 정보는 쌓여가고 있으며, 이러한 정보들은 페르시아 제국에 대한 관점을 변화시키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에서 고전 역사를 가르치는 투라지 다리아애 교수는 페르시아 제국에는 노예 제도가 거의 실시되지 않았지만 그리스에서는 노예 제도가 대규모로 실시되었다고 한다. 또한 투라지 다리아애 교수는 페르시아 제국에서 여성의 지위는 그리스에서의 여성의 지위보다 열악하지 않았다고 했으며, 페르시아의 시리우스 대왕이 인간의 권리를 인정하는 최초의 헌장을 문서로 작성했다고 한다. 결국 유엔은 이 문서를 1971년에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시리우스 대왕이 문서로 작성한 인간 권리 헌장에는 종교에 대한 관용, 노예제 폐지,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고 한다.



'특별한 유럽'에 대한 신화

그렇다면 그리스의 승리가 야만인들에 대한 승리라는 관점은 문제가 없는가? 전쟁이 존재한 이래로 전쟁을 주도하는 인물들은 언제나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왔다. 미국이 수행한 이라크전이나 아프가니스탄전에서도 지도자들은 '선과 악의 전쟁'이라는 그럴 듯한 명분을 내세우지 않았던가.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다. 왜 4천500년이 지났는데도 우리 서구인들은 여전히 그리스에 열광할까?

존스 홉킨스 대학의 마르셀 데티엔 교수가 냉소적으로 던진 대답을 들어보자. 

"어네스트 라비스의 글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우리 서구의 역사는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그 사실을 중등 교육 과정에서부터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우리 서구의 역사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맨 먼저 만들어 낸 그리스에서 시작된다. 자유와 민주주의는 우리 서구에게 아름다움과 보편성을 가져다주었다. 그런 만큼 우리 서구인들은 세상에 완벽하고 이상적인 자유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유일한 문명을 이어 받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자, 그래서 우리 서구의 역사는 그리스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이 같은 믿음에 더욱 강력한 믿음이 따라 붙는다. '그리스인들은 다르다', '그리스인들이야말로 우리 역사의 출발점이 아닌가'와 같은 믿음이다. 이 같은 믿음은 전통 인문주의자들과 국가를 사랑하는 역사가를 배출하는 국가 신화에 꼭 필요하다."

결국 라비스의 결론은 이렇다. 어느 화창한 날 하늘에서 정치가 떨어져 고대 그리스에 자리 잡았다. 이 정치는 민주주의라는 기적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신이 내려 준 이 같은 역사는 프랑스 혁명, 미국 독립에 이어 현재의 서구 사회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이끌어 주었다. 서구 사회의 믿음은 확고하다. 서구 사회가 해야 할 일은 바로 모든 민족을 진정한 민주주의 종교로 개종시키는 것이다. 

특히 19세기 역사가 쥘 미셸레는 고대 그리스 문명, 르네상스, 그리고 당시의 유럽을 하나로 연결하면서 유럽을 특별한 존재라고 했다.



서구 학자들, '선진 동양사' 몰이해

그런데 서구, 특히 유럽 중심주의에 새로운 반격이 일어났다. 존 M. 홉슨은 저서 <서구 문명에 존재하는 동양의 기원>에서 동양을 간과하고는 세계의 역사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동양을 간과하게 되면 세 가지 중요한 사실을 모르고 지나간다는 것이었다. 

첫째, 동양은 500년 후에 자체적인 경제 발전을 이루었다. 둘째, 동양은 세계 경제를 만들어 유지했다. 셋째, 동양은 유럽에 기술, 제도, 사상을 전파하며 서구의 태동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11세기 중국 송나라 시절에 최초의 산업 혁명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있는가? 송나라 왕조는 1078년에 철 12만 5천 톤을 생산했다. 영국이 철 7만 6천 톤을 생산하게 된 건 겨우 1788년이었다. 또한 중국인들이 주철 제조 같은 앞선 기술을 먼저 사용했으며, 이미 목탄 대신 코크스를 사용하여 산림 파괴 문제를 해결했다.


또한 중국 송나라 왕조 때 운송, 에너지(물레방아 이용), 조세 및 무역, 대도시 개발, 농업 생산력과 녹색 혁명에서도 커다란 변화를 먼저 이룩했다. 이 같은 변화를 서구가 따라잡은 건 20세기에 지나지 않았다. 여러 강대국들 가운데서도 중국은 1800년까지 최고의 위치였다. 그리하여 세계 경제는 중국 중심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한편 인도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인도의 많은 기술, 사상, 제도가 유럽으로 전파 되었으며, 근대 자본주의의 태동을 가능하게 했다. 중국의 기여가 없었다면 영국의 산업 혁명은 절대로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여러 강성한 무슬림 제국 역시 서구의 발전에 기여한 바가 많다. 

존 M. 홉슨은 유럽 중심 사고를 가진 연구가들은 두 가지 타입의 질문을 한다고 했다. "서구는 어떻게 해서 근대 자본주의라는 쾌거를 이루게 되었는가?", "동양은 무엇 때문에 이 같은 쾌거를 이루지 못했는가?" 그러나 이 같은 질문 속에는 서구의 지배는 불가피했다는 논리를 내포하고 있으며, 역사가도 이를 바탕으로 과거에 왜 서구가 지배를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연구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서구가 발전한 것은 유럽이 지닌 저력 덕분이라는 분석이 나오게 되며 동양과 서양이라는 두 축이 나뉘어진다. 그 가운데에 만리장성 같은 벽이 가로 막고 있으며 이 벽 덕분에 서구가 야만인들의 침략을 받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야만'이 두려워 '야만적'이 되다

하지만 서구가 가리키는 '야만인들'이란 과연 누구일까?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야만인들이란 야만적인 것을 믿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츠베탕 토도로프가 반박하고 나섰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일부 민족이 온전한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다운 대우를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츠베탕 토도로프는 새로운 저서 <야만인들에 대한 두려움>의 소개글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야만인들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우리가 야만적인 행동을 할 수 있게 된다. 오히려 나중에는 우리가 더욱 야만스러운 짓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야만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오히려 야만적이 된다. 문명화된 사람이라면 언제 어디서든 나와 다른 타인도 인간으로 존중할 줄 안다.'

이처럼 문명화 되려면 두 가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우선, 다른 사람들은 우리와 다른 생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 다음에는 이렇게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다른 곳의 것을 받아들이자는 것도 아니며 상대주의에 끝없이 빠져들라는 것도 아니다.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인정하고 동등한 인간으로 대하는 일은 어려운 과정이다. 서구의 지식인들 가운데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극소수다. 

츠베탕 토도로프는 또 이런 글을 썼다. '오랫동안 계몽주의 사상은 개혁과 자유 사조에 영감을 주었다. 개혁과 자유 사조는 보편주의와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원칙을 내세워 보수주의와 맞섰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이제는 오히려 서구 우월주의 사상에 빠진 보수주의자들이 상대주의와 싸우겠다며 계몽주의 사상을 내세우고 있다. 이는 19세기 초에 나타난 낭만적인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너무 한 쪽으로 기울지 않고 제대로 된 생각을 갖기 위해서는, 우리 문화를 모두에게 적용해야 한다는 독선주의와, 모든 문화는 가치가 있다는 어설픈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복종시키거나 파괴하려는 건 오히려 계몽주의 사상의 실종이다.' 

그런데 정말로 계몽주의 사상의 실종이 맞는 걸까? 아니면 계몽주의 사상 자체가 잘못된 생각을 불러 일으키는 걸까? 

존 M. 홉슨에 따르면 18세기와 19세기에 형성된 유럽 정체성으로 인해 유럽 문명이 그 어느 문명보다 최고라는 생각을 강하게 갖게 되었다고 한다. 홉슨은 "당시 유럽인들은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했는데 이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어서라기보다는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라며 "유럽이 최고의 문명이라는 자신감으로 세계 정복에 나섰고, 제국주의는 그리 나쁜 정책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고 기술했다. 그러나 식민주의에 반대하는 유럽인들이나 제3세계에 연대 의식을 갖는 유럽인들은 이 같은 입장을 거부하고 있다. 끊임없는 토론과 논의가 필요한 까닭이다. 

 


■ 주요 관련 서적

- 안토니 파그덴《전쟁 중인 세계 - 2천 500년에 걸친 동양과 서양의 싸움》

- 폴 카틀지《테르모필레 전투 : 세계를 뒤바꿔 놓은 전쟁》

- 잭 스나이더 감독 영화 <300>

- 존 M. 홉슨《서구문명에 존재하는 동양의 기원》

- 츠베탕 토도로프《야만인들에 대한 두려움 - 문명의 충돌을 넘어서》


무슬림 윤리와 자본주의- 존 M. 홉슨

"우리가 현재 900년에 살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제2장에서 밝혔듯이 중동과 이슬람 북아프리카는 이 당시 문명의 요람이었다. 중동과 이슬람 북아프리카는 세계에서 가장 발전한 지역이었으며 세계 경제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또한 이 지역은 경제적으로도 대단히 성장했다. 이 지역이 왜 이토록 경제적으로 발전했는지 알아보면 다음과 같은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첫째, 이 곳은 평화로운 지역이었다. 도시는 성장했으며 자본가들이 원거리 국제무역에 나섰다. 둘째, 무슬림 상인들은 단순한 장사꾼이 아니라 합리적인 자본가 투자가였다. 이들 무슬림 상인들은 세계 자본주의 활동에서 거래하고 투자하여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 셋째, 클리어링 시스템, 화폐를 교환하고 예치하고 이자를 받고 대출을 해주는 은행을 포함해 합리적인 제도가 탄생했다. 넷째, 800년부터 과학적인 사상이 빠르게 발전했다. 다섯째, 이슬람은 특별히 세계적으로 자본주의를 성장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므로 "프로테스탄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표현 대신 "무슬림 윤리와 자본주의"라는 표현을 써야 한다. 그래야 왜 오직 이슬람만이 중요한 경제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었고 왜 유럽은 전쟁에 몰입하며 정체를 겪었는지 분명히 알 수 있게 된다."  

 저서<서구문명에 존재하는 동양의 기원>중 297페이지


테러리즘을 이해한다?-츠베탕 토도로프

"유럽 대도시를 뒤흔든 테러범들에 대해 국제 테러리스트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그리고 이들에 대해 자신의 문화와 종교적인 정체성과 집단주의에 미쳐 테러를 벌인다고 생각한다. 이는 서구가 하는 행동은 이성적인 것이고, 그들이 하는 행동은 그저 비합리적인 명분에 집착한다는 의미다. 

파스칼 브뤼크네르는 "그나마 이성적이려면(…) 우리가 살인자들도 나름의 논리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이 글의 속뜻은 테러범들에게는 원래 논리라고는 없고 살인 충동만이 몸속에 꿈틀거리고 있다는 의미다. 

엘리 바르나비는 "테러리즘을 우린 이해 못한다. 우리에게는 완전히 이질적이기 때문이다."고 했다. 이 표현은 우회적이다. 실제로 이 글의 속뜻은 이렇다. 우리 서구인들은 자유롭고 이성적이며 대단히 인간적이고 합리적이기 때문에 테러리즘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 혹은 이라크 사람들이 왜 자국 영토에 있는 외국 군대에 저항하는지 설명할 수 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굳이 이슬람이나 '문명의 충돌'이란 거창한 단어를 쓸 필요도 없다. 

또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자국 영토를 점령하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해서 반감을 갖고 있는 이유도 이해할 수 있다. 굳이 반유대주의란 말까지 쓰지 않아도 된다. 2006년에 자국의 인프라가 파괴된 것에 들고 일어났던 사건도 이해가 된다. 여기에 굳이 코란의 구절까지 들먹일 필요는 없다."

<야만인들에 대한 두려움 - 문명의 충돌을 넘어서>중 146-147페이지


* <중동이해를 위한 100개의 열쇠>(2006)의 저자.

1) 기원전 480년 테르모필레 지역에서 벌어졌던 페르시아군과 그리스 연합군 사이의 전쟁으로 레오니우스 왕을 비롯한 그리스 연합군 대부분이 크세르크세스왕이 이끈 페르시아군에게 전멸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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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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