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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2021년 노벨 물리학상 Giorgio Parisi 교수 - 자기조직임계성

by 성공의문 2021. 11. 26.

2021년 노벨 물리학상의 절반은 Giorgio Parisi 교수에게 수여되었는데, Parisi 교수가 수상한 주요 업적은 이른바 무질서계 (disordered system)에 대한 통계물리학 연구였다. Parisi 교수는 통계물리 외에도 양자장론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업적을 남겼지만, 그가 복잡계를 다룰 수 있는 통계물리학 이론 (예를 들어 spin glass model)의 근간을 닦은 것에 대해 더 큰 credit을 인정받아 상을 받은 것으로 생각한다.

무작위 시스템을 다루는 통계물리를 배울 때 반드시 한 번은 배우고 넘어가는 모형이 있다. 그것은 Bak-Tang-Wiesenfeld (BTW) model로서, 임계 상태 (critical state)에 놓인 계의 변화 혹은 불안정성을 설명하기 위한 모형이다. BTW 모형은 이른바 '자기조직임계성 (self-organized criticality)'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수학적인 프레임 안에서 이론화하여 물리적 현상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는 데 성공한 개념으로서, 이후 주식 시장의 붕괴, 산불이나 지진의 발생 빈도, 각종 네트워크의 형성과 붕괴 등, 다양한 복잡계 시스템의 임계 혹은 아임계 현상에서 관찰되는 동적 특성을 설명하는 주요 베이스캠프가 되고 있다.

자기조직임계성은 간단히 말하면 이런 것이다. 어떤 복잡한 시스템이 임계 상태에 있을 때, 그 시스템은 불안정성이 내재되어 있어, 아주 작은 변화에도 상이 바뀐다. 예를 들어, 모래더미 (sandpile)을 생각해 보자. 산처럼 쌓인 모래 더미에 아주 작은 모래 알갱이 하나를 툭 떨어뜨리면 갑자기 모래 더미가 전체가 와르르 산사태 일어나듯 무너질 수 있다. 그런데 그 무너지는 정도 (즉, 원래의 모래더미에서 산사태에 휩쓸린 비율)은 그때 그때 다르다. 그리고 희한하게도 무너지는 규모 (L)와 그 빈도 (f)는 멱함수 관계 (f~ L^-p, p>0)을 이루는 것으로 관찰된다. 달리 말해, 더 큰 규모의 무너짐은 더 드물게 일어난다는 뜻이다. 어떤 계의 동적 특성이 이러한 멱함수 관계를 이룬다면, 이는 그 계가 자기닮음꼴 특성을 내재하고 있다는 뜻이며, 이는 다른 말로는 스케일 불변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자기조직임계성은 이렇게 불안정해 보이는 어떤 계가 임계 상태에 있을 때, 그 특성에 스케일 불변이라는 조직적 특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BTW 모형은 바로 이 모래더미 붕괴를 아주 간단한 lattice model을 이용하여 설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2차원 정사각 격자를 생각해 보자. 특정한 격자 안에 모래 개수가 10개라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각 격자가 품을 수 있는 최대의 모래 개수를 정해 놓자. 예를 들어 그 한계를 3개라고 해 보자. 즉, 한 격자 셀 안에 4개 이상의 모래 알갱이가 있으면 그 격자는 불안정해지는 것이다. 불안정한 격자 셀은 이웃한 셀 (이때 이웃 셀의 개수를 동서남북 4개, 혹은 대각선까지 포함하여 8개로 설정할 수 있다.) 그러면 처음에 10개의 모래 알갱이가 있던 격자는 주변의 이웃 셀로 동등하게 한 개씩 모래 알갱이를 나눠 준다. 그러고 나서도 여전히 6개가 남아 있다. 그러면 다시 1개씩 나눠준다. 그러면 이제 2개가 되므로 그 셀은 안정해졌다. 그리고 주변의 이웃 셀에도 2개씩의 모래 알갱이가 남아 있게 되므로 계 전체는 안정해진다. 이렇게 보면 별 특별할 것이 없는 모델인 것 같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초반에 모래 더미가 한 셀 안에 무진장 많이 들어 있을 경우다. 그러면 이제는 주변 이웃 셀에도 무래 알갱이가 많아지고, 이웃 셀이 불안정해지면 다시 그 건너 이웃 셀로 모래 알갱이가 퍼지게 된다. 그런데 이 퍼지는 과정은 우리에게 익숙한 확산 (diffusion) 과정과는 사뭇 다르다. 확산은 화학 퍼텐셜 (chemical potential)의 구배에 따라 농도가 높은 쪽에서 낮은 쪽으로 분산되어 가는 과정인데, 모래더미가 붕괴되는 과정은 화학 퍼텐셜의 구배가 아닌, 최대 허용 개수를 기준으로 한 개씩 discrete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때, 흥미로운 것은 모래 알갱이가 퍼지는 양상이 대칭성이 있다는 것이다. 즉, 각 셀이 각자 판단하기에 임계 수치보다 모래 알갱이가 많아서 동시에 모래를 퍼트리는 방식이든, 미리 정한 순서대로 한 셀씩 차례차례 자신의 모래 알갱이 개수를 판단하여 퍼트리는 방식이든, 결과는 같게 나온다는 것이다. 또한 모래 알갱이가 퍼지는 과정은 결정론적이다 (deterministic process). 즉, 초기 상태를 알고 있으면 결과는 늘 같게 나온다. 이러한 동적 특성으로 인해 BTW 모형은 Abelian sandpile model 이라고도 불린다.

보통 2차원 확산 과정은 초반에 특정한 위치에 농도가 몰려 있는 디랙 델타 형태의 분포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농도가 모든 방향으로 균일하게 complementary error function (erfc) profile를 가지면서 점점 평탄한 형태로 바뀐다. 그런데 BTW abelian sandpile 모형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모래 알갱이가 각 방향으로 점점 멀리 퍼져 나가긴 하되, 퍼져 나가는 정도가 고르지 않고, 특정한 패턴을 이룬다. 이 패턴은 각 셀에서 품을 수 있는 임계 개수나 이웃에게 모래 알갱이를 전달하는 방식 등에 따라 조금씩 바뀔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초기에 굉장히 많은 모래 알갱이를 한곳에 집중시켰을 때, 나중에는 모래 알갱이들이 프랙털 같은 패턴을 보인다는 것이다. 첨부한 첫 번째 그림은 동서남북 방향으로 라플라스 작용자 (Laplace operator)로 이루어진 3*3 행렬을 512*512 짜리 2차원 격자에 적용하였을 때 평형상태에 도달한 모래 더미의 붕괴 패턴이다. 두 번째 그림은 동서남북, 그리고 대각선 방향으로 라플라스 작용자를 적용했을 때, 그리고 마지막 그림은 동서남북으로만 한정하되, 라플라스 작용자에 가중치를 0.5씩 조정했을 경우다. 첨부한 그림들에서 보듯, 굉장히 다채로운 패턴과 복잡성이 관찰된다. 이는 BTW 모형이 ‘자기조직’ 임계 현상에 대한 것임을 다시금 확인시켜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물론 실제로 모래 더미가 붕괴될 때 이렇게 다채롭고 복잡한 패턴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모래더미가 규칙적인 격자 위에 올라갈 수도 없고, 붕괴되는 패턴 역시 non-Abelian & Stochastic nature를 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BTW 모형에서 이야기하는 자기조직임계성은 임계 상태에 놓인 계가 상태가 전이되는 과정에서 어떠한 특성을 보일 수 있을지에 대해 최초로 설명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것에서 높이 평가받을만하다.

자기조직임계성이 중요한 까닭은 아주 간단한 규칙들의 조합만으로도 얼마든지 자연은 굉장히 복잡한 패턴과 질서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임계 상태에서 상전이가 일어날 때 뭔가 무질서한 상태가 나올 것 같지만, 오히려 그 과정에서 질서가 나타나고, 패턴이 나타난다. 자연에서의 복잡한 패턴은 그만큼 정보를 더 많이 전달할 수 있고, 이는 아주 단순한 규칙들의 조합만으로도 자연에서는 스스로 복잡한 정보 담지체가 탄생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이 반드시 생명체의 탄생으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내가 판단할 수 있는 영역 밖의 문제이므로 말을 아낄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복잡한 패턴도 지극히 단순한 규칙만으로 충분히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은 자기조직임계성이 뚜렷하게 보여 주는 중요한 특징이다.

자기조직임계성은 비단 통계물리학뿐만 아니라 경제학, 공학, 생태학, 생물학 등에서, 심지어 심리학이나 경영학, 금융공학 등에서도 다양한 모형으로 잘 활용되고 있다. 자연과학이나 공학 같은 분야에서는 비교적 실험이 재현 가능하고 랩 스케일에서 해볼 수 있다는 환경이 허용되지만, 사회학이나 경제학, 경영학 등에서는 그러한 테스트를 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오히려 후자의 분야에서는 인간이 다 이해할 수 없는 복잡계의 내부 특성을 조금이나마 더 깊게 들여다보기 위한 도구로서 이러한 자기조직임계성 모형을 활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복잡계의 다채로운 동적 특성 발현 과정에서 복잡계의 복잡성이 직접적으로 이에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시스템이 품고 있는 소수의 규칙 세트가 주요 작동 기작이 된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후자의 분야에서 무엇인가 감춰진 작동 규칙을 엿보기 위한 장치로서 이 통계물리학의 오래된 개념을 적극 활용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물론 자기조직임계성이 세상만사 모든 패턴이나 숨겨진 질서, 비밀스러운 행동 양식과 미스터리한 데이터를 다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를 전가의 보도처럼 아무 분야, 아무 문제에나 적용하는 것은 곤란하며, 오로지 임계 상태에 놓인 불안정한 시스템 (혹은 아임계상태까지도 확장)의 통계적인 경향, 대표적인 패턴, 규칙들의 조합에 대한 역추적 정도로만 활용되어야 한다. 복잡계에 대한 물리학적 접근 방식은 수학적으로 아름답고 컴퓨터로도 다양하게 실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그것 자체가 세상의 다양한 복잡계 전체에 대한 맥거핀으로 포지셔닝되어서는 곤란하다.

마지막으로 첨부한 그림은 모래 알갱이가 2억 개 있을 때 나타나는 모래더미 붕괴 패턴이다 (Levine, L., Pegden, W., & Smart, C.K. Apollonian structure in the Abelian sandpile. preprint arXiv.:1208.4839 (2014).). 그 자체로도 아름답고, 프랙털로서의 전형적인 수학적 특성 역시 아름답다. 스케일을 달리하여 줌인, 줌아웃을 해도 비슷한 패턴의 모티프가 반복되며 이는 임계 현상에서 흔히 관측되는 스케일 불변성을 보여주는 요소이기도하다. 그렇지만 이러한 패턴에서 우리가 한 층 더 들여다보아야 하는 것은, 결국 이들을 구성하는 요소들로 스케일을 다운하여 내려오면, 패턴과 자기조직성, 그리고 스케일 불변성은 사라진다는 것이다. 모래 알갱이 한 개로 스케일이 내려오면 이들은 주변의 패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마찬가지로 사회적인 시스템이 임계 상태에 놓여 있고, 그 시스템이 자기조직임계성을 보이며 특정한 패턴이나 징후를 보인다고 해도, 그것에만 집중하는 것보다는, 그 사회를 이루는 개별 요소, 특히 인간의 사회라면 인간 개개인에도 집중을 해야 한다. 로봇들로 이루어진 사회라면 로봇 개개를 identical independent agent로 볼 수 있겠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다. independent하지 않을 수도 있고, identical은 더더욱 아니다. 이러한 agent들의 개별 스케일에서는 임계 현상은 agent 개인에 대해 큰 의미가 없다. 사회를 들여다보는 방법으로서 통계물리의 방법론을 활용하고 유용한 모형으로 적용하는 것은 의미가 있으나, 개개의 특성, 특히 stochastic & non-abelian property를 고려하지 않는 prediction 연구는 블라인드 연구가 될 가능성도 있음을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마도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세계 각국은 코로나 사태 2년을 전후로 하여 어제까지의 세계와 앞으로의 세계가 나뉘는 임계점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다. 어제까지의 세계는 우리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익숙한 세계이지만, 내일부터의 세계는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방식의 삶, 사회, 그리고 특성이 발현될 수 있다. 사회 전체적으로 자기조직임계성에 의한 일부 특성은 예측할 수도 있겠지만, 개개인이 느끼는 상전이 현상은 그것이 긍정적인 방향이든 부정적인 방향이든 굉장히 충격이 클 것이다. 앞으로의 변화에 대한 전망과 예측 연구만큼이나, 사회를 구성하는 개개인에 대한 들여다보기 역시 더 중시되어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 한다.

cf) Abelian sandpile pattern 생성 pseudocode:
1. set A= 512*512 matrix
2. Laplacian = (4/(alpha+1))*[(alpha/4) ((1-alpha)/4) (alpha/4) ;((1-alpha)/4) -1 ((1-alpha)/4) ;(alpha/4) ((1-alpha)/4) (alpha/4)];
3. while number of non zero element of A( > 3) >0
do A = A + convolution(Laplacian,A>3)
whilend
4. visualize A

-출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