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영양소가 담겨 있어 중요한 식량자원이 되어준 종자식물 전통 육종방법에서 더 나아가 분리, 교배, 여교배, 하이브리드까지 보다 진화하고 다양해진 육종방법으로 얻어진 씨앗.
그 씨앗의 탄생 배경과 그 안에 담긴 우리의 미래를 살펴보자.
인간을 비롯해 많은 생물이 엄마와 아빠의 유전자를 자식에게 절반씩 전하는 유전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를 통해 생물은 유전적 다양성을 증가시킨다.
유전자를 공구통에 들어 있는 도구라고 한다면, 유전적 다양성이 높다는 건 더 많은 도구를 갖고 있는 것과 같다. 유전적 다양성이 높을수록 기후변화나 질병 등 예기치 못한 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도구가 많기 때문에 생존에 더 유리하다.
종자식물도 같은 방식으로 유전적 다양성을 획득한다.
종자식물은 암술에 수술의 꽃가루가 수분되어 열매를 맺고 암수 유전자가 섞인 씨앗을 퍼트려 번식한다.
종자식물은 크게 겉씨식물과 속씨식물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처음 지상을 차지한 식물은 포자식물이었다. 이들은 암수가 만나지 않아도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그대로 전달해 번식할 수 있었다. 이러한 생식법은 적합한 환경에서 빠르게 번식할 수 있지만, 유전적 다양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뒤늦게 등장한 종자식물은 점차 포자식물을 제치고 식물계의 다수를 차지했다. 종자식물이 포자식물에 비교 우위를 차지하게 된 것에는 유전적 다양성에 더해 씨앗이라는 독특한 방식도 한몫했다.
싹은 자라기에 적당한 조건이 갖춰질 때까지 돌멩이처럼 딱딱한 껍질 속에서 잠들어 있는데, 심지어 2000년 전 대추야자 씨앗이 싹을 틔웠다고 한다.
콩 씨앗의 구조
배: 잎, 줄기 뿌리가 된다.
배젖: 생장에 필요한 영양소를 담고 있다.
껍질: 보호막
물론 씨앗은 불사신이 아니다. 대부분 씨앗은 몇 년 혹은 몇십년 안에 죽지만, 그 기간을 늦출 수는 있다. 수분은 씨앗을 잠에서 깨우는 여러 스위치 중 하나다. 건조한 상태에서 씨앗은 더 오래 잠들 수 있다. 35년 정도의 생명력을 갖고 있는 쌀알도 온도와 습도를 알맞게 조절하면 최대 200년까지 생존할 수 있다.
씨앗은 물, 온도, 햇빛 등 여러 조건을 감지해 살기 적합하다고 판단하면 싹을 틔우고 생장을 시작한다. 이를 위해 씨앗 안에는 생장에 필요한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등 다양한 영양소가 담겨 있다.
종자식물의 이러한 특성은 인류에게도 매우 유용했다. 씨앗에 담겨있는 영양소 덕분에 종자식물은 우리의 중요한 식량원이 됐다.
또한 작물을 재배하고 씨앗을 보관하여 이듬해에 다시 경작할 수 있게 됨으로써 농업이 등장하게 됐다. 인류는 작물을 단순히 기르는 데 그치지 않았다. 아직 유전학에 대한 지식이 없던 옛날부터 농부는 종자식물의 유전적 다양성을 활용해 원하는 품종을 길러냈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 방식의 육종법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효율이 떨어진다.
분리육종: 자연적인 변이로 생성된 우수한 품종을 계속 선별하여 육종하는 방법.
교배육종(interbreeding): 원하는 특징을 가진 두 품종의 교잡을 통해 원하는 새로운 품종을 만드는 방법.
여교배육종: 서로 다른 품종을 교잡해 만든 자식세대 품종을 다시 부모 세대와 교잡하는 방법.
원하는 특성이 나오지 않거나, 그러한 과정에서 나쁜 특성이 쌓이기도 했다.
1865년 멘델이 등장해 중요한 발견을 했지만, 당시엔 아무도 그를 주목하지 않았고, 1900년대 와서 그의 이론이 재발견 되어 유전학과 함께 육종법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1940년 미국에서 유전적으로 다른 두 품종의 교잡종에서 부모세대의 장점이 더 크게 활성화된다는 것을 발견하면서 하이브리드 육종(Hybrid Breeding) 기술이 등장하게 됐다.
또한 여태까지는 눈으로 보고 확인해야만 했기 때문에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특성은 포착하기 어려웠다. 유전자 기술의 발달로 현재는 일명 DNA마커를 이용해 원하는 특성을 유전자 단위에서 판별해 더 효율적으로 선별 육종할 수 있다. 이러한 기술들 덕분에 우리는 보다 빠르게 원하는 품종의 작물을 재배할 수 있게 됐다.
세계는 안정적인 식량 확보를 위해 육종 기술의 개발과 함께 종자은행도 설립했다. 북극 노르웨이 스발바르제도에 세워진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고가 그곳이다. 혹시 모를 재난으로 인한 멸종으로부터 작물을 보존하고, 야생종이 갖고 있는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세계 각국과 기업이 세운 종자은행은 1,000여 곳이 넘는다.
종자은행은 이름처럼 단지 씨앗을 받아 보관만 하는 곳은 아니다. 초반에 이야기했듯 씨앗은 불사신이 아니기 때문에 이상적인 환경에서 보관해도 상태가 계속 나빠진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씨앗이 발아할 수 있는지를 테스트하고, 오래된 종자를 새 종자로 교체하는 등 손이 많이 필요하다.
여러 기업과 연구자들은 종자은행에 보관된 야생종 씨앗을 이용해 새로운 위협을 이겨낼 수 있는 종자를 개발하는 연구에도 몰두하고 있다.
한 예로 우리가 먹는 캐번디시 품종의 바나나는 바나나마름병, 커피 작물은 커피녹병(Coffee Rust)으로 인해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연구자들은 바나나와 커피 야생종에서 이러한 균에 저항성을 갖는 특성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작물을 재배하기 어려운 춥고 건조한 지역에서도 자랄 수 있는 감자 품종을 개발해 지역 주민의 생활에 도움을 주기 위한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비록 작은 씨앗이지만 그 안에는 우리 미래가 담겨있다.
- 출처: LG화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