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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시스템 위기, 연준의 역량, 시장 대응, 구조적 결함 - 홍진채

by 성공의문 2021. 8. 27.

1. 시스템의 위기는 그 구조에 내재되어 있다. - 헨리 키신저

시스템이 단기적으로 어떻게 굴러갈 것인가를 예측하는 것보다는, 구조적 취약성을 파악하는 것이 의사결정에 더 큰 도움이 된다. 구조란 강성, 회복탄력성, 안티프래질리티, 블랙 스완의 존재 여부(그레이 스완) 등을 의미한다.

금융시장은 각 참여자들의 현실에 대한 인식이 상호작용하는 재귀적인 시스템이다. 이 재귀성은 A 플레이어의 움직임을 B 플레이어가 확산시키는 positive feedback, A 플레이어의 움직임을 B 플레이어가 되돌리는 negative feedback으로 나눌 수 있다.

자유경쟁 시장으로 각 참여자들의 피드백만이 유일한 가격 결정 구조일 경우, 네거티브 피드백과 포지티브 피드백이 공존한다. 포지티브 피드백이 가끔 굉장히 강력해질 경우 쇼크가 발생하고, 구조적 취약성이 존재할 때 이 쇼크가 트리거가 되어서 경기침체, 나아가 공황이 오기도 한다.

시장 참여자들의 자정작용에만 기댈 수 없다는 취지로 미 연준이 탄생하였다. (미국의 공식적인 중앙은행은 그 전에 두 번 생겼다가 없어졌다. 비공식적으로는 하나 더 있음. 공식 중앙은행을 두 번 없애버릴 정도로 미국인의 중앙 통제에 대한 반감은 뿌리깊다.) 연준의 역할은 당연히, 포지티브 피드백이 극렬해질 때 네거티브 피드백을 억지로 주입하는 거다. 전 연준 의장 윌리엄 맥체스니 마틴은 "연준의 역할은 파티가 달아오를 때 펀치볼을 치우는 것이다."라고 표현한 바 있다. 사람들이 취할 때 흥을 깨는 역할이 연준의 역할이다.

이걸 경기에 대한 조정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는데, 엄밀히는 경기에 대한 조정은 재무부를 비롯한 여타 행정부에서 하는 거고, 연준은 시스템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한 기관이다. 둘은 같아보이면서도 유의미하게 다르다. 실업률, 인플레이션, 금융회사 규제는 연준의 몫이다. GDP 성장, 재정정책을 통한 고용창출은 연준의 몫이 아니다. 금융시스템이 붕괴되어 GDP가 망가지는 걸 막는 건 연준의 몫인데, 시스템이 정상화된 이후에 어디에 돈을 쏠지는 연준의 몫이 아니다.

2. 연준의 역량

역사적으로, 연준이 잘 작동했던 시기와 그렇지 않은 시기가 있다. 잘 작동했던 시기는 1950년-60년대, 2008년, 2020년이다. 잘 작동하지 않았던 시기는 1928년, 1970년대다. (개인적으로는 2017년과 2019년도 포함하고 싶지만 이런 건 소소한 사례.)

1928년은 이름대로 강력한 벤저민 스트롱 뉴욕 연은 총재(현재 연준 의장 역할)가 사망하고, 후임자들이 과열을 막는답시고 무작정 금리를 올려서 대공황의 트리거가 되었다. (물론 대공황은 일차대전 이후의 혼란과 보호무역 등으로 인하여 이미 구조적으로 준비된 재앙이었다.)

1950-60년대는 앞서 언급한 윌리엄 맥체스니 마틴의 시기. 케인지안이 경제를 요리하는 데 가장 신났던 시기. 1970년대는 60년대의 자만이 불러온 스태그플레이션. 그 때의 연준 의장 아서 번스는 사상 최약체. 이후 폴 볼커가 사태 수습하고 앨런 그린스펀에게 넘겨줌. 그린스펀의 시대는 골디락스를 맞이했지만, 후반부 시작된 부동산 과열이 결국 금융위기의 트리거가 됨. 사태는 버냉키가 수습하고 옐런에게 넘겨줌. 옐런은 테이퍼링 및 금리 인상을 훌륭하게 마감. 후임자 파월은 초반 트럼프의 꼭두각시라는 비난을 받았으나, 코로나 사태를 훌륭하게 수습(하는 중)

현재의 연준은 어떠한가? 2019년의 금리 인하는 뜬금포였다는 생각이지만, 2020년 2-3월의 대응은 훌륭했다. 훌륭할 수밖에 없는 게, 2008년의 위기 대응자들이 멀쩡히 잘 살아있기 때문. 정답지 매뉴얼은 있고, 행동할 용의만 보여주면 되는 판이었고, 행동했다.

이후의 정상화 국면도 매뉴얼은 나와 있고, 행동하면 된다. 다만 행동에 걸리는 건 여러 잔재들. 코로나 변이 확산과 경기 침체 우려. 신흥국 공급망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까딱하다가는 '글로벌 더블 딥'을 초래했다는 오명을 쓰고 싶지는 않지 않겠나. 인플레이션은 신흥국 공급망의 종속변수이니 (이제는) 생각보다는 중요하지 않고, 실업률도 그럭저럭 만족할 수준이다. 결국 연준이 기다리는 건 신흥국 백신 보급률. 여기에 약간의 음모론을 가미하자면 금리 인상은 중국 압박 카드니까 좀 더 최적의 타이밍에 쓰고 싶기도 할 테다.

3. 그래서 어쩌라고?

테이퍼링은 하는 게 좋다. 해야 할 상황이 되었는데 안 하면 그게 더 큰 화를 불러온다. 테이퍼링은 할 테고, 아무리 커뮤니케이션을 잘했더라도 시장에 충격은 줄 거다. 소소하게는 연준 의장 변경이 단기 충격을 줄 수도 있다.

근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앞으로의 관전포인트는, 테이퍼링을 하냐 마냐, 타이밍이 언제냐가 아니라, 테이퍼링의 충격이 실물 경기로 전이되느냐다.

유동성 축소 후 실물이 충격을 받을 수도 안 받을 수도 있는데. 충격을 안 받으면 감사하게 다음 위기에 대비한 총알을 장전하는 거고. 충격을 받으면 또 돈을 풀 명분이 생기는 거다. 첫 번째 케이스라면 그냥 아무것도 안 해도 되고, 두 번째 케이스라면 그때 가서 고민하면 된다. 그 충격으로 인하여 게임에서 이탈할 정도로 과도한 베팅을 삼가하면 즐거운 줍줍 타이밍이 된다. 이렇게, 예측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가 된다.

우리는 2006년의 교훈과 2015-18년의 사례를 알고 있다. 2006년의 유동성 축소는 이미 누적된 구조적 결함을 해소하기에는 늦었었다. 2015-18년은 유동성 축소에도 불구하고 경기가 튼튼했기에 별 충격 없이 넘어갔다. 그리고 미중분쟁이 시작되었지.

4. 구조적 결함

다시 키신저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누적된 구조적 결함이란 무엇일까?

안전하지 않은 자산이 안전하다는 착각을 주면서 안전자산에 편입되거나(부동산 파생상품, 저축대부조합 사태), 착취당한다는 인식이 국민정서로 번지면서 갈등이 촉발(오일쇼크, 아랍의 봄, 이차 세계대전)되는 등의 사건이 우리가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안전자산에 무엇이 편입되어있는지, 무엇이 실제로 안전하지 않은 자산이었는지는 대체로 지나고 나서야 알 수 있는 것이니 현재 관측되는 게 없다면 무리하게 찾으려 해봤자 별 의미가 없고.

지정학적 분쟁이 코로나 종식 즈음에 대두될 수 있다. 그래서 최근 중국의 민간산업 규제가 단순히 해당 산업 혹은 국가의 국지적인 이슈로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는 거.

이 또한 이야기하자면 한참 걸릴 텐데, 긴 얘기를 짧게 해보자면,

1) 중국 입장에서는 민주당이 더 껄끄러운 상대다. 건드리지 않고 싶은 영역을 건드림
2) 미국 입장에서 중국은 더 이상 놔둘 수 없는 상대다. 미국의 힘은 군사력에서 나오고 군사력은 돈에서 나온다. 조만간 중국이 미국보다 돈이 많아진다(는 불안감이 존재한다.)
3) 중국 입장에서 미국은 역내에 들어온 깡패다. 중국은 평화롭게 일어서고 패권을 주장할 생각이 없(다고 주장하)는데, 괜히 들어와서 시비를 건다.
4) 조직의 의사결정은 크게 의도와 역량으로 나눌 수 있는데, 국제정세에서의 의사결정은 의도보다는 역량에 크게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크로 메모' 참고)

그래서, 인플레이션이니 델타 변이니 테이퍼링이니 하는 건 다 지나갈 이슈라고 생각하는데, 중국의 민간산업 규제는 거대한 무언가의 서막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있다. 물론 아니면 좋겠지.

출처: https://www.facebook.com/100000502654029/posts/4948688421824531/?d=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