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건, 뮤직 스트리밍 플랫폼이건, 웹툰이건, 메타버스건 결국 그 공간을 채워넣을 컨텐츠에서 승부가 난다.
그걸 우리나라가 너무 잘해서 좋다. 부쩍 요즘 드라마건 영화건 댄스건 노래건 음식이건 뭐든 잘해도 보통 잘하는게 아니다. 처음엔 'K-'를 붙이는게 너무 촌스럽기도 하고 맘에 안들었는데, 제대로 그것도 한꺼번에 다 뜨고 나니 K로 그루핑한게 잘된 것 같다. 또 K란 스펠링을 선점하길 잘했단 생각이 든다. K자로 시작되는 국가들은 행여 잘나가더라도 다른 조어를 고민해야 할꺼다. 적어도 C(China)와 J(Japan)와는 확실히 차별화될 수 있어 좋다.
근데 반짝 하고 끝나는 유행이 아닐까 우려도 되고, 정말 근간에 뭔가가 있긴 한건가 고민도 된다. 그래서 뇌피셜로 한번 생각해본다.
(1)한국인
제일 먼저 떠 오르는건 사람이다. 여의도에 오래 살아서 새벽이나 주말마다 촬영현장을 많이 보고 자랐다. 늘 추운 겨울에도 반사판을 몇시간이고 들고 있는 스텦들, 교통통제를 하는 어린 스텦들, 배우를 따라다니는 코디와 매니저들, 수염 덥수룩해 언 손으로 카메라를 붙잡고 있는 촬영감독 등... 영화인들을 떠올리면 늘 힘들고 배고픈 직업인 것 같았다. 그걸 무려 수십년 참아내셨다. 넷플릭스나 헐리우드가 저가로 어떻게 이런 퀄리티가 나오냐고 놀라지만 한국인들은 다 안다. 왜 그런지...
어렸을 때 대학 안가고 만화가가 되겠다고 하면 십중팔구 집에서 욕을 먹고 쫒겨났을 것이다. 그래서 유명 만화가 밑에 문하생으로 들어가 죽도록 고생을 해야했다. 난 이런걸 '노력 절대량의 법칙'이라 말한다. 대한민국에 태어나면 서울대를 가던, 만화가를 하건 부모님께 인정받는 자식이 되려면 뼈를 깎는 노력이 기본이다. 다 매달리는 학업의 길이 아니라면 엄청난 비아냥 속에 수십,수백배의 노력을 더 해야 호적에서 파지는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자랑스런 자식이 되려면 오랜 시간의 풍화작용이 필요하다. 버린 자식이 자랑스런 자식이 되기까진 피땀어린 노력과 시간이란 약이 필요했다. 스스로가 자신을 입증해야만 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판사.변호사.의사가 아닌 이상한 길이었던 컨텐츠 메이커의 길..... '딴따라'라면서 무시당했던 음악가의 길도, 온몸이 부서질만큼 돌고 또 돌아야했던 익스트림 댄스의 비보이의 길도, 잘되어봐야 노란색 봉고 운전하는 원장밖에 더되겠냐는 비아냥의 태권도 유단자의 길도... 남들과 달랐기에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길을 걸어야 했다.
하지만 이들이 이젠 자랑스런 K-컨텐츠의 주인공이다. 공부한 사람들이 노벨상을 받아오진 못하지만 이들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하고, 태권도 퍼포먼스로 세계를 놀라게 하며 AGT에서 몇손가락 안에 들며 한국의 국기로 자부심을 갖게 만들었으며, 세계 제1의 비보이 퍼포먼스 국가로 국뽕을 선사한다. BTS가 각국 뮤직어워드에서 아시아인 처음으로 수상을 하고, 오징어게임이 세계 최대 스트리밍 드라마가 되었다.
세상의 중심이 되어 거들먹거려본 적이 없기에 겸손할 수 밖에 없다는건 가장 큰 무기다. 감독이나 배우가 사고를 치거나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아무리 유명해져도 그 무게를 이겨내기 위해 더 애쓰고 노력한다. 언제든지 팬들이 싸늘히 고개를 돌리는 경험을 해야했던 한국이기에 매사가 조심스럽다. 뿐만 아니라 세계의 팬들과 소통함을 주저하지 않는다.
한국인들은 모두 그저그런 제3자적 관객이 아니다. 한국이 만든 컨텐츠를 어떻게든 빛내기 위해 최고의 조연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다. 전세계 SNS에 진심으로 이를 홍보하고 설명하고, 오해를 풀어나가며,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하는 첨병의 역할을 맡아 한다. 정말 모든 국민이 문화에 관한한 한 식구같다.
(2)시스템
웹툰작가가 된다면 엄청난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한국은 어디든 치열한 경쟁이 기본이다. 여기서 이기려면 그림을 잘그리는건 기본이고 스토리, 기획, 디지털과의 융합능력, 무엇보다 독자와의 상호작용이 반드시 필요하다. 치열한 경쟁에도 늘 1-10등까지가 존재한다. 이게 무궁무진한 영화와 드라마의 원작을 제공한다. 웹툰 생태계가 계속 커지고, 웹툰작가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계속해서 이 바닥에 출사표를 던지는 한 무궁무진한 극본들이 제공될 것이다. 이미 웹툰독자로 부터 철저한 검증을 받았기에 탄탄한 원작은 걱정이 없다.
피지컬과 좋은 피부, 잘생기기로 아시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한국사람들, 전국각지의 중학교에서 제일 잘생기고 예쁜 아이들이 공연예술고등학교에 입학한다. 조각같은 아이들 중에도 연기력이 뛰어나고 끼가 많은 아이들이 많이 있다. 이 아이들이 미친듯 연기를 해낸다. 툭치면 안약없이도 눈물을 흘리고,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는 연기까지 해낸다. 스턴트맨들은 정말 목숨을 걸고 뛰어내리고 몸에 불을 붙인다. 보이그룹, 걸그룹이 되기 위해 인생을 걸고 어린 나이부터 연습생의 고행을 걷는 수많은 아이들이 그 좁은 연습실에서 거울을 마주보며 하루에 몇시간씩 춤을 춰낸다. 발성연습을 하고, 연기연습을 한다. 남는 시간엔 러닝머신에서 뛰고 복근을 만드는 피지컬 트레이닝을 견뎌내야한다.
수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의 경쟁률이 수백대 일이 넘는 것만 봐도 OST는 걱정 안해도 된다. 매회당 OST가 하나씩 들어가는 드라마는 한국 밖에 없다. 천재 작곡, 작사가들이 너무 많다. 이젠 해외의 유명한 크리에이터들과 함께 콜라보도 진행한다. 미디 프로그램이 나오면서 컴퓨터와 키보드로 수많은 한국인들이 싱어송라이터가 되어 있다. 이 분야에 진짜 인재가 많다. 수많은 창작곡들이 드라마의 OST가 되기위해 줄을 서있고, 유튜브를 도배하고 있다.
DSLR을 하나씩 다 가지고 있을 정도로 한국인은 영상에 진심이다. 이렇게 아마추어 예술가가 많은 나라에서 촬영감독이라면 부담을 진짜 크게 느낄 수 밖에 없다. 한컷 한컷에 배경과 피사체의 심도와 색감에 고민 안할 수 없다. 그래서 드라마, 영화의 퀄이 진짜 훌륭하다. 이건 가수들의 M/V도 마찬가지다. 정말 대단하다.
클래식에 줄리어드와 실용에 버클리음대... 정말 한국인이 많다. 예술분야는 진짜 미친듯 어려서부터 연습을 해서 핑거링이 특출나다. 그게 바이올린이건 전자기타건 말이다. 최근엔 국악도 컨버전스가 되면서 매우 힙해졌다. 전통을 고집하되 트렌드와 융합됨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노래부터 악기연주까지 진짜 한국인은 훌륭하다. 최근의 콩쿨에서 한국인이 최고상을 휩쓰는걸 보면 얼마나 열심인지 알 수 있다. 딸이 서울예고를 다녔기에 이 분야에서 한국인의 특출함과 노력의 깊이는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유일한 단점이 언어였다. 암만 완벽히 잘 만들어내도 우리의 정서를 담은 한국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글로벌 시청자들에겐 소용없었기 때문이다. 이젠 자동번역 기능과 자막에 대한 거부감이 낮아지면서 언어가 장벽으로서 힘을 잃었다. 오히려 한글이 듣기 편하고 고급스럽단다. 자막을 읽는 수고를 이제 하겠단다. 글로벌 OTT를 통해 더 많은 작품이 나가고, 역주행을 할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이 모든 것들이 이제 각분야의 멋진 퍼즐이 되어 정교하게 껴맞춰지고 있다. 서로 유기적 작용을 하며, 컨텐츠란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되어 지고 있다. 그게 아날로그건 디지털이건, 현실세계건 가상세계건 상관없다. 대한민국이 거대한 시스템이 된 것이다.
(3)풍부한 이야기
한국은 반만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가루분말로 급하게 저어 만든 이야기가 아니라 사골국물처럼 오랫동안 끓여 나온 깊은 이야기들이 너무나 많다.
최수종은 배우가 아니라 그냥 임금인 줄 알았다. 별명이 수종(-宗)이라는 것만 봐도 세종대왕의 동생쯤 되는 서열로 보이니.... 처음 태조왕건부터 대조영, 태종, 장보고, 이순신까지...
수퍼히어로가 없어도 역사의 위인으로만 영화를 만들어도 엄청난 분량이 나올 것이다. 일제암흑기의 한서린 역사나 근대화 시기, 625전쟁, 정주영.이병철의 일대기인 '영웅시대' 같은 기업드라마 등 한국은 진짜 스토리가 풍부한 나라다. 심지어 강남의 이상교육열을 비꼬는 드라마도 크게 성공할까... 한도 많지만 관심영역이 너무 넓은 곳이 한국이다.
(갑자기 떠올라 삽입한다. 공포, 호러물은 진짜 이야기의 끝판왕이다. 미국이 좀비물로 재미를 보고 있지만, 한국은 정말 각 지역지역마다 왜 이렇게 내려오는 구전설화들과 원한서린 귀신들이 많은지... 어려서 전설의 고향은 암만 봐도 늘 창의적인 귀신 얘기들로 끝이 없었다. 이 이야기는 강원도 어느어느 시골에서 흘러내려오는 어쩌구저쩌구.... 매편이 창의적으로 무서웠다. 손끝에 땀을 쥐게했고, 구미호나 처녀귀신 분장이 조금이라도 유치하거나 티가 나면 곧바로 방송국에 투서가 들어갔다. 귀신 분장도 시청자 수준에 맞춰 점차 정교해졌다. 그게 특수효과로 이어졌다 생각한다....)
이를 내러티브로 승화시키는 작가들도 진짜 훌륭하다. 옛 선비들이 가난하고 돈이 없어도 책상에 앉아 붓글씨를 쓰듯, 5000만명이 넘는 대한민국 사람들이 인터넷 상에서 블로그, SNS, 카페 등지에서 엄청난 글을 뿜어댄다. 유뷰브는 한국인들을 위해 만든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하루에도 엄청난 양의 컨텐츠가 둑에서 쏟아진 물처럼 흐른다. 정말 대단하다.
최근 배우들이 해외에 나가서 수상소감을 발표하거나 토크쇼에 나가서 이야기하는걸 보면 정말 대단하다. 내 생각엔 김구라 같은 독설가들에게 하도 당하고, 안웃기면 썰렁하다고 핀잔을듣는 문화에서 단련되고 또 단련되었기에 그 큰 무대에서도 능청스럽게 잘 얘기하는게 아닌가 싶다. 이야기의 소재가 되는 많은 재료도 있지만, 이를 표현하는 능력, 사람의 관심을 끄는 법을 안다. 이건 한국인들이 종특이다.
수만개의 카페에 많은 사람들이 엄청난 수다 에너지를 분출해야 하는 곳이 한국이고, 택시 기사님 한번 잘못 만나면 역사,문화,정치,철학을 다 논해야 하는 곳이 한국이다. 이야기는 앞으로도 넘쳐나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