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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프랑스 반미감정의 기원 - 역사적 배경

by 성공의문 2021. 11. 5.

프랑스는 유럽국가 중에서 반미감정이 가장 큰 나라 중 하나이다. 같은 민주주의 국가고 서방진영인데 왜 그런 것일까?

여기에는 뿌리 깊은 역사적 배경이 있다.

드골은 위대함(grandeur)이 없는 프랑스는 프랑스가 아니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요즘 이런 말을 들으면 프랑스가 자뻑 쩐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프랑스는 역사적으로 강대국이 아니었던 적이 없다. 중세시대 유럽의 중심이었고, 나폴레옹 집권 당시에는 유럽을 통일할 뻔했다. 그리고 수에즈운하 건설 또는 러시아의 근대화에 가장 많은 자본을 투입한 것도 프랑스였다. 미국은 그런 프랑스를 이등국 취급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베르사유 조약 협상 당시 미국은 영국과 주로 보조를 맞췄고, 프랑스의 각종 요구를 성가시다고 생각했다. 특히 프랑스가 독일에 대해 무리한 요구를 하는 걸 적극 저지하기도 했는데, 이는 프랑스가 입은 전쟁피해에 대해 무감각한 행동이었다. 더군다나 프랑스가 미국 측 권고를 상당부분 수용하여 국제연맹을 지지했는데 정작 미국은 국제연맹에 가입하지 않았다.

그런데 가장 큰 충격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은 프랑스를 거의 패전국 취급하고, 사실 프랑스 해방 후 프랑스에 대해 군정을 실시하려고 했다. 당초 드골이 이끄는 자유프랑스를 인정할 계획이 없었고, 처칠의 강력한 설득 후에서야 이를 인정했다. 그리고 프랑스는 전후질서를 논의하는 주요자리, 즉 얄타회담과 포츠담 회담에 모두 초대되지 않았다. 이에 드골은 소련과 단독으로 회담하면서 레버리지를 확보하려고 했지만 스탈린도 드골을 진지한 상대로 여기지 않았다.

어디 이 뿐이던가.

미국과 영국은 핵무기 및 기술 관련 깊은 협력을 했는데 (물론 미국도 영국 뒤통수 치면서 처음에는 영국을 빡치게 했다) 프랑스는 여기에 아예 초대되지도, 협력대상으로 고려되지도 않았다. 스스로 강대국이자 전후질서의 설계자 그룹에 참석할 권리가 있다고 여기는 나라 입장에서 이는 참을 수 없는 모욕이었다.

얄타회담 이후 노정된 국제질서에 프랑스가 초대되지 않았다 하여 프랑스는 여기에 분노했고, 영미세력과 소련이 세계를 양분하고 있으므로 프랑스는 적극적으로 유럽의 맹주가 되어 유럽대륙(영국까지 포함하는 개념이 아님)을 단결시켜 제3의 축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되었다.

아시아의 좌익민족주의자와는 전혀 결이 다른 반미주의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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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영국의 패권과 프랑스는 같이 어울리긴 좀 힘든것도 있긴 합니다. 프랑스의 주세력범위는 미국영국과 많이 겹치지 않는데다가 기본적으로 자체 시스템을 만들 공업능력과 식량사정이 되는 프랑스가 영국처럼 미국에 같이 간다면 패권종식이 필수적인것도 있죠.

프랑스가 영미세력의 peer 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고 파트너십을 구축해야 하는데, 스스로 계속 대등하다고 여기니 갈등이 발생하는 거 같다는 느낌입니다. 사실 프랑스 입장에서도 아프리카 사헬문제나 남태평양의 영토 방어 혹은 북아프리카 문제도 미국의 협조 없이 단독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한 개도 없는데 지나치게 감정적인 거 같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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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숙이자 협력자인 독일과 함께 EU를 미국, 러시아보다 더 큰 규모의 경제공동체로 키워냈죠. EU가 군사력까지 갖추면 미, 중, 러에 전혀 꿀리지 않는 블록이 만들어지는 거죠.

사실 그게 불가능한 꿈이라서요. EU는 27개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부분의 나라가 외교와 국방을 주권의 최고가치로 여기고 있는데, 이를 하나로 일원화 하는 건 지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독일이나 프랑스가 발트국가들이나 그리스 또는 폴란드를 위해 수만명을 희생시킬 의지가 있어야 하는데 아직은 요원해보입니다.

그래서 동유럽 국가들은 안보는 나토, 즉 미국에 기대려고 하죠. 이쪽은 친미블록이죠. 우크라이나 사태 때 드러났지만, 중부 유럽과 동유럽은 안보에 있어 이해관계가 다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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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계대전때 참전한 미군은 프랑스로부터 거의 모든것을 받아서 싸웠죠. 수류탄, 기관총, 야포까지 거의 모든 것을 다 프랑스군으로부터 의존했던 것이 미군이었습니다.

2차세계대전때 미국과의 관계도 솔직히 프랑스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미국이 나름 프랑스를 배려해줬다고 보여집니다(군정을 실시하려다 그래도 승전국에 끼워준것을 보면...) 양국의 갈등은 내부의 정치적 갈등과 혼란을 극복하기 위한 드골 대통령에 의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맞습니다. 국내정치적 요인도 매우 중요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당시 위세를 자랑했던 프랑스 사회주의자-공산주의자들의 반미친소 노선 중 반미 어젠다를 선제적으로 co-opt한 느낌도 있습니다 🙂

"프랑스인의 본성은 드골보다는 페탱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만..."이라는 스탈린의 팩트폭격이 기억나는군요 ㅋㅋ

제무르나 르펜의 꾸준한 인기를 생각하면 스탈린의 혜안이라고 해야할지 ㅋㅋ

실제로 자유 프랑스보다 비시 프랑스에 협력한 프랑스인이 훨씬 많았다죠 ㅋㅋㅋㅋ
스탈린 입장에서는 1차대전 때 동맹국이었다 혁명 일어나니까 백군을 후원한 프랑스가 아니꼬운 것도 있었을 거고요


출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