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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유럽에서 본 한국 농업의 미래

by 성공의문 2008. 12. 3.
며칠전 제가 사는 곳 근처에 있는 발전소를 다녀왔습니다. 이 발전소는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대형 발전소가 아니라 개인이 운영하는 소형 발전소였습니다.

이 발전소는 곡물을 소의 배설물과 함께 섞어 발효를 하고, 여기서 발생한 가스로 엔진을 돌려 전기를 만듭니다. 따라서 곡물 (옥수수와 밀) 야적장, 그리고 발효 컨테이너가 발전소의 대부분이고, 발전용 엔진은 대형 트럭 엔진을 개조한 모델이기에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이 엔진을 냉각하기 위해 물을 쓰는데, 이렇게 덥혀진 물로 주변에 난방을 공급하게 됩니다. 제가 머무는 숙소도 여기서 온수를 공급받는데, 1년에 난방비로 발전소에 약 15000유로를 낸다고 합니다. 발전소의 부수익인 온수 공급이 이 정도 규모라면 (게다가 우리 숙소 말고도 다른 곳에도 온수를 공급하기에 수익은 더 높겠죠), 발전소 전체의 매출액은 꽤 많을 듯 싶었습니다.

이 발전소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근처에 사는 중년의 농부 두 명이었습니다. 이들은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발전소를 운영하는데, 농사를 지은 곡물을 발전소 연료로 쓴다고 합니다. 과연 막대한 시설 투자비와 곡물 가격에도 불구하고 발전소가 흑자를 낼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지만, 설명을 들으니 대형 발전소가 대체 연료 발전소의 전기를 비싸게 사주는 제도가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수익이 보장된다고 합니다.

최근 몇년 사이에 석유가격이 급등하면서 대체 연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곡물을 이용한 발전도 많은 각광을 받았지만, 작년 부터 곡물가격이 급등하면서 "곡물을 먹지 않고 에너지원으로 쓰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여론도 높아진 상태입니다. 곡물 가격이 오르면 당장 가난한 사람들의 생존이 어려워지기 때문이죠. 하지만 대체 에너지 개발에 나서지 않는다면 석유고갈로 언젠가 인류가 위기에 처하게 되기에, 대체 에너지를 개발하기 위한 시도는 적정 수준에서 계속되어야 하는 것도 올바를 것입니다.

제가 이 발전소를 다녀와서 느낀 것은 대체 에너지 개발의 중요성이라기 보다는 한국과는 매우 다른 독일 농업에 대한 부러움이었습니다. 독일은 농사를 지어도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구조라 도농간 소득차이가 적고, 따라서 농촌에서도 농사를 지으면 안정된 생활을 하는 젊은이가 많습니다. 발전소를 운영하는 농부들도 그러한 예죠. 그에 비해 한국의 농가 소득은 도시의 75% 수준이고, 이에 따라 대부분의 젊은이가 농업을 포기하고 도시로 떠나 농사는 노인들이 담당하는 실정입니다.

독일을 비롯한 서유럽에서 농촌지역의 소득수준이 도시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 때문입니다. 우선, 유럽은 농가에 대단히 많은 보조금 (subsidy)을 지원합니다. 유럽연합의 농업 보조금은 Common Agricultural Policy (CAP)를 통해 지급되는에, CAP의 예산은 유럽연합 전체 예산의 62%를 차지할 정도로 많습니다. 유럽이 이처럼 많은 돈을 농가에 지급하는 이유는, 농촌을 단지 경제의 관점에서 볼 뿐 아니라 문화와 사회의 중요한 요소로 보기 때문입니다. 농가의 소득이 낮다면 일할 수 있는 젊은이들이 다 떠나서 농촌이 황량해지고, 농촌에 사는 사람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살게 됩니다. 이는 국가 전체로 봤을 때 공평하지 못한 일이죠. 또한 농촌은 유럽 문화의 중요한 일부분입니다. 만약에 농촌이 황폐하게 되면 유럽 문화 전통의 많은 부분이 사라지겠죠.

유럽의 농촌이 가난하지 않은 또다른 원인은 농업의 기계화, 대형화 때문입니다. 유럽은 미국 만큼은 아니더라도 경작 단위가 크고, 따라서 농사를 손으로 짓지 않고 기계로 짓습니다. 예를 들어 전에 방문한 발전소에는 발전소 주인들이 쓰는 트랙터가 있었는데, 바퀴 하나가 사람 키 보다 클 정도로 거대했습니다. 그런데 발전소 주인들은 "진짜 큰 트랙터들은 다른 창고에 있다"고 하더군요. 농사를 이처럼 기계로 짓기 때문에 유럽에서는 농부들이 밭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기가 힘듭니다. 어느날 보면 새로운 곡물이 자라고 있고, 어느날 보면 이미 추수가 끝나 있죠. 즉, 대형기계로 작업하기에 커다란 밭이라도 하루 사이에 작업할 수 있고, 따라서 넓은 지역에 농사를 짓기에 수익도 많이 올릴 수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경제 성장을 위해 농촌이 서서히 죽어가도록 방치를 했습니다. 공산품 수출을 위해 농업을 개방할 때면 농민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농촌을 돕겠다"며 농촌에 투자를 약속했지만, 이는 농업의 체질을 바꾸기 보다는 당장 농민들이 좋아할만한 정책을 집행하는데 쓰였습니다. 예를 들어 92년 우루과이 라운드가 타결된 뒤로 정부는 10년간 62조원을 농업에 투자했고, 한미 FTA를 추진하면서 정부는 다시 10년간 119조원을 농업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렇다면 20년간 180조원이라는 엄청난 돈이 농업에 투자되는 셈인데, 한국 농업은 여전히 경쟁력이 떨어지고, 농촌은 가난하며, 식량 자급율은 20%대로 극히 낮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정부가 농촌에 대한 청사진이 없기 때문입니다. 농업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임으로 식량 자급률을 높이고, 농촌의 소득을 증대해서 내수를 늘리고, 젊은이가 농사를 지을 만한 환경을 마련해 농촌을 젊고 건강하게 만들어야 겠다는 확실한 비전이 있다면, 이를 실천할 방안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정 아이디어가 안나오면 국토면적은 적지만 농업은 발전한 스위스 등의 예를 참고하면 될 것입니다.

유럽이나 미국, 일본의 농촌에 가보면 도시와 비슷한 수준으로 경제가 발달하고, 따라서 사람들이 도시로만 몰리는 현상이 덜하다는 사실을 금방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지금부터 농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려야 앞으로 살기 좋은 농촌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농촌을 "산업화의 피혜자"가 아니라 "내수 경제 확대의 주역"으로 보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럴 때 한국의 농촌도 유럽 농촌 처럼 살기 좋은 곳으로 발전하게 될 것입니다.
-cim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