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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_웹툰

영화 ‘13층’ - Cogito Ergo Sum : 메타버스 시대 존재에 대한 질문

by 성공의문 2021. 11. 25.

명작 영화 ‘13층 (1999년 작)’

넷플릭스에 시대의 명작 영화 ‘13층 (1999년 작)’이 걸려 있길래, 오랜만에 애들 재우고 와이프와 같이 감상했는데, 역시 다시 봐도 명작이다. 22년 전에 개봉한 영화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플롯도 훌륭하고, 무엇보다 배우들의 연기가 일품이다. 이 영화를 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다층위의 세계가 씨줄과 날줄 엮이듯 오버랩된 상황에서, 배우들은 각 세계에서의 이질적인 캐릭터를 실감 나게 연기해야 하는데, 외모는 똑같은 상황에서 전혀 다른 인격으로 변신하여 전혀 다른 상황 속에서 연기해야 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것이 너무 과하면 영화 '23 아이덴티티'에서 제임스 맥어보이가 좀 지나치게 과장되게 연기한 다중인격자처럼 배우의 연기가 굉장히 우스꽝스러워지는데 (그래서 그 영화에는 집중을 할 수 없었다), 이 영화의 배우들은 그 중책을 굉장히 잘 해냈다. 특히 주연 배우가 그런 역할을 잘 해냈다.

배우들의 연기는 연기고, 사실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까닭은 플롯의 대칭성이 정교하게 잘 짜여있기 때문이다. 더 자세하게 말하면 스포가 될 것 같아서 이야기하지는 않겠지만, 아마도 2010년 작, 놀란 감독의 영화 ‘인셉션’ 역시 이 영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 같고, 같은 해에 개봉한 매트릭스 그리고 매트릭스의 후속작들 역시 이 영화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았으리라 생각한다. 사실 가상 세계에 접속하여 캐릭터를 내려받거나 (다운로드), 아예 그에 빙의하여 거의 현실과 다름없는 (가만 보니 이거 메타버스네...) 삶을 영위한다는 장치는 이미 이 영화 이전부터 여러 영화에 차용되던 장치들이다. 1982년 개봉작 ‘트론’ (2010년에 속편 개봉)을 위시로, 1998년에 개봉한 ‘다크시티’ (이 영화도 강추)도 비슷한 뉘앙스의 플롯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영화 13층이 이들 비슷한 선행 작들과 차별화되는 부분, 특히 같은 해에 개봉한 매트릭스 (이 영화 역시 두 말할 것 없는 명작이다..(2, 3편은 사족이라고 생각))과도 차별화되는 부분은 가상현실의 캐릭터가 실존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철학적 물음을 던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매트릭스에서도 가상현실에서만 통할 것 같은, 거의 초능력에 가까운 위력을 현실 세계에서도 그대로 보여줄 수 있다는 점, 가상현실의 캐릭터가 현실 세계에 반영될 수도 있다는 점 등에서 어느 정도 그 캐릭터 성의 현실성을 취하고자 노력한 흔적을 보였지만, 13층에서는 보다 단순하게, 그러나 더 직관적으로 그 캐릭터 성의 현실감을 제대로 보여준다. 애초에 영화 시작에서 데카르트의 ‘Cogito Ergo Sum(I think there for I am)’을 인용한 것에서도 이 영화가 무엇을 주제로 삼고 있는지가 잘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처음 감상했을 때에도 궁금하게 생각한 부분이었지만, 오늘 다시 보니 더더욱 궁금해진 것이, 마지막에 주인공과 그의 연인이 최상위 층위의 세계로 전이되어 들어왔을 때, 그 세계는 실존(?)하는 세계인가 여부였다. 이 영화가 계속 활용한 플롯 대로, 그 세계 역시 누군가의 시뮬레이션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고, 영화가 종료될 때 마치 스위치가 꺼지면서 TV 화면이 꺼지는 것 같은 장면이 연출된 것으로 보아,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런 생각이 이어지면, 과연 어디까지가 진짜 실존하는 세계의 한계인지 정할 수 없게 될 텐데, 어떻게 보면 그 부분에 대한 답은 열린 플롯으로 일부러 연출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내가 철학에는 무지하지만, 이 영화를 조금 더 철학적으로 볼 것 같으면, 과연 생각하는 것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보장될 수 있을까에 대한 물음에 주목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현대의 신경과학은 이미 인간의 두뇌에서 일어나는 ‘생각’이라는 작용을 신경세포들 사이의 전기 신호로 이루어지는 일련의 데이터 흐름이라는 것으로 모형을 만들었고, 그 모형은 이제 굉장히 정교해지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데이터들이 많아져서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렇다면 신경세포 사이에서 전기 신호를 주고받고 그것을 통해 정보의 흐름을 처리할 수 있는 계라면, 그 계는 그 작용이 가상세계 속에서든 물리적 세계 속에서든 존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가? 그 계가 ‘생명체’나 ‘유기체’라는 그릇 속에 담겨있는지 여부는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

사실 이에 대한 사유 역시 인류의 역사 내내 반복되던 궁극적 물음 중에 하나일 것이다. 특히 요즘처럼 메타버스가 유행하는 시절에서는 (참고로 영화 13층에서는 최상위 층위의 세계 시점이 2024년이다. 현시점과 별로 차이 나지 않는다.) 이러한 물음은 더더욱 깊은 고민으로 이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메타버스 안에서 일어나는 일의 어디까지를 실제라고 여겨야 할 것인지, 아니면 그 전체를 하나의 실제로 여기되, 물리적 실제와 병행하여 볼 것인지, 아니면 메타버스가 주된 실제로, 물리적 실제는 제한된 실제라고 여길 것인지 등, 메타버스라는 개념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해 여전히 인류는 충분한 고민을 하지 못 한 상태라 생각한다. 문제는 그러한 고민이 충분히 여물기도 전에, 혹은 여무는 것과 상관없이, 메타버스, 그리고 메타버스 이후의 더욱 강력해진 가상현실이 결국 현실을 대체하는 고층위 시스템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영화 13층에서는 이러한 층위가 비교적 간단하게 설정되어 있기에, 고층위에서 저층위로는 마음대로 갈 수 있지만 저층위에서 고층위로 가는 방법은 고층위의 캐릭터가 저층위 세상에서 사망해야만 가능한 식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렇지만 앞으로 인류가 맞게 될 가상현실의 세계는 ‘가상’이라는 수식어 자체가 크게 의미 없어지는 세계가 될 가능성이 높고, 층위 간 이동이 생각보다 훨씬 다채널을 통해 일어날 것이라 생각한다. 아마도 그 과정에서 각 층위의 캐릭터가 혼선을 빚을 수 있을 것이고, 시간이나 공간의 관념이 뒤섞여 여러 혼란이 발생하는 것 역시 피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문제는 이러한 시스템을 만드는 세력인데, 그 세력이 어떤 곳에서는 정부 (아마도 독재 국가)가 될 수도 있고, 어떤 곳에서는 초거대 다국적 IT기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기업과 정부가 결탁할 수도 있을 것이겠지만, 아마도 정부 자체적으로는 이러한 플랫폼을 이끌어갈 능력이 안 될 것이므로, 결국 극소수의 초거대 다국적 IT기업들의 경연장이 될 것이다. 이들을 현실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은 그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기 시작한 후에는 늦을 것이고, 그전에 이뤄져야 하는데, 아마도 완벽하게 제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시스템의 한계가 정확히 어디까지인지를 정직하게 낱낱이 보고하고 공개하는 IT 대기업들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21세기 중반을 넘어 후반으로 달려가는 시점쯤 되면, 20세기 말을 장식했던 영화들에서 보던 장면들이 더 이상 영화로 그치지 않을 수도 있다. 전뇌로의 뇌 이식, 혹은 네트워크 그리드 상에 항시 분산되어 전재하는 블록체인 기반의 정보 집약체로서 사람들의 삶이 영위될 수도 있을 것이고, 다양한 층위에서 다양한 삶을 병렬 컴퓨팅하듯, 동시에 살아가는 (혹은 살아가야만 하는) 세상이 생길 수도 있다. 아마도 나는 그런 세상을 못 보고 가겠지만, 내 다음 혹은 그다음 세대는 목격할지 모르겠다. 어떤 세상이 오든, 결국 관건은 ‘생각함으로 존재하느냐’ vs. ‘존재해야만 생각할 수 있느냐’의 싸움으로 귀결될 것이라 본다. 전자로 흘러가면 결국 기업의 논리로 사람들의 삶의 영위가 사람들의 의지대로 이루어지지 않겠지만, 후자의 가치가 인정받는다면 사람들은 자신들의 존재 가능성을 남의 손에 맡기는 우를 범하기 전에 브레이크를 걸지 않을까 한다.


13층의 후반부, 중간 층위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하던 주인공은 자신이 최상위 계층의 존재가 아님을 깨닫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상황에서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멈추지 않은, 그래서 연인의 도움으로 결국 최상위층으로의 전이에 성공하는 장면이 나온다. 지금은 메타버스, 그리고 앞으로는 점점 중첩된 현실들로 삶의 복잡해지는 과정 속에 결국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보존하는 것이 삶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임을 잊지 않는 것이 존재를 이어가는 근간이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출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