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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도올 - 오바마 원폭, 대북 칼자루 내줄텐가

by 성공의문 2008. 11. 12.

오바마는 하나의 혁명이다. 그의 대통령 당선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제 세상은 어떤 식으로든 바뀔 것이다. 그게 좋은 방향이었으면 좋겠다. 이러한 세계사적 흐름을 바라보며 도올 선생님이 글을 쓰셨다. 오바마는 북한과 대화를 적극 추진할 것이다. 강공 일변도로 치닫는 이명박 정권과 전혀 다른 해법이다. 이 부분을 선생님은 걱정하신다. 북한 문제 해결에 있어서 이니셔티브를 미국에 빼앗겨 버리면 우리는 다시 강대국의 한반도 전략에서 국외자로 남는 비극이 연출될 수도 있는 것. 우리는 이미 일본이 히로시마 원폭으로 항복을 하면서 미국과 소련의 진주로 나라가 양분된 비극을 경험한 바 있다. 그 때 광복군이 흘린 눈물을 상기하면서 선생은 붓을 옮기셨다. 한반도의 주인인 우리가 우리의 운명을 결정짓지 못하는 비극적 상황만큼은 꼭 막아야 한다. 대승적 차원에서 이명박이 북한에 접근했으면 한다. 오늘자 <도올고함>은 꼭 한번 정독하시기를.... -포카라-



-이하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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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고함(孤喊)] ‘오바마 원폭’엔 대북 칼자루 내줄텐가


광복 주도권 빼앗아간 히로시마 원폭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터졌다. 당시 그토록 독립을 갈망하던 조선 사람들에게, 히로히토 천황의 무조건 항복 방송으로 이어진 이 사건은 과연 구세의 복음이었을까? 원자폭탄 투하가 일본제국주의의 마지막 발악으로 생겨날 수 있는 더 많은 인명의 피해를 줄이고 일본의 패망과 세계대전의 조기 결속을 가져왔다는 의미에서 다행스러운 사건이었을까?

우 리의 이러한 상식적 기대와는 달리 원자폭탄 투하에 대한 세계사적 평가는 매우 부정적이다. 원폭 실험에 참가했던 과학자들은 투하 소식을 들었을 때 땅을 치고 통곡했다. 자기들이 과학적 가설과 실험을 통해 만든 원자폭탄이 수많은 인명의 살상에 쓰였다는 사실에 대한 과학자적 양심의 발로 때문만은 아니다. 원폭 투하는 일본제국주의의 종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제를 대체하는 더 무서운 미 제국주의의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출발에 자기들의 과학이 사용되었다는 것은 과학 그 자체의 도덕적 근거를 박탈하는 비극을 의미했다.

중 국 대륙의 가장 화려한 고도(古都) 시안(西安)에서 동남쪽으로 20km 떨어진 종남산(終南山) 기슭에 흥교사(興敎寺)라는 절이 있다. 거기에는 우리나라 신라 고승으로서, 현장법사의 수제자였으며 유식과 반야경전에 탁월한 주석서를 남긴 원측(圓測·613~696)의 사리탑이 있다. 흥교사 부근 뚜취(杜曲)라는 곳에는 식량창고가 하나 있다. 이곳이 바로 일본의 패전을 대비해 광복군 제2지대의 70명이 미군들과 함께 OSS(미군전략특수공작대) 훈련을 받던 곳이다. 2005년 4월 나는 그곳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이 들은 일본의 패망을 앞두고, “요코하마 오사카 무찌르고 동경 드리쳐 동에 갔다 서에 번득 모두 한칼로 국권을 회복하는 우리 독립군 승전고와 만세소리 천지 진동해 나가세 전쟁장으로”라는 용진가(勇進歌) 가사대로 마지막 결전을 준비하며 특수훈련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나 는 나락이 쌓여 있는 그곳에서 1945년 8월 10일 오후 OSS 훈련 책임자였던 서전트 소령이 상기된 얼굴로 나타나 대원들에게 느닷없이 일본이 투항했다고 외치던 그 순간의 희비 엇갈린 장면을 그리고 있었다. 발표가 있자마자 미군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맥주병을 터뜨리고 좋아 얼싸안았다. 그러나 광복군 우리 병사들은 침통한 얼굴 위로 눈물이 얼룩질 뿐이었다.

“아 왜적이 항복! 이것은 내게 희소식이라기보다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일이었다.”(김구, 『백범일지』)

“진격하는 상륙군이 모두 십자가 하나씩을 내 무덤에 꽂아두기를 바랐건만, 아~ 나는 온몸을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렸다.”(장준하, 『돌베개』)

왜 그랬을까? 일본이 투항했는데 광복군 병사가 왜 그토록 슬피 울어야만 했을까? 그것은 우리가 주체적으로 당당하게 향후 역사를 주도해 나갈 수 있는 명분을 얻을 수 있었던 결정적 순간에 그 자랑스러운 승전의 기회를 상실했기 때문이었다. 드골의 파리 입성처럼, 시저의 로마 입성처럼, 광복군은 광화문이라는 개선문을 당당하게 통과했어야만 했다. 그랬다면 이후의 동족상잔의 비극도, 분단의 역사도, 좌우의 내란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버 락 오바마의 미 대통령 당선은 나에게는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된 것과도 같은 거대한 사건이었다. 히로시마 원폭은 새로운 분단과 냉전과 제국주의적 폭력과 강자의 횡포를 의미하는 것이었지만, 오바마라는 원폭은 새로운 통일과 화합과 제국주의적 폭력의 거부와 약자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오바마의 당선이 확정된 순간에 나는 기묘하게도 뚜취의 눈물로 얼룩진 광복군 병사들의 모습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 금 이 순간에 우리 민족이 스스로 우리 역사를 주체적으로 리드해 나갈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면 분단 60년 역사의 비극을 또다시 되풀이할 수도 있다. 현 정권은 오바마가 그토록 저주했던 신자유주의적 발상에 모든 이념적 청사진을 그려왔던 것이다. “돈 많은 사람이 더 돈을 벌게 하라!”

“ 남부의 나무에는 기묘한 과일이 열린다. 잎사귀와 뿌리에 피가 흥건, 따스한 남풍에 검은 몸뚱이들이 흔들린다.” 흑인들의 모습을 ‘스트레인지 푸르트(Strange Fruit)’라고 이름하여 부른 전설적 재즈보컬 빌리 할러데이(Billie Holiday·1915~59)의 노래 가사도 먼 과거가 아니다.

오 바마의 엄마가 케냐에서 온 루오족 흑인 유학생과 결혼을 했던 1960년 당시에도 미국의 대다수 주가 흑인과 백인 사이의 결혼을 중죄(felony)로 규정했다. “나의 아버지는 단지 엄마를 야릇한 눈으로 쳐다보았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히 나무에 목이 매달릴 수 있었다.”(오바마, 『아버지로부터의 꿈』)

이 오바마는 무엇을 외칠까? 시카고 빈민가의 아동이 글을 못 읽습니다. 그것은 나의 책임입니다. 노인이 약값을 낼까, 집세를 낼까 갈등할 때 그것은 나의 가난입니다. 아랍계 출신 미국인이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해 부당하게 체포되었을 때 그것은 나의 인권이 훼손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변해야 합니다. 국가가 무엇을 해야 할지 우리는 그것을 물어야 합니다. 과연 우리는 어떤 국가를 만들어야 할까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오바마가 당선되었다니까, 한다는 소리들이 누가 하버드를 나왔냐? 줄 대라! 운운하는 가소로운 소리들! 근원적인 정책에 대한 새로운 튜닝이 없이는 우리 정부는 세계사에서 뒤처지는 정권이 될 것이고 경제는 더욱 혼미하게 될 것이다.

결 국 광복을 우리 손으로 맞이하지 못하고 히로시마 원폭과 함께 미 군정의 손에 넘겼기 때문에 향후 모든 민족사의 비극이 시작된 것이다. 북·미 관계는 급진전될 것이다. 또다시 남북문제를 우리 손으로 풀어내지 못하고 오바마의 손에 넘길 때는 요번에는 우리 전 민족이 광복군이 뚜취에서 흘렸던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빨리 이념의 굴레에서 벗어나 정의로운 사회가치를 구현하라! 그리하면 경제는 따라온다.
- 도올 김용옥 / 중앙일보 / 2008.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