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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기후 변화 관련 산업으로 부터 파생되는 더 큰 문제들

by 성공의문 2021. 11. 15.

그린 뉴딜, 더 더럽고 위태롭고 '붉은' 세계로의 초대

<설국열차>에는 기차의 밑창을 여니 한 아이가 숯검댕을 뒤집어쓰고 엔진을 돌리는 모습이 나온다. 인류 최후의 기술이 모인 초현대적 기차 밑바닥에 올리버 트위스트가 있었던 셈이다. 숭배의 대상인 '엔진'의 이면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현실에서도 인류를 구하자며 녹색 열차가 출발했다. 더럽게 땅에서 석유 캐는 걸 멈추고, 무한한 바람과 햇볕으로 돌아가는 세계를 만들자는 게 '시대정신'이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 전기차로 환경오염을 없애고, IT로 탈물질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기대한다.

<프로메테우스의 금속>은 녹색 열차의 밑창을 보여준다. 주인공은 희귀 금속(Rare metal)이다. 석유 시대의 다음 장은 '신재생에너지 시대'가 될거라고 기대하지만, 실상은 희귀 금속이라는 다른 광물 시대로 넘어갈 뿐이다. 인류는 앞으로도 땅을 파야 하고, 어쩌면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

희귀 금속은 ~륨, ~슘 으로 끝나는 보통 사람은 평생 몇 번 들어보지도 못할 광물을 말한다. 네오디뮴, 인듐, 갈륨, 토륨 등등. 여기에 그나마 유명한 희토류도 포함해 대략 30여가지를 전략자원으로 본다. 말그대로 희귀해서 전세계 생산량이 약 20만 톤, 아주 큰 배 한 척에 실을 양이다.

한 줌도 안되는 광석이 우리가 올인한 이른바 그린 뉴딜의 핵심이다. 태양광 발전에는 인듐과 갈륨, 풍력 터빈에는 네오디늄이 필요하고 전기차에는 코발트, 리튬, 니켈 등 20여가지 희귀 금속이 들어간다. 자동차 만드는 엘론 머스크가 뜬금없이 리튬 생산량 좀 늘려달라고 한 이유다.

문제는 이 희귀 금속 채굴이 엄청난 환경 오염을 부른다는 점. 갈륨 1kg을 얻으려면 바위 50톤을 깨서 독성 화학물질과 물을 여러번 섞어 정제해야 한다. 그렇게 정제에 쓴 물은 그대로 어딘가로 흘려 보낸다. 중국에선 산지 주변 주민의 암 발병률이 몇 배로 뛰고, 기형아가 태어나는 피해를 겪고 있다.

지금은 생산량의 대부분을 중국이 차지하지만, 1980년대까진 미국이 이 시장을 지배했다. 이게 넘어간 건 너무 더러워서다. 개발도상국의 오지로 넘길 만큼 더러운 산업인 셈. 여기에 친환경론자가 기겁하는 방사능까지 배출한다. 바오터우의 취수장 방사능 수치는 체르노빌의 2배다. 중국은 이런 방사능 오염수를 모아둔 호수가 흔하다.

유럽과 미국의 신재생 발전 드라이브의 이면에는 중국이나 아프리카의 희귀 금속 채굴이 있다. 서울에 전기차가 늘어나면 서울의 대기오염은 줄지만, 충남의 대기는 더러워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샌프란시스코의 테슬라 차주가 늘어나면 킨샤샤의 코발트 광산에는 더 많은 아이가 투입된다.

언제나처럼 환경 문제에는 슥 눈을 감는다 해도 경제적 문제도 남아있다. 전세계 희토류 시장 규모는 7조원 정도다. 이 시장의 95%를 중국이 지배한다. 여기에 반도체와 앞으로 수십배 성장할 신재생 에너지, 전기차 산업 등이 올라타있다. 반도체만 해도 시장 규모가 600조원이 넘는다. 한 줌 위에 세계 경제가 올라탄 셈이다.

1970년대까지 석유 공급에 출렁이던 세계 경제는 산유국이 늘고, 결정적으로 미국의 셰일 혁명을 겪으며 안정을 찾았다. 사우디에 미사일이 떨어지면 하루이틀은 놀라도 경제가 휘청이진 않는다. 이제는 아이폰이나 테슬라에 20~30가지씩 들어가는 희귀 금속 중 몇가지만 병목이 걸려도 생산 체계가 위태롭다.

희귀 금속 시장의 지배자는 중국이다. 1980년대에 서구는 이 시장을 중국에 완전히 넘겨줬다. 중국이 그저 돈이나 벌려고 한 선택은 아니다. 1992년에 덩샤오핑은 "중동엔 석유가 있고, 중국에는 희토류가 있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전략자원으로 접근한 거다.

중국공산당 하면 궁중암투만 떠올리지만, 사실 덩샤오핑 이래로 모든 국가 지도자가 공학 전공자다. 장쩌민은 전기공학, 후진타오는 수리공학, 시진핑은 화학을 전공했다. 총리도 경제학을 전공한 리커창을 빼면 리펑(기계학), 주룽지(전기공학), 원자바오(지질학)도 마찬가지. 즉 중국은 테크노라트가 지배한다.

희귀 금속의 잠재력을 알아본 중국은 대외적으로는 쿼터를 줄이며 서구를 압박하고, 내부적으로는 희귀 금속 생산에서 첨단 산업으로 밸류 체인을 발전시켰다. 지금 중국은 태양광 설비 세계 1위, 수력과 풍력 발전 투자 세계 1위, 전기차 세계 1위에 신재생 발전량 세계 1위다. 여기에 2차 전지도 80% 이상 만든다.

파리기후협정에 중국이 서명했을 때 '왜?'라는 질문이 뒤따랐다. 굴뚝 산업으로 올라선 중국이 왜 기후 대응에 동참 했을까. 이 책에서 저자는 서구 사회가 '중국이라는 용의 아가리에 머리를 들이 밀고 있다'고 지적한다. 수치로 보면 과장은 아니다.

서구도 "Mining is back"을 외쳐야 할 상황이지만, 쉽지 않다. 당장 환경단체에서 몰려오고 주민 동의 받는데 10년은 걸리지 않을까. 왜 호주가 미국의 러브콜을 받는지 짐작이 갔다. 서구에서 그나마 유의미한 희귀 금속량을 유지하는 게 호주다. 미국은 호주를 새 시대의 사우디로 점 찍은 것 같다.

왜 억만장자가 우주로 간다고 요란을 떠는지 의아했는데 이것도 해소됐다. 희귀 금속은 지구에서는 희귀하지만, 우주에는 넘쳐난다. 소행성 하나만 붙잡아도 지구 매장량의 수백배가 묻혀있다. 전기차를 만드는 머스크나 데이터센터의 왕 베조스는 가져와야 할 이유가 있다.

최근 몇년간 읽은 책 중에 가장 인상 깊다. 정치인이 외치는 녹색 기차의 밑바닥을 봤다.

19세기 산업 전선에서 뛴 소년공들. [출처 Library of Congress]

출처: 페이스북, min.oopy.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