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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공감적 인간, 샤먼 · 상처받은 치유자들 - 사회적 진보 · 통합

by 성공의문 2019. 2. 13.


············ 한국의 샤머니즘은 고대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시대마다 불교, 유교, 기독교 등의 종교적 외피를 입고 습합(習合)돼왔다. 변천과정에서도 샤머니즘의 역할과 기능은 각 시대마다 다르게 나타났다. ············ 고대시대(신석기-삼국시대)의 샤머니즘은 정치, 사회, 개인을 포괄하는 공적 문화였으나, 중세시대(남북국시대-조선중기)의 샤머니즘은 사회, 개인의 범주로 축소돼 기능했다. 근대 · 현대시대(조선중기-현대)의 샤머니즘은 주로 개인의 길흉화복에 초점을 맞추는 기복신앙으로 변화해 왔다.


············ 네오샤머니즘은 고전샤머니즘과 공통의 종교적 유산을 공유하면서 현대인의 진화된 종교문화적 세계관과 인간의 다양한 의식변형의 경험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영성운동이다. ············ 마음 치유, 트라우마 극복, 영적 수행의 대중적 필요와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이는 종교적 교리나 사회적 통념보다는 만물과의 공감과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을 통해 온전한 인간의 자유를 추구하는 생태적 영성이다. ············ 사상적 흐름은 과거 고등종교로부터 소외되었던 샤머니즘, 영성주의, 동양철학, 연금술, 신화 등의 전통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 수행자들의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회합과 자율적 의례를 강조한다. ············ 특정 종교에 속해있지 않으면서도, 내면의 신성함을 복원시키는 수행적 영성운동이다.


············ 네오샤머니즘은 인간 의식변형을 통한 고차원적 인식의 지평을 강조한다. ············ 인간 내면세계의 탐색과 성찰을 통한 성스러운 경험을 강조한다. ············ 인간 내면의 성스러운 마음을 '누미노제(Numinose)'로 표현한다. 누미노제는 모든 인간의 내면에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성스러움의 감정과 공감의 마음이다. ············ 성스러움의 감정은 일상의 희로애락의 감정과는 구별된다. 누미노제는 우주만물의 원초적 공감을 상호 연결시키는 본질적인 신비의 감정을 의미한다. ············ 네오샤머니즘은 고대시대부터 내려온 내면의 성스러움을 찾아 인간의 고통을 스스로 치유하고 승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배양시킨다. 


············ 진정한 샤먼은 두 가지 의식체계를 지닌다. 하나는 '의식의 일상의식'이고, 다른 하나는 '의식의 통합의식'이다. 통합의식은 의식과 무의식의 통합을 의미한다.


············ 진정한 누미노제의 경험은 개인을 '성인다운 성품'으로 변화시킬 뿐 아니라, 고통 받는 이웃과 세상을 향한 봉사와 연민의 감정을 성숙시킨다고 강조한다. 이런 자아변형의 진위여부는 자연스럽게 '이웃에 의해' 알아차려지게 된다. ············ 엄격한 내면수행이 부재된 샤먼적 누미노제는 신성과 자아를 동일시하는 '자아팽창'의 영적 도취에 빠져 스스로를 '영웅적 착각'에 빠지게 한다. 이는 샤먼적 인물 뿐 아니라 역사상 다양한 종교집단의 타락한 종교지도자와 정치인, 시민운동가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자아절대화의 병적 현상이다. 


············ 누미노제의 진정성은 개인적 수행이 뒷받침되는 초월적 겸애와 이타적 사랑이 수반돼 맺어지는 사회정치적 열매여야 한다. ············ 내면적 개인 수행이 외면적 사회적 수행을 결코 배제하지 않는 원리이기도 하다. 누미노제의 매혹성은 개인적 누미노제의 경험이 사회정치적 공공성과 결별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우주적 미소를 보내는 신성한 유혹인 것이다.


············ 네오샤머니즘은 현대인의 공허감과 소외감을 영적 위기로 진단하며 누미노제의 자아 초월적 경험을 통한 영성의 진보가 일상의 삶 속에서 지속될 것을 강조한다. 원초적 공감의 회복은 호모엠파티쿠스가 추구하는 치유의 시작이고 과정이며, 또한 완성이다. 존재의 근원과 의식 · 무의식의 변형을 통한 궁극의 존재 체험은 삶의 고통을 신성화할 수 있는 영성세계를 열어주는 치유의 의식변형이다.


············ 개인의 신성화 없이 사회의 신성화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 신성의 주체화와 인식 에너지의 재구성을 통해 자아의 영적 진보와 사회적 진보를 동시에 추구한다. 사회적 통합의 근본에는 인간의 내면적 통합이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 오늘날 개혁과 진보를 부르짖는 많은 이들의 혁명적 구호 속에는 성스러움이 결여돼있다. 외적 인격인 페르소나와 자신을 동일시해 정의에 대한 독점의식과 근거 없는 특권의식, 자아 팽창의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있다. 불안한 인격성으로 사회개혁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거기에는 연민의 공감과 감동의 신비로움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 오늘날 진정한 샤먼은 누구인가? 그는 더 이상 영적 능력을 부여받은 소수의 선택받은 자가 아니라, 일상의 삶을 오직 진실하게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수많은 '상처받은 치유자'들이다. 호모엠파티쿠스는 인간이 신의 은혜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신성한 공감을 회복하는 네오샤먼이 되는 것이다. 사회 변혁으로 연결되는 영성 체험은 더 이상 개인의 복을 비는 기복이나 축신 행위에만 머물지 않고,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회, 인간과 우주 사이의 영적 통일성을 회복해 좀 더 숭고한 영성 세계로의 전이와 고양된 사회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다. 


············ 호모엠파티쿠스의 치유란 고통을 제거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고통의 세계를 이해하고 공감함으로서 고통이 전제된 근원적 깨달음을 얻는 '통각(痛覺)'의 영성을 의미한다. 호모엠파티쿠스는 개인의 영적 수행을 통한 원초적 공감의 회복은 무한한 우주의 사랑 에너지를 빛의 인식으로 확산하며 생과 생을 통합시키려는 도덕적 요구를 수용한다. ············ 진정한 자아는 내적 통합을 이루기 위해 전념해야 하며, 스스로 다른 자아들과의 통합을 위해 그들과 조화를 이뤄야만 한다. 


············ 누미노제의 감정은 개별적인 신비성과 주술성으로만 기능할 수 없다. 인간은 직관적 공감을 통해 신과 인간이 궁극적으로 합일되는 원초적 공감을 회복함으로, 인간의 역사 속에 새롭게 개입하는 성스러움의 역사성을 구현해야 한다. 원초적 공감의 회복이란 문명화 이전의 상황으로 회귀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문명화된 현재의 삶 안에서 원초적 영성을 회복하는 관계적 공감을 의미하는 것이다. 


공감과 누미노제는 한 개인이 어떤 신비적 경험을 했는가의 경중보다, 얼마만큼 개인이 우주적인 신성의 세계로 변화하고 승화했는가에 관한 자기 수양적 '무의(無爲)의 공감'을 강조한다.

- 출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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