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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민2

[조선 세종 시대] 농업과 '농사직설' 농법 1. 농정책農政策의 시행 조선왕조 국가의 기본적인 생산활동은 농민이 수행한 농업 생산이었다. 조선 사회에서 농업생산에 종사하고 있던 농민들은 대부분 피지배층 신분에 속해 있었다. 농민들은 자신과 가족의 기본적인 재생산을 이루어내고 또한 농업생산의 증대를 위하여 농사일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농민들의 농업생산이 사라지는 순간 조선사회도 존립할 수 없었다. 조선의 지배층들은 농민의 사회적 생산활동인 농업에 대하여 ʻʻ농農은 천하국가의 대본大本이다ʼʼ라고 표현하였다. 이러한 언급은 농사짓기가 천하天下의 근본이기도 하고, 국가의 근본이기도 하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힌 것이었다. 또한 세종은 권농교문勸農敎文을 통해 ʻʻ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삼는다. 농사짓는 일은 의식衣食의 근.. 2018. 6. 10.
천재이변은 노총각 · 노처녀가 많은 탓 '중종 때 겨울철에도 천둥이 치고 대낮에 금성이 나타나는 등 천재지변이 일어나자 노총각·노처녀를 빨리 장가·시집을 보내야 해결된다는 이른바 '솔로대책'을 내놓았다 ... 중략... 천재이변은 노총각·노처녀가 많은 탓이며 ... 중략... 성종 임금은 심지어 긴 장마의 원인도 '노처녀의 한(恨)'으로 여겼다.(1478년) ■ '솔로대책', 조정이 나선 까닭은? 김준근의 . 혼례를 마친 첫날 밤 신부집에 꾸려진 신방에서 족두리를 쓴 신부가 상을 받고 신랑을 기다리고 있다. |숭실대박물관 제공심지어는 노총각·노처녀들에게 혼수품까지 제공해야 한다는 것을 법( )으로 규정해 놓았다. "여자 나이 20살이 되면 시집보낸다는 말이 에 나와있습니다. 대저 혼인이란 시기.. 2012. 12.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