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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호주 퀸즐랜드주 생태마을: '크리스탈워터스' 탐방기 - 지속가능 공동체

by 성공의문 2018. 3. 15.

크리스탈워터스는:

퍼머컬쳐의 창시자 빌 몰리슨의 제1회 퍼머컬처디자인코스를 수료한 맥스 린데거 등이 1989년 퍼머컬쳐 원리에 따라 설계, 건립한 호주의 생태마을이다. 부지의 동식물, 바람과 천체 등 자연 요소는 물론 이 땅의 역사까지 고려하여 파괴가 아닌 복원과 창조가 일어나도록 계획했으며 미래까지 지속 가능한 마을은 '자연의 구조'를 닮음으로써만 가능하다는 철학과 실용적 방법론,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한 대안적 기술을 적용했다. 

총 295ha의 넓은 대지에 단 87가구만이 거주하며, 전체의 80%에 이르는 땅이 마을의 공유지로서 농업과 숲, 야생자연 구역으로 보전 · 활용된다. 주민들은 농업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여러 개의 파트타임 직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마을 내에서 제공되는 직업 수는 46가지에 이른다. 마을회관을 통해 활발하게 문화적 · 사회적 교류가 이루어지며 자원봉사자에 의해 운영되는 마을 소유의 카페 및 이메일을 통해 주민들 간의 친밀한 관계가 지속된다.


'평범한' 삶이 가능한 곳

그곳에서 삶은 그저 평범하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평화로운 자연의 모습으로 크리스탈워터스는 자신을 드러냈습니다.

숙소를 출발해 교육장인 에코센터로 걸어가는 10분 남짓 걸리는 길 위에 거의 '포진'해 있던 수많은 캥거루들은 우리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눈을 마주치지 않고 지그재그로 다가가면 단 몇십 센치미터 정도까지 가까이 갈 수도 있었죠. 그보다 더 가까워지면 하는 수 없다는 듯 서두르는 기색도 없이 껑충 뛰어 자리를 옮겨 버린 그들.

화려한 빛깔의 앵무새들은 아침마다 조종처럼 청아한 휘파람을 불었습니다. 갈색 몸뚱아리에 흰 스카프를 목에 두른 놈, 검은 몸에 흰 깃털을 날개 끝과 뺨에 붙이고 있는 놈, 어린아이 주먹만한 작은 몸을 형광의 파란 깃으로 날렵하게 감싼 놈······, 가끔씩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새들의 가짓수도 꽤 되었지만, 저 높은 우듬지 어디에선가부터 날아 내려오는 다양한 노랫소리에 비하면 아주 일부에 불과했지요.

인공적으로 만들었다는 마을의 호수들은 가장자리에 수북하게 돋아난 물풀들, 그리고 지난 20년의 세월 동안 몰라보게 자라난 풍성한 나무에 둘러싸여 자연스러운 풍광을 만들어 내며 아이들이 마음 놓고 소리치며 놀 수 있는 자연의 수영장을 제공해 주고 있었습니다.

닭과 소를 위해서는 넒지만 나무 그늘이 충분히 드리워진 초지가 마련되어 있었고, 우림의 나무와 계곡을 위해서는 사육되는 가축으로부터 보호되는 청정 구역의 울타리가 갖춰져 있었습니다. 꽉 찬 교육 일정 때문에 직접 가 보지는 못했지만 언덕 위의 마을회관에 마을 주민들이 수시로 무여들며 마을 공동 소유의 카페는 친목의 장소로 이용된다고 하더군요. 

매주 토요일 그 카페 앞에서 마을 장이 서면 크리스탈워터스의 주민들은 물론 인근 마을 사람들까지 모여들어 직접 구운 과자와 시어머니가 만든 앞치마, 더 이상 쓰지 않는 옷가지와 자질구레한 생활용품들, 그리고 때로는 먼 이국에서 전문적으로 수입한 물건들을 내다 팝니다. 서로의 소식을 물으며 한 푼 두 푼 흥정을 거는 사람들, 오랜만에 서로를 만난 반가움으로 오랫동안 포옹을 풀지 못하는 친구들을 이 곳에서 보았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시골마을 크리스탈워터스 주민들의 직업은 다양하다는 사실도 덧붙여야겠습니다. 농업은 자급자족을 바탕으로 약간의 잉여 생산물을 인근 멜라니 읍내에 내다 파는 정도에 불과하고 마을 내 우체부, 마을 공유지 관리인, 비디오 대여, 퍼머컬쳐 책 대여, 유기농 빵집, 마을 구멍가게 운영, 마사지와 요가, 미용사 등 40여가지가 넘는 파트타임 직업이 있습니다. 이런 직업이 마을 안에 있는 한, 사람들은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마을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마을 바깥 인근 대학의 강사로 나가거나 멜라니 읍내(차로 15분 소요)에서 출퇴근하는 여러 가지 직업을 가지기도 하지만요.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평화로운 삶의 조건들이 크리스탈워터스 사람들의 평범한 삶 속에 녹아 내려 있었습니다.


'붉은 여왕'

붉은 여왕은 토끼굴에 빠진 앨리스가 경험하는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는 여왕님이죠. 붉은 여왕의 세계는 언제나 빠른 속도로 움직이기 때문에 여왕은 제자리에 머물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려야 합니다. 그래서 달리기의 선수가 됐지만 그녀는 요즘 말로 하면 성격이 참으로 '까칠'한 사람이어서 앨리스에게도 잔뜩 짜증과 신경질을 부립니다.

붉은 여왕이 되어 살아 본 사람은, 삶의 숭고한 목적을 생각할 시간도 없이 오로지 지금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온몸과 마음이 지치도록 달려본 사람은, 크리스탈워터스의 삶이 그저 '정상적'이라는 데 깊은 위안을 느낄 것입니다.

크리스탈워터스에서 인간은 대지를 자기 자신만을 위해 독점적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나무, 호수, 새, 온갖 야생 동물이 번성할 수 있는 권리와 기회를 인정하기 위해 인간의 거주 지역과 자연 지역이 서로 보완하고 기대도록 디자인했습니다. 물에게는 흐를 권리를 주기 위해 계곡과 삼림을 보호하는 계획을 세웠고, 밤 하늘의 별에게는 스스로 빛날 권리를 돌려주고자 마을 내에 단 하나의 가로등도 세우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에게는 깊고 고요한 달빛 속에 산책을 할 수 있는 특권이 돌아오게 됐습니다. 화합하고 갈등하고 서로 어울려 복작거릴 수 있는 사회적인 권리 또한 이 곳의 주민들은 보장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풍요로움은 퍼머컬쳐의 원리에 의해 세심하게 디자인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임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마을의 계획자인 맥스 린데거 자신이 그렇게 말하고 있으니까요. 어디에서도 인공적으로 '디자인'됐다는 표시를 발견할 수가 없다는 점이 역설적으로 퍼머컬쳐 디자인의 우수성을 말해 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어리둥절했습니다. 삶의 조건을 이렇게도 강력하게 보완할 수 있는 단일한 원리가 세상에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퍼머컬쳐교(敎)라도 말들어야 할 판인걸, 하지만 아, 왠지 석연치 않았어요.

어쨌든 크리스탈워터스는 금박의 포장을 한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마을이 아니었어요. 사이다보다 더 청량한 산소를 내뿜는 깊은 숲의 한가운데에 서면 작은 돌멩이 하나도 지구의 장구한 역사, 그리고 창조주와 생명의 존엄한 아름다움과 따로 떼서는 생각할 수 없는 그런 경험이 있잖아요. 크리스탈워터스는 그저 그 돌멩이 하나였습니다. 저로서는 이보다 솔직하고 이보다 더한 찬사는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수많은 실수들로부터

열다섯 명의 우리 탐방단과 일 주일 동안 함께했던 맥스 린데거는 바로 크리스탈워터스를 만든 중심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그와의 시간을 통해 우리는 평화로운 겉모습뿐 아니라 마을 내면의 용광로 같은 갈등과 사랑의 에너지를 잠시잠깐 엿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 탐방단원들은 생태적 지역 건설의 비전을 가진 마을의 이장, 농장 주인, 공무원, 지역개발 컨설턴트로서 궁금한 것이 많았습니다. 농업이 주요한 생계 수단인 우리나라 농촌에서 크리스탈워터스의 모델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아마도 탐방단의 주요한 문제 의식어었던 듯 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밟아야 주민의 소득 구조가 개선되고 농촌이 살 만한 공간으로 변화될 수 있을지, 맥스로부터 해결의 실마리를 조금이라도 얻고 싶어서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필기를 하고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맥스는 '당신들이 한국의 개척자들이다. 지금 당장 현실의 문제를 눈앞에 두고 있는 당신들의 절박함이 오히려 힘이 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20여 년 전 어떠한 역할 모델도 없는 상황에서 개척자로서 수많은 실수를 저지르며 발전시켜 온 것이 바로 크리스탈워터스이며 아직도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그리고 쏟아지는 질문에 답변한 후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우리는 생태마을을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조건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먼저 내 삶이 더 풍요로워지는 방법을 생각하고, 친구와 함께 실행하십시오. 지금도 우리 마을에서 함께 살고 있는 로버트, 베리와 같은 좋은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크리스탈워터스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유엔이 인정하는 복잡한 생태마을의 기준이 아니라, 나와 가족과 친구를 위해 좋은 장소,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드세요."

그러면서 그는 91세의 나이로 돌아가신 데이브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그를 사랑하는 마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나누어 수발을 들었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병수발이 괴로운 중노동이 되지 않았노라고.

"공동체는 힘든 일을 나눠서 즐거운 일로 변화시키며, 사랑은 지금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더욱 확장시킵니다." 이렇게 말하는 맥스의 어조는 확고했지만 말소리는 그저 차분할 뿐이었습니다.

어느 날 오후, 식사를 마친 뒤 텅 빈 야외 카페에서 먼 곳에 시선을 두고 홀로 앉아 있는 맥스를 보았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짧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한국에서 받은 퍼머컬쳐 교육에 대해, 크리스탈워터스에 가지고 있었던 기대에 대해, 그리고 내가 일하는 회사와 나 자신의 비전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 보니 이런 말이 자연스럽게 제 입에서 흘러나왔습니다.

"한국에서 퍼머컬쳐 교육을 받고서 퍼머컬쳐가 유용하고 훌륭한 체계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하지만 그건 나 자신이 경험을 통해 얻은 결론이라기보다는 내가 존경하는 사람의 생각을 거의 그대로 받아들인 결과였던 것 같아요. 이 곳에 와서 보니 과연 퍼머컬쳐는 풍요롭고 효율적인 디자인이라는 걸 알았어요. 그러나 모든 지혜는 이미 자연과 생명 속에 모두 녹아 있는 것이 아닐까요? 퍼머컬쳐는 하나의 이름일 뿐, 나는 여전히 길을 찾고 있어요."

잠시 턱수염을 쓰다듬고서 짤막하게 맥스는 말했습니다.

"그래, 그 말이 맞아."


우리들의 몫

우리 탐방단원들이 한국에서 만들어 가는 마을과 농장이 크리스탈워터스와 같은 사례가 되리라는 점을 그는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친구와 함께, 나와 가족과 친구가 행복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드는 것, 신념과 헌신, 깊은 지혜와 경험이 필요한 일일지언정 불가능한 일은 아니니까요.

누군가 크리스탈워터스를 특별한 마을이라 했던가요? 제가 본 것은 장점도 단점도 똑같이 가진 사람 사는 마을이었습니다. 오히려 그 곳에서 제가 원하는 것이 얼마나 평범하고 단순한 것인지, 스스로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이른 아침 수많은 새들의 노랫소리에 눈을 뜨고 훼손되지 않은 자연 상태 그대로의 동네 숲길로 산책을 나가는 것, 찾아가 시름을 나누며 미래의 계획을 함께 세울 수 있는 이웃을 가지는 것, 지구생명의 작은 일부로서 나의 권한과 책임을 의식하고 실천하는 것, 사람으로서 가질 법한 평범한 꿈들이지요.

그 날 밤, 여러 겹 구름의 그물에도 걸리지 않고 나타난 찬란한 만월, 크리스탈워터스의 계곡을 내려다보며 말없이 언덕에 앉아 있던 우리들의 충만한 가슴을 탐방단 여러분은 기억하시나요? 균형 잡힌 신념과 지혜로 앞일을 헤쳐 나갈 때 우리 서로에게 말해 주기로 하죠.

"그래, 당신이 옳아요."

미루 김소연 <이장> 한국퍼머컬쳐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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