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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자두나무 Prunus salicina = 오얏나무

by 성공의문 2008. 12. 23.



자두나무
Prunus salicina Lindl. Plum tree 李, 李子樹 이자수 


1. 쌍떡잎식물 장미목 장미과의 낙엽소교 목으로 수고 10m정도 자라고 자도(오얏나무)라 한다.

2. 잎은 어긋나고 긴 도란형 또는 타원형 긴 달걀 모양이며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가 있다.

3. 꽃은 4월에 잎보다 먼저 피고 흰색이며 보통 3개씩 달리며 살구꽃 보다 작다.

4. 열매는 달걀 모양 원형 또는 구형으로서 열매의 밑 부분은 들어가고 7월에 노란색 또는 붉은빛을 띤 자주색으로 익으며 과육은 연한 노란색이다.

5. 관상용이기도 하고 날것으로 먹기도 하며 잼이나 파이 등으로도 가공한다.

6. 원산지는 중국이며 한국에서 재배하는 자두나무는 대부분 유럽 종 자두로서 1920년대 이후 인가 부근에서 과수로 심기 시작하였다.

7. 자도(紫桃)는 과일이 진한 보라색이고 모양이 복숭아와 같아서 생긴 순수한 우리말 이름은 오얏나무라 한자명은 이(李)이다.


자두나무는 장미과의 갈잎 큰키나무이다. 한국 중부 지방에서 자라며 오얏나무라고도 한다. 


자두나무, 오얏나무, 자도나무
학명 - Prunus salicina Linnaeus
생물학적 분류 - 현화식물문 > 쌍떡잎식물강 > 장미목 > 장미과
특징적 분류 - 낙엽활엽소교목, 유실수
분포지역 - 한국(전국), 중국
원산지 - 중국
크기와 너비 - 크기 10m
꽃색깔 - 흰색
개화시기 - 4월
꽃말 - 순백, 순박
파종 및 수확시기 - 수확 6월 ~ 7월
종류 - 식용식물(열매)
특징
높이 10m에 달하며 나무껍질은 흑갈색으로 불규칙하게 갈라진다. 어린 가지는 적갈색으로 윤기가 있다. 어긋나게 달리는 잎은 긴 타원 모양 또는 거꾸로 세운 달걀 모양이며 끝이 뾰족하고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뒷면에 털이 있다가 없어지고 잎자루 윗부분에 2~5개의 선점이 있다. 꽃은 4월에 잎보다 먼저 피는데 흰색 꽃이 흔히 3개씩 모여 가지에 가득 달린다. 꽃잎은 5개이고 거꾸로 세운 달걀 모양이며 꽃받침 조각에 톱니가 있다. 열매는 공 모양으로 겉이 흰 가루로 덮인다. 6~7월에 황색 또는 적자색으로 익는다. 씨방과 열매에 털이 없는 점과 꽃이 작은 점이 '매실나무'와 다르다.
중국이 원산지인 낙엽 활엽 소교목으로 우리나라 전국의 집 근처에서 과일 나무로 심어 기른다. 추위에는 강한 편이나 건조하거나 소금기가 많으면 잘 자라지 못한다.

꽃생김새
잎보다 먼저 가지 가득 흰색 꽃이 흔히 3개씩 모여 달림. 도란형의 꽃잎은 5개이고 꽃받침 조각에 톱니가 있음.

심는 방법
심는 구덩이는 깊이 90~100cm, 넓이 90~100cm로 파고, 구덩이당 거친 퇴비 30~50kg, 용성인비 1kg을 흙과 잘 섞어 2/3 가량 묻은 후 겉흙을 원래의 표면까지 채워 넣은 다음 20cm 정도 높게 심는다. 심은 후에는 30~50리터의 물을 충분히 주고 지주를 세워 흔들리지 않게 하며 검은 비닐을 덮어 뿌리의 활착이 좋아지도록 한다. 심는 거리는 4Ⅹ3.5m 정도로 심으며 수분수를 혼식해야만 안정된 결실을 얻을 수 있다.
가꾸기포인트) 우리나라에서 재배되고 있는 품종의 대부분은 자가불화합성이 강하므로 안정적인 결실을 위해서는 수분수 2~3품종을 20~30% 섞어 심는다. 열과가 되지 않도록 물 빠짐을 좋게 하여 토양중 수분 변화를 적게하고, 비가림 시설을 설치하거나 비닐 멀칭도 효과적이다.
 
기후, 토양조건
기후조건 - 자두나무는 내건, 내서성이 모두 강하므로 연강수량이 500mm인 건조지대에서도 재배 되고 있으며 2,000mm 이상의 다우지방에서도 잘 자란다.
토양조건 - 자두는 물빠짐이 좋고 공기가 잘 통하며 보수력이 있는 곳으로 토층이 깊고 비옥해서 뿌리가 깊게 뻗을 수 있는 토양에서 잘 자란다.
 
물, 거름주기
물주기 - 발아 직전에는 발아를 촉진하도록 충분히 관수하고 개화기에는 과습되지 않고 공중습도가 높지 않도록 관리한다. 과실 발육기에는 과실발육을 촉진하기 위하여 5~10일 간격으로 20~30mm 관수한다. 수확기에는 수분이 많게 되면 당도가 떨어지므로 수확기가 다가오면 관수량을 줄여 준다.
거름주기 - 연간 시비량은 10a당 질소 12~18kg, 인산 6~9kg, 칼리 9~15kg, 퇴비 2톤이며 석회는 2~3년마다 200kg, 붕소는 2~3년마다 2~3kg 준다. 시비시기는 뿌리 활동이 시작되기 전에 주는 밑거름이 있으며, 5월 하순에서 6월 상순에 열매거름인 칼리비료를 위주로 하여 속효성 질소비료를 주고, 8월 하순에서 9월 상순에 1년간 줄 양의 10~20%를 가을거름으로 준다.

꺾꽂이, 가지치기, 분갈이방법
가지치기 - 자두나무의 열매가지는 그 길이에 따라 장과지(長果枝), 중과지(中果枝), 단과지(短果枝)로 나눈다. 장과지에 결실된 과실은 낙과되기 쉬우나 15cm 이하의 단과지에 결실된 것은 잘 자란다. 그러나 이런 단과지는 4~5년이 지나면 노쇠하게 되므로 항상 갱신해서 새로운 단과지 발생을 도모하도록 한다.
 
수확하기
하루 중 온도가 낮은 아침에 수확하는 것이 바람직하나 온도가 높은 한낮에 수확한 과실은 서늘한 그늘에 펼쳐 과실온도를 낮춘 다음 출하시키는 것이 좋다. 과분이 많은 품종은 과분이 벗겨지거나 손자국이 생기면 상품가치가 떨어지므로 주의한다.
질병

관련질병 - 잿빛무늬병
질병증상 - 꽃, 과실, 작은 가지에 발생하며 과실에 피해가 크다. 꽃에 발병하면 꽃 전체가 갈변되며 연화한다. 과실에는 주로 성숙과에 발병하며 표면에 회백색의 분생포자 덩이를 형성한다.
질병치료법 - 병에 걸린 과실, 가지를 발견 즉시 제거하고 웃자람가지 발생을 억제하여 바람이 잘 통하도록 한다. 약제방제 적기는 수확 20일 전이므로 이 기간에 7~10일 간격으로 2~3회 정도 살포한다.



자두나무
쌍떡잎식물 장미목 장미과의 낙엽교목.
속씨식물
쌍떡잎식물
장미목
원산지 - 중국
크기 - 높이 10m

자도나무·오얏나무라고도 한다. 중국 원산으로 인가 부근에서 과수로 심으며 높이가 10m에 달한다. 잎은 어긋나고 긴 달걀을 거꾸로 세운 듯한 모양 또는 타원형 긴 달걀 모양이며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가 있다.

꽃은 4월에 잎보다 먼저 피고 흰색이며 보통 3개씩 달린다. 열매는 달걀 모양 원형 또는 구형으로서 자연생은 지름 2.2cm이지만 재배종은 길이가 7cm에 달한다. 열매의 밑부분은 들어가고 7월에 노란색 또는 붉은빛을 띤 자주색으로 익으며 과육은 연한 노란색이다.

관상가치가 있으며 날것으로 먹기도 하고 잼이나 파이 등으로도 가공한다. 잎 뒷면에 털이 있고 열매가 타원형이며 벽흑색인 것을 서양자두(P. domestica)라고 한다. 한국에서 재배하는 자두나무는 대부분 유럽종 자두로서 1920년대 이후 재배하였다.

복숭아나무보다 재배가 쉽기 때문에 교통이 편리한 도시 근교에서 재배한다. 품종에는 동양자두·서양자두·미국자두가 있다. 서양자두와 미국자두는 오래 전에 동양자두가 전파되어 그 곳에 적응한 것들이며 재배종은 거의가 미국 개량종이다. 자두나무의 번식은 주로 눈접이 잘 되나 깎기접도 잘 된다. 자두를 수확할 때는 자두에 열매자루를 붙여서 완숙하기 며칠 전에 따서 나무상자나 골판지 상자에 담아 출하한다.



이씨의 기원(오얏나무)
늙은 오얏나무 아래서 
귀 큰 사내아이가
우렁찬 울음으로 
세상에 태어 났으니 
세상사람들은 그를 가르켜 
'노자'라고 부른다.


오얏 리씨의 유래
'이(李)'는 '오얏'를 말한다. 그래서 옥편을 찾아보면 '오얏 리(李)'라고 적혀 있다.
그럼 '오얏(李)'은 무엇인가? '오얏(李)은 현재 자두의 옛이름이다.
자두의 유래에 대해서 현재 밝혀진 바로는 중국이 원산지이며 유럽에는 지금으로부터 2000년전에 로마를 중심으로 전해 졌으며 미국에는 17~18세기무렵에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재배하던 개량종 자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1920년경이라고 한다. 자두라고 부르게 된 연유를 알려면 우선 '이(李)'라는 글자와 '이씨(李氏)'라는 '성씨(姓氏)'가 탄생하게 된 배경을 알아야 한다.
 
우선 우리는 세계의 5대 성인(聖人)으로 불리기도하는 '노자(老子)'를 주목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중국 이씨(李氏)와 함께 '오얏 리(李)'라는 글자는 바로 '노자'로 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다. 노자는 잘아시다시피 중국 고대의 철학자이며, 도가(道家)의 창시자이다.
본명은 이이(李耳). 자는 담(聃). 그래서 노담(老聃)이라고 보통 기록되어 있다.
노자는 오얏나무밑에서 태어났으므로 오얏나무를 나타내는 나무 목(木)자와 사내아이를 가르키는 아들 자(子)자를 합하여
'오얏 이(李)'라는 글자와 성(姓)을 만들다고 전해오는데 귀가 매우 커서 귀 이(耳)자를 이름으로 삼았다고 한다. (담(聃)이라는 글자도 사전을 찾아보면 '귀가 넓어 축 처져서 귓바퀴가 없음, 사람(老子의) 이름'으로 나와 있다)
 
고려 고종 때의 학자 쌍명제(雙明齊) 이인로(李仁老)는 이런 《오얏나무》시를 남겼다.
 
曾將玉鹿駕雲車  /일찍이 흰 사슴에 구름 멍에 채워서 
入處瓊宮十八餘  /들어가 간 곳에 열 여듧 아름다운 궁이라 
樹不初生因作姓  /나무 아래서 태어났기로 나무의 성을 따르니 
從玆仙李便扶疎  /그 때부터 이씨는 사방으로 퍼져 나갔네.
 
《신선록(神仙錄)》에는, “노자(老子)의 어머니는 노자를 가지고 오얏나무 밑에 있었다.”하고 오얏나무의 기를 받아 태어났으므로 성을 '나무아래 아들' 즉 '이(李)'라 했다고 한다.
일설에는 노자(老子)라고 부르는 이유도 노자(老子)가 태어난 곳의 나무가 늙은 오얏나무였으므로 '늙은 오얏나무 아래서 태어난 사내아이'라는 뜻의 늙을 노(老)자에 아들 자(子)자를 붙여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하여 온다. 또한 이후 학식이 높고 덕이 많은 사람으로 학문이 으뜸인 사람에게 끝에 자(子)라고 붙여 존경하는 풍습도 이때부터 생겨 났다고 한다.
 
노자는 초(楚)나라 고현(苦縣:허난성[河南省] 鹿邑縣)에서 출생하였고 춘추시대(春秋時代) 말기 주(周)나라의 수장실사(守藏室史:장서실 관리인)였다고 한다. 학식이 매우 높아 공자(BC 552~BC 479)가 젊었을 때 뤄양[洛陽]으로 노자를 찾아가 예(禮)에 관한 가르침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렇게 생겨난 글자와 성씨가 오얏 리(李)이고 오얏열매가 대부분 붉은 빛이어서 붉은(紫) 오얏(李)이라는 뜻의 자리(紫李)라고 불렀는데 모양이 복숭아 하고 비슷하게 생겨서 언제부터인지 붉은(紫) 복숭아(桃)라는 의미의 자도(紫桃)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 현재 전해 내려오는 자두나무의 유래이다.
 
자두는 자도(紫桃)의 현실적인 발음이 자두로 굳어져, 변형된 형태를 표준어로 삼았다. 표준어 규정 제20항에는 고유어 계열의 단어가 생명력을 잃고 그에 대응되는 한자어 계열의 단어가 널리 쓰이면, 한자어 계열의 단어를 표준어로 삼는다고 나와 있다.
 
참고로 세계에서 인구가 제일 많은 성씨를 말한다면 '이씨(李氏)'라고 말한다.
중국의 사자성어중에 장삼이사(張三李四)가 있는데 장씨의 셋째 아들과 이씨의 넷째 아들이라는 뜻으로, 불특정한 보통 사람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기도 하지만 이렇게 흔한 성씨중에서 현재 알려진 바로는 중국의 7~9%가 이씨(李氏)인데 세계에서 인구가 제일 많은 나라가 중국이고 중국의 성씨중에 가장 큰 대성(大姓)이면서 가장 많은 인구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성씨가 '이씨(李氏)'이니 이런 설명이 가능한 것이다.
 
중국외에도 대한민국과 북한을 비롯하여 대만.싱가폴.말레이.인도네시아 등의 화교권에 있는 나라와 태국.베트남 등 아시아권의 나라들을 포함하면 정확한 숫자가 나와 있지는 않지만 적어도 1억명은 훨씬 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더구나 대한민국만도 1천만명을 헤아리는 대성(大姓)중에 하나이니 정말 흥미로운 추계(推計)가 아닐 수 없다.
 
세계에 알려진 이씨(李氏)왕조(王朝)에는 대한민국의 '조선(朝鮮) 왕조(王朝)'와 중국의 '당(唐) 왕조(王朝)', '후당(後唐) 왕조(王朝)' 그리고 베트남의 전(前) 리(Ly,李) 왕조와 후(後) 리(Ly,李)왕조(王朝)에 해당하는 '다이 비엣(Dai Viet: 大越) 왕조(王朝)'가 있다.
 
대한민국의 '조선(朝鮮) 왕조(王朝)'는 1392년 즉위한 태조(太祖) 이성계에서 1910년 마지막 임금인 순종(純宗)에 이르기까지 27명의 왕이 승계하면서 519년간 지속되었다.
 
중국의 당나라는 수(隋)나라에 이은 왕조로 618년 이연(李淵)이 건국하여 907년 애제(哀帝) 때 후량(後梁) 주전충(朱全忠)에게 멸망하기까지 290년간 20대의 황제에 의하여 통치되었다. 중국의 통일제국(統一帝國)으로 한(漢)나라와 함께 제2의 최성기(最盛期)를 이루어, 당에서 발달한 문물(文物) 및 정비된 제도는 한국을 비롯하여 동(東)아시아 여러 나라에 많은 영향을 끼쳐 그 주변 민족이 정치 ·문화적으로 성장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고려시대 때는 중국 오대(五代) 왕조중의 한 왕조(923∼936)로 또 하나의 당나라가 있었는데 통칭 후당(後唐)이라 한다.
 
돌궐(突厥) 사타부(沙陀部) 출신의 이극용(李克用)이 당(唐:618∼907)에 봉사(奉事)하며 황소(黃巢)의 난(875∼884) 진압에 공을 세워 895년 진왕(晉王)으로 훈봉(勳封)을 받았는데, 아들 이존욱(李存勖:재위 923∼926)은 923년 후량(後梁:907∼923)의 뒤를 이어 국호(國號)를 당(唐)이라 칭하고 뤄양[洛陽]에 도읍하였다.
 
말제(末帝)에 이르러 거란(契丹)과 결탁한 부장(部將)인 하동(河東) 절도사(節度使) 석경당(石敬瑭:892∼942), 즉 후진(後晉)의 고조(高祖)에 의하여 4대 13년 만에 멸망하였다.
 
베트남에는 리 분(李賁)이 세운 전(前) 리(Ly,李) 왕조(544~602,603)와 후(後) 리(Ly,李) 왕조(1009 ∼1225)가 있었다. 특히 베트남의 리타이또(Ly Thai To,李太祖)가 세운 후(後) 리(Ly,李)왕조(王朝)는 베트남 최초의 독립왕조였는데 베트남의 리왕조(李王朝)하면 후(後) 리(Ly,李)왕조(王朝)를 가르킨다. 베트남 리왕조(李王朝)의 창시자(재위 1009~1028)인 리 꽁 우언(Ly Cong Uan, 李公蘊, 974~1028)은 묘호가 태조(太祖)이며 하노이 근교의 바크닌 출신이다. 국호를 다이 비엣(Dai Viet: 大越)으로 정하고 북으로는 송나라, 남으로는 크메르, 그리고 자국내의 참족과 맞서 싸우며 독립을 유지시켜 나갔다. 자주통치를 확고히 한 200여간 행정, 조세 체제가 정비되고 농업이 육성되는 등 문인정치가 자리잡게 되었다. 하노이에는 베트남 최초의 대학 반 미에우(Van Mieu)가 생겨 유교교육제도로 관리를 뽑게 되었다.
 
베트남과 한국의 첫 관계는 알려진대로 13세기 초 고려 고종 때, 베트남의 직계왕자가 고려로 피신를 오면서였다. 안남국(安南國. 현 베트남)의 왕 이천조(李天祚)가 트란(Tran,陳) 왕조에게 권력을 빼앗기자 둘째 왕자 이용상(李龍祥)이 1226년(고려 고종 13년) 배를 타고 지금의 황해도 옹진군 화산으로 피신해 왔다. 이를 보고받은 고종이 가상히 여겨 화산군(花山君)에 봉하고 그 곳을 식읍으로 하사하였다. 그래서 후손들이 본관을 화산으로 하였다.
 
화산이씨(花山李氏)는 현재까지도 베트남에서 왕족에 대한 예우로 대접 받고 있어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며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6·25 때 남하하여 현재 약 200여 가구가 한국에 거주하고 있다. 이외에도 우리나라에 귀화한 성씨가 많은데 여진에서 유래한 청해 이씨, 중국 농서출신으로 나당연합때 귀화한 연안(延安) 이씨를 비롯해 안악(安岳)이씨, 상산(商山) 이씨, 고성(固城) 이씨, 정선(旌善) 이씨는 중국이 뿌리다. 



자두나무의 유래
이처럼 원래는 '자두나무'를 '오얏나무'라 하기도 하고 '자리(紫李)'라고도 하였는데 1920년이후 미국.유럽 등지로 부터 개량종이 들어오고 나서 붉은 복숭아라는 뜻의 '자도(紫桃)'라고 부르다가 언제부터인지 자두로 부르게 되었다. 3월에 움이 트는 오얏꽃은 4월이면 절정을 이룬다. 제아무리 무신경인 사람도 오얏 꽃밭에 들어서면 가슴이 울렁거린다고 했다.

'자리(紫李)' 또는 자도(紫桃)란 글자대로 붉은 자줏빛 과일이다. 중국이 원산지로 대추, 밤, 감, 배와 함께 다섯 과일(五果) 중 으뜸으로 꼽아 무척이나 중히 여겼다. 《예기(禮記)》에 이미 “복숭아와 오얏, 살구, 매실을 임금께 진상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우리나라에서의 재배역사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신라 때 벌써 가꾸었음을 알 수 있다. 신라 말 풍수의 대가 도선(道詵) 스님이 쓴 《비기(秘記)》에 “고려 왕(王)씨에 이어 '이씨(李氏)'가 한양에 도읍 한다.(繼王者李而都於漢陽)” 고 예언했다. 고려 조정은 예민한 반응을 보여 고려 중엽부터 한양에 벌리목사(伐李牧使)를 두었다. 백악(白岳 지금의 북한산)에 오얏나무를 심고 나무가 무성할 때면 반드시 모두 찍어서 '이씨(李氏)'의 기운을 눌렀다.

500여 년 전에 이씨 왕조를 예견한 도선국사(道詵國師)의 예언이 무학대사(無學大師)에 의해 실현된 것이라고 사람들은 무릎을 친다. 무학이 도읍지를 정하려고 만경대의 맥을 밟아 남으로 가다가 비봉에 이르러 “무학은 이 곳에 잘못 이르렀다(無學誤尋到此)”라는 도선의 비석을 발견한다. 무학은 길을 잘못 잡았음을 알고 그 길을 되돌아가 만경대의 정남맥을 좇아 바로 백악에 이르니 삼맥이 합하여 한 덩어리가 되는 명당이라 그 아래 궁성의 터를 잡았다.

그곳이 바로 고려 조정이 신경을 쓰며 오얏나무를 베던 자리 곧 '벌리지(伐李址)'라는 전설이다. 고려 왕조는 해마다 자두나무를 찍으며 그 기를 눌렀으나 결국 '이씨(李氏)'를 잡지 못해 나라를 빼앗긴 셈이다. 지난 70년대까지 바로 벌리를 하던 서울 자하문 밖은 자두나무 명산지였다.

고려 가요 〈동동(動動)중의 3월달〉에는 사랑하는 님을 보름달 아래 활짝 핀 오얏나무에 비유했다. 오얏나무가 풍요와 위엄의 상징이었던 때문이다.

삼월이 되어 활짝 핀 /
아아! 무르익은 봄 보름달 빛의 오얏꽃처럼 /
(님은)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의 (화사한) 얼굴을 지니셨도다.

보름 달빛이 비친 하얀 오얏꽃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까지 풍요로웠다. 
오얏꽃이야말로 한 해의 풍년을 점치기에 아주 좋은 나무였던 까닭이다.

또한 “복사꽃과 오얏꽃은 말이 없어도 그 밑에 저절로 길이 생긴다(桃李不言 下自成蹊)”는 말이 있다.

복사꽃과 오얏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으면 꽃이 오라고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저절로 모여들어 그 밑에 길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처럼 옛부터 화사한 복사꽃과 오얏꽃의 아름다움을 사람들은 칭송하였다.

이 왕가의 문장은 '오얏나무꽃(李花)'이다. 창덕궁(昌德宮) 인정전(仁政殿)은 대한제국 시절 황제가 외국 사신을 접견했던 건물이다. 용마루에는 조선 황실의 문장인 청동제 자두꽃 다섯 송이가 박혀 있다. 넷은 왕을 말함이고 다섯은 황제를 상징한다. 고종황제 대에 와서 비로소 상국의 그늘을 벗어나 대한제국이라는 자주 독립국가를 세우게 되었다.

한 때 인정전의 오얏꽃을 왜인들이 설치한 벚꽃이라 하여 철거해야 한다고 헤프닝을 벌인 적도 있었다. 아직도 조선 황실의 문장을 '배꽃(梨花)'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도 있다. 발음이 같은 '이화(李花)'를 '이화(梨花)'로 착각한 때문이다.

고려 명종 때의 학자 노봉(老峰) 김극기(金克己)는 오얏을 이렇게 노래했다.
       
花心驚惠風  /꽃을 향한 마음은 은혜로운 바람에 놀라고
鳥聲感和氣  /새 소리에 온화한 기운을 느낀다.
朱朱上緋桃  /붉은 빛은 복숭아를 붉게 물들이고
白白尋鍊李  /희디흰 빛은 닥은 오얏을 찾는다.

제사에 쓰이는 과일이어서 능묘나 사찰, 저택 주변에 심는 풍속이 있었다.

이하부정관(李下不正冠)이라 해 오얏나무 밑에서는 갓끈을 고쳐 매면 도둑으로 오해받기 쉽다고 했다. 오해받을 일을 하지 말라는 교훈적인 말도 오얏나무 때문에 생겼다.

전국 말기의 정치가 여불위(呂不韋 ? ~ BC 235)가 편찬한 《여씨춘추(呂氏春秋) 》 중춘기(仲春紀)에는 “2월은 우수절로서 복사꽃과 오얏꽃이 피는 때”라며 봄의 대표적인 꽃으로 복사꽃과 오얏을 꼽았다. 계절적으로 중국의 남쪽지방은 음력 2월이 봄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4월이 되어야만 비로소 오얏꽃을 볼 수 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과일나무 가지에 돌을 끼워두면 과일이 많이 달린다. 이를 ‘과일나무 시집보내기(嫁樹)’라 한다. 섣달 그믐날, 설날, 정월 보름 어느 때 해도 좋다.”고 적었다. 오얏, 대추나무 시집보내기에 대한 내용이다.

유종본(愈宗本)의 《종과소(種果疏)》에 “오얏나무를 시집보낼 때는 정월 초하루 또는 보름이 좋다.”고 했다. 진호(陳淏)의 《화력신재(花曆新栽)》에도 “섣달 그믐날 장대로 오얏나무 가지를 때리면 결실이 좋으며, 설날 석류나무 가지에 돌을 끼우면 열매가 크다.”고 했다. 서광계(徐光啓)의 《농정전서(農政全書)》에는 “오직 오얏나무에만 이 방법을 쓴다.” 고 했다.

자두나무는 봄에 꽃을 피우지만 흰 꽃인가 하면 녹색이 섞인 빛깔이다. 꽃이 필 때 어린 싹이 돋아나기 때문에 먼데서 보면 연한 백록색으로 보인다.

원래는 오얏나무로 불려졌던 재래종 자두나무는 알이 작고 맛이 지극히 시기 때문에 오늘날 과일나무로 여기지 않는 것 같다. 시골에서나 가끔 볼 수 있을 뿐 여간해서는 눈에 띄지 않는다.

그 대신 농장에서는 신품종을 심어 재미를 보고 있다. 열매 빛깔이 짙은 자주색인 것, 연초록색 과일이 크고 과즙이 많은 것, 과육이 피처럼 붉은 것도 있다. 이러한 우수 신품종이 심어지면서 우리의 재래종 자두나무는 하나 둘 사라지게 되었다.

원로 식물학자 이창복(李昌福) 박사는 자두와 앵두를 교잡시켜 굵은 앵두를 만들어 보라고 권한다. 이렇게 하면 앵두 열매가 훨씬 굵어져 대추알 정도나 된다고 했다. 교잡한 나무의 성장을 좋게 하기 위해 자두나무에 접을 붙여 키우는 것은 물론이다.

열매는 꿀에 재었다 먹기도 하고 말려서 건과를 만든다. 이것을 이건(李乾)이라 했다. 씨를 빼고 말린다. 경남 합천군 가야면 매안리의 높이 13m의 300년 된 오얏나무는 봄에 싹트는 모양의 좋고 나쁨에 따라 그 해의 농사를 점친다.

이렇게 우리에게 없어서 안될 소중한 오얏나무 즉, 자두나무는 학명(學名)으로 Prunus salicina 라고 한다. 원산지가 중국으로 되어 있지만 우리 땅에서 잘자라 인가 부근에서 과수로 심으며 높이가 10m에 달한다. 잎은 어긋나고 긴 달걀을 거꾸로 세운 듯한 모양 또는 타원형 긴 달걀 모양이며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가 있다.

꽃은 4월에 잎보다 먼저 피고 흰색이며 보통 3개씩 달린다. 열매는 달걀 모양 원형 또는 구형으로서 자연생은 지름 2.2cm이지만 재배종은 길이가 7cm에 달한다. 열매의 밑부분은 들어가고 7월에 노란색 또는 붉은빛을 띤 자주색으로 익으며 과육은 연한 노란색이다.

관상가치가 있으며 날것으로 먹기도 하고 잼이나 파이 등으로도 가공한다. 잎 뒷면에 털이 있고 열매가 타원형이며 벽흑색인 것을 서양자두(P. domestica)라고 한다. 현재 한국에서 재배하는 자두나무는 대부분 유럽종 자두로서 1920년대 이후 재배하였다.

복숭아나무보다 재배가 쉽기 때문에 교통이 편리한 도시 근교에서 재배한다. 품종에는 동양자두·서양자두·미국자두가 있다. 서양자두와 미국자두는 오래 전에 동양자두가 전파되어 그 곳에 적응한 것들이며 재배종은 거의가 미국 개량종이다. 자두나무의 번식은 주로 눈접이 잘 되나 깎기접도 잘 된다. 자두를 수확할 때는 자두에 열매자루를 붙여서 완숙하기 며칠 전에 따서 나무상자나 골판지 상자에 담아 출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