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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블록체인에 대해서 잘 정리된 글

by 성공의문 2017. 12. 21.

이미지:S2M

바야흐로 블록체인의 시기다. 블록체인 기술을 사용한 처음이자 최고의 성공 사례인 비트코인 가격은 최근 하나당 $7,300을 넘어서며 시총 130조원을 넘어섰다. (주지할만한 사실은 불과 2년 전인 2015년 10월쯤엔 개당 $240 선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비트코인은 중앙은행 같은 화폐 발행주체나 시중은행 같은 신뢰 중개자 없이도 가치의 교환 또는 신뢰 거래가 가능하게 하겠다는 비전을 가지고 (아직까지 익명으로 추정되는) 사토시 나카모토에 의해 2008년 개발됐다.

금전적 보상을 받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컴퓨터들이 거래가 참인지 여부를 검증하도록 설계하여 적어도 9년이 지난 지금까지는 큰 사고 없이 훌륭히 거래를 검증해 내며 현재 가치를 부여 받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비트코인을 받는 가맹점은 계속 줄고 있다는 보고가 있을 정도로 실제 생활에 쓰이고 있지는 않은 형편이다. 그저 아직은 투자 수요의 급증만이 가격 급등을 설명할 수 있는 핵심 근거가 될 것이다.

물론 미국의 BitPay와 일본의 GMO 등 비트코인 PG 회사들이 실생활에서 비트코인을 쓸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고는 있다. 그 결제액은 2017년 현재 각각 월 $1B(1.1조원)와 10억엔(100억원)으로 적지 않은 수준이지만 현재 전세계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암호화폐의 거래액은 월 150조원 안팎으로 비교가 안되는 수준이다.


대안의 필요성

비트코인이 등장한 지 어느새 한참 되면서 많은 단점이 발견되었다. 초기 개발자가 매 10분마다 거래 내역을 모아 이를 거래 검증에 참여하는 모든 컴퓨터들이 나눠 갖도록 설계한 까닭에 단 한 번의 거래 검증에 최소 10분이 걸리는 문제가 가장 컸다.

하물며 거래당 비싼 수수료(11월 현재 6천원 내외)를 내야해 이체 수수료가 대부분 무료인 인터넷/모바일 뱅킹 시대에 역행하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또한 총량이 고작 2,100만개 밖에 안되고 대형 보유자들은 꼭 쥐고 내놓지 않아 시장에 깔려 거래되는 물량이 극히 적었다. 그러다보니 일시적으로 수요가 몰리면 수급 불균형으로 인해 가격이 급등 또는 급락하는 사태를 자주 보였다.

이처럼 부족한 성능과 물량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선 후발주자들이 계속 새로운 프로토콜을 연구하고 발표했다. 그 중에 이더리움도 있었다.

[개념설명] 여기서 ‘프로토콜’은 ‘퍼블릭 블록체인’을 말한다. 그렇담 ‘퍼블릭 블록체인’이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채굴(거래 검증) 과정에 참여할 수 있고 해당 블록체인에서 통용되는 자체 코인을 누구나 사고 팔 수 있는 블록체인을 말한다.

반대편에는 ‘프라이빗 블록체인’이 있다.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주로 회사에서 폐쇄적으로 운영하는 블록체인이며 회사의 내부 자료나 거래 기록이 블록체인에 쌓인다. 그러다 보니 회사에 의해 지정된 컴퓨터만 채굴(거래 검증)에 참여할 수 있으며 거래를 검증하는 컴퓨터에 대한 보상이 따로 필요 없거나 다른 방식을 택할 수 있어 대부분 자체 코인이 따로 없다.

리플(Ripple)처럼 채굴은 회사가 지정한 노드만 참여할 수 있지만 자체 코인을 갖는 일종의 하이브리드 프로토콜도 존재한다. 리플은 은행간 국제 송금에 쓰이는 SWIFT망을 대체하겠다는 비전을 가진 프로젝트여서 운영의 주체(회사)가 필요한 당위가 있었다. (블록체인 분야에서 이런 경우를 ‘보다 중앙화돼있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이는 대단히 기형적인 케이스로, 일반적인 경우 퍼블릭 체인과 프라이빗 체인은 채굴 참여 여부와 코인 유무로 간단히 나누어 구분해 볼 수 있다.


이더리움

2014년 비탈릭 뷰테린에 의해 만들어진 이더리움은 총량을 비트코인의 5배 가량인 1억개 이상으로 늘리고 거래 체결 속도(1 confirm = 한 번 거래를 검증 받는 시간)를 1분 내외로 줄였다. (이 거래 체결 속도는 이후 3년간 꾸준히 개선되어 2017년 11월 현재 평균 20초 내외로 줄었다.)

비트코인의 전통적 단점들을 보완한 프로토콜은 사실 라이트코인 등 이더리움 전에도 있었다. 그러나 이더리움은 코인 위에 스마트 계약을 얹었다. 스마트 계약은 기계가(정확하게는 이더리움 네트워크) 사람간의 합의가 반드시 이행되도록 중재하는 역할을 한다. 스마트 계약은 1996년 암호학의 대가 Nick Szabo가 처음 개념적으로 제안했고 이더리움을 통해 본격적으로 구현되기에 이른다.

가령 내일 아침 9시 이전 서울의 강수량이 10mm 이상일 때 A가 B에게 1억원을 주기로 했다고 치자. 반대로 10mm 미만일 때는 B가 A에게 1억원을 지급해야 한다. 이 경우 어느 한 쪽이 돈을 주기 싫어서 도망갈 수도 있고 계좌에서 돈을 미리 빼놓을 수도 있다.

그런 일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 이더리움에서는 양쪽의 계좌를 미리 담보로 걸고 반드시 해당 계약이 이행되도록 설정할 수 있다. 그러면 A와 B는 상대방의 변심이나 부재를 걱정할 필요 없이 계약에 돈을 걸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기존에 보험사가 하던 일을 스마트 계약이 대신 할 수 있고 은행이 하던 대출업이나 증권사가 하던 거래의 중개 기능도 스마트 계약이 대체할 수 있다.

이더리움 프로토콜의 내부 화폐로 쓰이는 이더(ETH) 가격이 올들어 급등한 원인도 그런 기존 금융의 틀과 존재의 이유를 송두리채 흔들 수 있다는 기대감과 가능성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JP Morgan과 MS, Intel, Accenture, Santander, Credit Suisse, ING, BNY Mellon 등 세계적인 은행과 IT기업들이 이더리움을 기반의 프라이빗 블록체인 연구 모임인 EEA(Ethereum Enterprise Alliance)를 조직했다는 발표가 있던 2017년 2월 28일을 기점으로 이더리움이 블록체인계의 표준처럼 되는 것 아닌가 하는 기대감이 가격 급등의 구체적인 기폭제가 되기도 했다.


토큰

이더리움 프로토콜은 스마트 계약 외에도 개인이나 기업, 소모임이 자기 이름을 딴 코인을 쉽게 만들 수 있는 기능을 제공했다. (이 기능은 이더리움 내에서 ‘ERC-20 토큰’이라고 부른다. 이하 우리도 비트코인(BTC), 이더(ETH) 등 프로토콜 상위 단위로 통용되는 코인과 구분하기 위해 보다 하위 개념의 ‘토큰’이라 부른다.)

이 기능을 쓰면 심각한 프로그래밍을 배울 필요 없이 누구나 자기 토큰을 만들고 이더리움 전자지갑을 통해 주고 받을 수 있어 이더리움 흥행의 한 축을 담당했다. 무엇보다 복잡한 채굴(거래 검증) 과정을 설계할 필요없이 이미 엄청난 수의 컴퓨터가 검증에 참여하고 있는 이더리움 네트워크에 거래 검증을 위임하기에 처음부터 해킹 같은 보안 위협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이더리움 네트워크 위에서 동작하는 ERC-20 토큰을 이용한 신규 암호화폐 발행(ICO, Inicial Coin Offering)이 올해 초부터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간단한 홈페이지와 A4용지 20장 내외의 간략한 컨셉 백서(Whitepaper) 하나로 몇십억에서 많게는 천억이 넘는 가치의 이더가 모금되자 점점 더 많은 팀들이 ICO를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제각기 다른 꿈을 꾸는 수많은 ERC-20 토큰이 양산돼 2017년 11월 16일 현재 1.2만종이 넘는 토큰이 이더리움 위에 생겨났다.


ICO

물론 1.2만종의 토큰 중에는 테스트용이나 공부 목적으로 발행된 토큰도 있겠지만 이더리움의 토큰이 ICO 진입장벽을 크게 낮춤으로써 ICO 활성화에 불을 당긴 점은 주지할 수 밖에 없다.

이는 EOS나 Qtum처럼 신규 프로토콜을 지향하는 블록체인들조차 우선 이더리움용 ERC 토큰으로 자기 코인을 내놓았다는 점(추후 자체 프로토콜이 오픈하면 ERC 토큰을 자체 코인과 1:1 비율로 교환해줌)으로 미루어 볼 때 마치 이더리움이 ‘ICO를 위한 프로토콜’로서 이 시장에서 기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올해 들어 ICO에 투자된 자금은(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암호화폐 투자액이 아니라 순수 신규 암호화폐 발행에 유입된 금액) 2017년 10월 7일까지 2014년 이후 3년간의 누적 ICO 투자액 $2.67B(2.94조원) 중 75%에 해당하는 $2B(2.2조원)에 이른다.

그리고 ICO 열풍은 이제 막 시작됐다. 중국과 한국이 이미 올 여름 ICO 광풍을 경험했고 한 템포 느리게 올 가을에 와서야 비로소 MIT Technology Review, Business Insider, Re/code, TechCrunch 등 미국의 유력 테크 미디어들이 앞다투어 ICO를 다루고 있다.

그 사이 이미 진작에 Sequoia와 Andreessen Horowitz, Angelist의 CEO인 Naval Ravikant 같은 유명 VC들은 암호화폐에 투자하는 헷지펀드에 투자해 500~1,000%의 수익을 올렸다는 소식도 들린다.

지금 이 순간에도 100종 이상의 암호화폐가 새로 ICO를 진행중에 있고 Y Combinator 같은 실리콘밸리의 유력 엑셀러레이터도 본격적으로 블록체인과 ICO에 눈을 떴으니 앞으로 그 수는 계속 증가하지 않을까 한다.

특히 OmiseGO나 Kik, Wax, Up.live, Playkey 등 이미 기존 비즈니스를 운영하고 있는 회사들이 ICO를 통해 추가 자금을 조달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마련하고 있는 점도 앞으로 관심있게 지켜볼 지점이라 생각한다. 실제 태국의 중소 PG사였던 Omise는 ICO 직후 경쟁사를 인수하기도 했다.


규제의 본격화

우리나라는 2017년 3월 전후로 개인투자자들의 암호화폐 투자가 폭증하며 2017년 8월 기준 하루 거래량이 코스닥을 넘는 일까지 생겼다.

하루 수십~수백 %가 오르 내리는 극심한 변동성 때문에 투자자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 오자 정부는 2017년 9월 1일 국무조정실, 기획재정부, 공정위 등 10개 기관이 참여하는 「가상통화 관계기관 합동 TF」를 처음으로 연다.

다양한 발표를 했지만 핵심은 “배당권 등 증권의 권리가 부여된 가상통화(정부의 표현)의 발행을 자본시장법으로 규제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앞서 지난 7월 25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앞으로 배당권 등 증권의 권리가 부여된 토큰의 ICO를 증권거래법으로 규제하겠다”는 방침을 정한 데에 결을 같이 하는 발표였다.

미 SEC와 한국 정부의 발표로 이미 국내외에서 ICO를 준비중이던 업체들은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당시 많은 프로젝트가 프로젝트 성과를 통해 발생하는 이익의 일부 또는 전부를 토큰에 분배하는 일종의 배당권을 설계해 넣고 있는 추세였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신생 ICO 토큰들은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리플, 넴(NEM) 등 이미 몇년의 역사를 지닌 프로토콜 코인에 비해 인지도가 떨어져 시총이 낮게 형성된다. 또한 프로토콜 코인보다 DApp(프로토콜 위에 올리는 앱)에서 사용하는 토큰들은 상대적으로 장기 보유의 인센티브가 떨어지기 때문에 프로토콜 코인이 제공하지 않는 이익 분배 등의 보상을 설계해 넣는 것이 당시 ICO들의 주요 설계 방향이었다.

그런 식으로 탄생한 토큰이 분기별 운용 수익에 대한 배당권이 부여된 암호화폐 펀드 토큰인 TaaS나 카드 사용액의 정률로 토큰 보유자에게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암호화폐 직불카드(Debit card) 토큰인 TenX PAY 같은 것들이다.

7월 25일 SEC의 발표로 미국 일부 거래소는 미국 시민에 한해 ICO를 통해 발행된 토큰의 거래를 중단시키기도 했다. 중국 정부 역시 2017년 9월 4일 중국인의 암호화폐 신규 발행 및 투자를 금지한데 이어 9월 10일 중국 내 암호화폐 거래소들의 전면 폐쇄를 발표하며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강력한 규제안을 발표한다.


해도 되지만 해서는 안되는

9월 1일 한국 정부의 ‘증권화된 ICO 금지’ 발표는 거꾸로 시장에서 ‘그럼 증권화되지 않은 ICO는 허용해 준다는 말 아니야?’라는 의도치 않은 반응을 일으켰다. 그래서 한국에서 ICO를 준비하던 많은 팀들이 너도나도 배당권 등 증권의 권리를 뺀 순수 토큰으로 ICO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 이 즈음 여러 국내팀들이 모금 규모 수백억에 달하는 ICO를 경쟁적으로 발표하고 전국 설명회를 열기도 했다.

정부는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ICO를 줄이자고 발표한 정책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왔기 때문이다. 그러자 정부는 다시 9월 29일, “권리 부여의 유무를 막론하고 모든 가상통화 신규 발행(ICO)을 전면 금지한다“는 더 강력한 규제를 내놓는다.

업계가 모두 당황했지만 가장 애매한 것은 ‘그럼 발표 전에 ICO를 마친 프로젝트는 괜찮고, 발표 이후의 ICO만 금지되는 것인가?’하는 문제였다. 또한 발표내용은 ‘앞으로 규제하겠다’는 방향을 밝힌 것이지 ICO 전면 금지의 법적 근거를 대지 못했다.

많은 ICO 업체들이 로펌으로 달려갔다. 대답은 “사실 아직 법제화된 것이 아니니 형사처벌 받을거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당국이 하지 말라는 일이니 하게 되면 당국의 관심을 받게 될거 같긴 하다. 따라서 진행 여부는 전적으로 대표님 의사에 달렸다.”는 극히 모호한 대답들이었다.


통제가 낳은 풍선효과들

중국 역시 ICO를 통해 모금된 자금의 전액 환불과 암호화폐 거래소 전면 폐쇄 조치는 오히려 암호화폐 거래의 음성화라는 역효과를 낳았다.

비트코인 가격은 9월 2일 $4,928달러 고점을 찍은 후 중국 정부의 ICO 금지와 거래소 폐쇄 방침이 연달아 알려지며 $3,387달러(9월 15일)까지 빠졌으나 다시 급상승을 거듭해 이 글을 쓰고 있는 11월 16일 현재 $7,318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현재 중국에서는 당국의 거래소 폐쇄 방침을 비웃기라도 하듯 여전히 개인들끼리 P2P로 비트코인을 거래할 수 있다. 또한 많은 도시에서 오프라인 환전소를 통해 비트코인을 손쉽게 위안화로 바꿀 수 있는 상황이다. 종전 중국 당국은 거래소만 옥죄면 되었으나 대부분의 거래가 음성화되며 이제는 훨씬 복잡한 상황에 처했다.

한국의 많은 ICO 업체들은 포기 또는 강행의 기로에서 각자 선택하고 있다. 강행을 택한 프로젝트는 스위스, 에스토니아, 지브롤터, 싱가포르 등 다른 나라에 재단을 설립하는 형태로 정부의 금지 방침을 쉽게 우회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까지는 암호화폐 발행의 매력과 시장 성장의 속도를 각국 당국이 효과적으로 따라가지 못하고 여러 부분에서 풍선효과를 낳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똑같은 상품을 전세계 수백개 거래소에서 취급하고 거래와 이동이 용이해 한 나라의 규제를 다른 나라를 통해 간단히 우회할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는 지금까지 금융당국이 거시 경제 정책을 짜고 돈을 중앙은행이 발행해 시중 은행을 통해 풀며, 국가가 통합 운영하는 증권 거래소에서는 주로 자국 기업의 증권만 거래되어 온 기존 경제 질서에서는 ‘통제와 정책의 개입’이 대단히 요원해진 상황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아직은 암호화폐 시장이 작지만, 만약 지속적으로 커진다고 감안할 때 한 국가의 정책이 원하는대로 작동할지 여부는 ‘동일상품의 세계 거래’라는 측면에서 앞으로 점점 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선릉역 오피스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국의 규제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이미 지난 4-5년전부터 다단계 조직들이 비트코인 소스 코드를 가져다(오픈 소스이다 보니) 이름만 바꿔 다양한 코인을 팔고 다녔다. 그나마 비트코인 코드라도 가져다 쓰는 경우는 양호한 편이었다.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사기인 경우도 있었다.

내가 최근에 놀란 장면 중 하나는 지난달 선릉역 오피스텔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거기 블록체인 스타트업 입주해 있어서 갔는데 그 회사 멤버 말이 이 오피스텔 곳곳이 ‘코인 하는 집’들이란다. 엘레베이터를 타서 최근에 OO코인에 투자한 이야기를 했더니 우연히 같이 탄 모르는 사람이 “안그래도 나도 그걸로 크게 벌었다”며 맞장구를 치더란다.

OO코인(프로젝트명은 이미 거기 투자한 수천~수만명을 보호하기 위해 밝히지 않는다) 일정기간 돈을 묶어두면 연간 300% 이상의 수익을 ‘보장’하는 전형적인 사기 구조의 코인이다. 투자 금액이 클수록 묶이는 기간이 줄어든다. 그들은 “트레이딩봇을 돌려 수익을 내 투자자에게 수익금을 지급한다”지만 실제로는 뒤에 들어온 투자자 돈을 앞에 투자한 투자자에게 지급하는 전형적인 폰지(Ponzi) 사기다. (그 코인의 성공으로 또 그 코인의 구조를 똑같이 베낀 유사 코인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모르는 것보다 더 무서운

그 분께 “매우 조심하시는게 좋겠다”고 했더니 “저도 사기 이야기는 들었는데 그래도 6개월 중에 벌써 2개월이 지났다”며 “제가 아는 언니는 천만원 넣어서 6개월만에 몇억 벌어 수입차 타고 다닌다”고 답했다.

개인적으로 놀란 까닭은 사기 코인인지 몰라 참여하는게 아니라 알아도 다음 사람에게 넘기면 된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일반화할 수 없지만 그런 참여자들이 충분히 존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지금 저런 사기에 알면서도 동참하고 있을까 소름이 돋았다.

코인 사기에 관한 소식은 요새 하루가 멀다하고 계속 올라오고 있다. (1, 2, 3, 4) 이 분야에 있다보면 환멸을 느낄 정도로 이상한 얘기를 많이 듣는다. 백서나 웹사이트 하나 없이 카카오톡 ICO만으로 1,600억을 모았다는 이야기도 있고, 식당이나 매장 주인들에게 무슨무슨 코인 투자하라며 영업사원이 찾아왔다는 이야기도 자주 들린다.


곤혹스러운 당국자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수천억의 사기를 내고 잠적한 ‘이더트레이드’를 비롯해 이미 코인 사기 규모가 조 단위를 넘었을 것으로 경찰은 추정하고 있다. 검경이 파악하고 있는 규모보다 훨씬 많은 규모의 사기가 지금 이 순간에도 벌어지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역설적으로 200억 정도 규모의 ICO 하는 업체들은 상대적으로 건전해 보이기까지 하다. 그야말로 혼란 그 자체다.

정부 당국의 인식은, 실은 충분히 적확하다. 지난 10월 24일 서울경제신문 주최 조찬 모임에 참석했다. 당일 주제는 블록체인이었고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기조연설을 했다.

최 위원장은 연설에서 “블록체인 기술이 앞으로 산업 전반, 특히 금융업에 미칠 영향이 지대하다는 점은 아마 여기 참석자들 중 아무도 이견을 다는 분은 안계실 것으로 생각한다”며 “금융위도 산업 발전을 저해해서는 안된다는 목소리를 충분히 알고 있다. 다만 블록체인 기술과 가상화폐는 구분해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는 얼마나 많은 돈이 현재 암호화폐 거래소로 흘러 들어가는지 은행의 자금 흐름을 통해 파악하고 있고, (실제 언론에 보도된 것보다) 얼마나 많은 코인 사기가 횡횡하고 있음을 보고 받고 있는 당국자의 곤혹스러운 입장 표명이 아니었을까 한다.


ICO, 결코 이 방법밖에 없는가?

대안 1) 적격투자자 제도

업계와 학계에서는 산업 발전 저해를 주장하며 ICO를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현대판 적기조례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ICO를 준비하는 업체들이 모여 대책 회의를 진행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ICO를 ‘자본시장법’으로 규제하겠다고 밝히자 일부 미국 로펌이 ‘적격투자자(Accredited investor)들로부터 받는 투자는 50인이 넘어도 공모로 보지 않는다’는 자본시장법의 특례 조항을 발빠르게 찾아내 SAFT라는 우회 방안도 개발했다.

자산 규모 100만불 이상, 연 소득 20만불 이상이어야 적격투자자가 될 수 있는데, 그런 사람들만 모아 미국에서 진행하는 ICO에 합법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하겠다는 발상이다. 로펌들이 미국의 유명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Angelist와 협력해 SAFT를 도입한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Coinlist를 만들었다. 거기서 진행한 첫 투자가 Filecoin이라는 ICO이고 이 프로젝트는 적격투자자만 참여할 수 있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한달만에 $252M(2,770억)을 모았다.

우리나라도 이미 적격투자자 제도가 있고 우리나라 자본시장법에서도 적격투자자의 투자는 공모 여부를 판단하는 49인에 카운트하지 않는다. 따라서 SAFT와 유사한 형태로 투자 리스크를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사람만 투자하도록 하는 것도 정부 당국이 ‘산업 발전 저해’의 짐을 지지 않기 위해 검토해 볼만한 대안이 아닐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Filecoin은 더 안전한 진행을 위해 ICO를 마친 후 SEC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했다. 이후 미국에서 진행되는 여러 ICO들이 자발적으로 증권신고서를 제출해 자본시장법으로 규제하겠다는 SEC의 방침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러나 적격투자자 제도 활용 방안은 현행 국내 자본시장법상 공모 조건에 카운팅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정부가 ‘모든 종류의 ICO 전면 금지’를 선언해 놓았기 때문에 여전히 ICO에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정부 입장에서 산업 발전 저해 목소리에 타협하기 위해 검토 가능한 대안이라는 뜻이다.

대안 2) 공모 없는 토큰 발행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토큰 발행 모델은 공모(ICO) 없는 토큰 발행 방향이다. 비트코인 개발자인 사토시 나카모토가 그러했듯이 공모 없이 시장에 먼저 내고 추후 시장의 인정을 받으며 가치가 상승하는 모델이다. 이것이 토큰 발행 모델 중 가장 건전하고 진지한 방향이 아닌가 한다.

물론 공모를 해야만 자기 돈을 투자한 사람들이 열심히 프로젝트를 홍보하고 응원한다는 의견도 있다. 공감이 된다. 또한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한 분산형 슈퍼 컴퓨팅 네트워크를 개발하겠다는 Golem처럼 이른바 ‘로켓 사이언스’에 해당하는 프로젝트에는 그만큼 많은 초기 개발비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전세계 어느 VC도 아직 백서뿐인 터무니없는 꿈에 개발비 수백, 수천억을 꽂아줄리 없으므로 ICO는 그런 초대형 프로젝트에는 분명 대체불가능한 자금 조달 방식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ICO 프로젝트들이 필요한 돈 이상을 요구하고 있다. 정말 자신 있으면 VC 투자 받아도 되는 프로젝트들이 단지 VC보다 ‘돈 받기가 쉽다’는 이유로 ICO를 택하고 있다. 만약 기존 블록체인 프로토콜이나 Dapp들보다 획기적인 개선 아이디어가 있다면 ICO 없이 먼저 개발해 진검승부를 해보면 어떨까? 시장의 필요와 완성도를 입증 받아 스스로 가치를 증명해 보이는 것이다. ICO에 관한 오랜 고민 끝에 그것만큼 건강한 프로젝트 진행 방식이 또 있을까 하는 결론에 이르렀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자기 돈을 투자해야 우리 제품을 열심히 홍보해주기에 ICO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그럴수도 있지만 좋은 가치를 시장에 제공하지 못한 제작자의 부족함을 방증하는 핑계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 프로젝트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별도로 신청 받아 토큰을 무상으로 나눠주고 그들을 중심으로 국가별 온-오프라인 커뮤니티를 조직해 활동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사토시가 ICO해서 지금의 비트코인이 됐나?

돈이 불필요하게 많으면 반드시 Spoil된다. (영어 표현은 지양하지만 딱맞는 한글 표현을 찾을 수가 없다.) 아끼면 1억이면 될걸 10억을 쓰게 된다. 그러다보면 본질보다 외형, 실제 가치보다 시장에서 바라보는 이미지에 더 많은 신경을 쓰게 된다.

따라서 ICO를 통해 돈을 왕창 ‘땡기고’ 시작하는 것의 문제는 단순히 윤리적인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실제로 약속한 가치를 시장에 제공할 수 있느냐의 문제와 깊게 연관된다. 역설적으로 10억을 모아주면 실제 약속한걸 제공할 수 있었던 팀이 100억을 모아준 까닭에 싸우고 와해되고 엉뚱한 제품을 내놓을 수 있다는 말이다.

팀이 스스로 냉정하게 돈이 필요해서 프로젝트를 만든건지, 정말 그 프로젝트를 안하면 죽을거 같아서 어쩔 수 없이 개발비가 필요한건지 되물을 필요가 있다. 후자라면 그 프로젝트 할 정도의 돈은 다른 조달방식으로도 조달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러지 못한다면 그 팀은 필연적으로 아직 준비가 덜된 것일테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ICO 해서 지금의 비트코인이 된 것인지, 진짜 뭘 할 수 있어서 그걸 하겠다는 것인지, 정말 멋있는 팀은 이런 때에 어떤 액션을 취하는 팀인지 깊이 생각해 보면 좋겠다.


블록체인을 위한 블록체인 프로젝트들

ICO가 걷잡을 수 없이 많아지면서 굳이 블록체인을 쓸 필요가 없는데 블록체인을 쓰겠다는 프로젝트가 너무나도 많아졌다. 나는 그것들을 ‘블록체인을 위한 블록체인 프로젝트’라고 부른다. 꿈이 말은 되는데 굳이 블록체인을 안 써도 이미 인터넷에서 잘 돌아가고 있는 것들이다. 물론 그들은 ‘잘 안돌아간다’고 주장하지만 조금만 백서를 보고 생각해보면 허점 투성이다.

최근에 만난 한 VC가 내게 이런 질문을 했다. “농산물 유통 과정을 블록체인에 올려 투명하게 관리하겠다는 프로젝트가 있던데 실제 당근 1kg이 창고에서 중간에 다른 당근으로 바꿔치기 되었는지 정확히 알 길이 있나요?” 나는 대답했다. “사실 없습니다.”

뭐 당근을 싸는 망에 붙은 스티커 바코드로 결국 일련번호를 체인에 올려 추적하겠지만 블록체인과 스마트 계약은 원초적으로 오프라인에서의 활동을 감사하고 추적할 재간이 없다. 해당 VC가 본 프로젝트는 아마도 Ambrosus일 것이다. 최근에 ICO를 마쳤고 이더리움의 Co-founder였던 Gavin Wood가 Advisor를 맡아 유명세를 떨친 프로젝트다. (당초 홈페이지에는 Gavin Wood 개인이 Advisor로 올라가 있었으나 부담을 느꼈는지 지금은 소속 회사인 Parity로 올라가 있다.)


블록체인은 아직 현실의 혼란을 반영하지 못한다

이 프로젝트는 농수산물 외에도 의약품 유통 과정 역시 중앙화된 회사가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탈중앙화된 블록체인 위에 올려 투명하게 누구나 추적하고 확인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비전을 밝히고 있다. 비전은 너무나 멋있고 공감 가능하다.

그러나 실제 의약품을 실은 트럭이 중간에서 모조품으로 바꿔치기해 바코드 스티커만 옮겨 붙이거나 가짜로 체인에 기록만 올라갈 가능성은 얼마든지 배제 못한다.

따라서 비전은 아주 멋있지만 실제 이루어지기까지 어마어마한 논리적, 현실적 모순과 허점들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Ambrosus는 ICO를 통해 당당히 400억 가까운 돈을 모았다.)

Ambrosus는 그나마 매우 양호한 편이다. 가장 많은 블로그 글과 백서를 통해 리서치를 가장 열심히 공개하고 있는 프로젝트 중 하나인데 그런 프로젝트도 아직 현실 세계와의 연결에 뚜렷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누구나 우리가 미래라고 말한다

블록체인에는 아직 허점이 너무나 많고 100% 이해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ICO로 사람들을 속이기 너무 쉽다. 물론 투자해서 손해보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지만 기왕 투자할거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스스로 보는 안목을 기르기를 바란다.

단순히 블록체인이 요즘 핫하니까 블록체인을 억지로 끼워넣은 문제인지, 진짜 블록체인이 아니면 풀수 없는 문제인지, 블록체인 문제라도 그것이 지금 가능한건지 몇년 뒤에 가능한건지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프로젝트는 스스로 미래에 꼭 필요하다고, 정말 좋다고 외친다. 하지만 실제 반드시 블록체인이라야 풀 수 있는 문제는 ICO하는 업체들의 채 5%도 안되는 것 같다.

만약 정말 좋은 문제라면 왜 ICO 마케팅 대행사를 쓰고(일부 대행사는 다단계와 연결된다), 비싼 호텔을 빌려 전국 설명회를 열어야 할까? 모르는 사람에게 어려운 이야기를 하며 이게 매우 중요하고 미래니 혁명이니 하면 그런줄 안다.


블록체인이 아니면 풀 수 없는 문제

진짜 그들이 풀고자 하는 블록체인 문제는 전세계 블록체인 산업 발전을 위해 공통적으로 의미있는 문제인가? 아니면 (암호화폐의 시총이 아닌) 실제 사용량을 기준으로 글로벌 Top 10에 들 수 있을만큼 전 지구적으로 블록체인을 통해 반드시 해결되어야 하는 사회 문제인가?

(Ambrosus는 전 지구적 문제 중 하나로 예상되는 농수산물/의약품의 유통 문제를 풀려고 나온 프로젝트임에는 분명하다. 아직 아무도 풀지 못한 모순점이 있다는 것뿐이지 이 시장 자체가 워낙 초기이고 이제 시작이니 꾸준히 지켜보도록 하자.)

이 프로젝트가 블록체인을 위한 블록체인 프로젝트인지 판단하는 기준은 딱 하나인거 같다. ‘이거 원래도 되는거 아니었어?’, ‘블록체인 아니어도 돌아가던 그거 아니야?’ 싶으면 그건 필시 블록체인을 위한 블록체인 문제다. 블록체인 하고 싶어 억지로 블록체인을 끼워 넣고 왜 그게 필요한지 논리를 만든 것이다.


블록체인은 어디쯤 와있는가?

이 분야에서 일하기로 결심한 지난 5월 이후 하루 19시간씩 일하고 블록체인 공부하면서 이 분야의 굉장히 많은 사람을 만나며 의견을 들었다. 그리고 블록체인을 실제 회사에서 오래 연구하고 준비한 사람일수록 “아직 산업에서의 사용은 터무니없이 이르다”는 공통된 의견을 주었다.

개인이나 학생들이 바라보는 블록체인은 다를지 몰라도 실제 산업 현장에서 쓰려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아직 기술적인 완성도가 너무 미비하더라는 것이다. 아직은 클라우드가 벡엔드 구성 측면에서 훨씬 더 비용 효율적이라는 의견을 블록체인을 적어도 2년 이상 연구해 온 여러 은행들이 공통적으로 말했다.

이는 결코 은행이 보수적이라서가 아니었다. 은행의 블록체인 연구조직들만큼 우리나라에서 블록체인을 소스 단에서부터 뜯어 보고 산업적 적용을 오래 검토해 온 조직은 찾기 어렵다. 내가 만난 여러 시중 은행의 블록체인 분야 담당자들의 기술과 응용 비즈니스에 관한 이해도는 한국의 어느 누구보다도 뛰어났다.


블록체인 도입을 검토할 때 생기는 문제들

그들은 프라이빗 블록체인 역시 어차피 거래 검증을 회사가 지정한 노드(컴퓨터)끼리 하므로 전국 전산실에 주기적으로 백업하던 때와 비교해 성능과 비용, 보안 면에서 굳이 바꿀만큼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결론을 이미 내린지 오래였다. 블록체인을 공부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공부를 충분히 해본 결과 아직은 전환의 효용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스마트 계약 역시 실제 은행권이나 기업 현장에서 쓰려면 Oracle 문제(만약 내일 아침 9시 서울의 강수량이 10mm 이상일 때 A가 B에게 만원을 지급하는 보험을 스마트 계약으로 만든다고 할 때 강수량 정보는 현실 세계의 DB 운영사로부터 받아오거나 사와야 한다. 이때 탈중앙화된 계약이 중앙화된 회사나 DB를 참조하게 되므로 그 과정에서 얼마든지 사람의 개입으로 인해 데이터가 위변조되거나 조작될 가능성이 있다. 이것이 블록체인계가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데이터 무결성 문제로 이를 이 분야에서 Oracle 문제라고 한다.)로 인해 데이터 무결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또한 산업 현장에서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이용할 경우 세무와 회계 처리는 어떻게 할지 아직 전혀 정해진 바 없다. (이런 프로젝트가 준비중에 있기는 하나 각국 정부의 인정을 받아 산업에서 쓸 때까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사고가 났을 때 중간에 매개자가 없기 때문에 책임 소재를 어떻게 가를지도 모호하다.

탈중앙화된 인프라 운영을 선택할 경우 데이터는 어디에 둘 것인가 하는 고민도 있다. (이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IPFS 같은 데이터 분산 저장 프로토콜이나 이더리움 기반의 데이터 스토리지 스택인 Swarm 같은 서비스가 개발중이나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이처럼 기초적인 문제들도 아직 해결이 안돼 실제 산업 현장에서 블록체인을 활발하게 적용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인증이 상용화의 첫 테이프를 끊다

그러니 현재 가장 활발한 산업에서의 블록체인 적용 사례는 인증에 머물고 있다. 금융권은 블록체인이 위협이라고 하니 하긴 해야겠는데 위와 같은 우려들로 인해 실제 거래 원장에 쓰긴 어렵고 거래와 크게 관련이 없는 회원 DB 정도에 실험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사실 이 역시 기존 인증이 블록체인 인증을 바뀐다고 하여 사용자 효용이 얼마나 올라가는지, 그렇다고 블록체인이 아니면 그 효용을 절대 못주는 것이었는지, 왜 그게 꼭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도입의 주체도 사실 뚜렷한 근거를 대지 못한다. 그저 아직은 ‘우리도 블록체인으로 뭔가를 하고 있어’ 정도의 PR 소재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는 그 시대가 오겠지만 아직은 비용 비효율적이다. 프라이빗 체인은 클라우드와 심지어 중앙화된 구성보다도 인프라로서 특별히 노력해 바꿀만큼 아직 설득력이 떨어진다. 보안 강화를 말하지만 위 은행 전산실 사례처럼 퍼블릭 체인이 아닌 한 크게 와닿지는 않는다. (상대적으로 퍼블릭 체인보다) 성능이 빠르다고 이야기하지만 아직 인터넷 인프라가 훨씬 더 빠르다.


아직은 모두 1부 능선에

퍼블릭 체인도 이제 시작이다. 프로그래머블 퍼블릭 체인의 진수격인 이더리움도 겨우 2015년 7월에 알파 버전이 처음 출시됐다. 아직 만 2년 3개월 정도밖에 안됐고 로드맵상 개발 단계의 중반부(총 네 단계의 로드맵 중 세 번째인 Metropolis 단계가 다시 1, 2단계로 구분되어 현재 1단계를 건너옴)에 와있다.

프로토콜이 아직 개발중에 있으니 그 위에 Dapp을 개발해 올리는 것은 여전히 실험적이다. (현재 Dapp을 조금만 복잡하게 설계해 이더리움 메인넷에 올리면 수수료가 높아져 Dapp 사용성이 저하된다.)

개발 진척도 당초 일정보다 조금씩(원래 Metropolis 적용 계획은 6월이었다) 늦어지고 있고 프로토콜이 완성된다 해도 좋은 Dapp이 그 위에 많이 올라와야 한다. 또한 올라온다 해도 인터넷 사용자들이 기다렸다 줄지어 건너오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앞으로 블록체인 대중화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일의 기회와 오늘의 한계

그런 온갖 현실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블록체인이 미래라는 데에 필자는 일말의 흔들림도 없다. 가깝게는 인터넷 인프라의 미래이자, 조금 후엔 금융의 미래이고, 더 먼 미래엔 세상의 미래라고 본다. 블록체인 기술은 중개자 없이 신뢰 거래를 할 수 있는 초석을 깔았다.

이는 ‘중개회사가 대체 왜 필요한가?’, ‘중개자는 무슨 일을 하길래 그토록 많은 수수료를 떼어가는가?’와 같은 근본적 질문을 우리가 세상에 던질 수 있게 해주었다. 지금껏 부동산 중개인이든 차량 딜러든 은행이든 증권사든 서로 경쟁할뿐, ‘여러분이 하는 일이 반드시 필요한가요?’와 같은 근본적 질문은 고객들로부터 받아본 일이 없다.

하지만 언젠가 블록체인 기술의 투명성(쉽게 말해 블록에 기록된 모든 거래 기록을 누구나 열어볼 수 있음)과 위변조의 어려움(업계에서는 이를 비가역성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중개자 없이도 A와 B의 신뢰 거래를 가능하게 하는 스마트 계약이 완성 단계에 이르게 되면(아직은 아니다) 업체들간의 수수료 경쟁은 무의미해지고 곳곳에서 수수료가 아예 사라지는 일도 생길 수 있다.


블록체인이 바꿀 수 있는 것들

또한 블록체인 기술을 응용한 암호화폐는 아직 금융이 발달하지 않아 은행 이용이 어려운 30억명 이상의 개도국, 후진국 국민들에게 금융의 혜택을 제공할 것이다. 전세계의 가치 이동이 아주 쉽고 빠르게 이루어질 것이다.

1973년 출범해 현재까지 무려 40년간 느리고 비싸도 그대로 쓰고 있는 국제 송금 네트워크인 SWIFT망은 반드시 어느 시점에 암호화폐를 이용한 더 빠르고 저렴한 네트워크로 대체될 것이다.

블록체인은 아무리 클라우드를 도입해 IDC를 이용할 때보다 저렴해졌다지만 여전히 적잖은 비용을 내고 있는 인터넷 기업이나 어느 순간 웹/앱 서비스를 위해 선택할 수 있는 훨씬 저렴한(사실상 제로 비용에 수렴하는) 서비스 인프라가 될 것이다.

앱이나 파일 딜리버리에 자발적으로 컴퓨팅 파워를 제공한 노드(컴퓨터)들에게 토큰 보상을 주도록 설계해 개발자는 단 100원의 비용 없이도 막대한 양의 파일과 트래픽을 처리하는 서비스를 개발할 날도 올 것이다.


어쩌면 가장 오래 존재할 유니버셜 로그인

인증 또한 블록체인에 기반해 한 두 업체 서버에 내 개인정보가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블록체인에 암호화되어 들어 있고 나는 이용하려는 상품과 서비스에 내 개인정보에 대한 1회용 접근 권한(Access token)만 제공할 수 있다.

그러면 지금껏 인터넷이 그랬듯 모든 개별 서비스 서버에 내 개인정보를 제공할 필요가 없다. 사이트 가입을 수십 수백번 따로 할 필요도 없다. 마치 지금 페이스북이나 카카오 로그인을 다른 수많은 앱들이 사용하듯이,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는 블록체인 인증이 그런 유니버셜 로그인 환경을 구현할 것이다.

먼훗날 언젠가 페이스북이 망하면 페이스북 로그인을 사용한 수십만개의 앱들은 접속이 어려워진다. 그러나 블록체인 기반의 인증은 그렇지 않다. 인증 서버가 어느 한 업체에 의해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수만, 수십만대의 노드(컴퓨터)들에 동일한 로그인 정보가 (암호화된 채로) 똑같이 한 세트씩 복사되어 있으므로 사실상 영원히 동작하는 통합 인증을 구현할 수 있다. (이는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실현될 일이다. 이미 Civic 같은 프로젝트가 열심히 뛰고 있다.)


블록체인의 혜택은 현실 세계 연결을 줄일수록 커질 것

또한 익명성을 강화한 일부 체인을 제외하면 누구나 거래 내역을 투명하게 살펴볼 수 있다는 점과 이미 검증이 끝난 과거 거래 내역은 훗날 절대 수정할 수 없다는 블록체인의 비가역적(돌이킬 수 없다는 말이다.) 특징은 향후 유통이나 해운, 항만, 물류, 수송 분야를 보다 투명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Ambrosus 사례처럼 유통 과정에 현실 세계가 끼면 블록체인을 쓰더라도 여전히 빼돌리기와 위변조가 가능하다. 따라서 시작은 주로 디지털 컨텐츠의 유통이나 암호화폐를 이용한 지불 과정에서 시작해 블록체인은 아주 천천히 점진적으로 유통에 기여할 것이다.

마찬가지 예로 블록체인이 기부를 보다 투명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기부자와 수혜자가 양쪽에서 법정화폐로 돈을 주고 받으면 설사 중간에서 암호화폐로 바뀌어 유통된다 하더라도 양쪽 말단의 유통 과정에서 돈이 샐 허점은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기부자도 암호화폐로 내고 수혜자도 암호화폐로 받으면 모든 기부의 전달 과정이 처음부터 끝까지 블록체인과 스마트 계약으로 이루어지도록 설계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경우는 기부금이 엉뚱한 곳으로 중간에 새는 일을 방지할 수 있다. 이렇듯 블록체인이 유통 과정을 개선할 가능성은 중간에 법화로 바뀌거나 현실 세계와 연결되는 구간의 비율과 정확히 반비례할 것이다.

선거도 마찬가지다. 블록체인은 후진국의 부정선거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많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중요 개별 사안에 대해 주민들의 의사를 물어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는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다. 다만 이 역시 만약 블록체인과 동시에 오프라인에서도 종이로 투표할 수 있는 등 블록체인을 선거의 유일한 매개로 활용하지 않는 한 여전히 결과의 신뢰도를 의심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금보다 나은.

익명 거래에 있어서도 블록체인은 더할 나위 없는 가치를 선사할 것이다. 거래 내역을 섞어 추적을 어렵게 만드는 Dash와 같은 프로토콜을 비롯해 영지식 증명(zkSNARKs)을 이용해 아예 더 고도화된 익명성을 제공하는 Zcash 같은 프로토콜까지 점점 추적이 어려운 거래를 가능케 하는 블록체인들이 등장할 것이다.

이는 주로 현금으로 거래하는 지하경제를 흡수할 것이다. 암호화폐는 현금보다 보관이 쉽다. 막대한 5만원권을 뭍어 놓을 마늘밭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해외로 돈을 옮기기 위해 금괴를 삼킬 필요도 없다. 보관과 이동의 용이성 하나만으로도 지하경제가 암호화폐를 제대로 이해나는 순간 엄청난 사용 수요가 생길 것이라고 장담한다.


아직은 ‘이게 신기하게 구현은 된다’ 정도의 수준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록체인은 아직 인터넷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성능과 전혀 인터넷 사용자의 눈높이에 맞는 사용성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딱 ‘이게 돌아가긴 한다’ 정도의 수준이다. 인터넷 수준의 사용성을 기대하면 울고 간다.)

더불어 탈중앙을 지향하지만 이미 채굴풀, 거래소, 지갑, PG 등 대부분의 관련 기능이 모두 특정 사기업에 의해 운영되며 대단히 중앙화되어 있다. 또한 기업이 운영하는 중앙화된 서비스일수록 사용성이 훨씬 더 올라가는 아이러니도 존재한다.

따라서 블록체인이 대중화되려면 탈중앙의 가치는 지켜질 수 없다. 기업들이 독점욕과 탐욕을 가지고 이 시장에 점점 더 많이 뛰어들수록 고객을 위한 쉬운 사용성, 더 편리한 서비스들이 개발될 것이다. 개인에게는 기업을 뛰어넘을 정도의 탐욕과 규모의 경제가 존재하기 어렵기에 결국 블록체인은 극도로 자본주의적인 성격을 띄며 매우 혼란스럽게 발전해 갈 것이다.

그밖에도 앞서 언급한, 현실 세계 데이터를 무결성을 지키며 받아올 수 있는가 하는 Oracle 문제, 분산형 서비스는 파일을 어디에 두고 다시 불러올 것이냐 하는 분산형 파일 스택의 문제, 높고 빈번하게 발생하는 수수료, Dapp을 어렵게 설계할 수 없는 프로토콜의 수준, 아직 프로토콜 경쟁도 시작이라 Dapp 개발에 어느 프로토콜을 쓸지 결정하기 어려운 점, 빈번한 블록체인 주변 생태계 서비스의 해킹, 각국의 정책 이슈 등 블록체인의 꿈을 이루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은 잔뜩 존재한다.

당장 가장 앞서 있는 프로토콜인 이더리움만 보더라도 내년에 POS 전환과 샤딩 등 너무 큰 변화가 기다리고 있어 여전히 ‘안정화된’ 프로토콜이라 말할 수 없다. 개발이 여전히 극 초기 단계에서 진행 중인 현실 위에 우리가 바라는 아름다운 내일의 기회를 만나는 날은 결코 1, 2년 뒤는 아닐 것이라고 본다.


첫번째 메이저 서비스가 나오는데 적어도 3년은 걸릴 것

개인적으로는 대중화된 블록체인 기반 컨슈머 서비스(한국의 인터넷에서 최초로 대중화된 컨슈머 서비스로 일컬어지는 ‘한메일’ 수준의 인지도를 갖는 서비스)가 나오는데 5년은 걸릴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같은 회사가 부단히 노력할 점을 감안하면 3년쯤 지나면서부터 조금씩 대중화의 가능성을 비추는 서비스는 등장할 것이다.

그럼에도 기술과 보안, 사용성이 어느정도 완성 단계에 이르러 상용(Commercial) 서비스를 설계하는 개발자가 자기 제품 인프라에 블록체인을 사용할지 본격 고민할 정도로 블록체인이 오늘날의 클라우드처럼 안정화, 보편화되기까지는 최소 5년 이상 걸릴거라고 본다.

그리고 바로 그 때가 블록체인이 Geek과 Minority를 넘어 진정한 Majority 시대로 진입하는 출발점이라 본다. 요즘은 거의 아무도 서버를 직접 사서 IDC에 놓지 않는다. AWS(Amazon Web Service)를 써서 필요할 때 필요한만큼 탄력적으로 빌려서 쓴다. 바야흐로 인프라의 서비스화(Infra as a service) 시대가 된 것이다.

아마 5년쯤 지나면 블록체인의 인프라화(Blockchain as a infra), 블록체인의 서비스화(Blockchain as a service) 시대도 본격 꽃을 피우고 개발자가 AWS, Google Cloud 등 클라우드 대신에 선택 가능한 대안 인프라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전까지 블록체인은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실험적이거나 ‘우리도 블록체인 할줄 안다’하는 과시용이거나 일부 Geek들만 쓰는 ‘그들만의 리그’에 머물러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 나는 왜 블록체인을 택했나?

그럼 나는 왜 블록체인을 택했나? 그 시대가 오늘 내일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올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조금씩 빨랐다. 인터넷 사업도 2000년도에 시작해 인프라가 되는 도메인 등록 대행업을 했지만 너무 빨리 시작한 탓에 그 뒤에 컨텐츠와 서비스가 꽃필 땐 빛을 못봤다. 스마트폰도 열리자마자 들어가 초기 시장이 요구하는 다양한 유틸리티를 만들었지만 결국 꽃이 핀건 컨텐츠와 서비스였다.

올 들어 블록체인에 엄청난 흥미를 가지고 공부하며 대중화되기엔 다소 이르다는걸 깨달았다. 두 번의 빅 웨이브에 큰 파도에 너무 빨리 올라타는 바람에 오히려 멀리 못간 나로서는 블록체인이란 파도도 아직 빠르다는 점을 공부하면 할수록 느끼게 되었다. 아직 산업에 전방위적으로 도입하기엔 기술적으로 부족한게 너무 많고 필요성에 대한 논리적 모순도 곳곳에 있었다.

그래서 이 일을 업으로 할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좀 빨라도 할 것인가, 취미로 공부하다 때를 볼 것인가? 나는 전자를 택했다. 하지만 과거 두번의 파도와 다른 것은 이제 조금 빠르게 올라탄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시작한다는 점이다. 그 인식은 큰 차이를 만들어 낼 것이다.


좋은 제작자가 없는 넥스트 인터넷

왜 좀 빨라도 뛰어들었는가? 이 일이 너무 재미있다. 95년도에 인터넷을 처음 만나고 숨이 막히도록 재미있었다. 지금 22여년만에 그만큼 하루하루가 너무 재미있다. 이렇게 재미있는 일이 앞으로 또 있을까 싶다. 인터넷의 미래가 될 것이고 금융을 무너뜨리고 세상의 토대를 바꿀지도 모르는 무언가가 지금 우리 앞에 던져져 있다. 웹서비스 제작자로 평생을 살아온 사람에게 이토록 가슴 뛰는 기회가 또 있을까?

지난 6월 말 일주일을 작업해 간단한 블록체인 관련 웹서비스를 개발해 띄웠다. 그랬더니 전세계 블록체인계에서 비탈릭 뷰테린(이더리움의 개발자)과 투톱으로 불리는 댄 라리머가 직접 메신저로 연락을 해왔다. 고작 일주일 작업한 페이지를 보고 중국의 블록체인 거물은 내게 “지분은 니 맘대로 줘도 되고 난 단지 니 팀의 미래를 함께하고 싶어”하며 12만불을 바로 다음날 계약서 한장 없이 보내왔다.

이런 일들을 겪으며 ‘아, 이곳(블록체인 업계)이 정말 쓸만한 제작자가 없는 모양이구나. 인터넷과 모바일에서 솜노트와 매직데이처럼 적게는 수백만에서 위젯처럼 많게는 1,400만이 넘는 사용자를 가진 제품을 만들어 본 우리의 제작 경험으로 이 분야에 뛰어들면 이 업계의 서비스 수준을 아예 다음 차원으로 진입시킬 수 있겠다’하는 확신이 들었다. 그것이 내가 블록체인을 택하고 여기에 다시 제작자로서 혼을 담아보기로 결심한 이유다.


탈중앙화된 세상의 꿈

블록체인이 대중화된다고 하여 당장 나라가 사라지거나 세상이 모두 탈중앙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검열 가능하던 것이 불가능해지고 나라의 비호를 받던 금융의 위상은 일부 흔들릴 것이다. 특히 라이센스가 갖는 배타적 권리는 크게 훼손될 것이다.

여러 거래에서 중재자를 건너뛰어 직거래하게 될 것이고 그 이익은 거래 쌍방이 고루 나누게 될 것이다. 인터넷의 등장은 기존 전통 기업들의 비즈니스를 도와주었지만 블록체인은 기존 전통 기업들의 존재 필요성을 다시 물을 것이다. 느긋하게 비즈니스를 중재하며 수십년을 먹고 산 회사들 중 일부는 문을 닫게 될 것이다.

그로 인해 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잃겠지만 소비자로서는 더 적은 비용으로 동일 가치를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분명 지금보다는 훨씬 더 탈중앙화된 세상이 될 것이다. 정부의 정보 검열이나 네트워크 통제가 어려워지고 의료정보 등 중요 개인정보는 타인에게 맡기지 않고 스스로 통제하게 될 것이다.

누구나 돈 없이도 유튜브 같은 사이트를 만들 수 있고 적은 비용으로 막대한 연산의 딥러닝을 돌릴 수도 있게 될 것이다. 특정 기업과 정부에 집중된 돈과 힘이 일부 분산될 것이다. 블록체인은 빈익빈부익부가 고착화된 전세계의 소득불균형 구조를 흔들어 볼 어쩌면 마지막 희망이자 인류 전체의 기회가 될 것이다.


기업에겐 인터넷과 모바일보다 더 심각한 기술

20여년 전 인터넷의 등장은 과거 전통 기업의 영업을 도와주었다. 일부 기업을 해체시키기도 했지만 대체로 전통 기업들은 웹사이트를 만들고 온라인 커머스를 도입해 오히려 고객 접점을 늘렸다. 오프라인 매장이나 지점을 온라인으로 훌륭히 대체한 전통 기업들은 오히려 큰 기회를 맞았다.

10년 전 모바일의 등장도 인터넷 때와 같이 전통 기업들은 모바일 앱을 만들고 모바일 커머스를 통해 물건을 팔아 적극적으로 대응해 살아 남았다. 어떤 기업들은 모바일로 기회를 잡아 승승장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블록체인은 조금 다를 것이다. 블록체인은 고객 접점을 늘려주는 기술이라기보다 직거래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다. 그 과정은 심지어 P2P이거나 익명 거래도 가능해서 검열이나 개입도 어려울 것이다.

그러기에 일부 기업들에게는 인터넷이나 모바일보다도 더 사업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직접적일 것이다. 인터넷도 정보 비대칭을 줄이고 직거래를 가능케 했지만 블록체인은 인터넷 때보다 더할 것이다.


그럼에도 조심해야 하는 것, 환상

블록체인은 개념이 다소 어렵지만 꿈꾸는 바는 원대해 사람들을 호도하기 참 쉽다. 탈중앙화니 자동화된 조직(DAO, 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이니 하면 ‘잘 모르지만 왠지 내가 빠지면 안될거 같아’와 같은 헛된 생각에 암호화폐나 ICO에 돈부터 넣고 공부를 시작하기도 한다. 헛된 기대를 품고 블록체인 회사로 이직도 하지만 실제 들어와 보면 꿈과 현실은 차이가 크다.

앞서 말한대로 블록체인 기술 자체가 아직 개발중이고 오래 지적된 문제에도 아직 답을 못주고 있는 경우가 많다. 또한 기본 철학이 ‘탈중앙’이기 때문에 모든 문제는 합의에 이르기까지 중앙화된 업계보다 자주 더 오래 걸린다.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 맘대로 서로 쪼개져(이를 Hard fork라고 한다) 나가기도 한다.

그러니 이 기술과 산업에 당장 헛된 기대는 금물이다. 시간은 아주 오래 걸릴 것이고 그 정도 긴 호흡에 대한 마음의 준비 없이 이 분야에 뛰어들면 오로지 실망만이 함께할 것이다. 하지만 이 분야의 현실에 적응하고 천천히 더 나은 내일을 만드는 주인공이 되겠다는 사람들에게는 이만큼 재미있고 미래가 찬란한 분야는 없다고 자신할 수 있다.


체인파트너스의 역할과 철학

우리 체인파트너스는 애초에 상업(Commercial)용 인터넷 서비스를 이기는 최초의 탈중앙화된 인터넷 서비스를 선보이기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깊은 연구 결과 아직은 그 시대가 오지 않았다.

그런 꿈은 ICO를 통한 자금 조달에는 성공할지 몰라도 우리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명확한 블록체인 문제(즉, 블록체인을 위한 블록체인 문제가 아닌)와 정교한 해결책 없이 막대한 자금부터 모으는 행위는 ‘잘 모르는 개인들에게 희망을 팔고 코인을 먹이는’ 사기와 다름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는 2018년에 사람들이 바라고 이용할 수 있는 수준의 서비스를 우리가 감당 가능한 범위와 행태 안에서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너무 오버해서 제품을 만들어도 어차피 못쓰고 투자자로 가득한 시장에서 혼자 사용자 시장을 열겠다며 사용자를 가르치려 들어도 안된다. 너무 넓은 범위의 사업을 벌여도 날이 무뎌지고, 수백억의 개인 돈을 감당하지도 못하면서 받을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공모(ICO) 없는 토큰 발행을 비롯해 생태계의 건강한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다른 사례를 우리가 만들 수는 없을까 연구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우리가 감당 가능한 방식을 찾을 것이다. 우리가 무슨 잘나서가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일을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추구하기로 마음 먹었기 때문이다.

업계에 똑같은 일을 하는 회사는 많고 앞으로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체인파트너스가 뚜렷한 철학이 있는 회사가 되기를 바란다. 더 나은 제품을 통한 경쟁이야 회사의 숙명이다. 돈이 될만한 곳에 당연히 여러 회사가 같은 일을 할 수 있다. 다만 철학이 있는 회사는 그 안에서도 분명 빛이 날 것이다.


내가 ICO를 두려워하게 된 까닭

‘올 연말까지 ICO를 해야한다’라던가, ‘물 들어온 김에 노 젓는다’거나, ‘눈먼 돈 안 먹으면 바보’라느니(다 내가 실제로 ICO를 준비하는 사람들로부터 들은 말들이다) 하는 우려스런 이야기들이 있는 상황에서는 적어도 더 긴 안목과 호흡을 지키며 흔들리지 말고 우리 길을 설계해 가는 것이 반드시 더 오래 살아 남는다는 것을 나는 온몸으로 배워왔기 때문이다.

기회를 쫓는 자에게 한탕은 있을지언정 장기적 비전이나 이 기술의 발전에 단계적으로 기여하겠다는 진지한 계획은 없다. 우리는 최소 20년 이상 사업을 할 생각 없으면 이 분야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나는 첫 회사를 10년간 했다. 군대 문제로 부득이 정리했지만 군대 가서 다음 회사는 ‘100년 가게 하겠다’는 꿈을 꾸었다. 그런 진지함 없이는 새 일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길고 길 여정에 있어 나는 지금의 ICO ‘기회’라 불리는 것이 결코 기회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위험’이자 ‘뇌관’으로 보인다.

지난 6개월 간, ICO 하는 수많은 업체들과 팀의 자문 요청을 받았다. 거의 대부분의 연락을 받지 않거나 회신하지 않았다. (사실 이런 이유가 있었다는 점을 이 글을 빌어 양해 말씀드린다) 왜 ICO 해야 하는지 설명하기 어려운 문제가 대부분이었고 그렇게 자신있으면 왜 VC 투자로 가지는 않는지 묻고 싶은 문제가 하도 많았다.

심지어 무슨 프로젝트를 할지 보다 어떤 유명인과 하기로 했으니 도와달라는 팀도 있었고, 프로토콜과 Dapp의 차이를 이해하지도 못하는 팀이 더 나은 새 프로토콜을 만들겠다 하는 경우도 있었다. 피해도 어쩌다 만나게 되면 ‘ICO를 통해 돈이 왕창 들어오면 비로소 기술도 생기고 사업도 잘 되지 않을까요?’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어쩌면 그런 발행 주체들에 대한 실망과 ICO 발행 주체의 일부 지인과 펀드들이 ICO를 터무니 없이 싼 가격에 먼저 사고 이를 다단계 형태로 먹이는 과정을 반복적으로 목격하게 된 것이 내가 ICO를 ‘뇌관’으로 바라보게 된 주요 원인이지 않았나 한다.


눈먼 돈은 생각보다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돈을 왕창 받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1999~2001년의 닷컴 버블은 회사 이름에 ‘인터넷’만 들어가면 100억씩 우습게 투자 받았지만 테헤란로의 인테리어 업자 좋은 일만 시켰다.

살아남은 회사는 극히 일부고 나머지는 멋지게 돈을 뿌리고 사라졌다. 좋은 사람을 높은 연봉을 주고 뽑았으되 그 꿈 자체가 애초에 그리 똑똑한 것이 아니었기에 ‘이뤄도 망하고 못이뤄도 망하는’ 꿈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중요한건 이 팀이 꾸는 꿈이 ‘현실적으로 타당한 꿈인가’다. 꿈이 스마트하지 않을 때 곳간에 쌓인 막대한 돈은 그저 엄한 길로 가는 속도를 앞당길 뿐이다.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ICO 할 사람이 안할 가능성은 적다고 생각하지만 열 중 하나라도 ICO 없는 블록체인 프로젝트를 그려 보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회사들에게 체인파트너스가 좋은 친구가 되고자 한다.

우리는 당초 좋은 ICO 프로젝트를 발굴해 도우려 했지만 지금은 거꾸로 ICO를 안하려는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에게 심적, 물적인 우군이 되고 싶다. 그런 역할을 하는 집도 있어야 업계의 건강한 발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더불어 ICO에 공감하지 못하는 개인들 역시 체인파트너스는 함께 일할 수 있는 보다 안전한 터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화려함이나 폭발성 있는 ICO라는 제도에 적극적으로 올라타지 않으니 그 체감 속도는 다소 떨어질지 몰라도 상황이 반전되어 많은 로켓이 다시 전력으로 추락할 때 상대적으로 더 오래 살아남을 준비가 우리에겐 있을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2018년의 블록체인 = 1993년의 인터넷

나는 현재 블록체인 기술의 현실이 인터넷으로 치면 아직 넷스케이프 출시(1994) 전이라고 본다. 넷스케이프 전에도 브라우저는 있었지만 사용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처음으로 인터넷을 전세계에 대중화시킨 주역은 넷스케이프였다.

아직 블록체인은 프로토콜은 물론 Dapp, 전자지갑 등 관련된 어느 서비스도 일반인이 일상적으로 쓸만큼 쉬운 사용성을 가진 서비스는 없다. 송금도 난수 주소로 해야 하고 쉽게 만들겠다고 나온 ENS 같은 전자지갑 치환 주소 역시 일반인의 인식 수준으로는 어렵기 마찬가지다.

따라서 아직 블록체인은 일부 투자자와 얼리 어답터만의 관심을 받으며 인터넷 초기에 그랬듯 ‘돌아는 간다’ 수준에 와있다. 기업이나 산업에서 자기 제품이나 서비스에 적용 검토를 해봐도 아직은 인프라나 사용자 저변이 없어 여전히 설득력이 떨어진다.

가능함에서 쓸만함으로

가능함의 단계가 지나고 나면 점차 사용성의 단계가 올 것이다. 인터넷보다 편해야 하고 인터넷 사용자가 기존에 익숙하던 방식과 이해로 아무 무리 없이 쓸 수 있어야 한다. 뭘 새로 배우거나 거래 체결에 단 몇 초라도 기다려야 한다면 대중화될 수 없다.

앞으로 각 블록체인 컴포넌트가 진짜로 쓸만해질 것으로 기대되는 시점의 타임라인은 다음과 같다. (등장하는 시점이 아니다. 속도가 지금의 인터넷 수준으로 빨라지고 사용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되는 시점을 의미한다. 그리고 나는 서비스 제작자이지 블록체인 연구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때가 ‘서비스’로의 진짜 시작이지 그 전에는 실험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블록체인 비즈니스의 20년 비전

지난 20년간 웹서비스 한 분야에서 일하며 인터넷과 모바일 두 큰 사이클을 경험한 주관적 관점과 블록체인 비즈니스를 계속 연구하고 있는 사장으로서 이 분야에 대한 일반의 인식과 기술 개발 현황을 미루어 볼 때 앞으로 다음과 같은 타임라인으로 이 분야가 발전해 가리라 전망한다.

1단계(2016년-2022년) – 암호화폐 단계

이 단계에서는 블록체인 기술보다 암호화폐 자체가 투기적인 속성 때문에 인기를 끄는 단계다. 작전과 폭등-폭락 등 아주 혼탁한 양상으로 시작해 점차 제도화, 안정화되며 변동성이 떨어지고 플레이어가 정리되는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다. 블록체인쪽에서는 기술 자체보다 암호화폐를 이용한 비즈니스를 하는 회사가 주로 살아남는다.

2단계(2020년-2026년) – Dapp 단계

암호화폐가 현재의 주식과 채권처럼 하나의 투자자산(Asset class)의 지위를 획득하고 블록체인 기술의 성능과 사용성이 개선되어 블록체인 기반 앱들이 본격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하는 단계다. 인터넷에서 제공되기 어려웠던 불법적이고 검열이 어려운 앱이 큰 인기를 끌며 본격적인 Dapp 대중화 시대가 열린다.

3단계(2024년-2030년) – 프로토콜 단계

이 단계가 되면 인터넷에서 인기있는 서비스와 블록체인 Dapp으로 인기있는 서비스가 각자 영역을 확보하며 발전해 간다. 웹브라우저의 Dapp 접근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되며 사용자는 웹인지 Dapp인지 구분할 필요도 이유도 사라진다. 전세계적으로 흥행한 Dapp들에 브랜드가 형성되고, 킬러 컨텐츠 Dapp을 다수 확보한 프로토콜이 승자가 되어 프로토콜 경쟁도 어느 정도 끝난다.

4단계(2028년-2036년) – 완전 대중화 단계

뚜렷한 특징을 가진 소수의 프로토콜이 살아남고 개발자는 이제 자기가 만들려는 제품의 특성에 잘 맞는 프로토콜을 선택해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게 된다. 블록체인이 대중화돼 더 이상 블록체인이라는 용어 자체가 무의미해 진다. 대부분이 기업들이 자기 사업의 일부에 블록체인을 도입하고 기존 비즈니스 모델을 완전히 위협하는 도전자도 나타난다. 블록체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빠르게 도입하고, 할 수 없는 일은 잘 수성한 회사들이 살아남아 계속 비즈니스를 구가한다.


재미로 읽는 향후 10년간의 일들

조금 더 미시적으로는 향후 10년간 아래와 같은 일들이 있을 것이라 전망한다. 인터넷 업계에 있으며 온몸으로 겪은 패턴을 바탕으로 내게 요즘 모이는 블록체인 업계의 여러 소식과 정보를 취사 선택해 정리해 보는 지극히 주관적 전망이다. 어디까지나 재미로 읽으시고 10년 뒤에 얼마나 맞았는지 리뷰하는 글을 써보면 재미있겠다.

2019년 – 이더리움 샤딩의 안착 및 대중화 (등장은 2018년 말에 하지만 아직은 실험 단계). Thomson Reuter와 같은 기존 DB 판매업자가 운영하는 Oracle이 상용 서비스 개시. IPFS와 Swarm의 안정화를 통한 블록체인용 파일 스택의 준비 완료.

2020년 – 크롬/익스플로러 등 주요 웹브라우저들이 암호화폐 전자지갑을 직접 내장. 개발자들이 상업용 서비스의 인프라에 퍼블릭 블록체인 도입을 진지하게 검토하기 시작. 개발과 마케팅을 거쳐 2021년 중반부터 몇몇 Dapp이 전세계적인 히트를 치기 시작. 탈중앙화 거래소 거래량이 중앙화 거래소의 거래량을 능가.

2023년 – 인터넷 서비스 인프라의 10%가 블록체인 기반으로 대체. 블록체인 기반의 대체자로 인해 기존 인터넷 중개 사업자 중 최초로 폐업하는 사례가 등장. 보안이 중요한 IoT, 자율주행차 등의 주요 사업자들이 블록체인 인프라를 상업용 서비스에 적용.

2025년 – 일부 암호화폐가 결제 수단으로 보편화되고 전반적인 암호화폐의 변동성도 둔화되어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암호화폐를 인정. 은행들이 법정화폐와 암호화폐의 교환비율을 고시하기 시작. 은행 앱을 통해 손쉽게 법정화폐, 암호화폐 환전.

2027년 – 블록체인 기반의 대체자로 인해 최초로 기존 전통 산업에서 폐업하는 사례가 등장. 2020년대 초반 건설이 시작된 화성/달 기지에서 암호화폐가 지구와의 공용 화폐로 논의되기 시작.


앞으로의 단기적인 일들

내년부터 우선 거래소가 대형화될 것이다. 자본금 50억 내외의 거래소들이 다수 등장해 스타트업이 참여하기 점차 어려운 시장이 될 것이다.

기존에 매출이 나는 사업이 있는 집들이 ICO를 많이 하겠지만 보통 업계 1위의 전략은 아닐 것이기에 지금보다는 낫다 뿐이지 객관적으로 비즈니스가 성공할지는 알 수 없다. 토큰화(Tokenize) 한다고 안되던 비즈니스가 갑자기 잘될 수 있을까? 본질은 Tokenize가 아니다. 비즈니스다.

IPO 시장이 꾸준히 효율화 되어 온 것처럼 ICO도 그렇게 될 것이다. 이제 Pre-sale로 2-30% 할인을 받는다 하더라도 물량을 생각하면 크게 돈은 안되는 때가 금새 올 것이다. 특히 펀드들의 싸움터가 되면 개인은 점점 더 수익을 내기 어려워질 것이다.

그러면 시장이 점차 효율화 되고 건전화 되어 가격 변동성이 몇년간 꾸준히 떨어질 것이다. 물론 최근의 비트코인캐시 폭등-폭락장처럼 수많은 풍파와 작전을 겪은 뒤일 것이다. 선물과 파생 시장의 등장으로 변동성에 대한 헷지가 가능해지면서 안전 마진을 추구하는 것도 가능해질 것이다.

주식시장에서 일어난 똑같은 일들이 향후 5년간 빠르게 일어날 것이고 다양한 암호화폐 파생 상품이 등장해 지금과 비교할 수도 없는 엄청난 경제 규모를 만들어낼 것이다.

언젠가 블랙 먼데이 같은 날이 오더라도 그것이 장기적으로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의 발전을 저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암호화폐 가격은 폭락 뒤 다시 천천히 갈 것이고 처음부터 실체가 없었던 사기성 프로젝트와 개발할 필요가 없었던 무의미한 프로젝트들, 경쟁력 없는 제품들이 쓰러지며 정말 중요한 문제를 해결한 프로젝트만 살아남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프로젝트가 다시 희망이 되어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시장이 펀더멘털을 갖는 진정한 2막이 열릴 것이다. 신 경제에 참여하지 않는 세력은 점차 힘을 잃어갈 것이며 현실적이고 똑똑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은 엄청난 부와 명예를 거머쥘 기회를 얻을 것이다.

보안 문제로 인해 향후 5년간(인터넷이 그대로 그랬듯) 수많은 시장 참여자가 해킹으로 자기 정보와 재산을 털릴 것이고 업계 참여자 일부의 문제로 업계 전체가 꾸준히 비난 받을 것이다.

끝 모를 투기와 개인 투자자들의 피해에도 업계 전체가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어차피 떨어질 땐 다같이 욕먹을 거 우린 막장의 길을 가겠다’는 플레이어도 분명 나올 것이고, 업계를 대표하는 단일 협의체가 구성되지 않는 한 그들의 탐욕을 억제할 효과적인 방법도 없을 것이다.

처음에는 업계 협의체조차 서로 경쟁하겠지만 엄청난 혼란과 사회적 비난을 정통으로 맞으며 마침내 어느 시점이 되면 통합 협의체가 서로의 필요에 의해 탄생할 것이다.

회사들도 아직 춘추전국시대는 시작도 안되었으므로 앞으로 수백, 수천개의 블록체인 회사가 태어날 것이다. 이들 중 많은 수가 2-3년 내로 힘들어져 합종연횡이 시작될테고 향후 5년 내에 대형화된 회사 몇 개가 사안에 따라 협력하고 또 경쟁할 것이다.

보안과 성능 문제 역시 숱하게 털리고 버그가 발견됨으로써 노하우가 쌓이며 천천히 고도화될 것이다. 전반적으로 인터넷이 걸었던 길을 거의 그대로 걸으며 앞으로 20여년간 천천히 발전해 나갈 것이다.


나가며

비트코인에 대한 개괄로 시작해 규제의 현황과 효과를 거쳐 ICO의 기회와 우려, 그리고 블록체인의 오늘과 내일, 한계와 가능성, 그리고 마지막의 재미로 점쳐보는 타임라인까지 엄청난 분량을 달려 왔다.

필자는 한국의 첫 블록체인 컴퍼니 빌더인 체인파트너스와 블록체인을 비즈니스의 관점에서 공부하는 모임인 한국블록체인비즈니스연구회의 대표로서 이 분야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표철민이라고 한다.

2006년 위자드웍스를 창업해 위젯과 솜노트, 매직데이 등 하루 수백만이 쓰는 서비스를 개발해 왔고 100만 미만의 사용자를 가진 서비스를 포함하면 100종의 웹서비스와 모바일 앱, 10여종의 웹/모바일 게임을 만들었다. 미루고 미루던 군 입대를 위해 10년간 운영한 위자드웍스를 매각하고 2015년 서른 하나의 나이에 현역 입대했다.

2017년 1월 제대 후 신규 사업을 찾던 중 블록체인의 미래와 한계, 그리고 우리의 기여 가능성을 확인하고 2017년 8월 체인파트너스를 설립했다. 체인파트너스는 중국의 주요 거래소였던 Yunbi의 오너이자 Zcash, Sia, Qtum, EOS, BitShare 등의 초기 투자자였던 Li Xiaolai가 설립 직후 엔젤 투자했고 2017년 11월 한국의 DSC인베스트먼트, 캡스톤인베스트먼트, DS자산운용이 시드 투자했다.

가격 광풍으로 본질이 흔들리는 한국의 블록체인 분야에서 장기적인 안목과 전략을 가지고, 보다 건전하고 뿌리가 튼튼한 블록체인 스타트업을 직접 만들고 키우기 위해 천천히 한 발짝씩 내딛고 있다.

필자는 이 분야와 시장을 누구보다 긍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이 일을 시작했다. 이는 말할 나위가 없다. 허나 또한 누구보다 가까이서 가장 혼탁하고 부정적인 모습도 목격하기에 오늘 우리가 당도해 있는 곳의 모습을 최대한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짚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이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은, 또한 암호화폐 투자자는, 열렬한 팬들은 어느 누구도 블록체인이 할 수 있는 것과 아직 하지 못하는 것을 정확히 짚어 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헛된 기대와 환상이 끼고, 준비 안된 ICO와 알트코인에 대한 묻지마 투자가 횡횡한다고 본다.

그리고 그런 것은 장기적으로 이 시장의 건강하고 빠른 발전에 좋지 않다. 누군가는 돈을 모으겠지만 누군가는 그로 인해 반드시 돈을 잃을 것이다. 작은 버블은 산업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손 치더라도 너무 큰 버블은 거품이 다 꺼진 뒤에 엄청난 피해를 안기고 이 산업 발전을 3-4년은 뒤로 보낼 것이다.

더군다나 우리나라는 전세계 암호화폐 거래와 가격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이는 피해가 생겨도 가장 클거라는 말이다. 우리나라의 투자자들이 블록체인을 보다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마음에서 진정으로 업계를 사랑하는 충정을 담아 이 긴 글을 쓸 결심을 했다.

내가 비록 긴 글을 통해 ICO에 대한 우려를 표하기는 하였으나 그들 중 정말 좋은 문제를 고른 진지한 팀 일부는 살아남아 세상을 바꿀 것이다. 따라서 ICO는 1~2년이 아니라 5년~10년 R&D를 해야하는 초고난도의 프로젝트들의 입장에서 돈 걱정 없이 개발에만 집중할 수 있는 자금을 마련할 훌륭한 자금 조달 방식일 수 있음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나는 ICO가 모두 잘못되었다기보다 일부 기회와 돈만 보고 ‘설계한’ ICO들에 실망하고 그런 ICO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면서 돈을 가져다 바치고 있는 투자자들을 경고하는 의미에서 그런 비판을 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따라서 ICO가 제도적으로 정비되고 시간이 더 지나 ICO를 하는 팀의 전문성이나 프로젝트의 실현성이 월등히 압도적일 때 비로소 우리가 그 방식을 조심스럽게 검토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 납득할 수 없는 현재의 ICO 시장과 애매한 제도적 토양 위에서는 굳이 무리할 필요가 없이 차라리 ICO를 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은 팀들을 돕는 것이 더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것은 우리가 그들보다 잘나서도, 똑똑해서도 아니고 그저 다른 길을 택하고 가는 회사도 있어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따라서 다른 팀들의 선택을 비난할 마음도 이유도 전혀 없다. 우리가 저 긴 타임라인을 거치며 어느 지점에서 어떤 프로젝트로 잘 되면 우리 선택이 나름대로 가치를 지닐 것이고,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말할 자격이 없을 것이다.

바람이 있다면 다른 선택을 한 우리가 대성공까지는 몰라도 이 시장에서 작게라도 자리를 잡는 것이다. 그럴 수 있다면 이제 다른 팀들이 택할 수 있는 작은 선택지가 생길 것이다. 따라서 그런 신 루트를 한번 개척해보기 위해 좋은 동료들과 아주 긴 호흡으로 천천히 좋은 제품 만들며 치열하게 살아볼 것이다.

내가 느끼는 시장은 아직 1993년의 인터넷 상황이기에, 조금 먼저 한 것은 사실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여전히 투자자들의 시장일뿐 사용자의 시대는 시작도 안되었기에, 마지막에 가장 잘 만든 딱 한 팀만이 결국 모든 것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구글이나 네이버 전에 수도 없이 많은 검색엔진이 있었던 것처럼, 아이폰 전에 수백종의 휴대폰이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지금 1등하는 사업자도 실은 검색엔진의 심마니나 알타비스타일지 모른다. 그들이 한 시대를 풍미할 땐 1등이었지만 지금은 그런게 있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마지막으로 두 가지 이야기를 하며 긴 글을 마치고 싶다. 첫째는 인터넷을 하던 사람들이 이 분야에 오면 정말 빨리 블록체인을 혁신하는 제작자가 될거라는 확신이다. 내가 그렇게 환영받았듯, 이 분야는 인터넷 경험이 있는 제작자를 열렬히 기다리고 사랑한다.

이미 인터넷과 모바일은 승자가 정해졌고 순위와 격차가 바뀌기 정말 쉽지 않다. 그러나 이곳은 인터넷을 만들던 실력으로 잠깐 뚝딱하면 업계 초고수와 직접 연락을 주고 받을 수도 있는 곳이다.

우리가 아무리 인터넷에서, 한국에서 1년 내내 제품에 집중한다고 세계적인 VC인 DFJ나 Andreessen Horowitz에서 바로 연락오지 않는다. 네이버나 카카오에서 조차 연락 안온다. 그러나 블록체인은 다르다.

내가 직접 겪었으니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인터넷/모바일에서 실력을 쌓은 제작자들은 지금 블록체인으로 오면 정말 이 세계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지금 시작해도 절대 안늦는다. 앞서 20년 비전에서 제시했듯, 이제 시작일 뿐이다.

그리고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다. 군대 갔다 와서 갑자기 블록체인을 하니까 원래 이 바닥에 오래 계시던 분들 중 일부가 내게 ‘사짜’라는 별명도 붙여 주었다. 당연히 그럴 수 있다. 이제 이 사짜 꼬리표를 떼는건 전적으로 나의 몫일 것이다.

인터넷쪽 개발을 하던 사람들은 사실 블록체인에서 사짜일 수가 없다. 조금만 공부하면 이게 원래 하던 그것이기 때문이다. 단지 IDC에 있던 서버가 어느 순간 클라우드로 간 것처럼, 이제는 다시 분산형으로 가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다 프로그램이고 결국 고객 접점은 똑같은 모바일과 데스크탑이다.

따라서 그 별명을 지어준 사람들이야말로 얼마나 작은 것을 쥐고 빼앗기지 않기 위해 배타적 방어기제를 취하는 것인가? 오히려 그런 인식이 우리같은 도전자이자 언더독에게는 바로 기회이고 동기부여일 것이다.

최근 블록체인에는 인터넷 분야의 대선배들이 빠르게 뛰어들고 있다. 나는 그분들의 느낌을 전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거 우리가 원래 하던 그것이기 때문이다. 직감적으로 미래이고, 안보면 안되는 무엇이다. 인터넷을 오래 봐온 사람들 눈으로 딱 보면 아직 할게 너무 많고 오히려 20년 전 Netscape moment 전 어디쯤이라 매우 흥미롭다.

그런 좋은 선배들과 제작자들이 우루루 이 분야에 뛰어들어 수많은 회사를 만들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실 우리끼리 싸우고 경쟁하는건 진짜 의미없고 소꿉장난 수준이다. 이 분야는 나라 구분이 없고 전세계가 하나의 단일 시장인 것처럼 운영되고 있다.

중국에서 한국에 진출 준비 중인 이 분야 업체들은 설립 자본금만 100억씩 우습게 들고 들어온다. 국내 10대 대기업도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분야에 뛰어들기 위해 총력으로 준비하고 있다. 국내에 좋은 제작자들이 서로 모이고 돕고 역량을 집중해 정말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수준의 제품을 만들지 못하면 비슷하게 구현만 하다가 서로의 시간을 잃을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같이 힘을 모아 큰 일을 도모해볼 제작자들의 연락을 기다린다. 개발자와 UI 디자이너, 서비스 기획자, 마케터까지 웹과 모바일 서비스를 만들어 온 베테랑들을 본격적으로 블록체인 세계로 초대한다.

어떤 제품이 되든 그것이 생태계에 건전하게 기여하고 우리 모두의 평판과 성공에 가장 옳은 일이 되도록 나 역시 앞으로 20년간 눈 부릅뜨고 촉을 세우며 가장 쓸만한 선장으로 성장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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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16일 싱가포르에서 체인파트너스 표철민

출처: Charles Pyo Ventur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