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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_문화

남에게 피해를 줘도 법만 안 어기면 괜찮다? 정말?

by 성공의문 2014. 1. 15.


요즘 TV를 보면 남에게 피해를 주었는데 법을 어기지는 않았다고 떳떳하다고, 법치주의 국가라고 이야기 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을 봅니다. 이것을 보면 분노가 느껴지는데 이런 현상을 도대체 어떻게 볼지 모르겠습니다. 윤홍식 대표가 이 부분에 대하여 『논어』의 이야기를 들어서 설명해 줍니다. 

 

 

- 질문자 : 요즘은 법망만 빠져 나가면 떳떳하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괜히 양심지키다가 피해나 본다는 생각들도 많은데요. 정말 법만 안 어기면 괜찮은 건지, 도대체 무엇이 맞는 것인지 혼란스럽습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 윤홍식 대표 답변 : 공자님께서 『논어』에서 아래와 같이 이야기를 하셨죠.

 

공자님께서 말씀하시길 “정치상의 법률과 명령으로만 인도하고 형벌로 가지런히 한다면, 백성들이 형벌을 면하려고만 할 뿐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다. ‘덕德’으로 인도하고(사단四端의 확충, 명명덕明明德) ‘예절’로 가지런히 해야만(사양지심辭讓之心의 확충), 부끄러움을 알고 스스로 바로잡을 것이다(수오지심羞惡之心의 확충)”라고 하셨다.


子曰 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

 

유명한 얘기입니다. 정책과 어떤 법률과 명령 만으로 만약에 사람들을 인도하고 형벌로, "말 안 들으면 잡아넣지 뭐." 이렇게 다스린다는 건 한비자가 주장했던 정치 방식입니다. 진시황이 그걸 택했었어요. 인간은 '호리피해'(好利避害)의 존재이다. 인간은 이익을 좋아하고 해로움을 싫어하니까 잘하면 상주고 못하면 벌주면 통치되게 되어 있다라는 한비자의 주장을 적용했는데 진시황 아들 때 바로 망했죠.

 

인간이 이렇게는 안 되거든요. 상을 줄 때도 그냥 주면 안 돼요. 예의를 갖춰서 줘야 좋아합니다. "옛다, 상이다." 하고 100만원 던져주면 나를 뭘로 보고 이렇게 이렇게 해라고 문제가 생깁니다. 인간은 그렇게 돌아가지가 않아요. 그래서 중국에서 진시황 때 한비자의 법가 사상을 충분히 써 보고 망하고 난 뒤에는 한나라 때 다시 유교를, 대아적 효율성을 어떻게든 제일 앞에다 걸어요. 법가를 추구하는 한이 있더라도 겉에다는 유교를 걸어요. 지금도 그럽니다.

 

자본주의는 솔직히 한비자와 똑같아요. 인간을 이렇게 분석하는데도 겉에다는 그렇게 안 하죠. 우리는 가족이고 뭐 우리는 한 식구고 딴 소리를 해요. 인의예지를 걸어야만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알기 때문이죠. 손님이 왕이네, 너를 위할거네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가 '호리피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인간이 싫어한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실험해서 체험한 겁니다.

 

그 뒤로는 절대 중국 2천년 간 인의예지를 앞에다 걸지 욕심을 앞에다 안 걸어요. 이걸 걸면 다 싫어한다는 걸 알아요. 망해버렸으면 해요. 저 집안 망해버렸으면 하고요. 왜냐하면 자기들만 이익을 얻겠다고 노골적으로 선언한 거잖아요. 그럼 그 얘기는 나한테 피해가 올 수 있다는 얘기잖아요. 인간은 싫어하게 되어 있습니다.

 

공자님이 말씀하신 얘기가 이것을 얘기한 겁니다. 인간은 이렇게 하면 망하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소아적 효율성만을 가지고 교육을 시키면 어떤 효과가 나느냐? 형벌을 면하려고만 할 뿐 부끄러워 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같은 사회입니다. 법망에 안 걸리면 그걸로 아주 만족해 하지 내가 그래도 양심에 부끄러운 짓을 했구나 하고 생각 안 한다는 겁니다. 이 양심이 활성화가 안 되어 있으니까요.

 

수오지심(정의, 남에게 피해를 준 것을 부끄러워 하는 마음)을 활성화 시켰으면 아에 죄를 안 저질렀을텐데 수오지심이나 측은지심을 활성화를 안 시켜놓고 죄를 지은 다음에 잡아다 그걸 처벌만 한다는 식으로는 처벌 피하면 다행이다 하고, 자기 양심에는 전혀 반성을 안 한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이 양심이 부끄럽게 만드는 게 훌륭한 정치다 라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이렇게 하려면 리더부터 잘 해야겠죠. 그래서 그 다음 얘기가 이겁니다. 덕으로 인도하고, 임금이 양심을 잘 지켜서 백성들도 양심을 지킬 수 있게 유도하는 겁니다. 이게 노자가 말한 진정한 '무위'(無爲)에요. 임금부터 백성까지 하나로 이렇게 양심을 회복하자 하는 거죠. 홍익학당 같으면 양심(4단)노트를 전 국민, 전 가정에 보급하라 하는 것입니다. 저의 '호리피해'의 마음, 욕심도 조금 있습니다만 세종대왕께서도 똑같은 마음이었습니다. 세종대왕께서 『삼강행실도』를 만화로 만들어서 보급했어요.

 

그런데 문제가 보급을 했는데 그게 한문으로, 그땐 한글이 없었어요. 한문으로 한 편에 삽화를, 스토리를 한 그림에 그린 만화식이에요. 그것을 가지고 한문으로 써서 보급했는데 문제가 한문을 아는 사람만 읽을 수 있으니까 백성들은 못 읽어요. 그래서 세종대왕이 삼강행실도 보급해 보고, 윤리문제, 그때도 부모를 죽이고 하는 패륜사건이 났거든요. 세종대왕이 가슴 아파서 『삼강행실도』를 돌렸는데 한문이 통하지 않더라는 것과, 『농사직설』같은 기술서를 보냈는데 정작 농사짓는 사람들이 못 읽어요. 법조문을 못 읽어서 피해가 나요. 이런 사건들 때문에 한글을 만듭니다.

 

대표적으로 윤리, 기술이나 정보, 법률문제 때문에 송사사건 때문에 한글을 만들어요. 세종대왕의 측은지심이 끝장이죠. 백성들이 불쌍해서 남 같지 않아서 밤 잠 안자고 연구해서 한글을 만들었습니다. 그것도 신하들은 다 머뭇거릴 때 임금이 주장해서 만든 거예요. 이런 경우가 덕으로 인도하는 겁니다. 나부터 해서, 내 양심이 못 견디겠다 라고 임금부터 해서 덕으로 인도한다는 게 양심(4단)을 확충하는 겁니다.

 

덕으로 인도한 다는 것은 국민들에게 '양심(4단)노트' 쓰라고 그래라고 하면서 자기는 안 지키는 이런 게 아니구요. 자기부터 잘 해서 신하들을 인도하는 겁니다. 국민과. 예절로 가지런히 해준다. 예절은 사양지심의 문제인데 왜 사양지심을 공자님은 자꾸 얘기 하냐면 사랑의 마음, 분노의 마음은 표현될 때는 꼭 사양지심으로 표현돼요. 사랑한다는 것도 예절(에티켓)에 맞아야 되고, 분노도 예절에 맞아야 돼요. 적절한 분노여야지 과하면 안 되거든요. 그래서 밖으로 표현되는 건 예절로 표현되기 때문에 양심을 계발하되 밖으로 표현이 적절해야 된다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이런 사양지심을 적절히 계발해서 밖으로 언행이 적절하게 나가게만 해 주면 백성들 스스로가 부끄러운 줄 알고 스스로 바로잡을 것이다. 백성들의 수오지심이 자극 받아서 감히 죄를 못 짓게 되게 만들거라는 겁니다. 지금도 그렇죠. 만약에 지금 교통법규나 여러 가지에 대해서 안 걸리면 장땡이다라고 우리가 쉽게 생각 하잖아요. 사안에 따라 다르겠습니다만 상당히 중요한 사안들이 남한테 피해가 많이 가는 부분에 있어서 이런 식으로 국민들이 판단하게 방치하고 있다면 잘못가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 것에 대해서 부끄럽게 양심 교육을 시켜줘야 된다는 거죠. 부끄럽게 만들어야 됩니다. 그런데 그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인간이 본래 갖고 있기 때문에 적절한 자극만 주면 원래 계발이 되게 되어 있다는 게 유교의 입장인 거죠. 재밌는게 아주 악인들도 거짓말할 때 보면 눈깔이 돌아가고 이렇습니다. 양심이라는 게 그렇게 무서운게요.

 

이게 태연하게 하는 사람은 진짜 사이코패스, 아주 심한 사람들은 그래도 덜 하겠지만 그래도 달라요. 사람은 거짓말하기 힘들게 만들어졌다는 것도 아실 거예요. 여러분도 잘 못하시잖아요. 할 때 다 티나요. 자기는 최대한 평정심을 갖고 한다고 하지만 거짓말 탐지기 하면 걸리죠. 심장 박동부터 틀려지는데요. 이게 양심이 있다는 근거입니다.

 

인간은 이렇게 안 할려면 한번 크게  결심을 하셔야 돼요. 내가 정말 우리 새끼들 때문에 내가 양심을 잠시 꺼 둬야겠다. 이런 비장한 각오가 없으면 하기가 상당히 힘들어요. 자신이 어떤 진짜 힘들어서 했더라도 편치 않은 게 이게 양심의 가책입니다. 그래서 범인들 중에 상당수가 자수하거나 잡혔을 때 안도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답니다. 정말 힘들었다는 겁니다.

 

이것이 인과법칙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주에 인과법칙이 있다. 어디있냐? 왜 죄인이 잘 살지 않냐? 죄인 속이 편치 않아요. 우주에 인과법칙이 있다는 근거가 이겁니다. 겉으로는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게 냉정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양심을 어긴 순간 자기로부터 벌써 부정당해요. 자기 양심으로부터 인정을 못 받고 남한테 드러나게 됐을 때는 쇠고랑을 안 차더라도 남한테 지탄을 받게 되어 있어요. 그 상태가 이미 처벌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과법칙이 절대 없지 않아요.

 

여러분도 있다는 걸 아니까 되도록 죄 안 짓고 사시잖아요. 한 번 죄를 저질러 놓으면 그것 때문에 시달려야 된다는 걸 아시니까 되도록 안 어기실 겁니다. 요즘 애들이 친구 때리고 잠바 뺏어가죠. 이것을 친구 잠바 뺏지마라만 자꾸 가르쳐서 될 일이냐는 거죠. 수오지심과 측은지심이 발달되면 친구 잠바를 못 뺏게 되어 있죠. 잠바 잃어버리고 집에 갈 친구의 마음을 한 번 헤아려 보고 그 친구 입장에서 자기의 악행을 한 번 돌아보는 이런 감각만 발달해 있으면 죄를 못 짓는다는 겁니다. 차라리 잠바 안 입고 말지로 결론이 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이 양심노트를 권장드리는 건 이런 식으로 평소에 자기 양심을 계속 자극을 주시라는 겁니다. 그러면 중요한 순간에 죄를 못 짓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시간 되시는 분은 아래 양심노트 양식을 다운 받으셔서 본인의 사안에 한번 적용해 보십시오.

 

양심노트 양식.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