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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모델의 선구자들


바로 지금 새로운 모델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 모델들은 제2의 애덤 스미스Adam Smith나 칼 마르크스Karl Marx의 머리에서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가슴속 소망, 수많은 사람의 머릿속 기지, 수많은 사람의 수고에서 나온다.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직관적으로 알고, 그것을 일구려는 사람들이다.


미국과 영국 모두에서 사회적 기업social enterprises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사회적 기업은 비즈니스로서 기능하면서 사회적 사명을 최우선으로 삼는 기업이다. 800만 달러의 이익을 올리는 뉴욕 주 용커스Yonkers의 그레이스톤베이커리Greyston Bakery가 그 예다. 그레이스톤베이커리는 홈리스를 위한 일자리를 만든다는 목표로 선불교 수도자들이 세운 회사다. 미국에서는 금융 서비스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저소득 공동체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금융 기관인 지역공동체개발금융기관Community development financial institutions, CDFIs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10년이 조금 넘는 동안, CDFI 자산은 50억 달러에서 420억 달러로 늘었다. 신규 자금은 예금자 및 투자자, 정부 기금에서 온다.


해양어업에 대한 소유권인 조업권catch shares에 대한 새로운 실험은 어류 자원의 파국적 감소를 멈추거나 증가세로 되돌려 놓았다. 현재 수천만 에이커를 아우르는 보존지역권conservation easements은 토지를 개발로부터 보호하여 농경지로 사용할 수 있게 해준다. 미래의 후손뿐 아니라 미래의 야생동물을 위해 토지를 보전하려는 것이다. 시장의 힘이 침입하지 못하게 막을 필요가 있는 보편적 삶의 영역을 존중하고자, 공유 자산을 보호하려는 움직임도 확대되고 있다. 누구 하나가 소유하지 않고 집단적으로 운영되는 위키피디아 같은 기관들로 이뤄진, 바이러스처럼 스스로 전파되는 세계도 있다.


혁신적 변호사들은 법을 통해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내느라 바쁘다. 영국 법에 규정된 공동체이익기업community interest corporation이 그 예다. 미국의 저이익유한책임회사low-profit, limited liability company, L3C는 재단의 사회적 투자를 촉진하고자 법제화되었다. 이 모델은 겨우 2~3년 만에 20개 가까이 되는 주에서 이미 법제화되었거나 고려 중에 있다. 미국의 유일한 주립州立 은행state-owned bank인 노스다코타 은행Bank of North Dakota은 눈에 띄는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노스다코타 은행은 금융 위기가 닥쳐 민간 은행이 수십억 달러의 손해를 입었을 때조차 흑자를 기록했다. 노스다코타 은행이 예상치 못했던 회복력을 보이자, 14개 주가 주립 은행 설립을 위한 법제화를 고려하기 시작했다.(주립 은행은 민간이 소유하지 않는 은행으로, 이익 최대화가 아니라 공익에 초점을 둔 대안적 소유 구조라 할 수 있다.)


연대적 경제를 향한 움직임이 확대되고 있는 지역으로 퀘벡과 라틴아메리카를 꼽을 수 있다. 연대적 경제는 협동조합과 비영리기구들로 구성된다. 퀘벡에서 연대적 경제는 공식적인 인정을 받아, 독립적인 경제 부문으로서 정부 지원금을 받는다. 나아가 놀랄 정도로 많은 수의 대기업이 이익 최대화 대신 고유한 사명을 중심 목적에 두고 경영하는 사명 경영 구조mission-controlled design를 채택했다. 사명 경영 구조로는 북유럽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재단 소유 기업이 있다. 110억 달러 매출을 올리는 덴마크의 제약회사 노보노디스크Novo Nordisk뿐 아니라, 이케아Ikea, 베텔스만Bertelsmann 및 여러 대기업이 재단 소유 기업이다. S. C. 존슨S. C. Johnson과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처럼 강력한 사회적 사명 아래 가족이 경영하는 기업도 사명 경영 구조에 포함된다.


사회적 기업인 그라민다농Grameen Danone처럼 더욱 색다른 구조도 등장하고 있다. 그라민다농은 다국적 요거트 제조업체인 다농 그룹과 세계 최초의 마이크로파이낸스 대출 기관인 그라민 은행이 만든 합자회사로, 방글라데시의 마을 여성들은 이 회사를 통해 요거트를 판매한다. 그라민다농은 빈곤층의 영양 상태를 개선하고자 설계되었다. 그라민다농의 배당금 지급 목표는 1%로 그리 높지 않은 수준이다.


새롭게 등장하는 경제 구조 분야의 선구자 두 명, 바로 무하마드 유누스Muhammad Yunus와 엘리너 오스트롬Elinor Ostrom은 노벨상을 수상했다. 유누스는 그라민 은행의 설립자로 그라민다농의 창설을 도왔으며, 오스트롬은 인디애나 대학교 교수로 공유지의 경제적 관리 체제를 연구했다. 오스트롬은 동료들과 함께 어류 자원, 목초지, 삼림, 호수 및 지하수원 등의 효과적 관리법을 자생적으로 고안해낸 지역 공동체들을 세계 곳곳에서 찾아냈다. 이들 공동체는 생태계에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 보전하는 방식으로 공유 자원을 관리했다.


협동조합, 종업원 소유 기업, 정부 지원 기업 등, 여러 대안적 소유 모델이 오랫동안 존재해왔다. 새로 부상 중인 소유 모델들은 새로운 식구인 셈이다. 영국의 최대 백화점 체인인 존루이스 파트너십John Lewis Partnership, JLP도 그중 하나다. JLP는 종업원이 100% 지분을 보유하며, 전통적인 이사회와 더불어 종업원들로 이뤄진 평의회를 운영한다.


이러한 대안적 모델들은 소유 구조의 새로운 일가一家를 이룬다. 산업화 시대의 소유 구조를 단일 작물 모델이라고 한다면, 새로운 구조들은 열대 우림의 생물종만큼이나 다양하다. 이런 다양한 구조를 연구하고, 그 구조들의 여러 부분을 접합해봄으로써, 구조 실험의 온실이 탄생할지도 모른다. 그 온실에서 우리 경제의 미래가 자라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대안적 모델들은 깊숙이까지 새로운 선구자다. 아직 완전히 모습을 갖추지 않았고, 새로운 사회 질서의 틀로서 기능할 준비가 끝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수가 점점 늘고 있다는 것이 하나의 신호다. 이는 산업혁명 이래 가장 창조적인 경제 혁신의 시기에 접어들고 있음을 가리킨다. 지금 벌어지는 일은 통상적인 의미의 경제 혁신이 아니다. 다시 말해 돈을 더 많이 버는 방법에 관한 것이 아니다. 이 혁신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심오한 것이다. 조직화의 목적과 구조의 차원에서 벌어지는 새로운 발명, 삶의 필요를 충족하고자 스스로 조직화하는 경제 체계를 창출하는 것이다.



생성적 vs 추출적 소유


이 소유 모델들은 하나의 일관된 철학을 구현한다. 조직의 공통된 형태를 통해 인류 및 생태 공동체의 생생한 고려 사항들을 재산권과 경제 권력의 세계에 반영하려는 것이다. 이 사상은 새롭게 등장하는 하나의 원형原型이지만, 현재까지는 하나의 현상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아직 한 가지 이름으로 불리지 않기 때문이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길 잃은 개에게 이름을 붙여주면 살아남을 가능성이 더 커진다는 데 주목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새로운 소유 모델들에도 이름을 붙여, 생성적 소유 구조라고 부르는 게 어떨까? 이런 모델들이 생성적 경제의 기초를 이룬다.


이런 소유 구조들의 활기찬 목표와 생생한 영향력에는 모든 생명이 번영할 수 있는 조건을 생성하려는 목적이 담겨 있다. ‘generative’라는 말은 그리스어 ge에서 파생된 것으로 ‘대지’라는 의미의 Gaia(가이아), 그리고 genesis(기원, 발생), genetics(유전학)와 같은 어근을 사용한다. 생명이라는 의미를 내포하는 셈이다. ‘생성적generative’은 생명의 영위를 의미하고, 생성적 구조란 그를 위한 제도적 틀을 가리킨다. 생성적 경제는 근본 구조가 해로운 결과물보다는 유익한 결과물을 내놓는 경향을 띤 경제다. 내재된 경향 자체가 사회적으로 공정하고 생태적으로 지속 가능한, 살아 있는 경제다.


생성적 소유 구조는 다음 사분기에는 증발해버릴 수 있는 허구의 부phantom wealth가 아니라 진정한 부, 살아 있는 부living wealth를 생성하고 보전하고자 한다. 가족들이 안정적인 보금자리를 누리도록 돕고자, 삼림을 보존하고자, 쓰레기에서 자양분을 생성하고자, 폭넓은 복지를 창출하고자 한다.


이런 소유 구조는 오늘날의 지배적인 소유 구조와 대조를 이룬다. 그 차이를 명확히 드러내려면 지배적 소유 구조에도 이름을 붙여야 한다. 이 소유 구조는 물리적, 금전적 추출물을 최대화하려는 것에 초점을 맞추니, 추출적extractive 소유 구조라는 이름이 어떨까? 산업화 시대의 문명은 쌍둥이 같은 두 가지의 추출 과정에 힘입어 발전했다. 하나는 지구로부터 화석 연료를 추출하는 과정이었고, 다른 하나는 경제로부터 금전적 부를 추출하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이 두 과정은 동등하지 않다. 금전적 추출 과정이 주된 힘이었다. 생물물리학적 폐해는 시스템이 벌인 행동의 결과인 경우가 많았을 수 있다. 반면 금전적 부의 추출은 그 자체가 목적이었다.


경제학자 E. F. 슈마허E. F. Schumacher가 ‘영속성의 경제’라 부른 것을 이 허약한 지구 위에 세우는 첫발을 내딛는 때, 금전적 성장의 최대화는 길을 이끄는 목적으로 적합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생성적 소유 구조를 통해 다른 목표가 어떻게 경제 활동의 중심이 될 수 있는지 현실적으로 자세히 확인하게 된다. 생성적 구조는 전환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전환이 어떻게 하면 널리 퍼질 수 있을지를 보여준다.



혁명적 동력으로서의 소유


“운동인 줄도 모르고 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변호사 토드 존슨Todd Johnson이 내게 한 말이다.(그는 새로운 소유 구조를 고안해내는 혁신적인 변호사 중 하나다.) 소유 혁명이 벌어지고 있다. 소유 혁명은 경제 권력을 소수의 손에서 다수의 손으로 확대하려는 것이며, 사회적으로 무관심하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사회적 유익에 관심을 기울이게 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전환을 두려워하도록 교육받는다. 동시에 경제 구조는 둘 중 하나, 즉 자본주의 아니면 공산주의, 사적 소유 아니면 국가 소유밖에 없다고 교육받는다. 하지만 오늘날 자라나고 있는 대안들은 이런 먼지 쌓인 19세기식 분류를 거부한다. 이 대안들은 공익을 위한 사적 소유라는 새로운 선택지다. 이 같은 경제 혁명은 정치 혁명과 다르다.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세우는 것이며, 경제의 바탕이 되는 소유의 기초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지난 수 세기 동안 위기가 닥칠 때면 사람들은 보호막을 구하고자 대안적 소유 구조로 눈을 돌렸다. 최초의 근대적 협동조합인 로치데일 조합Rochdale Society은 1840년대 잉글랜드에서 생겨났다. 산업혁명이 수많은 숙련 노동자들을 빈곤으로 몰아가던 시기였다. 직공과 장인 들은 힘을 합해 최초의 소비자협동조합인 로치데일을 세웠다. 로치데일 조합은 다른 곳에서라면 식료품을 살 수 없을 노동자들에게 식료품을 팔았다. 그들이 만든 협동조합 모델은 90개가 넘는 나라로 퍼져나갔다. 오늘날 전 세계의 협동조합 조합원은 10억 명에 이른다.


대공황 기간 미국에서는 연방신용협동조합법Federal Credit Union Act이 불균형적 금융 시스템의 안정화를 도왔다. 법 제정 시 의도했던 바였다. 연방신용협동조합법은 저소득 계층에게 대출이 돌아가도록 하려는 법률이었다. 오늘날 신용협동조합의 자산은 총 7,000억 달러를 넘어선다. 2008년 금융 위기 이래 신용협동조합처럼 소비자가 소유한 은행들의 조합원 수는 150만 명 이상 늘어났다. 처음 위기가 닥쳤을 때 신용협동조합의 대출 연체율이 일반 은행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던 것이 주된 이유였다. 2001년 아르헨티나에서 금융 붕괴로 수천 곳이 도산하고 수많은 사업주가 도망쳤을 때, 노동자들은 계속해서 일터를 지켰다. 노동자들은 정부 지원 아래 200개 넘는 기업을 인수했고, 이렇게 만들어진 노동자 회생 기업empresas recuperadas을 스스로 꾸려나갔다.


우리 시대, 대안적 소유 구조에 대한 필요는 어느 때보다 크다. 우리 앞에 놓인 길은 두 갈래다. 한쪽은 요새 같은 세상을 향해 뻗은 길로서 이제까지의 비즈니스가 걸어온 것이다. 그 세상에서 부유한 소수는 호화롭고 안전한 요새에 몸을 숨기고 살아가고, 대부분은 곤궁에 시달리며 두려움과 싸운다. 다른 한쪽은 새로운 경제를 향해 뻗은 변혁의 길이다. 새로운 경제란 지속 가능하며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번영을 가져올 생성적 경제다. 어떤 세상을 선택하든, 소유와 재무 구조가 그 세상에 본질적 형태를 부여할 것이다.


생성적 소유 구조에 대해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근사한 일이군요. 하지만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죠?”라고 묻곤 한다. 아마 대답은 두 가지 측면을 포함할 것이다. 우리는 이중으로 움직여야 한다. 한쪽 팔로는 기업의 남용에 고삐를 죄면서 기존 기업의 통치 체제를 개혁하고, 나머지 팔로는 생성적 대안을 개발해나가야 한다. 두 가지 노력이 모두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응집력과 동력이 부족한 쪽은 두 번째 전략, 바로 대안을 추구하는 일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경제에 대한 명료한 비전을 공유하지 못하고, 그 경제가 돌아가도록 하는 구조에 대한 간결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깊숙한 변화를 향해 힘을 합해 일하기란 쉽지 않다.


맨 처음 대안의 개발은 발생emergence에 의존한다. 조직 변화 이론가 마거릿 휘틀리Margaret Wheatley가 말했듯이, 발생이란 공동의 비전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연결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이것이 바로 국지적인 행동이 일어나, 네트워크를 통해 연결되고, 행동하는 공동체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발생적 현상은 별 예고 없이 나타날 수 있다. 유기농 식품, 로컬 식품 운동의 등장이 그런 예다.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시스템이 더 큰 규모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마법이 일어나서가 아니다. 미리 계획되지 않은 자발적 활동이 일어나고, 이후 좀 더 집중적인 노력이 더해지면서 일어나는 일이다.


나는 8장에서 발생에 대해 다룰 것이다. 나아가 책 전체, 특히 에필로그에서 변화의 전략에 대한 좀 더 많은 생각을 나누고자 한다. 하지만 여기서 거기까지 어떻게 도달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로드맵을 그리려는 게 내 목표는 아니다. 나는 목적지에 초점을 맞춘다. 닥쳐올 혼란스러운 시기에 길잡이가 되어줄, 현실적이면서도 심오한 비전과 언어를 탐색하고자 한다.



생명 패턴


대부분이 민주적 권력의 구조는 이해하지만, 경제적 권력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소유의 구조 역시 이해하지 못한다. 이것이 문제다. 우리에게 아직 없는 것은 단순한 패턴 언어pattern language다. 그 언어로 보기엔 동떨어진 듯한 모델들을 통합하고 그 근저를 이루는 소유 구조를 묘사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에서 내가 만들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 패턴 언어다. 

건축가 크리스토퍼 알렉산더Christopher Alexander가 말했듯이, 우리는 공유할 수 있는 방식으로 패턴을 이야기할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이름을 붙여야 한다는 의미다. 알렉산더는 『시간을 초월한 건축의 방법 The Timeless Way of Building』에서 “각각의 패턴을 하나의 대상으로 만들어 인간 지성이 그것을 쉽게 사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썼다.(알렉산더의 작업에 대해 3부에서 다시 이야기할 것이다.)


나는 다른 종류의 소유를 창출하는 데 함께 작용하는 다섯 가지의 본질적 패턴을 발견했다. 목적, 구성원, 통치 방식, 자본, 그리고 네트워크가 그 다섯 가지다. 이들은 단기간에 금전적 부의 추출을 최대화하려는 목적 아래 추출적 방식으로 사용될 수도 있다. 혹은 미래의 세대를 위해 모든 생명체가 번성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목적 아래 생성적 방식으로 사용될 수도 있다. 새로운 모델이 앞으로 창조되어야 할 테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기초 구조 패턴은 이미 여럿 존재하며, 이 패턴들을 창조적 방식으로 결합할 수 있다.


추출적 소유는 금전적 목적을 갖는다. 이익을 최대화하는 게 목표다. 생성적 소유는 삶을 위한 목적을 갖는다. 삶을 위한 조건을 만드는 게 목표다. 오늘날의 주식회사는 실제로는 회사에 속하지 않는 부재자 구성원Absentee Membership으로 이루어진다. 소유주가 기업의 활동과 연결되어 있지 않은 방식이다. 반면 생성적 소유 구조는 공동체 안에서 삶을 영위하는 뿌리내린 구성원Rooted Membership으로 이루어진다. 소유권이 살아 있는 손에 들린 방식이다. 추출적 소유는 시장에 의한 통치제로 운영된다. 자본 시장이 자동항법장치로 기업을 통제한다. 반면 생성적 소유는 사명 경영 통치제로 운영된다. 사회적 사명을 중심 목적으로 삼아 기업을 경영한다. 추출적 구조의 투자는 카지노 금융을 수반하는 반면 생성적 방식의 대안은 이해당사자 금융을 활용한다. 이해당사자 금융에서 자본은 주인이 아니라 친구가 된다. 재화가 가격을 바탕으로만 거래되는 상품 네트워크 대신, 생성적 경제 관계는 윤리적 네트워크의 지원을 받는다. 윤리적 네트워크는 여럿의 힘을 모아 사회적 · 생태적 규범을 지탱한다. 모든 소유 모델에 이런 구조 패턴이 전부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생성적 패턴이 더 많이 포함될수록 그 구조는 더 큰 효과를 발휘한다.


중요한 측면에서 이 책은 나의 전작 『주식회사 이데올로기The Divine Right of Capital』의 연결선 상에 있다. 『주식회사 이데올로기』는 자본의 권리를 지탱하는 신화들, 그중에서도 특히 부자들의 필요가 다른 모든 사람의 필요보다 앞선다는 신화를 파헤쳤다. 그뿐만 아니라 경제 민주주의의 원칙들을 살펴보았다. 그 책이 출판된 후 10년 동안 우리 경제의 소유 체계는 기후 변화와 같은, 전례 없이 새로운 위기를 불러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주식회사와 자본 시장이 서로 얽힌 제도들, 거기서 요구하는 영속적 성장과 이익의 증가도 큰 몫을 했다. 경제 민주주의가 해결책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으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은 듯하다.


지구의 생명 시스템living system을 준거의 틀로 삼는 것이 더 적절할지 모른다. 모든 시스템에 적용되어야 할 궁극적인 패턴은 생명 패턴living patterns이다. 즉 자연이 생명을 지탱하고자 진화시켜온 조직화 패턴이다. 물리학에서 시작되어 다른 영역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시스템 사고systems thinking는 생명 패턴과 프로세스를 논하는 데 쓸 수 있는 견고한 언어를 제공한다. 이 언어는 생물학적 시스템과 사회적 시스템에 똑같이 적용된다. 시스템 사고를 통해, 소유 구조의 재설계라는 과제가 인간 문명이 지구와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더 큰 과제의 일부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미래의 경제에는 풍력발전소, 탄소 배출 제한, 지속 가능하도록 관리되는 삼림 등이 필요할 것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아직 제대로 답변하지 못한 문제들은 이런 것들을 누가 소유하고 통제할 것인가, 이런 것들이 만들어낸 세상에서 누가 유익을 누릴 것인가다. 우리는 물리적 기술뿐만 아니라 사회적 구조에서의 혁신이 필요하다. 물리적 기술이 경제의 무엇에 해당한다면, 사회적 구조란 누구에 대한 문제다. “누가 어떻게 경제적 결정을 내릴 것인가? 어떤 조직화 체계를 사용하여?”를 묻는다. 사회적 구조는 인간관계들의 청사진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어떻게 조직화해서 일이 이루어지도록 할지를 고민한다. 소수를 위한 성장과 최대 이익을 중심에 놓고 조직화된 경제적 구조에 앞으로도 계속 의존할 것인가? 아니면 지구와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체가 번성하는 것을 중심에 놓고 조직화된 새로운 구조로 전환할 것인가? 이 책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한 여정이다.


(본문 중 일부)


출처:http://nabeeya.net/nabee/view.html?type=review&cat1=52&cat2=67&cidx=4677&set_field=title&search=&page=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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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연 설명과 번역이 좋은 영상이나 연설 뒷부분이 생략 된 것이 아쉽다.
나치 독일에서는 영화의 상영이 금지됐으나, 히틀러는 두번이나 영화를 봤다고 한다.



영화의 최대 장면이라고 알려져 있는 연설 장면이 모두 나오는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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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연설 내용

(찰리 채플린이 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제대로 담겨있는 번역은 아닌 것 같아 아쉽다.)


미안합니다. 나는 황제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누군가를 다스리고도 싶지 않습니다. 가능한다면 모든 사람을 돕고 싶습니다. 유대인, 이방인, 흑인, 백인, 그 모든 사람들을 돕고 싶습니다. 남의 불행을 빌기 보다 행복하기를 빌고 싶습니다. 우린 남을 미워하거나 경멸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그 사람들에게 줄 양식과 대지를 주고 있습니다. 그 인생을 자유롭게 살 수도 있는데 우리는 그 방법을 잃고 말았습니다. 탐욕이 인간의 영혼을 중독시키고 세계를 증오의 장벽으로 가로막았는가 하면 불행과 죽음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급속도로 산업 발전을 이루었으나 우린 자신에게 갇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것을 도운 기계는 우리에게 결핍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지식은 우리를 냉정하게 만들었습니다. 생각은 많이 하면서도 가슴으로 느끼는 것을 별로 없습니다. 기계보다는 인권이 중요하고 지식보다는 친절과 관용이 우선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생은 더욱 불행해질 것입니다. 비행기와 라디오 방송은 우리를 가깝게 하였습니다. 이런 발명은 전 지구인이 화해하라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내 목소리가 세계 온 곳에 들리겠죠. 그리고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들에게도요. 그 분들에게 전합니다. 희망을 잃지 마세요. 이 불행은 발전을 두려워 하는 자들에 의해 벌어집니다. 이제 증오와 독재자는 사라지고 그들이 빼앗은 것은 다시 올 것입니다. 인간이 그것을 위해 목숨을 바칠 때까지는 그것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군인들이여, 그대를 경멸하고 깔보고 그대들의 모든 삶을 통제하고 짐승처럼 다루고 조련하여 전쟁에 쓰는 저 자들에게 복속하지 마시오. 이런 자들, 기계의 마음을 가진 자들에게 굴복하지 마시오. 여러분은 짐승도 아니고 기계도 아닌 사람입니다. 저 자들만이 증오합니다. 군인들이여 싸웁시다. 누가복음 17장에는 '주의 왕국은 인간에게 있으니'라고 써져있습니다. 저 극악무도한 자들의 세상이 아니라 여러분의 세상이란 말이오. 여러분은 힘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기계도 만들 수 있고 행복도 만들 수 있습니다. 그 힘으로 민주주의 아래 하나가 됩시다.


모두에게 일을 할 기회를, 젊은이들에게 새 미래를, 노인에게 복지 시설을 나눠줍시다. 물론 저 극악무도한 자들도 그런 것을 약속했지만 그들은 평생 지키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만 가능성을 줍니다. 이제 우린 그 공약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됩니다. 온 세계를 해방시키고 나라의 경계를 없애며 탐욕, 증오와 배척을 없애야 됩니다. 이성이 다스리는 나라, 기계를 통해 행복이 전해지는 나라를 만들어야 됩니다.


군인들이여, 민주주의의 이름 아래 하나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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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인간이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선택을 한다면,


가난한 이들의 경우 현재의 체제 속에서 고통을 받기 때문에 당연히 변화를 원할 것이고,


변화를 원한다면 '진보적'이 돼야 할 텐데 베블런이 관찰한 당시 미국 사회의 경우 결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현상에 대한 그의 관찰이 특히 값진 이유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서 매우 통렬한 비판을 했던 마르크스나 엥겔스의 경우도

하위 소득계층이 결국엔 혁명을 시도할 것이라는 기대를 했다는 점에 있다.

하위 소득계층의 단결과 저항을 예상할 수 있는 전제는 하위 소득계층이 

결국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선택(자본가 계급을 타도하는 것이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선택)을 할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결국 자본주의를 비판했던 마르크스나 엥겔스도

인간이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선택을 할 것이라는 기존의 자본주의적 전제를 공유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베블런이 보기에 하위 소득계층이 처한 현실은

'합리적 인간'으로서 존재할 여건 자체가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속된 말로 '하루 벌어 하루 살기'도 힘든 일상 속에서 하위 소득계층은

기존의 제도와 생활양식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다.

아니 오히려 기존 제도와 생활양식에 다른 어느 계층보다 충실해야만 그나마 기초적인 생존이 가능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위 소득계층은 당연히 기존 제도와 생활양식에 가장 순종적이 될 수밖에 없고(되어야만 하고)

결국 그렇게 그들은 '보수적'이 된다는 게 베블런의 분석이다.

- 뉴스타마 김진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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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이래 늘 혁명을 꿈꾸던 사람들이 있었다.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혁명은 그들삶의 전부였다. 내 젊은 시절에도 함께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았다. 혁명이라는 단어 속에는 ‘사회주의’에 대한 지향이 담겨있었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인가 혁명이란 말은 우리 곁에서 멀어졌다. 어느 때부터인가? 남한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사노맹이 대부분 검거되고 나서부터였을까? 아니면, 소련과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이 무너지면서부터였을까?


아무튼, 혁명은 우리에게 추억처럼 조금씩 멀어지고 대신 ‘제 3의 길’이니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니 하는 말들을 자주 듣게 되었다. ‘혁명’이란 단어가 멀어지고 난 후에 세상을 바꾸는 꿈을 꾸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향하는 사회를 구체적이고 명시적으로 표현하는데 어려움을 격기 시작했다. 


자본주의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 사람들은 ‘공동체’, ‘지속가능성’, ‘생명’, ‘평화’, ‘평등’ 같은 다소 추상적인 단어들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설명하지만, ‘혁명’을 말하던 그 때 만큼 명쾌하지도 역동적이지도 않다. 1980년 대 스테디셀러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쓴 박세길이 15년을 각고 한 끝에 ‘혁명’에 불을 지피는 새로운 저작 <추억의 혁명 미래의 혁명>을 세상에 내놨다.



이 책은 프랑스 대혁명, 산업혁명, 마르크스주의의 태동, 세계 1차대전과 러시아혁명, 중국혁명, 조선혁명, 베트남혁명, 68혁명, 쿠바혁명, 브라질 노동자당, 문화대혁명, 개혁개방, 소연방해체와 현실사회주의 붕괴, 베네수엘라의 새로운 도전, 멕시코 사파티스타 봉기, 반세계화 공동투쟁, 세계사회포럼, 쿠바농업혁명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 이후 일어난 크고 작은 혁명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렇지만, <추억의 혁명, 미래의 혁명>은 단순한 혁명사가 아니다. 지은이는 신자유주의 이후 새로운 세상에 대한 분명한 비전을 제시하기 위한, 그리고 민중이 주체로 우뚝 서서 역사를 새롭게 열어갈 수 있는 조건과 비전을 제시하기 위하여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그는 소련이 무너지던 즈음, 처음 ‘혁명’이라는 화두를 붙들고 씨름하기 시작한 이래 <추억의 혁명, 미래의 혁명>을 세상에 내 놓기까지 15년을 각고하였다고 한다.


지난 15년간, 1만매에 이르는 초고를 썼다가 마침내 2,600매에 이르는 원고로 갈무리하기까지 저자의 고심참담은 각별하였다고 한다. 


“세상의 변혁을 꿈꾼 사람 입장에서 지나온 역사를 되돌아본다는 것은 상당히 고통스런 광정일 수 있다. 그 속에는 분명하게도 쓰라린 패배의 장명이 가득 담겨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한때는 더없이 고결하게만 느껴졌던 혁명의 역사가 숱한 오만과 편견, 어리석음과 우유부단함을 가득품고 있음을 수긍하는 것 역시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저자 여는 글 중에서)


박세길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해온 근대 이후 혁명사를 “전 지구적 관점과 역사적 맥락 비추어”반추하면서 새로운 반전, 곧 미래혁명에 대한 전망을 세우고자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역사발전이란 과거의 부정을 통해 미래를 새롭게 창조해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과거의 답습으로는 결코 새로운 혁명에 성공할 수 없다고 한다. 따라서 마땅히 지난한 재창조의 과정이 있어야하며 신자유주의 이후에 올 새로운 세계를 ‘혁명’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위하여 노력하였다는 것이다. 


모든 혁명은 프랑스로 통한다. 


박세길은 670쪽에 이르는 대작인 <혁명의 추억, 미래의 혁명>을 쓰면서 그 첫 장에 프랑스 대혁명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프랑스 혁명을 일컬어 근대혁명의 ‘빅뱅’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음악의 아버지를 바하로 철학의 아버지를 탈레스로 혹은 근대 철학의 아버지를 데카르트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는 혁명 중의 혁명, 모든 혁명의 아버지 격인 혁명이 바로 ‘프랑스 혁명’이라고 한다. 


“특히 중요한 것은 봉건적 특권에 맞서 민주주의 원칙을 옹호하는 것으로써 시민혁명의 보편적 가치를 선명하게 창출했다는 점이다. 그럼으로써 프랑스 대혁명은 각종 특권의 확대로 민주주의가 위협받을 때마다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든지 끊임없이 부활할 수밖에 없는 영원한 현재진행형이 되었다.”(본문 중에서)


루이 16세의 군대소집에 맞선 국민회의의 민병대 조직과 자치위원회 구성에 뒤이은 1789년 7월 14일에 일어난 바스티유 점령은 영원히 지속될 것 같던 지배질서가 일순간에 허물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스티유 점령 이후 군중은 격렬한 형태로 지존질서와 지배세력을 공격하였으며, 농촌에서는 폭동이 확산되고 귀족습격, 봉건문서 폐기, 지방행정조직 파괴와 같은 봉건체제에 대한 저항이 다반사로 일어났다고 한다. 


프랑스 대혁명 시기에 나타난 가장 중요한 현상으로 폭발적으로 확산된 정치클럽이다. 1789년과 1795년 사아에 5500개 지역에 약 6000개의 정치 클럽이 존재하였으며, 구성원은 대략 50만에서 60만에 이르렀다고 한다. 프랑스혁명이 표류하면서 혁명전쟁을 통해 부상한 나폴레옹이 집권하게 되는데, 이것은 대혁명과 논리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전제군주제의 부활로 나타났다. 


지은이는 나폴레옹을 “군주형 혁명 지도자”의 첫 번째 사례로 평가하고 있다. 그는 뛰어난 군인이자 유능한 정치가였기 때문에 대혁명의 성과를 계승하고 발전하는 것이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받는 길임을 정확히 간파하였다는 것이다. 


“나폴레옹 법전 편찬을 통해 법 앞에서 만인의 평등, 양심과 종교 선택의 자유, 재산권 보장, 농노제 폐지 등 대혁명 과정에서 구호로 제기된 사항들은 법체계에 담았다. 그밖에도 중앙집권적 국가체제를 정비하고 법원, 학교 등에서 근대적 모델을 확립하는 등 적잖은 성과를 남겼다.”(본문 중에서)


그러나, 혁명의 적이었던 전제군주제는 혁명이 추구했던 참정권 확대를 극도로 제약하고 보통선거제를 후퇴시켰다고 한다.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노동자계급을 형성시키고 자본주의를 태동시키는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자본주의는 생산력 발전을 비약적으로 이끌어내어 수많은 위기와 모순에도 불구하고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그렇다면, 왜 산업혁명은 영국에서 시작되었을까?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원인은 전혀 다른 곳에 있다. 돈을 버는 것이 최고의 가치로 간주되고 마음만 먹으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사회적 환경이 바로 그것이다. 곧 부르주아적 질서와 문화의 확립이야말로 산업혁명을 야기한 결정적 요인이었다.”(본문 중에서) 


<혁명의 추억, 미래의 혁명>에서 지은이는 명예혁명 등 일련의 정치혁명을 통해 대륙 국가들에 비해 부르주아의 지배가 일찍 확립되었기 때문에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되는 토대 가 되었다는 것이다. 산업혁명이 후 영국 부르주아들의 이익 증대는 수백 퍼센트, 수천 퍼센트에 이르는 수직상승이 이루어졌으며, 가히 ‘혁명’이라 부를 만한 상황이 지속되었다고 한다. 


자본가들이 거둔 엄청난 이윤 축적은 노동자들에 대한 극단적이 착취에 의해서 이루어졌고, 이후 노동자들은 여러 혁명에서 계급투쟁의 주력을 담당하게 되었다고 한다.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대륙으로 넘어와 프랑스로 퍼져나갔고, 선거법에 대한 불만이 촉발시킨 1848년 혁명으로 분출되었다. 그러나 2월 혁명에서 정권을 잡은 부르주아는 노동자들 권력으로부터 소외시켰고, 그해 6월 새로운 봉기를 일으키지만 좌절로이어진다.


좌절된 듯이 보였던 노동자들의 혁명은 인류역사상 최초로 전시민이 참여하는 보통선거 실시로 이어지는 파리 코뮌으로 이어진다. 파리 코뮌은 선출된 의원이 입법과 집행을 동시에 책임지는 형태였으며, 철저한 인민주권 원칙에 입각한 직접민주주의 체제를 표방하였다고 한다. 가히 혁명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 혁명은 1968년 이른바 68혁명으로 이어진다. 대혁명 이후 프랑스는 항상 세계 혁명사의 중심에 있었다. 


혁명에 날개를 단 마르크스와 공산당선언 


한편, 지은이는 자본주의 이후 시작된 ‘혁명’에 날개를 달아준 것은 ‘마르크스’라고 평가한다. 엥겔스와 함께 쓴 공산당선언은 그 엄청난 파급효과를 감안한다면 그 자체를 역사의 일부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1848년 공산당선언이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 대략 150년의 세월은 바로 그 메시지를 실현하기 위해 다양한 실험이 일어났던 시기였다. 이는 다른 각도에서 보면 지난 150년의 역사는 공산당선언을 검증한시기라고도 볼 수 있다.”(본문 중에서) 


1848년 2월 25일 런던에서 공산당 선언이 발표된 후, 유럽은 급속히 혁명의 폭풍에 휩싸였다는 것이다. 프랑스, 남서독일, 바이에른, 베를린, 빈, 헝가리, 밀라노를 거쳐 불과 몇 주일 만에 유럽 10개국에서 혁명이 일어나고 바다 건너 남미로 번져갔다고 한다. 또한 마르크스가 쓴 ‘자본론’은 자본주의의 본원적 모순을 정확히 진단함으로써, 이후 일어난 모든 ‘혁명’에 이론적 기반을 제공하였다는 것이다.


무엇을 혁명의 성공으로 볼 것인가에 따라서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어쨌든 역사상 최초로 집권에 성공하는 혁명은 러시아 혁명이다. 1917년 10월 마침내 볼세비키가 러시아 혁명에 성공한 이후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독일 패망을 딛고 동유럽일대로 사회주의혁명이 확산되었다. 이후 동아시아에서는 중국과 베트남이 혁명에 성공한다. 


<혁명의 추억, 미래의 혁명>을 쓴 박세길은 앞서 일어난 혁명이 어떻게 새로운 혁명을 위한 디딤돌 역할을 하는지에 주목하여 혁명역사를 되돌아본다. 러시아혁명을 딛고 이루어지는 동아시아에서 중국과 조선 그리고 베트남 혁명, 프랑스 68혁명, 쿠바혁명과 남미혁명을 조망하면서, 그 한계와 파급효과를 냉철하게 분석한다.


실패로 보이는 혁명이, 초기부터 국가사회주의 병폐를 안고 출발한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이 다른 나라, 다른 혁명에서 어떻게 극복되는지를 살펴보는데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은이는 성공한 혁명에 면죄부를 주는 경우도 없고, 실패한 혁명에 굴레를 씌우는 일도 없다. 실패로 보이는 혁명에서도 희망을 발견하고, 미래의 혁명에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지 밝히는데 주력하였다.


또한 혁명에 반대편에 서 있는 자본주의가 어떻게 공고하게 지탱하기 위하여 자기변혁의 과정을 거치는지에 대해서도 고찰하고 있다. 세계자본주의의 중심이 된 미국자본주의의 성장, 케인즈주의와 국가자본주의, 복지국가와 사회민주주의의 태동 그리고 그 한계와 문제점에 대해서도 살펴보고 있다.  


아울러, 소련과 중국을 중심으로 대약진 운동과 문화대혁명, 개혁개방노선과 중화주의 그리고 페레스트로이카와 고르바초프실험의 실패, 중소분쟁과 소련의 고립, 정체의 늪에 빠진 소련체제 그리고 소연방의 해체에 이르는 혁명을 거꾸로 돌려놓은 일련의 사건들에 대하여도 역사적 검증을 시도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혁명은 ‘새로운’ 혁명이다. 


세상의 어떤 혁명도 앞서 이루어진 혁명을 그대로 따라서 성공한 경우는 없다. 모든 혁명은 다른 조건, 다른 상황에서 각기 다른 세력이 혁명의 주체가 되어서 새로운 혁명의 모델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에 특별히 주목하고 있다. 피억압 계층은 늘 혁명을 통해 민주의의를 확장하고 새로운 분배를 실현해나가고 인민이 중심이 되어 복지를 확장해나간다는 것이다. 


20세기에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대표적인 사건은 러시아 혁명과 소련붕괴라고 한다. 러시아 혁명은 인간의 힘으로 기존의 질서를 타파하고 새로운 질서를 확립할 수 있다는 확신을 안겨주었지만 소련붕괴는 정반대의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소련 붕괴는 현존하는 자본주의 질서에 대한 도전과 새로운 실험을 지극히 허망한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그에 따라 사회혁명을 꿈꾸던 사람들은 극심한 혼돈과 지적 공황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소련 붕괴와 함께 전세계적 차원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의 마지노선이 함께 붕괴된 것이다.”(본문 중에서)


결국 소련붕괴는 20세기에 자본주의의 승리를 확정짓는 사건이 되었고, 자본주의는 아무런 제약없이 질주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나아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670쪽이나 되는 두꺼운 책 <혁명의 추억, 미래의 혁명> 중에서 300여 쪽은 지나간 ‘혁명’을 반추하는 내용이다.


지은이는 책의 절반 이상을 할애하여 소련붕괴이후 승승장구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실체를 규명하고, 다시 사람이 살만한 세상을 꿈꾸는 새로운 사례로 쿠바와 베네수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새로운 도전을 살펴본다. 또한 지식정보사회에서 노동계급이 새로운 선진계급으로 등장하는 과정과 기업혁명을 통해서 주주독재에서 민주적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과 당위성을 짚어본다.


박세길은 기업혁명, 자본혁명, 시장혁명을 통해서 생태주의, 문화주의, 여성주의, 평화주의가 실현되는 사회, 세상의 중심축이 자본에서 사람으로 이동하는 여러 가지 징후들을 발견하고 있다. 또한 세계 곳곳에서 실험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기업혁명, 자본혁명, 시장혁명의 사례들을 낱낱이 찾아내어 소개하고 있다. 


지은이는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새로운 혁명을 이루어가는 방안으로 주주(자본)의 절대권력을 타파해야 하며, 궁극적으로 부르주아 지배체제의 해체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새로운 시대 사회혁명은 과거와 같은 소수 엘리트가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연대에 기초한 인민의 자주적 해결 능력을 고양시킴으로써” 이루어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사회연대가 중심을 이루고 국가는 지원과 조정 임무를 수행하는 새로운 형태의 국가로서 ‘사회연대국가’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다.  


기업, 자본, 시장 혁명을 통해 ‘사회연대국가’로 


아울러 소수 엘리트에 권력이 집중되는 대의민주제의 한계를 뛰어넘어 사회구성원의 연대와 협력을 통한 자치실현이 국가의 강제기능을 대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인민에 의한 권력통제가 가능한 조건으로 전자민주주의 도입, 국민발안제, 국민투표제, 국민소환제 제도화, 그리고 의원숫자를 대폭 늘리는 의회기구 개혁과 의원에 대한 특권폐지는 기본적인 전제조건에 해당된다고 한다. 아울러 지역 공동체에 기초한 복지모델과 자치권력을 강화하는 현존하는 제도로서 스위스 모델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스위스는 최고 7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수백에서 수천 명 규모의 3072개의 공동체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공동체는 직접민주주의에 입각하여 운영되며, 스위스 연방의 실질적인 최고 주권기관으로서 지위를 갖고 있다. 연방정부는 이러한 공동체의 연대를 보장하는 공동사무국의 형태를 띨 뿐이다. 말하자면 스위스는 현존하는 코뮌 국가라고 할 수 있다.”(본문 중에서)


그리하여 지은이는 생태, 문화, 여성, 평화와 같은 대안의제에 기반을 둔 사회권력과 지역공동체에 기반을 둔 자치권력이 국가권력을 형성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사회권력과 자치권력은 사회연대를 기반으로 직접 행사하는 권력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일치한다는 것이다. 


<혁명의 추억, 미래의 혁명>을 쓴 박세길은 세상의 변혁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사회연대국가’라는 새로운 길을 가는 지도를 내놨다. 이 책이 가진 탁월함은 신자유주의가 가진 문제점과 모순을 나열하는데서 크게 한 걸음을 내디뎠다는데 있다. 소련이 붕괴한 후 누구도 딱 부러지게 이야기하지 못한 신자유주의 이후 새로운 사회에 대한 구체적인 밑그림을 내놨다.그는 자신이 내놓은 밑그림이 “다양한 토론을 촉발시키고 사고의 혁신을 자극하기를 기대”한다고 한다.


짧지 않은 서평이지만 내 글을 통해<추억의 혁명, 미래의 혁명>을 온전히 소개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사회연대국가로 나아가는 기업혁명, 사회혁명, 시장혁명에 대한 구체적 방안과 사례는 찾아 읽는 것은 독자들에게 남겨진 몫이다. 


신자유주의를 넘어 더 많은 사람들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그런 세상을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다. 단언하건데, 소련붕괴 이후 나온 그 어떤 책보다 가장 분명하게 다시 ‘혁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책이다. 박세길의 해박한 지식과 사회변혁을 향한 뚜렷한 지향이 담긴 책이다.



목차


여는 글 혁명, 추억의 반추 그리고 미래의 전망 


PART 01 혁명의 열정, 역사를 바꾸다


CHAPTER 01 근대혁명, 계급투쟁으로 뿌리를 내리다 

근대혁명의 빅뱅, 프랑스 대혁명

산업혁명과 노동자계급의 형성 

혁명에 날개를 달아준 마르크스주의 


CHAPTER 02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 시련을 먹고 자라다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 

극한을 넘나드는 혁명의 물결 

스탈린 시대의 빛과 그림자 


CHAPTER 03 동아시아 혁명, 새로운 꽃을 피우다 

중국혁명, 그 기나긴 장정 

파란과 곡절을 딛고 선 조선혁명 

작은 거인의 분투, 베트남혁명 


PART 02 역사는 한계를 딛고 전진한다 


CHAPTER 04 자본주의 세계의 3중주, 기묘한 역설을 말하다 

미국, 자본주의 세계의 중앙정부 

케인스, 자본주의의 도약대 마련 

복지국가와 사회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도전, 68혁명 


CHAPTER 05 제3세계, 새로운 지평을 열다

냉전의 최전선 한반도, 그 격정의 드라마

혁명의 활화산 

미국의 개입 

민중의 반격


CHAPTER 06 중국의 변신, 새로운 전범을 만들다 

역사를 거꾸로 돌린 대약진운동

극단을 향해 치달은 문화대혁명

개혁개방의 길

표면화되는 중화주의 


CHAPTER 07 소련의 붕괴, 한쪽 날개가 사라지다 

중소분쟁과 소련의 고립 

정체의 늪에 빠진 소련 체제 

고르바초프 실험의 실패 

기묘한 소연방의 해체 


PART 03 신자유주의 세계화, 바닥을 드러내다


CHAPTER 08 자본주의, 위기에서 탈출하다

장기 불황과 신자유주의의 부상 

초국적자본의 세계 정복

주주자본주의의 태동 


CHAPTER 09 포획당한 한국 경제, 허울만 남다 

성장의 원동력과 시스템 사이의 모순 

새로운 점령군

저성장의 구조화 


CHAPTER 10 신경제 10년 천하, 무덤이 가까워지다 

퇴로를 상실한 신경제 

무너지는 달러 제국 

일극체제에서 다극체제로 

저항의 세계화


PART 04 대반전, 이제 다시 ‘사람’이다


CHAPTER 11 전환기, 창조적 파괴의 현장들

생사의 갈림길에 선 사회민주주의

베네수엘라의 대담한 도전 

쿠바, 농업에서 출구를 찾다 

새로운 출발선에 선 북한 


CHAPTER 12 

세상의 중심축 이동, ‘자본’에서 ‘사람’으로 

노동혁명, 기계의 노예에서 생산의 주인으로

기업혁명, 주주독재에서 민주적 공동체로 

자본혁명, 착취의 도구에서 사회혁명의 동력으로 

시장혁명, 탐욕의 기지에서 사회화의 무대로 


CHAPTER 13 미래가치의 구현, 관점의 혁명으로부터 

생태주의, 생존의 조건 

문화주의, 행복의 조건

여성주의, 미래가치의 모태 

평화주의, 공존의 조건 


CHAPTER 14 사회연대국가, 주권재민의 실현 

‘창조적 다수’의 소통과 연대 

인민에 의한 권력 통제 

공동체에 기초한 복지 모델과 자치권력 

생존 철학으로서의 공유와 협력

[출처: http://www.ymca.pe.kr/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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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자 : 가끔 TV나 신문 보다 보면 확 갈아엎어 버리고 싶을 때가 많은데요.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그렇게 하는 것은 양심이 아닌 것 같고요. 양심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판단을 해야 할까요?

 

- 윤홍식 대표 답변 : 정당은 서비스업체일 뿐이다

 

제나라의 선왕이 맹자에게 "탕왕이 걸을 치고, 무왕이, 다 성인급으로 대우받는 분들인데, 이분들이 주나라를 쳤다고 하는데, 그런 일이 있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맹자가 말하기를 "경전에 있습니다." "아니 신하가 임금을 시해하면 됩니까?" 임금 입장에서는 당연히 말이 안 되는 얘기겠죠. 반역아닙니까 라구요.

 

그런데 맹자가 이 말을 해요. "사랑을 해치는 자를 우리가 해치는 자라고 하고, 정의를 해치는 자를 상하게 하는 자라고 합니다. 해치고 상하게 하는 사람을 일러 ‘홀로된 사내’, 즉 천하에서 왕따가 된 사내, 이 버림받은 사내인 주를 주살했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임금을 시해했다는 말은 못들었는데요."라고 말합니다. 홀로 됐다는 것은 천하가 다 미워하는 사내, 우리나라에도 있을까요? 이해되십니까?  맹자 무섭죠?

 

임금노릇을 했어야 임금이지. 임금은 국민 전체를 나와 둘로 보지 않고, 공적인 서비스, 서비스를 해줄려면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되잖아요. 지금 장사하는 것이나 똑같습니다. 백성이  고객이죠. 돈내는데가 백성이잖아요. 백성이 세금내서 정부는 먹고 사는 거잖아요. 국민 세금으로 먹고 사는 조직은 임금부터 아래까지 다 똑같죠.

 

동양에서는 '사농공상'(士農工商) 중에 '농공상'은 다 자기가 생산해서 먹거리를 만드는데, 사(士)는 농공상을 잘 관리해주고 돈을 뜯어가는 조직입니다. 그런데 이 사(士)는 철저히 공적인 서비스죠. 사적인 것도 아니에요. 국가적으로 세금을 받아서 월급을 받고 서비스를 주는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이 사(士)라는 업체, 즉 여러 업체가 만약에 경쟁하면 가격도 떨어지고 서비스도 더 좋아지지 않을까요?

 

지금은 이런 것을 제한시켜 놓고 선거, 우리 몇중에 한번 뽑아봐라 라고 하는 이 자체가 저는 독재라는 겁니다. 시장장벽을 높여가지고 고를 수 있는 업체가 대기업 몇 개밖에 없어요. 지금 물건 사는 것과 똑같지 않습니까? 지금 어느 당, 어느 당 아니고는 고를 수도 없어요. 거의 독과점에 해당하게 이미 그렇게 만들어놨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최고의 서비스를 못받는 겁니다.

 

아주 제한된 당, 몇 개의 당에서 골라야 하는데, 여기서 서비스가 개판이면 다른데서 고를 데가 없는 상황. 예전엔 어떤가요? 한 가문이 이것을 맡아서 하고 있었죠. 더더구나 이런 말 하기가 힘들죠. 그러니 한 가문이 왕을 계속 하는 입장에서는 탕왕도 어디 감히 반역을 하냐고 말하는 것 아닙니까? 아닙니다. 서비스가 개판이면 갈아치울 수 있습니다. 천하에서 왕따가 된 사내라는 건 서비스가 전혀 국민들한테 안가니까 천하가 다 미워하게 된 존재죠. 이것들이 돈을 가져가지 말던가. 서비스를 잘 해주던가. 그런데 돈은 돈대로 더 가져가고 서비스는 전혀 안돌아오고요. 그래서 왕따가 된 사내를 치는건 당연하다 라고 맹자가 이야기 합니다.

 

그것은 국민 입장에서, 국민의 대표로서 계약을 해지할 수도 있는 거다. 그리고 더 좋은 서비스를 약속하면 되는 거잖아요. 임금은 고객 만족을 최우선시 하는 공복(公僕)이기 때문에 이 논리가 가능한 겁니다. 그래서 맹자는 이미 임금은 더 천하고 백성이 제일 귀하다고 했잖아요. 임금보다는 나라가 귀하고, 나라보다는 백성이 귀하다고 맹자가 얘기한 게 있죠. 이 입장에서 볼 때는 서양의 사회계약론을 이미 다 담고 있는 내용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계약 위반이니까 그런 건 임금 쳤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라고 말해 버렸습니다.

 

 

민심은 천심이자 양심

 

이것을 동양의 『대학』에서는 “강고에 이르기를 천명은 일정하지 않다.”라고 합니다. 천명은 하늘이 네가 왕 하라고 명령하는 게 천명입니다. 그런데 천명은 일정하지 않다고 말 하는 건 무서운 말이죠.

 

“선하면 얻고 선하지 못하면 잃는다.” 서비스가 좋으면 왕 계속 하라고 하늘이 해주고, 서비스가 개판이면 하늘이 업체를 바꿔버린다는 겁니다. 그런데 천명, 민심이 천심이기 때문에 사실은 천명이라고 하지만 하늘의 명령은 보이지 않죠. 뭘로 바뀝니까? 민심이 떠난 걸로 바뀝니다.

 

동양에서 천명이라는 건 민심과 둘이 아니에요. 농공상(農工商)의 마음이 민심이죠. 자, 그런데 이거 하나 생각하십시오. 정치학에서 계산하는 민심은 여러분의 단순한 개인적인 욕망이 아니에요. 욕망이라 하더라도 국민 전체에 걸려있는 마음을 민심이라 합니다. 지금 국민들이 각자각자 품고 있는 마음이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마음이에요. 그래서 국민들은 우리 국민한테 그게 해가 된다, 이익이 된다는 걸 알고 있죠. 그것을 계산 하는 마음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나한테 이익이 된다고 하면 그건 민심이 아니고 사심(私心)이에요.

 

그러니까 민심은 공적인 마음입니다. 민심이 이 왕을 지지해 줬잖아요. “네가 우리한테 한번 서비스를 해 줘라.” “네가 하는 게 제일 잘 할 것 같다.”라고 국민들이 마음을 모아서 “네가 우리에게 제일 이득이겠다.”하고 맡겼는데 만약 서비스가 안 좋으면 민심이 떠나버리겠죠.

 

민심이 곧 천심입니다. 개인적인 사심은 천심이 안 돼요. 하늘의 마음은 한 두명, 소수가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 이득이 되게 해주고 싶은 게 부모로서의 하느님의 마음이기 때문에, 백성의 마음과 부모의 마음이 같습니다. 백성이 자식이고 부모가 하늘이기 때문에 두 마음은 같아요. 국민한테 해를 끼친 대통령을 둘 다 양심이 있기 때문에 싫어하게 되어 있어요.

 

사실은 민심은 양심이에요. 백성들이 갖고 있는 양심적인 부분, 그러니까 내 개인 욕심이 아닙니다. 한 임금이 잘못했을 때 꼭 나한테 해가 돼서 화내시는 거 아니죠? ‘그러면 국민한테 해롭잖아!’ 이것 때문에 화내시죠. 그게 양심이에요. 나와는 상관이 없어요. 나는 그걸로 해서 피해를 안 볼지도 모르지만 누군가라도 피해본다는 거 자체가, 이건 국민한테 해(害)라고 판단하는 그 마음이 여러분의 양심이면서 동시에 민심이에요. 백성 전체를 위하는 마음.

 

이것이 하늘 마음과 같기 때문에 만약에 백성이 이 서비스 업체에게 등을 돌려버리면 천명이 떠난 겁니다. 그러면 국민은 이미 마음에서는 새로운 업체를 찾는다는 얘기예요. “이 대통령은 아니다.” “우리의 리더는 다른 사람이어야 한다.”라고 합니다.

 

지금 우리가 제한된 민주주의 시스템에서 그 어떤 해결책이 없어서 못하는 거지, 갈아치우고 싶으실 때 많이 있으시죠. 그런데 한 개인의 욕심으로 갈아치우면 큰일 나겠죠. 국민 전체의 의견이 암묵적으로 합의가 되어서 갈아치울 때 그게 동양에서 민심인 거고, 천명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선거 안 했으니까 동양은 민주주의 아니야.” 이러시면 안 돼요. 서양식 민주주의만 가지고 보시면 안 돼요. 여러분이 선거를 할 수 있는 것은 제한이 되어 있습니다. 동양은 더 폭넓게 열어 놓고 보는 겁니다.

 

심지어 탕왕이 걸왕을 물리친 것마저도 백성이 탕왕을 다 지지해 줬거든요. 그 자체도 이미 국민들의 의사표현인 겁니다. 주권의 행사에요.

 

“야! 네가 쟤 좀 끌어내려줘!”

“나오라고 했는데 말을 안 듣네?”

“분명히 우리가 얘기했는데 안 내려오네?”

“네가 좀 끌어내려줘” 하고 “우린 너희 업체한테 맡길게”하고 탕왕한테 맡겨버린 거예요. 그래서 탕왕이 단순히 반역한 것이 아닌 겁니다.

 

탕왕이 반역이 아닌 이유는 백성들이 탕왕을 지지해줬기 때문에 그래요. 그러니까 민심이 움직여버리면 이건 반역이라고 말을 못해요. 민심이 걸왕을 버리고 탕왕한테 “당신들이 우리에게 서비스를 해줘야겠소!”하고 맡겨 버리면 그 전 업체는 빨리 나가줘야 하는 업체가 되어 버리겠죠. 그때 일어나는 건 반역이라고 안 보는 겁니다.

 

동양의 이론은 이런 게 있어요. 이걸 잘 아셔야 됩니다.

- 출처: http://v.daum.net/link/52250179 

 

시간 되시는 분은 팟캐스트에서 이미 15만명이 청취한 동양의 사회계약론인 정약론의 『탕론』강의를 한번 들어 보십시오.  속이 뻥 뚫리도록 통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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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준공초[ 全琫準供草 ]


설명 :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 전봉준이 법정의 심문에 답한 재판기록. 규장각도서.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 전봉준이 법정의 심문에 답한 재판기록. 전 1책. 8,000자 안팎의 간략한 책자이다. 내용은 심문 순서에 따라 초초문목(初招問目)·재초문목(再招問目)·3초문목·4초문목·5초문목에 걸치고 있다.


 초초문목은 1895년(고종 32) 2월 9일, 재초문목은 2월 11일, 3초문목은 2월 19일, 4초문목은 3월 7일, 5초 문목은 3월 10일에 있었던 심문 내용이다. 초초문목에서 재판관은 전봉준에 대한 심문에서 주로 1894년 정월의 고부민란과 3월의 동학농민 봉기와의 관계, 농민과 동학교문과의 관계 등을 집중적으로 추궁하고 있다.


 여기에서 전봉준은 처음 고부민란의 단계에서는 봉기한 농민 중 동학교도는 적었고 원민(寃民)이 더 많았고 지방관의 가렴주구에 대한 항거로 봉기가 불가피했다고 답변하였다.


 이 초초문목에서 전봉준은 동학교문과의 관계를 분명히 하고 있지 않지만, 재초문목에서는 자신이 동학의 접주임을 분명히 밝히고 손화중(孫和中)·최경선(崔慶善) 등 다른 동학 접주와의 관계를 말하고 있다. 또한 동학의 교리적 성격, 교단의 직제까지 설명하고 그가 동학교문에 입도하게 된 까닭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제3·4·5초문목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심문의 대부분이 그와 대원군과의 관계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전봉준은 대원군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 밖에 동학농민혁명의 원인, 경과 등에 걸친 그의 진술이 잘 나타나 있다.


 전봉준 공초는 그에 대한 다른 기록인 재판 판결문 원본과 함께 그의 사상 및 동학농민혁명의 성격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전봉준 공초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원본이 소장되어 있다. 1959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이를 대본으로 하여 한국사료총서 10, ≪동학란기록≫ 상·하 2권 중 하권에 수록하였다.


≪참고문헌≫ 東學亂記錄 上下(國史編纂委員會, 韓國史料叢書 10, 1959)

≪참고문헌≫ 全琫準供草의 分析-東學亂硏究-(金容燮, 史學硏究 2, 1959)

≪참고문헌≫ 東學思想과 民衆蜂起(金昌洙, 崇山朴吉鎭博士古稀紀念, 韓國近代宗敎思想史, 1984)

≪참고문헌≫ 全琫準과 東學農民革命(金昌洙, 韓國近代의 民族意識運動, 同和出版公社, 1987)


 


전봉준 공초 심문내용 


전봉준 공초  

全捧準 初招問目(제1차 심문과 진술)

開國 五百四年 二月 初九日(서기 1895년 2월 9일(음))   

開國 五百四年 二月 初九日 

(서기 1895년 2월 9일(陰)) 


問 : 汝姓名爲誰 


너의 이름은 누구인가? 


供 : 全琫準 


전봉준이다.  


問 : 年幾何 


나이는 몇 살인가? 


供 : 四十一歲 


41세이다.  


問 : 居在何邑 


살고 있는 곳은 어느 고을인가? 


供 : 泰仁면山外面東谷 


태인 산외면 동곡리이다. 


問 : 所業何事 


하는 일은 무슨 일인가? 


供 : 以士爲業 


선비로서 일하고 있다. 


問 : 今日法官員 日本領事會同審判 公正決處矣一一直告 


오늘은 법무관원과 일본영사가 회동심판하여 공정히 처결할 터이니 일일이 바로 고하라. 


供 : 當一一直告 


일일이 바로 고하겠다. 


問 : 俄旣明諭 東學事 非徒一身相關 卽國家大關 雖有關係 於何等高官 勿隱諱直告 


아까 이미 명유하였거니와 동학사는 일신에만 상관할 일이 아니라 즉 국가에 크게 관계되는 것이니 비록 어떠한 높은 지위에 관계되는 것이 있어도 숨기지 말고 바로 고하라. 


供 : 當依所敎爲之 當初出於本心之事 與他人無關係 


마땅히 소교에 의하려니와 당초 본심에서 나온 일로 타인과 더불어 관계가 없다. 


問 : 汝是全羅道東學魁首云 果然耶 


너는 전라도 동학의 괴수라 하는데 과연 그런가? 


供 : 初以倡義起包 無東學魁首之稱 


처음은 창의로 기포하였고 동학괴수라 일컬은 것은 없었다. 


問 : 汝於何地 招集人衆乎 


너는 어디 곳에서 인중을 불러 모았느냐? 


供 : 於全州·論山地招集矣 


전주, 논산 땅에서 의병을 모았다. 


問 : 昨年三月間 於古阜等地 都聚民衆云 有何事緣而然乎 


작년 3개월간 고부 등지에서 민중을 도취하였다 하는데 어떤 사연이 있어 그렇게 하였는가? 


供 : 其時古阜 額外苛斂幾萬兩 故民心寃恨 而有此擧 


그 때 고부군수는 액외의 가렴이 기만량인 고로 민심의 원한으로 이 거사가 있었다. 


問 : 雖曰貪官汚吏 名色必有然後事 群言之 


비록 탐관오리라 하여도 반드시 명색이 있었을 것이나 상세하게 말하라. 


供 : 今不可盡言其細目 而略告其槪 一, 築洑民洑下 以勒政傳令民間 上畓則 一斗落收二斗稅 下畓則一斗落收一斗稅 都合租七百餘石 陳荒地許其百姓耕食 自官家給文券 不爲徵稅云及其秋收時 勒收事 一, 勒奪富民錢葉二萬餘兩 一, 其父曾經泰仁 故爲其父建造碑閣云 勒斂錢千餘兩 一, 大同米民間徵收以精白米十六斗式準價收斂 上納則貿 米 利條沒食事 此外許多條件 不能盡爲記得 


지금 그 세목을 다 말하지 못하겠으나 그 대개를 간단히 고하리라. 일(一)은 민보아래 축보하고 늑정으로 민간에 고시하여 상답인즉 일 두락에 이수세를 거두고 하답인즉 일두락에 일두세를 거두니 벼가 도합 700여 석이요 진황지를 백성들에게 그 경식을 허하고 거두니 관가로부터 문권을 주어 징세아니한다 하더니 그 추수시에는 늑징한 일이요 일(一)은 부민에게 돈을 2만냥을 늑탈한 일이요 일(一)은 그의 부가 일찍이 태인현감을 지낸고로 그 부의 비각을 건립한다고 돈을 늑렴한 것이 천여량이요. 일(一)은 대동미를 민간에서는 정백미로 16두씩을 준가로 수렴하고 상납시에는 추미로 바꾸어 이조를 몰식한 일이요. 이외 허다한 조건은 이루다 기득할 수가 없다. 


問 : 今所告中之二萬餘兩勒奪錢 行以何名目乎 


지금 고한 가운데 2만냥의 늑탈한 돈은 어떠한 명목으로 행하였는가? 


供 : 以不孝·不睦·淫行及雜技等事 構成罪目而行矣 


불효 불목 음행 및 잡기 등 명목으로 죄목을 구성하여 행하였다. 


問 : 此等事行於一處乎 且行於各處乎 


이 같은 일은 한곳에서만 행했나? 또는 각처에서 행하였나. 


供 : 此等事非止一處 爲數十處 


이 같은 일은 한곳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수 십처가 된다. 


問 : 至爲數十處 其中或有知名者耶 


수십 처에 이른다니 그 가운데 혹 이름을 아는 자가 있는가? 


供 : 今不可記得姓名 


지금은 이름을 기득할 수 없다. 


問 : 此外古阜 行何等事耶 


이 외에 고부군수가 어떠한 일을 행하였는가? 


供 : 今所陳事件 皆民間貪虐事 而築洑時勒斫他山數百年邱木 築洑役之民丁不給一錢勒役矣 


지금 진술한 바 사건이 모두 민간탐학의 일이나 축보 시에 타산(他山)에서 수 백년된 거목을 늑작(勒斫: 늑탈해 베는 것)하고 축보하는 역사(役事)에 민정을 일전도 주지 않고 늑역하였다. 


問 : 古阜 姓名誰 


고부군수 이름은 누구냐? 


供 : 趙秉甲 


조병갑이다.  


問 : 此等貪虐事 但止於古阜  耶 抑或無吏屬輩作奸耶 


이러한 탐학의 일은 다만 고부군수에게만 그쳤느냐 혹 이속배들의 작간은 없었는지? 


供 : 古阜 獨行矣 


고부군수 단독으로 행하였다. 


問 : 汝居生泰仁地 何故起?古阜乎 


너는 태인 땅에서 거생 했는데 어찌하여 고부에서 기요했느냐? 


供 : 居生泰仁 移寓古阜爲數年矣 


태인에서 살다가 고부로 이사한지 수년이 되었다. 


問 : 然則古阜有汝宇乎 


그런즉 고부에는 너의 집이 있느냐? 


供 : 入於燒灰中矣 


불타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고부에 있는 집은 불타버리고 없다고 진술했다. 안핵사 이용태가 태웠다는 뜻) 


問 : 汝於其時 無勒徵被害耶 


그때 너는 늑징의 피해가 없었느냐? 


供 : 無有矣 


없었다.  


問 : 一境人民 皆被勒斂之害 汝獨無有者何故 


일경 인민이 다 늑렴의 피해를 입었는데 네 홀로 피해가 없었다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供 : 以學究爲業 所謂田畓 只不過三斗落之故 


학구로써 업을 하기 때문에 전답이라고는 삼두락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問 : 汝之家屬幾名 


너의 가족은 몇 명이나 되느냐? 


供 : 家屬分六名 


가족은 합해서 6명이다. 


問 : 一境人民皆被勒斂之害 汝獨無有者 誠甚訝惑 


일경 인민이 모두 늑렴의 해를 입었는데 너만 홀로 없다하니 참으로 심히 의혹이 간다. 


供 : 矣身朝飯夕粥而已 何有勒斂之物 


나는 아침에는 밥, 저녁에는 죽을 먹을 정도이니 어찌 늑렴할 것이 있겠는가? 


問 : 古阜 到任 何年何月 


고부 군수가 도임한 것은 몇 년 몇 월인가? 


供 : 再昨年至·臘兩月間矣 


재작년 동지 섣달·양월간이다. 


問 : 到任的在何月 


도임이 꼭 어느 달인가? 


供 : 未詳 居年則爲一周年矣 


상세히는 알 수 없으나 거년이 일년이다. 


問 : 自到任之初 卽時行虐政乎 


도임하자마자 처음부터 곧 학정을 행하였는가? 


供 : 自初行之 


처음부터 행하였다. 


問 : 虐政自初行之 則何故不爲卽時起乎 


학정을 처음부터 행하였다면 무엇 때문에 즉시 기요하지 않았느냐? 


供 : 一境人民 忍之又忍 終末不得已而行之 


일경 모든 인민이 참고 또 참고 견디다가 종말에 부득히 행하였다. 


問 : 汝無被害 何故起 


너는 피해가 없었다 하는데 무엇 때문에 기요하였느냐? 


供 : 爲一身之害 而起包 豈可爲男子之事 民衆 歎 故欲爲民除害 


한 몸의 해를 위해 기포하는 것이 어찌 남자의 일이라 하겠는가? 중민이 원탄하는 고로 백성을 위해 재해코자 하였다. 


問 : 起包時 汝何以爲主謀乎 


기포 시에는 무엇 때문에 주모하였는가? 


供 : 衆民皆推矣身 使爲主謀 故依民言 


중민이 모두 나를 추대하여 주모로 삼은 고로 민언을 따랐다. 


問 : 衆民以汝爲主謀之時 至汝家乎 


중민이 너를 주모로 삼았을 때 너의 집에 왔었는가? 


供 : 衆民數千名 都聚矣家近處 故自然爲之 


중민 수 천 명이 나의 집 근처에 모인 고로 자연히 이를 하게 되었다. 


問 : 數千名衆民 何故推汝爲主謀乎 


수 천명 중민이 무엇 때문에 너를 추대하여 주모로 하였는가? 


供 : 衆民雖曰數千名 皆是愚農民 矣身則文字粗解之緣故 


중민은 비록 수 천명이나 모두가 어리석은 농민으로 나는 문자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問 : 汝住接古阜時 不行敎東學乎 


네가 고부에 주접해 있을 때 동학을 가르치고 있지 않았는가? 


供 : 矣身訓導如干童蒙 無東學行敎之事 


나는 훈도로서 어린 소년과는 관계하였으나 동학을 가르친 일은 없다. 


問 : 古阜地無東學乎 


고부 땅에는 동학이 없었는가? 


供 : 東學亦有 


동학이 역시 있었다. 


問 : 古阜起包時 東學多乎 民多乎 


고부 기포 시에는 동학이 많았는가? 원민이 많았는가? 


供 : 起包時 民·東學雖合 東學少 而 民多 


기포 시에는 원민 동학이 비록 합하였으나 동학은 적고 원민이 많았다. 


※ 봉기군중의 성분은 동학교인은 소수였고 대다수가 농민이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주도세력은 동학의 지도인물들이다.(사발통문) 


問 : 起包後行何事乎 


기포 후에는 어떤 일을 하였는가? 


供 : 起包後陳荒勒徵稅還推 而官築洑毁破矣 


기포 후에는 진황늑징세를 민간에 돌려주고 관에서 축조한 보를 파괴하였다. 


問 : 其時何時 


그때는 어느 때인가? 


供 : 昨年三月初 


작년 3월초이다. 


問 : 其後行何事乎 


그 후에는 어떤 일을 행하였는가? 


供 : 其後散落 


그 후 흩어졌다. 


問 : 散落後 因何事更起包乎 


흩어진 후 무슨 일로 다시 기포하였는가? 


供 : 其後長興府使李容泰 以按  使來本邑 起包人民 通稱以東學列名捕捉燒灰其家舍 無當者 則捕其妻子 而行殺戮故更起包 


그 후 장흥부사 이용태가 안핵사로서 본 읍에 와 기포 인민을 동학으로 통칭해서 이름을 나열하여 체포하고 그 가옥을 불사르며 당사자가 없으면 그 처자를 붙잡아 살육을 자행하는고로 다시 기포하였다. 


問 : 然則汝自初一次呈狀于官庭乎 


그런즉 너는 처음 일차적으로 관정에 소장을 올린 일이 있었는가? 


供 : 初次四十餘名等訴 而被捉囚 六十餘名當驅逐矣 


처음에는 40여명이 소를 제기하였으나 붙잡혀 갇히고 재차 60여명이 호소를 하니 또 쫓겨났다. 


問 : 等訴何時 


등소한 것은 어느 때인가? 


供 : 初次再昨年十一月 再次同年十二月 


처음의 호소는 재작년 11월이었고 재차는 동년 2월이었다. 


(이상 2개항의 문답에 의하면 전봉준은 2차에 걸쳐 진정을 했다. 첫 번째는 1893년 11월 농민 40여명이 진정하였다가 구속되고 두 번째는 동년 12월 60여명이 진정했다가 또 쫓겨났다.) 


問 : 再次起包 由按 使 而汝爲主謨乎 


재차 기포는 안핵사 때문이었는데 그때도 네가 주모했느냐? 


供 : 然矣 


그렇다.  


問 : 再次起包後 行何等事乎 


재차 기포 후 어떤 일을 하였는가? 


供 : 營軍萬餘名 欲屠戮古阜人民 故不得已爲接戰矣 


영군 만 여명이 고부 인민을 도륙코자 하는 고로 부득이 접전하였다. 


問 : 何處接戰 


어디서 접전했나? 


供 : 於古阜地接戰矣 


고부땅에서 접전했다.(황토현 싸움을 말함) 


問 : 軍器·軍粮 自何處區劃乎 


군기·군량은 어느 곳에서 구획했는가? 


供 : 軍器·軍粮 皆民間措辦矣 


군기 군량은 모두 민간에서 마련했다. 


問 : 古阜軍器庫軍物 汝不爲奪取耶 


고부 군기고의 군물 역시 네가 탈취하지 않았느냐? 


供 : 其時則無奪取 


그 때는 탈취한 일이 없었다. 


問 : 其時亦汝爲主謀乎 


그 때도 역시 네가 주모하였느냐? 


供 : 然矣 


그렇다.  


問 : 其後則長在古阜耶 


그 후 오래도록 고부에 있었느냐? 


供 : 前往長成矣 


장성으로 갔었다. 


問 : 於長成爲接戰乎 


장성에서도 접전하였느냐? 


供 : 與京軍爲接戰矣 


경군(洪啓薰招討使)과 더불어 접전하였다.(黃龍 싸움) 


問 : 與京軍接戰 孰勝孰敗 


경군과 더불어 접전하여 어느 쪽이 이기고 어느 쪽이 패했나? 


供 : 我軍聚食時 京軍以大砲射擊 故我軍死者四五十名 我軍一追逐 京軍敗走 取來大砲二座 如干彈丸矣 


아군이 취식할 때 경군이 대포로 사격하여 아군의 4,50명이 죽자 아군은 일제히 추축하니 관군은 패주하여서 대포 이(二)좌와 탄환을 탈취하여 왔다. 


問 : 其時兩軍數各幾何 


그 때 양군의 수는 각각 얼마나 되었던가? 


供 : 京軍七百 我軍則四千餘名 


경군은 7백명이고 아군은 4천명이었다. 


問 : 其時長成所行事 一一直告 


그 때 장성에서 행한 일을 바른대로 일일이 고하라. 


供 : 京軍敗走後 我軍倍道 先京軍入全州守成矣 


경군이 패주한 후 아군은 배도(발걸음을 두 배로 빨리 하는 것)하여 경군보다 먼저 전주에 들어가 수성하였다. 


問 : 其時監司無矣 


그때 감사는 없었는가? 


供 : 監司見我軍來而逃走 


감사는 우리 군대가 오는 것을 보고 도주했다. 


問 : 守成後行何事乎 


수성 후 무엇을 행하였는가? 


供 : 其後京軍隨後至完山 留陳龍頭峴 向成中以大砲攻擊 毁傷慶基殿 故以此緣由詐及京軍矣 自京營中 作曉諭文 謂以從汝所願 故感激解散 


그 후 경군이 뒤따라 완산에 이르러 용두현에 유진하고 성중을 향하여 대포로 공격하므로써 경기전이 훼상되었다. 이 연유를 경군에게 허급하였더니 경중에서는 효유문을 만들어 [너희 소원대로 따르겠다]하므로 감격하여 해산하였다. 


問 : 其後行何事乎 


그 후에는 어떤 일을 행하였는가? 


供 : 其後則各歸其家力農 其餘不恒之徒 有剽掠民間 


그 후에는 각기 집으로 돌아가 농사에 힘쓰고 그 나머지는 불항의 무리가 되어 민간에 표략한 것도 있었다. 


問 : 不恒之徒剽掠軍 與汝無關係乎 


불항의 도 표략군은 너와는 관계가 없었느냐? 


供 : 無關係 


관계가 없다. 


問 : 其後更無所行事 


그 후 다시 행한 일은 없었느냐? 


供 : 昨年十月分 矣身則起包全州 孫化中則起包光州 


작년 10월 나는 전주에서 기포하고 손화중은 광주에서 기포하였다. 


問 : 更起包何故 


다시 기포한 것은 무엇 때문이냐? 


供 : 其後聞則貴國稱以開化 自初無一言半辭 傳布民間 且無檄書率兵入都城 夜半擊破王宮 驚動主上云 故草野士民等忠君愛國之心 不勝慷慨糾合義旅 與日人接戰 欲一次 請問此事實 


그 후 들은즉 귀국(일본)이 개화를 한답시고 처음엔 민간에게 일언반사의 알림도 없었고 또 격서도 없이 솔병하고 도성에 들어와 야반에 왕궁을 격파 주상(임금)을 경동케 하였다는 말이 들리는 고로 시골선비 등은 충군애국의 마음으로 분개를 이기지 못하여 의병을 규합 일본인과 더불어 접전하여 일차적으로 이 사실을 청문하고자 하였다. 


問 : 其後更行何事乎 


그 후 다시 어떠한 일을 행하였는고? 


供 : 其後思量 則公州監營阻山帶河 地理形勝 故雄據此地爲固守之謀 則日兵必不能容易擊拔 故入公州 傳檄日兵欲爲相持 日兵先己確據公州 事勢不可無接戰 故二次接戰 後 萬餘名軍兵点考 則所餘者不過三千餘名 故敗走至 


그 후 곰곰이 생각하니 공주 감영은 산이 막히고 강이 둘러 있어 지리가 형승하기 때문에 그 땅에 웅거하여 고수를 도모한다면 일병이 용이하게 처들어 오지 못할 것을 알고 공주로 들어가 일병과 상치코자하였는데 일병이 먼저 공주에 확거하였으므로 사세는 불가피 접전이 없을 수가 없었다. 그런고로 2차 접전 후 1만여명의 군병을 점고한 즉 남은 자가 불과 3천명이요. 그 후 또다시 2차 접전 후 점고한즉 5백명에 불과하였다. 그런고로 패주하여 금구에 이르러 다시 초모한즉 수효는 좀 증가였으나 기율이 없어 다시 개전하기는 극히 곤란하였다. 그런데 일병이 뒤따라와서 2차 접전하여 패주하고 각기 해산하였다. 금구 해산 후 나는 경중(서울)의 이면을 상세히 알고 상경할려고 하다가 순창 땅에서 민병에 의하여 붙잡혔다. 


問 :入全州時 招募軍士 全羅一道人民都聚乎 


전주에 들어가 군사를 초모하였을 때 전라일도 인민이 도취하였는가? 


供 :各道人民梢多 


각도 인민이 조금 많았다. 


問 :向公州時 亦各道人民梢多乎 


공주로 향하였을 때 역시 각 도 인민이 좀 많았는가? 


供 :其時亦然 


그 때도 역시 그러하였다. 


問 :再次招募時 以何方策糾合乎 


재차 초모할 때는 어떠한 방책으로 규합하였는가? 


供 :招募時 以忠義之士 同倡義之意渴榜矣 


초모할 때는 충의의 선비로서 같은 창의의 뜻을 방문으로 내어 걸었다. 


問 :招募時 但自願者糾集耶 或제驅耶 


초모할 때 다만 자원자만 규합하였나 혹은 강제로 몰아 모았나? 


供 :矣身本來所四千名 則自願者 而其外各處通文辭意則若不此擧者 不忠無道 


내가 거느린 4천명의 군졸은 자원자이니 그 외는 각처에 통문으로서 [만약 이 거의에 불응 하는 자는 불충무도]라 하였다. 


問 :昨年三月起包古阜 而向全州之間 經幾邑而接戰次乎 


작년 3월 고부에서 기포하여 전주로 향하는 동안 몇 읍을 경우하고 접전은 몇 차례 하였나? 


供 :所經邑則由茂長 古阜 經泰仁 金溝 而欲란全州 聞경 兵萬餘名下來之言 往扶安 還至古阜 與%軍接戰 


경유한 읍은 무장 고부와 태인 금구를 거쳐 전주에 달하려 하였는데 영병(營兵) 만여명이 내려온다기에 부안으로 갔다가 되 돌아와 고부에 이르러 영군과 더불어 접전하였다. 


問 :其候則向何處乎 


그 후에는 어느 곳으로 갔나? 


供 :自井邑經高敞 茂長 咸平 低長城 與京軍接戰 


정읍으로부터 고창 무장 함평을 거쳐 장성에 이르러 경군과 더불어 접전하였다. 


問 : 入全州何時 解散何時 


전주에 들어간 것은 언제며 해산한 때는 어느 때인가? 


供 :作年四月二十六 七日間入全州 五月%五 六日間解散 


작년 4월 26일부터 27일간에 전주에 들어왔으며 5월초 5일∼6일간에 해산하였다. 


問 :再次起包時 始於何處사 


재차 기포할 때는 어느 곳에서 시작했는가? 


供 :始於全州 


전주에서 시작했다. 


供 :再次起包時 招募則幾許名乎 


재차 기포할 때 초모한 사람은 전부 몇 명인가? 


問 :四千餘名 


4천여 명이다. 


供 :至公州時幾許名乎 


공주에 이르렀을 때에는 몇 명이나 되었는가? 


問 :萬餘名 


만여 명이었다. 


供 :公州接戰何時 


공주접전은 어느 때인가? 


問 :去年十月二十三 四日間 


거년 10월 23일∼24일이다. 


供 :當初古阜起包時 則同謀者皆雖也 


당초 고부 기포시의 동모자는 모두 누구 누구인가? 


供 :孫化中 崔慶善某某人 


손화중 최경선 모모인이다. 


問 :此外更無他人乎 


이외 또 다른 사람은 없는가? 


供 :此三人外許多人 不可勝% 


이 삼인 외 허다인으로 그 수는 헤아릴 수 없다. 


問 :四千名糾合時 不止此三人矣 詳言其人 


4천명이 규합했을 때는 이 세 사람에게만 그치지 않았을 것이니 그 외 사람을 상세히 말하라. 


供 :此外 屑之人 何足言乎 


이외 쇄설(전것)의 사람을 다 말할 수 있는가? 


問 :昨年十月起包之時 無同謀者乎 


작년 10월 기포했을 때 동모자는 없었느냐? 


供 :此外只孫如玉 趙駿九等而己 


이외 다만 손여옥 조준구 뿐이다. 


供 :孫化中 崔慶善 其時無相關乎 


손화중 최경선은 그때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나? 


問 :此二人以光州事緊急 未及來也 


그 두사람은 광주일이 긴급하였으므로 오지 못했다. 


供 :孫 崔兩人 在光州行何事乎 


손, 최 양인은 광주에서 어떠한 일을 하였는가? 


問 :此二人 卽時向公州 聞日兵來自海路 使之海防 故但固守光州 


이 두 사람은 즉시 공주로 행하였다가 일병이 바다로 온다는 말을 듣고 해안을 막아 광주를 지키도록 하였다. 


(일본군이 남도해안에 상륙한다는 오보가 있어 혁명군이 중구인물인 손화중과 최경선으로 하여금 광주지방을 고수토록했다 하였으니 혁명군의 작전 규모와 치밀의 도를 짐작케 한다.)

 


全捧準 再招問目(제2차 심문과 진술) 

乙未 二月 十一日(서기 1895년 2월 11일(음)) 

  

供 :汝昨年三月起包之意 以爲民除害爲意 果然사 


너의 작년 3월에 행한 기포의 뜻은 백성을 위해 재해할 뜻으로 하였다하는데 과연이냐? 


問 :果然矣 


그렇다.  


問 :然則居內職者輿幸外任之官員 皆貪虐사 


그런즉 내직에 있는 자들이나 제외임의 관원도 모두 더불어 탐학인가? 


供 :居內職者以賣官육爵爲事 勿論內外皆貪虐也 


내직에 있는 자들도 매관육작을 일삼으니 내외를 물론하고 다 탐학이다. 


問 :然則欲除全羅一道貪虐之官吏而起包사 欲八道一體爲之之意向사 


그런즉 전라일도 탐학의 관리를 제거코자 기포했느냐 그렇지 않으면 팔도를 한 가지로 이같이 할 의향이었느냐? 


供 :除全羅一道貪虐 屛遂內職之賣爵權臣 八道自然爲一體矣 


전라일도 탐학을 제거하고 또 내직의 매작권신을 쫓아내면 팔도가 자연히 한 몸이 될 것이다. 


問 :全羅道監事以下各邑守幸皆貪虐官사 


전라도 감사 이하 각 읍의 수재가 모두 탐학인가? 


供 :十居八九 


십 중 팔 구이다. 


問 :指自何事而謂貪虐사 


무슨 일을 가리켜 탐학이라 하는가? 


供 :各邑守幸%以上納 或加斂結卜 橫徵戶役 有稍%之民空然構罪 勒奪錢財 橫侵田좌非一非再 


각 읍 수재는 상납을 칭탁하여 혹 가렴 길복하여 횡징호역하며 좀 부요민이 있으면 공연히 죄를 만들어 전재를 늑탈하며 전장을 횡침하는 것이 비일비재이다. 


問 :內職賣官者誰 


내직 매관자는 누구인가? 


供 :惠堂閔泳駿 閔泳煥 高永根等是也 


해당 민영준, 민영환, 고영근 등이 이들이다. 


問 :止於此等人사 


이들 뿐인가? 


供 :此外亦許多 不可盡記得 


이외 역시 허다하나 다 기억할 수 없다. 


問 :此等人之爲賣官 何以分明知之사 


이들이 매관한 것을 어떻게 분명히 알 수 있는가? 


供 :一世喧藉 無人不知 


온 세상이 다 훤자하여 모르는 사람이 없다. 


問 :汝以何計策 欲除貪官사 


너는 어떤 계책으로 탐관을 제거코자 하였느냐? 


供 :非有別計策 本心切於安民 見貪虐則不勝憤歎 而行此事 


별도로 계책이 있는 것은 아니라 본심의 간절한바가 안민이 있으므로 탐학을 본즉 분탄을 이기지 못해 이 일을 하였다. 


問 :然則不爲呈訴稱면사 


그런즉 소를 드려 청원하지 않았는가? 


供 :呈營邑不知幾次 


영읍에 진정한 것은 몇 차례인지 모른다. 


問 :呈營呈邑 汝親行之乎 


영읍에 진정할 때 네가 친히 이곳에 갔는가? 


(영은 전라감영. 읍은 고부군을 말함) 


供 :每次所志 則矣身製作 而呈則使  民爲之 


매차의 소장(진정서)은 내가 제작하고 드린 것은 원민으로 하여금 하게하였다. 


問 :然則於조정 亦爲訴면乎 


그런즉 조정에도 역시 소(진정서)를 제기하였는가? 


供 :呈訴無굴 洪啓勳(薰)大將全州留陳時 呈此緣由 


진정할 길이 없어 홍계훈 대장이 전주에 유진하고 있을 때 이 연유를 써서 드렸다. 


(홍계훈이 전라감사를 지냈음) 


問 :其時守幸皆是貪虐 雖爲呈訴 豈有聽시 


그때는 모든 수재가 탐학했는데 어찌 비록 정소해도 청시함이 있으리라 그러하였는가? 


供 :雖然 呼訴無處 不得已呈訴其處 


비록 그러하나 호소할 곳이 없어 부득이 그곳에 정소하였다. 


問 :呈營呈邑 何時乎 


영, 읍에 진정한 것은 어느 때인가? 


供 :昨年正 二 三月間 


작년 2,3월간이다. 


問 :正月以前則不爲呈訴사 


정월 이전에는 정소하지 않았느냐? 


供 :正月以前 古阜一邑民狀而已 不爲大端呈訴 


정월 이전의 고부에는 민장 뿐이었기 때문에 대단한 정소는 하지 않았었다. 


問 :屢次呈營呈邑 而終是不爲聽施之 故起包사 


누차 영에 드리고 읍에 드렸으나 끝내 청시하지 아니하는 고로 기포하였는가? 


供 :然矣 


그렇다.  


問 :汝於古阜 被害不多 緣何意見而行此擧사 


너는 고부군수에게서 피해가 많지 않았는데 어떠한 의견으로 연유하여 이 거사를 행했는가? 


供 :世事日非 故慨然欲一番濟世意見 


세상살이가 날로 그릇되어 가는 고로 개연히 한번 세상을 건져보고자 하는 의견이었다. 


問 :汝之同謀孫化中 崔慶善等 皆酷好東學者사 


너와 동모한 손화중, 최경선 등은 모두 동학을 대단히 좋아했는가? 


供 :然矣 


그렇다.  


問 :所謂東學 何主意 何道學乎 


소위 동학이라는 것은 어떤 주의이며 어떤 도학인가? 


供 :守心 以忠孝爲本 欲輔國安民也 


마음을 지켜 충효로 본을 삼고 보국안민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問 :如亦酷好東學者사 


너도 동학을 대단히 좋아하는 자인가? 


供 :東學是守心敬天之道 故酷好也 


동학은 이에 수심경천의 도이기 때문에 매우 좋아한다. 


問 :東學始自何時 


동학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供 :東學之始 始於三十年前 


동학의 시초는 30년 전에 비롯되었다. 


問 :始於何人乎 


어떤 사람이 시작했는가? 


供 :始於慶州崔濟愚矣 


경주에 사는 최제우가 시작했다. 


問 :至今亦全羅道內 尊%東學者多乎 


지금 역시 전라도 내에 동학을 존중하는 자가 많은가? 


供 :經亂之後 死亡相幾 至今太減 


난을 겪은 후 죽는 자가 계속 있어 지금은 크게 감해졌다. 


問 :汝起包時所率 皆是東學사 


네가 기포할 때 거느린 바는 모두가 동학인가? 


供 :所謂接主 皆是東學 其餘率下 稱以忠義之士居多 


소위 접주는 다 동학이나 그 나머지 솔하는 충의의 사로써 일컬은 자가 많았다. 


問 :接主司何名色 


접주사란 어떤 명색인가? 


供 :領率之稱 


영솔의 호칭이다. 


問 :然則起包時 軍器 軍粮 措瓣者사 


그런즉 기포 시에는 군기 군량을 조관하는 자인가? 


供 :凡於事皆爲指揮者也 


무슨 일에 있어서나 다 지휘한다. 


問 :接主 接司 自本來有사 


접주와 접사는 본래부터 있었는가? 


供 :개往固有 而起包時或有創設 


이미 전부터 본래 있었으나 기포 시에는 혹 창설한 것도 있다. 


問 :東學中領率名色 接主 接司而己乎 


동학 중 영솔명색이 중 접주 접사뿐인가? 


供 :接主 接司之外 有敎長 敎授 執綱 都執 大正 中正等六種矣 


접주.접사 이외 교장 교수 집강.도집.대정.중정 등 6종이 있다. 


問 :所謂接主者 平居時行 何事乎 


소위 접주라 하는 사람은 평상시에는 어떤 일을 하는가? 


供 :別無以行之事 


별로 행하는 일이 없다 


.問 :所謂法軒何職責 


소위 법헌이란 어떤 직책인가? 


供 :非職責 而乃長老別號 


직책이 아니라 장로의 별호이다. 


問 :以上六種之稱 行何事乎 


이상의 여섯 직책은 각각 어떤 일을 하는가? 


供 :敎長 敎授則敎導愚民者 都執則有風力 明紀綱 知經界 執綱則明是非 執紀綱 大正則恃公平 %厚員中正能直言剛直云矣 


교장, 교수는 우민을 교도하는 자이고 도집은 풍력있고 기강에 밝아 경계를 알아야 하고 집강은 시비에 밝아 기강을 잡고, 대정은 공평을 갖고 삼가 후원하며 중정은 직언 강직을 말하는데 능해야 한다. 


問 :接主 接司則同職責乎 


접주와 접사는 같은 직책인가? 


供 :接司聽行接主指揮者也 


접사는 접주가 지휘하는 것을 듣고 행하는 사람이다. 


問 :以上許多名色 誰差出乎 


이상 많은 명색은 누가 차출을 하는 것이냐? 


供 :自法軒視敎徒多少 第次差出矣 


법헌으로부터 교도가 많고 적은 것을 보아 차례로 차출한다. 


問 :東學中有南接 北接云 依何而區別南北乎 


동학 가운데 남접. 북접이라고 말하는데 무엇으로 구별하여 남.북이라고 하느냐? 


供 :湖以南稱以南接 湖中稱以北接矣 


호(湖) 이남을 남접, 호중(湖中)을 북접이라고 한다. 


問 :昨年起包時 於以上各種名色等 指揮何事件乎 


작년 기포 시에는 이상 각종 명색 등에 있어서 어떠한 사건들을 지휘하였느냐? 


供 :行以各其職掌矣 


각기 직장으로써 행하였다. 


問 :各其職掌 皆聽行汝之指揮乎 


각기 직장이 모두 너의 지휘를 듣고 행하였는가? 


供 :矣身皆爲指揮矣 


내가 모두 지휘했다. 


問 :修心敬天之道 何以稱東學乎 


수심경천의 도를 일컬어 무엇 때문에 동학이라고 하는가? 


供 :五道出於東 故稱以東學 自初本意 則始作之人 分明知得 矣身則隨他人之稱而稱之耳 


우리 도는 동에서 나온 고로 동학이라 일컫는다. 자초 본의인즉 시작한 사람은 분명히 얻어서 아나, 나는 다른 사람의 일컬음을 따라 이를 일컬은 것이다. 


問 :投入東學 能%怪疾云 然乎 


동학에 들어가면 능히 괴질을 면한다고 하는데 그러한가? 


供 :東學書云中 三年%疾在前 敬天守心 可%云矣 


동학서 가운데 말하기를 3년 괴질이 앞으로 있으니 경천수심하면 가히 면한다고 한다. 


問 :東學 八道皆傳布사 


동학은 팔도에 다 전포하였는가? 


供 :五道전진행교의 서북삼도즉부지의 


5도에는 모두 교가 행하여져 있으나 서북 3도는 모른다. 


問 : 동학을 배운즉 병을 면하는 외 다른 이익은 없는가? 


供 : 다른 이익은 없다. 


問 : 작년 3월 기포 시에는 탐관을 제거한 후 어떤 일을 하려고 하였는가? 


供 : 다른 뜻은 없었다. 


問 : 작년 절목을 홍대장(홍계훈)에게 드렸다 하는데 과연 그러한가? 


供 : 그렇다.(全州和約後의 弊政改革案) 


問 : 절목을 드린 후 탐관을 제거한 징험이 있었던가? 


供 : 별로 징험이 없었다. 


問 : 그런즉 홍대장이 백성을 속인 것이 아닌가? 


供 : 그렇다. 


問 : 그런즉 백성은 무엇 때문에 다시 칭원이 없었는가? 


供 : 그 후 홍대장은 서울에 있었으니 다시 무엇을 칭원하겠는가? 


問 : 재차 기포한 일병이 범궐(왕궁을 침범함)의 연고로 인하여 재기했다고 하였는데 제거 후 어떤 거조를 하고자 하였는가? 


供 : 범궐의 연유를 힐문하고자 하였다. 


問 : 그런즉 일병과 경성에 유주하고 있는 각국인을 더불어 모두 구축하려 하였는가? 


供 : 그렇지 않다. 각국인은 다만 통상만 할 뿐인데 일인은 솔병하여 경성에 유진하는 고로 우리나라 국토를 침략하는 것으로 의아하였다. 


問 : 이름은 이건영이라고 일컫는 사람을 아는가? 


供 : 잠시 만나기는 하였다. 


問 : 만났을 때 어떤 말을 하였는가? 


供 : 소모사라고 일컫는 고로 내가 말하기를 [소모사라면 마땅히 어느 곳에 있는 소모영을 설치하라]고 하였지만 나와는 더불어 상관이 없다하니 금산으로 갔었다. 


問 : 어느 곳에서 만났는가? 


供 : 삼례역에서 만났다. 


問 : 그때 만나서 이건영의 말이 어디서 왔다고 하던가? 


供 : 경성으로부터 왔다고 말했다. 


問 : 누가 보냈다고 하던가? 


供 : 정부로부터 보내더라고 하였는데 3∼4일 후 들으니 즉 가칭 소모사인 고로 잡으라는 명이 있었다고 하였다. 


問 : 소모사를 증거할 만한 문적이 있던가? 


供 : 증거할 만한 문적을 보지는 못했다. 


問 : 그때 너의 도당은 몇 명이었나? 


供 : 수 천여 명이었다. 


問 : 그 외 소모사라 일컫고 기포를 권한 사람은 없었는가? 


供 : 그런 사람은 없었다. 


問 : 송정섭을 아는가? 


供 : 다만 충청도 소모사라고만 소문으로 들었다. 


問 : 재차 기포할 때는 최법헌에게 의논하였던가? 


供 : 의논이 없었다. 


問 : 최법헌은 동학의 괴수인데도 동학당을 규합하는데 어찌 의급하지 않았는가? 


供 : 충의는 각기 본심인데 하필 법헌에게 의논한 후에 이 일을 해야 하는가? 


問 : 작년 8월에 너는 어디에 있었는가? 


供 : 태인 집에 있었다. 


(이평면에 있는 자기 집이 이미 소실되었기 때문에 태인면 산외면 동곡리에 우선 머물러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問 : 그 나머지 도당은 어느 곳에 있었던가? 


供 : 각각 본가에 있었다. 


問 : 충청도 천안 지방에는 너의 도당이 있었던가? 


供 : 그곳에는 도당이 없었다. 

 


全捧準 三招問目(제3차 심문과 진술) 

乙未 二月 十九日(서기 1895년 2월 19일(음))


問 : 네가 일전에 고한 바 송희옥을 모른다고 하였는데 희옥 두자는 이름인가? 호인가? 


供 : 희옥은 이름이고 칠서는 자이다. 


問 : 송희옥과 이미 삼례역에서 이와 더불어 동모했은즉 그 이름자를 어찌하여 상세히 모르는가? 


供 : 송희옥은 본시 허망한 사람으로 홀연히 가고 홀연히 오고 하여 실제의 거처가 확실하지 않다. 


問 : 송희옥은 이에 전라도 일도의 도집강이라 들었고 또 너와는 친척이 된다는데 지금 고하는 것은 오직 장찬(허물을 감추려고 숨기는 것)이니 바르게 실고하지 않는 것이 의심되며 항차 네 죄의 경중은 송희옥의 장찬에 있는 것이 아니고 또한 희옥의 죄안이 네가 숨겨 보호하는 것이 아니니 비록 오로지 믿어야 하는데 이는 진실로 어떤 마음에서냐? 


供 : 아까 고한 바와 같다. 송은 본시 부황의 유로 지난번 일본 영사관 물음에 답변할 때 영사가 한 글을 내어 보이는데 희옥의 필적이다. 그 글에 일컫기를 운현변(대원군 측을 말함)과 상통한 것으로 되어 스스로 생각해 보니 그가 이 말을 위조하여 시국의 힘을 빌리려 한 것으로 이 불근지설을 만드니 실로 남자의 일이 아니며 역시 존엄을 모독하고 공연히 때의 물의를 일으키게 되는 고로 잠깐 이를 꾸며서 말한 것이다. 


問 : 남자의 말은 비록 참말을 백번하였어도 만일 한 마디의 말에 속임이 있은 즉 백 마디 말을 다 속인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본즉, 어제는 모른다고 한 것이나 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어찌 다 속인 것이 아니겠는가? 


供 : 마음과 정신이 혼미하여 과연 착오한 바가 있다. 


問 : 송희옥은 갑오 9월 서(書)에 말하기를 [어제 저녁 또 사람이 비밀리 하래했는데 전말을 상고한즉 과연 개화파에 눌려 먼저 효유로 보호하면 뒤에 비기가 있을 것이다.]했는데 이는 누가 보내온 글인지 역시 네가 모르는 것인가? 지난 너의 고한 바는 [작년 10월 재기한 것은 일인이 군대를 거느리고 입궐하여 이해의 소재를 알지 못하는 고로 우리가 신민이 되어 감히 한시도 안심할 수가 없어 이에 이 거의를 한 것이다.]고 말하였은즉 대원군의 뒷 비밀편지가 따른 것을 알 수 있는데 역시 너의 재기와 암합한 것이 아닌가? 


供 : 그간에는 비록 혹 이 같은 무리들의 내왕이 있었으나 본래 그 면을 알지 못한즉 중대 사건을 어찌 의급하겠는가? 그런고로 행적이 특별히 수상한 자는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問 : 남원부사 이용헌 장흥부사 박헌양이 입은 피해는 모두 누구의 소행인가? 


供 : 이용헌은 김개남의 소위이고 박헌양은 어떤 사람에게 피해를 입었는지 모른다. 


問 : 은진에 사는 김원석이 입은 피해는 누구의 짓인가? 


供 : 공주의 동학 괴수 이유상의 소위이며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問 : 작년 재 기포 시 조정으로부터 하송해온 그 효유문을 너는 보지 못했는가? 


供 : 대원군의 효유문은 보았으나 조정에서 내려온 효유문은 보지를 못했었다. 


問 : 비록 조정의 효유문은 보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대개 대원군의 효유문을 보았은즉 시사를 알 것인데 사기의 여하를 생각지도 않고 임의로 백성을 움직여 무단 야요하여 백성들을 물불에 빠뜨리고 이은 어찌 신민이 가히 할 일인가? 


供 : 상세한 내막을 몰라 임의로 백성을 움직였으니 과연 이는 주착이었다. 

 


全捧準 三招問目(제3차 심문과 진술) 

* 이하 심문은 일본 영사가 물은 것이다. 


乙未 二月 十九日(서기 1895년 2월 19일(음)) 

  

::: 三招의 繼續 ::: 


問 : 송희옥의 글 가운데 대원군의 비기의 허실을 어떻게 정확하게 아는가? 


供 : 송은 본래 부랑자인 고로 미루어 보아 말한 것이고 또 대원군 쪽에서 혹 이러한 일이 있다면은 마땅히 나에게 먼저 통지할 것이지 송에게 먼저 하지 않았을 것이다. 


問 : 송은 너의 수하이냐 수상이냐? 


供 : 별로 상하로 일컬을 만한 것이 없고 서로가 똑같은 처지에 있는 것이다. 


問 : 송과는 재기 시에 같이 더불어 의논하지 않았는가? 


供 : 내가 기포할 때에 간혹 참석하였으나 처음 좌가 옳다, 우가 옳다 말을 하였다. 


問 : 송의 이 일이 만약 좌가 옳다 우가 옳다 한 말이 없은즉 대원군측 비기를 가칭 타인에게 기서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供 : 송의 기서는 혹인이 처음 일포로 시작되었고 비록 거슬러 올라가 생각하기는 어려우나 나의 일에 있어서는 방관하였다. 


問 : 송은 나와 더불어 이미 같은 포가 아닌즉 피차 행한 바 일에는 반드시 서로 알지 못하는 일들이 있을 것이다. 


供 : 그렇다 


問 : 그런즉 송이 가칭한 비기를 너는 어찌 능히 밝게 아는가? 


供 : 송은 처음 서울에 머문 일이 없고 또 저명한 인사가 아닌고로 스스로 생각해서 말한 것이다. 


問 : 전후의 진술한 것을 합하여 본즉 송과 너와는 본래부터 서로 친한데 줄곧 모른다고 하니 역시 의심이 간다. 


供 : 지난번 귀관(일본영사)에게 답변할 때, 내어보인 글은 부랑에 관계되는 것 같아 역시 모르는 바이다. 그런고로 만약 친지자로서 대한다면 반드시 그 글의 내력을 물을 것이니 변혹하기 어려운 고로 잠시 여기에 만고(속여서 고함) 했다. 


問 : 그런즉 너에게 이로운 것을 물으면 대답하고 너에게 해로운 것을 물으면 모른다고 대답하니 되겠는가? 


供 : 이해로 마음 먹은 것은 아니나 특별한 사연으로 변혹하기 어려운 것은 그렇다. 


問 : 전라도내 사람이 반복무상하다고 일찍이 들은바나 지금 네가 고하는 것은 역시 그대로 상투적이다. 


그러나 질문이 오래되면 정상은 스스로 나타날 것이며 비록 일언반사라도 속여 고한 것은 반드시 얻지는 못할 것이다. 


供 : 송희옥의 건은 비록 속여서 고하였다고 하드라도 그 나머지는 처음부터 한마디 말도 꾸미고 속인 것이 없었다. 


問 : 지금의 이 재판은 양국에 관계되는 심판으로서 반드시 조금이라도 편벽된 청리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구태여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속여 만들어 한때를 넘기고자 한즉 출간지설을 징탐하리니 모두가 믿을 것이 없다. 


供 : 사로 잡힌 것이 수삭, 또 병에 묶인 몸이라 한마디 말의 실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問 : 송과 너와는 척분이 안되는가? 


供 : 처족 7촌이다. 


問 : 기포 시 비로소 어디서 보았나? 


供 : 비록 삼례에서 보았으나 실지 같은 포의 일은 없었다. 


問 : 비로소 보았을 때 어떠한 의논을 한 일이 있는가? 


供 : 비로소 보았을 때 행해야 할 일을 말하고, 나도 역시 추후에 기포해 올라오겠다고 말하였다. 


問 : 그때는 어느 때인가? 


供 : 작년 10월 재기 때이나 일자는 자세히 모르겠다. 


問 : 너의 재기는 무슨 일을 할려고 하였느냐? 


供 : 앞서 고한대로 이미 다 이야기 하였다. 


問 : 네가 송과 더불어 삼례에서 상견했을 때 혹 대원군의 말을 칭탁한 것은 없느냐? 


供 : 송이 대원군으로부터 내려왔다고 일컬으면서 2월에 속히 올라오면 좋을 것 같다 한다고 말하기에 내가 묻기를 글이 있었느냐고 하였더니 대답이 없었다. 나에게 문자를 보이지 않으므로 책망했더니 힁설수설하여 실로 황당하는 눈치였다. 또 반드시 대원군이 가르쳤다고 말할 필요는 없는 것으로 일을 마땅히 행할 것은 내가 스스로 여기에 당하겠다고 말하였다. 


問 : 삼례에서 기포할 때는 군중은 얼마나 되었는가? 


供 : 4천여 명이었다. 


問 : 그 후 접전은 어느 날에 있었는가? 


供 : 삼례에서 일어나 20여일이 지난 후에야 비로서 접전하기 시작하였다. 


問 : 송이 말한 운현궁(대원군을 칭함)으로부터 내려온 두 사람의 이름은 누구인가? 


供 : 그때는 들어서 알았으나 지금은 기억하기 어렵다. 


問 : 두 사람의 이름은 모두 들을 수는 없으나 성과 이름은 끝끝내 기억할 수 없느냐? 


供 : 그 성은 박.정 같은데 상세하지 않다. 


問 : 박.정은 곧 이가 박동진 정인덕이 아닌가? 


供 : 박동진은 이가 분명하나 정은 상세하지 않다. 


問 : 박.정은 송을 보고 어떠한 말을 하였나? 


供 : 송이 일컬으기를 [운현궁(대원군)이 역시 네가 올라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고 하였다. 


問 : 송희옥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供 : 금번 올라올 때 듣기로는 고산 민병에게 죽었다고 하였는데 상세하지 않다. 


問 : 운현궁 효유문은 어떻게 얻어 보았나? 


供 : 9월 태인의 본집에 있을 때 접솔한 사람이 등초하여 와서 보았다. 


問 : 그 때는 바로 기포를 펼 때인가? 


供 : 그때는 집에서 병을 치료할 때로 기포의 생각은 없었다. 


問 : 그 도내 동학도의 자요가 없었느냐? 


供 : 그 때는 김개남 등이 열읍에서 작요하였다. 


問 : 열읍은 곧 어느 읍인가? 


供 : 순창.용담.금산.장수.남원 등이고 그 나머지는 상세하지 않다. 


問 : 대원군 효유문을 다만 한번만 보았었나? 


供 : 그렇다. 


問 : 효유문에는 어떤 말이 들어 있던가? 


供 : [너희들이 오늘날의 이 기요는 실로 수재의 탐학과 중민의 원굴로 말미암은 것이니 지금으로부터 이후 관의 탐학은 반드시 징치하고 백성의 원굴한 것은 반드시 펼 터이니 각기 돌아가 안업하면 가하나 만일 부준하면 곧 마땅히 왕정으로써 다스리겠다]고 하였다. 


問 : 효유문에는 인적이 었던가? 


供 : 내가 본 것은 등초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없었으나 관에 도착한 원본에는 이것이 있다고 하는데 방곡에 게시하여 붙였다. 


問 : 방곡에 게시하여 붙인 것은 누가 하였는가? 


供 : 관에서 하였다고 한다. 


問 : 효유문은 누가 가지고 갔는가? 


供 : 주사의 직함을 띄고서 가지고 갔다고 하였다. 


問 : 그때 효유문을 네가 보니 진짜던가? 가짜던가? 


供 : 이것은 관에서 게시하여 붙였는데 어찌 가짜로 보겠는가? 


問 : 너는 이미 이를 진짜로 알았으면 어찌하여 재기하였는가? 


供 : 귀국(일본 영사관)의 속을 상세히 알고자 그렇게 하였다. 


問 : 가히 상세히 속을 안 다음 장차 어떤 일을 계획하려 했나? 


供 : 보국안민의 계책을 하고자 하였다. 


問 : 너의 재기에는 이미 대원군의 효유문을 불신하지 않았는가? 


供 : 이에 앞서 조정의 효유문은 1.2차에 그치지 않았으나 끝내 실시한 것이 없으니 하청을 상달하기가 어렵고 상택(임금의 은덕)은 하구하기가 어려운 고로 꼭 일차 서울에 이르러 민의를 상진하려 했다. 


問 : 이미 효유문을 보고도 구태여 일을 재기한 것은 이를 소실한 것이 아닌가? 


供 : 눈으로 친히 보고 귀로 친히 듣지 않고서는 깊이 믿기 어려운고로 이에 일을 재기하였는데 어찌 소실이 있겠는가? 


問 : 아까 고한 바 소실한 것이란 어떤 일인가? 


供 : 아까 소실이라 일컬은 것은 시사의 이면에 상세하지 못한 것을 가리킨 것이지 효유문의 보고 안 본 것을 말한 것이 아니다. 


問 : 너의 재기에는 대원군 효유문으로써 개화파가 압박한 것으로 보고 겸하여 운현궁(대원군)으로부터 너희들이 상래를 기다린다고 하였으므로 이에 이를 행한 것인가? 


供 : 효유문의 개화파로부터 압박됐던 안됐던 관계가 없는 것이고 재기한 일에 이르러서는 본심에서 우러러 나왔고 또 비록 대원군의 효유문이 있어도 깊이 믿을 수가 없는 고로 재기를 힘써 도모하였다. 


問 : 일병의 범궐은 어느 때 들었는가? 


供 : 7-8월간에 들었다. 


問 : 어느 사람한테 들었는가? 


供 : 소문이 널리 퍼져 있으므로 자연히 이를 알 수가 있었다. 


問 : 이미 이르기는 창의라 하였은즉 듣고서도 즉시 행하지 않고 무엇 때문에 10월까지 기다렸는가? 


供 : 때마침 몸이 아프고 또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움직이기가 어려웠고 겸하여 신곡이 나오지 않아 자연 10월에 이르렀다. 


問 : 대원군이 동학의 일과 관계가 있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바이며 또 대원군은 지금 권한이 없은 즉 네 죄의 경중은 오직 이 장소에 있고 대원군에 있는 것이 아닌데 너는 끝끝내 솔직히 말하지 않고 대원군의 암호를 깊이 믿고 있는 것 같은데 이는 과연 어떠한 뜻에서인가? 


供 : 대원군은 다른 동학 몇 백과 있을지언정 나에 관하여서는 처음부터 관계된바가 없다. 


問 : 대원군은 동학과 더불어 서로 관계가 있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바인데 네가 홀로 듣지 못하였던가.? 


供 : 실로 듣지 못한 바이다. 


問 : 대원군이 동학과 더불어 상관한 것을 처음부터 한 가지도 들은 바가 없었단 말인가? 


供 : 그렇다. 나의 것도 숨기지 않는데 항차 다른 사람의 것이랴? 


問 : 송희옥이 대원군과 더불어 서로 관계된 바가 있는 것을 너도 역시 알고 있었겠지? 


供 : 송희옥은 반드시 서로 관계된 것이 없을 것이다. 


問 : 네가 어찌해서 그 서로 관계된 것이 없는 것을 아는가? 


供 : 송희옥과 대원군과의 증표가 있다면은 모르겠으나 스스로 자세한 것인즉 반드시 서로 관계가 없다. 

 

  

全捧準 四招問目 日領事問(제4차 심문과 진술) 

* 이하 심문은 일본 영사가 물은 것이다. 


乙未 三月 初七日(서기 1895년 3월 7일(음))

 

問 : 너의 이름이나 호가 하나 둘이 아닐터인데 몇 개인가? 


供 : 전봉준 하나 뿐이다. 


問 : 전명숙은 누구의 이름인가? 


供 : 나의 자이다. 


問 : 전녹두는 누구인가? 


供 : 세상 사람들이 가리키는 이름이지 내가 지은 이름은 아니다. 


問 : 너는 별호가 있는가? 


供 : 없다. 


問 : 이외 별호 몇 소자의 칭호가 없는가? 


供 : 없다. 


問 : 네가 매양 사람에게 글을 써 붙일 때는 이름으로 쓰는가? 자로써 쓰는가? 


供 : 이름으로 쓴다. 


問 : 네가 작년 10월 재기의 일자는 어느 날인가? 


供 : 10월 12일간 같은데 잘 모르겠다. 


問 : 삼례재기 전에는 어디에 있었느냐? 


供 : 내 집에 있었다. 


問 : 너는 전주에서 초토병과 접전하고 해산한 후 어디로 향하였는가? 


供 : 10여읍을 들러 귀화하라 권하고 곧 나의 집으로 돌아왔다. 


問 : 전주로부터 해산한 것은 어느 날인가? 


供 : 5월 초 7-8일이다. 


問 : 전주에서 해산한 후 처음 이른 읍은 곧 어느 읍인가? 


供 : 처음 금구로부터 김제. 태인 등지에 이르렀다. 


問 : 처음 금구로부터 이른 것은 어느 날인가? 


供 : 금구에는 곧 잠간 지나는 길에 거쳤고 5월 초 7.8일간 김제에 이르고 초 10일간에 태인에 이르렀다. 


問 : 태인에 이르른 후 거친 고을은 어느 고을인가? 


供 : 장성.담양.순창.옥과.남원.창평.순천.운봉을 거쳐 그 후 내 집으로 돌아왔다. 


問 : 집으로 돌아온 것은 몇월 몇일인가? 


供 : 7월 그믐, 8월 초간이다. 


問 : 열읍을 돌아다닐 때 네 혼자 이던가? 동행자가 있었던가? 


供 : 기솔 아울러 20여명이 있었다. 


問 : 그때 최경선도 동행하였나? 


供 : 그렇다. 


問 : 손화중도 역시 동행하였나? 


供 : 손은 동행하지 않았다. 


問 : 전주 해산 후 손화중은 어느 곳으로 향하였던가? 


供 : 그 때 손은 우도 열읍을 돌아다니면서 귀하를 권하였다. 


問 : 손이 전주에서 해산한 것은 너와 더불어 같은 날인가? 


供 : 그렇다. 


問 : 전주로부터 해산하고 너는 손을 보지 못하였는가? 


供 : 4-5개월 동안 서로 만나지 못하였다. 


問 : 4-5개월 후 어데서 만났는가? 


供 : 8월 그믐 경 순상의 명령을 띄고 먼저 나주로 가 민보의 해산을 권하고 돌아오는 길에 장성에 이르러서야 비로서 만났다. 


問 : 손과는 만난 후에 의논한 적이 있는가? 


供 : 그때 나는 이르기를 [순상으로부터 별도로 부탁받은 바가 있으니 같이 영문에 갔으면 좋겠다.]는 뜻으로 의논을 하였다. 


問 : 그런즉 손은 어떠한 말로 대답하던가? 


供 : 지금 병중에 있으므로 같이 갈 수가 없으니 병이 완쾌되는 것을 기다려 뒤따라 가겠다고 말했다. 


問 : 이외 다른 것을 의논한 바는 없었는가? 


供 : 그렇다. 


問 : 일병의 범궐은 언제 어느 곳에서 들었는가? 


供 : 7월경 남원땅에서 들었다. 


問 : 그런즉 열 읍을 돌아다니고 귀화할 때 이 소리를 들었는가? 


供 : 이는 도청도설에 의한 것이다. 


問 : 이 소리를 들은 후 군중을 일으켜 일본을 치는 일을 비로소 의논한 것이 어느 곳이던가? 


供 : 삼례역이다. 


問 : 특히 삼례역에서 이 일을 의논한 것은? 


供 : 전주부 외에 주막이 얼마간 많은 것이 삼례 같은 곳이 없기 때문이다. 


問 : 삼례에 이르기 전에는 혹 도회지가 없는가? 


供 : 원평에 이르러 하루 밤 묶고 곧 삼례에 이르렀다. 


問 : 집으로부터 처음 출발한 날은 언제인가? 


供 : 10월 초순경이다. 


問 : 네가 삼례로 행할 때 동행자는 누가 있었던가? 


供 : 없었다. 


問 : 길을 가던 중 만난 사람도 없었는가? 


供 : 없었다. 


問 : 그때 최경선은 동행하지 않았던가? 


供 : 최는 추후에 왔었다. 


問 : 삼례에 이르러 누구 집에서 모였는가? 


供 : 주막에서 모였다. 


問 : 삼례 땅에는 본래 친구의 집이 있었는가? 


供 : 처음에는 친한 친구가 없었다. 


問 : 삼례의 호수(戶數)는 얼마나 되었던가? 


供 : 1백여 호이다. 


問 : 네가 사는 근처에도 반드시 1백여호의 촌장이 없지 않을 터인데 특히 이곳에 모인 것은 무엇 때문인가? 


供 : 이 땅은 도로가 사방으로 통했고 겸하여 역촌이기 때문이다. 


問 : 최가 삼례에 이른 후 며칠이나 같이 유숙했는가? 


供 : 5-6일 머문 후 곧 광주 나주로 향했다. 


問 : 무엇 때문에 광주 나주로 향하였는가? 


供 : 기포의 일 때문이었다. 


問 : 최의 광주 나주에 간 것은 네가 시킨 것인가? 


供 : 내가 시킨 것은 아니다. 그가 광주. 나주지방에는 많은 친지가 있어 기포하는데 용이했기 때문이다. 


問 : 삼례도회 때 동학도의 가장 저명한 자는 누구인가? 


供 : 금구의 조진구 전주의 송일두 최대봉 몇 사람이 가장 저명한 자였으나 그 나머지 허다한 사람은 지금 다 기억하기가 어렵다. 


問 : 그때 삼례에서 소위 의병으로 모인 자는 얼마나 되었던가? 


供 : 4천여 명이다. 


問 : 이들 군중을 거느리고 처음 어느 곳으로 향하였는가? 


供 : 처음 은진, 논산으로 향하였다. 


問 : 논산에 도착한 날은 언제인가? 


供 : 지금은 자세히 알 수가 없다. 10월 그믐쯤 될 것이다. 


問 : 논산에 이르러 어떠한 일을 했는가? 


供 : 논산에 이른 후 역시 널리 군을 모집하는 일을 했다. 


問 : 이곳으로부터 다시 어디로 향하였는가? 


供: 공주로 직행했었다. 


供 : 그 달 초 6∼7일쯤 같은데 자세히는 모르겠다. 


問 : 공주에 이른 후에는 무슨 일을 하였는가? 


供 : 공주에 이르지 못하고 접전하여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問 : 네가 사람들에게 글을 부칠 때는 언제나 친서로서 하는가 아니면 대서인가? 


供 : 때로는 친서로 하고 때로는 대서로 한다. 


問 : 혹 대서 시에는 꼭 너의 도장을 찍었는가? 


供 : 피봉에는 도장을 찍을 때가 많으나 대개는 그렇지 않을 때도 많이 있다. 


問 : 네가 삼례에 있을 때 사람들에게 부친 글이 많이 있는데 이것이 친서인가? 대서인가? 


그리고 대서로 할 때는 너의 도장을 찍었는가? 


供 : 모두 통지문으로 부치고 사간은 하지 않았으나 오직 손화중한테 부친 글은 있다. 


問 : 처음 한자도 사간으로써 사람에게 부친 글이 없었는가? 


供 : 만약 그 서간을 보면 알 수가 있으나 지금은 자세히 모르겠다. 


問 : (영사가 서간을 내어 보이면서)이것은 네 친선인가 대서인가? 


供 : 대서이다 


問 : 누구를 시켜서 대서했는가? 


供 : 접주의 필적인 것 같은데 지금은 그 사람을 자세히 모르겠다. 


問 : 너는 일찍이 최경선으로 하여금 대서케 한 일이 있는가? 


供 : 최는 글에 능숙한 자가 아니다. 


問 : 이 편지는 삼례로부터 낸 것인가? 


供 : 그렇다. 


問 : 이 편지의 년 월 일은 분명히 9월 18일인데 인데 어찌 10월 삼례로 나와서 모였다고 하는가? 


供 : 전에 10월이라고 말한 것은 9월인 것 같다. 



問 : (영사가 또 하나의 편지를 내 보이면서 말하기를) 이것은 네 친서인가 대서인가? 


供 : 이것도 역시 대서이다. 


問 : 그 편지는 누가 대리로 쓴 것인가? 


供 : 이것 역시 접주를 시켜 썼으나 지금은 그 사람을 기억하기 어렵다. 


問 : 오늘의 진술을 너는 솔직히 고하라 그런 연후에야 안이 속결될 것이다. 여러 가지로 속여 고하면 일이 괴롭고 싫증만 날 뿐 역시 너의 자신에게도 많은 해가 있을 것이다. 


供 : 월.일은 과연 자세히 기억하기 어려우나 그 나머지는 무릇 관계한 것을 어찌 조금이라도 속여 고했다 하겠는가? 


問 : 대서를 할 때에는 어찌 반드시 소정의 사람이 있을 터인데 어찌 몰라서 되겠는가? 


供 : 그 때 나는 졸필이라 매양 사람으로 하여금 대서케 했으나 본래 정해진 사람은 없다. 


問 : 이 두 편지는 모두 다 네가 시킨 것인가? 


供 : 그렇다. 


問 : 삼례의 규합은 모두 너로부터 나왔는가? 


供 : 그렇다. 


問 : 그러면 모든 기포에 관한 것은 모두 네가 주모했는가? 


供 : 그렇다. 


問 : (영사가 또 하나의 편지를 보이면서)이것도 역시 네가 시킨 것인가? 


供 : 그렇다. 


問 : (영사가 또 하나의 편지를 보이면서)이것도 역시 네가 시킨 것인가? 


供 : 그렇다. 


問 : 전날 진술한 바 너는 김개남과 상관없다 했는데 지금 이 편지를 본즉 두 사람 사이에 상관이 많은 것 같은데 어떠한가? 


供 : 김은 내가 왕사에 합력하자고 권하였으나 끝끝내 들어주지 않는 고로 비로소 상의한 바 있으나 마침내는 끊고 상관하지 않았다. 


問 : (영사가 또 하나의 편지를 보이면서)이 두 종이의 필법은 한 사람의 붓인데 앞은 글은 네가 했다고 진술하고 지금의 것은 어떻게 하여 모른다고 하는가? 


供 : 지금 이 글은 내가 한 것이 아니다. 


問 : 아까 말하기를 삼례의 일은 모두 너로부터 나왔다. 하였는데 지금 녹편을 보이자 그렇지 않다니 실로 모호하구나. 


供 : 녹편중 서학이라고 한 것은 서병학을 말하는 것인데 서병학은 이미 나와 더불어 끊어져 왕래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내가 시킨 것이 아니라고 말한 것이다. 


問 : 동학도 가운데 접주를 차출하는 것은 누가 하는가? 


供 : 모두 최법헌이 한다. 


問 : 네가 접주가 된 것도 역시 최가 차출하였는가? 


供 : 그렇다. 


問 : 동학접주는 모두 최가 낸 것인가? 


供 : 그렇다. 


問 : 호남과 호서가 전부 같은가? 


供 : 그렇다. 


問 : 도집. 집강의 임명 같은 것도 전부 최가 차출하는가? 


供 : 비록 최로부터 많이 나오나 때로는 접주들이 차출하기도 한다.  

 


全捧準 五次問目 日領事問 

(제5차 심문과 진술·일본영사 심문) 

* 이하 심문은 일본 영사가 물은 것이다. 


乙未 三月 初十日(서기 1895년 3월 10일(음))

 

問 : 오늘도 전과 같이 사실을 조사할테니 숨기지 말고 바르게 들어라. 


供 : 잘 알았다. 


問 : 작년 9월 삼례에 있을 때 별도로 대서인이 없고 접주 중에서 바꾸어 가면서 썼다고 하는데 과연 그런가? 


供 : 별도로 대서인은 없으나 접주에서 바꾸어 가면서 이를 썼다. 처음 임오남으로 하여금 이를 쓰게 하였으나 그가 무식하므로 이를 두고 또 김동섭으로 하여금 잠시 쓰게 하였다. 


問 : 대서인은 오직 김동섭, 임오남 두 사람뿐인가? 아닌가? 


供 : 접주 가운데 문계팔. 최대봉. 조진구가 혹 대서하였으나 몇 차례의 편지를 쓴데 불과하다. 


問 : 너는 최경선과 서로 친한 것이 몇 년이나 되는가? 


供 : 동향이므로 서로 친한 것이 5∼6년이 된다. 


問 : 일찍이 최가 너에게 상사의 분이 있는가? 없는가? 


供 : 다만 친구로서 상종할 뿐이지 가르침을 받는 일은 없었다. 


問 : 너의 진술이 부실한 곳이 있는 것 같은데 공연히 재판을 끌고 또 네게 해가 없을터인데 무엇 때문에 이같이 하는가? 


供 : 별로 정상을 속인 것은 없으나 일전 송희옥의 일로 잠시 숨겼으나 다시 명백히 말하였다. 


問 : (하나의 종이를 내어 보이면서)이는 너의 친필이 아닌가? 정상을 속인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供 :이미 나의 것은 진술하였다. 글은 나의 글이나 필적으로 말하면 나의 필적이 아니다. 어찌 나에게 유익한 것이 있어서 속이겠는가? 과연 내가 쓴 것이 아니다. 


問 : 최경선의 진술로는 이것은 너의 필적이라고 하는데 너는 아니라고 말하니 어찌 정상을 속인 것이 아닌가? 


供 : 다시 최에게 물어보면 좋겠다. 또 습자를 시켜보면 필체의 획은 가려볼 수도 있을 것이다. 


問 : 일전 너를 심문할 때 너는 삼례에 있을 때 서기라는 명색이 없다고 하였는데 지금은 서기라는 명백이 있는 것으로 말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供 : 앞서는 대략 말하였던 것이고 지금은 상세히 이를 묻는 고로 그때 잠시 대서한 것을 서기라고 말하였다. 


이상이 법무아문 재판관(法務衙門 裁判官)과 일본영사(日本領事)가 심문(주로 日本領事)한 진술의 내용이다. 모두 275개 문항이다. 


제3차 심문부터는 어디까지나 전봉준(全琫準)과 대원군(大院君)과의 관계를 캐내려고 파고들었으며 또 전봉준의 가까운 심복을 알려고 애썼다. 


그러나 전봉준은 대원군과의 관계를 전적으로 부인한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건들을 직면할 대마다 책임을 자기 동료들에게 돌리지 않고 전봉준 자신이 전적으로 책임지려고 애쓴 흔적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상 5차 공초기록(供招記錄)에서 갑오동학혁명(甲午東學革命)의 성격을 비롯하여 동학교(東學敎)와의 관계도 짐작할 수 있다. 

  


판결문  

제삼십칠호(일팔구오년삼월십구일) 선고문 


::: 판결선언서 (원문) ::: 


전라도 태인 산외면 동곡 거 농업 평민 


피고 전봉준 년 사십일 


우기자는 전봉준을 대하여 형사피고사건을 심문(審問)하여 본 즉 피고난 동학당이라 칭하고 부도의 거두 접주라 부르고 개국 오백일년 정월에 전라도 고부군수 조병갑이가 처음 도임하여 자못 학정을 행하매 해지방인등이 병고를 견디지 못하고 익년 십일, 이월분에 군수를 향하여 기구정을 고쳐달라하고 애간(哀懇)하였더니 비단 소원을 이루지 못할뿐더러 두루혀 다 잡히고 옥(獄)에 갓치고 그 후에도 수삼차 청원하였건마난 즉시 물리치고 호발(毫髮)도 효험이 없난 고로 인민 등은 매우 분하여 수 천명이 못되어 장차 거사(擧事)하여 할 때 피고도 맛참 그 무리에 드러 드듸여 중인이 밀려 접주(接主)로 삼아 작년(昨年) 삼월상순(三月上旬)에 영솔기도(領率基徒)하여 고부(古阜) 외촌(外村) 창고(倉庫)를 헐고 전곡(錢穀)을 빼셔 진수(盡數)히 인민을 배급(排給)하고 일, 이처에 작경(作梗)한 후 한 번 해산(解散)하였으나 기후 안핵사(按 使) 장흥부사(長興府使) 이용태가 고부로 드러와서 몬져 작경하거슨 다 동학당의 소위라 하고 동학수도하난 자를 잡아 살육(殺戮)을 과히 하므로 이에 피고난 다시 기도를 규합하여 모집(募集)하되 만일 불응자(不應者)난 불충불의(不忠不義)된 사람이니 반드시 벌을 주리라 하고 다른 사람을 협박(脅迫)하여 기도 사천여명(四千餘名)을 어더가지고 각기 소유한 흉기(凶器)를 가지고 양식(糧食)은 기지방 부민에게 징봉(徵捧)하여 시년 사월 상순분(上旬分)에 피고가 친히 기도를 영솔(領率)하여 전라도 무장(茂長)의셔 니러라 고부(古阜), 태인(泰仁), 원평(院坪), 금구(金溝), 등처(等處)를 갈새 전라감영 포군(砲軍) 일만여명(一萬餘名)이 동도(東徒)를 치러 온단 말을 듣고 한 번 고부(古阜)로 몰려 갔다가 하루 밤낮을 접전 후 영문포군(營問砲軍)을 파하고 전진하여 정읍(井邑), 흥덕(興德), 고창(高敞), 무장(茂長), 영광(靈光), 함평(咸平)을 지나 장성(長城)을 니르니 경군 칠백여명을 만나 또 격파(擊破)하고 화야겸행( 夜兼行)으로 행차하여 사월 이십육, 칠일게 관군보담 몬져 전주성을 드러가니 기시(其時) 전라감사는 임이 도망하여 간 곳슬 모르거날 기익일(其翌日)의 다더러 초토사(招討使) 홍재희가 군사를 다리고 성하의 박도(迫到)하여 성밧거셔 거포(巨砲)를 놋코, 공격(攻擊)하기로 피고가 기도(其徒) 더부러 응전(應戰)하여 쟈못 관군을 괴롭게 하니라. 


이에 초토사가 격문(檄文)을 지어 성중으로 던지고 피고 등의 소원을 드러줄터이니 속히 해산하라 효칙(曉飭)하엿난대 피고 등이 곳 전운소핵파사(戰運所革罷事), 국결부위가사(國結不爲加事), 금보부상인작폐사(禁褓負商人作弊事), 도내 환전구백위봉거(還錢舊伯爲捧去) 즉부득재징어민간사(則部得再徵於民間事), 대동상납전각포구잠상무미금단사(大同上納前各浦口潛商貿米禁斷事), 동포전매호춘이양식정전사(洞布錢每戶春秋二兩式定錢事), 탐관오리병파출사(貪官汚吏竝罷黜事), 옹폐상층매관매작조국권지인일병축출사(雍蔽上聰賣官賣爵操國權之人一竝逐出事), 위관장자부득입장어해경내차부위매답사(爲官長者不得入蔣於該境內且不爲買沓事), 전세의전사(田稅依前事), 연호잡역감성사(煙戶雜役減省事), 포구어람세혁파사(浦口魚籃稅革罷事), 보세급관답물시사(洑稅及官沓勿施事), 각읍졸하래민인산지륵표투장물시사(各邑 下來民人山地勒標偸葬勿施事). 이십칠수목(二十七脩目)을 내여 가지고 상주(上奏)하기로 청하였더니 초토사(招討使)가 즉시 承諾한 고로 동년(同年) 오월(五月) 초오(初五), 육일(六日)께 쾌히 그 무리를 해산(解散)하여, 삼례역(三禮驛)을 니르러 그곳으로 기병(起兵) 각기(各其) 취업(就業)하게 하고 또 기시에 피고난 최경선(崔景善) 이하(以下) 이십여명(二十餘名)을 다리고 전주로부터 금구(金溝), 금제(金堤), 태인(泰仁), 장성(長城), 순창(淳昌), 옥과(玉果), 창평(昌平), 순천(順川), 남원(南原), 운봉(雲峰) 등 각처를 열력(閱歷) 유설(遊說), 하여 칠월하순(七月下旬) 태인(泰仁) 제집으로 귀거(歸去)하니라. 기후(其後) 피고난 일본(日本) 군대(軍隊)가 대궐(大闕)로 드러갓단 말듯고 필시 일본인이 아국(我國)을 병합(倂合)코저 한난 뜻신 줄 알고 일본병(日本兵)을 쳐물리고 기거유민(其居留民)을 국외(國外)로 구축(驅逐)할 마음으로 다시 기병(起兵)을 도모(圖謀)하여 전주(全州) 근처(近處) 삼례역(三禮驛)이 토지(土地) 광활(廣闊)하고 전라도(全羅道) 요충지지(要衝地之地)기로 동년(同年) 구월분(九月分)에 태인(泰仁)을 발정(發程) 원평(院坪)을 지나 대도소(大都所)로 삼고 진안거(鎭安居) 동학접주(東學接主) 文季八(文季八), 김영동(金永東), 이종태(李宗泰), 금구거접주 조준구(金溝居接主 趙駿九), 전주거접주 최대봉(全州居接主 崔大奉), 송목두(宋目斗), 정읍거(井邑居), 손여옥(孫汝玉), 부안거(扶安居), 김석윤(金錫允), 김여중(金汝中), 최경선(崔慶善), 송희옥(宋喜玉), 등과 동모(同謀)하여 상년삼월이후(上年三月以後) 피고(被告)와 동사(同事)한 비도거괴(匪徒巨魁) 손화중(孫化仲) 이하(以下) 전주(全州), 진안(鎭安), 흥덕(興德), 무장(茂長), 고창(高敞) 등처(等處) 원근(遠近) 각지방(各地方) 인민(人民) 더러 혹(或) 격문(檄文)을 돌리며 혹(或) 전인(專人)하여 유설(遊說)하고 전라우도(全羅右道)의셔 군사(軍士)를 모흐기를 사천여명(四千餘名)이 되매 처처관아(處處官衙)의 드러가셔 군기(軍器)를 강탈(强奪)하고 또 각지방(各地方) 부민(富民) 한띄 전곡(錢 )을 징봉(徵捧)하여 삼례역(參禮驛)을 떠나가면서 도당(徒黨)을 모집(募集)하고 은진(恩津), 논산(論山)을 지나 당수만여명(黨數萬餘名)을 거느리고 동년(同年) 십월(十月) 이십육일(二十六日)쯤 충청도(忠淸道) 공주(公州)를 다다럿더니 일본병(日本兵)이 몬져 공주성(公州城)을 웅거(雄據)하여 잇기에 전후(前後) 이차접전(二次接戰)하여 보앗건마난 두 번 다 대패(大敗)하였는지라 그러나 피고(被告)난 더 일본병(日兵)을 치려 하였더니 일본병(日本兵)이 공주(公州)의 있셔 움직이지 안코 기간(其間)의 피고(被告) 포중(包中)이 점점(漸漸) 도산(逃散)하여 수습(收拾)치 못하게 되엿기로 부득이(不得已)하여 한번 고향(故鄕)으로 도라가 다시 모병(募兵)하여 전라도(全羅道)의셔 일병(日兵)을 막으려 하엿더니 응모자(應募者)가 없는 타스로 동모(同謀) 삼(三), 오인(五人)과 의논(議論)하고 각기(各其) 변복(變服)하여 가만이 경성(京城)으로 드러가 청탐(淸探)코져 하여 피고(被告)난 상인(商人)맨도를 하고 단신(單身)으로 상경차(上京次) 태인(泰仁)을 떠나 전라도(全羅道) 순창(淳昌)을 지날 새 민병(民兵)한대 잡힌 거시니라. 


우(右)에 기록(記錄)한 사실(事實)은 피고(被告)와 밋 기동모자(其同謀者) 손화중(孫化仲), 최경선(崔慶善) 등(等)이 자복(自服)한 공초(供招) 압수(押收)하나 증거문적(證據文籍)이 분명(分明)한지라. 


기소위(其所爲)는 대전회통형전중(大典會通刑中)의 군복기마작변관문자불대시참(軍服騎馬作變官門者不待時斬)이라 하난 율(律)을 조(照)하여 (處罪)할 거시니라 


우(右)에 이유(理由)로써 피고(被告) 전봉준(全琫準)을 사형(死刑)에 처(處)하노라. 



개국(開國) 오백사년(五百四年) 삼월(三月) 이십구일(二十九日) 


법무아문권설재판소선고(法務衙門說栽判所宣告) 


법무아문(法務衙門) 대신(大臣) 서 광 절(徐光節) 


협판(協辦) 이 재 정(李在正) 


참의(參議) 장 박(張 博) 


주사(主事) 김 기 조(金基肇) 


오 용 묵(吳容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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