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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ident Bok, former President Rudenstine, incoming President Faust, members of the Harvard Corporation and the Board of Overseers, members of the faculty, parents, and especially, the graduates:
Bok 총장님, Rudenstine전 총장님, Faust 차기 총장님, 하버드 법인과 감독위원회 위원 여러분, 교수위원회 위원여러분, 부모님들, 특히 이번 졸업생 여러분, 

I’ve been waiting more than 30 years to say this: “Dad, I always told you I’d come back and get my degree.” 
저는 “아빠, 나는 언젠간 학교에 돌아갈 것이고 졸업장을 받을 거라고 항상 말했었잖아요” 라는 이 말을 하기 위해 30년 이상을 기다려 왔습니다.

I want to thank Harvard for this timely honor. I’ll be changing my job next year … and it will be nice to finally have a college degree on my resume. 
저는 이러한 시의 적절한 영예에 대해 학교측에 감사드리며 저는 내년에는 제 직업을 바꿀겁니다(MS에서 물러나서 자선활동에 전념하는 것을 의미하는 듯)…. 그리고 이제 제 이력서에도 대학졸업학위가 있다는 것은 매우 기분 좋은 일이군요.

I applaud the graduates today for taking a much more direct route to your degrees. For my part, I’m just happy that the Crimson has called me “Harvard’s most successful dropout.” I guess that makes me valedictorian of my own special class … I did the best of everyone who failed. 
저는 오늘 저보다 훨씬 빠르게 학위를 취득한 졸업생 여러분들께 박수를 보내며 저에게 Crimson(Harvard 학교신문)이 하버드 중퇴자중 가장 성공한 사람이라고 말한데 대해 매우 행복합니다. 저는 그러한 칭찬이 저로 하여금 오늘 졸업생들을  대표해서 이렇게 졸업연설을 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모든 중퇴자중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But I also want to be recognized as the guy who got Steve Ballmer to drop out of business school. I’m a bad influence. That’s why I was invited to speak at your graduation. If I had spoken at your orientation, fewer of you might be here today.
그러나 저는 또한 제 친구 Steve Ballmer가 경영대학원을 중퇴하도록 꼬인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즉 저는 악영향이었습니다. 그 것이 바로 왜 제가 여러분들의 졸업식에 초대되었는지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만약 제가 여러분들의 입학식에 연설을 하러 왔다면 오늘 이 자리에 여러분들의 숫자는 훨씬 적었을 것입니다.( Steve Ballmer처럼 중퇴를 해서)

Harvard was just a phenomenal experience for me. Academic life was fascinating. I used to sit in on lots of classes I hadn’t even signed up for. And dorm life was terrific. I lived up at Radcliffe, in Currier House. There were always lots of people in my dorm room late at night discussing things, because everyone knew I didn’t worry about getting up in the morning. That’s how I came to be the leader of the anti-social group. We clung to each other as a way of validating our rejection of all those social people. 

하버드시절은 저에게 경이적인 경험이었습니다. 학교생활은 매력적이었으며 저는 종종 제가 수강 신청하지 않은 많은 수업에 들어가곤 했습니다. 그리고 기숙사 생활도 아주 멋졌습니다. 저는 래드클리프에 있는 Currier House에 있었는데 제 방에는 항상 밤 늦게까지 많은 사람들이 여러가지를 토의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모든 사람들이 제가 아침에 늦잠 자는 것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며 그 것 때문에 저는 반사회적 그룹의 리더가 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모든 기존사회에 순응하는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입증하기 위해 서로서로 밀착하였었습니다.

Radcliffe was a great place to live. There were more women up there, and most of the guys were science-math types. That combination offered me the best odds, if you know what I mean. This is where I learned the sad lesson that improving your odds doesn’t guarantee success. 

래드클리프는 생활하기에 좋은 곳 이었습니다. 그곳에는 남자보다 여학생이 많았고 대부분의 남학생들은 수학, 과학 등 이과생타입 이었습니다. 그러한 조합은 만약 여러분들이 제가 말하는 바를 이해한다면, 최고의 가능성을 제공하였으나 이곳에서 저는 가능성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성공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슬픈 교훈을 배웠습니다.

One of my biggest memories of Harvard came in January 1975, when I made a call from Currier House to a company in Albuquerque that had begun making the world’s first personal computers. I offered to sell them software. 
하버드시절의 가장 중요한 기억은 1975년 1월에 일어났는데 그 때 저는 제 기숙사에서 세계 최초의 개인용컴퓨터를 생산하기 시작한 뉴멕시코주 앨버커키 소재 회사에 전화를 걸어 그들에게 소프트웨어를 사라고 제안했습니다.

I worried that they would realize I was just a student in a dorm and hang up on me. Instead they said: “We’re not quite ready, come see us in a month,” which was a good thing, because we hadn’t written the software yet. From that moment, I worked day and night on this little extra credit project that marked the end of my college education and the beginning of a remarkable journey with Microsoft. 
저는 그들이 제가 단지 기숙사에 있는 학생임을 알아채고 전화기를 내려놓을까봐 걱정을 했지만 그들은 “우리는 아직 준비가 덜 되었고 한달 뒤에 연락하세요” 라는 회신을 했으며 저도 아직 소프트웨어가 덜 완성된 때라 잘 되었다고 생각하고 그때부터 밤낮으로 이 조그마한 프로젝트를 완성하는데 주력했는데 그 것이 제가 학업을 중단하고 Microsoft와의 중요한 여정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What I remember above all about Harvard was being in the midst of so much energy and intelligence. It could be exhilarating, intimidating, sometimes even discouraging, but always challenging. It was an amazing privilege – and though I left early, I was transformed by my years at Harvard, the friendships I made, and the ideas I worked on. 
제가 하버드시절에 대해 기억하는 것은 모두 그러한 열정과 지식의 가운데서 보낸 것들입니다. 그것은 들뜨는 일이거나 위협스런 일 혹은 실망스러운 때일 수 도 있었지만 항상 무언가 도전하는 일이었습니다. 비록 저는 일찍 학교를 떠났지만 제가 보낸 하버드시절과 그 당시 쌓았던 우정 그리고 아이디어들은 고스란히 저에게 전달되었으며 그 것은 놀라운 특권이었습니다.

But taking a serious look back … I do have one big regret. 
그러나 과거를 돌이켜 볼 때 저는 크게 한가지 후회스러운 일이 있습니다.

I left Harvard with no real awareness of the awful inequities in the world – the appalling disparities of health, and wealth, and opportunity that condemn millions of people to lives of despair. 
저는 세계의 지독한 불균형, 즉, 세계 수백만 사람들의 생활을 절망에 빠뜨리는 부와 건강 및 기회의 심각한 불평등에 대한 진정한 인식이 없이 하버드를 떠났기 때문입니다.

I learned a lot here at Harvard about new ideas in economics and politics. I got great exposure to the advances being made in the sciences. 
저는 이곳 하버드에서 경제학과 정치학의 새로운 사상에 대해서 배웠고 과학이 이룩한 진보들에 대해서도 많은 공부를 하였습니다.

But humanity’s greatest advances are not in its discoveries – but in how those discoveries are applied to reduce inequity. Whether through democracy, strong public education, quality health care, or broad economic opportunity – reducing inequity is the highest human achievement. 
그러나 인간성의 가장 위대한 진보는 그러한 발견이 아니라 어떻게 그러한 발견들이 기존의 불평등을 해소하도록 적용하느냐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를 통하거나 강력한 공공교육, 양질의 의료서비스 혹은 폭넓은 경제적 기회를 통해서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성취하는 최상의 것입니다. 

I left campus knowing little about the millions of young people cheated out of educational opportunities here in this country. And I knew nothing about the millions of people living in unspeakable poverty and disease in developing countries. It took me decades to find out. 
나는 이 나라 수백만의 젊은이들이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캠퍼스를 떠났으며 또한 개발도상국의 수백만 명이 말로 할 수 없는 참담한 빈곤과 질병에 시달리는 것도 몰랐고 그 것을 깨닫는데 수십 년이 걸렸습니다.

You graduates came to Harvard at a different time. You know more about the world’s inequities than the classes that came before. In your years here, I hope you’ve had a chance to think about how – in this age of accelerating technology – we can finally take on these inequities, and we can solve them. 
여러분들이 하버드에 올 때는 시대가 달랐습니다. 즉, 여러분들은 선배들보다 세상의 불평등에 대해 더욱 잘 알고 있으며 저는 지금과 같은 급격히 발전하는 기술의 시대에 어떻게 우리가 이러한 불평등을 직시하고 해결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 여러분들이 고민할 기회를 갖기 바랍니다.

Imagine, just for the sake of discussion, that you had a few hours a week and a few dollars a month to donate to a cause – and you wanted to spend that time and money where it would have the greatest impact in saving and improving lives. Where would you spend it? 
잠시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일주일에 몇 시간 혹은 한 달에 몇 달러를 어딘가 기부하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고 또한 당신이 그 시간이나 돈이 어딘가에서 생명을 구하고 삶의 질을 극적으로 개선시킬 수 있는 곳에 사용되기 원한다면 그 곳은 어디일까요? 

For Melinda and for me, the challenge is the same: how can we do the most good for the greatest number with the resources we have. 
멜린다와 저도 같은 고민을 하였습니다. 즉, 어떻게 우리가 가진 것들을 이용하여 최대 다수에게 가장 좋은 것을 베풀 수 있을까?

During our discussions on this question, Melinda and I read an article about the millions of children who were dying every year in poor countries from diseases that we had long ago made harmless in this country. Measles, malaria, pneumonia, hepatitis B, yellow fever. One disease I had never even heard of, rotavirus, was killing half a million kids each year – none of them in the United States. 
이러한 질문에 대한 토의 중, 우리는 이나라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질병들로 매년 빈곤국의 수백만의 어린이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기사를 읽게 되었습니다. 즉, 홍역, 말라리아, 폐렴, B형 간염, 황열병 등 말입니다. 이러한 질병 중 제가 전혀 들어보지도 못한 로타 바이러스라는 질병은 매년 50만명의 어린이들을 사망케 합니다. 물론 미국내에서는 전혀 없는 일이죠.

We were shocked. We had just assumed that if millions of children were dying and they could be saved, the world would make it a priority to discover and deliver the medicines to save them. But it did not. For under a dollar, there were interventions that could save lives that just weren’t being delivered. 
우리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만약 수 백만명의 어린이들이 죽고 있다면 그들을 살릴 수 도 있다는 가정을 하였고 세계는 그 들을 구하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치료약들을 발견하고 전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1 달러도 안 되는 금액에 대해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그 약들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간섭(이권)이 개입되어 있었습니다.

If you believe that every life has equal value, it’s revolting to learn that some lives are seen as worth saving and others are not. We said to ourselves: “This can’t be true. But if it is true, it deserves to be the priority of our giving.” 
여러분들이 모든 생명은 동등한 가치를 같는다고 믿는다면 누군가의 생명이 다른 사람들보다 가치가 있다는 것을 배우는 것은 불쾌할 겁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 것이 진실 일리 없어. 그러나 만약 이것이 현실이라면 마땅히 이러한 것이 우리 기부에 있어 우선권이 주어져야 한다” 라고 말했습니다.

So we began our work in the same way anyone here would begin it. We asked: “How could the world let these children die?”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같은 식으로 우리의 일을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세계는 이러한 어린이들이 죽어가는 것을 방치할 수 있을까”

The answer is simple, and harsh. The market did not reward saving the lives of these children, and governments did not subsidize it. So the children died because their mothers and their fathers had no power in the market and no voice in the system. 
대답은 간단했지만 비정했습니다. 시장은 이러한 어린이들을 구하는 행위에 대해 보상을 하지 않았고 정부 또한 이러한 일을 장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소위 시장내에서 아무런 힘도 없고 목소리도 낼 수 없는 부모들을 둔 어린이들이 죽어갔던 것입니다.

But you and I have both. 
그러나 여러분들과 저는 그러한 힘이 있습니다.

We can make market forces work better for the poor if we can develop a more creative capitalism – if we can stretch the reach of market forces so that more people can make a profit, or at least make a living, serving people who are suffering from the worst inequities. We also can press governments around the world to spend taxpayer money in ways that better reflect the values of the people who pay the taxes. 
우리가 좀더 “창조적인 자본주의”를 발전시킨다면 우리는 시장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역할을 하도록 만들 수 있습니다. 즉, 시장의 힘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익을 내고 혹은 적어도 생계를 유지할 수는 있게 한다면 지금 최악의 불평등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전 지구상의 정부들에게, 세금을 납부하는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보다 잘 반영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세금을 사용해 달라고 압력을 넣을 수 있습니다.

If we can find approaches that meet the needs of the poor in ways that generate profits for business and votes for politicians, we will have found a sustainable way to reduce inequity in the world. This task is open-ended. It can never be finished. But a conscious effort to answer this challenge will change the world. 
사업에서 이익을 내거나 정치인들에게 투표를 하는 방식 등을 통해서 빈곤한 사람들이 원하는 것들을 충족시키는 방법을 알아낸다면 그 것은 이 세상의 불평등을 감소시키는데 지속적으로 기여할 것입니다. 이러한 임무는 개방형으로서 끝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도전에 응전하는 지속적 노력을 통해 이 세계는 변화할 것입니다.



I am optimistic that we can do this, but I talk to skeptics who claim there is no hope. They say: “Inequity has been with us since the beginning, and will be with us till the end – because people just … don’t … care.” I completely disagree. 
저는 우리가 이러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낙관적입니다만 더 이상의 희망이 없다는 비관론은 “불평등이란 인류의 시작부터 함께 하여 왔으며 종말까지 함께 있을 것이다.” 라는 말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습니다.

I believe we have more caring than we know what to do with.
저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실제로 우리는 훨씬 많이 이런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All of us here in this Yard, at one time or another, have seen human tragedies that broke our hearts, and yet we did nothing – not because we didn’t care, but because we didn’t know what to do. If we had known how to help, we would have acted. 
여기 모인 우리는 때때로 우리의 가슴을 찢어지게 하는 인류의 비극을 보아 왔습니다만 그 상황에 대해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관심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무엇을 해야 할 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도울 방법을 알았다면 우리는 행동했을 것입니다.

The barrier to change is not too little caring; it is too much complexity. 
변화를 막는 장벽은 지나치게 적은 관심이 아니라 고도의 현실적 복잡성 때문입니다.

To turn caring into action, we need to see a problem, see a solution, and see the impact. But complexity blocks all three steps. 
관심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서 우리는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책을 찾고 그로 인한 미칠 영향을 파악하는 3단계가 필요하지만 복잡성이라는 것이 이러한 3단계의 진행을 막고 있습니다.

Even with the advent of the Internet and 24-hour news, it is still a complex enterprise to get people to truly see the problems. When an airplane crashes, officials immediately call a press conference. They promise to investigate, determine the cause, and prevent similar crashes in the future. 
비록 인터넷이 있고 24시간 뉴스 프로그램이 있지만 여전히 사람들로 하여금 진정으로 문제를 직시하게 하는 데는 많은 복잡한 요소들이 있습니다. 만약 비행기 추락사고가 나면 정부에서는 즉시 언론인터뷰를 실시합니다. 그들은 철저한 조사를 통해 원인을 규명하고 향후 유사한 사고에 대비한다고 약속합니다.

But if the officials were brutally honest, they would say: “Of all the people in the world who died today from preventable causes, one half of one percent of them were on this plane. We’re determined to do everything possible to solve the problem that took the lives of the one half of one percent.” 
그러나 만일 정부가 지나치게 솔직하다면 그들은 이렇게 말할 겁니다. “ 오늘 이 지구상에서 예방 가능한 사고로 인해 사망한 사람 중 단지 0.5%만이 이 사고 비행기에 탑승했었으며 우리는 그 0.5%의 사람들을 빼앗아 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것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The bigger problem is not the plane crash, but the millions of preventable deaths. 
그러나 보다 큰 문제는 비행기 사고가 아닌 예방 가능했던 수 백만의 사망입니다.

We don’t read much about these deaths. The media covers what’s new – and millions of people dying is nothing new. So it stays in the background, where it’s easier to ignore. But even when we do see it or read about it, it’s difficult to keep our eyes on the problem. It’s hard to look at suffering if the situation is so complex that we don’t know how to help. And so we look away. 
우리는 이러한 죽음들에 대해 자세히 읽지는 않습니다. 언론은 주로 최신뉴스를 다루고 수백만명의 사망은 더 이상 새로운 뉴스가 아닙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무시하기 쉬운 이면에 머무르게 됩니다. 그리고 비록 우리가 그 기사를 보거나 읽었다고 하더라도 그 문제에 대해 계속해서 시선을 고정시키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만약 그 상황이 너무 복잡해서 어떻게 도와야 할 지 알지 못하게 되면 더욱 그 참상에 대해 시선을 고정시키기 어려워서 결국 외면하게 됩니다.

If we can really see a problem, which is the first step, we come to the second step: cutting through the complexity to find a solution. 
첫번째 단계에 해당하는 문제의 직시가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2단계로 접어들어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복잡한 것들을 무너뜨려야 합니다.

Finding solutions is essential if we want to make the most of our caring. If we have clear and proven answers anytime an organization or individual asks “How can I help?,” then we can get action – and we can make sure that none of the caring in the world is wasted. But complexity makes it hard to mark a path of action for everyone who cares — and that makes it hard for their caring to matter. 
우리의 관심을 실제로 실행하기 위해서 해결책의 발견은 필수적인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어떤 기관이나 개인이 “어떻게 우리가 도울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대해 확실하고 입증된 답변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실행에 옮길 수 있으며 이런 방식으로 세상에 대한 우리의 어떠한 관심도 헛되이 되지 않고 활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복잡성이라는 것이 우리의 관심이 실행에 옮겨지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심지어 어떠한 문제들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도 어렵게 만듭니다.

Cutting through complexity to find a solution runs through four predictable stages: determine a goal, find the highest-leverage approach, discover the ideal technology for that approach, and in the meantime, make the smartest application of the technology that you already have — whether it’s something sophisticated, like a drug, or something simpler, like a bednet. 
해결책을 발견하기 위해 복잡성을 무너뜨리는 것은 4가지의 예상 가능한 단계로 연결됩니다.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할 최고의 수단을 발견하며 그 수단을 성취할 최고의 기술을 발견하며 기존의 기술을 적용할 최고의 애플리케이션을 만듭니다. 약처럼 복잡한 것이든 침대망처럼 단순한 것이든 관계없죠.

The AIDS epidemic offers an example. The broad goal, of course, is to end the disease. The highest-leverage approach is prevention. The ideal technology would be a vaccine that gives lifetime immunity with a single dose. So governments, drug companies, and foundations fund vaccine research. But their work is likely to take more than a decade, so in the meantime, we have to work with what we have in hand – and the best prevention approach we have now is getting people to avoid risky behavior. 
에이즈를 예로 들겠습니다. 물론 넓은 의미의 목표는 그 질병의 퇴치입니다. 최고의 수단은 예방입니다. 최고의 기술은 단 한알로 평생 면역이 되는 백신입니다. 따라서 정부나 제약회사 혹은 기금들은 백신을 위한 연구를 후원합니다. 그러나 그 작업은 10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므로 그 동안 우리는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 일을 하여야 합니다. 즉,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예방책은 사람들이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도록 하는 겁니다.

Pursuing that goal starts the four-step cycle again. This is the pattern. The crucial thing is to never stop thinking and working – and never do what we did with malaria and tuberculosis in the 20th century – which is to surrender to complexity and quit. 
그 목표달성을 위해 다시 4단계접근법이 적용됩니다. 이것은 일종의 패턴입니다. 중요한 것은 절대로 생각하고 일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20세기에 말라리아와 결핵에 대해 너무 복잡해서 포기했던 과오를 되풀이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The final step – after seeing the problem and finding an approach – is to measure the impact of your work and share your successes and failures so that others learn from your efforts.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책을 찾은 후 마지막 단계는 여러분들이 한 일이 미치는 영향을 측정하고 당신의 성공과 잘못을 타인과 나눔으로서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노력에서 무언가를 배우도록 하는 일입니다.

You have to have the statistics, of course. You have to be able to show that a program is vaccinating millions more children. You have to be able to show a decline in the number of children dying from these diseases. This is essential not just to improve the program, but also to help draw more investment from business and government. 
물론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통계자료가 필요합니다. 수행하는 프로그램이 수백만의 어린이들에게 백신을 놓는 일이라는 것과 그러한 질병으로 사망하던 어린이들의 숫자가 감소한 것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 것은 단지 그 프로그램의 질을 개선시키는 것 뿐만 아니라 기업과 정부로부터 보다 많은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인 것입니다.

But if you want to inspire people to participate, you have to show more than numbers; you have to convey the human impact of the work – so people can feel what saving a life means to the families affected. 
그러나 여러분들이 다른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고 싶다면 단지 숫자가 아닌 그 이상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즉, 그 작업의 인간적인 면을 전달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생명을 구하는 일은 가까운 친지에게 하는 것과 같다는 느낌을 갖도록 하는 것입니다.

I remember going to Davos some years back and sitting on a global health panel that was discussing ways to save millions of lives. Millions! Think of the thrill of saving just one person’s life – then multiply that by millions. … Yet this was the most boring panel I’ve ever been on – ever. So boring even I couldn’t bear it. 
저는 몇 년 전 다보스 포럼에 가서 글로벌헬스의 패널로 참여하여 수백만의 생명들 구하는 방법에 대해 토의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수백만! 단 한 명의 목숨을 구하는데 따른 온몸의 전율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 것이 수백만이 되다니요…..그러나 그 회의는 제가 경험해 본 중 가장 지루한 패널이었으며 참을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What made that experience especially striking was that I had just come from an event where we were introducing version 13 of some piece of software, and we had people jumping and shouting with excitement. I love getting people excited about software – but why can’t we generate even more excitement for saving lives?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제가 어떤 소프트웨어의 13번째 버전인가를 소개하는 이벤트에 갔을 때 흥분해서 점프하고 소리치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소프트웨어에 대해 흥분에 휩싸인 사람들을 저는 사랑합니다. 그러나 왜 우리는 생명을 구하는 일에는 더 흥분하지 않는 것이죠?

You can’t get people excited unless you can help them see and feel the impact. And how you do that – is a complex question. 
여러분들이 사람들을 도와서 그 영향력을 보고 느끼지 않는다면 당신은 사람들을 흥분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렇게 할 것이냐 하는 것은 복잡한 질문입니다.

Still, I’m optimistic. Yes, inequity has been with us forever, but the new tools we have to cut through complexity have not been with us forever. They are new – they can help us make the most of our caring – and that’s why the future can be different from the past. 
아직 저는 낙관론자입니다. 불평등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복잡성을 무너뜨리는 새로운 방법들은 이제 나온 것들이며 그 방법들은 우리가 우리의 관심을 극대화시킬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앞으로의 미래는 과거와는 다를 것입니다.

The defining and ongoing innovations of this age – biotechnology, the computer, the Internet – give us a chance we’ve never had before to end extreme poverty and end death from preventable disease. 
이 시대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생명공학, 컴퓨터 및 인터넷의 혁신은 극심한 빈곤과 예방가능한 질병으로 인한 사망을 종식시킬 수 있는 기회를 우리에게 주고 있으며 그 것은 과거에는 없었던 기회들입니다.  

Sixty years ago, George Marshall came to this commencement and announced a plan to assist the nations of post-war Europe. He said: “I think one difficulty is that the problem is one of such enormous complexity that the very mass of facts presented to the public by press and radio make it exceedingly difficult for the man in the street to reach a clear appraisement of the situation. It is virtually impossible at this distance to grasp at all the real significance of the situation.” 
60년전, 조지 마샬이 이 졸업식에 와서 전후의 유럽을 지원하는 플랜을 발표했습니다. 그는 “ 이 문제의 어려움은 언론이나 방송을 통해 대중들에게 전달되는 내용이 엄청나게 복잡하다 보니 사람들로 하여금 현 상황에 대한 간결한  평가를 하기가 매우 어렵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현재 이 상황에 대한 모든 중요한 점들을 빠뜨리지 않고 파악하기는 실로 불가능합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Thirty years after Marshall made his address, as my class graduated without me, technology was emerging that would make the world smaller, more open, more visible, less distant. 
마샬이 그 연설을 한 후 30년 뒤 제가 없이 저의 친구들이 학교를 졸업할 때, 세상을 보다 작고, 보다 개방되어 있고, 명백하게 만들고 가깝게 만들 기술들이 막 나오고 있었습니다.

The emergence of low-cost personal computers gave rise to a powerful network that has transformed opportunities for learning and communicating. 
저렴한 가격의 개인용 컴퓨터는 교육과 커뮤니케이션의 기회를 전달하는 강력한 네트워크가 출현하도록 했습니다.

The magical thing about this network is not just that it collapses distance and makes everyone your neighbor. It also dramatically increases the number of brilliant minds we can have working together on the same problem – and that scales up the rate of innovation to a staggering degree. 
이 네트워크의 놀라운 점은 단지 거리의 제약을 없애고 모든 사람들이 이웃이 되게 하였다는 점뿐만 아니라 동일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작업할 수 있는 총명한 사람들의 숫자를 엄청나게 증가시켰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것을 통해 거의 경이로울 정도로 혁신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습니다.

At the same time, for every person in the world who has access to this technology, five people don’t. That means many creative minds are left out of this discussion -- smart people with practical intelligence and relevant experience who don’t have the technology to hone their talents or contribute their ideas to the world. 
동시에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기술에 접속하여 있지만 5명은 그렇지 않습니다. 즉, 많은 창조적인 사람들이 이 토의에서 제외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현실적인 지식과 관련된 경혐을 가지고 있지만 기술을 모르는 스마트한 사람들이 그들의 재능을 연마하고 그들의 아이디어로 세상에 기여할 사람들 말입니다.

We need as many people as possible to have access to this technology, because these advances are triggering a revolution in what human beings can do for one another. They are making it possible not just for national governments, but for universities, corporations, smaller organizations, and even individuals to see problems, see approaches, and measure the impact of their efforts to address the hunger, poverty, and desperation George Marshall spoke of 60 years ago. 
우리는 이러한 수준의 기술에 접근하기 위해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진보는 인류로 하여금 타인에게 베풀 수 있는 일들의 혁신을 촉진시키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진보는 단지 국가정부 차원이 아닌 대학교, 회사, 중소규모단체 및 심지어 개인들이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을 위한 접근법을 모색하며 미칠 영향을 측정함 으로서 조지 마샬이 60년 전 언급했던 빈곤, 기근 및 절망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측정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줍니다.

Members of the Harvard Family: Here in the Yard is one of the great collections of intellectual talent in the world. 
하버드 가족 여러분, 여기 캠퍼스는 전세계에서 모인 인재들의 집합소 입니다.

What for? 
무엇을 위해서 일까요?

There is no question that the faculty, the alumni, the students, and the benefactors of Harvard have used their power to improve the lives of people here and around the world. But can we do more? Can Harvard dedicate its intellect to improving the lives of people who will never even hear its name? 
여기 하버드 교수 여러분, 동문, 학생 및 기부자 분들이 전세계 사람들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 본인들의 힘을 사용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좀더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하버드가 하버드라는 이름조차 들어보지도 못한 사람들의 삶을 증진시키는데 그 지식을 바칠 수 있지 않을까요?

Let me make a request of the deans and the professors – the intellectual leaders here at Harvard: As you hire new faculty, award tenure, review curriculum, and determine degree requirements, please ask yourselves: 
여기 하버드 지식의 리더이신 학장님과 교수님들께 요청합니다. 여러분들이 새로운 교수를 영입하거나 종신교수권을 받거나, 교과과정을 검토하거나 각 학위에서 요구하는 사항들을 결정할 때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Should our best minds be dedicated to solving our biggest problems? 
우리의 최고의 마인드가 우리의 가장 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쳐지고 있나?

Should Harvard encourage its faculty to take on the world’s worst inequities? Should Harvard students learn about the depth of global poverty … the prevalence of world hunger … the scarcity of clean water …the girls kept out of school … the children who die from diseases we can cure? 

하버드는 교수들이 세계 최악의 불평등을 직시하고 고민하도록 권장하고 있는지? 하버드 학생들은 글로벌한 빈곤이나, 만연한 배고픔, 물 오염, 학교에 못나오는 여학생들 및 우리가 치료할 수 있는 질병으로 죽은 아이들 등에 대해 배우고 있는지?

Should the world’s most privileged people learn about the lives of the world’s least privileged? 
지구상 가장 특권을 가진 사람들이 최저의 권리를 가진 사람들의 삶에 대해 배우고 있는지?

These are not rhetorical questions – you will answer with your policies. 
이 것들은 어떤 미사여구의 질문들이 아니며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철학을 가지고 답변을 해야 합니다.

My mother, who was filled with pride the day I was admitted here – never stopped pressing me to do more for others. A few days before my wedding, she hosted a bridal event, at which she read aloud a letter about marriage that she had written to Melinda. My mother was very ill with cancer at the time, but she saw one more opportunity to deliver her message, and at the close of the letter she said: “From those to whom much is given, much is expected.” 
제가 이곳에 입학이 결정 나던 날 자긍심에 넘치셨던 제 어머니는 항상 다른 사람들에게 보다 많이 베풀라는 압력을 저에게 넣었습니다. 제 결혼식 며칠 전 그녀는 결혼전의 신부이벤트를 주관하면서 멜린다에게 쓴 편지를 큰 소리로 읽으셨습니다. 그 당시 제 어머니는 암으로 고생하였는데 그녀는 편지에 담긴 내용에서 다시 한번 본인의 메시지를 전달하였습니다. 즉, 편지의 말미에 그녀는 “ 많은 것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보다 많은 의무가 요구된다” 라고 썼습니다.

When you consider what those of us here in this Yard have been given – in talent, privilege, and opportunity – there is almost no limit to what the world has a right to expect from us. 
여러분의 이 캠퍼스의 우리들에게 주어진 것들을 생각해보면 재능, 특권 및 기회 등 세계에서 우리에게 기대할 수 있는 권리에는 거의 제한이 없습니다.

In line with the promise of this age, I want to exhort each of the graduates here to take on an issue – a complex problem, a deep inequity, and become a specialist on it. If you make it the focus of your career, that would be phenomenal. But you don’t have to do that to make an impact. For a few hours every week, you can use the growing power of the Internet to get informed, find others with the same interests, see the barriers, and find ways to cut through them. 
이 시대에 대한 약속에 부응하기 위해 저는 여기 모든 졸업생 모두가 심각한 불평등 같은 복잡한 문제를 직시하고 그 것에 전문가가 되기를 권합니다. 만약 여러분들의 향후 경력의 중심에 항상 이것을 둔다면 그 것은 정말 경이로운 것일 것입니다. 그러나 영향을 미치기 위해 그렇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단지 매주 몇 시간 여러분들은 엄청난 파워의 인터넷에서 지식을 쌓고 동일한 관심을 가진 다른 사람들을 발견하고 장애물을 파악 한 다음 그 것들을 무너뜨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면 됩니다.

Don’t let complexity stop you. Be activists. Take on the big inequities. It will be one of the great experiences of your lives. 
복잡한 현실이 당신을 멈추지 못하게 하십시오, 행동하는 사람이 되시고 불평등을 직시하십시오. 그 것은 당신 인생에 있어 가장 위대한 경험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You graduates are coming of age in an amazing time. As you leave Harvard, you have technology that members of my class never had. You have awareness of global inequity, which we did not have. And with that awareness, you likely also have an informed conscience that will torment you if you abandon these people whose lives you could change with very little effort. You have more than we had; you must start sooner, and carry on longer. 
여러분 졸업생들은 정말 환상적인 시대에 사회에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버드를 떠나게 되면 여러분들은 우리 세대의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기술을 가지게 될 것이고 우리가 몰랐던 글로벌한 불평등에 대해 인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인지를 바탕으로 여러분들의 매우 작은 노력으로도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것을 하지 않는다면 양심의 소리에 고뇌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저희 세대보다 많은 것을 가졌습니다. 그러므로 조속히 시작하시고 그리고 오래도록 지속하십시오.

Knowing what you know, how could you not? 
여러분들이 알아야 할 것들을 알고 있다면 어떻게 실천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And I hope you will come back here to Harvard 30 years from now and reflect on what you have done with your talent and your energy. I hope you will judge yourselves not on your professional accomplishments alone, but also on how well you have addressed the world’s deepest inequities … on how well you treated people a world away who have nothing in common with you but their humanity.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30년 뒤 여기 하버드에 돌아와서 여러분들의 재능과 열정으로 이루어 온 일들을 떠올리기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사회에서 이룬 프로페셔널한 업적뿐만이 아니라 어떻게 전 세계의 심각한 불평등을 해소하는데 기여했는지를 포함하여 스스로를 평가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인간성 외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던 타지역의 사람들에게 여러분들이 기여했는지를…..
Good luck.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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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0일 버락 오바마(47)씨가 44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는 취임연설에서 미국은 일부 시대착오적 이념에 빠진 사람들의 탐욕과 무책임으로 경제위기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이 위기는 단기간에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근면과 정직 등의 올바른 가치관에 입각하여 각자에게 주어진 시대적 책임을 다해간다면 위기를 극복하고 자식세대들에게 자유와 강건한 미국을 물려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연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지금 미국은 폭력과 증오에 사로잡힌 세력과의 전쟁 중이다. 일부 세력들의 탐욕과 무책임의 결과로 미국 경제는 극도로 약화되어 위기에 처해 있다. 이 위기는 새로운 시대를 위한 선택과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미국민 전체의 실패라고도 할 수 있다. 그로 인해 집도 잃고 일자리도 잃고 있으며 기업은 파산하고 있다. 위료보험은 너무나 비싸며 학교교육도 파탄에 이르고 있다. 전쟁을 불사할 정도로 그리고 지구를 위협할 정도로 에너지 사용도 남용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통계지표로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이지만 통계지표로 확인하기 어려운 것이 있다. 미국이 이제는 쇠퇴의 길로 접어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의 확산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이 직면하고 있는 위기의 실체는 바로 이것이다. 이런 위기는 단기간에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은 반드시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오늘 미 국민들은 두려움보다는 희망을, 갈등과 이견대립보다는 통합을 위해 모였다. 너무나 오랫동안 미국 정치를 지배해온 하잘것없는 탐욕과 거짓공약, 상호비난과 시대착오적인 이념들을 종식시키기 위해 모였다.
 
  미국은 젊은 국가이다. 이제 어린애 같은 유치한 짓은 그만둘 때가 되었다. 불굴의 정신을 다시 확인하고, 보다 나은 역사를 선택할 때가 되었다. 수 세대 동안 이어져 온 소중한 재능과 기발한 아이디어를 적극 장려하고, 모두가 평등하며 자유롭고 최대한의 행복을 추구할 기회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신성불가침의 약속을 실천할 때가 되었다.

  우리 선조들의 위대함을 생각해보면 그것이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노력해서 얻어진 것임을 알게 된다. 우리 선조들은 겁쟁이가 아니었으며 놀기 좋아하는 사람들도 아니었고 부와 명성의 쾌락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더욱 아니었다. 때로는 현명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수많은 평민들이 위험에 도전하고 행동하며 성공을 이루어왔다. 그들은 길고도 험난한 여행을 해왔지만 우리를 자유와 번영의 길로 이끌어 주었다.

  우리 선조들이 했던 여행을 오늘날 우리들이 계속하고 있다. 미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번영하고 강력한 국가이다. 미국의 역량은 여전히 줄지 않았다. 그러나 억지를 부리는 때는 끝났다. 오늘 우리는 일어서서 먼지를 털고 미국을 재건하기 위해 다시 시작해야 한다.

  미국 경제는 대담하고 신속한 행동을 필요로 한다.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며 새로운 성장의 기초를 쌓아야 한다. 이를 위해 도로와 다리를 건설할 것이며 전력망과 인터넷망을 확충하여 상업을 부흥시키고 미국민을 하나로 묶을 것이다. 과학을 부흥시키고 의료보험의 질을 높이고 비용도 낮추어야 한다. 태양과 바람과 땅을 이용하여 자동차와 공장의 연료를 공급해야 한다. 학교와 대학을 시대의 변화에 맞게 다시 고쳐야 한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며 반드시 할 것이다. 이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이들은 그 동안 이 나라가 성취해온 것을 잊어버린 사람들이다. 미국민들의 상상력이 공동의 목표와 용기와 합쳐질 때 얼마나 엄청난 것을 달성할 수 있는 지를 잊어먹은 사람들이다.

  문제는 정부가 너무 크다든지 너무 작다든지 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정부가 모든 가계에 평균적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고 의료보험 서비스를 보장할 수 있으며 웬만한 생활이 가능한 노후를 보장해줄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국민의 세금을 관리하는 정부는 그 세금을 현명하게 사용해야 하며 악습을 개혁하고 시대의 흐름에 맞는 재정사업을 전개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에 비로소 국민들과 정부간의 신뢰가 회복될 수 있다.

  시장이 선한 것인지 악한 것인지는 문제가 아니다. 시장은 부를 창출해주고 자유를 확장시켜 준다. 그러나 이번 경제위기는 시장에 대한 감시의 눈을 소홀히 하면 시장이 폭주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시장의 번영만으로는 국민의 번영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미국경제의 성공은 GDP와 같은 양적 성장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번영의 혜택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분배되는가, 일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언제든지 기회를 제공하는가 하는 질적 역량의 확대에도 항상 크게 의존해왔다. 자선에 의해서가 아니라 미국 경제의 질적 역량 확대야말로 미국민 모두가 공동善에 도달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미국은 평화와 존엄을 원하는 모든 나라와 사람들의 친구이다. 미국은 다시 한번 앞장설 준비가 되어 있다. 파시즘과 공산주의를 무너뜨린 것은 탱크나 미사일이 아니라 굳건한 동맹과 변함없는 신념이었다. 미국의 힘은 신중하게 사용될 때 더욱 강력해진다는 것을 알았다. 미국의 안보는 대의명분과 상대방에게 굴욕과 적개심을 주지 않는 모범적 행위로부터 보장된다. 이러한 교훈을 바탕으로 세계 각국과 협력과 이해를 넓혀감으로써 새로운 위협에 대처할 수 있다. 미국은 이라크를 이라크 국민들에게 되돌려 줄 것이며 아프칸에서 힘겹게 얻은 평화를 강화해갈 것이다. 적국이었든 우방이었든 모두 함께 힘을 합쳐 핵위협을 줄여갈 것이며 지구온난화 문제에 대처해갈 것이다. 테러와 무고한 양민학살 행위에 대해 결코 굴하지 않고 맞서 싸울 것이다.

  미국 이민사회의 다양성은 약점이 아니라 강점이다. 미국은 기독교와 이슬람교, 유대교, 힌두교, 무신론자들의 나라이다. 미국은 온갖 언어와 문화로 형성된 국가이다. 독립정신과 인종차별을 경험한 나라이지만 증오는 사라질 것이며 파별도 해체될 것이다. 세계는 더욱 좁아져 세계 공통의 인류애가 출현할 것이다. 미국은 새 시대의 평화를 선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술람 세계에 대하여, 미국은 상호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새로운 협력의 길을 모색할 것이다.

  빈곤 국가들에 대하여, 농업생산 증대와 깨끗한 물을 먹을 수 있도록 하며, 굶주리거나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이 없도록 함께 협력해갈 것이다. 잘사는 나라 사람들은 외부 세계의 고통에 대해 더 이상 무관심해서는 안되며 부작용을 생각하지 않은 채 세계 자원을 마구 사용해서도 안 된다. 세상은 변했으며 우리도 그와 더불어 변해야 한다.

  정부가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이 많지만 정부가 의지하는 것은 미국 국민들의 믿음과 결정이다. 친구가 일자리를 엃는 것보다는 자신의 노동시간을 단축하여 일자리를 나누는 고통분담 행위가 우리의 운명을 결정한다.

  미국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성공을 결정하는 가치관은 오래된 것이다. 근면과 정직, 용기와 페어플레이, 관용과 호기심, 충성심과 애국심이 바로 그것이다. 이 가치관들은 진리이며 역사를 조용히 발전시켜 온 원동력이다. 이들 진리에 대해서는 대가가 필요하다.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는 새 시대에 대한 책임감이다. 모든 미국민들은 자신과 국가 그리고 세계에 대한 의무감을 인식해야 한다. 억지로 떠맡는 의무가 아니라 기꺼이 떠맡는 의무감을 인식해야 한다. 이 의무감을 올바로 깨닫는 것이야말로 시민으로서 치러야 할 대가이며 약속이다. 이 의무감은 자신감의 원천이기도 한다.

  미래의 세계에 대해 우리는 말한다. 희망과 선 외에 아무 것도 살아남지 못하는 이 추운 한겨울 경제위기에 직면하여 도시와 국가는 그에 맞섰다고 말이다. 미국이여, 경제위기에 직면하여 고난의 추운 겨울에 이 영원한 말을 기억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시련에 직면하였을 때 우리는 역사의 여행을 끝내는 것을 거부하였으며, 뒤돌아 보거나 비틀거리지도 않았고, 지평선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신의 은총을 받으면서 우리는 자유라는 위대한 선물을 더욱 발전시켜 미래 자식세대들에게 안전하게 물려주었다는 것을!


이상이 44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연설 내용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 연설을 통해 경제 면에서 경기부양 대책 및 시장경제 감시 강화, 외교안보 면에서 상호이해와 국제협력, 환경 및 빈곤 문제 면에서 시대 변화와 적극적 동참, 민주주의 발전 면에서 공동체 선의 가치관 부활과 책임감을 강조했다고 할 수 있다. 오바마 정부의 국정운영 철학을 피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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