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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루미나티에 대하여

 

모든 것을 보는 눈, 전시안의 비밀

 

<툼 레이더>

 

인간은 상징의 동물입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된 것은 상징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 때문이라는 말도 있지요. 상징을 이해함으로써 물(物) 그 자체와 그 대상을 다스리는 힘을 얻게 되니까요. 영화 <툼 레이더>에는 에소테릭적인 관점에서 볼 때 매우 중요한 심벌이 주요 소재로 등장합니다. 이른 바 ‘모든 것을 보는 눈(All Seeing Eye)’, 즉 전시안이 바로 그것이죠. 


 

이 전시안 심벌에는 매우 깊은 영적인 의미가 내포돼 있습니다. 전시안은 흔히 구름이나 삼각형에 싸여있는 형태로 묘사되는데 그 둘레에는 언제나 항상 영광이 발하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지요. 또 이 전시안은 종종 꼭대기가 잘린 절두형 피라밋과 함께 등장하곤 합니다. 그 피라밋의 정상 부분에 삼각형 전시안이 그려지는 형태로요. 

  

전시안 피라밋은 미국의 국새 뒷면의 문양입니다. 독수리가 화살과 올리브 가지를 발톱으로 쥐고 있는 문양은 미국 국새의 앞면 문양이고, 그 뒷면이 전시안 피라밋이죠. 그리고 미국의 1달러 지폐를 보면 거기에도 이 전시안 피라밋 문양이 새겨져 있죠.


 

음모론자들은 미국의 국새와 1달러 지폐에 새겨진 이 전시안 피라밋을 보고 어떤 강력한 미지의 오컬트 조직이 미국과 세계의 역사 흐름에 개입하고 있는 증거라고 주장합니다. 그 조직을 그들은 일루미나티(Illuminati)라 부르고 있지요. 영화 <툼 레이더>는 바로 그 일루미나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실 순수한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일루미나티는 무슨 악당같은 존재들의 조직도 아니고 세계를 좌지우지할 만큼 막강한 조직도 아닙니다. 그것은 편집증적인 음모론에 빠진 자들이 상상으로 만들어낸 허구의 뻥튀기라 할 수 있죠. 그렇다면 과연 실제 역사 속의 일루미나티는 어떤 조직일까요?

  

일루미나티는 1776년 5월 1일 바바리아(바이에른) 공국에서 아담 바이샤우프트에 의해 창설되었습니다. 일루미나티Illuminati는 라틴어 일루미나투스(Illuminatus)의 복수형으로, 깨우친, 계몽된, 계명啓明된 자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일루미나티에 대해 많은 오해들이 있는데, 사실 일루미니스트들은 그 이름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계몽주의자들입니다. 18세기에 유럽에서는 이성의 빛을 통해 봉건적 구습과 종교적 미신을 타파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일깨우고자 하는 운동이 벌어졌는데, 그것을 계몽운동이라고 하죠. 일루미나티는 바로 그런 계몽주의 운동을 선도했던 조직이죠. 일루미나티가 당시의 여타 계몽주의자들과 다른 차이점은 오컬트적인 요소와 결합되었다는 사실이죠.

  

일루미나티를 창설한 아담 바이샤우프트는 불과 27세의 나이에 바바리아 잉골스타트 대학교의 법학대학장을 지냈을만큼 탁월한 지성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는 시대를 앞서간 개혁의 선구자로, 전제군주와 기독교 성직자들의 압제로부터 백성들을 해방시키고자 하는 숭고한 이상을 갖고 있었지요. 또 그는 여성에게 교육받을 권리가 주어져야 되고 남성과 동등하게 대우받아야 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렇듯 핍박받는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섰던 그에 대해 객관적인 연구가들은 지극히 도덕적인 성격을 지닌 심원한 사상가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바이샤우프트

 

바이샤우프트는 프리메이슨이었고 나름대로 엘레우시스 비의와 피타고라스의 가르침 등을 공부하기는 했지만(그의 스승이 오컬티스트였다는 설도 있음), 사실상 그 자신은 신비적인 요소를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이성주의자였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이성의 숭배자’라고 말하곤 했지요.

 

일루미나티는 무엇보다 철학적인 요소가 강한 조직입니다. 바이샤우프트 자신이 철학자들의 영향을 크게 받았기 때문에 일루미나티에서 멤버들에게 추천하는 양서들도 대부분 철학서적들이었죠. 일루미나티에 오컬트적인 요소가 포함되게 된 것은 창설 이후의 일로, 여기에는 일루미나티의 이인자인 크니게 남작의 역할이 컸습니다. 프리메이슨이자 오컬티스트였던 크니게는 자신의 오컬트 지식을 활용하여 교단의 의식(儀式) 구성을 체계화 시킵니다.

 

크니게

 

현대의 음모론자들은 일루미나티와 프리메이슨단을 거의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일루미나티는 프리메이슨단과는 완전히 독립된 별개의 조직입니다. 일루미나티의 일인자 바이샤우프트와 이인자 크니게가 프리메이슨이었기 때문에 자연 일루미나티의 멤버들 중에 많은 수의 프리메이슨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일루미나티의 등급 속에 프리메이슨 등급이 포함돼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세 개의 클래스 중에서 두 번째 클래스는 프리메이슨 등급들로 구성돼 있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루미나티와 프리메이슨단이 직접적인 연계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

 

어떤 면에서 일루미나티에서 프리메이슨들을 적극 영입함으로써 교단이 추진하고 있는 운동이나 활동들에 안정감과 효율성을 높이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볼 수 있죠. 즉 일루미나티에서 기존의 프리메이슨 세력을 이용하려 했던 것이죠. 그러나 그것은 프리메이슨단의 입장에서는 썩 달가운 일은 아니죠. 왜냐하면 쓸데 없는 위험 부담을 안아야 하기 때문이죠. 그런 우려는 사실상 현실화됩니다. 훗날 바바리아 정부에서 일루미나티를 탄압할 때 프리메이슨단까지 덤으로 활동 금지 조치를 당해야 했거든요.

  

창설 당시에 다섯 명의 회원으로 시작한 일루미나티는 빠른 속도로 발전하게 됩니다. 얼마 안 가, 유럽 전역에 지부들을 두게 되었고 멤버 수는 2천명에서 3천명 사이에 이르게 되지요.

 

일루미나티 멤버 중에는 당시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역사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로는 괴테, 헤르더, 생 제르맹(세인트 저메인) 등이 있습니다. 일루미니스트들은 대부분 당대의 고매한 지성인들이었고, 악당과는 전혀 상관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괴테

 

헤르더


일루미나티의 활동 목적은 절대 군주제와 배타적인 종교 등 사람들을 억압하는 사회 시스템들을 없애고 자유, 평등에 바탕하여 보편적인 형제애 안에서 온 인류가 조화롭게 사는 것이었죠. 일루미나티에게 있어서 개인에 대한 과도한 억압을 가하는 전제 군주제, 그리고 철학의 자유, 과학의 자유를 억압하는 당시의 기독교 교회는 사회 개혁을 위해 타파해야 할 가장 큰 장애물이었죠. 

 

 일루미나티가 바바리아 정부와 기독교 세력(특히 제수이트회)으로부터 탄압을 받았던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죠. 일루미나티의 급진 사상은 권력자와 성직자 등 기득권 계층에 위협의식과 적대적인 반감을 불러일으키게 되지요.

 

일루미나티의 급진 개혁주의는 심지어 유사한 오컬트 조직과도 대립각을 세우게 만듦니다. 황금장미십자단과의 충돌이 대표적인 예이죠. 이 부분은 얼핏 보면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황금장미십자단은 프리메이슨들로 이루어진 오컬트 조직이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프리메이슨들끼리 충돌하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당시 황금장미십자단은 정치적으로 보수주의 노선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황제를 비롯한 사회 지배층 인사들이 많이 포함돼 있었죠. 따라서 군주제 철폐를 주장하는 일루미나티의 급진 개혁주의자들과는 상극이라 할 수 있죠. 게다가 납을 황금으로 바꿀 수 있다고 하는 황금장미십자단의 연금술 가르침을 일루미나티에서는 터무니 없는 미신으로 취급하였고 혹세무민하고 있는 것으로 봅니다. 왜냐하면 철학적 성격이 강한 일루미나티는 무엇보다 합리적인 이성을 중시하였기 때문이죠. 

 

요컨대, 일루미나티와 황금장미십자단의 대립은 '개혁주의 대 보수주의', '이성주의 대 신비주의'라 할 수 있습니다. 

 

또 일루미나티의 개혁주의는 필연적으로 기독교 기성 세력과의 마찰을 가져오게 됩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자면 일루미나티가 기독교 자체와 대립한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일루미나티의 멤버들은 모두 크리스천들이기 때문이죠. 가입 자격에 이교도들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지요. 따라서 일루미나티와 유대주의를 관련짓는 것 또한 어불성설입니다.  

 

일루미나티에서는 교회에서 가르치는 독단적인 교리(예수 안 믿으면 지옥간다는 식의)를 믿지 않았습니다. 일루미니스트들은 고급 과정에서 예수가 가르쳤던 진정한 가르침, 즉 에소테릭 기독교에 대해 배우게 됩니다. 그러므로 일루미나티는 예수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교회에 반할 뿐이죠.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 때문에 일루미니스트들의 활동은 매우 비밀스러울 수밖에 없었죠. 멤버들의 이름은 본명이 아니라 별칭으로 불립니다. 예를 들어 스파르타쿠스, 필로 등. 그들은 지명地名도 바꾸어 불렀죠. 예를 들어 일루미나티 본부가 있는 곳은 엘레우시스, 오스트리아는 이집트 등으로 불렀지요. 심지어 날짜까지 암호 형식으로 주고받습니다.

 

미국의 제퍼슨 대통령은 훗날 일루미나티의 이런 비밀주의에 대해, 만일 바이샤우프트가 미국에서 자신의 사상을 펼쳤다면 비밀스러운 장치들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계몽사상의 영향을 받은 미국의 건국 이념(자유와 평등)과 일루미니즘이 많은 부분 유사하기 때문이죠.

 

바바리아에서 일루미나티의 활동에 처음 제동을 건 것은 제수이트회였습니다. 일루미나티와 제수이트회는 서로 상반되는 목적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앙숙관계이죠. 전자는 기성 기독교 타파, 후자는 기성 기독교 수호를 각각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일루미니스트들은 제수이트들을 몰아내려고 했고, 제수이트들은 일루미니스트들을 몰아내려고 했죠. 

 

바바리아에서 일루미나티의 세력에 밀린 제수이트회는 일루미나티를 박멸하기 위해 음모를 꾸미게 됩니다. 일루미나티에 두 명의 오스트리아 장관이 멤버로 있는 사실을 이용해서 일루미나티가 바바리아를 오스트리아의 지배권에 넣게 하려 한다고 주장한 것이죠. 이런 제보로 인해 마침내 바바리아 정부 당국까지 일루미나티에 대한 공격에 가세하게 됩니다. 날로 성장해 가는 일루미나티는 바바리아 선제후의 입장에서 볼 때도 자기 권력의 안위를 걱정해야 할 만큼 매우 위협적인 존재였던 것이죠. 

 

그렇게 해서 1784년 마침내 바바리아 정부에 의해 일루미나티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이 시작되지요. 그로 인해 많은 일루미니스트들이 투옥되거나 강제 추방되게 되지요. 하지만 죄목들은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어처구니 없는 내용들이었죠. 예를 들어 금식일 날 밥을 먹었다, 고해의식에 반대했다, 특정 책들을 유통시키거나 베껴썼다, 등이었죠. 이런 어처구니 없는 박해의 결과 18세기 말엽에 이르러 일루미나티는 완전히 사라지게 됩니다. 바이샤우프트는 고타 지방으로 망명하였고 거기서 일루미니즘에 대한 수권의 저술들을 남기게 됩니다.

  

기록으로 볼 때 일루미나티의 역사는 10여년에 불과합니다. 일루미나티의 전신前身이라 할 수 있는 완전주의자단까지 포함해도 20년이 채 안 되는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지요.

 

18세기 후반에 잠시 불꽃처럼 피어올랐다가 사라져 버린 일루미나티가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일루미나티가 현대에 대중의 의식 속에 부활하게 된 것은 1970년대 중반에 나온 소설 <일루미나투스!> 삼부작에서 시작됩니다.

 


소설 <일루미나투스!>

 

이 소설은 앤턴 윌슨과 로버트 쉬어의 공저로, 역사적 사실과 기존의 일루미나티 세계 지배 음모론(예를 들어 18세기 말 존 로비슨, 바루엘, 20세기 초 네스타 웹스터 등의 저서들)에 나온 자료들을 바탕으로 해서 작가적 상상력을 극대화시켜 만든 펙션 소설입니다. <일루미나투스!>는 출간 후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고 그 인기에 편승해서 유사한 음모론 책들이 쏟아져 나오게 되었죠. 픽션과 논픽션이 버무려진 펙션 스타일의 책들로 인해 대중은 상상의 허구와 역사적 사실을 혼동하게 됩니다.

 

로버트 쉬어

 

앤턴 윌슨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그 책들을 이용해서 마치 그 내용이 사실인 것처럼 대대적으로 선전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사람들은 일루미나티가 마치 실제로 존재하는 조직처럼 착각하게 되었지요.  (사실 일루미나티 세계지배 음모론은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자신들의 반대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역이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시안 피라밋이 일루미나티를 상징하는 심벌로 인식되게 된 것도 바로 소설 <일루미나투스!> 때문이지요. 사실 일루미나티의 심벌들 중에 피라밋은 있지만 전시안은 없습니다. 전시안은 프리메이슨 심벌에 속하죠.

 

아무튼 오늘날 일루미나티를 나타내는 전형적인 심벌이 되어 버린 전시안 피라밋 심벌(미국새와 1달러 지폐에 새겨짐)은 음모론적 연계선상에서 파악되고 있지요. 실제로 맨리 홀(그는 전통적인 음모론자는 아님) 같은 오컬티스트는 미국의 국새에 오컬트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고 말하고 있지요.

 

맨리 홀은 전시안 피라밋 심벌이 초기에 미국으로 건너온 신비 단체들의 직접적인 영향에 그 기원이 있음이 분명하다고 주장하지요. 사실 조지 와싱턴(프리메이슨 33도 멤버)을 비롯한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중 상당수가 프리메이슨들이었던 것만큼은 확실하지요.

 

하지만 와싱턴 대통령은 미국 정부와 일루미나티의 관련성을 분명히 적극 부인합니다. 그러나 그가 친일루미나티파는 아닐지라도 반제수이트파에 속한 것은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만일 먼 훗날 미국에 큰 혼란이 온다면 그것은 제수이트들 때문일 것이다라는 예언적인 말을 했기 때문이죠.

 

20 세기 중반, 미국 국새 외에 1달러 지폐에 전시안 피라밋을 새겨 넣는 것은 당시 왈라스 농무장관(후에 부통령 역임)의 제안을 루스벨트 대통령이 수정하여 받아들인 것입니다. 애초에 왈라스는 동전에 그 문양을 새겨 넣자고 제안했지만 루스벨트가 지폐에 새기는 것으로 바꾸었지요. 아무튼 이 두 사람 역시 프리메이슨 고위 멤버들이었습니다.

 

루스벨트의 경우 AAONM이라는 신비 단체의 멤버이기도 했는데 거기서 그는 피티아스 기사 등급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지요. AAONM은 32도 이상의 고위 프리메이슨들만 입문이 가능하며, 자신들이 일루미나티에서 파생되었다고 주장하는 조직입니다.

 

왈라스의 경우, 그의 스승은 러시아 신비가이자 예술가인 니콜라스 로에리치였습니다. 그는 로에리치와 많은 서신 교환을 통해 친밀한 교류를 합니다. 로에리치는 중앙아시아와 히말라야 일대를 여행하며 대백색형제단의 마스터들과 접촉하게 되는데, 그의 부인 헬레나는 아그니 요가회의 창설자이기도 하지요.

  

오늘날 일루미나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바바리아 일루미나티 이후 그동안 몇몇 조직이 일루미나티를 계승했다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객관적인 사실성은 전혀 입증되지 않은 것들이죠. 간판만 일루미나티 이름을 내걸었다고 해서 그것을 일루미나티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죠.

 

하지만 오랜 세월동안 일루미나티는 사회의 기득권자들(특히 기독교계)로부터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왔습니다. 일루미나티에 대한 그들의 두려움은 히스테리칼할 정도이지요.

 

일루미나티의 존재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은 일루미나티의 힘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고 더욱 놀라운 신비의 존재가 되게 하였지요. 영화에서도 일루미나티에 대한 이런 두려움과 신비감이 반영되어 나타납니다.

 

이런 대사들이 그 예이죠.

 

“일루미나티라는 비밀 조직은 극도로 위험한 집단이다.”

“일루미나티는 무소불위의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있지.”

 

심지어 ‘지상의 모든 오류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창조주의 오른 팔’이라고 지칭되기도 하지요.

 

일루미나티는 세상에 떠도는 찌라시 정보들에서 보이는 것처럼 악한 조직이 아닙니다. 그것은 프리메이슨단을 견제하려는 기독교 세력과  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해서 돈을 벌려는 일부 음모론 작가들에 의해  그럴듯 하게 꾸며내어진 이야기이죠. 

 

진정한 어둠의 세력이라 할 수 있는 암흑형제단은 따로 존재합니다. 그들은 일루미나티와 같은 고매한 철학 사상을 가지고 있지도 않으며, 증거가 노출되어 사람들로부터 대놓고 욕먹을 게 뻔한 짓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커튼 뒤에서 사람들이 내심 좋아하는 것들만 골라가면서 하기 때문에 결코 욕먹는 법이 없습니다. 뒤늦게, 아차 함정에 걸렸구나, 하고 알아챈 순간은 이미 덫에 걸린 뒤이기 때문에 고발하거나 성토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본질상 암흑형제단에 대해서는 일정 선 이상 깊이 거론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말하는 순간 몰랐던 사람들까지 너도나도 좋아라고 자기 발로 그들을 찾아갈 것이기 때문이죠. 악을 얘기하는 순간 악이 더 강화돼 버리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암흑형제단에 대한 정보가 세상에 거의 없는 이유입니다. 악은 스스로 자기 정체를 드러내지 않을 것이고, 선은 악을 말함으로써 악을 강화시킬 수는 없기 때문에 알고도 침묵을 지킬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일루미나티가 공개적으로 대대적으로 욕을 먹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일루미나티가 암흑형제단이 아니라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일루미나티의 심벌로 알려진(사실은 그렇지도 않지만) 전시안 피라밋의 심벌 속에는 깊은 형이상학적인 의미가 내포돼 있습니다. 

 

에소테릭 상징학의 관점에서 보면 꼭지가 잘린 피라밋은 신성 실락된 우리 인간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또한 고대 지혜의 상실을 의미하기도 하지요. 맨리 홀에 의하면 고대 이집트에서 피라밋이 비전(秘傳)의 장소로 이용되던 때 피라밋의 정점에는 특별한 관석(冠石)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관석은 천연 크리스탈이나 진귀한 금속들의 합금으로 만들어졌는데, 그것은 우주 광선들과 영적인 에너지들을 집중시켜 피라밋 내부에서 비전을 받고 있는 입문자가 영적인 일루미네이션을 체험할 수 있도록 특정한 조건들을 일으켰었다고 하지요.

 

상징적으로 전시안을 둘러싸고 있는 삼각형은 바로 그 잃어버린 관석을 나타냅니다. 그것은 오늘날 영적인 차원에 존재할 뿐입니다. 우리 인간이 삼각형으로 상징되는 영적인 고급한 단계를 성취하였을 때 피라밋은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지요. 즉 신성과의 완전한 합일을 다시 회복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영화 <툼 레이더>에서 라라(안젤리나 졸리)가 찾는 조각난 삼각형은 바로 잃어버린 관석, 즉 우리가 상실한 신적인 힘을 상징한다 할 것입니다.

 


라라는 이렇게 말합니다.

 

“전시안이 새겨진 삼각형을 차지하면 어마어마한 힘을 얻게 된다고 말씀하셨죠. 아버지는 그것을 ‘빛의 트라이앵글’이라 불렀죠.”

 

라라의 이 말 속에 담긴 진정한 의미는 에소테릭적으로 해석될 때 비로소 그 진정한 의미가 확연히 드러나게 됩니다. 카발라적인 관점에서 말하면 삼각형은 생명나무의 최상위에 있는 세 개의 세피로트(케테르, 호크마, 비나)를, 그 안의 눈은 호아(현현된 신성의 최고 표현 - 성경상의 용어로는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를 나타내지요. 아래의 꼭지가 잘린 피라미드는 나머지 하위의 일곱 세피로트를 상징하구요.

 


요지를 말하자면, 지금은 상실해 버린 인간존재의 신적인 힘들을 성취하게 될 때 분리된 삼각형은 관석이 되고 우리는 피라밋의 정점에 도달하게 될 것이고 그때 우리는 하위계와 최고천 사이에 완전한 통합과 합일을 이루어 신적인 완전성을 회복하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영화에 보면 라라와 악당 파월이 피라밋의 양 측면에서 트라이앵글이 있는 정점을 향해 경쟁적으로 달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간발의 차로 ‘빛의 트라이앵글’을 거머쥐게 된 라라는 그때부터 신적인 힘(영화에서는 시간을 지배하는 힘으로 표현됨)을 발하여 돌아가신 아버지를 만나게 되고 친구 알렉스를 구해내게 되지요.

 

우리 인체와의 대응 관계 속에서, 전시안은 '제3의 눈' 즉 영안이라 할 수 있죠. 제3의 눈과 관련지어 음양을 얘기할 때 여성원리는 아즈나 차크라, 남성원리는 사하스라라 차크라에 해당됩니다. 


양 미간 사이에 있는 아즈나 차크라가 열리면 우리는 잠 속에서도 깨어 있게 됩니다. 육체는 수면을 취하지만 의식은 깨어 있게 되는 거죠. 이 주시자는 모든 것을 보고 인식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수동적입니다. 보기만 할 뿐 행동을 취하지는 않습니다. 이 주시자는 우리 인생에 어떤 고통이 와도 무심합니다. 그것은 거울과 같아서 그 안에 세상의 모든 것이 비칩니다. 


아즈나 차크라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보여주지만 그뿐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들을 볼 수는 있지만 상황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한 단계 더 발전하여 정수리에 있는 사하스라라 차크라가 열리면 비로소 적극적인 활동력을 얻게 됩니다. 사하스라라 차크라는 남성원리입니다. 그것은 역동적, 활동적, 창조적 센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있는 이 두 센터(아즈나 차크라와 사하스라라 차크라)가 모두 열리게 되면 전지전능한 힘을 얻게 되지요.  

 

이 영화의 주인공 라라의 캐릭터 속에는 이 양성원리의 합일이 표현돼 있지요. 그녀는 외관은 여성이지만 성격은 남성적입니다. 상징적으로 볼 때 라라는 남성원리와 여성원리가 통합된 이상적인 인물이지요. 양성(兩性)적인 성질을 모두 구유한 라라가 전시안을 얻게 되었다는 것은 바로 아즈나 차크라와 사하스라라 차크라의 합일로 신적인 완전성에 도달하였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또 이를 두뇌 안의 내분비선 또는 센터와 관련지을 때, 전시안을 둘러싼 빛의 트라이앵글의 세 꼭지점은 뇌하수체(객관의식 센터), 송과선(주관의식 센터), 시신경교차(초월의식 센터)를 각각 상징하게 됩니다.     


 

영화 끝부분에 라라가 신적인 권능의 전시안 트라이앵글을 파괴해 버린 것은 준비되지 않은 자들이 그러한 힘을 남용할 우려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영화 속에서 인류는 도로 피라밋의 관석을 잃어버린 셈이죠.  관석을 파괴해 버린 라라는 그 관석이 우리들 각자가 삶의 모든 에너지를 모아 다시 찾아야 할 영원한 숙제라는 걸 알고 있었겠지요. 언젠가 각자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내면에서 빛의 트라이앵글, 즉 전시안을 획득하고, 신성의 광휘로 세상을 환히 보고 밝힐 것을 소망하면서요.

[출처: http://blog.naver.com/eyeinhand/10185248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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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론 하워드 (Ron Howard)
프로스트/닉슨(2008) , 체인질링(2008)

주연
톰 행크스 (Tom Hanks) 로버트 랭던 역

출연
아옐렛 지러 (Ayelet Zurer) 비토리아 베트라 역
이완 맥그리거 (Ewan McGregor)


<다빈치 코드>를 잇는 또 하나의 베스트셀러 원작!
18세기에 사라졌던 비밀 결사대가 다시 부활했다!

카톨릭 교회의 권력이 절대적이었던 1776년, 신에 대한 도전이라는 이유로 억압받던 과학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갈릴레오와 코페르니쿠스 등 계몽주의 시대의 저명한 과학자들과 여러 학자들이 일루미나티라는 조직을 비밀리에 결정했다. 그러나 이 지하 조직은 18세기 말에 이르러 정부와 카톨릭 교회의 탄압으로 소멸되었고, 사람에게 점차 그 존재마저 잊혀져갔다. 하버드 대학의 종교학 교수로 재직 중인 로버트 랭던(톰 행크스)은 우연히 일루미나티가 다시 부활했다는 증거를 발견하게 되고, 카톨릭 교회를 향한 그들의 복수가 시작되었음을 직감한다. 일루미나티에 의해 곧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임을 예측하고 로마로 간 랭던. 그는 그 곳에서 만난 아름답고 신비로운 과학자 비토리아 베트라(아예렛 주어)와 함께 지하에 봉인되어 있는 납골당과 무덤, 그리고 폐허가 된 성당 등 과거 일루미나티의 근거지를 찾아 다니며 역사상 가장 강력한 비밀 조직의 행적을 쫓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로마 교황청에서는 수만명의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기 위한 고대 의식이 거행되고, 일루미나티의 공격으로부터 교황청을 구하려던 랭던과 베트라는 400년 이상 감춰져 있던 엄청난 비밀과 직면하게 된다.

과연 400년간 감춰졌던 비밀은 무엇일까?
그들은 일루미나티의 공격으로부터 교황청을 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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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진대로 폴 크루그먼은 동아시아의 위기는 생산성 향상 없이 노동과 자본 등 요소투입에 의존한 경제성장을 한 당연한 귀결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제껏 고도성장을 이룩해 온 동아시아국가들은 서방에서 주장하는 동아시아 국가의 내재적 요인에 대한 강조를 마뜩잖게 여겼다. 그 대표주자는 외환위기의 원인을 국제 헤지펀드들의 투기적 행동으로 귀착시킨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였다. 특히 그는 유대인인 소로스의 통화투기가 금융위기를 초래했으며, 이는 이슬람 국가에 대한 유대인의 음모라고 공공연히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그 타당성과는 별개로 경제적 파탄과 정치적 혼란에 빠져 있던 동아시아 국가의 국민들에게 큰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냉정하게 현실을 들여다보면 헤지펀드의 음모론은 그리 설득력이 없다. 우선 이머징 마켓에 대한 포트폴리오 투자의 순유입은 97년까지도 증가추세에 있었고 위기발생 년도인 97년에도 120억 달러의 순유입이 발생했다. 더욱이 한국은 외환위기 이전까지 실수요 원칙에 입각한 선물환 거래로 공매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오히려 사태의 진상은 내외금리차가 크게 존재하는 상태에서 무분별하게 추진된 외환자유화가 금리 차이를 이용한 재정거래적 외화차입을 유발시켰고, 단기 외채, 과잉 중복 투자, 환율 등의 문제가 중첩되면서 국가적 위기상황을 초래한 때문이었다. 이어 심리적 공황에 빠진 서방금융기관의 자금회수가 일어나면서 국가부도 사태를 맞이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헤지펀드의 부분적 역할이 첨가된다) 즉 외환위기는 헤지펀드의 음모보다는 당국의 미숙한 정책집행과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가 결합되면서 투자환경 악화를 초래했고 이것이 서방금융기관의 공세적 회수를 촉진했다는 것이다.

10년이 지난 문제를 지금 다시 꺼내는 것은, 최근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전세계적 경제위기 속에서 또 다른 음모론이 배양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으며 실제로 동영상과 서적을 통해 빠르게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위의 사례가 음모론의 특성에 대해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에서는 멀게는 트로이 전쟁을 신들의 음모라고 생각했던 호머에서부터 유대인의 세계정복을 위해 만든 시온 의정서 (The Protocols of the Learned Elders of Zion), 삼각위원회(The Trilateral Commision), 유스넷 커밸(The Usenet Cabal)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음모론이 번성해왔다. 그리고 이에 대한 비판과 반론도 음모론 만큼이나 다양하고 많다.

음모론에 대한 논의를 살펴보면 그것을 반대하는 쪽은 물론 옹호하는 쪽에서도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다. 대부분 정황증거나 간접 추론에 기대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줄곧 인용되는 서적과 그 파생변형물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기 일쑤다. 물론 이것은 음모론의 소재가 되는 인물과 조직이 워낙 비공개적이라 극소수 이외에는 대부분 접근이 불가능하고 검증할 수 없는 사실에 대한 논의가 대부분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음모론의 이런 속성은 대중의 관심을 꺼트리기는커녕 오히려 상상력과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음모론은 대중의 불안(피해의식)과 상상력 그리고 일정 정도의 무지(無知)를 먹고 자란다. 음모론이 창궐했던 시기를 살펴보면 모두 사회경제적 위기 속에서 대중들이 극심한 불안을 느끼고 있을 때였으며 분노에 차서 자신들이 무엇(누구)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는 지에 대해 알고자 혈안이 되어 있을 때였다. 또한 음모론은 모두 사실이지도 않지만 모두 거짓이지도 않다. 어느 정도의 Fact와 Fiction이 결합되어 있음은 물론 극적인 플롯과 실존 인물의 등장으로 흥미와 사실성을 극대화한다. 하지만 부분적인 사실성의 그림자로 인해 사실의 조각을 얽는 플롯의 허구성에 대한 검증이 허술해진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 그리고 음모론은 구조적 사건의 의인화, 제한적 개인의 우상화(전지전능화), 복잡한 현실의 단순화로 특징지을 수 있다. 이러한 특징 속에서 다차원적인 역사를 단선적 인과관계와 결정론으로 윤색한 뒤에 숨겨진 현재진행형으로 마무리한다. 하지만 이는 대단히 큰 오류를 내장하고 있다.

불확정성의 원리라는 양자역학의 발전으로 자연과학에서조차 결정론과 단선적 인과론이 자취를 감춘지 오랜된 시점에서 단일 인물이나 조직의 비밀스러운 힘에 의해 역사가 진행된다고 보는 가정은 순진한 생각이다. 복잡성 이론에서도 설명하듯이 하나의 행동은 수많은 예견치 못한 반작용을 양산해내고 그것의 상호작용으로 현실이 주조됨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모두 통제하고 있고 자신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신화적 상상력의 소산일 뿐이다.

게다가 음모론은 거의 대부분 반유대주의라든지, 백인우월주의와 같은 희생양 메커니즘을 내장하고 있는데, 이는 극단적으로 표출될 경우 인권유린과 대량학살에 대한 윤리적 감수성조차 상실케 할만큼 파괴력이 크다. 그리고 가장 경계해야 할 점은 앞서의 IMF원인론에서도 볼 수 있듯이 구조적, 제도적 문제나 정책적 실패와 같은 개선가능한 문제에 집중하여 그것을 극복하려하기 보다 사실을 왜곡하고 책임회피성 외생변수에 집착하여 현실을 무기력하게 방조할 수 밖에 없게 만든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음모론을 ‘노예의 철학’이라 부른다)

이쯤에서 시중에 떠도는 음모론을 그저 재미로 받아들일 뿐인데 왜 그렇게 심각하게 과민반응하느냐란 반문을 던지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인 허영을 자랑하는 때가 아니더라도 일상적인 판단에서 음모론적 향취를 풍긴다는 것과, 음모론을 믿는 사람들은 그것의 논리적인 귀결과 사회적 악영향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는 경향이 많다는 말로 대답하고자 한다.

또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글에서 말하는 것이 세상에 음모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란 점이다. 그리고 로스차일드가와 같은 영향력 있는 집단이 있다는 것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음모는 있지만 세상을 움직이는 동력은 음모적 집단의 강력한 의지가 아닌 제도와 그 속에서 행위하는 제한된 개인들의 의지의 상호작용이란 사실이며, 영향력 있는 집단도 결국 구조적 제약 속에 존재하는 행위자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그래도 음모론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가 잘 모르는 외국사례가 아닌 한국사회의 음모에 대해 하나만 말해보길 바란다. 아마 상상 가능한 모든 반론이 나올 것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사실 여부를 검증할 수 없는 음모론에 집착하기 보다 주어진 현실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방법론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건전한 철학을 견지하는 것이다. 예컨대 최근 많이 읽히고 있는 쑹훙빙의 '화폐전쟁'이란 책도 저자의 금융질서에 대한 번득이는 혜안과 민간자본 소유구조를 지닌 연방준비은행 및 금융상품에 대한 이해 등에 대한 지식을 얻는 정도에서 머무르지 않고, 중화주의의 그림자가 엿보이는 서술방식에 동화되거나, FRB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견제장치를 간과하는 것은 또 다른 진실을 망각하는 처사다. 개혁과 변화를 향한 열망에 대한 냉소와 무기력을 양산하는 음모론을 읊조리기 전에 개선 가능한 현실의 문제에 대해 처방할 구체적인 정책을 강구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이 글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의 '경제현안' 토론방에 올라온 윤재웅님의 글입니다. 더 많은 정보와 깊이 있는 토론을 원하시는 분들께서는 포럼을 방문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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