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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의 서재 #39


페이스북에서 누군가 추천해서 읽기 시작한 책. 다시금 의료정책이라는 것은 정치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확인하게 하는 책이다. 그리고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의 의료제도를 완전히 우리나라에 도입할 수는 없겠지만 한의사의 주치의제도 참여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되는 책이다. 하지만 이미 잘되고 있는 한의원, 한의사들이 과연 여기에 발을 담그려고 할까? 하는 의문도 들고 의사들 사이에서는 주치의제도 도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진다. 거창에서 같이 일하는 병공의 선생님들의 솔직한 생각이 궁금하기도 하다. 



[건강형평성]


(p.37) 건강형평성이라는 개념이 대두되고 있다고 한다. 이 개념은 '생물학적 유전적 과정 뿐만 아니라 정책을 수립하고 적용하는 과정에 의해서도 인간의 건강이 좌우된다고 전제한다. 또한 정치와 권력 , 이데올로기와 같은 요소들과 어떤 의도를 갖고서 의료정책을 만들고 유지하는가에 따라서 의료서비스가 누구에게 얼마나 공정하고 좋게 제공되는지가 결정된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쿠바의 예에서 알 수 있듯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사회환경과 결정 요인들을 변화시키려는 정책적 노력이 한 사회의 건강수준을 좌우한다' 는 개념이다.


사실 어떻게 보면 새로울 것도 없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를 개념화한 것일지도.  이명박 정부 들어 시장주의가 강화되면서 건강형평성이 얼마나 나빠졌는지만 봐도 누구나 체감하고 있는 개념일게다.  


 사람이 건강한 것은 그 사람의 태생적인 생물학적 차이에 의한 것인가? 아니면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인가? 이에 대한 대답에 따라 보건의료 정책에 대한 생각도 명확히 다를 것이다. 이 책에서는 그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는데 (p.39) ' 건강 불평등에 대한 입장의 차이는 단지 무엇이 가능한지에 대한 과학이나 경제 영역에서의 견해의 차이만이 아니라 무엇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정치나 이념의 차이를 반영합니다 (중략) 정치 이념이 한 사회의 정책 방향을 만들어 낸다는 점, 그리고 그 정책에 따라 건강불평등이 감소할지 또는 유지될지 결정된다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쿠바의 일차의료]


쿠바에서 처음부터 가족주치의 제도가 훌륭하게 작동했던 것은 아니다. (p.60) 처음에는 종합진료소 모델로 시작되었는데 전문진료과목의 유기적 통합실패와 의사들이 예방보다 치료에 더 관심이 많아서 1984년 가족주치의 모델로 바뀌게 된다. (p.64) 특히 지역사회 안에 의료진을 살도록 결정함으로써 의료진을 지역사회에 더 밀착시키게 된다. 


 이러한 쿠바모델을 우리나라에 적용하기 어려운 것은 재원문제가 아닌 의료인들의 반발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닐까 싶다. 2,3차 병원에 근무하지 않는 모든 의사들을 일률적으로 쿠바같은 가족주치의 프로그램에 종사하게 하면 당연히 반발을 할 것이고 그렇다고 희망하는 의료인들만 가족주치의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한다면 경제적인 이유때문에 많은 의료인들이 참여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과연 나부터도 내가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득을 포기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답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또 한가지 우리는 거주이전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120-150가구당 한명의 의사를 배치하는 것이 쉽지가 않을것이다. 영국도 주치의 제도가 시행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영국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p.217-9) 쿠바의 일차의료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사회가 공평할수록 건강수준이 향상된다는 것과 모든 사람을 위한 보건의료 서비스가 이루어진다 해도 꼭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지는 않으며 오히려 향상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지역사회 기반의 보건의료와 지역주민의 참여가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건강증진을 이루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모자건강을 개선하고 극빈층과 기아를 줄이고 전염성 질환을 현저히 줄이고 퇴치하였다. 하지만 쿠바는 우리와는 또 다른 특징이 있는 것이 일차의료체계에서 일하는 의사들은 대부분 자신의 관할지역 안에서 정착해서 살고 있으며 인구이동이 거의 없고 공공보건에 의지가 있는 정치 지도자가 있다는 것이 우리와는 다르기 때문에 쿠바의 사례를 그대로 우리에게 적용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쿠바가 힘없고 약한 사람의 희생을 통해 강자에게 혜택을 주던 오래된 사회구조의 폭력관계를 재편한 것은 우리도 따라가야할 모델이다. 결국 의료도 정치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주치의 제도와 한의사]


주치의 제도가 도입되었을때 약의 처방권이 없는 한의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책에서 약간 해답을 주고 있는데 (p.103) 가족주치의 프로그램은 (중략) 질병의 원인을 탐구하는 모델이 병리학적 모델로부터 , 운동, 식이 등과 중풍, 심장병 사이의 관계등 생활습관을 중요시하는 사회문화적 모델로 변화했다는 것인데 주치의 제도하에서 한의사는 생활습관의 교정에 관심을 많이 가져야 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는 고혈압을 예로 들면서 (p.109) 진료소 환자의 30%가 고혈압이지만 약을 복용중인 사람은 거의 없고 식이조절과 운동요법을 통한 혈압조절에 쿠바의사들이 진지하게 임하고 있으며 좀처럼 약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당뇨도 마찬가지로 (p.192-3) 약물요법에 기대지 않고 2차예방에 초점을 맞춘 건강교육 위주의 중재를 통해 당뇨 합병증을 최소화 하는데 주목하여 혈당강하제를 덜 사용하면서 체중조절에 성공하고 HbA1c 도 감소되고 응급실 이용이 줄게 되었다. 이러한 만성질환 관리에서 쿠바의 예는 한의사들에게 꼭 약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혈압,당뇨, 고지혈증 같은 만성질환들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시사점을 준다고 할 수 있다. 


  책을 읽고나서 가장 큰 숙제로 다가오는 것은...그렇다면 한의학은 무엇을 예방할 수 있는가? 이다. 당연히 아직 논문으로 나온것은 많이 없을 것이다. 이거야 말로 돈과 시간이 많이드는 코호트 연구를 시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꼭 코호트가 문제가 아니라.. 지금 당장 내 머릿속에 무엇을 예방할 수 있는지 금방 떠오르지 않는다.  내 임상경력이 일천해서 일까?  불치이병 치미병이라는 말을 너무나 많이 떠들지만...그래서 지금 우리는 어떤 미병상태를 치료하고 있는건지 자신있게 구체적으로 대답하기 어렵다. 


 또 하나 드는 생각은 고혈압과 당뇨의 예방에 있어서 생활관리의 중요성은 꼭 한의학 의학의 차원을 넘어서 일반일들도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인데 굳이 그것을 한의학 의학이라고 구분지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한의사라고 해서 알려진 고혈압 당뇨의 예방과 생활관리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건 아닐테니까. 한의학적 치료기법의 예방효과가 코호트를 통해 밝혀진 것이 없다면 생활관리라도 철저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한의학에서의 예방개념은 서양의학에서의 질병에 대한 예방과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건지? 그 다른 관점에서의 접근이라는 것이 실제적으로 의미가 있는건지? 실제적으로 의료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것인지? 에 대한 고민이 이제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가 아닐까 싶다. 



한의사의 서재#40


선정이유 : 요즘 한의학 공공보건 사업의 개선을 위한 TF 팀에 공보의로 참가하게 되었다. 공공보건에 관해서 지식이 부족하다고 생각되어 근거중심 보건의료, 역학 같은 전공의 때 사놓고 보지 않았던 책들을 꺼내보고 있는데 '의료천국, 쿠바를 가다' 라는 책이 눈에 띄어서 ' 아 쿠바라면 일차의료가 중심이 될테니 우리에게도 뭔가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을거다' 라는 생각을 하고 책을 샀는데 그 내용도 내용이지만 쿠바에서 한의학이 행해지고 있다는 것 특히 침치료가 행해지고 있다는 내용이 매우 흥미로웠다. 수준이 깊다고 보기는 어려운 개설서 정도의 책이긴 하지만 한의사들 특히 공공보건에 관심이 있다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인것 같다. 


(p.65-6) '생물학은 사람의 건강상태의 8% 밖에 결정하지 않는다. 나머지를 결정하는 건 가족, 코뮤니티, 환경 등 그밖의 요소입니다. '


수치에 관해서는 논란은 있을 수 있지만 중요한건 환자의 건강상태를 결정하는 것은 여러가지 요소가 작용한다는 것. 한의사가 1차의료의 주치의제도에서 고혈압, 당뇨등에 양약을 쓰지 못하면서 무엇을 할 수 있느냐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는 말이다.  문제는 1차 진료가 쉬운게 절대로 아니라는 것. 이 책에서도 ' 가장 중요해 지는 것은 패밀리 닥터의 능력을 높이는 것이예요. 이 레벨에서 가장 종합적인 진단과 치료솜씨가 요구되니까요' 누누히 말하지만 의료인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진단이다. 과연 한의사에게 진단 능력은 충분한가? 진단기기를 사용하고 안 하고와는 또 다른 문제이다. 어차피 양방 일차의료에서도 모든 진단기기를 다 갖추고 있는게 아니니까. 자기 수준에서 관리가 가능한지, 예후가 어떤지 판별하려면 진단이 우선되야 하는데 이것은 진단기기의 문제는 아니다.  L 선생님은 주치의제도에 참여하는 한의사들에게는 또 다른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었는데 아마 이부분이 주치의 제도 참여에 가장 관건이 되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P.72)  미국의 경제제제로 인해서 약의 수입또한 불가능해져 자체적으로 약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예를 들어 스타틴을 쓰지 못해서 고지혈증 치료에 PPG라는 밀랍을 원료로 한 약을 사용하고 있다. 한방순환신경내과가 전공인 내가 이런 얘기를 전혀 들어보지 못했다는 건 물론 이 약이 제대로 임상실험을 거치지 않거나 효과가 없어서 일수도 있지만 너무 우리 의료계가 미국편향적이기 때문에 이런 내용은 들어보지 못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천연물신약을 사용하네 못하네 하는 문제로 시끌시끌한 지금 오히려 쿠바의 의사들은 천연물 유래의 약들을 임상에 활용하고 있는 것을 보니 부럽다는 생각마저 든다. 



[p.127-144 한의학이야기] 


(p.130) '골관절염, 십이지장궤양의 통증을 멎게 하거나 수술의 마취제 대체품으로 침치료가 시험되어 2000년에는 아바에서만 해도 1412번의 수술에 침치료가 이용되어 성공을 거두었다' (p.131) 모르핀이 바닥나서 침요법을 마취에 사용해서 수술하는 것 말고는 달리 아무런 방법이 없었지만 대체의료가 존재했던게 다행이다 (p.133) '종래의 복지의료 제도를 개혁하기 위한 다섯가지 전략을 세웠는데 그가운데 하나로 전통적인 약초요법의 중시를 내세웠다' (p.134) '1960년대에 일본 적리균의 80%가 약제내셩균이 되어 대체요법은 극히 현대적인 과제가 되었다' (P.136) ' 쿠바 의과대학에는 정식 수업과목에 침치료가 들어있다' (p.141) ' 대체의료는 2003년 이미 병원의 25%와 응급외래의 22%에서 이용되고 침마취 만으로 치과에서는 29% 외과에서는 8.7%가 활용되고 있다. (p.142) ' 쿠바가 대체의료에 몰두하기 시작한 계기는 경제봉쇄로 약품이 없어졌기 때문이지만 경기가 회복된 후에도 대체의료의 보급이 진전되는 이유는 생태와 자연치유력을 중시하는 대체의료 철학이 쿠바의 의료사상과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의료는 돈벌이가 아니다'  (p.143) ' 인간에게 중요한것은 자연의약품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방이다. 라이프스타일이 좋아지면 병이 생기지 않는다'


좀 놀라운 이야기들이지 않은가? 앞으로의 의학은 예방에 초점을 맞추고 생활습관 관리에 힘을 기울여야 하며 거기에 한의사가 해야 할 일들이 많다는 것. 누구나 알고는 있지만 실제적인 모습을 그려보지 못하고 막연한 명제로만 다가오는데 쿠바가 실제로 우리에게 전통의학을 이용한 모델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2014년에 중남미 여행을 가보려고 했는데 그냥 여행뿐만 아니라 견학으로도 꼭 가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p.201) 쿠바에서 베네수엘라 등으로 자국의 의료진을 파견하여 무료진료를 하고 있는데 그에 대해서 그 나라의 의사들이 '쿠바 의사들은 실력이 없다' 거나 쿠바의사들의 의료미스가 날조 되었고 해당지역 의사협회의 반발과 심지어는 파업까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쿠바의사들은 묵묵히 무료진료에 종사했고 경제적문제로 한번도 의사의 진료를 받지 못했던 지역주민들이 입이 마르게 칭찬을 했다고 한다. 한의사들의 모습이 왠지 겹쳐보인다. 꾸준히 봉사활동을 지속해야 하는이유.  


복지에서 북유럽모델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며 특히 교육에 있어서 핀란드에 대한 관심이 유행처럼 번졌었다. 아마도 의료에 있어서는 쿠바에 대한 관심이 곧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한의사와 한의학의 미래는 일차의료 역량의 강화와 한방주치의 제도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이미 자리를 잡은 기득권 한의사들과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한의사들의 관점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의료는 돈벌이가 아닌 국민의 건강을 가장 최우선의 가치로 놓고 생각할 때 해답이 보인다. 우리에게 해답은 일차의료강화와 주치의제도라는 평소의 생각이 이 책을 읽으면서 한층 더 굳건해진다.  



사족 : 누구나 알고 있는 종두법의 제너 이야기. 8살 소년에게 우두를 접종해 본후 천연두를 접종하는데 요즘 관점으로 보면 IRB를 통과하지 않은 임상시험이다. 비윤리적이다. 하지만 모든 의학이 다 이 과정을 거쳐서 여기 까지 온것이다. 


지금의 시대라면 우두법은 절대로 개발될 수 없다. 초창기에는 어쩔 수 없다. 최근  IMS에서 비롯된 한양방 분쟁으로 주요 일간지광고면이 시끄럽다. 한약도 안전성을 입증받지 못했다고 하는데 초창기에는 어쩔 수 없는 것이지 않나 싶다. 앞으로 계속적으로 안정성에 관한 자료를 축적하고 연구가 지속되야 하지만 지금 초창기에 엄격한 자료를 요구하는 것은 '사다리 걷어차기' 이다. 정부가 한의학을 싸도 돈다고 비난하지만 우리나라가 여기까지 경제성장을 한 것도 다 따지고 보면 초창기의 허약한 기업들을 정부에서 싸고 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의학은 서양의학과는 또 다르다. Historical Evidence 가 있다. 서양의학의 어떤 치료법이 300년 이상 지속된 것이 있는지?


호르몬 치료, 탈리도마이드 처럼 연구당시에는 각광받는 치료법이었다가 세월이 지나 부작용이 밝혀진 것이 많다. 연구로 안정성을 밝혀내었다고 해도 장시간투여에 관한 안전성은 결국  case가 쌓여야만 말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 부분에서 한의학은 안전성이 어느정도 수백여년간 투여되면서 안정적인 약재의 조합(=처방) 이 살아남았기 때문에 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Written by 신뢰할 수 있는 한의사 한방내과 전문의 임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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