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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봄’에는 침묵해야 하나

[강석기의 과학카페 101] 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 발간 50주년


“아침이면 울새와 개똥지빠귀, 비둘기, 어치, 굴뚝새를 비롯해 수많은 새들의 합창 소리로 요란했지만 지금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들과 숲, 습지에는 침묵만이 드리워져 있다.”

- 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


1962년 9월 27일은 미국의 해양생물학자이자 과학저술가인 레이첼 카슨의 명저 ‘침묵의 봄(Silent Spring)’이 출간된 날이다. 20세기 후반 나온 과학교양서 가운데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큰 영향을 끼친 대표적인 책을 꼽으라면 리처드 도킨슨의 ‘이기적인 유전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함께 카슨의 ‘침묵의 봄’이 들어가지 않을까.


살충제 DDT로 상징되는 인류의 과도한 화학물질 남용이 가져올 수 있는 파국을 마치 소설처럼 써 경각심을 일깨운 ‘침묵의 봄’은 오늘날 환경운동의 모태가 됐을 뿐 아니라 각국의 산업정책에 전환점을 가져온 계기가 됐다. 실제 사람들의 삶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과학책일 것이다.


●화학물질에 대한 불안 여전


“침묵의 봄은 무슨…. 새소리만 요란하구만.”


전공자도 아니면서 화학물질의 위험성을 과대포장해 사람들의 감성에 호소한 센세이셔널리즘의 대표적인 예라고 카슨과 ‘침묵의 봄’을 폄하하는 사람도 있지만, 솔직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면 카슨의 책 덕분에 브레이크없이 질주하던 화학산업이 주춤하면서 그나마 지구가 오늘날 이 정도 상태라도 유지하는 게 아닐까.


‘침묵의 봄’이 출간되기 전 상황이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1958년 미 농무부가 불개미를 없애겠다고 수십만 헥타르의 면적에 DDT를 공중살포할 정도였다. 만약 지금 어떤 정부가 그런 짓을 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상황이 나아졌는가 하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이 공교롭게도 ‘침묵의 봄’이 출간된 바로 그날 우리나라에서는 ‘출간 50주년’을 기념하는 듯(?) 불산가스누출사고가 일어났고 이에 대한 해당 기업과 정부의 대응은 ‘침묵의 가을’을 걱정해야 하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최근 한 식품회사의 라면스프에서 발암물질인 벤조피렌이 들어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해당 업체와 식품의약품안전청의 대응에 사람들은 고개를 저어야 했다. 잊을만 하면 터지는 화학물질 관련 사건에 (특히 식품과 관련돼 있을 경우) 사람들은 마음을 놓을 수 없다.


그런데 설사 이런 사고를 미연에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다고 해서 사람들이 맘 편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최근 과학저널 ‘사이언스’와 ‘네이처’에 실린 글들을 보면 50년 전 살충제 대량 살포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침묵의 봄’이 여전히 진행 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존재 자체가 문제되는 화학물질


‘오염된 세계에서의 삶(Life in a contaminated world)’이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사이언스’ 9월 28일자에 기고한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의대 루이스 귈레트 교수와 일본 국립기초생물학연구소 이구치 타이젠 박사의 글은 난자와 정자가 수정하기 이전부터 시작되는 주변 화학물질의 영향을 걱정스런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다.


“사람들이 자신의 미래를 살충제 스프레이 같은 별 것 아닌 것들에 내맡기고 있다고 생각하니 참 아이러니하다.”


필자들은 ‘침묵의 봄’에 나오는 위 구절이 선견지명이 있다며 “레이첼 카슨은 자신이 관찰한 것들을 설명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알지 못했지만, 태아 발생 초기 일상적으로 쓰는 화학물질에 노출되는 것이 유전자 발현 패턴을 바꿔 훗날 건강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지금은 잘 알려져 있다”고 쓰고 있다.



수많은 화학물질을 비롯한 환경요인은 한 개인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음식과 스트레스, 오염물질 같은 환경요인이 부모의 게놈과 개인의 게놈(체세포와 생식세포)에 작용해 개인과 그 자손의 건강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사이언스 제공


즉 자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화학자들이 합성한 수많은 화학물질 가운데는 호르몬 시스템 같은 인체의 신호전달체계를 교란하는 물질이 꽤 있고 이 작용은 농도가 매우 낮은 경우에도 여전히 강력하게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현재의 독성학 패러다임, 즉 ‘독성은 농도에 비례한다’는 상식과는 배치되는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후성유전학(epigenetics)처럼 생명체의 발달과 조절을 이해하는 시각을 혁명적으로 바꿔놓은 분야들이 나타나면서 그동안 이해하기 어려웠던 현상들이 실마리를 찾은 조각퍼즐처럼 점차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즉 돌연변이처럼 DNA 구조 자체를 바꾸는 큰 변화뿐 아니라 유전자 작동 스위치를 바꾸는 미묘한 작용으로도 생명체에 큰 영향을 미치고 그 작용이 평생 그리고 그 자손에게까지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생활습관의 병, 즉 개인에게 책임을 넘기고 있는 비만, 당뇨병, 암, 불임 등 현대인들의 질환이 급증하는 배후에는 어쩌면 일상생활에 노출돼 있는 미량의 화학물질들이 작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주장이 갈수록 힘을 얻고 있는 이유다.


●220억 원 규모 안전성 재검토 프로젝트


미국 뉴욕대 과학저널리즘 교수인 댄 파긴은 ‘네이처’ 10월 25일자에 기고한 글에서 내분비교란물질에 관한 최근 연구결과들과 이에 대한 과학자들 사이의 이견과 갈등을 소개하고 있다. 파긴 교수는 “기존 독성학의 입장에서는 내분비교란물질이 보여주는 이상한 세계가 마치 고전물리학에서 양자역학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며 “비스페놀A 같이 호르몬 수용체에 작용하는 교란물질은 개체의 발달과정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미량 노출돼도 엄청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내분비교란물질로 분류되는 화학물질 가운데는 그 작용이 농도에 비례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즉 농도가 낮아지면 오히려 작용이 커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기존 독성검사 패러다임으로는 안전성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 위 그래프는 농도에 따른 작용을 보여주는데 왼쪽부터 플라스틱 원료인 비스페놀A, 계면활성제 원료인 노닐페놀, 제조체인 아트라진에 대한 데이터다. 제공 네이처 제공


지금도 여전히 기존 독성학의 패러다임, 즉 ‘작용은 농도에 비례한다’는 관점을 고수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런 연구결과들에 반발하지만 그러나 너무나 많은 데이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정부에서도 이 문제를 진지하게 바라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특히 지난 3월 학술지 ‘내분비학 리뷰’에 발표된 무려 68쪽 분량의 리뷰논문은 600건이 넘는 기존 연구결과들(이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지난 5년 이내에 발표됐다!) 분석해 18가지 내분비교란물질의 작용이 농도에 비례하지 않는다(non-monotonic)는 결론을 제시해 충격을 줬다.


이에 대해 미국국립환경보건원(NIEHS) 린다 번바움 원장은 “이들의 리뷰는 상당히 설득력이 있고 근거가 있다”며 “이제 화학물질의 저농도 규제에 대해서도 논의를 시작할 시점이 됐다”고 말했다. 실제 NIEHS는 미국식약청(NIH) 산하 국립독성학연구센터와 함께 2000만 달러(약 220억 원) 규모의 비스페놀A 재조사 연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즉 체중 1킬로그램당 하루 50밀리그램 이하를 섭취하는 건 문제가 없다는 기존 입장(FDA)과 저농도도 위험하므로 그 200만분의 1인 25나노그램으로 기준치를 낮춰야 한다는 연구자(미국 미주리대 프레데릭 봄 잘 교수)의 주장 사이의 엄청난 간극을 체계적인 실험을 통해 규명해보겠다는 것이다.


지난주 일산킨텍스에서는 비스페놀A와 관련해 국제 세미나가 열렸는데 초청연사로 나온 미국화학협회의 스티븐 헨지 박사는 국내 언론과 인터뷰에서 “비스페놀A는 내분비장애물질이 아니다”고 결론내리고 있는데 그 근거 가운네 하나가 FDA의 기준이다. 지난 9월 21일 식약청은 Q&A 형식으로 ‘비스페놀A에 대해 알아봅시다’라는 코너를 홈페이지에 싣는다고 발표했는데 그 내용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현 미국식약청의 기준으로 봤을 때 우리나라는 안전하니 걱정말라”는 것.


우리가 철석같이 믿고 있는 FDA가 NIEHS와 수백억 원이 드는 재검토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건 단지 성가신 연구자들을 무마시키기 위함일까. 아무튼 분명한 건 이런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방법론이 개발됐을 때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개념과 사실들이 최근 10~20년 사이 생명과학 분야에서 쏟아져 나왔다는 것이다. 즉 현재의 가이드라인은 제한된 지식을 토대로 만든 기준일 뿐이다. 


미국 FDA나 유럽 관련 기구의 가이드라인이 업데이트될 때에야 따라 가는 게 우리나라 처지이지만 최소한 이들 나라에서 현재 화학물질의 가이드라인에 대한 패러다임이 흔들리고 있다는 현실은 사람들이 알고 있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기준 이내이지 걱정말라”는 말을 들어도 그 ‘기준’에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해 안심하지 않고 각자 살길을 모색할 테니까.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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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성호

"나는 누구인가. 스스로 물으라. 자신의 속 얼굴이 드러나 보일 때까지 묻고 묻고 물어야 한다. 건성으로 묻지 말고 목소리 속의 목소리로 귀 속의 귀에 대고 간절하게 물어야 한다. 해답은 그 물음 속에 있다"
 
간절한 참배와 침묵 속에 해답이 있다.
 
법정 스님이 전한 법문 중 하나입니다. 참배(108배)는 몸을 단련시키는 동시에 마음을 정화시킵니다. 침묵은 108번뇌의 고통과 업장을 소멸시킵니다. 그래서 기도와 침묵은 인간이 일상으로 해야 할 가장 근원적 수행방법이기도합니다.
 
마지막까지 홀로 청정도량을 지키며 조화로운 삶을 강조했던 법정 스님. 어느덧 스님이 윤회한 지 2주년이 지났습니다. 스님 육체 안에 떠돌던 영혼은 이제 또 다른 누구의 동체가 되어 세상을 밝게 비추고 있겠지요. 그리하여 여래의 생명존중사상이 세상에 드넓게 펼쳐지겠지요.
 
홀로 살되 언제나 세상 사람들의 행복을 빌어주었던 법정 스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글을 통해 세상 모두와 소통하려했던 자연주의 사상가. 삶을 소유물처럼 생각지 말고 순간순간의 있음으로 존재하라했던 스님은 또 다시 우리에게 찾아와 말을 건넵니다.
 
"너는 네 세상 어디쯤에 와 있는고"
 
평생 산속 선방서 지낸 스님... 남과 비교하지 않는 '행복함'

 ▲ 법정 스님의 청정도량처인 길상사에 있는 침묵의 집
ⓒ 최오균

출세간을 버리고 50년간 산 속에서 조용한 마음을 포용했던 스님은 행복이라는 화두를 놓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 화두의 끝은 '맑은 가난'이었습니다. 불필요한 것에서 자유로워지는 마음의 평안을 통해 맑은 가난을 얻으라는 화두였지요. 결국 탐(욕심), 진(성냄), 치(어리석음) 삼독심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누리라는 깨달음이었습니다.
 
스님은 침묵을 소중히 했습니다. 아니 꼭 필요한 말만 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안으로 말이 여물도록 하라는 말입니다. 생각을 다 말해버리면 소음이 되듯 선하고 좋은 말만 가려 하라는 말입니다. 침묵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만이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생로병사를 함께 합니다. 좋은 일, 궂은 일,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이 모두 함께하지요. 하지만 그러한 감정도 지나가는 순간의 감정일 뿐, 거기에 얽매이다보면 그 자체로 죽음을 초래하는 길입니다. 모든 걸 원망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때를 기다리자. 그러다보면 이것 또한 지나가겠지요.
 
스님은 평생을 산속 선방에서 홀로 지냈습니다. 그럼으로써 스님은 남과 비교하지 않는 내적 충만함에 더 없는 행복을 채워갔습니다. 스님이 전했듯 인간은 본디 고독한 존재입니다. 부부가 함께 있어도 고독감은 어쩔 수 없습니다. 연인과 함께 있어도 고독감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스스로에게 물으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는 진실한 삶을 만들어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 송광사에 안치된 법정 스님 영정 사진(KBS 추모방송 화면 갈무리)
ⓒ 한국방송

하늘같은 사람이 있을까요. 스님은 사람이 하늘처럼 맑아 보일 때가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서는 하늘 냄새가 난다고 전합니다. 하지만 이런 하늘같은 사람도 너무 자주 보면 어느덧 그 냄새가 사라지고 맙니다. 즉 아무리 좋은 관계라도 적당히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행복이 절제에 뿌리를 두고 있듯 사람 관계도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합니다. 설렘, 그리움, 향수는 사람과의 관계를 아름답게 가꿔주는 밑거름입니다.
 
혹시 유서를 써 본적 있는지요. 유서를 쓰는 데 나이 따위는 상관없습니다. 유서를 쓰는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유서에는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가 담겨져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부끄럽지 않는 나만의 진실이 담겨져야 합니다. 진실, 스스로를 한 떨기 꽃으로 변화시켜주는 이 단어가 곧 유서의 진실입니다. 그래서 유서는 향기로운 차 한 잔과 같은 인생의 작은 쉼표입니다.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요. 마음속에 온갖 번뇌만 가득해서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는 건 아닌지요. 마음을 깨쳐보세요. '나는 지금 이렇게 살고 있다'고 스스로를 자각해보세요. 헛된 공상과 물질의 세상은 잠시 접고 내가 가는 길의 즐거움을 생각해보세요. 긴장을 풀고, 창문을 열고 쉼 호흡을 한 번 해보세요. 지금 이 순간이 최고의 즐거움입니다.
 
언제나 무소유를 입에 달고 사셨던 법정 스님은 궁색한 빈털터리를 강조하신 게 아닙니다. 즉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게 아니라 불필요한 걸 갖지 말라는 일침입니다. 이것은 곧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기도 합니다. 보면 갖고 싶고 영원히 소유하고 싶은 맘을 잠시 내려놓고 그 집착된 마음을 살피라는 법문입니다. 가져서 불편한 것보다는 안 가져서 맘 편한 것이 좋은 이유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비교를 합니다. 돈, 명예, 학벌, 미모, 연줄 등등.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언제까지나 영원히 존재할까요. 죽음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해집니다. 죽음 후에도 영웅 호칭은 사라지고 삼배 잔만 올리는 고인에 불과합니다. 스님은 전합니다. 삶에서 참으로 소중한 것은 어떤 사회적 지위나, 신분, 소유물이 아니라 우리들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일이라고.
 
이제 곧 봄이 오겠지요. 봄이 오면 꽃이 화사하게 피어나겠지요. 인간의 마음은 희한하게도 아무리 분노가 치밀어 와도 길가에 핀 꽃 한송이에 금방 미소가 피어납니다. 꽃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모두가 서 있는 자리마다 꽃이 피어나고 향기가 돋게 할 수 있습니다. 단,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때 말입니다. 외모는 순간의 매력이지만, 마음의 아름다움은 영원한 꽃의 향기이기 때문입니다.
 
법정 스님께서 전한 마지막 법문입니다. 스스로 행복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세요. 스님은 전합니다. 현대인의 불행은 모자람이 아니라 오히려 넘침에 있다고. 가진 건 많은데 따뜻한 가슴은 모두 잃어버렸다는 방증입니다.
 
이 땅 산하에 있는 모든 대자연과 한 줌의 흙, 동식물과도 따뜻하게 교감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 모두가 죽지 않고 살아있음에 고마워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살아 있을 때 다른 존재들과 따뜻한 가슴을 나누세요. 그 따뜻한 가슴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이 진정 행복한 사람입니다. 자, 행복하신가요?
-오마이뉴스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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