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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 교육으론 자본주의 위기 넘을 힘 못만들 것"
 
[獨 미래학자 호르크스 인터뷰]

"최고가 아니면 낙오되는 건 지속가능하지 않은 시스템
공부 잘하는 학생은 복종 잘하는 사람일 뿐… 성적은 인간을 다 반영 못해"

독일의 저명한 미래학자 마티아스 호르크스(Matthias Horx)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다가올 미래와 관련, "자본주의 4.0시대, 즉 미래 사회에서는 지식을 아는 것보다 지식과 정보를 새로운 방식으로 연결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급변하는 미래에 자본주의를 지속 가능하게 하는 핵심은 교육에 있다"고 말했다.
 
호르크스는 6일 본지와 가진 이메일 인터뷰에서 "현재 우리의 교육시스템은 사무실과 공장에서 경쟁적으로 일을 하던 산업화 초기단계에 머물러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지금의 한국 교육으로는 자본주의 위기를 극복하기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호르크스는 "초등학교 때부터 극심한 경쟁을 시키는 한국식 교육에서는 최고가 아니면 기회를 놓치고 낙오한다"며 "서구의 기업들도 지금 학교 성적이 한 인간의 능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의 경우 모든 학생이 똑같은 목표(대학 진학)를 향해 달려가는 지나치게 단순화된 교육 모델에 머물러 있다"면서 "다양한 재능과 능력을 가진 학생들에게 '다양한 트렉(진로)'을 만들어 줘 재능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게 자본주의 4.0시대에 맞는 교육"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의 주입식 위주 교육이야말로 자본주의 3.0시대 교육의 '우울한 단면'이라고 비판하면서 "문제풀이에 매몰돼 있는 교육은 절대 안 된다"고 했다.
 
그는 "객관적 사실과 공식은 인터넷에 널려 있고 이런 정보를 얻는 것은 앞으로 더 쉬워진다"면서 "학생들을 그런 단편적 지식을 묻는 것으로 평가한다면 미래사회의 변화추세와 거꾸로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교육은 구태의연한 정답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영감과 질문을 던져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공부 잘하는 학생은 '복종 잘하는 사람' '제도에 순응 잘하는 사람'을 의미할 뿐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광고·디자인·기술 등 미래의 창의적 산업분야를 이끌어 갈 인재는 꼭 학교 모범생 출신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호르크스는 "학교가 꾸준히 개혁·개선될 때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스웨덴·덴마크·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들의 경우 교육이 그 사회의 부가가치를 창출해 내고 있다"면서 "단, 교육시스템이 소수의 부자(富者)들에게만 유리하게 작동하지 않고,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다양한 기회를 제공되고 창의적인 교육 콘텐츠가 제공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교사의 역할'을 강조했다. 교사가 지식전달자에 그친다면, 미래의 사회는 암울하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의 (상당수) 교사들은 아이들 재능을 키우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아이들 재능을 다 망치고 있다"며 "교사는 아이들에게 호기심과 창의력을 키워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1955년 독일에서 태어난 호르크스씨는 '자이트' '템포' 등 잡지 편집장을 지낸 저널리스트출신 미래학자다. 1996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미래연구소'를 설립하고 현대사회의 메가 트렌드 등을 연구하고 있다. 휴렛페커드·유니레버·인텔·노키아 등 글로벌 기업을 컨설팅했다. '미래에 관한 마지막 충고' '미래에 집중하라' '위대한 미래' 등의 저서가 있다.

 

선택폭 넓은 독일, 대학 외길 한국… 1인당 GDP는 獨이 두 배 더 높아  
강한 국가, 행복한 개인 만드는 독일 교육 시스템
직업학교서 월급 받으며 공부… 대학 진학률 36% 불과해도 막강 기술자들, 경제 버팀목

독일 함부르크주 '직업준비학교'(중학교 과정)에 다니는 율리안 라이라우(14)는 2년 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이 학교로 전학 왔다. 대학에 가기 위해 인문계 진학 과정인 '김나지움'에 입학했지만 공부가 싫어 성적이 바닥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지금 라이라우의 꿈은 '호텔리어'다. 이 학교에서 두 차례 현장 실습한 호텔리어의 일이 너무 재미있었다. 그는 지금 유명 호텔에 취직하겠다는 꿈을 안고 외국어·와인 공부를 한다. 낙제생이었던 라이라우는 이 학교에서 우등생이 됐다.

유로(EURO) 사용 국가들이 최근 경제위기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지만 독일은 오히려 상승세를 타고 있다. 지난 9월 경제성장률은 전 분기 대비 0.5% 성장했고 실업률은 0.1%p 감소한 5.8%, 수출은 전년 대비 12% 증가해 사상 최대 기록(1조750억유로)을 세웠다. 독일의 1인당 GDP는 4만631달러, 우리나라(2만591달러)의 두 배에 달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 독일이 유럽 최강(最强)의 위상을 지키고 있는 비결은 뭘까. 전문가들은 훌륭한 인적자원을 키워내는 '다(多)트랙 교육시스템'(그래픽)을 꼽는다.

 
독일은 초등학교 4학년 이후 적성에 따라 대학에 진학할 건지 직업 교육을 받을 건지를 선택한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적성과 재능을 찾을 때까지 지원하는 교육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적성에 안 맞으면 언제든 다른 방향으로 진로를 바꿀 수 있는 유연성도 갖추고 있다. 특히 '직업준비학교→직업학교→마이스터'로 이어지는 직업 교육시스템을 통해 길러진 막강 기술자들은 지멘스(전기전자회사), 벤츠·BMW·폴크스바겐(자동차회사), 티센크루프(철강회사) 같은 세계 굴지 기업들을 일궈냈고 지금도 독일 경제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

지난 6월 기준 독일의 청년실업률은 9%로 스페인(45.7%)의 5분의 1 수준이다. 이처럼 낮은 실업률 역시 직업학교 시스템 덕이다. 학생들은 직업학교를 다니면서 특정 회사에 임시 고용돼 월급을 받으며 공부를 하기 때문이다. 독일은 대학 교육을 사실상 무상으로 실시하지만 대학 진학률은 36%에 불과하다. 우리나라(80%)는 물론 일본(48%), 미국(64%), 영국(61%)보다 낮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최하 수준이다.

함부르크 '한델스카머(상공회의소)'의 토마스 쉬어베커씨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독일 엔지니어 중 대학 졸업자는 30% 정도"라며 "독일에서는 굳이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자신이 가진 기술을 연마하고 열심히 일하면 누구나 존경을 받는다"고 말했다.

독일 교육이 지금 같은 형태를 갖춘 것은 1939년. 독일 방식도 반발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래서 함부르크주의 경우에는 2년 전 한국식의 '통합 교육'을 도입하기로 결정했었다. '김나지움+레알슐레+하웁트슐레'를 모두 합한 형태인 '프리마스쿨'을 만든 것이다. 하지만 한 학부모가 "공부를 잘하는 애들은 못하는 애들과 분리돼 각자 수준에 맞게 공부해야 효율이 극대화된다"며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순식간에 수십만명의 학부모들이 서명운동에 동참했고 결국은 '주민투표'까지 시행됐으며 이 투표에서 이겨 '프리마스쿨'은 백지화됐다.
-출처: 조선일보. 2011.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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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빈곤문제연구소 류정순 소장

가진 게 많든 적든, 개인적으로 넉넉하든 부족하든 간에, 우리에겐 오랜 기간 익숙했던 일상생활의 틀이라는 게 있었다. 그런데 불과 365일도 채 지나지 않는 동안, 익숙했던 그 모든 게 불안과 절망의 나락으로 추락할 수 있다는 걸 일반 서민 모두가 뼈저리게 체험하는 나날이 숨 가쁘게 이어지고 있다.

정책적으로 내놓는다는 건 전부 다 둑이 터진 이후이고, 이런 정책을 난데없이 왜 펼치는 거냐고 물으면 동문서답이다. 국민들의 눈에는 그게 아니라는 게 뻔히 보이는데, 정책 담당자들의 눈에는 국민들의 착각이고 모든 게 좋은 것이며, 무조건 믿고 맡기면 조만간 다 해결될 거라는 파라다이스의 청사진만 나부끼고 있다.

최고급 수입차를 탄 1%의 안락함은, 중소형 차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99%의 덜컹거림과 그 충격을 느낄 수 없다는 건가. 그런 건 ‘너희들의 불편함’이기에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는 결론인가. ‘가진 자’들을 위한 정권 차원의 감세정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시점에서 ‘없는 자’들의 생존권은 어떻게 대안을 확보해야 하는지, 그 시급한 현안을 풀기 위해 한국빈곤문제연구소의 류정순 소장을 만나 진솔한 조언을 들어 본다.

- 바쁜 일정을 지내고 계시는데,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드린다. 한국빈곤문제연구소가 발족한 시기는 언제인가.
우리 연구소는 기초생활보장법 시행과 더불어 출범하게 됐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10월이다.

- 연구소가 만들어지게 된 과정과 취지를 먼저 말씀해 달라
솔직히 말해서 다른 연구소나 단체들과는 좀 다르다. 쉽게 표현한다면 ‘등을 떠밀리며’ 만들게 됐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무슨 의미냐 하면, 내가 96년 8월에 최저생계비 관련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게 예상치도 못했던 이 운동의 시발점이 됐다는 거다.

- 바로 이어진 97년의 IMF체제를 의미하는 건가
그렇다. 학위를 받자마자 곧바로 국가부도사태를 맞이하게 됐다.
길거리에는 노숙자들이 쏟아져 나오고, 너나 할 것 없는 전국의 모든 서민들이 고통의 나락으로 빠져들 때가 아니었나. 최저생계비를 전공으로 연구했던 입장에서 확고한 목표가 세워졌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기초생활보장법을 만들어야겠다.’ 정말 대안도 없이 모두가 어려워 신음하던 시절이었기에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에서 기초생활보장법 제정 운동을 할 때, 그 운동에 처음이자 공식적으로 참여하게 됐다.

- 그 운동은 어떻게 진행됐고, 어떤 면면들이 참여를 했나
개혁을 위해 힘쓰던 여러 교수님과 변호사님 들이 기초생활보장법 제정을 위해 정말 많은 활동과 노력을 했다. 그 분들은 주로 상층부 운동을 담당했다. 다시 말해서 국회의원들을 만나고, 정부의 각 기관 관리들을 만나 설득하는 작업을 전담했다는 거다.
나는 당시 시간강사로 일하던 시절이었기에, 상대적으로 시간적인 여유가 좀 있었다. 그래서 아래로부터 시민단체들을 끌어 모으는 역할을 담당했다.

- 당시 전체 시민단체 차원의 노력이 진행됐다는 건 기억하고 있다. 어떤 해답이 나오게 됐나.
우리의 노력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정말 고맙게도 사회복지사협회에서 사회복지사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후원금 5백만 원을 우리에게 지원해 줬다.
당시가 어떤 시절인가. 국가부도상태가 아니었던가. 그 고마운 후원금으로 우리는 팸플릿을 만들었다. 기초생활보장제도와 생활보호제도의 차이점을 비교하면서, 기초생활보장제도가 도입되면 이렇게 제도 차원의 생활이 좋아진다는 점을 전국을 누비면서 설득하고 다녔다.

- 어려울 때는 자신도 어려운 이들이 도움을 준다는 게 맞는 말이다. 전국을 도는 활동은 어떤 결실을 맺었나.
지방 각 지역을 일일이 돌며 이 제도 추진의 취지를 강조하고 다니니까, 전국의 거의 모든 단체들이 기초생활연대회의 멤버로 가입을 하게 됐다. 거기에서 힘을 많이 얻었다. 그래서 법이 제정되고 법 시행이 될 무렵, 다시 한 번 더 전국 각지를 도는 발품의 나날을 이어갔다.

- 전국 각지의 서민들 의견은 어땠는가.
전국순회의 과정 전부가 상담의 연속이었다.
‘당신은 해당이 안 될 것 같다.’, ‘당신은 30만 원 정도 받게 될 것 같다.’는 식으로 상담이 계속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까 신청서를 쓸 무렵에는 이 가난한 사람들 모두가 수능시험을 본 학생들보다 더 초조하게 되어버렸다. 실제로 궁금한 걸 누구한테 묻겠는가. 또한 그 궁금증을 어찌 참을 수 있겠는가. 모두가 다 당장의 시급한 현실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들의 상담 문의는 일일이 다 옮길 방법조차 없는 내용들뿐이었다. 구구절절 절박한 사연들을 그들은 묻고 싶어 했다. 그런데 아쉬웠던 건 전국에서 문의를 할 수 있었던 사람이 나 혼자였다는 사실이다.

- 그렇다면 최저생계비제도의 실제 내용을 알고 있던 사람이 소장님 말고는 없었다는 의미인가.
거의 그랬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법과 제도의 윤곽을 알고, 일부분은 제도를 만드는 데 직접 참여도 했기 때문이다.

-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빈곤문제연구소라는 타이틀은 언제 달게 된 것인가.
약간의 부연설명이 더 필요할 것 같다. 2000년 10월에 그 법이 시행되는데, 계속 상담을 받으려는 사람들로 인해 연락이 폭주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문제는 당시까지 내게 휴대전화가 없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문의하려는 사람들은 내가 집에 있어야 상담이 가능해지는 게 아닌가. 낮에는 개인 일정 때문에 나가야 하고 학교 강의도 해야 하고, 아침저녁 할 것 없이 전화가 계속 오는데 감당을 못할 정도였다.

- 집안에서 활동을 하기가 일면 난감했을 것 같다. 어땠는가.
집안에서 불평이 터져 나온 건 당연한 일이다. 기껏 10년 동안 공부를 시켜서 박사까지 만들어놓았는데, 돈도 못 벌고 집안에 앉아 남들의 ‘고민덩어리(?)’ 얘기로 가족들 밤잠도 못 자게 만든다는 반(半)농담까지 주고받을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 봐도 가족들에게 참 미안한 일이었다.

- 계속 집안에서 상담 활동을 계속했던 건가.
그런 와중이던 시점에, 개미마을이라 불리던 서울 문정동의 비닐하우스촌 소송 건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 개미마을에서 활동하시던 어느 목사님께서, 자신의 교회 방 하나를 내줄 테니 거기에서 전화를 놓고 상담도 하라며 큰 도움을 전해 주셨다. 그래서 좁은 사무실 공간이었지만, 그 자리에 모 시민연대와 우리가 함께 들어가서 ‘기초생활보장’이라는 시급한 요구를 해결하기 위해 본격적인 활동을 펼쳐가기 시작했다.

- 그 시점이 정확하게 언제인가.
‘한국빈곤문제연구소’라는 정식 간판을 걸고, 연구소 이름과 틀을 갖춰서 발족을 한 건 2001년 6월이다. 그때 공식적으로 창립식을 하면서 출범하게 됐다.

- 개인적인 사항을 묻겠다. 연구소 출범 이전, 더 멀리 올라가서 기초생활보장법을 준비하기 이전에는 빈곤문제에 특별한 관심이 있었는지, 아니면 제3자의 입장으로 머무셨는지가 궁금하다.
당시의 나는 그냥 집에 있는 주부였다. 이해가 잘 안 가시겠지만, 나의 학부 전공은 패션디자인이다. 학교 졸업 후엔 패션 관련 일을 했고, 20대 시절에는 싱가포르 에어라인에서도 근무를 했었다. 그런 후 아이를 낳고 집에 들어와 지내다가, 모(某) 패션기업 임원으로 근무하던 남편이 뉴욕지사 담당으로 나가게 돼서, 따라 나간 김에 새로운 공부를 하게 됐던 거다.

- 무슨 공부를 어떻게 했나.
처음엔 노인복지를 공부하고 싶었다. 그런 계획을 가지고 학교에 가서 상담을 했는데, 노인복지는 현장실습을 특히 많이 해야 한다고 하더라. 내가 아이 셋을 데리고 있는 입장인데, 밖으로 돌며 실습학점을 다 받는다는 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MBA 경영대학원에서 회계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돌아와서 소비경제를 중심으로 강사 생활을 시작했다.

- 그것이 최저생계비 계측하고 연관이 있는 건가.
어차피 소비문제니까 마찬가지다. 가계부 분석이 바로 최저생계비 연구인 것이다.

- 정리한다면 전혀 관심이 없으셨다가, 최저생계비를 연구하면서 빈곤문제에 발을 들여놓으셨다는 의미인가.
그 많은 분야들 중에서 왜 하필 최저생계비를 계측했느냐가 화두인데, 우리 지도교수님은 우리를 ‘만족불만족학파’라고 불렀다. 소비자의 만족과 불만족을 중심으로 연구하는 경제학 분야인데, 내가 패션 관련 일을 하며 경제적 여유가 있던 사람들을 두루 접했던 경험이 결과적으로는 많은 도움이 됐다.

그 다음에 소비경제를 하면서, 가장 아래의 계층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사회 시스템과 경제 메커니즘이 돌아가는 구조를 총체적으로 들여다보니까,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체제의 모순이 많다는 걸 발견했다.

중요한 시장에 실패하는 부분이 있고 시장 결함도 있으며, 거기에 대해서 정부가 개입해서 바로 잡아줘야 할 부분들이 유독 눈에 많이 보였다. 특히 자본주의경제라는 게 힘 있는 사람들의 편이 아닌가. 힘 있는 재벌들이 정권과 결탁하면, 소비자로서 소비시장에 끼지도 못하고 유효수효에서 배제당하는 빈곤층 문제가 확연하게 드러나게 된다.

- 빈곤문제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게 된 것이 공부하는 과정을 통해서 구체화 됐다는 건가.
그렇다고 볼 수 있다. ‘만족불만족’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구매력이 없어 소비자 축에도 들지 못하는, 소비시장에 참여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원초적으로 불만족한 소비자들이 아닌가. 그래서 이 사람들의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사회적으로 굉장히 열악한 이들을 위해 최저생계비를 어떻게 실행하고 제도화해야 하는지가 나의 과제가 된 것이다.

단순한 예를 들어 본다. 1989년 기준으로 최저생계비는 전체평균소득의 45%였다. 지금은 30%이다. 무려 15%나 떨어진 거다. 그래서 지금 정부 정책이 5공 시절보다 못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거다.

- 그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질문하겠다. 법 제정 이후로 법 평가에 대한 이런저런 이견들이 많이 있었는데 어떻게 보시는가.
그 법이 타협안이라고 보면 된다. 당시는 어쨌든 법이 통과는 돼야 할 상황이었다. 그런데 근로능력자한테 최저생계비를 주면 소위 ‘복지병’이 생긴다며, 무조건 줄 수는 없다는 게 정치권의 기본 입장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조건부수급으로 하자고 일종의 타협을 했던 거다.

인권의 개념으로 본다면 스웨덴과 독일의 경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스웨덴과 독일에서는 근로능력자가 일을 하기 싫기 때문에 최소한의 생계보장만 받고 살겠다며, 그런 권리주장을 내세워서 헌법소원 끝에 이겼던 바 있다. 인권의 개념을 제대로 해석한다면, 일을 하지 않고 최소한만 유지하며 살겠다는 의견도 보장해줘야 한다는 게 맞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그걸 도입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활사업을 통한 조건부수급으로 가자는 결론을 내린 거다. 근로능력이 있는 사람은 사회에서 일자리를 주고,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사람한테는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자활사업에 참여시키는 방식으로 진행하자는 것이었다.

- 이 법의 토대가 우리나라에서 자생적으로 만든 건가. 아니면 외국의 어떤 법을 가지고 와서 만든 건가.
역사적으로 볼 때 사회보장은 영국의 베버리지보고서로부터 시작한다. 시장바구니 방식으로 절대빈곤을 계측하는 방식은 그 보고서가 나왔던 20세기 중반 사회권(權)으로써의 생명보장방법이었다. 그런데 그 이후로 다른 나라들은 절대빈곤이 아닌 상대빈곤으로 정책을 다 바꿔갔다. 아직까지 절대빈곤으로 시장바구니의 최저생계비를 계측하는 건 후진국들뿐이다.

- 우리나라도 그렇다는 건가.
그렇다. 다른 나라들은 진작 다 상대적 빈곤으로 방식을 바꿨다. 그런 면에서 보면 미국은 우리보다 더 후진국인 셈이다. 미국의 계측방식은 식품비 한 가지만을 기준으로 한다. 그래도 다른 나라들, 우리나라의 경우만 보더라도 최저생계비 안에는 적어도 기초화장품 비용은 들어 있다. 최소한도로 필요한 로션이나 비누 등의 지출내용도 포함되어 있다는 거다.

그런데 미국은 최저생계비 계측을 먹는 것으로만 계산해서, 거기에 곱하기 3으로 정한다. 그래서 엥겔계수를 33%로 고정시켜놓았다. 생활수준이 높아지면 엥겔계수가 낮아지지 않은가. 저소득층의 자활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게 지금의 미국이라는 나라이다.

- 다른 관점에서 보면, 기초생활보장법이 예전의 생활보호법에 비한다면 획기적인 발전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기초생활보장법이 도입된 이후로 근로무능력자들, 특히 장애인들 같은 경우에는 어느 정도 혜택을 받게 됐다. 물론 ‘예전에 비해서’라는 단서가 필요하다. 그래서 요즘은 장애인들이 실내에 머무르지 않고 자립생활센터 같은 매개체를 이용하며, 혼자 살기 위해 나오는 방식을 택하지 않는가. 적어도 최소한의 기초적인 생활은 정부에서 받는 생계비로 어느 정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 그렇지만 그 금액이 너무 낮지 않은가.
서울을 기준으로 볼 때, 많이 받는 경우는 월 38만원을 받는다. 거기에 중증장애일 경우 장애수당이 16만원 더해진다. 50만원 내외의 생계비를 확보할 수 있기에 최소한의 생계는 된다. 물론 혼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몇이 모여서 함께 지내는 방법을 택하는 거다. 가장 기초적인 생활이 가능한 선에서 말이다.

- 그 법이 제정된 지 8년 정도 됐다. 지금 와서 평가한다면 어떻게 얘기할 수 있겠는가. 그것이 빈곤탈출의 계기가 됐다고 보는가.
기여를 했다 안 했다는 판단보다 훨씬 더 심각한 대목이 있다. 바로 비수급 빈곤층이 훨씬 많아졌다는 점이다.
실제 빈곤층이 몇이든 간에 예산에 맞춰 숫자를 일률적으로 자르도록 방침을 정해놓았다. 얼마나 엄격하게 지침을 적용하느냐 하는 것도 주관적이다.

예를 들어 서울에서 가장 많이 받는 게 38만원이라 할 때, 적어도 20만원은 우선적으로 월세로 지출이 된다. 그렇다면 남는 18만원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30일 기준으로는 그 비용으로 도저히 살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식사는 무료급식을 찾아가서 먹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무료급식이라는 것 또한 어쨌든 간에 사회적으로 현물지원을 받는 것이 된다. 물론 지금은 이것마저 불가능하게 경제가 돌아가고 있지만, 이런 것까지 모두 조사해서 구분한다면 대부분이 부정수급자가 되어버린다.

- 조금의 수입이라도 생기면 부정수급자로 처리한다는 말인가.
그렇다. 다른 예로 재활쓰레기의 파지(破紙)나 폐지(廢紙)를 모아 근근이 생계비를 마련하는 것도 부정수급자로 분류가 된다. 수입을 신고하지 않았다는 게 이유이다. 그럼 그들이 왜 쓰레기통을 뒤지면서 종이를 모아야 하는가. 최저생계비로는 도저히 생활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렇게 까다롭게 부정수급자들을 조사한다면, 그래서 그들에 대한 지원을 끊고 전체 예산 규모마저 삭감한다고 하는 건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를 묻게 만든다. 어려운 상황의 국민들도 최소한의 생존은 하게 만들어 줘야지, 살지 못하게 만드는 건 제대로 된 정부가 아니라는 거다.

- 그럼 이번 정부가 들어선 이후로, 복지 분야에 줄어든 예산이 구체적으로 얼마나 되나.
내년도 예산을 보면 기초생활보장수급권자는 2008년보다 1만 명이 축소되고, 의료급여 1만3천명 축소, 난방비지원 316억 원 전액이 삭감되고, 겨울철 난방을 위한 에너지보조금 489억 원 삭감, 장애수당 아동수당이 7만 명 축소된다.

지금 정부가 국회에 제출해서 통과를 기다리고 있는 정부안 내용이라는 게 이것이다. 이렇게 복지예산을 확 줄여버리는 데 대해 우리가 예산삭감저지투쟁위원회 등을 만들어 기자회견을 하고 적극적으로 투쟁하겠다고 했더니, 예산을 조정하는 척하며 아주 조금만 올려줬다.

그런데 아주 조금 올린 그 내용만 신문에 대서특필 되더라. 그 이전에 확 줄여버린 건 어느 신문에도 안 나왔다. 눈곱만큼 올린 것만 신문에 등장하다 보니, 일반 서민들이 볼 때는 정부가 복지예산을 증액하며 좋은 일을 한 것처럼 보이는 거다. 이게 무슨 언론인가. 확 줄인 건 눈을 감고, 줄인 것에서 살짝 올린 것만 나팔을 부는 게 제대로 된 언론인가.

- 지금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 보시는가.
당연히 감세 문제이다. 지금 일선 현장에 돈이 어디 있는가. 지방으로 보내는 교부세, 그것이 복지지원이다. 그걸로 복지와 교육에 쓰는데, 그 지방교부세를 확 낮춰버리지 않았는가. 그러니 지방에선 돈이 없어 아무것도 못하게 만들어놓은 거다.

- 그럼 지금부터 어떤 상황이 벌어지게 될 건가.
예산이 확 줄어든다는 것은 복지예산지출이 가장 우선적으로 줄어든다는 말과 같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장선거에 들어간다면, 표가 될 만한 곳에만 예산이 가게 될 것이다. 그 지역마다, 특히 강남구 같은 경우 비닐하우스촌의 가난한 사람들은 주민등록등재를 못한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뒤집어 본다면 그들은 표가 되지 않기 때문에 일차적으로 열외가 된다는 거다. 가진 자들에게 10만원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열악한 환경에 있는 이들한테는 생존을 가능케 하는 큰돈이 아닌가.

- 예산이 선거를 의식하며 선별적으로 쓰인다는 게 사실인가.
표가 될 만한 곳에 예산이 들어간다는 아주 간단한 실례(實例)가 있다. 강남구 개포동 아파트 단지의 경우 최소한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사는 곳 아닌가. 그런데 이 지역의 노인정에 월 200만원씩 점심값이 지원된다.

중산층이 아니라 준(準)상류층 지역이라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거다. 10억 이상의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인데, 노인정에 와서 지내는 분들이라면 일단 잘 사는 입장들이 아닌가. 그런데 그 분들을 위해 구청에서 200만원씩 지원한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

표면상으로는 노인복지 같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며느리복지를 위한 예산지출인 거다. 점심은 노인정에서 다 해결이 되니까 30~40대 여성 주민들이 집에 와서 어르신들 밥을 안 차려도 된다. 아줌마들의 여유를 보장해 준다는 건 바로 표를 전제로 한 선심공세인 것이다.

- 그게 실제상황이라면 정말 크게 잘못된 예산집행이 아닌가.
그런데 우스운 일이 뭔지 아는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으로 노인정에서 양질의 급식이 가능하게 만들어놓았지만, 제3자가 식사를 하러 가면 절대로 밥을 주지 않는다는 거다. 근처에 사는 가난한 노인네가 가서 같이 먹자고 하면, 무조건 출입금지로 배제가 된다는 것이다.

쓸데없이 특정한 시기마다 깨끗한 보도블록을 갈아치우고 멀쩡한 가로등을 새것으로 바꿔대면서도, 실제 지원이 필요한 이들에 대한 배려는 눈을 감는다는 거다. 운동시설 같은 것도 어려운 이들의 재활을 위해 설치되는 적이 있나. 다들 그럴싸하게 눈에 띄는 곳에다가 중산층이 즐길 만한 시설로 갖춰놓고 주민자치센터에 무슨무슨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모든 게 어려운 이들이 아닌 실제 표로 연결 가능한 중산층 이상을 대상으로 예산이 써지고 있는 것이다. 지방행정은 100% 표와 연결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 감세정책 시행에 따라 가난한 사람들은 앞으로 더욱 위험한 상황에 놓이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뭔지 아는가. 향후 해마다 감세가 더 많이 되는 구조로 만들어놨다는 거다. 2008년에 1조9천억이 감소이다. 그 다음 내년 2009년에는 8조1천억 원이 줄어들게 되어 있다. 1년 사이에 4배나 더 감세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 2010년에는 18조원이 줄어든다. 1년 사이에 10조가 더 줄어드는 거다. 그 다음에 20조 내외 수준에서 계속 줄어들게 만들어놨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수치자료는 헌재의 종부세 판결 이전에 나온 것이다. 헌재의 결정에 따라 지금 당장 천문학적인 액수가 가진 자들의 주머니로 쏟아져들어갈 게 아닌가. 그렇다면 그 액수만큼 감세 폭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 불과 1년도 안 된 사이에 모든 전망이 암울한 내용으로만 채워진다는 게 상식 밖의 일이다. 사회적 약자들의 생존권이 이대로 붕괴된다고 할 때,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이대로 감세를 추진하고 이런 식으로 복지를 축소하면 점점 더 심해지고 빈민들은 양산이 될 텐데, 이렇게 일방적으로 계속 밀어붙인다면… 솔직히 현 정부의 후반부를 장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래서 지금처럼 불황이 심해지고 약자들의 처우가 열악해진다면, 앞으로 감세는 하더라도 복지예산축소를 일방적으로 크게 하지는 못할 거라 예상한다.

- 그렇게 예상하시는 근거는 무엇인가. 그럴 경우 그 재원은 어디에서 가져오는 것인가.
그게 바로 재정적자이다. 일본이나 미국보다는 우리나라의 재정이 비교적 건전한 편이다. IMF 이후 지난 정부들이 재정을 건실하게 유지시켜 왔기 때문에, 현재의 재정적자 폭은 크지 않은 편이다. 그런데 미국과 일본식으로 우리도 재정적자가 많이 나는 정책으로 국가를 운영한다면, 그때는 정말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할 위험이 아주 크다.

장기적으로는 굉장히 안 좋은 정책이라는 걸 알면서도, 현 정부가 집권하고 있는 동안의 안전을 위해서는 피하기 힘든 유혹이 아닌가. 그렇게 한다는 게 아니라, 정말로 그렇게 할까 봐 크게 걱정되는 것이다. 그런데 결국 그런 방식으로 갈 거라는 징조가 이미 보이고 있다.

재정적자가 무엇인가. 겉으로는 번듯한 집에 살고 있는 거지만, 내용은 전부 다 빚을 끌어들여 포장했다는 얘기 아닌가. 다음 정부에 빚을 떠넘기고 지금 당장의 문제는 덮어두자는 거다. 복지예산을 축소하며 국가를 운영한다는 건 당장 자신들의 눈에는 불필요한 비용의 축소라고 믿어질지 모르지만, 몇 년 후에 몇 십 배 이상의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하는 가혹한 후폭풍이 엄연히 남게 되는 것이다.

- 빈곤층의 실태와 그 규모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가.
지난 10년 동안 중산층이 10% 줄었다. 그 중에서 7%가 빈곤층으로 내려갔다는 통계가 나와 있다. 5천만 인구로 계산해서 7%는 얼마인가. 350만이다. 그만큼 빈곤인구가 더 생겨난 건데도, 기초생활수급자는 150만 명으로 그대로 고정되어 있는 게 현실이다.

지금 실업률이 몇 %라고 아직은 괜찮다는 식으로 말하는데, 진정 심각한 것은 청년실업률이다. 가시적으로는 8%라고 하는데, 실제로는 그 수치보다 훨씬 더 높을 게 확실하다. 청년실업률이 높다는 점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 그 실업이 장기실업으로 진행되고, 자칫 잘못하면 평생실업으로 고착화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데 있다. 그렇기 때문에 청년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청년실업자 구제를 위한 정책들이 여전히 약하고 미진한 것 같다.

- IMF 당시와 지금의 경제위기 차이점은 무엇이라 보시는가.
아직은 위기가 아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불황의 매서운 한파가 시작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 금융위기가 실물위기로 옮겨와서 실물경제가 안 돌아가게 되면, 중소기업들과 영세자영업자들의 줄도산이 이어지게 된다. 가정 붕괴와 실업자 대량양산이 가시적으로 수면 위에 떠오르면, 그 시점부터는 걷잡을 수 없는 심각한 상태가 된다. 거기에 대한 대비를 하루빨리 철저하게 수립해야 하는데, 실제 현실을 전혀 모르는 한가로운 낙관론이 정부쪽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IMF 당시는 우리만 위기였지 않은가. 환율이 날뛰고 이자율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해도, 우리나라는 경쟁력을 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환란을 극복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의 주력 수출시장인 선진국들이 전부 다 흔들리고 있기 때문에, 이 수렁에서 벗어날 방법이 어지간해선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그런데도 조만간에 세계 7대 강국으로 올라갈 거라느니, 내년 4% 성장이 가능할 거라는 속편한 낙관론 타령만 반복이 된다. 도대체 어느 나라의 정부인가. 모든 게 구멍투성이다.

- 실제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연구소에 주로 들어오는 상담 내용은 무엇인가.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하는 건 지난 밤사이에 들어왔던 기초생활보장에 관한 인터넷 상담의 답을 쓰는 일이다. 답을 쓰고 나서 출근을 하는데, 그 사연들을 읽는다는 건 가슴을 찢는 것과 마찬가지의 고통이다. 대학을 가야 하는데 돈이 없다는, 이혼을 하면 수급을 받는 게 가능해지는지, 전월세 보증금 다 까먹고 길거리에 나앉았는데 이 추위에 당장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거기에다가 자영업을 하다 망했는데 오갈 데 없이 아무런 대책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연이 요즘 특히 많이 올라오는 것 같다. 삶의 벼랑 끝에서 애타게 구조신호를 보내는 이들의 절규인 셈이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상담이랄까, 그런 게 있으신가.
기억에 남는 상담의뢰인들은 대체로 사회적 분노에 가득 찼다는 공통점이 있다. 대구지하철 방화사건이나 숭례문방화사건 같은 일을 지금 당장이라도 저지를 기세로 분노를 토로하는 것이다. 우리의 상담은 실질적 대안을 찾는 상담도 많지만, 심리적 치료로 진행되는 상담 또한 많이 있다.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사연은 월남전 고엽제 환자 분의 얘기였다. 학교 다닐 때는 자기 동네에서 가장 촉망 받고 성공할 사람으로 인정받았었는데,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온 몸이 엉망으로 망가졌다고 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돈다운 돈을 벌지 못해 효도마저 못했었는데, 그 환자분한테 파킨슨씨병이 찾아왔다고 한다. 결혼도 못하고 이제는 자기 몸도 잘 가누지 못하는 상황이 돼서, 인생 후반기에 또다시 노부모의 신세를 져야 할 상황이라고 했다. 그의 절규가 잊어지지 않는다.

이 나이가 되어 왜 나한테만 불운이 오고 장애가 찾아오는 거냐고, 다른 사람들은 다 멀쩡히 잘 먹고 잘 살며 잘 다니고 있는데, 너무 억울해서 도저히 혼자선 절대로 못 죽겠다며, 극도의 분노에 찬 상태에서 긴 전화통화를 나눴다.

- 모든 게 가슴 아픈 현실로만 채워진다는 게 안타깝다. 소중한 말씀을 전해 주셔서 감사드린다. 마무리 차원에서 한국빈곤문제연구소가 지향하는 앞으로의 목표나 당면과제를 말씀해 달라.
우리 연구소에서 가장 크게 하는 일은 연구와 상담, 상담교육과 복지제도개선운동이다. 상담은 복지제도개선운동을 위해서 필요한 자료수립의 과정이고, 연구의 최종목적 역시 제도개선에 맞춰져 있다. 지난 국민의 정부 때 기초생활보장제도가 도입된 이후, 지금까지는 제도가 크게 훼손되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지금 우리 연구소가 처한 가장 큰 당면과제는, 앞으로 훼손될 게 분명한 이 제도를 방어해내는 게 최대 주안점이다. 여태까지는 그래도 우리가 공세적으로 나갔었다. 이걸 고쳐라, 이걸 개선해라 하며 계속 운동해 왔는데, 이제는 제도 훼손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수세에 몰리면서 지금 있는 것마저도 방어하기 힘들어질지 모른다.

일단 지금 당장 예산부터 깎였기에, 벌써 많은 장애인들이 여의도에 천막을 치고 농성에 들어갔다. 이 겨울 내내 농성을 계속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미 우리는 감세를 못 막지 않았나. 게다가 헌재에서 부자들에게 그동안 낸 세금을 그대로 다 토해 준다고 하는데, 사회적 약자인 서민과 빈곤층들은 이런 정부와 정책 앞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를 생존권 차원에서 진지하게 고민하며 토론해야 할 것이다.

사회 개혁이나 변화의 차원이 아니다. 이젠 생존권의 마지막 벼랑 끝에서, 생사를 선택해야 할 기로 위에 서 있는 것이다.
-이태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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