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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행위가 순수하게 동물적인 욕망을 충족시키는 영역을 벗어나기만 한다면, 우리의 동기는 사실 항상 사고로 관철된다. 사랑, 동정심, 애국심 들은 냉철한 이해 개념 속에 녹아나지 않는 행위의 원동력이다. 여기서는 바로 가슴과 정서가 그 정당성을 발휘한다고 말한다.

 ··········

가슴으로의 길은 머리를 통해서 이른다. 사랑도 예외가 아니다. 사랑이 그저 성욕의 출구가 아니라면, 그것은 우리가 사랑하는 존재에 대하여 만드는 표상에 접촉되어 있다. 이 표상이 더욱 이상적일수록 사랑은 더욱 행복으로 충만해지는 것이다. 여기서도 역시 사고가 감성의 아버지가 된다. 사랑에 눈이 멀어서 사랑하는 존재의 약점을 보지 못한다고 말들 한다. 그런데 사실을 역으로 보아 "사랑은 바로 그 존재의 장점을 위해서 눈을 열어 준다."고 주장할 수 있다. 사실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은 한 인간의 장점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생각 없이 지나쳐 간다. 그런데 한 사람이 그 장점들을 보게 되고, 그의 영혼 안에 사랑이 일깨워진다. 그 사람은 어떤 일을 하였는가? 수많은 다른 사람들이 가지지 않은 표상을 만들어 낸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표상이 부재하기 때문에 사랑도 일어나지 않는다.

 ··········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사물을 이해하려 한다. 인간 행위의 본질에 대한 질문은 사고의 원천에 대한 질문을 선행 조건으로 한다는 점을 항상 명심해야하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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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철학의 왕국이었다.



인문학으로 살아가기 - 전 세계인이 조선선비들에게 배워야 하는 이유


조선시대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영적이고 진보적인 사회였다. 이 글에서는 조선의 알려지지 않는 좋은 면들을 재조명함으로써 한민족의 전통문화를 복구해보고자 한다.


1. 조선은 세계에서 가장 영적인 민족이 사는 국가였다

옛날 조선에서는 ​아이가 새벽에 오줌을 싸면 다음 날 동네에서 소금을 받아오게 시켰다. 얼핏 보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미신적인 풍습 같지만 여기에는 조선인들의 심오한 사상이 반영되어 있었다. 음양오행상 새벽은 수기(水氣)가 지배하는 시간대이므로, 수기운이 약하면 신방광 계통에 이상이 온다. 그래서 어린 아이들이 이 때 오줌을 지리기가 쉬운 것이다. 반면, 염기의 양이온인 Na+와 산의 음이온인 Cl-가 만나 가장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소금은 활동전위를 발생시켜 신경물질을 전달하고, 삼투압을 조절하고, 신체 내 노폐물을 해소시키는 기능을 하는 원소인데 오행상 생명력을 주관하는 수기로 본다. 그러니까 우리 조상들은 아이의 부족한 수기를 채우라는 의미에서 아침에 이웃집을 돌며 소금을 받아오게 한 것이다. 순수한 연역적 추론(음양오행)에 의거한 조선인들의 과학성이 놀랍지 않은가?


조선 민족은 세계에서 가장 영적인 민족 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조선시대 사람들만큼  이음양오행 이론을 철저하게 지킨 민족이 없었다.

먼저 음양이 합하여 이루어진 태극은 한민족이 예로부터 건물, 가구, 일상용품에 애용하는 문양이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대한민국의 국기로 이어지고 있다. 

 

오행은 목(木, 봄;동쪽), 화(火, 여름;남쪽), 토(土, 중앙), 금(金, 가을;서쪽), 수(水, 겨울;북쪽)의 다섯 기운이 서로 상생하고 상극하며 우주의 조화를 이룬다는 사상으로, 오행설에 따라 유난히 5를 좋아했던 민족이 한민족이다.

​부여와 고구려의 5부족, 고구려의 중앙의 5부와 지방의 5부, 백제의 5부 5방제의 행정구역, 통일전 신라의 지방 5주제, 발해의 5경 제도, 조선의 한양을 5방으로 나눈 것과 장시가 5일장으로 열린 것 등이 오행설과 관련이 있다. 오행설은 상생과 상극의 원리 속에서 우주만물이 생성, 변화, 발전한다는 이론이지만, 한국인은 토(황제)-목(하)-금(은)-화(주)-수(진)-토(한)로 상극적이고 투쟁적인 중국보다 평화적인 상생의 측면을 선호한다. 그래서 사람도 상생의 순서에 따라 태어난다고 보아 목→화→토→금→수의 원리로 이름을 짓는다. 이것이 항렬인데 예를 들어 조부대에 흠(欽)과 같이 쇠금(金)변으로 이름을 지었으면 아들대의 항렬은 연(淵)과 같이 물 수변이 들어가게 짓고, 손자대는 동(東)·상(相)·식(植)자와 같이 나무목(木)변이 들어가게 작명을 한다.

한편 왕조의 교체도 상극의 논리인 중국과 달리 상생논리로 이해하여 신라는 금, 후고구려와 고려는 수, 조선은 목의 왕조로 인식해 각 왕조는 이를 상징하는 9, 6, 8의 숫자를 애용하였다. 예를 들어 박-석-김으로 왕위가 교체되다가 김(金)으로 왕위가 세습된 신라는 금(4, 9)을 선호하였는데, 지방의 행정구역을 9주 5소경으로 개편하고, 중앙의 군사도 9서당으로 편재하여 금의 왕조임을 나타내었다. 수는 후고구려와 고려가 사용하여 후고구려의 연호를 수덕만세(水德萬歲)로 사용했고, 고려는 전국을 6도(5도 양계)로 나누었다. 또한 숙종때 수도를 개경에서 지금의 서울인 남경으로 천도하고자 하였으나 남경의 주인은 목성을 가진 자가 주인이 된다는 설 때문에 수도를 옮기지 못하였다. 인종때 일어난 이자겸의 난(1126년)도 목성인 이씨로 정권을 잡으려 했으나 실패하고 결국 목성을 가진 이성계가 조선왕조를 창건하게 된다. 

목(木, 3·8)을 표방한 조선은 유난히 3자를 선호했는데. 3정승(영의정·좌의정·우의정), 삼사(홍문관·사헌부·사간원), 삼법사(형조·사헌부·한성부), 3년마다 자(쥐띠해), 오(말띠해), 묘(토끼해), 유(닭띠해)년에 과거를 보는 식년시를 시행하고, 전국을 8도로 나눈 것과 장시가 5일장으로 열린 것은 모두 음양오행설과 깊은 관련이 있다. 또한 오행을 오상(인·의·예·지·신), 방위(동·서·남·북·중), 빛깔(청·백·적·흑·황), 짐승(청룡·백호·주작·현무·황룡), 오장(간장·폐·심장·신장·비장)과 관련시켜 받아들이는 자세도 매우 진지했다. 

사실상 조선의 수도였던 한양(서울)은 음양오행 사상에 따라세워진 계획도시였다. 북쪽에 백악산(북현무)을 주산으로, 왼쪽에 낙산(좌청룡),  오른쪽에 인왕산(우백호), 남쪽에 남산 목멱산(남주작)이 서 있었다. 


가장 중요한 궁전인 경복궁의 3개 문을 차례로 지나면 왕의 정사를 돌보던 근정전이 나온다. 근정전 중앙은 토(土), 황제의 자리다. 그 뒤쪽 깊숙한 곳에 왕비의 침실인 교태전이 있다. 교태전의 모습은 태극을 형상화하고 있는데, 천지의 음양의 기운이 한데 어울려 만물의 근원이 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동쪽에는 세자의 거처인 동궁이 있다. 동쪽은 해가 떠오르는 곳으로 오행의 목(木)을 뜻하며, 세자는 자라서 왕이 된다는 뜻이다. 서궁(경운궁)은 경복궁 서쪽에 위치하는데 대비의 거처로, 대비는 지는 해라는 의미로 오행의 가을(金)을 나타내고 있다. 

궁실의 ​대문은 우주의 기운이 흐르는 입구로 건춘문, 오행에서 목(木)으로 봄을 마주하는 문이다. 서쪽에는 영추문, 오행의 금(金)으로 가을을 보낸다는 뜻이다. 


광화문을 지키고 있는 한쌍의 해태의 눈은 관악산을 응시하고 있는데, 왜 광화문 앞에 세워진 것일까? 해태는 물을 관장하는 신으로써 물은 오행상 수(水)에 해당되면서 한강 너머의 관악산은 화(火)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수(水)와 화(火)가 있어서 물로써 불을 제압하기 때문에 해태상을 양쪽으로 세워 관악산의 화를 막고자 했던 것이다. 


남대문의 옛 이름은 숭례문(崇禮門)으로 예를 숭상한다는 의미이다. 예(禮)는 오행중 불인 화(火)로써 방향으로는 남쪽을 나타내는데, 숭(崇)은 글자의 모습 자체가 활활 타오르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현판이 세로로 걸려 있는 이유는, 세로 현판으로서 관악산의 화기를 막기 위한 이열치열의 방법을 썼기 때문이다. 이 때문인지 임진왜란과 6·25전쟁도 무사히 넘겼지만 2008년 2월 화마를 피하지 못했다. 

북쪽의 동대문의 현판 역시 특이하다. 다른 곳의 현판이 세 글자인 데 비해 흥인지문(興仁之門)은 네 글자다. 한양의 가장 큰 약점은 동쪽 약산의 기세가 약하다는 것이다. 임진왜란 때는 동대문을 통해 들어오는 왜구들을 통해 서울이 함락되는 수모를 겪었다. 이 때문에 1869년 고종 때 '흥인문'을 다시 지으면서 이름에 산맥을 뜻하는 '갈 지(之)' 자를 넣어 좌청룡의 약한 기운을 보강했다고 했다. 

이렇게 철저하게 음양오행에 따라 설계된 것이 왕궁이 터를 잡고 있던 강북이었기 때문에 강남보다 지진 빈도가 현저히 낮다고 풀이할 수도 있다.

한국의​ 산천 곳곳에서도 음양오행 사상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산은 그 기세에 따라 양산과 음산으로 나뉘어 진다. 탑의 둥근 모양은 음탑, 각진 모양 양탑이라 불린다. 남근석은 대표적인 양의 기운이다. 양기를 누르기 위해 물을 갔다 붓는다. 좋은 기운은 더욱 북돋아 주고, 약한 기억은 보충하는 것이 풍수지리의 원리이다. 

​마이산은 80여개의 다양한 돌탑이 쌓여있는데, 특이하게도 양산과 음산이 한 쌍으로 이루어져 있다. 음양오행의 이치에 따라 축조된 탑들은 우주순행의 이치를 담고 있다. 천지탑(음양탑)은 마이산에서 규모가 가장 큰탑으로 음양 한 쌍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행탑은 동서남북으로 한쌍으로 음돌과 양돌을 싸놓고 있다. 마이산의 탑들이 200년이 넘도록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이다.

경북 안동시 하회마을은 낙동강이 마을을 태극 모양으로 안고 도는 형세로 마을 입지 조건으로 최고로 꼽힌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장승을 만나게 된다. 장승은 남녀를 상징하는 천하대장군과 지하대장군이 마주 보거나 나란히 서 있는 경우가 많은데, 양인 천하대장군은 양각으로 깎고, 음인 지하여장군은 음각으로 깎는다. 이 역시 음양의 원리를 따르는 것이다. 정승과 함께 마을을 수호하는 솟대는 하늘과 땅을 바라보고 있다.

한국의 전통 가옥에서도 음양론에 따라 안채와 사랑채를 구분했다. 대문을 중심으로 동쪽에 사랑채가 있고 서쪽에 안채가 있다. 안채로 들어가면 남성의 출입이 제한되는 여성만의 공간이다. 안채는 여자들의 주 생활 공간이다. 가사 공간이기도 하다. 마루를 따라가면 사랑채가 나온다. 사랑채는 남자들의 주 생활 공간이다. 그래서 사랑채는 건축에서 하늘에 해당된다. 사당은 북동쪽에 위치해 있다. 죽음은 탄생을 위한 준비과정이라는 오행론적 사상을 반영한 것이다. 

아이들의 거처인 동채는 탄생에 해당하는 동쪽에 해당한다. 곳간은 모으는 힘이 강한 금(金)의 방향인 서쪽에 위치한다. 

북쪽에는 부엌이 있다. 아궁이는 생산을 의미하는 자궁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엌은 집안에서도 가장 중요한 곳으로, 신앙의 대상이었다. 불을 다루는 부엌에는 화재 예방을 위해 숫자나 한자를 써붙었다. 장독대는 북쪽 제일 끝에 위치해 있다. 생명의 기운을 품고 있는 오행의 수(水)를 뜻한다. 고추의 붉은색은 양색으로 음인 악귀를 쫓는 힘이 있고, 숱의 검은 빛은 음색으로 귀신들을 흡수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졌다. 장독대는 성역처럼 여겨졌기에 금줄로 잡귀의 침입을 금하고 있다.


 

​한국의 집은 천지인 세계관을 반영한 소우주다. 하늘에 닿기 위한 계단은 신성한 장소이며, 기둥은 권위를 상징하고, 지붕은 하늘의 상징이다. 네개의 기둥이 둘러싸여진 단은 신성한 영역을 상징한다. 

 

공동우물은 마을의 생명줄로 마을의 정기가 모인 곳이다. 예로부터 우물을 잘못파면 마을에 병고가 생긴다고 믿었다.그래서 재앙을 막고 1년내내 물이 잘 솟으라는 샘굿은 동신제(洞神祭)에서도 가장 좋은 볼거리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에서 농기의 삼색은 각기 천지인을 상징하는 삼태극이다. 농악은 음양오행이 완전한 조화를 이룬 우리의 민속음악이다. 

​혼례(婚禮)는 저물 때 행하는 예식이라는 뜻이다. 결혼이 남자와 여자, 즉 양과 음의 결합이기 때문에, 시간도 양인 낮인 양과 밤인 음이 만나는 저녁 때 하는 것이다. 신랑이 입는 청색은 태양을 상징하는 동방이기 때문에 양기가 왕성한 것을 상징한다. 신부의 다홍색은 기쁨을 표현하고 액혼을 막고, 흙을 상징하는 노란 저고리는 탄생과 새출발을 의미한다. 전통 혼례복은 부부금실과 자손들의 부귀영화를 기원하는 축원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음과 양은 서로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결합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창조한다. 

​음양이 끝없이 돌며 태극을 만드는 강강술래는 이러한 생명의 과정을 재현하는 민속놀이이다.

​한복에도 음양오행의 이치가 숨어있다. 윗옷과 아래옷으로 나뉘어 만든 것은 양인 상채와 음인 하채의 원리를 적용한 것이다. 녹색 저고리(활옷), 홍색치마는 목생화(木生火)의 상생의 원리를 담고 있다. 고구려 벽화를 보면 3세기 초에 이미 오색을 갖춘 색동옷이 출연하고 있다. 아이들이 주로 입는 색동옷은 오행을 두루 갖춤으로써 나쁜 기운을 막고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런 오방색이 잘 들어간 것이 오방처용무(五方處容舞)로 궁중 무용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통치이념을 상징하는 오방처용무는 음양오행의 방향을 나타내고 있다. 목(木)을 상징하는 동반신장은 청색 의복을 입고, 화(火)를 상징하는 남방신장은 적색 의복을 입으며, 금(金)을 상징하는 서방신장은 백색 의복을 입으며, 수(水)를 상징하는 북방신장은 흑색 의복을 착용한다. 중심에 위치한 중앙신장은 토의 색깔인 황색 의복을 입고 있다. 다섯 신장은 원을 돌면서 오행의 상생 상극을 그려낸다.

우리의 주식인 밥 속에도 오행의 기운이 다 들어있다. 적당한 양을 맞추어 붓는 물은 수기(水氣), 나무의 불을 피는 밥음으로 화기(火氣)와 목기(木氣)를 고루 갖추게 된다. 또 밥을 짓는 가마솥은 쇠로 만든 금기(金氣)다. 음식이 놓이는 단상은 주로 둥근 상태로 하늘을 나타낸다. 다리가 네 개인 것은 땅을 상징하고 음을 상징한다. 둥근 숫가락은 양, 긴 젓가락은 음으로, 수저를 함께 사용하는 것은 음양의 조화를 나타낸다. 어륙은 불에 구은 것으로 화기(火氣)가 포함되어 있고, 국과 찌개 간장 동치미 등은 수기(水氣)가 포함되어 있다. 음식을 담는 그릇은 쇠(金氣)나 흙(土氣)으로 만든 도자기다. 이렇듯 음식과 식재료로 이루어진 상차림에는 음양오행이 모두 구비되어 있다.

쌀, 보리, 수수, 콩, 조 오곡밥은 오행의 원리를 두루 갖는다. 김치는 오색은 물론이고 오미를 두루 갖추고 있다. 대추의 쓴맛과 단맛, 고춧가루의 매운맛, 젓갈과 소금의 짠맛 익었을 때의 신맛 등 김치는 우리의 건강을 지켜주는 완벽한 식품이다. 


음양오행 말고 조선의 무속신앙은 어떤가? 무신도 속의 붓다와 보살 등 무속신앙은 중국의 영향이 거의 보이지 않는 가장 오래된 한국적인 신앙이다. '신난다'는 말과 그 어원인 '신명(神明)난다'도 샤머니즘에서 온 것이다. 한국의 멋의 원류인 풍류나 요즘 유행하는 한류나 월드컵 때 붉은 악마도 결국 샤머니즘에서 온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의 신바람(神氣)은 샤머니즘(巫氣)과 통한다. 



2. 조선은 세계에서 손꼽을 만한 민주주의 국가였다


조선 중기 선조 이후 사림의 정권 독점이 이어지면서 조선은 예송논쟁 등 하찮은 이념논쟁으로 국력을 낭비하는 국가로 전락하였지만, 조선초 훈구파, 관학파에 의해 구축된 조선의 시스템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놀랍고 역동적인 것이었다. 조선왕조가 500년이나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조선시대를 이해하면, 한국인의 전통적인 가치관과 윤리관, 생활방식 등 많은 것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먼저 조선은 개천에서 용 나는 기회평등지향 사회였다​.

500년간 유지된 조선의 과거제도는 조선의 젊은이들에게 공부만 열심히 하면 정승과 판서에 오를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을 심어주었다. 조선사 연구의 권위자인 한영우 이화여대 이화학술원 석좌교수 겸 서울대 명예교수는 양반뿐 아니라 평민과 서얼 등 신분이 낮은 사람들도 대거 과거에 합격했음을 증명하는 연구서 <과거, 출세의 사다리>를 출간했다. 이 책을 보면 조선 전기 태조∼선조 대에 선발된 문과 급제자는 모두 4527명이며, 이 가운데 신분이 낮은 급제자는 1100명으로 전체 급제자의 24.3%를 차지한다. 신분이 낮은 1100명 중 3품 이상 고관에 오른 급제자는 306명에 이른다. 신분이 낮은 급제자의 비율은 태조∼정종 대에 40.4%, 태종 대에 50%였다가 광해군 대에 이르면 14.6%로 낮아지고 다시 점차 증가해 고종 대에 이르면 58%대에 이르는 U자형 추이를 보인다. 조선 중기인 17세기를 전후로 신분이 낮은 급제자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줄어든 것은 문벌가문이 득세하면서 신분이 낮은 급제자들을 억제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과거시험을 통한 신분 이동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역동적이었다.

애초에 조선시대는 천민을 제외하고는 모두 동등한 양천제를 지향했다(이후 변질된 것이 문제였다). 양반가에서 태어났더라도 오랫동안 과거에 급제하지 못해 집안에 벼슬한 사람이 없거나 집안에 돈이 없으면 평민이나 다름 없었다. 이런 양반은 농사 짓고, 남의 집 허드렛일도 해주며 살았다.

 

또 조선시대는 노비고 여인이고 할 것 없이 왕에게 글로 상소를 할 수 있었다. 글을 못 쓰는 서민들은 왕궁 옆에 매달아 둔 신문고를 울려 형조의 당직관리에게 민원을 제기할 수 있었고, 보고 내용은 왕의 귀에 들어갔다. 지방에 사는 사람들도 이러한 혜택을 누리기 위해 '격쟁'이라는 제도가 생겼는데, 왕이 지방에 행차를 하면 꽹과리나 징을 쳐서 민원을 해결해 주었다. 이것은 단순히 형식적인 제도가 아니었다. 예를 들어 정조의 행적을 조사해 보면, 정조가 왕 노릇을 한 것이 24년인데 그동안 상소, 신문고, 격쟁을 해결한 건수가 5,000건이다. 제위 연수를 편의상 25년으로 나누어보면 매년 200건을 해결했다는 얘기이고 공식 근무일수로 따져보면 매일 1건 이상을 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조선 시대 백성들은 만만한 백성이 아니었으며, 최소한도의 합리성도 갖고 있었다. 세종대왕 때도 백성을 위해서 만든 개정안을 정말 백성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를 국민투표를 해 보고 시범실시를 하고 토론을 하는 등 법의 공포와 시행에 수 년이 걸렸다.​

조선 시대의 법제도도 상당히 합리적이고 민주적이었다. 조선 왕조는 사형수에 한해 3복제를 실시했다. 조선시대에 사형수 재판을 맨 처음에는 변 사또 같은 시골 감형에서 하고, 두 번째 재판은 고등법원, 관찰사로 간다. 마지막 재판은 서울 형조에 와서 받았다. 재판장은 거의 모두 왕이 직접 했다. 왕이 신문을 했을 때 그냥 신문한 것이 아니라 신문한 것을 옆에서 받아썼다. 기록을 남겨서 그것을 책으로 묶었는데, 그 책 이름이 <심리록(審理錄)>이라는 책이다. 이 책을 보면 왕들은 사형수가 고문에 의해서 거짓 자백한 것이 아닐까를 밝히기 위해 무수히 노력을 했고, 이래서 상당수의 사형수는 감형되거나 무죄 석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법이 있었기 때문에 조선이 500년이나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볼 수 있다.​



3. 조선은 세계적인 복지 국가, 공동체주의 사회였다


고대 그리스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장애아를 양육하지 못하도록 법을 제정하라"는 말을 했고, 플라톤은 "장애아는 사회에서 격리시켜라"는 말했다. 중세 유럽에서 장애인은 신에게 벌을 받은 사람으로 장애인에게 고문과 사형 집행이 가해졌다.

 

서양에서 자행되었던 장애인의 잔혹한 역사에 비해 조선은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국가의 기본 정책 기조로 삼았다.

 

독질인(篤疾人) - 매우 위독한 병에 걸린 사람

잔질인(殘疾人) - 몸에 질병이 남아있는 사람

폐질인(廢疾人) -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린 사람

 

이처럼 장애를 질병 중의 하나로 여겼던 조선시대 왕들은 장애인의 복지를 위해 다양한 정책들을 시행했는데 세종 14년(1432년 8월 29일)에는 이런 법령이 반포되었다.


'부모가 나이 70세 이상이 된 사람과 독질이 있는 사람은

나이가 70세가 차지 않았더라도 시정(侍丁)한 사람을 주고...'

(시정 - 조선시대에 나이가 많은 부모를 봉양하기 위하여 군역에서 면제된 사람)

 

장애인과 그 부양자에게는 각종 부역과 잡역을 면제 (오늘날의 병역면제), 장애인을 정선껏 보살핀 가족에게는 표창제도 실시되었다.

 

반면 장애인을 학대하는 자에게는 가중 처벌을 내리는 엄벌제도를 시행해서 장애인이 무고하게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면 해당 고을의 읍호(邑號)를 한 단게 강등시켰다. 장애인을 천시했던 서양과 달리 선진적인 복지 정책을 펼쳤던 것이 우리 선조들의 나라 조선이었다.

 

특히, 장애인의 자립을 중요하게 여겼는데 점복사, 독경사, 악공 등 장애인을 위한 전문직 일자리 창출이 그 예다.

 

세종 16년(1434년 11월 24일)에는 '관현(관악기와 현악기)을 다루는 시각장애인 중에 천인인 자는 재주를 시험하여잡직에 서용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장애인은 신분에 상관없이 능력 위주의 채용이 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명통시(明通寺)가 설립되어 우리나라 최초의 장애인 단체가 만들어졌다. 명통시에 소속된 장애인들은 기우제 등 국가의 공식 행사를 담당 그 대가로 노비와 쌀을 받았다. 장애인에 대해 편견과 차별없는 사회였던 조선시대의 국가관 때문에 수많은 인재들이 배출되었다.

 

척추장애인 허조 - 조선 초 우의정과 좌의정을 지낸 허조

간질장애인 권균 - 중종 때 우의정을 지낸 권균

지체장애인 심희수 - 광해군 때 좌의정을 지낸 심희수

청각장애인 이덕수 - 영조 때 대제학, 형조판서에 오른 이덕수

 

조선시대, 장애인은 단지 몸이 불편한 사람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세종 13년 (1431년), 박연이 아뢰기를 '옛날의 제왕은 모두 시각장애인에게 현송(거문고를 타며 시를 읆음)의 임무를 맡겼으니 이는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밖에도 조선이 이상적인 공동체사회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많다.


조선 후기에 정착된 '두레'는 농촌에서 농사일을 공동으로 하기 위하여 마을·부락 단위로 둔 조직이다. 두레는 어려움을 이웃과 함께 나누고 이겨내는 공동체 생활의 본보기였다. 절기마다 빚어먹는 과자와 떡, 술과 명절이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벌이는 각종 놀이와 굿판도 이웃끼리 나눔을 위한 것들이었다. 떡 한쪽이라도 나누어 먹고 소외된 이웃을 감싸주었다. 노동요와 타령, 육자배기, 판소리, 농악, 살풀이 등의 춤사위도 심신의 조화를 이루게 하며 맺힌 응어리를 풀어주는 공동체의 건강법이었다. 박정희 정부가 실시한 '새마을 운동'이 농촌에서 호응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전례가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4. 조선은 세계적인 인문 국가였다


조선시대 왕은 바로 곁에 사관을 두고 있었다. 공식근무 중 사관이 없이는 왕은 그 누구도 독대할 수 없다고 <경국대전>에 적혀 있다. 우리가 사극에서 살살 간신배 만나고 장희빈 살살 만나고 하는 것은 다 거짓말이다. 왕은 공식근무 중 사관이 없이는 누구도 만날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리고 정리한 문서를 목판활자로 찍고, 나중에는 금속활자본으로 만들어 후손들에게 정본을 남겨주려고 하였다. 이렇게 조선시대 500년 역사가 실록으로 남았다. 

왕에게 올릴 보고서를 정리한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도 일지를 500년 동안 적어 놓았다. 임진왜란 때 절반이 불타고 지금 288년 분량(2억 5,000만)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이것을 번역하려고 조사를 해 보니까 잘하면 앞으로 50년 후에 끝나고 못하면 80년 후에 끝난다고 한다. 

왕들이 쓰는 일기였던 일성록(日省錄)도 정조 때부터 나라가 망하는 1910년까지 150여년간 계속 쓰여졌다. 선대왕들이 어떻게 정치했는가를 지금 왕들이 알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를 고민해서 일기를 체계적, 조직적으로 썼다. 국방에 관한 사항, 경제에 관한 사항, 과거에 관한 사항, 교육에 관한 사항 이것을 전부 조목조목 나눠서 썼다. 

이렇게 각종 문서에 적힌 지진의 기록도 굉장히 구체적이다. '우물가의 버드나무 잎이 흔들렸다'(약진)에서부터,  '흙담에 금이 갔다, 흙담이 무너졌다, 돌담에 금이 갔다, 돌담이 무너졌다, 기왓장이 떨어졌다, 기와집이 무너졌다' 이렇게 다양한 표현법이 있었다. 현재 지진공학회에서는 이것을 가지고 리히터 규모로 계산을 해 내고 있다. 

조선의 세계적인 인문학적인 수준보다는 다소 떨어지는 감은 있지만, 조선의 과학기술 역시 서양을 제외한 세계 어떤 국가와 비교해도 뒤쳐지지 않는 수준이었다.

코페르니쿠스가 태양이 아니라 지구가 돈다고 지동설을 주장한 것이 1543년이다. 그리고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을 물리학적으로 증명한 것은 1632년에 갈릴레오가 한 일이다. 종교법정이 그를 풀어주면서 갈릴레오의 책은 출판금지를 시켰다. 결국 그 책이 인류사에 나온 것이 그로부터 100년 뒤인 1767년이다. 

 

한국에서는1400년대 이순지(李純之)라고 하는 세종시대의 학자가 '일식의 원리처럼 태양과 달 사이에 둥근 지구가 들어가고 그래서 지구의 그림자가 달에 생기는 것이 월식이다, 그러니까 지구는 둥글다.'고 말해 지동설을 선언했다. 이것이 1400년대이다. 서양의 1632년, 또는 1767년보다 한참 앞서 있다.

 

이순지는 <교식추보법(交食推步法)>이라는 책을 썼다. 일식, 월식을 미리 계산해 내는 방법을 다룬 책으로, 오늘날에도 남아 있다. 이순지가 1,444년에 만든 달력은 아라비아의 회회력의 체제를 몽땅 분석해 낸 뒤 만든 것인데, 일본학자가 쓴 세계천문학사에는 회회력을 가장 과학적으로 정교하게 분석한 책이 이순지의 <칠정산외편(七政算外篇)>이라고 나와 있다. 1,400년대 당시에 자기 지역에 맞는 달력을 계산할 수 있고 일식을 예측할 수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 세 나라밖에 없었다. 하나는 아라비아, 하나는 중국, 하나는 조선이다. 

 

조선에서는 국학의 명산과(수학과)를 졸업하면 공무원이 될 수 있었는데, 이것을 산관(算官)이라고 했다. 산관들은 세금 매길 때, 성 쌓을 때, 농지 다시 개량할 때 정밀한 수학적 지식을 이용했다. 이런 제도는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조선시대 때 수학교재로 썼던 책 중 하나인 <구장산술(九章算術)>을 보면, 2차 방정식과 미지수 다섯개(5원 바정식), 피타고라스의 정리(구고의 정리), 원주율(밀률), 삼각함수 문제 등 다양한 수학 문제들이 나온다. 우리는 벌써 삼국 시대 때부터 이 정도 수준의 수학 교육을 실시했던 것이다. 조선시대의 수학자 홍대용이 쓴 <담헌서(湛軒書)>에도 cos, sin, tan 등 삼각함수표가 그대로 나와 있다.  



5. 조선의 조공 시스템은 만백성을 위한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조선왕이 청나라 황제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삼전도의 굴욕을 이야기하면서 조선의 사대주의를 문제삼는다. 또 조선의 조공도 문제삼는다. 조공을 사대주의의 징표라 하며 수치스럽게 여기거나, 괜한 역사적 열등감에 빠져드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꽤 있다. 그러나 이는 일제 식민사관에 기반한 왜곡된 역사교육이 남겨준 인식상의 오류이다. 조공은 일방적인 상납이 아니라 물물교환 형식의 정부주도형 무역이다. 

무역형태의 주류는 조공무역이었다. 조공국에서 조공을 바치면 사대국에서는 사여(賜與)를 내린다. 사여품이 조공품보다 몇 배 많은 것이 원칙이었다. 조선은 조공을 1년에 3번 바치던 것을 1년에 4번 바칠 것을 요청했으나 명은 월남처럼 3년에 1번만 바치라고 간곡히 부탁하였다. 명나라 멸망의 주요원인의 하나는 과도한 사여품의 방출로 인한 국고의 탕진이었다. 중국은 책봉 관계(상명하복관계가 아닌, 의례적인 외교형태)에 있는 나라에 대해서만 조공무역을 허용하였다. 이와 반면에 일본은 극히 짧은 시기를 제외하고는 중국에 조공을 바치고 싶어도 바칠 수가 없었다. 조선은 사대주의보다는 돈을 벌기 위해 명나라와 청나라에게 조공을 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건축 양식은 중국이나 일본에 비하면 초라하고 보잘 것 없기가 그지없다. 당장 세계에 자랑할만한 문화유산이 빈약하다. 그러나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서 만들었던 시황제의 만리장성이나, 루이 14세의 베르사유 궁전에 비하면, 조선의 볼품없는 건축은 역설적으로 조선에서 백성들을 억압하는 정치인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끝으로, 조선의 조경 양식은 화려한 중국, 섬세한 일본에 비해 시각적인 임팩트는 떨어지지만, 자연의 순리를 거역하지 않고 동화되도록 만들어졌다. 정원을 조성할 때는 지형을 함부로 변형시키지 않았으며, 물의 이용에 있어서도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자연의 법칙을 이용했고 인공적인 힘을 가하여 하늘에 쏘는 분수를 만들지 않았다. 꽃이나 나무는 생성하는 생물이므로 관상수 따위를 심어 인공의 수형을 만드는 가지치기 작업을 피하였다. 정자나 누각을 배치 할 때도 자연의 조화를 먼저 생각하여 연못이나 강가, 산자락에 세워 원을 감상하는 장소로 삼았다. 무심한듯 자연스러운 조선의 조경양식은 한민족의 솔직하고 순수한 본래의 성격과 부합하는 것이었다.

출처: http://blog.naver.com/stratic007/220426988803



철학왕국과 조선선비 이야기



인문학 고전콘서트 - 정도전의 조선경국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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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홍익학당입니다. 홍익학당은 2011년부터 현재까지 유투브에 370여개의 전세계의 철학고전들을 무료 강의로 제공을 해 왔습니다. 사서오경, 노자, 장자, 불경, 성경, 서양철학까지 유명한 철학고전 들의 상당수를 제공하였는데, 이러다 보니 먼저 공부할 내용을 추려 주시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이 제시 되었습니다.

 

이를 위해서 [인문학 1주일 완전정복 시리즈]를 제공하려고 합니다. 홍익학당의 강의중에 각 분야의 뼈대가 되는 강의를 추려서 1주일 정도안에 학습하실 수 있게 제공해 드립니다. 이 강의를 들으시면 어떤 인문학/철학 고전을 읽는 것 보다 정확한 공부의 뼈대가 생기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주일만 투자하시면 인문학과 고전의 전문가가 되실 수 있습니다. 시간이 없으신 분들은 이 강의만 들으셔도 되고, 좀 더 공부하고 싶으신 분들은 학당의 다른 강의를 더 들어 보시거나 관련된 책을 보시면 도움이 되실 것 같습니다. 취업을 준비하시는 분들이나 고전/철학을 공부해 보고 싶은 직장인들께 도움이 되실 것 같습니다. 출퇴근 하면서 공부해 보십시오.

 

동양철학편, 불교철학편, 기독교철학편에 이어 4번째로 [인문학 1주일 완전정복 시리즈-한국철학편]을 제공해 드립니다. 아래 제시된 순서로 강의를 들어 보시면 한국철학의 핵심적인 뼈대와 가장 중요한 골자를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1일차. 천부경 

천부경은 한국철학의 핵심사상을 81자의 한자에 담은 경전입니다. 수리로 우주의 진리와 인간의 길에 대하여 체계적으로 설명합니다. 주역의 핵심이 되는 내용이 이 경전에 반영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 민족 철학의 핵심인 홍익인간 사상의 근원이 되는 경전으로 윤홍식 대표가 어디에서도 없는 강의로 쉽게 풀어 줍니다.

 

강의자료

한글천부경.pdf


 

 

 


2일차. 삼일신고 

삼일신고는 천부경의 핵심사상을 좀 더 쉽게 글로 풀어준 경전입니다. 두 경전은 상호보완적인 면을 가지고 있는데 A4지 한장 분량의 경전에 전세계 철학/종교의 핵심을 모두 담고 있는 자랑스러운 경전입니다.

 

이 경전 하나로 철학의 핵심과 수행법까지 정확하게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강의자료

한글삼일신고.pdf


 

 


 

3일차. 훈민정음의 창제 원리 

우리가 매일 쓰는 한글에는 어떤 철학이 담겨져 있을까요? 세종대왕께서는 동양철학의 핵심인 음양오행을 글자에 적용하여 세계 어디에도 없는 철학적인 글자를 만들어 내셨습니다.

 

윤홍식 대표의 쉽게 재미있는 강의로 어떤 원리로 한글이 만들어졌는지 알아 보십시오. 이런 문화민족이라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강의자료

훈민정음의 창제원리.pdf


 

 

 


4일차. 정도전의 『조선경국전』 

드라마 정도전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 정도전이 밑그림을 설계한 조선은 어떤 철학으로 건국이 된 나라일까요?

 

4대문(흥인지문, 돈의문, 숭례문, 숙정문)에 인의예지를 반영할 정도로 조선은 철학왕국을 지향 했었습니다. 

전세계 어디에 내 놓아도 자랑스러운 건국철학을 이 강의로 알아 보십시오.

 

강의자료

고전콘서트9- 정도전의 '조선경국전'.pdf


 

 

 


5일차. 이율곡의 『성학집요』 

장원급제를 9번이나 했다는 조선의 천재인 이율곡 선생님이 선조를 국가경영의 핵심적인 요체를 설명해 주기 위해 리더십 교과서를 저술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성학집요聖學輯要』입니다.

 

국가경영, 양심경영의 구체적인 방법론을 잘 담고 있는 책으로 리더들은 한번쯤 필독을 해 보아야 할 책입니다. 윤홍식 대표의 쉽고 재미있는 강의로 공부해 보십시오.

 

강의자료

이율곡의 성학집요.pdf


 

 


 

6일차. 정약용의 『탕론』 

조선말 실학자로 유명하신 정약용 선생님 500여편의 저술을 남기셨는데 그중에『탕론湯論』은 짧지만 정치의 핵심을 잘 설명한 명문입니다.

 

정치란 서비스라는 철학자 윤홍식 대표의 강의가 참 와 닿습니다. 서비스 업체를 잘 선택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한번 알아 보십시오.

 

강의자료

고전콘서트10- 정약용의 탕론.pdf

 

 

 

 


7일차. 동학 - 시천주(侍天呪) 

한국철학편 마지막으로 동학을 창시한 조선말 철학자 수운 최제우 선생님의 시천주를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짧은 글에 동학사상의 핵심이 담겨져 있습니다. 운동으로서의 동학이 아닌 철학으로서의 동학도 이해해 본다면 우리가 지금 이 땅에 서있는 이유도 잘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강의자료

동학의 시천주侍天呪 해설과 풀이.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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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이래 늘 혁명을 꿈꾸던 사람들이 있었다.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혁명은 그들삶의 전부였다. 내 젊은 시절에도 함께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았다. 혁명이라는 단어 속에는 ‘사회주의’에 대한 지향이 담겨있었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인가 혁명이란 말은 우리 곁에서 멀어졌다. 어느 때부터인가? 남한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사노맹이 대부분 검거되고 나서부터였을까? 아니면, 소련과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이 무너지면서부터였을까?


아무튼, 혁명은 우리에게 추억처럼 조금씩 멀어지고 대신 ‘제 3의 길’이니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니 하는 말들을 자주 듣게 되었다. ‘혁명’이란 단어가 멀어지고 난 후에 세상을 바꾸는 꿈을 꾸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향하는 사회를 구체적이고 명시적으로 표현하는데 어려움을 격기 시작했다. 


자본주의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 사람들은 ‘공동체’, ‘지속가능성’, ‘생명’, ‘평화’, ‘평등’ 같은 다소 추상적인 단어들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설명하지만, ‘혁명’을 말하던 그 때 만큼 명쾌하지도 역동적이지도 않다. 1980년 대 스테디셀러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쓴 박세길이 15년을 각고 한 끝에 ‘혁명’에 불을 지피는 새로운 저작 <추억의 혁명 미래의 혁명>을 세상에 내놨다.



이 책은 프랑스 대혁명, 산업혁명, 마르크스주의의 태동, 세계 1차대전과 러시아혁명, 중국혁명, 조선혁명, 베트남혁명, 68혁명, 쿠바혁명, 브라질 노동자당, 문화대혁명, 개혁개방, 소연방해체와 현실사회주의 붕괴, 베네수엘라의 새로운 도전, 멕시코 사파티스타 봉기, 반세계화 공동투쟁, 세계사회포럼, 쿠바농업혁명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 이후 일어난 크고 작은 혁명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렇지만, <추억의 혁명, 미래의 혁명>은 단순한 혁명사가 아니다. 지은이는 신자유주의 이후 새로운 세상에 대한 분명한 비전을 제시하기 위한, 그리고 민중이 주체로 우뚝 서서 역사를 새롭게 열어갈 수 있는 조건과 비전을 제시하기 위하여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그는 소련이 무너지던 즈음, 처음 ‘혁명’이라는 화두를 붙들고 씨름하기 시작한 이래 <추억의 혁명, 미래의 혁명>을 세상에 내 놓기까지 15년을 각고하였다고 한다.


지난 15년간, 1만매에 이르는 초고를 썼다가 마침내 2,600매에 이르는 원고로 갈무리하기까지 저자의 고심참담은 각별하였다고 한다. 


“세상의 변혁을 꿈꾼 사람 입장에서 지나온 역사를 되돌아본다는 것은 상당히 고통스런 광정일 수 있다. 그 속에는 분명하게도 쓰라린 패배의 장명이 가득 담겨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한때는 더없이 고결하게만 느껴졌던 혁명의 역사가 숱한 오만과 편견, 어리석음과 우유부단함을 가득품고 있음을 수긍하는 것 역시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저자 여는 글 중에서)


박세길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해온 근대 이후 혁명사를 “전 지구적 관점과 역사적 맥락 비추어”반추하면서 새로운 반전, 곧 미래혁명에 대한 전망을 세우고자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역사발전이란 과거의 부정을 통해 미래를 새롭게 창조해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과거의 답습으로는 결코 새로운 혁명에 성공할 수 없다고 한다. 따라서 마땅히 지난한 재창조의 과정이 있어야하며 신자유주의 이후에 올 새로운 세계를 ‘혁명’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위하여 노력하였다는 것이다. 


모든 혁명은 프랑스로 통한다. 


박세길은 670쪽에 이르는 대작인 <혁명의 추억, 미래의 혁명>을 쓰면서 그 첫 장에 프랑스 대혁명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프랑스 혁명을 일컬어 근대혁명의 ‘빅뱅’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음악의 아버지를 바하로 철학의 아버지를 탈레스로 혹은 근대 철학의 아버지를 데카르트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는 혁명 중의 혁명, 모든 혁명의 아버지 격인 혁명이 바로 ‘프랑스 혁명’이라고 한다. 


“특히 중요한 것은 봉건적 특권에 맞서 민주주의 원칙을 옹호하는 것으로써 시민혁명의 보편적 가치를 선명하게 창출했다는 점이다. 그럼으로써 프랑스 대혁명은 각종 특권의 확대로 민주주의가 위협받을 때마다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든지 끊임없이 부활할 수밖에 없는 영원한 현재진행형이 되었다.”(본문 중에서)


루이 16세의 군대소집에 맞선 국민회의의 민병대 조직과 자치위원회 구성에 뒤이은 1789년 7월 14일에 일어난 바스티유 점령은 영원히 지속될 것 같던 지배질서가 일순간에 허물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스티유 점령 이후 군중은 격렬한 형태로 지존질서와 지배세력을 공격하였으며, 농촌에서는 폭동이 확산되고 귀족습격, 봉건문서 폐기, 지방행정조직 파괴와 같은 봉건체제에 대한 저항이 다반사로 일어났다고 한다. 


프랑스 대혁명 시기에 나타난 가장 중요한 현상으로 폭발적으로 확산된 정치클럽이다. 1789년과 1795년 사아에 5500개 지역에 약 6000개의 정치 클럽이 존재하였으며, 구성원은 대략 50만에서 60만에 이르렀다고 한다. 프랑스혁명이 표류하면서 혁명전쟁을 통해 부상한 나폴레옹이 집권하게 되는데, 이것은 대혁명과 논리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전제군주제의 부활로 나타났다. 


지은이는 나폴레옹을 “군주형 혁명 지도자”의 첫 번째 사례로 평가하고 있다. 그는 뛰어난 군인이자 유능한 정치가였기 때문에 대혁명의 성과를 계승하고 발전하는 것이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받는 길임을 정확히 간파하였다는 것이다. 


“나폴레옹 법전 편찬을 통해 법 앞에서 만인의 평등, 양심과 종교 선택의 자유, 재산권 보장, 농노제 폐지 등 대혁명 과정에서 구호로 제기된 사항들은 법체계에 담았다. 그밖에도 중앙집권적 국가체제를 정비하고 법원, 학교 등에서 근대적 모델을 확립하는 등 적잖은 성과를 남겼다.”(본문 중에서)


그러나, 혁명의 적이었던 전제군주제는 혁명이 추구했던 참정권 확대를 극도로 제약하고 보통선거제를 후퇴시켰다고 한다.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노동자계급을 형성시키고 자본주의를 태동시키는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자본주의는 생산력 발전을 비약적으로 이끌어내어 수많은 위기와 모순에도 불구하고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그렇다면, 왜 산업혁명은 영국에서 시작되었을까?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원인은 전혀 다른 곳에 있다. 돈을 버는 것이 최고의 가치로 간주되고 마음만 먹으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사회적 환경이 바로 그것이다. 곧 부르주아적 질서와 문화의 확립이야말로 산업혁명을 야기한 결정적 요인이었다.”(본문 중에서) 


<혁명의 추억, 미래의 혁명>에서 지은이는 명예혁명 등 일련의 정치혁명을 통해 대륙 국가들에 비해 부르주아의 지배가 일찍 확립되었기 때문에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되는 토대 가 되었다는 것이다. 산업혁명이 후 영국 부르주아들의 이익 증대는 수백 퍼센트, 수천 퍼센트에 이르는 수직상승이 이루어졌으며, 가히 ‘혁명’이라 부를 만한 상황이 지속되었다고 한다. 


자본가들이 거둔 엄청난 이윤 축적은 노동자들에 대한 극단적이 착취에 의해서 이루어졌고, 이후 노동자들은 여러 혁명에서 계급투쟁의 주력을 담당하게 되었다고 한다.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대륙으로 넘어와 프랑스로 퍼져나갔고, 선거법에 대한 불만이 촉발시킨 1848년 혁명으로 분출되었다. 그러나 2월 혁명에서 정권을 잡은 부르주아는 노동자들 권력으로부터 소외시켰고, 그해 6월 새로운 봉기를 일으키지만 좌절로이어진다.


좌절된 듯이 보였던 노동자들의 혁명은 인류역사상 최초로 전시민이 참여하는 보통선거 실시로 이어지는 파리 코뮌으로 이어진다. 파리 코뮌은 선출된 의원이 입법과 집행을 동시에 책임지는 형태였으며, 철저한 인민주권 원칙에 입각한 직접민주주의 체제를 표방하였다고 한다. 가히 혁명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 혁명은 1968년 이른바 68혁명으로 이어진다. 대혁명 이후 프랑스는 항상 세계 혁명사의 중심에 있었다. 


혁명에 날개를 단 마르크스와 공산당선언 


한편, 지은이는 자본주의 이후 시작된 ‘혁명’에 날개를 달아준 것은 ‘마르크스’라고 평가한다. 엥겔스와 함께 쓴 공산당선언은 그 엄청난 파급효과를 감안한다면 그 자체를 역사의 일부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1848년 공산당선언이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 대략 150년의 세월은 바로 그 메시지를 실현하기 위해 다양한 실험이 일어났던 시기였다. 이는 다른 각도에서 보면 지난 150년의 역사는 공산당선언을 검증한시기라고도 볼 수 있다.”(본문 중에서) 


1848년 2월 25일 런던에서 공산당 선언이 발표된 후, 유럽은 급속히 혁명의 폭풍에 휩싸였다는 것이다. 프랑스, 남서독일, 바이에른, 베를린, 빈, 헝가리, 밀라노를 거쳐 불과 몇 주일 만에 유럽 10개국에서 혁명이 일어나고 바다 건너 남미로 번져갔다고 한다. 또한 마르크스가 쓴 ‘자본론’은 자본주의의 본원적 모순을 정확히 진단함으로써, 이후 일어난 모든 ‘혁명’에 이론적 기반을 제공하였다는 것이다.


무엇을 혁명의 성공으로 볼 것인가에 따라서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어쨌든 역사상 최초로 집권에 성공하는 혁명은 러시아 혁명이다. 1917년 10월 마침내 볼세비키가 러시아 혁명에 성공한 이후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독일 패망을 딛고 동유럽일대로 사회주의혁명이 확산되었다. 이후 동아시아에서는 중국과 베트남이 혁명에 성공한다. 


<혁명의 추억, 미래의 혁명>을 쓴 박세길은 앞서 일어난 혁명이 어떻게 새로운 혁명을 위한 디딤돌 역할을 하는지에 주목하여 혁명역사를 되돌아본다. 러시아혁명을 딛고 이루어지는 동아시아에서 중국과 조선 그리고 베트남 혁명, 프랑스 68혁명, 쿠바혁명과 남미혁명을 조망하면서, 그 한계와 파급효과를 냉철하게 분석한다.


실패로 보이는 혁명이, 초기부터 국가사회주의 병폐를 안고 출발한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이 다른 나라, 다른 혁명에서 어떻게 극복되는지를 살펴보는데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은이는 성공한 혁명에 면죄부를 주는 경우도 없고, 실패한 혁명에 굴레를 씌우는 일도 없다. 실패로 보이는 혁명에서도 희망을 발견하고, 미래의 혁명에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지 밝히는데 주력하였다.


또한 혁명에 반대편에 서 있는 자본주의가 어떻게 공고하게 지탱하기 위하여 자기변혁의 과정을 거치는지에 대해서도 고찰하고 있다. 세계자본주의의 중심이 된 미국자본주의의 성장, 케인즈주의와 국가자본주의, 복지국가와 사회민주주의의 태동 그리고 그 한계와 문제점에 대해서도 살펴보고 있다.  


아울러, 소련과 중국을 중심으로 대약진 운동과 문화대혁명, 개혁개방노선과 중화주의 그리고 페레스트로이카와 고르바초프실험의 실패, 중소분쟁과 소련의 고립, 정체의 늪에 빠진 소련체제 그리고 소연방의 해체에 이르는 혁명을 거꾸로 돌려놓은 일련의 사건들에 대하여도 역사적 검증을 시도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혁명은 ‘새로운’ 혁명이다. 


세상의 어떤 혁명도 앞서 이루어진 혁명을 그대로 따라서 성공한 경우는 없다. 모든 혁명은 다른 조건, 다른 상황에서 각기 다른 세력이 혁명의 주체가 되어서 새로운 혁명의 모델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에 특별히 주목하고 있다. 피억압 계층은 늘 혁명을 통해 민주의의를 확장하고 새로운 분배를 실현해나가고 인민이 중심이 되어 복지를 확장해나간다는 것이다. 


20세기에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대표적인 사건은 러시아 혁명과 소련붕괴라고 한다. 러시아 혁명은 인간의 힘으로 기존의 질서를 타파하고 새로운 질서를 확립할 수 있다는 확신을 안겨주었지만 소련붕괴는 정반대의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소련 붕괴는 현존하는 자본주의 질서에 대한 도전과 새로운 실험을 지극히 허망한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그에 따라 사회혁명을 꿈꾸던 사람들은 극심한 혼돈과 지적 공황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소련 붕괴와 함께 전세계적 차원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의 마지노선이 함께 붕괴된 것이다.”(본문 중에서)


결국 소련붕괴는 20세기에 자본주의의 승리를 확정짓는 사건이 되었고, 자본주의는 아무런 제약없이 질주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나아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670쪽이나 되는 두꺼운 책 <혁명의 추억, 미래의 혁명> 중에서 300여 쪽은 지나간 ‘혁명’을 반추하는 내용이다.


지은이는 책의 절반 이상을 할애하여 소련붕괴이후 승승장구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실체를 규명하고, 다시 사람이 살만한 세상을 꿈꾸는 새로운 사례로 쿠바와 베네수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새로운 도전을 살펴본다. 또한 지식정보사회에서 노동계급이 새로운 선진계급으로 등장하는 과정과 기업혁명을 통해서 주주독재에서 민주적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과 당위성을 짚어본다.


박세길은 기업혁명, 자본혁명, 시장혁명을 통해서 생태주의, 문화주의, 여성주의, 평화주의가 실현되는 사회, 세상의 중심축이 자본에서 사람으로 이동하는 여러 가지 징후들을 발견하고 있다. 또한 세계 곳곳에서 실험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기업혁명, 자본혁명, 시장혁명의 사례들을 낱낱이 찾아내어 소개하고 있다. 


지은이는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새로운 혁명을 이루어가는 방안으로 주주(자본)의 절대권력을 타파해야 하며, 궁극적으로 부르주아 지배체제의 해체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새로운 시대 사회혁명은 과거와 같은 소수 엘리트가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연대에 기초한 인민의 자주적 해결 능력을 고양시킴으로써” 이루어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사회연대가 중심을 이루고 국가는 지원과 조정 임무를 수행하는 새로운 형태의 국가로서 ‘사회연대국가’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다.  


기업, 자본, 시장 혁명을 통해 ‘사회연대국가’로 


아울러 소수 엘리트에 권력이 집중되는 대의민주제의 한계를 뛰어넘어 사회구성원의 연대와 협력을 통한 자치실현이 국가의 강제기능을 대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인민에 의한 권력통제가 가능한 조건으로 전자민주주의 도입, 국민발안제, 국민투표제, 국민소환제 제도화, 그리고 의원숫자를 대폭 늘리는 의회기구 개혁과 의원에 대한 특권폐지는 기본적인 전제조건에 해당된다고 한다. 아울러 지역 공동체에 기초한 복지모델과 자치권력을 강화하는 현존하는 제도로서 스위스 모델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스위스는 최고 7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수백에서 수천 명 규모의 3072개의 공동체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공동체는 직접민주주의에 입각하여 운영되며, 스위스 연방의 실질적인 최고 주권기관으로서 지위를 갖고 있다. 연방정부는 이러한 공동체의 연대를 보장하는 공동사무국의 형태를 띨 뿐이다. 말하자면 스위스는 현존하는 코뮌 국가라고 할 수 있다.”(본문 중에서)


그리하여 지은이는 생태, 문화, 여성, 평화와 같은 대안의제에 기반을 둔 사회권력과 지역공동체에 기반을 둔 자치권력이 국가권력을 형성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사회권력과 자치권력은 사회연대를 기반으로 직접 행사하는 권력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일치한다는 것이다. 


<혁명의 추억, 미래의 혁명>을 쓴 박세길은 세상의 변혁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사회연대국가’라는 새로운 길을 가는 지도를 내놨다. 이 책이 가진 탁월함은 신자유주의가 가진 문제점과 모순을 나열하는데서 크게 한 걸음을 내디뎠다는데 있다. 소련이 붕괴한 후 누구도 딱 부러지게 이야기하지 못한 신자유주의 이후 새로운 사회에 대한 구체적인 밑그림을 내놨다.그는 자신이 내놓은 밑그림이 “다양한 토론을 촉발시키고 사고의 혁신을 자극하기를 기대”한다고 한다.


짧지 않은 서평이지만 내 글을 통해<추억의 혁명, 미래의 혁명>을 온전히 소개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사회연대국가로 나아가는 기업혁명, 사회혁명, 시장혁명에 대한 구체적 방안과 사례는 찾아 읽는 것은 독자들에게 남겨진 몫이다. 


신자유주의를 넘어 더 많은 사람들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그런 세상을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다. 단언하건데, 소련붕괴 이후 나온 그 어떤 책보다 가장 분명하게 다시 ‘혁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책이다. 박세길의 해박한 지식과 사회변혁을 향한 뚜렷한 지향이 담긴 책이다.



목차


여는 글 혁명, 추억의 반추 그리고 미래의 전망 


PART 01 혁명의 열정, 역사를 바꾸다


CHAPTER 01 근대혁명, 계급투쟁으로 뿌리를 내리다 

근대혁명의 빅뱅, 프랑스 대혁명

산업혁명과 노동자계급의 형성 

혁명에 날개를 달아준 마르크스주의 


CHAPTER 02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 시련을 먹고 자라다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 

극한을 넘나드는 혁명의 물결 

스탈린 시대의 빛과 그림자 


CHAPTER 03 동아시아 혁명, 새로운 꽃을 피우다 

중국혁명, 그 기나긴 장정 

파란과 곡절을 딛고 선 조선혁명 

작은 거인의 분투, 베트남혁명 


PART 02 역사는 한계를 딛고 전진한다 


CHAPTER 04 자본주의 세계의 3중주, 기묘한 역설을 말하다 

미국, 자본주의 세계의 중앙정부 

케인스, 자본주의의 도약대 마련 

복지국가와 사회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도전, 68혁명 


CHAPTER 05 제3세계, 새로운 지평을 열다

냉전의 최전선 한반도, 그 격정의 드라마

혁명의 활화산 

미국의 개입 

민중의 반격


CHAPTER 06 중국의 변신, 새로운 전범을 만들다 

역사를 거꾸로 돌린 대약진운동

극단을 향해 치달은 문화대혁명

개혁개방의 길

표면화되는 중화주의 


CHAPTER 07 소련의 붕괴, 한쪽 날개가 사라지다 

중소분쟁과 소련의 고립 

정체의 늪에 빠진 소련 체제 

고르바초프 실험의 실패 

기묘한 소연방의 해체 


PART 03 신자유주의 세계화, 바닥을 드러내다


CHAPTER 08 자본주의, 위기에서 탈출하다

장기 불황과 신자유주의의 부상 

초국적자본의 세계 정복

주주자본주의의 태동 


CHAPTER 09 포획당한 한국 경제, 허울만 남다 

성장의 원동력과 시스템 사이의 모순 

새로운 점령군

저성장의 구조화 


CHAPTER 10 신경제 10년 천하, 무덤이 가까워지다 

퇴로를 상실한 신경제 

무너지는 달러 제국 

일극체제에서 다극체제로 

저항의 세계화


PART 04 대반전, 이제 다시 ‘사람’이다


CHAPTER 11 전환기, 창조적 파괴의 현장들

생사의 갈림길에 선 사회민주주의

베네수엘라의 대담한 도전 

쿠바, 농업에서 출구를 찾다 

새로운 출발선에 선 북한 


CHAPTER 12 

세상의 중심축 이동, ‘자본’에서 ‘사람’으로 

노동혁명, 기계의 노예에서 생산의 주인으로

기업혁명, 주주독재에서 민주적 공동체로 

자본혁명, 착취의 도구에서 사회혁명의 동력으로 

시장혁명, 탐욕의 기지에서 사회화의 무대로 


CHAPTER 13 미래가치의 구현, 관점의 혁명으로부터 

생태주의, 생존의 조건 

문화주의, 행복의 조건

여성주의, 미래가치의 모태 

평화주의, 공존의 조건 


CHAPTER 14 사회연대국가, 주권재민의 실현 

‘창조적 다수’의 소통과 연대 

인민에 의한 권력 통제 

공동체에 기초한 복지 모델과 자치권력 

생존 철학으로서의 공유와 협력

[출처: http://www.ymca.pe.kr/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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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칼로레아 Baccalaureat - 프랑스 고등학교 졸업 자격시험 문제 


1장 인간(Human) 

질문1>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행복이 가능한가? 

질문2> 꿈은 필요한가? 

질문3>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우리는 자유로운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질문4> 지금의 나는 내 과거의 총합인가? 

질문5> 관용의 정신에도 비관용이 내포되어 있는가? 

질문6> 사랑이 의무일 수 있는가? 

질문7> 행복은 단지 한순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인가? 

질문8> 타인을 존경한다는 것은 일체의 열정을 배제한다는 것을 뜻하는가? 

질문9> 죽음은 인간에게서 일체의 존재 의미를 박탈해 가는가? 

질문10>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수 있나? 

질문11> 행복은 인간에게 도달 불가능한 것인가? 



2장 인문학(Humanities) 

질문1> 우리가 하고 있는 말에는 우리 자신이 의식하고있는 것만이 담기는가? 

질문2> 철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질문3> 철학자는 과학자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 

질문4> 역사가는 객관적일 수 있는가? 

질문5> 역사학자가 기억력만 의존해도 좋은가? 

질문6> 역사는 인간에게 오는 것인가 아니면 인간에 의해 오는 것인가? 

질문7> 감각을 믿을 수 있는가? 

질문8> 재화만이 교환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질문9> 인문학은 인간을 예견 가능한 존재로 파악하는가? 

질문10> 인류가 한 가지 언어만을 말하는 것은 바람직한가? 



3장 예술(Arts) 

질문1> 예술 작품은 반드시 아름다운가? 

질문2> 예술없이 아름다움에 대하여 말할 수 있는가? 

질문3> 예술 작품의 복재는 그 작품에 해를 끼치는 일인가? 

질문4> 예술 작품은 모두 인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가? 

질문5> 예술이 인간과 현실과의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가? 



4장 과학(Sciences) 

질문1> 생물학적 지식은 일체의 유기체를 기계로만 여기기를 요구하는가? 

질문2> 우리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만을 진리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질문3> 계산, 그것은 사유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 

질문4> 무의식에 대한 과학은 가능한가? 

질문5> 오류는 진리를 발견하는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질문6> 이론의 가치는 실제적 효용가치에 따라 가늠되는가? 

질문7> 과학의 용도는 어디에 있는가? 

질문8> 현실이 수학적 법칙에 따른다고 할 수 있는가? 

질문9> 기술이 인간조건을 바꿀 수 있는가? 

질문10> 지식은 종교적인 것이든 비종교적인 것이든 일체의 믿음을 배제하는가? 

질문11> 자연을 모델로 삼는 것이 어느 분야에서 가장 적합한가? 



5장 정치와 권리(Politics&Rights) 

질문1> 권리를 수호한다는 것과 이익을 옹호한다는 것은 같은 뜻인가? 

질문2> 자유는 주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싸워서 획득해야 하는 것인가? 

질문3> 법에 복종하지 않는 행동도 이성적인 행동일 수 있을까? 

질문4> 여론이 정권을 이끌 수 있는가? 

질문5> 의무를 다하지 않고도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가? 

질문6> 노동은 욕구 충족의 수단에 불구한가? 

질문7> 정의의 요구와 자유의 요구는 구별될 수 있는가? 

질문8> 노동은 도덕적 가치를 지니는가? 

질문9> 자유를 두려워해야 하나? 

질문10> 유토피아는 한낱 꿈일 뿐인가? 

질문11> 국가는 개인의 적인가? 

질문12> 어디에서 정신의 자유를 알아차릴 수 있나? 

질문13> 권력 남용은 불가피한 것인가? 

질문14> 다름은 곧 불평등을 의미하는 것인가? 

질문15> 노동은 종속적일 따름인가? 

질문16> 평화와 불의가 함께 갈 수 있나? 



6장 윤리(Ethics) 

질문1> 도덕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반드시 자신의 욕망과 싸운다는 것을 뜻하는가? 

질문2> 우리는 좋다고 하는 것만을 바라는가? 

질문3> 의무를 다하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질문4> 무엇을 비인간적인 행위라고 하는가? 

질문5> 일시적이고 순간적인 것에도 가치가 존재하는가? 

질문6> 무엇이 내 안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할 지를 말해 주는가? 

질문7> 우리는 정념을 찬양할 수 있는가? 

질문8> 종교적 믿음을 가지는 것은 이성을 포기한다는 것을 뜻하는가? 

질문9> 정열은 우리의 의무 이행을 방해하는가? 

질문10> 진실에 저항할 수 있는가? 

질문11> 진리가 우리 마음을 불편하게 할 때 진리 대신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환상을 좇아도 좋은가? 



프랑스 고졸 자격시험인 바깔로레아는 매년 6월 이틀에 걸쳐 치뤄집니다. 


바깔로레아의 철학 시험 문제는 4시간동안 에세이 두 편을 쓰고,철학, 문학 등에서 뽑은 인용구의 해설도 해야 한다는 군요. 


- 출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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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칼로레아(프랑스어: Baccalaureat)는 프랑스 대입 자격시험이다. 바칼로레아를 합격한 학생은 대학입학자격이 주어지며 절대평가제이다. 대한민국의 수학능력시험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흔히 줄여서 bac이라고 부른다. 논술 및 철학 시험을 필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나폴레옹 시대인 1808년에 시작되어 약 20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철학-논술 시험문제는 학생 뿐만 아니라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대학 교수가 아닌 현직 교사들이 출제를 한다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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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윌버 Ken Wilber의 이 책은 암투병의 아내와 함께 했던 헌신적인 노력의 과정과 감동적인 사랑에 대한 글이자 심리치료 및 영성치유에 대한 보고서이기도 하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용기 Grace and Grit                    

발표자: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조옥경 교수

 

• 켄윌버에 대한 간단한 소개

자연과학을 전공하던 윌버는 어느 날 우연히 노자의 도덕경을 읽고 큰 충격을 받으면서 동양사상에 심취하게 된다. 그 후 그는 동서양의 정신문화에 대한 수많은 서적을 섭렵하면서 이들을 통합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가운데 개인적인 수행을 꾸준히 지어나갔다. 그는 동서양의 심리학을 통합한 사람으로 확고한 위치를 굳히고 있으며, 현재 가장 널리 읽히고 가장 영향력 있는 미국 철학자의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다. 또 그는 진정한 세계철학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이 책에서 윌버는 자신은 판디트(학자)이지 구루(깨달은 영적인 스승)는 아니라고 하면서 사람들이 자신을 구루로 오인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그는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으며 은둔지에서 명상과 독서, 저술에 집중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 책에서 독일의 한 편집자가 왜 인터뷰에 응하지 않느냐고 질문하자 인터뷰를 하면 마음이 산란해지기 때문이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집필이라고 간단하게 대답하고 있다. 


이 책은 윌버가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 트레야와 보낸 암과의 눈물겨운 투병과정을 그리고 있다. 윌버는 유방암에 걸린 아내를 5년 동안 극진히 보살폈는데 그 과정에서 윌버가 보인 환자를 돌보는 성실한 노력, 아내를 향한 식지 않는 사랑, 인간적인 따뜻함과 섬세함이 이 책에 감동적이고도 생동감 있게 그려져 있다. 또 트레야의 죽음을 통해 우아함과 용기, 존재와 행동, 열정과 평정심이라는 존재의 양극성이 어떻게 두 부부의 삶 속에서 조화롭게 통합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트레야는 윌버의 영적 성장의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사람이다. 그는 인간의식의 발달과정에 대해 이론적으로는 거의 완벽한 체계를 갖추고 있었지만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데는 초보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 그에게 있어서 트레야와의 만남,  트레야의 투병과정, 트레야의 죽음이라는 개인적인 시련은 이를 삶 속에서 실천하는 기회를 마련하였고 이를 통해 윌버의 경험과 사고의 지평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암을 치료하려고 두 부부가 성실하고 진지하게 노력하는 과정은 어떻게 통합적인 시각을 가지고 병을 다루는지, 어떻게 우아함을 유지한 채 용기를 잃지 않고 병마와 싸우는지, 어떻게 병을 미워하지 않고 삶의 한 모습으로 감싸 안는지, 어떻게 죽음이 삶의 끝이 아니라 삶의 완성으로 인도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윌버는 아내의 죽음을 통해 육체적 죽음은 에고의 마지막 소멸이며 영혼을 영원히 해방시키는 관문임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목격하였다. 또 아내를 전심으로 간호하면서 진정한 수행은 자신을 없애고 타인에게 오롯이 헌신하는 가운데 완성된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였다.



1. 잠시의 포옹, 잠시의 꿈  

윌버와 트레야는 트랜스퍼스널 심리학의 대표적인 인물인 로저 월쉬와 프란시스 본의 집에서 1983년 여름에 만났다. 트레야가 윌버를 처음 만났을 때의 인상은 살아있는 윌버의 생생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때까지 나는 1m 93cm의 키에 머나 먼 혹성에서 온 것 같은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이며 초월론자와 결혼하게 되리라고는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 그는 아주 특이한 겉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매우 남다른 기질을 지닌 사람이었다. 마음은 또 어찌나 따사로운지! 게다가 빛나는 재능도 갖추고 있었다. 과거에 내가 사귀었던 다른 남자들의 경우, 마음이 따뜻한 사람에게는 재능이 없었고 재능이 넘치는 사람에게는 따뜻한 마음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항상 그 두 가지를 모두 갖춘 남자를 찾았다. (pp. 23) 


첫 만남에서 서로가 가볍게 포옹을 했을 때 두 사람은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된다. 

“그녀를 감싸 안았을 때, 나는 우리 두 사람 사이의 분리감이나 거리감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우유와 물이 섞여 혼연일체가 되는 듯 말이다. 과거 여러 생 동안 테리와 함께 살았던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pp. 29) 


그 날 밤 두 사람은 거의 똑같은 시간에 쿤달리니 Kundalini라고 불리는 영적인 에너지가 깨어나는 것을 경험하는데 이런 경험은 인생의 중요한 사건이나 만남이 있을 때 흔히 일어난다. 보통 사람은 잘 경험하지 못하지만 영혼이 순수하거나 이미 오랫동안 영적인 수행을 해 온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현상이다. 그 때 트레야는 나름대로 이런저런 수행을 하고 있었고 윌버는 15년 동안 명상을 해오고 있었다. 그 날 이후 그들은 거의 서로 떨어지지 않고 같이 지내게 된다. 


“그 날 후로 우리는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잠시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상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서로 알고 있었다. 우리는 거의 함께 있었다. 잠시라도 헤어져 있는 것을 못 견뎌했다.”(pp. 33) 

처음 만난 지 열흘이 지난 후에 윌버는 테리에게 청혼을 했고 테리는 청혼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테리는 “만약 당신이 청혼하지 않았다면 내가 당신에게 했을 거예요.”(pp. 40)라고 윌버에게 말한다 

     


2. 고통을 안고 찾아든 행복

그 후 넉 달이 지나 그들은 결혼식을 올린다. 이 때 윌버는 아인슈타인, 슈뢰딩거, 하이젠베르크와 같은 현대물리학의 위대한 선구자들에 관한 책 “양자적 물음 Quantum Question"을 집필하고 있었다. 그는 현대물리학의 성과와 신비주의를 비교하면서 왜 위대한 물리학자들은 신비주의자인지를 탐구하면서 그들은 물리학을 넘어선 메타물리학으로서의 신비주의를 원했음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현대물리학과 신비주의를 혼동해서는 안 되는데 이 둘은 존재의 다른 수준을 다루고 있을 뿐 신비주의를 물리학으로 환원시켜도 안 되며, 물리학을 신비주의로 격상시켜서도 안 된다는 점을 경고하였다. 윌버는 다음과 같은 표현으로 이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물리학으로 신비주의를 증명한다고 말하는 것은 마치 개의 꼬리로 개를 증명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pp. 49) 


결혼식전 건강진단을 받기위해 병원에 간 트레야는 가슴에 응어리를 발견하였고, 안심시키는 의사의 말에도 불구하고 결혼한 지 10일 후에 그 응어리가 암으로 판명되어 두 사람은 행복의 절정에서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게 된다. 암 진단을 받은 날 트레야는 다음과 같이 일기에 쓰고 있다. 

“밤이 깊었다. 켄이 차를 만들기 위해 부엌으로 갔다. 세상은 고요하게 잠들어 있었다. 눈물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절망의 눈물이었다. 이것은 현실이고 나에게 일어난 일이다. 켄이 부엌에서 돌아와 나를 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 옆에 앉더니 두 팔로 나를 꼭 안아주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어둠을 응시했다.” (pp. 71) 

 


3장. 의미에 속박되어 

아내의 암에 직면한 윌버는 병의 의미에 대해 사색한다. 그는 질환(illness)과 병(sickness)를 구분하여 질환은 가치중립적인 것으로써 좋거나 나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질환이 병으로 되면 사회적인 가치가 부과되어 두려움, 희망, 신화, 이야기, 가치, 그리고 특정 사회가 질환에 부여하는 의미에 부딪히게 된다. 이때 환자는 의학적 질환 뿐 아니라 문화적. 사회적 의미가 부여된 병을 다루어야 하는 이중의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왜 질병에 걸렸는가, 하필 왜 나인가? 이 일이 내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가? 내가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가? 어떻게 이것이 생겼는가? 등등 자신의 질환에 의미를 부여하는데 그 의미를 찾기 위해서 환자는 사회에 의지하게 된다. 그러므로 어떤 질병에 걸릴 때 마다 우리는 사회가 만들어놓은 수많은 의미와 판정을 통해서 자신들의 병을 이해하게 되는데 사회적 의미를 지닌 병은 지나치게 자기 완성적이며 독선적인 모습을 띤다. “왜 하필 나인가? 왜 나는 병에 걸렸나?” “당신이 나쁜 짓을 했기 때문이야.” “당신은 내가 나쁜 짓을 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지?” “당신이 병에 걸렸기 때문이지.”라는 식이다. 


이렇게 질환과 병으로 구분한 윌버는 다문화적 시각을 갖고 각종 문화나 사회가 질병에 어떤 의미를 부여했는지를 탐색하였다. 

1) 기독교 원리주의자, 2) 뉴에이지 3) 서양의학 4) 업(까르마) 5) 심리학 6) 그노시스파 7) 실존주의 8) 전체론적 의학 9) 마술 10) 불교 11) 과학 (p 83-85) 


윌버는 인간에게는 육체적, 감정적, 정신적, 실존적, 영적 차원이 있다고 강조하면서 질병을 이해하고 치료할 때 이들 각 차원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암을 예로 들면 

1) 육체적 차원 : 식사, 환경유해물질, 방사능, 흡연, 유전적 요인 

2) 감정적 용인 : 우울증, 엄격한 자기억제, 극도의 독립심 

3) 정신적 원인 : 자기비판, 비관적 세계관, 우울증 

4) 실존적 원인 : 죽음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 

5) 영적인 원인 : 내면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 


윌버부부는 암의 의미를 다루는 방법을 바꿀 필요가 있음을 느끼면서 “암과 즐겁게 지내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4장. 균형의 문제 

윌버와 트레야는 정통의학과 대체의학(p82)에 관한 정보와 서적들을 모두 섭렵해서 의지할 수 있는 유용한 사실들을 고르기 시작했다. 대체의학과 전체론적 의학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두 사람은 먼저 정통적인 서양의학을 치료를 받은 후에 전체론적 치료를 보조방법으로 이용하면서 두 치료법을 적절하게 조화시켜나갈 결심을 한다. 


질병의 심리적 요인을 다루어 가던 두 사람은 ‘존재(Being)'와 ’행동(Doing)"의 대립이라는 고전적인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 존재(여성성) : 현 상태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사람을 능력으로 판단하지 않고  그대로 수용하기, 관계성, 포괄성, 포용성, 공감, 배려의 가치 

• 행동(남성성) : 생산하고, 만들고, 성취하는 것, 공격적, 경쟁적, 계층적. 미래지향적, 규칙과 판단에 의존. 현 상태에 변화를 주어 ‘더 나은’ 것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하기. 


여성성과 남성성의 대립이라는 이슈에 직면한 트레야는 자신이 행동/남성성을 과대평가해온 나머지 자신의 여성적인 존재의 부분을 소홀히 해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녀는 자신의 원래 이름인 테리가 남성적인 인상을 주는 이름이라는 사실을 인식한 후에 자신의 여성성을 오롯이 수용하면서 트레야로 자신의 이름을 바꾸게 된다.


 • 디먼(daemon)과 데몬(demon)의 문제 

1) 디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내적인 신을 말하며 한 개인이 그를 잘 따라서 행동하면 그 사람의 수호령이 되어, 그가 하고 있는 일에 영감을 불어넣어 주지만,  거기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데몬이 되어버려, 성스러운 에너지와 재능이 자기 파괴적인 모습으로 변화한다. 지옥의 불꽃은 거부된 신의 사랑이며, 악마는 천사가 타락한 모습이다. 윌버는 자신의 디먼을 이미 찾았음을 트레야에게 고백한다. 

“내 나이 23살, 내 집을 찾아와 나 자신을 발견했고, 내 목적을 찾았으며, 나의 신을 찾았다. 그 후 나는 이 사실을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pp. 100) 


트레야는 자신의 디먼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는 사실로 고통을 받았으며 암 선고를 받은 후 줄곧 이를 찾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간다. 그녀는 “기적수업”에서 강조하는 ‘신이란 내 용서 안에 있는 사랑’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용서와 사랑을 통해 자신과 타인을 수용할 수 있는 태도를 기른다. 이런 트레야의 태도를 윌버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행동과 존재, 저항하는 것과 열어놓은 것, 싸우는 것과 항복하는 것, 원하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 그들 간의 접점을 찾아내는 것은 암에 직면한 테리의 중심과제가 되었다.”(pp. 105) 


이런 문제는 다음의 기도문(미국을 대표하는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 Reinhold Niebuhr의 기도문?)에서 잘 드러나 있다 

신이여,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평온과 바꿔야 할 것을 바꾸는 용기와 그리고 이 두 가지의 차이를 알 수 있는 지혜를 주십시오


그 당시 윌버는 “의식의 변용 Transformation of consciousness"를 집필했고 뉴욕타임즈는 ‘마침내 가장 중요하고 학술적인 동서양 심리학의 통합적 결정판이 나왔다”며 호평을 하였다.    

 


5. 내적인 우주 

• 명상이란 무엇인가? 

“명상은 긴장을 풀기 위한 방법이라고 한다. 또 깨어있음(awareness)을 훈련하고 그것을 강화하는 방법, 자신에게 의식을 집중해 초점을 맞추는 방법, 언어적 사유를 멈추고 몸과 마음을 쉬게 하는 방법, 중추신경을 가라앉히는 방법, 스트레스를 없애고 자부심을 기르며 불안감을 줄이고 우울함을 완화하는 방법이라도 한다. 

이 모든 말이 사실이다. ... 그러나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명상자체는 영적인 훈련이라는 점이다....  영혼의 내면을 향해, 궁극적으로는 최고의 신성과 합일되는 길을 찾는 방법이다... 명상은 영적인 것이지 종교적인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 명상은 영적이고, 기도는 종교적이다.” (pp. 122-123)


• 영원의 철학에 대한 트레야와 윌버의 대화 

영원의 철학 : 세계의 위대한 영적 스승, 철학자, 사색가, 과학자들이 채택한 세계관으로 동서고금을 막론한 모든 문화에서 나타나기 때문에 보편적이라고 할 수 있다. 

(1) 영적인 것은 존재한다 (2) 영적인 존재는 내면에서 발견된다 (3)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내면에 있는 영적인 존재를 이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죄와 분리와 이원론의 세계, 즉 타락과 무지의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4) 죄와 환상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방법, 해탈의 길이 존재한다. (5) 그 길을 끝까지 간다면 윤회, 혹은 깨달음, 내면의 영적 존재를 체험할 수 있고 종국엔 최상의 자유를 성취하게 된다. (6) 그것은 괴로움과 죄의 종식을 의미하는 것이다 (7) 따라서 살아 있는 모든 존재에 대해 자비심을 가지고 사회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pp. 127) 


윌버는 영원의 철학의 핵심은 “작은 자아”를 넘어서 “큰 자아”로 나아가는 데 있다고 하면서 이렇게 나아가는 방법으로 다음의 두 가지를 지적하고 있다. 

1. 자아를 무한히 확장해 나가는 방법 --. 지식(지혜)의 길, 자력의 길 

오로지 자신의 알아차림이나 집중력에 의지해서 자아를 투과한 보다 광대한 본성에 이르는 길 : 방법 - 위빠사나, 즈나나 요가 

‘나는 신이고, 보편적인 진리다’ 

2. 자아를 무로 축소해나가는 방법 -- 헌신(신앙)의 길, 타력의 길 

스승의 힘이나 신을 의지해 완전히 자신을 내맡기는 길 : 예 :기독교, 박티요가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신이여, 당신이 전부입니다’ 

(참고 : 트레야의 어린 시절의 경험. 이것은 트레야의 영적인 수준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pp. 141-142) 

 


6장. 심신탈락 

트레야는 10일 동안의 고엔카 위빠사나 수련을 다녀와서 알아차림의 의미를 깊이 체험한다. 

“고엔카는 말한다. 당신은 감각을 발명할 수 없다. 감각을 선택할 수 없다. 감각을 창조할 수 없다. 당신은 다만 지켜본다. 무상의 진리를 알았기 때문에 붙들지 않고 움직이는 것이다.”(pp. 150) 


이 수련을 하면서 트레야는 생각이나 감각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만으로 마음과 몸이 사라지는 체험을 한다. 윌버도 유사한 체험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도겐선사는 스승이 귓전에 ”심신탈락!“이라고 속삭였을 때 깨달았지. 당신이 말한 것처럼 분리된 심신을 자신이라고 여기는 그 생각이 떨어져나간 거요. 그것과 아주 비슷해요. 나도 그런 체험을 몇 번 했었고, 그 체험들은 아주 현실적이었소. 거기에 비하면 자아는 정말 실제적이지 않지.” (pp. 151쪽) 


심신탈락의 경험을 통해 진아 혹은 지켜보는 자를 일별할 수 있는데, 생각이나 이미지는 볼 수 있어도 이것들이 궁극적인 지켜보는 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통찰과 경험을 통해 자아는 하나의 대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고 이로써 개인적 자아에서 진정한 주체로, 진정한 자아, 진아인 비개인적인 지켜보는 자로 바뀌기 시작한다. 

“육체는 물질을 알아차리고, 마음은 육체를 알아차리지요. 영혼은 마음을 알아차리고, 그리고 영성은 영혼을 알아차린다오. 보다 높은 단계에 오를수록 알아차림은 더 많아질 수 밖에. 즉 보다 크고 넓은 정체성을 발견하게 되며 이러한 과정은 가장 높은 정체성과 보편적 알아차림, 이른바 ‘우주의식’에 이를 때까지 계속된다오.”(pp. 158) 

 


7장. 갑자기 뒤틀린 내 인생 

트레야와 윌버의 성실하고 다방면에 걸친 노력에도 불구하고 트레야의 암이 재발되고 4기의 악성 암세포임이 밝혀진다. 

“나는 더 이상 과거에 암환자였던 사람이 아니다. 이제는 암이 재발한 사람이 된 것이다. 따라서 나는 켄과 함께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집단, 다른 동료, 다른 통계, 다른 미래에 놓이게 되었다. 내 인생은 갑자기 뒤틀려버렸다.” (pp. 162) 


재발로 인한 유방절제 수술 후에 윌버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왠지 모르지만, 테리에게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우는 것이 부끄럽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만은 그 누구에게도 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 어느 때 보다 힘이 필요한 이 때, 마음이 약해지는 것이 무서웠던 것이다. 나는 빈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울었다... 테리가 불쌍하기 때문에, 안됐다는 생각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용기가 그만큼 자랑스럽기 때문에 나오는 눈물이었다. 그녀는 낙담하지 않고, 다만 당당하게 전진해 나갈 뿐이다. 나는 인간의 존엄성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리는 냉혹한 상황을 이겨내려는 그녀의 용기 때문에 눈물을 흘렸다.” (pp. 170) 


• 윌버와 트레야가 실행에 옮긴 대체의학과 전체론적 요법 : 175쪽 

유방을 절제한 후 온갖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트레야의 암은 가장 질나쁜 전이성 암으로 악화되었으며 그 치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을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된다. 

 


8장. 나는 누구인가? 

항암치료제인 레글란을 투여 받은 후의 강력한 히스타민 반응으로 트레야는 공황상태와 자살충동에 시달리게 된다. 이 때 두 부부는 “무경계 No Boundary"의 “보는 자” 연습을 집중적으로 하게 된다. (참고 pp. 189-190) 


“당신 안의 자신이라는 깊은 내적 감각은 당신의 기억도 생각도 아니고, 당신의 마음도 몸도 아니며, 당신의 환경이나 감정, 갈들이나 감각도 아니다. 이 모든 것들은 내적 자신에게 본질적인 영향을 주는 일 없이 변해왔고, 지금도 변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내적인 자신은 시간이 흘러도 영향을 받지 않고 남아있는 것으로 자아초월적인 <보는 자>이자 “진아”다.” (pp. 195) 

 


9장. 나르시스, 혹은 자기 수축 

윌버 부부는 타호 호수 근처에 거처를 마련하고 살면서 지옥과 같은 나날을 보내게 되는 데 이 때 그들은 인생에서 가장 중대한 위기의 순간을 맞는다. 이 시기는 암과 싸우는 두 부부 뿐 아니라 윌버 개인에게도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을 맞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 때 윌버는 몇 개월 동안 끊임없이 자살충동에 시달린다. 

“나는 타호 호수 남쪽의 파크가에 있는 앤디의 스포츠 용품점에 가서 총을 살 것이다. 이런 상태를 날려버리기 위해서, 정말이지 더 이상은 견딜 수 없다.” (pp. 210) 


윌버는 명상도 하지 못하고 거의 매일 술을 마시면서 심한 우울상태에 빠져드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마을에 창궐했던 이름모를 전염병 때문이었다. 윌버는 근육경련, 발작에 가까운 몸부림, 만성발열, 임파선 장애, 식은땀과 탈진증상으로 고통을 받게 된다. 그러나 그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1년 6개월 동안 전혀 집필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으며 명상을 통해 열려있는 순수의식과의 연결을 유지할 수도 없는 절망적이 상태였다. 윌버는 이것을 자기수축, 즉 자기모습에 절망적으로 빠져든 나르시스에 비유하고 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가장 단순하고 파괴적인 잘못은 내 고통을 테리 탓으로 돌리며 그녀를 비난한 것이었다. 나는 스스로 자신의 흥미를 구석에 박아둔 채 그녀를 돕는 길을 선택했으면서도, 저술이나 편집활동, 명상 시간을 잃는 것에 대해 테리를 비난했던 것이다. ... 이것이야말로 실존주의자가 말하는 ‘나쁜 신념’이다. 이것의 나쁜 점은 자신의 선택으로 생긴 책임을 회피한다는 데 있다” (pp. 213) 


이 때 트레야도 화학요법으로 인해 매우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었다. 

“화학요법의 가장 나쁜 면은 그것이 내 영혼에 독을 쏟아 붓는다는 점이다. 육체가 아니라, 정신적, 심리적, 그리고 영적으로 나를 해치고 있는 것처럼. 나는 너무도 지쳐서 전혀 자신을 조절할 수 없게 되었다.” (pp. 221) 


서로 심신이 탈진될 때로 탈진된 두 부부는 결국 위기의 정점을 맞게 되고 급기야 윌버는 난생 처음으로 여성에게 욕설을 퍼부으면서 손찌검을 하게 된다. 자신의 가장 사랑하는 여인을 때리고 만 것이다. (pp. 229-230) 

 


10장. 치유할 시간 

위기의 정점이 지나자 윌버부부는 자신들 만으로는 치유가 되지 않는다고 느끼고 로저 월쉬, 프란시스 본, 특히 세이무어 부어스틴의 도움을 받아 서로의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성실하게 노력하게 된다. 이 때 그들은 “기적수업”을 중심으로 ‘수용과 용서’라는 덕목을 배우고 실천하게 된다. (참고 pp. 235-236) 


“신은 내가 용서하는 사랑 속에 있다.” (기적수업의 문구) 

트레야는 자신의 일기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내 자신에게 치료할 시간을 주는 것. 개방적이고 조용한 공간이 지나가도록 그냥 내버려둔 채, 그곳에서 무엇이 나올까 그저 지켜보고 있다.” (pp. 239) 


• 두 사람이 어떤 방법으로 수행을 해 왔는가를 알 수 있는 부분 : (pp. 249) 

두 사람이 함께 모실 수 있는 스승을 찾던 중에 칼루 린포체를 만나게 된다. 그를 만나자마자 두 사람은 즉시 그 분이 자신들의 스승임을 한 눈에 알아보았다. (pp.250) 


• 윌버가 가타기리 선사 밑에서 견성을 했음을 알 수 있는 부분 : 

“아주 작은 경험이었소. ” 켄은 설명했다. 그 깨달음은 선사가 이런 말을 했을 때에 일어났다고 한다. “보는 자는 자아의 마지막 저항이다.” (pp. 252) 

 


11장. 심리치료와 영성 

서독에서 에디스 준젤이라고 하는 편집자가 윌버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자 망설이던 끝에 인터뷰에 응하게 된다. 

“모두가 저를 스승이나 구루 또는 선생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판디트는 될지언정 구루는 아닙니다. 실천에 관한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초보자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 15년간 고작 4번밖에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어요.” (pp. 234) 


에디스 준델과의 인터뷰를 통해 윌버는 심리치료와 영성의 관계를 자세하게 설명한다. 

•융과 조셉 켐벨의 문제점을 지적(pp. 226, 269, 270) 

• 윌버의 의식의 9단계를 간단하게 설명 (pp. 272-276) 

• 전초오류에 대한 설명 (pp. 279-) 

• 각 단계 마다 일어날 수 있는 심리적 장애에 대한 치료법 설명(pp. 280-291) 

• 의식의 스펙트럼 각 단계에 고유한 세계관에 대한 설명(pp. 294-296) 


• 명상과 심리치료의 관계 

심리치료는 1-6단계까지의 발달장애로 인해 생긴 심리적 장애를 치료할 수는 있지만 7-9단계까지의 발달을 도와주거나,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장애를 적절하게 다룰 수 없다. 그러므로 인간의 총체적인 발달을 위해서는 심리치료와 명상이 서로 보완되어야 한다. 


“대체로 명상과 심리치료는 영혼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는 같아도, 목적으로 삼는 단계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선이 반드시 노이로제를 제거한다고 할 수 없고, 또 그런 목적을 위해서 고안된 기법도 아닙니다. 더욱이 아무리 보는 자의 감각을 발달시켜도 여전히 노이로제를 갖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 삶의 감정적인 명이 망가지고 있다 해도, 선은 그것을 근본적으로 치료해주지 못합니다. 선은 그런 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 선은 노이로제와 잘 지내는 데는 많은 도움이 되었지만, 그것을 근본적으로 치료하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pp. 291-292) 

“프로이드는 붓다가 아니고, 붓다 또한 프로이드가 아닙니다.” (pp. 293) 

 


12장. 다른 목소리로 

마침내 트레야는 화학요법의 스트레스로 인해 당뇨병에 걸리고 만다. 설상가상으로 덮친 당뇨병에도 불구하고 트레야는 자신의 영적 진화를 위한 여정을 계속한다. 이 때 트레야는 남성의 영성에 대응하는 여성만의 영성 계발의 필요성을 절감하며 자신과 뜻을 같이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작은 모임을 시작한다. 


• 여성의 영성에 관한 주제 : (pp. 309-312) 

그 모임에서 트레야는 자신들이 원하는 암환자 지원센터(CSC; Cancer Support Community)를 구체적으로 구상하고 이를 실행에 옮긴다. 

“우리는 여성적인 접근을 통해, 암과 싸우거나 암에서 회복하는 것을 강조하기보다 전반적인 삶의 질을 강조할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암을 치료하지 못한 것이 실패나 패배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pp. 318) 

이 때 트레야는 꿈속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일, 자신의 디먼을 찾는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여자, 예술가, 장인, 행위자가 아니라 제조자, 아름다운 것을 창조하는 사람, 작품의 결과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커다란 기쁨을 발견하는 사람.” (pp. 320) 

“나의 것은 조용하고, 형태가 없으며, 부드럽다. 배경적이고, 여성적이며, 보이지 않는다. 몸과 관련된, 대지와 관련된 그것. 그러나 내게는 더욱 실제적인!” (pp. 323) 

 


13장. 에스트레야 

암이 다시 재발되어 뻐, 뇌, 폐로의 전이 가능성이 아주 높아진 트레야는 자신의 낡은 남성적 자아인 테리를 벗어버리고 새로운 자아인 트레야가 태어났음을 느꼈다. 이 때부터 테리는 자신을 트레야로 불러줄 것을 요청했으며 이를 새로운 부활로 여기게 되었다. 

“남자가 되려고 애쓰지 말자. 나 자신을 테리라고 부르지 말자. 트레야가 되기. 장남에 대한 집착을 놓아버리기. 그날 밤 나는 경이로움과 흥분에 가득 찬 꿈을 꾸었다. 기억에 남는 유일한 말은 “안녕, 내 이름은 트레야야.”였다.” (pp. 333) 


윌버부부는 델마에서 심령치유사 크리스를 만났고 이 경험을 통해 테리에서 트레야로의 전환이 완성되었다. 크리스가 실시한 심령치유(기 치료)에서 윌버의 기 상태를 읽을 수 있다. 

“한동안 켄의 머리를 진찰하던 그녀가 갑자기 이상하다는 말을 했다. 뇌의 양측에 각각 10개의 통로가 있는데 대부분 사람들에겐 통로가 2-3개 정도이며 아무리 많아야 4개란다. ... 인간 뇌의 양측이 10개까지 열리는 것은 2000년에 한 번 뿐인 일이며, 그녀 이전의 마지막 인간이 바로 붓다라고 했다. 그런데 켄의 뇌에는 한쪽에 10개 다른 쪽엔 7개의 통로가 있다는 것이다.” (pp. 343-344) 


• 심령치유에 대한 윌버의 태도를 볼 수 있는 부분. 

“나는 그런 종류의 에너지가 있고 때로는 그 에너지의 효과가 꽤 크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소. 단지 나는 그들의 이야기나 이론에 의문을 가질 뿐이오. 그들이 하는 일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말에 의문이 생긴다고. 정말 재미있는 것은 그들의 이론들은 보통 물리학에서 따온 어설픈 이론들로 지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오. 나는 그런 일에 반발할 뿐이오.” (pp. 341) 


심령치유에 대해서는 냉소적인 태도를 보였던 윌버는 크리스에게는 상당한 호감을 갖게 된다. 

“그녀의 끊임없는 황당한 이야기는 트레야와 내가 모든 걸 더 가볍게 보게 만들었다. 크리스의 주변에서는 진실이 모든 의미를 상실한다. 모든 것은 하나같이 사실이거나 거짓이며, 똑같이 터무니없는 이야기였음에도 아무 상관이 없었다. 모든 게 우습게 보이기 시작했다. 트레야는 병들고 나는 붓다가 되었다!” (pp. 345) 


• 발달의 낮은 수준에서 일어나는 병리와 높은 수준에서 일어나는 병리와의 차이점(예: 제 3지렛목 병리 vs. 제 8지렛목 병리) (pp. 348-349) 

  


14장. 어떤 것이 실제로 도움을 주나?

트랜스퍼스널 심리학회지와 뉴에이지에 실린 트레야의 글은 잡지사상 최고의 반응을 일으켰고, 이로 인해 트레야는 오프라윈프리 쇼의 주목을 받았다. 


• 질병을 바라보는 자비로운 관점 

암에 걸린 어머니에게 트레야는 아내로만 지나치게 충실했던 반면, 자기 자신으로서는 살지 못했다는 이론을 늘어놓았던 트레야에게 암에 걸린 또 다른 친구가 다음과 같은 말을 들려준다.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 너는 어머니에게 이론을 적용하면서, 어머니를 물건처럼 다뤘던 거야. 하지만 어머니 입장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이론이 자신을 침해한다고 느꼈을 수 있어. 나는 알아. 왜냐하면 나도 암을 앓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친구들이 말하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이야.... 그 이론들은 결국 나를 돕는 게 아니라 자기들을 돕는 거야. 난 그 이론들 때문에 상당히 고통스러워.”(pp. 363) 

“때때로 치료방법을 선택해야 하는 사람들은 정보를 원한다. 내가 자신에게 대안을 제시하거나 관습적인 치료들을 연구하는데 도움을 주길 바란다. 그러나 일단 일정한 치료방법을 선택하면, 그것이 가장 쉽고 매우 안전한 정보일지라도 그들은 나의 정보를 원치 않는다. 이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지이다.” (pp. 364) 


“당신 자신이 현실을 창조한다”는 단순한 선언이 사실이기에는 삶은 놀라울 정도로 복잡하다... 그것은 나와 우리를 길러주는 관계의 망을 통제라는 이름으로 거부하는 것이다....우기의 현실에 우리 자신이 영향을 미친다고 말해야 옳다. 이것이 진리에 더 가깝다.” (pp. 365-366) 

“죄와 죄책감을 강조하는 유대 기독교에서는 질병을 잘못에 대한 징벌로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나는 모든 현상을 자비심을 키우고 타인에게 봉사할 기회로 삼는 불교적 입장을 선호한다... 진실로 두려워 할 수 있게 스스로 허용한다면 아무리 끔찍한 일이 닥쳐도 함께 웃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질병이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질병과 친숙해지는 방법을 끊임없이 배워야 할 것이다” (pp. 366-367) 


• 불교에 대한 윌버의 입장 

“나는 딱히 불교도가 아니다. 오히려 베단타 힌두교나 기독교 신비주의에 가깝다. 그러나 내가 수행하는 방법으로 선택한 것은 불교다.” (pp. 356) 

• 불교를 소승, 대승, 금강승으로 나누어 각각을 간단하게 소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장단점과 수행법이 간략하게 설명되어 있다.(pp. 356-362) 

• 자비심을 기르는 통렌 tonglen 수행(암이 악화되자 트레야는 이 수행을 적극적으로 실천에 옯겼다.) (pp. 358) 

 


15장. 뉴에이지 

이 장에는 뉴에이지에 대한 비판이 실려 있다. 이 글은 “우리가 스스로를 병들게 하는가?”라는 제목으로 뉴에이지에 실렸다.(pp. 375-385) 


“그들이(뉴에이지) 말하는 원리에 따르면 현재의 삶은 이전 생의 생각과 행동의 결과다. 하지만 힌두교와 불교에 따르면 그것은 부분적으로만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런 특정한 업의 관점을 믿지 않는다. ... 남카이 노부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업 때문에, 혹은 개인의 이전 조건으로 인해 생기는 질병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서, 외부에서 온 에너지로 인해 생기는 질병도 있습니다. 그리고 음식과 같이 환경의 일시적인 원인들로 야기되는 질병도 있고 사고에 의해 발생하는 질병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환경과 연관된 온갖 종류의 질병이 있는 셈입니다.“... 당신 스스로 자신의 실재를 창조한다는 신념은... 모두 과대망상, 전능을 포함하는 자기애적 성격장애의 유아적이고 마술적인 세계관을 증명하는 것이다. 사고가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창조한다는 주장은 (발달의) 2 단계를 정의하는 자아경계의 불완전한 분화의 직접적 결과라고 본다.” (pp. 380-381) 


“뉴에이지 운동은 마치 얼룩덜룩한 큰 짐승 같다. 거기에는 진정한 신비주의, 트랜스퍼스널 원리에 바탕을 두는 측면도 있다. 진정한 트랜스퍼스널 운동은 항상 전개인적인 요소를 상당 부분 끌어들인다. 왜냐하면 둘 다 비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저’과 ‘초’ 간의 혼동은 뉴에이지 운동의 주요 문제점 중 하나인  것 같다.” (pp. 382) 


“우리는 전개인적 신념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런 신념들을 초개인적인 것인 양 포용하라는 요청을 받을 때 곤란할 뿐이다... 실제로는 전이성, 치성, 초이성이라는 3개의 진영이 있다. 사실 우리는 전이성주의자보다는 이성주의자에 가깝다. 상위수준은 하위수준을 초월하면서 포함한다.... 모든 초개인적인 신조들은 논리의 검증을 견뎌내야 한다. 그 때, 오로지 그때서야 논리를 넘어선 통찰이 가능하다. ”(pp. 384-385) 

그러는 사이 트레야는 암이 뇌로 전이되어 더욱 공격적인 화학요법을 받게 되고 이를 위해 두 부부는 고용량 단기 화학요법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독일의 얀커병원으로 치료를 위해 떠나게 된다. 

 


16장. 저 새들이 노래하는 걸 들어봐! 

“트레야와 나는 본에서 마지막 위기를 맞게 되었다. 나는 이 어려운 시기를 받아들이기 위해 세이무어에서 통렌에 이르기까지 열심히 노력했다... 나의 가슴은 트레야를 위해, 나를 위해 산산이 부서졌다” (pp. 395)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트레야는 본에 도착한 후 일주일 동안 평정심을 되찾았다. 그것은 지속적인 것이었고 심지어 그녀는 즐거워 보이기까지 했다.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방문객들이 자주 그 사실을 언급할 정도였다. 그녀는 환희를 내뿜고 있었다.” (pp. 400) 

“이해할 수는 없지만 내 영혼은 행복하고 삶을 즐기고 있다. 창밖의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듣는 것이 좋고, 병원에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나는 그날을 기다린다. 그 날이 끝이 아니길 바란다. 그리고 올 한 해를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 저 새들의 노래를 들어보라!” (pp. 401) 

 


17장. 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 

윌버 부부는 트레야 부모님과 함께 기분을 전환시키기 위해 파리로 여행을 간다. 

“독일을 지나 파리에 가까워지자, 내 눈은 봄날의 전경을 탐욕스럽게 담기 시작했다. 넘실거리는 라임 빛깔의 초원, 시내를 따라 늘어선 새잎이 돋은 나무들과 띠를 두른 들판, 느낌표 모양으로 흩어진 노란 개나리, 꽃을 피우는 벚나무, 가파른 언덕과 강둑을 따라 꽃으로 장식된 포도원, 계곡들을 따라 물결치며 변신하는 대지. 오랫동안 굶주린 내 눈과 영혼은 모든 것을 들이마셨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가을이었는데, 이제는 봄이, 부드럽고 밝은 봄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는 뜻인가?” (pp. 418) 


“이제 나는 봄을 가장 좋아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물론 가을의 금빛 불꽃을 사랑하는 마음은 여전하지만, 봄은 내 가슴 깊숙이 와 닿는다. 내가 새로운 기회를, 내 삶의 새봄을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pp. 442) 


본으로 돌아온 윌버 부부에게 암을 치료하는 긴 시간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나날이었다. 그 사이 윌버는 트레야를 간호하는데 지쳐 쾨니히스빈터의 드라헨펠스라는 고대의 장엄한 요새로 관광을 간다. 요새의 탑에 올라간 윌버는 다음과 같이 사색에 빠진다. 


“올려다보면 하늘이, 내려다보면 땅이 있었다. 하늘과 땅, 하늘과 땅. 트레야가 떠올랐다. 지난 몇 년에 걸쳐 그녀는 땅에 있는 자신의 뿌리, 자연에 대한 사랑, 몸, 만들기, 자신의 여성성, 기초가 단단한 개방성, 신뢰, 돌봄으로 돌아왔다. 나는 내가 있고 싶어 하는 곳, 내 스스로 편안하게 느끼는 곳에 머물렀다. 신화로 치자면 영의 세계가 아니라 관념, 논리, 개념, 상징이라는 아폴로적 세계를 의미하는 하늘에. 하늘은 마음과, 땅은 신체와 관련된다. 내가 느낌을 포착해서 개념으로 연결했다면, 트레야는 개념들을 포착해서 느낌으로 연결했다. 내가 끊임없이 특정한 것에서 보편적인 것으로 움직였다면, 트레야는 항상 보편적인 것에서 구체적인 것으로 움직였다. 나는 생각하는 것을, 트레야는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문화를, 그녀는 자연을 사랑했다. 나는 바하를 들으려고 창문을 닫았다면, 그녀는 새들의 소리를 듣기 위해 바하를 껐다.” (pp. 434) 

 


18장. 죽은 스승은 아니다! 

다시 볼더로 돌아온 윌버부부는 트레야의 삶이 일년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수용하면서 죽음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미래에 살기를 거부하면서 의식적으로 죽음과 함께 현재를 살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라. 죽음은 무엇보다도 미래가 없는 조건이다. 마치 미래가 없는 듯이 현재를 살아감으로써, 그녀는 죽음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죽음을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pp. 444) 


트레야의 이런 삶에 대한 태도는 선사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윌버에게 상기시킨다. 

“유명한 선의 화두가 있다. 한 제자가 선사에게 찾아와 이렇게 물었다. “죽은 후에는 무슨 일이 생기나요?” 그러자 선사는 “모른다”고 말했다. 놀란 제자가 다시 “모른다고요. 당신은 선의 스승이 아닌가요?”라고 묻자 그 선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다. 하지만 죽은 스승은 아니다.”  (pp. 445) 


순간순간을 생생하게 살아가면서 윌버의 수행은 점점 더 깊어만 간다. 

“트레야와 나는 명상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나는 부지불식간에라도 비통함이나 적의감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아침 5시에 일어나 명상을 한다. 그렇게 2,3시간이 지나면 돌보는 이로서의 하루가 시작된다. 나는 이제야 비로소 진정한 평화에 도달할 것 같다.... 좋든 싫든, 삶이든 죽음이든, 쾌락이든 고통이든 간에 모든 드러남은 똑같이 ‘일미(一味)’다. 있는 그대로 완벽하게. ” (pp. 447) 

유방절제 수술을 받은 아내와 함께 살면서 성과 관련해 윌버가 겪었던 심적 갈등과 방황이 독일 나이트클럽에서의 경험을 통해 잘 드러나고 있다. (pp. 453-461) 


“여인의 온전한 가슴을 본 건 거의 3년 만에 처음이었다. 그녀를 바라보다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다시 그녀를 쳐다보다가 아래를 보고, 혼란스러운 감정의 봇물이 무섭게 쏟아져 내렸다... 내 마음은 육체와 살의 세계, 그것이 의미할 수 있는 것, 암이 육체에게 할 수 있는 모든 것들로 정신을 잃었다.” (pp. 458) 

 


19장. 열정적 평정심 

독일에서 받았던 매우 공격적인 화학요법에도 불구하고 트레야의 암이 치료되지 않자 그들은 대체요법의 하나인 켈리-곤잘레스 프로그램을 시도할 결심을 한다. 이 프로그램은 췌장효소를 100만 단위로 다량 섭취할 경우, 종양을 해체시키는 효과를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아주 혹독한 프로그램이었지만 트레야는 평정심을 가지고 이를 성실히 수행해간다. 


“나는 카르멜파가 열정을 강조하고 불교도들이 평정심을 강조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불현듯 ‘열정’의 의미에 대한 우리의 상식적 이해가 매달림, 무언가 간절히 원하는 것, 그걸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 소유라는 생각에 물들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없는 열정, 애착이 없는 열정, 깨끗하고 순수한 열정을 갖는다면 어떨까?... 그때 갑자기 내 마음 속에서 두개의 단어가 짝을 이루었다. 열정적 평정심. 삶의 모든 측면, 영과의 관계에 충분히 열정적이고, 존재의 심연을 돌보면서도 매달리거나 붙잡지 않는 것. 내게 그 말의 의미는 바로 이것이었다.” (pp. 474) 

“토마스 키팅 신부가 한 말도 생각합니다... “애쓴다는 것은 기도자의 성장에 필요한 수용성이라는 기본성향을 희석시킨다. 수용성을 비활동이 아니다. 그것은 실제적인 활동으로서 일상적 의미에서의 노력이 아니다. 그것은 궁극적인 신지를 기다리는 태도다...” 이런 ‘적극적 비활동’이 내가 ‘열정적 평정심’이라고 생각하는 한 예입니다. 켄은 도교도들이 이것을 ‘위무위(爲無爲)라 표현한다고 말해주었지요.” (pp. 477) 

 


20장. 간호하는 사람 

효소 프로그램이 지속적인 효과를 내고 있었지만 그 해석에 대한 공방이 극에 달해 윌버도 무엇을 믿어야할지 혼란에 빠져버린다. 

“시간이 갈수록 검사결과는 점점 더 극적으로 변했으며 두 진영(정통의학과 대체의학)의 해석은 완전히 상반되었다. 그에 따라 내 마음도 둘로 분열되었다. 하나는 곤잘레스를 믿었고, 다른 하나는 종양전문의들을 믿었다. 어떤 쪽도 확실히 옳거나 그르다는 증거는 없었다.” (pp. 495-496) 


윌버는 트레야가 설립한 CSC 친구들에게 간호하는 사람으로서의 고충을 따뜻한 마음으로 이해하면서도 이를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는 매우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는 편지를 보낸다. 이 글은 트랜스퍼스널 심리학 잡지에 실려 독자들의 상당한 반응을 얻게 된다. (pp. 499-509) 


“나는 지금부터 환자를 간호하는 일에 대해 말하려 합니다. 특히 위험한 문제는 환자를 돌보기 시작한 지 약 2,3달이 지나서 찾아듭니다....간호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더 다루기 어려운 일은 정서적, 심리적 수준에서 쌓이기 시작하는 내적 혼란입니다.... (병간호하는 고된 일이라는) 원래 문제와 더불어 그 문제를 드러낼 수 없기 때문에 또 하나의 문제가 생깁니다.... 이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할 가장 좋은 상대는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 간호하는 사람들 집단, 즉 간호하는 사람들을 위한 지지집단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모든 어두운 감정, 분노, 적개심 아래에는 대부분 상대를 향한 커다란 사랑이 있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간호하는 사람은 오래전에 뛰쳐나가 버렸을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분노, 적개심, 쓰라림이 출구를 막고 있는 한 그 커다란 사랑이 표면으로 자유롭게 떠오를 수 없다는 겁니다.” (pp. 502) 


“사랑은 치유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므로 간호하는 사람들은 사랑의 존재를 막는 분노, 적개심, 미움, 쓰라림, 부러움과 질투까지도 비울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지지집단은 무척 소중한 존재입니다. 지지집단이 없다면 사랑하는 사람뿐 아니라 간호하는 사람인 당신을 위해서도 개인 심리치료를 받으라고 추천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에게는 사랑하는 사람과 의논해서는 안 될 일들이 생길 테니까요.” (pp. 503) 


“훌륭한 간호하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과정에서 내가 배운 것 하나는 간호하는 사람은 정서적인 스폰지라는 겁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언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문제를 풀 수 있게 도와주고, 저녁식사를 만들고, 차를 몰아주는 것 등이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일은 모두 정서적인 스폰지의 뒷전에 있습니다. 치명적인 질병과 직면한 사람은 매우 강력한 정서적 경험을 하게 됩니다. 때로 근 이런 감정들, 즉 공포, 분노, 히스테리, 고통들로 압도되어버리곤 합니다. 이때 당신이 할 일은 사랑하는 이를 붙잡아 주고, 그 사람과 함께하며, 그런 정서들을 가능한 한 많이 흡수하는 겁니다. 말해서는 안 되고, 아무 말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실제로 도움이 될 말이 하나도 없습니다. 충고를 할 필요도 없습니다. 무슨 일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거기에 있으면서 그들의 고통이나 공포, 상처를 들이마셔야 합니다. 스폰지처럼 말입니다.(pp. 504) 


“나는 언제라도 어려운 상황에서 뛰쳐나갈 수 있었습니다. 아무도 나를 병동에 묶어두지 않았으며, 내가 떠난대도 나를 협박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온갖 고난을 무릅쓰고라도 트레야와 영원히  함께 하겠다는 선택을 나 스스로 한 겁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녀가 이 과정을 겪어내는 걸 지켜볼 거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 선택을 잊어버린 적이 있습니다. 나는 (실존주의자들이 말하는) 나쁜 신념(bad faith)을 보이고 말았으며 진짜가 아닌 존재가 되었습니다. 나는 실재가 아니었습니다. 나쁜 신념으로 인해 나는 내 자신의 선택을 망각했고, 거의 즉각적닌 비난의 태도를 보였으며, 또 그 결과로 생기는 자기연민에 빠졌습니다.” (pp. 506-507) 


“공(空)이라는 불교적 개념 또한 내게 엄청난 도움을 주었습니다. 공은 공백이나 허공이 아닙니다. 이것은 장애가 없고 자발적인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또한 비영원성 혹은 무상(anicca)과 유사한 개념입니다. 불교인들은 실재가 공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안전이나 지지를 위해 당신이 붙잡을 수 있는 영원하거나 절대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금강경은 '삶은 물방울, 꿈, 영상, 신기루 같다‘고 말합니다. 요점은 신기루를 붙잡으려 애쓰지 말고 ’놓아버리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매달릴 만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트레야의 암은 나에게 ’죽음은 위대하게 놓아버리기‘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켰습니다.” (pp. 507-508) 


이 시기에 윌버는 족첸수행에 깊이 빠지게 된다. 

• 족첸수행에 대한 설명 (511-515) 

“족첸에서의 주된 가르침은 명상이 아니다. 왜냐하면 명상은 상태의 변화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깨달음은 상태의 변화가 아닌 현상태의 성질을 인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족젠 가르침의 대부분은 ‘왜 명상이 효과가 없는가’, ‘왜 깨달음을 얻을 수 없는가’, ‘그것은 이미, 그리고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로 요약할 수 있다. 깨달음을 얻으려는 노력은 당신의 발을 붙잡으려 애쓰는 것과 마찬가지다.” (pp. 512) 

“족첸은 명상을 특별히 추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족첸 가르침에 입문할 때쯤이면 수행의 8단계를 수행해야 하는데, 이 8단계가 명상의 모든 단계임을 지적해야겠다. 그들은 마음의 덕성, 집중력, 알아차림, 통찰력을 기르는데 명상이 매우 중요하고 이로우며, 따라서 명상을 하나의 훈련과정으로 열심히 수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명상은 깨달음 자체와는 관계가 없다.” (pp. 514) 

“일단 제자에게 그런 자각이 일어나면, 스승은 그 자각을 삶의 모든 측면에 적용하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명상을 사용한다. 이것이야말로 정말 어려운 부분이다. 족첸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당신의 진정한 얼굴을 보는 것은 쉽지만 그것을 사는 것은 어렵다.’ 내가 수행을 시작한 것은 정확히 ‘그것을 사는 것’이었다.” (pp. 515) 

 


21장. 우아하게 그리고 용기있게

켈리-곤잘레스 효소 프로그램의 영향으로 뇌 조직이 한없이 팽창하면서 트레야는 극도의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트레야는 한두 달 동안 뇌의 팽창을 통제할 수 있는 강력한 스테로이드 데카드론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 효과가 없어질 것이다. 그 마지막 기기에 트레야의 뇌 조직은 박살날 것이다. 날이 갈수록 뇌 기능은 상실되고 고통은 참을 수 없을 만큼 커져 불가피하게 모르핀을 계속 투여해야 할 것이다.” (pp. 533) 


극도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트레야는 자신의 열정과 평정심을 결코 잃지 않는다. 

“그녀는 조금도 자신을 불쌍히 여기지 않는다. 그녀는 포기하거나 조금도 물러서려는 의도가 없다. 그녀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이제 나는 그 사실을 믿는다. 그녀는 몸을 뒤집어 죽은 척하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녀의 태도를 통해 내가 깨닫게 된 가장 유명한 공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한 제자가 선승에게 물었다. “무엇이 절대적인 진실입니까?” 그러자 선승은 “계속 걸어라!”라고만 했다.” (pp. 534) 


서로에게 깊이 몰입하는 가운데 윌버와 트레야 사이에는 깊은 심령적 유대가 생긴다. 윌버는 트레야가 원하는 것을 직관적으로 미리 알고 처리를 하면서 트레야를 극진히 보살핀다. 

“아마도 경험에만 의존하는 보통 의사들은 그것이 번개처럼 빠른, 잠재의식적인 논리적 추론일 거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너무도 많은 사례들이 비논리적이고 신기했다. 아니다. 무언가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여기 이 집에 오직 하나의 마음, 하나의 가슴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왜 내가 그 사실에 놀라야 하는가?” (pp. 534) 


끔찍한 두통을 호소하고 몸 전체를 떨면서 극심한 고통에 사로잡힌 트레야는 마침내 뇌에 있는 덩어리를 제거하기 위해 수술을 받는다. 

“수술로 인해 트레야는 더 이상 예전처럼 볼 수가 없었다. 오른쪽 눈으로 볼 수는 있었지만 전체적 시야가 매우 협소해진 것이다. 그녀는 예술작업을 하려고 했지만 선 하나도 제대로 맞출 수가 없었다. 때때로 나도 따라잡을 수 있을 정도의 작품을 내놓았다. 그러나 그녀는 ”별로예요, 그렇죠?“라는 말밖에 하지 않았다” (pp. 536) 


• 죽음의 순간에 일어나는 현상에 대한 설명(536-537) 

“당신의 어떤 부분이 신성에 참여한다고 믿는다면, 어떤 의미에서든 죽을 수밖에 없는 신체를 초월하는 일종의 영에 접근한다고 믿는다면, 죽음의 순간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어느 순간 신체가 사라진 후 남아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발견할 순간이 바로 죽음의 순간이다. 안 그런가?” (pp. 537) 

뇌와 간에 종양이 퍼져가면서 트레야는 끔찍한 고통에 시달렸지만 자신의 일과를 빠짐없이 성실하게 실천해간다. 

“날이 갈수록 폐와 뇌, 간에서 종양이 커져만 갔다. 그리고 뇌수술의 여파는 트레야의 몸에 끔찍한 대가를 요구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프로그램을 하나도 빠짐없이 지속했으며 걷는 기구를 이용해 하루에 수 km를 걸었다.” (pp. 538)


• 트레야가 죽어가는 부분(540-542)

“새해 첫날 트레야와 나는 카우치에 앉아 서로를 껴안고 있었다. 트레야가 몸을 돌리더니 말했다. “여보, 이제 멈춰야 할 시간이 된 것 같아요. 더 이상은 가고 싶지 않아요. 효소가 별 효과를 못 내는 것 같아요.“...... “트레야. 하지만 일주일만 더 기회를 가져보자고 말하고 싶어. 만일을 위해서...”...... 그녀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좋아요. 일주일만 더 해봐요. 할 수 있어요. 일주일만 더.”, 트레야는 맑고 투명하게 빛났다.” (pp. 540) 


“우리는 2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트레야는 계단조차 오를 힘이 없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녀는 계단 하나도 오르지 못한 채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 산소 줄을 떨어뜨리고는 조용히 울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를 안아 올려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오, 여보... 이 정도까진 오지 않길 바랐어요. 여기까지 오고 싶지 않았어요. 정말이지 혼자 걷고 싶었어요.“ 트레야는 내 어깨에 머리를 파묻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일인 걸, 트레야. 어떤 경우에도 당신은 내가 이런 일을 하게 내버려두지 않았을 거요. 그러니 자, 내 아가씨를 안고 계단을 오르게 해줘요.” (pp. 541) 


“트레야는 약속을 지켰다. 극도의 고통 속에서도 프로그램을 하나도 빠트리지 않았다. 모르핀을 거절했기 때문에 그녀는 자각하며 존재할 수 있었다. 그녀는 종종 머리를 높이 치켜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런 척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이야말로 “계속 걸어라!”였다. 그녀는 용기와 각성된 평정심을 보여주었으며, 조금도 보태지 않고 말하건대 나는 그런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 ... 

“주말 저녁,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이제 갈래요, 여보.” 

그 순간 내가 한 말은 그저 ‘좋아’ 한 마디 뿐이었다. 나는 그녀를 2층으로 데려가려고 안아 올렸다. 

“잠깐만요, 여보. 일기를 쓰고 싶어요.” 

나는 그녀에게 일기장과 펜을 가져다주었다. 그녀는 매우 진하고도 분명한 글씨체로 이렇게 썼다. 

“‘우아함, 그리고... 그렇지, 용기가 필요해!” (pp. 541-542) 


“숭고한 괴테는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글귀를 남겼다. ‘잘 익은 것들은 모두 죽고 싶어 한다.” 트레야는 잘 익었으며 죽고 싶어 했다.... 우아함과 용기. 존재하기와 행동하기, 평정심과 열정, 포기와 의지. 완전한 수용과 사나운 결심... 그녀 영혼의 양면성. 일생 동안 그녀가 씨름해온 양면성, 그녀가 마침내 하나의 조화로운 전체로 통합한 양면성, 그것이 그녀가 남기고 싶어 했던 마지막 메시지였다. 나는 그녀가 그 양면을 결합하는 것을 보았고, 균형 잡힌 조화로움이 그녀 삶의 모든 면에 스며있음을 보았고, 열정적인 평정심이 그녀의 영혼을 정의하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자신의 유일하고 중요한, 지배적인 삶의 목표를 성취한 것이다. 만약 그것이 수준 낮은 깨달음이었다면 산산조각 났을 상황에서, 그녀의 성취는 잔인하게 검증되었다. 그녀는 그걸 해낸 것이다. 그녀는 지혜로 무르익은 것이다. 그래서 죽기를 원했다. 마지막으로, 나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트레야를 2층으로 데려갔다.” (pp. 542) 

 


22장. 빛나는 별을 위하여

트레야는 마침내 죽음을 맞이하고 가족과 친지들은 그녀의 우아하고 용기 있는 모습을 하나같이 칭송한다. 윌버는 트레야의 영혼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음을 절감한다. 

    

“그 날 저녁 나는 트레야를 침대에 눕히고 그녀 옆에 앉았다. 그녀는 거의 황홀경에 빠져 있었다. 

“이제 나는 가요. 믿을 수 없겠지만 나는 갑니다. 아주 행복해요. 아주 행복해요. 아주 행복해요.” 

마지막 해방의 만트라처럼 그녀는 계속 반복했다. 

“나는 아주 행복해요, 아주 행복해요...” 

그녀의 얼굴 전체가 밝아졌다. 그녀는 빛났다. 그리고 바로 내 눈 앞에서 그녀의 몸이 변하기 시작했다. 1시간에 5kg 정도가 줄어든 것 같았다. 마치 몸이 그녀의 의지에 순종하여 스스로 오그라드는 것처럼... 그녀는 서서히 자신의 생명체계를 닫으며 죽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기꺼이 떠날 준비를 하면서 전혀 다른 사람이 돼가고 있었다. 그녀는 결심이 확고했으며 매우 행복해했다. 그녀의 마음에 전염된 것일까? 그녀의 기쁨을 나누고 있는 나를 느낄 수 있었다. 

그 때 돌연히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당신을 떠나고 싶지 않아요. 당신을 너무나 사랑해요. 켄. 당신을 떠날 수 없어요. 당신을 너무나 사랑해요.” 

그녀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나 역시 흐느꼈다. 지난 5년 동안의 모든 눈물이, 트레야를 위해 강해지려고 참았던 눈물이 모두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우리는 서로에 대한 사랑, 우리 둘을 만들어준 사랑, 우리 둘을 더 강하고 좋고 현명하게 만들어준 사랑에 대해 오랫동안 이야기했다. 아주 메마르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까지 누군가와 그토록 다정한 순간을 가져본 적이 없다. 

“여보, 갈 시간이면 갈 시간인 거야. 걱정하지 말아요. 당신을 찾아낼 거요. 이전에도 찾아냈잖소. 약속하오, 또 다시 당신을 찾아낼 거라고. 그러니 걱정 말고 가고 싶으면 가요.” 

“약속하죠?” 

“약속하오.” 

5년 전 결혼식장으로 가는 중에 그녀에게 말했던 것. 나는 지난 2중 동안 그 이야기를 거의 강박적으로 되풀이했다. 나는 다시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그동안 어디 있었소? 몇 생에 걸쳐 당신을 찾아 헤맸는데. 당신도 알잖아. 당신을 찾아내기 위해 난 용들을 죽여야만 했단 말이오. 그러니 걱정 말아요. 반드시 당신을 찾아낼 거요.” 

그녀는 말할 수 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약속하죠?” 

“약속할게.” 

나는 왜 그런 말이 필요한지 알지도 못한 채 무의식적으로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지난 몇 주 동안 트레야는 계속해서 내게 약속을 끌어냈다. 그것이 그녀에게 깊은 안정감을 가져다주는 것 같았다. 내가 약속만 지킨다면 그녀에겐 아무 문제도 없었던 것이다. 

“나를 찾겠다고 약속했죠?” 

“그래, 약속해.” 

“영원히?” 

“영원히.” 

“그렇다면 갈 수 있어요. 아, 나는 아주 행복해요... 여보,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어려웠어요. 아주 어려웠어요. 여보, 너무 힘들었어요.” 

“알아, 트레야. 나도 알아.” 

“이제는 떠날 수 있어요. 정말 행복해요... 당신을 너무나 사랑해요... 행복해요. 켄.” 

그날 밤 나는 그녀의 방에 있는 탁자에서 잠을 잤다. 꿈을 꾼 것 같다. 눈 덮인 산에 천 개의 태양이 빛날 때처럼, 빛나는 흰빛의 거대한 구름이 집 위에서 맴도는 꿈을. (pp. 545-547)  

“트레야가 눈을 감았다. 모든 의지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결코 다시 눈을 뜨지 않았다. 가슴이 무너졌다. 다 프리 존의 구절이 마음속에서 맴돌았다. “사랑의 상처를 연습하라... 사랑의 상처를 연습하라.” 진정한 사랑은 마음을 아프게 한다. 진정한 사랑은 당신을 완전히 취약하게 열어놓는다. 진정한 사랑은 당신을 훨씬 넘어선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사랑은 당신을 황폐하게 만든다. 나는 계속 생각했다. 사랑이 당신을 산산조각 내지 않았다면 당신은 사랑을 모르는 거다. 우리는 둘 다 사랑의 상처를 연습했고 나는 산산조각 나버렸다. 되돌아보면 그 단순하고 직접적인 순간에 우리는 둘 다 죽어버린 것 같다.” (pp.  549) 


“나는 그날 밤 트레야의 방에 있었다. 나는 꿈을 꾸었다. 빗방울 하나가 바다로 떨어져 바다와 하나가 되는 꿈을. 어찌보면 그것은 꿈이라기보다 단순한 영상 같기도 했다. 나는 이 꿈이 트레야가 깨달음을 성취했다는 의미라고, 트레야가 깨달음의 바다와 하나가 된 빗방울이라고 생각했다. 의미가 통했다. 

하지만 나는 곧 이 꿈에 더욱 심오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빗방울은 나였으며 트레야는 바다였다. 그녀가 해방된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진작 해방되었다. 오히려 그녀에게 봉사했다는 이유 하나로 내가 해방된 것이다. 

그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트레야가 자신을 찾아내라는 약속을 내게 끈질기게 요구한 이유였다. 그녀는 단지 내가 자신을 찾길 원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와의 약속을 통해 그녀가 나를 찾겠다는, 계속 반복해서 나를 돕겠다는 의미였던 것이다. 나는 그 모든 일을 회상해보았다. 나는 내가 약속을 함으로써 그녀를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내가 깨어날 때까지, 그녀가 분명하게 말한 영을 내가 인정하고 깨달을 때까지 트레야가 나를 도와줄 것이라는 뜻이었다.“ (pp.  557) 

“그 삶에서, 그 몸에서 나는 위대한 다섯 꼭지점의 우주별을, 마지막 해방의 빛나는 별을 보았다. 내게는 항상 그 이름으로 남을 별... 

‘트레야’ 

알로하, 나의 행운, 내 사랑하는 트레야. 나는 언제나 당신을 찾아낼 거야. 

“약속하죠?” 

그녀는 다시 한번 내게 속삭였다. 

“약속하지. 나의 사랑, 트레야.” 

“약속하오.” (pp.  563) 

        

여기 모인 모든 분들이 항상 고요하게 깨어있기를!

역자가 두 손 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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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테토스 어록 

 

1.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구별하십시오.

 

세상에는 우리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우리의 의지대로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사물에 대해 의견을 내고, 의욕을 느끼고, 그것을 갈망하거나 기피하는 것과 같이 스스로 하는 의지적 활동은 우리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같이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본디 자유로운 것이어서 아무런 제약도, 방해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육체, 재산, 평판, 권력 등 우리 스스로의 행위가 아닌 것은 우리 뜻대로 할 수 없습니다. 이것들은 다른 것에 예속되어 있는 부자유한 것으로, 남에 의해 좌우됩니다. 그러므로 본래 다른 것에 예속되어 있는 것을 자유로운 것으로 생각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뜻에 따라 좌우되는 것을 자기 것으로 생각한다면 장애에 부딪치고 좌절하게 되어 자연히 신과 다른 사람들을 원망하게 됩니다.


오로지 그대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만을 자기 것으로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에 의해 좌우되는 것은 남의 것으로 돌리십시오. 그러면 그대에게 강요하는 사람도, 그대를 제지하는 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대 또한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비난하지 않게 됩니다. 그대의 의지에 거슬려서 무엇인가를 억지로 해야 하는 일도 생겨나지 않겠지요. 누구도 그대에게 해를 입힐 수 없으므로 아무런 고통도 없을 것이고, 그러므로 적도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이 길이야말로 행복과 자유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러나 작은 노력만으로는 이 같은 삶을 얻을 수 없습니다. 어떤 것은 완전히 포기해야 하며, 당분간 미루어야 할 것도 있습니다. 권력과 부 또한 예외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사물의 겉모습에 좌우되지 마십시오.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아무리 그럴듯한 모습으로 보일지라도 이것은 단지 거죽에 불과할 뿐’ 이라고 생각하는 버릇을 길러야 합니다. 그 다음에 해야 할 일은 자신이 가진 이성의 잣대로 꼼꼼히 따져 보는 것입니다. 우선 그것이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인지를 살피고, 만일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없는 것이라면 언제라도 버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2.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에만 관심을 두십시오.

 

욕망에는 자신이 갈망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반면, 혐오감에는 원하지 않는 것은 한사코 피하고픈 바램이 들어 있습니다. 누구나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실망하고, 피하고 싶은 것에 말려들면 괴로워합니다.


그러므로 그대의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에만 관심을 두십시오. 그리고 그 중에서 자연의 섭리에 어긋나는 것은 피하십시오. 그러면 원하지 않는 것을 겪게 되는 일은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질병, 죽음, 가난 등 외적인 것을 피하려고 하면 고통을 겪게 될 것입니다. 이것들은 우리의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에 대해 원망하지 마십시오.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에만 관심을 두고 그 중에서 자연의 이치에 어긋나는 것을 피하십시오.


경우에 따라 욕망을 완전히 거둘 수 있어야 합니다.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을 원한다면 불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다 보면 그대에게 바람직하면서 그대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조차 얻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물에 따라 어떤 것은 추구하고 어떤 것은 적절히 물리칠 수 있어야 합니다.

 

 

3.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없는 일은 관심조차 가지지 마십시오.

 

그대의 뜻대로 되지 않는 싸움에 끼여드는 일만 없다면 그대를 쓰러뜨릴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명성이 자자한 사람, 권력이 많은 사람, 어떤 이유로든 칭송받는 사람들은 행복할 것이라고 단정하지 마십시오. 겉모양에 현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행복은 그대의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에서만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점을 깨달으면 남을 질투하는 일도, 부질없이 부러워하는 일도 없겠지요. 장군이나 원로원 의원, 또는 집정관이 되는 것보다는 자유인이 되도록 노력하십시오. 방법은 오직 하나입니다. 그대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은 바라지도 말고, 관심조차 가지지 않는 것입니다.

 

 

4. 전후 관계를 꼼꼼히 따진 후 행동에 옮기십시오.

 

어떤 행동을 하든 전후 관계를 살펴야 합니다.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다음에는 어떤 일이 따를지 꼼꼼히 검토하십시오. 그런 다음 행동에 옮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의욕에 넘쳐 무작정 서두를 경우, 예기치 못한 일이나 어려움을 만나면 중도에 포기하게 됩니다.


누구나 올림픽 경기에 나가 우승을 하고 월계관을 쓰고 싶을 것입니다. 저 또한 그렇습니다.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그렇다면 먼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다음 단계에는 무엇을 해여 하는지를 따져 봐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행동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선 모든 것을 규칙에 따라 해야 합니다. 먹는 것도 엄격하게 가려야 하며, 때로는 맛있는 것도 못 본 척해야 합니다. 아무리 덥거나 추워도 지정된 시간에는 열심히 훈련하고, 찬물이나 포도주도 마음대로 마실 수 없습니다. 의사의 처방에 따르듯 트레이너의 말에 완전히 몸을 맡겨야 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손을 다칠 수도 있고 발목을 뺄 수도 있습니다. 흙먼지를 많이 마셔 기진맥진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혹독한 훈련에도 불구하고 경기에서 질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생각하고 난 후에도 여전히 경기에 나가고 싶다면 그렇게 해야 할 것입니다. 생각 없이 행동하는 것은 철없는 어린애와 다를 바 없습니다. 아이들은 씨름 놀이를 하다가도 어느새 검투사가 되고, 트럼펫을 불고, 또 다시 연극놀이를 하니까요.


영혼을 송두리째 바치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그저 순간순간 기쁘게 하는 것을 좇아 원숭이처럼 흉내만 내다 말겠지요. 깊이 생각하지도 않고 자세히 따져 보지도 않은 채 아무렇게나 성의 없이 임하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다행히 유프라테스 같은 철인을 만나 스스로 그와 같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경우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선 그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 다음 과연 그대가 그 일을 해낼 수 있을지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5종 경기 선수나 레슬러가 되기를 원한다면 팔, 허벅지, 허리가 튼튼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은 각기 다른 일을 하도록 재주와 능력을 타고나는 법입니다.


남들과 똑같이 먹고 마시고 어려운 것을 싫어해서는 자신의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때로는 잠도 줄여야 하고, 어려움도 마다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할 때도 있고 하찮은 자들로부터 조롱 받는 경우도 있겠지요. 명예, 일, 지위, 그 밖의 모든 것에서 남보다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마음의 평정과 자유를 얻으려면 이 같은 난관을 기꺼이 헤쳐 나갈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 각오가 없이 지혜로운 삶을 추구할 수는 없습니다. 갈팡질팡하는 어린애같이 철학자에서 관료로, 다시 정치가로 목표를 바꾸지 말고 일관성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결국 한 길 밖에는 갈 수 없습니다. 선한 길을 가거나 아니면 나쁜 길을 가는 것입니다. 즉, 자신의 이성을 계발하거나, 아니면 외적인 것에 집착하는 것이지요, 바꾸어 말하면 철인의 삶을 살거나, 아니면 평범한 사람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5. 신앙의 본질은 질서정연한 자연의 섭리를 믿는 것입니다.

 

신앙에 대해 명심해야 할 것은 신에 대해 올바른 견해를 갖는 것입니다. 즉, 신은 존재하며, 만물을 질서정연하고 공평하게 주재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질서를 믿고, 신에 복종하며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또한 이 질서를 가장 지혜로운 여성이 이끄는 섭리로 믿고 따라야 합니다. 그러면 신을 원망할 일도, 신께서 우리를 버렸다고 비난할 일도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뜻대로 안 되는 일은 피하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오직 그대의 의지대로 되는 것에 대해서만 선악을 구별하십시오. 뜻대로 할 수 없는 일에 대해 좋고 나쁨을 판단하게 되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거나 반대로 원하지 않는 일이 생길 경우 그 원인이 되는 것을 원망하고 비난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해가 될 것은 기피하고 도움이 될 것을 추구하는 것이 모든 생물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해를 끼친 원인을 좋아할 수는 없습니다. 피해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부목 되어 자식에게 올바른 견해를 물려주지 못하면 자식은 부모를 욕되게 합니다. 오이디푸스왕의 두 아들 포리니스와 에테오클레스는 서로 왕권을 차지하기 위해 등을 지고 말았습니다. 왕권에 대해 올바른 견해를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땅을 가는 농부, 뱃사람과 상인,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신을 원망하는 것 또한 모두 이와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것을 섬기기 마련입니다. 인생에서 마땅히 추구해야 할 것을 추구하고 피해야 할 것을 피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신앙에 대해서도 그러합니다. 그러나 선조의 관습을 지켜 제사에 올릴 술을 장만하고 첫 번째로 수확한 열매를 순수하고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너무 넘치지도 과하지도 않게 바치는 것 또한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6. 예언이나 점술보다는 이성에 의지하십시오.

 

예언이나 점에 의지하는 사람은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 것인지 전혀 모르는 채로 예언가나 점쟁이를 찾아갑니다. 그러나 진정 지혜로운 사람은 그 어리석음을 알고 있습니다. 일어날 일이 우리 뜻대로 할 수 없는 일이라면 그것은 우리에게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언가에게 갈 때는 자신이 바라는 것이나 기피하는 것을 생각할 필요가 없으며, 그 앞에서 불안해 할 필요도 없습니다.


어떤 점괘이든 선도 악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유익하게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자신에게 있으며 누구도 이를 방해할 수 없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한 믿음이 생기면 신께 가십시오. 신께서 어떤 신탁을 내리시건 그대가 도움을 위해 선택한 분이 신이며, 만약 그의 말에 따르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신을 거역하는 것임을 상기하십시오.


소크라테스가 말한 것같이 이성이나 다른 기술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면 점술가를 찾아가야 되겠지요. 하지만 위험에 처한 친구나 국가를 구하기 위해 싸움에 뛰어들어야 하느냐를 놓고 점술가를 찾아가서는 안 됩니다. 죽음이나 불구, 또는 추방을 의미하는 나쁜 점괘가 나왔다 하더라도 그대의 이성은 친구나 국가의 위험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고 명령할 테니까요. 그러므로 이 경우에는 위대한 신 아폴론에게 의지해야 합니다. 아폴론 신은 살해당할 위기에 처한 친구를 외면한 자를 자신의 신전에서 추방한 바 있습니다.

 

 

7. 지금 당장 삶의 원칙을 실천하십시오.

 

이제 삶에 대해 그대가 깨우친 원칙을 법으로 여기고 지키십시오. 그 원칙 중 하나라도 어기면 불경죄를 짓는 것입니다. 남들이 그대를 두고 무슨 말을 하든 개의치 마십시오, 그것은 그대와 상관없는 일입니다.

그대에게 가장 가치 있는 일을 언제까지 미루기만 하겠습니까? 어떤 경우에라도 이성을 거역할 수는 없습니다. 이제 그 원칙에 동의한다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만이 그대가 할 일입니다.


아직도 남이 대신 그대를 깨우쳐 주고 고쳐 주기를 바란단 말입니까? 그대는 이제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라 완전한 어른입니다. 게으르고 나태하여 날마다 공상이나 하며 계속 미루고 늑장만 부린다면 절대로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그저 어리석은 자로 살다가 그렇게 미련하게 죽겠지요.

지금 당장 성숙한 어른으로 살 것을 결심하십시오. 날마다 삶의 지혜를 깨치고, 그대가 최선으로 생각하는 것을 법칙으로 삼고 이를 결코 어기지 마십시오.


즐겁거나 고통스럽거나 영광스럽거나 수치스러운 일이 그대에게 닥친단 하더라도 지금 그대는 미룰 수 없는 경기에 참가한 것입니다. 단 한 번의 실패와 포기에 따라 앞으로 나아가느냐 또는 뒤로 물러나느냐가 결정됩니다.

소크라테스가 완전한 인간이 된 것 또한 이 같은 방법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면에서 지혜를 닦았으며 이성 이외에는 어떤 것에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대 아직 소크라테스같이 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소크라테스를 닮고자 애쓸 수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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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소룡의 철학

●`앎'만으로 그쳐서는 안된다. 필히 응용할 줄 알아야 한다.

● 마음만을 가지고 있어서는 안된다. 필히 실천하여야 한다.

● 나는 절대로 내가 천하제일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내가 제 2라고 승인하지도 않는다.

● 가장 간결하면서도 유용한 것을 놓쳐서는 안되다. 여러가지를 빠짐없이 배워야한다. 복잡한 것이라고 해서 반드시 유용하다고 할수는 없다. 심지어 그것이 전혀 쓸모없는 것일수도 있다. 그러므로 단순한 것으로 부터 심오한 것으로 파고들어 통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어떤 사람이 이소룡에게 당신의 관(도장)에서는 어떤사람들을 제자로 받아들이고 있느냐고 묻자 그가 대답하길;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모인다. 어떤 사람들은 살을 빼기 위해 들어왔고 어떤 사람들은자기방어술을 배우고 싶어 들어왔다고도 한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로는 여기에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직접적인 동기는 역시 일종의 허영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쿵후가 외래적인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선과 타좌를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나 나의 생각은 그와 다르다. 아름다운 것을 배우려면 차라리 현대무용을 배울 것이지 권수나 타좌를 배운들 무슨 소용이 되겠는가? 그들이 상기해야 할 것은 "쿵후는 투사를 위한 것이지 중을 위한것이 아니다" 라는 것이다.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각자가 폼이나 잡는다는 것은 너무나 형식적인 것이다.

소위 말하는 방신쿵후(방어쿵후)가 그것인데 마치 물가에서 수영을 배우는 것과 다름이 없다. 비록 여러가지 기술을 배웠다하더라도 물에 뛰어들지 않으면 이 모든것이 쓸모 없는 것이다. 관(도장)에 모여든 사람들은 한번도 싸워보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단지 3cm 두께의 목판이나 아니면 몇장의 벽돌이나 격파해 보고 싶을 뿐이다. 이러한 여러가지가 실질적으로 싸우는데 조금의 도움도 될리 없건만 왜들 그것에 집착하는지 모를 일이다."

● 이소룡은 사람들이 쿵후의 이름을 빌어 대중앞에서 격파술을 보여줄때면 가끔 못마땅한듯이 "저런것이 쿵후와 무슨관계가 있지?" 라고 내뱉곤 했다.

●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숙련시키고 그렇지 못한것은 포기해라.

● 생명이란 잡다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영원히 멈추지 않으며 부단히 절도 있게 움직이는 반면 쉴새없이 변화하기도 한다.

● 만약 당신이 서양복서, 쿵후를 하는사람, 가라데맨, 씨름을 하는사람, 내지는 유도가 등등의 관점에서 어떤 격투광경을 지켜볼 경우, 이격투의 전체적인 것을 보기는 어렵다. 오직 당신이 문파관념을 배제해 버릴 때에야만이 그것을 명확히 관찰할 수 있을 것이며 `좋다` 또는 `싫다` 라는 주관적인 생각을 버리고 눈으로만 볼 때 당신은 그격투의 전체적인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 우자가 지자의 대답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고 말하는 것 보다는 차라리 지자가 우자의 물음에서 더 많은 것을 얻는다는 것이 옳다.

● 어떤 일을 철저히 끝내려면 그것엔 반드시 희생정신이 뒤따라야 한다.

● 자기 극복이 끝났을 때가 성공의 시작이다.

● 진실로 중요한 것은 배워 얻은 내용이 아니라 배워서 얻는 방법, 그것이다.

● 비관주의는 오직 해로울뿐 이로울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 육체는 겉모양이고 성격은 그의 영혼이다.

● 낙관주의는 사람으로 하여금 영광의 길목에서 앞서게 인도해 주는 성경이다.

● 목표의 도달은 종점이 아니라 기점인 것이다.

● 오직 정신을 집중시키며 노력하며, 태만을 떨쳐버리는 것이 성공의 비결이다.

● 무슨 일이든지 심히 고려할 뿐, 행동에 옮기지 않으면 성취 하기 어렵다.

● 성공하려는 이는 반드시 어떻게 싸우고, 어떻게 인내해야 하는가를 배워야 한다.

● 내일 들통날일이라면 차라리 오늘중에 말하여 밝혀버려라.

● 만약 아는것이 힘이라면 인격은 곧 존엄이다.

● 배울 뜻을 품은 사람이면 대개 창조적인 인간이 될 수 있다.

● 인간에겐 반드시 실패를 승인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 어떤 일에 대하여 불가능 하다고 생각하고 행하기를 두려워 하는 것은 곧 한가지 일도 이루지 못함을 뜻 하는것이다.

● 다른이들이 어리석은 일이라고 여기는 것을, 당신이 온갖노력을 쏟아 해나가노라면 언젠가 반드시 그것을 중히 여겨 당신의 성과를 이용하려는 사람이 나타날 것이다.

● 인생에서 가장 진귀한 것은 시간이다. 인생이란 바로 시간과 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 인내란 소극적이고 무기력한 것이 아니라 적극적이며 강렬한 것으로 저항하는 것이다.

● 사랑이란 불붙는 우정과 흡사하며 아름답고 뜨겁지만, 단지 반짝이는 불빛에 불과하다. 사랑이 무르익을 때 마음도 무르익으며 마치 석탄이 타듯이 깊은 곳으로 부터 불타오르며 영원히 꺼지지 않는다.

● 한 색채가 없는 물건을 봤을 때, 사람들은 그 물건의 색채가 곧 자신의 소망과 부합되는 것이라고 느낀다. 그가 빨간색을 좋아하는 경우라면 그것이 빨간색이라고 여겨지고, 그가 노란색을 좋아한다면 그것이 곧 노랑색으로 느껴질 것이다.

● 한 사람이 일생의 정열을 쏟아 예술을 연구할 때 비로소 성과를 얻을 수 있으며 최고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자유는 가장 고귀한 것이다. 인간은 이것을 잃었을 때에야 자유의 중요성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그러기에 인간의 의식이 존재하는 한 가능하면 이 자신의 자유를 마음껏 이용해야 한다.

● 인간을 가장 고뇌하게 만드는것은 `선택`이다. 이런 상황에 처했을 때엔 자기의 애증을 마땅히 포기해야 한다. 그리고 자연에 순종해야 한다. 천국과 지옥사이에 줄이 한가닥 가로놓였을 뿐이다. 만약 당신이 `진리`가 출현되길 원한다면 함부로 `반대`해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고의로 `동의` 해서도 안되며 다만 객관적인 평가만이 존재할 뿐이다. `찬성`과 `반대`ㅡ 이것은 인류의 의식중에서 가장 큰 장애물 이다.

● 지혜란 좋은것을 나쁜 것으로 부터 추출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나쁜 것을 좋은것으로 가려주는 것이다.

● `예술`의 존재에는 필히 `창조자`와 `감상자`라는 두 요소가 있어야 한다. 예술과 미학은 비록 상이한 점이 있긴 하나 그 원류는 같은 것이다. 바꿔 말하며 예술과 아름다움은 모두인간에게 정신적인 쾌감을 안겨주며 동시에 인간의 정신적인 결함을 보충해 주는 것이다.

● 無芸衡의 예술이 가장 고도의 예술이다. 이에 비춰볼 때 예술은 특별한 장식이 필요치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술작품은 예술가의 영혼에 의해 산출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영혼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고 무술을 연습할 때의 모든 거동은 예술의 정화인 것이며 이모두가 미적 세계를 이루는 한 요소인 것이다.

● 만약 어떤사람이 '예술가의 영혼이 예술을 창조한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그 예술가의 영혼은 무엇으로 부터 그 예술적 영감을 얻을까요?'라고 물어온다면 다음과 같이 대답할 수 있지 않을까? '영혼의 깊은 곳에 존재하는 공허로 부터 얻어냅니다.' 라고...

● 한 학생은 다른 한 사람, 즉 지도자가 되기전에 우선 모호한 개념들을 필히 버려야 한다.

● 예술은 인생의 결함을 보충한다. 예술은 단순히 정신, 영혼 및 의식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한발 앞서 예술은 인류의 사상, 감각, 소망 등등의 일반적인 사유를 표현해서 생명의 선율을 창조한다. 예술가는 '소리없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러한 소리들은 생을 조화롭게 한다.

● 예술가의 예술은 부단히 예술가의 영혼의 의식을 반영한다. 그러나 완전한 미를 대표하지는 않는다. 완전미의 예술은 오직 인간의 영혼에서 발달할 뿐이지 어떤 형식이나 형상으로 표현할 수는 없다.

● 예술의 활동은 정지된 것이 아니다. 이것은 각종 예술에 깊이 들어갈 수 있을 뿐더러 상이한 예술을 혼합시킬 수 있어서 그 예술들로 하여금 공허중에서 조화와 충돌을 일으키게 한다.


2. 연무비결

● 연무시에 가장 필요한 것은 인내심이다. 아울러 자유로이 자신의 특기를 발휘하여야 한다. 권술의 방법상, 복잡한 것 보다는 간결하면서도 직접적인 것이 좋다.

● 한 권술가가 단지 한가지의 권술만 연마한다면 어찌 그 한가지 권술의 노예가 되지않으랴?

● 연무의 제일요건은 손발이 빨라야 한다는 것이다. 동작의 신속함은 자유격돌에 있어서 승리의 비결이기 때문이다.

● 기공의 연습은 젊은이에게는 적합하다. 이에 두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 중의 한가지가 러닝이다. 러닝의 원칙은 자신이 만족할 만한 거리에 이르기까지 매일 뛰는 거리를 첨가하는 것이다. 동시에 러닝을 재개할 때에는 숨을 뱉어도 무방하다. 뛰는 속도는 점차 적으로 빨라야 하고 최후의 순간에는 반드시 속도를 가능한 한 더 가해야 한다.

● 뛰고난 후에는 호흡속도가 빨라지는 현상이 생기고 심장의 고동이 가속된다. 이 때, 러너는 괴로움을 느끼게 되나 이것은 체력의 한계이므로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 과도한 체력훈련이 있기전엔 반드시 의사로 부터 신체검사를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심하면 생명에, 가벼우면 무공을 이루지 못한다.

● 무술의 훈련은 필히 끊임이 없어야 한다.

● 격투 연습을 할 때에는 가능한한 많은 목표물을 설정해서 여러가능한 각도에서 목표물을 가격해야 한다. 더구나 이런 연습시에는 필히 민첩하게 실행해야 한다.

● 목의 근육훈련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그 방법상 박경과 담경등이 있다. 수직된 쇠를 가주끈에 이어서 목에 감싼후 목의 힘으로 위를 받쳐세워 목을 좌우로 흔들면서 훈련하면 목의 근육이 발달하게 된다.

● 격투의 방법은 자기 뜻대로의 선택과 기호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격투의 방법은 실제로 시시각각 변화하지는 않으나 오랜 세월을 겪은 사람들도 그가 선택한 연무방법에 가끔 탄력성이 결여 되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 격투는 쌍방의 움직임으로써 이룩된다.

● 격투는 물과같이 잔 속에서는 잔의 모양이 되고 병 속에서는 병의 모양이 되듯 무형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 오직 실질적인 행동에 성과가 있을 것이다. 가령 인기스타가 반드시 노력과 시련을 겪어야하듯, 탐험가가 반드시 험난함을 겪어야함과 같다. 무대에 서보지 못한 사람은 연기를 한다고 할 수 없고 험난함을 겪어보지 못한사람은 탐험가라고 할 수 없다. 이는 연무도 마찬가지이다. 말만으로 떠들어봐야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 나는 어떤 사람이 그의 초식이 남과 다르다고 얘기하는것은 주먹이 나가기 전에 물구나무를 선다든지 몸을 뒤트는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근본적으로 볼때 자연적이고 직접적인 것 외에 또 얼마만큼 다른 스타일을 변화해 낼 수 있을까? '같지않다'함은 가르치는사람이 단지 직선적 발전을 중시한다든가 혹은 곡선적인 발전을 중시하든가 아니면 손을 위주로 하든가 발차기를 중시 하든가 하는 나름대로의 보기에 다를 뿐이다. 내가 보기에는 단지 어떤 한면만 중시하는 문파라도 근본적으로 그 자체에는 많은 제한이 내재되어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기정된 초식이 아무리 실용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배우는 사람으로 하여금 항상 일정한 형식에 얽매이게 하는 것에 불과하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실제로 싸우는데 있어서의 상황이란 고정적인 것이 아닐뿐더러 일정한 범위와 제한도 없나는 것이다. 그것은 수시로 변화한다고 봐야한다. 실질적인 상황에 있어서 어떤 교과서적인 동작만을 가지고 싸우면 그것은 패배를 맛보기에 십상이다.

● 어떤 거다한 적수와 대하였을때에는 첫째 침착해야한다. 상대의 외형에 압도당하여서는 안된다. 다음, 상대의 태세를 정확히 파악하고 강력하게 젓구의 급소를 향해 진격해야 한다. 그리고 속전속결, 이것만이 상책이다.

● 만약 당신이 권투글러브를 끼고 복싱규칙에 따라 시합하려고 한다면 반드시 그 규칙들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권투계에서 생존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거리에서는 좀 다르다. 당신은 발차기와 주먹등 무엇이든지 보다 많은 방법을 동원하여 싸울 수 있다.

● 나에게 있어서 러닝은 한가지 운동일뿐만 아니라 신경을 안정시키는 방법이기도 하다. 아울러 아침의 한시간은 나혼자 조용히 사색 할 수 있는 나 자신만의 시간이다.

● 적수를 격퇴하는 것이 주요목적이고 왜 적수를 격퇴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은 단지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일 뿐이다.

● 적수의 머리를 찬다는 것은 치명적인 것이 못된다. 단타를 중시해야 하며 또한 마땅히 허리 이하에 있는 급소를 차야 한다.

● 허다한 방어술은 단지 사람을 속이는 것에 불과하다. 보기에는 좋을지 모르나 실용적인 것은 못된다. 만약 250파운드의 남자가 90파운드 무게의 한 여인을 괴롭힐 때 그녀로서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곧 상대방의 눈과 아랫배, 그리고 다리를 겨냥하여 맹타를 가하는 것이다. 그런후에는 도망치는 것이 상책이다.

● 영화에서의 쿵후동작들은 실전에서 사용하는 동작과는 다르다. 영화촬영시에는 자세의 미묘함이 요구되기 때문에 가끔 렌즈를 향해 높이 차는 동작을 연출하게 된다. 그러나 나는 실전에 있어서는 신체의 중간부분과 하부를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손쉽게 적을 격퇴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 당신이 가격하려고 하든지 또는 차려고 할 때 상대에게는 반응이 생기게 마련이다. 당신이 압력을 가하자 상대는 반사적으로 당신을 피할 것이다. 이 시점에서 상대방을 타격할 때의 효율성에 관한 문제는 절대로 정확무결한 전통적형식에 의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적중하느냐에 의한다.

● 아름답게, 또한 멀리 찰수 있는 방법을 수련하려고 할 때 필요한 것은 허리의 힘이다. 그것은 다른 한쪽다리로 몸의 중심을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 격투는 탄성적인 것이다. 아울러 올바른 길과 방법은 당신의 예상에 의해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순식간에 변화하는 것이다.


3. 절권도

● 절권도를 기타의 무술과 가리는 한계는 없다. 이것은 일정한 격식을 반대하며 특히 파벌을 가리는 것을 반대하는 일종의 자유스러운 박격술 이다.

● 나에게는 초식이 없는 반면 모든 초식을 지니고 있다.

● 나 자신도 내가 어떻게 칠 것인가를 모르는 사실과 같이 상대도 내가 어떻게 치리라는 것을 예지할 수 없다. 나의 동작은 상대방 동작의 결과인 것이며 나의 무기는 상대방 무기의 귀착이다.

● 절권도는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빠른 교정으로서 수련생들로 하여금 모든 조건을 얻을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느끼게 하는 것이다.

● 절권도의 원칙은 필요한 것들은 받아들이고 그렇지 못한 것은 포기하며 그리고 자신의 특기를 삽입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반 권법들의 속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예를 들면 가라데에서는 자유대련시, 상대와 몸이 접촉한 경우 코치는 필히 떼어놓을 것이며 시합시에도 상대를 너무 심하게 때리면 감점이 되기가 십상이다. 그러나 절권도는 그렇지 않다. 몸과 몸이 접촉함과 동시에 싸우기 시작한다.

합기도와 유도는 다리로 차는 법을 사용치 않으나 절권도는 손발을 모두 사용할 뿐더러 심지어 입으로 물기도 한다. 태권도나 가라데는 모두 올려차기와 돌려차기를 사용하게 하나 절권도에서는 하체의 정강이, 무릎, 다리등을 공격하는것을 중요시한다. 유도에서는 상대의 옷을 잡게하나 절권도에서는 거리의 제한을 두지 않는다. 절권도는 절대로 복잡하거나 허위적인 것을 배제한다. 절권도는 내외가, 음양오행, 좌선 및 기타의 것도 따지지 않으며 어떤 경전이라든지 철학을 바탕삼지도 않는다. 이것은 상대를 격퇴하는 것을 요구하는 예술이다. 절권도를 배우러 오는 이는 마치, 총을 파는 상점에 몰려드는 고객과도 같은 것이다.

● 찻잔의 용도는 그 빈속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것이 곧 절권도 이며 이것이 그 빈속을 어떻게 이용하는 가에 대한 방법이다.

● 일반 무술에 있어서의 자세 따위는 단지 일종의 연출에 불과하다. 실질적으로 적과 맞서 싸울 때에는 이런 자세는 모호하여 지든지 심지어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 절권도에는 특정한 자세가 없다. 단지 가끔 비교적 강렬하고 신속한 수족을 앞세울 뿐이며 대부분 기회를 운용한다. 그러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측 손발을 앞세운다. 그렇지 못한 이는 자신이 편한대로 연마해도 상관없다. 상대에 따라 권술의 운용도 달라지므로 격투에 있어서는 가볍게 또는 빠르게 수족을 움직여야 한다. 이런 경우에는 형식 따위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 가라데에는 형이있고 쿵후에는 권법이 있다. 그러나 절권도는 이러한 제한이 필요하지 않다. 이는 순전히 상대방의 내세와 같이 돌격하는 것이다.

● 쿵후나 가라데에는 공통적인 특성이 있다. 그것은 코치가 제자들에게 요구하는 세뇌와 약속이다. 그들은 일률적인 것을 요구할 뿐, 각개인의 조건등은 요구하지 않는다. 이 무술들에서의 배우는 자로서는 자세를 바로할 줄 알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그리고 또한 이 무술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권형을 중시하는 것이다. 가라데를 배우는 사람들은 6개월 정도가 되면 사향전이나 36수를 터득하기를 갈망한다

그러나 이것은 점차적으로 허영적인 경향으로 자신을 몰고가게 된다. 기실 세심히 관찰하기만 하면 심오한 권술을 터득하는 것은 별로 어려울게 없으나 그것이 곧 고수가 된 증거라고는 할 수 없다. 가라데의 형은 쿵후의권법 보다 훨씬 간소화 되었다. 비록 이것이 시대적인 추세라 할지라도 절권도는 이에 구애받지 않으며 한걸음 더 앞서는 것이다.

● 일반권술의 목적은 몸을 단련하는데 있다. 그런 까닭에 오랜 세월을 두고 연마해야 한다. 그러나 절권도는 순수한 격투술이다. 이것은 상업사회의 산물이며 고도의 경쟁성적인 것이기도 하다.

● 절권도는 제한을 받지않기 때문에 규칙이 없다. 일정한 형식과 동작도 없으며 무술, 또는 기타의 것과 대조해 볼 필요도 없다.

● 절권도의 가장 중요한 점은 자아의 출현이다. 그러므로 우선 자기자신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 절권도는 최소한의 동작으로서 최대한의 효과를 얻는 것이다.

● 절권도를 배우는 것은 결코 지식을 추구한다든지 각 문파의 권술을 수집하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각개인의 무지와 소재를 밝히는 것이다. 만약 절권도가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고 생각되면 차라리 이에 대한 언급을 안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절권도는 단지 하나의 명칭에 불과하며 언제나 무너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여기에 대하여 크게 설명할 필요는 없다. 절권도는 사람들로 하여금 배우게 하고 모방하게 하는 문파가 아니다. 이것은 자신이 격투동작의 사상및 철리에 관한 것을 수집하고 이와 더불어 발전하는 것을 의미하는 기본개념인 것이다.

● 절권도는 자유가 항상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믿는다. 절권도는 축적된 과정을 통해서 얻어지는 무술이 아니다. 우리는 '이다음에 어떻게 된다' 라고 하기보다는 차라리 '지금은 어떻다'라고 말한다. 무술의 연마는 과거보다는 현재의 심령을 견향하는 것이며 전환한 상태는 오직 현재의 상태일 뿐이지 미래의 상태가 아닌 것이다. 이런 종류의 상태는 생각만으로 이상과 목적에 도달되는 것이 아니다. 견고한 형식과 신비스러운 심령의 단련은 내공에 대해서도 별반 이익이 안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심령의 폐쇄를 도울 것이다. 내공을 연마하든, 외공을 연마하든 이런 것을 논할 필요도 없다. 절권도의 기술은 신체를 속박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을 해방시키는 것이므로.

● 1965년에서 1969년까지 5년동안 나는 전력을 기울여 가장 어려운 동작들을 연습했다. 이러한 것 외에도 나는 매일 달리기를 했다. 이 모든 것은 절권도라는 하나의 형식을 이룩하기 위한 것들이었다. 나는 젊음에 도취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절권도의 동작은 민첩하며 능률적이라고 느꼈기 때문에 이렇게 내 자신을 송두리째 그것에 던질 수가 있었다. 이것은 나의 일생을 통하여 볼때 큰 사건이 아닐 수가 없다.

● 무술에 대한 나의 연구와 단련은 계속되어 왔다. 내가 중국 무술의 원류를 알고자 했을때 나에게는 큰 의문이 생겼다. 어느파의 무공이든 모두 그들의 권술과 형식이 있는데 이런 기정화된 형식은 과연 그 파의 창시자의 뜻으로 이룩된 것일까? 하는 의문이었다. 나는 절대 그런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철학을 초월한 그 어떤 것이든 간에 형식이란 오직 진보의 장애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형식들은 후세사람들이 첨가한 것이다. 파를 창시한 자는 그의 무공실력 면에서 특히 남보다 뛰어났을 것이고 남보다 총명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창시자의 의지와 성취가 총명함과 의지력을 지닌 후계자가 없으므로 하여 계속적인 발전을 하지 못한채 형식화의 유입을 면치 못하게 되었고 발전의 길은 막히게 되었다. 더구나 또다른 발전을 기대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되고 말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나로 하여금 과거에 익혔던 갖가지 형식을 버리도록 하였다. 사실 나는 나 자신이 터득한 국술에다 다른 명칭을 붙이기는 싫었으나 편리를 위해 절권도라고 명명 했다. 그러나 내가 강족하고자 하는 것은 절권도는 다른 무공과 분계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기정된 형식과 파벌을 반대하기 때문이다.

● '절권도'란 무엇인가? 나로서는 한마디로 이것은 쿵후이다 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문파의 분계가 없는 무술이며 무술 자체가 형식화에 유입되는 것을 반대하는 쿵후이고 전통으로 부터 해방되어진 쿵후라고 말하고 싶다. 격투술을 연습함에 있어 가장중요한것은 體와 용(用)의 두가지 측면인데 체는 곧 기초이다. 좋은 기초가 있어야 用의 측면에서 손과 마음이 일치되기 때문에 신체의 단련은 어떤 형식보다도 중요하다. 그러므로 빠름과 굳셈의 신수 및 힘의 지구력은 연무에 있어서 가장 올바른 것이다. 절권도는 모든 형식적인 것의 속박을 버리고 두뇌를 사용하여 공격 또는 반격해야 함을 강조 한다.

만약 어떤 타법을 "이소룡의 절권도"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우스운 일일 뿐이다. 내가 절권도라고 명명한 저의는 단지 신속함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만약 반드시 나의 동작을 무슨 도라고 불러야 겠다는 사람이 이싸면 내자신 이것이 절권도라고 가르쳐주고 싶다. 바로 영화 '정무문'에서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했던 러시아권법가의 다리를 입으로 덮석 물어버린 초식 말이다. 절권도에는 어떤 고정된 형식이 없다. 그것은 단지 적이 움직이지 않으면 나도 움직이지 않으며 적이 움직이려 할때 내가 먼저 친다는 것, 오직 목적을 추구할 뿐 형식은 무시하며 그리고 신체사지의 힘에 대한 발휘 및 운용을 연습할 뿐 딱딱한 권술 같은 것에 구애받지 않는다.

● 절권도의 요지는 '무한으로서 유한을 상대하고 무법으로서 유법을 상대하라' 이다.



4. 쿵후

● 쿵후란 곧 '최소한의 동작으로서 최대의 고통을 만드는 것이다.'

● 전통적인 쿵후는 반드시 간화하고 직접적인 방향으로 개량되어야 한다.

● 비록 아름답기는 하나 너무나 형식이 많다.

● 너무 인공화, 기계화 되어서 배우는 이들에게 실질적으로 싸우는데 필요한 쿵후를 가르칠 수 없다. 정적이고 규칙적인 형식을 따지다 보면 저버리는 경우가 많다. 전통적인 이러한 형식은 내가 보기에는 실질적인 것이 못된다.

● 공격의 여하를 막론하고 우리는 단한가지의 동작으로도 대처하기에 족하다. 이것이 곧 쿵후의 간결성이다. 진정한 쿵후가 가르치는 것은 신속한 동작 하나로서 전체적인 일을 해결하는 방법이다.

● 쿵후는 단지 순간적으로 이탈하는 기술을 가르친다. 이를 우리 중국어로는 '간결' 이라고 한다.

● 현재의 쿵후는 실질적인 이론이 아닌 것과 형식에 치우친 형식이 지나치게 많다.

● 쿵후는 일종의 특수한 기교이며 정교한 예술이지, 단순한 하나의 체력활동이 아니다. 이것은 반드시 심지와 기교를 배합시켜야 하는 정묘한 예술이다. 쿵후의 원리는 배워서 얻은 것이 아니다. 과학분야와 마찬가지로 실증하는 과정에서 취득할 수 있다. 반드시 한송이 꽃과 같이 자연에 순종해야 할 것이다. 감정과 욕망의 사상을 해탈하는 속에서 나타난다. 쿵후원리의 핵심은 곧 道이다. 또한 이것은 우주의 자발성이다.

● 어느날 주먹으로 바닷물을 치다말고 나는 갑자기 "물, 이러한 가장 기본적인 것이 곧 쿵후의 요의가 아닌가?" 하고 깨달았다. 이러한 보잘것 없는 물이 나를 위해 쿵후의 원리를 설명하여 준 셈이다. 비록 주먹으로 친다 하여도 물은 상처하나 생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잡으려해도 잡히지않지 않는가! 물! 이것은 가장 유명한것이다. 갖가지 용기에 적용할 수 있으니...그렇다. 나도 필히 물의 본성을 터득하여 그와 같아야 한다.

● 갑자기 한마리의 새가 지가치면서 그림자를 물에 드리웠을때 어떤 숨겨진 의미가 나의 머리에 떠올랐다. 그것은 내가 적수앞에 서있을 때 나의 모든 사상과 감정은 물에 반사된 새의 그림자와 같은것이 아닐까? 이것은 곧 엽(葉)사부님이 말씀하신 초연적이란 뜻인것이다. ㅡ 감정과 감각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으로 하여금 멈춤과 장애를 받지않게 하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자아를 억제해야하며 자연에 순응하듯 자기를 받아들여야 한다.

● 쿵후는 가장 오래된 격투방법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강신사상의 계발 및 자기방어등의 작용이 깃들어져 있다. 신비스러운 장막으로 가려져 있었기 때문에 외계에서는 거의 쿵후가 무엇인지를 몰랐었다.

● 쿵후는 약 5천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초기시대의 쿵후는 단지 어떠한 제한없이 격투하는 것에 불과했으나 수백년 후 여러대를 내려오면서 사람들에 의해 점차적으로 완성되어왔다. 거칠은 부분을 없애고 각종 기교를 개량했으며 결국 모든것을 능가하는 예술로 등장 시킨것이다. 쿵후는 대부분 승려나 도사들에 의해 익혀, 사용되었기 때문에 이들의 사상과 동작의 결합체로서 보게 되었다. 그들이나 아니면 열심히 배우는 사람들로서는 쿵후는 일종의 격투방법도, 살생에 주요목적이 있는 것도 아닌 일종의 도가와 불가의 철리를 함축한 철학의 일부분으로 여기게 된 것이다.

● 쿵후는 다음의 두가지로 크게 분류할 수 있다. 그 한가지가 양강이고 또한가지는 음유이다. 소위 양강이라는 것은 속도, 동작의 배합 및 체력의 발휘에 중점을 둔다. 격파라든지, 빠른 동작으로 몇초사이에 적을 제압하든지 하는 것들은 이 양강이 외공을 중요시 한다는 증거인 것이다. 양강은 강과 맹을 동시에 추구하므로 공격성이 짙다. 소위 음유라고 하는 것은 그 반대로 중화와 사상과 육체의 융합등을 중시한다.

이 음유는 내공을 중요시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유와 연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상의 두가지 쿵후에는 모두 상당량의 가와 유가 포함되어 있는 셈이다.위에서 말한 두가지의 쿵후는 다시 수백가지의 문파로 나눌수 있으며 그들 각 문파들은 글들 나름대로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 간략하게 몇몇 문파의 이름을 들어본다.

○응조공-권과 장이 유명하다.

○당랑권-팔과 발차기를 중시한다.

○태극권-유로 유명

○채이불권-역도와 구전을 중시

○팔선보-보법을 중시

○백학파-초식이 아름답다.

● 중국인에겐 이 쿵후는 일종의 思와 行이 융합된 정묘한 예술이다. 쿵후의 원리는 습득만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다. 그것은 과학분야에서와 같이 반드시 사실에 입각하여 서만이 얻어질수 있는 것이며 마땅히 한송이 꽃과 같이 무정무욕의 사상중에서 자연적으로 생각하여야 한다.

● 쿵후는 진(眞)을 추구해야 한다.


5. 쿵후와 타무도와의 비교

● 쿵후는 매우 우수한 무술이다. 이는 가라데와 유도의 선조이며 가라데와 유도보다도 더욱 완미한 것이다.

● 가라데의 일격은 철봉으로 일격을 가하는 것과 같으나 쿵후는 마치 쇠줄에 달린 철구로 일격을 가하는 것과 같을 뿐더러 그 충격은 인체 내부에 까지 이른다.

● 쿵후의 용법은 매우 잔인하다. 우린 흔히 그것을 중국식용법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적수가 위에서 공격하여 오는 경우 하부의 생식기에 반격하기도 하는 것이다.

● 유도는 일종의 예의에 쫓고 쫓기는 무술에 불과하다. 허나 쿵후는 가장 짧은 순간에 간단한 동작으로 순간적으로 상대를 격퇴할 수 있는 무술이다.

● 당신의 손이 상대방에게 잡혔을 때 만약 당신이 유도를 배운 사람이라면 우선 자세를 바로잡고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각종 테크닉을 구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얼마나 복잡한가!

● 당신이 등뒤로부터 상대방이 양손으로 당신을 잡고 있을때 쿵후는 단지 발뒤꿈치로서 힘껏 밟기만 하면 그 상태로부터 풀려 날 수 있다. 물론 당신은 유도식으로 어떻게 멋지게 처리하여 친구들에게 위세를 과시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 쿵후문파, 또는 태권도, 가라데 및 기타의 무공문파들은 비록 그 파 나름대로의 자기의 형식 및 동작들이 있지만 근본적으로 볼 때 모두 완전치 못한 격식들을 즐기고 있다. 이에 그 문하생들은 그저 항상 그것만 배우고 나면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고 만다.

● 가라데를 배우는 이들은 모두 우렁찬 소리를 지르며 반격하는 것을 중시할 뿐이지 마땅히 신속하게 적수를 물리쳐야 하는데도 어떻게 유동적으로 상대에 대처하느냐 하는 것엔 주의하지 않는다. 가라데사범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적수가 하는대로 한 연후에 이렇게 또는 저렇게 행동해야 한다." 이러한 많은 것들을 기억해 낼 동안, 당신은 적수로 부터 결정타를 맞을지도 모른다.

● 쿵후의 공가와 가라데의 자위술은 모두가 적수를 나무토막처럼 본다. 특히 쿵후는 자유격투를 장려하지 않는다. 마치 축구에서 공차기를 하면서 공이 없듯이, 만약 축구선수들이 공이 없이, 킥연습을 한다면 우리로선 얼마나 정확히 또는 멀리 찰수 있을지를 알수 없다. 이와 같이 무술도 배우기만 하고 싸우지 않으면 우리또한 그의 주먹이 얼마나 빠른가? 정확한가? 그리고 거센가도 일 수 없는 것이다. (심지어 그가 담력이 있는지의 여부까지도.)


6. 무술이론

● 무술가는 마땅히 사상적으로 해방되어야 한다. 내가 그렇다.

● 어떠한 권력가도 마치 자기가 인류지혜의 정상에 도달한 사람인것처럼 생각해서는 안된다. 항상 의문을 품고 있어야 하며 지나치게 어느 것이 옳다고 긍정하여서도 안된다.

● 소위 "모가모파(某家某派)는 반드시 어떠해야한다"는 것은 전혀 주시적인 생각이다.

● 강과 유, 그리고 외와 내가 상대를 이룬다는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음과 양은 실제로 전체적인 두 부분이며 서로간에 지닌 중요성도 균등할 뿐더러 상호 의존해야 하는 것이다.

● 쿵후는 물과같이 무형적이며 무극적인 것이다.

● 쿵후의 성질은 액체와 같기에 유동성이 크다. 어떤 움직임 하나 만으로는 정지되지 않으며 언제나 부단히 다른 동작에 연결된다. 나는 쿵후를 물에 비교하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고 여긴다. 왜냐하면 물이란 가장 유연한 것이며 아무곳에나 스며들 수 있고 저항을 위한 저항이 필요치 않기 때문이다. 고금을 통해본 무술가는 모두가 '물과같이 유연하게 상대방의 동작에 대응할수 있는 것'을 목표로 하고있다.

● 격파에 대한 나의 의문은 '벽돌도 사람과 싸울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것은 모두 장난에 불과하다. 격투에 있어서 상대방은 벽돌처럼 때려주기만을 기다리지 않는다.

● 과거에는 발쓰는법을 그리 중시 하지 않았으나 지금은 다르다. 훈련된 발은 확실히 강하다. 힘을 조금만 더한다면 주먹보다 그것이 무게가 강하다.

● 발은 멀리 찰 수 있기 때문에 보다 큰 충격을 준다.

● 서양인들은 대다수가 열심히 주먹을 '철권'이 될수 있게끔 연습한다. 그러나 실제로 격투장소에서는, 만약 상대가 무기를 지녔다면 발을 사용해야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발 쓰는 법이 큰 비중을 차지 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 손에 쥔 단검을 빼앗기란 힘들 것이나 발로차서 단검을 지닌사람을 쓰러뜨리는 것은 쉽다. 왜냐하면 사람은 두다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차는 각도를 쉽게 상대가 파악할 수 없기때문에 방어하기에 어렵다.

● 4년에 걸치는 엄격한 쿵후 훈련후에 나는 유와 강을 정복할 수 있는 이치을 깨달았고 이해하기에 이르렀다.ㅡ 이것은 즉 어떻게 하면 상대의 힘을 빼게 하고 자기의 힘을 아끼느냐 하는 방법인데 이 모든것은 우선 심령의 안정을 얻은 후에라야 가능하다. 듣기엔 쉬우나 실천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일단 싸움이 시작되면 마음은 청명함을 유지하기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몇차례 격투를 벌인 후면 유의 이론은 잊어버리게 되고 오직 뇌리에 떠오르는 것은 어떻게 하든 상대를 제압해야 겠다는 생각으로 충만하여 지기 때문이다.

나의 사부 엽문선선생은 영춘문파의 최고의 고수이다. 어느날 사부님이 나한테 말씀하시길 "소룡아! 자신을 구속할 필요는 없다. 우선 정신을 가다듬은 후 자기자신을 잊고 상대의 초식을 주의해야 한며 그리고 상대에게 가하는 반격은 본능 적인 것이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초연함을 배워야 함이다."
그렇다! 나는 자신을 구속치 말아야 한다. 그러나 이를 행하려면 나는 의지력을 또다시 운용해야만 한다. 말하자면 이를 행할 경우에 '~야 한다`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힘은 곧 '구속치 않아야 한다.'의 정의에 위배되는 것이다. 나의 이런 자각이 상당한 정도에 이르렀을 때 나의 사부님은 나에게 또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소룡아! 자신을 자연에 순응하게 하여라. 자신으로 하여금 절대로 자연에 대하여 저항하게 하여서는 안된다. 그리고 어려운 문제일수록 더욱 그 흐름에 순응시키면서 공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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