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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이면 착하기만하고 당하고 사는 모습들이 머리속에 떠오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양심을 잘 하는데 무능하다는 것이 맞는 이야기 일까요? 윤홍식 대표가 쉽게 이야기를 주십니다. 인의예지의 균형이 중요하네요. 관심이 있으신 분은 첨부된 양심노트를 다운 받아 본인의 문제를 한번 풀어 보십시오. 무엇인가 안 풀린다면 놓치는 부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질문자 : 지도자가 양심은 있는데 무능해서 방향제시를 못하는 그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런 것도 양심적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까요?

 

- 윤홍식 대표 답변 : 양심적인데 재능이 없다 라는 것도 문제입니다. 양심적이기만 하고 재능은 없어도 되느냐? 그런게 아니라 재능이 있는 사람 중에 제일 양심적이거나 양심적인 사람 중에 그 일에 재능이 제일 잘 맞아야 효과가 나겠죠. 그런데 이런 것도 있어요. 양심적인 것 같은데 양심을 체계적으로 연구하지 못하면 부분적인 양심에 빠져서 크게 망치는 수도 있습니다. 쉽게 말 할 수 없는 것이지요.

 

『논어』에 보면 양심의 6단계가 나와요. 내가 15세에 '지우학'(志學)을 했고 하는 것이 공자님이 평생 연구한 것을 나이별로 설명해 놓은 양심의 단계입니다. '이립'(而立), '불혹'(不惑), '지천명'(知天命), '이순'(耳順), '종심'(從心)까지 가는 것이 양심의 계발 단계인데, 이 부분에서 우리가 영성지능이 좀 있다, 양심적이다 라고 해도 그 분이 과연 지금 인의예지에 맞게 판단을 내렸는지는 또 따져봐야 하거든요.

 

예를 들자면 성리학이 우리나라를 망쳤다라고도 하는데요. 그런 부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리학을 했건 어쨌건 간에 양심에 문제가 있을 때 문제가 생기지요. 양심적이지 못했던 부분이 있어서 그렇게 문제가 생겼을 것입니다. 완전한 양심이라는 것은 인간사에서 힘들기 때문에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되고 문제가 생겼을 때, 양심으로 했는데 문제가 생긴 확률보다는 무언가 양심에서 빠지는 부분이 있었을 거라는 겁니다.

 

그래서 나눠드린 것이 그런 것을 체크하는 체크리스트(양심노트)입니다. 내가 아무리 양심적으로 보여도 이 체크리스트를 적어가면서 빠진 것을 보완하자는 것입니다. 저희는 언제든지 함정에 빠진부분이 있을 거라고 보고 끝없이 단련하자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공자님이 말씀하신 6단계를 하나씩 하나씩 정복해 가는 것을 도와드리는 방법론이기 때문에, 가정을 양심잘 한다고 하는 것이 저는 무리라고 봅니다.

 

인간의 역사에서 이런 공부를 잘 안했는데 왜그러냐 하면요. 우리가 양심을 이야기 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본인도 양심적이라고 생각을 하고 계세요. 그래도 내가 죄는 안짓지 않았나라고요. 양심이 공부가 잘 안되는 이유도 대부분은 웬만큼 한다고 생각하시는 것 때문입니다.

 

그런데 체계적으로 들어가 보면 어렵고 쉽지 않습니다. 지금 제가 드리는 말씀이 여기 계신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해야 하는데요. 인간에 대한 이해라든가, 제가 가진 정보의 명확성, 여러분 개개인의 사정을 제가 다 모르거든요. 현실이라는 것은 늘 정보가 불확실하다는 겁니다. 잘한다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공자님이 맞다고 보는 것이 『논어』에 보면 늘 못한다는 얘기만 하세요. 어느 바이블에도 그렇게는 안 되어 있죠. 나만 따르라하고 있는데, 공자님의 바이블을 보면 내가 동생한테 원하는 것을 가지고 형한테 못하고, 자식한테 원하는 것을 가지고 아버지한테 못하고, 친구한테 원하는 것을 가지고 다른 친구한테 못하고 등등 이런 얘기를 쭈욱 합니다.

 

아래 사람한테 원하는 것을 가지고 내가 윗사람한테 다 못해준다. 잘한다는 얘기를 아예 하지 않으세요. 저는 이런 태도부터가 하나의 교육이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잘한다라고 가정하는 것이 상당히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공자님이 70세에 도달했다는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慾不踰矩), 즉 욕심이 꼴리는대로 해도 양심에 어긋나지가 않더라는 경지를 우리의 목표로 삼으시면 좋고, 그게 쉽게 도달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또 그런 경지를 얻었다고 하는 본인도 늘 부족하다고 하고 있기 때문에 계속 노력을 하시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상당히 양심적인데 늘 치이고 살아요. 그러면 원가 양심에 문제 생기는 것이 있어서 그런 것입니다. 중력법칙처럼 심리법칙이 있어서 어떤 사람이 착한데 자꾸 사기를 당해요. 잘 보면 인의예지중에서 빠지는 것이 있습니다. 지적인 부분에서 빠지고 있습니다. 자명함을 덜 생각하고 움직이고 있다는 거죠. 남에 대한 어떤 배려심 때문인데 이럴 때 우리가 겉으로 보면 양심적으로 보이지만, 양심에서 볼 때는 안 맞아요.

 

양심경영의 노하우가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누구나 다 웬만큼은 하지만 잘한다는 말은 하기 힘듭니다. 『중용』에 이런말이 나와요.

 

"이 도라는 것은 아주 평범한 부부도 알고 있는 거지만, 그 극치에 가면 성인도 모르는게 있다."


이것이 제일 맞는 말입니다.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도 알아요. 인의예지가 동물한테도 있다는게 조선 성리학의 입장이예요. 다만 인간이 제일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이 그렇게 않했을 때는 짐승만도 못해진다. 이게 조선 성리학의 큰 핵심입니다.

 

그러니까 끝없이 공부해도 잘한다고 말하기 힘든 부분이고 잘 한다고 하는 순간 또 양심에 어긋나게 되는 미묘한 공부가 양심공부입니다. 이 느낌을 아시면 좋겠습니다.

 

 

시간 되시는 분은 아래 양심노트 양식을 다운 받으셔서 본인의 사안에 한번 적용해 보십시오.

 

양심노트 양식.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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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마을에 가서 추장의 집을 찾으려거든 마을에서 제일 허름한 집을 찾아가면 된다는 말이 있다. 부족사람들의 일을 챙기다 보니 자신의 살림조차 제대로 챙길 수 없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낮에는 부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해야지, 밤에 집에 등짝이라도 붙이려고 하면 사람들이 찾아와 ‘이 일 어떻게 하면 좋냐?’고 도움을 청하기 일쑤이다. 심지어 잠자고 있는 새벽 4시에도 찾아와 도움을 청하는 것이 마을 사람들이다. 그렇게 마을 사람들의 어려운 일을 들어주고, 해결해주다 보면 자기의 생계를 위해 일할 시간이 부족하다. 

그래서 추장이나 주술사들은 가난하다. 그들이 결코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닌 것이다.

 

물론 마을 사람들은 일을 도와준 지도자들에게 감사하다며 먹거리며 옷가지 등을 손수 만들어 선물로 가져온다. 하지만 추장이나 주술사들은 그것들조차 자신보다 더 어렵거나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지도자의 자리는 고달프고, 힘든 자리다.

 

그럼에도 많은 아메리카 젊은이들이 추장이나 주술사 같은 지도자가 되기를 꿈꾸는 것은 지도자는 이웃과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는 자리임을 알기 때문이다. 인디언들이 정치야말로 ‘최고의 영적인 행위’라고 말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2. 북미 이로쿼이 인디언들은 여인들이 지도자를 뽑는다. 그녀들은 부락에서 자라는 아이들을 어려서부터 주의깊게 관찰한다. 아이가 친구들과 잘 노는지, 여자아이를 놀리거나 울리지는 않는지, 또 남의 물건에 함부로 손을 대거나 말을 거칠게 하지는 않는지, 동생들을 데리고 잘 노는지, 또는 쓸데없이 칭얼대거나 짜증을 내지는 않는지, 아이가 유순하고 착한지, 아니면 심술궂은지 등등.... 


그렇게 어렸을 적부터 아이들을 면밀하게 관찰한 다음, 그 아이들이 커서 성인이 되었을 때 그중에서 지도자를 뽑는다. 그때 어렸을 적에 동생들을 때리거나 여자아이들을 못살게 군 적이 있는 아이들, 또 쓸데없이 짜증을 잘 내거나 칭얼대던 아이나 유달리 욕심이 많았던 아이들은 우선적으로 지도자의 후보에서 제외시킨다. 


비록 어린 시절의 그런 좋지 않은 품성을 털어버리고 훌륭한 젊은이로 자랐다고 해도 어린 시절의 그런 품성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런 습성들이 잘 다스려진 것처럼 보이지만, 지도자의 자리에 오른 뒤 힘을 갖게 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린 시절의 못된 성질들이 다시 나올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들은 어려서부터 착하고 성격이 원만하고 동생들을 잘 챙기며, 어른들의 말에 순종하고, 부락의 일에 헌신적으로 나섰던 아이들 중에서 미래의 지도자를 점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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