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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의학, 명리학

명리학과 대조되는 학문으로 성리학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명리학은 命의 이치를 탐구하는 학문이고 성리학은 性의 이치를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성리학이 性이라고 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마음의 구조와 기능에 관심이 있다면 명리학은 命,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의 구조와 기능에 관심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性에는 차이가 없지만 命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사람마다 命이 다 다르다. 일단 이것을 전제하고 들어갑니다.

오행이라고 하는, 우주를 구성하는 다섯 가지 기본적인 작용력이 있습니다. 그것들이 인간의 마음에서 활동할 때는 다섯 가지 기본적인 욕망으로 나타납니다. 명리학에서는 그것을 공부, 자기애, 말, 돈, 명예라고 해석합니다. 이 다섯 가지 욕망은 서로 억제하거나 도와주면서 마음이 흘러가는 기본 동력을 제공합니다. 

음양오행


공부는 자기애를 生해줍니다. 자기애는 말을 낳습니다. 말은 돈을 낳고 돈은 명예를 낳습니다. 그리고 다시 명예는 공부를 낳습니다.

공부를 하면 자기를 더 사랑할 수 있습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말을 낳습니다. 말이나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일을 만듭니다. 그렇게 활동이 구성되면 돈이 흘러들어오고, 이것을 바탕으로 활동의 범위가 더욱 확장되면서 명예를 낳습니다. 그 이름값을 하기 위해서는 또 공부를 하게 되나요? 뭐 그렇기도 하지만 일단 활동의 범위가 확장되면 현장에서 부딪히는 문제들의 강도가 점점 높아지고 자연스럽게 공부에 대한 열망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겠죠.

공부는 말을 제어합니다. 말은 명예를 제어합니다. 명예는 자기애를 제어합니다. 자기애는 돈을 제어합니다. 돈은 공부를 제어합니다.

공부는 말을 제어합니다. 깊이 공부한 사람은 말을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좋은 측면이고 나쁜 측면에서 해석하면 책을 너무 많이 읽으면 자기의 말을 뱉어내는데 어려움이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말은 명예를 제어합니다. 말이 많은 사람은 명예를 실추시킬 가능성이 큽니다. 아니면 자기의 말, 아이디어, 이론을 생산하는데 욕심이 있는 사람은 어떤 단체나 조직에 가담할 여가가 없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명예는 자기애를 제어합니다. 

명예는 기본적으로 사회 지향적입니다. 이름에 따라오는 사회적 책임감, 의무들은 자기중심성을 벗어나게 합니다. 권력욕이 강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가 어렵습니다. 자기애는 돈을 제어합니다. 돈은 내 삶의 물적 토대입니다. 기본적으로 내가 소유하고자 하는 것, 내가 일구어서 내게로 가지고 오는 것이 돈입니다. 그런데 재욕이 너무 강하면 오히려 돈에게 부림을 당하기도 합니다. 돈은 공부를 제어합니다. 돈을 벌려고 일하다 보면 책 읽을 시간은 없죠. 서로 시간을 두고 다투는 사이입니다.

몸에서도 특정 장부에 기운이 치우쳐 있어서 기운이 잘 돌지 않으면 고통과 질병을 유발합니다. 마찬가지로 마음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욕망들의 태과불급으로 인해서 마음이 잘 흐르지 못할 경우에도 고통이 따라옵니다. 명리학은 고착화되기 쉬운 그러한 인간의 욕망을 잘 다스려서 마음을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앎의 체계, 마음의 의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리학의 기본인 태극도

태극도가 음향오행설을 재미있게 보여주는 도표


양지성리학과 음지명리학


음양오행 사상으로 인간과 우주를 총체덕으로 설명해 주는 도표가 태극도(太劇圖)이다.

즉 사주팔자를 보는 명리학자의 우주관이나 성리학자의 우주관이 똑같다. 

태극에서 음양이 나오고 오행에서 만물이 성립되는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설명도표가 태극도이다. 태극도는 성리학자(性理學者)들의 우주관을 압축시킨 그림으로서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기 때문에 조선시대를 대표하는성리학자들이 노두 태극도에 관심을 두어 많은 저술을 남겼다.

퇴계의[성학십도(聖學十道)], 남영의[태극도여통서표(太極圖與通書表)], 송구봉의[태극문(太極問)], 우암의[태극문(太極問)],  한강의 [태극문변(太極問辨)],  사마헌의 [태극도설문답(太極圖說問答)], 화사의[태극설(太極說)],  노사의 [문답류편(問答類編)] 등이 모두 그것이다. 

주자성리학에서 도를 통했다는 의미는 바로 태극도를 완만하게 이해하는 작업 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명리학의 기본 원리인 태극도는 명리학의 기본 골격을 완벽하게 요약하는 이론으로서 바꾸어 말하면 사주 팔자를 보는 명리학자의 우주관이나 성리학자의 우주관이 완벽하게 똑같다.

조선시대에는 태극도의 음양오행원리에서 역사의 변천이나 왕조의 교체, 그리고 인간의 운명을 해석 했던 시대이다. 

성리학은 인간 성품의 이치를 다루는 학문이고, 명리학은 사람 운명의 이치를 다루는 학문이다.
또한 성리학은 체제를 유지하는 학문이고 명리학은 체제를 저항하는 반체제 술법이 되었으며, 성리학은 태양의 조명을 받아 양지(陽地)의 역사가 되었고, 명리학은 달빛의 조명을 받아 음지(陰地)의 잡술(雜術)이 되었다.  

명리학과 성리학의 상관 관계를 추적하면 진단(陳摶)과 서자평의 인간 관계가 예사롭지 않다. 
진단은 태극도를 중국 화산(華山)의 석벽에 각인하여 후세에 전한 인물이다. 태극도가 성리학자에게 전해진 것은 진단의 덕택이다.

그는 북송(北宋) 초기의 저명한 도사(道士)이다. 
후당(後唐) 때 무당산(武當山)의 구실암(九室巖)에 은거하며 신선술을 연마 하였으며, 북송 초기에 화산으로 옮겨와 살면서 여러 은사들과 교류하였다.

이때 화산에서 같이 수도한 인물이 바로 명리학의 완성자 서자평이다.
그래서 서로가 영향을 주었고, 상호 보완 관계이고 같은 패러다임으로 볼 수 있다. 

조선시대의 사주팔자 - 이는 개인의 길흉화복을 예측하는저술 이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 체제를 전복하려는 혁명가들의 신념 체계로 작동 하였다는 사실이다.

신비적인 것이 합리적인 것이고, 종교적인 것이 곧 정치적 이라는 명제를 확인한 셈이다.


명리학(命理學)이란 인간의 사주팔자인 생년월일시를 천간/지지로 조합하여 오행(五行)으로 변화시키고 다시 그 오행의 상생(相生)과 상극(相剋) 및 용신(用神) 관계를 운로에 접목시켜 운명(運命)의 길흉화복을 판단하는 것이며 사주학(四柱學)이라고도 한다.


고대 중국에서는 주역에 의한 음양(陰陽)의 학설이 먼저 존재했으며 춘추전국시대에 비로소 태양계의 오행성으로 운명(運命)을 판단하는 오행의 학설이 전해졌다. 특히 명리학(命理學) 이 태어난 년월일시의 간지를 가지고 시간을 기록하기 시작한 것은 서기 126년 이후의 일이며 역학(易學)의 중심으로 발전하게 된 시기는 중국의 당(唐)나라 이후로 보인다.


명리학(命理學)은 고대 천문 역법(曆法) 및 점성술의 발전과 기원을 같이하며 역사적 체계는 전설시대인 삼황오제(三皇五帝) 시대와 하나라-은나라-주나라 시대를 시작으로 발전을 거듭하여 당나라-송나라에 이르러 빛을 발하게 된다.


이는 당시까지는 년주(年柱)를 위주로 사람의 운명을 판단하였던 것을 당나라 말 송나라 초 이허중(李虛中)이 연월일시의 육십갑자로 사주기둥을 세우고 사람의 운명을 감정하였으며 그 후 송나라에 이르러 서자평(徐子平)이 년주 위주의 명리학을 일주를 위주로 하는 법을 만들어냄으로써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전설시대, 삼황오제(三皇五帝) 시대를 말하며 오제(五帝)의 태호 복희씨(太昊伏羲氏)는 팔괘(八卦)를 만들고 수(數)를 가르쳤으며 새끼의 매듭을 사용하여 문자대신 사용하였다. 또한 혼인 제도를 정하고 사냥법과 가축 기르는 법을 가르쳐 백성의 생활을 윤택하게 하였다.


하(夏)나라, 요순시대 천자였던 순이 우(禹)에게 천하를 물려주었고 우에 의해 하(夏)왕조가 세워졌으며 17대 걸(桀)에 이르기까지 472년(BC 1600년 무렵까지)동안 존속되어온 중국 최초의 왕조이다. 하(夏)왕조의 시조인 우(禹)는 홍수를 다스리는 데 헌신적으로 노력하였으며 그 공으로 순이 죽은 뒤 제후로 추대 받아 천자가 되었다.


은(殷)나라, 은(殷)나라의 정확한 명칭은 상(商)이며 당시의 문화세계였던 화북(華北)에 군림하였던 실재의 왕조다. 따라서 상(商)은 고고학적 연대를 확인할 수 있는 중국의 가장 오랜 국가이며 상나라 전기는 기원전 1600년부터 1300년까지이고 도읍을 은(殷)으로 바꾼 상나라 후기는 기원전 1300년부터 1046년까지이다.


주(周)나라, 주(周)는 기원전 1046년부터 기원전 256년에 이르는 중국 역사에서 가장 오래 유지된 나라로 이 시기에 철기사용이 시작되었으며 왕실의 일족과 공신을 요지에 두어 다스리도록 하는 봉건제도로 유명하였는데 이는 나라의 기초를 굳히기 위하여 실시한 제도였다. 주(周)는 서주-동주-춘추시대-전국시대의 역사를 갖고 있으며 특히 춘추시대는 각지의 제후가 봉기하여 세력다툼을 하던 변혁의 시대로 왕실은 쇠퇴하고 오패(五覇)의 제후가 중심이 되었다. 


그중 제나라는 환공이며 진나라는 문공, 초나라는 장왕, 오나라는 합려, 월나라는 구천인데 우두머리는 제나라의 환궁이며 제나라의 시조는 강태공이다. 나아가 춘추시대는 많은 학자들을 배출하였는데 시경, 서경, 역경, 춘추, 논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저서와 제자를 두었던 공자를 빼놓을 수 없으며 그의 제자 맹자(孟子)가 남긴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는 오늘날에도 회자되고 있으며 자녀교육의 표본이 되고 있다. 


이렇게 춘추전국시대는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시대라 일컬을 만큼 다양한 사상과 철학이 꽃피우던 시기였으며 그 중심엔 공자의 유가사상이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전국시대의 학자로는 음양가(陰陽家)인 추연(鄒衍)과 귀곡자(鬼谷子)를 들 수 있는데 귀곡자는 천문과 역술의 달인이자 병법가로서 척전법(擲錢法)과 납음오행(納音五行)을 만들었다. 주역(周易)은 삼경의 하나인 역경(易經)을 말하며 글자 그대로 주(周)나라의 역(易)을 뜻한다. 또한 역이란 변역(變易)인 즉 ‘바뀐다.’ ‘변한다.’의 뜻이며 이는 천지만물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현상의 원리를 설명하고 풀이한 것이다.


특히 주역은 8괘와 64괘 그리고 괘사(卦辭), 효사(爻辭), 십익(十翼)으로 되어있는 점서(占書)로 역학(易學)의 흐름을 형성해온 동양철학의 근원이라 할 것인데 작자에 관하여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왕필(王弼)은 복희씨(伏羲氏)가 황하(黃河)에서 나온 용마(龍馬)의 등에 있는 도형(圖形)을 보고 계시를 얻어 처음 8괘를 만들고 이를 발전시켜 64괘를 만들었다고 하였으며 사마천(司馬遷)은 복희씨가 8괘를 창안하고 문왕(文王)이 64괘와 괘사, 효사를 만들었다 하였으며, 마융(馬融)은 괘사는 문왕(文王)이 만들고 효사는 주공(周公)이, 십익(十翼)은 공자가 만들었다고 하는 등 작자가 명확하지 않다.


진(秦)나라, 진은 중국 주나라 때 제후국의 하나였다가 중국 최초로 통일을 완성한 국가로 진나라는 자기의 덕이 삼황오제보다 높다고 여겨 처음으로 황제 칭호(진시황제)를 썼으며 국가를 비판하는 학자들을 잡아들여 죽이고 서적은 모두 불태워 버리는 만행을 단행했던 분서갱유(焚書坑儒)사건은 중국을 충격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한(漢)나라, 진(秦)나라에 이어지는 중국의 통일 왕조(BC202-AD220)로 유방이 세웠으며 그의 책사인 장량(張良)은 장자방이라 육임의 원리를 활용하였으며 또한 이시대의 역술인으로 동방삭(東方朔)이 있다. 또한 후한(後漢)시대의 제갈공명(諸葛孔明)은 방술이 뛰어났으며 기문 둔갑, 육임의 원리를 전쟁에서 사용하였다.


수(隋)나라, 양견이 건국한 중국의 통일 왕조(581-618년)며 문제, 양제, 공제의 3대에 걸친 38년의 왕조였으나 남북으로 갈라져있던 중국을 하나의 판도에 넣어 진(秦).한(漢)의 고대 통일국가를 재현하였고 뒤를 이은 당의 통일을 이룩하는 데 기반이 되었다. 수나라의 소길(簫吉)은 오행대의를 지었으며 이는 훗날 음양오행설의 근간이 되었다.


당(唐)나라, 618년 이연이 건국하여 907년 애제 때 후량 주전충에게 멸망하기까지 290년간 20대의 황제에 의하여 통치되었다. 중국의 통일 제국으로서는 한나라에 이어 제2의 전성기를 이루었으며 당에서 발달한 문물과 정비된 제도는 한국이 정치 문화적으로 성장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당나라의 역술인으로는 이허중이 있으며 그는 최초로 연월일시와 육십갑자로 사주기둥을 세우고 년주 위주로 사람의 운명을 감정하였다.


송(宋)나라, 당나라에 이어지는 왕조(960-1279년)로 북송과 남송이 있다. 역술인으로는 서대승(徐大升), 서자평(徐子平)이 있으며 특히 서자평은 년주 위주의 명리학을 일간 위주로 감명하는 법을 만들어 냄으로써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발전하게 되었는데 후대에 서자평의 학설을 종합하여 저술한 연해자평이 최초 고전이다.


명(明)나라, 몽고족이 세운 원나라를 멸망시키고 한족의 지배를 회복한 통일 왕조(1368-1644년)로 중앙집권제를 실시하여 왕권이 강화되었으며 중국이 근대화하는 성장, 변혁기였다. 역술인으로는 적천수(適天髓)를 지은 유백온과 명리정종(明理正宗)을 지은 장남(張楠), 삼명통회(三命通會)를 지은 만육오(萬育吾)가 있다.


청(淸)나라, 명(明)나라 이후 만주족 누르하치가 세운 중국 최후의 통일 왕조다.(1636-1912년) 작자미상의 궁통보감(窮通寶鑑)이 저술되었으며 진소암의 명리약언(命理約言)과 적천수집요(適天髓集要), 심효첨의 자평진전(子平眞詮), 임철조의 적천수천미(適天髓闡微)가 있다.


중화민국(中華民國), 청(淸)나라 말기 신해혁명(辛亥革命)으로 중화민국(中華民國)이 탄생되었으며 중화민국 내 모택동이 이끄는 공산당과 장개석이 이끄는 국민당의 국공내전으로 인해 모택동의 공산당이 승리하여 1948년 중화인민공화국이 탄생한다. 명리학자로 원수산은 명리탐원(命理探原)과 명보(命寶)를 저술하였으며 위천리(韋千里)는 명학강의와 팔자제요를 저술하였다.


일본(日本) 아부태산의 사주추명학전집(四柱推命學全集)과 고목승의 사주추명학이 있다.


한국(韓國),한국에는 자강(自彊) 이석영(李錫暎)의 사주첩경(四柱捷徑)과 도계(陶溪) 박재완(朴在玩)의 명리요강(命理要綱), 명리사전(命理辭典)이 있는데 명리요강은 위천리의 명학강의를 번역한 책이며 명리사전은 위천리의 팔자제요를 번역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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