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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신문을 보면 가슴이 따뜻해지고 희망이 샘솟는 훈훈한 기사들이 가득합니다. 신문만 읽고 있으면 경제위기는 남의 나라 이야기 같고, 우리가 서로 돕기만 한다면 어떤 어려움도 쉽게 극복할 듯한 낙관적인 생각으로 가득찹니다. 조선일보만 해도 오늘 1면 머릿기사로 교사가 방과후 학생들을 지도해 미술반 학생들이 입시학원에 가지 않고도 미대에 들어갔다는 "방과후 수업혁명"에 관한 기사를 실었고, 그 바로 밑에는 일자리 나누기에 참여하는 회사가 1327개로 늘었다는 내용을 "나누면 따뜻해지네"라는 제목으로 실었습니다. 한쪽 옆으로 "올 성장 전망 -2%로 낮춰"라는 기사가 보이긴 하지만, 두 개의 커다란 기사에 눌려 자세히 살펴야 눈에 들어옵니다. 이런 신문 편집만 보면 조선일보가 정말 몇 년 전 경제성장률 5%이던 시절, 경제파탄의 책임을 정부에 묻던 신문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은 학원비가 없어도 노력만 하면 대학에 가는 사회도 아니고, 일자리를 나누는 노력에 의해 실업문제가 해결되는 사회도 아닙니다. 오히려 -2% 경제성장 조차 장담하기 어려울 만큼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 한국의 현실입니다. 그러면 왜 신문들은 이렇게 따뜻한 위기 극복의 이야기만을 실을까요? 그것은 대부분의 신문이 정부와 친하고, 따라서 경제가 회복되어 정부 지지율도 올라가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런식으로 "위기를 극복하자"는 캠페인이야 말로 시장을 왜곡해 경제위기를 장기화한다는 점입니다.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이 중요한 가장 큰 이유는,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벌이는 경제활동이 결국 공공의 선을 위해 작동한다는 사실을 밝혔기 때문입니다. 그 전까지는 개인의 이익과 공공의 이익은 정반대이고, 따라서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는 개인의 자유를 억눌러야 한다는 사상이 유럽을 지배하였죠. 그런데 아담 스미스는 "개인이 이익을 추구하면 보이지 않는 손 (invisible hand)이 작용해서 공공의 선도 자연히 이루어진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렇다면 정부는 개인의 경제활동을 자꾸 통제해서 경제를 살리려고 하지 않아도 되고, 오히려 개인이 마음껏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도록 허용하면 국가에도 이익이 된다는 말이 성립하죠. 실제로 아담 스미스 이후로 유럽과 미국의 정부들은 개인에게 경제적 자유를 대폭 허용하고, 이는 유럽과 미국이 경제발전을 이루는 원동력이 되지요.

물론 저는 개인이 경제적 이익을 극단적으로 추구할 자유가 있다고 믿지는 않습니다. 개인이 이익을 지나치게 추구하면 경쟁이 심해져 사회의 조화가 깨어지고, 경쟁에 탈락한 사람들의 삶이 힘들어져 사회가 분열하기 마련이죠. 따라서 정부는 사회가 균형을 유지하도록 세금과 복지정책 등을 통해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야 합니다. 하지만, 경제 내부만 놓고 보자면, 개인이 자유롭게 활동해야 전체에도 이득이 된다는 아담 스미스의 주장은 분명히 설득력이 있고, 이는 역사가 증명하는 바입니다.

이러한 아담 스미스의 주장과 반대로, 정부가 개인의 경제적 자유를 억압해야 한다는 주장은 파시즘, 공산주의, 그리고 개발독재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는 경제적으로 자유가 없을 뿐 아니라 개인이 집단을 위해 봉사하도록 정신을 개조해야 하기에 계속 캠페인을 벌입니다. 북한에는 곳곳에 선동적 내용을 담은 간판이 서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는 나치 치하의 독일도 마찬가지였고, 70-80년대 군사독재시절 한국도 정도만 다를 뿐, 캠페인으로 국가를 끌고 갔다는 점에서 크게 차이가 없었다고 봅니다. 그에 비해 미국이나 유럽에는 캠페인이 적고, 특히 경제적인 내용의 캠페인 (외화를 아끼자, 경제를 살리자 등)이 거의 없습니다. 경제는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데 살아나는 법이지, 캠페인을 벌인다고 살아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죠.

물론 경제 위기가 닥치면 "캠페인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하자"는 생각의 유혹을 이겨내기가 힘듭니다. 하지만 위기 극복 캠페인조차, 장기적으로 보면 경제에 해가 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자 "금을 모아 수출해 외환을 벌자"는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실제로 꽤 많은 양의 금이 모였고, 이를 수출해 외화도 많이 벌었을 것입니다 (몇년 후, 이 과정에서 벌어진 탈세 등의 각종 범죄가 드러나긴 했죠). 하지만, 금값이 별로 높지 않은 당시에 금을 이미 팔아버렸기 때문에, 지금처럼 금값이 높은 상황에서 팔 수 있는 금이 한국 가정에 많이 남아 있질 않습니다. 즉, 경제적으로 보자면 금값이 낮으면 금을 팔려는 사람이 줄어들고, 금값이 높으면 금을 팔려는 사람이 늘어야 정상인데, 캠페인 때문에 낮은 가격에 금을 팔게 되고, 높은 가격에선 금을 팔지 못해서 모두가 손해를 본 것입니다.

이러한 실수는 미국에서도 발생했습니다. 2001년 9/11 사태로 미국 경제가 주가가 폭락하는 등 위기가 발생하자, 미국인들은 자발적으로 애국 소비에 나섰습니다. 즉, 내가 소비를 해야 내수가 살아나고, 따라서 소비가 애국이라는 생각이었죠. 그 결과 미국 경제는 빠른 시일 내에 회복이 되긴 했는데, 문제는 당시 미국 경제는 닷컴 버블이 꺼지면서 어차피 경제 수축기였는데, 인위적인 소비의 증가로 (물론 이에는 경제 살리기에 나선 FRB의 영향도 컸죠) 거품이 충분히 빠지지 못했고, 그 결과 2008년까지 슈퍼 버블이 발생해 지금의 경제위기가 찾아온 것입니다.

결국, 경제는 가만히 둘 때 알아서 살아나는 법이고, 인위적인 캠페인은 경제를 왜곡시킬 뿐입니다. 신문들도 경제를 살리려는 마음에서 각종 캠페인을 벌이는 것이겠지만, 이는 경제를 왜곡할 뿐이고, 특히 신문에 대한 신뢰만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by cim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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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인터넷 사이트 헤드라인으로 이명박 대통령에 관한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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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띄워주는 제목 같아서 거북했지만, 클릭해보니 본문 자체는 연합뉴스에서 쓴 이 대통령, 금융위기극복 '4대구상·7대제안'이라는 다소 밋밋한 제목의 기사였습니다.

내 용을 요약하자면, 이명박 대통령이 G20 정상회담에서 선도발언과 외교활동을 통해 ▲보호주의 확산 반대 ▲실물경제 회복을 위한 국제 공조 ▲신흥국에 대한 금융지원 확대 ▲국제금융개선 논의에 대한 신흥국 참여 보장 등의 4대 구상을 내놓았고, 이에 대해 반응이 상당히 좋았다는 내용입니다.

이처럼 기사를 읽어보면 'G20' 국제무대서 인정 받은 이 대통령 이라는 제목을 읽었을 때와 같은 감동 (?)이 많이 부족함을 알 수 있습니다. 어쨌든 본문에도 "참가국들로부터 높은 평점을 받아냈다"는 평이 나오는 등 칭찬의 내용이기에 제목과 본문이 같은 방향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말 국제무대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훌륭하다고 인정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각국의 주요 언론의 보도내용을 살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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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영국의 더 타임스를 보겠습니다. 영국 신문이라고 브라운 총리가 제목에 등장하는군요. 물론 "세계무대에서 인정받은 브라운 총리" 같은 낮간지러운 제목은 아닙니다. 이명박 대통령에 관한 내용을 찾아보니... 없습니다 @_@ 세계무대가 인정한 이명박 대통령인데, 더타임스 너무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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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뉴욕타임스. 미국 신문 답게 미국 대통령과 재무부장관이 사진에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에 관한 내용은... 역시 없습니다. 뭔가 불안해지는 순간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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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저널은 "G20 정상들 연합 전선 형성, 그러나 약속만 제시하다"는 제목으로 이번 모임을 평가했습니다. 즉, 구체적인 실천은 없고 말만 오간 이번 정상회담의 실상을 꼬집은 것이지요. 특히 모임이 여섯 시간도 안되서 끝났다니, 이 짧은 시간에 20개국 정상이 무슨 중요한 회의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에 관한 내용은... 역시 없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프랑스의 Le Monde, 독일의 Die Welt, 이탈리아의 Corriera della Serra, 심지어 인도의 Times of India까지 찾아봤는데, 이명박 대통령의 활약에 대한 내용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Times of India는 G20에 대해 아예 보도를 안했더군요 -_-;;).

어쨌든 여러나라 신문을 비교하면서 몇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1. 국제 회의가 있어도 언론의 초점은 자국 지도자에게 맞춘다
2. 그래도 외국의 주요 언론은 자국 지도자를 지나치게 찬양하는 기사는 싣지 않는다
3. 세계 주요 언론은 이명박 대통령의 활약에 대해 보도하지 않았다.
4. 이번 G20 정상회담은 큰 의미가 없는, 언론에 보이기 위한 쇼에 가깝다.

그러면 세계 언론이 이명박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명백하고, 그렇다면 이명박 대통령을 인정한 주체는 누굴까요?

이를 이해하기 위해 (G20)"한국이 대표로 IMF 돈 좀 갖다 써달라"라는 제목의 기사를 분석해 봅시다. 이 기사를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스트로스 칸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IMF의 단기 유동성 지원 프로그램(SLF : Short-term Liquidity Facility)이 제공하는 자금을 써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
대통령은 IMF 총재의 이같은 요청을 받고 그 자리에서는 의례적으로 "검토해보겠다"고 답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만수 장관은 그러나 "그런 요청을 받은 것은 사실이나 아직 이 문제를 고려하거나 검토를 한 적이 없다"면서 IMF로부터 대출지원을 받게 될 가능성을 일축했다.

자, 생각해보면 상황은 뻔합니다. IMF가 한국에 액션을 요청했고, 한국 정부는 들어줄 마음은 없지만 "검토해보겠다"고 말하고 넘어간 것입니다. 그렇다면 IMF가 보도할 때는 이러한 내용이 어떻게 둔갑할까요?

스트로스 칸 IMF 총재는 G20 정상회담에서 많은 수확을 올렸다. 특히 회의에서 만난 이명박 대통령에게 IMF의 자금을 써달라는 요청을 했고, 이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다"는 답변을 들었다.
가 되겠지요. 이것이 외교이고, 이것이 언론입니다. 단, 외국에서 사실을 왜곡하는 언론은 정부나 집단의 자체 기관인데, 한국은 조중동이 나서서 정부를 위해 사태를 왜곡해줍니다. 이러니 조중동만 읽는 사람은 아직도 이명박 대통령이 경제 대통령이고, 우리나라의 어려움은 아직도 모두 노무현탓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꼭 조중동이 아니라도 언론은 늘 사태를 조금씩 왜곡합니다. 그러므로 신문에 나오는 내용을 모두 믿으면 안되고, 보도 뒤에 담긴 실체를 파악하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 경제 펀다멘탈은 문제 없다"고 앵무새처럼 읇조리다가 외환위기가 터진 1997년의 아픔을 반복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cim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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