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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구 ‘임원경제지’ 번역 중에 농사 뛰어든 정명현 임원경제연구소장


달콤하면서도 시큼하고 톡 쏘는 맛이 났다. 경기 군포 동래 정씨 동래군파 종택에서 만난 정명현 임원경제연구소장(43)이 건넨 청주였다.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정조지(鼎俎志)에 나오는 방법대로 빚은 청주라고 했다.


“책에선 ‘열(烈·맵다)하다’라고 했는데 글로만 읽으니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직접 담가 봤더니 탄산음료를 마실 때 느껴지는 톡 쏘는 맛을 표현한 것임을 알게 됐죠. 그저 ‘맵다’고 했으면 틀린 번역이 됐을 겁니다. 농사를 짓는 것도 번역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지요.” 


‘조선판 브리태니커’로 불리는 임원경제지는 실학자인 풍석 서유구 선생(1764∼1845)이 직접 농사를 짓고 물고기를 잡으며 터득한 실용 지식을 총망라한 책이다. 농사의 전 과정을 담은 본리지(本利志)를 시작으로 음식을 다룬 정조지, 옷과 집에 대해 정리한 섬용지(贍用志), 조선 후기 의학을 집대성한 인제지(仁濟志) 등 16지(志) 2만8000여 항목으로 구성됐다. 



임원경제연구소는 풍석 선생의 대작을 번역하기 위해 2002년 설립된 민간 연구소로 농업기술사 전공인 정 소장을 포함해 각 분야 전공자 41명이 번역에 참여했다. 올해 6월 개관서 ‘임원경제지-조선 최대의 실용백과사전’(씨앗을 뿌리는 사람)을 출간했고 2014년까지 임원경제지 전체를 55권으로 출간할 예정이다.


정 소장과 연구원들은 번역하는 틈틈이 임원경제지에 나온 방식대로 술도 만들고 농사도 짓는다. 올해 처음 벼농사를 지은 곳은 동래 정씨 동래군파 16대 종손인 고 정운석 옹(1913∼2012)과 셋째 아들인 정용수 전국귀농운동본부 대표(64) 등 9남매가 지난해 5월 문화유산국민신탁에 종택과 함께 기증한 땅이다. 당시 정 옹 가족은 종택 일대가 군포시의 재개발 계획에 편입되자 토지 보상금을 포기하고 전답 1만8176m²(약 5500평)를 국가에 기증했다. 기증한 땅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조건이었다. 현재는 정 대표가 종택 안에 전국귀농운동본부 사무실을 두고 주변 땅을 귀농 교육 및 실습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정 옹 가족이 기증한 땅에서 정 소장이 임원경제지대로 농사를 짓게 된 데는 둘의 오랜 인연이 작용했다. 도시에서 태어나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던 정 소장은 본리지를 번역할 때 수시로 어려움에 부딪혔고 2004년 정 대표를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친환경 전통 농법에 목말라 있던 정 대표도 임원경제지라는 거대한 콘텐츠를 번역하고 연구하는 정 소장이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이후 두 사람은 급속도로 친해졌고 함께 전남 청산도 등 지방 답사를 통해 전통 농법을 연구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임원경제지 본리지에 나온 농법대로 화학 비료와 기계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파종부터 추수까지 손으로만 농사를 지었다. 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귀농 교육을 받은 이들과 임원경제연구소 연구원, 문화유산국민신탁의 후원자 등 100여 명이 함께했다.


“당연히 비료도 유기물만 사용했습니다. 종택 뒤편에 뒷간을 만들어 똥과 오줌을 모았지요. 낙엽이나 볏짚, 음식물로 퇴비를 만들었고요. 올해 30가마 정도를 수확했어요. 농약과 화학 비료를 쓴 농법에 비해 3분의 1 수준이지만, 땅도 살고 사람도 사는 방식으로 한 것이지요.”(정용수 대표)


“학자로서 서유구 선생의 농법이 21세기에도 가치와 실용성이 있는지를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야만 우리의 번역도 의미가 있으니까요. 올해 논농사를 지으면서 가능성을 봤습니다. 하나하나 계속 적용해 보고 싶습니다.”(정명현 소장)


두 사람은 내년엔 서유구 선생이 임원경제지에서 수없이 강조한 ‘견종법(견種法)’으로 밭농사를 지을 예정이다. 견종법은 두둑 사이에 움푹 파인 밭고랑에 파종하는 방식. 정 소장은 “서유구 선생이 적은 노동력에 많은 수확량을 낼 수 있는 농법이라고 썼지만 실제 우리나라 농업사에서 많이 실천되지 못했다”며 “실제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정말 궁금하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지역 먹을거리 운동을 실천하고 싶다”고 했다. “여기서 나온 먹을거리를 군포 사람들이 먹도록 하는 거지요. 그러면 이 지역 사람들도 농사에 관심을 가지지 않겠어요? 아버지가 기증한 이 땅이 문화와 생명이 살아 숨쉬는 친환경 농업 공동체의 기반이 됐으면 합니다.”

군포=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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