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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을 지키는 사람

한나 노드하우스 지음, 최선영 옮김, 더숲, 2011.

 



 

석유의 위력은 참으로 대단하다. 지구상에 이런 광영이 재현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의식주에서 석유를 빼면, 고급 승용차와 아파트에서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하게 지내는 삶을 당연시하는 이는 당장 생사가 위태로워질 텐데, 상당 기간 석유에 의존해온 현생 인류 역시 온전하기 어려울 것이다. 석유를 많이 썼던 아니든 심지어 인간이든 아니든 심각한 변화에 직면할 것이고, 현재의 생태계는 적지 않은 변동을 피하기 어려울 게 틀림없다.

 

지난 1월 27일, 영국 BBC는 과학잡지 최신호에 발표된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보도했다. 세탁기로 빨래할 때 옷에서 떨어지는 마이크로플라스틱이 바다로 흘러들어 생태계를 교란하며 흡수돼 인체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으로, 옷 한 벌에서 1밀리미터 이하의 미세 플라스틱이 최대 1900개 배출된다고 덧붙였다. 해양 쓰레기의 60%에 이르는 마이크로플라스틱은 해류에 실려 한반도 6배에 해당하는 태평양에 소용돌이치며 떠돌다 어패류 먹이사슬을 거치며 정점에 다가갈수록 높은 농도로 흡수돼 쌓일 텐데, 스펀지처럼 중금속이나 화학물질을 빨아들이는 특성으로 먹이사슬 최상위 동물에 치명적일 수 있다고 BBC는 보도했다. 대책으로 연구진은 하수처리의 획기적 개선을 제안했지만 현재 기술로 개선될 기미가 없다던데, 이미 배출된 마이크로플라스틱은 어쩌나.

 

어패류를 즐기는 우리의 몸에 어쩌면 적지 않은 마이크로플라스틱이 소화기와 호흡기의 여기저기에 박혀있을지 모른다. 인체를 괴롭히는 미세물질은 물론 석유를 가공한 플라스틱만이 아니다. 석유가 가공되기 전까지 세상에 없었기에 분해할 생물이 존재하지 않는 숱한 석유화학제품은 잘게 부서진 채 지구촌 구석구석에 넘치지만, 넘치는 석유화학제품은 플라스틱에서 그치지 않는다. 1964년 재발된 유방암으로 56세에 숨진 레이첼 카슨은 죽기 2년 전, 《침묵의 봄》으로 살충제와 제초제의 위험성을 고발했다. 분해할 생물이 없는 석유화학제품의 긴 목록에 일부 포함되는 독성 물질들이다. 《침묵의 봄》 이후 문제가 되었던 많은 살충제와 제초제는 생산이 중단되었지만 아직 어딘가에 남아 있다. 꿀벌의 몸도 예외가 아니다.

 


만신창이가 된 꿀벌 

농업 면세유 가격이 오르면서 딸기 수확기를 맞은 비닐하우스마다 농부들은 울상이었다. 겨우내 붉고 탐스러워져야 할 딸기가 보일러 열기를 제대로 받지 못해 푸르죽죽하니 누가 선뜻 사려할 것인가. 인상된 면세유 가격을 반영한 까닭에 주머니 사정이 전 같지 않아진 소비자들은 큰맘 먹어야 구입하려 할 텐데, 대형 마트 지하 식품매장의 딸기도 전 같지 않다. 이파리가 붙은 쪽의 과육은 여전히 퍼렇다. 그래도 커다랗기만 한 이맘때의 딸기는 일찍이 성장호르몬이 처리되었음을 숨기지 못한다. 이파리만 괜히 커다란 게 아니다. 과육을 보라. 하도 커 그런지, 한입 베어물면 참외도 아니면서 빈 속이 드러난다.

 

제 본분 모르고 커진 과일과 채소는 딸기만이 아니다. 성장호르몬을 처리한 만큼 터무니없게 서둘러 자라야 하는 과일은 석유를 가공한 화학비료를 듬뿍 뿌리지 않으면 안된다. 그 비료를 잡초에게 빼앗기지 않아야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테니 농부는 제초제를 수시로 뿌리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게 큰돈 들이며 조심스럽게 재배하는 과일에 벌레가 생기면 곤란하다. 때때로 살충제를 뿌리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 과일들, 꿀벌이 꽃가루를 수정해야 열매를 맺는데, 꿀벌은 살충제와 제초제에 무척 약하다.

 

비닐하우스의 딸기도 꿀벌이 꽃가루를 수정해야 한다. 한데 이맘때 출하하는 딸기가 꽃망울을 터뜨리는 계절에는 날아다니는 꿀벌이 없다. 농부는 비닐하우스용 꿀벌을 그때마다 구입할 텐데, 그 꿀벌들은 일회용이다. 어차피 추운 비닐하우스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처지인데, 꽃가루 수정이 끝나면 농부는 꿀벌이 기피하는 화학비료를 비닐하우스 안에 흥건히 뿌릴 것이므로 그렇다. 그렇다면 노지의 딸기가 제 계절에 꽃을 피워낼 때 벌통을 나온 꿀벌들은 괜찮을까. 면역력이 약해진 꿀벌에 나타난다는 ‘낭충붕아부패병’으로 토종벌들이 죽어나가는 우리의 현실은 꿀벌에 다음세대의 시작을 의뢰하는 생물에게 그리 희망적이지 않다. 토종벌보다 개체수가 훨씬 많은 양봉은 괜찮을까. 4월 둘째 주말이면 100만 인파가 밤낮으로 운집하는 여의도 윤중로의 벚나무 가로수 사이에서 통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꿀벌들은 거의 양봉이다. 미국과 유럽의 양봉가에서 들리는 소문은 이미 흉흉하다.

 

2009년부터 토종벌들이 낭충붕아부패병으로 본격적으로 몰살되기 시작한 우리나라와 달리 유럽과 미국은 ‘꿀벌집단붕괴현상’으로 양봉가들이 시방 몸서리치고 있는데, 그 전에 꿀벌의 기생충인 응애에 끔찍한 시달림을 받았다. 핀 머리 크기에 불과한 응애는 꿀벌 애벌레의 몸에 알을 낳고 번식하며 집단을 늘려 벌집 전체를 응애로 뒤바뀌게 한다. 눈도 날개도 없는 응애는 바다를 건널 수 없다. 인도네시아에서 발견된 문제의 응애가 삽시간에 세계 각국으로 퍼진 건 비행기나 배의 도움이 컸을 것이다. 세계 방방곳곳의 여왕벌과 꿀벌은 그 자체가 부가가치를 보장하는 상품이 아니던가. 응애가 극성이라도 양봉업계의 지원을 받는 과학자가 버티고 있기에 일단 안심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꿀벌에 피해를 주지 않고 오로지 응애만 처리하는 살충제를 개발해 쉽게 해결되는 듯 보였던 거다. 하지만 꿀벌보다 작은 응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살충제에 견디기 시작했고, 독성을 강화한 살충제마저 우습게 여기게 되었다. 그러자 이번엔 꿀벌이 위험해졌다.

 

기생충과 숙주의 관계는 묘하다. 숙주를 다 죽일 정도로 확산되면 자신의 운명도 머지않아 끝난다. 꿀벌이 원래 응애에 맥없이 당했다면 꿀벌은 벌써 자취를 감췄을 터. 대부분의 꿀벌은 응애를 피할 재간을 갖고 있고 응애가 전하는 바이러스나 독성도 잘 견뎌냈을 텐데, 요사이 꿀벌은 도무지 속수무책이다. 무슨 변고인가. 《꿀벌을 지키는 사람》의 저자 한나 노드하우스는 꿀벌의 면역력을 주목한다. 응애 살충제만이 아니다. 경작지 곳곳에 뿌린 살충제와 제초제가 어디 한두 가지인가. 전문가는 꿀벌의 몸은 어느새 만신창이가 되었다는 걸 속속 증명한다. 그 작은 몸을 공격하는 숱한 농약들이 꿀벌의 면역력을 형편없이 떨어뜨리자, 독성을 강화한 응애에 속절없이 당하게 되었다는 거다. 이제 벌통을 지키려는 양봉가의 선택은 무엇이어야 하나. 살충제의 개량이 대규모 양봉가에게 당장 솔깃할 텐데, 이후 더 심각한 피해가 닥칠 수 있다.

 

등에 묻는 꽃가루를 다리를 들어올리며 모으는 행동은 등에 붙은 응애를 떨쳐내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미국에서 문제가 된 응애의 공격을 먼저 받은 동양계 꿀벌은 그런 행동을 보인다고 한다. 따라서 동양계 꿀벌로 미국에 보편적인 유럽계 꿀벌의 품종을 개량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텐데, 그 과정에서 타고난 유전적 다양성은 더욱 위축될 것이다. 한데 꿀벌은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양식되었다. 양식하면서 양봉가는 사납게 쏘아대는 성가신 행동을 보이는 개체들을 선택하지 않는 방식으로, 그런 유전자를 제거하고 꿀을 많이 가져오는 유전자를 선택했을 터. 그런 품종개량이 지역마다 거듭되었을 테니 타고난 유전적 다양성은 오래 전부터 조금씩 줄었을지 모른다. 유럽에서 이주한 정착인과 더불어 미국으로 넘어온 꿀벌을 북미원주민은 ‘백인의 파리’라고 불렀다던데, 전래의 농업 문화에 따라 세계 곳곳에서 선택과 집중으로 품종을 개량한 꿀벌은 이미 자연종이 아니다. 그 점에서 우리 토종벌도 마찬가지다. 크든 작든, 양봉가의 벌통에서 벌통으로 세대를 이어오지 않았던가.

 


꿀벌집단붕괴현상은 우리 현실의 표상 

기족이 관리할 수 있을 만큼 벌통을 놓고 양봉을 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적어도 세계 아몬드 생산량의 80%를 지배하는 미국에서 소박한 양봉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시대는 추억이 되었다. 성장호르몬을 바르는 과수원처럼, 남보다 빨리 많은 꿀을 모아야 경쟁에서 승리하는 양봉업계의 세태는 탐욕이 견인한다. 달콤한 끌을 모으는 꿀벌은 탐욕스런 인간에게 운명적으로 희생될 수밖에 없었다. 꿀벌집단붕괴현상은 그 결과다.

 

식물 성장호르몬을 발라 커다란 과일을 받으려는 과수원은 가는 가지에 빼곡하게 피는 꽃을 전부 챙기려하지 않는다. 살구도 마찬가진데, 살구와 아주 가까운 아몬드는 과육이 아니라 씨앗을 수확하므로 모든 꽃이 수정되어야 실속이 크다. 미국 캘리포니아 센트럴벨리에 자로 잰 듯 심어놓은 아몬드나무는 완전히 기계로 수확된다. 기계의 오차범위 내에서 재배와 수확이 보장되어야 하므로 유전적 다양성은 상당 부분 제거되었다는 뜻이다.

 

대규모 단작인 아몬드농장에 수많은 꽃은 일제히 피고 진다. 그 짧은 시간에 꿀벌이 동원되어야 하고 꽃가루 수정을 마친 꿀벌들은 즉시 떠나야 한다.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농약 세례를 받는다. 200마일에 이르는 농장의 아몬드를 일시에 꽃가루 수정할 꿀벌은 그 지역만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 따라서 미국 각지에서 꿀벌이 몰려와야하는데, 소박한 양봉가는 당연히 배제된다. 수천에서 수만 개의 벌통을 취급하는 양봉가들은 이른 봄부터 그때를 손꼽아 기다리지만, 면역이 약해진 꿀벌들은 추위에 약하다. 질병에도 약하다. 미국은 물론, 인근 국가와 유럽의 꿀벌까지 끌어들이는 아몬드농장은 질병을 한순간에 퍼뜨리는 온상이 된다.

 

아몬드나무와 농장은 기계에 최적화되었지만 자연은 그렇지 않다. 어느 해는 비가 많고 한파가 몰아치기도 하지만 어느 해는 가뭄이 계속된다. 아몬드나무에 꽃이 피는 이름 봄을 대비해 억지로 동면에서 깨어나는 꿀벌은 아직 벌통마다 충분한 일벌을 늘리지 못했다. 여왕벌이 수벌과 짝짓기 여행을 떠났다 돌아와 하루에 2000개의 알을 낳으려면 더 따뜻해야 한다. 마음 급한 대규모 양봉가는 여왕벌을 공장에서 대량으로 구입해 해결한다. 여왕벌이 갑자기 사라지거나 주위의 서식환경이 열악해지면 일벌들이 알에서 여러 마리의 여왕벌 후보를 간택해 맹렬하게 키우는 습성이 있다. 그 습성을 한껏 이용해 생산한 하루 수천 마리의 여왕벌을 양봉가에게 파는 기업이 등장한 것이다. 그렇게 생산된 여왕벌에게 유전적 다양성은 기대할 수 없다. 면역력도 물론 기대할 수 없다. 여왕벌이 낳은 알에서 태어날 일벌도 마찬가지다.

 

벌통에서 로열젤리를 연실 내주는 일벌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으며 태어난 여왕벌이 경쟁자를 물리치고 벌통을 물려받은 뒤, 여러 벌통에서 짝짓기에 도전하는 여러 수벌과 공중에서 교배하여 낳은 알이라면 고유의 유전적 다양성과 면역력을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을 테지만, 그런 꿀벌은 양봉가의 벌통에서 퇴출된 지 오래다. 응애에 속수무책인 꿀벌은 이미 수많은 농약에 찌들어 기진맥진해 있다. 거기에 얹어진 새로운 농약은 해마다 그 가짓수와 독성을 더하는데, 봄부터 가을까지 꿀과 꽃가루를 날아오느라 지치는 꿀벌이 어찌 감당할 수 있으랴. 결국 사단이 났다. 꿀벌의 신경계를 퇴화시키는 것으로 짐작되는 살충제, 네오니코티노이드가 탈을 일으킨 것이다. 꿀과 꽃가루는 물론, 한창 자라는 애벌레들까지 남긴 채 벌통을 나간 일벌이 돌아오지 않는 꿀벌집단붕괴현상이 뒤따르는 게 아닌가. 그것도 광범위하게.

 

처음엔 휴대전화와 그 기지국에서 내뿜는 전자파가 원인일 거라 막연히 추측했지만 기지국에서 멀리 떨어진 벌통에도 예외가 없기에 기각되었다. 만일 전자파가 원인이라는 결론이 난다면, 사람들은 기꺼이 휴대전화를 포기하려 할까? 이미 익숙해진, 아니 없으면 불안해하는 현대인의 대부분은 저항할지라도ㅡ 일부는 심각성을 인식하고 자진해서 포기할지 모른다. 하지만 삼성이나 엘지 같은 휴대전화 생산회사, SK나 KT와 같은 무선통신 회사도 수익이 큰 사업을 순순히 포기할까. 1962년 《침묵의 봄》이 출간되자 전문 과학자들을 총동원하며 레이첼 카슨을 비난했던 농약회사처럼, 복잡한 인과관계를 연실 들먹이는 전문가들 동원할 기업은 아랑곳하지 않을 게 뻔하다. 프레온가스를 대체할 냉매를 개발한 뒤 몬트리올 협상에 응한 기업처럼, 시간을 어지간히 끌 것이다.

 

네오니코티노이드에 혐의가 있다는 연구가 잇따르자 역시나, 그 살충제를 생산하는 기업이 반박하고 나섰다. 네오니코티노이드 살충제를 금지한 프랑스에도 꿀벌집단붕괴현상이 나타났다면서 판매금지 요청에 저항한 것인데, 양봉가나 꿀벌을 생각한 처사는 물론 아니었다. 그렇다면 네오니코티노이드가 꿀벌집단붕괴현상의 주범일까. 아닐 것이다. 이미 만신창이가 된 꿀벌에게 마지막 충격을 주었을지 모르지만 절대적 원인으로 간주할 수 없다고 과학자들은 동의한다. 한데 최근 집중되는 대형 양봉가의 손실에서 꿀벌집단붕괴현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의외로 작을지 모른다.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과 홍수, 때 이른 한파와 살인적인 더위는 꿀벌 집단에 질병을 늘릴 뿐 아니라 치명적인 굶주림까지 안기지 않던가. 그 결과 응애가 공격하는 일은 식은 죽 먹기가 되었을 것이다. 거기까지인가. 아니다. 처참해질 정도로 면역력이 약해진 꿀벌의 희생은 꿀벌의 문제에서 끝날 리 없다.

 

우리가 먹는 농작물의 3분의1은 꿀벌이 꽃가루를 수정해야 얻을 수 있다. 아인슈타인이 꿀벌이 사라지면 인류는 4년을 버틸 수 없다고 일찍이 경고했다던데, 아인슈타인이 살아 있을 때에도 꿀벌의 면역은 신통치 않았을 테지만 적어도 요즘 같은 집단붕괴현상은 없었다. 응애에 희생되는 벌통이 가끔 있었을 테지만 요즘처럼 속수무책은 아니었을 것이다. 양봉보다 효율이 다소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진 우리의 토중벌도 아인슈타인이 경고했을 당시, 낭충붕아부패병으로 속절없이 죽어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탐욕이 이끈 지나친 꿀벌 착취는 이제 부메랑이 되려 한다. 꿀벌이 사라지고 있지 않은가.

 

농작물만이 아니다. 화려하고 꽃의 향기가 진한 대부분의 식물도 꿀벌이 있어야 다음 세대를 제대로 기약할 수 있다. 박쥐나 직박구리와 같은 새, 그리고 가끔 다른 벌이 꽃가루를 수정하지만, 그 양은 작다. 꿀벌이 사라지면 인류는 당장 벌꿀을 맛볼 수 없고, 얼마 안 가 먹어야 할 농작물도 급격히 줄어들겠지만, 생태계는 급격히 왜곡될 수밖에 없고 과학기술을 앞세우는 사람도 그 영향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아인슈타인의 주장처럼 4년 만에 인류의 삶이 마감될지 알 수 없지만, 훨씬 먼저 세상에 나온 꿀벌과 생태계 덕분에 살아가는 인류도 내일을 기약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아직 꿀벌은 남아 있다. 드물어졌더라도 여전히 농작물과 현화식물에게 꽃가루를 수정해준다. 덕분에 우리는 성장호르몬 발라 터무니없이 커진 과일을 명절 선물용으로 구입해 친지에게 전할 수 있다.

 


대안은 획기적인 전환뿐이다 

한나 노드하우스는 《꿀벌을 지키는 사람》에서 돌이키기 어려울 정도로 커진 미국의 거대 농업에서 꿀벌의 대규모 양봉은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예전같이 가족 단위로 자급자족하는 농업과 양봉으로 돌아갈 수 없으니 지금과 같은 체제 안에서 대책을 세울 수밖에 없다는데 은근히 동의한다. 바로 대규모 양봉가들이 선호하는 개선된 농약과 꿀벌의 품종개량이다. 들어가는 돈과 혹독한 노동에 비해 벌어들이는 돈이 신통치 않은 양봉을 물려받으려는 젊은이들은 부족하지만, 아직 꿀벌은 사람에게 관대하므로 역경에도 살아남는 꿀벌을 잘 선택하면서 공존할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양봉가의 말을 빌려 제안한다. 꿀벌을 사랑하는 한 무던한 양봉가를 여러 해 취재하며 《꿀벌을 지키는 사람》을 쓴 저자의 결론인데, 꿀벌은 과연 언제까지 인간에게 관대할 수 있을까.

 

유전적 다양성을 잃은 꿀벌은 면역력마저 상실했는데, 기후변화에 대처할 능력이 남아 있을까. 유전적 다양성은 환경변화에 대처할 능력을 담보하는데, 탐욕이 인도한 극단적 단작은 기후변화에 대처할 적응력을 위축시켰다. 유전적 다양성을 잃은 까닭이다. 중요한 밀원식물인 아몬드와 과일나무만이 아니다. 산업화된 꿀벌과 가축도 마찬가지다. 극단적인 품종개량으로 타고난 유전적 다양성을 꽤 잃었다. 어쩌면 획일적으로 주어지는 산업문명의 중앙 집중적 편의에 길든 사람들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유전적 다양성보다 의식과 행동의 다양성은 분명히 손상되었다.

 

적응력이 없다면 환경변화에 대처할 수 없는데, 이제 석유가 만든 광영, 다시 말해 인간에게 안락하게 하던 환경은 머지않아 종말을 고할 것이다. 과학기술을 동원하는 사람은 석유를 과다하게 소비하는 산업문명을 억지로 유지하려 발버둥치지만 생산의 정점이 지난 석유는 머지않아 고갈될 것이다. 우린 석유가 고갈될 거라는 사실을 기반으로 대책을 근본에서 세우지 않으면 안된다. 양봉도 마찬가지다. 탐욕에 기반을 두는 농업이 기후변화 시대에 위험한 것처럼 대규모의 양봉에 획기적인 전환이 모색되지 않는다면 기반을 상실할 수 있다. 꿀벌집단붕괴에 이은 부메랑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도시의 아스팔트 못지않게 잡초 하나 남기지 않는 농부는 까치와 꿀벌을 내쫓는다. 반면 자신의 과수원에 그물을 치지 않는 유기농 농부는 꿀벌은 물론이고 까치에게도 관대하다. 잡초 하나 없이 깨끗한 과수원에서 까치들은 먹을 것을 찾을 수 없으니 과일들을 기웃거리지만 잡초에 벌레까지 우글거리는 유기농 과수원은 다르다. 그물을 둘러쳐도 집요하게 뚫고 들어와 익지 않은 과일 지분거리는 까치는 농부에게 유해조수가 되었지만 곤충을 잡아먹는 까치는 여전히 친숙한 과수원의 이웃이다. 그 까치도 과일을 건드려보지만 익지 않아 떫기에 진작 흥미를 잃고 만다. 유기농 과수원은 그물을 치는 과수원보다 벌어들이는 돈은 적지만 쓰는 돈이 적어 큰 걱정을 하지 않는다. 비록 소출이 작아도 가격을 더 쳐주는 유기농 과일이라 수입이 만족스럽다.

 

한나 노드하우스는 단작이 광범위하게 지배하는 미국식 농업의 한계를 굳이 언급하지 않았지만, 탐욕이 인도하는 단작의 문제는 분명하게 인식한다. 미국 농산물이 자국 뿐 아니라 한국과 같은 국가의 식량으로 공급되는 현실을 감안하기에, 근본적인 대안을 자신의 책에서 굳이 내색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꿀벌집단붕괴현상이나 응애의 습격, 그리고 낭충붕아부패병은 지금과 같은 대규모 양봉이 갖는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걸 《꿀벌을 지키는 사람》의 독자는 인식할 필요가 있다.

 

대형 양봉가부터 생각하는 미봉책은 나중에 닥칠 더욱 큰 문제를 피할 수 없게 만들 것이다. 대안은 지역에서 자족할 수 있는 소박한 양봉과 단작을 회피하는 소농이어야 한다. 세탁기에서 나온 옷 보푸라기가 사람을 역습하는 시대에 하수처리 개선은 의미가 없다. 마이크로플라스틱을 배출하는 원단을 포기해야 한다. 석유 없이 재배하는 제철 제 고장 딸기로 만족하자는 거다.

- 녹색평론 2012년 3-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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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잡초  강력한 제초제에도 내성을 가진 명아주가 콩밭에서 웃자란 모습. 

사진=아칸소대 농학부 제공


제초제 듣지 않는 ‘슈퍼 잡초’ 미국 곡창지대 위협  

  

미국의 주요 곡창지대에서 제초제가 듣지 않는 ‘슈퍼 잡초’가 빠르게 확산돼 농업 생산을 위협하고 있다.

 

로이터는 10일 워싱턴에서 열린 잡초 전문가 회의 내용을 인용, 초강력 잡초가 미국 농경지를 장악하고 있으며, 식량 생산을 보호하기 위해 제초제에만 의존하는 관행을 바꿔야 한다고 전했다.

 

제초제에 내성을 지닌 초강력 잡초는 농경지 1200만 에이커를 덮으며, 미국 남동부 농업지대와 중서부 옥수수와 콩 재배지에 피해를 입히고 있다. 심한 경우 잡초가 2m 가까이 자라 작물을 말려 죽인다.

 

슈퍼 잡초는 일반적인 제초제뿐 아니라 미국의 다국적 농업회사 몬산토가 개발한 초강력 제초제 ‘라운드업’에도 내성을 지녔다. 라운드업은 잡초 종류에 상관없이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농약으로, 특히 이 제초제에 죽지 않도록 유전자 조작을 거친 작물 ‘라운드업 레디’와 함께 미국 대부분 농가가 사용해 왔다.

 

회의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장기간 제초제에만 의존한 점을 비판하며 땅을 갈아엎거나, 잡초 성장을 억제하는 피복작물을 재배하는 등 재래식 잡초 제거 방식을 제안했다. 하지만 제초제 살포에 비해 비용이 많이 든다는 점 때문에 대안을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한편, 매리언 네슬(Marion Nestle) 뉴욕대 교수는 슈퍼 잡초는 유전자변형(GM) 식품을 허가한 1990년대 초부터 예견됐던 것이라고 꼬집었다. 네슬 교수는 미 시사지 애틀랜틱에서 당시 라운드업에 내성을 지닌 GM 작물을 광범위하게 심을 경우, 이 제초제에 내성을 지닌 슈퍼 잡초가 생겨날 가능성이 높다는 비판이 있었다고 밝혔다.

 

네슬 교수에 따르면 2004년 후반 라운드업에 내성을 지닌 잡초가 조지아州의 GM 작물 재배지에서 나타나기 시작했고 곧 다른 남부주로 확산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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