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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스미스 Adam Smith' 제대로 알기



오늘 소개할 책 <지금, 애덤 스미스를 다시 읽는다>는 2008년 <일본경제신문> 선정 ‘올해의 책’ 1위에 뽑히고 일본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산토리학예상 정치경제 부문을 수상한 대중성과 전문성을 고루 갖춘 명저이다. 고전학파 경제학의 재정 정책 연구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의 연구 논문을 쓴 바 있는 저자 도메 다쿠오는 이 책을 통해 피상적으로만 드러나 있었던 아담 스미스의 진면목에 보여준다. 


특히 일반 경제사상서들이 아담 스미스에 대해 <국부론> 중심으로만 기술하는 데에 반해 이 책은 아담 스미스의 또다른 저작인 <도덕감정론>을 <국부론>의 연장선상에 놓고 상세히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는 저자의 작위적인 기획이 아니다. 실제 아담 스미스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아담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의 최종판에서 ‘독자에게’라는 제목의 서문을 추가하고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이 책의 초판 마지막 구절에서 나는 정의와 관련된 것, 생활행정, 공공수입, 군비 등과 같이 법의 대상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 이런 것들과 관련된 법과 국가의 일반 원리와 이 원리가 서로 다른 시대와 시기에 겪었던 변혁을 또 다른 논문에서 설명해야겠다고 말했다. 


각국 국민의 부의 성질과 원인에 관한 연구에서 나는 이 약속을 부분적으로 적어도 생활행정, 공공수입, 군비에 관한 한 수행했다.”


이 글에서 스미스가 ‘각국 국민의 부의 성질과 원인에 관한 연구’라고 한 것은 <국부론>을 말한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질서와 번영을 기초 짓는 인간 본성은 무엇이고 또한 그것들이 서로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해 해명했다. 그리고 그 다음 단계로서 질서와 번영을 인도하는 일반 원리의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지 논하려고 했다. 


그 일부가 <국부론>이다. 결국 아담 스미스의 두 저작인 <도덕감정론>과 <국부론>은 독립적인 책이 아닌 스미스의 웅대한 철학을 이루어 갈 연속적인 책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담 스미스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저작을 함께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고 바로 이 책 <지금 애덤 스미스를 다시 읽는다>가 그것을 친절하게 도와주고 있다.


이번 서평은 책의 내용을 그대로 전하기보다 우리가 미처 몰랐던 아담 스미스의 면모와 그의 사상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전개하겠다. 



아담 스미스


“저는 무료한 시간이나 달랠 생각으로 책을 한 권 쓰기 시작했습니다.”


아담 스미스(Adam Smith)가 프랑스 남서부 도시인 툴루즈(Toulouse)에 체류하는 동안 근대 합리주의 철학의 거두이며 경험론의 선구자인 데이비드 흄에게 보낸 한 짤막한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스미스가 스스로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쓴 책의 이름은 보기만 해도 따분한 <국가의 부의 본질과 원인에 대한 연구(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eh Wealth of Nationns)>라는 제목을 갖고 있었다. 이후 사람들은 이 책을 줄여서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이라고 불렀다.


아담 스미스는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지루한 책을 쓰겠다는 비범한 마인드의 소유자였다.



1723년 스코틀랜드의 작은 항구 도시인 커칼디(Kircaldy)에서 태어난 아담 스미스는 세관원이었던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난 탓에 어머니 손에서 자랐다. 어려서부터 뛰어난 재능을 가졌던 스미스는 열 네살의 나이에 명문대학으로 손꼽히는 글래스고 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그리고 3년 후 장학생으로 선발돼 옥스퍼드 대학교 발리올 칼리지에 들어간다. 하지만 스미스는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다 마치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버린다. 스미스가 옥스퍼드를 떠난 이유를 <국부론>에 나온 다음과 같은 내용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옥스퍼드대학 교수들은 몇 해째 가르치는 시늉조차 아예 그만두었다.”


특히 스미스는 학문의 자유를 억압하는 옥스퍼드의 검열제도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실제로 스미스는 데이비드 흄의 <인성론>을 읽다가 압수당하는 일을 당하기도 했는데 이 일을 두고두고 친구들에게 불평을 했다고 한다. 옥스퍼드 또한 이런 스미스의 언사를 못 마땅한 탓에 끝내 스미스에게 명예 박사 학위를 주지 않았다고 한다. 


고향으로 온 스미스는 수사학과 법학에 대해 대중 강연을 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으며 1748년에는 모교인 글래스고 대학교의 강단에 서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은사이자 아일랜드 계몽주의 철학자 프랜시스 허치슨(Francis Hutcheson)을 이어 도덕 철학 교수직을 이어 받는다.


옥스퍼드의 경험을 반면교사 삼은 스미스는 그 어떤 교수보다도 열정을 다해 일했다. 철저한 준비와 흥미로운 강의로 학생들의 졸음을 퇴치했으며 세심한 관심과 배려로 학생들을 지도했다. 학생들은 스미스를 사랑했으며 스미스의 명강의를 듣기 위해 심지어 러시아에서 온 명사들도 있었다. 스미스의 이상한 걸음걸이와 말투는 사람들 사이에 유행했고 심지어 스미스의 작은 흉상이 서점의 진열대에 놓이기도 했다. 그러나 스미스를 진정한 학자로서 큰 명성을 준 것은 1759년에 출간한 <도덕감정론(Theory of Moral Sentiments)>이었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을 통해 주로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만족시키는 도덕적 판단을 하며 사회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답변을 내 놓았다. 스미스는 이 책을 통해 영국에서 철학자로서 선두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이후 1764년 스미스는 교단을 떠나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연간 500파운드의 보수와 평생 연금으로 연간 500파운드를 지급받는 조건으로 젊은 공작의 가정교사로 일하게 된다. 가정교사로 일하면서 스미스는 젊은 공작을 데리고 약 3년동안 프랑스로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그 여행을 통해 스미스는 18세기 유럽의 지식인 사회를 휩쓸었던 자유주의, 합리주의 사상의 대가들을 만나며 프랑스의 산업 발전과 경제적 변화를 직접 목격하게 된다. 프랑스 여행을 마친 후 스코틀랜드에 돌아온 스미스는 경제현상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를 실시했고 교단을 떠난 후 12년 만인 1776년에 <국부론>을 출간한다.

 


국부에 대한 재정의


스미스가 태어나기 전 17세기에는 거대한 지적 변환이 일어나고 있었다. 유럽 중세를 지배하고 있었던 종교적 교리보다 합리적 이성에 근거해 자연 현상을 설명하고자 하는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과 지동설을 주창한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의 혁명적 관점이 지성인들 사이에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이탈리아의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와 영국의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은 성서의 도움 없이 수학과 실험만으로 자연의 법칙을 증명했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르네 데카르트(Rene Descartes)는 자신의 저서 <방법서설(Discourse on Method)>에서 인간은 실용 학문을 통해 자연의 지배자이자 소유자가 될 수 있다고 선언하며 신과의 결별을 선언했다. 바로 인본주의적 세계관과 과학적 방법론에 입각한 계몽주의가 만개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중세를 지배하고 있었던 종교적 세계관에서 서서히 벗어나게 된 유럽인들은 경제문제 또한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죄였으며 부를 쌓으려고 하는 것은 악마가 추구하는 탐욕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고리대금업자는 추악한 죄인이었으며 상인들은 저급한 인물이자 불신의 대표주자였다. 하지만 기술발전과 상인들의 활발한 교역으로 국가의 부가 실질적으로 증가하자 이를 계몽주의적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성이 점증되었다. 


경제사학자 하일브로너의 말을 빌리자면 ‘이익이라는 사상에 철학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런 역사적 흐름속에서 아담 스미스라는 철학자가 나타나 경제현상의 진짜 그림이 담긴 책을 세상에 선보였다. 그 책의 이름이 바로 <국부론>이다.  


900페이지가 넘는 <국부론>의 원제는 앞서 언급했듯이 <국가의 부의 본질과 원인에 대한 연구>이다. 다시 말해 국부론은 무엇보다 ‘국부’에 대한 연구이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국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국부는 모든 국민이 해마다 소비하는 생활 필수품과 편의품의 양이다. 국민들의 연간 노동은 원래 그 국민이 해마다 소비하는 모든 생활 필수품과 편의품을 공급하는 자원이며, 그 생필품과 편의품은 언제나 이러한 노동의 직접적인 생산물이거나 그 생산물로 다른 국민들에게서 구입한 물품이다.”


스미스의 이같은 주장은 당시 정부 각료들과 많은 철학자들에게 받아들여졌던 중상주의와 중농주의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다. 중상주의자들은 국부란 국가가 보유한 금과 은의 양에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수입은 억제하고 수출을 장려해야 한다. 실제로 중상주의에 영향을 받은 여러 유럽 국가들은 국부를 증진시킨다는 명목으로 관세와 규제조치를 통해 수입을 억제하고 장려금제도나 식민지 건설을 통해 수출을 촉진시켰다. 그 결과 상인과 생산자들에게는 막대한 이익이 있었던 반면 그 나라의 일반 소비자들은 값 싸고 질 좋은 제품을 제대로 얻을 수 없었다. 


중농주의자들은 국가의 부는 오로지 ‘토지’에 있음으로 농민만이 부를 생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스미스는 여러 공장들을 관찰한 인물이다. 그는 공장에서 노동을 통해 부가 매일 생산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정리하면 스미스는 국부란 왕궁에 쌓아 놓은 금과 은이 아니라 그 국민이 해마다 소비하는 생활 필수품과 편의품의 양이며 그 소비품들은 노동을 통해 창조된다는 것으로 주장함으로써 당시의 낡은 편견에 대항했다. 결국 <국부론>이 널리 받아들여지면서 중상주의와 중농주의는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보이지 않는 손


그러나 스미스가 정말 위대한 점은 중앙정부의 계획이나 명령 없이도 사회 전체가 필요로 하는 재화나 서비스가 생산되고 소비되는 전체 경제가 어떻게 하나의 통합된 체계로 작동하는지를 최초로 설명했다는 점이다. 스미스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이기심과 경쟁으로 작동되는 ‘보이지 않는 손’인 시장을 무대 전면에 내세운다. 경제학의 모든 학파가 시장의 작동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스미스는 경제학의 창시자로 여겨진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 양조업자, 빵 굽는 사람들의 호의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서 스미스의 놀라운 견해를 발견할 수 있다. 핀공장에서 일하는 영성군이 오늘 생일을 맞아 저녁 식사로 빵과  작은 스테이크로 기분을 내고자 한다고 해 보자. 생일 때 와인이 빠지면 섭하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영성군이 자신의 저녁식사에서 직접 생산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고기는 푸줏간 주인에게서, 빵은 빵굽는 사람에게서, 와인은 양조업자에게서 받았다. 그렇다고 영성군이 그 모두를 잘 알고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우리는 사람들이 저마다 생활에 필요한 서로 다른 물건을 생산하는 ‘노동분업’을 통해 타인과 경제적으로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맺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저 세사람이 영성군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호의로 제품을 만들었느냐하면 그것도 아니다. 이들은 자신이 잘 먹고 잘 살고자 한 이기심으로 생산을 했을 뿐이다. 스미스는 경제 주체들 각자의 개인적 이기심에 맡겨 놓더라도 사회의 노동 분업을 조정하는 문제가 잘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당시로서는 매우 혁명적인 발상이었다. 왜냐하면 이기심은 사회 질서를 무너뜨리는 죄악 중에 하나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구심이 생긴다. 


정말 각자의 이기심에 맡겨도 사회 전체의 이익과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까? 이기심에 매몰된 푸줏간 주인, 양조업자, 빵 굽는 사람들이 영성군에게 질이 나쁘고 양도 적게 두면서 더 비싸게 팔지는 않을까?


걱정할 필요 없다. 아담 스미스의 세계는 ‘경쟁’이 지배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푸줏간 주인, 양조업자, 빵 굽는 사람들이 경쟁을 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이기심을 채우기 위한 최대의 이익을 내기 위해서는 영성군이 원하는 상품을 생산할 수 밖에 없다. 영성군이 원하는 상품이란 적정한 가격과 적정한 양을 갖고 있는 상품이다. 경쟁이라는 무기를 사용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상품의 가격과 양을 조절하게 된다는 것이다.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을 시장은 스스로 만들 수 있게 함으로써 희소한 자원의 낭비를 최소화게 되고 이는 곧 사회 전체의 이익에 부합하게 된다. 결국 이러한 견해를 하나로 모으면 다음과 같은 역사적 메세지가 도출된다.


“시장을 내버려두라(Let the market alone)!”



그에 대한 오해


<도덕감정론>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인 존재라 하더라도 그 천성에는 분명히 이와 상반되는 몇 가지가 존재한다. 이 천성으로 인해 인간은 타인의 운명에 관심을 가지게 되며 단지 그것을 바라보는 즐거움 밖에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타인의 행복을 필요로 한다. 


연민(pity)과 동정심(compassion)이 이런 종류의 천성에 속한다. 이것은 타인의 고통을 보거나 또는 그것을 아주 생생하게 느낄 때 우리가 느끼는 종류의 감정이다. 우리가 타인의 슬픔을 보고 흔히 슬픔을 느끼는 것은 굳이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들 필요조차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의 원제에서 도덕감정을 ‘The Moral Sentiment’라고 하지 않고 ‘Moral Sentiments’라고 하였다. 즉 도덕 원리는 하나의 특수한 감정이 아니라 여러 가지 감정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스미스는 인간이 이기심만으로 점철된 존재로 보지 않았다. 게다가 국부론에서는 이런 대목도 나온다.


“수 많은 이익을 가져오는 분업은 원래, 그것이 낳는 일반적인 풍족을 예상하고 의도한 인류의 지혜의 결과가 아니다. 분업은 그와 같은 폭 넓은 효용을 예상하지 못한 인간성의 어떤 성향으로부터 비록 매우 천천히 그리고 점진적이긴 하지만 필연적으로 생긴 결과이다. 그 성향이란 곧 하나의 물건을 다른 물건과 바꿔 갖고 거래하고 교환하는 성향(propensity to exchange)이다.”


<국부론>이 출판되기 전에 애덤 스미스가 글래스고 대학교에서 행한 강의에 관한 어느 학생의 필기노트에는 재화의 교환에 있어서 ‘설득 성향’까지 언급되었다. 정리하면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교환에서조차 스미스는 이기심이 주된 본성인 것은 사실이지만 교환성향, 설득성향 등의 다양한 본성이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


스미스에 대한 또다른 오해는 그가 자본가를 대변하고 정부의 개입과 규제를 부정한 보수주의 자유시장 경제학자들의 선조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부론>을 열렬히 환영했던 인사들도 신흥 자본가계급이었다. 하지만 스미스로서는 매우 억울한 일이다. 스미스는 부자들을 옹호하거나 변론하지도 않았으며 그는 국가의 부의 증진적 차원에서 일반 소비자와 노동의 가치를 매우 높게 샀다. 게다가 당시에는 정부의 개입과 규제가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경우가 더 많았다.


<국부론>에는 스미스가 핀공장에서 분업을 통해 작업을 전문화하고 세분화함으로써 놀라운 생산성을 낳는 장면을 예찬하는 대목이 나온다. 하지만 현재에 사는 우리는 이 장면을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와 연결시키며 스미스가 생산성을 위해 인간을 희생시키는 것처럼 느끼는 것 같다. 스미스의 진심은 무엇이었을까? 18세기 영국으로 가보자. 


18세기 영국의 인구는 1200만명이었는데 무려 2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빈민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조상 대대로 살던 땅에서 쫓겨나 도시로 흘러든 농민들이었기 때문에 일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숙련도조차 없었다. 그런데 분업을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일의 복잡성이 줄어들며 낮은 숙련도로도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스미스의 말을 빌리자면 ‘하층민에까지 확산되는 보편적 부’를 증가시키게 되는 것이다. 


물론 스미스는 분업을 통해 단순한 작업만 반복하다보면 생산성은 올라가지만 노동자들의 지능과 정신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여기서 정부의 역할을 명시한다. 스미스는 노동분업을 통한 정신적 부작용을 막기 위해 정부가 공교육(public education)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스미스는 또한 민간부분에서 수행하기 힘든 도로 건설 등의 공공투자의 유익성을 명백히 인식하고 있었다. 스미스는 이렇게 말했다.


“정부는 좋은 사회에 매우 유익하기는 하지만 개인이나 소규모 집단들이 그로부터 이윤을 얻어 비용을 보상받기 어려운 성격을 가진 공공기관과 공공사업을 설립하고 유지하는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스미스가 당시 공교육이나 공공투자 이외에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지 말라는 이유는 정부가 도제법이나 길드의 경쟁 제한 등을 통해 특정 집단의 이익을 옹호했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는 현재와 같은 거대 기업이 존재하지 않았다. 대부분 공장은 규모가 작았고 사업은 매우 경쟁적이었기에 시장의 자율 매커니즘이 잘 작동할 수 있었다. 기업들 사이의 힘의 균형이 있었기 때문에 어설프게 정부가 개입하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손’에 맡기는 편이 사회 전체를 위해서 더 나았다. 아마도 거대한 대기업들이 즐비하고 힘의 균형이 깨진 현재의 자본주의를 아담 스미스가 봤다면 그는 분명 정부의 역할을 재정의 했을 것이다.


‘구성원의 다수가 가난하고 비참한 사회는 결코 번영하고 행복할 수 없다’고 말한 시대의 대표적인 도덕철학자이자 최초의 위대한 경제학자인 아담 스미스는 3천권의 장서만을 남긴 채 1790년 7월 17일 세상을 떠났다.

 

‘나는 내 책들의 애인일 따름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아담 스미스. 스미스는 이제 경제학을 사랑하는 모든 이의 애인이 되었다.


# 참고문헌

<경제의 교양을 읽는다>, 홍훈 외, 더난출판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 유시민, 푸른나무

<세속의 철학자들>, 로버트 L. 하일브로너, 이마고

<자본주의 이해하기>, 새뮤얼 보울스, 리처드 에드워즈, 프랭크 루스벨트, 후마니타스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토드 부크홀츠, 김영사

<지금 애덤 스미스를 다시 읽는다>, 도메 다쿠오, 동아시아


팟캐스트 - 경제경영 읽어주는 남자 고영성

출처: http://blog.naver.com/justalive/220269705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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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인간이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선택을 한다면,


가난한 이들의 경우 현재의 체제 속에서 고통을 받기 때문에 당연히 변화를 원할 것이고,


변화를 원한다면 '진보적'이 돼야 할 텐데 베블런이 관찰한 당시 미국 사회의 경우 결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현상에 대한 그의 관찰이 특히 값진 이유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서 매우 통렬한 비판을 했던 마르크스나 엥겔스의 경우도

하위 소득계층이 결국엔 혁명을 시도할 것이라는 기대를 했다는 점에 있다.

하위 소득계층의 단결과 저항을 예상할 수 있는 전제는 하위 소득계층이 

결국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선택(자본가 계급을 타도하는 것이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선택)을 할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결국 자본주의를 비판했던 마르크스나 엥겔스도

인간이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선택을 할 것이라는 기존의 자본주의적 전제를 공유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베블런이 보기에 하위 소득계층이 처한 현실은

'합리적 인간'으로서 존재할 여건 자체가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속된 말로 '하루 벌어 하루 살기'도 힘든 일상 속에서 하위 소득계층은

기존의 제도와 생활양식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다.

아니 오히려 기존 제도와 생활양식에 다른 어느 계층보다 충실해야만 그나마 기초적인 생존이 가능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위 소득계층은 당연히 기존 제도와 생활양식에 가장 순종적이 될 수밖에 없고(되어야만 하고)

결국 그렇게 그들은 '보수적'이 된다는 게 베블런의 분석이다.

- 뉴스타마 김진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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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이래 늘 혁명을 꿈꾸던 사람들이 있었다.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혁명은 그들삶의 전부였다. 내 젊은 시절에도 함께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았다. 혁명이라는 단어 속에는 ‘사회주의’에 대한 지향이 담겨있었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인가 혁명이란 말은 우리 곁에서 멀어졌다. 어느 때부터인가? 남한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사노맹이 대부분 검거되고 나서부터였을까? 아니면, 소련과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이 무너지면서부터였을까?


아무튼, 혁명은 우리에게 추억처럼 조금씩 멀어지고 대신 ‘제 3의 길’이니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니 하는 말들을 자주 듣게 되었다. ‘혁명’이란 단어가 멀어지고 난 후에 세상을 바꾸는 꿈을 꾸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향하는 사회를 구체적이고 명시적으로 표현하는데 어려움을 격기 시작했다. 


자본주의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 사람들은 ‘공동체’, ‘지속가능성’, ‘생명’, ‘평화’, ‘평등’ 같은 다소 추상적인 단어들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설명하지만, ‘혁명’을 말하던 그 때 만큼 명쾌하지도 역동적이지도 않다. 1980년 대 스테디셀러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쓴 박세길이 15년을 각고 한 끝에 ‘혁명’에 불을 지피는 새로운 저작 <추억의 혁명 미래의 혁명>을 세상에 내놨다.



이 책은 프랑스 대혁명, 산업혁명, 마르크스주의의 태동, 세계 1차대전과 러시아혁명, 중국혁명, 조선혁명, 베트남혁명, 68혁명, 쿠바혁명, 브라질 노동자당, 문화대혁명, 개혁개방, 소연방해체와 현실사회주의 붕괴, 베네수엘라의 새로운 도전, 멕시코 사파티스타 봉기, 반세계화 공동투쟁, 세계사회포럼, 쿠바농업혁명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 이후 일어난 크고 작은 혁명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렇지만, <추억의 혁명, 미래의 혁명>은 단순한 혁명사가 아니다. 지은이는 신자유주의 이후 새로운 세상에 대한 분명한 비전을 제시하기 위한, 그리고 민중이 주체로 우뚝 서서 역사를 새롭게 열어갈 수 있는 조건과 비전을 제시하기 위하여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그는 소련이 무너지던 즈음, 처음 ‘혁명’이라는 화두를 붙들고 씨름하기 시작한 이래 <추억의 혁명, 미래의 혁명>을 세상에 내 놓기까지 15년을 각고하였다고 한다.


지난 15년간, 1만매에 이르는 초고를 썼다가 마침내 2,600매에 이르는 원고로 갈무리하기까지 저자의 고심참담은 각별하였다고 한다. 


“세상의 변혁을 꿈꾼 사람 입장에서 지나온 역사를 되돌아본다는 것은 상당히 고통스런 광정일 수 있다. 그 속에는 분명하게도 쓰라린 패배의 장명이 가득 담겨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한때는 더없이 고결하게만 느껴졌던 혁명의 역사가 숱한 오만과 편견, 어리석음과 우유부단함을 가득품고 있음을 수긍하는 것 역시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저자 여는 글 중에서)


박세길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해온 근대 이후 혁명사를 “전 지구적 관점과 역사적 맥락 비추어”반추하면서 새로운 반전, 곧 미래혁명에 대한 전망을 세우고자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역사발전이란 과거의 부정을 통해 미래를 새롭게 창조해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과거의 답습으로는 결코 새로운 혁명에 성공할 수 없다고 한다. 따라서 마땅히 지난한 재창조의 과정이 있어야하며 신자유주의 이후에 올 새로운 세계를 ‘혁명’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위하여 노력하였다는 것이다. 


모든 혁명은 프랑스로 통한다. 


박세길은 670쪽에 이르는 대작인 <혁명의 추억, 미래의 혁명>을 쓰면서 그 첫 장에 프랑스 대혁명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프랑스 혁명을 일컬어 근대혁명의 ‘빅뱅’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음악의 아버지를 바하로 철학의 아버지를 탈레스로 혹은 근대 철학의 아버지를 데카르트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는 혁명 중의 혁명, 모든 혁명의 아버지 격인 혁명이 바로 ‘프랑스 혁명’이라고 한다. 


“특히 중요한 것은 봉건적 특권에 맞서 민주주의 원칙을 옹호하는 것으로써 시민혁명의 보편적 가치를 선명하게 창출했다는 점이다. 그럼으로써 프랑스 대혁명은 각종 특권의 확대로 민주주의가 위협받을 때마다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든지 끊임없이 부활할 수밖에 없는 영원한 현재진행형이 되었다.”(본문 중에서)


루이 16세의 군대소집에 맞선 국민회의의 민병대 조직과 자치위원회 구성에 뒤이은 1789년 7월 14일에 일어난 바스티유 점령은 영원히 지속될 것 같던 지배질서가 일순간에 허물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스티유 점령 이후 군중은 격렬한 형태로 지존질서와 지배세력을 공격하였으며, 농촌에서는 폭동이 확산되고 귀족습격, 봉건문서 폐기, 지방행정조직 파괴와 같은 봉건체제에 대한 저항이 다반사로 일어났다고 한다. 


프랑스 대혁명 시기에 나타난 가장 중요한 현상으로 폭발적으로 확산된 정치클럽이다. 1789년과 1795년 사아에 5500개 지역에 약 6000개의 정치 클럽이 존재하였으며, 구성원은 대략 50만에서 60만에 이르렀다고 한다. 프랑스혁명이 표류하면서 혁명전쟁을 통해 부상한 나폴레옹이 집권하게 되는데, 이것은 대혁명과 논리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전제군주제의 부활로 나타났다. 


지은이는 나폴레옹을 “군주형 혁명 지도자”의 첫 번째 사례로 평가하고 있다. 그는 뛰어난 군인이자 유능한 정치가였기 때문에 대혁명의 성과를 계승하고 발전하는 것이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받는 길임을 정확히 간파하였다는 것이다. 


“나폴레옹 법전 편찬을 통해 법 앞에서 만인의 평등, 양심과 종교 선택의 자유, 재산권 보장, 농노제 폐지 등 대혁명 과정에서 구호로 제기된 사항들은 법체계에 담았다. 그밖에도 중앙집권적 국가체제를 정비하고 법원, 학교 등에서 근대적 모델을 확립하는 등 적잖은 성과를 남겼다.”(본문 중에서)


그러나, 혁명의 적이었던 전제군주제는 혁명이 추구했던 참정권 확대를 극도로 제약하고 보통선거제를 후퇴시켰다고 한다.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노동자계급을 형성시키고 자본주의를 태동시키는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자본주의는 생산력 발전을 비약적으로 이끌어내어 수많은 위기와 모순에도 불구하고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그렇다면, 왜 산업혁명은 영국에서 시작되었을까?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원인은 전혀 다른 곳에 있다. 돈을 버는 것이 최고의 가치로 간주되고 마음만 먹으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사회적 환경이 바로 그것이다. 곧 부르주아적 질서와 문화의 확립이야말로 산업혁명을 야기한 결정적 요인이었다.”(본문 중에서) 


<혁명의 추억, 미래의 혁명>에서 지은이는 명예혁명 등 일련의 정치혁명을 통해 대륙 국가들에 비해 부르주아의 지배가 일찍 확립되었기 때문에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되는 토대 가 되었다는 것이다. 산업혁명이 후 영국 부르주아들의 이익 증대는 수백 퍼센트, 수천 퍼센트에 이르는 수직상승이 이루어졌으며, 가히 ‘혁명’이라 부를 만한 상황이 지속되었다고 한다. 


자본가들이 거둔 엄청난 이윤 축적은 노동자들에 대한 극단적이 착취에 의해서 이루어졌고, 이후 노동자들은 여러 혁명에서 계급투쟁의 주력을 담당하게 되었다고 한다.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대륙으로 넘어와 프랑스로 퍼져나갔고, 선거법에 대한 불만이 촉발시킨 1848년 혁명으로 분출되었다. 그러나 2월 혁명에서 정권을 잡은 부르주아는 노동자들 권력으로부터 소외시켰고, 그해 6월 새로운 봉기를 일으키지만 좌절로이어진다.


좌절된 듯이 보였던 노동자들의 혁명은 인류역사상 최초로 전시민이 참여하는 보통선거 실시로 이어지는 파리 코뮌으로 이어진다. 파리 코뮌은 선출된 의원이 입법과 집행을 동시에 책임지는 형태였으며, 철저한 인민주권 원칙에 입각한 직접민주주의 체제를 표방하였다고 한다. 가히 혁명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 혁명은 1968년 이른바 68혁명으로 이어진다. 대혁명 이후 프랑스는 항상 세계 혁명사의 중심에 있었다. 


혁명에 날개를 단 마르크스와 공산당선언 


한편, 지은이는 자본주의 이후 시작된 ‘혁명’에 날개를 달아준 것은 ‘마르크스’라고 평가한다. 엥겔스와 함께 쓴 공산당선언은 그 엄청난 파급효과를 감안한다면 그 자체를 역사의 일부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1848년 공산당선언이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 대략 150년의 세월은 바로 그 메시지를 실현하기 위해 다양한 실험이 일어났던 시기였다. 이는 다른 각도에서 보면 지난 150년의 역사는 공산당선언을 검증한시기라고도 볼 수 있다.”(본문 중에서) 


1848년 2월 25일 런던에서 공산당 선언이 발표된 후, 유럽은 급속히 혁명의 폭풍에 휩싸였다는 것이다. 프랑스, 남서독일, 바이에른, 베를린, 빈, 헝가리, 밀라노를 거쳐 불과 몇 주일 만에 유럽 10개국에서 혁명이 일어나고 바다 건너 남미로 번져갔다고 한다. 또한 마르크스가 쓴 ‘자본론’은 자본주의의 본원적 모순을 정확히 진단함으로써, 이후 일어난 모든 ‘혁명’에 이론적 기반을 제공하였다는 것이다.


무엇을 혁명의 성공으로 볼 것인가에 따라서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어쨌든 역사상 최초로 집권에 성공하는 혁명은 러시아 혁명이다. 1917년 10월 마침내 볼세비키가 러시아 혁명에 성공한 이후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독일 패망을 딛고 동유럽일대로 사회주의혁명이 확산되었다. 이후 동아시아에서는 중국과 베트남이 혁명에 성공한다. 


<혁명의 추억, 미래의 혁명>을 쓴 박세길은 앞서 일어난 혁명이 어떻게 새로운 혁명을 위한 디딤돌 역할을 하는지에 주목하여 혁명역사를 되돌아본다. 러시아혁명을 딛고 이루어지는 동아시아에서 중국과 조선 그리고 베트남 혁명, 프랑스 68혁명, 쿠바혁명과 남미혁명을 조망하면서, 그 한계와 파급효과를 냉철하게 분석한다.


실패로 보이는 혁명이, 초기부터 국가사회주의 병폐를 안고 출발한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이 다른 나라, 다른 혁명에서 어떻게 극복되는지를 살펴보는데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은이는 성공한 혁명에 면죄부를 주는 경우도 없고, 실패한 혁명에 굴레를 씌우는 일도 없다. 실패로 보이는 혁명에서도 희망을 발견하고, 미래의 혁명에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지 밝히는데 주력하였다.


또한 혁명에 반대편에 서 있는 자본주의가 어떻게 공고하게 지탱하기 위하여 자기변혁의 과정을 거치는지에 대해서도 고찰하고 있다. 세계자본주의의 중심이 된 미국자본주의의 성장, 케인즈주의와 국가자본주의, 복지국가와 사회민주주의의 태동 그리고 그 한계와 문제점에 대해서도 살펴보고 있다.  


아울러, 소련과 중국을 중심으로 대약진 운동과 문화대혁명, 개혁개방노선과 중화주의 그리고 페레스트로이카와 고르바초프실험의 실패, 중소분쟁과 소련의 고립, 정체의 늪에 빠진 소련체제 그리고 소연방의 해체에 이르는 혁명을 거꾸로 돌려놓은 일련의 사건들에 대하여도 역사적 검증을 시도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혁명은 ‘새로운’ 혁명이다. 


세상의 어떤 혁명도 앞서 이루어진 혁명을 그대로 따라서 성공한 경우는 없다. 모든 혁명은 다른 조건, 다른 상황에서 각기 다른 세력이 혁명의 주체가 되어서 새로운 혁명의 모델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에 특별히 주목하고 있다. 피억압 계층은 늘 혁명을 통해 민주의의를 확장하고 새로운 분배를 실현해나가고 인민이 중심이 되어 복지를 확장해나간다는 것이다. 


20세기에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대표적인 사건은 러시아 혁명과 소련붕괴라고 한다. 러시아 혁명은 인간의 힘으로 기존의 질서를 타파하고 새로운 질서를 확립할 수 있다는 확신을 안겨주었지만 소련붕괴는 정반대의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소련 붕괴는 현존하는 자본주의 질서에 대한 도전과 새로운 실험을 지극히 허망한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그에 따라 사회혁명을 꿈꾸던 사람들은 극심한 혼돈과 지적 공황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소련 붕괴와 함께 전세계적 차원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의 마지노선이 함께 붕괴된 것이다.”(본문 중에서)


결국 소련붕괴는 20세기에 자본주의의 승리를 확정짓는 사건이 되었고, 자본주의는 아무런 제약없이 질주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나아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670쪽이나 되는 두꺼운 책 <혁명의 추억, 미래의 혁명> 중에서 300여 쪽은 지나간 ‘혁명’을 반추하는 내용이다.


지은이는 책의 절반 이상을 할애하여 소련붕괴이후 승승장구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실체를 규명하고, 다시 사람이 살만한 세상을 꿈꾸는 새로운 사례로 쿠바와 베네수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새로운 도전을 살펴본다. 또한 지식정보사회에서 노동계급이 새로운 선진계급으로 등장하는 과정과 기업혁명을 통해서 주주독재에서 민주적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과 당위성을 짚어본다.


박세길은 기업혁명, 자본혁명, 시장혁명을 통해서 생태주의, 문화주의, 여성주의, 평화주의가 실현되는 사회, 세상의 중심축이 자본에서 사람으로 이동하는 여러 가지 징후들을 발견하고 있다. 또한 세계 곳곳에서 실험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기업혁명, 자본혁명, 시장혁명의 사례들을 낱낱이 찾아내어 소개하고 있다. 


지은이는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새로운 혁명을 이루어가는 방안으로 주주(자본)의 절대권력을 타파해야 하며, 궁극적으로 부르주아 지배체제의 해체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새로운 시대 사회혁명은 과거와 같은 소수 엘리트가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연대에 기초한 인민의 자주적 해결 능력을 고양시킴으로써” 이루어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사회연대가 중심을 이루고 국가는 지원과 조정 임무를 수행하는 새로운 형태의 국가로서 ‘사회연대국가’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다.  


기업, 자본, 시장 혁명을 통해 ‘사회연대국가’로 


아울러 소수 엘리트에 권력이 집중되는 대의민주제의 한계를 뛰어넘어 사회구성원의 연대와 협력을 통한 자치실현이 국가의 강제기능을 대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인민에 의한 권력통제가 가능한 조건으로 전자민주주의 도입, 국민발안제, 국민투표제, 국민소환제 제도화, 그리고 의원숫자를 대폭 늘리는 의회기구 개혁과 의원에 대한 특권폐지는 기본적인 전제조건에 해당된다고 한다. 아울러 지역 공동체에 기초한 복지모델과 자치권력을 강화하는 현존하는 제도로서 스위스 모델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스위스는 최고 7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수백에서 수천 명 규모의 3072개의 공동체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공동체는 직접민주주의에 입각하여 운영되며, 스위스 연방의 실질적인 최고 주권기관으로서 지위를 갖고 있다. 연방정부는 이러한 공동체의 연대를 보장하는 공동사무국의 형태를 띨 뿐이다. 말하자면 스위스는 현존하는 코뮌 국가라고 할 수 있다.”(본문 중에서)


그리하여 지은이는 생태, 문화, 여성, 평화와 같은 대안의제에 기반을 둔 사회권력과 지역공동체에 기반을 둔 자치권력이 국가권력을 형성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사회권력과 자치권력은 사회연대를 기반으로 직접 행사하는 권력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일치한다는 것이다. 


<혁명의 추억, 미래의 혁명>을 쓴 박세길은 세상의 변혁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사회연대국가’라는 새로운 길을 가는 지도를 내놨다. 이 책이 가진 탁월함은 신자유주의가 가진 문제점과 모순을 나열하는데서 크게 한 걸음을 내디뎠다는데 있다. 소련이 붕괴한 후 누구도 딱 부러지게 이야기하지 못한 신자유주의 이후 새로운 사회에 대한 구체적인 밑그림을 내놨다.그는 자신이 내놓은 밑그림이 “다양한 토론을 촉발시키고 사고의 혁신을 자극하기를 기대”한다고 한다.


짧지 않은 서평이지만 내 글을 통해<추억의 혁명, 미래의 혁명>을 온전히 소개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사회연대국가로 나아가는 기업혁명, 사회혁명, 시장혁명에 대한 구체적 방안과 사례는 찾아 읽는 것은 독자들에게 남겨진 몫이다. 


신자유주의를 넘어 더 많은 사람들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그런 세상을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다. 단언하건데, 소련붕괴 이후 나온 그 어떤 책보다 가장 분명하게 다시 ‘혁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책이다. 박세길의 해박한 지식과 사회변혁을 향한 뚜렷한 지향이 담긴 책이다.



목차


여는 글 혁명, 추억의 반추 그리고 미래의 전망 


PART 01 혁명의 열정, 역사를 바꾸다


CHAPTER 01 근대혁명, 계급투쟁으로 뿌리를 내리다 

근대혁명의 빅뱅, 프랑스 대혁명

산업혁명과 노동자계급의 형성 

혁명에 날개를 달아준 마르크스주의 


CHAPTER 02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 시련을 먹고 자라다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 

극한을 넘나드는 혁명의 물결 

스탈린 시대의 빛과 그림자 


CHAPTER 03 동아시아 혁명, 새로운 꽃을 피우다 

중국혁명, 그 기나긴 장정 

파란과 곡절을 딛고 선 조선혁명 

작은 거인의 분투, 베트남혁명 


PART 02 역사는 한계를 딛고 전진한다 


CHAPTER 04 자본주의 세계의 3중주, 기묘한 역설을 말하다 

미국, 자본주의 세계의 중앙정부 

케인스, 자본주의의 도약대 마련 

복지국가와 사회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도전, 68혁명 


CHAPTER 05 제3세계, 새로운 지평을 열다

냉전의 최전선 한반도, 그 격정의 드라마

혁명의 활화산 

미국의 개입 

민중의 반격


CHAPTER 06 중국의 변신, 새로운 전범을 만들다 

역사를 거꾸로 돌린 대약진운동

극단을 향해 치달은 문화대혁명

개혁개방의 길

표면화되는 중화주의 


CHAPTER 07 소련의 붕괴, 한쪽 날개가 사라지다 

중소분쟁과 소련의 고립 

정체의 늪에 빠진 소련 체제 

고르바초프 실험의 실패 

기묘한 소연방의 해체 


PART 03 신자유주의 세계화, 바닥을 드러내다


CHAPTER 08 자본주의, 위기에서 탈출하다

장기 불황과 신자유주의의 부상 

초국적자본의 세계 정복

주주자본주의의 태동 


CHAPTER 09 포획당한 한국 경제, 허울만 남다 

성장의 원동력과 시스템 사이의 모순 

새로운 점령군

저성장의 구조화 


CHAPTER 10 신경제 10년 천하, 무덤이 가까워지다 

퇴로를 상실한 신경제 

무너지는 달러 제국 

일극체제에서 다극체제로 

저항의 세계화


PART 04 대반전, 이제 다시 ‘사람’이다


CHAPTER 11 전환기, 창조적 파괴의 현장들

생사의 갈림길에 선 사회민주주의

베네수엘라의 대담한 도전 

쿠바, 농업에서 출구를 찾다 

새로운 출발선에 선 북한 


CHAPTER 12 

세상의 중심축 이동, ‘자본’에서 ‘사람’으로 

노동혁명, 기계의 노예에서 생산의 주인으로

기업혁명, 주주독재에서 민주적 공동체로 

자본혁명, 착취의 도구에서 사회혁명의 동력으로 

시장혁명, 탐욕의 기지에서 사회화의 무대로 


CHAPTER 13 미래가치의 구현, 관점의 혁명으로부터 

생태주의, 생존의 조건 

문화주의, 행복의 조건

여성주의, 미래가치의 모태 

평화주의, 공존의 조건 


CHAPTER 14 사회연대국가, 주권재민의 실현 

‘창조적 다수’의 소통과 연대 

인민에 의한 권력 통제 

공동체에 기초한 복지 모델과 자치권력 

생존 철학으로서의 공유와 협력

[출처: http://www.ymca.pe.kr/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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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호 평전- 사회변혁을 꿈꾼 민중경제학자의 삶

조용래 (지은이) | 인물과사상사




‘경제민주화 주장’ 유인호 교수, 평전으로 기리다

20주기 기념 추모집도 발간… 민중경제학자의 삶 재조명


“어느 날 목사님들이 모여 ‘유 교수는 자본주의가 망한다고 얘기한 지 20년이 지났는데 아직 망하지 않은 걸 보니 거짓말 아니냐’고 농을 걸었습니다. 교수님은 되레 ‘목사님들은 예수 재림을 20년 가까이 주장하고 있는데 내가 한 것이 무슨 대수냐’는 위트를 보여줬어요. 자본주의 위기가 세계적 규모로 퍼지고, 종주국인 미국에서조차 이대로는 안 된다고 하니 교수님의 예언에 가까워진 셈입니다.”


김병태 건국대 명예교수는 민중경제학자 일곡 유인호 전 중앙대 교수(1929~1992)를 이렇게 회상했다. 지난 5일 서울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는 유 교수의 20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330㎡(약 100평) 규모의 행사장은 앉을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가득 들어찼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함세웅 신부, 박형규 목사, 한승헌 변호사,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 김세균 서울대 교수 등 많은 이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추모식에 이어 고인의 삶과 사상을 집대성한 <유인호 평전>과 지인들의 추모사를 엮은 <진보를 향한 발걸음>(각 인물과사상사)의 출판기념회도 함께 열렸다.


무엇이 오랜 세월을 지나고도 그를 떠올리게 만드는 것일까. 대선을 앞두고 경제민주화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지만, 경제민주화를 처음으로 제기한 학자가 바로 유 교수였다. 재벌을 비롯한 소수 1%의 정치·경제적 장악력이 강해졌고, 중소상공인·자영업자·노동자·농민의 생활이 어려움을 더해가고 있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평전을 집필한 조용래 박사는 “한국경제는 유 교수가 본격적으로 주장을 펴기 시작한 1960년대 이후 줄곧 제기해 온 문제군(群)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유 교수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당면 과제로 경제민주주의 실현을 꼽았다. 1980년 박정희 대통령이 죽은 뒤 ‘서울의 봄’이 일어나자 유 교수는 유신헌법을 폐기하고 새 헌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경제 기본권 7가지 규정’을 제기했다. 여기에는 ‘국가 권력은 경제력 집중을 막을 제도적 장치를 가져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그의 사상은 ‘박정희 신화’를 만들어낸 고도성장의 허상을 지적하는 데서 비롯됐다. 유 교수에게 당시의 성장은 자본과 기술, 시장을 외국에 의존한 ‘종속적’인 성장에 불과했다. 수출과 국민총생산(GNP)이라는 숫자 증대에만 매달리면서 재벌을 비롯한 일부의 배만 불리고 대다수를 피폐하게 만드는 허깨비뿐인 성장이었다. 대신 유 교수는 “진정한 의미에서 생활경제의 풍부함”(김종걸 한양대 교수)을 이야기했다. 그는 ‘민중’ ‘민족’ ‘민주’의 경제학자로 불렸다. 대다수 민중의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민중경제’, 세계화 시대에도 강력한 국내 자본을 육성하는 ‘민족 경제’가 돼야 하고, 그 모든 것을 추진하는 데 ‘민주적 절차’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1961년 5·16 쿠데타가 벌어진 뒤 박정희 군부세력은 정유공장을 세우기로 하고 당시 동국대에 재직하던 32살의 유 교수에게 계획안을 맡겼다. 유 교수는 외자를 일절 배제하고 순수한 민족자본으로 건설할 것을 주장했으나 외국 자본을 끌어들여야 한다는 안에 밀려 채택되지 못했다. 훗날 1970년대 유신경제가 수출은 16억달러에서 150억달러로 늘었지만, 외채를 220억달러나 도입해야 했으며 무역적자도 136억달러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유 교수의 혜안을 보여준다.


유 교수는 ‘국내 자원 활용 주도형’ 경제 발전을 주창했다. 그는 ‘자본주의적 기업농’ 육성책에 반대해 ‘농업 협업화를 통한 농민들의 연합’을 주장했다. 농민들이 일정한 토지와 농기구를 공동 소유하고 생산의 결과를 나눠가지는 방법이다. 유 교수는 새마을 운동을 농업 협업화의 방향으로 전개하자고 박정희 정부에 건의했으나 정치적 목적을 우선한 집권세력의 반대로 무산됐다.


그는 재벌을 소규모 기업들로 해체하기보다 재벌의 소유를 ‘총수’로부터 ‘사회’로 귀속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업을 국유화시켜 관료들에게 맡기는 방법이 아니다. 농업 협업화처럼, 공장도 구성원들에게 운영을 맡기는 소유의 민주화를 뜻한다. 리쓰메이칸대학에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공부한 유 교수가 말하는 사회주의는 구소련식의 계획경제가 아니었다. 

계급이 사라진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이 이루는 사회에 가까웠다.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일곡은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을 명료하게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고 표현한다.

 

   

▲ 1974년 10월 한 일간지에 ‘연료정책의 모순’이라는 칼럼을 쓰기 위해 연탄공장을 찾은 유인호 교수. 유 교수는 현장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 인물과사상사 제공


유 교수는 자신의 최대 연구과제가 “나와, 겨레와, 인류의 가난과 슬픔과 비참을 극복할 수 있는 학문”이라고 했다. 그는 실천하는 지식인이기도 했다. 1980년에는 민주화를 촉구하는 ‘134인 시국선언’을 주도했다가 신군부가 만들어낸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돼 옥고를 치렀다.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는 추모집에서 “민중을 위한 스스로의 학문적 신념을 행동으로 실천하기 위해 고행의 길을 살다 간 용기있는 사람”이라며 “그 발자취가 역사의 한 구석에 길이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 이 글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졸업생 황경상 기자가 경향신문에 보도한 기사를 전재한 것입니다.

출처: http://www.danb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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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 교육으론 자본주의 위기 넘을 힘 못만들 것"
 
[獨 미래학자 호르크스 인터뷰]

"최고가 아니면 낙오되는 건 지속가능하지 않은 시스템
공부 잘하는 학생은 복종 잘하는 사람일 뿐… 성적은 인간을 다 반영 못해"

독일의 저명한 미래학자 마티아스 호르크스(Matthias Horx)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다가올 미래와 관련, "자본주의 4.0시대, 즉 미래 사회에서는 지식을 아는 것보다 지식과 정보를 새로운 방식으로 연결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급변하는 미래에 자본주의를 지속 가능하게 하는 핵심은 교육에 있다"고 말했다.
 
호르크스는 6일 본지와 가진 이메일 인터뷰에서 "현재 우리의 교육시스템은 사무실과 공장에서 경쟁적으로 일을 하던 산업화 초기단계에 머물러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지금의 한국 교육으로는 자본주의 위기를 극복하기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호르크스는 "초등학교 때부터 극심한 경쟁을 시키는 한국식 교육에서는 최고가 아니면 기회를 놓치고 낙오한다"며 "서구의 기업들도 지금 학교 성적이 한 인간의 능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의 경우 모든 학생이 똑같은 목표(대학 진학)를 향해 달려가는 지나치게 단순화된 교육 모델에 머물러 있다"면서 "다양한 재능과 능력을 가진 학생들에게 '다양한 트렉(진로)'을 만들어 줘 재능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게 자본주의 4.0시대에 맞는 교육"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의 주입식 위주 교육이야말로 자본주의 3.0시대 교육의 '우울한 단면'이라고 비판하면서 "문제풀이에 매몰돼 있는 교육은 절대 안 된다"고 했다.
 
그는 "객관적 사실과 공식은 인터넷에 널려 있고 이런 정보를 얻는 것은 앞으로 더 쉬워진다"면서 "학생들을 그런 단편적 지식을 묻는 것으로 평가한다면 미래사회의 변화추세와 거꾸로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교육은 구태의연한 정답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영감과 질문을 던져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공부 잘하는 학생은 '복종 잘하는 사람' '제도에 순응 잘하는 사람'을 의미할 뿐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광고·디자인·기술 등 미래의 창의적 산업분야를 이끌어 갈 인재는 꼭 학교 모범생 출신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호르크스는 "학교가 꾸준히 개혁·개선될 때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스웨덴·덴마크·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들의 경우 교육이 그 사회의 부가가치를 창출해 내고 있다"면서 "단, 교육시스템이 소수의 부자(富者)들에게만 유리하게 작동하지 않고,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다양한 기회를 제공되고 창의적인 교육 콘텐츠가 제공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교사의 역할'을 강조했다. 교사가 지식전달자에 그친다면, 미래의 사회는 암울하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의 (상당수) 교사들은 아이들 재능을 키우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아이들 재능을 다 망치고 있다"며 "교사는 아이들에게 호기심과 창의력을 키워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1955년 독일에서 태어난 호르크스씨는 '자이트' '템포' 등 잡지 편집장을 지낸 저널리스트출신 미래학자다. 1996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미래연구소'를 설립하고 현대사회의 메가 트렌드 등을 연구하고 있다. 휴렛페커드·유니레버·인텔·노키아 등 글로벌 기업을 컨설팅했다. '미래에 관한 마지막 충고' '미래에 집중하라' '위대한 미래' 등의 저서가 있다.

 

선택폭 넓은 독일, 대학 외길 한국… 1인당 GDP는 獨이 두 배 더 높아  
강한 국가, 행복한 개인 만드는 독일 교육 시스템
직업학교서 월급 받으며 공부… 대학 진학률 36% 불과해도 막강 기술자들, 경제 버팀목

독일 함부르크주 '직업준비학교'(중학교 과정)에 다니는 율리안 라이라우(14)는 2년 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이 학교로 전학 왔다. 대학에 가기 위해 인문계 진학 과정인 '김나지움'에 입학했지만 공부가 싫어 성적이 바닥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지금 라이라우의 꿈은 '호텔리어'다. 이 학교에서 두 차례 현장 실습한 호텔리어의 일이 너무 재미있었다. 그는 지금 유명 호텔에 취직하겠다는 꿈을 안고 외국어·와인 공부를 한다. 낙제생이었던 라이라우는 이 학교에서 우등생이 됐다.

유로(EURO) 사용 국가들이 최근 경제위기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지만 독일은 오히려 상승세를 타고 있다. 지난 9월 경제성장률은 전 분기 대비 0.5% 성장했고 실업률은 0.1%p 감소한 5.8%, 수출은 전년 대비 12% 증가해 사상 최대 기록(1조750억유로)을 세웠다. 독일의 1인당 GDP는 4만631달러, 우리나라(2만591달러)의 두 배에 달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 독일이 유럽 최강(最强)의 위상을 지키고 있는 비결은 뭘까. 전문가들은 훌륭한 인적자원을 키워내는 '다(多)트랙 교육시스템'(그래픽)을 꼽는다.

 
독일은 초등학교 4학년 이후 적성에 따라 대학에 진학할 건지 직업 교육을 받을 건지를 선택한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적성과 재능을 찾을 때까지 지원하는 교육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적성에 안 맞으면 언제든 다른 방향으로 진로를 바꿀 수 있는 유연성도 갖추고 있다. 특히 '직업준비학교→직업학교→마이스터'로 이어지는 직업 교육시스템을 통해 길러진 막강 기술자들은 지멘스(전기전자회사), 벤츠·BMW·폴크스바겐(자동차회사), 티센크루프(철강회사) 같은 세계 굴지 기업들을 일궈냈고 지금도 독일 경제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

지난 6월 기준 독일의 청년실업률은 9%로 스페인(45.7%)의 5분의 1 수준이다. 이처럼 낮은 실업률 역시 직업학교 시스템 덕이다. 학생들은 직업학교를 다니면서 특정 회사에 임시 고용돼 월급을 받으며 공부를 하기 때문이다. 독일은 대학 교육을 사실상 무상으로 실시하지만 대학 진학률은 36%에 불과하다. 우리나라(80%)는 물론 일본(48%), 미국(64%), 영국(61%)보다 낮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최하 수준이다.

함부르크 '한델스카머(상공회의소)'의 토마스 쉬어베커씨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독일 엔지니어 중 대학 졸업자는 30% 정도"라며 "독일에서는 굳이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자신이 가진 기술을 연마하고 열심히 일하면 누구나 존경을 받는다"고 말했다.

독일 교육이 지금 같은 형태를 갖춘 것은 1939년. 독일 방식도 반발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래서 함부르크주의 경우에는 2년 전 한국식의 '통합 교육'을 도입하기로 결정했었다. '김나지움+레알슐레+하웁트슐레'를 모두 합한 형태인 '프리마스쿨'을 만든 것이다. 하지만 한 학부모가 "공부를 잘하는 애들은 못하는 애들과 분리돼 각자 수준에 맞게 공부해야 효율이 극대화된다"며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순식간에 수십만명의 학부모들이 서명운동에 동참했고 결국은 '주민투표'까지 시행됐으며 이 투표에서 이겨 '프리마스쿨'은 백지화됐다.
-출처: 조선일보. 2011.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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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 인문사회과학총서 1
막스 베버 (지은이), 박성수 (옮긴이) | 문예출판사

1904년에서 1905년에 걸쳐 쓰여진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20세기에 출현한 정신과학의 업적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의 하나에 속한다. 이 책은 서구 학문의 경험적 실증적 연구의 축적 위에서 태어났으며, 따라서 이 책을 대하게 될 독자들은 서구 학문의 귀중한 보고의 하나에 입문하는 셈이다. 사회과학 역사과학 학습의 길잡이가 되며, 정신적 사상적 기초가 되는 역할을 할 수 있는 책이다.


- 이하 리뷰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전망에 대해 맑스는 한 번이라도 상상해 보았을까? 전자본주의가 자본가와 노동자의 생산수단의 소유 문제에서 출발한다면 후기 자본주의는 자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자생력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는 자본주의의 기본 토대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으며 자본가의 형태가 고전적인 의미에서와 같이 한정적으로 논의하기는 쉽지 않게 되었다. 물론 노동의 관점과 시각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노동력으로 생활을 영위하면서 또 다른 자본을 소유하고 생산계급이면서도 자본가적 이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비합리적 사고 방식을 보여주기도 한다. 21세기의 자본주의 경제를 어떻게 분석할 것인가는 경제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안다고 해서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달라지지 않는다고 해서 인식하지 않는다는 것은 더 큰 문제다.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 탄생한 20세기 초반과 비교한다면 현재의 상황에서 이 책은 무의미해 보인다. 그러나 베버의 사상이 현재적 의미를 갖는 부분은 경제와 자본주의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종교적 의미에서 바라본 자본주의라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가 무엇인지, 칼뱅과 루터 그리고 가톨릭에서 말하는 노동과 직업의 소명 의식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상태로 이 책을 읽어야 했던 나는 이해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구절과 구절의 의미는 물론 번역의 문제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원전의 의미를 철저하게 그대로 옮겨 놓는 것이 번역이 아니라면 긴 문장을 나누고 다듬어 기본적인 이해가 가능해야 한다. 얄팍한 배경지식과 무식의 소치로 돌리기엔 번역된 문자이 주는 고통도 상당하다.

자본주의의 발달을 노동에 대한 직업 소명의식의 측면에서 바라본다는 것은 탁월하다. 맑스가 이미 <자본론>을 통해 자본주의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해 놓은 시대의 저작이라면 1905년에 발표된 이 논문도 시대 상황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근대의 출발선 언저리에서 인류가 겪어보지 못한 변화를 바라보는 막스 베버의 자본주의에 대한 관심은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수많은 논쟁의 여지를 가지고 있는 종교의 관점에서 자본주의를 바라보았던 베버의 진정한 의도는 찾을 수가 없다. 시대를 초월한 반론과 수많은 쟁점들은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연구를 유발했다. 청교도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본 노동과 자연스런 부의 축적을 자본주의와 연관지으려는 베버의 태도는 자본주의에 대한 오독으로 보여지기까지 한다. 기독교적 금욕주의에서 근대적 자본주의가 잉태했다는 베버의 주장이 여전히 타당한가?

노동과 직업에 관한 사람들의 인식과 태도는 많이 달라졌다. 베버가 말한 것처럼 ‘인간은 돈벌이를 자신의 물질적 생활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목적 자체로 여기는 것이다.’는 주장은 이제 설득력이 없다. 물질적 생활 욕구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상상을 초월하게 되었으며 궁극적인 삶의 목적이 되고 있다. 어떤 계층 어떤 계급에 속하든 물질적 부의 척도는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과 삶의 태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는 단순히 생에 대한 통찰이라는 관점이 아니라 사회의 구성과 인간의 삶의 양태를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다. 반성적 관점에서 과거로의 회귀를 주장은 공허한 울림이 되겠지만 자본주의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는 분명히 점검해 보아야 할 것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종교적인 질문도 세속적인 질문도 아닌 단순한 삶에 대한 자기 점검을 위한 질문일 뿐이다. 도구와 수단을 살펴보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눈에 대한 이야기다. 결국 삶에 대한 철학이 부재한 것은 아닌가. ‘유태교의 에토스는 한 마디로 말해 천민 자본주의의 에토스이다.’는 위험한 발언을 선언적으로 할 수 있었던 시대의 베버는 오히려 행복했던 것은 아닐까? 유태교에 대한 혹은 유태인에 대한 비하가 아니라 청교도주의에서 추구하는 직업과 소명 의식에 대한 반성으로 읽히는 이유는 현재의 자본주의가 베버가 비판했던 유태교의 에토스보다 악화됐다고 믿는 까닭이다.

시대가 변하고 시간이 흘러도 오로지 돈에 대한 집착과 인간의 욕망만은 점점 커져만 가고 있다. 무조건 거부하거나 돈을 멀리하자는 멍청한 말이나 태도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의 합의와 태고 변화가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자본주의를 변화 시킬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소박한 낙관주의일까?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 아니라 그 어떤 대상과도 자본주의 정신은 뗄 수 없는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다양한 관점과 생산적 논쟁을 불러일으킨 막스 베버의 이 책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한번 쯤 떠올렸음직한 고민들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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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즈 & 하이에크

 

요즘 케인즈가 무덤에서 불려 나와 제 2의 전성기를 맞는 모양이다. 반면 신자유주의의 대부격인 하이에크나 그의 사상적 제자 뻘인 밀턴 프리드먼은 부관참시도 모자랄만큼 비난을 받고 있다. 하이에크의 경제학에서 사상사적 족보를 보면 보이지 않는 손이 경제를 가장 잘 보살필 것이라며 자유주의 입장을 내세웠던 아담 스미스와 리카도를 스승으로 하며 시카고 학파의 산파인 밀턴 프리드먼에게 의발을 건네며 법맥을 전수한다. 하이에크의 경제사상을 받아들여 나라를 운영한 대표적인 이가 로널드 레이건과 영국의 마가렛 대처 수상이다. 이들은 신자유주의라는 좌판을 깐 정치인들로 작금의 경제공황을 야기시킨 자로 지목된다. 노동 유연화만이 살길이라며 노조를 부정하고 노동자를 길거리로 내몰았다. 공기업을 민영화하고 작은 정부를 추구하며 부유한 자들의 세금을 깎아주는 행위가 기업을 살리는 길이라며 옹호했던 자들이다. 레이건과 대처는 일시적으로 각광을 받았지만 작금의 사태를 야기한 뿌리로 지목되면서 그들 역시 죽어서도 맘 편하지 못한 상황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자유주의자를 자칭하는 보수 양아치 떨거지 새끼들 수효를 세자면 수십 트럭 분량은 나오겠지만 멘 앞에 복거일이라는 떠중이가 있음을 부기한다. 나는 존경하는 고종석이 도대체 복거일의 어떤 면이 존경스럽다고 그를 인정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아마도 인간의 자유를 옹호하는 부분일 것이다) 설사 그를 인정할 수 있는 부분이 있더라도 복거일의 사고 '틀' 자체가 틀려 처먹었는데 어느 빛나는 한 부분이 있다고 해서 그를 인정할 수 있는가, 하고 의아심이 들곤 한다. 복거일의 쌍판만 봐도 구역질이 난다.

 

케인즈와 헤이에크 사상을 대비시키면서 시장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의 극명성을 좇아간 이 책은 출판사 ‘김영사’에서 기획한 '지식인 마을 시리즈' 중 한 권이다. 이 시리즈는 상당히 참신한 기획물이라고 본다. 대학생이나 교양에 목 마른 일반인들, 고등학생 수능대비서로도 손색이 없다.

 

 

케인즈 -- 인간은 장기적으로 죽는다!

 

케인즈 사상은 말하는 것은 너무 진부할 만큼 알려져 있지만 핵심은 “ 정부 개입의 옹호” 이다. 세이라는 경제학자는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고 했다. 물건을 만들어내면 누군가 사게 된다는 것. 고전학파 시각이다. 고전학파는 시장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여 수급의 균형을 자동으로 맞춘다고 주장한다. 케인즈는 이를 전면 부정한다. 공급 과잉으로 대공황이 온 부분을 고전학파가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이유로 든다. 고전학파 자유주의자들은 공황이 오더라도 시장이 균형점을 찾아갈 때까지 그대로 놔두면 된다고 말하며, 심지어 어떤 덜떨어진 경제학자는 ‘공황은 좋은 것이여’ 하며 예찬론을 내놓기도 했다. 이 때 케인즈가 그들에게 톡 쏘아 부친 말이 있다. “장기적으로 인간은 모두 뒈진다  (In the long run, we are all dead)”  시장이 균형을 찾아서 공황을 해결할 때까지 기다릴만큼 인간의 삶은 장기적이지 못하다는 것. 정부가 나서서 구제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하이에크는 정부가 나서는 어떤 상황도 인간의 자유를 억압한다며 반대의견을 제출한다. 정부의 개입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노예의 길>로 들어선다며 극단적 자유주의론을 옹호했다. 밀턴 프리드먼 역시 하이에크 못지 않다. 프리드먼은 나쁜 약을 제조해서 팔아도 그걸 막으면 안된다는 극단적 비유를 통해서까지 자유시장을 옹호했다. 시장이 나쁜 약을 척결하도록 놔두는 것이 규제보다 더 효율적이라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그렇게까지 해서 지켜내야할 인간의 자유가 과연 무엇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로널드 레이건이 멍석을 깔고 밀튼 프리드먼이 이론적 뒷받침을 했으며 전쟁광집단인 네오콘들이 정신적 자양분으로 받아들였던 신자유주의가 세상을 파토 내버렸다. 그들은 금융산업간 규제를 풀고 헤지펀드들이 난장을 칠 수 있도록 모든 규제의 장벽을 제거했다. 이제 세상은 그들이 그렇게 옹호했던 '자유'의 대가를 톡톡히 치를 각오를 해야 한다.(누구를 위한 자유였던가?)  시장 자유주의자들이 깨버린 판을 설거지하러 불려온 자가 다시 케인즈라는 것도 씁쓸하다. 과연 정부는 판쓰리 지경까지 와 버린 경제를 추스려서 똑바로 일으켜 세울 수 있는가?  정부는 자본가들의 로비와 이익추구 앞에서 초연하고 공평무사하게 행정할 능력이 있는가?  대공황 탈출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했던 시절의 케인즈주의와 지금의 케인즈주의는 너무도 다른 환경을 갖고 있지 않은가?  월가 자본가들의 헌금으로 대통령이 된 자가 월가의 이익을 배반하면서 서민들의 이익을 옹호해줄 수 있는가?  오늘 박노자 선생의 한겨레 칼럼 “오마바 당선을 별로 반기지 않는 이유” 에서 의문부호를 찍는 부분이다.

 

“ 과연 명문고교-컬럼비아대 학부-하버드대 대학원이라는 엘리트 코스를 별 어려움 없이 거친 중산계층의 흑인 오바마가 대통령이 됐다고 해서 백인(7%)보다 거의 세 배 가까운 빈곤율(20%)을 보이는 흑인사회 전체의 비참한 상황이 약간이라도 개선될 수 있겠는가? 미국도 우리처럼 빈곤이 대물림 되는 사회인데, 학력·경제력이 약한 부모를 둔 탓에 출발점부터 불리해 아무리 발버둥쳐도 출세할 수 없는 이들의 고충을 해결하자면 빈민가 공립학교의 수준 향상에 엄청난 자금을 쏟아 붓는 등 복지주의 정책을 활발히 펴야 할 것이다. 오바마는 과연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특히 제너럴 모터스(GM)나 포드 등 거대 재벌들이 공황의 파도에 떠밀려 정부 지원책이 있지 않고서는 파산으로 치달을 수 있는 오늘날과 같은 비상시에 말이다. 최고 통치자가 흑인이 돼도, 미국의 사회·정치 구조상으로 ‘기업 복지’와 ‘민중 복지’ 사이에서 양자택일해야 할 때 늘 전자를 선택하게 돼 있다.”

 

 

자본주의 이후는 없는가?

 

현재 경제상황 타개는 케인지언의 손을 빌리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고 규제와 정부개입이 당연시 되고 있다. 국민들이 지갑을 닫고 있는데 정부라도 나서서 돈을 뿌려야 한다는 폴 크루그먼의 주장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쉽게 말해서 정부의 취로사업만이 공황을 타개할 유일한 길인 셈이다. 이 책 <케인즈 & 하이에크>는 자본주의 체제를 위기에서 일으켜 세우려는 자(케인즈)와 전체주의와 맞서서 자본주의를 옹호하려는 자 (하이에크) 간 논쟁이다. 나름 깔끔하게 정리된 책이다. 일독할만하다. 책을 읽고도 개운치 않는 이유는 자본주의는 과연 위기에서 구해낼만한, 옹호할만한 가치가 있는 체제인가 하는 의문 때문이다. 체제의 대안은 없는 것인가?  무덤에서 불려 나온 케인즈가 자본주의를 수술한다 한들 땜빵 밖에 더 되겠는가?  지금 상황에서는 땜빵이라도 빨리 이루어지기를 비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앞으로 다가올 한 겨울이 두려울 뿐이다.       

-포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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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정리해보고자 하는 것은, 자본주의 경제학에서는 인정하지 않는 '경제 공황'이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필연적으로 발생한다는 점을 간단히 설명하려 합니다.

간단히 설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살을 덧 붙일 필요는 있겠습니다만, 큰 그림상으로 볼때는 틀리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모두들 알다시피, 경제 공황은 상품이 창고에 쌓여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상품을 구매할 능력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한명의 노동자가 한달에 100만원어치의 이익을 생산해 낸다고 가정한다면, 이 노동자의 임금은 100만원 이하에서 결정될 것입니다.

만약, 일은 100만원어치 하고, 월급은 110만원씩 받아간다면 이 노동자는 곧 해고 되거나 공장이 망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노동자의 임금은 그 노동자가 생산해내는 상품의 이익보다 작아야 합니다.

여기서 시야를 넓혀, 한 사회의 (혹은 전 지구상의) 노동자들이 받는 월급을 모두 더한 금액을 X (총 소비) 라고 하고,

이 노동자들이 생산해 낸 상품의 가격을 모두 더한 금액을 Y (총 공급) 라고 정한다면,

항상 X <= Y 인 상태가 되고,

노동자들 전원이, 자신이 받은 월급을 한푼도 안남기고 한달동안 다 써 버린다고 가정한다 하더라도

Y - X 차액에 해당하는 량의 상품은 팔리지 않고 창고에 쌓이게 됩니다.

정확히 말하면, 이 상품들은 처음부터 팔릴 방법이 없는 물건들입니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과잉 공급'입니다.


예를 들어, 한 도시에 노동자가 100명이고, 이 노동자 1인당 한달에 100만원어치의 상품을 생산해 내는데 월급은 90만원이다...

그러면 노동자 전체의 임금 합은 100명 * 90만원 = 9000만원, 인데 반해, 한달간 생산되어 나오는 상품의 가격은 총합이 100명 * 100만원 = 10000만원 으로,

10000만원 - 9000만원에 해당하는 1000만원어치의 상품은 과잉 공급 상태로, 팔릴 수가 없게 됩니다.


창고에 천만원어치의 상품이 팔리지 않고 쌓여 있으므로, 다음달에는 생산 목표량을 줄이게 될 것이고,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임금 총합은 줄어들게 됩니다. 혹은 일자리 수가 줄거나 월급이 깎일 것입니다.

결국 이 과정이 반복되어 누적되다보면, 창고에는 무수한 상품이 쌓이게 되고, 사람들은 돈이 없어서 (일자리가 줄어서 월급을 받지 못하므로) 거리에 나 앉고 굶어 죽는 상황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경제 공황을 설명하는 방법은 위와 같이 간단 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런 과정이 복잡하게 진행되고, 경제 공황이 발생하는 시기를 늦추는 방법들이 많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피상적으로 볼때 공황은 절대 찾아오지 않을 것 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트릭은, '미래'에 발생할 소비를 '현재'로 당겨 오는 것입니다.

간단한 예가, 김대중 정권때 '신용 카드'를 남발 해서 경기 회복 효과를 노린 것이 있겠습니다만,

좀 더 일반적인 방법은 '투자' 혹은 '재투자'라는 방식입니다.



투자라는 것은 당장의 이익이 아니라, 미래에 기대되는 이윤을 위해 돈을 쓰는 행위입니다.

기업에 투자된 돈은 노동자들에게 월급으로 혹은 설비 구입을 위해 소비되는데,

얼핏 보기에는 아직 상품을 만들어내지도 않았는데, 노동자들이 돈부터 받은 것 처럼 보이게 됩니다. ( 일시적으로 X > Y 인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투자'가 활성화 되면, 창고에 쌓여 팔리지 않던 과잉 공급 상품들(Y-X)을 '월급'으로 소비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사실, '투자'라는 것은 거슬러 올라가 보면 'Y - X' 금액에 해당하는 '이윤'의 누적 금액입니다.)

그러나 '투자'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미래에 갚아야 할 '빗'이므로, 투자금이 환수 되는 시점에서 다시 공황이 발생할 위험이 존재합니다.

자본가는 '이윤'이 남는 이상 자본을 '재투자'할 것이고, 투자가 언제까지나 계속되기만 한다면, 경제 공황은 오지 않을 수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자본주의의 근본 모순 ( X <= Y ) 은 '투자'라는 행위가 더해져서, 소비(X)와 공급(Y)이 균형을 이룬 것 처럼 보입니다. ( X + 투자 = Y )

이것이 고등학교 '정치.경제' 시간에 의미도 모르고 암기 했던 '수요 = 공급 = 소비 + 투자' 의 공식입니다...
(투자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경제학자들은 간혹 '공급(Y) = 소비(X) + 투자 + 수출 - 수입 + 국가 세금 지출 + 환경 파괴....' 등등으로 수식을 길게 늘려서 복잡하게 설명하려 하기도 합니다.)



요약하면, 근본적으로 '과잉 생산' 될 수 밖에 없는 체제에, '투자'라는 요소를 더해서 문제점을 감춘 것입니다.

그러나, '투자'는 항상 미래에 돌려 받을 '이윤'을 전재로 하는 것이므로, '이윤율( 이윤율 = 이윤 / 투자금)'이 떨어지게 되면, 투자는 멈추고,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 모순이 다시 드러나게 됩니다.
(같은 금액의 이윤을 얻는다 하더라도 투자해야할 금액이 커지게 되면 이윤율이 떨어지게 되고 투자는 꺼려지게 됩니다.)

이제 관심의 촛점은 '과잉 생산 문제'가 아니라, '이윤율'이 꾸준히 유지 (혹은 상승) 되느냐 아니냐의 문제로 바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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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투자'가 언제까지나 계속 되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Marx '맑스(1818~1883)' 였는데, 그가 남긴 책 '자본론' 중 마지막 3권에서 '장기적으로 이윤율이 하락하는 현상이 발생해서, 종국에는 투자자들이 투자를 꺼리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장기적 이윤율 하락에 대한 설명은 쉽게 설명할 방법을 찾게 되면 또 글로 정리하겠습니다.)

실제로 맑스가 죽은뒤 50년 뒤인, 1930년에 세계대공황과 같은 '투자를 꺼리는' 상황이 발생했고, '자본주의 체제'가 가지고 있는 (맨 앞에서 지적했던) 근본적인 문제점이 '공황'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네이버 백과사전에 따르면 경제 공황은 10년을 주기로 찾아온다고 나와 있습니다.)



1929년부터 1930년 사이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공황이 얼마나 갑작 스럽게 발생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1929년 후반기 (후버 대통령) 미국의 실업률은 1% 미만으로 100만명 정도가 실업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주가가 폭락 하는 현상이 발생했고, 은행이 도산 했으며, 실업률이 불과 몇달사이에 26배나 증가했습니다.

다음해인 1930년의 실업자는 2600만명으로 실업률이 25%에 육박 했으니, 4명중 1명은 실업 상태가 된것입니다.

1930년에 공황이 발생했던 과정을 들여다 보면 1997년말에 한국에서 'IMF 사태'와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IMF 당시, 주가가 폭락했고, 일부 은행이 문을 닫았고, 기업들이 줄줄이 무너져 나갔습니다. 또한, '정리해고'라는 합법적인 절차로 실업자가 급증했지요. 이런 일련의 현상들이 발생하는데에 거의 1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IMF 사건이 갑작 스러웠던 것을 떠올린다면 경제 공황이 얼마나 갑자기 닥치는 것인지, 그리고 자본주의 체제가 얼마나 갑자기 무너질 수 있는지 감이 올거라 생각됩니다.



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정통 경제학자들은 경제 공황이 어떻게 찾아오는지 설명하지 않거나 못한다는 점입니다.

조선일보등의 기사를 보면, 대부분 불경기는 '소비'가 부진해서 라고 말합니다.

'IMF때 허릿띠를 너무 졸라맸다'는 표현을 쓰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소비가 부진한 것은 월급이 줄었기 때문이고, 월급이 줄어든 이유는 투자가 줄었기 때문이지요.

투자자들에게 유리하게 해설하는 주류 언론들은 돌고 도는 순환 고리의 시작점을 '투자'가 아니라 '소비'에서 시작되었다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어찌되었건, 조선일보나 주류언론들 혹은 소위 '경제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의 '불경기 원인 설명'은 결국 '소비가 문제'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불경기에는 소비가 부진해진다'는 원래 정의를 반복해서 말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지 원인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 '소비가 부족해서 불경기다' => '불경기에는 소비가 부진하다'. 결국 '불경기는 불경기다'라고 말하는 '동어(同語) 반복'이 되는 것입니다. )

경제 공황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모순을 인정해야만 하는데,

'자본주의는 완벽한 시스템이다'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이 모순을 인정할 수 없게 되는 것이고,

결국 '공황은 왜 오는지 모르겠다', 혹은 '모든 문제는 해결 되었다. 이제는 공황은 오지 않는다' 라고 근거도 없이 주장하는 것 밖에는 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1930년에 일어났던 경제 공황이 1997년 한국에도 똑같이 반복되었는데 '자본주의 문제점은 사라졌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싶습니다..
-by쌀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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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는 그 단어 자체는 아닐지라도 그 개념만큼은 받아들였다. 그 말 속에서 재무부의 수입을 올리거나 노동조합을 제어할 수 있는 수단 이상의 뭔가를 보았기 때문이다. 바로 사회의 균형을 바꾸는 것과 관련된 것이다. “나는 ( B )를 자본 소유의 민주주의라는 내 야망을 달성하는 데 사용하고자 했다. 그것은 사람들이 자기 집과 주식을 소유하고, 또 사회에 이해 관계를 가진 그런 국가를 말한다. 미래의 세대에게 넘겨줄 부를 가지고 있는 국가이다.” 그녀의 열정은 그 야망에서 나온 것이다. [시장對국가(원제 The Commanding Heights), Daniel Yergin and Joseph Stanislaw, 주명건譯, 세종연구원, 1999, p187]


A와 B는 각각 무엇일까?

답은 ‘대처’와 ‘민영화’(즉 privatization)다. 대처는 이른바 보수주의자들이 영국병이라 지칭한 정체되어 있는 영국을 치유하기 위해 각종 혁신적 조치를 들고 나온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그 유명한 ‘민영화’다. 대처를 비롯한 보수당 정권은 이 말이 가지는 부정적인 뉘앙스 때문에 ‘비국유화(denationalization)’ 등 다른 대체할만한 표현을 생각해보았으나 결국 자신들의 의지를 이만큼 잘 표현해주는 단어가 없었기에 그것을 채택하였다고 한다.

결국 이후 이른바 ‘신자유주의’는 이전의 고전적 자유주의와는 다른 프로세스, 즉 사회주의 혹은 케인즈주 의적 정책실현을 통해 다져진 혼합경제를 해체하는 ‘민영화’라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리고 이는 80년대와 90년대에 세계 각국에서 일상화된다. 한편으로는 국유기업의 비효율을 제거한 최상의 대안이라고 칭송받는 한편, 이익의 사유화와 공공성의 포기라는 비판을 받는 뜨거운 감자가 된다.

한편 내게는 대처가 민영화를 통해 달성하려 했던 그 목표가 흥미롭다. 민영화를 통해 주식을 공개하여 “자본 소유의 민주주의”1를 달성하고자 했던 그 지향은 우리가 오늘날 쉽게 볼 수 있는 펀드, 연기금,  각종 금융도구들에서 그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그것들은 증권화와 유동화 등을 통해 각종 기초자산 - 대표적으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 -을 나눠가진 “자본 소유의 민주주의(!)”의 아름다운 현태가 아니던가.

민영화를 통해 주식들이 민간에게 분산되는 “소유의 민주주의”가 실제로는 소유의 집중으로 귀결되었고, 적어도 비용 차원에서 보자면 민간기업 역시 국유기업 못지않은 비효율을 자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비판은 제켜두고라도, 오늘날 그러한 “소유의 민주주의”가 대처의 당초 목표에서 많이 탈선한 느낌도 없지 않다. 즉 각종 금융도구들의 가치는 바로 요즘 시점 전 세계적인 자산가치 하락에 속절없이 동반하락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래의 세대에게 넘겨줄 부”는 고사하고 천문학적인 재정적자를 동반한 국유화의 재등장만 초래하고 말았다.


이 사태를 대처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지 무척 궁금하다.

- 물론 이 목표가 립서비스였는지 아니면 현실적 한계 때문에 그랬는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국유기업들은 대기업들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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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턴 프리드먼으로부터 연유된 자유주의 경제학의 파탄은 '세계화'는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허상의 파탄을 의미한다. 이제 근본적인 질문을 우리는 던져야 한다. 누가 세계화를 주창했고, 누가 세계화로부터 이익을 얻었으며, 파탄난 세계화를 대체할 근본적인 대안은 무엇인가? 


세계화에 대한 맹신은 강남 사는 부모들이 초등학교에도 들어가지 않은 자식들의 혀를 잘라서라도 영어를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심어줄 정도 였다. 세계화는 제국주의적 수탈을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 외에 아무 것도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선 발전국가들은 자신들이 유리한 쪽으로만 이데올로기를 만들고 전파할 뿐이다. 그들은 자국의 산업이 유치산업 단계일 때 보호론을 주창했고, 산업이 경쟁력을 가졌을 때는 타국에 개방을 강요했다. 개발도상국들이 불평등을 호소할 때 그들은 세계는 평평하다며 개도국의 주장을 헛소리로 치부했다. 미국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세뇌된 학자들이 파워엘리트로 자리잡은 개도국은 미국의 개가 되어 신식민지화 정책의 선봉이 되었다.


이명박은 미국 대선이 초읽기에 들어간 마당에 한미 FTA 통과를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미 대선의 승자가 확실시 되는 오바마는 한미FTA 협상에 문제가 있다며 재검토를 시사한 마당인데 이러한 기초적인 정보조차 무시하는 이명박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외려 우리는 부시의 강요로 인한 한미FTA의 굴종적 협정 자체가 무산된 것을 뛸 듯이 기뻐해야 할 상황인데 말이다. 다자간 무역협정은 헴이 센 나라의 저발전국에 대한 각개격파식 침략행위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고려대 최윤재 교수의 아래 글 <세계화, 거짓말 그리고 대재앙>은 세계화의 허구성을 간략하게 요약해냈다. 일독할만 하다.

-포카라-



세계화, 거짓말 그리고 대재앙


개방할수록 경제가 발전한다?  첨단기술 덕에 세계화 수준이 엄청나게 높아졌다? 세계화로 국경과 거리가 사라지고 여러 나라의 경제 제도가 통일된다? 세계화의 ‘사실과 진실’을 밝힌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세계가 시끄럽다. 이런 때 세계화 문제를 꺼내는 것이 한가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이 혼란스러울수록 차분히 세계화 같은 근본 문제를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세계화가 잘못 작동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이들은 철지난 좌파나 쇄국주의자가 아니다. 주류 경제학자이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스티글리츠와 크루그먼을 비롯해 하버드 대학의 로드릭과 게마와트, 컬럼비아 대학의 바그와티, 캘리포니아 주립대학(UCLA)의 리머 등 저명한 경제학자가 세계화에 대해 문제제기를 해왔다.

지난 10여 년간 우리는 정부든 기업이든 학교든 살아남고 싶으면 어서 문을 열라는 말을 들어왔다. 조급한 마음에 영어를 많이 섞어 쓰고 외국인을 모셔다가 자리 채우는 것만으로 세계화를 잘한다고 떠벌리는 소동이 사방에서 벌어졌다. 책 도 넘쳐난다. 토머스 프리드먼의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세계는 평평하다>, 프랜시스 케언크로스의 <거리의 소멸ⓝ디지털 혁명>, 다니엘 예르긴의 <시장 대 국가> 같은 책은 세계 곳곳의 사례를 들어가며 세계화 담론을 그럴듯하게 늘어놓는다. 이런 종류의 책을 필독 교양서적으로 여기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실은 세계화에 대해 그릇된 생각을 퍼뜨리는 위험한 책들이다. 예를 들어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에 따르면, 정부는 이제 정치를 접고 경제만 생각하며 세계화가 시키는 대로 이른바 ‘황금 구속복’을 입어야 한다는데, 하버드 대학 경영대학원의 게마와트 교수 표현을 빌리면, 그런 말을 믿고 정부정책으로 삼는 것은 ‘쓸데없을 뿐 아니라 위험하다’.

세계화는 호들갑을 떨며 서둘러 할 것이 아니라 조심해서 봐야 한다. 세계화를 위해 국내 문제를 선뜻 희생하려 해서는 안 된다. 국내 문제를 보면서 세계화의 수위를 조절해야 한다. 미국발 경제위기 때문에 이런 말 꺼내기가 조금 쉬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 때문에 새삼 나온 말은 아니다. 시중에 돌아다니는 세계화 이야기는 원래 제대로 된 경제학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잘못된 속설이 너무나 많다.



세계화 수준, 100년 전과 비슷


세계화 속설에 따르자면, 통신·컴퓨터와 운송 수단 등 첨단 기술이 발달해 지구는 이제 물리적인 거리가 문제 되지 않는 ‘작은 동네’가 되었으니, 세계화는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대세라는 것이다. 정말 그런가? 상당수 주류 경제학자의 대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첨단 기술은 세계화 본질과 거리가 멀다. 그것은 허상일 뿐이다. 세계화의 상징처럼 이야기되는 전화나 인터넷조차 그렇다. 1930년 뉴욕에서 런던으로 3분간 통화하는 데 350달러였다는데, 요즘 인터넷 전화의 경우는 세계 어디든 공짜에 가깝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지구촌 구석구석의 사람들과 매일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 속사정을 다 알까? 천만의 말씀이다. 세계 어디서고 전화나 인터넷은, 그리고 사람들 관심은 여전히 대부분 같은 무리, 같은 동네, 같은 나라 안에서 끼리끼리 맴돌 뿐이다. 지구 반대편은커녕 바로 이웃에서 벌어지는 일조차 깜깜한 때가 많다. 첨단 기술은 편의 수단이기는 하나, 그 때문에 세계가 한 동네처럼 좁아졌다는 것은 너무 부풀린 이야기이며 자칫 세계화 불가피론을 부추기는 잘못을 범한다.

개방과 세계화는 기술보다는 정책에 따라 달라져 왔다. 많은 나라에서 1960년대부터 무역자유화를, 그리고 1990년대부터 자본자유화를 정책으로 추진해왔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과 인도, 그리고 사회주의 나라가 시장경제에 새로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첨단 기술보다 정책이 세계화를 가져왔기에 그 세계화는 잘못될 수도, 멈출 수도, 거꾸로 갈 수도 있는 것이다. 요즘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이미 그런 기미가 보인다.


   
세계화 담론을 전세계 대중에게 성공적으로 유포한 ‘불온’ 서적. 토머스 프리드먼의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세계는 평평하다>, 프랜시스 케언크로스의 <거리의 소멸ⓝ디지털 혁명>(왼쪽부터).

돌이켜보면 세계화 수준은 첨단 기술이 없던 1900년대 초반에도 이미 높았다. 그 뒤 두 차례 세계대전을 거치며 세계화는 크게 뒷걸음쳤는데, 이는 첨단 기술이 후퇴했기 때문이 아니다. 오늘날 세계화가 많이 이뤄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그 수준은 100년 전과 같거나 조금 높을 뿐이다. 예컨대 2005년에 세계 인구 2.9%가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갔는데 그 비율은 1900년에 이미 3.0%였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외국인 직접투자 비율도 1990년대에 와서야 1900년대 초반 수준을 회복했다.

세계화의 상징으로 꼽히는 또 다른 유명한 예를 보자. 미국에서 인터넷으로 자료를 보내면 지구 반대편 인도에서 받아 곧바로 처리해 돌려준다. 전에 없던 신기한 일이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인도와 미국이 하나가 된 것은 아니다. 인터넷으로 떠넘길 수 있는 일은 아직도 손에 꼽을 정도다. 인도 같은 저개발국에서 그런 일을 맡아줄 만큼 교육 수준이 높고 영어가 통하는 노동자도 얼마 되지 않는다. 11억 인구가 1500가지도 넘는 말을 하는 인도에서 힌두어 인구는 3억명이 넘는 반면 영어를 모국어로 삼는 인구는 20만명도 채 안 된다.

능력이 되는 노동자라면 오히려 영국이나 캐나다에 넘쳐난다. 그러나 그쪽은 임금이 높아서 미국 기업도 선뜻 맡기지 못한다. 인도도 앞으로 잘살게 된다면 그런 일을 맡지 않으려 할 것이다. 인도가 인터넷으로 미국 자료를 처리해주는 것은 한국이 예전에 가발을 만들어 미국에 팔던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무역의 본질은 그때나 지금이나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국경과 거리가 사라져간다는 속설도 경제학자들의 연구 결과와 동떨어진다. 먼 나라보다 가까운 나라와 더 많이 무역한다는 것은 경제학에서 ‘중력모형’이라 부르는 이론인데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하지만 가장 개방적인 미국-캐나다 국경이나 유럽연합 내 국경조차도 아직 무역의 자유로운 흐름을 적잖이 막고 있다. 교역량뿐 아니라 전화와 인터넷 사용량마저도 거리와 국경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세계화가 여러 나라의 경제제도를 통일시킨다는 것도 잘못된 속설이다. 노동, 복지, 기업·금융 관계, 조세 등 많은 제도는 선진국 사이에서도 차이가 크며, 어느 것이 낫고 못한지 따지기 어렵다. 특정 형태의 세계화를 거부한다고 나라가 망하는 것도 아니다. 노르웨이와 스위스는 유럽연합 가입을 줄곧 거부하지만, 국민소득이 미국보다 훨씬 높다.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은 29개국 가운데 아직도 캐나다, 멕시코,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뿐이다. 특정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지 않는다고 세계화와 담쌓는 것은 아니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안에서 이뤄지는 다자간 협정과 달리, FTA 같은 양자간 협정은 특히 협정국 사이에 경제력 차이가 클 경우 ‘평등한’ 협정을 맺기 어렵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


세계화 속설은 이처럼 많은 점에서 사실을 왜곡하는데, 경제학자들이 세계화 속설을 문제 삼는 것은 그 때문만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속설이 무분별한 개방을 부추긴다는 점이다. 국내 경제와 국제 경제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국내 경제에는 ‘정부’가 있지만 국제 경제에는 정부가 없다. 경제에 시장만 있으면 되고 정부는 작을수록 좋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이 차이가 얼른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바로 그 때문에 세계화 속설은 위험하다. 시장은 정부 없이 혼자 돌아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며칠 전 조셉 스티글리츠가 명언을 내놓았다. “보이지 않는 손(시장)이 보이지 않는 것은 그것이 없기 때문이다.”

시장과 관련한 정부의 가장 중요한 구실은 안전을 책임지는 것이다. 안전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정부는 국방과 치안으로 재산권을 보호한다. 통일된 화폐를 만들고 그 가치를 유지해 상거래를 돕는다. 금융과 환경 기준을 마련해 감독한다. 각종 상거래 제도와 분쟁 해결 절차를 마련해 거래의 안전을 보장해준다. 식품과 의약품 따위의 안전을 개개인에게 맡기는 대신 정부가 기준을 마련해 검사하고 강제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멜라민이나 광우병 물질을 각자 골라내가며 먹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정부는 독과점을 규제하고 환경기준을 마련하며 지나친 소득 불평등을 고친다. 이러니 정부가 없으면, 또는 정부가 할 일을 제대로 못하면 시장은 잘 움직이지 못한다.

국제 경제가 그나마 돌아가는 것은 각 나라에 정부가 있기 때문인데, 이를 아우르는 국제 정부가 없기에 국제 경제는 본질적으로 불안정하다. 시장의 안전성이 국제 경제에서는 모두 다 허술해진다. 국제 정부 대신 국제 기구가 여럿 있기는 하지만 하는 일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국제 기구는 각 나라 정부에 권고할 뿐 강제하지 못한다. 강제하는 것은 결국 각 나라 정부의 몫이며, 나라 사이에 이해관계가 엇갈리게 되면 문제 해결은 어렵고, 되더라도 더디다. 국제무역기구가 생기면서 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아직도 강대국이 억지를 부리면 대책이 서지 않는다. 그리고 약자를 보호하는 장치는 국제 경제에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속설에 따르면 국경 너머 훨훨 날아다니는 국제 자본을 끌어들여야만 경제가 살 수 있고, 그 자본은 국내 규제를 풀어야만 끌어올 수 있다. 자본은 자유를 좋아한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달라는 대로 자유를 안겨줘야 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한국은 지금 투자할 돈이 모자라거나 규제가 심해 투자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불확실성이 높아 그런 것이다.

금융은 정부가 안전을 최종 책임져야 할 대표 부문이다. 그리고 그 중요성은 요즘 하루하루 더해간다. 금융은 겉으로는 돈을 주고받는 일이지만 속으로는 위험을 사고파는 일이어서 본질적으로 위험하다. 금융의 건전성은 그 건전성을 남이 믿어주느냐에 크게 달려 있고, 한번 문제가 터지면 순식간에 사방으로 번져간다. 때문에 금융에는 여러 안전장치가 꼭 있어야 한다. 1930년대 세계 대공황을 겪으면서 여러 나라에서 예금보험, 지불준비금, 자기자본 요구조건과 자산규제, 금융감독, 최종대부자 기능 등 많은 안전장치를 마련했고, 덕분에 금융시장은 그 뒤 많은 나라에서 큰 위험에 빠지지 않고 발달해왔다.

그런데 이 안전장치들이 아주 허술해지는 곳이 두 군데 있다. 하나는 국제 금융시장이다. 국내 금융과 달리 국제 금융에서는 관할권과 책임소재가 나라 사이에 뚜렷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문제가 생겼을 때 나라 간 협조도 쉽지 않다. 선진국에서도 문제지만 특히 심각한 것은 후진국인데 국내 금융시장과 정부의 금융감독 기능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이후 많은 후진국에서 서둘러 금융시장을 개방했다가 좋지 않은 결과를 맞이한 경우가 한국을 비롯하여 많았다. 국제통화기금(IMF)이 2000년대에 들어서부터는 후진국에게 금융 개방에 앞서 국내 금융부터 정비하라고 요구할 정도다.

 



 다른 하나는 파생상품 시장이다. 전통적인 금융상품과 달리 파생상품은 그 성질상 자산 규모조차 잘 파 악되지 않으며, 선진국에서도 그동안 감독과 규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파생상품은 원래 위험을 넓게 퍼뜨려서 안전하게 하는 장치다. 그러나 안전하게 만들면 사람들은 더 위험하게 움직인다. 바로 도덕적 해이다. 눈길에서 거북이 걸음을 하던 차가 마른 길을 만나면 속도를 높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 탓에 파생상품은 오히려 위험을 퍼뜨리는 매개체가 되었고 그것이 요즘 크게 터진 것이다. 이에 전통적인 국내 금융뿐 아니라 국제 금융과 파생상품을 적극 감독하고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선진국에서부터 커졌다.


대비책 없는 세계화는 ‘독’


개방이 국내 경제에 위험을 가져오는 것은 무역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무역을 개방하면 국내 산업은 구조조정을 해야 할 뿐 아니라 국제 시장 변동에 따른 위험을 떠안아야 한다. 국제 경쟁이 높아지면 작은 변화에도 일자리를 그만두거나 옮길 일이 많아진다. 이를 사회안전망으로 보호해주지 못하면 고용불안과 소득불평등 확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또한 쇠고기 시장 개방에 묻어오는 광우병 물질이나,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묻어오는 ‘투자자 국가 제소권’ 같은 독소 조항도 나라를 위험에 빠뜨린다. 나아가 외국 자본을 국내 사회기반시설 투자에 함부로 참여시키는 것은 공공서비스 기반을 허물고 독점 이윤을 허용할 염려도 있다.

세계화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세계화를 하되 개방에만 정신이 팔려 위험 대비책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되며, 대비책 없는 세계화는 약 대신 독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는 세계화를 성공시킨 선진국의 비결이기도 하다. 하버드 대학 로드릭 교수가 선진국을 비교 연구한 바에 따르면 개방을 많이 한 나라일수록 정부 규모가 크다. 시간적으로도 세계화가 확대됨에 따라 정부 규모가 커져왔는데 특히 사회안전망 확충이 두드러진다. 세계화 위험에 대비하다 보면 정부가 할 일이 세계화로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커지는데, 이 점은 외부 충격에 약한 작은 나라일수록 더욱 중요하다.

선진국에 비해 한국의 개방 정도는 이미 높지만 정부 규모는 작다. 그만큼 국내 경제는 세계화에 따른 위험에 크게 노출되어 있는데 정부는 그 위험을 제대로 막아주지 못한다. 국민 삶은 그만큼 고단하다. 사회안전망은 장기 경기 침체가 예상되는 요즈음 세계화 대책뿐 아니라 내수경기 대책으로도 아주 훌륭하다. 폭풍우가 몰려올 때는 문 열고 나가기에 앞서 집안의 빈틈부터 찾아 메우는 것이 순서다.

 시사IN 59호 / 2008.10월 27일 / 최윤재 고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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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석학의 외침 “이제 행동보다 말을 할 때다”


촘스키·월러스틴·지젝 등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왔던 지식인이 현 경제위기에 대한 분석과 대안을 쏟아내고 있다. 이들은 자유·행복 추구의 평등한 권리를 외쳐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누구는 ‘금융의 대량살상무기’ 파생금융상품이 문제라고 했다. 뉴욕 타임스·워싱턴 포스트 등 미국의 유수 언론은 파생상품 규제에 반대했던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연준) 의장을 원흉으로 지목했다. 로버트 루빈 전 재무장관, 아서 레빗 전 증권거래위원회 위원장의 이름도 나왔다. 부시 행정부의 구제금융안을 놓고는 우파 일각에서 ‘사회주의적’이라거나 ‘큰 정부로의 회귀’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심지어는 그동안의 정부 개입이 이같은 사태를 초래했다며 이참에 시장에 대한 정부 규제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를 놓고 미국 내에서는 물론이고 세계 각국의 지식인들이 갖가지 분석을 내놓았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왔던 좌파 지식인도 예외는 아니다.  이들은 부동산 거품이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이 아니라 그동안 금융자유화와 규제 완화라는 이름 아래 진행돼온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현 경제위기의 근본 원인이라고 비판한다. 또한 월스트리트에 세금을 쏟아부을 것이 아니라 노동자와 소상공인의 일상 공간인 메인스트리트를 구제하라고 주장한다.

노엄 촘스키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명예교수는 위기의 직접 원인이 부동산 거품의 붕괴에 있는 것은 맞지만 그 뿌리는 지난 30년 동안 진행된 ‘금융자유화의 승리’에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금융자유화 조처로 막대한 이익을 본 금융기관이 이제는 국가 개입을 요구하고 있다며 월가의 이중적인 태도를 비판했다.

촘스키는 최근의 경제위기를 신자유주의나 자본주의의 종말과 연결 짓는 조셉 스티글리츠 컬럼비아 대학 교수나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서는 “자본주의가 시작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끝날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그 에 따르면 지금의 자본주의는 그냥 자본주의가 아니라 ‘국가 자본주의’이며, 미국의 경제 역시 국가에 크게 의존한다. 따라서 시장 근본주의가 추동한 금융자유화는 한 시대를 마감하겠지만 국가 자본주의 자체는 전혀 위협받지 않고 있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미국 제국 몰락의 징후인가

반면 하워드 진 미국 보스턴 대학 명예교수는 현재의 경제위기에 대해 “미국 제국의 몰락으로 향하는 길 목에 있는 주요 중간역”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지난 10월2일 영국의 일간 가디언 웹사이트에 올린 글을 통해 2001년 9·11사태가 미국 제국 몰락의 첫 번째 징후라면 “무능과 탐욕이라는 두 가지 특징으로 유명한 거대 금융기관들에 납세자들이 낸 세금 7000억 달러를 쏟아붓기로 (공화·민주) 양대 정당이 서둘러 합의한 것”이 또 다른 징후라고 지적했다.

세계체제론을 주장해온 이매뉴얼 월러스틴 예일 대학 석좌교수는 지금의 경제위기가 단순한 경기침체(recession)가 아니라 전세계적 불황(depression)의 시작이라고 단언한다. 장기적인 수준에서 자본주의의 위기를 논해온 월러스틴은 10월15일 미국 빙햄턴 대학 페르낭브로델센터 홈페이지에 올린 논평을 통해 파생상품이나 서브프라임 모기지, 석유 투기세력을 위기의 주범으로 지목하는 것은 ‘책임 떠넘기기’이며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월러스틴은 현재의 불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여러 저서에서 펴온 논리대로 장기적 수준의 헤게모니 주기와 중기적 수준의 콘트라티예프(경기 사이클) 파동에 주목해야 한다는 견해이다.

 
먼저 장기적인 헤게모니 주기를 보면 미국은 1873년 영국에 대항하는 국가로 떠오른 뒤 1945년 헤게모니를 완전히 구축했고, 1970년대 이후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월러스틴은, 미국의 헤게모니는 부시 대통령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추락의 속도가 급격히 빨라졌으며 미국이 여전히 강대국이지만 수십 년 안에 힘이 약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새 질서는 좋은 것일 수도, 나쁜 것일 수도

콘드라티예프 파동은 이와 좀 다른데 세계경제는 1945년 이후 기록적인 호황 국면을 이어가 1967~1973년 최정점을 찍은 후 하향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이 하향세는 그전과 달리 오래 지속되어왔다. 미국 재무부와 연방준비이사회, 국제통화기금(IMF), 유럽과 일본의 협력자들이 주기적으로 시장에 개입했기 때문이라는 게 월러스틴의 설명이다.

1987 년 주가 폭락, 1989년 저축대부조합 파산, 1997년 동아시아 금융위기, 1998년 롱텀캐피탈매니지먼트 사태, 2001~2002년 엔론 사태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이들은 세계경제를 지탱하기 위해 시장에 개입했고 그 덕분(?)에 콘트라티예프 하강 국면이 길어졌을 뿐이다. 월러스틴은 하지만 이같은 개입에는 본질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결국 지금 그 한계에 도달했다고 지적한다.

   
슬라보예 지젝

월러스틴의 전망은 낙관적이지도, 비관적이지도 않다. “현재의 체제는 살아남을 수 없다. 그것을 대체할 새 질서는 무수한 개별 투쟁의 결과일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어떤 질서인지를 예측할 수는 없다. 그것은 자본주의 체제는 아닐 것이지만 양극화되고 위계적인 더 나쁜 것일 수도 있고, 비교적 민주적이고 평등한 더 좋은 것일 수 있다. 새로운 체제를 선택하는 것이 지금 시기 지구적 차원에 벌어지는 주요 정치투쟁이다.”

미국의 저명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이자 <먼슬리 리뷰> 편집장인 존 벨라미 포스터는 더 급진적인 전망을 내놓는다. 포스터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 우리는 자본주의 역사상 극심한 위기 중 하나에 직면했다. 대공황 이후 자본주의 세계에서 이렇게 나쁜 적이 없었다”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 위기는 “금융시장에 돈을 쏟아붓거나 금리를 낮춘다고 해결될 수 있는 유동성 위기가 아니며 ‘미국식’ ‘자유시장’ 금융자본주의 모델의 총체적인 몰락의 징조이다”라고 평가한다.


부자들 도와주는 게 사회주의?


그는 또 미국과 유럽의 은행 국유화를 사회주의나 급진주의로 혼돈해서는 안 되며 그것은 단지 “전면적인 부채 디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취한 임시 조처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포스터는 지금의 경제위기에 따른 고통이 온전히 노동자 계급의 몫일 수밖에 없으며 좌파는 “고장난 체제를 수리하려 들 게 아니라 경제 피라미드의 맨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을 돕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슬로베니아 출신의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의 비판도 흥미롭다. 지젝은 <런던서평> 웹사이트에 기고한 글을 통해 부시 미국 대통령이 2001년 9·11 직후와 2008년 경제위기 이후 미국민에게 한 연설에서 공통점을 끄집어낸다. 부시 대통령이 두 연설에서 모두 미국적 삶의 방식에 대한 위협, 그리고 위험에 대처하기 위한 신속하고도 단호한 행동의 필요성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지젝은 또한 부시 대통령이 미국적 가치―9·11 당시에는 개인의 자유 보장, 지금은 시장 자본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바로 그 가치들을 부분적으로 보류할 것을 미국 국민에게 요구했다고 지적했다.

제금융안을 놓고 벌어진 ‘사회주의’ 논란에 대해 지젝은 “금융구제안이 정말로 ‘사회주의적’인 조처라면 아주 기발한 것”인데 “왜냐하면 가난한 이들이 아니라 부자들을, 돈을 빌리는 쪽이 아니라 빌려주는 쪽을 도와주는 것이 목적인 ‘사회주의적’ 조처이기 때문”이라며 코웃음을 쳤다. 그는 “자본주의를 수호하는 데 복무한다면 ‘사회주의’도 괜찮다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덧붙였다.

지젝은 국가의 개입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며 현재 금융위기마저도 사실은 국가 개입의 산물이라고 지적했다. 2001년 닷컴 버블 붕괴에 대한 대책으로 금리를 내려 부동산으로 자금을 끌어들인 결과 현재의 금융위기가 왔다는 것이다. 그가 든 아프리카 말리의 예는 자유시장의 실체를 잘 보여준다. 말리에서는 면화 재배와 축산업이 가장 규모가 컸는데 서구 열강이 자신들은 지키지 않는 규칙을 강요하는 바람에 두 산업 모두 위기에 처해 있다. 미국 정부는 자국 면화재배 농가를 보호하는 데 말리의 1년 국가예산보다 많은 돈을 지출하고, 유럽연합은 또 1년에 소 한 마리당 500유로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젝이 여기서 강조하고자 한 것은 시장은 전혀 중립적이지 않으며 항상 정치적 결정에 의해 규제받는다는 것이다. 그는 “진짜 딜레마는 ‘국가 개입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어떤 종류의 국가 개입이냐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그가 보기에 이것이야말로 진짜 정치, 즉 우리 삶을 지배하는 조건을 규정하는 투쟁이다. 지젝은 금융구제안을 놓고 벌이는 토론은 우리의 사회적·경제적 삶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라며 “이제 행동을 할 게 아니라 말을 해야 한다”라고 했다.

하워드 진도 ‘자유시장’이라는 환상을 깨뜨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한 번도 자유시장을 가져본 적이 없고 정부의 개입은 항상 있어왔다는 것이다. 그 는 “7000억 달러를 부실 금융기관에 지원할 것이 아니라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직접 주는 것이 대안이다”라며 주택 소유자가 모기지론을 갚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연방 고용 프로그램을 만들어 일자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올해 86세인 노장 역사학자는 또 이렇게 말했다. “독립선언문이 약속한 것, 바로 만인의 생명·자유·행복 추구의 평등한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정부의 책임이라는 것을 선동하고 조직하라. 그런 과감한 접근만이 미국을, 제국이 아닌 민주주의 국가로서의 미국을 지킬 수 있다.”

시사IN 59호 / 윤재설(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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