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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인 토머스 제퍼슨은 언론 자유를 역설한 가장 유명한 말을 남겼다. “신문 없는 정부와 정부 없는 신문 중 택하라면 나는 의심 없이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할 것이다”라는 이 말은 그러나 사실 언론 자유에 방점이 찍힌 것이 아니다.


이 얘기를 온전히 들어보자. “신문 없는 정부와 정부 없는 신문 가운데 어느 쪽을 취할 것인지 묻는다면 나는 아무런 의심 없이 답하리라. 인디언처럼 정부를 갖지 않는 사회의 사람들이 유럽의 여러 정부 밑에서 사는 사람들보다 일반적으로 더 큰 행복을 누리고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제퍼슨이 정부나 국가의 부정적 기능을 강조하려고, 인디언 사회를 비교 대상으로만 거론한 것은 아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구상한 미국의 민주주의 제도는 당시 인디언 사회를 많이 벤치마킹한 것이다.


시장과 착취, 계급과 차별을 배제


박홍규 영남대 교수가 쓴 <인디언 아나키 민주주의>는 유럽인들이 미국 대륙에 도착해 인디언 사회를 절멸시킬 때까지 인디언들이 꾸려왔던 그들의 민주주의를 소개한다. 국가와 정부, 지도자의 권력에 기대지 않고, 그런 권력을 배제한 민주주의다. 부제가 말하는 것처럼 ‘인디언에게 배우는 자유, 자치, 자연의 정치’이다. 오늘날 우리가 운영하는 간접민주주의, 혹은 민주주의의 이상향이라는 고대 그리스의 직접민주주의도 아니다. 국가와 지배자, 시장과 착취, 계급과 차별을 배제하는 모권제 민주주의다. 인디언의 아나키 민주주의는 사회 발전이 늦은 후진적 사회의 모습도 아니다. 이른바 원시공산주의가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의 연방제 등이 인디언 아나키 민주주의에서 배운 것이 대표적 예다.

   

1만6천 년 전부터 아메리카 대륙에 살아왔던 인디언은 약 7천 년 전부터 지역별 특성을 반영한 생활방식을 정립했다. 인디언에게는 약 170가지가 넘는 언어가 다양한 문화와 함께 존재했다. “작고 평등하며 자율적인 공동체에서 더욱 복잡한 경제구조의 집중화된 정치집단으로 변모했다.” 유럽인들이 이 대륙에 왔을 때는 현재의 조지아와 플로리다주의 크리크 연방, 남북 캐롤라이나의 체로키 민족과 초크토 민족 연방, 세인트로렌스강 유역의 호데노소니 연방, 그 이웃인 휴런 연방, 뉴잉글랜드의 페나쿠크 연방 등이 있었다. 이 중에서 미국의 식민지 시절과 독립 당시 백인들과 가장 활발한 접촉을 하며, 영국과 프랑스 전쟁, 미국 독립전쟁에서도 한 변수였던 호데노소니 연방의 사회체제와 그 민주주의는 인디언들이 꾸려왔던 고도의 민주주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


미국 독립 이전 영국 영토와 프랑스 영토 사이에 있던 호데노소니 연방은 콜럼버스 도착 전후 200년간 리오그란데강 이북 최대의 정치조직이었다. 이 연방을 이루는 세네카, 카유가, 오논다가, 오네이다, 모호크라는 다섯 민족은 1142년 연방을 수립했다. 이들 민족의 폭력적 분쟁이 끊이지 않자 데가나위다라는 전설적 인물은 다섯 민족 지도자를 모아 “평화, 동포애, 단결, 권력의 균형, 모든 사람의 자연권, 자원의 공유 그리고 지도자의 탄핵과 해임 절차 등을 상세히 규정한 117개 조항의 ‘가이라네레코와’(위대한 평화의 법)를 제정”한다. 그들의 이 헌법에 따라 “폭력 행사의 정당성 독점은 씨족에서 연방에게 옮겨졌다. …개인의 자유를 중시한 호데노소니에서는 공적 권위에 대해 필요 이상의 거대한 힘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로쿼이 연방으로도 불리는 호데노소니 연방은 뉴잉글랜드에서 미시시피강 유역에 이르는 영토를 지배했다. 여러 민족이 하나의 정부를 구성하는 연방정치 형태는 유럽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어서 유럽인의 호기심 대상이었다”.


씨족 어머니가 전쟁 동의해야


연방의 기본 구조는 연방 밑에 민족, 씨족으로 구성됐다. 연방은 전쟁과 평화 및 조약 체결과 같은 대외 문제만 관장하고, 각 민족의 민족장도 그 민족과 타민족 사이의 문제에만 관여했다. 이른바 내치는 씨족의 전권 사항이었다. 호데노소니는 모계사회로 어머니와 그 자녀들로 가족을 구성했다. 몇몇 가족은 오티아너라는 큰 집단에 속했고, 오티아너가 모여 씨족을 형성했다. 이런 모계제에서 씨족 어머니(이들을 오티아니라고도 불렀다)를 우두머리로 하는 결속력 강한 정치집단을 형성했다. 여성의 투표로 결정되는 씨족 어머니는 남성 사절을 대표로 임명하고, 그 남성이 씨족을 대표해 민족회의에 참가했다. 12씨족이 한 마을을 이루고, 마을이 모여 민족을 형성했다. 마을회의, 민족회의, 연방회의가 각 단위 통치기구다. 이는 미국 독립 전의 마을회의(town meeting)와 주의회와 연방의회의 모태가 됐다.


여성은 지도자인 남성을 지명하거나 파면하고, 전쟁에 대한 동의를 했다. 민족장은 씨족 어머니들이 임명했다. 민족장의 자격, 권리와 의무는 엄격하게 정해졌다. 민족장은 권력이 없는 우두머리였다. 이런 민족장은 인디언 아나키 민주주의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 민족장은 평화의 유지자·중재자, 집단의 조정자로, 이는 전시와 평시의 권력 분화로 나타났다. 평시 민족장과 전시 민족장이 따로 있었다. 민족장에게는 물질적 보상이 없었고, 오히려 구성원들에게 물질적 요구를 들어주는 관대함이 있어야 했다. 말을 잘해야 했다. “국가가 형성된 사회에서 말하는 것은 권력이 지닌 권리인 데 반해, 국가 없는 사회에서는 말하기가 권력의 의무다.” 그는 매일 교훈적인 말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훈계해야 했다. 우리에게 알려진 이른바 ‘인디언 추장들의 교훈적 말’은 그들의 의무였다.


연방은 각 민족 대표 8~15명씩, 모두 50명으로 구성된 연방회의를 두었다. 만장일치제여서, 각 민족의 대표 수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연방회의에는 대표들뿐만 아니라 일반 남성, 씨족 어머니, 여성, 아이 등 성별·연령 불문으로 참가할 수 있다. 서로 존중하고, 공정한 결과를 위한 복잡한 회의 절차도 상론할 가치가 충분하나, 발표자를 존중하고, 이야기를 중단시키는 것을 엄단한 데서 잘 드러난다. 의원이나 내각 구성원이 말할 때 야유와 칭찬을 보내는 유럽 의회와 달리 미국 의회가 발표자의 발표 때 경청하는 제도는 여기서 연유한다.


회의가 결렬될 위협을 받으면 민족장들은 그 문제를 민중의 결정에 위임해야 했다. 이는 미국의 몇 주가 채택한 주민발의권의 모태가 됐다. 또 민중은 탄핵 심의나 반역 고소의 발의 외에, 특정 문제에 대한 민의를 연방회의에 직접 호소할 수 있었다.


평화 공존하는 연방 외교체제


1744년 7월 펜실베이니아에서 인디언과 영국인이 만난 자리에서 호데노소니의 민족장인 카나사태고는 독자적인 정책을 갖는 13개의 주 행정기관과 교섭하는 것이 불편하므로, 자기들처럼 하나의 연방을 만들면 편하다고 권고했다. 인디언 사회와 호데노소니 연방에 관심과 애정을 가진 이는 벤저민 프랭클린이다. 프랭클린은 “저런 연방을 결성하고 오랫동안 유지하면서 분열을 방지해왔는데, 12개 정도인 영국 식민지에 의해 하나의 연방 결성이 불가능하다면…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라고 말했다.


<인디언 아나키 민주주의>는 읽다 보면, 미국 헌법과 미국의 민주주의 제도, 그리고 미국 독립 주체세력들의 인디언 경도가 관념적이고 낭만적 차원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미국인들은 인디언 사회를 통해 새로운 민주주의를 목격했고, 유럽 대륙과는 다른 미국의 민주주의를 만들어냈다. 독립 당시 인디언과 그 사회에 대한 호감도 대단했고, 애초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인디언 연방들과 공존하는 외교 체제를 상정했다. 하지만 미국 독립 뒤 인디언과 그 사회가 어떻게 됐는지는 말할 필요가 없다. 더 큰 문제는 인디언들이 가꾸었던 권력의 횡포가 없는, 모두가 평등하고 국가와 시장의 착취가 없는 사회와 제도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런 체제는 결코 꿈만 꿀 수 있는 이상향이 아니고, 이 땅에서 실현 가능하다는 것을 인디언 아나키 민주주의는 보여준다.

[출처: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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