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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진대로 폴 크루그먼은 동아시아의 위기는 생산성 향상 없이 노동과 자본 등 요소투입에 의존한 경제성장을 한 당연한 귀결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제껏 고도성장을 이룩해 온 동아시아국가들은 서방에서 주장하는 동아시아 국가의 내재적 요인에 대한 강조를 마뜩잖게 여겼다. 그 대표주자는 외환위기의 원인을 국제 헤지펀드들의 투기적 행동으로 귀착시킨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였다. 특히 그는 유대인인 소로스의 통화투기가 금융위기를 초래했으며, 이는 이슬람 국가에 대한 유대인의 음모라고 공공연히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그 타당성과는 별개로 경제적 파탄과 정치적 혼란에 빠져 있던 동아시아 국가의 국민들에게 큰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냉정하게 현실을 들여다보면 헤지펀드의 음모론은 그리 설득력이 없다. 우선 이머징 마켓에 대한 포트폴리오 투자의 순유입은 97년까지도 증가추세에 있었고 위기발생 년도인 97년에도 120억 달러의 순유입이 발생했다. 더욱이 한국은 외환위기 이전까지 실수요 원칙에 입각한 선물환 거래로 공매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오히려 사태의 진상은 내외금리차가 크게 존재하는 상태에서 무분별하게 추진된 외환자유화가 금리 차이를 이용한 재정거래적 외화차입을 유발시켰고, 단기 외채, 과잉 중복 투자, 환율 등의 문제가 중첩되면서 국가적 위기상황을 초래한 때문이었다. 이어 심리적 공황에 빠진 서방금융기관의 자금회수가 일어나면서 국가부도 사태를 맞이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헤지펀드의 부분적 역할이 첨가된다) 즉 외환위기는 헤지펀드의 음모보다는 당국의 미숙한 정책집행과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가 결합되면서 투자환경 악화를 초래했고 이것이 서방금융기관의 공세적 회수를 촉진했다는 것이다.

10년이 지난 문제를 지금 다시 꺼내는 것은, 최근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전세계적 경제위기 속에서 또 다른 음모론이 배양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으며 실제로 동영상과 서적을 통해 빠르게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위의 사례가 음모론의 특성에 대해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에서는 멀게는 트로이 전쟁을 신들의 음모라고 생각했던 호머에서부터 유대인의 세계정복을 위해 만든 시온 의정서 (The Protocols of the Learned Elders of Zion), 삼각위원회(The Trilateral Commision), 유스넷 커밸(The Usenet Cabal)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음모론이 번성해왔다. 그리고 이에 대한 비판과 반론도 음모론 만큼이나 다양하고 많다.

음모론에 대한 논의를 살펴보면 그것을 반대하는 쪽은 물론 옹호하는 쪽에서도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다. 대부분 정황증거나 간접 추론에 기대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줄곧 인용되는 서적과 그 파생변형물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기 일쑤다. 물론 이것은 음모론의 소재가 되는 인물과 조직이 워낙 비공개적이라 극소수 이외에는 대부분 접근이 불가능하고 검증할 수 없는 사실에 대한 논의가 대부분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음모론의 이런 속성은 대중의 관심을 꺼트리기는커녕 오히려 상상력과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음모론은 대중의 불안(피해의식)과 상상력 그리고 일정 정도의 무지(無知)를 먹고 자란다. 음모론이 창궐했던 시기를 살펴보면 모두 사회경제적 위기 속에서 대중들이 극심한 불안을 느끼고 있을 때였으며 분노에 차서 자신들이 무엇(누구)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는 지에 대해 알고자 혈안이 되어 있을 때였다. 또한 음모론은 모두 사실이지도 않지만 모두 거짓이지도 않다. 어느 정도의 Fact와 Fiction이 결합되어 있음은 물론 극적인 플롯과 실존 인물의 등장으로 흥미와 사실성을 극대화한다. 하지만 부분적인 사실성의 그림자로 인해 사실의 조각을 얽는 플롯의 허구성에 대한 검증이 허술해진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 그리고 음모론은 구조적 사건의 의인화, 제한적 개인의 우상화(전지전능화), 복잡한 현실의 단순화로 특징지을 수 있다. 이러한 특징 속에서 다차원적인 역사를 단선적 인과관계와 결정론으로 윤색한 뒤에 숨겨진 현재진행형으로 마무리한다. 하지만 이는 대단히 큰 오류를 내장하고 있다.

불확정성의 원리라는 양자역학의 발전으로 자연과학에서조차 결정론과 단선적 인과론이 자취를 감춘지 오랜된 시점에서 단일 인물이나 조직의 비밀스러운 힘에 의해 역사가 진행된다고 보는 가정은 순진한 생각이다. 복잡성 이론에서도 설명하듯이 하나의 행동은 수많은 예견치 못한 반작용을 양산해내고 그것의 상호작용으로 현실이 주조됨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모두 통제하고 있고 자신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신화적 상상력의 소산일 뿐이다.

게다가 음모론은 거의 대부분 반유대주의라든지, 백인우월주의와 같은 희생양 메커니즘을 내장하고 있는데, 이는 극단적으로 표출될 경우 인권유린과 대량학살에 대한 윤리적 감수성조차 상실케 할만큼 파괴력이 크다. 그리고 가장 경계해야 할 점은 앞서의 IMF원인론에서도 볼 수 있듯이 구조적, 제도적 문제나 정책적 실패와 같은 개선가능한 문제에 집중하여 그것을 극복하려하기 보다 사실을 왜곡하고 책임회피성 외생변수에 집착하여 현실을 무기력하게 방조할 수 밖에 없게 만든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음모론을 ‘노예의 철학’이라 부른다)

이쯤에서 시중에 떠도는 음모론을 그저 재미로 받아들일 뿐인데 왜 그렇게 심각하게 과민반응하느냐란 반문을 던지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인 허영을 자랑하는 때가 아니더라도 일상적인 판단에서 음모론적 향취를 풍긴다는 것과, 음모론을 믿는 사람들은 그것의 논리적인 귀결과 사회적 악영향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는 경향이 많다는 말로 대답하고자 한다.

또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글에서 말하는 것이 세상에 음모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란 점이다. 그리고 로스차일드가와 같은 영향력 있는 집단이 있다는 것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음모는 있지만 세상을 움직이는 동력은 음모적 집단의 강력한 의지가 아닌 제도와 그 속에서 행위하는 제한된 개인들의 의지의 상호작용이란 사실이며, 영향력 있는 집단도 결국 구조적 제약 속에 존재하는 행위자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그래도 음모론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가 잘 모르는 외국사례가 아닌 한국사회의 음모에 대해 하나만 말해보길 바란다. 아마 상상 가능한 모든 반론이 나올 것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사실 여부를 검증할 수 없는 음모론에 집착하기 보다 주어진 현실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방법론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건전한 철학을 견지하는 것이다. 예컨대 최근 많이 읽히고 있는 쑹훙빙의 '화폐전쟁'이란 책도 저자의 금융질서에 대한 번득이는 혜안과 민간자본 소유구조를 지닌 연방준비은행 및 금융상품에 대한 이해 등에 대한 지식을 얻는 정도에서 머무르지 않고, 중화주의의 그림자가 엿보이는 서술방식에 동화되거나, FRB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견제장치를 간과하는 것은 또 다른 진실을 망각하는 처사다. 개혁과 변화를 향한 열망에 대한 냉소와 무기력을 양산하는 음모론을 읊조리기 전에 개선 가능한 현실의 문제에 대해 처방할 구체적인 정책을 강구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이 글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의 '경제현안' 토론방에 올라온 윤재웅님의 글입니다. 더 많은 정보와 깊이 있는 토론을 원하시는 분들께서는 포럼을 방문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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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소로스 아저씨의 책을 읽었습니다.
역시 대가의 향기는 다릅니다.

간단한 이야기를 하자면...
전 이 아저씨의 책에서 물리학의 향기를 맡았습니다.
그리고 또하나, 극과 극은 통한다.
어떤 분야에서건 고수가 되면, 다른 분야의 향기에 취할수 있다 랄까.
되먹임 논리 라던가 몇가지 부분들은 제가 생각해오던거랑 상당히 흡사하긴 하더군요.
제가 생각해오던 논리를 좀더 권위를 부여하고,
다듬을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책이 쉽지 않았고, 졸립기 까지 했습니다만...
그래도 괜찮은 책이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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