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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 사토시(일본어: 今 敏(こん さとし), 1963년 10월 12일~2010년 8월 24일)은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겸 만화가이다.

홋카이도 구시로 시 출신으로 무사시노 미술대학 조형학부 시각전달디자인과를 졸업했다.

감독한 작품  
퍼펙트 블루(PERFECT BLUE, 1997)
천년여우(千年女優, 2001)
도쿄 갓 파더(東京ゴッドファーザーズ, 2003)
망상대리인(妄想代理人, 2004)
파프리카(パプリカ, 2006)
오하요(オハヨウ, 2007)
꿈꾸는 기계(夢みる機械) (미개봉)


- 이하 곤 사토시 감독의 유언장

2010년 8월 25일 (수요일)

안녕


잊을 수 없는 올해 5월 18일.

무사시노 적십자 병원, 순환기과 의사로부터 다음과 같은 선고를 받았다.

- 췌장암 말기. 뼈 여러부분에 전이. 여명 길어야 반년 -

아내와 둘이서 들었다.

둘만의 힘으론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청천벽력에 억울한 운명이었다.

평소부터 생각하고는 있었다.

'언제 죽는대도 할 수 없지'

... 라고는 해도 너무나도 갑작스러웠다.


분명 징후는 보였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2, 3개월 전부터 등 여기저기와 서혜부 등에 강한 통증을 느꼈고, 오른쪽 다리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게 되면서 걷기도 힘들게 되어 뜸을 뜨거나 카이로프랙틱 등을 다녀봤지만 차도가 없던 차, MRI나 PET-CT 등의 정밀기기로 진단한 결과 느닷없는 사형선고가 내려진 것이었다.

눈치챘을 땐 죽음이 바로 등 뒤에 서있던 것 같은 상황으로, 나로써는 도저히 어찌해 볼 길이 없었던 것이다.


선고 후,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아내와 함께 모색했다.

그야말로 필사적으로.

믿음직한 친구나 더할나위 없이 강력한 분의 지원도 얻어 왔다.

항암제는 거부하고, 일반적인 세상의 상식과는 다소 다른 세계관을 믿으며 살아보려 했다.

<평범함>을 거부하는 부분이 나다워서 좋은 것 같았다.

어차피 언제나 다수파에는 몸둘 곳이 없었던 듯이 생각된다.

의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현대의료의 주류파 뒤에 어떤 시스템이 있는지도 이것저것 뼈저리게 깨달았다.

'자신이 선택한 세계관으로 살아남아 주겠어!'

그러나.

기력만으로는 맘먹은대로 안 되는 것은 작품 제작과 마찬가지.

증세는 하루하루 확실히 진행되고 있었다.


한편, 나 역시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서 보편적인 세상 상식의 절반 정도는 받아들이며 살고 있다.

꼬박꼬박 세금도 내고 있으니.

'훌륭'하곤 거리가 멀지만 나 역시 버젓한 일본사회의 멤버 중 하나다.

그러니 살아남기 위한 <사적 세계관>의 준비와는 별도로, <깔끔하게 죽을 채비>에도 손을 썼다고 생각한다.

전혀 깔끔하게 못했지만.

그중 하나가, 믿을 수 있는 친구 두 명의 협력을 얻어 덧없지만 곤 사토시가 가진 저작권 등의 관리를 맡길 회사를 만드는 것.

또 하나는 많지는 않지만 재산이 원활하게 처에게 양도되도록 유언장을 만드는 것이었다.

물론 유산 다툼 같은 게 터질 리야 없지만, 이 세상에 홀로 남을 아내를 위해 불안요소는 하나라도 없애주고 싶었고, 그것이 쬐금 저편으로 여행을 떠날 나 자신을 안심시키는 것으로 이어지니.

절차에 따라붙는, 나나 아내가 익숙치 못한 사무처리나 예비 조사 등은 멋진 친구에 의해 빠르게 진행되어 갔다.

후일, 폐렴으로 위독한 가운데서 비몽사몽 간에 유언장에 마지막 사인을 했을 때에는 일단 이걸로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휴우... 겨우 죽을 수 있게 됐어...'

어찌됐든, 그 이틀 전에 구급차로 무사시노 적십자 병원으로 옮겨지고, 하루 걸러 또 구급차로 같은 병원에 실려 갔다.

과연 이쯤 되니 입원해서 상세 검사에 들어가게 됐다.

결과는 폐렴의 병발.

가슴에 물도 상당히 찼다.

의사에게 딱잘라 물었더니, 매우 사무적인 태도여서 어떤 의미로는 고마웠다.

"잘 버티면 하루 이틀...고비를 넘긴다 해도 이 달 안이겠지요."

그 말을 들으며, '일기예보 같구먼...'하고 생각했지만, 사태는 절박했다.

그게 7월 7일에 있었던 일.

꽤나 가혹한 칠석이었다.


...이상으로 마음은 굳었다.

나는 내 집에서 죽고 싶다.

주변 사람에게 있어 마지막 대형 민폐를 끼치게 될 지도 모르지만, 어떻게 해서든 집으로 탈출할 방법을 찾아 줄 것을 부탁했다.

아내의 노력과 병원측의 '포기한 듯 하면서도 실은 매우 도움이 되었던' 협력, 외부 의원의 막대한 지원, 그리고 수많은, 하늘의 도움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우연들.

그렇게 우연과 필연이 빈틈없이 잘 맞아 떨어지는 게 현실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였다.

<토쿄 갓 파더>도 아니고 말이지.

아내가 탈출분비로 분주한 한편에서, 나는 의사에게, "한나절이라도, 하루라도 집에 있을 수 있다면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요!"라고 호소한 후, 어두침침한 병실에서 혼자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쓸쓸하진 않았지만 떠오르는 생각은 이런 것.

'죽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군'

특히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을 지도 모르지만, 기분은 자신도 놀랄 정도로 평온했다.

단지, 단 하나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점이 있었다.


"여기서 죽는 건 싫은데..."

하며 봤더니, 벽에 걸린 달력에서 뭔가가 움직여 실내에 퍼지기 시작했다.

"이런이런... 달력에서 행렬이라니... 내 환각은 개성이 쥐뿔도 없구만..."

이런 때조차 직업의식이 발동하는 걸 흐뭇하게 느꼈지만, 사실은 이때가 가장 저승에 접근했었을 지도 모르겠다.

정말로 죽음을 가까이에 느꼈다.

죽음의 세계와 시트에 둘둘말려,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에 힘입어, 기적적으로 무사시노 적십자 병원을 탈출해 자택에 도착했다.

죽는 것도 괴롭구만.

혹시나 해서 말해 두지만, 특히 무사시노 적십자에 비판이나 혐오는 없으니 오해마시길.

단지, 나는 자신의 집에 돌아가고 싶었을 뿐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그 집으로.


조금 놀랐던 것은, 자택의 거실에 옮겨질 때 임사체험 등으로 잘 알려진, - 높은 곳에서 자신이 방 안으로 옮겨지는 것을 본다 - 라는 덤이 붙은 것이었다.

자신과 자신을 포함한 풍경을, 지상 수 미터의 정도의 높이였을까, 와이드스러운 렌즈를 통해 진부감(眞俯瞰)으로 보고 있었다.

방 중앙에 있는 침대의 사각이 묘하게 크고 인상적이고, 시트에 감긴 자신이 그 사각 위에 내려졌다.

그리 정중한 느낌은 아니었지만 불평은 할 수 없지.


자, 남은 것은 자택에서 죽음을 기다릴 뿐이었을 터였다.

그런데.

폐렴의 고비를 어렵지 않게 넘겨버린 듯 하다.

얼레?

어느 의미론 이렇게 생각했다.

'못 죽었네(...훗)'

그 후, 죽음만을 생각할 수 밖에 없었던 자신은 분명히 한 번 죽었다고 생각한다.

몽롱한 의식의 깊은 곳에서 [reborn]이라는 단어가 몇 번인가 흔들거렸다.

신기한 것이, 그 다음 날 기력이 다시 재기동했다.

아내를 비롯, 문병을 와서 기력을 나누어 주신 여러분, 응원해준 친구들, 의사나 간호사, 간병인 등 관계자 모두의 덕분이라 생각한다.

정말로, 솔직하게 마음으로부터.


살아갈 기력이 재기동했으니, 멍하게 있을 여유는 없다.

덤으로 받은 것이나 다름없는 명이라고 마음에 되새기며, 소중하게 쓰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현세에 남긴, 도리에 어긋난 행동을 하나라도 줄이고 싶다고 생각했다.

실은 암에 관해 극히 가까이 있는 사람 외에는 알리지 않았었다.

부모님께조차 알리지 않았을 정도다.

특히 일과 관련해선 여러가지로 얽힌 것이 많아 말할래도 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인터넷 상에 암 선언을 하고, 남은 인생을 하루하루 보고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지만, 콘 사토시의 죽음이 예정되어 있다는 것은 작다고는 해도 여러가지 영향이 염려되기도 했고, 그때문에 가까운 지인들에게도 도리를 다하지 못했다.

정말 면목없다.


죽기 전에 하다못해 한번이라도 만나, 한마디라도 인사를 하고 싶은 사람은 잔뜩 있다.

가족이나 친척, 거슬러 올라가면 초, 중학교부터 고교 동창, 대학에서 만난 친구들, 만화의 세계에서 만나 수많은 자극을 서로 교환했던 사람들, 애니메이션의 세계에서 책상을 나란히 하고 함께 술잔을 기울이고, 같은 작품 안에서 실력을 서로 자극하며 고락을 함께 나누었던 수많은 동료들, 감독이라는 입장 덕분에 만날 수 있었던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각지에서 팬이라고 해주는 사람들도 만날 수 있었다.

웹을 통해 만난 친구도 있다.


할 수만 있다면 한번 만나고 싶은 사람은 잔뜩 있었으나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만나면 '이 사람과는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되는구나...'라는 마음만이 쌓일 듯 해 죽음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게 돼버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회복했다고는 해도 내게 남은 기력은 한 줌 뿐.

만나는 데는 크나큰 각오가 필요했다.

만나고 싶은 사람일수록 만나는 것이 괴롭다.

아이러니컬한 얘기다.

게다가 뼈에 암이 전이된 영향으로 하반신 불수가 되어, 거의 누워 지내는 상태라서 비쩍 말라버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많은 지인들 속엔 건강했던 무렵의 콘 사토시로 남아 있고 싶었다.

병세를 알릴 수 없었던 친척들, 온갖 친구들, 모든 지인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도리를 다 못함을 사죄드립니다.

하지만, 콘 사토시의 방자함도 이해해 주시면 합니다.

뭐랄까, <그런 녀석>이었잖아요? 콘 사토시라는 사람은.

얼굴을 생각해 내면, 좋은 추억과 웃는 얼굴이 떠오릅니다.

모두들, 정말로 좋은 추억을 잔뜩 주셔서 고맙습니다. 

자신이 살았던 세계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 그 자체가 행복입니다.


내 인생에서 만난 적지 않은 사람들은, 긍정적, 부정적 어느 쪽이 됐든 역시 콘 사토시라는 인간의 형성에는 어딘가에서 필요했을 터이고, 모든 만남에 감사하고 있다.

그 결과가 사십 대 중반 도중하차라고 하더라도, 이건 이것대로 다름 아닌 내 운명이라 받아들인다.

짭짤한 맛도 제법 봤고 말이지.

지금,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이런 것.

"유감이라고 밖에 할 말이 없네."

정말로.


그러나, 수많은 결례는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더라도, 내가 도저히 마음에 걸려 견딜 수 없는 일이 있다.

부모님과 매드하우스 마루야마씨다.

콘 사토시의 생부모와, 애니메이션 감독으로서의 아버지.

늦었다고는 해도, 있는대로 몽땅 사실을 고할 수 밖에 없다.

용서를 구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집으로 문병을 와준 마루야마씨를 본 순간, 흘러 나오는 눈물과 비참한 기분이 멈추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이런 모습이 돼버렸어요..."

마루야마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저으며 양손을 붙잡아 주었다.

감사의 기분으로 가슴이 벅찼다.

노도와 같이, 이 사람과 같이 일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한 감사가,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의 환희가 밀려 왔다.

호들갑스러운 표현으로 들릴 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밖에 말할 수 없었다.

내 맘대로일진 몰라도, 단번에 용서받은 생각이 들었다.


가장 큰 미련은 영화, [꿈꾸는 기계]이다.

영화 그 자체는 물론, 참가해 준 스탭에 대해서도 걱정되어 견딜 수가 없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자칫하면 지금까지 피땀을 흘려 그려온 컷들이 그 누구의 눈도 닿지 않고 묻힐 가능성이 넘치도록 있으니까.

어찌됐든 콘 사토시가 원작, 각본, 캐릭터와 세계관 설정, 콘티, 음악 이미지...온갖 이미지 소스를 끌어 안고 있는 것이다.

몰론 작화감독, 미술감독을 비롯해서 많은 스탭들과 공유하고 있는 부분도 잔뜩 있지만, 기본적으로 <콘 사토시>가 아니면 알 수 없는, 만들 수 없는 것 투성이의 내용이다.

그렇게 만든 것은 네 책임이다, 라고 하신다면 그만이지만, 나 나름대로는 세계관을 공유하기 위해 적지않은 노력을 해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 되어 버리고 나니 내가 덕이 부족했던 부분만이 뼈에 사무친다.

스탭 모두에게 참으로 죄송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조금은 이해도 해주길 바란다.

콘 사토시가 <그런 녀석>이었으니까 다소라도 다른 것과는 틀린, 묘한 것을 응축한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었다고도 할 수 있으니.

상당히 오만한 말투로 들릴 지는 모르지만, 암이니까 좀 봐줘.


나도 어영부영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니고, 콘 사토시 사후에도 어떻게든 작품들이 존속할 수 있도록 모자란 머리를 쥐어 짜 왔다.

그렇나 그것도 잔꾀.

마루야마씨한테 꿈꾸는 기계에 대한 염려를 얘기했더니,

"괜찮아. 어떻게든 해볼테니 걱정 말게."

라고 하셨다.

울었다.

완전 오열.

지금까지 영화제작에 있어서도 예산에 있어서도 결례만을 쌓아왔지만, 결국 언제나 마루야마씨가 어떻게 해주셨다.

이번도 마찬가지다.

난 발전이 없어.

마루야마씨와는 충분히 이야기 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덕분에, 콘 사토시의 재능이나 기술이 현재의 업계에 있어 상당히 귀중하다는 걸 약간 실감했다.

재능이 아깝다. 어떻게든 두고 갔으면 좋겠다.

뭐니뭐니 해도 더 매드하우스 마루야마씨가 말씀하시는 것이니 자신감을 다소 기념품으로 가지고 명부로 향할 수 있다는 거다.

분명,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것도 없이, 이상한 발상이나 자잘한 묘사의 기술이 이대로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은 단순히 생각해도 아깝지만, 별 수 없지.

그것들을 세상에 낼 기회를 주신 마루야마씨에게는 마음으로부터 감사하고 있다.

정말로 고마웠습니다.

콘 사토시는 애니메이션 감독으로서도 행복했습니다.


부모님께 고하는 것은 진짜로 괴로웠다.

원래대로라면 아직 몸이 말을 들을 때 삿포로에 계시는 부모님을 찾아 뵙고 암에 대해 고할 셈이었으나, 병의 진행이 원통할 정도로 빨라서 결국 죽음에 가장 가까이 다가섰던 병실에서 전화로 갑작스런 비보를 전하게 되었다.

"저, 췌장암 말기라서 곧 죽게 됐어요. 아버지와 어머니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정말 기뻤습니다. 고맙습니다."

느닷없는 소식을 듣는 쪽은 견딜 수 없었겠지만, 그때는 이미 죽음의 예감에 휩싸여 있었다.


그러던 것이 집에 돌아가, 폐렴의 고비를 어찌저찌 넘겼던 무렵.

일대결심을하고 부모님을 만나기로 했다.

부모님 역시 만나고 싶어 하셨다.

하지만 만나면 괴롭고, 만날 기력도 없었지만, 어떻게든 한번 뵙고 싶었다.

이 세상에 낳아주신 은혜에 감사의 말을 직접 전하고 싶었다.

나는 정말로 행복했다.

다른 사람들 보다 조금 서둘러 가는 것은 처에게도 부모님께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미안하지만.

제멋대로인 나에게 부모님께서 곧 대응해 주셔서, 다음 날 바로 삿포로에서 집까지 오셨다.

병석에 누운 나를 보시자마자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한마디를 잊을 수가 없다.

"미안해! 튼튼하게 낳아주지 못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부모님과는 짧은 시간 밖에 함께할 수 없었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얼굴을 보면 그걸로 모든 게 통할 듯이 생각했었고, 실제로 그러했다.


고마워요, 아버지, 어머니.

두 분의 자식으로 이 땅 위에 삶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행복이었습니다. 

셀 수 없을 정도의 추억과 감사로 가슴이 벅찹니다.

행복 그 자체도 소중하지만,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신 것, 아무리 감사를 드려도 다 못 드립니다.

정말로 고마웠습니다.


부모보다 먼저 가는 크나큰 불효자이지만, 이 십수 년 간 애니메이션 감독으로서 솜씨를 부리고, 목표를 달성하며, 평가도 나름대로 얻었다.

별로 안 팔렸던 것은 쬐금 유감이지만, 분수에 맞는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 십수 년, 다른 사람 몇 배의 밀도로
살았던 기분이고, 부모님도 내 마음 속을 알아 주셨겠지.


부모님, 마루야마씨와 직접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으로 한 짐 던 느낌이었다.


마지막으로 누구보다도 마음에 걸리고, 하지만 최후까지 의지가 되었던 아내에게.

그 사형선고 후 둘이서 몇 번이고 눈물에 젖었었다.

서로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가혹한 매일이었다.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러나 그런 괴로우면서도 애달픈 나날을 끝까지 넘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선고 후 바로 말해줬던 강인한 한마디 덕택이었다.

"나, 끝까지 함께 달릴테니까." 

그 말대로, 나의 걱정따위는 따돌리듯이 여기저기서 밀려오는 요구나 청구를 교통정리하고, 남편의 간병을 어깨너머로 바로 터득하여 척척 해나가는 모습에 나는 감동을 느꼈다.

"내 마누라는 대단하다구."

새삼스럽게 말하지 말라구?

아니아니, 지금까지 생각했던 이상이구나...라고 실감했습니다요.

내가 죽은 후에도, 분명 능숙하게 콘 사토시를 배웅해 주겠지.

떠올리면, 결혼 이후 늘상 일, 일에 치여 사는 매일을 보내다, 집에서 느긋하게 지낼 시간이 생겼나 했더니 암, 이란 것은 너무한 얘기다.

하지만 일에 몰두하는 사람이라는 것, 거기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바로 옆에서 잘 이해해 줬었지. 나는 행복했어, 진짜.

삶에 대해서도, 죽음을 맞이함에 있어서도, 아무리 감사를 해도 다할 수 없어.

고마워.


마음에 걸리는 것은 물론 아직 잔뜩 남았지만, 일일히 세다 보면 끝이 없다.

매사에는 끝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요즘은 그리 받아주는 곳이 없는 자택에서의 터미널 케어를 수락해 주신 주치의 H선생님, 그리고 그 부인이시며 간호사이신 K씨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자택이라는, 의료에 있어 불편하기 짝이 없는 상황 속에서, 암으로 인한 진통을 갖은 방법으로 끈기있게 제거하여, 죽음이라는 골에 다다를 때까지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쾌적하게 지낼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해주셔서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모른다.

뿐만 아니라, 그냥도 귀찮게 덩치 크고 거만한 환자를 단순한 일의 범주를 아득히 넘어, 무엇보다도 인간적으로 대하여 주셨던 것에 우리 부부가 얼마나 위안을 얻었는지 모릅니다.

선생님 부처의 인품에 격려받은 일도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깊이,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이 됩니다만 5월 중순에 암 선고를 받은 직후부터 공사에 걸쳐 엄청난 협력과 노력, 정신적 지주가 되어준 두 명의 친구.

주식회사 KON STONE의 멤버이자 고교시절부터의 친구 T와 프로듀서 H에게 마음으로부터 감사를 보냅니다.

정말 고마웠어.

내 빈약한 어휘로는 적절한 감사의 말을 찾는 것도 어려울 정도로 부부가 함께 신세를 졌네.

두 사람이 없었으면 죽음은 더욱 괴로운 형태로 나와 내 옆에서 간병하는 아내를 집어 삼켰겠지.

하나에서 열까지 정말로 신세가 많았네.

그래서 말인데, 신세만 져서 미안하네만, 나 죽고 나서 배웅하는 것까지 아내에게 협력해줄 수 없겠는가.

그래 준다면 나도 안심하고 여행길에 오를 수 있어.

마음으로부터 부탁하네. 


자... 여기까지 긴 문장을 함께하여 주신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좋은 것들에 감사하고 싶은 마음과 함께 펜을 놓겠습니다.

자, 그럼 먼저 갑니다.


- 곤 사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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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

출생    1941년 1월 5일, 도쿄 분쿄 구
직업    애니메이션 감독
배우자    아케미 오타
수상    베를린 영화제 금곰상


미야자키 하야오(宮崎 駿, 1941년 1월 5일 ~ )는 《미래소년 코난》 등의 작품으로 한국인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일본의 대표적인 애니메이션 감독이다.

2차 대전 중인 1941년 1월 5일 도쿄 분쿄구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때 이미 애니메이션 제작을 구상하였으나, 가쿠슈인 대학에 진학하여 경제학을 전공하였다. 대학 재학중에 청소년 신문에 만화를 기고하였으며, 1963년 졸업 후 도에이 동화(東映動畵)에 입사하여 후일 동업자가 되는 다카하타 이사오(高畑勳)와 함께 본격적인 애니메이션 제작에 들어갔다.

《미래소년 코난》(1978년)·《빨강머리 앤》(1979년)에 이어 세계 멸망과 부흥이라는 극적인 소재와 환경이란 주제를 다뤘던《바람 계곡의 나우시카》(1984년)로 크게 성공하였다.

같은 해 다카하타와 함께 스튜디오 지브리(スタジオジブリ)를 창단하고 이후 《천공의 성 라퓨타》(1986)·《마녀 배달부 키키》(1986)·《이웃집 토토로》(1988)·《추억은 방울방울》(1991)·《붉은 돼지》(1992)·《귀를 기울이면》(1995)·《모노노케 히메》(1997) 등을 성공적으로 발표한다. 드디어 디즈니의 어떤 작품도 받지 못한 베를린 영화제의 금곰상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에게 돌아가기에 이르렀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일본에서도 2천4백만 관객을 동원하는 일본영화 사상 최고의 흥행기록을 세웠다. 이후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을 만들었고, 2008년에는 《벼랑 위의 포뇨》를 제작하였다. 《벼랑 위의 포뇨》는 제65회 베니스 영화제에 출품되었다.

최근 그의 아들 미야자키 고로가 《게드 전기》(2006)를 감독, 제작하였는데 이전의 지브리 작품들보다 미흡한 점이 있었으나 그림과 음악은 훌륭하였다.


애니메이션 제작활동 이전의 삶과 가족

미야자키는 네 아들 중 둘째로, 도쿄의 분쿄 구에 있는 아케보노초 마을에서 태어났다. 제 2차 세계대전 때 아버지 카추지는 미야자키 항공사에서 관리자로 일했다. 그 회사는 A6M 제로 전투기에 장착하는 방향타를 만들었다. 이 시기에 미야자키는 비행기를 그렸고, 그 후 일생동안 비행의 매력에 빠져 지냈으며, 이러한 경향은 후에 그의 영화에 되풀이되어 분명하게 나타난다.

1945년에 일본이 미국에 항복하게 되자, '미야자키 항공사'는 몰락하고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미야자키의 어머니는 사회적 규범에 대해 자주 질문을 던졌으며, 열성적으로 책을 읽는 사람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1947년부터 1955(56)년까지 결핵 치료를 받아야 했기에 가족을 따라 그는 자주 이사를 다녀야했다. 특히 1948년부터 1956년 까지 9년동안 미야자키의 어머니는 병상에 누워지냈으며, 미야자키는 어머니 없이 청소년기를 보냈다고 할 수 있다. 만화 영화 《이웃집 토토로》는 그의 어린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그 영화에 나오는 가족의 어머니도 비슷하게 고통받는다. 미야자키의 어머니는 당시에는 치료하기 어려웠던 척추카리에스(결핵균이 척추에 침투하여 발생하는 질환)에 오래 시달리다가, 1984년 7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미야자키는 도요타마 고등학교에 다녔다. 3학년 때, 그는 '일본 최초의 장편 컬러 만화 영화'라고 하던 '하쿠자덴'(하얀 뱀 이야기)을 보았다. 애니메이션에 대한 그의 관심은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만화영화 제작자가 되기 위해서 그는 사람 모습을 그리는 것을 배워야만 했는데, 그는 그 때까지 주로 비행기와 전투함들을 그렸기 때문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미야자키는 가쿠슈인 대학에 입학하였고, 1963년에 정치학과 경제학 학위를 얻고 졸업하였다. 그는 '아동문학 연구 모임'의 구성원이었고, 만화 연구회가 없었기 때문에 그 곳은 '그 당시에 만화 모임에 가장 가까운 것'이었다.

1963년 4월에 미야자키는 도에이 동화에서 직장을 얻었고, 《멍멍충신장》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데 동참했다. 1965년 10월에 그는 동료 만화영화 제작자(애니메이터)인 아케미 오타와 결혼했다. 그녀는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두 아들인 미야자키 고로와 미야자키 케이수케를 기르기 위해 직장을 떠났다. 고로는 현재 만화영화와 영화 제작자가 되었고,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지구해로부터의 이야기'를 감독하였다. 케이수케는 나무 예술가가 되어 지브리 박물관에 있는 작품들을 창작했고, '마음의 속삭임' 이라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영화에서 나오는 나무 조각을 만들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자신의 일에 헌신했고, 일에만 집중하는 태도가 아들 고로와의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했다.


작품 활동 (애니메이션)

미야자키는 도에이 동화에서 일하면서 《걸리버의 우주여행》(1965)에 대한 아이디어를 처음 생각했다. 그는 원래 결말이 별로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점을 발견하고 자신의 아이디어에 따라 그 결말을 조정했으며, 그의 아이디어는 실제 상영된 영화에 반영되었다.

이후에 그는 수석 애니메이터와 컨셉 아티스트(concept artist)로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고 1968년도에 다카하타 이사오가 감독한 획기적인 애니메이션인 《홀스: 태양의 왕자》라는 작품에서는 화면 디자이너(scene designer)로 참여했다. 미야자키는 이후 30년동안 다카하타와 함께 일했다. 기미오 야부키의 애니메이션 《장화 신은 고양이》(1969)(원작:장화 신은 고양이)에서 미야자키는, 작품의 디자인을 짜고 이야기를 만들면서 핵심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했는데, 거기에는 극적 절정에 해당하는 추격 장면도 포함되어 있다.

그 후, 미야자키는 '하늘을 나는 유령선'에 참여하여 그 작품에 나오는 장면을 제안했다. 탱크가 떼를 지어 도쿄 도심으로 물밀듯이 밀려들자 대중이 히스테리를 일으키는 장면이 그것이다. 그는 그 장면을 그리는 일을 맡았다. 1971년에 미야자키는 '동물보물섬'과 '알리 바바와 40인의 도둑'에서 이야기의 구조와 인물의 성격, 디자인을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 영화의 주요장면을 간단히 그린 그림을 나란히 붙인 널빤지인 스토리 보드를 만드는 작업도 했고 중요한 장면을 그리기도 했다.

미야자키는 1971년도에 도에이 동화를 떠나 A 프로로 자리를 옮겼다. A 프로는 그가 다카하타 이사오와 함께 첫번째 루팡 3세 시리즈를 여섯 편 이후부터 공동으로 연출한 곳이다. 그와 다카하타는 '긴 양말의 삐삐' 시리즈를 사전제작하기 시작했고, 그 작품을 위한 스토리 보드 작업을 광범위하게 했다. 그러나 원작자인 아스트리드 린드그렌(Astrid Lindgren)를 만나고 작품에 관한 자료 수집도 하려고 스웨덴으로 여행을 간 후에, 그들은 프로젝트의 완성에 관한 허가를 받지 못했고 그 작품은 취소되었다.

'긴 양말의 삐삐' 대신에 미야자키는 다카하타가 감독한 '팬더와 아기 팬더' (1972년)에서 원안·각본·화면설정·원화를 담당했다. 1978년에 《미래소년 코난》으로 연출 데뷔를 하였다. 1979년 '빨강 머리 앤'의 제작 도중에 미야자키는 니폰애니메이션을 떠났다. 그것은 그의 첫번째 장편 애니메이션인 '루팡 3세 - 카리오스트로의 성'을 감독하기 위해서 내린 결정이었다.

미야자키의 다음 작품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1984)이었다. 나우시카는 이후 그의 작품에서 되풀이되는 주제가 많이 등장하는 모험 영화이다. 예를 들어, 환경보전(ecology)에 관한 메시지나, 항공기의 매력, 그리고 특히 악한 역할인 경우에 인물의 성격을 정신적으로 모호하게 묘사하는 것을 말할 수 있다. 나우시카는 미야자키가 원작을 쓴 저자이면서 그 것을 바탕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의 감독이기도 한 첫번째 작품이었다. 그는 같은 제목을 달고 있는 만화를 그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애니메이션을 기획했는데, 그 후 2년이 흘러 애니메이션이 개봉된 후에도 그 만화는 완결되지 못했다.

1984년에 발표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가 성공하면서, 미야자키 하야오는 다카하타 이사오와 함께 스튜디오 지브리를 설립하였다. 최근까지 그는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미야자키는 계속해서 영화 세 편을 만들면서 명성을 얻었다. "천공의 성 라퓨타"(1986)는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고아인 두 사람이 하늘을 떠다니는 신비의 섬을 찾아 모험에 뛰어드는 내용이며, "이웃집 토토로" (1988)는 두 소녀가 숲의 정령인 토토로와 교감하며 모험을 벌이는 이야기이며, "마녀 배달부 키키" (1989)는 에이코 카도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으로, 작은 마을에 사는 소녀가 집을 떠나 마녀로서 대도시에 사는 내용이다. 위의 영화 세 편 모두에 계속 등장하는 것은, 하늘을 나는 장면으로, 미야자키가 비행에 대한 환상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는 날개를 위 아래로 흔들면서 나는 초기의 비행기(ornithopter)가 나오고, "이웃집 토토로"에서는 토토로와 고양이 버스가 하늘을 날아다니며, "마녀 배달부 키키"에서는 키키가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난다.

"붉은 돼지" (1992)는 미야자키 작품 중에서 예외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예를 들어 이 작품은 주인공이 성인 남성이다. 미야자키는 보통 장편 애니메이션에서 여주인공을 많이 등장시켰으며, 주인공들은 대개 어린이 이거나 청소년이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이탈리아 무솔리니의 파시즘에 반대하는 비행기 조종사이었는데, 그는 의인화된 돼지로 변한다. 영화는 1920년대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다. 주요 등장인물은 두 사람으로, 공적 즉 비행기를 타고 도적질을 하는 무리와 싸워서 보상금을 타내는 주인공과 부유한 미국 군인이다. 영화는 이기심과 의무감 사이의 긴장을 주로 그리고 있다. 그의 다른 영화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도 풍부한 암시를 담고 있으며, 1930년대와 1940년대 미국 영화를 참고하여 많은 유머와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주인공인 '붉은 돼지'는 영화 배우 험프리 보가트(Humphrey Bogart)가 영화에서 보여준 다양한 면모를 많이 지니고 있다.

1997년작 "모노노케 히메"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 보여주었던 생태학적이고 정치적인 주제를 다시 다룬 작품이다. 작품의 플롯은 주로 숲의 동물신과 산업 발전을 위해 숲을 개발하려는 인간 사이의 갈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작품은 다른 미야자키의 애니메이션 작품보다 폭력적인 장면이 상당히 많이 나온다. 영화는 일본에서 엄청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으며, 타이타닉이 나오기 전까지 가장 많은 수익을 거둔 영화이었다. 결국 이 작품은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상을 수상했다. 미야자키는 "모노노케 히메"를 감독한 후에 잠시 물러나 휴식을 취했다.

쉬는 동안 미야자키는 친구의 딸들과 시간을 보냈고, 그 중 한 사람에게서 영감을 얻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을 만들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소녀의 이야기로, 그녀는 기괴한 신들의 세계에서 살아남으려고 애쓰며, 여자 마법사가 그녀의 부모를 돼지로 변하게 한 후에 그 마법사가 소유한, 신들을 위한 목욕탕에서 일하게 된다. 일본에서는 2001년 7월에 개봉되었으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 영화는 많은 상을 받았는데, 2001년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물론이고 2002년에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금곰상을 수상했으며, 아카데미에서도 최우수 장편애니메이션상을 받았다.

2004년 7월에 미야자키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완성했다. 이 영화는 다이아나 윈 존스(Diana Wynne Jones)의 판타지 소설을 원작으로 한 것이다. 미야자키가 물러났다가 다시 복귀한 이후에, 이 장편 애니메이션의 원래 감독이었던 호소다 마모루[9]가 갑작스럽게 이 작품을 포기했었다. 영화는 2004년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기술 공헌상(Golden Osella award)을 수상하였다. 2004년 11월 20일에 일본에서 개봉하였다.

2005년에 미야자키는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공로상을 수상했다. 그 후 미야자키가 만드는 마지막 영화가 아마도 "나는 내 어린 소년을 잃었다"가 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그 작품은 나중에 제목이 "벼랑 위의 포뇨"로 바뀌었다. 2007년에 영화제목이 "벼랑 위의 포뇨"라는 사실이 보도되었다. 영화는 '소스케'라는 다섯살 소년과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금붕어 공주 '포뇨'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있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사장 스즈키 토시오는 "영화의 70-80%가 바다에서 진행된다. 그 것은 자유로운 드로잉으로 바다와 바다 물결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감독이 도전한다는 것을 말해준다"라고 적었다. 이 영화는 미야자키의 최근 작품과는 대조적으로 컴퓨터 그래픽 기술을 활용한 장면이 거의 없다.

스튜디오 지브리 박물관



주제와 사상

선과 악

미야자키의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인물은 대부분 역동적이고, 현실을 바꿀 능력이 있으며, 전통적인 선-악 이분법의 틀로는 쉽게 묘사하기 어렵다. 많은 위협적인 인물들은 나중에 자신의 죄를 뉘우치거나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사악한 적대자(antagonist)로 낙인찍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에보시'는, 《모노노케 히메》에서 철을 만들 원료를 얻기 위해 동물들이 살아가는 터전인 숲을 불태워버리려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다스리는 마을에서 나병환자와 전직 성매매 여성들에게 쉼터와 일터를 제공하는 휴머니스트이기도 하다.

미야자키의 영화는 용서할 수 없는 악마를 물리치는 결말보다, 등장 인물이나 생태계의 구성원들이 여러 갈등을 겪은 끝에 결국 서로 화해하게 되는 결말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마지막에 오무와 같은 거대한 곤충과 인간의 화해를 그리고 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에서도 위에서 언급한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미야자키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주인공인 치히로에 대해 "여주인공은 선과 악이 공존하는 세계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녀가 그곳에서 용케 빠져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악을 파괴했기 때문이 아니라,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을 체득했기 때문이다" 라고 말했다.

미야자키는 그의 작품에 선과 악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자신이 21세기를 오래된 규범이 더이상 유효하지 않으며 그 규범을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는 복잡다단한 시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단순한 고정관념은 이제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영화에서조차 사용될 수 없다고 그는 생각한다. 또한 그의 영화가 때때로 세계에 대한 비관주의를 드러냄에도 불구하고, 미야자키는 어린이에게 비관주의 대신에 긍정적인 세계관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물론 《카리오스트로의 성》이나 《천공의 성 라퓨타》같은 미야자키의 초기 작품에는 다른 인물과 구별되는 악인이 등장한다. 그러나 《마녀 배달부 키키》나 《이웃집 토토로》 같은 나머지 다른 자품에는 뚜렷하게 등장하는 악인이 전혀 없다. 악인이 등장하지 않는 그의 작품 중 일부에는, 전통적인 일본문화와 고대 애니미즘이 지닌 정령 신앙의 요소가 깊게 스며들어 있다. 예를 들어 "이웃집 토토로"에서는 토토로가 사는 곳인, 마을의 수호신사에 있는 숲(나무)이 등장한다.

환경주의

미야자키의 영화는 자주 환경주의와 지구 생태계의 연약한 모습을 강조한다. 《이웃집 토토로》에서, 신기한 생명체인 토토로는 언덕에 솟아있는 거대한 나무 꼭대기에 살고, 가족은 그 나무에 절한다. 이러한 생태학적인 의식이, 《모노노케 히메》에서는 거대한 나무가 자리잡고 있으며 꽃이 가득 피고 늑대가 힘차게 질주하는, 거대한 원시림과 함께 울려퍼진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미야자키의 환경주의는 악취가 나는 "오물신"으로 구체화 되었다. "오물신"은 원래 강의 신이었으나, 오염되어 오물신으로 변하였다가 온천에 와서 여주인공의 도움으로 목욕을 한 후에 깨끗해져서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모노노케 히메》, 《천공의 성 라퓨타》 그리고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 군대는 영화에 등장하는 생태학적인 낙원을 위협한다. 각각의 영화에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과 '문명의 군사적 파괴'는 갈등을 일으키며 대립하는 요소이고, 땅과 자연 자원은 주인공이 온갖 어려움을 겪어가며 지켜내야 하는 중요한 것으로 등장한다. 전투 장면이 등장할 때마다, 군국주의를 연상시키는 음악과 함께 생태계의 파괴가 일어나고 그것은 곧 마을 거주자들이 모두 위험에 처하게 되는 상황으로 직결된다.

뉴요커와의 인터뷰에서, 미야자키는 현대 문화의 상당 부분이 "천박하고 피상적이며 속임수"라고 주장하고, 자신이 "전적으로 농담인 것은 아니게", "야생 초원"이 지구를 덮는 종말론적인 시대를 기다리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른이 어린이에게 "그들의 세계에 대한 비전(vision)을 강제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전쟁 반대

미야자키의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인 "나우시카"와 "모노노케 히메"는 둘 다 강력한 반전(反戰)사상을 드러내고 있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는 나우시카의 희생 때문에, 거대 곤충인 오무 떼와 인간 사이의 전쟁이 그친다. 더욱이 나우시카가 사는 세계는, 전쟁과 환경 파괴로 인해 멸망한 오랜 문명의 폐허로 가득찬 곳이다. 《모노노케 히메》에서도 생명의 신 아시타카의 강력한 힘에 의해, 인간 사이의 추악한 전쟁과 인간과 자연의 대립이 종식된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하울은 전쟁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분명히 밝히고, 그는 어떠한 공직에서도 싸움에 참가하기를 거부한다.

비행(Flying)

비행(Flight)은 미야자키의 영화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주제이다. 그는 비행을 중력으로부터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했고, 하늘을 날면서 지상의 풍경을 둘러보는 일이 어떻게 사람을 한 장소에 반하게 만드는지를 보여주려 했다. 스튜디오 지브리가 2002년에 만든 단편 영화인 《상상 비행 기계》(Imaginary Flying Machines)는, 비행의 놀라움에 대한 미야자키 자신의 언급을 가득 담고 있다.

게다가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 라퓨타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도시이며, 영화에는 각종 항공 장치와 항공기의 그림이 등장한다. 이러한 주제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나우시카는 그녀 자신이 메베를 타고 하늘을 나는 조종사이고, 영화 속에서는 거대한 무기를 운반하는 공중 수송 부대의 모습이 등장한다. 《마녀 배달부 키키》에서 키키는 자신의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며 배달 일을 하고, 《이웃집 토토로》에서 거대한 토토로는 사츠키와 메이를 태우고 밤하늘을 가로지른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는 치히로가 하쿠가 변해서 된 용을 타고 하늘을 날아 마녀 유바바의 온천으로 돌아오고,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는 하울과 소피가 그들의 마을 위 하늘로 날아 오른다. 《붉은 돼지》에서는 아예 주인공과 그에 맞서는 인물이 모두 비행사로서, 작품의 초점이 비행에 맞추어져 있고, 비행기와 전투기가 등장한다.

미야자키가 즐겨 그리는 비행기는 주로 과거 제1·2차 세계대전 때 사용된 전투기나 폭격기의 모습이다. 그는 다소 둔탁해 보이지만 인간이 조종해야만 동작을 하는 기계의 투박한 느낌이 살아있는 비행기를 좋아한다고 할 수 있다. 《붉은 돼지》는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며, 매우 개성이 강하고 다양한 모습의 비행기들이 나타난다.

숲 또는 나무

종교학자 박규태는 《이웃집 토토로》와 《모노노케 히메》의 숲을 비교하며, 미야자키의 애니메이션에 일본 신도의 영향이 드러난다고 본다. 그는 토토로가 사는 숲은 마을의 수호신사인 진쥬의 숲으로, 자체적인 질서가 잡힌 코스모스의 숲이다. 반면에 원령공주에 나오는 시시가미(사슴신)의 숲은 태초의 원시림이며, 원시적 생명력의 숲이다.

다른 장편 애니메이션에도 나무와 숲은 꾸준히 등장하고 있는 소재이다.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 사람이 살지 않는 라퓨타성을 거대한 나무가 지탱하고 있으며,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도 곰팡이 나무와 기괴한 식물들이 등장한다. 나우시카에 나오는 식물의 이미지는 핵전쟁 이후라는 설정 아래 과거와 현재의 식물 모습을 혼합하고 바꾸어 만든 것이다.

신화

김윤아는 《모노노케 히메》(원령공주)에 세 갈래의 신화가 내재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첫째, 흰 들개신과 같이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아이누 신화, 둘째, 일본 특유의 재앙신이 나오는 원령 사상, 셋째, 시베리아 샤머니즘으로 그 기원을 이야기 할 수 있는 북방계 신화이다.

아이누 민족은 오늘날의 일본 홋카이도, 혼슈의 도호쿠 지방에 정착해 살던 소수 민족이다. ‘아이누’는 신성한 존재인 ‘카무이’와 대비되는 ‘인간’이라는 의미의 홋카이도 지방의 아이누어 방언에서 비롯되었다. 일본어로는 '에미시', '에조(蝦夷)'로 불리는데, 이는 사할린 아이누의 ‘인간’을 뜻하는 '엔츄' 또는 '엔주'의 원형으로 보인다. 수렵과 어업을 주로 했던 그들의 풍습에는 많은 부분 북방계 샤머니즘의 영향이 드러난다.

《모노노케 히메》에 등장하는 주인공 아시타카는 일본 동북방에 은둔하던 에미시족의 수장인 젊은이로 나온다. 또한 영화에 등장하는 거대한 짐승신들은 아이누 신화에서 직접 빌려온 내용이다. 최근까지도 아이누 사람들은 산(山)이 짐승으로 변해서 모습을 드러내는 신들의 나라 라고 믿고 있다.

원령사상은 다음과 같다. "모노노케 히메"에서 '모노노케'는 산 사람을 괴롭히는 생령을 말하며, 일본에서는 생전에 원한을 품고 죽은 귀족이나 왕족이 사후에 재앙을 일으키는 것을 막으려고 신으로 모시는 관습이 있었다.

북방계 신화의 내용은 《모노노케 히메》에 나오는 사슴신과 연관이 깊다. 북방계 신화에는 사슴에 대한 이야기 많은데, 영화 속에서는 사슴신이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최고신으로 등장한다. 또한 어린아이의 영혼 같이 하얗고 작은 "고다마"들은, 인간 영혼이 벌거벗은 아이 모습으로 나뭇가지에 앉아 있다가 샤먼의 부름을 받고 세상으로 나온다는 신화적 관념을 연상시킨다.


창작 과정 및 평가

시나리오 없는 애니메이션

애니메이터 출신인 미야자키는 제작 준비단계에서 이미지 보드를 대량으로 그리며 작품을 구상하여, 시나리오 없이 콘티와 동시진행하며 작품을 제작하는 방식으로 창작한다. 이러한 그의 창작 방식은 주변에서 '애니메이션 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으로 불릴 정도로 초인적 제작관리능력을 지닌 미야자키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아예 백지로부터 시작하는 것은 아니고, 노트에 스토리 구성이나 아이디어를 작성한다. 본인에 의하면 '하루종일 글을 쓰고 있을 때도 있다'고 한다.

데즈카 오사무에 대한 평가

미야자키는 데즈카 오사무가 사망하자, 만화가로서 데즈카가 세운 업적을 전면 긍정하였지만,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 애니메이션 작가로서의 데즈카가 일본의 애니메이션사에서 차지한 역할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가했다. 특히 TV 애니메이션 초창기에, 데즈카가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자사(무시 프로덕션) 제작 프로그램을 원가에 가까울 정도로 낮은 가격에 팔아치운 것이, 현재까지 일본의 애니메이션 제작비가 극도로 낮게 책정되는 원인이 되었다는 점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 발언은 여러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 쇼와 38년에 그(데즈카 오사무)는 1편 당 50만 엔이라는 싼 가격으로 일본 최초의 TV 애니메이션《철완 아톰》을 시작하였다. 그 전례 덕분에 이후 애니메이션의 제작비가 항상 낮다고 하는 폐해가 생겨났다. "


월트 디즈니와의 차이점

월트 디즈니와 미야자키 하야오는 모두 소년 시절 전쟁을 겪었고, 애니메이션을 발견, 체계화시켰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결정적인 차이점들도 가지고 있다.

    * 디즈니는 애초부터 자신의 회사를 세우고 애니메이션 활동을 했다.
    * 미야자키는 다른 사람이 세운 애니메이션 회사에 입사해 자신의 능력을 쌓아나갔다.
    * 디즈니는 격렬한 방법으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였다.
    * 미야자키는 자신이 능숙한 작품에 몰두한다.
    * 디즈니는 가족의 가치에 엔터테인먼트를 혼합하였다.
    * 미야자키는 인물의 성장, 자연의 치유를 중시한다.


주요 감독 작품 목록

장편 애니메이션

    * 《루팡 3세 - 카리오스트로의 성》 (ルパン三世カリオストロの城, 1979년, 각본)
    * 《명탐정 홈즈》 (1984년 각본, 연출)
    *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風の谷のナウシカ, 1984년, 원작, 각본)
    * 《천공의 성 라퓨타》 (天空の城ラピュタ,1986년, 원작, 각본)
    * 《이웃집 토토로》 (となりのトトロ, 1988년, 원작, 각본)
    * 《마녀 배달부 키키》 (魔女の宅急便, 1989년, 각본)
    * 《붉은 돼지》 (紅の豚, 1992년, 원작, 각본)
    * 《모노노케 히메》 (もののけ姫, 1997년, 원작, 각본)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千と千尋の神隠し, 2001년, 원작, 각본)
    * 《하울의 움직이는 성》 (ハウルの動く城, 2004년, 각본)
    * 《벼랑 위의 포뇨》 (崖の上のポニョ, 2008년, 원작, 각본)

단편 애니메이션

    * 《하늘색 씨앗》 (1992년)- TV 스팟
    * 《On Your Mark》 (1995년) - 차게 앤 아스카의 뮤직비디오 애니메이션
    * 《뭐야》 (1992)-TV 스팟

TV 애니메이션

    * 《미래소년 코난》 (未来少年コナン, 1978년)
    * 《명탐정 홈즈》 (名探偵ホームズ, 1982년) - 에피소드 #3~5, #9~11편 (감독, 각본, 콘티, 연출의 일부)

참가 작품

    * 《멍멍충신장》(1963년, 동화 담당)
    * 《늑대소년 켄》(1963년, 동화 담당)
    * 《걸리버의 우주여행》(1965년, 동화 담당)
    * 《소년닌자 바람의 후지마루》(1965년, 동화 담당)
    * 《허슬 펀치》 (1965년, 원화 담당)
    * 《레인보특공대 로빈》 (1966년, 34,38화 원화 담당)
    * 《마법사 샐리》 (1966년 77,80,86화 원화 담당)
    *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 (1968년, 장면설계 원화 담당)
    * 《장화 신은 고양이》 (1969년 원화 담당)
    * 《하늘을 나는 유령선》 (1969년, 원화 담당)
    * 《무밍》 (1969년, 23화 원화 담당)
    * 《비밀의 앗코창》 (1969년, 44,61화 원화 담당)
    * 《동물보물섬》 (1971년, 아이디어 구성 원화 담당)
    * 《알리바바와 40마리의 도적》 (1971년, 원화 담당)
    * 《사루토비 엣창》 (1971년, 6화 원화 담당)
    * 《긴 양말의 삐삐]]》 (1971년, 이미지 보드 작업)
    * 《루팡 3세》 (1971년, 6화 이후부터 타카하타 이사오와 공동 연출)
    * 《아카도 류노스케》 (1972년, 26,27화 콘티 담당)
    * 《유키의 태양》 (1972년, 원화 담당)
    * 《팬더와 아기 팬더》 (1972년, 원안·각본·화면설정·원화 담당)
    * 《팬더와 아기팬더 '비온 날의 서커스 편'》(원안, 각본, 원화 담당)
    * 《황야의 소년 이샘》 (15화 원화 담당)
    * 《사무라이 자이언츠》 (1화 원화 담당)
    *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 (장면설정·레이아웃 담당)
    * 《플랜더스의 개》 (15화 원화 담당)
    * 《엄마 찾아 삼만리》 (장면설정·레이아웃 담당)
    * 《초원의 아들 텐스리》(레이아웃 지원)
    * 《너구리 라스칼》 (일부 원화 담당)
    * 《빨강머리 앤》(장면설정·1-15화 레이아웃 담당)
    * 《신 루팡 3세》 (콘티·각본·145,155화 연출 담당)
    * 《신 철인 28호》 (8화 원화 담당)
    * 《리틀 니모》 (준비작업 참여)
    * 《쾌걸 조로》 (1982년, 원화 지원)
    * 《SPACE ADVENTURE 코브라》 (1982년, 원화 담당)
    * 〈히타치-매셀 뉴 골드 비디어 테잎〉(광고, 원더 쉽 디자인 담당)
    * 〈히타치-PC H2 포제트용 편〉 (캐릭터 디자인 담당)
    * 《야나가와의 운하이야기》 (1987년, 제작)
    * 《붉은 까마귀와 유령선》 (1989년, 유령선 디자인)
    * 《추억은 방울방울》(제작 프로듀서)
    *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기획)
    * 《귀를 기울이면》(각본, 콘티, 제작 프로듀서, 일부 연출)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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