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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D VOGELSTEIN

Published: October 4, 2013 


Campbell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55 마일 길은 정말 멋지다. 산타 크루즈 산맥 동쪽과 인접한 광활하고도 비어 있는 고속도로인 Junipero Serra Freeway를 지나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자기 페라리 자동차의 속도 테스트를 벌이는 실리콘 밸리 신생 기업 창업자들을 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휴대폰이 정말 안 터지는 최악의 장소이기도 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앤디 그리뇬(Andy Grignon)에게는 2007년 1월 8일의 순간을 되새길 완벽한 장소였다.


그가 원래 출근하는 길이 이 길은 아니다. 그는 Campbell 서쪽 동네에 있는 쿠퍼티노의 애플 수석 엔지니어였다. 그의 아침 출근길은 7 마일 정도, 15분 거리였다. 그렇지만 오늘은 다르다. 그의 보스이자 샌프란시스코 맥월드 쇼에서 역사를 만들 스티브 잡스를 보러 가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애플 팬들은 그동안 아이포드 안에 휴대폰 넣어주기를 잡스에게 간청하고 있었다. 그래야 두 가지의 기기를 갖고 다니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잡스가 그날 그 소원을 채워줄 작정이었고, 그리뇬과 그의 동료들은 근처 호텔에서 밤을 보낸 후, 그 다음 날 오전 10시에 다른 이들과 같이 잡스가 첫 번째 아이폰을 선보이는 광경을 지켜 봤다. 


하지만 북쪽으로 운전해 가는 느낌이 별로 흥분되진 않았었다. 오히려 무서웠다. 실리콘밸리에서 무대에서 선보이는 제품 대부분이 잘리기 때문이었다. 열악한 인터넷과 통신망 때문에 좋은 프레젠테이션이 왜 잘릴까? 그래도 잡스는 생방송을 고집했다. 그래야 사람들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이유였다. 제품 시연 중에 눈에 띄는 문제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이 잡스 전설의 일부이기도 했지만, 그리뇬처럼 무대 뒤에서 움직이는 이들에게는 그보다 더 한 스트레스가 없었다.


그리뇬은 아이폰의 모든 주파수 대역의 라디오파를 맡은 관리자였다. 정말 큰 일이었다. 오늘날 휴대폰은 정말 유용한 존재이지만, 제일 기본 기능은 송수신 라디오였다. 그리뇬은 전화기가 전화기일 수 있게 만드는 장비의 책임자였기 때문에, 만약 통화가 안 된다거나 블루투스 헤드셋이나 와이파이가 안 되는 경우 그리뇬은 답변을 해야 할 위치였다. 아이폰 초기 엔지니어 중 하나로서, 그는 2년 반(종종 1주일 내내였다)을 이 프로젝트에 투신했다.


그리뇬은 아이폰 리허설 팀에 속해 있었다. 그래서 잡스가 90분 동안 프레젠테이션하는 광경을 많이 봤지만, 실수가 없었던 적이 없었다. 잡스는 5일 내내 기조연설을 연습했고, 심지어 리허설 마지막 날에 아이폰은 여전히 통화가 잘 안 되거나 인터넷 연결이 끊어지고, 얼어서 꺼야 할 때가 있었다. 그의 말이다.


"처음에는 리허설 자체가 정말 멋진 일이었어요. 뭔가 선택됐다는 느낌을 주니까요. 정말 참가가 허락된 인원은 소수였습니다만, 순식간에 그 느낌이 불안으로 바뀌었습니다. 잡스가 그토록 분노했을 때를 본 적이 없었어요. 물론 대부분의 경우 그는 똑바로 쳐다보면서 대단히 직접적이고 크고 엄중한 목소리로 '네가 내 회사를 [욕 삭제]되게 만들었어'라거나 '우리가 실패하면 너 때문이야'라 말했습니다. 그토록 진지했었죠. 키가 1인치로 줄어드는 느낌이랄까요." 


리허설에 참가했던 다른 이들처럼 그리뇬도 실제 프레젠테이션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잡스는 단순히 비난에서 멈추지 않으리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말이다. 


"시연을 100번 한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매번 뭔가 문제가 생겼죠. 좋은 느낌이 아니었습니다."


프레젠테이션은 최고 기밀 사항이었다. 목요일부터 그 다음주 말까지 애플은 모스코니(Moscone)를 모두 다 잡고 있었고, 무대 뒤에 애플은 아예 전자 연구소를 설치하여 아이폰을 테스트했다. 그 옆에는 잡스를 위해 소파가 설치된 휴게실을 세웠다. 이들 방 앞과 빌딩 주변에는 하루 24시간 내내 보안 경호원 열 댓 명이 서 있었다. 자신의 전자 체크 카드를 가지고 와서 잡스가 개인적으로 승인한 목록과 비교해서 통과된 사람만이 들어올 수 있었다. 잡스가 리허설을 하는 곳은 소규모의 간부들만 볼 수 있었다. 잡스가 워낙 누출에 대해 집착적이었기 때문에 그는 애플이 고용한 모든 계약직들(부스를 담당하거나 프레젠테이션의 조명, 음성을 맡는 이들)마저 프레젠테이션 이전에는 모스코니 안에서 잠자게 하려 했지만, 보좌진들이 겨우 잡스를 설득 시켜서 그 일만은 막았다.


그리뇬은 아이폰이 평범한 제품 발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폰의 발표가 그렇게 중대한 순간이 될지 아는 이는 없었다. 7년 동안 아이폰과 아이패드는 이제 실리콘밸리 역사상 가장 중대한 혁신의 반열에 올랐다. 아이폰과 아이패드는 더부룩했던 휴대폰 업계를 뒤바꿨다. 새롭고 거대한 이윤이 남는 소프트웨어 업계의 플랫폼을 제공한 것이 아이폰과 아이패드며, 모바일 앱은 2008년 판매를 시작한 이래, 100억 달러 이상의 수입을 올렸고, 이는 수 십억 달러의 개인용 컴퓨터 업계를 뛰어넘는 실적이었다. 아이패드 판매를 데스크톱과 노트북에 포함한다면, 애플은 현재 지구상 최대의 PC 업체이다. 지난해 팔린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전세계에서 팔린 자동차의 두 배 이상인 2억 대 이상이다. 


그 충격은 경제적일 뿐만 아니라 문화적이기도 하다. 애플의 혁신에는 인간이 머신과 어떻게 감응하는가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는 의미가 있다. 우리가 단순히 마우스 대신 손가락을 사용하는 것만이 아니다. 특히 스마트폰은 우리 두뇌의 확장이다. 근본적으로 사람들이 정보를 받아들이고 처리하는 방식을 바꿨기 때문이다. 책과 신문, 전화기, 라디오, 테이프 녹음기, 카메라, 비디오 카메라, 나침반, 텔레비전, 비디오, DVD, 개인용 컴퓨터, 휴대폰 비디오 게임, 아이포드에 끼친 영향력을 생각해 보시라. 스마트폰은 이들 모두를 주머니 안에 집어 넣었다. 게다가 우리가 학교에서 공부하는 방식, 의사가 환자들을 다루는 방식, 우리가 여행하고 탐색하는 방식을 스마트폰이 바꿔버렸다. 오락과 미디어 접근과 경험 또한 완전히 새롭게 변화됐다.


그런데 애플은 여전히 포위돼 있다. 2007년 하순, 구글이 안드로이드 모바일 기기 및 휴대폰으로 세상을 지배할 계획을 발표했을 때, 구글은 아이폰과의 경쟁만 벌이려 하지 않았다. 구글은 실제로 아이폰과의 경쟁에서 성공을 거뒀다. 2010년부터 안드로이드는 유명세를 폭발적으로 확장 시켰으며, 구글의 전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80%에 달하고 있으며 애플은 20% 이하로 줄어들었다. 아이패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경향이 흐르고 있다. 2010년 아이패드는 태블릿 시장의 90%를 점유하고 있었으나 현재는 60%를 넘지 않는다. 안드로이드 태블릿들 때문이다.


애플 팬들이 제일 걱정하고 있는 바는 애플의 방향일 것이다. 잡스가 2011년 10월 서거했을 때 뭣보다 제일 먼저 떠오른 의문은 팀 쿡이 그를 계승할 것이 아니라, 도대체 누구라도 잡스를 이어 받을 수 있겠느냐였다. 잡스가 애플에 있을 때 애플은 혁신 머신이었다. 3년~5년마다 혁명적인 제품을 소개했기 때문이다. 전기작가인 월터 아이잭슨(Walter Isaacson)에 따르면 잡스는 TV 혁명을 고안해냈다고 한다. 하지만 쿡의 애플은 아직 그런 제품을 선보이지 않았으며, 투자자들의 불안감도 그만큼 뚜렷해졌다. 애플 제품 발표는 으레 주가를 올렸었다. 9월 쿡이 최신 스마트폰인 아이폰 5c와 아이폰 5s를 발표했을 때 애플 주가는 10% 하락했다. 1년 전, 애플 주가는 주당 $702어서 애플이 세계 최고의 가치를 지닌 기업이 됐지만 현재는 정상(頂上)에 있을 때보다 25% 하락한 상태다.


물론 스티브 잡스와의 비교는 불공정하다. 2년째 지나가면서 애플 CEO 쿡은 잡스가 자기에게 했던 말을 되새겼다. 잡스는 그에게 잡스가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지를 생각하지 말고, 쿡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바를 행하라고 분명히 말했었다. 물론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겠다. 아이폰이 어떻게 나왔는지를 돌이켜 보면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요구와 범상치 않은 힘, 도대체 복제해낼 수 없는 한 사내와 모든 것이 관련돼 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2007년 1월 아이폰을 선보이기로 한 결정은 분명 도박이었다. 잡스는 새로운 종류의 휴대폰(애플이 만들어 본 적이 없는 종류였다)을 선보였을 뿐 아니라, 그 휴대폰은 잘 작동하지도 않는 프로토타입이었다. 비록 아이폰의 실제 판매는 6개월 후부터였지만 잡스는 세상이 곧바로 아이폰을 갖고 싶어하기를 원했다. 사실 작업이 더 필요한 부분은 실로 방대했다. 생산 라인도 세워야 했고, 화면과 플라스틱 접합 부분의 눈에 띄는 차이를 알아보는 이들도 있었으며, 화면상의 흠집도 발견됐었다. 게다가 휴대폰용 소프트웨어가 버그 투성이었다.


아이폰은 노래나 영상의 일부를 재생할 수 있었으나, 전체 클립을 안정적으로 재생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이메일을 보낸 후의 웹서핑 정도는 괜찮았지만, 그 반대 순서는 전혀 괜찮지가 않았다. 그래서 엄청난 시도와 실수 끝에 엔지니어들이 일컫는 "골든 패스(golden path)"가 만들어졌다. 특정 방식으로 특정 순서에 따라 아이폰을 움직여서 마치 아이폰에 버그가 없는 양 소프트웨어를 돌리는 매뉴얼이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잡스가 골든 패스를 따랐을 때에도 마지막까지 아이폰에 대한 손질이 필요했다. 발표 당일, 그리뇬의 라디오를 다루는 소프트웨어와 아이폰 메모리 관리 소프트웨어에는 버그가 여전했다. 게다가 잡스가 시연용으로 별도로 한 요구 때문에 문제는 더 악화됐다.


잡스는 무대 위에서 사용할 시연용 아이폰 화면을 자기 뒤의 대형 화면에 그대로 미러링 시키기를 원했다. 큰 화면에 기기를 비추기 위해, 기업들 대부분은 비디오 카메라를 제 위치에 붙이곤 하지만, 잡스는 그런 방식을 원하지 않았다. 그 경우 조작하는 손가락이 보이기는 해도, 프레젠테이션의 외양을 망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잡스는 애플 엔지니어들에게 서킷 보드와 아이폰용 비디오 케이블을 고쳐서 무대에 그대로 시연이 가능토록 명령했다. 당시는 프로젝터에 비디오 케이블이 연결됐기 때문에 잡스가 아이폰의 달력 앱 아이콘을 터치할 경우 손가락은 나타나지 않고, 손가락의 명령에 반응하는 큰 화면 이미지가 무대 뒤에 떴다. 효과는 마술 같았다. 청중은 자기 손에 실제로 아이폰을 쥐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단 아이폰의 다른 큰 문제점을 고려해 보면, 오류 없이 설정하기가 당시로서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이폰의 와이파이 라디오 소프트웨어는 너무나 불안정해서 그리뇬과 그의 팀은 아이폰의 안테나를 무대 뒤의 전선에 연결 시킬 정도로 확대했다. 무선 신호의 이동 거리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해당 주파수에 대한 접근은 금지됐다. 그의 말이다. "심지어 베이스스테이션 ID을 숨긴다 하더라도 말이죠. 그러니까 노트북의 무선 신호에 잡히지 않는다 하더라도 기조연설 청중 5천명이 다 컴퓨터 광들입니다. 어떻게 신호를 해킹할 방법을 알아내겠죠." 그래서 그는 에어포트 소프트웨어를 수정하여 미국이 아니라 일본에서 운영하는 것인 양 만들었다. 미국에서 허용 안되는 주파수를 일본 와이파이가 사용하기 때문이었다.


잡스가 무대 위에서 할 전화 송신이 잘 될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리뇬과 그의 팀은 좋은 신호가 잡히기만을 기도할 수 있을 뿐이었다. 아이폰용 통신사인 AT&T가 휴대용 통신탑을 가져왔기 때문에 신호 자체는 강력할 터였다. 잡스의 결재에 따라 그들은 신호 강도를 나타내는 다섯 개의 막대가 실제 강도와는 관계 없이 언제나 다 채워지도록 했다. 90분의 기조연설 중 잡스가 전화기를 사용하는 동안 충돌을 일으킬 가능성은 낮았지만 어느 때라도 충돌을 일으킬 가능성은 높았다. 그리뇬의 말이다. "우리 의심대로 만약 라디오가 충돌돼서 재시작한다고 해도 사람들이 실제 막대바를 보기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예 하드코딩을 하여 항상 다섯 개 막대가 보이도록 해 놓았죠."


그런데 아이폰 최대의 문제, 한 번에 몇 가지 이상 작업을 할 때 메모리 부족으로 재시동된다는 문제는 해결책이 없었다. 잡스는 이 문제의 관리를 위해 무대 위에 몇 가지 시연용 아이폰을 다 갖고 올라갔다. 한 기기의 메모리가 낮아진다면 첫 기기가 재시작할 동안 다른 기기로 바꿀 요량이었다. 그렇지만 잡스가 계획한 시연이 몇 가지 있었기에 그리뇬은 실패할 잠재적 시점이 너무 많다고 우려했다. 10여 가지 중 한 가지가 문제가 아니었다. 아이폰 최고의 기능이 같은 폰에서 같은 순간 일어나는 피날레 중에는 반드시 잘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음악을 재생하고 전화를 하며, 한 통화를 그대로 두고 다른 통화를 하고, 검색 및 이메일로 사진을 보내면서 첫 번째 통화자를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음악으로 돌아간다는 순서였다. 그리뇬의 말이다. "저와 팀원들 너무나 조바심을 가졌어요. 당시 시연용 아이폰 메모리가 128 메가바이트 뿐이었습니다. 128 메가바이트라면 커다란 디지털 사진 20여장 정도였어요. 아직 마감이 안 됐기 때문에 모든 앱에 버그가 여전했습니다."


잡스가 원래 배수의 진을 치는 인물은 아니다. 그는 관리 감독으로 잘 알려졌으며, 직원들을 어떻게 몰아서 불가능했던 일을 가능케 하는지 아는 인물이라는 의미다. 그렇지만 그는 언제나 안 됐을 경우를 대비한 플랜 B를 가지고 있었다. 


다만 당시 애플에서 작업하고 있었던 유일한 멋진 무언가는 아이폰 뿐이었다. 아이폰은 모든 것을 능가하는 프로젝트였으며, 백업 계획도 없었다. 그리뇬의 말이다. "애플 TV나 아이폰이었습니다. 만약 맥월드에 애플 TV만 선보여야 했다면 어땠을까요? 아이튠스와 텔레비전에 연결되는 신제품만으로는 도대체 뭔 말을 하려는 것이냐는 반응을 얻었을 겁니다."




자기 커리어에서 최대의 순간이 파멸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그리뇬은 위통을 겪을 정도였다. 2007년까지 그는 거의 모든 커리어를 애플이나 애플 제휴사에 두고 있었다. 아이오와 대학교에 다닐 시절인 1993년 그와 친구인 와일드(Jeremey Wyld)가 뉴튼 메시지패드를 재-프로그래밍하여 인터넷 무선 연결이 가능하도록 만들었을 때도 그랬다. 뉴튼은 비록 제품으로서 성공하진 않았지만, 뉴튼을 최초의 주류 휴대용 컴퓨터로 간주하는 시각은 여전히 많다. 그리뇬과 와일드의 해킹은 그 시절 상당한 위업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둘 다 애플에서 일자리를 얻었고, 와일드는 실제로 뉴튼 팀에 들어갔다. 그리뇬은 애플의 그 유명한 진보기술그룹(Advanced Technology Group)에 들어가서 화상회의 기술을 다뤘다.


2000년 그리뇬은 전직 애플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설립한 Pixo로 옮겼고, 그곳에서 휴대폰 외 소형기기용 운영체제를 작업했다. 2001년 최초의 아이포드에 Pixo가 들어가자, 그리뇬은 다시금 애플로 들어가게 됐다.


당시 Pixo에서의 작업 덕분에 그는 화상회의 기술 말고도 컴퓨터 라디오 트랜스미터(와이파이와 블루투스), 그리고 휴대폰과 같은 휴대기기용 소프트웨어 작업이라는 유망한 분야 두 곳의 전문가가 돼 있었다. 그리뇬은 실리콘밸리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이 살고 있는 곳과는 완전히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 대부분은 그들의 코드가 하드드라이브 공간을 너무 많이 차지한다거나 칩에 과부하를 준다는 개념 자체를 생각하지 못했다. 데스크톱과 노트북 컴퓨터 하드웨어는 강력하고 수정이 자유로우며 저렴했다. 메모리와 하드 드라이브, 심지어 프로세서도 저렴하게 업그레이드할 수 있었고, 벽의 전원이나 거대한 배터리에 컴퓨터를 연결해서 사용하던 때였다. 그리뇬의 임베디드 소프트웨어에서 하드웨어는 고정돼 있었다. 너무 큰 코드는 돌아갈 수 없었고, 특히나 노트북이라면 몇 분 정도 밖에 못 버틸 소형 배터리에는 하루 내내 돌아갈 필요가 있었다. 아이폰 작업 시작은 2004년 말에 이뤄졌으며, 그리뇬은 프로젝트 초기 엔지니어가 될 정도로 완벽한 기술을 지니고 있었다.


이제 2007년, 그는 심정적으로 지쳤다. 몸무게도 50 파운드가 늘었다. 결혼때문이라 강조하지만 말이다. 아이폰 팀은 애초부터 휴대폰 만들기가 컴퓨터나 아이포드 만들기와는 전혀 다르지 않음을 발견했었다. 그리뇬의 말이다. "정말 극적이었습니다. 애플에서 나올 차세대 빅 히트라는 생각이 모두에게 심겨졌으니까요. 그러니까 이 모든 영리한 인물들을 매우 좁은 방 안에 다 집어 넣었죠. 그런 압박 하에 미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놀라울정도로, 잡스는 이미 전화기 한 번 만들어 보라는 설득을 받아 왔었다. 전화기는 잡스의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 대화 주제 중 하나였고, 애플이 아이포드를 만들었던 2001년부터 계속 제기돼 왔었다. 개념은 분명했다. 소비자들이 이메일과 사진, 음악용 기기로 하나를 원하지 두 세 개를 원하지는 않는다는 의미였으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잡스와 그의 경영팀이 그 아이디어를 자세하게 알아볼 때마다 전화기 제조는 자살에 가까웠다. 휴대폰용 칩과 속도는 너무나 느려서 인터넷이나 음악, 영상 다운로드를 휴대폰 통신망으로 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이메일 정도만 전화기에 붙일 만했지만 RIM의 블랙베리가 이미 그 시장을 빠르게 장악해 나아가는 중이었다.


뭣보다 잡스는 무선 통신사 그 누구하고도 파트너를 맺고 싶어하지 않았다. 통신사들이 당시 휴대폰 업체와의 파트너십을 지배했으며, 그들이 통신망을 갖고 있기에 모든 것이 그들 마음이었다. 유명한 통제광으로서 잡스는 통신사에게 휘둘린다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서 2003년 모토로라 인수를 생각했다가 결국 당시 애플로서는 인수하기에 너무나 크다고 결론 내리기도 했었다. (몇 년 후, 애플과 모토로라는 협력을 하기는 했지만 성공하진 못했다.)


그러다가 2004년 가을, 통신사와의 사업 얘기가 좀 통하기 시작했다. Sprint는 통신망을 도매로 팔기 시작했으며, Sprint로부터 광대역을 사들였다가 되팔면 애플도 통신사("가상 이동망 사업자(Mobile Virtual Network Operator)")가 될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러면 전화기를 만들어서 통신사와 논의를 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잡스 자신이 이사로 앉아 있는 디즈니는 이미 자사의 무선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Sprint와 협상중이었다. 잡스는 애플도 이동망 사업자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대단히 많은 질문을 했다. 결국 애플은 Cingular(후에 AT&T가 인수한다)와 2006년, 계약을 맺기는 했지만, 그러기까지 1년 이상 걸렸다. 힘들기는 했지만 그 계약은 아이폰 자체를 만들기보다는 쉬운 일이었다.


수많은 간부와 엔지니어들은 아이포드의 성공으로 한껏 고양돼 있었기 때문에 휴대폰 만들기는 조그마한 매킨토시 만들기와 비슷하리라 여기고 있었다. 그대신 애플은 2005년과 2006년, 세 가지 별다른 버전의 아이폰을 디자인했었다. 모 프로젝트 관련자에 따르면 애플은 당시 실제로 돌아가는 프로토타입을 6가지 만들어 놓았다. 각각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디자인이 각기 달랐다. 온힘을 다 쏟은 사람들 중에는 아이폰이 실제 판매에 들어간 후, 회사를 나간 경우도 있었다. 프로젝트의 주요 인물이었던 터니 포델(Tony Fadell, 그도 2010년 Nest라는 자기 회사를 차렸다)의 말이다. "최초의 달 착륙과 비슷했습니다. 저도 이골이 나 있었습니다만, 새로운 일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가만 있을 수 없더군요."


잡스는 아이폰에 수정된 버전의 오에스텐(모든 맥에 탑재돼 있다)이 들어가기 바랬다. 그렇지만 아무도 오에스텐과 같은 거대한 프로그램을 휴대폰 칩에 올려 놓을 시도를 하지 않았었다. 오에스텐을 거의 1/10로 줄여야 했기 때문이다. 코드 수 백만 줄을 없애거나 다시 작성해야 했으며, 칩이 2006년에나 나왔기에 엔지니어들은 칩 속도와 배터리 수명을 시뮬레이션하여 작업할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아무도 소비자용 제품으로 멀티터치를 시도해 본 적이 없었다. 정전식 터치 기술(손가락이나 전도성 물체가 하는 "터치") 1960년대부터 있었다. 단 손가락 두 세 개를 사용하되 독립적으로 인식되는 정전형 멀티터치는 훨씬 더 복잡했다. 연구는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됐으며, 애플이 아이폰에 터치 화면을 넣고 대량 생산하는 것이 큰 도전이었음은 잘 알려져 있다. 감히 아무도 그런 데에 대량 투자를 할 자가 애플 말고는 없었다. 보이지 않는 기술을 유리 안에 집어 넣어서 자동 수정이 이뤄지는 가상 키보드를 뜨게 하고 사진과 웹 페이지를 부드럽게 조작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도 문제였다. 즉, 제대로 돌아가는 프로토타입을 만들기가 대단히 비쌌다. 그런 멀티터치 화면을 대량 생산한 경험이 있는 생산라인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소비자용 전자제품에서 터치스크린은 보통 스타일러스나 손톱을 통해 조작하는 감압식이 대세였다. (Palm Pilot과 Palm Treo같은 기종들이 이 기술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설사 멀티터치 아이폰 화면을 만들기 쉽다 하더라도, 화면상 키보드나 "탭으로 확대하기" 등과 같은 기능이 소비자가 원하는 기능일지에 대한 확신도 분명치 않았다.


2003년 초, 애플 엔지니어들은 태블릿에서 멀티터치를 어떻게 구현할지 알아냈다. 당시 프로젝트 참여자 중 하나였던 스트리콘(Joshua Strickon)의 말이다. "스티브는 화장실에 있을 때 이메일을 볼 수 있는 장비를 원했습니다. 그가 원하는 제품 사양이었죠. 하지만 충분한 배터리 없이는 만들 수 없었습니다. 유용하도록 충분한 그래픽 성능을 낼 칩도 구할 수 없었죠. 뭘 할지 일단 정리하는 데에 시간을 매우 많이 보냈습니다." 2003년 애플에 들어오기 전, 스트리콘은 MIT 석사 논문을 위해 멀티터치 장비를 만들었었다. 하지만 애플 내부부터 그와 그의 동료들이 개발한 프로토타입에 대한 컨센서스가 이뤄지지 않았었다. 그래서 그는 2004년 그 기술 갖고 애플이 아무것도 못하리라 예상한 채 애플을 떠났다. 


당시 애플의 수석 간부진 중 하나였으며 애플 내 최대의 멀티터치 옹호자였던 부커(Tim Bucher)는 프로토타입이 사용한 소프트웨어인 오에스텐이 손가락이 아니라 마우스를 염두에 뒀기 때문에 프로토타입이 문제였다고 말했다. "맥미니와 비슷한 10인치, 혹은 12인치 화면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여러가지 다른 멀티터치 제스처를 이 화면에서 돌려야 했죠. 한 시연에서 키보드 애플리케이션이 밑에서 나오는데 2년 후에 나올 아이폰과 대단히 유사한 모습이었습니다. 문제는, 예쁘지가 않았어요. 무슨 선을 감은 것 같았어요."


잡스가 2005년 중순, 멀티터치 아이디어를 강하게 추진하기 전까지, 터치스크린 기술이 새로운 종류의 휴대폰의 핵심 기술이 되리라는 생각을 한 사람도 거의 없었다. 퍼델의 말이다. "잡스가 한 번은 제게 이리 와 보라더군요. 작업하는 것이 있는데, 무슨 생각이냐, 우리가 이걸로 휴대폰을 만들 수 있겠느냐라는 질문이 이어졌어요. 잡스가 가리키고 있는 시연을 보니까 거대했어요. 방을 다 채울 정도였죠. 천장에 프로젝터가 달려 있었고, 이 프로젝터는 맥 화면을 뿌리고 있었습니다. 한 3이나 4 스퀘어피트 정도 됐을까요. 맥 화면을 터치해서 물체를 움직이거나 그릴 수 있었습니다." 퍼델은 터치스크린 프로토타입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디테일한 부분까지는 몰랐었다. 왜냐하면 이것은 맥 제품이기 때문이었고, 그는 아이포드 책임자였다. "그래서 우리 모두 앉아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심각하게 논의를 시작했죠."


퍼델은 그토록 거대한 프로토타입을 휴대폰을 줄이고, 또 대량생산까지 할 수 있을지 강한 의심을 품었다. 그러나 그는 스티브 잡스에게 아니오라고 말하기보다 더 알고 있었다. 그는 애플의 수퍼스타 중 하나였으며, 최초의 아이포드 제작을 돕기 위해 애플에 2001년에 처음, 고문으로 들어왔었고, 골치 아픈 기술적 문제 앞에 소심한 인물이 아니었다. 2005년까지는 아이포드 판매가 치솟았고, 이제 36세인 그는 이제 애플 내 간부진 중에서 제일 중요한 인물이 돼 있었다. 그의 말이다.


"어떻게 할지는 이해하고 있었습니다만, 방을 다 채울 정도로 거대한 특별한 기기를 작게 만들고, 그것을 또 백만 대 수준으로 비용-효율적이면서 신뢰감 있는 생산이 가능할지가 고려해야 할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해야 할 일 목록부터가 아주 길었습니다. 이런 종류의 유리 기술이 있는 LCD 업체에 가서 그들 라인에 남는 시간이 있는지도 알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터치스크린을 만드는 픽셀 전자의 알고리즘을 보정하고 보상하는 알고리듬도 알아 봐야 하죠."


"즉, LCD가 우선 문제였습니다. 터치스크린 기기를 만들기 위한 전체적인 프로젝트였어요. 실제로 터치스크린을 만들 두 세 가지 방법을 고려해 봤습니다만, 대량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한 가지 방법이어야 했습니다."


오에스텐을 줄이고 멀티터치 스크린을 제조하기란 혁신적이기는 해도 어려웠다. 적어도 기업으로서 애플이 당시 갖고 있던 기술로는 말이다. 오에스텐 디자인을 다시 생각해서 집어 넣어줄 회사는 애플 말고 없었다. 액정이야 모든 노트북과 아이포드에 LCD를 넣으니 LCD 업체들을 애플도 알고 있기는 했지만, 휴대폰은 완전히 다른 분야였다. 그리고 2006년 아이폰 작업을 하고 나서야, 애플은 자신이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를 깨달았다. 애플은 실험실과 장비를 지어서 아이폰 안테나를 테스트했다. 인간 머리 모형도 만들고 인간 두뇌를 모방하기 위해 끈적거리는 것까지 머리 모형 안에 집어 넣었다. 전자파가 실제로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기 위해서였다. 한 수석 간부는 최초의 아이폰을 만드는 데에만 들어간 비용이 1억 5천만 달러를 넘었으리라고 관측했다.


잡스는 아이폰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부터 실제 제품화된 것과 유사한, 오에스텐을 돌리는 터치 스크린형 아이폰을 개발할 수 있으리라 희망했다. 그렇지만 2005년 그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더 필요할지 갈팡질팡했다. 그래서 애플 최초의 아이폰 프로토타입은, 잡스가 실제로 아이폰을 선보였을 때 장난 삼아 보여줬던 다이얼 달린 아이포드에 더 가까웠다. 그리뇬의 말이다. "시장에 내보낼 쉬운 방법이기는 했지만, 우리가 지금 갖고 있는 것처럼 쿨하지는 않았죠."


두 번째 아이폰 프로토타입은 2006년 초에 나왔으며, 잡스가 실제로 선보인 것에 훨씬 가까운 형태였다. 터치스크린과 오에스텐이 들어갔지만, 브러시드 알루미늄으로 제조했었다. 잡스와 애플의 디자인 책임자, 조너선 아이브는 알루미늄 디자인을 대단히 자랑스러워 했다. 그러나 그들 둘 다 라디오 전파의 전문가는 아니었으며, 그들이 아름다운 벽돌을 만들어냈다는 점은 스스로 모르고 있었다. 라디오파는 금속을 잘 통과하지 못한다. 2008년에 애플을 떠난 엔지니어인 키어니(Phil Kearney)의 말이다. "저와 애플의 안테나 전문가인 카발레로(Ruben Caballero)가 이사진 방에 올라가서 스티브와 아이브에게 설명을 했습니다. 금속을 라디오파가 통과 못 한다고요. 설명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디자이너들 대부분은 예술가이거든요. 그들이 공부했던 과학은 중2때가 마지막이었을 겁니다. 그렇지만 애플에서 권력자는 디자이너에요. 그래서 '라디오파가 통과할 수 있도록 만들 수는 없을까?'라고 질문들 합니다. 왜 안 되는지 설명을 해 드려야 하죠."


당시 애플의 하드웨어 책임자였던 존 루빈스타인(Jon Rubinstein)은 전화기 크기가 어때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도 매우 길었다고 말했다. "저는 아이포드와 마찬가지로, 아이폰과 아이폰 미니, 두 가지로 나와야 한다는 쪽이었습니다. 하나는 스마트폰으로, 하나는 그냥 전화기로 하면 된다 여겼거든요. 그렇지만 작은 쪽은 주목을 전혀 못 받았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완수를 위해서는 하나에다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야 했어요."


아이폰 프로젝트는 너무나 복잡해서 애플 전체에 위협을 가할 때도 종종 있었다. 애플 내 수석 엔지니어들이 아이폰 프로젝트에 너무 매몰된 나머지 다른 일의 시한을 늦춰야 할 때가 발생해서였다. 아이폰이 애플을 다 덜어내느냐, 아니냐의 문제였다. 애플은 당시 대규모적인 제품 발표를 아이폰 외에 갖고 있지 않았다. 더군다나 아이폰 프로젝트의 한 수석 간부에 따르면 아이폰이 실패할 경우, 애플의 수석 엔지니어들이 실패 때문에 좌절하여 애플을 떠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온갖 기술적 난관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잡스의 비밀주의였다. 주당 80 시간을 일하는데 지쳤어도 아이폰을 작업하는 수 백 명의 엔지니어와 디자이너들은 아무런 얘기도 할 수 없었다. 만약 친구들과 바에서 대화하거나, 배우자에게 얘기하는 장면을 애플이 본다면, 곧바로 해고도 가능했다. 혹시 한 프로젝트에 들어가고 싶냐고 물어볼 때, 현재 속한 팀 사무실 내에서도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비공개 서약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때, 그 프로젝트가 뭐냐고 물어 보면, 별도의 비공개 서약에 서명을 하여 프로젝트가 뭔지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겠다는 서류를 다시 만들어야 했었다. 지난 10월까지 애플 iOS 소프트웨어 책임자이자 수석 부사장이었던 스콧 포스탈의 말이다. "아이폰 빌딩인 자주색 빌딩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사인을 해야 했어요. 거기는 '파이트 클럽'이라 불렸습니다. 파이트 클럽의 첫 번째 규칙은 아무에게도 파이트 클럽을 얘기하지 않는다였잖습니까." 


포스탈은 2012년 애플 대 삼성 재판에서 증언도 했었다. "스티브는 사용자 인터페이스 작업을 위해 애플 외부 고용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게 회사 내부에서 고용을 하라 일러뒀죠. 그래서 저는 몇 사람 제 사무실로 불러서 앉힌 다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네들이 현재 역할에서 수퍼스타들인 셈인데, 내가 맡고 있는 프로젝트가 하나 있다. 여러분이 고려해 주기 바라지만 그것이 뭔지 알려 줄 수는 없다. 말해줄 수 있는 것은 퇴근과 주말을 포기해야 하며, 다른 어느 때보다도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 초기 아이폰 엔지니어의 말이다. "와아피이 라디오 칩은 Marvell에서, 블루투스 라디오 칩은 CSR에서 만들었죠. 그들도 자기네들이 뭣 때문에 칩을 공급하는지 몰랐었어요. 그저 새로운 아이포드를 만들겠거니 여겼었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가짜 도해와 가짜 디자인을 제공했었어요. 그런데 아이폰 다음 날 다들 말하는 게… 제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입니다." 그리뇬은 애플이 심지어 출장가는 직원들 회사를 바꿔서 출장 보낼 때도 있었다고 한다. 특히 Cingular로 갈 때 그랬다. "프론트나 우연히 만날 모두가 애플이라는 이름을 안 보기를 원했죠."


비밀주의에 대한 잡스의 집착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사례가 있다. 애플 본사 내의 폐쇄된 구역이다. 아이폰 참여자가 아니면 아예 갈 수가 없는 구역이다. 그리뇬의 말이다. "스티브가 이런 걸 좋아했습니다. 부서 만들기를 좋아했죠. 하지만 거대한 [욕설 삭제] 뭔가, 사람들이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어요. 회사 내 록스타들이 저기 다 모여 있는 거 뻔히 알지만 보려고 가 보면 당신은 접근권이 없다고 못 들어가는, 그런 식이었죠. 느낌은 안 좋았습니다."


프로젝트 참여자들 스스로도 서로 간의 대화가 불가능했다. 전자 부문을 디자인하는 엔지니어들은 소프트웨어를 볼 수 없었고, 테스트를 위해 소프트웨어가 필요한 경우, 실제 코드가 아니라 프록시 코드를 받았다. 소프트웨어도 마찬가지다. 소프트웨어를 작업한다면 하드웨어 성능 평가를 위해 시뮬레이터를 사용해야 했다.


그리고 조너선 아이브가 있는 2번 빌딩의 1층이 있다. 잡스의 최측근들 말고는 누구도 그곳을 방문할 수 없었다. 아이브의 프로토타입을 둘러싼 보안은 너무나 엄격해서, 들어가려 할 때 인증을 못 받으면 곧바로 보안 요원이 들이닥치리라고 믿는 직원들도 있었다. 대학 졸업하자마자 받은 첫 번째 임무가 아이폰이었던 한 엔지니어의 말이다. "피할 수 있으면 된다는 식이 아니기 때문에 이상했습니다. 로비 바로 앞에 거대한 금속문이 달려 있어요. 지금이나 그 때나 문이 열려 있으면 들여다보려 할 겁니다만, 그 이상은 절대로 할 수 없습니다." 포스탈은 증언하는 동안 "카드 기록"을 4번 해야 하는 연구실이 있다고 말했다.


잡스의 시한을 맞춰야 한다는 압박은 너무나 강해서 평범한 토의도 이내 싸움박질로 변하기 일쑤였다. 기진맥진한 엔지니어들은 일을 그만 뒀다가 잠 좀 자고 며칠 후에 다시 출근하곤 했다. 포스탈의 보좌 수석이었던 보랏(Kim Vorrath)은 한 번 너무나 문을 세게 닫는 바람에 아예 방에 갇혀 버린 적이 있어서, 동료들이 한 시간도 넘게 그녀를 꺼내 주려 한 적도 있었다. 그리뇬의 말이다. "우리 모두 서서 지켜 봤었죠. 재미있기도 했지만, 일단 물러서서 [욕설 삭제] 도대체 뭔지 알아야 하기도 했으니까요."


2007년 1월 9일, 잡스가 아이폰을 얘기하기 시작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제가 2년 반 동안 꿈꿔 왔던 날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소비자들이 어째서 자기 휴대폰을 싫어하는지 잔뜩 이야기를 들려 줬다. 그리고는 자기가 그 모든 문제를, 분명히 풀어냈다고 말했다. 


잡스가 아이폰으로 음악과 영상을 재생하고 아이폰의 아름다운 화면을 보여줬을 때, 그리뇬과 다른 이들은 청중 속에서 초조해 하며 앉아 있었다. 그는 다시 발명해낸 주소록과 보이스메일을 보여 주며 전화를 걸었고, 문자와 이메일을 보냈으며, 터치-스크린 키보드가 얼마나 타자 치기에 쉬운지도 보여줬다. 그는 여러 사진을 스크롤 하면서 두 손가락으로 사진을 크게, 작게 만드는 것이 얼마나 단순한지 보여주고, 뉴욕타임스와 아마존 웹사이트를 보여 주면서 아이폰용 인터넷 브라우저가 자기 컴퓨터의 브라우저만큼 좋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구글 지도에서 스타벅스를 발견하고는 무대 위에서 스타벅스로 전화를 걸었다. 아이폰이 없으면 왜 안 되는지를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마지막이 되자 그리뇬은 안도만 한 것이 아니었다. 아예 그는 취했다. 스카치 한 병을 사서 자신의 초조함을 달랠 수 밖에 없었다. 그의 말이다. "엔지니어, 관리자 등 우리 모두는 다섯 번째 열인가에 앉아 있었습니다. 시연이 끝날 때마다 스카치 한 잔씩 했죠. 대 여섯 명 쯤 있었을 겁니다. 시연이 한 번씩 지날 때마다 해당 기능 책임자가 원샷 했어요. 마지막이 되자 우리는 스카치를 다 비웠습니다. 모두가 잘 흘러갔고, 정말 우리가 봐 온 시연 중 최고였어요. 나머지는 그냥 전체 아이폰 팀에게는 [욕설 삭제] 날이었습니다. 나머지는 도시에서 하루 내내 마시며 보냈어요. 엉망진창이었지만, 정말 근사했습니다."


Fred Vogelstein is a contributing editor for Wired. His book “Dogfight: How Apple and Google Went to War and Started a Revolution” will be published in November.


Editor: Dean Robinson


A version of this article appears in print on October 6, 2013, on page MM36 of the Sunday Magazine with the headline: AND THEN STEVE SAID, ‘LET THERE BE AN iPHONE’.


http://www.nytimes.com/2013/10/06/ma...nted=all&_r=3&

출처: http://www.albireo.net/threads/41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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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가 미국 시장에서 약진하고 있다. 최근의 한 시장조사에의하면 LG가 지난 12월 핸드폰 시장 (스마트폰 + 피처폰)에서 점유율 13%로 애플을 제치고 2위로 올라선 것으로 보인다. LG는 2011년 3분기 까지는 2위자리를 고수하였으나 iPhone 4S가 나온 이후에는 애플에게 그 자리를 넘겨주었다. LG는 최근 Optimus G 스마트폰이 선전하고 있고, 구글과 손잡고 만든 넥서스 4도 시장에서 품귀현상이 일어날만큼 인기를 얻고 있다. 삼성과 애플에 밀려 스마트폰 시장에서 상당히 고전해왔던 LG가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http://techneedle.com/?p=8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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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애플의 수석 부사장인 필 쉴러가 중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애플이 저가 아이폰을 만드는 일은 없을것이다”라는 단정적인 발언을 했다는 보도가 크게 화제가 되었는데, (번역상의 문제였는지) 실제 인터뷰 내용은 이와는 다소 차이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중국 매체도 수정된 보도를 냄에 따라 결론적으로 저가 아이폰의 가능성은 남아있게 되었다. 이 매체의 당초 헤드라인에는 “애플이 시장 점유율 향상을 위해 저가 아이폰을 밀지는 않겠다”라고 하였지만, 새로운 헤드라인에는 “애플은 가장 좋은 제품을 제공하기를 바라고, 맹목적인 점유율 향상을 꾀하지는 않겠다”로 수정되었다. 


저가 아이폰에 대해 여러 분분한 예측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애플이 정말 어떤 전략을 펼칠지는 좀 더 두고 봐야할 시점이다.

techneedle



많은 전문가들은 애플이 아이폰 가격을 높게 유지해서 고가의 스마트폰 시장에서 비교적 소규모 판매로부터 이윤을 내는 것과 삼성과 같이 저가 버전의 아이폰을 따로 생산해 새로운 소비자층을 공력하는 전략중에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고 분석합니다. 저가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의 경쟁력에 대한 우려와 동시에 아이폰5 스크린 주문이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줄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월요일 주식시장에서 애플의 주가는 3.6% 하락한 501.75 달러에 마감되었습니다. 


아이폰은 미국에서는 여전히 잘 팔리는 아이템이지만 미국외의 해외시장에서는 사정이 다릅니다. 통신사가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는 브라질이나 독일의 경우 아이폰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650달러를 지불해야 합니다. 또 앞으로 스마트폰을 구입할 소비자들은 저소득 그룹이기 때문에 다른 스마트폰 가격에 비해 650달러는 매우 높은 가격입니다. 애플이 아이폰5 스크린 예상 주문을 1900만개에서 1100~1400만개로 줄인 것이 현재로서는 재고때문인지 수요가 줄어서인지 정확히 판단할수는 없지만 저가 스마트폰 시장의 수요는 애플의 전략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특히 가장 큰 잠재적 스마트폰 시장인 중국의 소비자들을 고려할 때 애플이 저가 아이폰을 출시할 가능성은 조금 더 높아보입니다. 현재 중국에서 애플은 차이나 유니콤(China Unicom)과 손잡고 아이폰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6억명의 고객을 보유한 가장 큰 통신사인 차이나 모바일(China Mobile)과는 아직 계약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차이나 모바일의 고객수는 AT&T 고객수의 6배에 달하는데 애플 제품을 한 번 사용한 고객들은 다른 애플사의 제품을 계속해서 구매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중국에서 이러한 고객층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으로 저가 아이폰이 필수적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 NY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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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LR 카메라의 스펙을 보면 이미지 센서가 APS-H(28.1 x 18.7 mm) 1,610만 화소 CMOS 센서라고 되어 있다.  CCD나 CMOS는 그래도 알 수 있는 친숙한 단어인데, 좀 생소한 'ASP-H 타입, C 타입' 은 무엇인지 알아보자. 


이미지 센서는 센서가 CMOS든, CCD든, 포비온이든, 포서드든...센서 크기에 따라 구별을 할 수 있다. 먼저 1:1은 필름대비 센서의 크기가 거의 동일한 것 을 말한다. 
즉 가로 35mm 세로 24mm이다. 이것을 두고 풀프레임(1:1 타입) 이라고 한다. 

이 풀프레임은 니콘 D3가 나오기 전엔 니콘에선 없었고, 콘탁스와 캐논, 코닥에서 출시가 되었고 이후 풀프레임 계통의 바디에서는 캐논의 독주가 계속되었다. 

지금은 니콘에서 D3 계열의 플래그십 바디 외에도 중급기인 D700에서도 풀프레임 바디를 개발하고 있지만 풀프레임하면 캐논의 1DS 계열과 5D 계열의 카메라를 쉽게 떠올릴 수 있다. (니콘에선 이 1:1을 별도로 FX포멧으로 칭하고 있다.) 


이 풀프레임 바디 외의 나머지는 모두 크롭바디로 보면 된다.
(단, 별도의 규격을 사용하는 포서드는 제외이다. 포서드는 필름과 상관없이 그 자체의 규격을 사용한다고 주장하여, 그 자체를 풀프레임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풀프레임과는 좀 비교가 된다. 아무래도 센서 크기가 작기에 화질면에서도 차이가 나고, 또 노이즈가 풀프레임에 비해 많다는 단점을 갖고 있다.)
 
그런데, 카메라 브랜드별로 크롭비율이 조금씩 다르다.
 
니콘을 비롯한 소니(미놀타), 펜탁스, 삼성 등은 1:1.5의 크롭비를 가지고 있다. (대부분 소니에서 만든 CCD를 사용하고 있다. 니콘은 이를 DX포멧으로 부른다. )
 
캐논은 자체 규격으로 1:1.6의 크롭비를 가지고 있다.
 
시그마는 포비온X3센서를 사용하고 1:1.7의 크롭비이다.
 
이 모두를 통칭해서 APS-C타입으로 부른다. 


APS란 무엇인가? 

APS는 Advanced Photo System의 약자이다. 영어를 그대로 직역하면 '이전보다 진보된 사진 시스템'이란 말이다. APS는 후지필름, 이스트먼 코닥, 캐논, 미놀타(현 코니카미놀타), 니콘이 공동개발한 '세계 표준 규격의 새로운 사진 시스템' 을 말하는 것인데, 사실 진보된 것이라기 보다는 새로운 표준을 만들었다는 것이 더 적합한 말일 것이다. 이 필름은 1996년 4월에 판매가 시작되었다.

그럼 APS 이전의 필름 사이즈는 어떠했을까? 바로 16.7 x 30.2mm로, 가로세로비가 종래의 각종 필름에 비해 가로로 긴 형태(16:9)인 것이 특징이다.이것을 35밀리로 새로운 표준(35×24)을 만든 것이 바로 APS인 것이다. 그리고 이 APS를 아래 위로 절단하여 다음과 같은 새로운 형태의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 

H사이즈(HDTV / 9:16) : 기본이 되는 화면 사이즈로, 촬영 설정에 상관없이 필름 면에는 이 사이즈로 촬영된다. 인화 시에는 종래의 L판과 높이는 같지만 폭은 조금 넒어진 것이다.

C사이즈 (Classic / 2:3) : H사이즈의 좌우를 크롭한 사이즈. 종래의 35mm필름과 똑같은 화면비율로, 인화 시에도 똑같은 L판 사이즈이다.  

P사이즈(Panorama / 1:3) : H사이즈의 상하를 크롭한 사이즈. 종래의 35mm 파노라마판과 같은 사이즈이다. 또한, 화면 사이즈가 작기 때문에 35mm판과 같은 렌즈로도 화각은 좁아진다.  

이를 대각화면으로 환산하면 H 및 P사이즈는 1.25배, C사이즈는 1.4배(하프프레임과 동등)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앞서 설명한 크롭바디의 이미지센서는 C 사이즈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캐논에는 1:1.3의 크롭비를 가지고 있는 APS-H타입 센서도 있으며, 이는 EOS 1D시리즈에만 있다.
그래서 C 타잎의 센서 크기는 23.6 x 15.8mm 인데 반해, H 타잎인 캐논 1D는 모두 28.1 x 18.7 mm이다. 
 
H타잎이 C 타잎보다 조금 더 큰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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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T에서 KT로 옮긴지 한달이 되어가는 군요~
본래 목적은 '인터넷, 인터넷전화, IPTV를' 모두 KT로 쓰고 있어서 이동전화까지 옮기면 할인을 받기 위해서 였는데,
제가 아이폰에 꽂혀서 ㅡㅡ;; ㅋ 지금은 만족하며 쓰고 있지만,
집사람은 SKT를 계속 쓰기를 원했지만(여자들은 은근 SKT에 대한 뭔가가 있는듯), 제가 밀어부쳐서 옮기게 됐습니다.

헌데 둘 다 아이폰을 쓸려고 했는데 집사람은 쇼옴니아를 하면 무선공유기를 무료로 설치해 준다는 말에 혹해서~ 그리고
매장 직원이 쇼옴니아 캐이스를 뜯어가며(본래 아이폰이나 쇼옴니아나 절대 캐이스를 뜯어서 보여주지는 않죠) 열정적(ㅡㅡ;)
좋은 점들을 설파하는 통에 마음이 끌렸던 모양입니다.

허나.... 지금은 엄청 후회하고 있죠. 쇼옴니아 베터리가 터지기를 바라면서 ㅡㅡ;;;
암튼 여기서부터 생활밀착형 비교를 들어가겠습니다.


쇼옴니아 - 집사람이 싫어하는 점

1. 어플이 넘 없다 (당췌 뭘 할 만한게 없다는 점)

- 회사에 가면 동료들은 아이팟으로 잼난 게임들을 하는데, 자신은 암것도 할 게 없다는~ (아이패드를 사줘야 하나 ^^;)
- 이건 제가 옆에서 매일 앱스토어에 들어가서 다양한 어플들을 다운받으며 보여준 영향이 큰 듯...

2. 인터넷 속도가 넘 느리다, 그리고 자주 끊긴다는 점.

- 아... 이건 옆에서 보기에도 답답하고, 간혹 제가 쇼옴니아로 인터넷 접속해서 뭘 찾으려 할 땐 몇분 하다가 아이폰으로~ !!
- 옆에서 같은 사이트에 동시에 접속을 해도 아이폰은 몇초면 뜨는데 쇼옴니아는 1분 이상~
- 집에서 같은 무선공유기로 같은 WIFI를 접속하는데, 아이폰은 계속 잘 되는데 쇼옴니아는 접속이 끊어졌다는 둥, 다른 WIFI로
  접속하면서 끊기고 와이브로로 바뀌면서 끊기고...

3. 내장메모리의 부족

- 기본 4GB 인데 메모리 어플 몇개랑 음악 좀 넣음 다 차버린다고 합니다. (결국 어제 8GB 외장메모리를 사줬습니다!! ㅎㅎ)
- 아이폰은 8~32GB 인데, 제건 16GB~ 음악 엄청 넣고(전집, 앨범 등등 ㅋㅋ), 애니 시리즈 다 넣어도 3~4GB정도 남습니다. ^^

4. 그리고 안이쁘다는 ㅡㅡ;; ㅎㅎ


쇼옴니아 - 집사람이 만족하는 점

1. 와이브로 (차를 달리면서도 OK WIFI가 안잡히는 곳에서도 OK)

- 이건 아이폰을 쓰는 제가 봐도 부러운 점입니다. ㅋㅋ

2. 베터리 분리 (여유 베터리까지 있죠)

- 음... 이건 하루 한번 충전으로 저녁엔 좀 간당간당하지만 나름 잘 쓰고 있어서~(여행갈 땐 좀 걱정이 되긴 하죠 ㅋ)

3. 화질

- 같은 영화를 동시에 보면 쇼옴니아 대비 아이폰은 화면이 잘리고, 화질이 텁텁하다고 해야 할까~ ^^
  amoled는 확실히 좋더군요
- 하지만 어디 여행을 갈 때가 아닌이상 평상시 영화 볼 일이 별로 없어서 크게 만족하진 않는 듯합니다. ㅋㅋ

4. 사진(카메라)

- 쇼옴니아는 플래쉬가 엄청 강하더군요~ LED 같은데~ ㅎㅎ, 그리고 색감이 아주 선명하게 나왔습니다.
   조명이 어두운 곳에서도 음식사진은 아주 맛있게~ 디카를 들고 다닐 필요가 없겠더군요~ 그렇다고 DSLR 수준은 아니구요 ㅋ
   아~ 그리고 플래쉬가 강렬해서 손전등을 대체할 만한 수준입니다.
- 아이폰은 기본적으로 플래쉬가 없기 때문에 좀 어두운 곳에서는 갈색톤으로 나옴니다.
  (아웃백 가서 사진 찍는데 사람은 은은한 조명에 괜찮게 나오는데, 음식사진은 정말 맛없게 나왔습니다. ^^;;;)

5. 그나마 있는 트위터, 스카이프, 페이스북을 제가 쇼옴니아에 깔아줘서 함께 공유하고 있는 것

- 부족한 어플에 대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는 듯 ^^; (이건 스마트폰이라면 다 해당되는 것이겠죠)



아이폰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위에 쇼옴니아의 부족한 부분 좋은 점 등을 조합해보면 답이 나오겠죠~
KT가 와이브로를 WIFI로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하니, 쇼옴니아에 장점 중 하나인 와이브로가 아이폰에도 해당 될 수도 있을 것 같군요~ ^^;

이 소식을 들은 집사람은 " 대체 쇼옴니아 좋은 게 뭐야~! ㅡㅡ;; "
그래도 퇴근 후 식사를 마치고 각자의 스마트폰으로 잠시 이것 저것 하는 시간이 생긴 걸 보니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ㅎㅎ



어제 '뉴스 후'를 보며 우리나라 기업들 자국민에 대한 의식에 분노를 한번 하고 그런 부분을 진작에 파헤치지 못하고 크게 알리지 못한 언론에 분노하고, 더불어 그간 무지했던 자신에게 화가 났습니다.

아이폰이 국민들을 일깨우는데 작은 일조를 한 것도 같고, 시발점을 마련해 준것도 같습니다.
6월 선거에선 어떤 결과가 나올지 기대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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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의 위상이 점점 하락하고 있는거 같다. OS에서 웹브라우저에서, 그리고 검색엔진에서 조금씩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는 얘기다. 솔직히 검색엔진 분야에서 MS는 명함도 못내미는 형편이지만 윈도로 대변하는 MS의 OS 점유율과 웹브라우저 IE의 점유율 하락은 분명 MS 입장에서는 뼈아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넷어플리케이션즈의 통계를 바탕으로 어떻게 MS의 위상이 하락하는지 살펴보자.

윈도 점유율, 드디어 90% 밑으로...



그래프 상으로 윈도는 90%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옆의 범주를 보면 89.62%로 90% 밑으로 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동안 꾸준히 적어도 90% 이상을 차지해왔었는데(10월달까지만 하더라도 90.46%였다) 11월에는 결국 90% 밑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뭐 그래도 다른 OS에 비해 압도적인 점유율을 지니고는 있지만 계속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윈도 점유율은 결국 MS의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는 얘기가 된다.

2등은 맥OS인데 아이폰 OS인 iPhone OS X는 뺀 점유율이다. 8.87%로 거의 9%에 가깝다. 아이폰의 활성화로 애플은 PC인 맥도 같이 잘 팔리기 시작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또한 어플리케이션 사용패턴이 데스크탑에서 인터넷으로 옮겨지는 상황에서 윈도용 어플리케이션에만 국한하지 않고 웹브라우저를 이용해서 인터넷으로 사용하니 맥과 같은 비윈도 플랫폼도 같이 활성화 되는 듯 하다. 리눅스는 0.83%로 1%도 채 못되었지만 3등을 차지했다. 한때 윈도의 데스크탑 대항마로 떠올랐으며 최근 우분투로 나름 선전하고 있는 리눅스지만 이상하게 활성화가 잘 안되는거 같다. 꽁짜라는 것과 서버용 플랫폼이라는 선입견이 데스크탑 플랫폼으로서의 확산을 막는거같기도 하고 말이다. 4등은 당당하게 아이폰용 OS인 iPhone OS X가 차지했다. 맥OS와 같은 플랫폼이지만 따로 했을때도 무려 0.37%로 당당하게 4등을 먹어버린 이 스마트폰의 거성(^^)은 스마트폰 시장 뿐만 아니라 모바일 인터넷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고 있는 주범(^^)이다. 국내에는 언제쯤 올려나 오망불매 기다리고 있다. 플레이스테이션(PS)의 플랫폼도 0.04%로 5등을 차지했는데 그만큼 PS가 많이 팔렸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파이어폭스, 안정적으로 20%를 확정하나...



웹브라우저 시장에서 파이어폭스(FF)의 선전은 예상했으며 10월부터 20%에 안정적으로 안착하더니 11월에는 드디어 21%로 웹브라우저 시장의 1/5를 차지하며 안정적인 세를 굳히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칠옹성과 같았던 IE는 70%가 무너지고 69.77%로 60%대에 들어서게 되었다. 물론 거의 70%지만 숫자 앞자리에 7이 있느냐 6이 있느냐는 그 느낌부터 다르기 때문에 60%대로 내려앉은 IE의 점유율은 인터넷 웹브라우저 시장에서 과거의 IE의 영광이 이제는 거의 사라지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듯 싶다. 물론 OS와 마찬가지로 10명중 7명이 IE를 사용하는 상황이라 압도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적어도 과반을 넘었으므로) 과거 95%까지 점유했던 점유율이 69%까지 떨어진 것을 보면 IE의 독주체제도 이제는 막을 내리는 때가 머지 않았다는 생각을 해본다. IE8이 본격적으로 나오면 좀 달라질려는지 모르겠지만 웹2.0 시대에 웹표준이 확산되는 지금 IE에 대한 매리트가 거의 없기에 점유율 하락은 지속될 듯 보인다.

FF는 이제 안정적으로 20%대를 유지할 듯 보이고 3등을 먹은 사파리는 아마도 아이폰이나 아이팟 터치에 있는 모바일 사파리까지 합친 점유율같은데 7.13%로 나름 선전하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구글에서 자신만만하게 IE를 겨냥하고 내놓은 크롬은 초반에 1%를 차지하더니 지금은 0.83%로 생각보다 돌풍이 강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구글이 크롬을 활성화 시키기 위해 마케팅 전략을 잘 세우고 있다고 하니 얼마나 성장할지 지켜봐야 할 듯 싶다. 모바일 웹브라우저의 강자인 오페라는 전체 점유율에 있어서는 강자의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0.71%는 크롬보다 못한 점유율이다. 적어도 속도면에서는 가장 빠르고 웹표준을 잘 지키는 웹페이지를 보여주는데 탁월한 재능을 가진 이 웹브라우저는 아마 모바일에서만 좀 숨통을 트고 PC 웹브라우저 시장에서는 명맥유지정도만 해야할 듯 싶다. 참고로 모바일 오페라 웹브라우저인 오페라 미니는 0.04%로 8등을 차지했는데 이는 모바일 웹브라우저에서의 오페라 미니는 그대로 강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라 할 수 있다(그런데 사파리 모바일은 따로 통계가 안나온 듯 싶다. 아이폰의 점유율을 생각하면 따로 보여줄 만 한데 말이다).

검색엔진 시장은 여전히 구글 천하...



검색엔진 시장에서의 구글은 OS 시장에서의 MS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물론 90%를 차지하는 윈도와 80%를 차지하는 구글 검색엔진은 점유율에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그래도 절대 강자라는 이미지는 비슷하다고 본다. 또한 검색엔진 점유율이나 OS 점유율이나 비슷한 부분이 보인다. 1등과 2등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도 그렇고 1, 2등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정말로 처참한 수준이라는 것도 그렇고 말이다.

검색엔진 시장에서 절대 강자는 구글이다. 무려 81.11%를 차지해서 2등인 야후의 10.47%를 저멀리 따돌렸다. 구글은 온라인 검색시장에서 유무선 통틀어 절대우위를 보이고 있는게 향후 어플리케이션의 사용형태나 사용자들의 사용패턴이 과거의 데스크탑에서 인터넷으로 완전히 바뀌어지게 되면 구글은 지금의 MS보다 더 강력한 IT 권력을 쥐게 될 것이다. MS가 왜 그렇게 검색시장에서 구글을 견제할려고 하는지는 저 점유율에서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구글은 검색엔진 시장의 확고한 점유율을 바탕으로 검색광고 수익으로 다른 모바일 플랫폼이나 서비스에 투자해서 점점 자신들의 지분을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2등은 야후다. 그런데 구글에 비해 좀 우울한 점유율이다. 10.47%로 10%를 겨우 넘겼다. 게다가 야후 자체의 문제가 지금 심각하기 때문에(검색엔진 이외의 문제들)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어쩌면 계속 구글에 점유율을 잠식당할 듯 싶다. MSN는 3%를 차지해서 3등인데 MS는 MSN의 점유율을 어떻게 올려야 할지 감잡기도 어려울 듯 싶다. 야후를 인수해서 보강하던지 아니면 4등인 AOL을 인수하던지 해야지 자체적으로 점유율을 끌어올리기는 어려울 듯 싶다. 라이브 서치가 1.56%로 AOL에 이어 5등인데 엄밀히 따지면 MSN과 같은 MS 계열이므로 MSN이 4.56%로 3등을 먹었다고 봐도 무방할 듯 싶다. MSN 내부의 검색엔진을 라이브 서치로 하는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넷어플리케이션즈의 통계를 바탕으로 11월의 각종 점유율 차트를 보면서 각 분야에서 MS의 위상이 조금씩 하락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과거 90년대에 압도적인 점유율을 자랑하며 반독점법의 공격대상이 되었던 MS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 미래를 향해 투자를 해야할 것이다. 나름 투자는 하고 있는 듯 보이는데 구글 등의 신생업체에게 계속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과거에는 MS는 독재의 아이콘으로 생각을 했는데 최근 구글의 행보를 보니 MS가 다시 힘을 내주기를 바랄 뿐이다.
-학주니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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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의 애플 사랑은 남다른 것 같다. 미 경제전문지 포츈 최신호에 '2008 미국인 가장 선망하는 기업' 1위에 애플이 차지했다고 실렸다.

하나의 기업이 국민의 다인종 국민인 미국인의 신뢰를 한 몸에 받기는 정말 어려운 일임을 감안할 때, 이번 결과는 애플의 기업이미지 관리 전략과 Mac, 아이팟, 아이폰에 이르는 애플의 제품들이 사랑받는 매력이 무엇인지 연구해 볼 가치가 있음을 새삼 느끼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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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츈지 '2008 미국인들이 가장 선망하는 기업 20위' 기사 화면

포츈은 애플의 최고경영자(CEO)인 스티브잡스가 실리콘 반도체와 소프트웨어로 마법을 부릴 고민을 하던  그가 아이폰으로 다시 한 번 세상을 놀라게 만들었고, 글로벌 경제위기 국면에서도 애플은 경제성장의 엔진 역할을 할 것으로 평가했다는 점이다.

이렇듯 애플의 기업이미지는 미국인에게 상당한 입지를 굳히고 있고, 어쩌면 그들의 자존심과도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인 줄도 모를 일이다.

포천은 4위에 오른 구글과 관련하여 구글에 가장 비판적인 유저마저도 구글이 세상의 파수꾼이라는 사실에는 동의한 점이 확인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윈도우7 출시를 앞두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는 16위에 그치는 예상밖의 결과가 나왔다.

이밖에도 글로벌 커피체인 스타벅스가 6위를 차지했고, 의외로 도요타 등 외국 자동차 기업이 둘이나 순위에 올라 주목을 끌었다. 반면 BMW는 14위를 차지했다.

아래는 포츈지(Fortune) 선정 2008 미국인들이 가장 선망하는 기업 20위 목록이다.

America's Most Admired Companies 2008
Top 20 Most Admired Companies

  1. Apple
  2. Berkshire Hathaway
  3. General Electric
  4. Google
  5. Toyota Motor
  6. Starbucks
  7. Fedex
  8. Procter & Gamble
  9. Johnson & Johnson
  10. Goldman Sachs
  11. Target
  12. Southwest Airlines
  13. American Express
  14. BMW
  15. Costco
  16. Microsoft
  17. UPS
  18. Cisco Systems
  19. 3M
  20. Nordstr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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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구글의 안드로이드 플랫폼을 최초로 도입한 안드로이드폰 "G1"에 관심이 있다면, 개인적으로는 G1을 만든 대만의 HTC에 흥미가 간다, 왜냐하면 최근 일본 시장에서 아이폰의 대항마로 화제가 되는 스마트폰이 대부분 HTC의 제품들로 짜여 있기에 아무래도 삼성이나 LG의 강력한 경쟁자로 보이기에 때문이다.

아이폰이야 애플빠라는 일부 애플 극성 팬들의 시장이 따로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애써 무시하면 그만이겠지만, 아이폰 OS X를 제외한 일반 플랫폼(윈도즈 모바일과 안드로이드, 심비안, 리모)을 도입한 스마트폰 또는 터치폰시장에서 특히 일본 시장에서 삼성과 LG의 라이벌로 다른 기업이 아닌 HTC가 자꾸만 눈에 밟힌다.


HTC의 Touch Diamond는 NTT도코모와 소프트뱅크 그리고 이모바일에 공급

소프트뱅크가 아이폰으로 일본 이동통신사 1위인 NTT도코모는 물론이고 2위 KDDI를 위협하며 경쟁에 불을 댕기자 NTT도코모는 블랙베리로, 그리고 그동안 터치폰에는 관심이 없던 KDDI는 HTC의 터치폰으로 아이폰과 겨루겠다고 선포하였는데, 알고 보니 NTT도코모와 소프트뱅크도 HTC 스마트폰을 판매하거나 도입 예정이고, 그 외에도 데이터통신으로 급성장 중인 이모바일 역시 HTC의 터치폰을 선보이고 있다.


HTC Touch Pro는 NTT도코모와 소프트뱅크, 그리고 일부 변경되어 KDDI에 공급
이번에 선보이는 HTC의 Touch Pro와 Touch Diamond는 2008년 5월부터 판매를 시작해 3개월 만에 전 세계적으로 100만대 이상 팔렸다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히트한 HTC의 주력 제품이 일본 이동통신사 모두에게 제공되어 폭넓게 팔리기 시작한다면, LG는 NTT도코모, 그리고 삼성은 소프트뱅크에 목을 매고 있는 사이에 HTC는 일본의 이동통신사 모두에게 자사 제품을 공급하면서 단번에 일본 터치폰 시장을 석권할 가능성이 커지게 되었다.

그런 가운데 세계의 구글조차도 자사가 심혈을 기울려 키우는 모바일 플랫폼 안드로이드를 도입한 첫 작품 파트너로 HTC을 선택함으로써, 그 기류에 동참하고 있으니 대단한 애국자를 자처하는 나로서는 심히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HTC는 1997년에 대만에 설립된 짧은 역사의 회사이지만, 세계적인 PDA 업체 팜(Palm) 제품을 OEM으로 제작하면서 급성장, 이후 윈도즈 모바일을 탑재한 스마트폰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여 판매, 명성을 쌓았고, 이번에 세계 최초로 안드로이드를 탑재한 G1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결국, 핵심 소프트 플랫폼은 대부분 오픈소스로 제공되고 기술력도 충분히 입증된 상태에서 남은 승부는 브랜드력과 가격 경쟁력인데, 터치폰 또는 스마트폰에서 HTC라는 회사명이 자꾸만 거론되고 이동통신사들이 HTC 제품을 터치폰 주력 제품으로 이용하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브랜드력이 쌓이고 또 중소기업 왕국인 대만이니 가격 경쟁력도 뛰어날 테니, 한국의 맹장인 삼성과 LG라도 쉽지 않은 경쟁자의 출현이 아닌가 싶다.

아이폰도 쉽지 않은 상대이지만, HTC가 더 껄끄러운 상대로 성장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일개 블로거의 걱정이 삼성과 LG의 뛰어난 기술력과 마케팅 덕분에 부질없는 기우로 끝나길 바라는 마음이다.

-하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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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안드로이드 플랫폼 탑재 휴대폰 'T-Mobile G1'을 발표했다.

이 G1 단말은 10월 22일 미국에서 179달러(2년 약정)로 첫 출시한 이후, 11월 영국, 내년 1사 분기에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 네덜란드에서 순차적으로 판매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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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안드로이드가 탑재된 최초 단말, T-Mobile G1>

역시 예상대로 구글의 각종 서비스들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인데, 대표적인 서비스 부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구글 검색
다른 기능들과 밀접하게 연계하고 있는데, 한 예로 음악을 듣고 있는 경우 아티스트 이름을 길게 누르고 있으면, 그대로 구글에서 검색하여 해당 아티스트에 관한 정보나 YouTube 뮤직 비디오를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2. 로그인 계정 유지
그리고 구글 계정으로 로그인할 경우 해당 로그인 정보가 계속 유지되어, 주소록에 기입한 데이타의 경우 정기적으로 Gmail 연락처와 싱크되고, 단말기를 파손시키거나 분실해도 항상 인터넷상에 저장된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3. 정보연동
구글 캘린더나 구글 토크 정보도 항상 싱크되기 때문에 신착정보를 푸쉬로 받을 수 있고, 새로운 인스턴트 메시지 수신이나 캘린더 일정예약이 있을 경우, 단말 스크린 상단에 경고가 표시되어 노티해 준다. 게다가 인스턴트 메시지가 도착할 때, 바로 메시지로 회신을 줄 수도 있고, 메일 또는 전화로 회신 방법을 변경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 밖에 캘린더 등의 스케줄에 지도 정보가 포함되어 있는 경우, 클릭만으로 구글 맵에서 지도를 표시하거나 구글 스트리트뷰에서 자세한 정보를 사진으로 보는 것도 가능하다.

4. 어플리케이션
이번에 출시되는 모델에는 전용 어플리케이션이 탑재되어 있는데, 대표적인 어플리케이션은 마켓 플레이스인 'Android Market'로서 사진을 활용하여 지도 생성이 가능한 'BreadCrumbz', 쇼핑 가격비교 'ShopSavvy', 차량에서 소비하는 이산화탄소 양을 측정할 수 있는 'Ecorio' 등이 주목 받을 것으로 예상되며, 600만곡 이상의 DRM Free MP3 음악이 제공되는 'Amazon MP3' 서비스를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도 내장되어 있다.

기대가 컸던 만큼, G1 발표는 전세계적으로 IT분야 톱 기사로 번져나가고 있는 상황인데..

3G 아이폰 국내 출시에 있어서 종종 비교 대상이 되고 있는 일본의 반응은 어떨지 궁금증이 생기게 된다. 우수한 모바일 환경과 사용 인구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예상외의 판매 부진으로 아시아 시장 내 아이폰 고전 지역의 시발점이 되었는데..

마침, 야후 재팬 내에서 G1과 관련된 설문조사가 진행 중이라 현재까지의 일본인들 시각을 살펴볼 수 있었다. (본 설문조사는 10월 4일까지 진행 될 예정)

Q. 구글이 개발한 안드로이드 탑재 휴대폰 'G1'이 등장하였다. 만약 일본에서도 '안드로이드 탑재 휴대폰이 판매된다면 구매하고 싶은가? (24일 19:20분 현재)

사용자 삽입 이미지

- 1위 : 이동통신사에 따라 다르다. (주황, 39%)
- 2위 : 구매하고 싶다. (파랑, 32%)
- 3위 : 구매하고 싶지 않다. (빨강, 30%)

아직까지는 1~3위 표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 상황인데, 10월 4일 집계가 마감될 때 다시 한번 살펴봐야 어떤 쪽에 네티즌들의 의견이 집중되는지 확인이 가능할 것 같다.

그러나 한 가지 주목할 부분은, 아이폰 판매 전에 실시된 각종 리서치에서도 동일하게 나온 부분인데.. 이동통신사에 따라 일본인들의 사용성이 결정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지표라고 할 수 있겠다.

즉, 1위 사업자인 도코모에서 타 통신사로 옮겨가기 싫다는 반증이다.

아무튼, 이제 막 돛을 올린 안드로이드 단말의 발전을 기대하면서.. 한 사람의 고객 입장에서 아이폰이건 그 무엇이건 고객 사용성을 높인 단말들이 많이 쏟아져 나와 주었으면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일단 아이폰 먼저 국내에서 빨리 출시되어야 하겠고...

일단 단말이 나와주어야 그에 상응하는 국내형(?) BM 들이 나오게 될 것이고, 장점이건 단점이건 개선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 더.. 국내의 경우 'SKT-애니콜' 이라고 하는 사용자들을 중심으로 매니아 층이 상당수 있는데.. KTF에서 아이폰이 나오면 어떻게 될지도 궁금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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