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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북쪽 끝 모레이만에 있는 생태마을 - 핀드혼 농장
 
* 이 체험기는 제가 2000년 5월 핀드혼을 방문했을 당시에 기록한 것입니다. 핀드혼 체험기의 일부는 한겨레출판사에서 나온 <세계 어디에도 내 집이 있다>에도 실려 있습니다만 그 글은 편집자의 요구에 의해 상당히 축소된 것입니다. 여기에 당시의 분위기를 느끼기 위해 원문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싣습니다.

자유. 사랑. 공동체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요즘 전세계 어린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해리 포터’의 모험 이야기는 영국 런던의 킹스크로스역을 출발하는 기차 안에서 시작한다고 한다. 킹스크로스에서 기차를 타고 스코트랜드로 가는 나의 마음이 꼭 그랬다. 스코트랜드 북쪽 끝 어딘가에 핀드혼 공동체라는 것이 있어서 끊임없이 나의 마음을 잡아끄는 것이었다. 그곳에 소개받은 사람도 없다. 게으른 성격에 숙소 예약도 안하고 무작정 길을 떠나는 것이다. 도착 시간을 보니 무려 9시간이나 걸리는 기차여행이다. 열차 안은 여름휴가를 떠나는 사람들로 인해 빈틈이 없다. 그래도 냉방이 잘 되어 있어서 오슬오슬 춥기까지 하다.

스코트랜드. 스코트랜드에 대해서 내가 아는 게 무엇이 있나? 우선 아직까지 오염되지 않은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 사람들이 고집불통이고 독립심이 강하다는 것. 아직도 스코트랜드 독립을 외치는 민족주의자들의 영향력이 강하다는 것. 007 제임스 본드로 유명한 숀 코낼리도 스코트랜드 출신인데 영국 왕실에서는 수년 전부터 그에게 기사 작위를 수여하려고 하였으나 그가 스코트랜드 독립주의자 당을 지지하는 바람에 번번이 취소되었다가 최근에야 모종의 절충이 이루어져 작위를 수여한 일이 있다. 사실 잉글랜드와 스코트랜드의 경쟁의식은 우리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지난봄에 두 나라(?) 사이의 축구경기를 본 적이 있는데 이건 한일전이 무색할 정도로 치열하다. 차라리 전쟁이라고 말하는 게 옳지 싶다. 그밖에 멜 깁슨이 주연하여 히트한 영화 ‘브레이브 하트’가 내가 알고 있는 스코트랜드에 대한 지식의 전부이다. 그 스코트랜드의 북쪽 해변에 지금으로부터 35년전 한 쌍의 부부가 모종의 신비경험을 체험한 뒤 일구기 시작한 공동체가 지금은 영국에서 가장 큰 공동체로 성장했을 뿐 아니라 내면세계 탐구와 생태공동체의 국제적인 기지가 되어서 해마다 전세계에서 14만 명의 방문객들이 찾아오고 있다.

9시간의 기차여행을 창 밖만 내다보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영국의 전원풍경에 엔간히 진력이 났을 즈음 가방에서 한 뭉치의 복사 서류를 꺼낸다. 전 날 인터넷에서 건져낸 문건들이다. 주로 농수산부에서 발표한 환경농업에 대한 정책요강과 지침에 관한 것이다. 세상이 변하니까 농업 정책도 이렇게 변하는구나! 역시 재야에서 오래 활동한 장관이라 다르긴 다르다 싶다. 그러나 페이지를 넘길수록 처음에 느꼈던 신선한 충격은 사라지고 자조와 한탄이 신음처럼 새어나오기 시작한다. 이것은 주제가 환경농업으로 바뀌었을 뿐이지 그 실천방법과 사고방식은 유신시대의 새마을 운동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 제시된 정책을 잘 따르는 마을과 개인들에게 점수를 매겨서 포상을 하다니! 농민들에게 그따위 경쟁심을 부추겨서 얻어지는 게 사행심 말고 또 무엇이 있단 말인가! 정부의 환경에 대한 이해가 아직도 그런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말인가. 환경농업은 관료들의 과시용 숫자 놀음의 대상이 되는 그런 것이 아니다. 내 눈에 비친 관료들의 사고방식은 마치 제2의 새마을 운동을 벌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70년대에 새마을 운동을 통하여 우리 농촌의 근대화가 달성되었으니 이제는 제2의 새마을 운동을 통하여 근대화 과정에서 소홀히 할 수밖에 없었던 환경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자는....

환경농업은 70년대의 소위 ‘녹색혁명’ 과는 그 기본철학이 다르기 때문에 정부가 농민을 지배와 조작의 대상으로 삼는 한 성과를 기대하기가 어렵다. ‘녹색혁명’은 관료조직과 국제식량생산기구가 합작하여 벌인 위로부터 아래로 퍼부어진 ‘혁명’이었지만(그것도 엄청난 후유증을 남겨 놓은 채) 환경농업은 땅 위에 서 있는 농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발견’과 ‘깨우침’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정부는 그런 식의 성과 위주의 정책 보다 농민들의 교육과 환경농업이 촉진될 수 있는 기반조성에 더 힘을 기울여야한다. 전세계 어디에서나 적어도 농업문제에 관한 한 정부가 관료적으로 간섭하여 농업이 제대로 된 일이 없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하물며 농업의 의미를 문명의 대안으로까지 격상시키고자하는 환경농업에 있어 서랴...우리가 정부의 구태의연한 농업정책의 희생양이 되지 않으려면 하루빨리 시민. 농민 단체가 강화되고 농민 개개인의 의식계발이 이루어져 국가의 획일적인 힘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대응력을 길러야 한다. 어쨌든 간에 시대상황에 맞추어 정책이 바뀌었다는데 에 만족하며 다시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반환경적인’ 영국 농촌의 광대한 들판에 눈길을 돌린다. 핀드혼 가는 길에 엉뚱하게 환경농업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는데 사실 9시간의 기차여행이 길기도 했지만 핀드혼에서의 경험도 이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핀드혼 공동체와 인접한 포레스역에 도착하니 벌써 해가 바다 저편에서 너울너울 대고 있다. 역에서 나와 포레스 시내로 들어가 배부터 먼저 채우고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해봐야겠다. 조그만 타운인데도 호텔이 많은 것으로 보아 이 일대가 관광지임은 짐작하겠다. 길거리가 얼마나 깨끗한지 도저히 피우던 담배꽁초를 버릴 수가 없다. 집들도 깨끗하고 예쁘다. 여기에는 런던에서처럼 구질구질한 벽돌집이 없어 일단 보기에 좋다. 대부분이 고풍스런 돌집이거나 벽돌집이라 하더라도 미장을 깨끗이 하여 겉에 맨 벽돌이 보이는 집은 없다. 근처의 현금 자동지급기에서 돈을 좀 뽑은 뒤 제일 싸다고 여겨지는 ‘피쉬 앤 칩스’(Fish and Chips) 로 들어가서 기본을 시킨다. 식사비를 지불하려고 돈을 세아리다가 화들짝 놀란다. 같은 액수의 돈인데 모양이 다 다른 것이었다. 재수 없게 위조지폐를 뽑아 가진 줄 알고 우물쭈물하고 있으려니까 주인이 껄껄 웃으며 스코트랜드 돈이란다. 자기네 돈을 따로 찍어내는 것이다. 그것도 두 은행에서 각각. 그러니 같은 단위의 돈에도 서너 가지 다른 문양이 있는 것이다. 스코트랜드인의 고집과 독립심이 느껴진다.

일단 주소에 나와 있는 대로 공동체의 모든 교육 프로그램이 행해지고 있는 클루니 힐(Cluny Hill)로 간다. 마침 주말이라 건물 내에는 사람이 별로 없다. 안내 창구도 닫혀 있고. 이리저리 헤맨 끝에 겨우 담당자를 만나 공동체에 관한 기본 정보를 얻어들고 다시 길거리로 나온다. 오기 전에 미리 신청을 하지 않아 당장에 프로그램에 참가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천상 다음 주에나 하는 수밖에. 덕분에 푹 쉬면서 핀드혼 인근 구경이나 하자며 택시를 불러 타고 공동체 실현지가 있는 핀드혼 만(Findhorn Bay)으로 간다. 정보지에 적혀있는 숙박업소에 전화를 넣어보니 여름휴가철이라 도무지 방을 구할 수가 없다. 핀드혼은 공동체 실현지일 뿐 아니라 해변과 만안 일대가 잘 알려진 관광지이기도 하다. 할 수 없이 목록에 나와 있는 것 중 방 값이 가장 비싼 집에 전화를 한다. 다행히 전화를 받는다. 다짜고짜 한국에서 온 학생인데 방 값을 얼마 밖에 낼 수 없으니 재워주겠느냐고 묻는다. 주인은 잠깐 망설이는 듯하더니 오라고 한다. 가보니 거대한 저택이다. 이름은 Minton House. 단순한 숙박업소가 아니고 공동체와 연계하여 각종 워크샵과 행사를 치르는 리트리트(Retreat)이다. 내게 준 방은 이 집에서 가장 작은 것이라는데도 침대가 두개나 들어있는 큰  방이다. 이상하게도  이렇게 큰집에 사람이 안 보인다. 짐을 풀어놓고 사정을 알아보니 며칠 후에 워크샾이 열리는데 그때 단체손님을 받기 위해 방을 비워두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말하자면 어차피 비어있는 방에 들어가서 약간의 부수입을 올려주고 있는 것이다. 복도를 지나치다가 가운을 걸친 조그만 동양여자를 만난다. 20대의 일본 여자. 핀드혼 공동체에 왔다가 이곳의 분위기가 좋아서 눌러앉아 허드렛일을 하고 있다. 8개월 째란다. 이후로도 이와 같은 경우의 일본여성들을 여럿 만나게 된다.

널찍한 잔디 마당을 지나 만 쪽으로 나아가니 더 나가구자시구고 할 것 없이 바로 발아래서 바닷물이 찰랑대고 있다. 바로 이것이다. 그렇게 찾아 헤매던 완벽한 휴식장소에 와 있는 것이다. 사전 예약도 없이 무식하게 쳐들어 온 사람에게 하느님께서 너무 과분한 환대를 해주시는 것 같다. 달님은 구름에 반쯤 얼굴을 내밀고 저만치 바다 위에는 정박 중인 요트 몇 대가 잔물결에 흔들리고 있다. 부근을 살펴보니 아니나 다를까, 자갈을 둥그렇게 그러모아 놓고 모닥불을 피운 흔적이 있다. 주변엔 파도에 밀려온 죽은 나무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불 구경과 불 피우기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하는 나이다. 그만큼 불 피우기를 좋아하고 또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길 좋아한다. 나는 나름대로 이것을 ‘모닥불 명상’이라고 부르데, 이날 자정이 넘도록 ‘명상’을 즐겼다. 발갛게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정화되는 느낌이 든다. 나무 가지들이 이리저리 얽혀서 여러 가지 불꽃무늬를 만들어 내다가 결국에는 새하얀 재로 변하는 과정을 바라보면서 삼라만상의 이치를 깨닫게 된다. 민톤 하우스에 머무는 나흘 동안 나는 매일 밤 은총 어린 ‘모닥불 명상’에 잠긴다.

다음날 늦은 아침을 먹고 나서 핀드혼 공동체와 마을을 돌아본다. 핀드혼은 바닷가 모래톱에 위치한 오래된 작은 어촌과 그 아래 35년 전 부터 건설되기 시작한 공동체로 이루어져 있다. 마을과 공동체의 관계는 상당히 원만한 것으로 보여진다. 핀드혼 자체의 수려한 자연경관과 공동체를 찾아오는 방문객들로 인하여 사람들이 꽤 북적대는 곳이다. 공동체는 코뮤니티 센터를 중심으로 상당히 넓게 분포되어 있다. 중앙에는 코뮤니티 센터를 비롯하여 방문객 센터, 상점, 식당, 카페, 사무실, 도서관, 공연장 등 공동체의 기간 시설들이 들어서 있다. 서쪽은 핀드혼 만이 펼쳐져 있고, 북쪽에는 공동체에 청정식품(Organic Food)을 공급하는 농장이, 동쪽에는 에코 빌리지(Eco-Village)가, 남쪽에는 이동식 주택(Caravan)과 텐트촌이 자리하고 있다. 공동체에 귀속되어 있는 사람이 백 오십 명이고, 전체 상주 인구가 300명가량 된다. 나머지 사람들은 공동체에는 직접 귀속되어 있지는 않지만 마찬가지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독립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대개 공동체 건설에 참여했다가 보다 자유로운 사회활동을 위하여 독립하여 나왔거나 일시적으로 공동체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 중 일부는 방문객을 상대로 숙박업을 하기도 한다. 현재 공동체는 에코 빌리지 사업을 적극적으로 벌이고 있어서 동쪽 벌판에는 건설 중인 에코하우스가 몇 채 서 있는 게 보인다.

우선 내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살펴 본 에코 빌리지에 관해서 알아보기로 하자. 핀드혼은 ‘세계 에코 빌리지 네트웍’(GEN: Global Eco-Village Network)의 일부로서 영국 에코 빌리지 운동의 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에코 빌리지 운동은 대안적 생활양식을 모색하는 시민운동의 하나로서 유럽에서 시작되어 지금은 세계 각국의 비슷한 운동들과 연계되어 지구적인 네트웍을 갖추고 있는 국제적인 지역공동체 운동이다. 이 운동이 유럽에서 시작되었다는 말은 운동을 지구적 차원에서 개념화하고 네트웍을 형성하였다는 데서 그렇다는 것이지 에코 빌리지 자체가 유럽에서 시작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에코 빌리지 운동은 간디의 공동체 운동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고 있으며 이미 비 유럽 지역에서도 상당히 오래 전부터 독자적인 발전이 진행 중이다. 남미 콜롬비아에 있는 가비오타스(Gaviotas)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이에 대해서는 언젠가 자세히 언급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에코 빌리지 운동은 이전의 고립적이고 낭만적인 공동체 운동과는 구분되는 것으로서 그곳이 도시이건 시골이건 간에 또는 선진국이건 후진국이건 간에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공동체 사회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여기에는 지속가능한 기술의 채택, 투입 자원의 최소화, 에너지와 자원의 재활용, 자주적 지역 공동체 건설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글로벌 에코 빌리지 네트웍(GEN)은 1994년 다음과 같은 취지를 가지고 만들어진다. 첫째, 지속가능한 공동체 마을의 건설을 지원하는 것. 둘째, 공동체들 간의 정보교환을 촉진하고, 셋째 에코 빌리지의 개념과 실현지에 대한 정보를 대중적으로 확산시킬 것 등이다. 현재 네트웍은 유럽, 아메리카, 아시아-오세아니아의 세 구역으로 나누어서 운영되고 있다.

핀드혼 공동체는 ‘글로벌 에코 빌리지 네트웍’의 창립 멤버로서 그 동안 이를 주제로 여러 차례 국제회의를 유치했다. 에코 빌리지 사업은 1981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지금도 계속 확장 중에 있다. 원래 핀드혼은 영성공동체로 출발한 것이다. 지금도 영성(Spirituality) 을 중시하는 기조는 변함없지만 공동체의 성장에 따라 생태학적 요소와 사회경제적 요소 등이 가미되어 더욱 풍요롭고 조화로운 공동체로 발전해 가고 있다.
이제 핀드혼 에코 빌리지의 시설과 기능을 하나 하나 살펴보기로 하자.

1. 에코 하우스

현재 공동체 단지 내에 27채의 에코하우스가 들어서 있으며 앞으로 삼 사년 내에 40채를 더 지을 계획이라고 한다. 에코 하우스는 환경 친화적이고 에너지 절약형으로 설계되었으며, 모든 건축 재료도 지역에서 생산된 독성이 없는 자연재료를 쓴다. 나는 이담에 내가 집을 직접 지을 계획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곳의 에코하우스들을 비교적 상세히 들여다보았다. 이곳의 에코 하우스들은 모두가 유럽 전통 양식의 목조건축이다. 나는 특별히 흙건축에 관심이 많은데 유감스럽게도 여기에는 없다. 대신 밀짚으로 지은 집이 한 채 있는데 연장 창고로 쓰고 있다. 그밖에 폐타이어를 이용한 반지하식의 창고 건물이 있다.

핀드혼의 에코 하우스는 크게 두 그룹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전통적인 목조가옥이고, 다른 하나는 ‘위스키통 집’(Whisky Barrel House)라는 재미있는 이름이 붙은 집이다. 이 집들은 인근에 있는 위스키 공장이 문을 닫음으로써 생겨난 것이다. 이들은 버려진 거대한 위스키 통을 보고 그 나무조각들을 떼어다 집 지을 생각을 한 것이다. 이왕이면 위스키 통에서 떼어왔으니 집모양도 위스키통 비슷하게 설계했단다. 최초로 만들어졌다는 위스키통 집에 들어가 본다. 그 집은 재미있게도 핀드혼에서 최고의 고참이 살고 있는 집이다. ‘로져’라고 불리는 그는 공동체에서 26년째 살고 있는 독신남이다. 집 형태는 에스키모의 이글루와 거의 같다. 다만 집이 반구형이 아니고 원통형인 점만 다르다. 내부는 한사람이 살면 꼭 알맞을 정도로 콤팩트하게 꾸며져 있다. 원형공간의 한쪽에 열린 벽을 쌓아 욕실을 만들어 놓고 욕실 천장 위에 침실을 꾸며놓았다. 위스키통 집은 이렇게 통 하나로 된 것도 있고 여러 개가 중첩된 것도 있는데 삿갓 모양의 지붕과 함께 아주 멋들어진 풍경을 연출하고 있어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그 앞에서 사진을 찍고 가는 핀드혼의 명소가 되었다. 위스키통 집은 환경친화성은 물론이고 자원재활용, 지역에 근거한 창조적 발상 등으로 하여 생태건축의 모범적 케이스가 되고 있다.

현재 짓고 있는 에코 하우스의 내부도 들어가 본다. 이들의 얘기에 의하면 석재 목재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건축재료들을 스코트랜드 인근에서 구한다는 것이다. 마감할 때 쓰는 페인트도 값이 한배 반에서 두 배나 비싼 자연산 페인트를 구해다 쓴다. 목조가옥의 외부는 참나무와 소나무류에서 추출한 기름을 바를 뿐이라고 한다. 목재는 통목재 뿐 아니라 합판도 상당히 많이 사용한다. 목수들은 모두 최첨단의 장비로 일하고 있다. 문틀과 창틀도 모두 육중하면서도 부드럽게 여닫히는게 상당히 고급품으로 보인다. 돈이 좀 있는 사람들은 열효율을 높이기 위해 3중 유리창을 쓴단다. 아무리 보아도 이런 식으로 지어서는 집 값이 엄청나게 나갈 것 같다. 과연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웬만한 사람들은 돈이 없어서 에코하우스 지을 엄두를 못 낸다고 한다. 핀드혼 공동체 전체를 생태건축 측면에서 보자면 여전히 많은 문제를 간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직도 압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생태개념과는 거리가 먼 캬라반과 같은 임시 주택에서 살고 있으며, 공동체 사람들의 경제수준으로 볼 때 현재 짓고 있는 에코 하우스는 너무 비싸다는 것이다. 내가 보건대 공동체의 주거문제를 생태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다 저렴하고 비전문적인 생태건축을 구상할 필요가 있다.

아, 한가지 빠뜨려서는 안될 보석과 같은 집이 에코 빌리지 중심에 자리하고 있어서 여기에 소개한다. 이름하여 ‘자연의 사원’(Nature Sanctuary)라고 하는데 명상의 집으로 사용하고 있다. 석재로 지은 작은 반 지하 집이다. 뒤에서 보면 풀이 무성한 두툼한 무덤 같고 앞에서 보면 아담한 돌집이다. 경주의 석빙고를 연상하면 된다. 영어로 이런 스타일의 집을 Earthshelter 혹은 Earthship 이라고 한다. 집이 땅속에 반쯤 묻혀있어서 아주 아늑한 느낌을 준다. 조명은 천정에 나 있는 창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을 이용한다. 내부설계와 앞마당을 얼마나 정갈하고 예쁘게 꾸며놨는지 누구든 보기만 하면 발걸음을 멈추고 쉬어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이 명상의 집은 진입로에서부터 돌계단과 비석을 세심하게 깔아 놓아서 집과 그 주변 전체가 하나의 작품이다. 이 집은 늘 열려 있기 때문에 누구라도 들어가서 명상에 잠길 수가 있다. 매일 아침 8시에는 공동체 사람들이 모여 떼제성가(프랑스에 있는 떼제 공동체에서 부르는 성가) 합창을 통해 그날의 조율을 한다. 나는 딱 한번 아침 모임에 나가봤는데 짤막한 불어(또는 라틴어) 성가를 화음을 넣어서 반복적으로 부르는 것이 마치 불교에서 만트라를 외우는 의식과 흡사했다.

2. 에너지 및 자원 재활용

핀드혼 공동체의 동녘 벌판 끝에는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하나 외로이 서있다. 이곳은 바닷가라 해풍과 육풍이 번갈아 불어서 풍력 발전에 유리하다. 그러나 아직 설치비가 많이 들어 대중화되고 있지는 못하다. 이 발전기는 75 킬로와트 짜리인데 이것하나로 공동체 사용전력의 20%를 충당하고 있다. 이 밖에 에코하우스 자체의 방열효과(스코트랜드 표준보다 2.5배 우수)와 몇 군데 설치되어 있는 태양전지, 그리고 자체 숲에서 나오는 땔감나무 등을 다 합하여 현재 재활용 에너지의 비율은 28%에 그치고 있다. 에코 빌리지 프로젝트에 의하면 앞으로 6년 내에 이 비율을 80-90%로 끌어올리겠다고 한다.

캬라반 파크 남쪽 끝에 가면 공동체가 자랑하는 ‘리빙머신’(Living Machine)을 만나게 된다. 리빙머신은 수생식물과 미생물, 박테리아 등을 이용한 하수처리 시설을 말한다. 리빙머신이 설치되어 있는 그린하우스 안에 들어서니 그 모습이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입구에 캐나다 국기가 보이기에 안내인에게 왜 저걸 걸어놨냐고 물으니 이 리빙머신의 발명자인 존 토드가 캐나다 사람이라서 그랬단다. 아하, 그러구 보니 핀드혼의 리빙머신은 달포 전에 슈마허 대학에서 에코 디자인 강의시간에 슬라이드로 본 것이다. 존 토드 교수의 발명품을 여기서 또 만나게되니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다. 그는 이곳의 리빙머신 설치 작업을 지도하고 오프닝 세리머니에도 참가했다고 한다. 이 시설은 하루에 300명분의 하수를 처리할 수 있다고 하니 공동체에서 배출되는 하수는 거의 다 처리하고 있는 셈이다.

하우스 안은 탱크에 담겨있는 각종 수생식물들이 뿜어내는 향기로 인하여(특히 수생 페퍼민트를 많이 심어 놓았다) 하수처리장이 아니라 아늑한 온실 같다. 첫 탱크에는 물 흡수력이 왕성한 버드나무와 이파리가 무성한 열대 수중식물들을 심어 놓았다. 중간에 개구리밥만 잔뜩 덮여있는 탱크의 물을 손으로 휘저어 보니 물벼룩이 바글바글하다. 물벼룩은 미세한 오염물질을 정화하는 탁월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개구리밥으로 덮어놓은 것은 태양광선을 차단하여 물의 부영양화를 막기 위해서 이다. 마지막 탱크에서 나오는 물이 담겨있는 조그만 연못에는 물 달팽이와 방게가 노닐고 있다. 물이 얼마나 깨끗한지 확인하기 위해 손으로 물을 떠서 이리저리 들여다보고 비벼본다. 깨끗하기는 한데 아직 세수를 할만한 수준은 아니다. 벼과 식물을 이용한 마지막 단계를 하나 더 거쳐야 되지 않나 싶다. 그러나 이 물을 채소재배에 쓰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우리는 그 옛날 청계천 더러운 물로 채소를 길러 먹지 않았던가.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여기서는 정화된 물을 그냥 하수구로 흘려보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위치 상 공동체 농장이 리빙머신하고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안내인에 의하면 조만간 이 물을 활용할 방도를 찾아낼 것이라고. 그는 내가 물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을 보고 급히 달려와서는 물을 만지지 말라고 하더니 수도가로 데리고 가서 손을 씻으라고 한다. 나는 속으로 정화된 물에 자신이 없어서 그러는가 하고 의아해 했지만, 그는 규정상 방문객이 물을 못 만지게 하니 이해하라고 한다. 생각해 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데 만의 하나라도 이 물로 인하여 사고라도 난다면 리빙머신은 물론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기에 그런 규정을 만들어놓은 것 같다.

3. 공동체 농장

핀드혼 공동체에 늘 신선한 식품을 공급하는 농장은 두 군데가 있다. 채소를 생산하는 컬런농장(Cullerne Garden)은 공동체 단지 안에 있고, 계란과 우유 등을 생산하는 목장은 조금 떨어진 곳에 있다. 이들 농장은 유기농법(Organic Farming) 혹은 바이오다이나믹 농법 (Biodinamic Agriculture)에 의하여 운영되고 있다. 이 농법의 특징은 무농약, 자연산 퇴비 사용, 적절한 윤작 및 병작, 생물 다양성의 존중, 공동 노동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볼 때 아직도 이들이 개척해야할 분야가 한 두 군데 더 남아있다. 한번은 농장에 실습을 나가서 콩 수확과 제초작업을 했다. 풀을 뽑으면서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기존 작물 사이에 난 풀들을 보니 일부를 빼고 거의가 먹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제초작업은 거의 기쁨이라곤 느끼기 힘든 강제노동 비슷하다. 만약 자신이 먹기 위해서 이 풀들을 뽑는다고 생각하면 일석이조일 뿐 아니라 일도 힘든 줄 모르고 하게된다. 나는 제초작업을 할 때 늘 바구니를 두개 들고 하나에는 먹을 수 있는 풀을, 다른 하나에는 먹을 수 없는 풀을 뽑아 담는다.”

그들은 기발한 생각이라며 신기해 했지만 실제로 해볼 엄두는 없는 것 같다. 그리고 밭에 난 ‘잡초’는 아무 이유 없이 그 자리에 난 것이 아니라 일정한 기후조건 아래서 땅이 필요로 했기 때문에 난 것이다. 가령 땅에 필요한 특정 요소를 ‘잡초’를 통하여 조달하려고 한다든지 또는 땅에 필요한 특정 생물을 유인하기 위해 ‘잡초’를 내었다든지 하는. 아무튼 자연상태에서 자라난 어떠한 풀들도 고정관념에 의하여 함부로 제거하는 것은 ‘바이오다이나믹 농법’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그래도 이곳의 온실은 생물 다양성의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한 온실 안에 되도록 여러 가지 작물을 기능적으로 배치하여 심어 놓았다. 토마토 온실의 경우 곤충들을 유인하기 위해 향기가 짙은 허브를 사이사이에 심어 놓았으며, 온실 한쪽 구석에는 작은 연못까지 만들어서 식물과 작은 생물들 사이의 상호교류를 꾀하였다.

나는 이 날 콩을 수확하면서 ‘브로드 빈’(Bread Bean)을 처음 보았는데 대단히 유용한 작물 같았다. 콩깍지 길이가 다 자라면 아이 팔뚝 만하다. 처음 보았을 때에는 하도 커서 징그러운 마음에 먹고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덜 익은 브로드 빈을 날로 먹어보니 향긋하고 달콤한게 맛이 그만이다. 희안하게도 콩 비린내가 전혀 없다. 콩이 크니 자라기도 빨리 자라 콩대가 부드러운 것이 녹비식물로도 적격이다. 게다가 땅을 비옥하게 해주는 뿌리혹 박테리아 식물이 아닌가. 나는 이 작물만큼은 우리 나라에 도입하고 싶다. 어쩌면 이미 국내 슈퍼마켓에 나와 있는지도 모르지.

핀드혼 농장의 주된 노동력은 공동체에 공부하러 온 학생들이다. 영국의 일반 농장들은 자원노동의 대가로 숙식을 제공하는데, 이곳은 찾아온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부려먹는다.’ 어떻게 생각하면 너무 한다 싶지만 모두들 자기가 좋아서 기꺼이 돈 내고 일해주며 배우는 것이다. 이들은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공동노동을 통해 ‘대안 농법’(Alternative Agriculture)을 배우며 새로운 삶의 양식을 몸에 익힌다. 아직까지는 핀드혼에 노동력이 고갈되었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고 한다.

4. 지속가능한 경제

핀드혼 공동체는 35년 동안 성장을 거듭해 오면서 주변에 40개가 넘는 사업체를 만들어 내었다. 이들은 공동체(Findhorn Foundation)의 직접 지배아래 있는 것도 있지만 대다수가 독립된 사업체로 되어있다. 공동체 운영자들은 공동체의 비대화와 그에 따른 관료주의화를 방지하기 위하여 사업체들의 독립을 적극 유도하고 있다. 지금 영국에는 ’Green Business‘ 혹은 ’Ecological Economy‘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다. 현실적 사회주의가 몰락한 이후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Green Capitalism 이다. 그린 캐피탈리즘은 자본주의를 여하히 에콜로지의 원칙에 입각하여 재편성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이다. 논자에 따라서는 여전히 자본주의를 채택하는 한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말하는가 하면, 비록 자본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자본주의 이후를 겨냥하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대안이 될 수 있다고도 한다. 나는 여기서 이 논쟁들을 소개할 여유도 능력도 없다. 중요한 것은 우리 각자가 가진 미래에 대한 비젼을 현실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이다. 어떤이는 남의 비젼을 비판하는 것에 온 힘을 쏟는가 하면, 어떤 이는 남의 비젼을 쫒아만 다니다가 시간을 다 보내기도 한다. 칠 팔십년대에 우리는 소위 ’사회과학‘ 학습을 통하여 비젼을 획득했다. 그러나 그것은 엄밀히 말하면 일정한 조건 아래서 행해진 ’주입식 교육‘과 같은 것이었다. 혹은 ’분단‘ 과 ’독재‘ 라는 특수한 상황이 빚어낸 한정된 비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좀 거칠게 말하자면, 21세기에 우리가 가져야할 비젼은 언어와 논리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뭔가 천지와의 교감 속에서 우러나는 것이 되어야 하지 않나 싶다.

핀드혼 공동체의 모든 사업체는 에콜로지의 원칙에 입각하여 운영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가령 사업의 지역적 완결성에 최우선 목표를 두고 있다든지, 사업장 내에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려고 한다든지 혹은 지역화폐운동(LETS)이나 공동체 은행, 윤리적 투자 등과 같은 대안적 경제행위를 적극적으로 수용한다든지 하는 것이 그렇다. 공동체 내의 경제행위를 일일이 알아볼 만큼 나의 체류기간이 길지 않았기 때문에 아래에 공동체 주변에서 활동하고 있는 주요 사업체들의 이름만 열거해 보겠다.

*Phoenix Community Stores 핀드혼 지역의 공동체 상점
*Phoenix Bakery 오르가닉 제빵
*Findhorn Press 출판사
*Findhorn Flower Essence 향기요법(Aroma Therapy)의 연구개발 및 판매
*Wind Park 풍력발전사업
*Findhorn Bay Housing Company 택지개발 및 건축
*Gnosis 콤퓨터 소프트웨어 개발 및 운영에 대한 상담
*Trees for Life 스코트랜드 산림 재생 사업
*Moray Steiner School 스타이너 어린이 학교
*Minton House 휴양 및 워크샾 센터
*Newbolt House 휴양 및 워크샾
*Health Works 대안의학센터
*Findhorn Center for the Arts 미술 창작
*Findhorn Crafts Association 공예, 도예, 직조 등
*Eco-Village Ltd 에코 디자인, 에코 하우징
*Ecopia Project 소비자 협동조합, 공동체 은행 등
*Ecologia Trust 러시아 공동체와 프로그램 교환

핀드혼 공동체에는 지금도 새로운 사업체와 프로젝트가 계속 생겨나고 있다. 공동체를 끊임없이 새롭게 하려는 움직임이다. 근자에 진행되고 새로운 사업 중에 가장 이목을 끄는 것은 핀드혼 대학 설립을 위한 준비작업이다. 이 문제는 워낙에 덩지가 큰 사업이라서 아직도 내부에서 찬반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 모든 사업체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지속 가능한 지역 공동체의 건설”에 있음은 두 말할 것도 없다. 이 사업체들 중 공동체의 중심에 위치해 있는 피닉스 코뮤니티 상점 하나만 이야기하고 다음으로 넘어가기로 하자.

피닉스는 내가 지금까지 다녀 본 이런 종류의 상점 중 가장 규모가 크고 번성하는 상점이다. 취급하고 있는 품목과 수량에 비해 건물이 너무 협소하게 느껴질 정도다. 진열된 상품 중 상당수는 자체 생산품이다. 오르가닉 식품이나 책, 공예품 등이 그렇다. 먼저 입구에 들어서면 공동체내의 주요 소식을 전하는 게시판이 나온다. 정면에서 볼 때 왼편에 책, 중앙에 공예품 오른쪽에 식품 순으로 진열해 놓았다. 서가의 북 콜렉션이 적어도 뉴 에이지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핀드혼이 오랫동안 스피리츄얼 공동체(Spiritual Community)로 명성을 누려왔다는 사실이 짐작이 간다. 그러나 그 밖의 분야도 콜렉션이 대단한 수준이다. 나는 서가에서만 이틀 오후를 보냈다. 서가 한 켠에는 각종 CD와 테이프가 있는데 정리가 제대로 안되어 어수선하다. (그래도 매상고는 서적과 비슷한 수준이란다) 공예품 중 상당수는 Fair Trade(제3세계 상품을 제값 매겨서 수입하는 운동)를 통해 들여온 제3세계 상품이다. 오른쪽 안으로 들어가니 대체의약품 코너가 있는데 그 가짓수와 물량에 압도당할 지경이다. 대체의학 관련서적도 빼곡이 꽂아 놓았다. 공동체 안에 아로마 세라피(향기요법) 센터와 대체의학센터가 있어서 이 분야에 관련된 상품이 특별히 많은 듯했다. 식료품은 거의가 ‘오르가닉’을 취급한다. 자체 생산물 뿐 아니라 스코트랜드 인근의 지연식품들도 이곳에서 취급한다. 바로 옆 건물엔 오르가닉 제빵(베이커리)이 있는데 거기서 구워낸 빵으로 공동체 식구들의 대부분을 먹여 살리는 것은 물론 주말에는 지역에 있는 농가 직거래 장터에 가서 하루에 1200개나 팔고 온단다.

지금 피닉스는 중대한 전환기에 처해 있다. 날로 성장하는 상점을 확대하는 일과 상점의 소유권을 이전하는 일이다. 피닉스는 작년에 처음으로 매상고 백만 파운드를 기록했다고 한다. 어마어마한 돈이다. 이중에 순수익이 얼마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들은 수익의 1/10을 지역의 공동체 및 교육 사업지원을 위해 기부한다고 한다. 상점의 확대는 지금의 추세로 보아 불가피해 보인다. 사실 가게 안을 돌아다니기가 너무 비좁다. 또 하나 문제는 상점의 일꾼들이 번창하는 사업으로 인해 노동시간이 한정없이 길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원래 공동체 생활의 기본 철학 중의 하나는 되도록 적게 일하고 검소하게 살되 보다 많은 창조적인 시간을 가지자는 것인데 사업을 통해 공동체를 유지 발전시키자니 원래의 순수한 의미가 퇴색한 느낌이 없지 않다. 지금까지 피닉스는 공동체 재단(Findhorn Foundation)의 단독 소유였으나 수년 전부터 물밑 작업을 계속해와 이제 곧 상점에 관계하는 모든 사람들, 즉 종업원, 재단 관계자. 소비자, 공급자, 후원자 등이 모두 참여하는 ‘협동조합 소유’(Co-operative Ownership or Community Ownership) 로 전환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진정으로 이름에 걸맞는 ‘공동체 상점’이 되는 것이다.

5. 에코 빌리지 트레이닝

핀드혼 공동체는 지난 20년간의 에코 빌리지 경험을 바탕으로 에코 빌리지 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한달 코스의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이 교육 프로그램은 내용이 알찰 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온 참석자들의 다양한 정보교환으로도 인기가 높다. 커리큘럼을 들여다보면 생태 공동체 건설을 위해 필요한 거의 모든 분야를 다루고 있다. 이를 소화하기엔 한 달이라는 기간이 너무 짧지만 참석자들의 대부분이 활동가들이므로 인트로덕션 혹은 방향전환의 계기로서 아주 좋은 프로그램으로 보여진다. 나는 너무 늦게 이 프로그램의 존재를 알게되어 시기를 놓쳤지만(매년 2월중에 시작) 언젠가는 꼭 한번 참여하고자 하는 꿈을 접어두고 있다. 참고 삼아 여기에 9개의 과목으로 짜여진 커리큘럼을 소개한다.

*Eco-Villages and the Emerging Paradigm
*Building Effective Groups: Democracy, Empowerment and Creativity
*Permaculture-Design for Sustainability
*Earthshare: food, Farming and Community
*Towards s Social Economy
*Fundraising & Networking
*Building for the New Millennium
*The Healing Power of Community
*Deep Ecology, Wilderness & Ecological Restoration

희망 섞인 사족을 붙이자면, 국내 사회운동단체에서 젊고 유능한 일꾼들을 선발하여 이런 곳으로 해외연수 기회를 주게되면 개인으로 뿐 아니라 운동차원에서도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비유럽 지역 참가자들에게는 잘만 이야기하면 공동체로부터 얼마든지 교육비 보조를 받아낼 수도 있다.




핀드혼 공동체 2

에코 빌리지 얘기는 이쯤에서 접고 다시 나의 개인적인 핀드혼 경험을 얘기해야겠다. 핀드혼은 북쪽과 서쪽이 바다로 둘러싸인 해변마을이다. 마을 중간쯤에 울창한 소나무 숲이 있고 나머지는 거의 평평한 사구(Sand Dune)로 되어있다. 핀드혼을 둘러보는 첫 날. 마을에서 동떨어진 풍력 발전기에서 바닷가로 나아가는 길이다. 중간에 광대한 지역이 모두 고스(Gorse) 라는 나무로 채워져 있다. 이 나무는 영국의 해안가라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일종의 침엽수로서 나뭇잎이 그야말로 바늘 끝 같다. 다 자라야 사람 키만큼 밖에 안 큰다. 이 나무가 자라는 곳에는 도무지 접근을 할 수가 없다. 사람이 접근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다른 식물들도 이 나무들 속에서는 자랄 수가 없다. 정말 징그러운 나무다. 나는 이 나무에 고슴도치 나무라고 별명을 붙여 주었다. 그러나 봄이 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일제히 노란 꽃을 피워대는 것이 정말 장관이다. 이 곳의 고스숲에는 잔디풀이 굉장히 잘 발달되어 있는데 얼마나 오랜 세월 나고 죽고 또 났는지 푹신하기가 응접실의 소파 저리가라다. 발로 쾅쾅 밟아 보아도 땅바닥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이다. 그런데 그 위에 똥그란 토끼 똥이 엄청나게 깔려있다. 토끼가 똥을 얼마나 많이 싸는지 토끼를 길러봐서 잘 안다. 핀드혼 일대엔 정말로 토끼가 많다. 토끼들 등쌀에 이 곳의 정원은 모두 이중 삼중의 철조망을 쳐 놓았다.

고스 숲을 지나니 갑자기 일망무제의 황무지가 나타난다. 황무지라 하지만 자세히 보면 아주 칼라풀하다. 스코트랜드 특유의 헤더(Heather) 라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사철나무 비슷한데 잎 크기가 사철나무 잎의 1/4도 안되고 가지 끝에는 코딱지 만한 분홍색 꽃이 잘잘하니 맺혀있다. 키가 겨우 발목 근처에나 올까말까할 이것이 둥글둥글 무리를 지어 온 사구를 뒤덮었는데, 처음 이 광경을 마주치는 순간 숨이 헉하고 막히는 것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야생의 들판(Wilderness) 이었다. 사람이 사는 마을 주변에 이런 ‘윌더니스’가 있다니! 이 헤더들판은 바닷가에 가까워질수록 사구의 굴곡이 심해짐에 따라 더욱 현란한 장관을 연출한다. 나는 이후로도 심심하면 찾아와서 이 황량한 아름다움에 젖어있곤 하였다.

바닷가에 이르면 모래사장이 한없이 길게 뻗어있다. 이렇게 좋은 모래사장이 있어도 수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기나 긴 해안선 중간쯤에 접근불허의 철조망이 나란히 달리고 있어 가까이 가보니 군용 비행장이다. 2차 세계대전 중 유엔군에 의해 건설된 것이라 한다. 왜 하필이면 이렇게 경치가 좋은 곳에 있냐고 물으니 이 근방에서 핀드혼 지역이 가장 맑은 날이 많기 때문이란다. 장자의 말이 딱 맞는다. 쓸모가 많은 놈은 제 명에 못 산다더니. 핀드혼은 이 놈의 비행장 때문에 하루에도 수십 번 씩 인상을 찡그리고 살아야 한다. 물론 살다보면 이골이야 나겠지만, 학창시절 비행장 옆 학교에서 공부를 했던 나로서는 어찌하여 공동체 설립자들이 이런 곳에 자리를 잡았는지 이해가 잘 안 갔다. 이 비행장은 때때로 평상시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굉음을 낼 때가 있는데 머리 위로 지나가는 비행기를 보면 아마도 전시에나 만들어졌음직한 거대한 구형 수송기가 날아가고 있었다. 비행기 타고 이 먼 곳까지 찾아온 나이지만 그런 경우를 당할 때마다 과연 저들이 누구로부터 저렇게 산천초목이 벌벌 떨 정도로 소음을 내어도 좋다는 권리를 부여받았는지 의심스럽다. 그들은 하늘의 무법자요 독재자다. 어느 나라엘 가든 군대는 성역이다. 거기엔 에콜로지고 이웃이고 간에 없다. 논리는 간단하다. 나라가 침공 당하면 생태환경이고 이웃이고 간에 보존할 수 없기 때문이란다.  여기 핀드혼 해변가에는 저 군인들의 오만한 사고방식이 자연의 위대한 힘 앞에서 초라하게 나자빠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2차 대전 중 이곳의 군인들은 독일군의 침공에 대비하여 해안가에 콘크리트 방벽을 세우고 곳곳에 토치카를 세워 놓았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파도에 의한 해안침식으로 인하여 모두 무너져 내려서 지금은 모래사장 위에 군데군데 머리만 내밀고 있다. 마치 영화 ‘혹성탈출’의 마지막 장면을 보는 듯하다. 문명의 최고수준을 뽐내던 ‘위대한’ 미국의 상징이었던 ‘자유의 여신상’이 해변 모래사장 위에 반쯤 파묻혀 있는...

민톤 하우스에서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며 4일을 보냈다. 오랜 떠돌이 생활에 지친 내게는 정말 꿀맛 같은 휴식이다. 이제 워크샾 날짜가 닥침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방을 비워야만 한다. 아침에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웬 젊은이가 다가와서 말을 건넨다. 아니 다가온게 아니라 이 집에서 일을하고 있는 일본여자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끼어든 것이다. 파비오라고 자기이름을 밝히면서 스위스에서 왔다고 한다. 이스라엘 키브츠에도 좀 있다가 인도의 한 아쉬람에서 6개월을 보낸 뒤 이리로 온 것이라고 한다. 오늘 핀드혼을 떠난단다. 스위스로 돌아가면 농사일에 도전해 보겠다고 자기 포부를 말한다. 나도 농사를 짓는다고 하니까 갑자기 친해진 것처럼 이것저것 물어본다. 밖에서 택시 경적소리가 나니까 부랴부랴 가방을 열더니 메모지에다 자기 이름과 이메일 주소를 적어주고 스위스에 오거든 연락하라고 한다. 그리고는 핀드혼 공동체 역사를 다룬 책 한권을 선믈로 준다. 전날 책방에서 살까말까하고 망설이다가 그만둔 책이다. 나도 밥 먹고 바로 나가야한다니까 친절하게도 주인여자가 아주 좋은 사람이라며 B&B(Bed & Breakfast) 한집을 가르쳐 준다. 고맙다고 말할 사이도 없이 짐을 들고 나가버린다. 만난지 몇 분 되지도 않았는데 이런 친절이 어디서 나오는지 생각해 본다. 확실히 핀드혼에는 무언가 베풀고싶어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짐을 싸 가지고 체크아웃을 하는데 데스크에서 공동체 단지 내에 있는 B&B 한군데를 또 가르쳐 준다. 아무 생각 없이 두 번째 가르쳐준 집으로 가기로 한다. 무거운 짐을 낑낑거리고 들고나오니까 매니저가 와서는 자기 차로 가는 곳까지 태워주겠단다. 이런 고마울 데가! 가보니 피닉스 상점 근처에 있는 조그마한 단독 주택이다. 조금 전에 전화하고 왔는데 집에 아무도 없다. 대신 문 앞에 키가 꽂혀 있고 그 위로 메모지가 하나 붙어있다. 결혼식에 가기 때문에 집을 비우니 오른쪽 방에 짐을 풀고 마음놓고 지내란다. 들어가 보니 작은 방이 세 개 있는데 그 중에 2개를 손님방으로 쓰고 있는 것 같다. 거실 소파에 앉아 서가에 꽂힌 책들을 보니 거의 모두가 신비주의에 관한 것들이다. 벽에는 커다란 세계지도가 걸려있는데 지형이 좀 이상하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예언가가 그린 미래의 세계지도이다. 이 지도에 의하면 미국은 서부지역이 완전히 물에 잠기고 아프리카도 절반이 날아간다. 제일 타격이 심한 나라는 러시아다. 거의 80%가 물에 잠긴다. 우리 나라도 절반쯤은 날아간다. 대신 바다 여기저기에 새로운 대륙이 생겨난다. 내가 읽은 한국 예언가들의 예측과는 사뭇 다르다. 한가지, 다가올 미래에 무언가 엄청난 지질학적 변동이 있다는 점만은 같다. 재미있는 집에 온 것 같다. 주인 없는 집에 혼자 있기가 뭣하여 나도 메모를 남겨놓고 나가버렸다.


밖에서 저녁식사까지 해결하고 집에 들어가니 나이 지긋한 할머니 한 분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기다리고 있다. Mo Willet. 핀드혼 주민 협의회(Council) 주요 멤버로 7년째 이곳에서 살고있는 ‘고참’이다. 말씀이나 행동을 보면 전혀 신비주의에 탐닉할 분 같지가 않다. 행동이 거침없고 활달하다. 살아온 이야기를 대충 들어보니 굉장히 모험심이 강한 분이다. 집안 구석구석을 살아온 궤적의 편린들로 장식해 놓았다. 한쪽 다리를 약간 전다. 젊었을 때 테니스를 잘 쳐서 직업운동선수로 나가려고 하였단다. 자신의 이름 Mo도 그 무렵 윔블던 대회 최연소 우승기록을 세웠던 여자선수의 이름을 따서 고쳤단다. 그는 지역대회에서 우승하여 드디어 꿈에 그리던 윔블던 구장에 섰단다. 그런데 신은 그에게 다른 길을 예비해 놓으신 모양이다. 첫 게임에서 그만 다리가 부러지고 만 것이다. 그 뒤로 수술을 여러 번 하였건만 결국은 다리를 약간 절게 되었단다. 결혼 두 번에 아이들 셋을 낳아 다들 보내버리고 7년전부터 혼자 이곳에 와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야기 도중 전화가 와서 기다리는 사이 탁자 위에 놓인 잡지들을 들춰본다. 역시 대부분 UFO 나 초능력 따위의 신비주의 관련 잡지들이다. 그 속에 낯익은 잡지가 하나 눈에 띈다. Amnesty. 이 분의 관심이 다양한 것은 알겠는데 엠네스티 활동까지? 통화를 마치고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자 나는 잡지를 손에 들고 물었다. “혹시 엠네스티 회원이십니까?” 그렇다고 한다. 그러나 집회활동은 못하고 이렇게 뉴스레터나 받고 있단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간단히 내 소개를 한다. 십사년 간 옥살이를 한 정치수 출신이며 국제 엠네스티 초청으로 여기까지 왔다는. 반색을 한다. 갑자기 오랫동안 떨어져 있다 다시 만난 가족을 대하듯 애틋한 정이 넘쳐흐른다. 그 동안 그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이것저것 묻는다. 얘기를 대충 듣고 난 그가 자세를 고쳐 잡으며 요청을 한다. 당신의 얘기를 이 곳 공동체 식구들에게 들려 줄 수 없겠느냐는 것이다. 나는 엠네스티와 관련하여 이런 요청을 받으면 거절을 할 수가 없다. 그 동안 엠네스티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은 것은 둘째로 치고 아직도 감옥에 갇혀 있는 제3세계의 수많은 양심수들을 생각하면 내게 시간과 능력이 허락하는 한 무엇이든 해야했다. 나는 이미 여러 차례 이러한 모임을 가져봤기에 나의 발언이 제3세계 현실과는 십만팔천리 떨어져 있는 서구의 선량한 시민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도 잘 알고 있다. 그러겠노라고 수락했다.

어떻게 이 먼 곳까지 왔냐고 묻는다. 나는 나의 관심사를 이야기하고 에코빌리지를 둘러보고 공동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자 왔다고 말한다. 프로그램 등록은 했느냐고 묻는다. 나는 이미 며칠 전에 대금 지불을 포함하여 등록 절차를 마쳤다. 그는 나 같은 경우 참가비 면제를 받을 수 있다며 자기가 환불받을 수 있도록 해주겠단다. 그러더니 사방에 전화를 걸기 시작한다. 대충 낌새를 보니 저쪽에서 굉장히 난감해 하는 것 같다. 이미 지불이 완료된 것인데 다른 방식으로도 나를 도울 수있을 것이니 제발 그만 두라고 사정을 한다. 할 수 없다는 듯 그제야 수화기를 놓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또 하나의 작은 방에 묵고 있는 데런이라는 여자가 들어온다. 삼십대 중반 무렵의 지적으로 생긴 웨일즈 출신 여자이다. 현재 서부 아프리카 감비아에서 사회사업을 하는 활동가이다. 주로 하는 일은 여성들의 의식개발과 지위향상에 관련된 것이란다. 자기를 포함하여 친구 몇몇이 조그만 자선사업단체(Charity)를 조직하여 외부의 도움 없이 현지에서 외국인들을 상대로 카드를 그려 팔아서 그 돈으로 사업을 꾸려나가고 있단다. 대단한 여성들이다. 현재 영국에 와서 휴가를 보내고 있으며 시월이면 다시 감비아로 간단다. 피곤해 보이는 Mo가 먼저 침실로 간 뒤에도 밤늦도록 데런과 이야기꽃을 피웠다.

다음날 오후 바닷가 산책을 갔다오니 모의 집에 손님 두 사람이 와 있다. 인사를 나눴다. 제레미와 엠마. 모두들 십여년 넘게 산 고참들이다. 둘 다 공동체와 외부 사이의 연락업무를 담당하고 있단다. 말하자면 공동체의 대외창구인 셈이다. 이들은 무언가 흥미로운 껀수를 감춰들고 왔는지 싱글싱글하며 나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본다. 제레미가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내가 한국 TV에 방영되어도 괜찮으냐는 것이다. 이게 무슨 아닌 밤에 홍두깨인가 싶어 좀 더 자세하게 말해보라고 다그친다. 자기네들에게도 놀라운 우연의 일치라며 자초지종을 이야기한다. 자기들이 기억하기에 내가 핀드혼에 찾아온 최초의 한국인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후 만난 모든 사람들도 같은 말을 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다음주에 한국 국영 TV 촬영팀이 이곳에 올 것이며 또 그 주말에는 한국 기독교 선교단체의 공연이 있을 예정이란다. 한국사람이라곤 그림자도 안 비치던 곳에 한꺼번에 세 무리의 한국사람들이 들이닥치게 되니 기가막힌 우연이라는 것이다. 전에도 나라마다 이런 바람이 불곤 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웨이브(Wave) 라는 단어를 썼는데, 전에도 이런 식으로 갑작스럽게 Japanese Wave, Brazilian Wave, Spanish Wave가 밀어 닥쳤다는 것이다. (이렇게 물결이 한번 몰아 닥친 이후에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바람에 그 나라 말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생겨나게 되었단다)
이제는 코리안 웨이브가 밀려오는 것이 아니냐며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다. 그건 그렇구, 그들은 한국의 촬영팀이 오게되면 이 곳의 어디를 안내해야 할지에 대하여 논의를 하고 있었는데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내가 이곳에서  공동체 체험하는 장면을 찍고 한국말로 인터뷰를 하면 홍보효과가 더 있을 것이라며 나에게 의사를 타진해 보는 것이다. 나는 뭐 숨어 다니는 사람도 아닌데 안 될게 뭐 있나싶어 당신들 뜻대로 하라고 대답했다.

이건 여담인데, 작년에 한국을 떠난 이래 이상하게도 TV 카메라와 마주치는 일이 잦았다. 네덜란드에서는 버스를 타려고 하는데 일단의 광고방송 촬영팀에게 붙들려서 본의 아니게 새로 개발한 콤퓨터 소프트웨어 제품을 광고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아마도 한복을 입고 있는 내 모습이 특이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노르웨이에서는 TV에 나가 어벙벙한 표정으로 토크쇼까지 하였고, 슈마허 대학에서는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영국 BBC 촬영팀이 와서 학교 생활의 이런저런 모습들을 찍어갔다. 무슨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이라는 특집 프로그램이었던 것 같았는데 확인을 해보지 않아 잘 모르겠다. 이번엔 한국 티브이가 여기까지?

그런데 문제가 있다. 그들 말에 의하면 아직까지 핀드혼 교육관에서 행해지는 교육 프로그램 내부를 외부에 공개해 본 적이 없다는 것과 한국 촬영팀의 촬영의도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미리 날짜를 당겨서 결말을 이야기하겠다. 공동체 스태프들이 내가 속해 있는 그룹에 와서 촬영협조를 부탁하자 그룹 성원들 간에 논쟁이 벌어졌다. 절반쯤은 상관없다는 의견이고 나머지는 거부의사를 표시한다. 이것은 내용상 개개인의 사적인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프로그램이므로 외부인에게 공개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이다. 논의를 시작할 때 반대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안 되는 것으로 했기 때문에 결론은 자명하다. 이 사실이 통고된 후 나는 우연히-그러나 내 생각엔 교육생의 일정을 잘 알고 있는 스태프들이 자리를 마련한 것 같다-핀드혼 코뮤니티 식당에서 KBS 촬영팀과 마주쳤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날이 일주일에 하루 날 정해서 하는 ‘침묵의 식사’ 시간이었다. 이역만리 오지(?) 에서 동포를 만났는데 말도 못하고 눈인사만 나눈 채 묵묵히 밥을 먹는 모습이 마치 어색하게 연출된 연극을 보는 것 같았다. 식사가 끝나서야 겨우 통성명을 하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들은 이미 나의 이력에 대해 알고 있었다. 공동체 스태프들이 다 얘기한 모양이다. PD라는 직함이 찍힌 명함을 건넨 젊은 친구가 묻는다. “내일 모래 여기서 기자회견을 하신다면서요?” 오잉! 왠 기자회견? “기자회견이 아니라 공동체 사람들의 초청에 의하여 제가 감옥에서 겪었던 정신적, 심리적 변화과정을 이 곳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그들은 KBS 의 ‘세계는 지금’ 이라는 프로를 제작하고 있는데 얼마 전 에딘버러 페스티발을 다녀왔단다. 여기에 와서는 에코빌리지 취재를 마쳤으며 이제 북 아일랜드에 가서 한가지만 더 취재하고는 돌아갈 것이라 한다. 그러면서 이곳의 사는 모습이 밖의 사회와 하나도 다를 것이 없는데 무엇 때문에 사람들이 이렇게 찾아오고 그러는지 이해가 잘 안 간다는 것이었다. 나는 변함없는 매일의 일과 속에서 ‘신성’을 추구하는 것이 이들의 목표라고 말해주고 프로그램 일정에 쫒겨 간단한 눈인사만 나눈 채 식당을 빠져 나왔다.

핀드혼 체험기 3


핀드혼에서는 공동체 생활 체험과 내면세계 탐구에 관한 교육 프로그램을 연중무휴로 운영하고 있다. 모두 7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Experience Week 이라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다른 코스를 하기 전에 먼저 이 코스를 밟도록 권장하고 있다. 사실 현재 핀드혼 공동체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코스를 마친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이 프로그램들은 공동체 체험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인 동시에 완전한 공동체 성원이 되기 위한 훈련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모든 프로그램이 유료이므로 결국 핀드혼 공동체 성원이 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투자를 해야만 한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들은 공동체 성원 충당과 비지니스를 교묘히 결합시켜 놓았다. 해마다 쉰개 이상의 나라에서 온 4천여명이 프로그램에 등록한다고 하니 대단한 ‘장사’이다. 회계 담당자의 말에 의하면 핀드혼 공동체를 운영하는 자금의 80%가 이들 학생으로부터 나온다고 한다.

프로그램은 매주 토요일에 시작해서 일주일 뒤인 금요일에 끝난다. 금요일 저녁에는 교체되는 참가자들로 인해 조금 번잡스럽다. 그날 못 떠난 사람들은 하루를 더 묵고 다음 날 떠나기도 한다. 첫 날 저녁이었다. 방에 짐을 풀어놓고 근방을 한번 둘러보려고 문을 나섰다. 이 교육장은 예전에 호텔이었던 것을 개조해 만든 것으로서 건물 자체가 운치도 있고 주변경치도 괜찮다. 바로 앞의 골프장을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 위치해 있어 눈앞이 시원하다. 나는 점점 빛을 잃어가고 있는 지평선 너머를 바라보며 주머니에서 담배 한 대를 꺼내어 입에 물었다. 그때였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웬 젊은 여자가 다가와 담배 한 대만 줄 수 없냐고 묻는다. 호젓한 저녁에 말동무가 생겼구나 싶어서 두말 않고 주었다. 불을 붙여주고 나서 애연가이시냐고 물었다. 아니란다. 원래 안 피운단다. 그런데 왜? 이유인즉슨 이렇다. 자기는 어제 프로그램을 마친 참가자인데 자기에게 닥친 쇼크가 하도 커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던 중 내가 담배 피우는 모습을 보고 담배라도 한번 피우면 좀 가라앉으려나 하고 청하는 것이라 한다. 나는 속으로 이 프로그램이 그렇게까지 심각한가? 하고 내심 놀란다. 시실 나는 학창시절부터 이런 류의 인성훈련 프로그램에 관심이 많아서 스스로 연구도하고 후배들과 함께 실험도 해보는 등 여기저기 주워들은 것이 많아 그다지 큰 기대는 않고 있었다. 그저 이 공동체에서는 어떻게 하나 보고 싶었다. 그녀의 얘기를 대충 들으니 한번도 이런 경험이 없는, 특히나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이 사회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이런 식의 공동체 체험이 충격이 될 법도 하였다. 주위가 완전히 어두워지고 나서야 나는 그녀의 앞날에 행운을 빌어주고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날 프로그램 참가자 전원의 상견례가 있었다. 우리 그룹은 26명인데 남자라곤 나를 포함해 셋 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남자들은 대부분 일터에 있을 것이고, 아무래도 여자들이 남자보다 더 이런 프로그램에 관심이 많다. 확실히 여자가 남자보다 더 내면세계의 탐구에 관심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어쩌면 그것은 남자들이 지배하고 있는 외면세계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일는지도 모르겠다. 참석자들을 국가 별로 보니 참으로 다양했다; 독일, 스위스, 미국, 일본, 이태리, 덴마크, 네덜란드, 잉글리시, 그리고 한국. 일본 참가자가 넷씩이나 되었다. 둘은 나이든 아줌마이고 둘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대학 1년생이다. 내가 잉글리시를 따로 적었는데 이곳은 스코트란드이기때문에 같은 영국이라도 서로를 구분하는 경우가 많다. 26명중에 영국사람은 겨우 둘밖에 안 된다. 이것은 곧 핀드혼 공동체가 국내에서 보다 해외에 더 잘 알려져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돌아가면서 죽 자기 소개를 한다. 나이와 직업, 사회적 배경이 각양각색이다. 재미있게도 전에 참가했던 자신의 엄마가 권고해서 왔다는 사람이 둘이나 되었다. 이곳에 참가한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무언가 자기 삶에 있어서 새로운 전기를 모색해 보려는 동기가 강하다는 것이다. 사실 그렇지 않고서야 비싼 돈주고 이렇게 먼 곳에까지 올 리가 없다. 소개를 하던 중 일본에서 온 학생 차례에서 문제가 생겼다. 영어를 전혀 못하는 것이다. 유카라는 여학생은 고교시절 미국에서 좀 살았기 때문에 상당히 말을 잘하는 편이다. 그러나 그녀의 친구인 아이미는 영어를 전혀 못했다. 유카의 도움으로 간신히 자기소개를 마친 아이미는 이 일로 인하여 굉장히 충격을 받은 듯했다.

얘기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프로그램의 내용을 대충 살펴보면 이렇다. 대개 오전에는 공동체내의 여러 작업반에 할당되어 일을 한다; 건물청소, 정원관리, 식사준비 및 설거지, 농장관리 등이 그것이다. 사실상 핀드혼 공동체의 유지관리는 돈 내고 참가한 교육생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후에는 주로 건물 안에서 여러 가지 인성훈련 프로그램이 행해졌다. 저녁시간에는 인성훈련과 함께 초청강사 시간이 있다. 짧은 기간에 여러 가지를 하다보니 시간표가 상당히 빡빡한 게 사실이다. 여기에다 프로그램 하나 하나를 다 말할 수는 없고 그중 인상깊었던 것만 몇 가지 추려서 소개하겠다.

둘쨋날 오전에 ‘영적인 춤’ (Sacred Dance) 이란 프로그램을 마치고 명상의 집에 모여 ‘천사의 명상’ (Angel Meditation)이라는 시간을 가졌다. ‘천사’ 라고 하면 비기독교 전통사회에서 자란 사람들에게는 아주 낯선 개념이지만 서구인들에게는 마치 우리의 삼신할미처럼 친근한 존재이다. 어느 정도냐 하면 ‘천사학’ (Angelology)이라는 학문분과가 있을 정도이다. 천사는 핀드혼 공동체에서 ‘안내하는 정령’ (Guide Spirit)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즉 무슨 일을 하든지간에 ‘가이드 스피릿’인 천사에게 먼저 신고하고 도움을 청한다. 굳이 이들을 분류하자면 ‘정령숭배자“ (Animist) 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자연물과 사람들에게는 그것을 지배하고 있는 정령이 있음을 믿고  이 정령들과의 교신과 조화를 통해 영적인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참으로 진기한 것이, 콜럼부스의 신대륙 발견(?) 이래 서구의 기독교인들은 전세계를 누비고 다니며 대부분 애니미스트인 ’이방인‘들을 기독교도로 개종시켜 왔는데 오백년이 지난 지금 서양 기독교의 본고장에서는 애니미즘이 부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현상은 20세기 들어와 일기 시작한 ’에콜로지 운동‘과도 연관이 되어있어 간단히 보아 넘길 문제가 아니다.

좌우간, 명상의 방에 들어가 빙 둘러앉으니 한 가운데에 천사 그림이 새겨진 카드가 나란히 놓여 있다. 마치 오늘의 운세를 보듯 각자 카드 하나씩을 뽑아든다. 카드의 뒷면에는 상징적인 단어가 한마디씩 적혀 있다. 그 카드를 가지고 한참동안 명상에 잠긴 뒤 천사로부터 받은 메시지가 무엇이었는지, 혹은 어떤 느낌이었는지 이야기하는 것이다. 내가 뽑은 카드에는  ‘Purification‘ (정화) 이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비교적 초반에 이야기하게 되었는데, 내 바로 앞 차례의 여자가 우는 바람에 이후의 분위기가 이상하게 변해갔다. 그 여자는 심리치료사인데 정작 자신의 심리는 치료하지 못하여 여기에 와서 울면서 그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었다. 나는 ’정화‘ 라는 단어를 입력시켜 놓고 어떤 느낌이 올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내 차례가 되어 말하는 그 순간까지 내 마음은 지극히 담담했고 평화로웠다. 나는 ’정화‘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새겼다. “감옥에 있을 적에 내 생활은 지극히 단조롭고 또 어떤 의미에서는 순수했다. 그러나 출옥 후 일년이 지나는 동안 잡다한 세상일을 겪으면서 내 마음은 상당히 오염이 되었다. 오늘 나의 ’안내 천사‘는 내게 정화의 필요성을 일깨워 주는 것 같다”. 그런데 말머리에서 “지극히 단조로웠고... ”를 말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헉, 하고 감정이 북받히면서 목이 메이는 것이었다. 나중엔 눈물까지 줄줄 흘렀다. 사실 이것은 전혀 슬픈 내용이 아니다. 어디에서고 덤덤히 진술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내가 생각해도 이상스러울 정도로 감정이 북받쳐 올라왔다. 정말로 어떤 아지못할 힘에 의해 정화의 작용이 일어난 것일까? 어쩌면 내가 아직도 그 시절의 어려웠던 기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 뒤의 모든 참석자들도 자기 느낌을 얘기하면서 하나같이 흐느꼈다. 들어보니 별로 슬픈 이야기도 아닌데 말이다. 눈물은 참으로 감염력이 대단하다. 특히나 자신의 내밀한 상처를 드러내 보일 때는 더욱.

세쨋날은 내용도 가장 충실했고 그만큼 새로운 경험도 많이 했다. 오전에 한 ‘Group Discovery Game' 중에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Unfolding Game'이라는 것으로서 서로 짝을 지어 상처받아 웅크리고 있는 상대방을 부드러운 마사지와 가벼운 접촉으로 ‘풀어주는’ (unfolding) 게임이다. 몇몇 참가자는 이 게임을 거부하기도 했다. 잘 모르는 타인에게 자신의 몸을 내어 맡길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서구인들은 개방적인 연애로 유명하지만 자신의 몸에 타인의 손길이 와 닫는 것은 지극히 꺼린다. 우리는 이와 반대로 개방적인 연애는 못하지만 신체접촉에 있어서는 오히려 관대한 측면이 있다. 내 짝은 7년전에 남편과 사별했다는 예순 넘은 독일 할머니(?)가 되었다. 젊은 여자들도 많은데 하필이면 이중에 가장 노인네와 짝이 되었나하며 운도 되게 없다고 내심 서운해했지만 끝나고 나서 보니 정말 좋은 파트너를 만났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먼저 풀어주는 역할을 하기로 했다. 그분은 마루바닥에 마치 누에고치처럼 옹크리고 모로 누웠다. 나는 먼저 발부터 시작하여 부드러운 마사지로 전신의 기혈을 풀어주면서 팔다리를 하나씩 편한 자세로 옮기어 놓았다. 나이 드신 분이라 오히려 마음 편하게 ‘만질’ 수 있었다. 마지막엔 상체를 일으켜 앉힌 다음 뒤에서 포옹을 한 채 한참을 있었다. 이번에 자리를 바꾸어 내가 상처받은 짐승이 되었다. 그분도 나와 비슷한 방식으로 풀어나갔지만 조금 달랐던 것은 발 마사지에 특별히 많은 시간을 할애한 점이다. 발 마사지는 신체접촉 부위가 가장 작은 부위이지만 그 효과는 가장 탁월하다. 이런 것을 알고 또 잘 할 수 있는 젊은 여자는 별로 없다. 그분은 노련한 솜씨로 발의 이곳저곳을 주물러주었다. 정말로 기분이 좋았다. 발이 풀리니까 손발은 저절로 풀리는 것 같았다.  서로 최선을 다했음을 알 수 있었고 결과 또한 만족스러웠다. 그후로 이 독일 할머니는 나만 보면 “내 파트너!” 하시며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

이날 저녁 총괄시간에 많은 참가자들은 이 게임이 무척 당혹스러웠다고 토로하였다. 우리가 서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성 개방 풍조나 번창하는 포르노 산업을 보고 이들의 신체에 대한 관념이 대단히 개방적일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그것은 오히려 신체에 대해 개방적이지 못한 그들의 관념을 극단적인 형태로 보여주는 역설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서 ‘개방’은 단순히 자신의 몸을 남에게 보이는 것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개방’은 ‘나‘와 ’나 아닌 것‘과의 동등한 결합 내지는 교류를 의미한다. 이것은 ’나 아닌 것‘에 대한 신뢰와 존중을 전제로 한다. 오늘날 서구인들의 관념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철저한 ’사유화‘이다. 그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서 ’사유화‘에 대한 관념을 갈고 닦아 왔다. 먼저 자연물을 사유화하고, 다음은 거기서 생산된 생산물을 사유화하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신체와 정신마저 배타적으로 사유화하였다.  이것은 자본주의 구조아래서 무제한적 상거래니 지적재산권이니 하는 형태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들의 배타적인 소유권이 포기되는 경우는 오직 그에 상응하는 값(시장가격)이 지불되었을 때이다. 그 과정에 진정한 개방과 교류는 있을 자리가 없다. 가격에 일치하는 ’교환‘ 만이 있을 뿐이다. 신체적 개방도 마찬가지이다. 오직 나의 값을 알아주는 사람에게만 개방이 허락된다. 거기에 금전적 거래는 없지만 심리적 거래가 숨어있다. 자본주의가 발전한 나라일수록 자유연애와 이혼이 빈번한 것은 ’배타적 소유권에 기초한 자유로운 (상)거래‘ 라는 관념이 짙게 깔려있기 때문이다. 이날의 게임에서 많은 이들이 당혹스러움을 느낀 것은 이들의 문화에 비추어 볼 때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핀드혼 프로그램에 처음 참가하는 사람들이 충격을 받는 것은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당연시 여겨왔던 것이나 지나쳐 왔던 것들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함으로써 이 세상과 관계를 맺는 또 다른 방법이 있음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핀드혼 사람들은 여러 가지 방법들을 연구 개발하고 있다. 집단게임을 통한 인성의 변화는 이들의 중요한 연구과제 중의 하나이다. 이를 위해 공통체안에 ‘게임연구소’라는 부설기관을 따로 마련했을 정도이다.

이날의 총괄시간에 영어를 잘 못하는 아이미 때문에 또 한번의 극적인 장면이 연출된다. 돌아가면서 혹은 자유롭게 하루의 일정을 평가하고 자신의 느낌을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모두들 한 마디씩하고 난 파장 무렵에 아이미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심각한 얼굴로 귀국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짧은 영어로 “나는 내일 간다” 하고는 내내 울면서 일본말로 자신의 괴로운 심정을 토로하였다. 그것을 옆에 있는 유카가 영어로 번역해 주었다. 첫째로 의사소통이 안되어 괴롭다는 것, 그리고 자기는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공부하라는 압박 속에서 살아왔는데 대학(간호대)에 들어와서도 그러한 압박은 변함이 없어 무엇 때문에 사는지 모르겠으며, 이곳에 무언가 좋은 것이 있는 것 같은데 현재의 자신의 상태로는 감당할 수 없어 내일 떠나기로 했다는 것이다. 사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아무런 사전 지식도 없이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친구인 유카를 무작정 따라왔던 터였다. 나는 그녀의 귀국발표와 관련하여 진행자의 무능력에 대해 은근히 화가 났다. 사실 이 프로그램은 아이미와 같은 사람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단순히 언어소통이 안 된다는 이유 때문에 도중하차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에겐 언어 말고도 수없이 많은 의사소통 방법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진행자는 아이미와 같은 사람을 위해서 특별한 배려를 했어야 마땅하다. 그것이 능력의 고하에 상관없이 누구나 받아들이는 공동체 정신이 아닌가. 이점은 앞으로도 핀드혼이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풀어가야할 문제이다. 아이미가 울면서 말하고 있는 사이 모두들 어떡하든 위로를 해주어야겠는데 어찌할 줄을 몰라 황망히 바라만 볼 뿐이었다. 아이미는 흥분해서 아까한 말을 또 반복하여 말하곤 하였다. 나는 그녀의 맞은 편에 앉아있었는데 이 상태를 어떻게 해서건 부드럽게 진정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언어의 불통으로 생긴 문제는 언어로 풀어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어 감옥에서 독학으로 익힌 일본말들을 재빨리 주워섬겼다. 벌떡 일어나 아이미 앞으로 다가갔다. 나는 그녀의 손을 감싸쥐고 일본말로 위로해 주었다.

“아이미, 영어를 못하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당신은 훌륭한 여자입니다. 우리는 모두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이 가더라도 우리는 언제까지나 당신을 기억할 것입니다.”

내 말을 들은 아이미는 어깨까지 들먹이며 더욱 섧게 우는 것이었다. 옆에 있던 일본 아줌마가 내 말을 또 영어로 번역하여 사람들에게 말해 주었다. 그러자 사람들이 하나 둘 씩 자리에서 일어나 와서는 아이미를 감싸고 저마다 위로의 말을 해주었다. 그날의 총괄시간은 그렇게 끝이 나버렸다. 다음 날 아침 진행자는 뒤늦게나마 떠나는 아이미를 위해 환송과 축복의 댄스 마당을 마련해 주었다.

네쨋날 프로그램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미국에서 활약하는 여자 풍수가가와서 지도한 ‘Landscape Temple 3'이었다. 우리말로 변역하자면 ’자연의 사원 3‘ 라고나 할까. 이것은 교육장 인근에서 가장 지기(earth energy)가 왕성한 세 군데를 돌면서 그것을 체험하는 것이다. 첫 번째 장소는 명상의 집 바로 앞인데 경사진 곳이라 자세가 불안정해서인지 제대로 느껴지지가 않았다. 두 번째 장소가 바로 클루니 힐 최고의 명당자리였다. 그것은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자그마한 산꼭대기 위인데, 바로 질러가면 채 5분도 안 걸릴 거리를 산 정상까지 나선형 오솔길을 만들어 놓아 천천히 걸어 올라가면서 에너지의 상승을 느끼도록 해놓았다. 숲 속을 헤치며 나선형 길을 따라 오르니 과연 비슷한 느낌이 오는 것 같았다. 정상에 오른 참가자들은 모두 빙 둘러서서 손에 손을 잡고 튜닝(조율)을 하기 시작했다. 몸에 힘을 완전히 빼고 이완된 상태에서 지속적으로 구음을 내었다. 사람마다 음역이 다 다르기 때문에 계속하다보면 묘한 하머니가 연출된다. 주위의 숲과 하나가 되었다고 느껴질 때까지 집단적인 구음은 계속되었다. 휘영청 밝은 달밤아래 지기가 승한 특별한 장소에서 벌이는 집단구음은 뭔지 모를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었다. 자연과 천지의 기와 스스로를 낮춘 인간들이 빚어내는 심포니였다. 이것은 우리들의 아득히 먼 조상들의 자연적인 종교(또는 주술) 행위로부터 빌려온 아이디어이다.  이 프로그램은 오늘날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천지의 기를 느끼지 못하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자연적 생명력을 일깨워주는 아주 좋은 의식으로 보여진다. 나는 돌아가면 전라도 영광 산 속에 있는 나의 농장에 명당자리를 골라 자연의 사원을 만들어야지 하는 생각을 하며 뿌듯한 마음으로 산을 내려왔다. 그런데 사실 풍수가 원래 그러하지만 이러한 전통은 이미 우리에게도 있다. 다만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다 보니 명맥이 끊어지다시피 해서 그렇지. 우리에게 영가(詠歌)라는 전통이 있다. 언제부터 비롯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조선시대 우리 선비들은 승경지에서 우러나는 흥(일종의 바이오 에너지)을 시조나 노래로 풀어내었다. 영가는 가사나 말 대신에 순전히 구음으로만 자신의 흥을 다스리는 것이다. 그것은 그 시각 그 장소에 진동하는 천지의 기에 자신의 구음을 실어 함께 노니는 것이다. 나중에 흥이 고조되면 춤까지 덩실덩실 추며 하는 경우도 있다. 영가는 굳이 승경지가 아닌 방안에서라도 천지와의 조율을 꾀하기 위해 할 수 있다. ’자연의 사원 3‘은 이것을 더욱 발전시켜 풍수지리적 요소(삼각형의 꼭지점을 연결하는 것-이러한 연구를 그들은 geomancy라고 부른다)와 공동체적 요소(집단구음)를 가미한 것이다. 

소경이 길을 안내하면 어떻게 될까? 여기 핀드혼에서 소경이 길 안내한 얘기를 하나 들려줄까 한다. 첫날 상견례 하는 자리였다. 아주 이색적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바짝 끌어안다 시피하고 문을 들어서는데 여자는 전형적인 이태리 미인처럼 생겼고 남자는 파싹 늚은 것이 무슨 중병이라도 앓고 난 사람처럼 몸 운신을 잘 못하였다. 여자가 남자에게 거의 매달리다 시피한 채로 계속 뭐라고 쫑알대며 애교를 부리는 것이 둘이 애인사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러기에는 나이 차가 너무 나는 것 같고 삼촌-조카 사이나 부녀지간으로 짐작이 갔다. 소개할 때 보니까 이들은 부부사이로서 놀랍게도 남자는 소경이었다. 그는 독일 출신이고 여자는 예측대로 이태리에서 왔다. 이름은 각각 볼프강과 키아라 (이름도 예쁘다) 이다. 말하자면 여자는 그 남자의 눈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눈 역할치고는 남이 보기에 부러울 정도로 여자의 서비스가 그만이었다. 여자의 사랑이 그만큼 지극정성이라고 보아야겠지. 며칠 지나면서 보니까 볼프강이란 남자의 인간적 흡인력과 영성이 대단하였다. 말하는 것이 부드럽고 조리정연하면서도 유머가 풍부하다. 아주 매력적인 품성을 지녔다.

공동체 훈련 코스의 다섯 번째 날은 볼프강의 날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날 오후에 ‘Creative Space' (일종의 창작교실) 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전체를 몇 개의 그룹으로 나누어서 각 그룹이 합의하에 무엇이든 창작하여 나중에 보여주는 것이었다. 대략 세 개의 그룹으로 나뉘어졌는데 첫째 그룹은 볼프강의 지도하에 ’Body Sound'라는 것을 하기로 하였고, 둘째 그룹은 나의 주도아래 ‘Collective Painting' (협동회화)을 하기로 하였으며, 셋째 그룹은 홀랜드 여자가 이끄는 ’Butterfly Dance' (집단 무용) 이었다. 셋째 그룹은 넓은 공간이 필요하여 따로 나가서 했으므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협동회화 그룹은 대충 의견수렴을 한 결과 이곳의 ‘가이드 스피릿’인 천사와 동양사상의 상징인 음양오행을 결합시켜 형상화하기로 하였다. 제시된 몇 가지 도안을 기본으로 내가 밑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각자가 알아서 색을 덮는 것이었다. 나는 종이 모자이크를 염두에 두었는데 몇몇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더니 숲 속에서 나뭇가지 돌멩이 낙엽 꽃잎 등 여러 가지 자연물들을 줏어와서는 붙이기 시작했다. 역시 여럿이 모이면 기발한 생각들이 떠오르는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꼈다. 나는 그림 전체의 통일성을 위하여 내가 그려 놓은 밑그림과 구도에 충실해줄 것을 요구하였으나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모두들 제 기분 내키는 대로 갖다 붙이는 것이었다. 일일이 간섭할 수도 없고 해서 그냥 내버려 두었다. 시간이 없어서 그림을 완성시키지는 못하였지만 여러 사람들이 와서 보고는 멋있다고 칭찬해주었다. 사실 부분적으로는 상당히 멋진 효과를 내기도 하였으나 확실히 전체적으로 통일성이 떨어졌다. 어쩌면 통일성이 떨어진다고 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협동화란 것은 남이 어떻게 그리건 상관없이 나에게 할당된 부분에서 최선을 다하면 그만이니까. 거기에 통일성을 부여하는 것은 신의 영역에 속한다. 사실 예측할 수 없는 협동의 효과를 감상하는 것이 협동화의 묘미이기도하다. 나는 그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내심 내가 밑그림을 그린 사람으로서 전체 그림이 내 의도대로 그려지기를 바랐던 것이다. 협동화의 정신에 위배되는 명백히 잘못된 태도이다. 그랬기 때문에 시간이 끝나고 나서도 내 안에는 미진한 느낌이 계속 남아 있었던 것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마음을 비우고 자기 일에만 몰두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끊임없이 성원들과 의견교환을 해 가면서 작업을 하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 이 둘은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 다른 접근방법으로 보이지만(전자는 ‘개인주의적,’ 후자는 ‘사회적’) 실제 작업에 있어서는 서로 뒤섞여 나타난다. 자기 일에만 몰두한다고 하지만  작업 자체가 한 마당에서 이루어지는 협동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건 서로 영향을 주고받게 되어 있다. 그리고 끊임없이 의견교환을 한다해도 결국 자기 작업을 완성시키는데 있어서는 전자의 자세가 필요하다. 때문에 나는 두 가지를 다 아울러 ‘공동체적 접근방법’ 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 두 가지를 명확히 판별하고 수렴하는 것이야말로 ‘Group Dynamics'(집단동학)를 이해하는 요체이다. 왜냐하면 그에 근거하여 그룹내부에 있어서 리더의 역할, 성원과 성원 사이의 관계 등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볼프강이 리드하는 그룹은 아연 활기에 차 있었다. 볼프강은 앞이 전혀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재담과 흡인력으로 성원들을 완전히 사로잡고 게임을 진행하고 있었다. 'Body Sound'란 온몸을 이용하여 소리를 내는 게임인데 그냥 아무렇게나 소리를 내지르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형식아래 집단적으로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게임은 리더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리더가 성원들의 자세와 위치 등을 지시하고 리더의 매김 소리에 맞추어서 집단이 소리를 질러대기 때문이다. 그는 성원들을 모두 마루바닥에 눕힌 뒤  어깨동무를 하게 하거나 서로의 배를 베고 소리를 질러대게 하였다. 이 포지션이 중요한 것은 자신의 신체가 대지나 이웃들 속에 파묻혀 있어야 사람들은 두려움 없이 하고싶은 소리를 마음껏 질러댈 수 있다. 가령 리더가 “야, 오늘은 토요일이다. 디스코 장에 가서 몸이나 풀어보자!” 하고 말하면 모두들 마치 디스코 장에라도 간 듯이 몸을 구르며 갖은 소리를 다 질러댄다. 볼프강은 여자들의 심리를 정확히 궤뚫어보고 상황에 적합한 주문을 하였으며 여자들은 마치 한풀이하듯이 또는 장난치듯이 신나게 소리를 내었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괴성과 소란스러움에 옆에서 하는 우리 작업이 지장을 받을 정도였다. 게임이 끝난 후 그는 일약 스타가 되었다. 사실 그의 게임 지도 능력은 실제 우리를 지도하러온 사람들보다도 뛰어났다. 그는 그 방면에 풍부한 경험이 있음에 틀림이 없다. 소경이지만 능히 길 안내를 하고도 남음이 있는 사람이었다.

아, 한가지 까먹을 뻔했는데, 이 날 오전 교육장 게시판에 일요일 날 핀드혼 코뮤니티 센터에서 있을 내 강연에 대한 공지가 붙었다. 공지문은 내가 지난번에 언급한 모 윌렛(Mo Willet)이 나의 구술을 토대로 작성한 것이다. 몇몇 참가자들이 그것을 보고 와서 깊은 관심을 표명한다. 조금 있자니 프로그램 진행자인 가이(Guy)가 조용히 나를 부른다. 나에게 한국 TV 촬영팀이 와서 인터뷰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려주고(결국 불발로 끝났지만 적어도 그 시각에는 그렇게 알고 있었다) 내가 핀드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듣고 싶어서였다. 물론 일요일에 있을 강연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을 테고. 이 가이란 친구는 겉모습이나 말하는 태도가 굉장히 성실하고 순박해 보이는 사람이다. 십여 년간 일해왔던 컴퓨터회사를 어느 날 갑자기 때려치우고 핀드혼에 들어와 산지 3년이 되었다고 한다. 나는 어떤 생각을 품고 핀드혼에 찾아왔으며 또 그 간에 느낀 감상이 어떠한지에 대해 솔직히 얘기해 주었다. 먼저 현재까지 이루어놓은 핀드혼의 성과에 대해 깊은 찬사를 보낸 뒤 내가 느낀 핀드혼의 문제점을 이야기했다. 해마다 방문객의 숫자가 국제적으로 십사만명이나 된다는 이곳에 흑인을 하나도 볼 수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대부분의 방문객들은 유럽과 미국, 일본에서 온 사람들이다. 항간에 핀드혼의 공동체 운동은 백인 중산층 운동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는데 이점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물었다. 물론 금전적인 문제가 가장 큰 이유이겠지만 그 이면에 작용하고 있는 핀드혼의 운동 노선에 지배적인 백인 이데올로기가 깔려있지 않느냐. 만약 당신들의 공동체 이념이 어디에고 적용 가능한 보편적인 것이라면 이제부터는 스코트란드 구석에 앉아 부유한 나라에서 오는 손님만 받을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제3세계로도 진출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 또한 자본주의 아래서 자생적인 구조를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사업구조를 만들어내었는데 그로 인해 대가없이 주고 나누는 공동체 정신이 훼손된 측면이 있지 않느냐는 것이 주된 비판이었다. 다음 날 저녁 공동체의 한 간사가 나와서 핀드혼 공동체의 재정과 조직에 대한 소개를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흥미롭게도 그의 입에서 내가 가이에게 한 비판의 말이 거의 그대로 나오는 것을 보고, 그날 저녁 간사회의에서 나의 발언이 논의되었음이 틀림없다는 짐작을 하게 되었다.

여섯째 날은 오전에 작업반에서 일하고 오후에는 자유시간이었으므로 별달리 기록할 것은 없다. 이쯤에서 매일 오전 있었던 작업반 일과 핀드혼 농장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나는 정원관리반에서 일했다. 아, 어떻게 참가자들이 각 작업반에 할당되는지를 먼저 얘기해야겠다. 첫날에 진행자는 몇 개의 작업반을 제시하고 참가자들에게 자기가 원하는 작업반을 택하라고 한다. 각 반마다 정원이 있는 것은 물론이다. 이렇게 무작위로 접수를 받아서는 단번에 신청자수가 정원에 일치할 리는 만무하다. 결과를 보니 농장일에 3명이 초과이고, 기타 다른 작업반에 2명, 1명 씩 부족이다. 나 역시 농장일을 지원했다. 진행자는 결과를 알려준 뒤 다시 한번 종이쪽지를 나누어주고 접수를 받는다. 나는 안되겠다 싶어서 일의 성격이 비슷한 정원관리부로 돌렸다. 두 번째 뚜껑을 열어보니 농장반은 여전히 정원초과였다. 결국 4번의 접수 끝에 제시된 정원과 일치하게 되었다. 시간이 다소 걸렸지만 핀드혼의 이 방식은 상당히 합리적으로 보였다. 인원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어떤 형태의 압력이나 영향력도 행사되지 않았다. 그저 결과만 알려주고 접수도 말 대신에 종이에 적어서 받았다. 개개인의 판단과 결정을 최대한 존중하려는 의도로 보여진다.


아침에 작업하러 나가면 먼저 한 자리에 둘러앉아서는 그날의 기분과 전날 있었던 일 등에 대해 돌아가면서 이야기한다. 그런 다음 작업반장은 공지사항과 함께 그날의 할 일을 설명한다. 참가자들은 각자 자기가 하고싶은 일을 이야기한다. 여기서는 그룹이 작으므로 인원초과 같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는 그 동안 혼자 농장과 정원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풀도 뽑고 씨앗도 채취하고 수확도 거들어 주고 했기 때문에 여기 와서 해보지 못한 퇴비장 작업에만 내리 매달렸다. 이들의 퇴비 만드는 방식을 잘 알아두고 싶기도 했다. 이들이라고 해서 퇴비 만드는 과정이 특별한 것은 없었다. 다만 아주 체계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퇴비 재료는 식당에서 나오는 음식물찌꺼기와 정원관리하면서 나오는 온갖 부산물, 그리고 농장에서 생산되는 밀짚이 주가 되고 사이사이 석회와 효소 등을 뿌려주었다. 퇴비 만들기는 우리말로 하면 시루떡 만들기와 비빔밥 만들기를 번갈아 가며 하는 것과 같다. 숙성시킨다는 측면에서 보면 김치 만들기와 같고. 퇴비 막이 한 10동되었는데 퇴비를 처음 만든 날 뒤섞은 날 등을 칠판에  적어두고 차질 없이 생산하고 있었다.



핀드혼 사람들은 작업을 전후해서 꼭 ‘Tuning'(조율) 이라는 것을 한다. 빙 둘러서서 서로의 손을 잡고 누군가 원하는 사람이 작업과 관련하여 기도를 한다. 기도가 끝나면 기도한 사람이 옆 사람의 잡은 손에 힘을 꾹 가한다. 그러면 그 사람이 또 자기 옆 사람의 손을 꾹 누르고, 이렇게 해서 마지막 사람에게까지 신호가 전달되면 손을 풀고 튜닝이 끝난다. 튜닝이야말로 핀드혼이 영성적 공동체 (Spiritual Community) 임을 알려주는 가장 특징적인 행위이다. 이 튜닝은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가 있어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가 곤란하다. 어떤 이는 천사에게 고백하듯 하는가하면, 어떤 이는 단순한 비나리만 읊조리기도 하고, 어떤 이는 그날 대하고자 하는 자연물의 정령을 불러내어 대화하듯 하기도 한다. 이것을 동양철학으로 풀어보자면 자신의 마음을 오로지 하여 천지의 기운에 감응하는 것이고, 기독교적으로 보자면 하님에게 기도하는 것이며, 신과학에서 보면 자신의 생체에너지 파동의 주파수를 외부의 그것과 일치시키는 것과 같다. 어느 것이나 강조 점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 작용과 효과는 동일하다. 어떻게 보면 이들은 기독교의 유일신 개념만을 인정하지 않을 뿐이지 주위의 사물과 일을 대하는 태도로 보아 독실한 기독교인들과 다를 게 없다. 이들은 인간 자신은 물론 주위의 모든 자연물로부터도 신성을 발견하고자 한다. 이러한 경지에 다가서기 위해서는 상당한 정도의 영적 훈련과 수련이 필요함은 말할 것도 없다.


하루는 작업반장인 로버트가 요즘 토끼가 자꾸 화초밭에 들어와 골치라면서 튜닝을 하는데 그 내용이 참 재미있다.


“토끼야, 내 말 들리니? 왜 요즘 자꾸 화초밭에 들어오고 그러니? 우리는 너희들을 위해서 정원 한 구석에 따로 풀밭을 마련해 두었잖았니. 거기서라면 네 친구들과 충분히 먹고 놀 수 있을 텐데 제발 화초밭엔 들어오지 말아다오. 부탁이다. 그럼 오늘도 평안히...”


나이 지긋한 중년의 사내가 마치 눈앞에 토끼를 데려다 놓고 부드럽게 타이르듯이 이런 기도를 바치고 있었다. 이 기도가 효험이 있건 없건 간에 나는 이러한 마음가짐, 자신에게 해를 끼치고 있는 상대방에 대한 이러한 자세에 깊음 감명을 받았다. 그들은 아무리 토끼에 의한 피해가 극심하다 하여도 절대 약이나 덫을 놓는 일이 없다. 울타리만 더욱 강화할 뿐이다. 어디까지나 방어적이다. 사실 클루니 힐의 정원에는 아주 많지는 않지만 토끼란 놈들이 꽤 살고 있어서 잔디밭에는 늘 서너 마리의 토끼가 뛰어 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것이 아무 것도 없는 적막한 풀밭보다 훨씬 운치도 있고 자연스럽다고 느끼고 있었다. 문제는 적절한 인구조절일 것이다.


국내에서 발간된 “생태농업을 위한 길잡이” 란 책에 보면 핀드혼에 대한 소개가 짤막하게 나오는데 (‘미내사’의 기관지 ‘지금여기’에서 재 수록했다고 쓰여있다) 핀드혼 사람들이 식물의 요정들과 대화하는 방식으로 농사를 지어서 18 Kg이나 되는 양배추를 길러내고 눈 속에서도 장미가 피어나는 등 기적을 일구고 있다고 해놓았다. 나는 앞 뒤 설명 없이 적어 놓은 이런 식의 소개가 오히려 핀드혼의 실상을 왜곡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헛된 망상을 품게 하거나 반대로 불신을 조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핀드혼은 글의 제목에서 말하는 것처럼 ‘기적의 마을’이 결코 아니다. 18 Kg 짜리 양배추는 품종과 재배방법에 따라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며, 한겨울의 장미꽃은 흔한 것은 아니지만 잘 찾아보면 영국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곳의 기후가 겨울에도 온난하기 때문에 뒤늦게 핀 장미꽃이 그때까지 남아있는 수가 왕왕 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에도 눈이 와서 세상이 새하얀데 건물 한 구석엔 뒤늦게 핀 창포꽃과 장미꽃이 외롭게 서있다. 그렇다고 내가 핀드혼의 실험을 깍아내리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 내면에 작동하는 원리를 보자는 것이다. 나는 핀드혼 농장에서 기적이라고 부를만한 거대한 농작물을 보지도 못했을 뿐더러 그러한 얘기를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사람도 보질 못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곳의 농작물들이 보통 수준 이상으로 건강하고 달콤한 것은 사실이다. 핀드혼 사람들은 ‘기적을 만드는 사람’ 이라기 보다는 ‘기적과 함께 사는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수없이 많은 기적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적이란게 뭔가? 인간의 머리로 헤아릴 수 없는 일이 기적 아닌가.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하여, 한 알의 감자가 영글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기적과 같은 일들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지 인간의 작은 두뇌로는 헤아릴 수조차 없다. 아무리 두껍게 써 놓은 생물학 책이라 한들 그것은 이 과정의 만 분의 일도 밝혀내지 못한다. 핀드혼 사람들은 이것을 알기 때문에 자신을 낮추고 사물의 뒤에 숨어있는 힘과 대화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이렇게 했더니 이런 기적과 같은 결과가 나왔다” 하는 식의 ‘데몬스트레이션’이 아니다. 우리의 한계로 인하여 볼 수 없는 것과의 끊임없는 대화의 ‘과정’이다. 그 과정 속에서 때로 기적과 같은 현상도 나타날 수 있고 대 실패도 겪을 수 있다. 흔히 자연농법이나 유기농법을 행하는 사람들중에 자기네 농법의 우수성을 과시하기 위해 특이한 결과를 과장하여 집중적으로 홍보하는 경우가 있는데, 핀드혼에 대한 평가도 그와 같은 식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우연히 찾아든 ‘기적’을 가지고 그것만 부각시켜 핀드혼을 ‘기적의 마을’로 부르는 것은 실상에 대한 명백한 왜곡이 아닐 수 없다. 한편 이와는 반대로 며칠 동안 핀드혼에 와서 카메라로 겉모습만 담아간 KBS 촬영팀과 같이 “이곳의 사는 모습이 바깥 세상과 하등 다를 것이 없는데 왜 사람들이 찾아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감상도 핀드혼을 잘못 보기는 마찬가지이다. 어떻게 식물의 요정과 대화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가! 어떻게 우주의 신비를 묵상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단 말인가!


이 참에 우리나라의 운동하는 사람들과 영성의 문제와 관련하여 한마디하고 지나가야겠다. 나는 이십 년이 넘게 소위 운동하는 사람들 사이에-보기에 따라서는 대단히 제한적이지만서도-부대끼며 살아온 사람이다. 스스로도 ‘래디칼’ (Radical)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나는 운동하는 사람들의 내면세계를 어느 정도 안다고 말할 수 있다. 한국의 운동권 인사들 중에는 ‘영성’이란 얘기만 나오면 고개를 쩔래쩔래 흔드는 이가 많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역사가 있다. 극악했던 군사독재 시절 소위 ‘영성’을 추구한다는 종교인들과 순수 문학인들의 사회적 행태는 그 무렵에도 큰 논쟁거리였다. 민주화 운동에 나선 이들의 입장에서 볼 때 적어도 사회의 지도층에 있는 이들의 무저항 내지 현실안주는 독재체제를 옹호하고 유지하는데 기여할 뿐이었다. 이에 대해 그들은 영혼의 문제는 사회문제와 별개의 것으로서 이렇게 사회가 어지러울수록 영혼구제에 더욱 힘써야 된다며 비판을 일축했다. 또한 독재정권은 이러한 균열을 이용하여 종교인들과 순수문학인들의 활동을 적극 뒷받침해주고 장려했다. 군사독재 기간이 어언 30여 년을 헤아리다 보니 한국의 종교와 문학은 이들에 의해서 그 주된 흐름이 만들어졌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운동권’안에 영성의 문제가 주된 이슈도 아니었고 또 관심을 기울이는 이도 별로 없었다. 그런데 여기에 잠자고 있던 ‘운동권의 영성’을 향하여 ‘카미가제’식의 자살공격을 감행한 사건이 있었으니, 1991년 봄 소위 ‘분신정국’의 막바지에 터져 나온 김지하 시인의 “죽음의 굿판을 당장 때려치워라!”는 조선일보 투고가 그것이다. 죽음마저도 불사하는 민주화 투쟁대열을 향하여 마치 철퇴와 같이 내려쳐진 김시인의 선언은 한때 반독재 투쟁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그의 모든 이미지를 한순간에 날려버렸고, 평소 영성운동을 강조하던 그의 주장은 심한 배반감과 함께 증오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나는 김시인의 사상에 대해서는 그의 지나친 자민족중심주의를 빼고는 별다른 이견이 없는 사람이다. 다만 그가 비록 운동권이 영성에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러한 극단적인 행위를 했다하더라도 그것의 시기와 방법이 틀렸음을 지적하고 싶다. 그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운동권은 영성의 문제를 더욱 외면하게 되었으며, 민주화 투쟁 역시 독재자의 입장에서 보면 “적으로써 적을 다스리는” 꼴이 되어버렸으니까. 이후로 운동권 인사가 어쩌다 영성수련이라도 갈라치면 소리 소문도 없이 가야하는 형상이 벌어졌다. 혹시라도 김시인과 같은 부류로 ‘찍힐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왜 운동에 있어서 영성이 중요한가? 나는 지금도 최고의 운동가는 최고의 영성을 소유한 사람이라고 믿고 있다. 비근한 예로 남아프리카 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넬슨 만델라는 서구인들에 의하여 거의 ‘세인트’ (Saint)로 까지 받들여지고 있다. 세인트는 종교적 영성이 탁월한 자에 한해서 붙여주는 순수히 종교적인 용어이다. 베트남 해방전쟁 당시 남쪽 민중의 반제 반독재 투쟁의 불길을 당긴 이는 사이공 대로에서 몸에 석유를 끼얹고 분신 입적하신 쾅 스님이다. 쾅 스님의 경우 영성의 수준이 극에 달하면 생명과 비생명의 경계가 사라짐을 보여준다. 영성수련의 문제는 결코 한가한 자들의 자기만족적인 행위가 아님을 얘기하고 싶어서 다소 극단적인 예를 들었다. 우리나라에도 운동하는 사람들중 탁월한 영성의 소유자가 상당수 있음을-불행히도 내 삶의 반경이 워낙 짧아서 그분들을 직접 뵙고 감화 받진 못했으나- 이리저리 들어서 알고 있다. 반면에 감옥 안에서 혹은 밖에서 마주친 많은 사람들로부터 영성의 천박함 혹은 그 결핍을 목격하고 절망에 빠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다시 한번, 운동하는 사람에 있어서 영성이 왜 중요한가? 어떤 이는 최루탄이 머리 위로 왔다 갔다하는 마당에 뭔 구름 잡는 영성이냐 하고 핀잔 어린 말투로 내밷기도 한다. 그렇다, 최루탄이 횡행할수록 영성은 더욱 필요하다. 굳건한 영성의 소유자일수록 최루탄 연기 속에 더 오래 서 있을 수있으며, 최루탄 연기가 가신 뒤에도 더 올곧게 자신의 위치를 지켜 나갈 수 있다. 영성을 무시하고 자기수련을 게을리한 사람일수록 사회가 변하여 운동권의 논리가 잘 안먹혀들어가게 되면 쉽게 변질하여 자기가 욕하던 세상 속으로 속절없이 빨려 들어가고 만다. 그렇담 영성수련을 위해 세상을 절하고 산 속에 들어 가든가 무슨 무슨 수련장엘 찾아가야 하는가? 그것도 아니다. 내가 핀드혼의 공동체 체험을 자세히 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가 조금만 시선을 안으로 돌리면 일상의 삶 속에서, 매일의 정치활동을 통하여 영성을 수련할 수 있는 계기가 얼마든지 있음을 말하고 싶어서이다. 나는 속세와 인연을 끊고 산 속에 들어가 평생 도를 닦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이다 (그렇다고 수련을 위해 일시적으로 산 속에 들어가는 것 마저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무의미해서라기보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유에 합당치 않기 때문이다. 사람은 어디까지나 사회적 동물이다. 영성은 어디까지나 사회적 존재로서의 영성이지, 그것과 떨어져서 홀로 존재하는 영성은 없다. 불교나 선계의 고승열전에 보면 ‘나’라고 하는 존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면서 그러한 ‘자기의식’ (ego)없이 사는 야생의 생명들을 부러워하는 모습이 종종 보인다. 자신의 사회적 존재를 망각하고 그렇게 살고자 한다면 차라리 인간이 아닌 들판에 자라는 한 송이 꽃으로 태어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영성 얘기를 하다가 옆으로 많이 빗나갔다. 공동체 체험 주간의 일곱 번째 날은 마지막 날로써 일주일간의 체험을 총 정리하고 성대한 작별만찬으로 마무리를 하였다. 마지막 총괄 모임은 첫 상견례가 있었던 방에서 이루어졌다. 역시 빙 둘러앉아 한 사람씩 자기소감을 이야기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사실 이런 자리에서 의례적으로 말하는 소감을 듣고는 그 사람에게 진정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다. 또 그 충격이 훨씬 후에야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고. 대부분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몇몇은 벌써 표정만으로도 혼란스러워하는 기색이 뚜렷했다. 일주일간 프로그램이 요구하는 대로 다 따라했지만 이것이 구체적인 나의 삶과 어떻게 연관이 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내가 이런 모임을 좋아하는 것은 평소에는 굳게 닫혀있는 사람들의 내면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은 말하자면 마음의 빗장을 여는데 쓰이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이러한 기회를 가질 수 있었음을 감사히 여기고 그들에게 기타 반주와 함께 우리 구전가요 ‘타박네’를 들려주었다. 끄트막에 소감을 말한 카린이라는 캐나다 처녀애의 마무리가 정말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자기 차례가 오자 한마디 말도 않고 둘러앉은 사람 하나 하나를 마치 심장에 새기듯이 깊이 응시하는 것이었다. 이 일주일 간 내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이 처녀 이야기를 조금 해야겠다. 그녀는 타고난 ‘Natural Girl'이다. 거리낌없이 활달하면서도 다정 다감하고 느긋했다. 마치 야생의 풀밭에 자라나는 들꽃처럼 아무하고도 잘 어울렸고 빈대붙는 솜씨도 수준급이다.(배낭에 텐트 하나 넣어 가지고 몇 개월째 유럽에서 개기고 있는 중이란다) 언듯 보면 장난기 가득한 얼굴이지만 사물을 응시하는 눈동자가 참으로 그윽하고 깊다. 타고난 영성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다. 아는 사람을 만나면 아주 자연스럽게 포옹을 했다. 나도 적어도 하루에 한 두 번은 그녀와 포옹을 했다. 며칠 뒤 내가 핀드혼을 떠나기 전날 해변가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는 그녀를 우연히 만났는데 그녀는 작별을 아쉬워하며 놀고 있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백사장을 따라 거의 1 Km는 따라왔다. 너무 멀어지기 전에 돌아가라고 하자 그녀는 마지막으로 기나긴 포옹을 해주고 친구들 곁으로 돌아갔다. 그것도 상당한 거리는 내 쪽을 향하여 계속 손을 흔들며 뒷걸음질치면서. 이럴 때 입에서 저절로 나오는 영어가 있다. "What a girl!" 그녀가 별로 가진 돈도 없이 장기 여행을 계속할 수 있는 비결이 여기에 있다. 새들이 강남 가는데 여비가 들던가? “Just follow the natural law." 노자님의 말씀대로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비용이 적게 드는 것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음은 이 여행의 또 하나의 축복이었다.


클루니 힐의 교육장에서 나와 다시 처음에 숙박을 했던 모 윌렛의 집으로 짐을 옮겼다. 그녀는 내가 올 것을 대비하여 일부러 손님도 받지 않고 방을 비워두고 있었다. 일주일만에 다시 만난 모는 오랜 친구가 다시 찾아온 양 반갑게 맞아 주었다. 이날 저녁에는 방문객 센터에서 한국 기독교 선교공연이 있고 다음날엔 코뮤니티 센터에서 나의 강연이 있다. 한국 사람이라곤 그림자도 안 비치던 스코트랜드 끄트머리에 갑자기 코리안 바람이 불고 있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 나는 오후 내내 바닷가에 나가 이리저리 거닐기도 하고 낮잠도 자면서 내일 있을 강연을 대비하여 생각을 정리하였다. 해질 무렵에 그곳에 있는 동안 자주 이용하던 킴벌리 식당에서 저녁노을 바라보며 느긋한 식사를 즐긴 다음 시간에 맞추어 공연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제 시간에 왔다고 생각했는데 공연장에 당도하니 무대에서 공연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들 말고는 관객이 하나도 없었다. 엇, 이것 무엇이 잘못 되었구나 하고 당황해하며 자리에 앉아있노라니 단원들을 지휘하고 있던 중년의 남자가 다가와서는 인사를 한다. 공연 시작 시간이 30분 연장되었단다. 한국사람이라고 하니까 크게 기뻐하면서 자기가 이 공연단을 이끌고 있는 김아무개 목사라고 소개를 한다 (실명을 알고 있지만 그러한 선교방식에 비판적인 나의 기술이 그분의 선한 의도를 훼손할까보아 밝히지는 않는다). 말이 몹시 빠르고 분주한 몸짓과 함께 의욕이 넘쳐 보이는 목사였다. 미국 LA 지역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아 그곳에서 교회를 개척한지 겨우 4년이 되었을 뿐인데 벌써 세계 여러 나라에 자기네 선교회 지부가 14군데나 된다며 자랑을 한다. 현재 영국 남쪽 해안 도시인 본머스에 2000명의 학생들을 데려다 공부시키고 있으며, 내년에는 이 스코트란드 북쪽 끝에 있는 도시 인버니스에 한국학생 1000명을 데려다 공부시킬 계획이란다. 이미 작업이 진행 중인데 그가 말하는 방법이란 것이 기가 막힌다. 당국의 허가를 얻어 언어학원을 개설하여 한국학생들을 모집하면 몇 천명이고 데려올 수있으며, 학원을 운영하면서 신학교를 세워 거기서 선교 일꾼들을 길러낸다는 것이다. “얘들은 얼마든지 저희 선교원에서 훈련시켜 이렇게 내보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 유럽과 아프리카 어디어디로 진출할 것이라며 거침없이 늘어놓는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잠시 현기증을 느꼈다. 이거 뭔가 걸물을 만나긴 만난 것 같은데 방향이 좀 이상하다 싶었다. 그에게는 신학생들이 마치 종로학원의 수강생이나 논산 훈련소의 훈련병쯤으로 보이는 것 같았다. 목사랑 얘기하고 있는데 전도사라는 사람이 왔다. 그러자 목사가 이분은 여기에 계시는 한국분이신데... 하고 입을 열기가 무섭게 주머니에서 수첩과 볼펜을 꺼내더니 내게 성함이 어떻게 되지요? 연락처는? 하고 속사포처럼 묻는다. 그러자 목사가 팔을 내저으며 “아, 아 그것은 내가 벌써 적어놨어.” 하고 말린다. 나는 한번은 독일 프랑크푸르트 길거리를 걷다가 한국에서 파견되어 나온 여호와의 증인 아줌마에게 붙잡혀 곤욕을 치른 적이 있는데 이 분들은 그에 비하면 거의 기업적으로 선교를 하고 있는 셈이다. 기업! 왜 갑자기 그 시각에 김우중씨가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70년대에 세계를 누비고 다니며 외화벌이의 신화를 만든 사나이. 이분들의 선교 행태가 꼭 그랬다. 이 저돌적이고 무모하기 짝이 없는 선교방식이 그 시절 수출 견본 하나들고 맨 몸으로 뛰어다니며 해외지사를 일구어 낸 대우의 해외 영업사원들과 무엇이 다른가. 하긴 선교방법은 관점에 따라 달리 볼 수 있는 것이고 보면, 거꾸로 기독교의 모국에 선교하러 온 이 김목사라는 사람의 기개는 일단 알아주어야 할 것 같다.


공연이 시작되었다. 객석엔 많지는 않지만 그런 대로 사람들이 꽤 모인 편이다. 앳되 보이는 신학교 학생들이 나와서 전통무용을 비롯한 여러 가지 공연을 하였다. 일종의 버라이어티 쇼였다. 저 정도면 아마추어로서 꽤 잘한다 싶었다. 한가지 거슬리는 것은 찬송가 ‘노가바’를 하는데 하필이면 암울했던 일제시대에 신세타령을 하면서 불렀던 ‘타향살이’와 ‘희망가’를 부르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예수님 믿으라는 가사를 “이풍진 세상을 사~라았으~니~”의 가락에 맞춰 부르는 것은 어색하기만 했다. 아마도 해외동포들의 향수를 자극하기 위해서 였을텐데 여기엔 해외동포라고는 없지 않은가. 드디어 공연이 한바탕 끝나고 목사의 설교시간이 되었다. 그는 여기서 또 한번 나를 경악시킨다. 설교는 물론 영어로 진행되었다. 나는 그를 통하여 한국의 부흥회 목사들의 그 열광적인 설교가 억양하나 말씨하나 틀림이 없이 영어로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전형적인 미국식 영어로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그의 설교는 관객들에게 그 어떤 엔터테인먼트보다도 더 흥미진진한 긴장감을 가져다주었다. 내용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숙한 스토리이다. 죽을병에 걸렸다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서 다시 살아났다는.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객석의 외국인들은 그의 말이 하도 빨라서 잘 못 알아들었다고 하는데 나에게는 아무리 빠른 말일지라도 같은 한국사람 영어인데다 내용을 훤히 알고 있는 것이라서 단어 하나 하나가 빠짐없이 들렸다. 저 정도의 스피드로 설교하는 것을 보면 아마도 같은 설교를 수 백 번은 했지 싶다.


설교가 끝나자 이번에는 관객들과  영국을 위하여 기도해 주겠다며 단원들을 모두 무대위로 불러보아 ‘기도 대형’으로 세웠다. 목사가 먼저 두 손을 치켜들고 “하나님 아버지”하며 큰소리로 기도를 시작하자 기다렸다는 듯 전 단원들이 통성기도를 외쳐대기 시작한다. 나는 속으로, “오, 하나님, 기어코 당신께서 여기까지 오셨군요!” 하고 탄식하였다. 외국인들은 난생 처음 보는 이 희한한 기도 광경을 경이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단원은 “오, 주여”라는 말만 목이 터져라 외쳐대고 있었다. 이러한 장면을 영어로 ‘엑스타시’ (Ecstasy) 라고 하던가. 통성기도가 길어진다고 느껴지는 순간 목사의 신호와 함께 합창소리가 일제히 잦아진다. 나는 통성기도에 대해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이 목사가 ‘기도 시작!’ 하는 순간부터 열광적으로 외치다가 “기도 끝!”하면 일시에 끝낼 수 있는지가 늘 의문이었다. 아마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영원히 모르리라. 감옥에 있을 적에 옆방에서 들려오는 통성기도 소리 때문에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아 온 나는 아무리 좋게 이해하려 해도 잘 되지가 않았다. 기도를 마친 단원들은 객석으로 다가와 일일이 관객들의 손을 잡아주며 “God bless you" 라고 외치며 축복의 말을 해주었다. 끝으로 김목사의 공연단을 초청한 사람이 나와서 인사말을 하였다. 30대의 젊은이로 보이는 그는 한때 핀드혼 공동체에서 살았단다. 그러다가 1년전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난 후 인버니스로 나가 신앙 활동을 하던 중 우연히 김목사를 만나 그의 ‘강력한’ 영성에 감화되어 이리로 모셔왔다는 것이다. 그는 김목사의 선교운동을 기독교 사회를 진동시킬 만한 ”새롭고도 강력한 영적 운동“이라고 추켜세웠다. 부흥교회는 물론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한국에 들어온 이래 조선 고추장 특유의 열광하는 기질과 결합하면서 독특한 모습으로 발전해 왔다. 내가 보기에 이곳 날씨처럼 조용하고 우중충한 영국인들에게 그런 식의 선교가 먹혀들어갈른지는 회의적이다. 어쩌면 그 젊은이는 쇄퇴일로를 걷고 있는 영국교회의 현실에 낙담하고 있던 중 김목사의 엔터테인먼트를 가미한 공세적인 선교방식에서 희망의 일단을 발견하였는지도 모르겠다.


다음 날 오후 일찌감치 저녁을 해결한 모와 나는 강연장 설치에 필요한 도구들을 들고 코뮤니티 센터로 향했다. 센타는 2층으로 지어진 아름다운 목조건물로서 위층은 회의실로, 아래층은 공동체 식당으로 쓰고 있다. 위층엔  벌써 어떤 모임이 진행 중인지 떠드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우리는 식당 옆 카페테리아에 자리를 잡고 가져온 비디오 데크를 설치한 뒤 의자를 배치하였다. 나는 마침 노르웨이에서 만든 나에 관한 비디오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런 일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다만 그 무렵엔 일정한 숙소도 없이 떠돌아다녔던지라 모든 짐을 들고 다녔던 것이다. 정한 시각이 되자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핀드혼의 저녁은 공적 또는 사적으로 늘 여러 가지 모임들이 진행 중이라 특별한 사안이 아닌 한 어느 한 집회에 한꺼번에 많은 인원이 모이기는 힘들다. 5분 정도 지났을 무렵 대략 30명 가까이 모였다. 아직 떠나지 않고 있던 카린과 가이등 교육장에서 만난 친구들도 몇몇 눈에 띄었다. 가만히 보니 어제 김목사의 집회에 참석했던 사람들도 몇 있었다. 나는 서두에 이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다음과 같이 말문을 열었다. “이제 여러분은 어제오늘 양일간에 걸쳐서 한국에서 온 두 극단적인 인간을 보게됩니다. 아무쪼록 보통의 한국인들은 이 두 극단 사이에 있음을 명심하시고 제 이야기를 들어주길 바랍니다.”


먼저 비디오를 보여주었다. 비디오에는 나를 비롯한 초장기수 선생님들의 모습도 나온다. 20분간에 걸친 비디오 상영이 끝난 뒤 그들로서는 상상이 안가는 한국의 인권현실과 어떤 연유로 내가 구속이 되어 장기형을 받았는지에 대해 먼저 간략히 설명했다. 아무래도 이곳이 ‘영적 공동체’이니 만큼 나는 이야기의 초점을 감옥 안에서의 나의 정신적, 종교적 변화에 맞추었다. 내가 어떻게 고문을 받고 고문의 후유증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고문한 자들을 용서할 수 있었는지, 절망에 사로잡혀 몸부림치다가 어떤 계기로 마음의 평정을 되찾았는지, 신앙이 그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또 도가철학을 받아들인 뒤 나의 신앙과 옥중생활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에 대하여 담담하게 이야기하였다. 나는 그들에게 나의 종교적 입장을 ‘도가적 카톨릭’ (Taoistic Catholic) 이라고 설명하였다. 아무래도 도가철학은 그들에게 생소한 개념이라 자꾸 질문이 들어왔다. 시간도 많이 흘렀고 하여 도가철학의 기본 개념들만 몇 가지 설명해주고 강연을 마치었다. 우렁찬 박수와 함께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가면서 그들은 감사의 말과 함께 한분 한분 내게 포옹을 해주었다. 입구에는 모가 모금 깡통을 들고 서 있었다. 그녀는 내가 처음 여기 왔을 적에 금전적으로 도와주지 못한 것에 못내 서운했는지 공지문에다 기부금을 요청하는 문구를 넣었다. 모가 나중에 봉투에 담아서 내주는데 세어보니 221 파운드 (약 36만원)가 걷혔다. 상당한 액수였다. 공동체에 있는 사람들은 영국 평균으로 보았을 때 결코 잘 사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나만해도 이런 자리에 가서 일파운드 이상 내본 일이 없다.  모의 의도가 어땠건 나는 이 돈을 도저히 개인용도로 쓸 수가 없었다. 이틀 뒤 런던으로 돌아온 나는 바로 국제사면위원회 본부 (Amnesty International Secretariat) 아시아팀을 찾아가서 평소 관심을 가지고 있던 버마(미얀마)의 정치수들을 위해 써달라고 기증하였다. 그들은 몇 달 뒤 내게 그 돈은 현재 버마와 태국 국경에서 살고 있는 한 정치수의 가족들에게 생활비로 지급되었다고 알려왔다.


밤늦게 모의 집에 돌아와 하루 일을 돌이켜보며 쉬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웬 여자였다. 자신을 핀드혼 이탈리아 방문단의 간사라고 밝힌 그녀는 자신이 데리고 있는 한 여성참가자가 나와 꼭 상담을 하고 싶은데 만나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만나는 것이야 어렵지 않지만  사안에 따라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이 있고 할 수 없는 말이 있다. 사연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 여자가 어떤 사람을 용서할 수가 없어서 괴로워하고 있는데 자기로서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녀는 내가 고문한 자들을 용서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언가 도움이 되겠거니 생각한 모양이다. 용서야말로 내 삶에 있어서도 크나 큰 화두일진대 내가 남에게 충고를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생각이 들어 완곡하게 거절을 하였다. 나는 그녀에게 내 처지를 설명해 주었다. 나의 경우는 용서의 대상자가 한 개인이 아니라 국가라는 조직의 하부기관이었다. 나에게 고문을 가한 자들은 물론 개인이지만 나는 그들 역시 국가조직의 희생자로 보았기 때문에 애초부터 용서의 대상이 되지도 않았다. 오히려 연민의 대상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여자의 경우는 대단히 사적인 문제인데 내가 거기에 끼어들 여지는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리고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다음 날 나는 바로 런던으로 내려갈까 하려다가 아무래도 그 동안 나를위해 여러 가지로 애쓴 모에게 무언가 선물을 하나 해야겠다는 생각에 하루 더 머물기로 하였다. 무엇이 좋을까? 핀드혼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 상점에 있는 기념품을 사서 주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을테고... 아무튼 점심먹고 바닷가에 나가 천천히 생각해 보자며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공동체 식당에서 밥을 받아놓고 막 먹으려고 하는데 웬 여자가 다가오면서 “미스터 바우!”하는 것이었다. 자기가 어젯밤 전화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마침 자기가 어젯밤 전화로 말한 이태리 여자와 함께 있는데 식사하고 꼭 만나 달라는 것이었다. 참으로 난감했다. 이거 공동체 구경하러 왔다가 영어로 상담까지 하게 되었으니... 지난밤에 모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했더니 모는 내가 들어오기 전에 이미 그 여자의 전화를 받았다며 실은 상담을 청한 여자는 오랫동안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성폭력을 당해왔는데 그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어 괴로워한다는 것이다. 뒤늦게 그 말을 듣고 거절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하였다. 내가 그런 상황에 처해있더라도 감당하기 힘든 문제로 보였기 때문이다. 이젠 꼼짝없이 무슨 말이든 해주어야했다. 결국 나는 그러마 했고 그 여자는 식사 마칠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겠다며 물러섰다.


밥먹으면서 머리를 좀 굴려봤지만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에이, 이럴 때는 하느님께 맡기는 게 최고다 하고는 느긋하게 식사를 마치고 나갔다. 식당 앞 잔디밭에 두 여자가 앉아 있었다. 인사를 했다. 20대 젊은 이태리 여자였다. 그런데 겉모습으로는 동구쪽 혈통으로 보였다. 기묘한 상담이 시작되었다. 이태리 여자는 영어를 거의 못했고 중간에 통역을 통해서 질문과 대답이 오고 갔다. 내게 묻는다. 어떻게 그 많은 고초를 이겨냈느냐고. 그것은 내가 강해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대답한다. 또 묻는다. 여기 한 아버지가 있는데 그가 만약 자기의 사랑하는 동생을 죽였다면 내가 어떻게 그런 살인자 아버지를 용서할 수 있습니까? 이 여자가 비유법을 쓰고 있음을 단박에 알아차린다. 하긴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그런 부끄러운 사실을 어떻게 얘기할 수 있으랴. 나는 잠시 뜸을 들인 뒤 정색을 하고 말한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나라도 그런 사람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용서를 하지 않고는 하루도 편하게 살 수가 없습니다. 복수를 한다 하여도 결코 마음이 편치는 않을 것입니다. 먼저, 용서에는 조건이 없습니다. 자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인간은 그런 조건 없는 용서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하느냐? 하느님께 맡겨야 합니다. 용서는 오직 하느님만이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저 사람을 용서할 수 없으니 당신께서 내 대신 용서해 달라고 빌어야합니다. 당신의 기도가 간절할수록 하느님께서는 그에 상응하는 축복(Blessing)을 내려 줍니다. 그 축복에 의하여 당신은 남을 용서할 수가 있습니다. 아니, 용서를 할 필요도 없습니다. 축복이 가득 차면 용서고 뭐고 그런 개념이 없어집니다. 물론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감당하기 힘든 큰일을 생각하지 마시고 작은 일부터 하느님께 용서를 구하는 연습을 해야합니다. 그런 연습이 계속되면 자기 안에 차곡차곡 하느님의 축복이 쌓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언젠가는 구태여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자신이 엄청나게 원수로 생각하고 있던 사람도 더 이상 원수로 느껴지지 않게 됩니다.”


내가 생각해도 그럴 듯하게 말은 잘한다. 나는 사전에 준비도 안 했는데 어떻게 이런 말들이 즉흥적으로 술술 나오는지 생각해 본다. 물론 어려웠던 시절 이런 주제를 가지고 치열하게 자기 성찰을 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하느님께서 참으로 나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을 이럴 때마다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사실은 나 자신도 용서에 관한 한 여전히 수련과정에 있는 사람이면서도 이런 말들이 조금도 주저함 없이 나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그 뒤로 이태리 여자는 몇 가지를 더 물어본 뒤 밝은 표정을 지으며 나의 앞날을 축복해 주고 자리를 떴다.


“주님, 이 여인의 앞길을 밝혀주소서!”


나는 홀가분한 기분이 되어 바닷가에 나가 명상에라도 잠겨 볼까 하고 터덜터덜 걷기 시작했다. 마침 간조 때가 되어서 만 안쪽에는 드넓은 풀밭이 형성되어 있었다. 떠내려 온 고목나무 등걸에 자리를 잡고 앉아 ‘튜닝’을 시작했다. 이 냄새, 이 풍광, 하느님의 축복이 아낌없이 핀드혼 만 안에 내리붓고 있었다. 그 때 멀리서 한 사내가 맨 살이 드러난 뻘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한참을 가더니 들고 간 그릇을 내려놓고 삽질을 하기 시작하였다. 옳거니, 조개를 잡아서 모에게 조개 국을 끓여 주어야겠다! 일어나서 바지가랭이를 걷어붙이고 뻘을 가로질러 그에게로 갔다. 그는 낚시 미끼로 쓰기 위하여 갯지렁이를 잡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어디로 가면 조개를 잡을 수 있는지 물었다. 그가 저 너머에 가면 많이 있을 것이라고 손짓으로 가르쳐 준다. 그곳에 가니 과연 조개가 천지였다. 어느 정도냐 하면 뻘을 파면 그 안이 조개무덤이라고 할 정도로 조개들로 가득 이었다. 영국 사람들은 자연물을 채취해서 먹는다는 개념이 없다. 먹는 것은 슈퍼에서 사먹는 것이지 자연은 어디까지나 자연이다. 어떻게 보면 자연보호 개념이 투철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그만큼 자연환경과 자신을 분리해서 보고 있다. 이들은 식품이 어떻게 자연상태에서 채취되어 자신의 밥상에까지 오르는지 본 일이 없기 때문에 식품이란 ‘테스코’나 ‘세인즈버리’ (영국의 거대 슈퍼마켓)에서 생산해 내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이곳에서도 때때로 야생풀을 뽑아 먹는 등 자연물을 채취하곤 하는데 대부분의 영국인들은 이런 것을 먹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고사하고 그런 행위조차 이해할 수 없다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바라보는 것이었다. 덕분에 영국의 산야에는 고사리와 같은 우리에게 친숙한 식용 풀들이 썩어문드러지게 자라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곳의 조개도 마찬가지이다. 조개가 외부의 간섭 없이 같은 자리에서 계속 나고 죽고 나고 죽고 하다보니 뻘 자체가 반은 조개 무덤이나 다름없이 되어버렸다. 그릇을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에 임기응변으로 티셔츠를 벗어서 부대를 만들어 정신없이 주워 담았다. 이곳의 조개는 대략 3종류였다. 홍합과 모시조개,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손바닥만한 큰 조개인데 역시 덩치가 크다보니 수량은 그리 많지 않았다. 조개를 주워 담으며 “만약 이런 곳이 한국의 아줌마 부대에게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단 며칠도 안되어 초토가 되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점에서 영국인들의 ‘무관심’이 이들 조개들에게는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거의 한 양동이는 될 것 같은 조개를 끙끙대며 들고 들어오니까 모의 눈이 휘둥그래진다. 그녀는 여기 살면서도 한번도 이런 일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다행이 모는 조개를 좋아했다. 내가 씻어 다듬고 모가 요리를 하였다. 냄새가 기가 막혔다. 둘이서 정신없이 조개를 까먹었다. 식사가 끝나고 보니 상위에 조개껍데기가 산처럼 쌓였다. 그녀가 흡족해 하는 것을 보고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나중에 런던의 도서관에서 조개이름을 알아보기 위해 관련 잡지들을 살펴보다가 나는 화보를 곁들인 한 기사를 읽고 가슴이 철렁했다. 거기에는 어떤 사람들이 산 속 냇가에서 민물 홍합을 잡아먹고 껍질을 수북하게 쌓아놓고 가버린 사진을 실어놓았다. 그 밑에 써 있기를 “민물 홍합은 영국 하천의 청정도를 측정하는 지표생물이다. 이것이 이 정도 크기로 자라려면 적어도 80년이 걸린다. 여기에 800여 개의 조개껍질이 버려져 있는데 어떻게 이들은 한 순간의 미각을 위하여 64,000년의 세월을 무참하게 유린할 수 있는가!”라고 하였다(이 민물홍합은 자연상태에서 수명이 100년이라고 한다). 수량이 많았던 홍합과 모시조개는 문제될게 없는데 손바닥만한 큰 조개가 먹고 나서도 마음에 걸렸다. 내가 혹시 희귀한 조개를 알지도 못하고 마구 먹어치운 게 아니가 하고. 아직도 나는 그 조개의 이름을 알아내지 못하고 있다.


이제 작별의 인사를 해야할 시간이다. 모는 일찍 일어나 영국식 아침식사를 만들어 놓았다. 참으로 고마운 분을 만나 즐거운 추억들을 가득 남겨 놓고 떠나는구나 싶었다. 함께 지내고 보니 왜 사람들이 그녀를 “원더풀 모”라고 부르는지 알겠다. 식사 후 그녀는 차로 나를 기차역까지 데려다 주었다. 기차가 왔다. 그녀와의 긴 포옹을 풀고 기차에 올랐다. 기차에 오르는 내게 두 장의 편지를 내밀며 외친다.


“Keep in touch, Bau!"


선반 위에 짐을 올려놓고 난쟁이 헤더(Heather)가 빽빽이 자라고 있는 스코트란드의 굴곡진 산야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산들이 끝나고 지루한 평원이 펼쳐질 때쯤이 되서야 주머니를

뒤적거려 편지를 꺼낸다. 하나는 모의 것이고 또 하나는 언젠가 모의 집 근처에서 한번 인사를 나눈 가브리엘이라는 여자였다. 먼저 모의 편지를 뜯는다. 예쁜 조가비와 마스코트 인형이 나온다. 그리고 함께 들어있는 쪽지에는 “이 기념품들이 네가 이곳에 있었음을 늘 상기시켜 줄 것이다”라고 써 있다. 가브리엘의 편지를 연다. 야생화가 그려져 있는 카드가 나오고 그 안에 정갈한 글씨로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당신의 경험을 우리에게 나누어주어서 감사합니다.
 당신의 이야기는 겸허하면서도 매우 감동적이었습니다. 
 당신이 겪은 고난에 대해 가슴아프게 생각하지만
 당신이 헤쳐온 길을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당신의 생애에 신의 축복이 있기를...“

 가브리엘 가이어

 *만약 글라스고우에 오실 일이 있다면
 저의 집에 묵어 가시기 바랍니다 (주소).

“Thank you so much for sharing your experiences
 with us.
 I found your talk very moving and humbling.
 I am so sorry for the suffering you have had
 but I am so proud of the way you have reached.
 May Blessings go with you
 throughout your life."


 Gabrielle M. Guire


*If you are ever in Glasgow and need a bed to sleep in
 please visit (address).

2000. 12. 31. 와이에서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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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오르빌 공동체는 인종, 계급, 종교 등 그 어떤 구분도 뛰어 넘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주목 받고 있으며, 가장 인간적이라는 공동체입니다.
오래됐다고는 해도 매년 유엔과 유네스코에서 예산을 지원받는 등 아직 완전한 자급자족 체제는 이루고 있지 못하더군여..
우리나라 tv에서 두어번 오르빌 공동체 관련 특집 프로그램이 방영된 적이 있었는데...
직접 가서 공동체에서 생활하고 있는 한국인을 만나 설명을 듣고나니 알고 있던 사실과는 조금 다른 부분도 많더군여..
일행 중 극단적인 일부는 "오르빌에 대한 환상이 깨졌다"고 까지 얘기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고작 몇 시간 둘러보고 그런 평가를 내릴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19년째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현숙씨는 오르빌에 관광객이 많이 오는 게 오르빌 생존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하더군여...
오르빌 생산품의 대부분이 기념품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오르빌은 평화를 염원하는 우리 모두의 꿈의 실험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혹시 인도를 여행할 기회가 있으신 분들은 꼭 오르빌 공동체에 한번씩 들러보는 것도 매우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념품 값도 매우 저렴하답니다....)

위의 여자분이 19년째 공동체를 지켜오고 있는 이현숙 씨입니다.
아래 사진은 식당 앞에서 놀고 있던 그곳 아이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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