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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사생관


쾌락이나 고통은 마치 못과 같아서 영혼(性)을 육체에 못 박아 버림으로써 그 영혼이 육체를 닮게 만들어, 육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따라가게 되기 때문에 육체와 어울려서 육체가 좋아하는 것이면 동조하고 육체와 더불어 같은 습성을 익히게 되고 세상을 떠나게 될 무렵이면 결코 깨끗해질 수도 없으며, 결국 다른 육체 속에 다시 들어가 또다시 육욕과 짝함으로써 신적(神的)이고 깨끗하며 소박한 존재와는 전혀 사귈 수  없고 가까워지지도 못한다.


신(神)들의 세계에 들어가 신들과 함께 살 수 있는 것은 오직 철학을 하여, 육체에서 완전히 해탈하여 영혼이 깨끗하게 정화된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일이다.


육체는 혼의 무덤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지혜롭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지혜로운 듯이 생각하는 어리석음 그자체이다.

자신의 죽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죽음이 인간에게 올 수 있는 축복가운데 가장 큰 것인지 아닌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죽음이 인간에게 닥칠 수 있는 최악인 것처럼 두려워한다.

이는 알지 못하면서 아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비난받을 만하다. 


철학적 삶이란 깨어있는 영혼으로 사는 것이고, 무지의 자각은 잠자는 영혼을 깨우는 행위이다.

무지를 자각함으로써 삶의 근저에 놓여있는 편협한 죽음관은 뿌리부터 흔들리게 된다.

무지를 자각해 인간의 지식이나 지혜가 보잘 것 없음을 자각하는 사람은 자기 삶을 절대시 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는 사람이다.

사람들이 삶에 애착하고 죽음을 피하려고 하는 것은 영혼이 잠들어 있기 때문이다.


깨어 있는 영혼은 삶에만 집착하지도 않고, 죽음을 절망이라고 단정하지도 않는다.

죽음은 두려운 현상도, 절망 그 자체도, 아무것도 없는 끝도 아니다.

다만 여유 있게 받아들여야 할 사건에 불과하다.

- 파이돈(플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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