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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을 지키는 사람

한나 노드하우스 지음, 최선영 옮김, 더숲, 2011.

 



 

석유의 위력은 참으로 대단하다. 지구상에 이런 광영이 재현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의식주에서 석유를 빼면, 고급 승용차와 아파트에서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하게 지내는 삶을 당연시하는 이는 당장 생사가 위태로워질 텐데, 상당 기간 석유에 의존해온 현생 인류 역시 온전하기 어려울 것이다. 석유를 많이 썼던 아니든 심지어 인간이든 아니든 심각한 변화에 직면할 것이고, 현재의 생태계는 적지 않은 변동을 피하기 어려울 게 틀림없다.

 

지난 1월 27일, 영국 BBC는 과학잡지 최신호에 발표된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보도했다. 세탁기로 빨래할 때 옷에서 떨어지는 마이크로플라스틱이 바다로 흘러들어 생태계를 교란하며 흡수돼 인체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으로, 옷 한 벌에서 1밀리미터 이하의 미세 플라스틱이 최대 1900개 배출된다고 덧붙였다. 해양 쓰레기의 60%에 이르는 마이크로플라스틱은 해류에 실려 한반도 6배에 해당하는 태평양에 소용돌이치며 떠돌다 어패류 먹이사슬을 거치며 정점에 다가갈수록 높은 농도로 흡수돼 쌓일 텐데, 스펀지처럼 중금속이나 화학물질을 빨아들이는 특성으로 먹이사슬 최상위 동물에 치명적일 수 있다고 BBC는 보도했다. 대책으로 연구진은 하수처리의 획기적 개선을 제안했지만 현재 기술로 개선될 기미가 없다던데, 이미 배출된 마이크로플라스틱은 어쩌나.

 

어패류를 즐기는 우리의 몸에 어쩌면 적지 않은 마이크로플라스틱이 소화기와 호흡기의 여기저기에 박혀있을지 모른다. 인체를 괴롭히는 미세물질은 물론 석유를 가공한 플라스틱만이 아니다. 석유가 가공되기 전까지 세상에 없었기에 분해할 생물이 존재하지 않는 숱한 석유화학제품은 잘게 부서진 채 지구촌 구석구석에 넘치지만, 넘치는 석유화학제품은 플라스틱에서 그치지 않는다. 1964년 재발된 유방암으로 56세에 숨진 레이첼 카슨은 죽기 2년 전, 《침묵의 봄》으로 살충제와 제초제의 위험성을 고발했다. 분해할 생물이 없는 석유화학제품의 긴 목록에 일부 포함되는 독성 물질들이다. 《침묵의 봄》 이후 문제가 되었던 많은 살충제와 제초제는 생산이 중단되었지만 아직 어딘가에 남아 있다. 꿀벌의 몸도 예외가 아니다.

 


만신창이가 된 꿀벌 

농업 면세유 가격이 오르면서 딸기 수확기를 맞은 비닐하우스마다 농부들은 울상이었다. 겨우내 붉고 탐스러워져야 할 딸기가 보일러 열기를 제대로 받지 못해 푸르죽죽하니 누가 선뜻 사려할 것인가. 인상된 면세유 가격을 반영한 까닭에 주머니 사정이 전 같지 않아진 소비자들은 큰맘 먹어야 구입하려 할 텐데, 대형 마트 지하 식품매장의 딸기도 전 같지 않다. 이파리가 붙은 쪽의 과육은 여전히 퍼렇다. 그래도 커다랗기만 한 이맘때의 딸기는 일찍이 성장호르몬이 처리되었음을 숨기지 못한다. 이파리만 괜히 커다란 게 아니다. 과육을 보라. 하도 커 그런지, 한입 베어물면 참외도 아니면서 빈 속이 드러난다.

 

제 본분 모르고 커진 과일과 채소는 딸기만이 아니다. 성장호르몬을 처리한 만큼 터무니없게 서둘러 자라야 하는 과일은 석유를 가공한 화학비료를 듬뿍 뿌리지 않으면 안된다. 그 비료를 잡초에게 빼앗기지 않아야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테니 농부는 제초제를 수시로 뿌리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게 큰돈 들이며 조심스럽게 재배하는 과일에 벌레가 생기면 곤란하다. 때때로 살충제를 뿌리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 과일들, 꿀벌이 꽃가루를 수정해야 열매를 맺는데, 꿀벌은 살충제와 제초제에 무척 약하다.

 

비닐하우스의 딸기도 꿀벌이 꽃가루를 수정해야 한다. 한데 이맘때 출하하는 딸기가 꽃망울을 터뜨리는 계절에는 날아다니는 꿀벌이 없다. 농부는 비닐하우스용 꿀벌을 그때마다 구입할 텐데, 그 꿀벌들은 일회용이다. 어차피 추운 비닐하우스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처지인데, 꽃가루 수정이 끝나면 농부는 꿀벌이 기피하는 화학비료를 비닐하우스 안에 흥건히 뿌릴 것이므로 그렇다. 그렇다면 노지의 딸기가 제 계절에 꽃을 피워낼 때 벌통을 나온 꿀벌들은 괜찮을까. 면역력이 약해진 꿀벌에 나타난다는 ‘낭충붕아부패병’으로 토종벌들이 죽어나가는 우리의 현실은 꿀벌에 다음세대의 시작을 의뢰하는 생물에게 그리 희망적이지 않다. 토종벌보다 개체수가 훨씬 많은 양봉은 괜찮을까. 4월 둘째 주말이면 100만 인파가 밤낮으로 운집하는 여의도 윤중로의 벚나무 가로수 사이에서 통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꿀벌들은 거의 양봉이다. 미국과 유럽의 양봉가에서 들리는 소문은 이미 흉흉하다.

 

2009년부터 토종벌들이 낭충붕아부패병으로 본격적으로 몰살되기 시작한 우리나라와 달리 유럽과 미국은 ‘꿀벌집단붕괴현상’으로 양봉가들이 시방 몸서리치고 있는데, 그 전에 꿀벌의 기생충인 응애에 끔찍한 시달림을 받았다. 핀 머리 크기에 불과한 응애는 꿀벌 애벌레의 몸에 알을 낳고 번식하며 집단을 늘려 벌집 전체를 응애로 뒤바뀌게 한다. 눈도 날개도 없는 응애는 바다를 건널 수 없다. 인도네시아에서 발견된 문제의 응애가 삽시간에 세계 각국으로 퍼진 건 비행기나 배의 도움이 컸을 것이다. 세계 방방곳곳의 여왕벌과 꿀벌은 그 자체가 부가가치를 보장하는 상품이 아니던가. 응애가 극성이라도 양봉업계의 지원을 받는 과학자가 버티고 있기에 일단 안심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꿀벌에 피해를 주지 않고 오로지 응애만 처리하는 살충제를 개발해 쉽게 해결되는 듯 보였던 거다. 하지만 꿀벌보다 작은 응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살충제에 견디기 시작했고, 독성을 강화한 살충제마저 우습게 여기게 되었다. 그러자 이번엔 꿀벌이 위험해졌다.

 

기생충과 숙주의 관계는 묘하다. 숙주를 다 죽일 정도로 확산되면 자신의 운명도 머지않아 끝난다. 꿀벌이 원래 응애에 맥없이 당했다면 꿀벌은 벌써 자취를 감췄을 터. 대부분의 꿀벌은 응애를 피할 재간을 갖고 있고 응애가 전하는 바이러스나 독성도 잘 견뎌냈을 텐데, 요사이 꿀벌은 도무지 속수무책이다. 무슨 변고인가. 《꿀벌을 지키는 사람》의 저자 한나 노드하우스는 꿀벌의 면역력을 주목한다. 응애 살충제만이 아니다. 경작지 곳곳에 뿌린 살충제와 제초제가 어디 한두 가지인가. 전문가는 꿀벌의 몸은 어느새 만신창이가 되었다는 걸 속속 증명한다. 그 작은 몸을 공격하는 숱한 농약들이 꿀벌의 면역력을 형편없이 떨어뜨리자, 독성을 강화한 응애에 속절없이 당하게 되었다는 거다. 이제 벌통을 지키려는 양봉가의 선택은 무엇이어야 하나. 살충제의 개량이 대규모 양봉가에게 당장 솔깃할 텐데, 이후 더 심각한 피해가 닥칠 수 있다.

 

등에 묻는 꽃가루를 다리를 들어올리며 모으는 행동은 등에 붙은 응애를 떨쳐내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미국에서 문제가 된 응애의 공격을 먼저 받은 동양계 꿀벌은 그런 행동을 보인다고 한다. 따라서 동양계 꿀벌로 미국에 보편적인 유럽계 꿀벌의 품종을 개량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텐데, 그 과정에서 타고난 유전적 다양성은 더욱 위축될 것이다. 한데 꿀벌은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양식되었다. 양식하면서 양봉가는 사납게 쏘아대는 성가신 행동을 보이는 개체들을 선택하지 않는 방식으로, 그런 유전자를 제거하고 꿀을 많이 가져오는 유전자를 선택했을 터. 그런 품종개량이 지역마다 거듭되었을 테니 타고난 유전적 다양성은 오래 전부터 조금씩 줄었을지 모른다. 유럽에서 이주한 정착인과 더불어 미국으로 넘어온 꿀벌을 북미원주민은 ‘백인의 파리’라고 불렀다던데, 전래의 농업 문화에 따라 세계 곳곳에서 선택과 집중으로 품종을 개량한 꿀벌은 이미 자연종이 아니다. 그 점에서 우리 토종벌도 마찬가지다. 크든 작든, 양봉가의 벌통에서 벌통으로 세대를 이어오지 않았던가.

 


꿀벌집단붕괴현상은 우리 현실의 표상 

기족이 관리할 수 있을 만큼 벌통을 놓고 양봉을 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적어도 세계 아몬드 생산량의 80%를 지배하는 미국에서 소박한 양봉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시대는 추억이 되었다. 성장호르몬을 바르는 과수원처럼, 남보다 빨리 많은 꿀을 모아야 경쟁에서 승리하는 양봉업계의 세태는 탐욕이 견인한다. 달콤한 끌을 모으는 꿀벌은 탐욕스런 인간에게 운명적으로 희생될 수밖에 없었다. 꿀벌집단붕괴현상은 그 결과다.

 

식물 성장호르몬을 발라 커다란 과일을 받으려는 과수원은 가는 가지에 빼곡하게 피는 꽃을 전부 챙기려하지 않는다. 살구도 마찬가진데, 살구와 아주 가까운 아몬드는 과육이 아니라 씨앗을 수확하므로 모든 꽃이 수정되어야 실속이 크다. 미국 캘리포니아 센트럴벨리에 자로 잰 듯 심어놓은 아몬드나무는 완전히 기계로 수확된다. 기계의 오차범위 내에서 재배와 수확이 보장되어야 하므로 유전적 다양성은 상당 부분 제거되었다는 뜻이다.

 

대규모 단작인 아몬드농장에 수많은 꽃은 일제히 피고 진다. 그 짧은 시간에 꿀벌이 동원되어야 하고 꽃가루 수정을 마친 꿀벌들은 즉시 떠나야 한다.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농약 세례를 받는다. 200마일에 이르는 농장의 아몬드를 일시에 꽃가루 수정할 꿀벌은 그 지역만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 따라서 미국 각지에서 꿀벌이 몰려와야하는데, 소박한 양봉가는 당연히 배제된다. 수천에서 수만 개의 벌통을 취급하는 양봉가들은 이른 봄부터 그때를 손꼽아 기다리지만, 면역이 약해진 꿀벌들은 추위에 약하다. 질병에도 약하다. 미국은 물론, 인근 국가와 유럽의 꿀벌까지 끌어들이는 아몬드농장은 질병을 한순간에 퍼뜨리는 온상이 된다.

 

아몬드나무와 농장은 기계에 최적화되었지만 자연은 그렇지 않다. 어느 해는 비가 많고 한파가 몰아치기도 하지만 어느 해는 가뭄이 계속된다. 아몬드나무에 꽃이 피는 이름 봄을 대비해 억지로 동면에서 깨어나는 꿀벌은 아직 벌통마다 충분한 일벌을 늘리지 못했다. 여왕벌이 수벌과 짝짓기 여행을 떠났다 돌아와 하루에 2000개의 알을 낳으려면 더 따뜻해야 한다. 마음 급한 대규모 양봉가는 여왕벌을 공장에서 대량으로 구입해 해결한다. 여왕벌이 갑자기 사라지거나 주위의 서식환경이 열악해지면 일벌들이 알에서 여러 마리의 여왕벌 후보를 간택해 맹렬하게 키우는 습성이 있다. 그 습성을 한껏 이용해 생산한 하루 수천 마리의 여왕벌을 양봉가에게 파는 기업이 등장한 것이다. 그렇게 생산된 여왕벌에게 유전적 다양성은 기대할 수 없다. 면역력도 물론 기대할 수 없다. 여왕벌이 낳은 알에서 태어날 일벌도 마찬가지다.

 

벌통에서 로열젤리를 연실 내주는 일벌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으며 태어난 여왕벌이 경쟁자를 물리치고 벌통을 물려받은 뒤, 여러 벌통에서 짝짓기에 도전하는 여러 수벌과 공중에서 교배하여 낳은 알이라면 고유의 유전적 다양성과 면역력을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을 테지만, 그런 꿀벌은 양봉가의 벌통에서 퇴출된 지 오래다. 응애에 속수무책인 꿀벌은 이미 수많은 농약에 찌들어 기진맥진해 있다. 거기에 얹어진 새로운 농약은 해마다 그 가짓수와 독성을 더하는데, 봄부터 가을까지 꿀과 꽃가루를 날아오느라 지치는 꿀벌이 어찌 감당할 수 있으랴. 결국 사단이 났다. 꿀벌의 신경계를 퇴화시키는 것으로 짐작되는 살충제, 네오니코티노이드가 탈을 일으킨 것이다. 꿀과 꽃가루는 물론, 한창 자라는 애벌레들까지 남긴 채 벌통을 나간 일벌이 돌아오지 않는 꿀벌집단붕괴현상이 뒤따르는 게 아닌가. 그것도 광범위하게.

 

처음엔 휴대전화와 그 기지국에서 내뿜는 전자파가 원인일 거라 막연히 추측했지만 기지국에서 멀리 떨어진 벌통에도 예외가 없기에 기각되었다. 만일 전자파가 원인이라는 결론이 난다면, 사람들은 기꺼이 휴대전화를 포기하려 할까? 이미 익숙해진, 아니 없으면 불안해하는 현대인의 대부분은 저항할지라도ㅡ 일부는 심각성을 인식하고 자진해서 포기할지 모른다. 하지만 삼성이나 엘지 같은 휴대전화 생산회사, SK나 KT와 같은 무선통신 회사도 수익이 큰 사업을 순순히 포기할까. 1962년 《침묵의 봄》이 출간되자 전문 과학자들을 총동원하며 레이첼 카슨을 비난했던 농약회사처럼, 복잡한 인과관계를 연실 들먹이는 전문가들 동원할 기업은 아랑곳하지 않을 게 뻔하다. 프레온가스를 대체할 냉매를 개발한 뒤 몬트리올 협상에 응한 기업처럼, 시간을 어지간히 끌 것이다.

 

네오니코티노이드에 혐의가 있다는 연구가 잇따르자 역시나, 그 살충제를 생산하는 기업이 반박하고 나섰다. 네오니코티노이드 살충제를 금지한 프랑스에도 꿀벌집단붕괴현상이 나타났다면서 판매금지 요청에 저항한 것인데, 양봉가나 꿀벌을 생각한 처사는 물론 아니었다. 그렇다면 네오니코티노이드가 꿀벌집단붕괴현상의 주범일까. 아닐 것이다. 이미 만신창이가 된 꿀벌에게 마지막 충격을 주었을지 모르지만 절대적 원인으로 간주할 수 없다고 과학자들은 동의한다. 한데 최근 집중되는 대형 양봉가의 손실에서 꿀벌집단붕괴현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의외로 작을지 모른다.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과 홍수, 때 이른 한파와 살인적인 더위는 꿀벌 집단에 질병을 늘릴 뿐 아니라 치명적인 굶주림까지 안기지 않던가. 그 결과 응애가 공격하는 일은 식은 죽 먹기가 되었을 것이다. 거기까지인가. 아니다. 처참해질 정도로 면역력이 약해진 꿀벌의 희생은 꿀벌의 문제에서 끝날 리 없다.

 

우리가 먹는 농작물의 3분의1은 꿀벌이 꽃가루를 수정해야 얻을 수 있다. 아인슈타인이 꿀벌이 사라지면 인류는 4년을 버틸 수 없다고 일찍이 경고했다던데, 아인슈타인이 살아 있을 때에도 꿀벌의 면역은 신통치 않았을 테지만 적어도 요즘 같은 집단붕괴현상은 없었다. 응애에 희생되는 벌통이 가끔 있었을 테지만 요즘처럼 속수무책은 아니었을 것이다. 양봉보다 효율이 다소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진 우리의 토중벌도 아인슈타인이 경고했을 당시, 낭충붕아부패병으로 속절없이 죽어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탐욕이 이끈 지나친 꿀벌 착취는 이제 부메랑이 되려 한다. 꿀벌이 사라지고 있지 않은가.

 

농작물만이 아니다. 화려하고 꽃의 향기가 진한 대부분의 식물도 꿀벌이 있어야 다음 세대를 제대로 기약할 수 있다. 박쥐나 직박구리와 같은 새, 그리고 가끔 다른 벌이 꽃가루를 수정하지만, 그 양은 작다. 꿀벌이 사라지면 인류는 당장 벌꿀을 맛볼 수 없고, 얼마 안 가 먹어야 할 농작물도 급격히 줄어들겠지만, 생태계는 급격히 왜곡될 수밖에 없고 과학기술을 앞세우는 사람도 그 영향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아인슈타인의 주장처럼 4년 만에 인류의 삶이 마감될지 알 수 없지만, 훨씬 먼저 세상에 나온 꿀벌과 생태계 덕분에 살아가는 인류도 내일을 기약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아직 꿀벌은 남아 있다. 드물어졌더라도 여전히 농작물과 현화식물에게 꽃가루를 수정해준다. 덕분에 우리는 성장호르몬 발라 터무니없이 커진 과일을 명절 선물용으로 구입해 친지에게 전할 수 있다.

 


대안은 획기적인 전환뿐이다 

한나 노드하우스는 《꿀벌을 지키는 사람》에서 돌이키기 어려울 정도로 커진 미국의 거대 농업에서 꿀벌의 대규모 양봉은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예전같이 가족 단위로 자급자족하는 농업과 양봉으로 돌아갈 수 없으니 지금과 같은 체제 안에서 대책을 세울 수밖에 없다는데 은근히 동의한다. 바로 대규모 양봉가들이 선호하는 개선된 농약과 꿀벌의 품종개량이다. 들어가는 돈과 혹독한 노동에 비해 벌어들이는 돈이 신통치 않은 양봉을 물려받으려는 젊은이들은 부족하지만, 아직 꿀벌은 사람에게 관대하므로 역경에도 살아남는 꿀벌을 잘 선택하면서 공존할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양봉가의 말을 빌려 제안한다. 꿀벌을 사랑하는 한 무던한 양봉가를 여러 해 취재하며 《꿀벌을 지키는 사람》을 쓴 저자의 결론인데, 꿀벌은 과연 언제까지 인간에게 관대할 수 있을까.

 

유전적 다양성을 잃은 꿀벌은 면역력마저 상실했는데, 기후변화에 대처할 능력이 남아 있을까. 유전적 다양성은 환경변화에 대처할 능력을 담보하는데, 탐욕이 인도한 극단적 단작은 기후변화에 대처할 적응력을 위축시켰다. 유전적 다양성을 잃은 까닭이다. 중요한 밀원식물인 아몬드와 과일나무만이 아니다. 산업화된 꿀벌과 가축도 마찬가지다. 극단적인 품종개량으로 타고난 유전적 다양성을 꽤 잃었다. 어쩌면 획일적으로 주어지는 산업문명의 중앙 집중적 편의에 길든 사람들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유전적 다양성보다 의식과 행동의 다양성은 분명히 손상되었다.

 

적응력이 없다면 환경변화에 대처할 수 없는데, 이제 석유가 만든 광영, 다시 말해 인간에게 안락하게 하던 환경은 머지않아 종말을 고할 것이다. 과학기술을 동원하는 사람은 석유를 과다하게 소비하는 산업문명을 억지로 유지하려 발버둥치지만 생산의 정점이 지난 석유는 머지않아 고갈될 것이다. 우린 석유가 고갈될 거라는 사실을 기반으로 대책을 근본에서 세우지 않으면 안된다. 양봉도 마찬가지다. 탐욕에 기반을 두는 농업이 기후변화 시대에 위험한 것처럼 대규모의 양봉에 획기적인 전환이 모색되지 않는다면 기반을 상실할 수 있다. 꿀벌집단붕괴에 이은 부메랑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도시의 아스팔트 못지않게 잡초 하나 남기지 않는 농부는 까치와 꿀벌을 내쫓는다. 반면 자신의 과수원에 그물을 치지 않는 유기농 농부는 꿀벌은 물론이고 까치에게도 관대하다. 잡초 하나 없이 깨끗한 과수원에서 까치들은 먹을 것을 찾을 수 없으니 과일들을 기웃거리지만 잡초에 벌레까지 우글거리는 유기농 과수원은 다르다. 그물을 둘러쳐도 집요하게 뚫고 들어와 익지 않은 과일 지분거리는 까치는 농부에게 유해조수가 되었지만 곤충을 잡아먹는 까치는 여전히 친숙한 과수원의 이웃이다. 그 까치도 과일을 건드려보지만 익지 않아 떫기에 진작 흥미를 잃고 만다. 유기농 과수원은 그물을 치는 과수원보다 벌어들이는 돈은 적지만 쓰는 돈이 적어 큰 걱정을 하지 않는다. 비록 소출이 작아도 가격을 더 쳐주는 유기농 과일이라 수입이 만족스럽다.

 

한나 노드하우스는 단작이 광범위하게 지배하는 미국식 농업의 한계를 굳이 언급하지 않았지만, 탐욕이 인도하는 단작의 문제는 분명하게 인식한다. 미국 농산물이 자국 뿐 아니라 한국과 같은 국가의 식량으로 공급되는 현실을 감안하기에, 근본적인 대안을 자신의 책에서 굳이 내색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꿀벌집단붕괴현상이나 응애의 습격, 그리고 낭충붕아부패병은 지금과 같은 대규모 양봉이 갖는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걸 《꿀벌을 지키는 사람》의 독자는 인식할 필요가 있다.

 

대형 양봉가부터 생각하는 미봉책은 나중에 닥칠 더욱 큰 문제를 피할 수 없게 만들 것이다. 대안은 지역에서 자족할 수 있는 소박한 양봉과 단작을 회피하는 소농이어야 한다. 세탁기에서 나온 옷 보푸라기가 사람을 역습하는 시대에 하수처리 개선은 의미가 없다. 마이크로플라스틱을 배출하는 원단을 포기해야 한다. 석유 없이 재배하는 제철 제 고장 딸기로 만족하자는 거다.

- 녹색평론 2012년 3-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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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신 전 살충제의 노출이 아이들의 건강과 지능발달에 해로운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임신 중 산모의 건강과 주위 환경이 태아의 건강에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 버클리 캠퍼스(UC버클리)연구팀은 임신 전 살충제의 노출이 아이들의 건강과 지능발달에 해로운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UC버클리 연구팀은 산모가 임신기간에 유기인산(organophosphate)계 살충제에 노출되는 것이 아이의 7살 전후 IQ 지수와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과학저널 ‘환경건강 전망(Environmental Health Perspectives)’ 최신호에 보고했다.


산전 살충제 노출, 자녀의 IQ지수 낮춰

연구팀에 따르면 산전 유기인산 살충제 노출량이 매 10배 증가할 때마다 7살 유아의 전반적인 IQ 지수가 5.5 포인트 가량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신 기간 가장 높은 수준의 살충제에 노출된 아이는 가장 낮은 수준의 살충제에 노출된 아이에 비해 IQ 테스트에서 7포인트 낮은 IQ 지수를 기록했다. 


UC버클리 유아건강학과 브렌다 에스케나지(Brenda Eskenazi)교수는 “이는 인구 전체의 관점에서 봤을 때 매우 중요하다”면서 “살충제 노출에 따른 IQ 지수의 차이는 보다 많은 아이들이 학습저하에 놓여있으며 이러한 아이들은 학교에서 특별한 조치를 요구한다”고 지적했다.


UC버클리 연구팀의 논문을 비롯해 ‘환경건강 전망’에는 살충제 노출과 자녀의 IQ에 관한 3편의 논문이 게재됐다. 마운트 시나이 의학센터 연구팀과 컬럼비아대 연구팀은 각각 뉴욕 시민을 대상으로 연구를 수행했으며 UC 버클리 연구팀은 캘리포니아 소재 농촌 지역민을 대상으로 연구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 과일이나 야채에 잔류된 농약에 노출된 아이들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위험이 커진다. 


UC버클리 연구팀과 마운트 시나이 의학센터 연구팀은 산모의 소변에서 살충제 잔류물을 조사했다. 반면 컬럼비아대 연구팀은 클로르피리포스(Chlorpyrifos)라는 살충제의 제대혈 농도를 검사했다. 컬럼비아대 연구팀의 연구결과에서도 산전 살충제 노출이 7세경 아이들의 IQ지수와 작업 기억력을 낮추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기인산계 살충제는 신경독성제로 널리 알려진 살충제이다. 유기인산계 살충제인 클로르피리포스와 다이아지논(diazinon)은 아이들의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는 이유 등으로 실내사용이 금지됐다. 


UC버클리 연구팀은 329명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출생 전부터 연구를 수행했다. 연구팀은 329명의 아이들과 이들의 엄마를 대상으로 임신 중 산모로부터 두 번 채취한 소변과 출생 후 생후 6개월과 5년 두 번 아이들 소변 샘플을 채취 분석했다. 


연구팀은 1999년 임신 중인 여성들을 실험 참가자로 등록했으며 임신 기간과 출산 이후 이들 참가자들은 정기적으로 연구팀을 방문했다. 방문 기간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들의 소변샘플을 채취해 DAP를 테스트했다. DAP(dialkyl phosphate)는 미국에서 사용되는 유기인산계 살충제 잔류물의 75% 수준을 차지한다. 


아이들은 7살일 때 인지능력을 측정하기 위해 Wechsler Intelligence Scale(WISC-IV)이라는 IQ 테스트를 받았다. 이 테스트는 언어이해(verbal comprehension), 지각추론(perceptual reasoning), 작업 기억(working memory), 작업속도(processing speed) 등으로 구성됐다.


전반적인 IQ 지수뿐만 아니라 엄마가 임신 중에 높은 농도의 DAPs에 노출된 아이들은 각각 4개의 하위 카테고리 점수에서도 현저한 감소를 보였다. 연구팀이 태교, 가정수입, DDT, 납 등 다른 유해 환경물질의 노출 정도 등을 고려해도 연구결과는 유효했다. 


에스케나지 교수는 “매 연구마다 제한이 있었다”며 “우리는 살충제 노출정도를 측정하기 위해 잔류물을 사용했다. 특정 살충제의 화학성분을 분리할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우리의 연구와 컬럼비아대의 연구는 임신 여성과 그들의 자녀를 대상으로 연구가 고안됐기 때문에 아이들의 건강에 환경요인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조사하는 강력한 방법 가운데 하나”라고 덧붙였다.


태아 때 노출이 출생 후 노출보다 치명적

산전 유기인산계 살충제에 대한 노출이 아이들의 IQ 지수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출생 이후에는 그렇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생 전, 후 살충제 노출에 대한 이러한 차이는 임신 중 뇌의 발달기간에 살충제에 노출되는 것이 출생 이후 유아기 살충제 노출보다 더 치명적일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실험에 참가한 여성들의 DAPs 노출 수준은 미국 전체 인구의 평균 노출 수준보다 다소 높았지만 측정의 정도를 벗어날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논문의 제1저자인 마리스 부샤르(Maryse Bouchard)박사는 “이번 연구결과는 전체 인구에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뉴욕시민을 대상으로 한 다른 2편의 연구논문은 살충제 노출과 IQ 지수의 연관성이 단지 농촌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에만 국한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보여졌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에서 산전 노출 측정은 1999~2000년 사이에 이뤄졌다. 현재 미국에서 유기인산계 살충제 사용은 감소 추세이다. 2001~2009년 약 50% 이상 감소했으며 캘리포니아주에서는 2001년 이후 45% 가량 감소했다. 


질병통제국에 따르면 사라들은 유기인산계 살충제를 사용한 음식물을 섭취함으로써 유기인산계 살충제에 노출된다. 농부, 정원사, 꽃 재배사, 살충제 공장직원 등은 보통 사람들보다 더 많은 양의 살충제에 노출될 수 있다.


살충제 실내 사용 금지하고 과일-야채 씻어 먹어야

연구팀은 “살충제를 집이나 실내에서 사용할 때 많은 사람들이 이에 노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실내 살충제 사용을 자제하고 과일과 야채 등 농산물을 철저히 물로 씻어서 먹을 것을 당부했다. 


앞서 마리스 부샤르 연구팀은 과일이나 야채에 잔류된 농약에 노출된 아이들이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위험이 커진다는 연구결과를 보고한 바 있다.


지난해 5월 연구팀은 천식아이 150명을 포함한 8~15세 아이들 1천139명을 대상으로 소변의 잔류농약 수치를 측정했다. 그 결과 유기인산계 살충제 수치가 높은 아이들이 수치가 정상인 아이들에 비해 ADHD 발생률이 2배 가까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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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아름다운 날, 옥수수밭에서 시작할 것이다 — 지난 여름 아이오와의 옥수수밭이라 부를 것이다. 옥수수는 키가 크다. 대기가 반짝이고 있다. 단 하나 잊은 것이 있다 — 그건 매우 중요하다...


... 중요하지만, 아직은 말하지 않겠다.


대신 돌아가보자. 잠시 뒤 옥수수밭으로 돌아올 것이지만, 재미를 위해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에 있는 공원으로 날아가겠다. 그곳에서 금속제 큐브가 잔디밭에 놓여 있는 걸 볼 것이다.



그 큐브는 사진작가 David Liittschwager 씨가 놓아둔 것이다. 그는 몇 년 동안 세계를 여행하면서 정원과 공원, 숲, 바다 등 사진을 찍는 곳에다 큐브를 하나씩 놓았다. 딱정벌레, 귀뚜라미, 물고기, 거미, 벌레, 새 — 눈으로 볼 수 있을 만큼 큰 건 사진을 찍었다. 24시간 뒤 그가 케이프타운의 큐브에서 발견한 것은 다음과 같다:



0.02평의 잔디밭에서 30가지의 식물과 약 70가지의 벌레가 있다. 그리고 영국 가디언에 연구자가, "큐브를 집어들고 10걸음을 걸어가면, 50% 이상 다른 식물 종을 만날 수 있었다. 그걸 언덕 위로 옮기면, 그 종을 찾아보지 못할 것이다." 개체군이 거리에 따라 크게 변했다 — 눈에 보이지 않는 곰팡이나 미생물, 자그마한 것들은 세지도 않았다.


또 다른 사례: 여기 코스타리카의 해발 30m 지점에 사는 무화과나무 밑에 큐브를 놓았다. 여기에서 아래로 계곡이 보인다.



웬일인가? 150가지 이상의 식물과 동물이 0.02평의 공간에 살거나 지나다녔다: 새, 딱정벌레, 파리, 나방, 벌레, 벌레, 벌레, 벌레...



하바드대의 생물학자 E.O. Wilson 씨는 David Liittschwager의 사진집의 서문에서 그건 보통 우리의 이목을 끄는 큰 동물이라고 했다. 무릎을 굽혀 작은 부분까지 관찰하면 "점차 더 작은 서식지, 더 막대한 수를 가리기 시작할 것이다."


그들은 흙을 만들고 공기를 통하게 하며, 수분을 시키고, 잡동사니를 제거하는 생물이다. 이들은 엄청나게 많이 있다. 


옥수수밭으로 돌아가자.


아이오와로 돌아가 나의 동료 Craig Childs 씨와 모험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자신의 새 책에서 얘기했듯이, Angus라는 친구를 고용해 함께 Grundy County에 있는 73만4500평의 밭 한가운데에서 사흘을 보내기로 했다. 그들의 계획은 옥수수밭 사이에서 살고 있는 옥수수 이외의 생물을 찾는 것이다. 곧 Liittschwager와 같은 개체수 조사다.


그러나 옥수수밭은 국립공원이나 원시림과 같지 않다. 옥수수 농민은 옥수수를 옹호한다. 옥수수를 먹는, 옥수수를 해치는, 옥수수를 방해하는 어떠한 것이든 죽인다. 그들의 옥수수는 해충을 방제하며 재배된다. 땅에다가 살포한다. 줄기에다가도 또 살포한다. "무얼 찾을 수 있을 것인가?"



그 답에 놀랐다. 그는 거의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나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새 소리도, 벌레 울음소리도."


거기에는 벌도 없었다. 대기와 대지는 텅 비어 있었다. 그는 개미 한 마리를 발견했는데 "너무 작아 표본으로 만들지도 못했다." 잠시 뒤, 다른 두둑으로 기어가서 버섯을 발견했다. 그건 "사과 씨앗만 했다(아래 그림의 하나)." 그러고 난 뒤 거미줄의 거미가 꾸정모기를 (딱 한 마리) 먹고 있었다. "먼지만 한" 한 마리 빨간 진드기가 "황급히 메마른 땅 위로 지나갔다." 메뚜기 몇 마리 그게 다이다. 여기저기 기어다녔지만 그가 발견한 건 더 없었다. 


"완전히 다른 행성에 온 느낌이었다." 벌거벗은 세계.


그러나 100년 전, 이 밭이 있던 이곳 평원은 300종의 식물, 60종의 포유류, 300종의 조류, 수천 마리의 곤충들이 살던 곳이었다. 이곳의 흙은 미국에서 가장 기름지고 좋았다. 그런데 지금 이곳에선 거의 아무것도 살지 않는다. 우리가 모두 없애 버렸다. 


물론 우린 인구를 부양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지구 위에 사는 모든 생명을 위한 작디작은 창조물도 필요하다. 의도적으로 식량을 생산하기 위해 생물학적 사막을 만들어 버리는 이상한 종이 하나 있다: 바로 우리들이다. 그래, 그게 효율적이다. 개미가 사라지고, 벌이 사라지고, 새들이 떠나버리는 그런 효율이다. 여기에는 무언가가 없다. 우리의 옥수수밭은 너무 조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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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봄’에는 침묵해야 하나

[강석기의 과학카페 101] 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 발간 50주년


“아침이면 울새와 개똥지빠귀, 비둘기, 어치, 굴뚝새를 비롯해 수많은 새들의 합창 소리로 요란했지만 지금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들과 숲, 습지에는 침묵만이 드리워져 있다.”

- 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


1962년 9월 27일은 미국의 해양생물학자이자 과학저술가인 레이첼 카슨의 명저 ‘침묵의 봄(Silent Spring)’이 출간된 날이다. 20세기 후반 나온 과학교양서 가운데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큰 영향을 끼친 대표적인 책을 꼽으라면 리처드 도킨슨의 ‘이기적인 유전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함께 카슨의 ‘침묵의 봄’이 들어가지 않을까.


살충제 DDT로 상징되는 인류의 과도한 화학물질 남용이 가져올 수 있는 파국을 마치 소설처럼 써 경각심을 일깨운 ‘침묵의 봄’은 오늘날 환경운동의 모태가 됐을 뿐 아니라 각국의 산업정책에 전환점을 가져온 계기가 됐다. 실제 사람들의 삶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과학책일 것이다.


●화학물질에 대한 불안 여전


“침묵의 봄은 무슨…. 새소리만 요란하구만.”


전공자도 아니면서 화학물질의 위험성을 과대포장해 사람들의 감성에 호소한 센세이셔널리즘의 대표적인 예라고 카슨과 ‘침묵의 봄’을 폄하하는 사람도 있지만, 솔직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면 카슨의 책 덕분에 브레이크없이 질주하던 화학산업이 주춤하면서 그나마 지구가 오늘날 이 정도 상태라도 유지하는 게 아닐까.


‘침묵의 봄’이 출간되기 전 상황이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1958년 미 농무부가 불개미를 없애겠다고 수십만 헥타르의 면적에 DDT를 공중살포할 정도였다. 만약 지금 어떤 정부가 그런 짓을 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상황이 나아졌는가 하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이 공교롭게도 ‘침묵의 봄’이 출간된 바로 그날 우리나라에서는 ‘출간 50주년’을 기념하는 듯(?) 불산가스누출사고가 일어났고 이에 대한 해당 기업과 정부의 대응은 ‘침묵의 가을’을 걱정해야 하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최근 한 식품회사의 라면스프에서 발암물질인 벤조피렌이 들어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해당 업체와 식품의약품안전청의 대응에 사람들은 고개를 저어야 했다. 잊을만 하면 터지는 화학물질 관련 사건에 (특히 식품과 관련돼 있을 경우) 사람들은 마음을 놓을 수 없다.


그런데 설사 이런 사고를 미연에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다고 해서 사람들이 맘 편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최근 과학저널 ‘사이언스’와 ‘네이처’에 실린 글들을 보면 50년 전 살충제 대량 살포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침묵의 봄’이 여전히 진행 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존재 자체가 문제되는 화학물질


‘오염된 세계에서의 삶(Life in a contaminated world)’이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사이언스’ 9월 28일자에 기고한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의대 루이스 귈레트 교수와 일본 국립기초생물학연구소 이구치 타이젠 박사의 글은 난자와 정자가 수정하기 이전부터 시작되는 주변 화학물질의 영향을 걱정스런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다.


“사람들이 자신의 미래를 살충제 스프레이 같은 별 것 아닌 것들에 내맡기고 있다고 생각하니 참 아이러니하다.”


필자들은 ‘침묵의 봄’에 나오는 위 구절이 선견지명이 있다며 “레이첼 카슨은 자신이 관찰한 것들을 설명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알지 못했지만, 태아 발생 초기 일상적으로 쓰는 화학물질에 노출되는 것이 유전자 발현 패턴을 바꿔 훗날 건강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지금은 잘 알려져 있다”고 쓰고 있다.



수많은 화학물질을 비롯한 환경요인은 한 개인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음식과 스트레스, 오염물질 같은 환경요인이 부모의 게놈과 개인의 게놈(체세포와 생식세포)에 작용해 개인과 그 자손의 건강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사이언스 제공


즉 자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화학자들이 합성한 수많은 화학물질 가운데는 호르몬 시스템 같은 인체의 신호전달체계를 교란하는 물질이 꽤 있고 이 작용은 농도가 매우 낮은 경우에도 여전히 강력하게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현재의 독성학 패러다임, 즉 ‘독성은 농도에 비례한다’는 상식과는 배치되는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후성유전학(epigenetics)처럼 생명체의 발달과 조절을 이해하는 시각을 혁명적으로 바꿔놓은 분야들이 나타나면서 그동안 이해하기 어려웠던 현상들이 실마리를 찾은 조각퍼즐처럼 점차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즉 돌연변이처럼 DNA 구조 자체를 바꾸는 큰 변화뿐 아니라 유전자 작동 스위치를 바꾸는 미묘한 작용으로도 생명체에 큰 영향을 미치고 그 작용이 평생 그리고 그 자손에게까지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생활습관의 병, 즉 개인에게 책임을 넘기고 있는 비만, 당뇨병, 암, 불임 등 현대인들의 질환이 급증하는 배후에는 어쩌면 일상생활에 노출돼 있는 미량의 화학물질들이 작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주장이 갈수록 힘을 얻고 있는 이유다.


●220억 원 규모 안전성 재검토 프로젝트


미국 뉴욕대 과학저널리즘 교수인 댄 파긴은 ‘네이처’ 10월 25일자에 기고한 글에서 내분비교란물질에 관한 최근 연구결과들과 이에 대한 과학자들 사이의 이견과 갈등을 소개하고 있다. 파긴 교수는 “기존 독성학의 입장에서는 내분비교란물질이 보여주는 이상한 세계가 마치 고전물리학에서 양자역학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며 “비스페놀A 같이 호르몬 수용체에 작용하는 교란물질은 개체의 발달과정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미량 노출돼도 엄청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내분비교란물질로 분류되는 화학물질 가운데는 그 작용이 농도에 비례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즉 농도가 낮아지면 오히려 작용이 커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기존 독성검사 패러다임으로는 안전성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 위 그래프는 농도에 따른 작용을 보여주는데 왼쪽부터 플라스틱 원료인 비스페놀A, 계면활성제 원료인 노닐페놀, 제조체인 아트라진에 대한 데이터다. 제공 네이처 제공


지금도 여전히 기존 독성학의 패러다임, 즉 ‘작용은 농도에 비례한다’는 관점을 고수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런 연구결과들에 반발하지만 그러나 너무나 많은 데이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정부에서도 이 문제를 진지하게 바라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특히 지난 3월 학술지 ‘내분비학 리뷰’에 발표된 무려 68쪽 분량의 리뷰논문은 600건이 넘는 기존 연구결과들(이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지난 5년 이내에 발표됐다!) 분석해 18가지 내분비교란물질의 작용이 농도에 비례하지 않는다(non-monotonic)는 결론을 제시해 충격을 줬다.


이에 대해 미국국립환경보건원(NIEHS) 린다 번바움 원장은 “이들의 리뷰는 상당히 설득력이 있고 근거가 있다”며 “이제 화학물질의 저농도 규제에 대해서도 논의를 시작할 시점이 됐다”고 말했다. 실제 NIEHS는 미국식약청(NIH) 산하 국립독성학연구센터와 함께 2000만 달러(약 220억 원) 규모의 비스페놀A 재조사 연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즉 체중 1킬로그램당 하루 50밀리그램 이하를 섭취하는 건 문제가 없다는 기존 입장(FDA)과 저농도도 위험하므로 그 200만분의 1인 25나노그램으로 기준치를 낮춰야 한다는 연구자(미국 미주리대 프레데릭 봄 잘 교수)의 주장 사이의 엄청난 간극을 체계적인 실험을 통해 규명해보겠다는 것이다.


지난주 일산킨텍스에서는 비스페놀A와 관련해 국제 세미나가 열렸는데 초청연사로 나온 미국화학협회의 스티븐 헨지 박사는 국내 언론과 인터뷰에서 “비스페놀A는 내분비장애물질이 아니다”고 결론내리고 있는데 그 근거 가운네 하나가 FDA의 기준이다. 지난 9월 21일 식약청은 Q&A 형식으로 ‘비스페놀A에 대해 알아봅시다’라는 코너를 홈페이지에 싣는다고 발표했는데 그 내용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현 미국식약청의 기준으로 봤을 때 우리나라는 안전하니 걱정말라”는 것.


우리가 철석같이 믿고 있는 FDA가 NIEHS와 수백억 원이 드는 재검토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건 단지 성가신 연구자들을 무마시키기 위함일까. 아무튼 분명한 건 이런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방법론이 개발됐을 때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개념과 사실들이 최근 10~20년 사이 생명과학 분야에서 쏟아져 나왔다는 것이다. 즉 현재의 가이드라인은 제한된 지식을 토대로 만든 기준일 뿐이다. 


미국 FDA나 유럽 관련 기구의 가이드라인이 업데이트될 때에야 따라 가는 게 우리나라 처지이지만 최소한 이들 나라에서 현재 화학물질의 가이드라인에 대한 패러다임이 흔들리고 있다는 현실은 사람들이 알고 있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기준 이내이지 걱정말라”는 말을 들어도 그 ‘기준’에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해 안심하지 않고 각자 살길을 모색할 테니까.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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