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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타이너가 25살되는 해 썼던 책(theory of knowledge implicit in Goethe's conception of the world)에 나오는 내용중의 하나입니다.

[살아 있는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어떻게 우리가 생각해야만 하는가가 내가 괴테의 살아있는 과학의 글들에 논평을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나와 동시대의 사람들은 괴테가 사물을 보았던 방식을 이해하는 방식과는 전혀 다르게 인식이라는 것을 접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인식이라는 것은 단지 죽은 것들을 말할때에만 유효한 것입니다.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과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 사이에는 공통분모가 없습니다.]

 


- 다음의 글은(philosophy of spritual activity)의 일부분 입니다.

[감각 세상은 나에겐 진정한 세계가 아니었습니다. 글이나 강의를 하면서 나는 인간의 마음이 감각-지각적인 것들로 부터 도출된 사고안에서가 아니라 초감각적인 것들로부터 도출된 사고 안에서만 진실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자 애를 썼습니다.]

 


- 다음의 글은(Goethe's natural science writings)의 두번째 권의 일부분 입니다.

[우리가 생각 안에서 우리의 감각을 통해 알게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인식하는 능력을 알게 된다면, 우리들은 감각-인식안에서 경험하게 되는 것들을 뛰어넘는 사물의 본질을 인식하게끔 됩니다. 생각은  빛이 눈과 그리고 소리가 귀에게 중요하 듯이 아이디어에 같은 중요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감각에서 해방된 사고가 실제적인 영적 감각으로 일보 전진 할 때, 영적세상은 우리에게 선을 보입니다.

자연의 존재는, 그것이 우리들의 육체적 감각에 그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듯이, 영적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 다음의 글은 (the child's changing consciousness and Waldorf Education)에 수록된 글 입니다.

[사실상 3차원의 경험은 위와 아래, 왼쪽과 오른쪽 그리고 앞과 뒤로 표현되는 인간 행동속에서 경혐되어 집니다. 기하학에서 행해지게 되는 것은 단지 추상적 형태에 다름아닙니다. 사람은 기하학 상에서 도형들에 의해 보여지게 되는 것을, 그러나 우리들이 여전히 무의식적이고 꿈과 같은 상태에 있는 나이 동안에만, 몸을 통해 경험하게 됩니다. 나중에 이러한 경험은 의식의 영역으로 옮아가, 추상적인 형태를 취하게 됩니다. 지금, 이를 바꾸는 것과 더불어 내적인 단단함의 힘은 최고도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행한 모든 것들은 지금 이 순간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인생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당뇨나 류마티스에 걸린 사람의 이야기를 한 번 해봅시다. 이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 행해지는 치료법은 현재의 질병의 상태만이 간주되어 집니다. 또한 이것은 꽤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이러한 환자의 인생전체를 종합적으로 관찰해 본다면 많은 당뇨병 환자들이 그들이 영구치를 갈고 나서 사춘기가 되는 시기동안에 잘못된 방식으로 그들의 기억력이 발달되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노후의 건강은 아동기에 발달하게 될 개인의 영혼의 삶에 커다랗게 의존을 합니다. 아이의 기억력이 훈련받게 되는 방식은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 소화계통에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선생님들이 우선 이론적인 지식을 획득한 후 그들 자신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 이론상으로 내가 배운것을 이러 저러한 방식으로 내 가르침에 응용해야 겠다. '

이러한 태도는  단지 선생님들을 진정한 아이들로부터 떼어 놓게 만들 뿐 입니다.

선생님들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에 관한 그들의 지식을 각각의 아이들로부터 나오게 되는 것들에 대답할 수 있는 상위의 본능으로 변형시키는 것입니다.]

 


- [다리가 무너지게 되면, 우리는 부정확하게 적용된 물리적 법칙들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잘못된 교육적 방법론은 그렇게 확실하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현시대의 사람들은 기계적 사고방식에 의존해 사고 할 때만 편안함을 느낍니다. 이 기계론적 사고 방식은 언제나 사물들이 정확하게 혹은 부정확하게 고안되었는지에 관하여 결정을 내릴 수 있으며 현시대 우리가 이룩한 눈부신 현대문명으로 이끌었습니다.

오늘날 인류는 단지 기계론적 사고 방식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계론적 사고 방식이 교육과 맞닻을 때, 오늘날 우리들은 아이들 자신들에 접근하는 자연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아이들을 실험의 대상으로 여깁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더이상 아이들의 마음과 영혼에 다가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하여도 될 것입니다.

` 작은 아이, 이제 탄생을 통해 지구상의 존재가 되었으니 너는 이제 인간이다. 그러나 전에 너는 영적이며 신적인 존재중의 하나였다. '

 

우리는 모든 아이들에게서 신적이며 영적인 우주적 법칙이 내비치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신이 세상을 창조한 그중에서 가장 고차원적이며 가장 중요한 형태를 아이들은 내비치고 있습니다.그리하여 각각의 개개인의 아이들은 이 위대한 질문들을 함유하고 있기에 우리들에게 신성화된 신비가 되어버립니다. 우리가 고안해낸 이상적인 교육 방식에 따라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신이 이 지구상에이있는 우리들에게 보낸 것을 어떻게 보살필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적, 영적 세상의 도움이로서 우리들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이와 같은 마음자세를 가지고 교육에 접근한다면 무슨일이 벌어질지에 관하여 물어보게 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human values in Education)]



- [인간이란 죽음과 새로운 탄생사이에 커다란 발전을 이룬다는 것과 이 발전의 기간동안 어떤 의미에서는 영적세상에서 죽어야만하는 순간이 온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영적세상에서 다른 형태의 존재로 가지 않고서는 더 이상 살 수 없는 순간이 도래합니다.

 

육체적 존재는 영적존재의 계속됨이라는 것과 교육에서 우리가 해야만 하는 것은 우리들의 도움없이 행해어진 상위존재들이 해왔던 일들을 계속해나가는 것입니다. 가르침의 형태는, 우리가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은 상위의 존재들이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에 행해왔던 일들의 연속이라는 점을 인식할 때만이 정확한자세를 갗추게 됩니다.

 

아이들이 육체적 존재로 들어서게 될 때, 우리들은 영적에서 물질적인 세상으로의 변형의 기간동안 아이들에게 진정으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이란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 존재라는 것을 인식해야만 합니다. 인간이 물질적세상으로 발을 들여놓기전에 정신(spirit)과 영혼(soul)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충분한 객관성을 가지고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관찰해 본다면 우리는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일시적인 몸들이 아직껏 그들의 영혼-정신과 완전히 결합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교육의 목적은  영혼-정신과 일시적인 몸과의 조화로움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이것에 대해 살펴봅시다. 사람이 이 물질세계와 맺게되는 관계속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호흡입니다… 호흡은 인간의 완전한 세가지육체체계와 연결되어 있기에 인간 실체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입니다.

물질대사는 인간의 세가지 육체체계중의 하나입니다. 호흡은 이 물질대사와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호흡의 과정은 혈액의 순환과 물질대사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몸속에서 피의 흐름은 다른 수단을 통해 전해진 외부세계의 물질들을 흡수합니다. 그러므로 한편으로는, 어떤의미에서 호흡은 신진대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호흡은 그 자체의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이와 같은방식으로 신진대사와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 호흡은 인간의 신경- 감각삶과  연결되어있습니다….신진대사와 호흡이 연결되어 있는 방식처럼 호흡은 신경-감각 삶과 연결되어 있습니다.호흡은 외부세상과 연결된 가장 중요한 인간의 연결고리 이지만 호흡은 아직 인간의 몸을 지탱할 수 있을 정도의 기능을 발휘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인식해야만 합니다.사람이 육체적 존재로 다시 들어설 때 호흡의 과정과 신경-감각과정과의 적절한 관계는 아직 성립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이들의 호흡과 신경-감각 과정에 조화를 가져오게 될 때, 우리는 아이의 영혼-정신을 아이의 육체적 삶에 끌어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아이들은 아직  자신들이 적절한 호흡을 할 수 가 없기에 교육이라는 것은 아이들에게 적절한 호흡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STUDY OF MAN)]



- [아이들이 이 땅위에 태어난 뒤 아직 올바르게 하지 못하는 또 다른것은 우리 어른들이 적절하게 하는 잠과 깨어남의 이동이라고 할 것입니다. 아이들의 잠은 어른들의 것과는 다릅니다. 일상적으로 어른들은 그들이 깨어나 있을 때의 경험들을 잠들어 있는 사이에 처리합니다. 그러나 아이들의 경우엔 아직 이 깨어있을 때의 경험을 잠으로 옮겨 갈 수가 없습니다. 아이들에게 적당한 교육을 통하여, 우리는 아이들이 육체적 차원에서 경험하는 것을 잠들어 있는 동안 영혼-정신이 행하는 것으로 옮겨 갈 수 있는 곳으로 인도해야만 합니다. 우리 인간 이상 위의 세계로 부터 받게 되는 것은 우리들이 잠잘 때 오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르침을 고차원적인 영역으로, 적당한 호흡을 가르치는 것과 잠과 깨어남 사이의 적절한 리듬을 향해 방향 짓습니다. 물론 우리는 우리들이 아이들에게 잠자고 깨어나는 것을 가르치는 것 호흡을 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배경지식으로 남아 았게 될 것입니다. (study of man)

 

어린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살펴봅시다. 우리가 직접적으로 간단하게 관찰을 한다면 거기에는 세가지 단계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 세가지 행위들은 앞으로 다가오게 될 그들의 삶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요소들이 됩니다. 이 세가지 요소란 다름아닌 걷기 말하기 그리고 생각하기 입니다. 실제적으로 아이들이 걷고 말하고 생각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걷는다는 것 자체엔 우리들이 이해하는 것 이상의 것이 담겨져 있습니다. 아이가 걷는 것을 배운다는 것의 이면적 의미는 내적 적응을 담고 있습니다. 걷는 것을 배우는 동안 아이들은 그들 자신들의 균형을 완전한 우주의 것과 연결 시키고자 합니다.

아이들은 또한 두 팔과 손의 행위와 다리의 움직임 사이의 관계를 찾고자 합니다. 다리의 움직임이 좀더 육체적인 움직임과 연관이 있는 반면에 팔과 손의 움직임은 영혼의 삶과 특별한 관련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몸을 일으켜 세울때, 그들은 처음으로 육체적 균형을 찾고자 합니다. 그러나 두 팔을 자유롭게 움직이게 될 때, 아이들은 영혼의 균형을 찾기 시작합니다.

몸과 영혼안에서 정적이며 동적인 힘과의 마주함 그리고 이러한 경험을 우주전체에 연결 시키고자 함, 이것이 바로 걷는 것을 배우는 것이 의미하는 바입니다.

 

다리의 움직임으로부터 해방된 두 팔의 자유로움으로부터 새로운 음악적이며 멜로디적인 요소가 우리의 다리가 제공하는  리듬과 박자안으로 도입됩니다. 우리들 삶의 내용, 우리들 삶의 주제가 두 팔의 움직임안에서 전면으로 나섭니다. 이러한 행위들은 나중에 아이들이 말하는 것을 배우게 될때 발달되어질 기본적인 것을 형성하게 됩니다. (the child's changing consciousness and waldorf education)

 


- [아이들의 아동기에 잠과 깨어남의 적절한 균형을 찾는 것은 무엇보다도 기본적인 요소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우리 스스로가 아이들이 얼마만큼의 잠이 필요하고 얼마만큼의 깨어있음의 시간이 필요한지에 관한 본능적인 지식을 획득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한 단어에서 다음 단어를 발견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약우리가 이러한 사람들의 아동기를 관찰해 본다면 이들이 걷는 것을 배울 무렵 너무나 많은 잠을 잤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것입니다.

 

아이의 부모나  아이의 양육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 아이가 특정한 나이에 필요한 알맞은 잠을 자도록 하지 못했을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이 아이의 내적존재는  다리의 움직임에 관한 필요한 통제력을 확보 할 수가 없습니다. 정상적인 걸음을 걷는 대신에 이 아이는 느슨한 걸음걸이를 갇게 될 것이며 말을 할 때에도 영혼의 힘을 지닌채 단어의 연속적인 흐름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단어가 입밖으로 떨어지도록  내버려 둘 것입니다.

 

만약에   그들의  나이 20대나 30대에 말을 더듬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이 어렸을 때에 충분한 잠을 자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아마도 지금쯤 우리는  아이들이 자라는 세살까지의 '무가르침의 시기' 에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관해 불확식한 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것입니다. 이 시기에 전체적으로 본다면, 아이의 전 생애와 몸의 구성을  위한기본적인 토대가 갖추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어떻게 생각이 외부세계로 향하게 되는지에 관하여 말씀드린적 있습니다. 이것은 자연 세계의 이미지들과 그것의 과정들을 형성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앞서 발달하게 되는 말하는능력은 언어에서 영적으로 살고 있는 것을 흡수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주위환경에서 오는 언어는 아이의 영혼에 작용을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의 완전한 영혼의 분위기는  언어를 매개로  우리들안에 스며듭니다.

우리는 아이란 하나의 위대한 감각기관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The children’s changing consciousness and Waldorf Education)

 

자라는 아이들에게 이를 바꾼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관해 생각해 봅시다. 이것은 일생에 단 한번 일어나는 전체적  인간에게서 일어나고 있는 심오한 변화의외적표현일 뿐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두번째 이를 매 7년마다 새롭게 갖지 않습니다. 단지 단 한번만 가질 뿐입니다. 이를 바꾸는 것과 더불어 이안의 형성력은 끝이 납니다. 우리몸이 더이상 이를 만들어 내지 않기에 이후에 우리는 이를의치로 바꾸거나 새로운 물질로 채우거나 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방법들입니다. 이를 바꾸는 것과 더불어 우리 머리의 구성이 일정정도의 결말에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한 아이를 이 이빨을 바꾸는 시간까지 관찰을 해본다면 우리는 이 시기에 아이가 걸음을 걷고 말을 하고 생각을 하는 것을배우는 시기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세가지 것은 이를 바꾸는 시기까지에 일어나는 가장 중요한 능력입니다.

 

우리의 머리는 상대적으로 잘 구성되어진 채 태어납니다. 우리의 머리는엄마의 뱃속에서 구성되어지며 이빨을 바꿀때에 가서야 완전히 발전하게 됩니다. 이를 바꾸기전 가장 먼저 형성되어지는 것은 아이의 리듬적 시스템입니다. 우리가 아이의 신체상의 과정을 세심하게 관찰하게 된다면 우리는 아이가 일곱살이 되는 동안에 순환기관과 호흡기관의 형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Human values in Education)]



-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thinking)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생각과 느낌 의지의 균형적인 발전을 이룩해야만 합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진정으로 생각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관한 정확한 개념을 가져야만 합니다.


객관적으로 생각이 우리들 안에서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 가를 본사람이라면 생각이라는 것이 그림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즉시 인식하게 될것입니다. 생각이 그림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우리가 그 자신의 구성성분인 우리들과 밀접하게 통합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은 우리들에게 무엇인가를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합니다.

우리의 생각은 실제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반면 단지 그림일 뿐입니다. 생각을 통해 진화를 해나가는 모든 것들은 그림들의 변형입니다. 생각은 우리가 잉태되기 전이나 태어나기전에 우리들이 경험한 것들을 그림으로 형상화한 것입니다. 우리들이 태어나기 전에 다른삶들을 살았다는 것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우리는 생각이라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가 없습니다. 거울이 공간상의 물건들을 비추듯이 우리들의 현재의 삶은 삶과 죽음 그리고 새로운 태어남을 반영합니다.그리고 이 반영은 우리들의 그림형태적 생각이 됩니다.

충분한 통찰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생각이라는 것 자체가 태어남 이전의 존재에 관한 존재라는것에 대한 입증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생각은 이 존재의 그림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의 시선을 의지(will)라는 것에 돌려 생각해 보겠습니다. 만약에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의지라는 것을 관찰해 본다면 그들이 말하는 의지라는 것은 항상 사고에서 도출 된다는 것을 알게 될것입니다. 의지라는 것을 따로 떼어서 고려해 본다면 의지라는 것은 실제적인 내용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될것입니다. 의지를 정의한다는 것은 의지가 실제적인 내용이 없기에 더더욱 어렵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의지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것은 우리가 삶을 마감한 후 우리의 영혼-정신의 실체가 될 우리가 우리안에 가지고 있는 씨앗에 다름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죽음후에 영혼-정신의 실체가 될 것을 상상해 본다면 그리고 이것을 우리가 현재 우리들 안에 가지고 있는 씨앗으로 형상화한다면 우리는 의지라는 것을 알게 될것입니다.

 

그로인해 우리는 생각이라는 것은  전생의 삶의 그림의 형태라는 것과  또 다른 한편으로 의지라는 것이 나중에 되게 될 씨앗의 형태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확실히  전생의 삶을 반영하게끔하고 죽음뒤의 실체를 발아하지 못하게 하는 어떠한 힘이 우리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제가 쓴 신지학이라는 책에 나와있는 중요한 심리학적 용어와 접하게 됩니다. 즉 동정(sympathy과 반감(antipathy). 우리는 더이상 영적 세상에 살 수 없기에 물질적인 세상에 존재합니다. 우리가 물질세계에 있기에 우리는 영적인 모든 것들에 반감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태어가기 전의 영적 실체를 무의식적 반감의 형태로 반추합니다. 우리는 이 반감의 힘을 우리들안에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 전생의 경험을 단순한 지적 그림의 형태로 변형시킵니다. 동정이라는것은 우리가 삶을 마친 후에 우리들 존재 안에서 빛을 발하게 되는 의지의 실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우리는 직접적으로 이와 같은 두가지 것, 동정과 반감을 의식하게 됩니다만 이것들은 우리들 안의 무의식적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동정과 반감의 계속적인 리듬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우리들의 느낌(feeling)을 대표하게 됩니다. (the study of man)]



- [우리가 이를 바꾸기 전의 아이들을 관찰해 본다면, 아이들은 우리가 부르기에 제스처(gesture)나 동작과 관련된것에만 흥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것입니다.

아이들의 의식이 꿈과 같고 그림자적이라는 사실과 아이들의 인식이 모호하다라는 것 그리고 아이들은 서서히 명확성을 획득해 간다는 사실에 주목해 봅시다. 아이들이 태어난 후 이를 바꾸기 전까지의 시기동안에 아이들의 지각작용은 제스처나 동작과 관련된것에 함께 합니다. 아이들이 세상에 처음으로나와 하나의 동작을 보았을 때 그들의 내면으로 부터 이 동작을 모방하고자 하는 욕구를 느낀다고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감각과 사고를 통한 세상의 이해는 말하기로부터 출발합니다. 생각하기가  말하는 것을 도출해 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 반대의 경우가 맞습니다. 사람은 말을 하고 그후 생각을 합니다. 아이들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아이들은 처음으로 말하는 것을 배우고 동작을 통해 말을 명확히 해나간 후  말하는 것으로부터 사고가  발생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순서가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제스처, 말하기, 사고와 생각하기.

 

사실은 말하기와 생각하기는 대부분의 경우 무의식적으로 발생한다고 할 것입니다. 이것들은 제스처로 부터 자연적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일곱살까지의 아이들에게 있어서 제스처가 아이들의 삶을 지배한다고. 교육자로서 우리들은 아이들이 이빨을 바꾸기 전까지의 시기까지 제스처로서 그들에게 다가가는 것을 받다들인다는 것을 명심해야만 합니다. 그외의 것들에 아이들은 문을 닫습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어떻게 일들을 처리해야 하는지를 가르치려 한다면 아이들은 우리가 말한 것을 듣거나 아예 아무런 주의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 앞에서 어떤 일을 처리하는 것을 시범을 보인다면 아이들은 이를 모방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내가 그들에게 무엇을 말하는 가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손가락을 움직이는 방법이라든지 내가 그들은 무엇이든 모방을 합니다. 이를 바꾸기 까지의 아이들 성장의 비밀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이들 앞에서 아이들이 모방해서는 안되는 행위들을 우리는 피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방식입니다. (human values in education)]


(아래의 사진은 우리가 아이들에게 보여주어서는 안되는 행위중의 하나를 아이가 보고 모방한 것입니다.)


 

 

- [우리들의 느낌의 세상은 공감과 반감의 계속적인 상호작용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우리들 안에 이 상호작용은 존재 합니다. 반감은 우리들 영혼의 삶을 사고의 세상으로 변환시키는 한편, 그와 반대로 공감은 우리들 영혼을 우리가 알고 있듯이 의지의 행위속으로 변화시킵니다.

 

반감 속에서 우리들이 반추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태어나기 전의  모든 삶을 반추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인지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식은 반감과 접촉을 하며 그리하여 그림형태적 생각(pictorial thought)으로 약해져버립니다. 만약 우리가 그림형태적 사고를 한다면, 모든 그림들은 반감과 만나며 그리고 만약 반감이 일정정도 강하다면, 기억이 탄생합니다. 그러므로 기억이란 우리들 안에 활동하고 있는 반감의 결과일 뿐입니다. 기억이란 단지 강조된 반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완전한 이 과정을 겪었을 때, 우리가 어떤 것을 그림화 하고 기억속에서 반추하고 그리고 이 그림을 보유했을 때, 그때 개념(concept)이 창조됩니다.

 

우리들 속에 씨앗의 형태로 남아 있는 의지에 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그림 형태적 사고가 반감에 기반하고 있듯이 의지는 공감에 기반합니다. 만약에 공감이 일정정도 강하다면, 반감을 통해 사고가 기억이 되듯이 공감을 통해 상상력이 태어납니다. 개념이 기억에서 일어나듯이 사물의 감각 인식을 제공하는 살아있는 그림들이 상상력으로 부터 솟아납니다.

 

영혼과 연관되어진 모든 것들은 우리들의 신체내에서 그 자신을 나타냅니다. 우리 몸에서 반감과 기억과 개념은 신경계통을 통해 모습을 보입니다. 태어 나기전 영혼의 경험은 신경을 창조하기 위해 반감과 기억과 개념을 통해 인간의 몸에 작용을 합니다.

 

의지에도 같은 방식이 적용 됩니다. 공감, 상상력 그리고 살아 있는 그림들이 인간과의 어떠한 관계속에서 작용합니다.

 

사람의 몸속에서 영적인 것이 되고자 하는 경향을 지는 것이 끊임없이 형성됩니다. 우리들 안에는 물질적이지만 계속적으로 물질적 상태에서 벗어나 영적 상태로 도달하려는 경향을 가진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이 영적인 것으로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이것이 영적인 것으로 되고자 하는 순간 이 것을 파괴해 버립니다. 이것은 바로 피 입니다. 신경의 대응자격이라 할 것입니다.]

 

사고                                                의지

신경(↓↓↓)                                       피(↑↑↑)

반감                                             공감

기억                                                상상력

개념                                                살아 있는 그림



- [유치원에서의 가르침의 방식은 전적으로 모방에 기반해야만 합니다. 유치원 선생님들은 아이들과 함께 앉아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서 원하고자 하는 행위들을 해야만 합니다. 그리하여 아이들이 선생님을 모방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영구치로 바뀌기전에 모든 가르침은 이 원칙에 기반을 두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영구치를 얻고 난 후 그들의 관심사는 제스처에서 말하기로 바뀝니다. 영구치를 얻기전 아이들은 그들이 주변세상에서 마주하는 제스처들에 일종의 종교적인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영구치를 획득하고 난 후 이 종교적 느낌은 점차적으로 영혼의 경험으로, 아이들은 그들이 말하기를 통해 마주한 모든 것들과 도덕적인 방식으로 연결을 맺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기의 아이들을 우리는 말하기를 통해 가르쳐야만 합니다. 어떤 방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든간에 우리는 아이들에게 신성불가침한 권위로서 아이들을 대해야만 합니다.

 

아이들은 그들의 선생님들이 하는 모든 행위들이, 권위로서, 좋은 것이라는 것을 배워야만 합니다. 상대적으로 말하자면 선생님들이 어떤것에 관해 좋다고 말을 했을 땐 이것이 좋은 것이라고  나쁘다고 했을 때 이것이 나쁘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영구치를 획득 한 후 부터 사춘기의 시기까지 아이들은 신성불가침과도 같은 권위와 마주해야 합니다. 이것은 인간 본성의 한 모습입니다.

 

현시대의 사람들이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아마도 조금 시대에 뒤진 이야기 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주 오래전도 아닙니다만,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인형을 주곤하였습니다. 이 인형은 진짜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고 눕히면 눈을 감는 동작까지도 보여주곤 했습니다. 현시대의 사람들은 이 인형이 아름답다고 간주합니다. 그러나 이 인형들에겐 예술적 특질이 없기에 매우 흉한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어떤 종류의 인형들입니까? 이 인형들은 아이들의 환상을 일깨울 수 없는 인형들입니다. 

약간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손수건을  묶어 팔과 다리를 만든 후 잉크로 눈을 표시하고 아마도 빨간 잉크로 입을 만들었다고 해보겠습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이 인형에서 인간의 모습을 보기 위해 상상력을 발전시켜야만 할 것입니다. 이와같은 종류의 것들은 아이들에게 엄청난 살아있는 힘으로 작용합니다. 왜냐하면 이 인형은 아이들이 환상을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 [언어 안에서 사람의 아스트랄체는 작용합니다. 이 아스트랄체는 동물의 몸에서도 관찰이 되어집니다. 그러나 동물의 아스트랄체는 외부로 향해 작용하지 않습니다. 동물의 아스트랄체는 내적 존재와 결부되어 있어 그로인해 동물의 형태를 창조합니다. 사람에게 또한 형태를 창조하지만 사람은 이 형성요소중의 일부분을 빼내 언어를 발달시키는데 사용합니다. 말하기 안에는 아스트랄체가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각안에 인간의 에테르체가 작용합니다.

 

언어 영역에 포함되는 모든 경험은 예술적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어는 그 자체가 예술적 요소이며 아이들이 영구치를 획득하고 난후 사춘기 까지의 시기동안에 우리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이 예술적 요소 입니다.

 

영구치를 획득하고 나서 사춘기 시기의 동안의 우리가 고려해야만 하는 것은 이 시기의 아이들의 사고는 논리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사고는 그림형태적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논리적 접근을 배척합니다. 아이들은 그림속에 살고 싶어 합니다. 일곱 여덟 아홉 혹은 열세살의 아이들에게 고도화된 지적능력을 가진 어른은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이 시기의 아이들이 특히나 자신을 키우고 돌보아 주는 그리고 자신에게 가르침을 베푸는 어른들의 권위에 자연적인 복종심을 가지고 존경하는 것을 배우지 못하게 된다면 자유로운 인간으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자유란 이 아동기의 동안에 자발적인 굴복을 통해서만 획득되어 질 수 있습니다.

 

이 시기의 아아들에게 어떻게 언어의 매개체를 통해 가르침을 펼쳐야 하는지에 관해 특별한 관심이 요구되어 집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지고 온 것들은 말해져야만 합니다. 만약에 이것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아이는 이해를 할 수 없을것 입니다. 예를 들어, 선생님이 아이에게 어떤 꽃에 관해 묘사를 한다고 해봅시다. 이것은 마치 우리의 눈이 빨간색이라는 단어를 이해하기를 바라는 것과 다를바 없습니다. 사람의 눈을 색을 감지 하지 말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아이는 꽃에 관한 일상적인 묘사를 이해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아이에게 이 꽃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꽃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관해서 말을 하기 시작한다면 아이는 즉시 이것을 이해할 것입니다.

 

영구치를 획득하고 나 후에 아이는 기억력(memory)을 받습니다.]



- [이제 인간 본성의 이해는 우주와의 연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생각을 할 때 우주는 우리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우리는 우주 안에 존재했고 우리들의 경험은 지금 우리 안에서 반영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시 죽음의 문턱을 넘어설 때 우리는 다시 우주속으로 들어 설 것이며 우리의 미래의 삶은 우리들의 의지속에서 발생한 것속에서 표현될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보다면 우리들은 우리들안에 동감과 반감이 상호작용하는 세가지 장소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몸속의 머리와 가슴 그리고 하체에는 동감과 반감이 서로 만나는 경계가 있습니다.

 

특별히 어린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에게  인간성의 고귀한 이상과 선생님의 영혼이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은 교육에 있어서 하나의 필수 사항입니다. 현시대의 교육의 문제점중의 하나는, 우리는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선생님들과 같이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을 고등 교육을 담당하는 선생님들보다 덜 중요시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래엔 모든 선생님들이 다 평등하다는 것과 특히나 영적인 특성에 관해서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고등교육을 담당하는 선생님들과 같은 위치를 점한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할 것입니다.

 

인간 본성엔 두가지 흐름이 있습니다.  뼈와 신경계에 작용하는 죽음을 가져오는 행위가 그 한 흐름이고 근육과 피에 연관된 모든 것에 작용하는 생명을 가져오는  힘이 또 다른 흐름입니다. 신경이 뼈가 되지 않은 단 하나의 이유는  혈액과 근육속에서 활동하고 있는 힘이 이러한 경향에 반대 작용을 하기 때문입니다.

 

먼 옛날의 사람들은 신경의 구성요소와 뼈의 구성요소의 관계를 언제가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사람은 뼈 만이 아니라 신경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영국과 미국의 철학자들에겐 인간은 단지 세계를 관찰하는 관찰자일 뿐입니다. 내적 영혼을 가진 인간은 단지 세상의 관찰자일 뿐입니다. 현시대의 철학자들은 세상의 관찰자로서 남아있는 것에 편안함을 느낍니다. 이것은 특히나 인식의 죽어가는 것에 편안함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저는 인간 인식을 이 죽어가는 것으로 부터 끄집어 내고자 합니다. 그로인해 저는 항상 인간은 단지 세상의 관찰자가 아니라는 것을 계속적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인간은 오히려  위대한 우주의 드라마가 계속적으로 공연되는 세계의  공연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뼈와 신경의 행위 또 다른 한편으론 피와 근육 행위의 상호 작용을 통해  물질과 에너지는 끊임없이 생성됩니다. 지구는 물질과 에너지를 창조하는 인간때문에 죽음을 면하고 있습니다.

 

우리들 안에 있는 의지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느낌의 한 부분을 이해해야만 합니다.

우리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이 물을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무엇이 느낌인가?'

느낌은 의지와 강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의지란 활성화된 느낌이고 느낌이란 억제된 의지라고 할 것입니다.

완전히 표출되지 못해 그리하여 영혼속에 남아 있는  의지의 한 부분이 느낌입니다.그러므로 느낌이란 무뎌진 의지입니다.]

 


- [미래를 위한 가장 주요한 질문중의 하나는 우리가 어떻게 아이들을 사회적, 민주적 그리고 자유로운 어른으로  인도할 수 있는 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만약에 아이들이  사회적 유기체의 필요한 것들을 충족시킬 수 있게 자라기를 바란다면, 그들이 자유로와야만 한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동기때에  강한 모방을 통해 성장할 때 우리는 자유로와 집니다. 아이들이 자라 사회적으로 서로 관계를 형성할 때를 대비해 우리는 아이들안에 자연적인 힘을 개발 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아동기에 아이들에게 심어준 것들만이 사회적 자유의 기초로서 자리 잡을 수 있습니다.

 

사람의 삶이란 전체적으로 보아 하나의 식물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식물은 지금 외적으로 보이는 것만을 간직한것이 아니라 그 깊은 곳에 미래의 상황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지금 잎이 있는 자리에 꽃이 필것이고 열매가 열린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식물은 이미 그 자신 깊은 곳에 태아상태의 꽃과 열매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 전체의 삶은  또한 그 안에 미래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주제에 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우선 인간의 숨어 있는 본성깊숙히 침투 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현시대 우리들은 이러한 것을 하고자 하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단지 표면에 보이는 것들만에 관심을 쏟을 뿐 외부적으로 보이는 것에서 벗어난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면 근거가 없는 것으로 간주해 버립니다. 

 

인간은 에테르체를 식물, 동물과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에테르체는 인간 몸의 힘과 구성물질에 형성적인 방식으로 작용하기에 그로인해 자람과 생식 그리고 인간 몸속에 있는 액체의 내적 운동의 현상을 유발합니다. 그러므로 에더릭체는 육체의 형성자요 건설자라고 할 것입니다. 인간에게서 육체와 에테르체는 크기와 형태에 있어서 동일합니다만(전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은 아니고) 동물, 심지어 식물에 있어서는 형태와 물질적인 것으로 부터의 연장에 있어서 많이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 [발도르프 학교에서, 우리들은 가르침의 방식을 일상적인 것에서 우리가 부르기에 예술을 통한 가르침으로 방향을 전환했습니다. 우리는 쓰는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으로 시작해서는 안됩니다. 대신에 우리는 아이들이 그리면서 색을 입히고 그리고 그림을 그리면서 글씨를 쓰도록 해야 합니다.

 

저는 영구치를 얻고 난 후 부터 사춘기까지의 아이들에게 도덕적 관념을 가지고 접근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대신에 우리는 그림을 가지고 그들안에 있는 감정을 자극함으로서 그들의 도덕적 특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아이들은 그들의 모델이 되는 선생님으로부터 묘사된 이미지들을 받아들입니다.

 

우리가 의지에 관해 알고자 한다면, 우리는 이것을 본능의 범주내에서 찾는 것으로 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본능이라는 것은 여러 다른 동물들 속에서도 찾아낼 수 있다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우리가 의지의 본성을 본다면 우리는 에테르체가 육체속에 퍼져 나가는 것과 같이 에테르체가 본능으로서 육체적으로 표현되는 것을 장악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본능은 충동이 됩니다. 그러므로 의지란 육체안에서 본능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에테르체가 이 본능을 통제하기 시작할 때 의지는 충동이 됩니다.

 

인간은 우리 속 깊숙한 곳에 아스트랄체를 간진하고 있습니다. 아스트랄체가 충동을 장악할 때, 충동만이 내부적인 것이 되는 것이 아니라  본능과 충동은 의식속으로 끌어올려져 욕구가 됩니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본능, 충동, 욕구가  에고에 의해 영향을 받아 동기가 된다고 할 것입니다. 우리가 영혼과 에고 안에서 의지력에 관해 말하고자 할 때, 동물들이 욕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동기를 가지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것입니다.]



- [우리가 현 시대의 영적인 삶과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말하게 될 때 그리고 강력한 반대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 필요한 것은 용기와 자신감입니다.

 

오늘날 남학생과 여학생을 한 교실에서 가르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닌것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와 같은 사실이  발도르프 학교의 방식 또한 현 시대의 교육 방식과 일치한다는 것을 보여 드리고자 말씀드린 것입니다.


교육(pedagogy) 이라는 것이 무엇을 암시하느 있는지 아십니까?  교사란(pedagogue) 남자들의 선생님 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말은 한때 고대 그리스의 교육은 편향되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인류의 반쪽이 교육에서 배제되었습니다. 그리스 사람들에게 이것이 만약 중요한 교육의 문제라고 여겨진다면 교육은 단지 남자들에게만 문제가 되는 것이지 여자들은 뒤에 남아 있어야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현시대의 조건들과 부합도는 교육을 세우고자 한다면 오랜 예전에 사용되었던 교육이라는 것을 먼저 포기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과학, 예술 종교 그리고 도덕이 하나이던 때가  아주 오래전 인간의 진화 발전 단계상에 존재했었습니다. 그 당시엔 오늘날과 같이 추상적인 관념이 발달되어 있지 않았으며 사람들은 존재의 수수께끼를 일종의 그림-의식을 통해 풀고자 하였습니다.

 

현시대 우리들의 입장은 어떠합니까?

지적 추상화가 가져온 영향력으로 인해 우리들은 예술이 제거된 과학적 지식만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지식이라는 것이 객관적이어하며 상식적인 건전한 것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예술은 단지 객관성과 관련이 없는 인간 임의의 의지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커다란 심해가 지식과 예술사이를 갈라 놓았습니다.

 

위대한 과학의 업적을 우리는 인정합니다. 그러나 과학은 인간의 수수께끼 앞에 서면 힘을 잃고 맙니다. 외적인 세상의 질문들에 과학은 훌륭한 답변을 하지만 인간의 신비에 관해서는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자연의 법칙을 가지고 인간에게 접근하고자 하는 순간에 우리는  예술의 영역으로 넘겨 주어야만 합니다. 순수한 인식의 과학적 모드에 의해서 사람은 이해될 수 없습니다. 인간의 비밀에 접근하고자 한다면 과학은 예술이 되어야만 합니다.]



- [인간 몸의 세번째 구성요서는 아스트랄체입니다. 고통과 즐거움 열정 갈망 충동등과 같은 것의 운반체라고 할 것입니다. 단지 육체와 에더릭체만을 가진 창조물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 아스트랄체를 동물계와 함께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 아스트랄체는 감각의 운반체입니다.

 

아스트랄체는 크기와 형태에 있어서 육체와 다릅니다. 아스트랄체는 육체와 에더릭체를 덮고 있는 길죽한 달걀 형태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 몸의 네번째 구성요소는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에고입니다.

 

인간의 에고는 다른 몸의 구성요소들에 작용을 해 이들을 변형시킵니다. 아스트랄체에 작용을 해 아스트랄체는 고통과 즐거움의 정화된 감각을 그리고 정련된 욕구와 소망으로 변형시킵니다.

에테르체에도 작용을 하는데 에고가 에테르체에 작용을 하지 않을 경우 사람은 자연에 의해 심어진 것에 따라 살아갈 뿐이지 삶에 있어서  경험의 기억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에고의 영향을 받아 우리의 육체도 전체적인 외모, 제스처, 동작과 같은 것이 바뀝니다.

 

또한 인간이 위대한 예술작품에 깊게 몰두되어 있을 때 에테르체는 영향을 받습니다. 종교는 에테르체를 정화하고 변형시키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에고가 아스트랄체를 변형시킨 것을 스피리트 셀프(spirit-self)라고 합니다. 동양에서는 마나스(manas)라고 불리웁니다. 이 변형은 주로 배움을 통해 그리고 고상한 사고와 지각을 동반한 내적 삶의 부유화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개인적으로 완전히 깨어 있는 의식을 가지고 우리는 습관, 기질, 성격, 기억 등을 변형 시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에테르체는 우리가 부르기에 라이프-스피리트(life-spirit)로 변형됩니다. 동양에서 부디(buddhi)라고 부릅니다.

 

더 한층 높은 단계로 에고가 육체에 작용을 해 예를 들면 혈액 순환이나 맥박과 같은 것을 변형시키는데 이러한 변형을 우리는 스피리트-바디(spirit-body)라고 부릅니다. 동양에세는 아트만(atman)이라고 불리워집니다.]



- [오늘 저는 발도르프 학교의 목적에 관해서 그리고 바람직한 가르침의 방법에 관해 시간을 할애 하겠습니다. 우리는 발도르프 학교가 우리가 판단하건데 현시대와 미래 인간 발달상의 역사적 단계를 기반으로 하는 것을 창조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우리는 발도르프 학교의 설립이 옛 구시대의 학교체계가 모두 나쁘다는 믿음에서 그리고 기존 학교체제에 대한 비판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다고 믿어서는 안됩니다.

 

지난 300-400여년간 우리의 교육체계는 너무나도 국가에 의존한 나머지 교육이 국가의 한 부분이 되었다라고 말 할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들이 익숙해져 버린 교육기관들이 문명화된 나라의 통합에 적당하였다라고 어떤 정도 까지는- 그러나 일정정도 한계를- 지닌 채 말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에서 하고자 하는 것은 현시대 사회적 통합의 변형입니다.

 

발도르프 학교는 그 자체를 현시대 교육과 가르침에 관한 일반 대중의 의견 그리고  교육기관들과 조화시켜나가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에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현시대의 대중 교육의 요구들에 부합해야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발도르프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 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될것입니다.

그로인해 우리는 우리가 진정으로 말하는 인간교육의 이상화라고 할 수 있는 것에 우리의 교육요소들을 조직화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교육체계상에 촘촘하게 짜여진 망위에 놓여진 조그마한 구멍들을 이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기회들을 이용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말이 한정되어 있기에 우리는 교육에 있어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지 가르치는 과목들이 아니라는 말을 사용할 수 밖에 없습니다. 발도르프 학교에서 교과목은 단지 추상적인 지식의 제공을 위해 쓰여지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의지와 느낌과 지적능력과 관련된 인간발달의 향상에 복무할 수 있도록 쓰여질 것입니다. 각각의 과목들이 오로지 지식의 전달을 목적으로 사용되어서는 안됩니다. 각각의 과목들은 선생님들에의해 예술이 되어야만 합니다. 우리가 과목을 대하는 방식은 언제나 아이들이 삶속으로 성장할 수 있게 그리고 그들의 적당한 자리를 매울 수 있게 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현시대의 사람들의 영혼과 육체가 예를 들자면 그리스 로마 시대의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과 그리고 앞으로 500년 후에 사람들의 몸의 구성체계와 다르다는 것을 인식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적인 의미에서 교육의 임무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의 임무라는 것을 현시대와 미래의 인간 문화의 요구로부터 생성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 [우리가 인간 특성의 매개체라고 할 때에는 인간의 네가지 몸체만이 고려의 대상이 됩니다.

교육자들은 사람의 네가지 몸에 작용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올바른 방식으로 일을 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이 네가지 인간몸의 본성에 관한 조사를 해야만 합니다. 이 네가지 인간의 몸은 사람의 생에 있어서 다른 시기에 다르게 모습을 보입니다. 교육과 가르침의 정확한 기본은 인간 본성의  발달에 관한 법칙을 수반합니다.

 

영구치를 가지게 될 때 에테르체는 에테르를 감싸고 있는 것으로 부터 자유로워집니다. 그리고 아스트랄체는 사춘기가 되어서야 자유로와집니다.

  

이를 바꾸기 전까지 에테르체는 인간의 몸 안에서 작용을 하지 않습니다. 어머니의 몸속에서 우리의 육체가 자신의 것이 아닌 힘을 받아들이고 점진적으로 어머니의 몸속의 보호 아래서 스스로의 힘을 개발해 가듯이 이를 바꾸기 전까지 성장의 힘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 기간 동안에 에테르체는 그 자신의 힘의 형성과 개발을 물려 받은 것(유전적인 것)과 더불어 진행해 갑니다.

 

영구치는 인간 몸의 다른 부분들 보다도 더 밀도가 높은 부분이기에 그로인해 맨 나중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아스트랄체가 자유로워지는 순간 에테르체는 그 자신의 발달의 다른 단계를 마무리 짓습니다. 이 마무리는 사춘기를 통해 나타납니다.

 

우리는 교육자로서 아이가 태어나서 일곱살이 되는 시기까지에 방치되어진 것들을 다시금 되돌이 킬 수 없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자연이 아이의 육체를 위해 적절한 환경을 조성하듯이 아이가 태어난 후 교육자인 우리들은 아이들에게 적당한 물질적 환경을 제공해야만 합니다.

 

어머니의 몸속에서 눈이 외부의 빛의 영향없이 발달을 하듯이 일곱살이 되기 전에 에테르체에서 진화해야만 하는 모든 것들은 – 아이디어, 습관, 기억 등- 이것들은 스스로 개발을 해야만 합니다.

 

인간의 손이나 근육들이 이에 적합한 일을 함으로 인해 단단해 지고 강해지듯이 우리의 두뇌나 인간 몸의 다른 기관들도 주위의 환경으로 부터 적당한 인상을 받는다면 발달의 정확한 길로 인도 되어 집니다.

 


- [처음 7년동안 에테르체의 힘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이것은 이 기간동안 육체와 결합되어 있으며 성장과 영양에 활성화 되어있습니다. 영구치가 생기고 난 후 에테르체의 조그만 부분이 성장과 영양에 활성화에 나머지 에테르체는 기억력과 영혼의 특징에 힘을 가합니다.

 

아이들이 영구치를 획득하고 난 후부터 사춘기의 시기까지 교육에 있어서 주요 관심은 인간의 에테르체에 있습니다. 선생님과 학생들 둘 다 에테르체에 활동하고 있는 힘을 필요로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아이들의 판단이나 사고가 아니라 느낌을 배출하기 때문입니다. 이 기간 동안에 아스트랄체는 아직도 에테르체 안에 쌓여 있습니다. 에테르체는 형성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에테르체는 인간 몸의 기관들- 심장, 폐, 간 등-의 형태를 창출합니다. 우리가 유전적으로 받는 육체는 단지 모델로서의 역할을 하며 7년이 지난 후- 영구치를 획득한 후- 한쪽으로 사라져버리며 그후 두번째 육체가 에테르체에 의해 만들어 집니다.

 

우리의 에테르체가  형성력과 그림형태적 특성을 가지고 있듯이 우리의 감정과  감각의 기조가 되는 아스트랄체는 음악적 본성으로 흐르는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9살과 10살이 되는 사이에 일어나는 매우 중요한 발달상의 단계를 알고 있어야만 합니다. 아이들이 비록 이것을 말로서 자주 표현하지 않더라도 아이들에겐 자신들의 내적 위기를 드러내보이는 여러가지 질문들을 그들의 행동을 통해 내보이는 시기가 찾아 옵니다.

이것은 아이들에게 무척이나 섬세한 경험입니다. 그로 인해 우리들은 이것을 감지할 수 있는 예외적인 센스가 필요합니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주변환경으로 부터 자신들을 차별화하는 것을 직관적으로 배웁니다.

이 시기 전까지 아이들의 이고와 외부세계는 서로 결합되어 있었습니다. 그로인해 우리들은 아이들에게 사람들처럼 행동하는 동물과 식물 바위와 같은 것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이러한 방법은 이상적인 접근법입니다. 열살과 열한살 사이에  아이들은 자신들의 자기 인식속에서 ‘나’라고 말하는 것을 배웁니다.]

 


- [우리가 사람을 의지의 존재로 파악한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을 발견할 것입니다.

본능, 충동, 옥구, 동기 그리고 좀더 섬세하게 스피리트 셀프, 라이프 스피리드 그리고 스피리트 맨 속에서 소망, 의도, 결정

 

스피리트 맨                           결정

라이프 스피리트                     의도

스피리드 셀프                        소망

 

사람들은 어른들이 서로 서로를 다루는 방식과 동일하게 아이들을 다루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교육에 있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입니다 아이들은 우리 어른들이 서로 서로의 관계속에서 발전 시키는 데 필요한 것들보다 육체와 영혼속에 다른 힘을 개발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우리는그러므로 어떻게 교육이 아이들 의지의 본성에 영향을 끼치는지에 관하여 물어야 할 것입니다.

 

어제 제가 말씀드린 것을 기억한다면 여러분들은 인지적인 것들은 나이든 의지라는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인지적인 것들은 노년의 의지입니다.

 

우리들은 어떻게 하면 아이들의 느낌을 좋은 방향에서 영향을 행사할 수 있을지에 관해서 자신들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반복적인 행위속에서만 할 수 있습니다. 아이에게 무엇이 옳은 것인지에 관해 한번 말하는 것으로 아이의 의지에 적절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

대신에 아이가 오늘 내일 그리고 그 다음날 어떤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야만 합니다.

 

무의식적인 반복은 느낌을 양성하고 완전한 의식적인 반복은 이것을 통해 결정력이 드높아 지기에 의지를 양성합니다.

 

의지를 양성하는 것과 관련해 지적인 것들에 있어서 특별히 중요한 것을 고려해 넣어서는 안됩니다.

지적인 것들에서 우리는 아이들이 더 많이 이해할 수록 우리가 더 낳은 가르침을 베풀었다고 강조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해하고 기억하는 것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합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즉시 이해하고 기억하는 것은  아이들의 의지와 느낌에 작용을 하지 않습니다.

 

의지의 양성은 의식적 무의식적 반복에 있습니다. 예를들어, 아이에게 어떤 일을 오늘 내일 그리고 다음날  하도록 한다고 한다면 , 아이는 이것을 선생님의 권위에 대한 존경으로 부터 할 것입니다. 왜냐하며 이 아이는 학교에서 누군가가 명령을 내려야만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아이에게 오늘 내일 아니 일년내내  할 수 있는 일을 제공한다면 이것은 아이의 의지를 강하게 발전시킬 것입니다.]

 


- [쉽게 흥분을 하는아이는 빨간색 혹은 빨간빛의 노란색 옷을 입히던지 혹은 그러한 환경속에 있어야 합니다. 반면에 무기력한 아이는 파란색 혹은 파란빛의 초록색 옷과 환경에 있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의 내면에서 아이가 창조해내는 보색입니다. 빨간색의 경우엔 초록색, 파란색의 경우엔 오렌지색의 노랑.

아이의 육체기관들은  보색을 창조해 냅니다. 그리고 이것이 아이에게 필요한 상응하는 유기적 구성체를 만들어 냅니다.

 

이 나이 또래의 아이의 삶에서 한가지 분명히 그리고 확실히 알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아이의 육체는 자신에게 이로운 것이 되는 것의 적당한 양을 스스로 창출해 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적당한 갈망과 욕구의 개발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건강한 육체는 그것에 좋은 것을 갈구한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노래는 감각들에 감각적인 인상을 만듭니다. 노래 소리의 아름다움은 그것이 가진 의미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닙니다. 음악의 리듬에 맞추어 춤추는 동작 또한 아이의 육체를 형성하는데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에테르체가 만들어지고 성장한다는 것은 경향과 습관, 양심, 성격, 기억 그리고 기질의 개발과 형성을 한다는 의미입니다.

 

아이가 7살이 되기전까지 아이에게 그들이 따라할 수 있는 실제적인 육체적 페턴을 주어야 하듯이 아이가 영구치를 획득하고 나서 사춘기까지의 시기엔 내적 의미와 가치가 있는 것들을 아이들 환경 속으로 가지고 와야 합니다.

 

그림과 비유를 통해 행해지는 깊은 의미를 지니는 것들은 이 나이의 아이들에게 적합한 것입니다.

 

자라는 에테르체에 올바른 영향을 행사하는 것은 추상적인 사고가 아니라 아이들의 마음의 눈속에 보여지고 감지된 것들입니다.

 

모방과 예가 아이들이 일곱살이 되기 전까지의 교육에 있어서 마술의 언어였다면 일곱살 이후 부터 사춘기까지의 시기의 마술의 언어는 규율과 권위입니다.]



-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장하는 아이들을 심리학 실험실에 집어넣은 후 아이들의 내적 발달을 표면적으로만 관찰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이유는 우리들이 사람들 간의 살아 있는 관계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삶을 위한 살아 있는 관찰이라는 것이 오래전에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욕망과 의지가 어떻게 지적개념과 관련되어 있는가? 라는 질문을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천천히 우리들은 의지와 지적사고 사이에는 발달 상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어린아이와 할아버지처럼 말입니다. 할아버지는 어린아이에서 부터 성장 발달하기 시작합니다. 이처럼 사고는 의지에서 발달합니다.

 

느낌을 통해 의지는 사고로 발달을 합니다.

 

호흡과 혈액순환이 내적으로 조화가 되는 법, 아이가 학교에서 숨을 쉬는 법, 그리고 호흡이 점진적으로 혈액순환에 그 자신을 적응시키는 법, 이 모든 것들은 대체적으로 아이가 아홉살에서 열살이 되는 사이가 발생합니다.

아이가 아홉살이 되기 전까지 호흡은 맥박과 호흡 사이의 어떠한 조화가 성립되기 전까지 머리안에 있습니다.

 

아홉살과 열살 사이에 일어나는 가장 특징적인 것중의 하나는, 아이는 음악적 요소에 더더욱 가까워진다는 것입니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어느시기 보다도 더 음악과 리듬에 휩싸여 있기를 원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아이들을 우리들 자신들을 위해 교육시켜서는 안됩니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선생님들은 우리가 일상의 삶에서 취한 것들이나 우리가 아이들이 이러한 것들을 알고 있으면 좋을 것이라고 느껴져서 가르치는 것들이 얼마나 아이들의 영혼과 동떨어져 있는가를 인식하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반면에, 이러한 것들은 또한 우리들 자신을 미적화된 교육의 형태를 창출해야만 한다거나 모든 배움이 아이들의 놀이다라고 선언하는 극단적 반대의 오류로 인도해서도 안될 것입니다. 이것은 가장 안좋은 것중의 하나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아이들을 삶이란 단지 놀이라는 식의 개념을 가진 사람으로 변화시키기때문입니다.]



- [동양사람들은 우리들이 감각으로 감지할 수 있는 것들을 마야 즉 환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감감기관을 통해 감지되는 모든 것들 그리고 감각기관과 연관된 사고를 마야라고 부릅니다. 영혼의 진실만이 그들에겐 진실입니다. 인간 영혼속에 획득된 것만이 진실입니다. 내적 삶에서 나와 꽃을 피운 것만이 진실입니다. 감각과 연관된 것들은 마야, 환상, 이데올로기 입니다.

 

많은 수의 서양인들은 단지 일상적인 감각기관을 통해 얻게되는 진실만이 진정한 진실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들에겐 진실이란 동양인들이 말하는 환상 속에만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반대로 많은 수의 서양인들은 영혼속에서 나와 꽃을 피우는 것을 환상으로 여깁니다.

 

제가 말씀드린 것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본다면 서양인들에게 자유에 대한 갈망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유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단지 자유를 향한 일정한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이들이 자라서 사회적 구성체의 역할을 수행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아이들이 자유로와야만 한다는 것을 상기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은 아동기에 강한 모방의 존재일 때만 자유로와집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자라서 사회적 상호작용을 맺어가는 때를 대비해 아이들에게 자연적인 힘을 키워줄 필요가 있습니다. 자유에 관한 여러 다양한 의견들을 뒤로 한 채, 아동기에 모방의 힘을 각인 받은 아이들만이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아동기에 심어준 것이 나중에 사회적 자유의 기초로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일곱살 부터 사춘기에 이르는 동안 권위에 의존해 행동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우러러보는 사람들이 옳다고 하는 것을 행함에 있어 커다란 힘을 받습니다. 사춘기가 되기전에 아이들에게 판단력을 개발시키려는 것보다 더 악영향을 끼치는 것은 없습니다.

 

이 시기 동안에 우리들이 아이들에게 심어주고자 하는 것은 이들이 커서 어른이 되었을 때 사회적 유기체 내에서 다른 사람들에 대한 평등한 권리에 대한 바탕을 마련합니다. 성인이 되어서 다른 사람들이 동등한 권리를 갖고 있다는 생각은 이 시기의 아이들에게 권위에 대한 의식을 심어줄 때만 가능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성인이 되어 다른 사람의 권리를 인식할 만큼 성숙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 [공경과 존경에 의해 에테르체는 올바른 방향으로 성장을 합니다. 이 시기 동안에 끝없는 존경심을 가지고 사람을 존경하지 못한다면 나중의 삶 전체를 통해서 이에 대한 고통을 느끼게 될것입니다.

 

추상적 도덕적 격언들은 아직 유용하지 않습니다. 이것들은 아스트랄체가 자유로와지는 사춘기의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것입니다.

 

기억력의 발달은 에테르체의 형성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언어의 구조를 그들 영혼의 살아있는 유기체 속으로 받아들입니다. 이러한 과정에 지적 개념상의  언어 형성에 관한 법칙이 필요치 않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이 이미 이해한 것을 기억하는 것 뿐만아니라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만약에 우리들이 인간의 육체적 양상이 모방적이라는 것과 모방할 적당한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을 경우에 우리는 우리의 육체에 단지 동물적 충동만을 심어 주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일곱살에서 열네살의 나이에 인간의 에테르체의 양상이 특별한 주의를 필요로 한다는 것과 권위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을 경우 우리는 단지 사람 속에 문화적 수면상태만을 개발 시키게 될 것입니다. 정의를 위해 필요로 되어지는 힘이 존재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열네살 부터 스물 한살사이에 우리가 아스트랄체와 관련이 있는 사랑의 힘을 합리적으로 수업에 도입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아이들은 아스트랄체를 인간 본성의 자유로운 양상 속으로 형성화 할 수 없기에 아스트랄체를 개발 시킬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완전히 서로서로 얽혀있습니다. 그로인해 다음과 같이 말씀드릴수 있습니다.

 

적정한 방식으로서의 모방은 자유로 발달을 하며 권위는 정의로 그리고 사랑은 경제적 삶(economic life)]

 


- [아이들에게 놀이가 단순히 재미로 하는 것인지 아니면 아이들에게 중요한 어떤 것인지에 관해 물어보겠습니다.

건강한 아이에게 놀이란 단순히 시간을 재미있게 보내고자 하는 단순한 즐거움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놀이란 무엇인가 대단히 중요한 행위입니다. 놀이는 아이의 완전한 유기체로부터 진지하게 흘러나옵니다.

만약에 선생님의 가르침의 방식이 놀이 속에서의 아이들의 진지함을 포착할 수있다면 선생님은 아이를 단지 재미있는 방식으로 가르치지 않고 아이가 놀고있을 때의 진지함을 양육할 것입니다.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삶을 정확하게 관찰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지적 중심의 현대 사회에서 우리 어른들은 아동기를 더이상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아이의 영혼의 우리 어른들이 가진 지적화된 것과 완전히 다르다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다시 아동기의 이해를 위한 열쇠를 찾아야만 합니다. 이말의 의미는 우리는 아이가 일곱살이 되기까지 그들의 행위가 육체적으로 뿌리내린 종교적 특징을 내보이고 있다는 것에 다시금 눈을 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구치의 획득과 사춘기 사이엔 아이들의 영혼이 그림형태적 본성에 맞추어져있다는 것.

 

그리고 아이들이 사춘기에 들어설 무렵엔, 언어를 통해 활동하고 있던 아스트랄체가 자유로워져 독립적으로 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그전에 언어를 매개로 활동을 하고 있었던 아스트랄체는 아이 몸의 내적 구성화를 쌓아 올리는데 필요로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춘기 이후부터, 이 힘들은 사고의 행위를 위해 쓰여지게 됩니다. 이때서야 비로소 아이들은 지적화된 논리적 사고를 가진 사람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던 신경- 감각 체계는 의지체계(아주 밀접하게 물질대사 체계와 연결된)에 자신의 역할을 넘겨 줍니다.

 

여섯살 부터 열네살 가량의 나이의 아이들에게 신경-감각 체계에 살아 있는 모든 것들 그리고 또 다른 한편인 물질대사- 손발체계에 살아 있는 모든것들은 리듬적인 체계에 의해 균형을 얻습니다.

 

이것들은 인간 본성의 두가지 축입니다. 신경-감각체계가 한 축인 반면 또 다른축으로 물질대사- 손발체계가 있고 그 사이에 리듬적인 체계가 존재 합니다.

 

아이가 영구치를 얻고 난 후 부터 사춘기가 되는 시기까지 리듬적인 체계는 아이들을 다루는데 가장 큰 관심사 입니다.]



- [생각은  내적 삶이 추상적 개념으로 살아 있기에 그의 적절한 형태로 아동기의 시기엔 단지 배경으로만 남아 있어야 합니다. 생각은 그 자체로 부터 발달을 해야만 하기도 합니다. 일곱살과 사춘기까지의 시기에  영혼이 경험하는 어떤것 보다도 사고는 성장해야만 하고 판단 능력은 익어가야만 합니다. 그리하여 사춘기 이후에 아이들은 삶과 지식에 대한 자신만의 고유한 의견을 독립적으로 형성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인지학이라는 것은 그 결과물로서 인식되어지는 것이지 소위 우리들이 말하는 증명을 통해 인식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내적인 판단과 비교를 위한 재료들을 다 구비 했을 때에서야 비로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위치에 서게됩니다.

 

사고의 성숙은 다른 사람들이 사고한 것들에 대하여 존경하는 것을 배우는 것을 요구합니다.

 

사고의 역할은(사춘기 이전)  느낌 속에서 발생한 것과 경험한 것들을 이해하고 이것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것이지 성숙치 않은 판단에 길을 내주는 것이 아닙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인해 사춘기까지 아이들은 사물의 이론들로부터 떨어져 있어야만 합니다. 아이들은 삶의 경험들과 만나야 하며 이것들을 그들의 영혼 안으로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아이들에겐 각기 다른 사람들이 생각한  각기 다른 의견들에 대한 것들이 들려주어야하지 각각의 의견들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것은 것은 피해야만 합니다. 그리하여 아이들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그들 영혼의 느낌의 힘과 더불어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속단하지 않고 어느 한 의견이나 사람에 대한 편견없이 아이들은 모든 사람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수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아이들은 “그래 이 사람은 이렇게 말했고 저 사람은 저랬게 말했어”라고 스스로 자신들에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사람에 관한 연구를 할 때, 우리는 이를 진정한 과학적 방법으로 시행해야 하며 또한 과학의 다른 분야에서 보여지고 있는 것과 대등한 용기를 간구해야만 합니다.]

 


- [의지의 행위엔 항상 약간의 사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들의 사고가 의지의 행위로 부터 생략되어진다면 우리는 더이상 인간으로 남아있을 수 없게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의지속에 항상 사고가 존재합니다. 모든 사고는 의지를 포함합니다.

 

그러므로 의지란 주로 의지적 행위이며 사고를 내적으로 가지고 있으며 사고란 생각의 행위이며 내면에 의지를 가지고 있다라고 할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같은 인간의 영혼의 행위는 서로 서로가 겹쳐 흐르기에 따로따로 세분화되어서 관찰 할 수는 없습니다. 

 

인지적 사고는 우리의 의지와 신경계를 통한 움직임 속으로 들어옵니다. 그리고 의지적 요소는 혈액의 흐름을 따라 들어옵니다.

 

제가 이미 말씀드린대로, 반감은 인식과 사고 속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반감은 사고화되어가는 모든 것속으로 퍼져나갑니다.

 

반감은 인지적, 사고적인 것들 속에 그리고 신경계와 연결이 되어 있고 공감은 의지의 요소 속에 피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 사람들이 동물들보다 적은 반감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 사람들은 결코 우리 자신들을 우리가 속해있는 환경으로 부터 분리해 낼 수 없을 것입니다.

사실은 동물들은 우리 사람들보다 더 많은 공감을 주위 환경 속에 가지고 있기에 주위 환경과 더 더욱 하나가 될 수 있으며 기후나 계절과 같은 환경에 더더욱 의존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 반감을 가지기에 개인적 특성을 가지게 됩니다.

 

아이들의 경우, 그들의 행위는 전적으로 공감에서 비롯되어 집니다.

아이들이 하는 모든 행위들은 행위에 대한 공감에서 비롯되어 집니다.

이러한 공감이 세상 속에 모습을 보일 때 이것은 강한 사랑과 의지가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렇게 남아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사고 속으로 스며들게 해야만 합니다. 어떤 의미에선 이것을 사고로 조명해야만 합니다.]

 


- [아이가 일곱살이 되기 전엔 학교에 다녀서는 안됩니다.

 

일곱살과 열네살 사이의 두번째 발달시기는 다음의 세단계로 세분화되어집니다.

일곱살 부터 아홉살까지의 시기, 아홉살부터 열두살까지의 시기, 그리고 열 네살까지의 시기.

 

일곱살과 아홉살까지의 시기의 아이들은 직접적으로 이미지들에 반응을 하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로인해 우리들은 옛날 이야기에서 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아이들에게 말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들은 아이들 자신의 본성으로부터 분화되어 있으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식물들이 서로서로에게 말하고 돌들 또한 서로서로에게 말을 하며 식물들이 서로서로에게 인사하고 엄마와 아빠를 가지고 있어야합니다. 약 아홉살과 네달이 지났을 무렵 자아는 특성화 되어집니다. 이 시기에 있는 아이들에게 우리는 이미지로서 말을 해야 합니다.

그후 아이들이 열두살로 접어들어갈 무렵에야 비로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원인과 결과에 관하여 알려 줄 수 있습니다. 이 시기 전까지 원인과 결과는 마치 색맹인 사람에게 색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처럼 아이들에게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열두살이 된 후 부터 비로소 오늘날 과학적 관점에서 보여졌을 때 당연시 여겨지는 것들을 우리들은 아이들에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인간속에 있는 모든 것들은 성장합니다. 이것은 이해력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개념 또한 성장할 수 있는 것이 되어야만 합니다. 우리들은 아이들에게 살아있는 개념들을 제공해야만 합니다. 이 살아있는 개념은 아이들이 선생님의 권위에 대하여 살아있는 관계를 맺고 있을 때에만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들은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고려해 놓지 않고서는 그 사람을 교육시킬 수 없습니다.]



- [오늘날 교육의 기본적인 원칙들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습니까?

 아이들이 관찰되어지고 아이들이 이렇다 저렇다라고 그리고 우리가 이러한 점들에 관해 배워야 한다고 말하여집니다. 그런 후 우리느 어떻게 하면 아이가 가장 빨리 배울 수 있는지에 관해 생각을 해야합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아이란 무엇입니까?  아이는 아이로서 약 12년 혹은 그 이상을 아이로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핵심적인 사항은 아닙니다. 핵심은 아이는 항상 나이가 들어가는 존재로 인식되어져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삶은 전체적으로 하나의 통일체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단지 아이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전 생애를 생각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전체적인 인간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단지 아이에 관해서만 아는 것은 불충분합니다. 우리는 사람에 관해서 알아야만 합니다.

 

아이가 이를 바꾸기 전에, 아이의 몸은 그 자체가 정신인 것인양 움직입니다. 왜냐하면 영적세상에서 내려온 정신이 여전히 아이의 몸속에서 완전히 활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정신이 새로운 지구상의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입니다. 아이의 정신은 그 자신이 갑자기 완전히 다른 세상에 내보내지고 새로운 몸의 경험을 가지고 있기에 우리가 아이들에게서 보듯이 행동을 합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이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해나갑니다. 우리가 아이들을 이와같은 방식으로 관찰을 한다면 왜 아이들이 왜 그처럼 행동하는지를 이해하게 될것입니다. 그리고 아이의 몸속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은 아이의 정신이라는 것을 알게될 것입니다.

 

아이가 영적세상에서 내려올 때 아이는 몸이 필요하며 아이는 몸을 택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 몸을 아이는 이를 바꾸기 전까지 보유를 하게 됩니다. 매 7년 혹은 8년 마다 우리몸의 물질적 구성체는 완전히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태어나서 7년까지의 기간동안 우리는 부모 외적 세상 등으로 부터 몸을 부여받습니다. 이것은 모델입니다.

 

사실상 우리가 태어날 때 우리는 이 모델의 몸을 부여 받고 7년동안 이 모델의 몸과 함께 합니다.

 

과학자들이 말하는 유전이라는 것은 단지 이를 바꾸기 전까지만 해당되는 것입니다. 이를 바꿈과 동시에 우리는 우리가 부여받은 유전적 몸에서 탈피하게 됩니다.

 

지식에 대한 탐구욕이나 호기심 또는 외부세계를 알고자 하는 열정 같은 것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우리가 이 땅에 내려오기 전에 우리들에게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왜 아이들이 이러한 것들에 적은 흥미를 보이는 가를 설명해 줍니다.

 

땅으로 내려오기 전에 우리는 외부의 세상과 완전히 하나였습니다. 외부세상과 내적 세상의 구분이 그곳에 없습니다.그러므로 우리는 외부에 있는 것들에 호기심을 가지지 못합니다. 그것들이 우리들 안에 있기에. 아이가 태어나서 7살이 될때까지 아이는 그가 이 세상에 내려오기 전에 가졌던 방식과 같은 방식으로 걷고 말하고 생각하는 것을 배웁니다.]



- [작은 아이들은 아직도 행동에 있어서 어설픈 아이들은 그들의 주변환경에 관해서 한자루의 밀가루와도 같이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한 자루의 밀가루가 우리가 만들어 놓은 모양들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듯이 아이들 또한 우리가 만들어 놓은 인상들을 그대로 보유합니다. 그 이유는 아이들과 우리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이를 바꾸면서 상황은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아이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하기 시작한다는 것을 인식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무엇이예요?" "왜 할머니는 메부리코를 가지고 있어요?" 등등

아이들은 이와 같은 질문들을 합니다. 아이들은 그들의 주변에 있는 것들에 호기심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아이들은 주위의 것들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껏 추론적 지능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이 호기심은 지적호기심과는 사뭇 다른 것입니다. 이 나이 또래(일곱살)의 아이에게 지적 능력에 호소를 하고자 한다면 이는 잘못된 판단입니다. 우리는 이 나이의 아이들에게 환상을 가지고 접근을 해야 합니다. '영혼의 우유'라고 할 수 있는 개념을 발전시키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아이가 태어난 후 아이는 모유를 먹어야 합니다. 이 모유속에는 아이에게 필요로 되어지는 모든 것들을 함유하고 있습니다.

아이가 이를 바꾸는 나이에 학교에 들어오게 되면 우리는 이 아이들에게 우유를 다시 한번 주어야 합니다. 영혼을 위한 우유를 말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가르침이 나누어진 관련이 없는 단위로 만들어진 것들이 아니라 하나의 통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이를 바꾸기 시작하면서 그들은 영혼의 우유를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쓰기와 읽기를 따로따로 배우게 된다고 한다면 이것은 마치 우유의 화학적 구성물질을 두가지로 따로 분리해 이 시간에는 이 구성물질을 주고 다른 시간에는 다른 부분을 주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읽기와 쓰기는 하나의 것으로 가르쳐져야 합니다.

 

아이들이 자라서 사춘기가 되었을 때 이때 필요한 것은 '정신의 우유'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물질문명 사회 속에서 남아있지 않기에 굉장히 어려운 일임에 틀립없습니다. 비록 정신적 우유를 창조하는 것이 어려울 지라도 이것이 아이들에게 주어지지 않았을 경우에 우리의 아이들은 흔히 우리가 세속적으로 말하는 '애송이'로 남게 될 것입니다.]

 

 

- [제가 말씀드린 것을 상상해 보신다면 다음과 같은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공감에 기초하는 것 즉 의지라는 것이 느낌이 있는 곳으로 흐르고 또한 반감에 기초하는 것들 즉 생각이라는 것이 반대편에서 느낌의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의지의 공감과 사고의 반감은 서로서로 상호작용을 합니다.

 

느낌이라는 것은 사고와 의지의 중간에 위치합니다. 그로 인해 느낌은 한 방향으로 사고와 그리고 또 다른 방향으로 의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느낌이라는 것은 불완전한 인식이며 불완전한 의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느낌은 인식과 의지에 숨어있는 공감과 반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공감과 반감은 현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식과 의지속에서는 숨어있습니다. 왜냐하면그들은 인간 몸속의 신경계와 피 속에서 상호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사고의 인식작용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는 이 인식의 작용을 완전히 의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의지에 관해서는 사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지의 가장 단순한 형태를 발전시킬 때, 걷는 것에 관해 예를 든다면, 우리는 단지 우리가 걷는다는 그 사실만을 안전히 인식할 뿐 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다리를 순차적으로 옮길 때 근육조직이나 몸의 구성조직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릅니다.

 

넓은 의미에서 의지는 그 안에 무의식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할것입니다.

 

느낌은 사고와 의지의 중간에 위치하기에 부분적으로 의식의 요소를 가지고 있으며 부분적으로 무의식의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상적으로 우리는 깨어있는 의식의 상태에 관해 말을 합니다. 그러나 이 의식의 상태는 단지 인식적 사고 안에서만 존재하게 됩니다.

 

우리가 잠잘 동안에 우리는 우리의 경험을 의식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들 의지 안으로 들어오는 것들에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의지의 존재이고자 한다면 우리는 깨어 있을 때에도 잠을 자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들 안에 자고 있는 사람, 즉 의지의 사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깨어있는 사람, 즉 생각하는 인식적 사람이 동행을 합니다.

 

느낌은 얼마간 의식적인 것일까요?

우리들 영혼안에서 느낌은 우리가 꿈을 꾸는 것과 같은 상태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실인즉 우리가 깨어있는 동안에 세가지의 다른 의식의 상태가 존재합니다.

생각속에서의 깨어 있음, 느낌속에서의 꿈꾸는 듯함, 그리고 의지속에서의 잠.]



-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가 문제입니다. 

오늘날 교과과정을 생각해 내는 것은 쉬운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우리들 모두가 이처럼 영리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것을 비아냥거리기위해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진심에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에 사람들은 정말로 영리합니다. 몇몇의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교육에 있어서 행해져야 할 것들에 대해 결정을 내릴 때면 언제나 영리한 해결책이 나오곤 합니다. 저는 지금껏 영리하지 못한 소위 멍청한 교육 프로그램을 본적이 없습니다.

  

아이들의 걷는 모습을 뒤에서 본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어떤 아이는 발전체를 지면에 갖다대면서 걸을 것이고 또 다른 아이는 까치발로 살금살금 걸어다닐 것입니다. 이 두가지 사이엔 여러 다른 종류의 걸음걸이가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한 아이를 교육 시키기위해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 중의 하나는 아이가 어떻게 걸음을 옮기는 것인가 하는 것 입니다.

발뒤꿈치를 대고 걸음은 걷는 아이는 이 걸음속에서 이 아이의 전생의 삶에서 이 아이가 그의 삶에 확실히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는,  전생의 삶에서 모든 것들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는 육체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이런 경우 우리는 이 아이 자체에게서 가능한 한 많은 것들을 도출해 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이와 같이 발뒤꿈치로 강하에 걸음을 걷는 아이는 그 아이 속에 많은 것들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와 반대로 발을 땅에 대는 둥 마는둥 까치발로 걸음을 옮기는 아이는 이 아이의 전생의 삶이 구체적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런 아이 자체에게서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없습니다. 대신에 이런 아이와 함께 있을 때 선생님은 이 아이가 모방할 수 있는 여러 다양한 것들을 창출해 내야 할 것입니다.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것중의 하나는 아이가 이를 바꾸기 시작하는 무렵 아이는 상상력과 환상의 영역으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지능이 아니라 환상이 이 나이의 아이들을 채운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오늘날 문명화된 사회에서 쓰여지고 있는 문자들을 아이들에게 직접접으로 가르치는 일을 피해야 합니다.

대신에 우리 인류 문명의 역사가 거쳐간 경로를 따라 생생하면서도 상상력이 넘치는 방식으로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영어의 Mouth(입)이라는 단어를 보겠습니다. 아이들에게 먼저 입을 그리라고 한다음, 이 아이에게 이 단어를 말하게 하고 다음엔 단어 전체가 아니라 알파벳 M만을 말하도록 시킵니다. 그런 후 이 그림의 윗 입술에서 단어 M 자를 도출 해 냅니다. 이런식으로 입술 모양을 그림으로 그린 뒤 이 그림으로 부터 알파벳 M 자를 도출해 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어떻게 우리의 문자가 유래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오늘날 문자가 원래 그림이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기란 그리 쉽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 [사람들은 아이들이 읽고 쓰는 것을 너무나도 늦게 배우게 되는것에 반대를 할것입니다. 

이와 같은 말은 오늘날 아이들이 너무나도 일찍 쓰고 읽는 것이 얼마나 해가 되는지를 모르기에 나오는 이야기 입니다.

아이가 실제로 일찍 글씨를 쓰는것은 좋은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오늘날 가지고 있는 쓰기와 읽기는 아이가 11살이나 12살이 되어서야 배우는 것이 합당합니다. 이 나이가 되기 전에 쓰기와 읽기를 못하는 것이 아이의 나중의 삶에 있어서 더 더욱 낳은 결과를 초래 합니다.

13살이나 14살이 되어서 제대로 쓰지를 못하는 아이( 저는 제가 이 나이때에 제대로 쓰지를 못하였다는 제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말씀드립니다)는 7살이나 8살에 완벽하게 글씨를 쓰고 읽는 아이보다 영적인 발달을 하는데 있어 더 적은 방해를 가지게 됩니다.

 

읽기를 쓰기에 앞서 가르치는 것은 매우 잘못된 방법입니다.

그 이유는 쓰기에 있어서 이것이 그림을 그리는 것에서 도출 된 것이라면 전체적인 아이가 이에 활동을 하기 때문입니다. 즉 손가락이 움직이고 몸의 자세를 비롯한 전체적인 사람이 글쓰기에 관여하게 됩니다. 그러나 읽기란 단지 머리만이 사용되어집니다. 이처럼 신체의 한 부분만이 사용되어지고 나머지 부분들이 수동적으로 남아있게 되는 것들은 될 수 있으면 아이에게 늦게 가르쳐져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전체적인 사람을 움직임 속으로 가져오는 것이며 그 후에 부분들에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는 아이가 9살과 10살이 되기 전에 그 자신의 에고를 자신의 환경과 구분짓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이는 자신이 전체의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에 관해 근거없는 환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원시시대의 사람들에게 발견되어 지는 에니미즘, 즉 생명없는 것들에 마치 생명이 있는 것처럼 대하는 것처럼 아이 또한 이 생명없는 것들에 영혼을 부여한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아이가 책상에 부딪히면 이 책상이 마치 영혼이 있는 것처럼 이 책상을 때린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사실은 아이가 영혼을 불어 넣는 것이 아니라 아이는 아직껏 살아있는 것과 생명없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아이는 모든 것을 하나의 단일체로 여깁니다. 그리고 그 자신도 그의 환경과 함께 이 단일체를 구성하는 것으로 여깁니다. 아홉살 혹은 열살이 되기 전까지 아이는 아이의 주변환경으로 부터 자기 자신을 구별하는것을 알지 못합니다.]



- [무엇보다도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서는 그 다음에 이 이야기에 관련된 설명을 아이들에게 들려주어서는 안됩니다. 이와 같은 행위는 이야기를 통해 얻고자 하는 모든 것들을 망쳐버리고 맙니다.

 

아이들에게 우선적으로 설명을 해 준 다음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합니다. 만약에 아이들에게 늑대와 양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할 때, 아이들에게 늑대와 양에 관한 특징을 먼저 설명합니다. 가능하다면 이와 같은 특징들을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이야기 해줍니다. 만약에 아이들이 먼저 선생님이 늑대와 양에 관한 것을 먼저 듣게 된다면 아이들의 감정은 더더욱 고조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로인해 이야기 속에서 더 더욱 많은 기쁨을 갖게 될 것입니다. 아이들이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필요로 되어지는 것들은 이야기 전에 들려주어야만 합니다.

 

아이들의 의식의 깨어있음의 정도가 다르다는 사실을 교육적으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중에 과도하게 느낌에 치중하는 아이들은 꿈을 꾸는 아이들입니다. 이 처럼 아이들의 생각이 완전히 깨어있지 않은 아이들은 쉽게 꿈속으로 빠져듭니다.

이러한 아이들에겐 강한 감정을 통해 효과적으로 접근 할 수 있습니다. 이 강한 감정이 아이들속에 있는 인식의 빛을 깨울 수 있기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잠이란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엔 깨어나는 리듬을 가지고 있기때문입니다.

 

생각에 골똘히 잠겨있는 아이, 느낌에 아예 무뎌진 아이는 특별히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을 고려해 본다면, 아이들 삶에 있어서 많은 수수께끼들을 풀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한 학급에 완전히 '멍청해'보이는 아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선생님은 아마도 이 아이가 정신적으로 장애를 가진 아이라고 판단을 내릴지도 모릅니다. 여러 가지 교육적 테스트를 이 아이에게 한 후 이 아이는 정신적으로 혹은 배움에 재능이 없기에 특수 학교에 보내져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이와 같은 아이는 의지가 강한 아이일 것입니다. 아마도 이와같은 아이는 그의 삶의 후반기에, 그의 콜레릭 기질로부터, 왕성한 활동을 하게 될수도 있을 것입니다. 처음에 아이는 멍청해 보입니다만 그러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선생님은 그들의 의지를 일깨울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어야만 합니다. 이러한 아이들의 의지는 매우 강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만 잠들어 있는 것입니다.]



- [왜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은 마치 뿌리를 잃어버린 것처럼 배회를 하는 것입니까?

우리 모두는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걸음을 옮기는 대신에 두 다리를 질질끌며 다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그들의 삶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을 만약에 재봉틀이나 전화기 앞에 앉혀 놓는다고 하면 그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를 너무나도 잘 알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 자신스스로 무엇을 해야 할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받은 교육이 그들을 이 세상에서 그들에게 가장 적합한 곳을 발견할 수 있도록 길을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발도르프 학교의 한 선생님은 그의 학생들이 책상밑으로 종이쪽지를 돌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아이들은 수업에 관심을 두지 않고 쪽지에 글을 써서 다른 아이에게 보내고 이 아이또한 이 쪽지에 답장을 해 다시 이 아이에게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 선생님은 이때문에 아이들을 꾸짖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선생님은 갑자기 수업의 내용을 바꾸었습니다.

선생님은 우편제도에 관하여 설명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처음에 아이들은 선생님이 왜 갑자기 수업의 내용을 우편제도에 관한 것으로 바꾸었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곧 이를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와같은 수업내용의 절묘한 변화는 아이들이 스스로 부끄러움을 가지도록 만들었습니다. 아이들은 곧 쪽지를 돌리는 것을 그만두었습니다. 단지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곁들인 우편제도에 관한 생각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특별히 어떠한 주의를 요하지 않고 그리고 특별한 아이를 대상으로 하지 않은 이와같은 아이들에게 부끄러움을 유발하는 것은 이와같은 것은 단순히 아이를  혼내는 것보다 무척이나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있습니다.

  

선생님이 아이들 앞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칠 책을 펴고 있거나 혹은 아이들에게 질문을 할 것들을 적은 메모나 가르칠 때 참고로 하기 위한 것들에 의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입니다. 아이들은 이러한 선생님의 모습을 그들의 의식속에 두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의식의 저변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것입니다.

선생님 자신도 내가 배워야할 것들에 대해 모르고 있구나. 그렇다면 왜 내가 선생님조차 모르는 것을 배워야만 하는 것이지.

이러한 사고는 책으로 부터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의 학생들의 의식의 저변에 갈려있는 판단입니다. 선생님이 가르쳐야 할 것들에 대해 몰라 책을 보고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을 아이들이 그들의 의식저변에서 알게 된다면 아이 또한 이것에 대해 배울 필요가 없다고 여기게 될 것입니다.


 

- [만약 우리가 아이들이 아홉살 무렵에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에 관해 관찰할 수 있는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이 나이의 아이들이 세상밖 자연속으로 향해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여전히 자연을 사람과 연관시킵니다. 만약 우리가 아이들에게 자연을 사람과 연관시키지 않고 가르친다면 이 나이의 아이들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들은 단지 아이들이 자연과학이 제공하는 일반적인 자연의 묘사를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다고 우리자신들을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아홉살이 되었을 때 아이들에게 자연에 관해서 가르쳐야만 합니다. 그러나 이 가르침은 언제나 사람과 관련을 가지고 있어야만 합니다. 자연에 관해 가르칠 때 자연이 인간과 동떨어진 세상 밖의 것으로 인식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사람을 그 중심에 두어야만 합니다.

 

열두 살 무렵에 또 다른 변화가 시작됩니다. 열두살 열세살 혹은 열네살 아이들의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이 시기는 아이들에게 자연과학 중에서도 물리적 사실들을 도입해야 할 시기입니다. 이 물리적 사실들은 예를 들자면 빛의 굴절과 같이 인간과 독립되어진 것들이어야만 합니다. 열두 살이 지난 아이들은 인간과 독립적인 것들을 관찰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나중에 다시 인간과 연관을 가져야 합니다. 예를 들자면 렌즈를 통한 빛의 굴절과 같은 물리적 현상은 나중에 인간 눈속에서의 빛의 굴절과 같은 것으로 다시금 인간과 연관을 갖게 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는 것은 과학이 아니라 예술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사람을 전체적으로 교육시켜야 되는 필요성을 강조해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지적인 것을 가르치고자 한다면 이 초등학교 시절동안 아이들에겐 이들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살아 있는 것, 완전한 것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것들만을 제공해야 합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어떤 것에 관한 아이디어를 제공하고자 한다면 선생님은 이를 가능한한 다양한 시각에서 이에 관해 묘사를 해야 합니다. 무엇이 사자라는 동물이지 사자는 이렇고 이런 동물이라는 대신에 우리는 사자에 관해 아주 다양한 시각에서 이를 묘사해야 할 것입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삶으로 부터 배우는 것을 배워야만 합니다. 그로 인해 그의 나중의 삶에 있어서 그들의 죽은 사고들이 삶으로부터 배우는 것을 방해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삶이란 학교에서 이것을 열 힘을 길러주지 않는다면 아이들에게 닫혀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은 어린 아이들에게 삶의 모습을 대변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선생님을 통해 삶을 만나야 합니다. 선생님은 아이들 앞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선생님 대신에 아이들 앞엔 삶이 있게 될 것입니다.]



- [일곱살과 여덟살사이의 아이의 아이들에게 특별히 그림 형태의 가르침을 주는 것만큼 유익하고 의미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다시 아이들이 열네살 혹은 열 다섯살이 되었을 때 이 가르침에 다시 다른 형태로 돌아 올것입니다. 이런 이유로인해 발도르프 학교에서는 아이들을 한 선생님과 가능한한 오래동안 함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교실에서 일어나는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모든 것들은 선생님의 영혼의 무드에 달려있습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의 가슴 속에 파고들어갈 수 있는 마음과 영혼을 가지고 교실에 들어서야 합니다. 이러한 것은 아이들을 아는 것으로 부터 획득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은 이와 같은 일을 매우 짧은 시간에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것입니다. 선생님은 아이들 모두를 알수 있으며 마음 속으로 아이들의 모습을 그릴 수 있습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의 기질, 각각의 아이들의 특별한 재능, 외적 특징등과 같은 것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아이들의 영혼을 들여다 본다면 우리는 아이들의 의지와 느낌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이들에게 있어서 의지와 느낌은 함께 성장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노인들의 경우는 이와 다릅니다. 그 상황 자체가 반대입니다. 즉 사고와 느낌이 함께 성장하며 의지는 독립적으로 자신을 나타냅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느낌을 의지로 부터 분리해 낼 수 있을 때 아이들의 삶을 적절하게 준비시킬 수 있습니다. 아이가 나중에 성인이 되었을 때, 그들은 그들의 자유 의지를 사고적 지각과 결부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삶을 완전하게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나이든 사람들의 그들 삶의 경험에 관하여 이야기 할 때 귀 기울이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그들이 살아 온 동안에, 그들은 그들의 개인적 느낌을 개념과 아이디어와 결합시켰기 때문입니다. 이분들은 이론에 관해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개념과 아이디어에 결합한 그들의 감정에 관해 이야기를 합니다.

 

인간 영혼이 어떠한 발달의 경로를 따라 간다는 것은 인간삶의 한 부분입니다. 아이들의 의지적 느낌은 노년의 느낌적 사고로 발전해 갑니다.]



- [세상을 관찰함에 있어서 우리는 감각이라는 것에 관해 고려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이것을 지각의 한 부분으로 치부해 버립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것을 충분히 관찰하였을 경우 우리는 무엇이 감각인지를 알게 될것입니다. 우리는 감각은 감정으로 향하는 경향을 띤 의지의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처음에 이것은 사고적 인식과 연관을 맺는 것이 아니라 감정적의지와 관련을 지닙니다.

 

우리는 인간의 감각이 외적으로 활성화 되어 있다고 감정적 의지는 어떠한 감감안에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인간의 모습을 그려본다면 우리는 표면에 감각의 영역이 있다는 것과 이곳에 감각적 의지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은 밤뿐만 아니라 우리의 주변에서, 우리 몸의 바깥표면에서 잠을 자고 있습니다. 사람으로서 우리는 우리의 감각을 완전히 이해할 수 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감각이 일어나는 주변에서 우리는 잠을 자듯 꿈을 꾸고 있기 때문입니다.

 

꿈과 잠이라는 것은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상의 삶에서 우리는 우리가 밤에 침대에 누울때 잠을 잔다고 알고 있습니다. 꿈은 계속적으로 우리 몸의 표면에서 잠과 결합됩니다. 이와 같은 꿈은 지능과 사고적 인식이 이것을 이해하기 전까지는 감각인 것입니다.

 

우리는 아이들의 감각속에서 의지와 느낌을 찾아야만 합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우리는 아이들을 지적으로 교육시킬 때  아이들의 의지에 계속적으로 영향을 행사하여야만 합니다. 아이들이 보는 것 모두, 아이들이 감지하는 것 모두 우리는 이곳에 의지와 느낌을 함께 넣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는 아이들의 감각을 부정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오늘날 심리학자들은 노인들의 감각과 아이들의 감각이 다르다라는 것을 알지못합니다. 그들에겐 감각이란 단지 감각이기 때문입니다.

 

노인들에게 감각은 이미 감각적 의지에서 감각적 사고로 옮겨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람들에게 감각은  생각과 같은 것이지, 분별없는 의지가 아닌 것이 되어버립니다. 그로인해 노인들은 고요함을 가지고 있게 됩니다.]



- [제 자신은 제가15살 이후부터 생계를 위해 아이들을 가르쳐야만 했습니다. 저는 개개인의 아이들을 직접가르쳐야 했기에 가르침의 실질적인 경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한 예를 들자면 제가 21살이 되는해 네명의 남자형제들이 있는 한 가족의 교육을 책임져야했습니다. 그로인해 저는 그 가족의 집에 거주해야 했습니다. 그 당시에 열 한살 먹은 한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는 뇌수종을 앍고 있는 아이였습니다.  이 아이는 특별한 버릇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아이는 식사를 식탁에서 하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이 아이는 식탁을 떠나 부엌으로 가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버려진 음식물 쓰레기, 감자 껍질이나 다른 음식물 버려진 것들을 먹었습니다.

이 아이가 어렸을 적에 정규 교육을 받을 수 있기를 희망하여 한 초등학교의 입학시험을 본적이 있었습니다. 이 아이가 제출한 답안지에는 단지 커다란 구멍만이 뚫려 있었습니다. 무엇인가를 지운 흔적이었습니다. 이 아이는 열 한살이었지만 어떠한 것도 해낼 수가 없었습니다.


이로인해 이 아이의 부모님은 성이 나 있었습니다. 이 가족은 중 상류 계급의 교양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는 이 가족의 집에 들어왔습니다만 제가 이 아이를 위해 준비한 것을 그들에게 말을 했을 때 누구도 저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 가족에게 만약 이 아이의 교육을 저에게 완전히  맡기신다면 이 아이의 몸속에 있는 것을 불러내도록 노력하겠다는 것만을 약속드릴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단지 이 아이의 어머니와 이 가족의 주치의만이 제가 말한 것을 이해할 뿐이었습니다. 이 아이의 어머니는 본능적인 감각을 지닌 분이였으며 주치의는 나중에 프로이트와 함께 심리분석학을 설립한 사람이었습니다. 열 여덟달이 지난 후 이 아이의 머리는 눈에 띄게 작아적으며  중등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아이는 특별한 도움을 필요로 했기에 저는 그 후에도 이 아이의 교육을 도왔습니다. 이 아이의 교육을 위해 어떤 경우에는 단지 15분을 가르치기 위해 1시간 30분의 준비가 필요하기도 했고 경제적인 가르침이 필요하기도 했습니다. 즉 어떠한 과목을 가르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간 이외에는 시간을 투자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하루의 시간표를 계획적으로 작성해 음악을 위한 시간, 체육시간, 산책시간 등등이 아주 정확하게 설정되어야만 했습니다. 저는 저 자신에게 만약 이 아이가 이런식으로 교육을 받게 된다면 이 아이의 안에서 잠재하고 있는 능력을 끌어낼 수 있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아이는 학교 공부를 계속해 나중에는 의사가 되었습니다. 이 의사가 된 아이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쳤지만 제 1차세계대전 중 군의관으로 참전했다가 병에 감염되어 삶을 마친 것이었습니다.]



- [우리가 아이들을 가르치고자 한다면 우리는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있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전통적인 학교에서는 통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학교는 시간표에 따라 여덟시에는 과학 아홉시부터 열시에는 체육 그리고 열시부터 열 한시에는 역사와 같이 꽉 짜여진 시간표에 따라 운영되어 집니다. 발도르프 학교에서는 주요학습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주요학습은 매일 오전 여덟시부터 열시 혹은 열 한시까지 아이들은 한 과목에 관해서만 가르침을 받게 됩니다. 아이들이 배우는 과목은 매시간마다 바뀌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채울 수 있는 기간 만큼 계속되어집니다. 


산수를 예로 들자면 이 산수 주요학습은 4주간 계속되어 집니다. 매일 아침 여덟시부터 열시까지 아이들은 산수 수업을 받게 됩니다. 오늘 배운 산수의 수업은 물론 어제 배운 것과 강한 연관성을 가진채 진행됩니다. 이 산수 수업이 4주간 진행된 후에 시간표에 따라 역사나 다른 과목이 약 4주간 아이들에게 가르쳐 질 것입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하자 마자 두가지 다른 나라 말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는 영어와 프랑스어를 가르칩니다.

  

우리는 시간표를 가장 기본적인 과목들을 오전시간에 배치하고자 합니다. 그로인해 체육과 오이리트미와 같은 몸의 수업은 오후시간대로 미루어집니다. 그러나 이것은 엄격하게 굳어진 규칙이 아닙니다. 학교 상황에 따라 변동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누구인가라는 것은 우리가 가진 지식이나 원칙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라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 [선생님은 교실에 들어설 때 아이들 하나 하나의 가슴 속으로 스며들 수 있는 영혼과 심성을 가지고 와야 합니다.

이것은 오로지 아이들에 대한 앎으로 부터 비롯되어 집니다. 한 학급에 아이들이 사오십명 되더라도 이러한 일을 준비하는데 그다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아이들을 알게되고 그러한 아이들의 모습을 마음속에 그려볼 수 있습니다. 그로인해 선생님은 아이들의 기질, 특별한 재능, 외형적 특징 등과 같은 것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가르쳐지는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이것은 사람의 삶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어야 합니다.

숫자를 가르치는 것도 실제적인 삶에서 기인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아이들이 선생님들이 가르치는 모든 것들을 이해한다고 기대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선생님 앞에 작은 아이가 있다고 상상해 보겠습니다. 선생님은 아이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너는 내 앞에 서 있구나. 여기를 보렴 선생님이 나무와 칼을 가지고 왔단다. 선생님이 나무를 이 칼로 자를 수가 있어. 그런데 애야 너는 둘로 나누어 질 수 없는 존재란다. 너는 나무와 같지 않거든. 나무와 너는 너무나도 틀리지. 너는 하나야 그러나 나무는 하나가 아니지." 이와 같은 대화를 시작으로 아이에게 일이라는 숫자를 보여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여기를 보렴 여기에 오른팔 또 다른 곳에 왼팔이 있네, 너는 두 팔을 가지고 있어." 팔은 하나가 아니라 둘이야. 이와 같은 방식으로 선생님은 숫자 하나와 둘이라는 것을 아이의 몸으로 부터 돌출 해 낼 수 있습니다.

사람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것이기에 사람으로부터 숫자를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어야 할 영양소 중 첫번째 것은 단백질 입니다. 두번째의 것은 지방입니다. 세번째의 것은 탄수화물 입니다. 이 탄수화물은 감자에 많이 들어 있습니다. 인간의 구성부분 중에서 지구의 흙과 관련되어 있는 곳은 머리 입니다.

우리는 뿌리식물이 필요합니다. 만약에 집중력이 약하거나 너무나도 들떠 있거나 한다면 이는 머리의 힘이 약한 결과 입니다. 그로 인해 기생충이 내장에 기생할 것입니다. 가장 간단한 처방으로 이러한 아이에게 당근을 주는 것입니다. 당근은 그 안에 땅의 힘을 보유하고 있고 이것이 위에 도달했을 경우 피를 통해 머리로 들어 가게 됩니다.]



- [선생님에게 가르침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관해 이야기 해 줄 수 있는 책을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겠습니까?

아이들 자체가 이 책을 만들어 냅니다. 우리는 우리들 앞에 있는 아이들 외에 따로 다른 책에서 가르침의 방식을 배울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들 앞에 놓여 있는 이 책을 읽기위해 필요한 것은 각각 개개인의 아이들에 관한 가장 폭넓은 이해일 뿐입니다.

 

우리가 건강한 교육을 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아이들을 향해 온갖 종류의 행위들을 발명해서는 안됩니다. 아이들이 이러한 행위들을 하도록 많은 것들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아이들은 삶과 동떨어진 단지 시간만을 충당하기 위해 만들어진 무의미한 행위들을 해야만 합니다. 이러한 방법들은 아이의 성장 발달에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학교에서의 모든 행위들은 삶 그자체에서 나와야만 합니다. 

 

아이들이 태어나서 일곱살이 되기까지의 시기에 감사는 아이들에 있어서 기본적인 덕이라 할 것입니다. 아이들이 세상을 접하고 이를 모방하고자 할 때, 감사의 몸짓을 보게된다면 이는 아이들이 도덕감을 형성해 나가는데 커다란 도움을 줄것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아이들이 일곱살에서 열네살 까지의 시기에 속한 기본덕이며 사춘기 이후에는 의무가 자리잡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감사라는 것이 일곱살까지의 시기에 열네살의 나이에 사랑이 그쳐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특정한 시기까지 성장 발달 시킨것을 다음것에 옮기는 것은 인간 삶의 가장 깊은 비밀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변형을 거치며 강도와 변화를 겪게 될것입니다.]


 

- [사람을 모든 방면에서 기술을 가진 사람으로 만드는 것보다 더 낳은 것은 없습니다.

이것은 운동을 통해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운동은 사람을 기술적으로 만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기술적으로 만드는 것은 예를 들자면 어떤 사람에게 연필을 주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이 연필을 그의 엄지 발가락과 두번째 발가락으로 잡고 글을 쓰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상 사람이 그의 몸 전체를 통하여 영혼과 정신이 스며있기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사람의 머리는 안정적으로 가만히 앉아서 여행을 하는 여행객입니다. 나머지 신체들은 이 머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을 동안 이 머리를 움직이는 운전사와 같습니다. 

 

산수 또한 실제적인 삶으로부터 도출되어야만 합니다. 살아있는 것은 언제나 완전체이며 무엇도다도 하나의 일체성을 가진 것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부분으로 부터 전체를 조합하도록 하는 가르침은 잘못된 것입니다. 아이들이 전체를 볼 수 있게 한 후 이를 나누고 분해하도록 하는 방법이 살아있는 개념으로의 바른 길이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이에게 시계를 주어 보십시요. 그러면 그 아이는 즉시 이것을 분해하고자 할 것입니다. 이 하나의 완전한 시계를 부분으로 분해하고자 할 것입니다. 이것 전체에서 부분으로 가고자 하는 것은 인간본성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멀리 떨어진 숲을 향하여 걸어간다고 해보겠습니다. 그러면 처음에 보이는 것은 전체로서의 숲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숲에 접근해 갔을 때 우리는 이 숲이 각각의 나무들이 모여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산수의 가르침의 방식은 이와 같은 식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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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티컬 카발라 - 생명나무의 세피로트 (1)

 


"미스티컬 카발라는 '황금새벽회' 출신이자 '내면의 빛 공동체'의 설립자인 '다이온 포춘'이 생명나무의 이론을 공부하고 이해하도록 만든 카발라의 안내서이다.


카발라는 '받다' '취하다'라는 뜻이며 고대로부터 입으로 전해 내려온 지혜로 유대교 전통 신비주의를 말한다.

이후 카발라는 고대 이집트, 그리스, 바빌로니아, 로마 등 다양한 역사의 흐름과 함께 발전하여 서양철학에서 카발라를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비교철학으로, 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뉴턴 같은 과학자나 많은 철학자들에게도 영감을 주었던 매혹적인 학문이다.

다이온 포춘은 "미스티컬 카발라'를 통하여 카발라의 이론뿐만 아니라 카발라 시스템을 따른 서양 전통 제식마법의 근본을 설명한다, 


물론 마법은 '헤르메스학 입문'에서와 같이 깨달음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다.

생명나무를 통하여 각각 10 세피로트와 서로의 연결 경로에 담긴 상징과 비밀을 신화와 전설, 철학, 문학, 심리학, 자연과학 등을 통하여 자세하게 밝혀준다. 


그리고 연금술, 점성학, 타로카드, 마법에 관한 것들을 토대로도 생명나무의 비밀을 아낌없이 들추어낸다. 

 


생명나무는 32경로가 있는데 이것은 열 개의 세피로트와 그 사이를 잇는 22개의 선을 가리킨다.

생명나무의 경로에는 황도대(Zodiac)의 별자리(Signs)와 행성, 원소들을 배열했다.

12궁과 7행성, 4원소를 포함하면 23의 상징이 되는데, 물질계에서는 우리가 스스로 흙 원소이기 때문에 흙 원소를 제외하여 22 경로에 상응하도록 하였다. 

 


하나의 세피라를 단일계 안에서만 고찰하면 그 세피라를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하나의 세피라는 네 겹의 본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카발라에서는 네 개의 세계가 있다고 표현한다.


이 체계는 신성한 테트라그람마톤(Tetragrammaton)의 4문자의 영향력 아래 있기 때문이다.

신성한 이름은 예호바(Jehovah)라 표현하고, 히브리어에는 모음이 없기 때문에 요드(ד ), 헤(ה ), 바브(ו ), 헤(ה )다. 


첫 분야는 카발리스트의 4계이다.( 아찔루트계, 브리아계, 에찌라계, 앗시아계)

둘째 분야는 연금술사의 네 원소이다.(물, 불, 공기, 흙)

셋째 분야는 점성학의 황도대 12궁을 120도씩 나눈 세 개의 그룹을 행성과 묶어 4중 구조로 파악한다.

넷째는 타로카드의 네 짝패다. 


   (완드Wand: 불원소- 양자리, 사자자리, 사수자리)

   (컵Cup: 물원소- 게자리, 전갈자리, 물고기자리)

   (소드Sword: 공기원소- 쌍둥이자리, 천칭자리, 물병자리)

   (펜터클Pentacle: 흙원소- 황소자리, 처녀자리, 염소자리)



각 세피라는 첫째 먼데인 챠크라로 구성되며, 둘째 천사군단, 셋째 대천사의 의식 또는 권좌, 넷째 신성의 특정 측면으로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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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나무 가지는 뱀이 칭칭 감고 있는 모습이다.

뱀은 자신의 꼬리를 입에 물고 있는 '네후쉬탄(성경에 등장한 놋뱀)으로 지혜와 마법의 상징이다.

뱀이 꽈리를 틀고 생명나무에 있는 모습은 각 경로를 차례대로 가로지르는 경로의 순서를 보여준다. 


생명나무는 현현하는 4단계와 현현하지 않은 3계(three planes of unmanifestation)가 있다.

현현하지 않은 첫 번째를 아인(AIN), 두 번째를 아인 소프(AIN SOPH), 무한이라 부르며, 세 번째를 아인 소프 오르(AIN SOPH AUR), 무한의 빛이라 부른다.


이 마지막 것들로부터 케테르가 수렴하고 케테르의 뒤 쪽에 닿아 있다.

 


생명나무를 연구할 때는 각 세피라를 철학, 사이키즘,(psychism), 마법, 세 겹의 측면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대우주와 상응하는 소우주를 실천적이고 영적인 관점에서도 살펴본다. 



10가지 세피라의 상징 을 간단히 요약해 본다.


1. 케테르

* 이름: 케테르 Kether, 왕관

* 마법적 이미지: 수염을 기른 고대 왕의 옆 얼굴

* 생명나무 위의 위치: 천상의 삼각형에 속하며 균형의 기둥 꼭대기에 위치한다.

* 관련문구: 첫 번째 경로는 '최고의 지성' 혹은 '감춰진 지성'이라 부른다.

                 이 빛에서부터 제1원리를 이해하는 힘이 비롯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근원적 영광'이다. 피조물은 그 본질에 이를 수 없다.


* 케테르에 속한 칭호: 존재 중의 존재, 숨겨진 것 중의 숨겨진 것, 가장 먼저 있던 자, 태초부터 있던 자. 

최초의 점, 궤도 안의 점, 지극히 높은자,큰 얼굴, 백발, 존재하지 않는 머리, 마크로프로소포스, 아멘, 룩스 오쿨타, 룩스 인테르나, 그(He), 불가해한 지고의 존재


* 신의 명칭: 에흐예(Ehyeh)

* 대천사: 메타트론(현존 Presence의 천사)

* 천사단: 거룩한 피조물, 하요트 하 코데쉬(Chayyoth ha Qodesh)

* 먼데인 챠크라: 레쉬트 하 갈굴림(Reshith ha-Gilgulim), 프리움 모빌레(Primum Mobile, 최초의 소용돌이)

* 영적인 체험: 신과의 합일

* 미덕: 성취, 위대한 일을 완성함

* 악덕: 없음

* 소우주 상응점: 머리, 사(Sah), 예히다(Yechida), 신성한 스파크(Divine spark) 천개의 꽃잎을 가진 연꽃

* 상징: 점, 왕관, 만( )자형 십자가, 

* 타로카드: 에이스

                 완드 에이스- 불의 힘의 근원,     컵 에이스- 물의 힘의 근원

                 소드 에이스- 공기의 힘의 근원,  펜터클 에이스- 흙의 힘의 근원


* 4계에서의 컬러 스케일:

                 아찔루트계에서의 색깔- 광휘

                 브리아계에서의 색깔- 순백색 빛

                 에찌라계에서의 색깔- 순백색 빛

                 앗시리아계에서의 색깔- 금색 얼룩이 있는 흰빛


2. 호크마

* 이름: 호크마

* 마법적 이미지: 수염을 기른 남성의 형상

* 생명나무 위의 위치: 천상의 삼각형에 속하며, 자비의 기둥 꼭대기에 위치한다.

* 관련 문구: 두 번째 경로를 가리켜 '빛을 비추는 지성' 이라고 부른다. 

                  이는 '피조물 중의 왕관' 즉 '합일의 광채'와 같으며 모든 머리위에 뛰어난 존귀함이다. 

                  카발리스트들은 '두 번째 영광이라 부른다.


* 호크마에 속한 칭호: 예찌라의 힘, 아브(Av), 아바(Abba), 천상의 아버지, 테트라그람마톤(Tetragramaton), 테트라그람마통의요드(Yod)


* 신의 이름: 예호바(Jehova)

* 대천사: 라지엘(Raziel), 즉 신의 비밀이자 사자(Herald)

* 천사단: 오파님(Ophannim), 즉 수레바퀴

* 먼데인 차크라: 맛잘로트(Mazzaloth), 즉 황도대(Zodiac)

* 영적인 체험: 비전을 통해 신을 대면함

* 미덕: 헌신

* 악덕: 없음

* 소우주 상응점: 얼굴의 왼쪽 면

* 상징: 링감(Lingam), 즉 남근상, 테트라그람마톤의 요드, 영광의 예복(Robeof Glory), 탑, 치켜든 능력의 지팡이, 직선


* 타로카드: 2

                완드2: 주권,   컵2: 사랑,   소드2: 회복된 평화,     펜터클2: 조화로운 변화


* 4계에서의 스케일:

               아찔루트계에서의 색깔- 순수한 옅은 파란색

               브리아계에서의 색깔- 회색 

               에찌라계에서의 색깔- 진줏빛을 띤 회색, 무지갯빛 

               앗시리아계에서의 색깔- 붉은색, 파란색, 노란색, 얼룩이 박힌 흰색 


3. 비나

* 이름: 비나. 이해

* 마법적 이미지: 성숙한 여인, 기혼 부인

* 생명나무 위의 위치: 천상의 삼각형에 속하며, 공의의 기둥 꼭대기에 위치

* 관련 문구: 세 번째 지성을 가리켜 '정화하는 지성', '원초적 기혜의 토대'라고 부른다. 또한 

                  '신앙의 창조주'라고 불리며, 그 뿌리는 아멘(Amen)에있다. 

                  신앙의 어버이이며 여기서부터 신앙이 비롯된다.


* 비나에 속한 칭호: 예호바 엘로힘(Jehovah Elohim)

* 대천사: 짜프키엘(Tzaphkiel), 즉 천사으 관찰자 또는 눈(Eye)

* 천사단: 에렐림(Er' elim), 좌품천사(Thrones)

* 먼데인 차크라: 샤바타이(Shabbathai), 즉 토성(Saturn)

* 영적인 체험: 슬픔의 버전(Vision of Sorrow)

* 미덕: 침묵

* 악덕: 탐욕

* 소우주 상응점: 얼굴의 오른쪽 면

* 상징: 요니(Yoni), 크테이스(Kteis), 성상의 후광(Vesica Piscis), 컵 또는 감춰진 것의 겉옷


* 타로카드: 3

                 완드3: 안정된 힘,    컵3: 풍부함,    소드3: 슬픔,    펜터클3: 물질적인 일 


* 4계에서의 컬러 스케일:

               아찔루트계에서의 색깔- 진홍색

               브리아계에서의 색깔- 검은색

               에찌라계에서의 색깔- 어두운 갈색

               앗시리아계에서의 색깔- 분홍색 반점이 있는 회색


4. 헤세드

* 이름: 헤세드, 자비

* 마법적 이미지: 왕관을 쓰고 왕좌에 앉은 강력한 왕

* 생명나무 위의 위치: 자비의 기둥 한 가운데 위치

* 관련 문구: 네 번째 경로를 가리켜 '친화력이 있으며 수용적인 지성' 이라고 부른다. 

                  모든 성스러운 능력을 품고 있으며 여기에서부터 모든 영적 미덕의 가장 숭고한 에센스가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이 모든 미덕은 '제1 방출자'이자 '지고의 왕관', 즉 케테르의 힘을 통해 하나씩 차례로 방출된다.


* 헤세드에 속한 칭호: 게둘라(Gedulah), 사랑, 위엄

* 신의 이름: 엘(El)

* 대천사: 짜드키엘(Tzadkiel), 즉 신의 자비

* 천사단: 하쉬말림(Chashmalim),즉 빛나는 존재

* 먼데인 챠크라: 쩨데크(Tzedek), 목성(Jupiter)

* 영적인 체험: 사랑의 비전

* 미덕: 복종

* 악덕: 완고함, 위선, 폭식, 독재

* 소우주 상응점: 왼쪽 팔

* 상징: 입체, 4면체, 피라미드, 등변십자가, 보주(Orb), 지팡이, 홀, 갈고리 

* 타로카드: 4

                 완드4: 일의 완성,    컵4: 쾌락,    소드4: 싸움을 멈춤,    펜터클4:지상의 능력 


* 4계에서의 컬러 스케일:

                아찔루트계에서의 색깔- 짙은 보라색

                브리아계에서의 색깔- 파라색

                에찌라계에서의 색깔- 짙은 자주색

                앗시리아계에서의 색깔- 노란색 반점이 있는 하늘색

 


5. 게부라

* 이름: 게부라, 힘, 공의,

* 마법적 이미지: 전차를 타고 있는 힘센 전사

* 생명나무 위의 위치: 공의의 기둥 한가운데 위치

* 관련 문구: 다섯 번째 경로를 일컬어 '지성의 근원'이라 한다. 즉 호크마의 원초적 심연(depth)에서 방출된 '이해'인 비나와 하나가 됨으로써 합일'(Unity)에 다가서기 때문이다.


* 게부라에 속한 칭호: 딘(Din), 즉 정의(Justice), 파하드(Pachad), 즉 두려움

* 신의 이름: 엘로힘 기보르(Elohim Gibbor)

* 대천사: 카마엘(Khamael), 즉 신의 버너(Burner)

* 천사단: 세라핌(Seraphim), 즉 불뱀(Fiery Serpents)

* 먼데인 챠크라: 마딤(Ma'adim),즉 화성(Mars)

* 영적인 체험: 능력의 비전

* 미덕: 에너지, 용기

* 악덕: 잔인함, 파괴

* 소우주 상응점: 오른 팔

* 상징: 오각형(Pentagon), 다섯 개의 꽃잎을 가진 튜터 왕조의 장미, 검, 창, 채찍, 사슬 

* 타로카드: 5

              완드5: 분쟁과 다툼,    컵5: 만족을 잃음,    소드5: 패배,    펜터클5: 세속적 근심 


* 4계에서의 컬러 스케일:

             아찔루트계에서의 색깔- 오렌지색

             브리아계에서의 색깔- 선홍색

             에찌라계에서의 색깔- 밝은 선홍색

             앗시리아계에서의 색깔- 검은색 반점이 있는 붉은색


6. 티페레트

* 이름: 티페레트(Tiphareth), 아름다움

* 마법적 이미지: 위엄 있는 왕, 어린아이, 희생 제물이 된 신

* 생명나무 위의 위치: 균형의 기둥 중앙에 위치

*티페레트에 속한 칭호: 제르 안핀(Zeir Anpin), 즉 작은 얼굴의 멜렉(Melekh)즉 왕, 아담(Adam), 아들, 인간( The Man)

* 신의 이름: 테트라그람마톤 엘로아 베 다트(Tetragrammaton Eloah Va Daath)

* 대천사: 라파엘(Raphael), 즉 신의 치유자

* 천사단: 멜라힘(Melachim), 즉 왕

* 먼데인 챠크라: 쉐메쉬(Shemesh), 즉 태양

* 영적인 체험: 사물의 조화에 대한 비전, 십자가 고난의 비의(Mysteries of the Crucifixion)에 대한 비전

* 미덕: 위대한 일(Great Work)에 헌신 함

* 악덕: 자만(Pride)

* 소우주 상응점: 가슴

* 상징: 라멘(Lamen), 장미 십자가, 갈보리 십자가, 절두 피라미드, 큐브 

* 타로카드: 6

                완드6: 승리,    컵6: 기쁨,    소드6: 노력 끝의 성공,    펜터클6: 물질적 성공 


* 4계에서의 컬러 스케일:

               아찔루트계에서의 색깔- 선명한 장밋빛 분홍색

               브리아계에서의 색깔- 노란색

               에찌라계에서의 색깔- 선명한 연어살색

               앗시리아계에서의 색깔- 호박색


7. 네짜흐

* 이름: 네짜흐, 승리

* 마법적 이미지: 벌거벗은 미녀

* 생명나무 위의 위치: 자비 기둥의 발의 위치

*관련 문구: 일곱 번째 경로를 가리켜 '오컬트적 지성'이라고 부른다. 

                 지성의 눈과 신앙적 관조를 통해 지식이라는 덕목을 얻는데 이것이 내뿜는 찬란한 광채가 바로 오컬트적 지성이다.

* 신의 이름: 예호바 쩨바오트(Jehovah Tzeva'oth),즉 만군의 주

* 대천사: 하니엘(Haniel), 즉 신의 은총

* 천사단: 엘로힘(Elohim), 즉 신들

* 먼데인 챠크라: 노가(Nogaph), 금성(Venus)

* 영적인 체험: 승리를 거둔 미(Beauty)에 대한 비전

* 미덕: 이타심

* 악덕: 음란, 정욕

* 소우주 상응점: 음부, 엉덩이, 다리

* 상징: 램프, 허리띠, 장미 

* 타로카드: 7

                완드7: 용감무쌍함, 컵7: 실체가 없는 성공, 

                소드7: 불안정한 상태로 노력을 기울임,    펜터클7: 만족스럽지 못한 성공 


* 4계에서의 컬러 스케일:

                아찔루트계에서의 색깔- 호박색

                브리아계에서의 색깔- 에메랄드색

                에찌라계에서의 색깔- 밝은 연두색

                앗시리아계에서의 색깔- 황금색 반점이 있는 올리브색


8. 호드

*이름: 호드(Hod), 영광

* 마법적 이미지: 좌웅동체

* 생명나무 위의 위치: 공의의 기둥 발에 위치

* 관련 문구: 여덟 번째 경로를 가리켜 '절대적 지성' 또는 '완벽한 지성' 이라고 부른다. 이것이 곧 '근본(Primordial)'을 아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생겨난 근원도 나고 위지할 뿌리도 없다. 오직 게둘라의 은밀한 곳이 그의 근원이다, 바로 여기서 그의 에센스가 방출되는 것이다.


* 신의 이름: 엘로힘 쩨바오트(Elohim Tzeva' oth), 즉 만군의 하느님

* 대천사: 미하엘(Michael), 신 같은 자(Like unto God)

* 천사단: 베네 엘로힘 (Bene Elohim), 즉 신의 자손

* 먼데인 챠크라: 코하브(Kokhav), 수성(Mercury)

* 영적인 체험: 광휘(Splendour)의 비전

* 미덕: 성실함

* 악덕: 불성실, 거짓

* 소우주 상응점: 허리와 다리

* 상징: 이름, 주문(Versicle), 에이프런(Apron)

* 타로카드: 8

              완드8: 신속함,   컵8: 자포자기 상태의 성공,    소드8: 단축된 힘,    펜터클8: 신중함 


* 4계에서의 컬러 스케일:

              아찔루트계에서의 색깔- 보랏빛 자주색

              브리아계에서의 색깔- 오렌지색

              에찌라계에서의 색깔- 적갈색

              앗시리아계에서의 색깔- 노란빛이 도는 검은색 바탕에 흰색 반점


9. 예소드

* 이름: 예소드, 기초

* 마법적 이미지: 아름답고 매우 강한, 벌거벗은 남자

* 생명나무 위의 위치: 균형으 기둥에서 바닥을 향하는 위치

* 관련 문구: 아홉 번째 경로는 '순수한 지성'이라 부른다. 

방출된 것을 정화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자신의 표현물을 설계한 것을 검증하고 바로 잡으며, 설계된 대로 축소나 불일치 없이 통일성을 부여한다.


* 신의 이름: 샤다이 엘 하이(Shaddai EL Chai), 즉 살아계신 전능하신 신(Almighty Living God)

* 대천사: 가브리엘(Gabriel), 즉 강한 남자, 신의 영웅

* 천사단: 케루빔(Keruvim), 즉 강한 자

* 먼데인 차크라: 레바나(Levanah) 달 

* 영적인 체험: 우주의 기계 장치에 대한 비전

* 미덕: 독립성

* 악덕: 게으름

* 소우주 상응점: 생식기관

* 상징: 향수, 샌들

* 타로카드: 9

             완드9: 위대한 힘,    컵9: 물질적 행복,    소드9: 절망과 잔혹,    펜터클9: 물질적 이익 


* 4계에서의 컬러 스케일:

             아찔루트계에서의 색깔- 남색

             브리아계에서의 색깔- 보라색

             에찌라계에서의 색깔- 매우 어두운 자주색

             앗시리아계에서의 색깔- 담청색 반점이 있는 레몬색

 

10. 말쿠트

*이름: 말쿠트(Malkuth), 왕국

* 마법적 이미지: 왕관을 쓰고 왕좌에 앉아 있는 젊은 여인

*생명나무 위의 위치: 균형의 기둥 맨 아래에 위치

* 관련 문구: 열 번째 경로는 '찬란한 지성'이라고 부른다. 

                 모든 머리 위에 뛰어나며, 비나의 왕좌 위에 앉아 있기 때문이다.

                 모든 빛에 광채를 더하며, 얼굴의 군주, 즉 케테르의 천사가 힘을 방출하게 된다.


*말쿠트에 붙여진 칭호: 관문, 죽음의 관문, 죽음의 그림자 관문, 눈물의 관문, 정의의 관문, 기도자의 관문, 강력한 자들의 딸의 관문, 에덴동산의 관문, 하위차원의 어머니, 말하(Malkha), 즉 왕비, 칼라(Kallah), 신부 처녀


* 신의 이름: 아도나이 멜렉 (Adonai Melekh), 또는 아돈 하 아레츠(Adon ha- Aretz)

* 대천사: 산달폰(Sandalphon)

* 천사단: 이쉼(Ishim), 불의 혼

* 먼데인차크라: 올람 하 예소도트(Olam ha-Yesodoth), 즉 원소의 영역 

* 영적인 체험: 수호천사에 대한 비전

* 미덕: 판별력

* 악덕: 탐욕, 무기력

* 소우주 상응점: 발, 항문

* 상징: 이중 큐브 모양의 제단, 등변 십자가. 마법원, 마법삼각형

* 타로카드: 10

             완드10: 위억압,    컵10: 완벽한 성공,    소드10: 파멸,    펜터클10: 부(富) 


* 4계에서의 컬러 스케일:

             아찔루트계에서의 색깔- 노란색

             브리아계에서의 색깔- 레몬색, 올리브 색, 적갈색, 검은색

             에찌라계에서의 색깔- 레몬색, 올리브색, 적갈색, 검은색, 이 안의 황금빛 반점

             앗시리아계에서의 색깔- 노란색이 도는 검은색



생명나무의 세피로트와 주역 - (2)

 

                                                                  http://cafe.daum.net/xymarketing/LUII/6 


유럽의 영적 문화가 유대주의를 모태로 삼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스라엘의 신비주의 카발라는 서양 현대 오컬트의 기초가 되었다.

카발라 '생명나무' 세피로트, 10개의 세피라가 모든 것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고대 히브리 신비주의 전통에는 세 가지 문헌이 있는데 구약성서라 일컫는 '율법과 예언의 책'과 '탈무드'와 비의적(mystical)인 해석의 '카발라'이다.


이 세 가지 고대 문헌에 관하여 랍비들은 '율법과 예언의 책'은 몸통에, '탈무드'는 이성적(rational)인 혼에, '카발라'는 불멸하는 영이라 했다.

그러나 강물은 수원에서 멀어질수록 수많은 지류를 거느리고 다른 물들과 섞이고 오염되기 마련이다.

기독교에는 '그노시스'라는 비의적 전통이 있는데 그노시스는 그리스와 이집트의 사상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고, 피타고라스의 체계는 그리스 신비주의가 카발라의 원리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생명나무의 세피로트는 둥근 기호 10개를 사용하여 우주 창조의 비밀과 심리학 등에 관련된 모든 것을 전수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동양의 주역이 오버랩 되지 않을 수 없다.


주역과 세피로트는 기호로 이루어 졌다.

기호는 관심 없는 사람의 눈에는 아무 의미가 없어 보이지만 감추어진 상징의 문을 부수면 시간과 공간을 넘어, 언어를 초월하는 무한의 경지까지도 이르게 된다.

주역과 세피라트의 해석이 채색된 종교와 문자와 문화와 시대에 메인 문학적이고 주입식의 해설이어서는 곤란하다. 

기호는 언어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시공을 초월하여 누구나 의식의 질과 양 만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과학적이고 수학적이며 자유한 자가 바라봐야할지도 모르겠다.


생명나무의 열 개의 부호를 바라보면서 다이온 포춘이 설명한 세피로트가 아니라 그냥 느껴지는 것을 간단히 살펴볼 뿐이다.

                                                


케테르는 태극(太極)이다.

태극, 케테르에서 양(  호크마)과 음( 비나)이 나온다.


케테르의 생명나무 그림은 자비의 기둥과 공의의 기둥 가운데 균형의 중간 기둥 꼭대기에 위치한다. 

포춘은 책에서 케테르는 형상 없이 오직 순수한 존재의 상태이고, 무(無)이지만 그 안에는 만물의 잠재력이 담겨있다고 한다. 

케테르를 상징하는 '왕관'은 머리가 아니라 머리 위에 얹는 것이다.

이것은 실제로 현현하는 물질이 아니라 만물이 이곳에서 샘솟는 근원으로 영적의 본질을 나타낸다.

네 원소의 원천이며 무형상과 무시간과 영원과 불멸이다.

이와 같이 케테르의 속성이 태극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케테르 뒤쪽에 닿아있는 현현되지 않은 음의 3단계 존재(아인, 아인 소프, 아인 소프 오르)가 있는데, 이것들은 케테르가 수렴한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케테르를 음과 양을 공유하는 중간의 조화자리에 배치했는데 감추어진 음의 3단계를 드러낸 것은 케테르를 양으로 본 것이다.


그림을 살펴보면 케테르는 위 중앙기둥에서 바로 내려왔고 1번의 숫자에 놓였는데 다음 2번 호크마로 번개가 내려가는 것은 양(케테르)에서 다시 양(호크마)으로 흐르게 된다.


번개의 방향은 양에서 음으로 음에서 양으로 흐른다면 양에서 양으로 흐르기 때문에 케테르를 음양을 머금은 태극으로, 태극에서 음과 양으로 나뉜 것으로 보아야 무리가 없을 듯하다.


그러나 포춘은 책에서 케테르 안에서는 대립자의 쌍이 나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호크마를 황도대, 비나를 행성의 하나인 토성으로 하였다.

물론 포춘 이전부터 내려온 서구적인 생각이겠지만 같은 위치에 나란한 호크마와 비나를 천체의 질서에서는 격이 다르게 보는 것은 아쉽다고 느껴진다.

사실 숫자의 의미까지도 고려해 본다면 케테르는 1이라기 보다는 0에 더욱 가까울 것이다.

포춘은 선형적으로만 바라본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동양적인 사고로 생각하면 오히려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케테르 태극에서 음(비나), 양(호크마)이 나오고 음과 양에서 사상(四象)이 나온다.

사상을 호크마와 비나 밑에 있는 넷, 헤세드와 게브라, 네짜흐와 호드이다.


만일 음양오행(陰陽五行)을 고집한다면 토(土)를 가운데 티페레트와 예소드에 배속시키면 될 것이다.

오행의 토는 5.10 중앙 土이기에 그림으로도 의미가 더욱 분명해진다.

 

켈트의 세계나무 http://cafe.daum.net/eea/SjB/435


주역의 팔괘(八卦)로도 바라본다.


케테르가 태극이라면 말쿠트는 삼라만상으로 보아도 되고 인간으로 생각해도 상관없다.

가장 밑에 있는 내가 한 걸음 한 걸음 깨달음의 길로 올라가면 신인합일의 케테르에 도달하게 된다.

말쿠트가 케테르이고 케테르가 말쿠트이다.

내가 바로 하늘이고 神이고 識이다.

세피라트의 그림을 원형으로 만들면 케테르와 말쿠트가 하나로 맞아들고 나머지는 8개가 된다. 


 도표1                                                   도표2


이 8개 세피라가 각각 8괘가 된다.

이때 호크마와 비나는 (도표1)처럼 옆에 있기보다는 (도표 2)와 같이 위 아래로 자리 잡아주면 주역을 몰라도 부호만 살펴보아도 나름대로의 규칙성을 발견 할 수 있다. 

 

삼태극(三太極)도 살펴보자.

위에서 케테르는 음 존재인 아인, 아인 소프, 아인 소프 오르를 수렴한다고 하였다.

이것을 삼태극이라 생각해 본다.

그리고 큰 덩어리로 케테르, 호크마, 비나의 삼각형을 하늘의 삼천(三天)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면 양지(兩地)는 헤세드와 게브라가 된다.

이 게브라와 헤세드가 조화를 이룬 테페레트는 또 하나의 삼각형으로 호드와 네짜흐의 하늘인 삼천(三天)이 되고, 같은 이치로 네짜흐와 호드의 양지(兩地)가 조화를 이룬 예소드는 또 하위의 하늘이 된다. 


케테르는 셋이면서도 하나의 의미를 삼태극 속에서 살펴보았고, 우리나라 천부경의 일석삼극(一析三極)도 같은 이치일 것이다.



생명나무를 사상(四象)으로 바라본다. 

 


그림을 보면 케테르와 말쿠트 만이 유일하게 처음과 마지막으로 가운데 기둥에 배치되어 있다.

더욱 케테르는 좌우로 호크마와 비나로 나누어있다.

케테르를 머리로 하여 호크마와 비나는 첫 번째 삼각형을 이루게 된다.

두 번째 삼각형으로는 헤세드와 게브라와 티페레트이다.

세 번째 삼각형은 네짜흐와 호드와 예소드이다.


두 번째 세 번째 삼각형은 첫 번째와 달리 통합의 티페레트와 예소드가 좌우보다 밑에 위치하여 삼각형을 이루고 있다.

삼각형을 나누었으니 생명나무는 세 개의 삼각형과 나머지 말쿠트를 첨가하면 크게 4계로 나뉘게 된다.


첫 번째 삼각형을 아찔루트계, 두 번째는 브리아계, 세 번째는 예찌라계, 네 번째는 앗시아계가 된다.

아찔루트계를 스피릿계(영계: 죽어서 가는 영계와는 다르다), 두 번째는 멘탈계, 다음은 아스트랄계, 하위는 물질계로 나뉘어본다.

또 앗시야계를 현의식, 예찌라계를 잠재의식, 브리아계를 무의식, 아찔루트계를 초의식으로 생각해 본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 풍(風) 화(火) 수(水) 지(地)의 사대(四大), DNA의 네 개의 염기 등, 얼마든지 네 범주로 나눌 수 있다. 

카발라의 4계는 바로 주역의 사상( 四象 )과 같은 이치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림을 무심코 보아도 가운데에 위한 케테르와 테페레트와 예소드와 말쿠트가 눈에 먼저 들어온다.

케테르가 하늘(신)이라면 티페레트는 태양이고 에소드는 달이고 말쿠트는 바로 인간이다.

티페레트는 우주의 중심에 위치한다. 바로 내 자신이다.


또는 물질에서 육화하여 영적 차원으로 가는 변화점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서양의 사고에서는 육화되는 희생적인 육체의 죽음을 내포하는 십자가의 고난으로 바라본다.

아버지 하느님은 케테르이고, 아들 하느님 예수는 테페레트에 배속한다.

테페레트에서 하느님의 형상을 입고 현현하여 우리 의식 안으로 내려온다.

형상과 의식(책에서는 힘이라 했으나 의식이라는 표현이 더욱 적합할 듯하다)이 균형 상태에 이르러야 하기 때문에 '매개자' '구원자'의 개념을 발견할 수 있다 한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티베레트의 영역을 '그리스도의 센터'라 부르고 여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범신론적인 신앙에서는 예소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렇지만 인간이라면 케테르에 초점을 맞추고 생명나무를 삼켜버려야 할 것이 아닌가?


우리나라는 아직 오컬트에 관하여 번역된 책들이 많지 않다.

근래에 좋은 글방에서 '헤르메스학 입문'과 '미스티컬 카발라'를 출판해 주어서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헤르메스학 입문'이 우주의 근본인 네 가지 요소에 3의 의미를 부여했다면, '미스티컬 카발라'에서는 생명나무를 통하여 10 수의 의미와, 음과 양의 양분성과, 대우주 속의 프랙탈적인 소우주의 부분과 통합을 아우르게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세피로트는 살아있는 생명나무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메이지 않고 자유롭게 호흡한다면 참 생명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생명나무를 읽자마자 앞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자판을 두드리는 것은 어리석고 우매한 노릇이다.

두고두고 바라보며 명상하고 적어도 부족할 텐데, 잘 알면서도 책 읽기를 마치면 그 자리에서 몇 자 적어 블로그에 올리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이 책도 예외일 수 없었다. 

- 마나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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