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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였죠? 그 고승이 아프자, 제자가 "부처도 아픕니까?"라고 하니까.

"일면불 월면불"그럽니다. 해도 부처고, 달도 부처다.

해처럼 변치 않는 부처도 있고, 달처럼 한 달마다 계속 날마다 변하죠, 달은. 

변하는 부처도 있고, 안변하는 부처도 있고.

즉, 현상계 안에서 건강한 부처도 있고, 아픈 부처도 있다.

즉, 아프건 건강하건, 부처 자리랑 상관이 없다는 얘기를 합니다.

아파도 부처고, 건강해도 부처고.

몸이 장애다. 몸에 장애가 있다고 이 자리에 장애가 있을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다 부처인 거예요. 몸이 장애가 있어도 부처고, 몸이 건강해도 부처고, 기력이 넘쳐도 부처고, 기력이 없어도 부처고, 

아는게 많아도 부처고, 몰라도 부처고.


모기도 불성이 있습니다. 모기도 알아차리잖아요.

그래서 지금 종밀스님은 곤충이건 동물이건 

지각이 있는 건 다 불성이 있다. 왜? 

아는 자리가 부처자리니까. 

아는 자리가 부처니까, 모기가 아니까 안 잡히죠. 

우리한테 잘 안 잡히죠.


곤충들 동물들 다 알아요. 

자기가 존재한다는 걸 느낀단 말이에요.

그거를 인간처럼 에고가 성숙되어 있지 않으니까 

에고를 통해서 반추할 수 있는 힘이 없는 거지,

자신이 존재한다는 걸 모르는 존재가 있을까요? 

아니까 그렇게 돌아다니죠. 살려고 돌아다니죠.


그럼 개에 불성이 있냐, 없냐도 말이 안 되는 게,

원래 지각이 있으면 다 있는 건데. 


개 이름 “아무개야!”하면 그거 듣는 자리가 부처입니다.

“해피야!”했을 때, 돌아보는 자리가 부처라고요. 

그니까 불성이 있다, 없다 논할 그게 애초에 아닌 거에요.


조금만 알면, 이런 얘기 이미 다 칠백년 팔백년대에 이미 친절하게 써서 다 논문이 있었어요.

그게 우리가 단절되어 버리니까, 편견 하나가 다 막아버려요.

정보의 엄청난 바다가 있으면 뭐합니까?

우리가 눈이 가려져있으면 그걸 못 보는데, 못 즐기는데.

그래서 제가 지금 인터넷이라는 정보의 바다에 고전에 있는 정보들을 지금 제가 자꾸 풀어놓는 거에요.

그게 돌아다녀야 사람들한테 영감을 주고, 이게 지금 우리 인문학 하는 분들에게만 영감을 주고, 종교하는 분들한테만 영감을 주는게 아니에요.

과학하는 분이나, 의학하는 분이나, 어떤 분이건 예술하는 분이건 요거 하나 들으시면, 아이디어가 어떤 아이디어로 여러분 안에서 발현될지 몰라요.

자명한 진리들은, 어마어마한 응용이 또 가능하거든요.

홍익학당 http://cafe.naver.com/bo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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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홍익학당입니다. 홍익학당은 2011년부터 현재까지 유투브에 370여개의 전세계의 철학고전들을 무료 강의로 제공을 해 왔습니다. 사서오경, 노자, 장자, 불경, 성경, 서양철학까지 유명한 철학고전 들의 상당수를 제공하였는데, 이러다 보니 먼저 공부할 내용을 추려 주시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이 제시 되었습니다.

 

이를 위해서 [인문학 1주일 완전정복 시리즈]를 제공하려고 합니다. 홍익학당의 강의중에 각 분야의 뼈대가 되는 강의를 추려서 1주일 정도안에 학습하실 수 있게 제공해 드립니다. 이 강의를 들으시면 어떤 인문학/철학 고전을 읽는 것 보다 정확한 공부의 뼈대가 생기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주일만 투자하시면 인문학과 고전의 전문가가 되실 수 있습니다. 시간이 없으신 분들은 이 강의만 들으셔도 되고, 좀 더 공부하고 싶으신 분들은 학당의 다른 강의를 더 들어 보시거나 관련된 책을 보시면 도움이 되실 것 같습니다. 취업을 준비하시는 분들이나 고전/철학을 공부해 보고 싶은 직장인들께 도움이 되실 것 같습니다.

 

1차 동양철학편에 이어서 [인문학 1주일 완전정복 시리즈-불교철학편]을 제공해 드립니다. 아래 제시된 순서로 강의를 들어 보시면 불교철학의 핵심적인 뼈대와 가장 중요한 골자를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1일차. 신심명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으니'로 시작하는 3조 승찬이 저술한 신심명은 선종에서 추구하는 견성의 핵심 요결이 가장 잘 기술된 고전입니다.

 

이 강의를 들으면 여러분은 누구나 쉽게 견성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하실 수 있게 됩니다.


강의자료

신심명.hwp

 

 


2일차. 반야심경/금강경 

반야심경과 금강경은 불교를 공부하시는 분들이 가장 많이 보시는 경전이 아닐까 합니다. 그 동안 읽으시면서도 뜻이 잘 안 와 닿았다면 이 강의를 통해서 대승불교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쉽게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이 강의를 통해서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본 뜻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시면 좋겠습니다.

 

강의자료

견성콘서트#5-반야심경_금강경.pdf

 

 


3일차. 선어록으로 배우는 선의 지혜(벽암록,종용록,무문관) 

벽암록, 종용록, 무문관 등의 선어록은 선사들의 즉각 깨어나게 하는 공부 방법이 잘 설명된 대표적인 고전입니다.

 

윤홍식 대표는 이 강의를 통해서 견성의 10가지 인가기준, 벽암록 / 종용록 / 무문관에서 뽑은 11개의 선문답 풀이, 전심법요를 설명해 줍니다. 이 강의를 통해서 선사들은 무엇을 알았는지, 견성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자명하게 알 수 있게 됩니다.


강의자료 

선어록 풀이 -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pdf

 

 


4일차. 선가귀감 

한국에는 원효대사, 보조국사, 진묵대사, 서산대사, 경허대사 등 뛰어난 스님들이 많이 배출 되었습니다.

 

서산대사는 유불선 삼교를 모두 아울러 선가귀감, 유가귀감, 도가귀감을 저술할 정도로 사상의 폭이 넓고, 국난에 직접 뛰어들어 나라를 구하는 실천적인 철학을 보여주신 분입니다. 선가귀감은 그 내용이 선종(禪), 교종(敎)을 모두 포괄하여 나아갈 길을 밝히고 있고, 소승과 대승의 길까지 정확히 설명을 주고 있습니다. 이 강의를 통해서 전세계 어디에 내 놓아도 자부심심이 생기는 한국 큰스님들의 철학을 쉽게 이해하실 수 있게 됩니다.

 

강의자료

견성콘서트#12- 서산대사의 선가귀감.pdf


 

 

 

5일차. 육조단경 

육조 혜능은 선종을 널리 알린 뛰어난 선사로 그가 지은 『육조단경』선종의 핵심 바이블로 많이 읽혀지고 있습니다.


윤홍식 대표는 이 강의를 통해서 돈오돈수, 돈오점수 사상이 나눠지게 된 근원적인 이유를 설명하면서 육조 혜능이 주장한 참 뜻을 알기 쉽게 설명을 해 주고 있습니다. 이 강의를 통해서 선종과 대승불교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강의자료

견성콘서트#10-육조단경.pdf


 

 


6일차. 대승기신론 

마명의 대승기신론은 간결하지만 불교철학의 핵심이 잘 설명된 경전입니다. 견성과 그 이후의 길에 대하여 윤홍식 대표가 쉽게 설명을 해 줍니다.

 

이 강의를 공부한 후에 다른 강의들을 공부하시면 전반적인 얼개가 이해가 되었기 때문에 학문의 진도가 더 빠르게 나아가실 수 있습니다. 잘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강의자료

견성콘서트#3 대승기신론.pdf

 

 


7일차. 출입식념경 

출입식념경은 초기불교의 핵심적인 사상인 열반에 이르는 방법이 가장 잘 설명된 경전입니다.

 

윤홍식 대표는 이 강의를 통해서 초기불교에서부터 대승불교까지 전체를 깊이있게 설명을 합니다. 이 강의를 통해서 여러분은 초기불교의 핵심인 열반에 이르는 길과 왜 초기불교에서 대승불교가 나오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불교학 개론 같은 강의입니다. 


강의자료

출입식념경.pdf


[출처: http://hongikhd.tistory.com/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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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의 불교론


니시카와 류우항 편역

번역 : 엘토포

 

 

부처의 니르마나카야(應身) 

불교의 영적 전통은 고타마 붓다에게서 정점을 이루었다. 부처는 그때까지 수많은 윤회전생을 되풀이해온 존재이다. 기원전 6세기의 육화는 매우 의미 깊은 것이었다. 그 육화를 통해서 고타마는 비로소 부처가 된 것이다. 그 이전에 그는 보살, 즉 위대한 인류의 지도자였다.

 

수천 년에 걸쳐서 사랑과 자비를 고차의 영적 영역에서 인간 가운데로 흘려보내는 임무를 가진 존재가 훗날 인도에 부처로서 육화한 보살이다. 물질계에 있는 인간은 사랑과 자비를 자신 안에서 스스로 찾아낼 수 없었다. 보살들은 비의입문을 통해서 영적인 세계로 상승하여, 그곳에서 자비와 사랑의 가르침을 가지고 올 수 있었다.

 

기원전 6세기 보리수 아래에 좌정한 보살이 부처가 되었을 때, 지구 전체에 중요한 일이 일어났다. 그때 인간으로 살았던 부처 안에서 자비와 사랑의 가르침이 나타난 것이다. 자비와 사랑의 가르침을 상세히 말한 것이 팔정도이다. 부처가 자비와 사랑의 가르침을 자신 안에서 생생하게 인식함으로써 인류는 부처와 장래에 동일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여받았다. 그때 이래로 자비와 사랑의 가르침을 인식할 수 있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위대한 부처를 따라 팔정도를 실천하는 생활을 보냈다.

 

당시 부처가 체험한 것을 수많은 사람들이 체험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자비와 사랑의 가르침은 인류의 것이 된다. 지금으로부터 3천년까지 많은 사람들이 팔정도를 심혼의 능력으로 만들 정도로 성숙하고, 그 시점에서 자비와 사랑의 가르침은 인류의 것이 된다.

 

기원전 6세기, 부처는 자비와 사랑의 가르침을 인류에게 쏟아 부었다. 그 이래 자비와 사랑의 가르침은 인류 안에서 생생하게 작용하고 있다.

 

자비와 사랑의 가르침을 인류에게 가져오는 일을 사명으로 한 부처는 물질체를 버리고 떠난 뒤 어떻게 되었을까? 부처란 최후의 육화를 의미한다. 부처는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고타마로서 육화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때 이후로 부처가 된 보살에게는 물질체에 육화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에테르까지 육화하는 것이 가능할 뿐이다. 영시만이 이 부처를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물질체를 갖지 않는 모습을 니르마나카야(應身)라고 부른다. 니르마나카야 안에서 과거 보살로서 받은 사명을 계속해나가는 것이다. 그리스도 사건은 니르마나카야 안에서 활동한 부처에 의해서 준비되었다.

 

나사렛에서 살고 있던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라고 하는 아이를 가졌다. 이 아이는 특별한 존재였다. 응신불(應身佛)은 ‘만약 내가 힘을 빌려주면 이 아이는 인류를 크게 전진시킬 가능성을 물질체 안에 숨기고 있다’고 말할 수 있었다. 니르마나카야를 하나의 닫힌 몸으로 표상해서는 안 된다. 단순한 힘에 불과했던 것이 특별한 존재가 된 것이 니르마나카야이다. 우리 안에 사고, 감정, 의지의 능력이 결합하고 있듯이 이 존재의 조직은 고차세계에서 어느 존재의 개아를 통해서 서로 맺어져있다. 영시자는 응신불에 속한 여러 존재들을 지각한다.

 

이와 같은 관계를 <누가복음서>의 저자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응신불이 예수에게로 내려온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이것을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을 때 영적세계로부터 천사 무리가 내려와 양치기들에게 무엇이 일어났는지 알렸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영시자는 예수 위를 떠다니는 응신불을 보았을 것이다. 나이가 든 현자 아시타가 이제 막 태어난 부처를 보고 이 보살은 부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는 인도의 전설이 있다. 이 현자는 자신이 이미 늙어서 그 아이가 부처가 되는 것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눈물을 흘렸다. 아시타는 재육화하여 다시 노인으로서 아이인 예수를 만난다. <누가복음서> 제2장에 기록되어있는 시므온이 바로 그이다. 신전에서 예수를 만나 보살이 부처가 된 것을 보고 ‘주여, 이제 이 종이 평화롭게 가게 해주십시오. 나의 눈은 당신의 구세주를 보았습니다’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아시타=시므온은 과거에 볼 수 없었던 것을 5백년 후에 본 것이다.

-《복음서의 빛으로 비춘 인류생성의 심오한 비밀》 중에서

 


보살 (1905년 10월 1일, 베를린)  

지상의 모든 경험을 받아들이고 모든 일들에 대해서 그 경험을 어떻게 이용할지를 알고 있으며, 창조자가 될 수 있는 자를 보살(보디삿트바)이라고 부른다. 보디, 지구의 붓디를 충분히 자신 안에 받아들인 인간이다.

창조할 수 있는 자가 되기 위해서 지구의 모든 앎을 자신 안에 받아들인 뒤에야 인간은 비로소 보살이 된다. 예를 들면 부처나 조로아스터는 보살이었다.

첫 번째 튀어 오름(카마)이 힘으로서 화성 위에서 발견된다. 그것은 인간이 육화하기 직전에 인간에게 덧붙여진다. 두 번째 튀어 오름(마나스)이 수성에서 아틀란티스의 제5아인종, 원 셈인에게 내려왔다. 이 새로운 추진력은 보다 고차 존재들, 여러 혹성의 응신(니르마나카야)을 통해서 지상에 가져오게 되었다. 그 존재들은 화성에서 카마를 가져오고, 수성에서 마나스를 가져와 덧붙였다. 응신(應身)들은 보살보다 한 단계 고차존재이다. 보살은 끊임없이 진화를 제어할 수 있다. 하지만 보살은 알지 못하는 것을 가져오는 일은 할 수 없다. 그와 같은 것을 할 수 있는 존재는 응신들 뿐이다. 응신들 보다 한 단계 위에 피트리라고 불리는 존재들이 서있다.

일곱 단계의 존재들이 있는 것이다. 첫 번째로 신들, 두 번째 피트리, 세 번째 응신, 네 번째 보살, 다섯 번째 순수한 인간, 여섯 번째 인간, 일곱 번째 사대원소존재가 있다.

-《비의의 기본요소》중에서

 

 

부처와 보탄 (1908년 8월 14일, 슈투트가르트) 

보통 인간은 고대의 불분명한 의식 가운데서 천사를 지각했다.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천사는 그리스인이 제우스 안에서, 게르만인이 보탄 안에서 신성으로 간주한 존재이다.

보탄은 과거 비의입문자로서 어느 인체 안에서 살면서 신성한 비밀의식에서 가르침을 펼쳤다. 보탄은 충분히 깊게 지상으로 내려오지 못한 채, 그 인간그룹 안으로 육화할 수 없었다. 그 인간그룹은 진화로부터 뒤쳐졌고, 그 때문에 물질계를 무가치한 것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물질계를 가치 있는 신성의 표현으로 보지 않고 번뇌의 장소, 고통의 장소로 보았다. 그들은 물질계로부터 물러나는 것만이 진정한 지복이라고 고찰하고 있었다. 이 보탄의 개체는 실제로 게르만 민족의 비밀의식 가운데서 가르침을 폈다. 이 개체는 훗날 같은 사명을 위해 부처로 다시 나타났다. 이 세계와 고차세계의 관계를 중계했던 부처라고 하는 개체와 과거 유럽에 존재하면서 북구에서 보탄이라고 하는 이름으로 기억되는 개체는 다른 존재가 아니다.

-《우주・지구・인간》중에서



부처의 사인  (1908년 8월 16일, 슈투트가르트) 

「부처가 돼지고기를 너무 많이 먹어서 죽었다고 하는 것을 말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동양학자는 부처의 생애를 올바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와 같은 기술로부터 평범한 것만을 이해하는 사람은 그리스도비교(秘敎)의 관점에서 아무것도 이해하고 있지 않다고 반론할 수 있다. 그 기술은 부처가 동시대인들을 어떻게 마주하고 있었는지를 나타내는 이미지이다. 부처는 바라문교의 신성한 비밀을 너무 많이 세상에 전했다. 너무 많은 신비학을 세상에 전했기 때문에 부처는 죽은 것이다. 감추어진 것을 전하는 자가 죽음을 맞이하듯, 부처는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그것을 이와 같은 이미지로 말하고 있다.

선정불(禪定佛)로 판단되는 존재는 바로 역사상 실존했던 부처의 에테르체, 신들에 의해 붙들린 에테르체, 보탄의 개체에 의해 붙들린 에체르체이다.

-《우주・지구・인간》중에서

 

 

보탄과 부처 (1908년 9월 12일, 라이프찌히) 

육안으로는 아틀란티스인의 신체를 어느 정도까지 밖에 볼 수 없다. 하지만 에테르체 안까지만 육화하는 존재도 있었다. 대기가 수증기로 가득했던 당시 어떤 존재가 육화했다. 인간이 물과 안개로 가득한 대기권에서 살고 있던 당시 아직 육화할 수 있는 존재가 있었던 것이다. 그 존재가 훗날의 보탄이다.「인간이 이 광액체(光液體) 물질에 육화한다면 나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보탄은 생각했다.

이와 같은 존재가 인간의 모습을 띄고 물질계에 걸음을 내딛었다. 하지만 지구가 경화되어 인간도 경화된 모습을 취하게 되자,「나는 이러한 단단한 물질 속으로 내려가지 못한다.」고 보탄은 생각했다.

보탄은 지상에서 떨어진 비가시적인 세계에 머물렀다.

물질체・에테르체・아스트랄체를 정화하여 고차존재를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이 될 때까지 진화를 이룬 인간이 재육화하는 일이 있다. 그 같은 식으로 부처는 보탄을 받아들일 그릇이 되었다. 게르만 신화에서 보탄이라고 부른 존재가 부처로서 다시 나타났다.

때문에 보탄의 가르침이 다시 나타났을 때 그것은 물질계를 아주 조금 밖에 고려하지 않은, 물질계는 고통의 장소이고 물질계로부터 해방이 의미 있는 것이라는 가르침이었다. 부처 안에서 보탄 존재가 많이 말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보탄의 가르침을 가장 깊이 이해한 것은 아틀란티스에서 늦게 나온 사람들이었다.

-《이집트신화와 밀의》에서 



부처와 보살과 선정불 (1909년 4월 16일, 뒤셀도르프) 

레무리아 시대에 인격의 신들이 인간 존재를 통해서 말하고, 아틀란티스 시대에는 대천사들이 말하고, 후 아틀란티스 시대에는 천사들이 말하고 있다.

외견상으로는 인간이라도 물질체에 이르기까지 자신 내부에 인격의 신들을 짊어진 인물을 동양에서는 선정불(禪定佛)이라고 부르고 있다. 선정불이라고 하는 것은 인격의 신들이 물질체까지 침투한 사람을 가리키는 명칭이다. 에테르체까지 대천사가 침투한 인물은 보살이라고 불린다. 그리고 천사가 물질체・에테르체・아스트랄체를 관통한 존재를 인간―부처라고 부른다. 선정불・보살・부처라고 하는 세 가지 위계가 있는 것이다.

동양에서는 한 명의 부처뿐만 아니라 많은 부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와 같은 부처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지상을 걷는 부처의 배후에 보살, 그리고 선정불이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예를 들면 선정불과 보살이 물질체에 침투할 정도까지 하강하지 않은 채 보살이 에테르체에 침투하는 정도까지만 하강하는 것도 가능하다. 물질체에 침투할 정도까지 가지 않고 에테르체에 영감을 부여하는 것에 머무르는 존재를 추정해볼 수 있다. 에테르체 안에서만 충현한 보살은 육안으로 볼 수 없다. 그와 같은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보살들이 존재한다. 그러한 보살은 고차존재로서 인간―부처에게 특별한 영감을 부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천사에 의해서 영감을 받음과 동시에 에테르체 안에 대천사로부터 영감을 받는 인간―부처가 있는 것이다.

-《물질계에서 신령존재의 반영》 중에서



부처의 탄생 (1909년 6월 25일, 카셀) 

부처가 인도에 출현했던 시대를 다루어보자. 당시는 오늘날과 같지 않았다. 유럽에서는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오늘날 부처와 같은 존재가 출현한다고 해도 특별히 존경받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부처의 시대에는 달랐다. 당시는 많은 사람들이 부처의 탄생에서 다른 사람의 탄생과는 전혀 다른 일이 일어난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사건을 깊이 이해한 동양의 문헌은 부처의 탄생을 기품 있는 문체로 이야기하고 있다. ‘위대한 어머니의 모상’인 마야부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그녀가 힘 있는 존재를 세상에 가져오리라 예언된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존재의 탄생은 세상에게 있어서 일종의 조산(早産)이었다.


의미 있는 존재를 세상에 보내기 위한 수단으로써 하늘은 그 존재를 종종 조산(早産)시키는 일이 있다. 인간 안에 고차의 정신존재가 육화해야할 때, 시기가 무르익은 것처럼 철저하게 물질과 결합하지는 않는 것이다.


동양의 중요한 문헌에는 부처가 태어난 순간, 부처는 빛났고, 곧 눈을 뜨고 동서남북을 보고 일곱 걸음 떼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일곱 걸음 뗀 것은 대지에 각인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보살에서 부처가 될 인생이다. 이 지상에서 나의 마지막 육화이다”라고 말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오늘날의 유물론적인 사람들에게는 이 이야기가 기묘하게 여겨질 것이다. 정신적인 눈으로 모든 일을 볼 수 있는 사람에게 이 이야기는 진실이다. 당시는 자연적(천성적)인 영시력으로 부처와 함께 무엇이 탄생했는지를 영적으로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오늘날 사람은 지금 말한 동양의 문헌에서 전하는 부처의 이야기를 기묘한 것으로, 전설이나 신화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리를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은 여기에 정신세계에 대한 진실이 숨겨져 있음을 알고 있다. 부처의 탄생과 같은 사건은 개인이라는 좁은 테두리 안에서만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세계에 대해서도 의미가 있고, 세계에 대해서도 정신적인 힘을 발산하는 법이다. 세계가 정신적인 힘을 받아들일 시대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부처의 탄생과 함께 치유와 화해의 힘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았다.

-《요한복음서와 공관복음서》에서



자비와 사랑의 가르침 (1909.10.18 베를린) 

나단계 소년 예수로 나타난 인물, 즉 본래의 나사렛 예수 위에서 그 아이의 오라로 나타난 부처의 니르마나카야를 볼 수 있다. 니르마나카야는 석가가 부처가 된 마지막 육화 이후에 입은 형태이다.

보살은 정해진 육화 아래에서 부처가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 존재는 더 이상 지상의 육체로 육화할 필요가 없는 진화단계에 이른다. 더 이상 육화할 필요가 없어진다고 하는 것은 커다란 성과이다.


그 육화이후 보살・부처는 더 이상 지상적・육체적인 육화를 하지 않는다. 지상적・육체적인 육화를 하지 않고 에테르체(생명체)를 가장 낮은 신체적 본성으로서 육화할 뿐이다. 이 개체는 이후에도 에테르체 안으로 육화했다. 부처는 이제 물질체로 육화하지 않고 에테르체까지만 육화하는 것이다.


부처와 같은 개체가 육화하는 에테르체는 닫쳐진 단일한 공간이 아닌 관련이 없는 수많은 부분들로 되어있다.

그와 같은 보살・부처가 에테르체에 육화하여 다시 나타날 때는 한 무리의 존재라고 하는 모양으로 눈에 보인다. 「누가복음서」의 저자가 들판의 양치기들에게 나타난 천사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에서 이러한 한 무리의 존재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부처의 니르마나카야라고 부르는 이 에테르체가 나단계의 어린 예수 위에 떠다니고 있었다. 이 니르마나카야가 영감을 부여하고 부처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교 안에 쏟아 부었다.


이것이 「누가복음서」안에서 부처의 니르마나카야인 천사무리로 쓰여 있다.

보살・부처 안에 육화한 개체는 자비와 사랑의 가르침을 시대에서 시대로 전하는 과제를 가지고 있었다.

보살이 부처로서 존재했던 때 보살을 통해서 사랑에 관한 내용이 암시적으로 불어넣어졌다. 그로부터 인간이 자비와 사랑의 가르침을 점차 획득해나갈 수 있는 시대, 이른바 팔정도의 가르침을 획득해나갈 수 있는 시대가 찾아왔다. 과거 위로부터 인간에게 주어져야만 했던 것이 부처가 지상에서 활동했을 때 처음으로 가르침으로서 주어진 것이다.


자비와 사랑의 가르침을 가져오는 것이 부처의 사명이었다. 그리스도는 사랑의 힘이다.

이와 같은 식으로 사랑의 힘이 아래로 흘러 지상으로 내려온 태양 존재를 통해서 드러날 가능성이 주어졌고, 자비와 사랑의 가르침이 부처를 통해서 전해질 가능성이 주어졌다.


부처가 가져온 것을 위대한 법,「다르마」라고 부른 것은 올바른 일이었다. 부처는 법을 혼이 그 법을 인식하고, 인간이 그 법을 자신의 심혼에서 발견할 수 있는 형태로 가져왔다. 모세는 법을 전혀 다른 방법으로 가져왔다. 모세는 법을 명령으로서 가져온 것이다.


부처는「그대들은 자신의 혼 깊숙한 곳에서 내가 말한 법을 찾아낼 것이다.」라고 말했다. 모세는「하느님의 법이 이를 것이다.」라고 말한다.

인간이 앞으로 나아갔을 때 보살・부처는 이 가르침을 가져올 수 있었다.

-《복음서의 빛으로 비춘 인류생성의 심오한 비밀》 중에서


 

에세네파 교단에 대한 부처의 의견 (1913년 10월 5일, 오슬로) 

에세네파 교단 사람들과 이념을 주고받은 결과 예수에게 부처나 나타났다. 그리고 예수와 부처 사이에 영적인 대화가 이루어졌다. 부처는 예수에게「만약 내 가르침이 내가 설파한 그대로 완전히 실현된다면, 사람들은 틀림없이 모두 에세네파 교단 사람들 처럼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 속세로부터 벗어난 청정한 승가를 만든 것은 잘못이었다. 에세네파 교단 사람들도 세간을 등짐으로써 정신적인 진화를 이루었다. 그들은 깨끗해졌지만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고통 속에 있다. 속세의 사람들을 희생해서 자신이 꺠끗해져서는 안 된다. 내가 설파한 가르침을 실현한다면, 에세네파 교단처럼 청정해진 사람들이 출현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제5복음서》중에서


 

에세네파 교단에서 예수와 부처 (1913년 11월 4일, 베를린) 

에세네파 교단의 행동 방식은 부처가 세상에 가져다 준 것과 매우 닮아있다. 예수는 부처가 눈앞에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 부처는「내가 인류에게 전해준 길로는 모든 사람이 신적・영적 세계와의 연관성에 이를 수 없다. 내가 설파한 가르침을 이해하고 체험하기 위해서는 세상으로부터 격리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보시하는 사람이 없다면 부처와 제자들은 보시를 받을 수 없다. 부처의 가르침은 어떠한 상황에 있는 사람이라도 육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제5복음서》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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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윌버 Ken Wilber의 이 책은 암투병의 아내와 함께 했던 헌신적인 노력의 과정과 감동적인 사랑에 대한 글이자 심리치료 및 영성치유에 대한 보고서이기도 하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용기 Grace and Grit                    

발표자: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조옥경 교수

 

• 켄윌버에 대한 간단한 소개

자연과학을 전공하던 윌버는 어느 날 우연히 노자의 도덕경을 읽고 큰 충격을 받으면서 동양사상에 심취하게 된다. 그 후 그는 동서양의 정신문화에 대한 수많은 서적을 섭렵하면서 이들을 통합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가운데 개인적인 수행을 꾸준히 지어나갔다. 그는 동서양의 심리학을 통합한 사람으로 확고한 위치를 굳히고 있으며, 현재 가장 널리 읽히고 가장 영향력 있는 미국 철학자의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다. 또 그는 진정한 세계철학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이 책에서 윌버는 자신은 판디트(학자)이지 구루(깨달은 영적인 스승)는 아니라고 하면서 사람들이 자신을 구루로 오인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그는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으며 은둔지에서 명상과 독서, 저술에 집중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 책에서 독일의 한 편집자가 왜 인터뷰에 응하지 않느냐고 질문하자 인터뷰를 하면 마음이 산란해지기 때문이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집필이라고 간단하게 대답하고 있다. 


이 책은 윌버가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 트레야와 보낸 암과의 눈물겨운 투병과정을 그리고 있다. 윌버는 유방암에 걸린 아내를 5년 동안 극진히 보살폈는데 그 과정에서 윌버가 보인 환자를 돌보는 성실한 노력, 아내를 향한 식지 않는 사랑, 인간적인 따뜻함과 섬세함이 이 책에 감동적이고도 생동감 있게 그려져 있다. 또 트레야의 죽음을 통해 우아함과 용기, 존재와 행동, 열정과 평정심이라는 존재의 양극성이 어떻게 두 부부의 삶 속에서 조화롭게 통합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트레야는 윌버의 영적 성장의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사람이다. 그는 인간의식의 발달과정에 대해 이론적으로는 거의 완벽한 체계를 갖추고 있었지만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데는 초보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 그에게 있어서 트레야와의 만남,  트레야의 투병과정, 트레야의 죽음이라는 개인적인 시련은 이를 삶 속에서 실천하는 기회를 마련하였고 이를 통해 윌버의 경험과 사고의 지평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암을 치료하려고 두 부부가 성실하고 진지하게 노력하는 과정은 어떻게 통합적인 시각을 가지고 병을 다루는지, 어떻게 우아함을 유지한 채 용기를 잃지 않고 병마와 싸우는지, 어떻게 병을 미워하지 않고 삶의 한 모습으로 감싸 안는지, 어떻게 죽음이 삶의 끝이 아니라 삶의 완성으로 인도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윌버는 아내의 죽음을 통해 육체적 죽음은 에고의 마지막 소멸이며 영혼을 영원히 해방시키는 관문임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목격하였다. 또 아내를 전심으로 간호하면서 진정한 수행은 자신을 없애고 타인에게 오롯이 헌신하는 가운데 완성된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였다.



1. 잠시의 포옹, 잠시의 꿈  

윌버와 트레야는 트랜스퍼스널 심리학의 대표적인 인물인 로저 월쉬와 프란시스 본의 집에서 1983년 여름에 만났다. 트레야가 윌버를 처음 만났을 때의 인상은 살아있는 윌버의 생생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때까지 나는 1m 93cm의 키에 머나 먼 혹성에서 온 것 같은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이며 초월론자와 결혼하게 되리라고는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 그는 아주 특이한 겉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매우 남다른 기질을 지닌 사람이었다. 마음은 또 어찌나 따사로운지! 게다가 빛나는 재능도 갖추고 있었다. 과거에 내가 사귀었던 다른 남자들의 경우, 마음이 따뜻한 사람에게는 재능이 없었고 재능이 넘치는 사람에게는 따뜻한 마음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항상 그 두 가지를 모두 갖춘 남자를 찾았다. (pp. 23) 


첫 만남에서 서로가 가볍게 포옹을 했을 때 두 사람은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된다. 

“그녀를 감싸 안았을 때, 나는 우리 두 사람 사이의 분리감이나 거리감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우유와 물이 섞여 혼연일체가 되는 듯 말이다. 과거 여러 생 동안 테리와 함께 살았던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pp. 29) 


그 날 밤 두 사람은 거의 똑같은 시간에 쿤달리니 Kundalini라고 불리는 영적인 에너지가 깨어나는 것을 경험하는데 이런 경험은 인생의 중요한 사건이나 만남이 있을 때 흔히 일어난다. 보통 사람은 잘 경험하지 못하지만 영혼이 순수하거나 이미 오랫동안 영적인 수행을 해 온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현상이다. 그 때 트레야는 나름대로 이런저런 수행을 하고 있었고 윌버는 15년 동안 명상을 해오고 있었다. 그 날 이후 그들은 거의 서로 떨어지지 않고 같이 지내게 된다. 


“그 날 후로 우리는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잠시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상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서로 알고 있었다. 우리는 거의 함께 있었다. 잠시라도 헤어져 있는 것을 못 견뎌했다.”(pp. 33) 

처음 만난 지 열흘이 지난 후에 윌버는 테리에게 청혼을 했고 테리는 청혼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테리는 “만약 당신이 청혼하지 않았다면 내가 당신에게 했을 거예요.”(pp. 40)라고 윌버에게 말한다 

     


2. 고통을 안고 찾아든 행복

그 후 넉 달이 지나 그들은 결혼식을 올린다. 이 때 윌버는 아인슈타인, 슈뢰딩거, 하이젠베르크와 같은 현대물리학의 위대한 선구자들에 관한 책 “양자적 물음 Quantum Question"을 집필하고 있었다. 그는 현대물리학의 성과와 신비주의를 비교하면서 왜 위대한 물리학자들은 신비주의자인지를 탐구하면서 그들은 물리학을 넘어선 메타물리학으로서의 신비주의를 원했음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현대물리학과 신비주의를 혼동해서는 안 되는데 이 둘은 존재의 다른 수준을 다루고 있을 뿐 신비주의를 물리학으로 환원시켜도 안 되며, 물리학을 신비주의로 격상시켜서도 안 된다는 점을 경고하였다. 윌버는 다음과 같은 표현으로 이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물리학으로 신비주의를 증명한다고 말하는 것은 마치 개의 꼬리로 개를 증명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pp. 49) 


결혼식전 건강진단을 받기위해 병원에 간 트레야는 가슴에 응어리를 발견하였고, 안심시키는 의사의 말에도 불구하고 결혼한 지 10일 후에 그 응어리가 암으로 판명되어 두 사람은 행복의 절정에서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게 된다. 암 진단을 받은 날 트레야는 다음과 같이 일기에 쓰고 있다. 

“밤이 깊었다. 켄이 차를 만들기 위해 부엌으로 갔다. 세상은 고요하게 잠들어 있었다. 눈물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절망의 눈물이었다. 이것은 현실이고 나에게 일어난 일이다. 켄이 부엌에서 돌아와 나를 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 옆에 앉더니 두 팔로 나를 꼭 안아주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어둠을 응시했다.” (pp. 71) 

 


3장. 의미에 속박되어 

아내의 암에 직면한 윌버는 병의 의미에 대해 사색한다. 그는 질환(illness)과 병(sickness)를 구분하여 질환은 가치중립적인 것으로써 좋거나 나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질환이 병으로 되면 사회적인 가치가 부과되어 두려움, 희망, 신화, 이야기, 가치, 그리고 특정 사회가 질환에 부여하는 의미에 부딪히게 된다. 이때 환자는 의학적 질환 뿐 아니라 문화적. 사회적 의미가 부여된 병을 다루어야 하는 이중의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왜 질병에 걸렸는가, 하필 왜 나인가? 이 일이 내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가? 내가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가? 어떻게 이것이 생겼는가? 등등 자신의 질환에 의미를 부여하는데 그 의미를 찾기 위해서 환자는 사회에 의지하게 된다. 그러므로 어떤 질병에 걸릴 때 마다 우리는 사회가 만들어놓은 수많은 의미와 판정을 통해서 자신들의 병을 이해하게 되는데 사회적 의미를 지닌 병은 지나치게 자기 완성적이며 독선적인 모습을 띤다. “왜 하필 나인가? 왜 나는 병에 걸렸나?” “당신이 나쁜 짓을 했기 때문이야.” “당신은 내가 나쁜 짓을 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지?” “당신이 병에 걸렸기 때문이지.”라는 식이다. 


이렇게 질환과 병으로 구분한 윌버는 다문화적 시각을 갖고 각종 문화나 사회가 질병에 어떤 의미를 부여했는지를 탐색하였다. 

1) 기독교 원리주의자, 2) 뉴에이지 3) 서양의학 4) 업(까르마) 5) 심리학 6) 그노시스파 7) 실존주의 8) 전체론적 의학 9) 마술 10) 불교 11) 과학 (p 83-85) 


윌버는 인간에게는 육체적, 감정적, 정신적, 실존적, 영적 차원이 있다고 강조하면서 질병을 이해하고 치료할 때 이들 각 차원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암을 예로 들면 

1) 육체적 차원 : 식사, 환경유해물질, 방사능, 흡연, 유전적 요인 

2) 감정적 용인 : 우울증, 엄격한 자기억제, 극도의 독립심 

3) 정신적 원인 : 자기비판, 비관적 세계관, 우울증 

4) 실존적 원인 : 죽음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 

5) 영적인 원인 : 내면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 


윌버부부는 암의 의미를 다루는 방법을 바꿀 필요가 있음을 느끼면서 “암과 즐겁게 지내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4장. 균형의 문제 

윌버와 트레야는 정통의학과 대체의학(p82)에 관한 정보와 서적들을 모두 섭렵해서 의지할 수 있는 유용한 사실들을 고르기 시작했다. 대체의학과 전체론적 의학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두 사람은 먼저 정통적인 서양의학을 치료를 받은 후에 전체론적 치료를 보조방법으로 이용하면서 두 치료법을 적절하게 조화시켜나갈 결심을 한다. 


질병의 심리적 요인을 다루어 가던 두 사람은 ‘존재(Being)'와 ’행동(Doing)"의 대립이라는 고전적인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 존재(여성성) : 현 상태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사람을 능력으로 판단하지 않고  그대로 수용하기, 관계성, 포괄성, 포용성, 공감, 배려의 가치 

• 행동(남성성) : 생산하고, 만들고, 성취하는 것, 공격적, 경쟁적, 계층적. 미래지향적, 규칙과 판단에 의존. 현 상태에 변화를 주어 ‘더 나은’ 것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하기. 


여성성과 남성성의 대립이라는 이슈에 직면한 트레야는 자신이 행동/남성성을 과대평가해온 나머지 자신의 여성적인 존재의 부분을 소홀히 해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녀는 자신의 원래 이름인 테리가 남성적인 인상을 주는 이름이라는 사실을 인식한 후에 자신의 여성성을 오롯이 수용하면서 트레야로 자신의 이름을 바꾸게 된다.


 • 디먼(daemon)과 데몬(demon)의 문제 

1) 디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내적인 신을 말하며 한 개인이 그를 잘 따라서 행동하면 그 사람의 수호령이 되어, 그가 하고 있는 일에 영감을 불어넣어 주지만,  거기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데몬이 되어버려, 성스러운 에너지와 재능이 자기 파괴적인 모습으로 변화한다. 지옥의 불꽃은 거부된 신의 사랑이며, 악마는 천사가 타락한 모습이다. 윌버는 자신의 디먼을 이미 찾았음을 트레야에게 고백한다. 

“내 나이 23살, 내 집을 찾아와 나 자신을 발견했고, 내 목적을 찾았으며, 나의 신을 찾았다. 그 후 나는 이 사실을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pp. 100) 


트레야는 자신의 디먼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는 사실로 고통을 받았으며 암 선고를 받은 후 줄곧 이를 찾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간다. 그녀는 “기적수업”에서 강조하는 ‘신이란 내 용서 안에 있는 사랑’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용서와 사랑을 통해 자신과 타인을 수용할 수 있는 태도를 기른다. 이런 트레야의 태도를 윌버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행동과 존재, 저항하는 것과 열어놓은 것, 싸우는 것과 항복하는 것, 원하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 그들 간의 접점을 찾아내는 것은 암에 직면한 테리의 중심과제가 되었다.”(pp. 105) 


이런 문제는 다음의 기도문(미국을 대표하는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 Reinhold Niebuhr의 기도문?)에서 잘 드러나 있다 

신이여,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평온과 바꿔야 할 것을 바꾸는 용기와 그리고 이 두 가지의 차이를 알 수 있는 지혜를 주십시오


그 당시 윌버는 “의식의 변용 Transformation of consciousness"를 집필했고 뉴욕타임즈는 ‘마침내 가장 중요하고 학술적인 동서양 심리학의 통합적 결정판이 나왔다”며 호평을 하였다.    

 


5. 내적인 우주 

• 명상이란 무엇인가? 

“명상은 긴장을 풀기 위한 방법이라고 한다. 또 깨어있음(awareness)을 훈련하고 그것을 강화하는 방법, 자신에게 의식을 집중해 초점을 맞추는 방법, 언어적 사유를 멈추고 몸과 마음을 쉬게 하는 방법, 중추신경을 가라앉히는 방법, 스트레스를 없애고 자부심을 기르며 불안감을 줄이고 우울함을 완화하는 방법이라도 한다. 

이 모든 말이 사실이다. ... 그러나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명상자체는 영적인 훈련이라는 점이다....  영혼의 내면을 향해, 궁극적으로는 최고의 신성과 합일되는 길을 찾는 방법이다... 명상은 영적인 것이지 종교적인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 명상은 영적이고, 기도는 종교적이다.” (pp. 122-123)


• 영원의 철학에 대한 트레야와 윌버의 대화 

영원의 철학 : 세계의 위대한 영적 스승, 철학자, 사색가, 과학자들이 채택한 세계관으로 동서고금을 막론한 모든 문화에서 나타나기 때문에 보편적이라고 할 수 있다. 

(1) 영적인 것은 존재한다 (2) 영적인 존재는 내면에서 발견된다 (3)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내면에 있는 영적인 존재를 이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죄와 분리와 이원론의 세계, 즉 타락과 무지의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4) 죄와 환상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방법, 해탈의 길이 존재한다. (5) 그 길을 끝까지 간다면 윤회, 혹은 깨달음, 내면의 영적 존재를 체험할 수 있고 종국엔 최상의 자유를 성취하게 된다. (6) 그것은 괴로움과 죄의 종식을 의미하는 것이다 (7) 따라서 살아 있는 모든 존재에 대해 자비심을 가지고 사회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pp. 127) 


윌버는 영원의 철학의 핵심은 “작은 자아”를 넘어서 “큰 자아”로 나아가는 데 있다고 하면서 이렇게 나아가는 방법으로 다음의 두 가지를 지적하고 있다. 

1. 자아를 무한히 확장해 나가는 방법 --. 지식(지혜)의 길, 자력의 길 

오로지 자신의 알아차림이나 집중력에 의지해서 자아를 투과한 보다 광대한 본성에 이르는 길 : 방법 - 위빠사나, 즈나나 요가 

‘나는 신이고, 보편적인 진리다’ 

2. 자아를 무로 축소해나가는 방법 -- 헌신(신앙)의 길, 타력의 길 

스승의 힘이나 신을 의지해 완전히 자신을 내맡기는 길 : 예 :기독교, 박티요가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신이여, 당신이 전부입니다’ 

(참고 : 트레야의 어린 시절의 경험. 이것은 트레야의 영적인 수준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pp. 141-142) 

 


6장. 심신탈락 

트레야는 10일 동안의 고엔카 위빠사나 수련을 다녀와서 알아차림의 의미를 깊이 체험한다. 

“고엔카는 말한다. 당신은 감각을 발명할 수 없다. 감각을 선택할 수 없다. 감각을 창조할 수 없다. 당신은 다만 지켜본다. 무상의 진리를 알았기 때문에 붙들지 않고 움직이는 것이다.”(pp. 150) 


이 수련을 하면서 트레야는 생각이나 감각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만으로 마음과 몸이 사라지는 체험을 한다. 윌버도 유사한 체험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도겐선사는 스승이 귓전에 ”심신탈락!“이라고 속삭였을 때 깨달았지. 당신이 말한 것처럼 분리된 심신을 자신이라고 여기는 그 생각이 떨어져나간 거요. 그것과 아주 비슷해요. 나도 그런 체험을 몇 번 했었고, 그 체험들은 아주 현실적이었소. 거기에 비하면 자아는 정말 실제적이지 않지.” (pp. 151쪽) 


심신탈락의 경험을 통해 진아 혹은 지켜보는 자를 일별할 수 있는데, 생각이나 이미지는 볼 수 있어도 이것들이 궁극적인 지켜보는 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통찰과 경험을 통해 자아는 하나의 대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고 이로써 개인적 자아에서 진정한 주체로, 진정한 자아, 진아인 비개인적인 지켜보는 자로 바뀌기 시작한다. 

“육체는 물질을 알아차리고, 마음은 육체를 알아차리지요. 영혼은 마음을 알아차리고, 그리고 영성은 영혼을 알아차린다오. 보다 높은 단계에 오를수록 알아차림은 더 많아질 수 밖에. 즉 보다 크고 넓은 정체성을 발견하게 되며 이러한 과정은 가장 높은 정체성과 보편적 알아차림, 이른바 ‘우주의식’에 이를 때까지 계속된다오.”(pp. 158) 

 


7장. 갑자기 뒤틀린 내 인생 

트레야와 윌버의 성실하고 다방면에 걸친 노력에도 불구하고 트레야의 암이 재발되고 4기의 악성 암세포임이 밝혀진다. 

“나는 더 이상 과거에 암환자였던 사람이 아니다. 이제는 암이 재발한 사람이 된 것이다. 따라서 나는 켄과 함께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집단, 다른 동료, 다른 통계, 다른 미래에 놓이게 되었다. 내 인생은 갑자기 뒤틀려버렸다.” (pp. 162) 


재발로 인한 유방절제 수술 후에 윌버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왠지 모르지만, 테리에게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우는 것이 부끄럽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만은 그 누구에게도 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 어느 때 보다 힘이 필요한 이 때, 마음이 약해지는 것이 무서웠던 것이다. 나는 빈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울었다... 테리가 불쌍하기 때문에, 안됐다는 생각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용기가 그만큼 자랑스럽기 때문에 나오는 눈물이었다. 그녀는 낙담하지 않고, 다만 당당하게 전진해 나갈 뿐이다. 나는 인간의 존엄성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리는 냉혹한 상황을 이겨내려는 그녀의 용기 때문에 눈물을 흘렸다.” (pp. 170) 


• 윌버와 트레야가 실행에 옮긴 대체의학과 전체론적 요법 : 175쪽 

유방을 절제한 후 온갖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트레야의 암은 가장 질나쁜 전이성 암으로 악화되었으며 그 치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을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된다. 

 


8장. 나는 누구인가? 

항암치료제인 레글란을 투여 받은 후의 강력한 히스타민 반응으로 트레야는 공황상태와 자살충동에 시달리게 된다. 이 때 두 부부는 “무경계 No Boundary"의 “보는 자” 연습을 집중적으로 하게 된다. (참고 pp. 189-190) 


“당신 안의 자신이라는 깊은 내적 감각은 당신의 기억도 생각도 아니고, 당신의 마음도 몸도 아니며, 당신의 환경이나 감정, 갈들이나 감각도 아니다. 이 모든 것들은 내적 자신에게 본질적인 영향을 주는 일 없이 변해왔고, 지금도 변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내적인 자신은 시간이 흘러도 영향을 받지 않고 남아있는 것으로 자아초월적인 <보는 자>이자 “진아”다.” (pp. 195) 

 


9장. 나르시스, 혹은 자기 수축 

윌버 부부는 타호 호수 근처에 거처를 마련하고 살면서 지옥과 같은 나날을 보내게 되는 데 이 때 그들은 인생에서 가장 중대한 위기의 순간을 맞는다. 이 시기는 암과 싸우는 두 부부 뿐 아니라 윌버 개인에게도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을 맞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 때 윌버는 몇 개월 동안 끊임없이 자살충동에 시달린다. 

“나는 타호 호수 남쪽의 파크가에 있는 앤디의 스포츠 용품점에 가서 총을 살 것이다. 이런 상태를 날려버리기 위해서, 정말이지 더 이상은 견딜 수 없다.” (pp. 210) 


윌버는 명상도 하지 못하고 거의 매일 술을 마시면서 심한 우울상태에 빠져드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마을에 창궐했던 이름모를 전염병 때문이었다. 윌버는 근육경련, 발작에 가까운 몸부림, 만성발열, 임파선 장애, 식은땀과 탈진증상으로 고통을 받게 된다. 그러나 그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1년 6개월 동안 전혀 집필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으며 명상을 통해 열려있는 순수의식과의 연결을 유지할 수도 없는 절망적이 상태였다. 윌버는 이것을 자기수축, 즉 자기모습에 절망적으로 빠져든 나르시스에 비유하고 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가장 단순하고 파괴적인 잘못은 내 고통을 테리 탓으로 돌리며 그녀를 비난한 것이었다. 나는 스스로 자신의 흥미를 구석에 박아둔 채 그녀를 돕는 길을 선택했으면서도, 저술이나 편집활동, 명상 시간을 잃는 것에 대해 테리를 비난했던 것이다. ... 이것이야말로 실존주의자가 말하는 ‘나쁜 신념’이다. 이것의 나쁜 점은 자신의 선택으로 생긴 책임을 회피한다는 데 있다” (pp. 213) 


이 때 트레야도 화학요법으로 인해 매우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었다. 

“화학요법의 가장 나쁜 면은 그것이 내 영혼에 독을 쏟아 붓는다는 점이다. 육체가 아니라, 정신적, 심리적, 그리고 영적으로 나를 해치고 있는 것처럼. 나는 너무도 지쳐서 전혀 자신을 조절할 수 없게 되었다.” (pp. 221) 


서로 심신이 탈진될 때로 탈진된 두 부부는 결국 위기의 정점을 맞게 되고 급기야 윌버는 난생 처음으로 여성에게 욕설을 퍼부으면서 손찌검을 하게 된다. 자신의 가장 사랑하는 여인을 때리고 만 것이다. (pp. 229-230) 

 


10장. 치유할 시간 

위기의 정점이 지나자 윌버부부는 자신들 만으로는 치유가 되지 않는다고 느끼고 로저 월쉬, 프란시스 본, 특히 세이무어 부어스틴의 도움을 받아 서로의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성실하게 노력하게 된다. 이 때 그들은 “기적수업”을 중심으로 ‘수용과 용서’라는 덕목을 배우고 실천하게 된다. (참고 pp. 235-236) 


“신은 내가 용서하는 사랑 속에 있다.” (기적수업의 문구) 

트레야는 자신의 일기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내 자신에게 치료할 시간을 주는 것. 개방적이고 조용한 공간이 지나가도록 그냥 내버려둔 채, 그곳에서 무엇이 나올까 그저 지켜보고 있다.” (pp. 239) 


• 두 사람이 어떤 방법으로 수행을 해 왔는가를 알 수 있는 부분 : (pp. 249) 

두 사람이 함께 모실 수 있는 스승을 찾던 중에 칼루 린포체를 만나게 된다. 그를 만나자마자 두 사람은 즉시 그 분이 자신들의 스승임을 한 눈에 알아보았다. (pp.250) 


• 윌버가 가타기리 선사 밑에서 견성을 했음을 알 수 있는 부분 : 

“아주 작은 경험이었소. ” 켄은 설명했다. 그 깨달음은 선사가 이런 말을 했을 때에 일어났다고 한다. “보는 자는 자아의 마지막 저항이다.” (pp. 252) 

 


11장. 심리치료와 영성 

서독에서 에디스 준젤이라고 하는 편집자가 윌버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자 망설이던 끝에 인터뷰에 응하게 된다. 

“모두가 저를 스승이나 구루 또는 선생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판디트는 될지언정 구루는 아닙니다. 실천에 관한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초보자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 15년간 고작 4번밖에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어요.” (pp. 234) 


에디스 준델과의 인터뷰를 통해 윌버는 심리치료와 영성의 관계를 자세하게 설명한다. 

•융과 조셉 켐벨의 문제점을 지적(pp. 226, 269, 270) 

• 윌버의 의식의 9단계를 간단하게 설명 (pp. 272-276) 

• 전초오류에 대한 설명 (pp. 279-) 

• 각 단계 마다 일어날 수 있는 심리적 장애에 대한 치료법 설명(pp. 280-291) 

• 의식의 스펙트럼 각 단계에 고유한 세계관에 대한 설명(pp. 294-296) 


• 명상과 심리치료의 관계 

심리치료는 1-6단계까지의 발달장애로 인해 생긴 심리적 장애를 치료할 수는 있지만 7-9단계까지의 발달을 도와주거나,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장애를 적절하게 다룰 수 없다. 그러므로 인간의 총체적인 발달을 위해서는 심리치료와 명상이 서로 보완되어야 한다. 


“대체로 명상과 심리치료는 영혼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는 같아도, 목적으로 삼는 단계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선이 반드시 노이로제를 제거한다고 할 수 없고, 또 그런 목적을 위해서 고안된 기법도 아닙니다. 더욱이 아무리 보는 자의 감각을 발달시켜도 여전히 노이로제를 갖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 삶의 감정적인 명이 망가지고 있다 해도, 선은 그것을 근본적으로 치료해주지 못합니다. 선은 그런 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 선은 노이로제와 잘 지내는 데는 많은 도움이 되었지만, 그것을 근본적으로 치료하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pp. 291-292) 

“프로이드는 붓다가 아니고, 붓다 또한 프로이드가 아닙니다.” (pp. 293) 

 


12장. 다른 목소리로 

마침내 트레야는 화학요법의 스트레스로 인해 당뇨병에 걸리고 만다. 설상가상으로 덮친 당뇨병에도 불구하고 트레야는 자신의 영적 진화를 위한 여정을 계속한다. 이 때 트레야는 남성의 영성에 대응하는 여성만의 영성 계발의 필요성을 절감하며 자신과 뜻을 같이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작은 모임을 시작한다. 


• 여성의 영성에 관한 주제 : (pp. 309-312) 

그 모임에서 트레야는 자신들이 원하는 암환자 지원센터(CSC; Cancer Support Community)를 구체적으로 구상하고 이를 실행에 옮긴다. 

“우리는 여성적인 접근을 통해, 암과 싸우거나 암에서 회복하는 것을 강조하기보다 전반적인 삶의 질을 강조할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암을 치료하지 못한 것이 실패나 패배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pp. 318) 

이 때 트레야는 꿈속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일, 자신의 디먼을 찾는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여자, 예술가, 장인, 행위자가 아니라 제조자, 아름다운 것을 창조하는 사람, 작품의 결과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커다란 기쁨을 발견하는 사람.” (pp. 320) 

“나의 것은 조용하고, 형태가 없으며, 부드럽다. 배경적이고, 여성적이며, 보이지 않는다. 몸과 관련된, 대지와 관련된 그것. 그러나 내게는 더욱 실제적인!” (pp. 323) 

 


13장. 에스트레야 

암이 다시 재발되어 뻐, 뇌, 폐로의 전이 가능성이 아주 높아진 트레야는 자신의 낡은 남성적 자아인 테리를 벗어버리고 새로운 자아인 트레야가 태어났음을 느꼈다. 이 때부터 테리는 자신을 트레야로 불러줄 것을 요청했으며 이를 새로운 부활로 여기게 되었다. 

“남자가 되려고 애쓰지 말자. 나 자신을 테리라고 부르지 말자. 트레야가 되기. 장남에 대한 집착을 놓아버리기. 그날 밤 나는 경이로움과 흥분에 가득 찬 꿈을 꾸었다. 기억에 남는 유일한 말은 “안녕, 내 이름은 트레야야.”였다.” (pp. 333) 


윌버부부는 델마에서 심령치유사 크리스를 만났고 이 경험을 통해 테리에서 트레야로의 전환이 완성되었다. 크리스가 실시한 심령치유(기 치료)에서 윌버의 기 상태를 읽을 수 있다. 

“한동안 켄의 머리를 진찰하던 그녀가 갑자기 이상하다는 말을 했다. 뇌의 양측에 각각 10개의 통로가 있는데 대부분 사람들에겐 통로가 2-3개 정도이며 아무리 많아야 4개란다. ... 인간 뇌의 양측이 10개까지 열리는 것은 2000년에 한 번 뿐인 일이며, 그녀 이전의 마지막 인간이 바로 붓다라고 했다. 그런데 켄의 뇌에는 한쪽에 10개 다른 쪽엔 7개의 통로가 있다는 것이다.” (pp. 343-344) 


• 심령치유에 대한 윌버의 태도를 볼 수 있는 부분. 

“나는 그런 종류의 에너지가 있고 때로는 그 에너지의 효과가 꽤 크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소. 단지 나는 그들의 이야기나 이론에 의문을 가질 뿐이오. 그들이 하는 일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말에 의문이 생긴다고. 정말 재미있는 것은 그들의 이론들은 보통 물리학에서 따온 어설픈 이론들로 지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오. 나는 그런 일에 반발할 뿐이오.” (pp. 341) 


심령치유에 대해서는 냉소적인 태도를 보였던 윌버는 크리스에게는 상당한 호감을 갖게 된다. 

“그녀의 끊임없는 황당한 이야기는 트레야와 내가 모든 걸 더 가볍게 보게 만들었다. 크리스의 주변에서는 진실이 모든 의미를 상실한다. 모든 것은 하나같이 사실이거나 거짓이며, 똑같이 터무니없는 이야기였음에도 아무 상관이 없었다. 모든 게 우습게 보이기 시작했다. 트레야는 병들고 나는 붓다가 되었다!” (pp. 345) 


• 발달의 낮은 수준에서 일어나는 병리와 높은 수준에서 일어나는 병리와의 차이점(예: 제 3지렛목 병리 vs. 제 8지렛목 병리) (pp. 348-349) 

  


14장. 어떤 것이 실제로 도움을 주나?

트랜스퍼스널 심리학회지와 뉴에이지에 실린 트레야의 글은 잡지사상 최고의 반응을 일으켰고, 이로 인해 트레야는 오프라윈프리 쇼의 주목을 받았다. 


• 질병을 바라보는 자비로운 관점 

암에 걸린 어머니에게 트레야는 아내로만 지나치게 충실했던 반면, 자기 자신으로서는 살지 못했다는 이론을 늘어놓았던 트레야에게 암에 걸린 또 다른 친구가 다음과 같은 말을 들려준다.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 너는 어머니에게 이론을 적용하면서, 어머니를 물건처럼 다뤘던 거야. 하지만 어머니 입장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이론이 자신을 침해한다고 느꼈을 수 있어. 나는 알아. 왜냐하면 나도 암을 앓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친구들이 말하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이야.... 그 이론들은 결국 나를 돕는 게 아니라 자기들을 돕는 거야. 난 그 이론들 때문에 상당히 고통스러워.”(pp. 363) 

“때때로 치료방법을 선택해야 하는 사람들은 정보를 원한다. 내가 자신에게 대안을 제시하거나 관습적인 치료들을 연구하는데 도움을 주길 바란다. 그러나 일단 일정한 치료방법을 선택하면, 그것이 가장 쉽고 매우 안전한 정보일지라도 그들은 나의 정보를 원치 않는다. 이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지이다.” (pp. 364) 


“당신 자신이 현실을 창조한다”는 단순한 선언이 사실이기에는 삶은 놀라울 정도로 복잡하다... 그것은 나와 우리를 길러주는 관계의 망을 통제라는 이름으로 거부하는 것이다....우기의 현실에 우리 자신이 영향을 미친다고 말해야 옳다. 이것이 진리에 더 가깝다.” (pp. 365-366) 

“죄와 죄책감을 강조하는 유대 기독교에서는 질병을 잘못에 대한 징벌로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나는 모든 현상을 자비심을 키우고 타인에게 봉사할 기회로 삼는 불교적 입장을 선호한다... 진실로 두려워 할 수 있게 스스로 허용한다면 아무리 끔찍한 일이 닥쳐도 함께 웃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질병이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질병과 친숙해지는 방법을 끊임없이 배워야 할 것이다” (pp. 366-367) 


• 불교에 대한 윌버의 입장 

“나는 딱히 불교도가 아니다. 오히려 베단타 힌두교나 기독교 신비주의에 가깝다. 그러나 내가 수행하는 방법으로 선택한 것은 불교다.” (pp. 356) 

• 불교를 소승, 대승, 금강승으로 나누어 각각을 간단하게 소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장단점과 수행법이 간략하게 설명되어 있다.(pp. 356-362) 

• 자비심을 기르는 통렌 tonglen 수행(암이 악화되자 트레야는 이 수행을 적극적으로 실천에 옯겼다.) (pp. 358) 

 


15장. 뉴에이지 

이 장에는 뉴에이지에 대한 비판이 실려 있다. 이 글은 “우리가 스스로를 병들게 하는가?”라는 제목으로 뉴에이지에 실렸다.(pp. 375-385) 


“그들이(뉴에이지) 말하는 원리에 따르면 현재의 삶은 이전 생의 생각과 행동의 결과다. 하지만 힌두교와 불교에 따르면 그것은 부분적으로만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런 특정한 업의 관점을 믿지 않는다. ... 남카이 노부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업 때문에, 혹은 개인의 이전 조건으로 인해 생기는 질병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서, 외부에서 온 에너지로 인해 생기는 질병도 있습니다. 그리고 음식과 같이 환경의 일시적인 원인들로 야기되는 질병도 있고 사고에 의해 발생하는 질병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환경과 연관된 온갖 종류의 질병이 있는 셈입니다.“... 당신 스스로 자신의 실재를 창조한다는 신념은... 모두 과대망상, 전능을 포함하는 자기애적 성격장애의 유아적이고 마술적인 세계관을 증명하는 것이다. 사고가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창조한다는 주장은 (발달의) 2 단계를 정의하는 자아경계의 불완전한 분화의 직접적 결과라고 본다.” (pp. 380-381) 


“뉴에이지 운동은 마치 얼룩덜룩한 큰 짐승 같다. 거기에는 진정한 신비주의, 트랜스퍼스널 원리에 바탕을 두는 측면도 있다. 진정한 트랜스퍼스널 운동은 항상 전개인적인 요소를 상당 부분 끌어들인다. 왜냐하면 둘 다 비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저’과 ‘초’ 간의 혼동은 뉴에이지 운동의 주요 문제점 중 하나인  것 같다.” (pp. 382) 


“우리는 전개인적 신념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런 신념들을 초개인적인 것인 양 포용하라는 요청을 받을 때 곤란할 뿐이다... 실제로는 전이성, 치성, 초이성이라는 3개의 진영이 있다. 사실 우리는 전이성주의자보다는 이성주의자에 가깝다. 상위수준은 하위수준을 초월하면서 포함한다.... 모든 초개인적인 신조들은 논리의 검증을 견뎌내야 한다. 그 때, 오로지 그때서야 논리를 넘어선 통찰이 가능하다. ”(pp. 384-385) 

그러는 사이 트레야는 암이 뇌로 전이되어 더욱 공격적인 화학요법을 받게 되고 이를 위해 두 부부는 고용량 단기 화학요법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독일의 얀커병원으로 치료를 위해 떠나게 된다. 

 


16장. 저 새들이 노래하는 걸 들어봐! 

“트레야와 나는 본에서 마지막 위기를 맞게 되었다. 나는 이 어려운 시기를 받아들이기 위해 세이무어에서 통렌에 이르기까지 열심히 노력했다... 나의 가슴은 트레야를 위해, 나를 위해 산산이 부서졌다” (pp. 395)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트레야는 본에 도착한 후 일주일 동안 평정심을 되찾았다. 그것은 지속적인 것이었고 심지어 그녀는 즐거워 보이기까지 했다.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방문객들이 자주 그 사실을 언급할 정도였다. 그녀는 환희를 내뿜고 있었다.” (pp. 400) 

“이해할 수는 없지만 내 영혼은 행복하고 삶을 즐기고 있다. 창밖의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듣는 것이 좋고, 병원에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나는 그날을 기다린다. 그 날이 끝이 아니길 바란다. 그리고 올 한 해를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 저 새들의 노래를 들어보라!” (pp. 401) 

 


17장. 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 

윌버 부부는 트레야 부모님과 함께 기분을 전환시키기 위해 파리로 여행을 간다. 

“독일을 지나 파리에 가까워지자, 내 눈은 봄날의 전경을 탐욕스럽게 담기 시작했다. 넘실거리는 라임 빛깔의 초원, 시내를 따라 늘어선 새잎이 돋은 나무들과 띠를 두른 들판, 느낌표 모양으로 흩어진 노란 개나리, 꽃을 피우는 벚나무, 가파른 언덕과 강둑을 따라 꽃으로 장식된 포도원, 계곡들을 따라 물결치며 변신하는 대지. 오랫동안 굶주린 내 눈과 영혼은 모든 것을 들이마셨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가을이었는데, 이제는 봄이, 부드럽고 밝은 봄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는 뜻인가?” (pp. 418) 


“이제 나는 봄을 가장 좋아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물론 가을의 금빛 불꽃을 사랑하는 마음은 여전하지만, 봄은 내 가슴 깊숙이 와 닿는다. 내가 새로운 기회를, 내 삶의 새봄을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pp. 442) 


본으로 돌아온 윌버 부부에게 암을 치료하는 긴 시간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나날이었다. 그 사이 윌버는 트레야를 간호하는데 지쳐 쾨니히스빈터의 드라헨펠스라는 고대의 장엄한 요새로 관광을 간다. 요새의 탑에 올라간 윌버는 다음과 같이 사색에 빠진다. 


“올려다보면 하늘이, 내려다보면 땅이 있었다. 하늘과 땅, 하늘과 땅. 트레야가 떠올랐다. 지난 몇 년에 걸쳐 그녀는 땅에 있는 자신의 뿌리, 자연에 대한 사랑, 몸, 만들기, 자신의 여성성, 기초가 단단한 개방성, 신뢰, 돌봄으로 돌아왔다. 나는 내가 있고 싶어 하는 곳, 내 스스로 편안하게 느끼는 곳에 머물렀다. 신화로 치자면 영의 세계가 아니라 관념, 논리, 개념, 상징이라는 아폴로적 세계를 의미하는 하늘에. 하늘은 마음과, 땅은 신체와 관련된다. 내가 느낌을 포착해서 개념으로 연결했다면, 트레야는 개념들을 포착해서 느낌으로 연결했다. 내가 끊임없이 특정한 것에서 보편적인 것으로 움직였다면, 트레야는 항상 보편적인 것에서 구체적인 것으로 움직였다. 나는 생각하는 것을, 트레야는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문화를, 그녀는 자연을 사랑했다. 나는 바하를 들으려고 창문을 닫았다면, 그녀는 새들의 소리를 듣기 위해 바하를 껐다.” (pp. 434) 

 


18장. 죽은 스승은 아니다! 

다시 볼더로 돌아온 윌버부부는 트레야의 삶이 일년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수용하면서 죽음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미래에 살기를 거부하면서 의식적으로 죽음과 함께 현재를 살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라. 죽음은 무엇보다도 미래가 없는 조건이다. 마치 미래가 없는 듯이 현재를 살아감으로써, 그녀는 죽음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죽음을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pp. 444) 


트레야의 이런 삶에 대한 태도는 선사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윌버에게 상기시킨다. 

“유명한 선의 화두가 있다. 한 제자가 선사에게 찾아와 이렇게 물었다. “죽은 후에는 무슨 일이 생기나요?” 그러자 선사는 “모른다”고 말했다. 놀란 제자가 다시 “모른다고요. 당신은 선의 스승이 아닌가요?”라고 묻자 그 선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다. 하지만 죽은 스승은 아니다.”  (pp. 445) 


순간순간을 생생하게 살아가면서 윌버의 수행은 점점 더 깊어만 간다. 

“트레야와 나는 명상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나는 부지불식간에라도 비통함이나 적의감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아침 5시에 일어나 명상을 한다. 그렇게 2,3시간이 지나면 돌보는 이로서의 하루가 시작된다. 나는 이제야 비로소 진정한 평화에 도달할 것 같다.... 좋든 싫든, 삶이든 죽음이든, 쾌락이든 고통이든 간에 모든 드러남은 똑같이 ‘일미(一味)’다. 있는 그대로 완벽하게. ” (pp. 447) 

유방절제 수술을 받은 아내와 함께 살면서 성과 관련해 윌버가 겪었던 심적 갈등과 방황이 독일 나이트클럽에서의 경험을 통해 잘 드러나고 있다. (pp. 453-461) 


“여인의 온전한 가슴을 본 건 거의 3년 만에 처음이었다. 그녀를 바라보다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다시 그녀를 쳐다보다가 아래를 보고, 혼란스러운 감정의 봇물이 무섭게 쏟아져 내렸다... 내 마음은 육체와 살의 세계, 그것이 의미할 수 있는 것, 암이 육체에게 할 수 있는 모든 것들로 정신을 잃었다.” (pp. 458) 

 


19장. 열정적 평정심 

독일에서 받았던 매우 공격적인 화학요법에도 불구하고 트레야의 암이 치료되지 않자 그들은 대체요법의 하나인 켈리-곤잘레스 프로그램을 시도할 결심을 한다. 이 프로그램은 췌장효소를 100만 단위로 다량 섭취할 경우, 종양을 해체시키는 효과를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아주 혹독한 프로그램이었지만 트레야는 평정심을 가지고 이를 성실히 수행해간다. 


“나는 카르멜파가 열정을 강조하고 불교도들이 평정심을 강조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불현듯 ‘열정’의 의미에 대한 우리의 상식적 이해가 매달림, 무언가 간절히 원하는 것, 그걸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 소유라는 생각에 물들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없는 열정, 애착이 없는 열정, 깨끗하고 순수한 열정을 갖는다면 어떨까?... 그때 갑자기 내 마음 속에서 두개의 단어가 짝을 이루었다. 열정적 평정심. 삶의 모든 측면, 영과의 관계에 충분히 열정적이고, 존재의 심연을 돌보면서도 매달리거나 붙잡지 않는 것. 내게 그 말의 의미는 바로 이것이었다.” (pp. 474) 

“토마스 키팅 신부가 한 말도 생각합니다... “애쓴다는 것은 기도자의 성장에 필요한 수용성이라는 기본성향을 희석시킨다. 수용성을 비활동이 아니다. 그것은 실제적인 활동으로서 일상적 의미에서의 노력이 아니다. 그것은 궁극적인 신지를 기다리는 태도다...” 이런 ‘적극적 비활동’이 내가 ‘열정적 평정심’이라고 생각하는 한 예입니다. 켄은 도교도들이 이것을 ‘위무위(爲無爲)라 표현한다고 말해주었지요.” (pp. 477) 

 


20장. 간호하는 사람 

효소 프로그램이 지속적인 효과를 내고 있었지만 그 해석에 대한 공방이 극에 달해 윌버도 무엇을 믿어야할지 혼란에 빠져버린다. 

“시간이 갈수록 검사결과는 점점 더 극적으로 변했으며 두 진영(정통의학과 대체의학)의 해석은 완전히 상반되었다. 그에 따라 내 마음도 둘로 분열되었다. 하나는 곤잘레스를 믿었고, 다른 하나는 종양전문의들을 믿었다. 어떤 쪽도 확실히 옳거나 그르다는 증거는 없었다.” (pp. 495-496) 


윌버는 트레야가 설립한 CSC 친구들에게 간호하는 사람으로서의 고충을 따뜻한 마음으로 이해하면서도 이를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는 매우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는 편지를 보낸다. 이 글은 트랜스퍼스널 심리학 잡지에 실려 독자들의 상당한 반응을 얻게 된다. (pp. 499-509) 


“나는 지금부터 환자를 간호하는 일에 대해 말하려 합니다. 특히 위험한 문제는 환자를 돌보기 시작한 지 약 2,3달이 지나서 찾아듭니다....간호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더 다루기 어려운 일은 정서적, 심리적 수준에서 쌓이기 시작하는 내적 혼란입니다.... (병간호하는 고된 일이라는) 원래 문제와 더불어 그 문제를 드러낼 수 없기 때문에 또 하나의 문제가 생깁니다.... 이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할 가장 좋은 상대는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 간호하는 사람들 집단, 즉 간호하는 사람들을 위한 지지집단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모든 어두운 감정, 분노, 적개심 아래에는 대부분 상대를 향한 커다란 사랑이 있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간호하는 사람은 오래전에 뛰쳐나가 버렸을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분노, 적개심, 쓰라림이 출구를 막고 있는 한 그 커다란 사랑이 표면으로 자유롭게 떠오를 수 없다는 겁니다.” (pp. 502) 


“사랑은 치유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므로 간호하는 사람들은 사랑의 존재를 막는 분노, 적개심, 미움, 쓰라림, 부러움과 질투까지도 비울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지지집단은 무척 소중한 존재입니다. 지지집단이 없다면 사랑하는 사람뿐 아니라 간호하는 사람인 당신을 위해서도 개인 심리치료를 받으라고 추천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에게는 사랑하는 사람과 의논해서는 안 될 일들이 생길 테니까요.” (pp. 503) 


“훌륭한 간호하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과정에서 내가 배운 것 하나는 간호하는 사람은 정서적인 스폰지라는 겁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언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문제를 풀 수 있게 도와주고, 저녁식사를 만들고, 차를 몰아주는 것 등이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일은 모두 정서적인 스폰지의 뒷전에 있습니다. 치명적인 질병과 직면한 사람은 매우 강력한 정서적 경험을 하게 됩니다. 때로 근 이런 감정들, 즉 공포, 분노, 히스테리, 고통들로 압도되어버리곤 합니다. 이때 당신이 할 일은 사랑하는 이를 붙잡아 주고, 그 사람과 함께하며, 그런 정서들을 가능한 한 많이 흡수하는 겁니다. 말해서는 안 되고, 아무 말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실제로 도움이 될 말이 하나도 없습니다. 충고를 할 필요도 없습니다. 무슨 일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거기에 있으면서 그들의 고통이나 공포, 상처를 들이마셔야 합니다. 스폰지처럼 말입니다.(pp. 504) 


“나는 언제라도 어려운 상황에서 뛰쳐나갈 수 있었습니다. 아무도 나를 병동에 묶어두지 않았으며, 내가 떠난대도 나를 협박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온갖 고난을 무릅쓰고라도 트레야와 영원히  함께 하겠다는 선택을 나 스스로 한 겁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녀가 이 과정을 겪어내는 걸 지켜볼 거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 선택을 잊어버린 적이 있습니다. 나는 (실존주의자들이 말하는) 나쁜 신념(bad faith)을 보이고 말았으며 진짜가 아닌 존재가 되었습니다. 나는 실재가 아니었습니다. 나쁜 신념으로 인해 나는 내 자신의 선택을 망각했고, 거의 즉각적닌 비난의 태도를 보였으며, 또 그 결과로 생기는 자기연민에 빠졌습니다.” (pp. 506-507) 


“공(空)이라는 불교적 개념 또한 내게 엄청난 도움을 주었습니다. 공은 공백이나 허공이 아닙니다. 이것은 장애가 없고 자발적인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또한 비영원성 혹은 무상(anicca)과 유사한 개념입니다. 불교인들은 실재가 공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안전이나 지지를 위해 당신이 붙잡을 수 있는 영원하거나 절대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금강경은 '삶은 물방울, 꿈, 영상, 신기루 같다‘고 말합니다. 요점은 신기루를 붙잡으려 애쓰지 말고 ’놓아버리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매달릴 만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트레야의 암은 나에게 ’죽음은 위대하게 놓아버리기‘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켰습니다.” (pp. 507-508) 


이 시기에 윌버는 족첸수행에 깊이 빠지게 된다. 

• 족첸수행에 대한 설명 (511-515) 

“족첸에서의 주된 가르침은 명상이 아니다. 왜냐하면 명상은 상태의 변화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깨달음은 상태의 변화가 아닌 현상태의 성질을 인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족젠 가르침의 대부분은 ‘왜 명상이 효과가 없는가’, ‘왜 깨달음을 얻을 수 없는가’, ‘그것은 이미, 그리고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로 요약할 수 있다. 깨달음을 얻으려는 노력은 당신의 발을 붙잡으려 애쓰는 것과 마찬가지다.” (pp. 512) 

“족첸은 명상을 특별히 추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족첸 가르침에 입문할 때쯤이면 수행의 8단계를 수행해야 하는데, 이 8단계가 명상의 모든 단계임을 지적해야겠다. 그들은 마음의 덕성, 집중력, 알아차림, 통찰력을 기르는데 명상이 매우 중요하고 이로우며, 따라서 명상을 하나의 훈련과정으로 열심히 수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명상은 깨달음 자체와는 관계가 없다.” (pp. 514) 

“일단 제자에게 그런 자각이 일어나면, 스승은 그 자각을 삶의 모든 측면에 적용하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명상을 사용한다. 이것이야말로 정말 어려운 부분이다. 족첸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당신의 진정한 얼굴을 보는 것은 쉽지만 그것을 사는 것은 어렵다.’ 내가 수행을 시작한 것은 정확히 ‘그것을 사는 것’이었다.” (pp. 515) 

 


21장. 우아하게 그리고 용기있게

켈리-곤잘레스 효소 프로그램의 영향으로 뇌 조직이 한없이 팽창하면서 트레야는 극도의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트레야는 한두 달 동안 뇌의 팽창을 통제할 수 있는 강력한 스테로이드 데카드론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 효과가 없어질 것이다. 그 마지막 기기에 트레야의 뇌 조직은 박살날 것이다. 날이 갈수록 뇌 기능은 상실되고 고통은 참을 수 없을 만큼 커져 불가피하게 모르핀을 계속 투여해야 할 것이다.” (pp. 533) 


극도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트레야는 자신의 열정과 평정심을 결코 잃지 않는다. 

“그녀는 조금도 자신을 불쌍히 여기지 않는다. 그녀는 포기하거나 조금도 물러서려는 의도가 없다. 그녀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이제 나는 그 사실을 믿는다. 그녀는 몸을 뒤집어 죽은 척하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녀의 태도를 통해 내가 깨닫게 된 가장 유명한 공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한 제자가 선승에게 물었다. “무엇이 절대적인 진실입니까?” 그러자 선승은 “계속 걸어라!”라고만 했다.” (pp. 534) 


서로에게 깊이 몰입하는 가운데 윌버와 트레야 사이에는 깊은 심령적 유대가 생긴다. 윌버는 트레야가 원하는 것을 직관적으로 미리 알고 처리를 하면서 트레야를 극진히 보살핀다. 

“아마도 경험에만 의존하는 보통 의사들은 그것이 번개처럼 빠른, 잠재의식적인 논리적 추론일 거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너무도 많은 사례들이 비논리적이고 신기했다. 아니다. 무언가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여기 이 집에 오직 하나의 마음, 하나의 가슴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왜 내가 그 사실에 놀라야 하는가?” (pp. 534) 


끔찍한 두통을 호소하고 몸 전체를 떨면서 극심한 고통에 사로잡힌 트레야는 마침내 뇌에 있는 덩어리를 제거하기 위해 수술을 받는다. 

“수술로 인해 트레야는 더 이상 예전처럼 볼 수가 없었다. 오른쪽 눈으로 볼 수는 있었지만 전체적 시야가 매우 협소해진 것이다. 그녀는 예술작업을 하려고 했지만 선 하나도 제대로 맞출 수가 없었다. 때때로 나도 따라잡을 수 있을 정도의 작품을 내놓았다. 그러나 그녀는 ”별로예요, 그렇죠?“라는 말밖에 하지 않았다” (pp. 536) 


• 죽음의 순간에 일어나는 현상에 대한 설명(536-537) 

“당신의 어떤 부분이 신성에 참여한다고 믿는다면, 어떤 의미에서든 죽을 수밖에 없는 신체를 초월하는 일종의 영에 접근한다고 믿는다면, 죽음의 순간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어느 순간 신체가 사라진 후 남아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발견할 순간이 바로 죽음의 순간이다. 안 그런가?” (pp. 537) 

뇌와 간에 종양이 퍼져가면서 트레야는 끔찍한 고통에 시달렸지만 자신의 일과를 빠짐없이 성실하게 실천해간다. 

“날이 갈수록 폐와 뇌, 간에서 종양이 커져만 갔다. 그리고 뇌수술의 여파는 트레야의 몸에 끔찍한 대가를 요구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프로그램을 하나도 빠짐없이 지속했으며 걷는 기구를 이용해 하루에 수 km를 걸었다.” (pp. 538)


• 트레야가 죽어가는 부분(540-542)

“새해 첫날 트레야와 나는 카우치에 앉아 서로를 껴안고 있었다. 트레야가 몸을 돌리더니 말했다. “여보, 이제 멈춰야 할 시간이 된 것 같아요. 더 이상은 가고 싶지 않아요. 효소가 별 효과를 못 내는 것 같아요.“...... “트레야. 하지만 일주일만 더 기회를 가져보자고 말하고 싶어. 만일을 위해서...”...... 그녀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좋아요. 일주일만 더 해봐요. 할 수 있어요. 일주일만 더.”, 트레야는 맑고 투명하게 빛났다.” (pp. 540) 


“우리는 2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트레야는 계단조차 오를 힘이 없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녀는 계단 하나도 오르지 못한 채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 산소 줄을 떨어뜨리고는 조용히 울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를 안아 올려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오, 여보... 이 정도까진 오지 않길 바랐어요. 여기까지 오고 싶지 않았어요. 정말이지 혼자 걷고 싶었어요.“ 트레야는 내 어깨에 머리를 파묻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일인 걸, 트레야. 어떤 경우에도 당신은 내가 이런 일을 하게 내버려두지 않았을 거요. 그러니 자, 내 아가씨를 안고 계단을 오르게 해줘요.” (pp. 541) 


“트레야는 약속을 지켰다. 극도의 고통 속에서도 프로그램을 하나도 빠트리지 않았다. 모르핀을 거절했기 때문에 그녀는 자각하며 존재할 수 있었다. 그녀는 종종 머리를 높이 치켜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런 척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이야말로 “계속 걸어라!”였다. 그녀는 용기와 각성된 평정심을 보여주었으며, 조금도 보태지 않고 말하건대 나는 그런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 ... 

“주말 저녁,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이제 갈래요, 여보.” 

그 순간 내가 한 말은 그저 ‘좋아’ 한 마디 뿐이었다. 나는 그녀를 2층으로 데려가려고 안아 올렸다. 

“잠깐만요, 여보. 일기를 쓰고 싶어요.” 

나는 그녀에게 일기장과 펜을 가져다주었다. 그녀는 매우 진하고도 분명한 글씨체로 이렇게 썼다. 

“‘우아함, 그리고... 그렇지, 용기가 필요해!” (pp. 541-542) 


“숭고한 괴테는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글귀를 남겼다. ‘잘 익은 것들은 모두 죽고 싶어 한다.” 트레야는 잘 익었으며 죽고 싶어 했다.... 우아함과 용기. 존재하기와 행동하기, 평정심과 열정, 포기와 의지. 완전한 수용과 사나운 결심... 그녀 영혼의 양면성. 일생 동안 그녀가 씨름해온 양면성, 그녀가 마침내 하나의 조화로운 전체로 통합한 양면성, 그것이 그녀가 남기고 싶어 했던 마지막 메시지였다. 나는 그녀가 그 양면을 결합하는 것을 보았고, 균형 잡힌 조화로움이 그녀 삶의 모든 면에 스며있음을 보았고, 열정적인 평정심이 그녀의 영혼을 정의하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자신의 유일하고 중요한, 지배적인 삶의 목표를 성취한 것이다. 만약 그것이 수준 낮은 깨달음이었다면 산산조각 났을 상황에서, 그녀의 성취는 잔인하게 검증되었다. 그녀는 그걸 해낸 것이다. 그녀는 지혜로 무르익은 것이다. 그래서 죽기를 원했다. 마지막으로, 나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트레야를 2층으로 데려갔다.” (pp. 542) 

 


22장. 빛나는 별을 위하여

트레야는 마침내 죽음을 맞이하고 가족과 친지들은 그녀의 우아하고 용기 있는 모습을 하나같이 칭송한다. 윌버는 트레야의 영혼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음을 절감한다. 

    

“그 날 저녁 나는 트레야를 침대에 눕히고 그녀 옆에 앉았다. 그녀는 거의 황홀경에 빠져 있었다. 

“이제 나는 가요. 믿을 수 없겠지만 나는 갑니다. 아주 행복해요. 아주 행복해요. 아주 행복해요.” 

마지막 해방의 만트라처럼 그녀는 계속 반복했다. 

“나는 아주 행복해요, 아주 행복해요...” 

그녀의 얼굴 전체가 밝아졌다. 그녀는 빛났다. 그리고 바로 내 눈 앞에서 그녀의 몸이 변하기 시작했다. 1시간에 5kg 정도가 줄어든 것 같았다. 마치 몸이 그녀의 의지에 순종하여 스스로 오그라드는 것처럼... 그녀는 서서히 자신의 생명체계를 닫으며 죽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기꺼이 떠날 준비를 하면서 전혀 다른 사람이 돼가고 있었다. 그녀는 결심이 확고했으며 매우 행복해했다. 그녀의 마음에 전염된 것일까? 그녀의 기쁨을 나누고 있는 나를 느낄 수 있었다. 

그 때 돌연히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당신을 떠나고 싶지 않아요. 당신을 너무나 사랑해요. 켄. 당신을 떠날 수 없어요. 당신을 너무나 사랑해요.” 

그녀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나 역시 흐느꼈다. 지난 5년 동안의 모든 눈물이, 트레야를 위해 강해지려고 참았던 눈물이 모두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우리는 서로에 대한 사랑, 우리 둘을 만들어준 사랑, 우리 둘을 더 강하고 좋고 현명하게 만들어준 사랑에 대해 오랫동안 이야기했다. 아주 메마르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까지 누군가와 그토록 다정한 순간을 가져본 적이 없다. 

“여보, 갈 시간이면 갈 시간인 거야. 걱정하지 말아요. 당신을 찾아낼 거요. 이전에도 찾아냈잖소. 약속하오, 또 다시 당신을 찾아낼 거라고. 그러니 걱정 말고 가고 싶으면 가요.” 

“약속하죠?” 

“약속하오.” 

5년 전 결혼식장으로 가는 중에 그녀에게 말했던 것. 나는 지난 2중 동안 그 이야기를 거의 강박적으로 되풀이했다. 나는 다시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그동안 어디 있었소? 몇 생에 걸쳐 당신을 찾아 헤맸는데. 당신도 알잖아. 당신을 찾아내기 위해 난 용들을 죽여야만 했단 말이오. 그러니 걱정 말아요. 반드시 당신을 찾아낼 거요.” 

그녀는 말할 수 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약속하죠?” 

“약속할게.” 

나는 왜 그런 말이 필요한지 알지도 못한 채 무의식적으로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지난 몇 주 동안 트레야는 계속해서 내게 약속을 끌어냈다. 그것이 그녀에게 깊은 안정감을 가져다주는 것 같았다. 내가 약속만 지킨다면 그녀에겐 아무 문제도 없었던 것이다. 

“나를 찾겠다고 약속했죠?” 

“그래, 약속해.” 

“영원히?” 

“영원히.” 

“그렇다면 갈 수 있어요. 아, 나는 아주 행복해요... 여보,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어려웠어요. 아주 어려웠어요. 여보, 너무 힘들었어요.” 

“알아, 트레야. 나도 알아.” 

“이제는 떠날 수 있어요. 정말 행복해요... 당신을 너무나 사랑해요... 행복해요. 켄.” 

그날 밤 나는 그녀의 방에 있는 탁자에서 잠을 잤다. 꿈을 꾼 것 같다. 눈 덮인 산에 천 개의 태양이 빛날 때처럼, 빛나는 흰빛의 거대한 구름이 집 위에서 맴도는 꿈을. (pp. 545-547)  

“트레야가 눈을 감았다. 모든 의지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결코 다시 눈을 뜨지 않았다. 가슴이 무너졌다. 다 프리 존의 구절이 마음속에서 맴돌았다. “사랑의 상처를 연습하라... 사랑의 상처를 연습하라.” 진정한 사랑은 마음을 아프게 한다. 진정한 사랑은 당신을 완전히 취약하게 열어놓는다. 진정한 사랑은 당신을 훨씬 넘어선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사랑은 당신을 황폐하게 만든다. 나는 계속 생각했다. 사랑이 당신을 산산조각 내지 않았다면 당신은 사랑을 모르는 거다. 우리는 둘 다 사랑의 상처를 연습했고 나는 산산조각 나버렸다. 되돌아보면 그 단순하고 직접적인 순간에 우리는 둘 다 죽어버린 것 같다.” (pp.  549) 


“나는 그날 밤 트레야의 방에 있었다. 나는 꿈을 꾸었다. 빗방울 하나가 바다로 떨어져 바다와 하나가 되는 꿈을. 어찌보면 그것은 꿈이라기보다 단순한 영상 같기도 했다. 나는 이 꿈이 트레야가 깨달음을 성취했다는 의미라고, 트레야가 깨달음의 바다와 하나가 된 빗방울이라고 생각했다. 의미가 통했다. 

하지만 나는 곧 이 꿈에 더욱 심오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빗방울은 나였으며 트레야는 바다였다. 그녀가 해방된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진작 해방되었다. 오히려 그녀에게 봉사했다는 이유 하나로 내가 해방된 것이다. 

그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트레야가 자신을 찾아내라는 약속을 내게 끈질기게 요구한 이유였다. 그녀는 단지 내가 자신을 찾길 원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와의 약속을 통해 그녀가 나를 찾겠다는, 계속 반복해서 나를 돕겠다는 의미였던 것이다. 나는 그 모든 일을 회상해보았다. 나는 내가 약속을 함으로써 그녀를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내가 깨어날 때까지, 그녀가 분명하게 말한 영을 내가 인정하고 깨달을 때까지 트레야가 나를 도와줄 것이라는 뜻이었다.“ (pp.  557) 

“그 삶에서, 그 몸에서 나는 위대한 다섯 꼭지점의 우주별을, 마지막 해방의 빛나는 별을 보았다. 내게는 항상 그 이름으로 남을 별... 

‘트레야’ 

알로하, 나의 행운, 내 사랑하는 트레야. 나는 언제나 당신을 찾아낼 거야. 

“약속하죠?” 

그녀는 다시 한번 내게 속삭였다. 

“약속하지. 나의 사랑, 트레야.” 

“약속하오.” (pp.  563) 

        

여기 모인 모든 분들이 항상 고요하게 깨어있기를!

역자가 두 손 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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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밀(婆羅蜜) 또는 바라밀다(波羅蜜多)는 산스크리트어 ‘파라미타’(पारमिता pāramitā)를 음에 따라 번역한 것으로, 완전한 상태 · 구극(究極)의 상태 · 최고의 상태를 뜻한다.


불교의 교리상으로는, 바라밀은 미망과 생사의 차안(此岸: 이 언덕)에서 해탈과 열반의 피안(波岸: 저 언덕)에 이르는 것이며, 또한 이를 위해 보살이 닦는 덕목 · 수행 · 실천을 의미한다. 이러한 이유로 바라밀은 뜻에 따라 번역하여 도피안(到波岸) 또는 도(度)라고도 한다. 도피안(到彼岸: 피안에 이르다)은 열반이라는 이상적인 상태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며, 도(度)는 현실의 차안(此岸)에서 이상적인 상태인 피안(彼岸)으로 사람들을 넘기기 위한 덕목 · 수행 또는 실천이라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 대승불교의 주요 논서 중 하나인 《대지도론(大智度論)》의 도(度)는 파라미타(Paramita)의 번역어이다.


대표적인 바라밀들로는 《반야경》에서 설법하는 보시(布施) · 지계(持戒) · 인욕(忍辱) · 정진(精進) · 선정(禪定) · 지혜(智慧)의 육바라밀(六波羅蜜)이 있다. 이 중에서 마지막의 지혜 바라밀은 반야 바라밀이라고도 하는데, 다른 다섯 바라밀을 성립시키는 근거인 무분별지(無分別智)이다. 또한, 육바라밀에 방편(方便) · 원(願) · 역(力) · 지(智)의 네 가지 바라밀을 더한 십바라밀(十波羅密)이 있으며, 육바라밀 · 십바라밀과는 별도의 사바라밀(四波羅蜜) 등도 설법되고 있다.


육바라밀 등은 대승불교의 보살의 실천 덕목으로 되어 있다.



육바라밀

육바라밀(六波羅蜜)은 여섯 가지 덕목 · 수행 · 실천을 통칭하는데, 구체적으로 다음을 뜻한다.


보시 바라밀(布施波羅蜜): 재시(財施) · 법시(法施: 진리를 가르침) · 무외시(無畏施: 공포를 제거하고 마음을 안정시킴)의 실천

지계 바라밀(持戒波羅蜜): 계율을 지키고 항상 자기반성을 하여 자신의 행동을 규율하는 것

인욕 바라밀(忍辱波羅蜜): 고난을 이겨 나가는 것 (원래 인욕(忍辱)은 법을 진실로 인정하고 이에 복종하는 것을 의미하였다)

정진 바라밀(精進波羅蜜): 보살로서의 수행을 힘써 닦으며 꾸준히 노력하는 것

선정 바라밀(禪定波羅蜜): 마음을 안정시켜 올바른 지혜(무분별지)가 나타나게 하는 수단인 선정(禪定)을 닦는 것

반야 바라밀(般若波羅蜜): 진실하고 올바른 지혜, 즉 무분별지(無分別智)를 작용시키는것


육바라밀의 여섯 가지 덕목들에서는, 우선 보시, 즉 "주는 것"을 강조하고 마지막 덕목으로 지혜(무분별지)의 완성을 말하고 있다.

이들 여섯 가지 바라밀 중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마지막 여섯 번째인 반야, 즉 지혜(무분별지)이다. 다른 다섯 가지 덕목 또는 수행("오행 · 五行"")은 반야 바라밀에 바탕을 둔 것으로, 이에 따르면 보살행, 즉 보살의 행이란 지혜(무분별지)에 의거한 자비행(慈悲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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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의 유래

동지는 겨울 동(冬)자에 이를 지(至)를 씁니다. 그렇다면 동지라는 말의 뜻은,
'겨울에 이르렀다.'는 뜻이 돼죠. 절기상으로는 24절기 중 스물두 번째 절기로 일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입니다. 이는 태양이 적도 이남 23.5도의 동지선(남회구선) 곧 황경(黃經) 270도의 위치에 있어 해가 머무는 시간이 가장 짧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24절기는 자연의 변화를 태양력을 기준으로 나눈 절기이기 때문에 우리가 쓰는 달력 상으로 12월 22일 또는 23일이 동지입니다. 이렇게 12월 22일을 기준으로 하루 정도 차이가 날 수 있는 것은 1년 365일이 24로 나누어 똑 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올해(2010년)는 12월 22일이 동지 입니다.

우라나라에서는 예로 부터 음력과 결부하여 동지가 음력 11월 초순에 오는 동지를 애동지, 11월 중순에 오는 동지를 중동지, 11월 하순에 오는 동지를 노동지라고 했습니다.

동지날 낮이 가장 짧다는 것은 다른 시각에서 보면 동지 이후에는 낮이 점점 더 길어 진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태양이 이제 기운을 회복하기 시작한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겠죠. 그래서 옛 사람들은 동지를 양(陽)의 기운이 싹트는 사실상 새해의 시작으로 여겼다고도 합니다. 그래서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 '동지 팥죽을 먹어야 한 살 더 먹는다.' 라는 말이 생겨났을 것입니다.

동지 풍속

동짓날 풍속으로는 동지 팥죽을 만들어 먹는 것입니다. 동지날에 팥죽을 먹는 것은 귀신을 쫓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요, 이런 풍습은 중국으로부터 유래된 것으로 보입니다.
문헌상으로는 중국의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공공씨(共工氏)의 재주 없는 아들이 동짓날에 죽어서 역질( 疫疾 ) 귀신이 되었는데, 그 아들이 생전에 팥을 두려워하여 팥죽을 쑤어 물리친 것이다." 라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중국 사람들은 붉은 색에는 귀신을 쫓는 축사(逐邪)의 힘이 있는 것으로 믿고 팥이 바로 붉은 색이기 때문에 팥죽은 귀신을 물리치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겠죠.

우리나라에서는 경상도 지방의 경우, 팥죽을 쑤어 삼신, 성주께 빌고, 모든 병을 막는다고 하여 솔잎으로 팥죽을 사방에 뿌리는 풍속이 있습니다. 또 경기도 지방에서는 팥죽으로 사당에 차례를 지낸 후, 방을 비롯한 집안 여러 곳에 팥죽 한 그릇씩 떠놓기도 합니다. 한편 지방에 따라서는 전염병이 유행할 때, 우물에 팥을 넣으면 물이 맑아지고 질병이 없어진다고 생각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즉, 우리나라에서는 귀신 뿐 아니라 액운, 질병을 쫓는 의미로 팥죽을 쑤어 먹고, 또 동지가 양의 기운이 시작되는 날이라는 의미와 함께 한 살을 더 먹는 의미로도 팥죽을 쑤어 먹어 왔던 것 같습니다.

또한, 음력과 결부하여 애동지, 중동지, 노동지로 구분했던 우리나라에서는 음력 11월 초순에 동지가 이르게 되는 애동지의 경우에는 팥죽을 쑤어 먹지 않았는데, 이는 아이들이 애동지에 팥죽을 쑤어 먹으면 병에걸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윤달이 들어 있는 해가 보통 애동지가 되는데, 올해(2010년)은 애동지가 아니니 동지 팥죽을 쑤어 먹어도 아무 문제가 없겠습니다.

동지와 관련된 속담

동지와 관련해서는 아래와 같은 속담이 있네요.

동지 지나 열흘이면 해가 노루 꼬리 만큼씩 길어진다.: 동지가 지나면 해가 조금씩 길어 지는 것을 의미.
동지가 지나면 푸성귀도 새 마음 든다.: 동지가 지나면 추운 겨울 몸을 움츠리고 있던 푸성귀들이 다가올 봄을 기다리며 마음을 가다듬기 시작한다는 의미.
동지때 개딸끼: 도저히 얻을 수 억는 것을 바라는 마음을 의미.
배꼽은 작아도 동지 팥죽은 잘 먹는다.: 얼핏 보기에는 사람이 변변치 않은 것 같아도 하는 일은 꽤 잘한다는 의미.




동지팥죽의 어원, 유래, 풍속입니다.
 
1. 동지의 어원 

동지는 24절기의 하나로서 일년 중에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24절기는 태양력에 의해 자연의 변화를 24등분하여 표현한 것이며, 태양의 황경이 270도에 달하는 때를 '동지'라 고 한다. 동지는 음력 11월 초순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그믐께 들면 '노동지'라고 하는데, 이는 동지가 드는 시기에 따라 달리 부르는 말이다. 


2. 동지의 유래 

동지는 일년 중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길어 음(陰)이 극에 이르지만, 이 날을 계기로 낮이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여 양(陽)의 기운이 싹트는 사실상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이다. 중국의《역경(易經)》에는 태양의 시작을 동지로 보고 복괘(復卦)로 11월에 배치하였다. 따라서 중국의 주(周)나라에서는 11월을 정월로 삼고 동지를 설로 삼았다. 이러한 중국의 책력과 풍속이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으로 보인다.

옛 사람들은 이날을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로 생각하고 경사스럽게 여겨 속절로 삼았다. 이것은 동지를 신년으로 생각하는 고대의 유풍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전통사회에서는 흔히 동지를 '작은 설'이라 하여 설 다음 가는 경사스러운 날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옛말에 '동지를 지나야 한살 더 먹는다' 또는 '동지팥죽을 먹어야 한살 더 먹는다' 라는 말이 전하기도 한다. 


3. 동지의 풍속

중국의《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의하면 "공공씨(共工氏)의 재주 없는 아들이 동짓날에 죽어서 역질(疫疾)귀신이 되었는데, 그 아들이 생전에 팥을 두려워하여 팥죽을 쑤어 물리친 것이다" 라는 기록이 있다. 이것은 다분히 후대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이야기로 팥죽의 축귀(逐鬼) 기능에대한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동지팥죽이절식이고, 팥은 붉은 색 깔을 띠고 있어서 축사(逐邪)의 힘이 있는 것으로 믿어 역귀(疫鬼) 뿐만 아니라 집안의 모든 잡귀를 물리치는데 이용되어 왔다. 

이러한 점은 음양사상(陰陽思想)의 영향으로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즉 팥은 붉은 색으로 '양(陽)'을 상징함으로서 '음(陰)'의 속성을 가지는 역귀나 잡귀를 물리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경상도 지방에서는 팥죽을 쑤어 삼신·성주께 빌고, 모든 병을 막는다고 하여 솔잎으로 팥죽을 사방에 뿌린다. 

또 경기도 지방에서는 팥죽으로 사당에 차례를 지낸 후, 방을 비롯한 집안 여러곳에 팥죽 한 그릇씩 떠놓기도 한다. 한편 지방에 따라서는 전염병이 유행할 때, 우물에 팥을 넣으면 물이 맑아지고 질병이 없어진다고 한다. 한편으로 동지에는 동지팥죽과 더불어 책력을 선물하던 풍속이 전한다. 이에 대해《농가월령가 (農家月令歌)》11월 조에서는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동지(冬至)는 명일(名日)이라 일양(一陽)이 생(生)하도다 시식(時食)으로 팥죽을 쑤어 이웃(隣里)과 즐기리라 새 책력(冊曆) 반포(頒布)하니 내년(來年) 절후(節侯) 어떠한고 해 짤라 덧이 없고 밤 길기 지리하다. 옛부터 "단오(端午) 선물은 부채요, 동지(冬至) 선물은 책력(冊曆)이라"는 말이 전하여 온다. 전통사회에서는 단오가 가까워오면 여름철이라 친지와 웃어른께 부채를 여름 선물로 선사하고, 또 동지가 되면 책력을 선사하는 풍속이 성하였다. 책력은 농경사회에서 생업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요긴하게 사용되었던 생활의 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가. 민간에서 전해지는 팥죽의 유래
 
엣날 중국 진나라의 공공이라는 사람에게는 늘 말썽을 부려 속을 썩이는 아들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아들 때문에 하루도 맘 편한 날이 없었는데, 어느 동짓날 그 아들이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죽은 아들은 그만 역질 귀신이 되고 만 것입니다.역질이란 천연두라는 무서운 전염병으로 그 당시에는 역질이 마을에 돌면 마을 사람들 대부분 꼼짝없이 앓다가 죽어 버리니 공공은 자신의 아들이었다 해도 그냥 둘 수가 없었습니다.
 

공공은 생전에 아들이 팥을 무서워 했다는 기억을 떠올리고는 팥죽을 쑤어 대문간과 마당 구석구석에 뿌렸습니다. 효과가 있었던지 그 날 이후로 역질은 사라졌고 이를 본받아 사람들은 역질 귀신을 물리치기 위해 동짓날이 되면 팥죽을 쑤었다고 합니다. 옛사람들은 붉은 색은 귀신들이 싫어하는 색이라고 생각했기에 곡식들 중에서도 유난히 붉은 색을 지닌 팥을 그런 용도로 사용했다 합니다.
 
*잠깐! 토막 동지 상식 둘
 
어쩌면 붉은 색의 연지, 입술 루즈, 봉선화 매니큐어 등의 화장은 아름답게 꾸미기 위함보다 붉은 색이 귀신을 쫓는다는 믿음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하는 이야기도 있다.
성탄전야 산타클로스는 붉은 색의 옷을 입고 불을 지피는 부엌 아궁이로 들어온다. 성탄절 = 동지날 = 설날 = 태양의 부활이라는 등식에서 나온 풍속이고 보면 설날 풍속이 동서양이 다를 바 없음을 알 수 있다.
 
 
나. 불교에서의 팥죽의 유래
 
옛날 신라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젊은 선비가 살았는데, 사람은 참으로 진실하였으나, 집안이 궁핍하였습니다.어느날 과객이 찾아와 하룻밤 묵어가고자 하여 쉬어가게 해주었더니, 다음날 새벽 길을 떠나기 앞서 그 과객은 선비에게 서로 친구가 되자고 하였습니다. 이후로 그 과객은 선비에게 종종 찾아와 내년에 벼를 심으라 하면 벼가 풍년이 들고, 고추를 심으라 하여 고추를 심으면 고추농사가 풍년이 되는 등, 수년간 많은 재산을 모으게 하여 그 선비를 부자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허나, 이상한 것이 그 과객은 늘 한밤중에 찾아와서는 날이 새기 전 닭이 울면 사라졌습니다. 주인인 선비는 재물은 남 부러울 것 없이 많이 모았으나, 세월이 갈수록 몸이 계속 야위어가더니 마침내 몸이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
병색이 너무나 심하게 짙어지자, 그 선비는 어느 스님에게 여쭈어 보았는데, 스님께서는 그 과객에게 싫어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라 하였습니다. 시키는 대로 했더니 그 과객은 백마의 피를 가장 싫어한다 하였습니다. 젊은 선비는 스님의 말씀을 새겨 들은 이후로, 점점 그 과객이 무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선비는 자기 집의 백마를 잡아 온 집안 구석구석 백마의 피를 뿌렸더니 그동안 친절하던 과객이 도깨비로 변해 도망을 가면서 선비에게 저주를 퍼붓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로 그 선비는 건강이 다시 좋아졌습니다.그런데 해마다 동짓날이면 이 과객이 잊지않고 찾아오는지라 젊은 선비가 스님께 해마다 백마를 잡아서 피를 바를 수 없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하고 방도를 묻게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그렇다면 팥물이 백마의 피와 빛깔이 같으니 백마의 피 대신 팥죽을 쑤어 그것을 집에 뿌리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동짓날 팥죽을 끊이는 유래라 하기도 합니다.
 
삼국지의 전략가 제갈량이 남만(베트남)을 평정하러 갔을 때 노수의 귀신들이 사람의 목을 원하는지라 밀가루로 사람의 머리 모양을 만들어서 제사를 지낸 것이 만두의 유래라는 이야기를 꺼내며, 자비정신이 넘치는 불교의 동지 이야기가 만두의 전설과 비슷한 점은 바로 불교의 불살생(不殺生)*자비 방생이 그 근원을 이루고 있다고 보는 견해를 밝히는 이도 있습니다.또 초순에 동지가 들면 그 해는 애기 동지라 하여 일반가정에서는 팥죽을 끊이지 않고 절에 가서 팥죽을 먹고 돌아오는 풍습도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는 동지의 전통을 사찰에서 맛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민속을 종교적 차원에서 받아들여 더욱 그 의미를 심화시킨 불가의 동지절 행사, 이런 전통의 향기를 지켜온 불교인들이 이제 다시 영원히 꺼지지 않는 마음의 불씨를 일체 모든 생명들의 가슴에 불을 지필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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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은 남부 아시아의 중국과 인도 사이 히말라야산맥 동쪽에 있는 나라로 1907년 영국의 인정으로 군주제가 성립되었고 1947년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함에 따라 1949년 영국에 합병되었던 인도-부탄 지역을 돌려받는 대신 인도에 국방과 외교권을 위임하고 독립하였습니다.

국토의 대부분이 해발고도 2,000m 이상의 산악지대로 평야가 거의 없고 최근까지 인도의 보호 아래 있었으며, 티베트 문화권에 속하고 티베트와 같이 쇄국정책을 써왔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인도는 부탄과의 국경선에 여행 금지선을 설정하여 현재까지 외국인 입국자가 가장 적은 비경(秘境)으로 존재하고 있죠.

오래 전에 사라진 탄트라(tantra)의 사상을 간직하고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곳으로 "지구의 마지막 샹그릴라" 라고 불리는 자연 그대로 보존된 국가이자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이기도 하며 아시아에서 첫번째로 행복한 나라 이기도 합니다.

국민의 75%가 라마교(티베트를 중심으로 하여 발전한 불교)를 믿고 있기에 벌레 한마리를 해하는 것도 큰죄라생각했더 부탄왕국에 근래들어 각종범죄가 증가하고 있는데요. 그 원인을 TV 때문이라 보는 이들도 있습니다.

TV가 부탄에 처음 보급된 것은 98년 프랑스 월드컵 때문인데요. 부탄국왕은 98년 프랑스 월드컵때 임시 설치한 대형TV를 통해 축구를 보던 백성의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이들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TV시청을 허용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듬해 8월 처음 보급된 46개 채널의 외국 케이블방송에는 평화롭던 부탄왕국에서는 전혀 보지도 상상하지도 못 했던 선정이며 폭력적인 장면들이 여과없이 TV를 통해 보여지고 맙니다. 이로 인해 각종 범죄들도 조금씩 증가하기 시작했던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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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8일, 나이지리아를 방문 중인 티베트 불교 최고 지도자 달라이 라마(Dalai Lama) 14세는 "성관계는 잠시의 만족을 가져다 주지만, 그 후에는 문제를 초래한다. 반면, 정절은 보다 좋은 생활과 '보다 많은 자유'를 가져다준다"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남부의 도시 라고스(Lagos)의 호텔에서 가진 기자단과의 인터뷰에서 달라이 라마는 "성에 관한 고뇌와 성욕은 단기적인 만족에 지나지 않으며, 때로는 보다 복잡한 문제로 발전한다"고 말했다.

또한, 결혼생활에 대해서도 "너무나 많은 기복이 따른다"고 지적했다. 그는 "성욕을 갖는 것은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결혼한 남녀가 항상 많은 문제를 안고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때로는 자살과 살인까지도 일으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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