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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정말 바쁘고 지치는 한주였다. 그 끝 퇴근 시간이 다가오는 지금. 부담스러울 정도로 유명해지신 문재인, 이모부를 바라보며 국민으로서가 아닌 조카로 느낀 일이 생각 나는 그런 퇴근 무렵. 

몇 달전 전화통화를 나누던 중 어떻게 지내냐는 물음에 "그냥 평범하게 회사다니며 지내고 있어요" 라고 대답했었다. 

그러자 돌아온 말씀. "대한민국에서 평범하게 살아간다는게 얼마나 애써야지만 가능 한다는거 잘 안다. 그냥이란 말 속에는 얼마나 많은 너만 아는 이야기가 많겠니. 수고하고 다음에 보자" 퇴근길 버스를 타러 가면서 했던 이 전화를 끊고 눈물이 났었다. 

많은 어른들 심지어 우리 부모님 조차 내가 혼자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직장을 다니는 지금 내 모습을 누구나 다 하는 그런 당연한 일로 여기는데 사실 나는 많이 외롭고, 치열했고, 불안했고, 고민도 많고, 하루하루 고될때가 하루이틀이 아니였다. 그걸 알아주는 어른을 만나 기뻐서 울었던 거 같다. 

정말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기 위해 평범하지 않은 과한 노력을 요구하는 대한민국. "그냥" 이란 말 속엔 재계약할때 마다 올려달라는 전세값, 회사내에서 계약직 사원들 권고사직을 전해야하는 내 일 속 참담함 그 속에 대한민국의 현실, 서울에서 1인 가구로 살며 느끼는 물가지수, 이리저리 치이는 회사내 내위치, 그리고 적지 않은 친구들의 취업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는 마음 아픔 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잘 지내요 라고 말한거였다.  

이모부가 나에게 건넨 말은 정치인들이 시장에서 국밥 먹으며 서민들 위하자고 던지는 정치쇼 일리 없는 진짜 사람 문재인이 해주는 말인 걸 알기에 정치인 문재인을 국민으로서 나 역시 응원한다. 

국민들의 삶을 나와는 다른 개돼지로 보고 무시하는게 아닌 진정 공감하고 걱정하고 있으며 위로해주고 싶은 사람이란걸 아니까. 그가 펼칠 정책, 생각, 고뇌에는 분명 보통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는데서 출발할 걸 너무 잘아니까. 

내가 기뻐서 울었던 일을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우리를 위해 일해주는 대통령을 만나 같이 느끼길 바란다. 말도 안되는 현 정부를 끝내고 봄이 오기를 바라는 소망. (후보 아니니 이건 선거운동 그런거 아니에요 !!그냥 내생각 내인스타 내글 일뿐) - @march___27


··········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선거운동 해야하는거 아니야? 파란잠바 입고 나가야 하는거 아니야? 하길래 제 방식대로. 정치하시기 전 부터 제겐 좋은 어른이었고 귀감이 되는 분이셨습니다. 

어릴때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야? 라고 묻는 친구 말에 "우리 이모부" 라고 답했던 때도 있었으니까. 

아마 그때 친구는 뭔 알지도 못하는 소리야 했을테지만 🤣 많은 모습과 말들로 이런 생각을 했지만 그 중에서도 항상 머리를 맴도는 장면 하나가 있습니다. 

어릴적 이모집에 놀러가면 퇴근하고 돌아온 이모부는 넥타이만 풀어 놓으시고는 마당에서 기르던 강아지들에 대소변을 정리하고 밥을 챙기고 먹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그 큰 개들에 손을 붙잡고 춤을 추던 모습. 

그러면 뒤에서 이모가 소리칩니다📣 "옷은 갈아입고 하지!! " 그러시면 하시는 대답은 "오늘 하루종일 나 기다렸을 아이들인데 어떻게 내 일부터 하고 와서 해 바로 해줘야지 허허😁" 그 모습이 너무 따뜻해서 시간이 흘러도 아직까지도 선명하게 기억되는 모습입니다. 

본인을 하루를 기다린 강아지들 마음조차 헤아리고 챙기는 사람입니다. 하물며 최순실게이트가 터지고 지난 몇달을, 혹은 지난 대선이후 4년을, 어쩌면 MB정권 이후 9년을 기다렸을 국민들 마음 헤아리는건 어떨지는 말안해도! - @march___27


··········


안철수 의원 23명의 보좌진이 바꼈다... 헛 참

이 기사를 보면서 문재인 대표와 사모님을 생각해본다...

문재인 국회의원 시절, 우리 의원실은 인턴비서 부터 보좌관 지역사무국장님까지

4년동안 단 한명도 바뀐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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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통령 영부인(김정숙 여사) 중 젊었을 때 근로자들을 위해 야학 봉사한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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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변호사님 13년만에 인사드립니다."

13년전 저는 부모님을 대구지하철 참사로 하늘나라로 보내게 됬습니다. 그 아픔을 가지고 하루하루가 힘든 와중 문재인 변호사는 저랑 유가족과 함께 3개월을 사태수습을 위해 고군분투를 해주셨습니다. 문변호사님께 평생의 미안함을 드디어 풀게되었습니다.



··········


역사학자 주진오 교수의 '安이 아닌 文지지 이유'

"저는 역사학자로서, 교과서 집필자로서 이명박근혜의 역사교육 장악시도의 최전선에 서 있었습니다. 전에도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만, 그 과정에서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를 몇 번 만났습니다. 

그런데 놀랐던 것은 그가 교과서 문제에 대해 형식적으로 성의 표시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진심으로 국정 교과서를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거기에는 8종의 검인정 교과서를 모두 구해 읽어 보는 성의가 뒷바침되어 있었습니다. 이 문제를 단순히 교과서의 문제가 아닌 민주주의의 위기로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문재인이 국정 교과서 반대운동에 앞장 서서 열심히 활동할 때, 협조는 커녕 오히려 끌어내리지 못해 안달이었던 야당의원들 많았습니다. 안철수도 그 중 한사람이었지요. 당시 저는 건국절이 왜 문제인지를 완벽히 설명하고 있는 문재인과,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건국절이라 하고 다니는 안철수 사이에서 마음을 정했습니다.

그 후에도 계속해서 국정교과서 반대운동에 힘을 실어 주었던 문재인과 그 지지자들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직 국정 교과서는 완전히 폐기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문재인을 통한 정권교체를 통하여 이 땅에 다시는 국정교과서라는 망령이 나타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페친 여러분들께서도 자신의 전문 분야에 입각하여, 왜 문재인이 다음 대통령으로 적임자인지를 알려 주시는 글을 많이 올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


'문재인 후보와 김정학 판사'

"몇 분이고?"

"7시 반 넘었다."

두 고등학생이 천천히 걷고 있습니다. 다른 학생들은 뛰기 시작하는데 이들은 타박타박 천천히 걷습니다.

"이라다가 지각하겠다. 재인아, 내 가방 인주고 니는 얼릉 뛰어가라."

"괜찮다 안카나."


재인이의 친구는 다리가 불편합니다.

재인이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까지 이 친구와 함께 학교를 다녔습니다. 몸이 약한 친구를 대신하여 친구 가방까지 재인이가 늘 가방 두 개를 들었습니다. 그래도 친구는 빨리 걷지를 못합니다. 

그 친구의 느린 걸음에 재인이가 보조를 맞춥니다.

친구는 먼저 가라고 하지만 자신이 진짜 먼저 뛰어가버리면, 남은 친구의 마음이 얼마나 허전할지 그는 압니다. 그래서 그는 친구와 함께 지각을 합니다.


고등학교 1학년 소풍이었습니다. 목적지는 지금의 금정구에 있는 회동수원지.

그 당시 정학이는 먼 길 소풍을 갈 수 없어 빠지려고 했고, 그 때도 같은 반으로 늘 가까이 했던 재인이가 도와주겠으니 같이 가자고 권유하여 용기내어 소풍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 때는 버스종점에 집결하여 회동수원로 가는 길이 그렇게 멀었습니다.

그 당시 재인이는 정학이만큼 키도 작아서 함께 앞줄에 서서 출발하였습니다.

그런데 점점 뒤쳐져 어느 덧 친구들은 보이지도 않게 되었고, 또한 지친 정학이가 걷기 힘들어하니 재인이가 갑자기 친구에게 등을 들이대었습니다.

"업히라"

정학이를 업었습니다.

허나 당시 자신도 덩치가 조그맣고 힘이 세지도 않아 정학이를 조금 업고 가다 내려놓고, 그렇게 둘이 같이 걸어가다 또 정학이를 업고 조금 가다가 내려놓고, 그렇게 하면서 쉼 없이 갔다고 합니다. 그 때 재인이의 생각이 자기가 조금 더 키 크고 힘이 세었으면 정학이를 맘껏 업고 갈텐데.. 하면서 속으로 울었답니다.

그렇게 가다가 시간이 흘러 배가 고파 중도에서 가져간 도시락을 까서 나누어 먹고 하면서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결국 목적지인 소풍장소에 도착했답니다.

그때 이미 소풍행사는 거의 끝나가고 있었고, 그리하여 한숨 좀 쉬고 30분 후에는 다시 돌아오게 되었는데, 이때에는 많은 친구들이 이런 사정을 알게 되어 정학이를 교대로 업고 즐겁게 이야기하면서 어울려 돌아오는 바람에 더 이상의 고생은 면했다고 합니다.

다리가 불편했던 친구에게 그 해의 소풍은 가장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현재 인천지법 부장판사로 재직 중인 김정학 판사.

그가 문재인의 등에 업혔던 바로 그 친구입니다. 그가 기억하는 문재인은 그렇게 남의 아픔을 헤아리는 친구였습니다.

나아가 인간에 대한 깊은 배려를 말보다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정학이는 친구 재인이에 대하여 또 이렇게 우정을 회상해 중,고등학교 친구들에게 알린 적이 있습니다.


'내가 젊었을 적에 법대를 나왔으나 집안 사정으로 고시공부를 접고 조그만 사업을 한 적이 있었다. 머리와 성실성으로 승부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비록 조그맣지만 그 사업이란 것이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고, 그야말로 엉망진창이 되어 앞날이 캄캄했다. 그 무렵 재인이는 변호사가 된지 얼마되지 않아 그다지 여유가 있을 때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의 이러한 사정을 알고 자기가 모든 비용을 다 댈테니 나에게 다시 고시공부를 할 것을 권했고, 내가 주저하자 후배까지 보내어 기어이 결심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나는 염치없지만 서울에서 부산으로 재인이가 이미 구해놓은 부산 구포에 있는 고시원으로 내려갔고, 그로부터 2년 동안 재인이가 그동안 내용이 바뀐 고시공부 책 모두를 새 책으로 사서 넣어주고 고시원 비, 용돈까지 대어주면서 공부를 시켜주었다.

다행히 1년 만에 1차, 2년만에 2,3차를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에서도 열심히 공부하여 판사 임관까지 받을 수 있었으나, 어쩜 불합격의 굴레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면 재인이는 어떤 무한 책임까지 질 각오였을까? 그 뒤에는 서로 서울과 부산에서 거주한 관계로 만나는 것 조차도 쉽지 않은 사이가 되었지만, 그리고 아직 그 빚을 조금도 갚지 못하고 있지만, 세상에 이렇게 자랑스러운 우정을 내가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그저 생각만 하여도 항상 벅차고 훈훈하다. 사람이 남에게 신세를 많이 진 사실이 이렇게 가슴이 뿌듯하다니..'


정학이는 얼마 전 친구 재인이에 대하여 이렇게 평가한 적이 있습니다.

"내 친구 재인이는 공산당을 피해서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된 흥남부두에서 겨우 배를 얻어타고 남하한 피난민 2세이다. 그의 정서는 기본적으로 피난민 정서이다. 공산당 하면 자다가도 놀라 벌떡 일어날 피난민 정서이다. 다만 이 땅에서 맨 몸으로 살면서 겪은 모순에 대한 진한 아픔과 피난 못해 남겨진 북한주민에 대한 진한 연민이 혼재되어 있을 뿐이다. 친북이나 빨갱이와는 거리가 먼 것이 아니라 아예 방향 자체가 다르다. 공산당에 대하여는 그 무엇보다도 싫어하는 DNA가 생래적으로 각인 되어 있는 사람이다. 진정코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따뜻한 피가 흐르는 아름다운 사람이다."


··········


제가 오늘 이 자리에서 처음으로 밝히겠다. 재작년 11월14일에 백남기님이 물대포 맞았다.

11월 15일에 수술이 끝났는데 11월 15일 혼자 오셨다.

수행비서 한분 데리고 오셔가지고. 기자도 한명 없었고 대표님 혼자 오셔서 30분 내내 저 자세로 말씀을 들으셨다.

30분 내내 말씀을 들으시고, 가시면서 정치인들은 보면 금일봉 이라는 걸 전하지 않나.

보통 정치인들은 이렇게 드리는데 대표님은 돌아서셔서 행여나 누가 볼까봐. 돌아서셔서 사모님한테 드리는 것을 봐버렸다.

그러고 나중에 알고 보니까. 백남기 어르신께 총 5번을 가셨다.

그 뒤로 민주당 대표에서 물러나고 양산 자택으로 내려가시는 길에도 기어이 서울대 병원 들러서 가신 분이다. 전 그걸 증언을 하고 싶었다. 감사하다. 

포럼 참가자 한 분이 밝힌 문재인의 미담.


··········


5년 전의 일입니다.

참여정부가 끝나고 문재인 후보가 고향 양산 시골집에 내려와 있을 때였습니다.

저와 문후보는 내외간에 잘 아는 사이인지라 집사람과 함께 양산 집에 놀러갔지요.

그 집은 자그마한 단독주택입니다. 마당도 좀 있지요.

근데 집 마루에 죽은 쥐가 있는 겁니다. 요즘 아무리 농촌이라 해도 마루에 죽은 쥐가 있는 건 참 보기 드문 일입니다.

사실 좀 놀랬습니다.

이 집에 쥐가 그렇게 많은가 싶기도 하고, 왜 이걸 안 치웠나 싶기도 하고 희한한 일이다 했습니다.

근데 부인 김정숙 여사가 나오더니 황급히 쥐를 치웁디다.

제가 물어봤습니다. "집에 쥐가 많습니까, 쥐약이라도 놓은 겁니까" 그랬더니 김여사 말씀이, 그 집 고양이가 문후보 보여주려고 매일 쥐를 잡아와서는 마루에 놓아둔다는 겁니다.

문후보 집 고양이 이름이 찡찡이 입니다.

그 녀석은 유기묘, 그러니까 유기견처럼 버려진 고양이에요.

찡찡이는 문후보가 데려와서 키우고 있었는데, 얼마나 녀석을 사랑해줬으면 주인님에게 칭찬받으려고 열심히 쥐를 잡아오는 거였습니다.

김여사님은 그런 찡찡이 마음을 아니까, 문후보가 집에 와서 죽은 쥐를 보고 찡찡이를 불러 칭찬을 해줄 때까지 치우지 않고 그대로 두고 있었습니다.

부창부수, 그 지아비에 그 아내다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유홍준-

그는 지난 대선에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유기견 유기묘 데리고 청와대 들어가는 첫 대통령 되겠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 더불어 동물도 함께 행복한 세상이 오기를 바랍니다.

··········


문재인 후보의 아내 김정숙 여사가 말하는 '문재인과 감나무'

이 사람이 굉장히 아름다운 사람이에요.

우리 집이 이사갔을 때 감나무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 감나무는 오래되지는 않았는데요. 꽤 연령이 오래된 나무였는데 감은 안열리고 잎만 매일 무성해요.

옆집 담 너머의 감은 주렁주렁 열렸는데 우리 감은 안 그러니까, 제가 조바심이 나서는 일년은 정성껏 감나무에 거름도 주고 뭐도 주고 이러고 했어요.

남편하고 야생화를 좋아해서 봄마다 야생화를 갖다 심는데, 야생화가 비쌌거든요.

그런데 그 야생화가 감나무 잎이 무성하니까 다 그 다음 해에는 안 나는 거에요. 응달이 돼 갖고... 2년 째도 또 그랬어요.

3년 째가 되어서 남편한테 으름장을 놓았어요.

"만약에 당신 있잖아, 올해도 이 감나무가 감을 안 열면 이 감나무 잘라버릴거야." 이랬어요.

왜 3년을 기다렸냐면 이 사람이 풀 한포기 뽑는 것도 아까워하고 나무가지 치는 것도 그렇게 아까워해서요.

저는 꽃꽂이를 해갖고 과감하게 가지를 치거든요.

그랬다가 (가지치기를) 하면은 그 날 와 가지고선, 제가 머리 자른 건 몰라 봐도요, 나무 가지 친 것은 알아보면서 있지요 그러면서 저를 닥달 했어요.

3년을 기다리고 나서 그해 봄에, "내가 올 가을에 이 감나무 감 안열리면 내가 좋아하는 야생화 또 사다심고 안되겠다 싶으면 잘라 버릴거야." 이러고서 으름장을 확실하게 놓았어요.

그랬더니 이 사람이요. 이렇게 보면 감나무를 쓰다듬고 있고, 어느 날은 감나무 잎을 만지고 중얼중얼 대고 어느 날은 감나무를 싸안고, 어느 날은 뒤로 싸안고, 어느 날은 이 사람이 그 밑에 가서 뭘 만지작 거리면서 한도 끝도 없이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아니, 왜저러나?' 그랬더니, 그 해에 감나무에 감이 세개가 열렸어요.

그래서 내가 너무 놀라서 "어머 여보 감이 세개 열렸다 어머 어머" 이랬더니, 저희 남편이 이러더라구요.

"내가 그 감나무한테 가서 맨날 나는 너를 사랑한다. 너 잘커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 마누라가 너를 자른단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이러면서 여름내내 봄부터 그랬다는 거 아니예요.

그래서 그 다음부터 이 사람이 이렇게 생명을 사랑하는데 하찮은 나무 자르는 것도 자기 자르듯이 아파하고 이러는데... 그러고 또 부산에서 변호사 생활하면서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 항상 앞장서서 했거든요.

'자기가 사람을 사랑하는 이런 마음은 정말 근본적으로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되는구나.' 해서, '아, 이런 사람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다' 라는 생각을 했어요.

··········


갑자기 옛날 일이 생각나서 글을 써봅니다.

저는 배를 타던 사람입니다.

2010년에는 K모 선사에서 Collonge호를 1년간 승선했었는데 그때 같이 비행기 타고 승선했던 분이 문대표님 동생 문재익 선장님 입니다.

항간에는 원양어선 선장이란 말이 떠돌던데 해양대 해사대학 나오신 제 선배님이시고 상선 선장님 이세요.

어쨌든 이 문재익 선장님이 해주신 이야기가 있어요.

형 이야기를 아예 안하셔서 거의 배 내리기 직전까진 형이 문대표님인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마지막 즈음에 술기운에 이야기를 흘리셨었죠.

그때 술 안드셨으면 아예 모르고 살았을 듯..

처음에 문대표님이 비서실장이 되었을 무렵, 문선장님은 지금 망해 없어진 STX에서 승선하고 계셨다더군요.

문대표님이 비서실장이 되자마자 STX에서는 문선장님을 해상직에서 육상직의 꽤나 높은 자리로 직책을 변경 시켰대요.

그 소식을 들은 문대표님이 문선장님한테 연락해서,

STX에서 그런다고 해도 STX에 도움 줄 일은 없을테니 당장 다시 배타러 돌아가라고 했다네요.

그래서 형 등쌀에 다시 승선을 하게 되셨다고.ㅋㅋ

그때 문선장님이 술에 좀 취하셔서 형 욕을 엄청 하면서 이야기 하셨는데 ㅋㅋㅋ

요즘에 다시 생각해보니 누구랑은 너무나 다른걸 뼛속깊이 느낍니다.


··········


연극 연출가 이윤택이 말하는 문재인

(1) 

고등학교 1학년때. 소풍을 가잖아요? 소풍을 가면 일단 버스를 타고 갑니다.

버스를 타고 가서 내려서는 산길로 올라가게 되어있죠. 

뭐 저수지를 간다든지, 절에 간다든지...

걸어갈 때 다리 아픈 친구가 뒤처진 거예요.

근데 많은 학생들은 그냥 다리 아픈 친구가 절뚝이면서 뒤쳐져 가는걸 보면서도 그냥 지나갑니다,

자기 앞길만. 

그때 문재인 후보가 그 다리 아픈 친구하고 같이 보조를 맞추면서 걸어갔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독일의 유명한 극작가 브레이트의 <예스맨, 노맨>의 선택의 기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브레이트의 교육극이죠. 그 친구가 이야기 합니다.

"나는 더 가기 힘드니 너라도 먼저가라, 너라도 먼저 가서 소풍을 즐겨라. 나는 여기서 기다리겠다."

그때, 브레이트적인 교육극의 선택은 두가지입니다.

한 친구가 친구를 위해서 같이 소풍을 포기 하던지

아니면 나라도 먼저 소풍을 가서 소풍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해줄게.

이게 <예스맨, 노맨>인데요.

이때 문재인군은 독일 브레이트식 선택을 하지 않았습니다.

완전히 한국적인 선택을 합니다. 한국적인 선택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같이 가~자!"라고 하면서 업어버린거예요 

이건 독일 교육극에도 없는 이야기 입니다. 그냥 친구를 업은 거예요. 업고 걷기 시작한 거예요.

이 미담이 인간 문재인을 가장 적합하게 표현한다고 생각합니다.

같이 가다가 주저앉고, 도시락 같이 까먹고, 하염없이 털래 털래 걸어서 도착 했는데....

도착하자 30분 안에 또 돌아오게 됐어요. 

그때서야 비로소 같은 반 친구들은 확인하게 됩니다.

우리가 소풍을 즐기고 있는 동안에 문재인이라는 친구는 친구를 업고 여기까지 왔다는 거죠.

여기서 1학년 같은 반 학생들은 굉장한 반성과 감동을 받게 됩니다.

돌아올 때는 어떻게 돌아왔겠습니까? 

50명이나 되는 같은 반 친구들이 50분의 1씩 자신의 등을 대어줍니다.

아픈 친구를 위해서 업고, 또 다른 친구가 업고, 또 다른 친구가 업고.

그렇게 해서 50명의 같은 학생들을 완전히 하나된 공동체로 만든 것입니다.

이게 경남고등학교시절 문재인이 이룩한 아름다운 신화입니다.

(2)

문재인 후보가 청와대 근무할 때, 경남고등학교에서 동기 동창들이 기대를 하고 많이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아예 면회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전화도 받지 않았습니다.

어떤 친구가 어떻게 어떻게 해서 청와대에 들어갔는데, 문재인 후보가 그 친구를 보는 순간 의자를 딱 180도 돌려 뒤돌아 앉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동기들에게 인심을 많이 잃었죠.

​저로 예를 들어볼까요?

저도 2005~7년 시절에 국립극단 예술감독으로 재직하고 있었습니다.

국립극단 예술감독은 어떤 청탁이나 정치적인 것으로 결정되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냥 연극 연출가는 한 번씩 하는 자리예요. 그때 노무현 대통령도 제가 연출한 창극 <제비>를 보러 오셨어요.

근데 대통령 비서실장이 안 왔더라고요. 제 친구가 제 연극을 보러 안 왔어요.

대통령도 오는데. 제가 상당히 섭섭했습니다. 이 친구가 참 너무 하다. 내가 지 동기라고 안 오는 구나.

국립극단에 와서 아는 체하면 아, 저 친구가 서로 연줄이....이런 생각때문에 안 온 것 같아요.

누가 혹자는 우스갯소리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당신이 이렇게 지원 유세를 나서면 아, 문재인 대통령 시절에는 문화부 장관을 하지 않을까, 이런 말도 해요.

저는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아마 잠수해야 될 겁니다.

많은 문화 예술인들이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특히 연극인들이 너무나 없이 살거든요.

이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부탁거리 너무나 많은 것들을 들고 저한테 찾아올 거예요.

대통령 친구니까. 근데 문재인 후보가 들어줄 것 같습니까? 절대 안 들어줍니다.

제가 1986년 12월에서 87년 2월 그 3개월 동안 문재인 후보를 서너 번 만났습니다.

왜 만났는가 하면 표 팔려고 만났어요.

제가 연극을 다시 시작해서 변호사 사무실에 표를 100장을 가지고 갔습니다.

지금 돈으로 하면 만원, 100장이면 백만원이죠.

그때 내 동기들은 돈 있는 제 동기들은 표를 안 팔았어요.

표를 받고 그냥 돈 100만원을 그냥 저에게 줬어요. 어떤 친구는 한 장도 안 팔아줬죠.

문재인 변호사는 저한테 표를 예순 넉장을 팔아줬습니다. 제가 그걸 기억합니다.

예순 넉장. 64만원을 저한테 입금시키고 36장을 돌려줬는데 거기 36장 표가 때가 새카맣게 쩔어있었어요.

사람들에게 판 거예요. 이게 손을 거친 거예요.

팔다가 팔다가 안 판것은 할수 없이 돌려주고 판돈 64만원만 저한테 돌려주었습니다.

문재인 변호사는 청렴한 면에서는 거의 극단적일 정도로 자신을 깨끗하게 지켰습니다.

​손때에 쩔어버린 표....

그 당시 자신의 경제력 수준에서는 값싼 동정이 손쉬웠겠지만 친구를 위해 자신의 정성을 다했던 겁니다.

변호사 시간당 단가가 표값보다 아마 몇 배는 더 많았을텐데 말입니다...

- 김채현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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