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요즘 언론사와 여론조사에 얽힌 속사정>

국내 굴지의 언론사에 재직 중입니다. 요즘 각종 언론의 보도 행태와 편향된 여론조사에 속앓이를 하시는 분들이 많을텐데요, 이와 관련해서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조금도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최후의 발악을 펼치는 중입니다. 왜 그런지, 제 경험을 토대로 말씀드릴께요. 


두 번의 민주정부를 거치며, 언론사들 내부에서는 수십 년간 군부정권에 기생하던 부역자들을 청산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합니다. 그런데 이 "청산"이란 것이, 흔히들 생각하시는 것처럼 면직이나 퇴사 등을 통해 업계 바깥으로 내쫓은 게 아니라, 언론사 내부에서 영향력이 적거나 거의 없는 한직으로 "유배"를 보낸 것에 지나지 않기는 했지요... 정규직인 회사원들을 막 자르는 건 불가능하기도 했고요.  


아무튼, 언론사 직원들은 더 이상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게 되었고, 직업 윤리의 정도를 걸으며 일하는 것만으로도 대한민국의 언론사들은 2000년대 초반에 황금기를 맞이합니다. 

그랬던 것이, 이명박의 대통령 당선을 기점으로 급변합니다. 박정희 시절 실세였던 공안 검사 김기춘이 30년을 와신상담해서 박근혜의 대통령 당선과 더불어 화려하게 부활했던 것처럼,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면서부터 "올드 보이들의 귀환"이 시작됩니다. 10년 간 절치부심, 부활의 기회를 엿보던 그들은 각 언론사의 사장부터 시작해서 간부 라인 전체를 장악합니다. 그리고 용비어천가를 부르기 시작하죠... 


전반적으로 무능력하고 권력의 눈치만 살피는 일로 일신의 영달을 꾀해온 그 세력들이 지금 온갖 언론사를 장악하고 있는 거에요. 작년 박근혜 탄핵부터 시작해서 현재까지, 일반 시민들은 이 땅에 봄이 오는 걸 체감하고 있지만, 언론사들 내부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여전히 부역자 간부들이 회사를 장악하고 있고요, 엄혹했던 이명박 박근혜의 재임시절과 달라진 게 전혀 없어요...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장미 대선을 통해 정권 교체가 될 것 같잖아요? 그럼 "적폐세력"에 대한 청산이 단행될텐데, 언론사들도 차기 정권의 눈치를 봐야할 것 같죠? 그게 상식인데요, 그들은 전혀 상식적이지 않아요.

윤리와 정의 같은 개념 자체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권력과 이익 보호에 가장 민감한 타입의 사람들이지요... 세상이 변하고 있음을 최전선에서 가장 실감하고 있을 그들이 느끼는 것은, 바로 지금이 자신들에게 허락된 마지막 기회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현실을 호도하고, 편향적인 기사를 거리낌 없이 쏟아내며 대한민국의 거대한 흐름을 자기네 쪽으로 바꿔보려고 가장 사악한 언론의 면모를 가감없이 드러내는 중입니다.


거짓 정보로 대중을 선동하고 있는 거에요... 마치 나치 정권의 선전장관이었던 괴벨스가 그랬던 것처럼요... 네, 맞습니다. 지금이 정말로 그들에게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정권이 교체되면, 이번에는 단지 "유배"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그들은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악의적인 보도를 하고, 모집단과 설문조사항목에 대한 기술적인 조작을 통해 민의와는 반대되는 여론조사를 지속적으로 발표하는 겁니다. 궁극적으로 그들이 노리는 것은, 네거티브 보도를 통해 나쁜 인상을 심어주고, 왜곡된 여론조사를 펼쳐놓으며 투표 의지를 꺾는 겁니다. 그게 지금 그들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생존 방법이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앞으로 대선까지 남은 한 달의 기간 동안 유수한 언론사들이 어떤 기사를 내보내든, 여론조사 기관들이 어떤 결과를 발표하든, 그것을 곧이 곧대로 믿지 마십시오. 그것들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대단히 높습니다. 언론계를 장악한 적폐세력들은 단지 이명박 박근혜, 9년에 걸쳐 자라난 게 아닙니다.

그들의 뿌리는 아주 깊고 오래되었어요... 그걸 완전히 없애기 위한 첫 걸음이 정권교체라고 생각하고요, 미디어에서 쏟아 내는 기사나, 여론조사 기관들이 공표하는 숫자에 조금도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주세요. 지금은 그 어떤 언론사도, 단순히 신뢰해서는 안 됩니다. 기사를 읽을 때는 텍스트를 곧이곧대로 믿지 마시고 적극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파악해 주세요. 

오직, 깨어있는 시민의 힘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 오유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한경오 불매 및 후원 중단은 시민주권운동>

1.

한겨레, 경향, 오마이뉴스의 편파보도와 왜곡보도에 시민들이 불매 및 후원 중단으로 맞서고 있다. 이는 단순한 소비자 권리 찾기를 넘어 시민주권운동이다. 시민들이 가진 수단은 많지 않다. 정치권력, 자본권력, 언론권력 그 무엇을 상대하더라도 시민들이 가진 수단은 제한적이다.

2.

정치권력에 대해서는 고작해야 투표권 행사가 있었고, 청원권, 민원에 불과했다. 커뮤니케이션이 마땅치 않던 70-80년대는 신민당사 점거, 미문화원 점거농성 등과 같은 실제 몸을 움직여 행사할 뿐이었다. 이제는 스마트폰 대중화에 힘입어 다양한 방법으로 의사를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18원이라는 항의성 후원금, 문자 항의가 대중화되고 있다. 시민들은 이런 방법을 통해 정치인들을 압박하고 있다. 한번 뽑아놓고 알아서 하게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의정활동 전반에 대해 시민들 스스로 감시활동을 하고 개입하는 것이다. 이는 간접민주주의(대의민주주의)의 단점을 보완하는 행동이다.

3.

자본권력에 대해서는 더욱 수단이 마땅치 않다. 불량제품에 대해서는 소비자보호원에 민원을 넣어서 해결하는 방법이 있고,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당시 농심 등 여러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과 같이 직접 소비자운동을 전개하는 방법이 있다. 시민들의 압력에 일부 기업들은 광고를 철회하기도 했고, 이로 인행 업무상 방해죄로 기소되는 우여곡절도 겪었다. 1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은 활동가들도 있다. 그러나 2013년 대법원은 이 판결을 파기하고 다시 심리하라고 판결했다. 시민들이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불매운동은 최소한의 항의다.

4.

언론권력에 대해서는 과거 안티조선운동이 선구자적이었다. 단순한 불매운동을 뛰어넘는 수준의 운동이었다. 하지만 안티조선운동은 조선일보 그 자체를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효과가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오히려 진짜 효과는 시민들이 언론을 수용하는 데 있어서 비판적 인식과 태도를 갖게 된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 있다. 그 이전까지 언론보도는 그 자체로 사실로 통용됐다. 이를 넘어서 언론보도가 중요한 근거로 사용되기도 했다. “신문에 났다”는 말 한 마디가 논란을 종결시킬 정도였다. 이런 수용 태도에 일대 변혁을 가져온 것이 안티조선운동이다. 조선일보가 변하지 않았다고 하여 효과가 없었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다. 이후 세월호 참사 당시 언론보도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누적된 시민들의 소비자주권운동, 즉 시민주권운동이 큰 영향을 끼쳤다.

5.

2017년 현재 안철수 띄우기에 나섰던 한겨레, 경향, 오마이뉴스, 무리하게 문재인을 비판하려다가 최동원 선수와 유가족을 모욕한 시사인 등에 대한 절독 및 후원 중단이 일어나고 있다. 문재인에게 지극히 편파적이고, 심지어 여론조사 왜곡 등 안철수 띄우기에 항의하고 있다. 이는 과거 안티조선의 연장선이다. 시민들이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는 절독 및 후원 중단 말고는 없다. 언론이 실제로 압박을 느낄 수 있는 수단이 이것 말고 있는가?

그런데 절독 및 후원 중단이 효과적이지 않다고? 그럼 뭐가 효과적인가? 기레기로 놀리면 효과적이라고? 기레기 소리 한 두 번 듣나? 대통령 후보 유세현장에 한경오 기자들 나타나면 야유를 보내면 되는가? 이것도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몇 안되는 수단의 하나이고 병행할 수 있을 뿐이다.

한경오를 ‘우리 편’이라고 이야기한다. 이게 진영논리다. 그동안 시민들은 이런 진영논리 때문에 불만이 있어도 참아줬던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못참겠다는 것이다. 시민들이 가진 정당한 권리를, 정당한 방법으로 행사하는 것이다. 우리 편, 니 편 지겹다. 이 논리 때문에 한경오는 변하지 않았다. “니들이 가면 어디 가겠어”라며 시민들을 우습게 안다.

후원 중단? 이 돈은 그냥 도와주는 돈이다. 언론이 원래 가졌던 권리가 아니라 시민들이 베풀었던 호의다. 후원을 중단하는 것은 그 호의를 더 이상 베풀지 않겠다는 의미다. 언론사의 권리침해도 아니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줄 안다는 말이 허튼 소리가 아니다.

구독중단은 불매운동과 같은 맥락이다. 한경오야 말로 언론소비자들의 안티조선, 조선일보 광고주 불매운동 등을 응원했던 매체들이다. 경쟁자들을 향했던 시민들의 함성이 자기들을 향하는 것은 못참겠다는 것인가?

그리고 심각한 것은 자신도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시민들의 정당한 권리에 기반한 정당한 절독 및 후원 중단에 대해 효과적이지 않다는 둥, 영세한 같은 편한테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둥 훈장질을 하고 있다. 이게 다 주제파악이 안되서 그런거다.

한경오가 스스로 떳떳하다면 시민들이 절독을 하든, 후원을 중단하든 꿋꿋이 자신들의 길을 가면 그만이다. 안그런가? 궁시렁대지 마라. 그럴수록 당신들은 더 쪽팔린다. 나같으면 내가 옳다고 믿으면 후원이 끊기든, 나를 차단하든 신경 안쓴다. 당연스럽지만, 내가 오판을 했다면 당연히 나는 잘못에 대해 사과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후원금을 구걸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결정권은 오로지 시민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후원하고 말고, 구독하고 말고는 시민의 권리다.

Soon Wook Kwon 페이스북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소비자는 호갱에서 탈출할 권리가 있다.>

미워도 다시 한 번.

최근 들어 싫어하게 된 표현이다.

지난 9년 간 민생경제를 파탄내고 민주주의를 짓밟은 주제들이 미워도 다시 한 번을 외치는 꼴이 기가 막히다. 서민 등골 뽑아먹어서 밉겠지만 다시 한 번 등골 좀 뽑아먹게 해달라는 소리다.

납세는 의무이지만 또한 권리이기도 하다. 국가에 돈을 주고 있으니 그에 합당한 권리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화장품 하나만 해도 내 피부에 안 맞으면 두 번 다시는 사지 않는 것이 당연한데, 하물며 정권은 어떠하겠나.

어차피 쓰는 돈이라면 나를 위한 소비를 해야 하고 장기적으로 무엇이 이익인지 생각해야 한다.

기왕이면 오뚜기를 먹고 유한양행을 구매하는 것. 가급적이면 남양을 사지 않고 삼성을 구매하지 않는 것.

당장의 1+1 이익보다는 거시적 이익이 될 소비행위를 하는 것. 아무 생각 없이 습관성 소비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 돌아보는 것.

이런 것들이 나를 기업의 호갱님으로, 정권의 개·돼지로 전락시키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다.

언론사도 마찬가지다.

김대중 대통령이 남긴 말이 있다.

"나쁜 정당에 투표하지 말고, 나쁜 신문을 보지 않고,

집회에 나가고, 인터넷에 글을 올리고,

하다못해 담벼락을 쳐다보고 욕이라도 할 수 있다.

하려고 하면 너무 많다."

나는 김대중을 거저 얻은 세대라서 그를 잘 모르는데, 이런 글귀 하나만 해도 그의 통찰력이 어떤 것일지 감히 짐작이 된다.

김대중은 나쁜 정당 다음으로 나쁜 신문을 말했다. 새누리당 다음으로 민주주의를 해치는 존재가 언론이라는 말씀이다.

조중동 절독 운동을 끈질기게 해야 하는 이유다. 한경오프를 비롯한 진보팔이 앵벌이들에게 후원을 끊어야 하는 이유이다.

우리 편이니 봐주자는 동정론에 나는 동의할 수 없다. 그들마저 망해버리면 진보 언론은 아예 없지 않느냐는 말에도 동의 못 한다.

삼성 엘지 다 망한다고 세탁기가 시장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새로운 세탁기 제조기업이 나타나 소비자 요구를 채우게 될 거다.

벼룩시장 취급 받던 한겨레가 메이저급으로 성장한 기반 역시 시장의 요구였다. 보수의 나팔수 노릇만 하는 기존 조중동에 질려버린 깨어있는 시민들의 요구와 열망이 모여 키워낸 한겨레다. 진보언론 시장의 파이가 커지자 연이어 창간한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이다.

이들이 소비자 요구를 외면하고, 급기야 자신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요구하지 말라고 짜증까지 부리게 된 배경이 바로 '미워도 다시 한 번'이다.

이들의 보도 방침을 비판하면 '수준 낮고 시끄러운 부류' 취급을 받는 상황에서, 소비자인 내가 더 이상 그들을 구매할 이유는 없다. 돈 있어서 갑질하는 조중동에 비해 돈 없어서 불쌍한 한경오? 그건 내 알 바 아니다. 나도 돈 없다.

내용의 공정성과 합리성을 떠나서, 조중동은 적어도 자신들의 소비자층에 대한 배반은 하지 않았다. 한경오는 배반했다. 그나마 유지하고 있던 공정성과 합리성의 가면마저 벗어던지면서 말이다.

진보언론 시장은 여전히 크다.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다. 한경오가 망해도 시장의 크기는 축소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새로운 진보언론들이 대체제가 되어 소비자의 요구에 응답할 것이다.

더 이상의 호갱짓은 사양한다.

#언론적폐 #호갱짓은_사양한다

- Eunjeong Song 페이스북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뉴스타파 - 목격자들 4회 '건달 할배, 채현국'

뉴스타파 - 목격자들 26회 "추석특집 1부, 채현국을 만나다"(2015.9.25)

뉴스타파 - 목격자들 27회 "추석특집 2부, 채현국을 만나다"(2015.10.2)

채현국 선생에 대한 기록은 변변한 게 없다. 출생연도 미상. 대구 사람. 서울대 철학과 졸. 부친인 채기엽과 함께 강원도 삼척시 도계에서 흥국탄광을 운영하며 한때 "개인소득세 납부액이 전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거부였던 그는 유신 시절 쫓기고 핍박받는 민주화 인사들의 마지막 보루였다. 언론인 임재경의 회고에 따르면 채현국은 <창작과 비평>의 운영비가 바닥날 때마다 뒤를 봐준 후원자였으며 셋방살이하는 해직기자들에게 집을 사준 "파격의 인간"이다. 김지하, 황석영, 고은 등 유신 시절 수배자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고 여러 민주화운동 단체에 자금을 댄 익명의 운동가, 지금은 경남 양산에서 개운중, 효암고를 운영하는 학원 이사장이지만 대개는 작업복 차림으로 학교 정원일이나 하고 있어 학생들도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고 했다. 한사코 인터뷰를 거부하던 채현국 선생을 지난 12월23일 조계사 찻집에서 어렵사리 대면했다. 검은 베레모에 수수한 옷차림, 등에 멘 배낭은 책이 가득 들어 묵직했다. 노구의 채현국은 우리 일행에게 허리를 굽혀 절을 하고 깍듯이 존대를 했다.


기자-왜 그렇게 인터뷰를 마다하시나?

채현국 - "내가 탄광을 한 사람인데…. 사람들이 많이 다치고 죽었다. 난 칭찬받는 일이나 이름나는 일에 끼면 안 된다."

기자-탄광사고는 다른 탄광도 마찬가지 아니었나?

채현국 - "그게 결국은 내 책임이지. 자연재해도 아니고…."


흥국탄광이 설립된 것이 1953년. 열일곱 살 때부터 채현국은 서울에서 연탄공장을 하며 부친의 일을 돕기 시작했고 10여 년 후부터는 본격적으로 도계에 내려가 73년까지 회사를 운영했다.

기자-젊어서는 큰 기업가였고 현재 학원 이사장인데, 어르신 70 평생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다. 평전이나 자전에세이 같은 것도 없고.

채현국 - "절대 쓰지 않을 거다. 주변 사람들한테도 부탁했다. 쓰다 보면 좋게 쓸 거 아닌가. 그거 뻔뻔한 일이다. 난 칭찬받으면 안 되는 사람이다."

기자-죄송하지만 연세도 잘 모르겠다. 몇 년도 생이신가?

채현국 - "호적에는 1937년생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35년생이다. 올해 일흔아홉."

기자-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이 쓴 글에 보면 "채현국은 거리의 철학자, 당대의 기인, 살아있는 천상병"이라는 대목이 있다.

채현국 - "하하하… 거지란 소리지."

기자-어쨌든 주류 모범생은 아니신 듯하다.(웃음)

채현국 - "근데 시험을 잘 치니까 내가 모범생으로 취급되고. '저러다 언젠간 출세할 거야' 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10여 년 전부터 내게 성을 내는 친구들이 있다. '이 새끼, 출세하고 권력 가질 줄 알았는데 속았다'고….(웃음)"

기자-출세는 안 하신 건가, 못 하신 건가?

채현국 - "권력하고 돈이란 게 다 마약이라…. 지식도 마찬가지고. 지식이 많으면 돈하고 권력을 만들어 내니까…."


자세한 얘기를 듣고 싶었다. 채현국 선생과의 인터뷰는 긴 실랑이 끝에 몇 가지 약속을 전제로 성사되었다. "절대로 자선사업가, 독지가라는 표현을 쓰지 않을 것" "미화하지 말 것" "누구를 도왔다는 얘기는 하지 말 것."

기자-도움 받은 사람들이 있는데 왜 도운 사실을 숨기나?

채현국 - "난 도운 적 없다. 도움이란, 남의 일을 할 때 쓰는 말이지. 난 내 몫의, 내 일을 한 거다. 누가 내 도움을 받았다고 말하는지는 몰라도 나까지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될 일이다."

기자-왜 안 되나?

채현국 - "그게 내가 썩는 길이다. 내 일인데 자기 일 아닌 걸 남 위해 했다고 하면, 위선이 된다."

기자-한때 소득세 10위 안에 드는 거부였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어떠신가?

채현국 - "난 여섯번 부자 되고 일곱번 거지 된 사람이다. 지금은 일곱번짼데 돈 없는 부자다.(웃음) 돈은 없지만 학교 이사장이니까. 개인적으론 가진 거 없다. 보증 불이행으로 지금도 신용불량자다."

기자-탄광업에선 완전히 손 떼셨나?

채현국 - "73년도에 탄광 정리해서 종업원들한테 다 분배하고 내가 가진 건 없다."

기자-어떻게 분배를 했나?

채현국 - "광부들한테 장학금 주기 시작해서 그 자식들 장학금 주다가 병원 차려서 무료 진료하다가… 마지막에 손 털 때는 광부들이 이후 10년씩 더 일한다 치고 미리 퇴직금을 앞당겨 계산해서 나눠줬다."

기자-73년이면 오일쇼크로 탄광업이 황금알 낳는 거위였을 텐데 왜 기업을 정리했나?

채현국 - "경기 좋을 때였다. 근데 72년도에 국회 해산되고 유신 선포되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곤 '이제 더 이상 탄광 할 이유가 없겠다'고 결론 내렸다. 내가 정치인은 아니지만 군사독재 무너뜨리고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일을 해왔는데…."

기자-그럴수록 돈을 벌어서 민주화운동을 지원해야 하는 것 아닌가?

채현국 - "사업을 해보니까… 돈 버는 게 정말 위험한 일이더라.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돈 쓰는 재미'보다 몇천배 강한 게 '돈 버는 재미'다. 돈 버는 일을 하다 보면 어떻게 하면 돈이 더 벌릴지 자꾸 보인다. 그 매력이 어찌나 강한지, 아무도 거기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 어떤 이유로든 사업을 하게 되면 자꾸 끌려드는 거지. 정의고 나발이고, 삶의 목적도 다 부수적이 된다."

기자-중독이 되는 건가?

채현국 - "중독이라고 하면, 나쁜 거라는 의식이라도 있지. 이건 중독도 아니고 그냥 '신앙'이 된다. 돈 버는 게 신앙이 되고 권력이, 명예가 신앙이 된다. 그래서 '아, 나로서는 더 이상 깜냥이 안 되니, 더 휘말리기 전에 그만둬야지' 생각했다."

기자-부친이신 채기엽 선생도 중국에서 크게 사업을 일으켜 독립운동가들에게 재정적 도움을 주신 걸로 알고 있다. 큰돈을 만지면서 돈에 초연하기는 부친한테서 배우신 건가?

채현국 - "우리 아버님도 일제 치하 왜곡된 시대에 살았기 때문에 성공 자체를 그리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으신다. 부끄러운 시절에 잘산 것이 자랑일 수 없다는 걸 잘 아는 사람이다. 아버지가 과거 얘기를 나한테 하신 적이 없어서, 내가 아는 것도 다 남한테 드문드문 들은 거다."


대구 부농의 독자였던 부친 채기엽은 교남학원 1기 졸업생으로 시인 이상화 집안과 교분이 깊었다. 이상화의 백형인 이상정 장군이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걸 알고 상하이(상해)로 갔으나 만나지 못하고 중국에 잔류해서 사업을 시작했는데 트럭운송업, 제사공장, 위스키공장을 하며 손대는 일마다 크게 성공했다. 독립운동가들을 먹이고 재우고 돈 대준 대인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도 46년 귀국할 때는 빈손이었다.

기자-일제하 지식인 중에 사회주의에 경도된 사람이 많았는데 아버님은 어떠셨나?

채현국 - "아주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사상이나 이념 그런 거에 구애받지 않고 '사람'을 좋아하셨다. 아버님도 나도, 지식이나 사상은 믿지 않는다."

기자-서울대 철학과까지 나오신 분이 지식을 안 믿는다니?

채현국 - "지식을 가지면 '잘못된 옳은 소리'를 하기가 쉽다. 사람들은 '잘못 알고 있는 것'만 고정관념이라고 생각하는데 '확실하게 아는 것'도 고정관념이다. 세상에 '정답'이란 건 없다. 한 가지 문제에는 무수한 '해답'이 있을 뿐, 평생 그 해답을 찾기도 힘든데, 나만 옳고 나머지는 다 틀린 '정답'이라니…. 이건 군사독재가 만든 악습이다. 박정희 이전엔 '정답'이란 말을 안 썼다. 모든 '옳다'는 소리에는 반드시 잘못이 있다."

기자-반드시?

채현국 - "반드시! 햇빛이 있으면 그늘이 있듯이, 옳은 소리에는 반드시 오류가 있는 법이다."


부친이 큰 사업가였지만 채현국은 부잣집 도련님으로 자라지 못했다. 사업은 부침이 심했고, 부친의 종적이 묘연할 때 어머니가 삯바느질로 가계를 꾸린 적도 적지 않았다. 위로 형이 한 분 계셨는데 휴전되던 날,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서울대 상대 4학년이던 형은 유서도 남기지 않았다. "이제 우린 영구분단이다. 잘 살아라…" 한마디뿐이었다. 형의 죽음으로 채현국은 열일곱 살에 집안의 11대 독자가 되었다.

기자-서울대에 입학해서 연극반 활동을 하셨다고 들었다.

채현국 - "한 게 아니라 만든 거다. 그때 이순재가 철학과 3학년이고 내가 1학년이었는데 순재더러 '우리 연극반 하나 만들래?' 해서…."

기자-이순재씨가 선배라면서 왜 반말을 쓰시나?

채현국 - "나이로는 순재가 나보다 한 살 많은데. 내가 중학 때부터 후배한테는 예대(禮待)하고 선배한테는 반말했다. 나랑 친구 할래, 선배 할래? 물어보고 친구 한다고 하면 반말로…. 후배한테 반말하는 건 왜놈 습관이라, 그게 싫어서 난 후배한테 반말하지 않는다."

기자-원래 조선 풍습은 후배한테 반말 안 쓰는 건가?

채현국 - "퇴계는 26살 어린 기대승이랑 논쟁 벌이면서도 반말 안 했다. 형제끼리도 아우한테 '~허게'를 쓰지, '얘, 쟤…' 하면서 반말은 쓰지 않았다. 하대(下待)는 일본 사람 습관이다."

기자-어쨌든 사업하는 집안 자제로 일류대까지 갔는데 왜 연극을 할 생각을 했나?

채현국 - "교육의 가장 대중적인 형태가 연극이라고 생각했다. 글자를 몰라도 지식이 없어도, 감정적인 형태로 전달이 되고. 지금도 난, 요즘 청년들이 한류, 케이팝 하는 거 엄청난 '대중혁명'이라고 본다. 시시한 일상, 찰나찰나가 예술로 승화되고… 멋진 일이다."


대학 졸업 후 채현국이 선택한 직업은 중앙방송(KBS의 전신) 공채 1기 연출직이었다. 그러나 입사 석달 만에, 박정희를 우상화하는 드라마를 만들라는 지시에 미련 없이 사표를 던졌다. 마침 흥국탄광도 부도 위기였다.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 연 360%의 사채를 쓰며 겨우 위기를 막고, 이후 10여 년간 사업에만 전념했다.

기자-그렇게 고생해서 일군 사업인데, 아깝지 않나?

채현국 - "아깝지 않다."

기자-기업을 제대로 키워서 돈을 벌어 좋은 일에 쓰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채현국 - "그거 전부 거짓말이다. 꼭 돈을 벌어야 좋은 일 하나? 그건 핑계지. 돈을 가지려면 그걸 가지기 위해 그만큼 한 짓이 있다. 남 줄 거 덜 주고 돈 모으는 것 아닌가."

기자-기업가가 자기 개인재산을 출연해서 공익재단을 만드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채현국 - "(흥분한 어조로) 자기 개인 재산이란 게 어딨나? 다 이 세상 거지. 공산당 얘기가 아니다. 재산은 세상 것이다. 이 세상 것을 내가 잠시 맡아서 잘한 것뿐이다. 그럼 세상에 나눠야 해. 그건 자식한테 물려줄 게 아니다. 애초부터 내 것이 아닌데, 재단은 무슨…. 더 잘 쓰는 사람한테 그냥 주면 된다."

기자-그렇게 두루 사회운동가들에게 나눠주셨지만 개중에는 과거 경력을 입신과 출세의 발판으로 삼거나 아예 돌아서서 배신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채현국 - "돈이란 게 마술이니까… 이게 사람에게 힘이 될지 해코지가 될지, 사람을 회전시키고 굴복시키고 게으르게 하는 건 아닐지 늘 두려웠다. 그러나 사람이란… 원래 그런 거다. 비겁한 게 '예사'다. 흔히 있는, 보통의 일이다. 감옥을 가는 것도 예사롭게, 사람이 비겁해지는 것도 예사롭게 받아들여야 한다."

기자-서운하거나 원망스러운 적 없으신가?

채현국 - "모든 건 이기면 썩는다. 예외는 없다. 돈이나 권력은 마술 같아서, 아무리 작은 거라도 자기가 휘두르기 시작하면 썩는다. 아비들이 처음부터 썩은 놈은 아니었어, 그놈도 예전엔 아들이었는데 아비 되고 난 다음에 썩는다고…."

기자- 보통 선생 연배에 이른 분들을 뵈면, 4·19에 열렬히 참여하고 독재에 반대했던 분들이 나이 들며 급격히 보수화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의제든 종북이냐 아니냐로 색칠을 해서 다른 모든 가치에 우선시하는데, 이런 세대갈등은 어떻게 풀어야 하나?

채현국 - "세상엔 장의사적인 직업과 산파적인 직업이 있다. 갈등이 필요한 세력, 모순이 있어야만 사는 세력이 장의사적인 직업인데, 판사 검사 변호사들은 범죄가 있어야 먹고살고 남의 불행이 있어야 성립하는 직업들 아닌가. 그중에 제일 고약한 게, 갈등이 있어야 설 자리가 생기는 정치가들이다. 이념이고 뭐고 중요하지 않다. 남의 사이가 나빠져야만 말발 서고 화목하면 못 견디는…. 난 그걸 장의사적인 직업이라고 한다."

기자-그럼 산파적인 직업은 뭔가?

채현국 - "시시하게 사는 사람들, 월급 적게 받고 이웃하고 행복하게 살려는 사람들…. 장의사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실제 장의사는 산파적인 사람들인데. 여하튼 갈등을 먹고 사는 장의사적인 사람들이 이런 노인네들을 갈등 속에 불러들여서 이용하는 거다. 아무리 젊어서 날렸어도 늙고 정신력 약해지면 심심한 노인네에 지나지 않는다. 심심한 노인네들을 뭐 힘이라도 있는 것처럼 꾸며 가지고 이용하는 거다. 우리가 원래 좀 부실했는데다가… 부실할 수밖에 없지, 교육받거나 살아온 꼬라지가…. 비겁해야만 목숨을 지킬 수 있었고 야비하게 남의 사정 안 돌봐야만 편하게 살았는데. 이 부실한 사람들, 늙어서 정신력도 시원찮은 이들을 갈등 속에 집어넣으니 저 꼴이 나는 거다."

기자-젊은 친구들한테 한 말씀 해 달라. 노인세대를 어떻게 봐달라고….

채현국 - "봐주지 마라. 노인들이 저 모양이라는 걸 잘 봐두어라. 너희들이 저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까딱하면 모두 저 꼴 되니 봐주면 안 된다."

기자-요즘 청년들이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를 이어가고 있다. 어떻게 보시나?

채현국 - "아주 고마워! 젊은 사람들 그렇게 하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그렇게라도 살아 있어줘서 얼마나 다행인지…. 날조 조작하는 이 언론판에 조종당하지 않고 그렇게 터져 나오니 참 고마워. 역시 젊은 놈들이 믿을 만하구나. 암만 늙은이들이 잘못해도 그 덕에 사는구나 하고…."

기자-정약용 같은 사람은 죽기 훨씬 전에 자기 비문을 썼다는데, 만일 그런 식으로 선생의 비문을 스스로 쓴다면 뭐라고 하고 싶으신가?

채현국 - "우리 학교에 가면 '쓴맛이 사는 맛'이라고 돌멩이에 쓰여 있다. 원래 교명을 쓰려고 가져왔는데 한 귀퉁이가 깨져 있었다. 깨진 돌에 교명 쓰는 게 안 좋아서 무슨 다른 말 한마디를 새겨볼까 하다가 그 말이 생각났다. 학생들한테 '이거 어떠냐?' 물었더니 반응이 괜찮더라. 비관론으로 오해하는 놈도 없고."

기자-그 말이 비관론이 아닌가?

채현국 - "아니지. 적극적인 긍정론이지. 쓴맛조차도 사는 맛인데…. 오히려 인생이 쓸 때 거기서 삶이 깊어지니까. 그게 다 사람 사는 맛 아닌가."

기자-그럼 비문에 "쓴맛이 사는 맛이다" 이렇게?

채현국 - "그렇게만 하면 나더러 위선자라고 할 테니 뒤에 덧붙여야지. '그래도 단맛이 달더라' 하고.(웃음)"

기자-"쓴맛이 사는 맛이다… 그래도 단맛이 달더라."  뭐가 인생의 단맛이던가?

채현국 - "사람들과 좋은 마음으로 같이 바라고 그런 마음이 서로 통할 때…. 그땐 참 달다.(웃음)"

당분간은 쓴맛도 견딜 만할 것 같다. 선생과 함께한 시간이 내겐 "꿀맛"이었다.

출처:한겨레_녹취 김혜영(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


··········


채현국(79) 양산 효암학원(효암고·개운중) 이사장. 기자가 그를 처음 만난 건 80년대 후반이었다. 대학 다닐 때 진주에서 박노정 시인의 소개로 채 이사장께 인사를 드린 적이 있었다. 양산에 학교가 있었지만 진주에 자주 오셨다. 부인(윤병희 경상대 명예교수)이 진주에 직장을 두고 있기도 했지만, 진주사람들도 그를 좋아했다.

그때 채 이사장을 만나면 사실 겁부터 났다. 늘 만나면 책 이야기를 하셨기 때문. 특히 서점에 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책을 자주 거론하셨다. 대학생이니까 분명히 읽었을 것으로 알고 말씀하셨다. 채 이사장의 말씀을 듣기만 했고 대답은 늘 '예'만 했던 것 같다. 그런 다음 채 이사장이 언급했던 책을 사서 읽어본 기억이 난다.

효암고에 몇 번 놀러간 기억이 난다. 대학 선후배들이 그 학교에 교사로 있었다. 그때 채 이사장에 대해 들은 말 가운데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게 있다. 대부분 사학재단은 전교조를 꺼리는데 채 이사장은 전교조 출신을 교장과 교감으로 채용하고, 교사를 채용하는데 돈 한 푼 안 받는다는 것. 대학 선후배들이 그 학교에 교사로 채용되었는데, 실제로 돈 한 푼 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박노정 시인은 "교사를 소개해 주었더니 돈을 요구하기는커녕 좋은 사람 소개해 주어 고맙다며 밥을 사주시더라"고 할 정도였다.

한동안 채 이사장을 잊고 지냈다. 그러다가 1년 전 <한겨레> 인터뷰(2014년 1월 4일) 때 했던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어라…노인 세대를 절대 봐주지 마라"라는 '채현국 어록'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1년 만에 채 이사장은 또 울림을 주었다. 김주완 기자(전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장)가 그를 인터뷰 해 <풍운아 채현국>(도서출판 피플파워)을 펴낸 것이다. 이 책에는 '거부(巨富)에서 신용불량자까지 거침없는 인생'이란 부제가 붙어 있다.


김주완 기자는 네 차례 채현국 이사장을 인터뷰 해 그 내용을 풀어놓았다. 인터뷰에 앞서 그는 "절대 훌륭한 어른이나 근사한 사람으로 그리지 말라"는 조건을 달았다고 한다. 채현국 이사장답다. 사람들은 그를 '가두의 철학자' '맨발의 철학도' '민주화운동의 든든한 후원자' '이 시대의 어른' 등이라 표현한다. 김주완 기자는 "그의 삶은 바람과 구름을 몰고 다녔고 지금도 그가 우리 사회에 던져준 울림은 계속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채기엽·채현국 부자는 1960년대 우리나라 개인소득세 납부액이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의 거부였다. 아버지 채기엽(1907~1988)은 1952년 서울에서 연탄공장을 차렸고 1956년 흥국탄광회사를 설립했다. 채기엽은 강원도 사북탄광을 개발할 때 큰 일을 했다. 사북역 광장에 있는 '채기엽 선생 공덕비'가 이를 증명한다.

채기엽은 이후 무역·목축·임산·조선·해운 등 다방면으로 사업을 늘렸고, 경남대학교의 전신인 옛 해인대학이 기틀을 마련하도록 지원했다. 그후 양산시 웅상에 현재의 효암학원을 설립했다. '효암'은 채기엽의 호다.

채현국 이사장은 서울대 다닐 때 탤런트 이순재(2년 선배)와 함께 연극반을 만들기도 했다. 지금도 연락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한 번 전화를 해서 '이 자식, 알면서 전화도 한번 안 했냐'고 하니 '지금도 욕하는데, 뭐 욕 먹으려고 전화하냐' 하더군"이라며 웃었다. 채현국 이사장과 인연이 깊은 문인, 정치인, 언론인이 많다. 채 이사장이 해직기자들과 계간 <창작과 비평>을 도운 사실은 어느 정도 연륜이 있는 언론계 인사나 문인이면 안다. 

임재경(언론인)은 2008년 한 글에서 "친구들에게 밥과 술을 사주며 헤어질 때 차비를 쥐여주는데 그치지 않고 셋방살이하는 친구들에게는 조그마한 집을 한 채씩 사주는 파격의 인간"이라며 "흥국탄광에서 일했던 친구들 중에 집 장만하는데 채현국의 신세를 진 사람은 숫자가 훨씬 여럿"이라고 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도 인연이 있는 채 이사장은 정치인과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난 그런 데(정치판) 안 간다니까. 나는 친구가 해도 안 가요. 고형곤 선생 아들이 고건이라고 총리했습니다. 또 대학 동기생으로 곧잘 친한 서울대 총장 했던 이수성도 총리했는데 근처에도 안 가요. 그 자리에 있을 땐 전화 한 통화도 안 했어요. … 정말 권력은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겁니다."

책에서는 울림을 던지는 말이 많다. 남은 인생에서 꼭 해보고 싶은 게 있느냐고 물었더니 채 이사장은 "좀 덜 치사하고, 덜 비겁하고, 정말 남 기죽이거나 남 깔아뭉개는 짓 안 하고, 남 해코지 안 하고 …. 그것만 하고 살아도 인생은 살 만하지"라고 대답했다. 채 이사장은 "다양한 가치가 함께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사회, 돈이 없어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는 사회, 그런 사회는 계산으로 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정치하는 사람, 권력 가진 사람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 그는 "그 사람들도 남의 말 전혀 안 듣는 사람들이죠. 이용하는 것 외에는 남이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죠. 이용감이 아닌 남은 전부 귀찮은 존재들이야. 그런 놈을 내가 뭐하러 좋아해요"라며 "권력자나 정치가뿐 아니라 부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명성 있는 사람도 마찬가집니다. 내 명성을 내주고 나에게 쩔쩔 매주는 사람 이외에는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했다.


채현국 이사장이 "나이 먹은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농경사회에는 나이 먹을수록 지혜로워지는데,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지혜보다는 노욕의 덩어리가 될 염려가 더 크다는 겁니다. 농경사회에서는 욕망이 커봤자 뻔한 욕망밖에 안 되거든. 지가 날 수도 없고 기차 탈 수도 없고 자동차도 못 타니까 그랬는지 확실히 농경사회의 노인네는 경험이 중요했지. 지금은 경험이 다 고정관념이고 경험이 다 틀린 시대입니다. 먼저 안 건 전부 오류가 되는 시대입니다. 정보도 지식도 먼저 것은 다 틀리게 되죠. 이게 작동을 해서 그런지 나이 먹은 사람들이 지혜롭지 못하고 점점 더 욕구만 남는 노욕 덩어리가 되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즘 어버이연합 같은 완고한 노인들도 많지 않느냐"고 했더니, 채 이사장은 "그 사람들이야말로 제일 겁많은 비겁한 사람들로 보이거든요. 그 완고를 드러내는 게 이미 비겁하고 겁이 나서 그런 완고를 가장해서 꾸미는 거죠. 버러지 정도의 의지도 없기에 저렇게 추악한 걸 인정 못하죠. 용기가 있으면 자기가 그렇게 하면 추악해진다는 걸 인정할 줄은 알아야죠. 그 인정도 못하는 것 보십시오. 얼마나 용기가 없고 비겁한 사람들입니까"라고 말했다.

"노인들이 저 모양이라는 걸 잘 봐두어라"고 한 것에 대해, 그는 "생각해야 할 걸 생각 안 했고, 배워야 할 걸 안 배웠고, 습득해야 할 걸 습득 안 했고, 남한테 해줘야 할 일 안 했어. 저 사람들은. 내 순간 매 순간 안 했어. 젊은 날에, 열 살 때, 스무살 때, 서른 살 때 늘 해야 할 걸 안 했어. 남 배려해야 할 능력이 생겼을 때 남 배려 안 했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채 이사장은 "불쌍한 사람들이야. 자기 할 일을 안 하기도 했지만 잘못된 시절에 순전히 잘못된 통치자들에 의해서 잘못된 것만 하나 가득 배워가지고 저렇게 된 건데…"라며 "그 사람들 6․25 때 살인이 정의라고 해서 열심히 살인한 사람들이야. 그걸 생각해야지. 살인을 정의로 알고 살인한 사람들을"이라고 강조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웃대가리만이 아니라 그 웃대가리를 이용해 처먹는 집단. 조선조에 양반이라 하고 선비라는 그 집단. 성실하고 마음씨 좋은 놈들은 탈락했지만 나머지는 그 집단이 남아서 일제 때 재미를 봤거든요. 이 집단이 해방이 되고 나서 지리산 속에서 빨치산으로, 보도연맹으로 죽기도 하지만, 큰 덩어리는 또 이승만이 밑에서 그대로 해먹고, 북쪽은 북쪽대로 김일성이한테 붙어서 그래도 해먹고, 이승만이가 쫓겨서 축출 당하고 나니까 또 박정희한테 붙어서 그대로 해먹습니다.

이 집단, 자기네 대표는 언제 죽더라도 우리는 살 수 있다는 이 집단. 불특정인인 것 같이 보이지만 실제로 이것들은 지역과 학연과 혈연, 혼인까지 맺은 집단입니다. 약간의 변동이 있을 뿐이지 그 덩어리 전체는 동일한 것들로, 앞잡이 해먹고 이용해먹는 이 집단은 언론이 다루지 않는 한 위에 보이는 그것들에게 또 협조합니다. 위에 보이는 이명박이나 바라고 박근혜나 바라면 이 놈들을 또 살려주는 결과가 됩니다. 문제는 이 놈들입니다. 요놈에는 나도 끼는 겁니다. 그렇잖아요. 여기 끼니까 지금 이사장이라도 해먹잖아요."

채현국 이사장은 책 인터뷰에서 마지막으로 "세상에 정답은 없다. 틀리다는 말도 없다. 다른 게 있을 뿐이다. 정답은 없다. 해답이 있을 뿐이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런 말도 했다.

"죽음이 불안과 공포라는데, 사는 것 자체가 불안과 공포 아닌가? 죽음이란 열심히 살아온 사람에게 쉰다는 것이다."

출처:오마이뉴스


··········


사회자(이하 사회)-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습니다. 배가 침몰하는데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하는 장면을 생중계로 지켜본 온 국민은 엄청난 충격과 비탄에 빠져 지내야 했습니다. 꽃피지도 못한 어린 생명이 너무도 허무하게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무능한 정부를 욕하기도 했고, 구조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한 안전행정부와 해양수산부와 해경, 승객 목숨은 아랑곳하지 않고 잇속만 채운 해운회사와 그들을 제대로 감시 못한 감독기관을 탓하기도 했습니다. 사고를 지켜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요?

채현국(이하 채)- 침몰하는 배에 갇혀 느껴야 했던 아이들의 불안과 공포가 내 일처럼 절실하게 느껴집니다. 나는 현재 양산에서 학원 이사장을 맡고 있어서 항상 중·고등학생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어요. 세월호 사고가 나기 직전 제주도에 수학여행을 갔다 왔어요. 어린 목숨이 무더기로 희생됐고, 어른들의 무책임과 정부의 무능 때문에 그들을 차디찬 바다에서 구하지 못한 것에 대해 너무 가슴이 아파요. 대통령과 청와대, 관련 공무원들이 진정성 없는 사과를 하고,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한 채 지리멸렬하는 모습을 보면서 점점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성유보(이하 성)- 한반도의 4월과 5월, 하늘이 저리도 푸른데 온 국민은 한 달째 상주가 되어 슬픈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10일 안산의 합동분향소에 다녀왔는데 유가족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세 가지 문구,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를 보자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유가족들의 슬픔과 눈물, 그분들의 무력감과 죄책감을 씻어내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인지 참 막막하더군요. 그날 저녁 문화광장에서 열린 2천여 고교생들의 촛불문화제를 맨 뒷자리에 앉아 함께했는데, 미풍에 일렁이는 촛불들이 마치 300여 세월호의 혼령들이 자신들을 잊지 않기 위해 모인 학생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듯한 환상에 잠깐 빠져들기도 했습니다. 우리 모두 슬픔만이라도 함께 나누는 일에 더 많이 동참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 이런 참사가 일어난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일까요?

채- 난 1960년대 후반 한때 장항에서 1천톤짜리 배를 만든 선박회사의 책임자였습니다. 그래서 선박 사고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남다르게 느낍니다. 20년이 지난 노후 선박을 5년, 10년 이상을 연장해 사용할 수 있게 허용해 준 관료와 정치인들의 책임이 큽니다. 해운회사의 로비를 받아 관련 법규를 만든 이들이 누구입니까? 개인과 집단의 끝없는 탐욕과 심각한 부패가 이번 참사의 배경입니다. ‘돈이면 다 된다’는 왜곡된 가치관이 곪아 터진 것입니다. 비단 해운 분야뿐 아닙니다. 원자력 발전소를 봅시다. 이미 노후된 고리 원전은 언제 사고가 터질지 모릅니다. 한반도 전체를 재앙 덩어리로 만들 수 있는 원전의 위험에 대해서도 이참에 다시 조명해야 한다고 봅니다.

성- 이미 침몰이 예고된 ‘사고뭉치’ 배의 운항을 허용한 해운당국의 무모함, 무지함에 어안이 벙벙할 지경입니다. 어린 학생들에게 마지막 순간까지 “탈출하라”는 한마디 없이 먼저 도망쳐 나온 선장과 선원들을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데 공감합니다. 다만, 정권·관료·언론이 끝내는 이들에게만 그 책임을 떠넘기는 것을 경계합니다. 이들보다 훨씬 더 큰 원인 제공자들인 ‘해운 마피아’를 비롯해 관료사회에 대한 개혁이 또다시 유야무야로 끝나지 않을까 두려움을 줄곧 가지고 있습니다.

사회- 어쩌다 이렇게 국민의 안전에 대해 극단적으로 무능하고 윤리적 판단이 마비된 국가, 반지성적인 한국 사회가 됐을까요?

성- 저는 ‘어른’이라고 불리는 우리 기성세대들의 책임이 아주 크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순하고 착하기만 한 국민들만으로는 결코 정의로운 사회를, 안전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사실 일제 식민지배와 오랜 독재정권에 길들여진 우리 어른 세대는 “기다리라”는 명령어에 너무나 익숙합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도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만 하라”고 강요했습니다.

채- 물론 무책임한 선장과 선원, 해운회사와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한 관리들에게 직접적인 책임이 있지만, 이들을 보이지 않게 조종해 잇속을 챙기는 세력에 대해 민초들은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일으키는 것도 불사합니다. 민초들이 살아남기 위해선 그들을 경계하면서 옳고 그름을 정확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눈앞의 작은 적들에게 화풀이하지 말고 뒤에 숨은 세력에 대해 분노해야 합니다.

사회-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를 개조하겠다’는 해법을 내놓고 있는데요.

채- 박 대통령은 타인의 불행이나 슬픔을 진정성 있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아요. 진심은 감정입니다. 살이 부르르 떨리고 가슴이 찢어지는 유족의 아픔과 속수무책 바라만 봐야 했던 국민들의 고통을 진심으로 느끼는 게 먼저입니다.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은 “이제 다시는 국민들에게 표를 애걸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는 돌아서서 통일주체국민회의를 만들어 간선으로 장기 집권을 도모했습니다. 그는 국민들의 믿음을 배신하고, ‘국가 개조를 하겠다’면서 유신독재체제를 구축해 모든 비판의 목소리를 철저히 막았습니다. 국가의 실체는 국민입니다. ‘국가 개조’라는 발상은 아버지처럼 독재권력을 휘두르겠다고 스스로 선언하는 것입니다. 국민들 위에 절대권력으로 군림하면서 훈계만 하겠다는 것입니다.

성-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재난 구조의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는 발표를 보면서 또 한번 박근혜 대통령에게 충격적인 실망감을 느꼈습니다. 청와대가 국민의 안전과 행복에 대한 책임을 면탈하고자 하는 것으로 읽혔기 때문입니다. 청와대가 지키고자 하는 국가의 실체가 국민이 아니라면, 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지키고자 하는 걸까요? 그동안 국가가 책임져야 할 일이 있을 때마다, 자신은 ‘유체이탈 화법’으로 빠져나가는 박 대통령의 정서적 도피의 절정을 보았습니다. 경주 리조트 참사나 세월호 참사 같은 재난들이 설사 과거로부터 쌓여온 ‘관행’ 탓이라 해도, 현직 대통령은 책임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더구나 그런 관행들을 청산하고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는 공약을 믿고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의 반이 박 후보에게 표를 주지 않았습니까?

사회- 사고 대책으로 정부가 맨 먼저 한 일은 ‘수학여행 전면 금지’였는데요.

채- 그건 잘못된 일입니다. 6·25 전쟁통에도 피난지에서 천막 학교를 열었고 학생들은 소풍을 다니고 학예회를 즐겼습니다. 어른들이 너무 방정을 떨고 있어요. 수학여행을 무조건 중단시킬 게 아니라 ‘체험교육의 현장’으로, ‘안전교육의 실습 현장’으로 탈바꿈하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대규모 단체여행에 따른 위험을 염려한다면 반별로 1년 내내 따로따로 소규모로 하는 것도 대안이라고 봅니다.

성- 교육 당국에서 수학여행을 체험교육 과정이 아니라 ‘일탈된 방종’으로 보는 잠재의식이 깔려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우리 세대 때도 수학여행은 ‘공부지옥, 입시지옥에서 며칠이나마 벗어나 일탈적 해방감을 맛보게 하는 레크리에이션 행사’였습니다. 그렇다고 몇 달쯤 중단한 뒤에는 안전해진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당장 전국의 관광버스업계, 숙박업계, 음식점, 기념품점 등 수학여행 관련 영세업자들이 개점휴업으로 빚더미에 올라앉게 된다면, 학생들 안전에 지금보다도 더 소홀해질 수도 있습니다. 혹여라도 손해를 만해하고자 수익에 연연하다 더 많은 교통사고, 식중독사고라도 일어난다면 교육부가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덩달아 문화체육관광부도 전국의 문화예술계에 “가만히 있으라”고 지시해서 ‘올스톱’ 상태입니다. 공영방송사의 한 간부는 기자들에게 검은 옷, 노란 리본 같은 추모 분위기 동참도 금지시켰다지요? ‘힐링음악’ 같은 ‘치유예술’을 통해 유족들은 물론 국민들의 정신적·정서적 트라우마를 위로하고 풀어줄 생각은 왜 못하는지…. 우리 국민들을 슬퍼하지도, 분노하지도 않는 냉혈한으로 만들 작정인가요?

사회- 이번 참사를 통해 어떤 교육적 교훈을 얻어야 하는지요?

채- 돈벌이만이 최고 가치인 천민자본주의에 오염되고, 관료사회의 명령어를 금과옥조처럼 받들어 모시면서, 부정과 부패를 목격하고도 ‘내 일이 아니니까’라고 눈감아 버리는 ‘착한 백성’들은 결코 국가적 재난에서 안전할 수 없습니다. 정권, 정치권, 관료사회, 관제언론들이 아무리 “가만히 있으라” 다그쳐도, “시키는 대로만 하라”고 명령해도, 옳지 않으면 거부하고 저항할 줄 아는 국민이어야만 안전하고 편안한 사회를 지킬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부당한 권력, 부당한 명령어에 불복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우리 한민족은 지난 역사 속에서 너무나 양순했습니다. 왕조시대에는 “성은이 망극하옵니다”만 되풀이했습니다. 일제 식민시대에는 총칼에 굴복했고, 해방 뒤에도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독재 아래 “시키는 대로만 하라”는 명령에 따랐습니다. 사회적 안전, 민주주의 그리고 더불어 모두 잘 사는 ‘홍익인간’의 정신을 지키려면, 우리 국민들이 가만히 있지 않아야 합니다. 생각하고 배우고 함께 행동에 나서야 합니다.

성- 세월호 사건을 교육혁명의 일대 전기로 삼아야 합니다. 청소년들에게 자기결정권과 판단력을 길러주는 교육으로 바꿔야 합니다. 삼면이 바다에 둘러싸인 한반도에서, 당장 학생들에게 물과 바다에 대해서 어떤 교육을 해왔나요? 몇 년 전 읽고 웃어넘긴 적이 있는 얘기인데, 한 선비가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 “뱃사공, 자네는 논어를 읽은 적이 있는가” 하고 물었답니다. 뱃사공이 “못 읽었는데요”라고 답했더니 선비는 “자네는 인생의 반을 헛살았군” 하더랍니다. 조금 있다가 배에 물이 새기 시작했습니다. 사공이 물었습니다. “선비님은 수영을 배우신 적이 있나요?” 대답은 “배운 적 없네”였죠. 사공은 “선비님은 이제 인생 다 살았군요”라고 말했답니다. 그 우스갯소리가 쓰라린 현실이 되어 있습니다.

사회- 지금 국민들은 언제 어디서 또다시 재난이 터질지 모른다는 ‘집단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런 사회적 재난, 인재의 위험을 예방하는 대책은 없을까요?

채- 사회 구석구석 안전망에 대한 총체적 재점검을 해야 합니다. 그 점검과 안전망 재구축에는 반드시 시민사회가 같이 참여해야 합니다. 그래야 보고서 같은 서류에만 적힌 안전 매뉴얼이 아니라 일상적인 실천이 가능합니다.

사회- 이제 우리 국민들은 어떻게 해야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요?

채- 불의에 대해 입을 다물면 공범이 됩니다. 민중 한 사람 한 사람이 내 일이고 내 책임이라는 자세로 떨쳐 일어나야 합니다. 가만히 있다가 무수한 사람들이 목숨은 앗긴 사건이 이번만은 아닙니다. 자신은 이미 대전으로 도피해 한강대교까지 폭파시켜 놓고는 “국군이 인민군을 38선 이북으로 몰아내고 있으니 서울 시민들은 안심하고 서울에 가만히 있으라”는 거짓 방송을 한 이승만 대통령이 그 원조입니다. 이승만은 나중에 자신의 말만 믿고 서울에 남았던 많은 시민들을 부역 혐의자로 몰아 죽였습니다. 명령대로 다리를 폭파했던 ‘충직한 부하’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었습니다. 그런 지도자가 심판받기는커녕 “반공세력의 국부”로 군림한 ‘배반의 역사’가 ‘시키는 대로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어를 권력자의 유산으로 남겨 놓은 겁니다.

성- 맞습니다. 이번 참사의 모든 책임자들에 대해, 불의에 대해, 터무니없는 부조리들에 대해 분노해야 합니다. 분노하지 않는 국민들로는 정의로운 사회, 인간 존중 사회, 안전한 사회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단순한 보복이나 보상심리는 희생양만 낳을 뿐, 제2·제3의 세월호 참사를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 함께 분노합시다.

출처:huffingtonpost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 Recent posts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