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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의 생활양식과 그 문화를 논하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요인은 그 지역환경이다. 만주의 특이한 자연환경은 이미 마르톤(Martonne)에 의하여 ‘만주형기후’라는 기후구가 제시되었다. 그의 ‘만주형기후구’는 독일의 유명한 지리학자인 쾨펜(Kop-pen)의 학설에 의하여(『Die Klimate der Erde』pp.112~131) 만주의 기후·강우량·건조기 관계 등을 조사하여 만든 것인데, 만주의 기후를 한랭대 습윤기후(Dwb)·한랭대 아습윤기후(Dwa)·스텝기후(BS) 등으로 구분하였다.




만주에서 한랭대 습윤기후 지역(Dwb)으로는 만주의 동·북부가 해당되는데, 내흥안령과 장백산 산백 등의 산악 일대(Alin)·흑룡강 중하류 지역과 송화강 중하류 및 목단강·오소리강 일대(Vla)가 모두 이 기후에 속한다. 그러므로 만주에서 이 지역 일대는 월평균기온이 22°C 이하이고 일년중 4개월 이상이 10°C 이하이기 때문에 여름철은 기온이 그다지 높지 않으나 비가 많아서 울창한 삼림지대를 이루고 있다.


열대지방의 활엽수가 우거진 삼림지대를 정글(Jungle)이라고 부르는데 반하여 이러한 한랭대 지방의 침엽수가 울창한 삼림지대를 타이가(Taiga)라고 부른다. 이러한 타이가 지역에서는 농경이나 유목생활은 도저히 할 수 없고, 오로지 수렵생활 밖에 할 수 없다. 수렵생활에 의하여 식생활을 해결할 수 밖에 없어 보조적인 생활 수단으로서 강가에 나가서 어로도 하고, 또 나무의 열매나 뿌리를 캐는 채취활동도 하였다. 이 지역이 바로 물길(勿吉)이 살았던 생활 터전이었다.




이에 비하여 한랭대 아습윤기후 지역(Dwa)은 만주의 서부와 남부가 이에 해당하는데 일년중 기온이 가장 높은 달이 월평균 22°C 이상이고 기장 낮은 달이 월평균 영하 3°C 이하이며, 연평균 강우량이 500 내지 600mm 이상으로서 연중 강우량이 여름철에 집중하고 겨울철에 적어 건조한 편이다. 그러므로 이 지역은 여름철에 기온이 높고 또 강우량이 많아 농경생활에 적합한 지역이다. 


중국의 한족들이 일찍부터 차지하여 농경생활을 하였던 요하 일대, 즉 요동반도는 물론이요, 고구려의 근거지였던 압록강의 동가강 일대와, 발해의 발상지였던 두만강·해란강·목단강 상류 일대가 바로 이 지역에 속하였던 사실은 곧 그 문화발생과 자연환경의 조건이 서로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스텝기후(BS)에 속하는 지역은 동몽고 지역 일대로서 이 일대에서 오늘날 다후르(Dahur)족·솔론(Solon)족 등이 유목생활을 하고 있으며, 한편 흑룡강 북쪽 시베리아 일대에서는 오늘날 북방 퉁구스(Northern Tungus)계의 에벤키(Evenk)제종족들이 순록을 기르면서 원시적 생활을 하고 있다.


外山軍治는 만주 지역을 남만주의 평야지대와 만주 동부에서 한반도 북부에 연결된 삼림지대와 만주 서부 흥안령 동록에 전개되는 초원지대로 구분하고, (『金朝史硏究』p.2) 남만주의 평야 지대는 일찍이 한족이 진보하고, 만주의 삼림지대에는 각종 수렵민이 점거한데 비하여, 초원지대는 몽고계의 유목민이 차지하였다고 하였다. 


오웬 래티모어(Owen Lattimore)는 만주를 농경지대, 삼림지대, 초원지대로 나누어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남만주의 요동지방은 농경지대인데 비하여, 만주의 북부·동부는 그 자연환경과 그 경제조건이 삼림지대의 수렵생활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Agriculture, Forest, and Steppn in Manchuria」pp.103~149)


이처럼 만주는 그 기후조건에 따라 평야지대(Dwa), 삼림지대(Dwb), 초원지대(BS)로 3구분되며, 이러한 자연조건에 따라 농경생활권, 수렵생활권, 유목생활권으로 나누어진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중국정사조선전 > 魏書 卷100 列傳 第088 > 註002



P.S 

고대 사회의 만주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따뜻한 동네였다. 평균 기온이 지금보다 3.5 ~ 5도 가량이 높았다. 

기본적으로 당시에 사람이 살기 가장 쾌적한 환경은 만주와 중국의 화북, 화중 지방까지였으며 당시의 요서지방은 사람 살기 좋은 지역으로 인구 밀집지역에 들어갔다.


중국의 강남지방과 일본은 당시 지금의 동남아와 같은 정글이었다. 인구는 해안가의 해인 세력을 제외하곤 극히 드물었다.

그러던 것이 6~9세기 정도까지 지속적으로 기온이 내려가는 현상이 찾아오게 되고 중국은 화북에서 강남지방으로 인구가 대거 남하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인구가 대거 유입되는 현상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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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벌판의 대규모 농업









관개수로









가축방목 - 지리적으로 3개의 강이 모여 물이 풍부하고 땅이 비옥하여 먹이 걱정이 없음.





만주 삼강평원의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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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봉의 중국이야기 3] 

만주벌판의 대규모 평야 활용 가치 높아


필자가 2년간 거주했던 하얼빈은 헤이룽장성(黑龍江省)의 성도다.


헤이룽장성은 면적이 45.4만㎢로 한반도의 2배보다 조금 더 넓다. 면적상 중국 23개 성과 5개 자치구중에서 6위이다. 인구는 지난해 3831만여명으로 한국보다 적다.


보통 헤이룽장성 하면 우리에게 별로 와닿는 감이 없다. 그러나 “만주 벌판!”하면 “아하~ 그곳”이라고 할 정도로 친숙하게 느낀다. 우리의 귀에 익숙한 그 만주 벌판이 바로 헤이룽장성을 일컫는다.


만주 벌판하면 우리는 황량하고 매마르고 척박한 땅을 생각한다. 

그러나 필자가 본 만주 벌판은 나무숲이 무성하고 물이 넘쳐나고 도처에 습지와 목초지, 끝없이 광활한 비옥한 대지가 펼쳐지는 곳이다. 헤이룽장성은 중국에서 최고로 꼽히는 곡창지대다.



중국 최고의 쌀 품질 자랑…쌀의 명품 우창다미(五常大米) ‘가짜 쌀’ 파동  


중국 최고급 쌀 우창다미(五常大米) 다오화샹(稻花香)


이곳은 특히 쌀, 콩과 옥수수가 유명하다. 

목이버섯(黑木耳), 원숭이머리 버섯(猴头菇) 등 각종 버섯도 이곳이 특산지다. 

우리에게 블루베리로 알려져 있는 란메이(藍莓)가 중국에서 유일하게 나는 곳도 이곳이다.


특히 쌀은 헤이룽장성 생산품을 중국에서 최고로 쳐준다. 하얼빈에서 동남쪽으로 120㎞ 떨어진 현급시인 우창(五常)시 일대의 쌀이 유명하다. 우창 쌀은 1835년부터 수전(水田)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지역의 본격적인 벼농사 기술은 일제 식민치하에서 탄압을 피해 만주 벌판으로 떠나온 조선인들에 의해 대대적으로 보급되면서 생산량이 급증했다. 입쌀외에 찹쌀과 향미(香米), 흑미(黑米)도 생산한다. 1920년대 하얼빈 지역에 보급된 수전 벼농사 기법은 한전(旱田) 생산의 5배에 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발해(渤海) 유적지 부근의 조선족마을인 무단장(牧丹江) 샹수이춘(响水村)의 쌀도 우창다미에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최상품으로 꼽힌다. 헤이룽장성의 쌀은 한국과 같이 알곡이 투명한 자포니카 쌀(중단립종)품종으로 중국 국가 영도들이 사는 베이징 중난하이(中南海)에 공납될 정도로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이는 토질과 수질, 일조량 등 기후조건이 벼농사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쌀의 명성이 높다보니 중국 시장에서 가짜 우창다미가 수시로 유통돼 당국이 단속에 나서고 있으나 별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밥맛에 관한한 입맛이 까다로운 한국 교민들이 특히 좋아해 시장가격을 높인 것도 짝퉁 쌀을 유통시킨 원인이 됐다.


실제 우창다미로 밥을 지어보면 찰기와 윤기가 한국쌀과 유사하다. 어떤 이는 한국 쌀보다 밥맛이 더 있다고 한다. 중국 남방의 쌀은 종류가 달라 우리 입맛에 맞지 않다.


한국 전기밥솥은 최고의 선물…중국 쌀 가격 한국의 절반 이하


하얼빈 사람들에게 최고의 선물은 한국산 전기밥솥이다. 하얼빈 공항에는 쿠쿠 전기밥솥을 공항 카트에 싣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다. 70~80년대에 일본을 다녀온 한국관광객들이 코끼리 전기밥솥을 즐겨 구입해오던 풍경과 유사하다. 한국에서 5만5천원하는 일반 중소형 전기 밥솥이 하얼빈의 전문점에서는 1천위안(한화 18만원)이나 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한국 전기밥솥에 우창다미 쌀을 앉혀 밥을 해 먹으면 국내의 어떤 쌀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구수한 향기와 맛이 난다.


가격도 저렴하다. 한국은 쌀 한포대가 20㎏이지만 중국은 25㎏이 한 포대다. 지역에 따라 쌀값이 다르지만 하얼빈 일반 슈퍼의 경우 한 포대에 100위안(1만8천원)에서 130위안(2만3400원) 정도 하며 최상급은 180위안(3만2400원) 이상도 있다. 쌀 1㎏당 소비자 가격만을 단순 비교할 경우 중국쌀 가격이 국내가격의 절반에 못 미친다.


필자가 먹은 쌀은 한 포대당 130위안 짜리로 중상품이었는데 한국의 밥맛과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었다.


중국은 이 쌀을 상품화하려고 벼르고 있다. 헤이룽장성을 비롯한 동북3성에서 고품질의 친환경쌀을 개발중으로 한국으로 본격 수입된다면 가격경쟁력에서 한국 쌀농업 시장을 위협할 것이 분명하다.


현재 한국으로 수입되는 중국쌀은 대부분이 동북3성의 쌀이다. 2002년 7만여톤에서 2009년 16만여톤으로 수입량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관세화유예기간인 2014년까지 매년 증가할 수 밖에 없는 의무수입량중 중국쌀이 미국, 인도 등을 제치고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한국의 CJ그룹, 중국의 베이다황(北大荒)과 쌀가공 합작사업…미래의 식량창고


2008년 8월 베이다황CJ 출범식에서 CJ제일제당 김진수 사장(오른쪽)과 

베이다황그룹 씨허빈 총경리가 악수를 나누고 있다. ⓒCJ제일제당


한국의 대표적인 식품업계인 CJ그룹이 동북 쌀에 눈길을 준 것은 3년전이다. 


CJ는 2008년 6월 세계 최초로 미강(米糠, 쌀겨)에서 식품용 단백질 추출기술을 개발했다. 이 단백질은 알레르기에 예민한 유아들의 분유에 주요 성분이 될 만큼 무해한 고부가가치 상품이다.


CJ는 기술개발에 성공하자마자 두달 뒤인 8월 중국의 최대 곡물생산기업인 베이다황(北大荒,북대황) 그룹과 합자계약을 체결해 ‘베이다황CJ’를 설립했다. 베이다황CJ는 2009년 12월 총 700억원 가량을 투자해 쌀단백질 공장을 설립한 뒤 연간 1200톤을 생산하고 있다. 또 현미유(油), 식이섬유 등도 연간 1만4천톤씩 생산하고 이후 콩,옥수수 등 기타작물에 대한 제휴도 강화할 계획이다. 당시 CJ그룹의 투자는 조선족인 하얼빈개발구 외자유치국 김계호 국장의 역할이 컸다.


베이다황그룹은 중국 정부기구인 헤이룽장성 농지개간총국이 소유한 곡물 재배 전문기업으로 자산규모가 64억달러에 달하는 아시아 최대 곡물 생산기업이다.




하얼빈에서 차로 3시간을 달리면 웅대한 삼강평원(三江平原) 들판이 나타난다. 

삼강평원은 세 개의 강, 즉 헤이룽장(黑龍江,2,900㎞), 우수리장(烏蘇里江, 890㎞)과 쑹화장(松花江, 939㎞)이 헤이룽장성의 대지를 종과 횡으로, 거미줄처럼 수많은 지류로 휘감으면서 빚어낸 대평원의 이름이다. 삼강평원은 오랜 세월동안 세 강이 범람하면서 만들어낸 충적 평원지대다. 이곳은 토심이 깊고 비료가 필요없을 정도로 유기물의 퇴적량이 많은 흑토지대다.


흙색깔도 한국과 다른 검은 색으로 이 흙을 보고 중국인들은 ‘헤이투디’(黑土地)라고 부른다. 구릉지대 하나없이 거침없는 삼강평원을 베이다황그룹이 관리한다.


‘베이다황’ (北大荒)이란 ‘북쪽의 큰 황무지’란 뜻으로 베이다황그룹이란 명칭은 여기서 따왔다. 

베이다황은 1950년대까지만 해도 곳곳에 습지와 잡초가 뒤덮힌 황무지였다. 중국 정부는 1958년부터 인민해방군 15만 병력과 지식청년 5만명 등 20만여만명을 투입해 거친 황무지를 비옥한 옥토로 일궈냈다.


삼강평원은 남한 면적의 절반이 넘는 5만4300㎢(약 164억평)이며 미국, 우크라이나와 함께 세계 3대 흑토지로 꼽히고 있다. 양곡 생산량은 1,132만톤으로 연간 매출액이 40억달러에 달한다. 베이다황그룹이 보유한 농장만 103개가 있으며 그룹 산하에 곡물 재배와 관련된 215개 기업 및 18개의 R&D(연구개발)단지를 가지고 있다.


보이지 않는 광활한 만주벌판의 지평선…20년전 한국과 인연 놓쳐 


기차를 타고 만주 벌판을 가로지르면 광활하게 뻗은 지평선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평원은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광활하다. 


광활한 삼강평원은 방풍림을 제외하고 지평선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출처=중국포털 바이두


삼강평원(三江平原)은 약 20년전 한국과의 인연을 놓쳤다. 1992년 2월 농림부장관(당시 농림수산부장관) 출신인 장덕진 대륙개발회장이 3억평 규모의 농지 공동개발 계획을 발표하면서 국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뒤 자금사정으로 개발이 중단된 바 있다. 장덕진 회장은 당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3억평 규모의 땅은 헬기를 타고 둘러보아도 끝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눈을 헤치고 만져본 흙은 새까맣게 기름져 개발의 가치가 있음을 확인했습니다…통일 후에라도 한반도가 뻗어나갈 수 있는 곳은 만주뿐이란 생각을 늘상 해 왔습니다…경제적 소득이외에 보다 중요한 것은 이번 사업을 계기로 한국의 기업들이 중국 동북부 지역에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점입니다.” <경향신문 1992년 2월 10일자 9면 인용>



기계화 된 삼강평원의 경작모습. 출처=중국포털 바이두


당시의 계획은 낮은 개발비와 인건비로 콩과 밀 등을 대규모로 경작해 중국과 절반씩 처분권을 갖는다는 조건이었다. 장덕진 회장의 말대로 CJ그룹이 약 16년뒤 삼강평원에 진출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해와 올해 잇따라 하얼빈, 창춘(長春) 등 동북지역을 방문해 각별한 관심을 표시한 것도 만주벌판이 최대 곡창지대라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만주 벌판은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또다시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대규모 곡창 지대를 한반도의 바로 옆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미래는 우리가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달렸다. 경제적, 민족적, 외교적 측면에서 만주 벌판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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