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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마을 사람들

강원도의 설악산 밑에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특별한 마을이 있다. 마을 공금으로 10억 원을 가지고 있고, 올 한해 마을 예산만도 2억 7백 여 만원! 모두 마을과 마을 주민을 위해 쓰이는 돈으로 마을에서는 각 가정에 매년 100만원을 지급한다. 게다가 한 달에 한번 쓰레기봉투도 사서 주는데, 과연 어떤 마을인가? 


강원도의 백담마을, 마을 주민들은 모두 마을에서 운영하는 마을 기업의 주주들. 마을에서는 버스회사와 특산물 판매장이라는 두 개의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데, 지난 해 만 무려 20억 원의 매출을 냈다. 덕분에 50여 명이 일자리를 얻었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젊은이들도 늘고 있다고 하는데, 이 모두, 마을 기업 사업 덕분이다. - SBS 현장21



ㆍ황태 등 특산물 팔아 일자리 창출에 수익을 나눠 '신나는 마을'로

지난달 17일 강원도 인제군 용대2리를 찾았을 때 주민들은 눈을 치우는 중이었다. 시골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었다. 정연배 용대2리 이장(49)은 “우리 마을에서는 트랙터로 눈을 치우는 주민들에게 기름값과 일당을 준다”고 말했다. 마을기업을 운영한 덕이다. 


마을기업은 주민들이 출자해 만든 것으로, 지역의 인적·물적 자원을 활용해 운영한다. 수익도 추구하지만 주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지역경제에 기여하며 지역공동체 활성화 등 사회적 가치도 실현한다. 기업의 성격과 운영 방식, 목표 등이 사회적 경제의 취지에 부합한다. 마을기업이 협동조합, 사회적기업과 함께 사회적 경제의 주축으로 꼽히는 이유다. 


용대2리는 설악산 백담사 아래에 자리해 백담마을로 불린다. 백담마을에는 ‘용대2리주민백담마을영농조합법인’(백담마을기업)과 ‘용대향토기업’ 등 2개의 마을기업이 있다. 2011년 설립된 백담마을기업은 지난해부터 지역 특산물인 황태와 마가목 판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4억원. 용대향토기업은 백담사~마을 간 버스를 운행하는 업체이다. 1996년 버스 1대로 시작한 것이 10대로 늘어났다. 지난해 매출은 16억원이다. 마을기업으로선 매출 규모가 크다. 하지만 매년 3~5%씩 성장하는 것이 더 눈에 띈다. 두 기업 모두 백담마을 전체 197가구의 세대주 모두가 조합원으로 가입해 있다. 주민들은 추석, 설 등 명절에 배당금 형식으로 20만~30만원씩 받는다.


백담마을은 마을기업을 통해 활기를 되찾고 있다. 주민들이 단합하는 계기도 됐다. 정 이장은 “예전에는 마을 회의나 행사 때 120명가량 참여했는데 마을기업을 통해 수익을 얻고 이를 분배하면서 상황이 달라져 요즘에는 160~170명이 참여한다”고 말했다. 마을기업을 하면서 마을 운영에 대한 주민 참여도가 20% 이상 늘어난 셈이다. 영세한 노인들에게 일거리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한 것도 의미가 크다. 노인회관에서 만난 윤석매씨(75)는 “마을에서 일거리가 있다고 영세민들 나오라고 하면 나가서 김을 매고, 청소하고, 꽃을 심고 돈도 번다”고 말했다. 윤씨는 2011년 가을 3개월 동안 마을 일거리에 참여해 260만원을 벌었다. 윤씨는 “일할 데가 없어서 그렇지. 나가서 일하면 재미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속초에서 오는 손자한테 용돈도 주곤 한다”고 말했다.


강원 인제군 백담마을 주민들이 지난달 17일 마을 내 발효장에 모여 

지역 특산물인 마가목 열매가 담긴 병을 들어보이고 있다.


시골 마을에 젊은이도 돌아와 ‘함께 잘살자’ 신바람

마을기업이 지역 네트워크 역할, 공동마케팅도 진행

“일하는 재미에 푹 빠져”… 마을버스 사업도 쾌속운행


■ “마을기업 덕분에 취직도 하고 행복해요”

지난해 2월 문을 연 백담마을기업 특산물 판매장은 165㎡(53평) 규모이다. 황태포·통황태·황태채 등 황태 가공품과 마가목 열매·효소 등을 판매한다. 마가목은 장미과에 속하는 나무로 열매·잎·나무껍질 등이 약용으로 쓰인다. 용대2리 주민들은 15년 전 마을에 마가목을 심기 시작했다. 용대2리는 기후가 마가목이 자라기 좋다고 한다. 매년 가을엔 마가목 축제도 연다. 판매장에서 총무·회계 등 운영을 담당하는 신덕환 백담마을기업 사무장(29)은 “원래 용대리는 황태로 유명했다”며 “그런데 최근 마가목이 기관지와 천식에 좋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홍보가 많이 돼 황태 못지않게 많이 팔린다”고 전했다. 마가목 판매 초기에는 월 판매량이 1~2봉지였으나 지난해 가을에는 월 40봉지로 늘었다. 말린 마가목 열매도 300g씩 포장해 판매하고 있다.


신씨는 백담마을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불과 2년 전만 해도 마을에서 살면서 마을기업에 다닐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지방대에서 소방방제학을 전공한 그는 대학 졸업 후 인천에 자리를 잡았다. 처음엔 서울 가산디지털단지 내 쇼핑몰에 취직해 옷을 판매했다. 매일 12시간씩 일했지만 월 100만원밖에 받지 못했다. 그는 “쇼핑몰에서 일을 배워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려 했지만 쇼핑몰이 한 달에 수백개씩 생기고 사라지는 현실을 알게 된 뒤 그 생각이 쏙 들어갔다”며 “장사가 잘된다고 텔레비전에 나오는 건 상위 1%의 쇼핑몰뿐이었다”고 말했다. 


쇼핑몰 일을 그만둔 뒤 김포에 있는 주물공장에 취직했다. 1년간 인천에서 통근했고, 그 뒤 1년 동안은 공장 옆 사무실을 개조한 곳에서 자취했다. 오전 7시에 출근해 오후 7시까지 일해야 했다. 그는 “오전 7시 출근이라 아침 6시30분에 일어나 비몽사몽간에 밥을 먹고 출근하고, 퇴근하면 잠자기 바빴다”며 “하루 종일 10~15㎏ 무게의 거푸집을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하느라 언제나 몸이 녹초가 됐다”고 말했다.


2011년 초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황태 중간 가공사업을 할 생각이었다. “월급쟁이는 일을 잘하든 그렇지 않든 다 똑같은 것 같았다. 내 것,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귀향 후 가공 사업 정보를 수집하던 중 마을기업이 생겼다. 마을기업에서는 판매장을 운영할 사무장을 모집하고 있었다. 그는 “사업 경험이나 쌓자는 생각에서 지원했다”고 말했다.



신씨는 마을기업에서 일하게 된 것을 ‘인생의 터닝포인트’라고 했다. 그는 “다른 일을 할 때는 일하는 것이 싫었다. 생산직은 나한테 할당된 분량만 일하면 월급이 따박따박 나왔다. 주말에 일하는 것도 싫었다”고 말했다. 주말에 일터가 아닌 나이트클럽에 가서 놀고 싶었지만 이제는 밤을 새우면서까지 일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마을기업이 내 것은 아니지만 운영을 하는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일하는 분들이 조금 더 쉽고 편하게 일할 수 있을까’ 등을 고민하게 된다”고 말했다.


신씨는 백담마을기업과 용대향토기업이 사회적 경제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일반 사기업이 용대리에서 이 두 마을기업과 유사한 사업을 할 경우에도 마을 주민을 고용하고 급여를 제공하겠지만 주주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 고용과 급여를 최소화하려 할 것이라고 신씨는 말했다. 그러나 마을기업은 주민들이 주주이기 때문에 가급적 최대의 고용과 급여를 유지할 것이기 때문에 사회적 경제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신씨는 마을기업이 마을 간 네트워킹과 상호 발전의 접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용대리 인근의 진동1리, 가리산리에도 마을기업이 설립돼 있으므로 이들 기업이 서로 협력하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진동1리 마을기업은 산나물을 재배하고 있지만 관광객 등 이를 구매할 소비자들의 발길이 없다. 하지만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오는 기간에 일정한 수수료를 내고 용대리 마을기업 판매장에서 팔 수 있다. 용대리와 진동1리 모두 이익을 거두는 공생관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마을이 잘살면 면이 잘살고, 면이 잘살면 군이 잘살고, 군이 잘살면 도가 잘사는 것 아니겠느냐”며 “결국 마을기업은 강원도 전체가 잘살 수 있는 기틀이 된다”고 말했다. 인제군의 마을기업들은 한 달에 한 번씩 공동마케팅 등을 위한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그의 삶은 본질적으로 변했다. 마을기업, 사회적 경제가 가져다준 변화다. 우선 도시에서 자취 생활을 하던 때와 달리 부모와 함께 집에서 생활하다보니 먹는 것이 달라졌다. 신씨는 “늦은 시각에 불이 꺼진 집에 들어가 밥을 차려 먹고 있으면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식사라고는 밥이랑 참치 통조림, 3분 요리가 전부였지만 요즘은 내가 좋아하는 청국장을 자주 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백담마을로 돌아와 몸무게가 5㎏ 늘었다. 그러나 가장 좋은 것은 가족 간 유대 강화와 이에 따른 심리적 안정감이다. 그는 “타지에서 생활할 때는 어머니가 아파도 마음대로 오지 못했는데 지금은 ‘엄마, 같이 병원 가자’고 얘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150만원가량의 월급을 받는 그는 적금을 제외한 급여의 대부분을 어머니에게 드린다.


술을 좋아하지 않는 신씨는 도시에서 일할 때 여가생활이라고는 한 달에 한 번 서울로 가서 친구와 저녁을 먹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백담마을에서는 자주 여가를 즐긴다. 신씨는 한 달에 한 번 이상 가족과 함께 속초에 가서 외식, 영화 관람 등을 즐긴다. 그는 “지난달 태어나 처음으로 어머니와 함께 부산으로 여행을 갔는데 어머니가 굉장히 좋아하셨다.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어머니와 영화 보고 밥먹는 것이 소소한 행복 아닐까”라며 미소를 지었다.


강원도 인제군 용대리 주민들이 설립, 운영 중인 

백담마을기업 지역 판매장에서 직원이 황태채를 포장하고 있다.


■  용대향토기업과 또 하나의 마을기업 예고

용대향토기업에서 백담사와 마을을 오가는 버스를 11년째 운행하는 유성종씨(41)는 백담사 왕복버스를 운전하기 전에는 화물차를 몰았다. 그는 가족과 떨어져 지낼 수밖에 없는 화물차 운전을 그만두고 다른 직업을 갖기 위해 2년 동안 당구장, 포장마차 등 사업에 도전했다. 그러나 여러 차례 실패의 쓴맛을 봤다. 그러던 차에 용대향토기업에 취직할 수 있었다. 그는 “외지에서 일할 때보다 급여가 많지는 않지만 내가 태어난 곳에서 일하고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용대향토기업은 눈이 오는 12월부터 2월까지는 버스 운행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기간에도 유씨는 급여를 받는다. 영리 추구가 목적이 아닌 주민을 위한 마을기업이기 때문이다. 수당을 뺀 실수령액만 180만원이다. 여름, 가을 등 성수기 때는 시간외수당을 포함해 230만원대의 월급을 받는다. 그는 “화물차를 운전할 때는 일주일에 2~3일씩 집을 비우고 했는데 마을에서 일하니 가족들과 지내는 시간이 늘어 아내가 든든해한다”고 말했다.


백담마을은 또 하나의 마을기업을 준비 중이다. 저소득층·60세 이상 고령층이 일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들기 위해 지난해 판매장 옆에 황태, 마가목 등을 가공하는 가공장을 만들었다. 정 이장은 “마을기업의 주목적은 고용 창출”이라며 “다음달에 예비 사회적기업으로 신청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예비 사회적기업으로 선정돼 정부로부터 임금 등을 지원받으면 15명 안팎을 채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 경향신문




백담마을 주민출자 버스사업 … 급여 월 2백 넘어


[99%의 경제]

설악산 백담사 입구 ‘백담마을’


용대향토기업

백담사~백담마을 7.2㎞ 왕복운행하는 마을버스

1996년 백담사서 사업권 받아 주민 25명 3백만원씩 출자

직원 18명 모두 마을주민 급여 모두 월2백만원 넘어 운행못하는 겨울에도 기본급 이익금 상당액 마을발전기금

그 돈으로 공장…판매장…

늘어나는 주민들 살림·인심 넉넉해지면서 2009년 303가구→2011년 315가구

유치원·초등생 80여명 중고생 40명 어린이집 40명 아이들 북적

일자리가 넘치고 아이들 웃음이 있는 마을!



지난 6일 강원도 인제군 설악산 백담사 입구의 용대2리 백담마을을 찾았다. 산골짜기에 자리한 마을회관 입구에는 한 달째 ‘버스 기사 모집한다’는 용대향토기업의 공고문이 붙어 있었다. 기본급 100만원에, 실제 급여는 200만원에 이른다고 했다. 시골에서는 아주 좋은 일자리다. 하지만 까다로운 조건이 하나 있었다. 마을에 2년 이상 거주한 주민이어야 한다.


용대향토기업의 박문실 대표(가운데)가 마을을 찾아온 

이기원 한림대 교수(오른쪽)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용대향토기업의 박문실(54) 대표는 속이 타들어간다. “단풍 성수기가 닥쳤는데 큰일입니다. 사람을 구하지 못해 사무실의 총무부장까지 운전대를 잡고 있어요. 주민 한 분이 버스운전기사 자격 취득을 준비하고 있는데, 빨리 일할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 용대향토기업은 백담마을에서 백담사까지 7.2㎞ 구간을 왕복 운행하는 마을버스 회사이다. 말 그대로 마을 주민들이 출자해 세운 알짜 공동체 기업이다. 마을 반장 등 25명의 주민이 300만원씩을 출자했다. 1996년에 버스 2대로 시작한 사업이 지금 10대로 불어나, 매출이 16억원에 이른다.


“운전기사 12명, 검표와 개표 직원 3명, 사무실 직원이 3명이에요. 18명의 마을 주민 일자리를 창출하지요. 지금 같은 성수기에는 임시직원을 6명 더 씁니다. 용대향토기업은 우리 백담마을을 살린 보물단지입니다.” 경리 일을 하는 김희연(37) 주임은 14살, 8살, 6살 세 아이를 둔 엄마 직원이다. “춘천에서 살다가 8년 전에 고향 마을로 돌아왔어요.” 18명 직원의 급여는 모두 월 200만원을 넘어선다. 버스운행을 하지 못하는 겨울철 석 달 동안에도 기본급을 받는다. 영리보다 공동체를 앞세우는 향토기업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용대향토기업은 이익금의 상당액을 마을발전기금으로 내놓는다. 연말이면 가구당 20만원씩의 이익배당금도 지급한다. 마을발전기금 출연액은 지난해에 4억원이었고, 올해도 2억8천만원에 이르렀다. 백담마을은 그 돈을 또다른 주민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요긴하게 쓰고 있다. “마을 회관의 상근자가 5명이나 돼요. 이장과 정보화마을 사무장, 체험 사무장, 도서관 사서, 미술교사이지요. 우리 5명의 급여가 마을발전기금에서 나옵니다. 도서관 사서는 베트남 이주여성이에요.”(정연배 이장·48)


올 11월부터 가동하는 마을의 가공공장과 지난 2월에 문을 연 판매장을 세우는 데도 용대향토기업이 큰 몫을 했다. 각 4억원에 이르는 건축비의 절반이 용대향토기업의 마을발전기금으로 충당됐다. “황태와 마가목 가공품을 생산하는 가공공장에서는 17명이 일할 겁니다. 앞으로 25명까지 고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판매장에서도 3명이 일해요.”(정 이장) 마을 앞을 관통하는 도로변에 설치한 판매장에서는 반년 만에 이미 5천만원이 넘는 흑자를 냈다. 연말까지 1억원의 순수익을 기대한다. 특산물과 가공품을 마을에서 직접 만들기 때문에 수익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백담마을에서는 마을 노인이나 장애인 주민에게도 마을 축제 등의 가벼운 일자리를 맡기는 미풍양속을 만들었다. 6~7일 이틀 동안 열린 ‘마가목 문화축제’에서는 84살의 윤석매 할머니가 아이들의 팝콘 봉지에 옥수수와 참기름을 담아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할머니에게도 젊은 일꾼들과 똑같이 3만5천원의 일당과 3천원의 간식비가 지급된다고 했다. “이제 우리 마을은 살 만해졌습니다. 저소득층과 소외계층 주민들을 위한 사업을 잘 만들어나가는 게 앞으로의 꿈입니다. 새로 문을 여는 가공공장도 사회적 기업으로 꾸려나갈 생각이지요.” 정 이장의 포부이다.


살림과 인심이 넉넉해지면서, 백담마을은 새로 집을 지어 들어오는 주민들이 생겨나고 있다. 백담사 유명세를 타고 주민들이 운영하는 펜션과 판매점·식당들도 많아졌다. 2009년 303가구 668명에서 지난해 315가구 678명으로 인구가 늘어났다.

뭐니뭐니해도 백담마을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다. 유치원생과 초등학생만 80여명이고, 중고생까지 합치면 120명에 이른다. 어린이집에도 40명의 아이들이 북적거린다. 마을 회관에서는 수준 높은 방과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학습부진아를 이끌어주는 선생님도 초빙한다. 마가목 문화축제 첫날인 6일의 하이라이트 또한 아이들의 ‘방과후 페스티벌’이었다. 밴드와 사물놀이, 댄스 등 아이들의 공연 경쟁이 이어졌고, 관중석의 앞자리는 100명 가까운 아이들이 차지했다.


“용대향토기업의 버스사업을 시작하기 전만 해도, 백담마을의 살림살이는 인근 마을보다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백담사에서는 어려운 마을 돕자고 버스사업권을 넘겨주었고, 마을에서는 그 사업의 이익금을 잘 활용했습니다. 주민 일자리 늘리고, 아이들의 웃음소리 넘치는 마을로 살려냈습니다.” 인제군의 마을리더 교육을 이끌어온 이기원 한림대 교수는 백담마을을 ‘아이들과 어르신이 존중받는 마을공동체’의 모범사례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백담마을은 중요한 의사결정을 마을총회에서 투명하게 합의로 끌어내는 전통을 만들어냈습니다. 용대향토기업의 최고의사결정기구 또한 마을총회이지요. 백담마을 성공요인을 꼽자면, 그게 첫번째예요. 신뢰를 통한 합의, 그리고 배려이지요.”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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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곡, 장수농부 <좋은 마을>



내가 땅을 사게 만들도록 역할을 한 게 멧돼지였습니다. 왜 그런지 짐작이 갑니까? (제가 사는 곳은) 골짜기 위에 논을 작했는데, 첩첩산중인데 일조량이 굉장히 좋습니다. 된장발효조건도 좋습니다. 고르다보니까 좋은 곳을 골랐습니다. 멧돼지가 벼 익은 것을 좋아합니다. 복숭아도 익은 것 좋아합니다. 벼가 익으니까 멧돼지가 분탕을 쳐버립니다. 그래서 전 주인이 멧돼지 때문에 농사를 못 짓겠다고 해서 제가 그곳을 사게 됐습니다. 멧돼지 아니었으면 거기 자리 잡기 어려웠을 것입니다(웃음).

작년에 이사 온 분이 저보다 한 살 위입니다. 이 분이 얼마나 부지런한 지 (뒷산에 저는 한 번도 못 올라가봤다), 이 분은 등산로를 만들어서 9부등산로까지 개척했습니다. 이 분이 지난 등산하러 가셨다가 멧돼지를 만난 모양입니다. 산중에서 만나면 겁나죠. 백두대관 뒤에가 봄이 되면 나물이 좋아요.

봄나물 말씀해보셔요? (취나물, 머위, 두릅, 고사리..)우리 부부만 살 때는 산나물에 관심이 없었어요. 요새 이사 온 두 집이 다 좋아하셔요. 전에는 밑에 동네서 나물을 다 따왔는데, 이사 온 사람들이 따니까 신경이 쓰이는가 봐요. 알려져서, 이제 판도가 달라졌습니다.

점점 나물캐는 게 빨라졌다. (여담인데), 아주 나물이 좋습니다. 나물 캐러 갔다 이웃 아주머니가 금방 내려왔다, 멧돼지 소리가 난다고. 요즘은 (멧돼지 소리가 나니까) 조를 짜서 올라갑니다.

저는 5년간 (멧돼지)구경 한번 못해봤어요. 멧돼지가 제일 천적이에요, 사과밭도 그렇고. 이듬핸가 발자국은 많이 봤어요. 고구마를 심었는데, 좋게 말하면 자연농법이고 방치였다. 일을 굉장히 많이 하다보니까, 고구마에 신경을 못 써 풀이 엄청 났어요, 억센 풀들이 꽉 찼습니다. 언제 고구마밭에 가봤더니, 발자국이 많더라구요. (멧돼지가)고민한 흔적이 보여요. 고구마밭인가? 풀밭인가? 풀이 굉장히 많아서요. 우리 밭에는 못 들어가더라구요.

풀밭을 만들어보세요(웃음). 잠깐, 산골생활에 대해 스케치삼아 이야기 했습니다. 재밌습니다.


(
몇평 쯤 되십니까?) 다섯 집이 다 들어와서 사용할 수 있는 땅은 5천 평 정도. 아침에 나가보면, 참 기분이 좋습니다. 각종 꽃, 새소리, 다 좋아요. (저희 집이)가공하니까 항아리사고, 원료 값 줘야 하고, 통장에 돈이 떨어지면 경치가 눈에 안 들어옵니다. 시골사람들이 정도 많은 것 같지만 굉장히 타산적입니다. 옛날 인심 좋은 것 생각하면 실망도 많이 하게 됩니다. 굉장히 비합리적 기성이 대단합니다. 억지요, 억지. 그것과 만나서 속앓이 할 때는 경치가 눈에 안 들어옵니다. 일을 심하게 해서 피곤하면 경치가 눈에 안 들어옵니다. 그런 삶도, 돈 걱정 안하고 이웃사람과 불화하지 않고 일이 힘들지 않는 조건이 될 때, 자연 환경이 살려집니다. (그때) 농촌생활의 즐거움, 행복이 느껴집니다.


요즘 생각하는 게, 적어도 귀농을 해서 행복목표를 달성 하려면, 세 가지가 박자가 맞아야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저 자신도 그렇고, 주변 귀농하는 분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듭니다.

첫째, 동기랄까, 다른 말로하면 의욕이 분명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귀농하려는 꿈이 분명해야 합니다. 젊은 사람들 말로 로망이 분명해야 합니다. 로망이 뭡니까?
(‘산을 좋아합니다. 산 가까이 가서 동물을 많이 키우고 싶습니다. 아이들과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자연이 좋아서요. 아침에 해 뜨는 것 보고 저녁에 해 지는 것 보고. 자연과 살고 싶어서요.’ ‘모든 플랜을 남편에게 따라 가려구요.’) 결혼하신 분들은 자연과 살기 이전에 부부와 함께 살겠다는 로망이 중요합니다. 한분만 더? (정년도 했구요. 원래부터 그렸던 시골생활이 그리워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결혼 안 하신 분, 결혼에 대한 로망은 없습니까? (생각 안 해봤습니다) 이걸

여쭤보는 이유는, 아주 현실적입니다. 로망이 서로 같은 게 귀농성공에 가장 중요합니다. 자연하고는 처음에는 좋지만, 오래 살다보면 너무 익숙해져버립니다. 처음에는 생명에 환희를 느낍니다. 오래가다보면, 몇가지 걱정 (돈 걱정, 부부싸움, 힘든 일)으로 자연이 눈에 안 들어옵니다. 보다 현실적인 로망을 생각해보십시오. 쓸 만한 남자를 구해서 같이 들어간다. 그게 단순한 삶입니다. 문화운동이, 소유로부터 존재의 삶을 살겠다는 겁니다.

경쟁, 갈등의 삶에서 벗어나서 단순, 존재의 삶으로 해보겠다는 말입니다. 쉽게 말하면, 문화혁명이죠. (저는)귀농을 은퇴해서 내려가는 은둔자의 삶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진짜 혁명가들이라고 봅니다.



로망은 누가 억지로 갖게 할 수 없습니다. 진짜 힘듭니다. 많이들 말씀 나눴을 겁니다. 소박, 단순, 존재의 삶. 이게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귀농합니다. 귀농자들 중에 가장 실패하기 쉬운 예가, 귀농해서 그린 로망 때문에 간절해서 귀농하는 게 아니고 무엇무엇으로부터 탈피하려고 귀농하는 사람들은 실패할 확률이 많습니다. 서울생활이 싫어서, 사람관계가 싫어서 그렇다면, 행복한 경우가 쉽지 않습니다.


이보단 낫겠지, 하고 갔더니, 이보단 나은 정도가 아니고. (엄청나게 좋다는 사람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구리광산정도 일 줄 알고 갔더니 금광이다는 분도 소수 있습니다. 뭐가 싫어서, 탈피하려고 간 사람들은 오히려 확률로 보면 뿌리를 잘 내리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거기도, 도시와 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는 삶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람한테 치어서 시골 가겠다는 건 크게 오산입니다. 그렇다면, 서울 사는게 좋습니다. 서울은 익명성 공간이 확보돼 있잖아요. 시골은 집들이 띄움 띄움 있습니다. 익명성이 없어요. 안 좋게 말하면 프라이버시 보호가 잘 안 돼요. 관심이지만, 나쁘게는 간섭이 심합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인사하면, “저쪽에서 어디 가느냐?”, “장에 갑니다.”, “뭐 사러 갑니까?”, “뭐 삽니다.”, “사서 뭐하게?” 아주 관심이 대단합니다.

나중에는 가다가 남원시장에 장화 사러 가는데, 밭에 갈 때 신으려고 사러 갑니다. 한꺼번에 얘기했더니, 재미가 없어. 처음부터 다시 얘기했습니다. 관심이 많아, 심지어 숟가락이 몇 갠가까지 압니다. 이건 사람 많지 않은데, 전혀 다른 세계입니다. 사이가 안 좋으면 지내기 참 힘들어집니다. 뭘 피해서? 예를 들어 경쟁이 싫다면, 경쟁대신에 앉아들일 것이 준비 안돼서 갑니다. 그게 없으면 자립적인 생활을 하기 힘들어져요. 그래서 확대해서 말하면 사회진보운동도 마찬가지이구요.

무엇무엇에 반대해서, 싫어서가 아니라 무엇이 좋아서 그런 마인드를 가지고 귀농해야 합니다. 그래서 로망이 간절하고 절실할수록 성공가능성이 높습니다.



혹시, 로망은 느리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분 계신가요? (저는 그렇습니다) 좋은 로망입니다. 왜 느리게 살고 싶으세요? 000 (스피드 사회에서 모든 걸 몰아넣는 것 같에서요. 설명보다는 체험으로 다가오는 느낌으로 살고 싶어서요) 좋은 로망입니다. 이것이 가지고 있는 함정이 있습니다.

사실은 느리게 산다는 것은 그동안 산업사회 패턴들에 대한 반성, 성찰적 반성으로부터 나온 목표이기도 합니다. 크게 말하면, 인간중심으로부터 자연을 수탈해온 산업문명, 특히 한국 사람들이 가진 빨리빨리를 넘어서서 살고 싶다는 겁니다. 도 그렇게 살고 싶거든요. 주인의 삶, 주체적인 삶. 빨리빨리는 자기주체적인 삶이 아닙니다. 쫓기는 삶이 아닌 게 느리게 사는 삶입니다. 비슷하지만, 아주 다른 게 게으름입니다. 느리게와 게으르게가 비슷합니다. 그런데 달라요.

요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게으름과 느리게는 전혀 다릅니다. 게으른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많이 하더라구요.

느리게라고 할 때 연상되는 동물이 있습니다. (거북이) (나는 연상되는게) 호랑이와 사자는 느립니다. 두려운 게 없어요. 빠를 땐 기가 막히게 빨라요.

느리게 산다는 로망은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살겠다. 빨리빨리는 전부 강요된 삶입니다. 이걸 게으르단 것과 혼돈하면 굉장히 큰 함정에 빠집니다. 농촌에선 게으르게 살 수 없습니다.


주위가 24시간 보고 있는데, 그것을 견딜 수 있으면 괜찮습니다. 풀 때문에 스트레스가 아니고, 주변사람들 시선을 견딜 수 있으면 괜찮습니다. 농사일이 적기가 있어요. 시기를 놓쳐 버렸다하면, 일이 엄청 힘들고 수확도 못합니다. 그래서 호랑이와 사자처럼 느리지만 빠를 때는 전광석화같이 (시기를)맞춰져야 됩니다. 정말로 그 시기에 맞춰해야 할 일은 정말로 빨리 움직여야 됩니다.

그것이 바탕이 된 느림입니다. 느림을 게으름으로 생각해선 안 될 것입니다. 그 로망이 어떤 로망인가가 첫째로 중요합니다. 사람이 행복을 그릴 때 사람마다 다 달라 객관화시킬 수 없습니다. 자기만의 로망을 절실하고 간절하게 아름답게 꿈꾸세요. 그랬을 때 성공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시골사람들이)어떤 말을 듣기 싫어하냐면, ‘나이 먹었으니 농사나 지어야지하는 말입니다. 농사일이 진짜 힘들어요.

귀농하려는 로망이 뚜렷할수록,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넘어설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금방 포기합니다. 로망은 구체적이고 절실할 필요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실력입니다. 꿈만 있지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자기도 힘들지만 주위가 힘들어요. 특히 가족단위에서 잘 봐야 합니다. 크게 두 가지 입니다. 로망은 절실하고, 아름다운데, 구체화시킬 실력은 준비가 안 되고 없을 때 그 꿈 자체가 공허해져요. 쉽게 말하면, 일은 벌려 놓은데, 제대로 땅을 활용하고 농사를 지을 실력이 뒷받침 안 되면 같이 가는 사람이 힘듭니다.

실력은 다 갖추고 태어나는 게 아니잖아요. 적어도 실력을 닦아 보겠단 생각을 해야 됩니다. 예전에 도산 안창호선생은무실역행을 강조했습니다. (한국사람들이)너무 실무적인 능력이 없는 거예요. 실제로 실현할 수 있는 실천의 발이 준비 안 되면 정말 힘들어집니다. 본인도 힘들뿐 아니라 주위사람들도 힘들어집니다. 귀농하려면, 서서히 그 로망과 함께 로망에 맞아떨어지는 실력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 중에 하나는 돈도 있습니다. 돈을 넉넉하게 준비하면 크게 힘들이지 않고 자연과 주변사람과 더불어 즐길 수 있습니다. 돈 못지않게 실력을 준비해야 합니다. 농사기술은 배우면 됩니다.
 
그중 실력은 체력과 끈기입니다. 체력을 많이 준비하셔야 됩니다. 실력중 하나예요. 제가 아는 역귀농한 친구 중 하나가 헬스클럽에 가서 체력을 다졌습니다. 실제 농사는 그것과 다릅니다. 단기적인 힘쓰는 것은 젊은 사람에게 지는데, 일을 하면 나보다 못하는 사람이 많더라구요. 서서히 체력을 준비해가야 합니다.



그 다음이, 소통의 실력입니다. 아까 농사방법도 얘기했지만, 실제로 농촌에 가서 로망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사람들과 소통을 잘 해야 합니다.
문화혁명에서 핵심 하나가 소통입니다. 어떻게 보면, 사람들과 스트레스를 피해서 도시처럼 복잡하게 얽혀 사는 곳이 아닌 농촌 환경을 선택하려고 하지만 그것과는 아닙니다. 오히려 더 큰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는 문화적요소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경쟁, 갈등하는 관계에서 이제는 다른 사람들에게 내 맘을 여는 준비를 해야 합니다. 소통이 있는 곳이라면, 이게 모두 공동체예요. 어떤 형태가 있는게 아니라, 사람사이에 소통이 원활하게 있는 곳이 공동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준비를 해야 됩니다. 준비는 마음가짐의 변화라고 할까요. 아까 로망 얘기 하다 떠올랐는데, 사람으로서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로망이 뭘까요. 성인이 되고 싶은 로망입니다. 동의하십니까? 하십시다.

우리 성인이 시다. 괜찮습니까. 사실은 제가 하고 싶은 말이 그겁니다. 기왕 귀농하실 거 성인이 돼 봅시다. 마음자체를 변화시키는 거예요. 귀농, ()으로 돌아간다. 인간본연의 가장 깊은 곳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해봄은 어떨까. 왜 마음이 안 당깁니까.

정말 소통을 잘하려면 자기 스스로가 손을 내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혹시 다른 사람을 변화시킨 사례가 있습니까. 어떤 사람을 변화했다면, 내가 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이 결심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결국은, 아집이 있는 인간끼리 소통하려면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이 실력이 쌓이면 성인의 실력입니다.

사실, 면벽구년하고, 참선도 하고 명상도 하는데, (이것들도)굉장히 마음의 자유를 얻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면벽보다는 대면입니다. 깨달은 사람이 내려와서 누가 더 깨달은지를 놓고 싸운다면 무슨 소용있겠습니까. 진짜 중요한 것은 소통이 되는 사람입니다. 공자는 몇 살 때 소통이 가능했다고 했습니까. 이순 (60), 귀가 뚫렸다는 건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들린다는 겁니다. 요즘 소통이야기 많이 하잖아요. 무소유, 사람간의 소통의 자유, 이것이 동기라면 이 길이 성인의 길이다. 여기서 실력을 쌓으면 성인이 될 수 있습니다.
 

기왕에 귀농하면, 이 같은 목표를 넌지시 가져봄이 어떤가 싶습니다. 의무감, 사명감으로 가지면 결코 즐겁지 않습니다. 이것이 제가 말하는 실력입니다. 로망이 실력을 갖출 때 성공할 수 있습니다.


소통을 연습하는데, 멀리서 할 필요 없습니다. 가장 연습하기 좋은 상대가 부부예요. 결혼하지 않는 사람은 소통의 파트너를 만나야 되요.

옛날 사람들은 성인의 길을 가려면 집을 버리라고 했잖아요. 성인의 길을 가려면 악처를 만나라고. 멀리 있는 사람은 달라도 삽니다. 안 맞으면 그만이야. 하지만, 귀농은 부부가 24시간 같이 있어야 됩니다. 각오해야 됩니다. 귀농해보셔요, 24시간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귀농은 성인의 길입니다. 그래서 이게 안 되면 힘들다니까. 올해로 저는 결혼한 지 31년째 됐습니다. 그런데, 삼십년 살면서 장수에서만큼 오래 같이 살았던 적이 없습니다. 반경 500미터 안에서 늘 같이 사니까요. 같이 살면서 소통의 실력이 뭔지를 생각해봤습니다. 마을같이 만드는 사람들과 논어를 일주일에 한 번씩 연찬강독을 했습니다. 제가 한 2년 동안 공자에게 푹 빠져 지냈습니다. 성찰과 소통에 대해서는 우리가 같이 강독하면서 연찬할 수 있는 내용으로 논어를 권장하고 싶습니다. 그걸 통해서 서로 성찰도 하고 소통의 계기로 삼았습니다.

제자들이 공자에게선생님, 평생동안 간직해야 할 한마디는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서슴치 않고 공자가 대답하길용서할 서()”입니다. 무엇이 연상됩니까? 어떤 때 합니까? 네가 잘못했지만, 내가 용서할께. 이것은 전혀 다른 세계입니다. 용서는 내가 옳다는 게 바탕이 돼 있어요. 요새말로 하면, (이 의미는)용서라기보다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의미입니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이 서()예요. 이게 소통에서 가장 중요한 바탕이에요. 내가 기준이 돼서 나는 옳다, 바르다는 기준으로 상대를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야 막힘이 없어요.

내가 옳다하면 막힘이 있어요. 그러면 뭔가 부자연스러움이 있어요. 부부간에 가족 간에 잘 연습을 해보시면, 진짜 인생자체가 질적으로 업그레이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끔 집사람 예를 듭니다만, 서로 성격이 많이 달라요. 성격도 다르고 로망도 달라요. 집사람이 (가공공장)사장이고, 제가 종업원입니다. 예를 들어,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일이 먼저 떠오릅니다. 집사람은 꽃밭에 가 있습니다. (이걸) 한참 이해를 못 했다니까요. 이게 받아들여지지 않더라구요. 나중에는 이래저래 생각을 하다, (서라는 건 뭐냐?)저 사람이 꽃 가꾸는 것을 참 좋아하는 걸 그대로 받아들였더니 이해가 되었어요. 집사람한테는 가공 일보다는 꽃 가꾸는 데 관심이 더 많고 하고 싶어 한다는 걸 받아들였어요. 근데 맘속에서는 뭐가 올라와요. 어느 순간에 정리되는 계기가 있더라구요. 머리로 할게 아니라, 꽃밭 가꿀 때 같이 해보니까, 그 즐거움이 나한테 비로소 들어오더라구요. 물론, 집사람에 대한 배려와 애정이 바탕이 됐을 때 되더라구요.

어느 기특한 순간에 내가 저 사람이 꽃밭 가꾸는 걸 맘 놓고 하게하고 싶단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게 서()인 것 같더라구요. 진짜 그 사람이 하고 싶은 걸 하게하고 싶단 생각이 들더라구요. ()는 사랑입니다. 머리로 이해하는 게 아니고. 이럴 때 비로소 사람간의 소통이 되는 것 같더라구요. 가족, 특히 부부 그리고 정말 가까운 사람들하고 소통의 연습을 하십시요. 이게 귀농할 때 중요하게 갖출 실력입니다. 구리광산인 줄 알았는데, 금광산이라면, 얼마나 좋습니까. 귀농이 문화운동이고 혁명이라면, 소통의 새로운 장을 열어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걸 힘들이지 않고 가볍게 연습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셋째가 책임입니다.

요새 느끼는 게 젊은 분들은 어떤 일을 끝까지 잘 못하는 것 같습니다. 요즘 젊은 분들 볼 때 제일 안타까운 게 유시무종(有時無終)입니다. 시작을 했는데, 끝이 없습니다. 한번 시작하면 끝까지 책임져 보겠다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물론 다 그렇단 얘기는 아닙니다.
 
실제 중요한 것은 끝까지 책임있게 해나가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주인의식입니다. 주인은 끝까지 합니다. 자기인생의 주인인데, 스스로 그것을 못 하는 겁니다. 주인의식이 약한 이유 중 하나가 어떤 어려움에 닥쳤을 때, 금방 시선이 다른 사람과 환경으로 갑니다. 실제로 목표가 분명하면, 환경 탓, 남 탓하기 전에 어떻게 하면 이 일을 할까 골몰합니다. 대체로 어떤 어려움을 만났을 때 바로 환경 탓, 남 탓으로 가버립니다. 그러면 중도에서 끝납니다.

사실, 귀농 자체가 삶의 전환, 문화혁명이라면, 끝까지 해보겠단 주인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일을 남 탓으로 돌리지 않아야 합니다. 자기 삶에 충실한 삶이어야 합니다.

가끔 여러 가지 세상사를 보면서 떠오르는 우화가 솔로몬우화, 친자소동이 생각납니다. 친어머니의 태도 있잖아요. 진짜 친어머니의 자세예요. 실제 참된 주인의식은 남 탓, 환경 탓으로 돌리기 이전에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을까, 골몰합니다. 실제로 굉장히 중요합니다. 논어에서, 남이 나를 알아주지 못해도 내 맘이 동요가 없을 때 군자다 (이게 주체적인 인간). 요새 얼마나 남의 평가에 흔들리기 쉽습니까. 화가 날 때 하나가, 다른 사람이 나를 몰라줄 때 내 맘이 요동을 칩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이것은)자기를 뺏기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주인의식은 다른 사람이 나를 뭐라고 하든지 그것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로망을 끝까지 실천해가는 게 아닌가요. 요새 제가 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두서없이 말씀드렸습니다.


로망을 절실히 갖추고, 실력 중 중요한 게 소통의 실력입니다. 그리고 끝까지 일을 해나가는 주인의식, 주체적인 태도. 이 세 가지가 조화를 이룰 때 귀농이 성공적으로 다가옵니다. 너무 거창하게 들리시겠지만, 이게 잘 안되면 귀농이 만만치 않습니다. 저도 조화롭지 않습니다. 다만, 노력하는 과정이 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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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의,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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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가서 장류를 한 계기는?

무소유공동체에서 나와서 새로운 삶을 살아보자 했을 때 제일 걱정이 경영이었습니다. 예순때 왔으니까, 농사 짓기는 힘들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농사짓는 것 보다는 노동이 적고 수입도 생겨서 택했습니다. 귀농할 때 자기가 가진 적성들을 살려서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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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음식만드는 데 관심있어서 장만들기에 관심이 갑니다. 평소에 해보셨던 겁니까. 집사람도 이것을 할 줄 몰랐습니다.
고추장이 한번 염도가 안 맞으니까, (신맛이 돌아버리니까) 일곱, 여덟 항아리 땅에 묻었습니다. 지금은 대체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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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은 직접 농사 짓습니까.

다 못 짓습니다. 고추는 유기농으로 지은 걸 사서 쓰고, 콩은 제것이랑 주변이랑 합해서 씁니다. 지금 하고 있는 장류는 된장, 간장, 고추장, 청국장, 청국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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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녹취록에서 공동체 안에서 가구들이 농작물을 분담해서 짓는다고 읽었습니다. 그렇습니까? 또 하나는 야마기시공동체 나와 지금까지 사시면서 무소유 삶에 대한 지향을 여전히 가지고 계신지요?


저희 마을은 개별 시스템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시스템에 맞기 때문입니다. 아직은 무소유 삶이 지금 시스템에 맞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무소유 삶에 로망이 있었습니다. 무소유가 자본주의를 넘어선다는 데 확신이 있습니다. 다만, 아직 인간에게는 아집이 있기 때문에 이 상태에서는 무소유 실험이 안 맞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어느 정도 제가 하고 있느냐는 모르겠습니다. 그 실태에서 출발해서 나도 준비하고 서로가 준비하면 어느 날은 (무소유를 실현할)때가 되지 않겠냐고 봅니다. 다섯 집이 협의체를 구성하지 않습니다. 전부 각자 하고 싶은 작물을 짓습니다. 제일 편합니다. 대신 중요한 것은 어느 누구한테서 자발적으로 양보하는 기풍을 일으켜야 합니다. 서로 감흥 하는 분위기. 양보의 이니셔티브를 연습해보려고 합니다. 자율적으로 조종하려고 합니다.

사실, 가공은 어느 한 집이라도 같이 하면 좋다는 마음은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이걸 맡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점점 더 육체적으로 힘들어지니까요. 그러나 집마다 로망이 다 다릅니다. 그래서 개별 가정들이 완전히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전체적으로 서로 알게 모르게 조화를 이뤄 가려고 합니다.

얼마전에는 양계하려는 사람이 이사를 왔습니다. 정해져 있는 규칙으로 서로를 구속하는 게 없이 정말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조화되는 모습이 (제가 그리는) 우리 마을의 모습입니다. 규약, 협의체 전혀 없습니다. 8년간 시스템에서 하는 생활을 하다보니, 거기서 오는 반작용인줄은 모르겠습니다. 짜임새가 필요하면 그렇게 할 겁니다. 현재는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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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빈곤으로 공동체안에서 관계문제도 어렵다고 하든데요. 다섯 가구에서 상대적 박탈감, 관계에서 어려움은 안 생겼나요?

저도 신경 쓰이는 점들입니다. 아마 그것이 하루하루 사람과 만나 살면서 하는 새로운 경험들일 겁니다. 전부 부채가 많아요. (전부) 넉넉하지가 않아요. 그래서 저도 협동조합을 하자고 생각을 해봤어요. 아직은 불편하단 거예요. 그래서 두 가지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필요에 따라 할 거예요.

자유노동, 자발적인 자유의지로. 품앗이는 댓가가 없는 게 아니예요. 품앗이도 일종의 교환이에요. 노동의 교환, 품앗이보다 진일보 한 것 해보려고 합니다. 이렇게 하는 집이 하나둘씩 해보면, 같이 살면서 성인의 길을 가는 거예요. 정말 오른손이 하는 걸 왼손이 모르게 하는 거예요.

공동의 지갑, 1%를 넣자. 정말 자유의지에 따라 마을의 공동기금을 마련하려고 합니다. 이게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노인복지, 교육, 육아, 질병에 대한 대처가 되겠죠. 이렇게 해서 자유노동과 마을공동의 지갑 만들기가 진척되면 의식이 향상돼서 협동, 무소유 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지요. 너무 염려하지 말고 해보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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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의 삶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쉽게 말하면, 분배, 급료가 없는 시스템입니다. 자기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한 만큼 씁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공동체에서 무소유하는 데는 많지 않습니다.

실제로 사람들이 소유의식과 아집이 있는 상태에서는 부자유가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 실태하고 다르다보니까 생기는 부작용들이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쉽게 말하면, 일은 못하는데, 씀씀이가 많은 사람을 보면 마음이 불편합니다. (수강생그게 불가능합니다.

불교, 카톨릭종교기관에서도 못하고 있잖아요. 그걸 다섯 세대, 열 세대가 모였다고 하겠습니까?”) 인간이 가진 특권이라고 봅니다. 미래는 보통사람들이 성인이 되는 시대라고 봅니다. 실제로 가능한 목표로 왔다고 봅니다. 아직은, 지금 인간의 실태와 안 맞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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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살아보려면?

지금 땅이 없습니다. 근방에 알아볼 수 있죠. 나는 30분 거리에는 모두 이웃으로 봅니다. 산내면쪽으로 오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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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로개척은?

생협, 수도권 생협, 개별적 가구들입니다. 채소를 하는 이웃은 가족회원제도를 시험해보려고 합니다. 가족회원제도는 회비형태로 받고 채소를 1년간 공급하는 겁니다. 1년에 40만원이면, 삼십 가구 되면 1200만원 됩니다. 이 돈으로는 단순 소박한 삶 정도는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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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세상을 다시 창조하는 마을 가비오따쓰(Gaviotas)'는 미국의 국영 라디오방송의 '해결책을 찾아서'란  방송시리즈가운데 하나로 기획된 프로그램을 소설의 형식을 빌려 책으로 엮은것이다.  앨런 와이즈먼은 인간 없는 세상을 통해 먼저 만났었다. 이 책에서는 지구라는 생명체가 인간이 사라진 다음 어떻게 변해갈 것인가에 대해 아주 낙관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인간이 사라진다면 오랜 시간이 걸릴지라도 지구가 인류 이전의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갈 것이라 주장하며 인간을 지구의 해충으로 취급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비난하거나 죄책감에 빠져 있지 않고 조목조목 자신의 예상과 그 증거와 증언을 풀어놓는다. 러시아의 체르노빌, 아프리카와 아마존 등 세계를 누비며 지구와 인류의 과거와 미래를 샅샅이 되짚는 내용의 미래 예언서성격의 이 책에서 인간이 가져온 미증유의 재앙에 대한 극복 시나리오나 멸망 시나리오와는 다른 독특한 관점이 있었다.

국영 라디오 방송에서는 가비오따쓰에 관한 그의 최초의 보고를 여러번 방송하였다. 가비오따쓰(Gaviotas)'는 파울로 루가리와 호르헤 쌉 등의 콜롬비아의 한무리의 이상주의자,과학자들이 척박하고 황량한땅에 만든 '생태공동체' 로 1970년대에 시작하여 거의 40년동안 유지되어온 마을에 대한 보고서이다.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에서 가비오따쓰에 접근하려면 16시간을 자동차로 이동하여야 한다. 게릴라의 공격이나 준군사용 바리케이트로 인해 여행이 지체될 각오도 하여야한다.

마침내 지평선에 녹색을 띤 땅을 만나면 그곳이 바로 가비오따쓰에 도착한 것이다. 이곳은 불모의 열대평원에 인공으로 조성한 25,000에이커에 달하는 숲이다.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이 곳은 원래 척박한 토양의 사바나, 인적이 드문 곳,  물조차 오염되어 원주민들이 수인성 전염병으로 죽어가던 곳이었다. 말라리아 모기가 들끓고 진창 같은 개울이 흐르는 곳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깨끗한 물과 먹을거리였다.

가비오따쓰는 에너지, 생활환경개선, 황무지 개척 등을 하고 성과를 콤롬비아 전역에 확산시키는데 노력하고 있었으며 이미 30년전에 태양열 냉장고와 풍력발전기를 제작하고 석유대신 자생력 강한 온두라스산 소나무 6백만 그루를 심어 숲을 되살리고 소나무에서 나온 송진으로 페인트,에나멜, 비누, 잉크, 신문용지, 화장품, 약품 등을 만들어 쓰는 등 7백50만평의 땅을 터전 삼아 자연과 함께 공생하는 콜롬비아생태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이다가비오따쓰가 유명해진 데는 태양과 바람을 이용한 대안 기술품 덕분이다.

콜롬비아의 젊은 공학도들의 도움으로 흐린 날씨에도 태양 에너지를 끌어모으도록 태양열 집열판에 특수 코팅 처리를 했고 태양열 주전자, 얕게 부는 적도 바람에도 반응하는 풍력 발전기를 개발했다. 선진국에서조차 걸음마 수준에 불과했던 자연 동력원을 이용한 신기술품을 많이 개발하였다.

가비오따쓰의 자연친화적인 기술들은 콜롬비아의 700개 마을로 퍼졌고, 수도 보고타에는 대규모 태양열 아파트가 지어졌다. 근처 중남미 지역에까지 확산 된 것은 물론 UN은 가비오따쓰를 개발도상국의 모델로 선정했다.


브라질 남부 빠라나 주의 '꾸리찌바'시 전경

역사적으로 '가비오 따스'와 비슷한 개념의 도시건설의 사례를 살펴보면 브라질 남부 빠라나 주의 '꾸리찌바'가 있다 이곳은 모범 환경 계획도시로 유명한 곳이다.

자동차가 없는 도로, 땅위에 다니는 지하철 모두 이 도시의 자랑으로 ‘지속가능한 도시’라고 불린다. 이는 모두 시정부의 합리적인 노력과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룩한 것이다.

오늘날 국제적인 교통·환경도시로의 탈바꿈이 시작되었던 계기는 그 당시 주민들에게 자연보호에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벌목은 극히 제한된 구역에서만 하도록 하였고, 주민들로 하여금 도시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지금의 벨렝강에 대해 정기적으로 청소하는 의무를 부과하였다. 집도 시의회의 사전허가 없이는 함부로 지을 수 없게 하였으며 지붕은 반드시 기와를 잇도록 하였다. 또한 도로 건설도 향후 이 도시의 구획정리를 염두에 둔 듯 다른 도로들과 연계를 고려하여 건설토록 하였다.

꾸리찌바의 세밀한 정책과 앞을 내다보는 혜안에 혀를 내두를 정도 이다. '꾸리찌바시'나 '가비오따스'의 모습들은 내게는 너무나도 인상적 이었다. 과거에 읽어 보았던 환 경관련 책의 바이블격인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운다’ 에서 다루고 있는 환경의 중요성과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친환경적 삶의 올바른 방법을 통해 느낀점은 21C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 우리들은 서구의 자본주의와 개발위주와 지나친 개인주의의 각박하고 황폐한 삶에 회의를 느끼고 이전의 평화로운 모습을 띤 공동체적 삶으로 돌아가는 것을 갈망하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무분별하게 써버린 자원의 낭비가 가져오는 자원고갈, 산업 발전과 함께 커버린 환경오염 등과 같은 심각한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이에 따라 서점의 환경관련 서적란의 자리가 점차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은 자연에게 도전하고 개척하여 문명을 이루며 살아왔다. 우리는 개발이라 할 수 있는 것을 문명발달이라는 엄청난 단어로 나타낸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자연에 도전하는 개발이 비록 환경을 파괴시킬지라도 후에 우리에게 큰 이익이 되고 심지어 문명의 창조라고 일컬어질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 개발이 단지 환경을 파괴하는 것이 될지 또한 아무도 모른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모습 아니 지금 살아가고 있는 서울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에 도로를 생각해 보면 너무나 대책없이 지어졌다는걸 알수 있을듯하다. 자 연은 후세로부터 잠시 빌려쓰는 것이란 말처럼 생태운동은 아니라 하더라도 생활속에서 자연을 먼저 생각하는 작은 실천자연과 원주민과 이주민 모두가 하나의 우주적 일체감 속에서 공존하는 가비오따쓰는 바로 인류가 만들어야 할 문명의 새로운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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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어로 `강갈매기'를 뜻하는 가비오따쓰는 나무 한 그루 없는 콜롬비아 사막에서 시작된 작은 생태 공동체다. 거기에는 적도의 미풍을 에너지로 바꿔주는 풍차, 식수의 세균 제거를 위한 태양열 주전자, 공식 통행수단인 `사바나 자전거', 약국 대신 약초전문점이 있다.

1970년대 문명화된 서구 사회의 모습에 회의를 느낀 가비오따스의 건설자들은 태양열과 풍력이라는 대체 에너지만으로 새로운 공동체를 만든다. 그들은 고군분투를 거듭하면서 지속가능한 사회의 모델을 찾아 자료를 수집하고 원주민 문화에서도 그 가능성을 탐색하기에 이른다.

가비오따스는 이전의 삶의 방식과는 다르게 친환경적이며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이용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적용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곳곳에서 보여준다. 새로운 기술은 이것을 대하는 사람들의 의식과 기존의 사회에서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기술 및 관습과 갈등하거나 경쟁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콜롬비아 황무지 내에서 시작된 생태공동체의 실화를 소설 형식으로 풀어 쓴 작품이다. 21세기 인류 문제를 다룬 최고의 작품으로 불리는 `인간 없는 세상'의 저자 앨런 와이즈먼은 특유의 간결하고 생생한 문체로 마치 현장을 보고 있는 것처럼 사건을 그려낸다. 그에 의해 묘사된 실제 인물들은 가비오따스의 위기와 절망, 환희와 희망의 순간들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어떤 면에서 가비오따스는 무모하고 이상적인 실험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책은 우리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자연의 메시지를 들려준다. 바로 현대인이 맹신하는 과학기술은 인간의 실존을 풍부하게 하는 데 맞춰져야하는데, 이것이 이윤의 도구로 기능하게되면 인간에게 적대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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