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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빈드라나드 타고르(1861~1941)


타고르는 1861년 인도 캘커타 명문 집안에서 태어났다.

인도의 국가를 작사, 작곡한 음악가. 

세계의 거장들을 감탄케 한 화가이자 정치가, 교육자, 철학자. 

1876년 어머니 영면. 1902년 아내 사망, 계속해서 두 아들을 잃음.

1913년 시집<<키탄잘리>>로 동양인으로서는 최초로 노벨상 수상.

1941년 8월7일 타계함. 수많은 작품들(문학, 미술, 음악, 논문 등)을 남기고 있다.

 


악의 문제

R. Tagore(1861~1941)


하늘이 푸르게 보이는 것과 같이 죽음은 검게 보인다. 그러나 하늘이 새의 날개에 파란 물을 들이지 못하는 것처럼 죽음이 인생을 검게 물들이지는 못한다.

우리는 어린아이가 걸음마를 배우면서 무수히 넘어지는 것을 본다. 그는 실패를 더 많이 한다. 잠깐 동안 보고 만다면 우리는 애처로운 장면만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어린아이는 거듭되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쉽게 되지 않을 것 같아 보이는 일에 힘든 노력을 계속 하면서 기쁨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린아이는 자기가 실패한 것을 생각하기보다는 잠깐 동안 일지라도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던 힘에 더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린아이가 걸으려고 애쓸 때 일어나는 일들과 같이 우리는 매일매일 살아가는 동안에 여러 가지 형태의 고난에 부딪친다. 그리고 우리의 지식이 불완전하고, 힘이 부족하여 의지도 약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이 우리의 약점만을 나타내고 마는 것이라면 우리는 절망 끝에 죽게 될 것이다.


제한된 활동범위를 설정해놓고 관찰 한다면 우리의 비참한 실패들은 이상하게 확대되어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인생은 우리에게 더 넓은 견해를 갖도록 이끌어간다. 항상 현재의 제약을 넘어서서 완전한 이상을 향하여 가도록 우리를 이끄는 것이다. 우리들의 마음 속에는 현재의 좁은 경험의 틀 밖으로 걸어 나가려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희망이 우리들이 마음속에 있는 무한한 것에 대한 불멸의 신앙인 것이다. 이 희망은 우리의 무능을 조금도 영속적인 사실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들의 능력에 한계를 두지 않는 것이며 인간이 신과 일체라는 것을 감히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터무니없어 보이는 꿈은 매일매일 사실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는 무한한 것을 향해서 마음을 기울일 때, 진리를 볼 수 있다. 진리에 대한 이상은 현실의 좁은 틀 속에 있는 것이 아니며 직접적인 감정에 있는 것도 아니고, 전체적인 의식 가운데 있는 것이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우리는 인생의 외면성보다 더 큰 진리에 대한 감각을 품고 있다. 우리의 인생은 영원성과 연결되어 있으면서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열망은 인생의 업적보다 영원하다.


인생은 살아가다가 암초에 걸린 대로 내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진리가 항상 이상의 세계로 이끌어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죄악은 이 인생의 길을 막을 수도 없고 또 인생의 소유물을 약탈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죄악도 전진해야 하며 선으로 발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죄악은 전체와의 전쟁에서 결코 승리한 수 없다.

만약 죄악이 멈추어 있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존재의 바닥 아래로 깊이 뚫고 들어가 가라앉을 것이다. 사람들이 현실에 보이는 죄악을 사실로 믿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마치 바이올린의 현이 고문에 가까운 불협화음을 내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믿는 것과 같다. 

통계적 수치로 보면 불협화음의 확률이 화음의 확률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고, 또 바이올린을 잘 켤 줄 아는 사람보다 켤 줄 모르는 사람이 훨씬 더 많지만, 완전의 가능성은 실체의 모순과 결핍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인생이 절대적인 죄악이라고 주장한 사람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들의 비관주의는 지성적이든 감성적이든, 단순한 표면적인 태도이다. 

인생 자체는 낙천적이다. 인생은 계속되기를 원한다. 비관주의는 정신적인 도취광의 한 형태이다. 이는 건전한 성장을 무시하고 독설의 강한 술에 빠져서는 더욱더 독한 술을 갈망하는 인공적인 우울증을 만들어낸다.

만약 사는 것이 죄악이라면 굳이 철학자가 그것을 증명하기를 바랄 것도 없다. 그것은 건강하게 서 있는 사람에게 자살한 사람이라고 선고하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완전해지려고 하는 불완전은 시련을 겪어야 한다. 이처럼 오류를 통해서 진리를 실현하는 것이 지성의 길이다. 지식이란 진리의 빛을 해방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오류를 태워버리는 것이다. 

우리의 의지와 성격은 악을 이겨냄으로써 완전에 도달해야 한다. 우리의 육체적 생명은 생명의 불꽃을 유지시키기 위하여 순간순간 육체의 구성요소를 소비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정신적인 생명도 이와 같이 태워갈 연료를 필요로 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는 인류의 길이 악으로부터 선을 향해 간다고 믿고 있다. 이러한 믿음은 어떠한 반대에도 흔들리는 일이 없다. 선이 인간의 본질 가운데 가장 결정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어느 시대, 어느 지역에서나 가장 높은 가치를 부여한 것은 선에 대한 이상이었다.

우리는 선을 인정해왔고, 선을 아껴왔으며 자기 인생을 통해서 선이 무엇인가를 보여준 사람에게 최고의 경의를 표시해왔다.

- <나는 바다가 되리라> 김양식 옮김, 세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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