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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홍익학당입니다. 홍익학당은 2011년부터 현재까지 유투브에 370여개의 전세계의 철학고전들을 무료 강의로 제공을 해 왔습니다. 사서오경, 노자, 장자, 불경, 성경, 서양철학까지 유명한 철학고전 들의 상당수를 제공하였는데, 이러다 보니 먼저 공부할 내용을 추려 주시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이 제시 되었습니다.

 

이를 위해서 [인문학 1주일 완전정복 시리즈]를 제공하려고 합니다. 홍익학당의 강의중에 각 분야의 뼈대가 되는 강의를 추려서 1주일 정도안에 학습하실 수 있게 제공해 드립니다. 이 강의를 들으시면 어떤 인문학/철학 고전을 읽는 것 보다 정확한 공부의 뼈대가 생기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주일만 투자하시면 인문학과 고전의 전문가가 되실 수 있습니다. 시간이 없으신 분들은 이 강의만 들으셔도 되고, 좀 더 공부하고 싶으신 분들은 학당의 다른 강의를 더 들어 보시거나 관련된 책을 보시면 도움이 되실 것 같습니다. 취업을 준비하시는 분들이나 고전/철학을 공부해 보고 싶은 직장인들께 도움이 되실 것 같습니다. 출퇴근 하면서 공부해 보십시오.

 

동양철학편, 불교철학편, 기독교철학편에 이어 4번째로 [인문학 1주일 완전정복 시리즈-한국철학편]을 제공해 드립니다. 아래 제시된 순서로 강의를 들어 보시면 한국철학의 핵심적인 뼈대와 가장 중요한 골자를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1일차. 천부경 

천부경은 한국철학의 핵심사상을 81자의 한자에 담은 경전입니다. 수리로 우주의 진리와 인간의 길에 대하여 체계적으로 설명합니다. 주역의 핵심이 되는 내용이 이 경전에 반영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 민족 철학의 핵심인 홍익인간 사상의 근원이 되는 경전으로 윤홍식 대표가 어디에서도 없는 강의로 쉽게 풀어 줍니다.

 

강의자료

한글천부경.pdf


 

 

 


2일차. 삼일신고 

삼일신고는 천부경의 핵심사상을 좀 더 쉽게 글로 풀어준 경전입니다. 두 경전은 상호보완적인 면을 가지고 있는데 A4지 한장 분량의 경전에 전세계 철학/종교의 핵심을 모두 담고 있는 자랑스러운 경전입니다.

 

이 경전 하나로 철학의 핵심과 수행법까지 정확하게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강의자료

한글삼일신고.pdf


 

 


 

3일차. 훈민정음의 창제 원리 

우리가 매일 쓰는 한글에는 어떤 철학이 담겨져 있을까요? 세종대왕께서는 동양철학의 핵심인 음양오행을 글자에 적용하여 세계 어디에도 없는 철학적인 글자를 만들어 내셨습니다.

 

윤홍식 대표의 쉽게 재미있는 강의로 어떤 원리로 한글이 만들어졌는지 알아 보십시오. 이런 문화민족이라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강의자료

훈민정음의 창제원리.pdf


 

 

 


4일차. 정도전의 『조선경국전』 

드라마 정도전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 정도전이 밑그림을 설계한 조선은 어떤 철학으로 건국이 된 나라일까요?

 

4대문(흥인지문, 돈의문, 숭례문, 숙정문)에 인의예지를 반영할 정도로 조선은 철학왕국을 지향 했었습니다. 

전세계 어디에 내 놓아도 자랑스러운 건국철학을 이 강의로 알아 보십시오.

 

강의자료

고전콘서트9- 정도전의 '조선경국전'.pdf


 

 

 


5일차. 이율곡의 『성학집요』 

장원급제를 9번이나 했다는 조선의 천재인 이율곡 선생님이 선조를 국가경영의 핵심적인 요체를 설명해 주기 위해 리더십 교과서를 저술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성학집요聖學輯要』입니다.

 

국가경영, 양심경영의 구체적인 방법론을 잘 담고 있는 책으로 리더들은 한번쯤 필독을 해 보아야 할 책입니다. 윤홍식 대표의 쉽고 재미있는 강의로 공부해 보십시오.

 

강의자료

이율곡의 성학집요.pdf


 

 


 

6일차. 정약용의 『탕론』 

조선말 실학자로 유명하신 정약용 선생님 500여편의 저술을 남기셨는데 그중에『탕론湯論』은 짧지만 정치의 핵심을 잘 설명한 명문입니다.

 

정치란 서비스라는 철학자 윤홍식 대표의 강의가 참 와 닿습니다. 서비스 업체를 잘 선택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한번 알아 보십시오.

 

강의자료

고전콘서트10- 정약용의 탕론.pdf

 

 

 

 


7일차. 동학 - 시천주(侍天呪) 

한국철학편 마지막으로 동학을 창시한 조선말 철학자 수운 최제우 선생님의 시천주를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짧은 글에 동학사상의 핵심이 담겨져 있습니다. 운동으로서의 동학이 아닌 철학으로서의 동학도 이해해 본다면 우리가 지금 이 땅에 서있는 이유도 잘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강의자료

동학의 시천주侍天呪 해설과 풀이.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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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준공초[ 全琫準供草 ]


설명 :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 전봉준이 법정의 심문에 답한 재판기록. 규장각도서.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 전봉준이 법정의 심문에 답한 재판기록. 전 1책. 8,000자 안팎의 간략한 책자이다. 내용은 심문 순서에 따라 초초문목(初招問目)·재초문목(再招問目)·3초문목·4초문목·5초문목에 걸치고 있다.


 초초문목은 1895년(고종 32) 2월 9일, 재초문목은 2월 11일, 3초문목은 2월 19일, 4초문목은 3월 7일, 5초 문목은 3월 10일에 있었던 심문 내용이다. 초초문목에서 재판관은 전봉준에 대한 심문에서 주로 1894년 정월의 고부민란과 3월의 동학농민 봉기와의 관계, 농민과 동학교문과의 관계 등을 집중적으로 추궁하고 있다.


 여기에서 전봉준은 처음 고부민란의 단계에서는 봉기한 농민 중 동학교도는 적었고 원민(寃民)이 더 많았고 지방관의 가렴주구에 대한 항거로 봉기가 불가피했다고 답변하였다.


 이 초초문목에서 전봉준은 동학교문과의 관계를 분명히 하고 있지 않지만, 재초문목에서는 자신이 동학의 접주임을 분명히 밝히고 손화중(孫和中)·최경선(崔慶善) 등 다른 동학 접주와의 관계를 말하고 있다. 또한 동학의 교리적 성격, 교단의 직제까지 설명하고 그가 동학교문에 입도하게 된 까닭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제3·4·5초문목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심문의 대부분이 그와 대원군과의 관계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전봉준은 대원군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 밖에 동학농민혁명의 원인, 경과 등에 걸친 그의 진술이 잘 나타나 있다.


 전봉준 공초는 그에 대한 다른 기록인 재판 판결문 원본과 함께 그의 사상 및 동학농민혁명의 성격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전봉준 공초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원본이 소장되어 있다. 1959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이를 대본으로 하여 한국사료총서 10, ≪동학란기록≫ 상·하 2권 중 하권에 수록하였다.


≪참고문헌≫ 東學亂記錄 上下(國史編纂委員會, 韓國史料叢書 10, 1959)

≪참고문헌≫ 全琫準供草의 分析-東學亂硏究-(金容燮, 史學硏究 2, 1959)

≪참고문헌≫ 東學思想과 民衆蜂起(金昌洙, 崇山朴吉鎭博士古稀紀念, 韓國近代宗敎思想史, 1984)

≪참고문헌≫ 全琫準과 東學農民革命(金昌洙, 韓國近代의 民族意識運動, 同和出版公社, 1987)


 


전봉준 공초 심문내용 


전봉준 공초  

全捧準 初招問目(제1차 심문과 진술)

開國 五百四年 二月 初九日(서기 1895년 2월 9일(음))   

開國 五百四年 二月 初九日 

(서기 1895년 2월 9일(陰)) 


問 : 汝姓名爲誰 


너의 이름은 누구인가? 


供 : 全琫準 


전봉준이다.  


問 : 年幾何 


나이는 몇 살인가? 


供 : 四十一歲 


41세이다.  


問 : 居在何邑 


살고 있는 곳은 어느 고을인가? 


供 : 泰仁면山外面東谷 


태인 산외면 동곡리이다. 


問 : 所業何事 


하는 일은 무슨 일인가? 


供 : 以士爲業 


선비로서 일하고 있다. 


問 : 今日法官員 日本領事會同審判 公正決處矣一一直告 


오늘은 법무관원과 일본영사가 회동심판하여 공정히 처결할 터이니 일일이 바로 고하라. 


供 : 當一一直告 


일일이 바로 고하겠다. 


問 : 俄旣明諭 東學事 非徒一身相關 卽國家大關 雖有關係 於何等高官 勿隱諱直告 


아까 이미 명유하였거니와 동학사는 일신에만 상관할 일이 아니라 즉 국가에 크게 관계되는 것이니 비록 어떠한 높은 지위에 관계되는 것이 있어도 숨기지 말고 바로 고하라. 


供 : 當依所敎爲之 當初出於本心之事 與他人無關係 


마땅히 소교에 의하려니와 당초 본심에서 나온 일로 타인과 더불어 관계가 없다. 


問 : 汝是全羅道東學魁首云 果然耶 


너는 전라도 동학의 괴수라 하는데 과연 그런가? 


供 : 初以倡義起包 無東學魁首之稱 


처음은 창의로 기포하였고 동학괴수라 일컬은 것은 없었다. 


問 : 汝於何地 招集人衆乎 


너는 어디 곳에서 인중을 불러 모았느냐? 


供 : 於全州·論山地招集矣 


전주, 논산 땅에서 의병을 모았다. 


問 : 昨年三月間 於古阜等地 都聚民衆云 有何事緣而然乎 


작년 3개월간 고부 등지에서 민중을 도취하였다 하는데 어떤 사연이 있어 그렇게 하였는가? 


供 : 其時古阜 額外苛斂幾萬兩 故民心寃恨 而有此擧 


그 때 고부군수는 액외의 가렴이 기만량인 고로 민심의 원한으로 이 거사가 있었다. 


問 : 雖曰貪官汚吏 名色必有然後事 群言之 


비록 탐관오리라 하여도 반드시 명색이 있었을 것이나 상세하게 말하라. 


供 : 今不可盡言其細目 而略告其槪 一, 築洑民洑下 以勒政傳令民間 上畓則 一斗落收二斗稅 下畓則一斗落收一斗稅 都合租七百餘石 陳荒地許其百姓耕食 自官家給文券 不爲徵稅云及其秋收時 勒收事 一, 勒奪富民錢葉二萬餘兩 一, 其父曾經泰仁 故爲其父建造碑閣云 勒斂錢千餘兩 一, 大同米民間徵收以精白米十六斗式準價收斂 上納則貿 米 利條沒食事 此外許多條件 不能盡爲記得 


지금 그 세목을 다 말하지 못하겠으나 그 대개를 간단히 고하리라. 일(一)은 민보아래 축보하고 늑정으로 민간에 고시하여 상답인즉 일 두락에 이수세를 거두고 하답인즉 일두락에 일두세를 거두니 벼가 도합 700여 석이요 진황지를 백성들에게 그 경식을 허하고 거두니 관가로부터 문권을 주어 징세아니한다 하더니 그 추수시에는 늑징한 일이요 일(一)은 부민에게 돈을 2만냥을 늑탈한 일이요 일(一)은 그의 부가 일찍이 태인현감을 지낸고로 그 부의 비각을 건립한다고 돈을 늑렴한 것이 천여량이요. 일(一)은 대동미를 민간에서는 정백미로 16두씩을 준가로 수렴하고 상납시에는 추미로 바꾸어 이조를 몰식한 일이요. 이외 허다한 조건은 이루다 기득할 수가 없다. 


問 : 今所告中之二萬餘兩勒奪錢 行以何名目乎 


지금 고한 가운데 2만냥의 늑탈한 돈은 어떠한 명목으로 행하였는가? 


供 : 以不孝·不睦·淫行及雜技等事 構成罪目而行矣 


불효 불목 음행 및 잡기 등 명목으로 죄목을 구성하여 행하였다. 


問 : 此等事行於一處乎 且行於各處乎 


이 같은 일은 한곳에서만 행했나? 또는 각처에서 행하였나. 


供 : 此等事非止一處 爲數十處 


이 같은 일은 한곳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수 십처가 된다. 


問 : 至爲數十處 其中或有知名者耶 


수십 처에 이른다니 그 가운데 혹 이름을 아는 자가 있는가? 


供 : 今不可記得姓名 


지금은 이름을 기득할 수 없다. 


問 : 此外古阜 行何等事耶 


이 외에 고부군수가 어떠한 일을 행하였는가? 


供 : 今所陳事件 皆民間貪虐事 而築洑時勒斫他山數百年邱木 築洑役之民丁不給一錢勒役矣 


지금 진술한 바 사건이 모두 민간탐학의 일이나 축보 시에 타산(他山)에서 수 백년된 거목을 늑작(勒斫: 늑탈해 베는 것)하고 축보하는 역사(役事)에 민정을 일전도 주지 않고 늑역하였다. 


問 : 古阜 姓名誰 


고부군수 이름은 누구냐? 


供 : 趙秉甲 


조병갑이다.  


問 : 此等貪虐事 但止於古阜  耶 抑或無吏屬輩作奸耶 


이러한 탐학의 일은 다만 고부군수에게만 그쳤느냐 혹 이속배들의 작간은 없었는지? 


供 : 古阜 獨行矣 


고부군수 단독으로 행하였다. 


問 : 汝居生泰仁地 何故起?古阜乎 


너는 태인 땅에서 거생 했는데 어찌하여 고부에서 기요했느냐? 


供 : 居生泰仁 移寓古阜爲數年矣 


태인에서 살다가 고부로 이사한지 수년이 되었다. 


問 : 然則古阜有汝宇乎 


그런즉 고부에는 너의 집이 있느냐? 


供 : 入於燒灰中矣 


불타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고부에 있는 집은 불타버리고 없다고 진술했다. 안핵사 이용태가 태웠다는 뜻) 


問 : 汝於其時 無勒徵被害耶 


그때 너는 늑징의 피해가 없었느냐? 


供 : 無有矣 


없었다.  


問 : 一境人民 皆被勒斂之害 汝獨無有者何故 


일경 인민이 다 늑렴의 피해를 입었는데 네 홀로 피해가 없었다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供 : 以學究爲業 所謂田畓 只不過三斗落之故 


학구로써 업을 하기 때문에 전답이라고는 삼두락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問 : 汝之家屬幾名 


너의 가족은 몇 명이나 되느냐? 


供 : 家屬分六名 


가족은 합해서 6명이다. 


問 : 一境人民皆被勒斂之害 汝獨無有者 誠甚訝惑 


일경 인민이 모두 늑렴의 해를 입었는데 너만 홀로 없다하니 참으로 심히 의혹이 간다. 


供 : 矣身朝飯夕粥而已 何有勒斂之物 


나는 아침에는 밥, 저녁에는 죽을 먹을 정도이니 어찌 늑렴할 것이 있겠는가? 


問 : 古阜 到任 何年何月 


고부 군수가 도임한 것은 몇 년 몇 월인가? 


供 : 再昨年至·臘兩月間矣 


재작년 동지 섣달·양월간이다. 


問 : 到任的在何月 


도임이 꼭 어느 달인가? 


供 : 未詳 居年則爲一周年矣 


상세히는 알 수 없으나 거년이 일년이다. 


問 : 自到任之初 卽時行虐政乎 


도임하자마자 처음부터 곧 학정을 행하였는가? 


供 : 自初行之 


처음부터 행하였다. 


問 : 虐政自初行之 則何故不爲卽時起乎 


학정을 처음부터 행하였다면 무엇 때문에 즉시 기요하지 않았느냐? 


供 : 一境人民 忍之又忍 終末不得已而行之 


일경 모든 인민이 참고 또 참고 견디다가 종말에 부득히 행하였다. 


問 : 汝無被害 何故起 


너는 피해가 없었다 하는데 무엇 때문에 기요하였느냐? 


供 : 爲一身之害 而起包 豈可爲男子之事 民衆 歎 故欲爲民除害 


한 몸의 해를 위해 기포하는 것이 어찌 남자의 일이라 하겠는가? 중민이 원탄하는 고로 백성을 위해 재해코자 하였다. 


問 : 起包時 汝何以爲主謀乎 


기포 시에는 무엇 때문에 주모하였는가? 


供 : 衆民皆推矣身 使爲主謀 故依民言 


중민이 모두 나를 추대하여 주모로 삼은 고로 민언을 따랐다. 


問 : 衆民以汝爲主謀之時 至汝家乎 


중민이 너를 주모로 삼았을 때 너의 집에 왔었는가? 


供 : 衆民數千名 都聚矣家近處 故自然爲之 


중민 수 천 명이 나의 집 근처에 모인 고로 자연히 이를 하게 되었다. 


問 : 數千名衆民 何故推汝爲主謀乎 


수 천명 중민이 무엇 때문에 너를 추대하여 주모로 하였는가? 


供 : 衆民雖曰數千名 皆是愚農民 矣身則文字粗解之緣故 


중민은 비록 수 천명이나 모두가 어리석은 농민으로 나는 문자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問 : 汝住接古阜時 不行敎東學乎 


네가 고부에 주접해 있을 때 동학을 가르치고 있지 않았는가? 


供 : 矣身訓導如干童蒙 無東學行敎之事 


나는 훈도로서 어린 소년과는 관계하였으나 동학을 가르친 일은 없다. 


問 : 古阜地無東學乎 


고부 땅에는 동학이 없었는가? 


供 : 東學亦有 


동학이 역시 있었다. 


問 : 古阜起包時 東學多乎 民多乎 


고부 기포 시에는 동학이 많았는가? 원민이 많았는가? 


供 : 起包時 民·東學雖合 東學少 而 民多 


기포 시에는 원민 동학이 비록 합하였으나 동학은 적고 원민이 많았다. 


※ 봉기군중의 성분은 동학교인은 소수였고 대다수가 농민이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주도세력은 동학의 지도인물들이다.(사발통문) 


問 : 起包後行何事乎 


기포 후에는 어떤 일을 하였는가? 


供 : 起包後陳荒勒徵稅還推 而官築洑毁破矣 


기포 후에는 진황늑징세를 민간에 돌려주고 관에서 축조한 보를 파괴하였다. 


問 : 其時何時 


그때는 어느 때인가? 


供 : 昨年三月初 


작년 3월초이다. 


問 : 其後行何事乎 


그 후에는 어떤 일을 행하였는가? 


供 : 其後散落 


그 후 흩어졌다. 


問 : 散落後 因何事更起包乎 


흩어진 후 무슨 일로 다시 기포하였는가? 


供 : 其後長興府使李容泰 以按  使來本邑 起包人民 通稱以東學列名捕捉燒灰其家舍 無當者 則捕其妻子 而行殺戮故更起包 


그 후 장흥부사 이용태가 안핵사로서 본 읍에 와 기포 인민을 동학으로 통칭해서 이름을 나열하여 체포하고 그 가옥을 불사르며 당사자가 없으면 그 처자를 붙잡아 살육을 자행하는고로 다시 기포하였다. 


問 : 然則汝自初一次呈狀于官庭乎 


그런즉 너는 처음 일차적으로 관정에 소장을 올린 일이 있었는가? 


供 : 初次四十餘名等訴 而被捉囚 六十餘名當驅逐矣 


처음에는 40여명이 소를 제기하였으나 붙잡혀 갇히고 재차 60여명이 호소를 하니 또 쫓겨났다. 


問 : 等訴何時 


등소한 것은 어느 때인가? 


供 : 初次再昨年十一月 再次同年十二月 


처음의 호소는 재작년 11월이었고 재차는 동년 2월이었다. 


(이상 2개항의 문답에 의하면 전봉준은 2차에 걸쳐 진정을 했다. 첫 번째는 1893년 11월 농민 40여명이 진정하였다가 구속되고 두 번째는 동년 12월 60여명이 진정했다가 또 쫓겨났다.) 


問 : 再次起包 由按 使 而汝爲主謨乎 


재차 기포는 안핵사 때문이었는데 그때도 네가 주모했느냐? 


供 : 然矣 


그렇다.  


問 : 再次起包後 行何等事乎 


재차 기포 후 어떤 일을 하였는가? 


供 : 營軍萬餘名 欲屠戮古阜人民 故不得已爲接戰矣 


영군 만 여명이 고부 인민을 도륙코자 하는 고로 부득이 접전하였다. 


問 : 何處接戰 


어디서 접전했나? 


供 : 於古阜地接戰矣 


고부땅에서 접전했다.(황토현 싸움을 말함) 


問 : 軍器·軍粮 自何處區劃乎 


군기·군량은 어느 곳에서 구획했는가? 


供 : 軍器·軍粮 皆民間措辦矣 


군기 군량은 모두 민간에서 마련했다. 


問 : 古阜軍器庫軍物 汝不爲奪取耶 


고부 군기고의 군물 역시 네가 탈취하지 않았느냐? 


供 : 其時則無奪取 


그 때는 탈취한 일이 없었다. 


問 : 其時亦汝爲主謀乎 


그 때도 역시 네가 주모하였느냐? 


供 : 然矣 


그렇다.  


問 : 其後則長在古阜耶 


그 후 오래도록 고부에 있었느냐? 


供 : 前往長成矣 


장성으로 갔었다. 


問 : 於長成爲接戰乎 


장성에서도 접전하였느냐? 


供 : 與京軍爲接戰矣 


경군(洪啓薰招討使)과 더불어 접전하였다.(黃龍 싸움) 


問 : 與京軍接戰 孰勝孰敗 


경군과 더불어 접전하여 어느 쪽이 이기고 어느 쪽이 패했나? 


供 : 我軍聚食時 京軍以大砲射擊 故我軍死者四五十名 我軍一追逐 京軍敗走 取來大砲二座 如干彈丸矣 


아군이 취식할 때 경군이 대포로 사격하여 아군의 4,50명이 죽자 아군은 일제히 추축하니 관군은 패주하여서 대포 이(二)좌와 탄환을 탈취하여 왔다. 


問 : 其時兩軍數各幾何 


그 때 양군의 수는 각각 얼마나 되었던가? 


供 : 京軍七百 我軍則四千餘名 


경군은 7백명이고 아군은 4천명이었다. 


問 : 其時長成所行事 一一直告 


그 때 장성에서 행한 일을 바른대로 일일이 고하라. 


供 : 京軍敗走後 我軍倍道 先京軍入全州守成矣 


경군이 패주한 후 아군은 배도(발걸음을 두 배로 빨리 하는 것)하여 경군보다 먼저 전주에 들어가 수성하였다. 


問 : 其時監司無矣 


그때 감사는 없었는가? 


供 : 監司見我軍來而逃走 


감사는 우리 군대가 오는 것을 보고 도주했다. 


問 : 守成後行何事乎 


수성 후 무엇을 행하였는가? 


供 : 其後京軍隨後至完山 留陳龍頭峴 向成中以大砲攻擊 毁傷慶基殿 故以此緣由詐及京軍矣 自京營中 作曉諭文 謂以從汝所願 故感激解散 


그 후 경군이 뒤따라 완산에 이르러 용두현에 유진하고 성중을 향하여 대포로 공격하므로써 경기전이 훼상되었다. 이 연유를 경군에게 허급하였더니 경중에서는 효유문을 만들어 [너희 소원대로 따르겠다]하므로 감격하여 해산하였다. 


問 : 其後行何事乎 


그 후에는 어떤 일을 행하였는가? 


供 : 其後則各歸其家力農 其餘不恒之徒 有剽掠民間 


그 후에는 각기 집으로 돌아가 농사에 힘쓰고 그 나머지는 불항의 무리가 되어 민간에 표략한 것도 있었다. 


問 : 不恒之徒剽掠軍 與汝無關係乎 


불항의 도 표략군은 너와는 관계가 없었느냐? 


供 : 無關係 


관계가 없다. 


問 : 其後更無所行事 


그 후 다시 행한 일은 없었느냐? 


供 : 昨年十月分 矣身則起包全州 孫化中則起包光州 


작년 10월 나는 전주에서 기포하고 손화중은 광주에서 기포하였다. 


問 : 更起包何故 


다시 기포한 것은 무엇 때문이냐? 


供 : 其後聞則貴國稱以開化 自初無一言半辭 傳布民間 且無檄書率兵入都城 夜半擊破王宮 驚動主上云 故草野士民等忠君愛國之心 不勝慷慨糾合義旅 與日人接戰 欲一次 請問此事實 


그 후 들은즉 귀국(일본)이 개화를 한답시고 처음엔 민간에게 일언반사의 알림도 없었고 또 격서도 없이 솔병하고 도성에 들어와 야반에 왕궁을 격파 주상(임금)을 경동케 하였다는 말이 들리는 고로 시골선비 등은 충군애국의 마음으로 분개를 이기지 못하여 의병을 규합 일본인과 더불어 접전하여 일차적으로 이 사실을 청문하고자 하였다. 


問 : 其後更行何事乎 


그 후 다시 어떠한 일을 행하였는고? 


供 : 其後思量 則公州監營阻山帶河 地理形勝 故雄據此地爲固守之謀 則日兵必不能容易擊拔 故入公州 傳檄日兵欲爲相持 日兵先己確據公州 事勢不可無接戰 故二次接戰 後 萬餘名軍兵点考 則所餘者不過三千餘名 故敗走至 


그 후 곰곰이 생각하니 공주 감영은 산이 막히고 강이 둘러 있어 지리가 형승하기 때문에 그 땅에 웅거하여 고수를 도모한다면 일병이 용이하게 처들어 오지 못할 것을 알고 공주로 들어가 일병과 상치코자하였는데 일병이 먼저 공주에 확거하였으므로 사세는 불가피 접전이 없을 수가 없었다. 그런고로 2차 접전 후 1만여명의 군병을 점고한 즉 남은 자가 불과 3천명이요. 그 후 또다시 2차 접전 후 점고한즉 5백명에 불과하였다. 그런고로 패주하여 금구에 이르러 다시 초모한즉 수효는 좀 증가였으나 기율이 없어 다시 개전하기는 극히 곤란하였다. 그런데 일병이 뒤따라와서 2차 접전하여 패주하고 각기 해산하였다. 금구 해산 후 나는 경중(서울)의 이면을 상세히 알고 상경할려고 하다가 순창 땅에서 민병에 의하여 붙잡혔다. 


問 :入全州時 招募軍士 全羅一道人民都聚乎 


전주에 들어가 군사를 초모하였을 때 전라일도 인민이 도취하였는가? 


供 :各道人民梢多 


각도 인민이 조금 많았다. 


問 :向公州時 亦各道人民梢多乎 


공주로 향하였을 때 역시 각 도 인민이 좀 많았는가? 


供 :其時亦然 


그 때도 역시 그러하였다. 


問 :再次招募時 以何方策糾合乎 


재차 초모할 때는 어떠한 방책으로 규합하였는가? 


供 :招募時 以忠義之士 同倡義之意渴榜矣 


초모할 때는 충의의 선비로서 같은 창의의 뜻을 방문으로 내어 걸었다. 


問 :招募時 但自願者糾集耶 或제驅耶 


초모할 때 다만 자원자만 규합하였나 혹은 강제로 몰아 모았나? 


供 :矣身本來所四千名 則自願者 而其外各處通文辭意則若不此擧者 不忠無道 


내가 거느린 4천명의 군졸은 자원자이니 그 외는 각처에 통문으로서 [만약 이 거의에 불응 하는 자는 불충무도]라 하였다. 


問 :昨年三月起包古阜 而向全州之間 經幾邑而接戰次乎 


작년 3월 고부에서 기포하여 전주로 향하는 동안 몇 읍을 경우하고 접전은 몇 차례 하였나? 


供 :所經邑則由茂長 古阜 經泰仁 金溝 而欲란全州 聞경 兵萬餘名下來之言 往扶安 還至古阜 與%軍接戰 


경유한 읍은 무장 고부와 태인 금구를 거쳐 전주에 달하려 하였는데 영병(營兵) 만여명이 내려온다기에 부안으로 갔다가 되 돌아와 고부에 이르러 영군과 더불어 접전하였다. 


問 :其候則向何處乎 


그 후에는 어느 곳으로 갔나? 


供 :自井邑經高敞 茂長 咸平 低長城 與京軍接戰 


정읍으로부터 고창 무장 함평을 거쳐 장성에 이르러 경군과 더불어 접전하였다. 


問 : 入全州何時 解散何時 


전주에 들어간 것은 언제며 해산한 때는 어느 때인가? 


供 :作年四月二十六 七日間入全州 五月%五 六日間解散 


작년 4월 26일부터 27일간에 전주에 들어왔으며 5월초 5일∼6일간에 해산하였다. 


問 :再次起包時 始於何處사 


재차 기포할 때는 어느 곳에서 시작했는가? 


供 :始於全州 


전주에서 시작했다. 


供 :再次起包時 招募則幾許名乎 


재차 기포할 때 초모한 사람은 전부 몇 명인가? 


問 :四千餘名 


4천여 명이다. 


供 :至公州時幾許名乎 


공주에 이르렀을 때에는 몇 명이나 되었는가? 


問 :萬餘名 


만여 명이었다. 


供 :公州接戰何時 


공주접전은 어느 때인가? 


問 :去年十月二十三 四日間 


거년 10월 23일∼24일이다. 


供 :當初古阜起包時 則同謀者皆雖也 


당초 고부 기포시의 동모자는 모두 누구 누구인가? 


供 :孫化中 崔慶善某某人 


손화중 최경선 모모인이다. 


問 :此外更無他人乎 


이외 또 다른 사람은 없는가? 


供 :此三人外許多人 不可勝% 


이 삼인 외 허다인으로 그 수는 헤아릴 수 없다. 


問 :四千名糾合時 不止此三人矣 詳言其人 


4천명이 규합했을 때는 이 세 사람에게만 그치지 않았을 것이니 그 외 사람을 상세히 말하라. 


供 :此外 屑之人 何足言乎 


이외 쇄설(전것)의 사람을 다 말할 수 있는가? 


問 :昨年十月起包之時 無同謀者乎 


작년 10월 기포했을 때 동모자는 없었느냐? 


供 :此外只孫如玉 趙駿九等而己 


이외 다만 손여옥 조준구 뿐이다. 


供 :孫化中 崔慶善 其時無相關乎 


손화중 최경선은 그때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나? 


問 :此二人以光州事緊急 未及來也 


그 두사람은 광주일이 긴급하였으므로 오지 못했다. 


供 :孫 崔兩人 在光州行何事乎 


손, 최 양인은 광주에서 어떠한 일을 하였는가? 


問 :此二人 卽時向公州 聞日兵來自海路 使之海防 故但固守光州 


이 두 사람은 즉시 공주로 행하였다가 일병이 바다로 온다는 말을 듣고 해안을 막아 광주를 지키도록 하였다. 


(일본군이 남도해안에 상륙한다는 오보가 있어 혁명군이 중구인물인 손화중과 최경선으로 하여금 광주지방을 고수토록했다 하였으니 혁명군의 작전 규모와 치밀의 도를 짐작케 한다.)

 


全捧準 再招問目(제2차 심문과 진술) 

乙未 二月 十一日(서기 1895년 2월 11일(음)) 

  

供 :汝昨年三月起包之意 以爲民除害爲意 果然사 


너의 작년 3월에 행한 기포의 뜻은 백성을 위해 재해할 뜻으로 하였다하는데 과연이냐? 


問 :果然矣 


그렇다.  


問 :然則居內職者輿幸外任之官員 皆貪虐사 


그런즉 내직에 있는 자들이나 제외임의 관원도 모두 더불어 탐학인가? 


供 :居內職者以賣官육爵爲事 勿論內外皆貪虐也 


내직에 있는 자들도 매관육작을 일삼으니 내외를 물론하고 다 탐학이다. 


問 :然則欲除全羅一道貪虐之官吏而起包사 欲八道一體爲之之意向사 


그런즉 전라일도 탐학의 관리를 제거코자 기포했느냐 그렇지 않으면 팔도를 한 가지로 이같이 할 의향이었느냐? 


供 :除全羅一道貪虐 屛遂內職之賣爵權臣 八道自然爲一體矣 


전라일도 탐학을 제거하고 또 내직의 매작권신을 쫓아내면 팔도가 자연히 한 몸이 될 것이다. 


問 :全羅道監事以下各邑守幸皆貪虐官사 


전라도 감사 이하 각 읍의 수재가 모두 탐학인가? 


供 :十居八九 


십 중 팔 구이다. 


問 :指自何事而謂貪虐사 


무슨 일을 가리켜 탐학이라 하는가? 


供 :各邑守幸%以上納 或加斂結卜 橫徵戶役 有稍%之民空然構罪 勒奪錢財 橫侵田좌非一非再 


각 읍 수재는 상납을 칭탁하여 혹 가렴 길복하여 횡징호역하며 좀 부요민이 있으면 공연히 죄를 만들어 전재를 늑탈하며 전장을 횡침하는 것이 비일비재이다. 


問 :內職賣官者誰 


내직 매관자는 누구인가? 


供 :惠堂閔泳駿 閔泳煥 高永根等是也 


해당 민영준, 민영환, 고영근 등이 이들이다. 


問 :止於此等人사 


이들 뿐인가? 


供 :此外亦許多 不可盡記得 


이외 역시 허다하나 다 기억할 수 없다. 


問 :此等人之爲賣官 何以分明知之사 


이들이 매관한 것을 어떻게 분명히 알 수 있는가? 


供 :一世喧藉 無人不知 


온 세상이 다 훤자하여 모르는 사람이 없다. 


問 :汝以何計策 欲除貪官사 


너는 어떤 계책으로 탐관을 제거코자 하였느냐? 


供 :非有別計策 本心切於安民 見貪虐則不勝憤歎 而行此事 


별도로 계책이 있는 것은 아니라 본심의 간절한바가 안민이 있으므로 탐학을 본즉 분탄을 이기지 못해 이 일을 하였다. 


問 :然則不爲呈訴稱면사 


그런즉 소를 드려 청원하지 않았는가? 


供 :呈營邑不知幾次 


영읍에 진정한 것은 몇 차례인지 모른다. 


問 :呈營呈邑 汝親行之乎 


영읍에 진정할 때 네가 친히 이곳에 갔는가? 


(영은 전라감영. 읍은 고부군을 말함) 


供 :每次所志 則矣身製作 而呈則使  民爲之 


매차의 소장(진정서)은 내가 제작하고 드린 것은 원민으로 하여금 하게하였다. 


問 :然則於조정 亦爲訴면乎 


그런즉 조정에도 역시 소(진정서)를 제기하였는가? 


供 :呈訴無굴 洪啓勳(薰)大將全州留陳時 呈此緣由 


진정할 길이 없어 홍계훈 대장이 전주에 유진하고 있을 때 이 연유를 써서 드렸다. 


(홍계훈이 전라감사를 지냈음) 


問 :其時守幸皆是貪虐 雖爲呈訴 豈有聽시 


그때는 모든 수재가 탐학했는데 어찌 비록 정소해도 청시함이 있으리라 그러하였는가? 


供 :雖然 呼訴無處 不得已呈訴其處 


비록 그러하나 호소할 곳이 없어 부득이 그곳에 정소하였다. 


問 :呈營呈邑 何時乎 


영, 읍에 진정한 것은 어느 때인가? 


供 :昨年正 二 三月間 


작년 2,3월간이다. 


問 :正月以前則不爲呈訴사 


정월 이전에는 정소하지 않았느냐? 


供 :正月以前 古阜一邑民狀而已 不爲大端呈訴 


정월 이전의 고부에는 민장 뿐이었기 때문에 대단한 정소는 하지 않았었다. 


問 :屢次呈營呈邑 而終是不爲聽施之 故起包사 


누차 영에 드리고 읍에 드렸으나 끝내 청시하지 아니하는 고로 기포하였는가? 


供 :然矣 


그렇다.  


問 :汝於古阜 被害不多 緣何意見而行此擧사 


너는 고부군수에게서 피해가 많지 않았는데 어떠한 의견으로 연유하여 이 거사를 행했는가? 


供 :世事日非 故慨然欲一番濟世意見 


세상살이가 날로 그릇되어 가는 고로 개연히 한번 세상을 건져보고자 하는 의견이었다. 


問 :汝之同謀孫化中 崔慶善等 皆酷好東學者사 


너와 동모한 손화중, 최경선 등은 모두 동학을 대단히 좋아했는가? 


供 :然矣 


그렇다.  


問 :所謂東學 何主意 何道學乎 


소위 동학이라는 것은 어떤 주의이며 어떤 도학인가? 


供 :守心 以忠孝爲本 欲輔國安民也 


마음을 지켜 충효로 본을 삼고 보국안민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問 :如亦酷好東學者사 


너도 동학을 대단히 좋아하는 자인가? 


供 :東學是守心敬天之道 故酷好也 


동학은 이에 수심경천의 도이기 때문에 매우 좋아한다. 


問 :東學始自何時 


동학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供 :東學之始 始於三十年前 


동학의 시초는 30년 전에 비롯되었다. 


問 :始於何人乎 


어떤 사람이 시작했는가? 


供 :始於慶州崔濟愚矣 


경주에 사는 최제우가 시작했다. 


問 :至今亦全羅道內 尊%東學者多乎 


지금 역시 전라도 내에 동학을 존중하는 자가 많은가? 


供 :經亂之後 死亡相幾 至今太減 


난을 겪은 후 죽는 자가 계속 있어 지금은 크게 감해졌다. 


問 :汝起包時所率 皆是東學사 


네가 기포할 때 거느린 바는 모두가 동학인가? 


供 :所謂接主 皆是東學 其餘率下 稱以忠義之士居多 


소위 접주는 다 동학이나 그 나머지 솔하는 충의의 사로써 일컬은 자가 많았다. 


問 :接主司何名色 


접주사란 어떤 명색인가? 


供 :領率之稱 


영솔의 호칭이다. 


問 :然則起包時 軍器 軍粮 措瓣者사 


그런즉 기포 시에는 군기 군량을 조관하는 자인가? 


供 :凡於事皆爲指揮者也 


무슨 일에 있어서나 다 지휘한다. 


問 :接主 接司 自本來有사 


접주와 접사는 본래부터 있었는가? 


供 :개往固有 而起包時或有創設 


이미 전부터 본래 있었으나 기포 시에는 혹 창설한 것도 있다. 


問 :東學中領率名色 接主 接司而己乎 


동학 중 영솔명색이 중 접주 접사뿐인가? 


供 :接主 接司之外 有敎長 敎授 執綱 都執 大正 中正等六種矣 


접주.접사 이외 교장 교수 집강.도집.대정.중정 등 6종이 있다. 


問 :所謂接主者 平居時行 何事乎 


소위 접주라 하는 사람은 평상시에는 어떤 일을 하는가? 


供 :別無以行之事 


별로 행하는 일이 없다 


.問 :所謂法軒何職責 


소위 법헌이란 어떤 직책인가? 


供 :非職責 而乃長老別號 


직책이 아니라 장로의 별호이다. 


問 :以上六種之稱 行何事乎 


이상의 여섯 직책은 각각 어떤 일을 하는가? 


供 :敎長 敎授則敎導愚民者 都執則有風力 明紀綱 知經界 執綱則明是非 執紀綱 大正則恃公平 %厚員中正能直言剛直云矣 


교장, 교수는 우민을 교도하는 자이고 도집은 풍력있고 기강에 밝아 경계를 알아야 하고 집강은 시비에 밝아 기강을 잡고, 대정은 공평을 갖고 삼가 후원하며 중정은 직언 강직을 말하는데 능해야 한다. 


問 :接主 接司則同職責乎 


접주와 접사는 같은 직책인가? 


供 :接司聽行接主指揮者也 


접사는 접주가 지휘하는 것을 듣고 행하는 사람이다. 


問 :以上許多名色 誰差出乎 


이상 많은 명색은 누가 차출을 하는 것이냐? 


供 :自法軒視敎徒多少 第次差出矣 


법헌으로부터 교도가 많고 적은 것을 보아 차례로 차출한다. 


問 :東學中有南接 北接云 依何而區別南北乎 


동학 가운데 남접. 북접이라고 말하는데 무엇으로 구별하여 남.북이라고 하느냐? 


供 :湖以南稱以南接 湖中稱以北接矣 


호(湖) 이남을 남접, 호중(湖中)을 북접이라고 한다. 


問 :昨年起包時 於以上各種名色等 指揮何事件乎 


작년 기포 시에는 이상 각종 명색 등에 있어서 어떠한 사건들을 지휘하였느냐? 


供 :行以各其職掌矣 


각기 직장으로써 행하였다. 


問 :各其職掌 皆聽行汝之指揮乎 


각기 직장이 모두 너의 지휘를 듣고 행하였는가? 


供 :矣身皆爲指揮矣 


내가 모두 지휘했다. 


問 :修心敬天之道 何以稱東學乎 


수심경천의 도를 일컬어 무엇 때문에 동학이라고 하는가? 


供 :五道出於東 故稱以東學 自初本意 則始作之人 分明知得 矣身則隨他人之稱而稱之耳 


우리 도는 동에서 나온 고로 동학이라 일컫는다. 자초 본의인즉 시작한 사람은 분명히 얻어서 아나, 나는 다른 사람의 일컬음을 따라 이를 일컬은 것이다. 


問 :投入東學 能%怪疾云 然乎 


동학에 들어가면 능히 괴질을 면한다고 하는데 그러한가? 


供 :東學書云中 三年%疾在前 敬天守心 可%云矣 


동학서 가운데 말하기를 3년 괴질이 앞으로 있으니 경천수심하면 가히 면한다고 한다. 


問 :東學 八道皆傳布사 


동학은 팔도에 다 전포하였는가? 


供 :五道전진행교의 서북삼도즉부지의 


5도에는 모두 교가 행하여져 있으나 서북 3도는 모른다. 


問 : 동학을 배운즉 병을 면하는 외 다른 이익은 없는가? 


供 : 다른 이익은 없다. 


問 : 작년 3월 기포 시에는 탐관을 제거한 후 어떤 일을 하려고 하였는가? 


供 : 다른 뜻은 없었다. 


問 : 작년 절목을 홍대장(홍계훈)에게 드렸다 하는데 과연 그러한가? 


供 : 그렇다.(全州和約後의 弊政改革案) 


問 : 절목을 드린 후 탐관을 제거한 징험이 있었던가? 


供 : 별로 징험이 없었다. 


問 : 그런즉 홍대장이 백성을 속인 것이 아닌가? 


供 : 그렇다. 


問 : 그런즉 백성은 무엇 때문에 다시 칭원이 없었는가? 


供 : 그 후 홍대장은 서울에 있었으니 다시 무엇을 칭원하겠는가? 


問 : 재차 기포한 일병이 범궐(왕궁을 침범함)의 연고로 인하여 재기했다고 하였는데 제거 후 어떤 거조를 하고자 하였는가? 


供 : 범궐의 연유를 힐문하고자 하였다. 


問 : 그런즉 일병과 경성에 유주하고 있는 각국인을 더불어 모두 구축하려 하였는가? 


供 : 그렇지 않다. 각국인은 다만 통상만 할 뿐인데 일인은 솔병하여 경성에 유진하는 고로 우리나라 국토를 침략하는 것으로 의아하였다. 


問 : 이름은 이건영이라고 일컫는 사람을 아는가? 


供 : 잠시 만나기는 하였다. 


問 : 만났을 때 어떤 말을 하였는가? 


供 : 소모사라고 일컫는 고로 내가 말하기를 [소모사라면 마땅히 어느 곳에 있는 소모영을 설치하라]고 하였지만 나와는 더불어 상관이 없다하니 금산으로 갔었다. 


問 : 어느 곳에서 만났는가? 


供 : 삼례역에서 만났다. 


問 : 그때 만나서 이건영의 말이 어디서 왔다고 하던가? 


供 : 경성으로부터 왔다고 말했다. 


問 : 누가 보냈다고 하던가? 


供 : 정부로부터 보내더라고 하였는데 3∼4일 후 들으니 즉 가칭 소모사인 고로 잡으라는 명이 있었다고 하였다. 


問 : 소모사를 증거할 만한 문적이 있던가? 


供 : 증거할 만한 문적을 보지는 못했다. 


問 : 그때 너의 도당은 몇 명이었나? 


供 : 수 천여 명이었다. 


問 : 그 외 소모사라 일컫고 기포를 권한 사람은 없었는가? 


供 : 그런 사람은 없었다. 


問 : 송정섭을 아는가? 


供 : 다만 충청도 소모사라고만 소문으로 들었다. 


問 : 재차 기포할 때는 최법헌에게 의논하였던가? 


供 : 의논이 없었다. 


問 : 최법헌은 동학의 괴수인데도 동학당을 규합하는데 어찌 의급하지 않았는가? 


供 : 충의는 각기 본심인데 하필 법헌에게 의논한 후에 이 일을 해야 하는가? 


問 : 작년 8월에 너는 어디에 있었는가? 


供 : 태인 집에 있었다. 


(이평면에 있는 자기 집이 이미 소실되었기 때문에 태인면 산외면 동곡리에 우선 머물러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問 : 그 나머지 도당은 어느 곳에 있었던가? 


供 : 각각 본가에 있었다. 


問 : 충청도 천안 지방에는 너의 도당이 있었던가? 


供 : 그곳에는 도당이 없었다. 

 


全捧準 三招問目(제3차 심문과 진술) 

乙未 二月 十九日(서기 1895년 2월 19일(음))


問 : 네가 일전에 고한 바 송희옥을 모른다고 하였는데 희옥 두자는 이름인가? 호인가? 


供 : 희옥은 이름이고 칠서는 자이다. 


問 : 송희옥과 이미 삼례역에서 이와 더불어 동모했은즉 그 이름자를 어찌하여 상세히 모르는가? 


供 : 송희옥은 본시 허망한 사람으로 홀연히 가고 홀연히 오고 하여 실제의 거처가 확실하지 않다. 


問 : 송희옥은 이에 전라도 일도의 도집강이라 들었고 또 너와는 친척이 된다는데 지금 고하는 것은 오직 장찬(허물을 감추려고 숨기는 것)이니 바르게 실고하지 않는 것이 의심되며 항차 네 죄의 경중은 송희옥의 장찬에 있는 것이 아니고 또한 희옥의 죄안이 네가 숨겨 보호하는 것이 아니니 비록 오로지 믿어야 하는데 이는 진실로 어떤 마음에서냐? 


供 : 아까 고한 바와 같다. 송은 본시 부황의 유로 지난번 일본 영사관 물음에 답변할 때 영사가 한 글을 내어 보이는데 희옥의 필적이다. 그 글에 일컫기를 운현변(대원군 측을 말함)과 상통한 것으로 되어 스스로 생각해 보니 그가 이 말을 위조하여 시국의 힘을 빌리려 한 것으로 이 불근지설을 만드니 실로 남자의 일이 아니며 역시 존엄을 모독하고 공연히 때의 물의를 일으키게 되는 고로 잠깐 이를 꾸며서 말한 것이다. 


問 : 남자의 말은 비록 참말을 백번하였어도 만일 한 마디의 말에 속임이 있은 즉 백 마디 말을 다 속인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본즉, 어제는 모른다고 한 것이나 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어찌 다 속인 것이 아니겠는가? 


供 : 마음과 정신이 혼미하여 과연 착오한 바가 있다. 


問 : 송희옥은 갑오 9월 서(書)에 말하기를 [어제 저녁 또 사람이 비밀리 하래했는데 전말을 상고한즉 과연 개화파에 눌려 먼저 효유로 보호하면 뒤에 비기가 있을 것이다.]했는데 이는 누가 보내온 글인지 역시 네가 모르는 것인가? 지난 너의 고한 바는 [작년 10월 재기한 것은 일인이 군대를 거느리고 입궐하여 이해의 소재를 알지 못하는 고로 우리가 신민이 되어 감히 한시도 안심할 수가 없어 이에 이 거의를 한 것이다.]고 말하였은즉 대원군의 뒷 비밀편지가 따른 것을 알 수 있는데 역시 너의 재기와 암합한 것이 아닌가? 


供 : 그간에는 비록 혹 이 같은 무리들의 내왕이 있었으나 본래 그 면을 알지 못한즉 중대 사건을 어찌 의급하겠는가? 그런고로 행적이 특별히 수상한 자는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問 : 남원부사 이용헌 장흥부사 박헌양이 입은 피해는 모두 누구의 소행인가? 


供 : 이용헌은 김개남의 소위이고 박헌양은 어떤 사람에게 피해를 입었는지 모른다. 


問 : 은진에 사는 김원석이 입은 피해는 누구의 짓인가? 


供 : 공주의 동학 괴수 이유상의 소위이며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問 : 작년 재 기포 시 조정으로부터 하송해온 그 효유문을 너는 보지 못했는가? 


供 : 대원군의 효유문은 보았으나 조정에서 내려온 효유문은 보지를 못했었다. 


問 : 비록 조정의 효유문은 보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대개 대원군의 효유문을 보았은즉 시사를 알 것인데 사기의 여하를 생각지도 않고 임의로 백성을 움직여 무단 야요하여 백성들을 물불에 빠뜨리고 이은 어찌 신민이 가히 할 일인가? 


供 : 상세한 내막을 몰라 임의로 백성을 움직였으니 과연 이는 주착이었다. 

 


全捧準 三招問目(제3차 심문과 진술) 

* 이하 심문은 일본 영사가 물은 것이다. 


乙未 二月 十九日(서기 1895년 2월 19일(음)) 

  

::: 三招의 繼續 ::: 


問 : 송희옥의 글 가운데 대원군의 비기의 허실을 어떻게 정확하게 아는가? 


供 : 송은 본래 부랑자인 고로 미루어 보아 말한 것이고 또 대원군 쪽에서 혹 이러한 일이 있다면은 마땅히 나에게 먼저 통지할 것이지 송에게 먼저 하지 않았을 것이다. 


問 : 송은 너의 수하이냐 수상이냐? 


供 : 별로 상하로 일컬을 만한 것이 없고 서로가 똑같은 처지에 있는 것이다. 


問 : 송과는 재기 시에 같이 더불어 의논하지 않았는가? 


供 : 내가 기포할 때에 간혹 참석하였으나 처음 좌가 옳다, 우가 옳다 말을 하였다. 


問 : 송의 이 일이 만약 좌가 옳다 우가 옳다 한 말이 없은즉 대원군측 비기를 가칭 타인에게 기서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供 : 송의 기서는 혹인이 처음 일포로 시작되었고 비록 거슬러 올라가 생각하기는 어려우나 나의 일에 있어서는 방관하였다. 


問 : 송은 나와 더불어 이미 같은 포가 아닌즉 피차 행한 바 일에는 반드시 서로 알지 못하는 일들이 있을 것이다. 


供 : 그렇다 


問 : 그런즉 송이 가칭한 비기를 너는 어찌 능히 밝게 아는가? 


供 : 송은 처음 서울에 머문 일이 없고 또 저명한 인사가 아닌고로 스스로 생각해서 말한 것이다. 


問 : 전후의 진술한 것을 합하여 본즉 송과 너와는 본래부터 서로 친한데 줄곧 모른다고 하니 역시 의심이 간다. 


供 : 지난번 귀관(일본영사)에게 답변할 때, 내어보인 글은 부랑에 관계되는 것 같아 역시 모르는 바이다. 그런고로 만약 친지자로서 대한다면 반드시 그 글의 내력을 물을 것이니 변혹하기 어려운 고로 잠시 여기에 만고(속여서 고함) 했다. 


問 : 그런즉 너에게 이로운 것을 물으면 대답하고 너에게 해로운 것을 물으면 모른다고 대답하니 되겠는가? 


供 : 이해로 마음 먹은 것은 아니나 특별한 사연으로 변혹하기 어려운 것은 그렇다. 


問 : 전라도내 사람이 반복무상하다고 일찍이 들은바나 지금 네가 고하는 것은 역시 그대로 상투적이다. 


그러나 질문이 오래되면 정상은 스스로 나타날 것이며 비록 일언반사라도 속여 고한 것은 반드시 얻지는 못할 것이다. 


供 : 송희옥의 건은 비록 속여서 고하였다고 하드라도 그 나머지는 처음부터 한마디 말도 꾸미고 속인 것이 없었다. 


問 : 지금의 이 재판은 양국에 관계되는 심판으로서 반드시 조금이라도 편벽된 청리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구태여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속여 만들어 한때를 넘기고자 한즉 출간지설을 징탐하리니 모두가 믿을 것이 없다. 


供 : 사로 잡힌 것이 수삭, 또 병에 묶인 몸이라 한마디 말의 실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問 : 송과 너와는 척분이 안되는가? 


供 : 처족 7촌이다. 


問 : 기포 시 비로소 어디서 보았나? 


供 : 비록 삼례에서 보았으나 실지 같은 포의 일은 없었다. 


問 : 비로소 보았을 때 어떠한 의논을 한 일이 있는가? 


供 : 비로소 보았을 때 행해야 할 일을 말하고, 나도 역시 추후에 기포해 올라오겠다고 말하였다. 


問 : 그때는 어느 때인가? 


供 : 작년 10월 재기 때이나 일자는 자세히 모르겠다. 


問 : 너의 재기는 무슨 일을 할려고 하였느냐? 


供 : 앞서 고한대로 이미 다 이야기 하였다. 


問 : 네가 송과 더불어 삼례에서 상견했을 때 혹 대원군의 말을 칭탁한 것은 없느냐? 


供 : 송이 대원군으로부터 내려왔다고 일컬으면서 2월에 속히 올라오면 좋을 것 같다 한다고 말하기에 내가 묻기를 글이 있었느냐고 하였더니 대답이 없었다. 나에게 문자를 보이지 않으므로 책망했더니 힁설수설하여 실로 황당하는 눈치였다. 또 반드시 대원군이 가르쳤다고 말할 필요는 없는 것으로 일을 마땅히 행할 것은 내가 스스로 여기에 당하겠다고 말하였다. 


問 : 삼례에서 기포할 때는 군중은 얼마나 되었는가? 


供 : 4천여 명이었다. 


問 : 그 후 접전은 어느 날에 있었는가? 


供 : 삼례에서 일어나 20여일이 지난 후에야 비로서 접전하기 시작하였다. 


問 : 송이 말한 운현궁(대원군을 칭함)으로부터 내려온 두 사람의 이름은 누구인가? 


供 : 그때는 들어서 알았으나 지금은 기억하기 어렵다. 


問 : 두 사람의 이름은 모두 들을 수는 없으나 성과 이름은 끝끝내 기억할 수 없느냐? 


供 : 그 성은 박.정 같은데 상세하지 않다. 


問 : 박.정은 곧 이가 박동진 정인덕이 아닌가? 


供 : 박동진은 이가 분명하나 정은 상세하지 않다. 


問 : 박.정은 송을 보고 어떠한 말을 하였나? 


供 : 송이 일컬으기를 [운현궁(대원군)이 역시 네가 올라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고 하였다. 


問 : 송희옥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供 : 금번 올라올 때 듣기로는 고산 민병에게 죽었다고 하였는데 상세하지 않다. 


問 : 운현궁 효유문은 어떻게 얻어 보았나? 


供 : 9월 태인의 본집에 있을 때 접솔한 사람이 등초하여 와서 보았다. 


問 : 그 때는 바로 기포를 펼 때인가? 


供 : 그때는 집에서 병을 치료할 때로 기포의 생각은 없었다. 


問 : 그 도내 동학도의 자요가 없었느냐? 


供 : 그 때는 김개남 등이 열읍에서 작요하였다. 


問 : 열읍은 곧 어느 읍인가? 


供 : 순창.용담.금산.장수.남원 등이고 그 나머지는 상세하지 않다. 


問 : 대원군 효유문을 다만 한번만 보았었나? 


供 : 그렇다. 


問 : 효유문에는 어떤 말이 들어 있던가? 


供 : [너희들이 오늘날의 이 기요는 실로 수재의 탐학과 중민의 원굴로 말미암은 것이니 지금으로부터 이후 관의 탐학은 반드시 징치하고 백성의 원굴한 것은 반드시 펼 터이니 각기 돌아가 안업하면 가하나 만일 부준하면 곧 마땅히 왕정으로써 다스리겠다]고 하였다. 


問 : 효유문에는 인적이 었던가? 


供 : 내가 본 것은 등초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없었으나 관에 도착한 원본에는 이것이 있다고 하는데 방곡에 게시하여 붙였다. 


問 : 방곡에 게시하여 붙인 것은 누가 하였는가? 


供 : 관에서 하였다고 한다. 


問 : 효유문은 누가 가지고 갔는가? 


供 : 주사의 직함을 띄고서 가지고 갔다고 하였다. 


問 : 그때 효유문을 네가 보니 진짜던가? 가짜던가? 


供 : 이것은 관에서 게시하여 붙였는데 어찌 가짜로 보겠는가? 


問 : 너는 이미 이를 진짜로 알았으면 어찌하여 재기하였는가? 


供 : 귀국(일본 영사관)의 속을 상세히 알고자 그렇게 하였다. 


問 : 가히 상세히 속을 안 다음 장차 어떤 일을 계획하려 했나? 


供 : 보국안민의 계책을 하고자 하였다. 


問 : 너의 재기에는 이미 대원군의 효유문을 불신하지 않았는가? 


供 : 이에 앞서 조정의 효유문은 1.2차에 그치지 않았으나 끝내 실시한 것이 없으니 하청을 상달하기가 어렵고 상택(임금의 은덕)은 하구하기가 어려운 고로 꼭 일차 서울에 이르러 민의를 상진하려 했다. 


問 : 이미 효유문을 보고도 구태여 일을 재기한 것은 이를 소실한 것이 아닌가? 


供 : 눈으로 친히 보고 귀로 친히 듣지 않고서는 깊이 믿기 어려운고로 이에 일을 재기하였는데 어찌 소실이 있겠는가? 


問 : 아까 고한 바 소실한 것이란 어떤 일인가? 


供 : 아까 소실이라 일컬은 것은 시사의 이면에 상세하지 못한 것을 가리킨 것이지 효유문의 보고 안 본 것을 말한 것이 아니다. 


問 : 너의 재기에는 대원군 효유문으로써 개화파가 압박한 것으로 보고 겸하여 운현궁(대원군)으로부터 너희들이 상래를 기다린다고 하였으므로 이에 이를 행한 것인가? 


供 : 효유문의 개화파로부터 압박됐던 안됐던 관계가 없는 것이고 재기한 일에 이르러서는 본심에서 우러러 나왔고 또 비록 대원군의 효유문이 있어도 깊이 믿을 수가 없는 고로 재기를 힘써 도모하였다. 


問 : 일병의 범궐은 어느 때 들었는가? 


供 : 7-8월간에 들었다. 


問 : 어느 사람한테 들었는가? 


供 : 소문이 널리 퍼져 있으므로 자연히 이를 알 수가 있었다. 


問 : 이미 이르기는 창의라 하였은즉 듣고서도 즉시 행하지 않고 무엇 때문에 10월까지 기다렸는가? 


供 : 때마침 몸이 아프고 또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움직이기가 어려웠고 겸하여 신곡이 나오지 않아 자연 10월에 이르렀다. 


問 : 대원군이 동학의 일과 관계가 있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바이며 또 대원군은 지금 권한이 없은 즉 네 죄의 경중은 오직 이 장소에 있고 대원군에 있는 것이 아닌데 너는 끝끝내 솔직히 말하지 않고 대원군의 암호를 깊이 믿고 있는 것 같은데 이는 과연 어떠한 뜻에서인가? 


供 : 대원군은 다른 동학 몇 백과 있을지언정 나에 관하여서는 처음부터 관계된바가 없다. 


問 : 대원군은 동학과 더불어 서로 관계가 있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바인데 네가 홀로 듣지 못하였던가.? 


供 : 실로 듣지 못한 바이다. 


問 : 대원군이 동학과 더불어 상관한 것을 처음부터 한 가지도 들은 바가 없었단 말인가? 


供 : 그렇다. 나의 것도 숨기지 않는데 항차 다른 사람의 것이랴? 


問 : 송희옥이 대원군과 더불어 서로 관계된 바가 있는 것을 너도 역시 알고 있었겠지? 


供 : 송희옥은 반드시 서로 관계된 것이 없을 것이다. 


問 : 네가 어찌해서 그 서로 관계된 것이 없는 것을 아는가? 


供 : 송희옥과 대원군과의 증표가 있다면은 모르겠으나 스스로 자세한 것인즉 반드시 서로 관계가 없다. 

 

  

全捧準 四招問目 日領事問(제4차 심문과 진술) 

* 이하 심문은 일본 영사가 물은 것이다. 


乙未 三月 初七日(서기 1895년 3월 7일(음))

 

問 : 너의 이름이나 호가 하나 둘이 아닐터인데 몇 개인가? 


供 : 전봉준 하나 뿐이다. 


問 : 전명숙은 누구의 이름인가? 


供 : 나의 자이다. 


問 : 전녹두는 누구인가? 


供 : 세상 사람들이 가리키는 이름이지 내가 지은 이름은 아니다. 


問 : 너는 별호가 있는가? 


供 : 없다. 


問 : 이외 별호 몇 소자의 칭호가 없는가? 


供 : 없다. 


問 : 네가 매양 사람에게 글을 써 붙일 때는 이름으로 쓰는가? 자로써 쓰는가? 


供 : 이름으로 쓴다. 


問 : 네가 작년 10월 재기의 일자는 어느 날인가? 


供 : 10월 12일간 같은데 잘 모르겠다. 


問 : 삼례재기 전에는 어디에 있었느냐? 


供 : 내 집에 있었다. 


問 : 너는 전주에서 초토병과 접전하고 해산한 후 어디로 향하였는가? 


供 : 10여읍을 들러 귀화하라 권하고 곧 나의 집으로 돌아왔다. 


問 : 전주로부터 해산한 것은 어느 날인가? 


供 : 5월 초 7-8일이다. 


問 : 전주에서 해산한 후 처음 이른 읍은 곧 어느 읍인가? 


供 : 처음 금구로부터 김제. 태인 등지에 이르렀다. 


問 : 처음 금구로부터 이른 것은 어느 날인가? 


供 : 금구에는 곧 잠간 지나는 길에 거쳤고 5월 초 7.8일간 김제에 이르고 초 10일간에 태인에 이르렀다. 


問 : 태인에 이르른 후 거친 고을은 어느 고을인가? 


供 : 장성.담양.순창.옥과.남원.창평.순천.운봉을 거쳐 그 후 내 집으로 돌아왔다. 


問 : 집으로 돌아온 것은 몇월 몇일인가? 


供 : 7월 그믐, 8월 초간이다. 


問 : 열읍을 돌아다닐 때 네 혼자 이던가? 동행자가 있었던가? 


供 : 기솔 아울러 20여명이 있었다. 


問 : 그때 최경선도 동행하였나? 


供 : 그렇다. 


問 : 손화중도 역시 동행하였나? 


供 : 손은 동행하지 않았다. 


問 : 전주 해산 후 손화중은 어느 곳으로 향하였던가? 


供 : 그 때 손은 우도 열읍을 돌아다니면서 귀하를 권하였다. 


問 : 손이 전주에서 해산한 것은 너와 더불어 같은 날인가? 


供 : 그렇다. 


問 : 전주로부터 해산하고 너는 손을 보지 못하였는가? 


供 : 4-5개월 동안 서로 만나지 못하였다. 


問 : 4-5개월 후 어데서 만났는가? 


供 : 8월 그믐 경 순상의 명령을 띄고 먼저 나주로 가 민보의 해산을 권하고 돌아오는 길에 장성에 이르러서야 비로서 만났다. 


問 : 손과는 만난 후에 의논한 적이 있는가? 


供 : 그때 나는 이르기를 [순상으로부터 별도로 부탁받은 바가 있으니 같이 영문에 갔으면 좋겠다.]는 뜻으로 의논을 하였다. 


問 : 그런즉 손은 어떠한 말로 대답하던가? 


供 : 지금 병중에 있으므로 같이 갈 수가 없으니 병이 완쾌되는 것을 기다려 뒤따라 가겠다고 말했다. 


問 : 이외 다른 것을 의논한 바는 없었는가? 


供 : 그렇다. 


問 : 일병의 범궐은 언제 어느 곳에서 들었는가? 


供 : 7월경 남원땅에서 들었다. 


問 : 그런즉 열 읍을 돌아다니고 귀화할 때 이 소리를 들었는가? 


供 : 이는 도청도설에 의한 것이다. 


問 : 이 소리를 들은 후 군중을 일으켜 일본을 치는 일을 비로소 의논한 것이 어느 곳이던가? 


供 : 삼례역이다. 


問 : 특히 삼례역에서 이 일을 의논한 것은? 


供 : 전주부 외에 주막이 얼마간 많은 것이 삼례 같은 곳이 없기 때문이다. 


問 : 삼례에 이르기 전에는 혹 도회지가 없는가? 


供 : 원평에 이르러 하루 밤 묶고 곧 삼례에 이르렀다. 


問 : 집으로부터 처음 출발한 날은 언제인가? 


供 : 10월 초순경이다. 


問 : 네가 삼례로 행할 때 동행자는 누가 있었던가? 


供 : 없었다. 


問 : 길을 가던 중 만난 사람도 없었는가? 


供 : 없었다. 


問 : 그때 최경선은 동행하지 않았던가? 


供 : 최는 추후에 왔었다. 


問 : 삼례에 이르러 누구 집에서 모였는가? 


供 : 주막에서 모였다. 


問 : 삼례 땅에는 본래 친구의 집이 있었는가? 


供 : 처음에는 친한 친구가 없었다. 


問 : 삼례의 호수(戶數)는 얼마나 되었던가? 


供 : 1백여 호이다. 


問 : 네가 사는 근처에도 반드시 1백여호의 촌장이 없지 않을 터인데 특히 이곳에 모인 것은 무엇 때문인가? 


供 : 이 땅은 도로가 사방으로 통했고 겸하여 역촌이기 때문이다. 


問 : 최가 삼례에 이른 후 며칠이나 같이 유숙했는가? 


供 : 5-6일 머문 후 곧 광주 나주로 향했다. 


問 : 무엇 때문에 광주 나주로 향하였는가? 


供 : 기포의 일 때문이었다. 


問 : 최의 광주 나주에 간 것은 네가 시킨 것인가? 


供 : 내가 시킨 것은 아니다. 그가 광주. 나주지방에는 많은 친지가 있어 기포하는데 용이했기 때문이다. 


問 : 삼례도회 때 동학도의 가장 저명한 자는 누구인가? 


供 : 금구의 조진구 전주의 송일두 최대봉 몇 사람이 가장 저명한 자였으나 그 나머지 허다한 사람은 지금 다 기억하기가 어렵다. 


問 : 그때 삼례에서 소위 의병으로 모인 자는 얼마나 되었던가? 


供 : 4천여 명이다. 


問 : 이들 군중을 거느리고 처음 어느 곳으로 향하였는가? 


供 : 처음 은진, 논산으로 향하였다. 


問 : 논산에 도착한 날은 언제인가? 


供 : 지금은 자세히 알 수가 없다. 10월 그믐쯤 될 것이다. 


問 : 논산에 이르러 어떠한 일을 했는가? 


供 : 논산에 이른 후 역시 널리 군을 모집하는 일을 했다. 


問 : 이곳으로부터 다시 어디로 향하였는가? 


供: 공주로 직행했었다. 


供 : 그 달 초 6∼7일쯤 같은데 자세히는 모르겠다. 


問 : 공주에 이른 후에는 무슨 일을 하였는가? 


供 : 공주에 이르지 못하고 접전하여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問 : 네가 사람들에게 글을 부칠 때는 언제나 친서로서 하는가 아니면 대서인가? 


供 : 때로는 친서로 하고 때로는 대서로 한다. 


問 : 혹 대서 시에는 꼭 너의 도장을 찍었는가? 


供 : 피봉에는 도장을 찍을 때가 많으나 대개는 그렇지 않을 때도 많이 있다. 


問 : 네가 삼례에 있을 때 사람들에게 부친 글이 많이 있는데 이것이 친서인가? 대서인가? 


그리고 대서로 할 때는 너의 도장을 찍었는가? 


供 : 모두 통지문으로 부치고 사간은 하지 않았으나 오직 손화중한테 부친 글은 있다. 


問 : 처음 한자도 사간으로써 사람에게 부친 글이 없었는가? 


供 : 만약 그 서간을 보면 알 수가 있으나 지금은 자세히 모르겠다. 


問 : (영사가 서간을 내어 보이면서)이것은 네 친선인가 대서인가? 


供 : 대서이다 


問 : 누구를 시켜서 대서했는가? 


供 : 접주의 필적인 것 같은데 지금은 그 사람을 자세히 모르겠다. 


問 : 너는 일찍이 최경선으로 하여금 대서케 한 일이 있는가? 


供 : 최는 글에 능숙한 자가 아니다. 


問 : 이 편지는 삼례로부터 낸 것인가? 


供 : 그렇다. 


問 : 이 편지의 년 월 일은 분명히 9월 18일인데 인데 어찌 10월 삼례로 나와서 모였다고 하는가? 


供 : 전에 10월이라고 말한 것은 9월인 것 같다. 



問 : (영사가 또 하나의 편지를 내 보이면서 말하기를) 이것은 네 친서인가 대서인가? 


供 : 이것도 역시 대서이다. 


問 : 그 편지는 누가 대리로 쓴 것인가? 


供 : 이것 역시 접주를 시켜 썼으나 지금은 그 사람을 기억하기 어렵다. 


問 : 오늘의 진술을 너는 솔직히 고하라 그런 연후에야 안이 속결될 것이다. 여러 가지로 속여 고하면 일이 괴롭고 싫증만 날 뿐 역시 너의 자신에게도 많은 해가 있을 것이다. 


供 : 월.일은 과연 자세히 기억하기 어려우나 그 나머지는 무릇 관계한 것을 어찌 조금이라도 속여 고했다 하겠는가? 


問 : 대서를 할 때에는 어찌 반드시 소정의 사람이 있을 터인데 어찌 몰라서 되겠는가? 


供 : 그 때 나는 졸필이라 매양 사람으로 하여금 대서케 했으나 본래 정해진 사람은 없다. 


問 : 이 두 편지는 모두 다 네가 시킨 것인가? 


供 : 그렇다. 


問 : 삼례의 규합은 모두 너로부터 나왔는가? 


供 : 그렇다. 


問 : 그러면 모든 기포에 관한 것은 모두 네가 주모했는가? 


供 : 그렇다. 


問 : (영사가 또 하나의 편지를 보이면서)이것도 역시 네가 시킨 것인가? 


供 : 그렇다. 


問 : (영사가 또 하나의 편지를 보이면서)이것도 역시 네가 시킨 것인가? 


供 : 그렇다. 


問 : 전날 진술한 바 너는 김개남과 상관없다 했는데 지금 이 편지를 본즉 두 사람 사이에 상관이 많은 것 같은데 어떠한가? 


供 : 김은 내가 왕사에 합력하자고 권하였으나 끝끝내 들어주지 않는 고로 비로소 상의한 바 있으나 마침내는 끊고 상관하지 않았다. 


問 : (영사가 또 하나의 편지를 보이면서)이 두 종이의 필법은 한 사람의 붓인데 앞은 글은 네가 했다고 진술하고 지금의 것은 어떻게 하여 모른다고 하는가? 


供 : 지금 이 글은 내가 한 것이 아니다. 


問 : 아까 말하기를 삼례의 일은 모두 너로부터 나왔다. 하였는데 지금 녹편을 보이자 그렇지 않다니 실로 모호하구나. 


供 : 녹편중 서학이라고 한 것은 서병학을 말하는 것인데 서병학은 이미 나와 더불어 끊어져 왕래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내가 시킨 것이 아니라고 말한 것이다. 


問 : 동학도 가운데 접주를 차출하는 것은 누가 하는가? 


供 : 모두 최법헌이 한다. 


問 : 네가 접주가 된 것도 역시 최가 차출하였는가? 


供 : 그렇다. 


問 : 동학접주는 모두 최가 낸 것인가? 


供 : 그렇다. 


問 : 호남과 호서가 전부 같은가? 


供 : 그렇다. 


問 : 도집. 집강의 임명 같은 것도 전부 최가 차출하는가? 


供 : 비록 최로부터 많이 나오나 때로는 접주들이 차출하기도 한다.  

 


全捧準 五次問目 日領事問 

(제5차 심문과 진술·일본영사 심문) 

* 이하 심문은 일본 영사가 물은 것이다. 


乙未 三月 初十日(서기 1895년 3월 10일(음))

 

問 : 오늘도 전과 같이 사실을 조사할테니 숨기지 말고 바르게 들어라. 


供 : 잘 알았다. 


問 : 작년 9월 삼례에 있을 때 별도로 대서인이 없고 접주 중에서 바꾸어 가면서 썼다고 하는데 과연 그런가? 


供 : 별도로 대서인은 없으나 접주에서 바꾸어 가면서 이를 썼다. 처음 임오남으로 하여금 이를 쓰게 하였으나 그가 무식하므로 이를 두고 또 김동섭으로 하여금 잠시 쓰게 하였다. 


問 : 대서인은 오직 김동섭, 임오남 두 사람뿐인가? 아닌가? 


供 : 접주 가운데 문계팔. 최대봉. 조진구가 혹 대서하였으나 몇 차례의 편지를 쓴데 불과하다. 


問 : 너는 최경선과 서로 친한 것이 몇 년이나 되는가? 


供 : 동향이므로 서로 친한 것이 5∼6년이 된다. 


問 : 일찍이 최가 너에게 상사의 분이 있는가? 없는가? 


供 : 다만 친구로서 상종할 뿐이지 가르침을 받는 일은 없었다. 


問 : 너의 진술이 부실한 곳이 있는 것 같은데 공연히 재판을 끌고 또 네게 해가 없을터인데 무엇 때문에 이같이 하는가? 


供 : 별로 정상을 속인 것은 없으나 일전 송희옥의 일로 잠시 숨겼으나 다시 명백히 말하였다. 


問 : (하나의 종이를 내어 보이면서)이는 너의 친필이 아닌가? 정상을 속인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供 :이미 나의 것은 진술하였다. 글은 나의 글이나 필적으로 말하면 나의 필적이 아니다. 어찌 나에게 유익한 것이 있어서 속이겠는가? 과연 내가 쓴 것이 아니다. 


問 : 최경선의 진술로는 이것은 너의 필적이라고 하는데 너는 아니라고 말하니 어찌 정상을 속인 것이 아닌가? 


供 : 다시 최에게 물어보면 좋겠다. 또 습자를 시켜보면 필체의 획은 가려볼 수도 있을 것이다. 


問 : 일전 너를 심문할 때 너는 삼례에 있을 때 서기라는 명색이 없다고 하였는데 지금은 서기라는 명백이 있는 것으로 말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供 : 앞서는 대략 말하였던 것이고 지금은 상세히 이를 묻는 고로 그때 잠시 대서한 것을 서기라고 말하였다. 


이상이 법무아문 재판관(法務衙門 裁判官)과 일본영사(日本領事)가 심문(주로 日本領事)한 진술의 내용이다. 모두 275개 문항이다. 


제3차 심문부터는 어디까지나 전봉준(全琫準)과 대원군(大院君)과의 관계를 캐내려고 파고들었으며 또 전봉준의 가까운 심복을 알려고 애썼다. 


그러나 전봉준은 대원군과의 관계를 전적으로 부인한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건들을 직면할 대마다 책임을 자기 동료들에게 돌리지 않고 전봉준 자신이 전적으로 책임지려고 애쓴 흔적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상 5차 공초기록(供招記錄)에서 갑오동학혁명(甲午東學革命)의 성격을 비롯하여 동학교(東學敎)와의 관계도 짐작할 수 있다. 

  


판결문  

제삼십칠호(일팔구오년삼월십구일) 선고문 


::: 판결선언서 (원문) ::: 


전라도 태인 산외면 동곡 거 농업 평민 


피고 전봉준 년 사십일 


우기자는 전봉준을 대하여 형사피고사건을 심문(審問)하여 본 즉 피고난 동학당이라 칭하고 부도의 거두 접주라 부르고 개국 오백일년 정월에 전라도 고부군수 조병갑이가 처음 도임하여 자못 학정을 행하매 해지방인등이 병고를 견디지 못하고 익년 십일, 이월분에 군수를 향하여 기구정을 고쳐달라하고 애간(哀懇)하였더니 비단 소원을 이루지 못할뿐더러 두루혀 다 잡히고 옥(獄)에 갓치고 그 후에도 수삼차 청원하였건마난 즉시 물리치고 호발(毫髮)도 효험이 없난 고로 인민 등은 매우 분하여 수 천명이 못되어 장차 거사(擧事)하여 할 때 피고도 맛참 그 무리에 드러 드듸여 중인이 밀려 접주(接主)로 삼아 작년(昨年) 삼월상순(三月上旬)에 영솔기도(領率基徒)하여 고부(古阜) 외촌(外村) 창고(倉庫)를 헐고 전곡(錢穀)을 빼셔 진수(盡數)히 인민을 배급(排給)하고 일, 이처에 작경(作梗)한 후 한 번 해산(解散)하였으나 기후 안핵사(按 使) 장흥부사(長興府使) 이용태가 고부로 드러와서 몬져 작경하거슨 다 동학당의 소위라 하고 동학수도하난 자를 잡아 살육(殺戮)을 과히 하므로 이에 피고난 다시 기도를 규합하여 모집(募集)하되 만일 불응자(不應者)난 불충불의(不忠不義)된 사람이니 반드시 벌을 주리라 하고 다른 사람을 협박(脅迫)하여 기도 사천여명(四千餘名)을 어더가지고 각기 소유한 흉기(凶器)를 가지고 양식(糧食)은 기지방 부민에게 징봉(徵捧)하여 시년 사월 상순분(上旬分)에 피고가 친히 기도를 영솔(領率)하여 전라도 무장(茂長)의셔 니러라 고부(古阜), 태인(泰仁), 원평(院坪), 금구(金溝), 등처(等處)를 갈새 전라감영 포군(砲軍) 일만여명(一萬餘名)이 동도(東徒)를 치러 온단 말을 듣고 한 번 고부(古阜)로 몰려 갔다가 하루 밤낮을 접전 후 영문포군(營問砲軍)을 파하고 전진하여 정읍(井邑), 흥덕(興德), 고창(高敞), 무장(茂長), 영광(靈光), 함평(咸平)을 지나 장성(長城)을 니르니 경군 칠백여명을 만나 또 격파(擊破)하고 화야겸행( 夜兼行)으로 행차하여 사월 이십육, 칠일게 관군보담 몬져 전주성을 드러가니 기시(其時) 전라감사는 임이 도망하여 간 곳슬 모르거날 기익일(其翌日)의 다더러 초토사(招討使) 홍재희가 군사를 다리고 성하의 박도(迫到)하여 성밧거셔 거포(巨砲)를 놋코, 공격(攻擊)하기로 피고가 기도(其徒) 더부러 응전(應戰)하여 쟈못 관군을 괴롭게 하니라. 


이에 초토사가 격문(檄文)을 지어 성중으로 던지고 피고 등의 소원을 드러줄터이니 속히 해산하라 효칙(曉飭)하엿난대 피고 등이 곳 전운소핵파사(戰運所革罷事), 국결부위가사(國結不爲加事), 금보부상인작폐사(禁褓負商人作弊事), 도내 환전구백위봉거(還錢舊伯爲捧去) 즉부득재징어민간사(則部得再徵於民間事), 대동상납전각포구잠상무미금단사(大同上納前各浦口潛商貿米禁斷事), 동포전매호춘이양식정전사(洞布錢每戶春秋二兩式定錢事), 탐관오리병파출사(貪官汚吏竝罷黜事), 옹폐상층매관매작조국권지인일병축출사(雍蔽上聰賣官賣爵操國權之人一竝逐出事), 위관장자부득입장어해경내차부위매답사(爲官長者不得入蔣於該境內且不爲買沓事), 전세의전사(田稅依前事), 연호잡역감성사(煙戶雜役減省事), 포구어람세혁파사(浦口魚籃稅革罷事), 보세급관답물시사(洑稅及官沓勿施事), 각읍졸하래민인산지륵표투장물시사(各邑 下來民人山地勒標偸葬勿施事). 이십칠수목(二十七脩目)을 내여 가지고 상주(上奏)하기로 청하였더니 초토사(招討使)가 즉시 承諾한 고로 동년(同年) 오월(五月) 초오(初五), 육일(六日)께 쾌히 그 무리를 해산(解散)하여, 삼례역(三禮驛)을 니르러 그곳으로 기병(起兵) 각기(各其) 취업(就業)하게 하고 또 기시에 피고난 최경선(崔景善) 이하(以下) 이십여명(二十餘名)을 다리고 전주로부터 금구(金溝), 금제(金堤), 태인(泰仁), 장성(長城), 순창(淳昌), 옥과(玉果), 창평(昌平), 순천(順川), 남원(南原), 운봉(雲峰) 등 각처를 열력(閱歷) 유설(遊說), 하여 칠월하순(七月下旬) 태인(泰仁) 제집으로 귀거(歸去)하니라. 기후(其後) 피고난 일본(日本) 군대(軍隊)가 대궐(大闕)로 드러갓단 말듯고 필시 일본인이 아국(我國)을 병합(倂合)코저 한난 뜻신 줄 알고 일본병(日本兵)을 쳐물리고 기거유민(其居留民)을 국외(國外)로 구축(驅逐)할 마음으로 다시 기병(起兵)을 도모(圖謀)하여 전주(全州) 근처(近處) 삼례역(三禮驛)이 토지(土地) 광활(廣闊)하고 전라도(全羅道) 요충지지(要衝地之地)기로 동년(同年) 구월분(九月分)에 태인(泰仁)을 발정(發程) 원평(院坪)을 지나 대도소(大都所)로 삼고 진안거(鎭安居) 동학접주(東學接主) 文季八(文季八), 김영동(金永東), 이종태(李宗泰), 금구거접주 조준구(金溝居接主 趙駿九), 전주거접주 최대봉(全州居接主 崔大奉), 송목두(宋目斗), 정읍거(井邑居), 손여옥(孫汝玉), 부안거(扶安居), 김석윤(金錫允), 김여중(金汝中), 최경선(崔慶善), 송희옥(宋喜玉), 등과 동모(同謀)하여 상년삼월이후(上年三月以後) 피고(被告)와 동사(同事)한 비도거괴(匪徒巨魁) 손화중(孫化仲) 이하(以下) 전주(全州), 진안(鎭安), 흥덕(興德), 무장(茂長), 고창(高敞) 등처(等處) 원근(遠近) 각지방(各地方) 인민(人民) 더러 혹(或) 격문(檄文)을 돌리며 혹(或) 전인(專人)하여 유설(遊說)하고 전라우도(全羅右道)의셔 군사(軍士)를 모흐기를 사천여명(四千餘名)이 되매 처처관아(處處官衙)의 드러가셔 군기(軍器)를 강탈(强奪)하고 또 각지방(各地方) 부민(富民) 한띄 전곡(錢 )을 징봉(徵捧)하여 삼례역(參禮驛)을 떠나가면서 도당(徒黨)을 모집(募集)하고 은진(恩津), 논산(論山)을 지나 당수만여명(黨數萬餘名)을 거느리고 동년(同年) 십월(十月) 이십육일(二十六日)쯤 충청도(忠淸道) 공주(公州)를 다다럿더니 일본병(日本兵)이 몬져 공주성(公州城)을 웅거(雄據)하여 잇기에 전후(前後) 이차접전(二次接戰)하여 보앗건마난 두 번 다 대패(大敗)하였는지라 그러나 피고(被告)난 더 일본병(日兵)을 치려 하였더니 일본병(日本兵)이 공주(公州)의 있셔 움직이지 안코 기간(其間)의 피고(被告) 포중(包中)이 점점(漸漸) 도산(逃散)하여 수습(收拾)치 못하게 되엿기로 부득이(不得已)하여 한번 고향(故鄕)으로 도라가 다시 모병(募兵)하여 전라도(全羅道)의셔 일병(日兵)을 막으려 하엿더니 응모자(應募者)가 없는 타스로 동모(同謀) 삼(三), 오인(五人)과 의논(議論)하고 각기(各其) 변복(變服)하여 가만이 경성(京城)으로 드러가 청탐(淸探)코져 하여 피고(被告)난 상인(商人)맨도를 하고 단신(單身)으로 상경차(上京次) 태인(泰仁)을 떠나 전라도(全羅道) 순창(淳昌)을 지날 새 민병(民兵)한대 잡힌 거시니라. 


우(右)에 기록(記錄)한 사실(事實)은 피고(被告)와 밋 기동모자(其同謀者) 손화중(孫化仲), 최경선(崔慶善) 등(等)이 자복(自服)한 공초(供招) 압수(押收)하나 증거문적(證據文籍)이 분명(分明)한지라. 


기소위(其所爲)는 대전회통형전중(大典會通刑中)의 군복기마작변관문자불대시참(軍服騎馬作變官門者不待時斬)이라 하난 율(律)을 조(照)하여 (處罪)할 거시니라 


우(右)에 이유(理由)로써 피고(被告) 전봉준(全琫準)을 사형(死刑)에 처(處)하노라. 



개국(開國) 오백사년(五百四年) 삼월(三月) 이십구일(二十九日) 


법무아문권설재판소선고(法務衙門說栽判所宣告) 


법무아문(法務衙門) 대신(大臣) 서 광 절(徐光節) 


협판(協辦) 이 재 정(李在正) 


참의(參議) 장 박(張 博) 


주사(主事) 김 기 조(金基肇) 


오 용 묵(吳容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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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동학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동학이란 단어를 익숙하게 들어왔고, 또한 우리의 근대사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진정 동학이 무엇인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옛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옛날 속으로 들어가 보아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동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동학 속으로 들어가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학자의 자리에서만 바라본다면 그것은 고작 밖에서 바라본 이의 피상적 이해에서 그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단 이것은 동학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 학문 대상이 어떤 것이든 모든 영역에 두루 해당되는 문제일 것입니다. 그 대상 속으로 깊이 들어가서 그 대상이 되어본 후에 다시 학자의 자리로 돌아와 학자의 말을 하는 것이 더 깊은 이해와 균형 있는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본고는 이런 뜻에서 학인의 자리를 떠나, 동학 속으로 들어가 동학의 뇌로 생각하고, 동학의 심장으로 느끼며, 동학의 입술로 말을 해보고자 합니다. 많은 이들이 <동학>과 <人乃天>이라는 단어를 알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학에 대해 백치에 가까우며, 전문 학자들도 동학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에 있어 빗겨서 있는 듯합니다. 그것은 앞에서 언급했듯 동학 속으로 들어가 동학이 되어보지 못하고 밖에서만 바라보았기 때문이며, 더 근원적으로는 '文字之學'이 아닌 것을 문자지학으로만 해결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동학은 <깨달음의 배움>입니다. 깨달음은 문자지학으로는 이해하기가 불가능한 것입니다.


동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人乃天"이라는 단어를 제대로 이해해야 하는데, 인내천을 제대로 이해했으면 동학을 다 알았다 할 것이요, 이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면 동학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면 이 말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고서는 최제우, 최시형이 어떤 인물이며 또한 동학이 무엇인지, 그 가치가 어떠한지 전혀 알 수가 없겠기 때문입니다.


동학은 본질적으로 깨달음의 길을 밝힌 깨달음의 도법이라 할 수 있는데, 여기서 우리는 깨달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 큰 유리컵이 하나 있다고 할 때, 유리컵 속에 허공과 유리컵 밖에 허공이 둘로 나뉘어 있지만, 이 유리컵이 깨어지면 <안의 허공/밖의 허공>이 하나의 허공이 됩니다. 이처럼 에고라는 경계로 '내 안의 마음'과 '나 아닌 나 밖에 있는 物의 마음'이 나뉘어 있지만, 에고에 묶인 我相이 깨어지면 <내 마음/物(천지)의 마음>이 하나의 마음이 됩니다. 그래서 유리컵의 안과 밖의 허공이 하나의 허공이 되었듯, 내 마음과 物(천지)의 마음이 하나의 마음이 됩니다. 그래서 이렇게 되면 내 마음이 바로 천지의 마음이 되고, 천지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됩니다. 이렇게 '하나 된 마음'을 불교에서는 一心이라고 하는데, 천지의 마음이 바로 내 마음이기에 一切唯心造라 이르는 것이요, 소강절이 "마음이 바로 태극(우주만상)이다"라고 한 것도 모두 똑같은 의미의 말입니다. 동학에서는 與天地合其德이라 하거니와 또한 도가에서 이르는 物我一體의 진의 또한 이것이니 내가 천지와 합일을 이루었으니 아와 물의 비분리의 합일 상태이기에 無爲自然(함이 없이 절로 그러함)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합일을 이룬 이는 자아의 我心를 초월하여 천지의 마음(우주심)으로 살아가기에 늘 천리에 합일하는 성인이 됩니다. 바로 이것, <우주 만물과 내가 완전한 하나라는 것을 아는 것> 이것이 깨달음의 골자요,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하나된 마음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며 무한 자비심과 조화의 마음이며, 진정한 중용의 참뜻이라 할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 아래 모든 깨달은 이의 공통된 메시지이며, 모든 깨달음의 경전의 똑같은 목소리입니다.


人乃天이라는 말도 바로 이런 깨달음에서 나온 말로, 동학에서 말하는 하늘이란 천지만물, 우주, 하느님의 제유로 쓰인 말로, 모든 것이 하늘이라는 뜻은 모든 것이 분리가 되지 않는 하느님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신>의 경계를 넘어서고 <物/神>의 경계를 넘어서면 모든 것이 하나이기에 나, 아님이 없고 하늘(님)이 아닌 것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최시형은 숟가락으로 밥을 먹는 것을 일러 "하늘이 하늘을 지고서 하늘을 먹는다."라고 하였습니다. <무궁한 울 속에 무궁한 나>! 이것이 신인합일의 깨침이며 이를 깨달은 이를 불가에서는 부처라 했고, 한국의 선가에서는 신선이라 하였습니다.


이렇듯 동학은 최제우와 최시형의 대각을 통한 위대한 성과(열반) 위에 나온 깨달음의 聖火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 석가와 같은 레벨의 대철인이 우리의 근대사에 나와서 깨달음의 찬란한 빛을 밝혔지만, 우리는 고작 이들을 구한말 민족종교를 창시한 시시한 종교지도자쯤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동학은 불가나 도가, 예수, 흰두교 등 세계 그 어느 깨달음의 말보다도 더 뛰어난 면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깨달음은 오직 하나이지만, 이 깨달음을 말로 펴는 경우 더 쉽고 절실하고 명료하게 말하는데 있어서는 차등이 있을 수 있는데, 이른바 道可道(말로 표현한 도)로써 도가나 불교는 형이상학전이 면에 많이 치우쳐서 많은 오해와 왜곡을 낳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최치원이 [낭랑비서]에서 말했듯 우리나라의 고유의 도 풍류는 깨달음의 형이상학적인 면과 그것이 실생활에 적용된 형이하학적인 면을 고루 갖추고 있는데 우리는 그 고유의 선도의 진정한 면모를 동학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동학이 참으로 놀라운 것은 형이상학적인 깨달음의 이치를 너무나도 쉽고 단순하게 그리고 단호하게 힘차게 삶의 일상 속으로 가져온 다는 점입니다. "사람이 곧 하늘이다. 사람을 하늘처럼 공경하라." 전 세계 그 어느 경전에서도 이처럼 명료하고 단순하게 실천의 논리로 깨달음과 삶을 하나의 맥락으로 연결시킨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동학은 위(上) 없는 깨달음을 이루었을 뿐 아니라 도가도에 있어서 궁극을 꿰어 더 없이 독특하며 또한 깊고 다채로워 오히려 깨달음의 宣揚에 있어 절정을 달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깨달음의 聖學, 우리는 여기서 동학이 무엇인가라는 진지한 물음을 다시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이와 함께 우리는 역사의 저울에 동학과 최제우, 최시형의 무게를 다시 달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2. 동학의 씨를 뿌린 최제우

崔濟愚는 (1824 순조 24∼1864 고종 1) 崔옥의 외동아들로 10세에 어머니를 여이고 16세에 아버지마저 잃었습니다. 아버지 최옥은 당시 경주에서 덕망 있는 선비였으나, 과거에 출사하지 못하고 불우하게 초야에서 묻혀 살았다고 합니다. 멀리는 최치원의 후속이고 가까이는 7대조 최진립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혁혁한 공을 세워 병조판서의 벼슬과 정무공의 시호가 내려졌으나 그 이후로 벼슬길에 오르지 못한 몰락한 양반이었다고 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비록 출세하지는 못하였으나 학문과 덕행으로 이름이 있었고 또 제자들이 문집([近庵集])을 만들어 줄 정도였으므로, 최제우의 성장기의 학문적 소양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찍 양 부모를 여이고 화재까지 겹쳐 그의 살림은 더욱 궁핍했으며, 당시 부패한 정치 상황에 출사할 뜻을 품지 못하고 젊어서부터 시대와 자신의 신세에 대해 심한 갈등을 가진 듯합니다. 20대 초부터 전국을 유람하며 견문을 넓혔는데, 당시 서구와 일제의 침입 등 갖은 혼란상을 목격하고 최제우의 문제의식은 더욱 깊어 졌으며, 1856년부터 본격적으로 수도에 매진했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많은 일화가 있지만, 정확히 그가 어떤 수도방법을 통해 수도를 했는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영가무도교의 김일부와 동문수학하였다 하였으니, 그런 이 수도에도 다소 영향이 있지 않은가 합니다.


결정적으로 1860년에 자신의 교향인 용담정에서 49일의 수도 끝(道氣長存邪不入 世間衆人不同歸)에 대각을 이루니 이것이 동학이 발생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도를 펴는 1861년부터 순교까지 고작 3년에 지나지 않음으로 그의 저작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게 되어, 더 많은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시대에 대한 끝없는 고민과 세상에 대한 원대한 구원의 뜻을 품은 그는 체 뜻을 펴보지도 못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3. 동경대전과 용담유사

[동경대전] 최시형이 최제우 사후에 그의 글을 수습하여 엮은 책입니다. 분량이 매우 적어서 그의 사상의 면모를 폭넓게 살펴볼 수 없는 아쉬움이 있지만, 동학의 기본 씨앗의 단편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論學文]에는 득도를 통해 천주의 접화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것이 동학의 첫 시작이라 하겠습니다.


이런 것을 일일이 들어 말지 않으므로 내 또한 두렵게 여겨 다만 늦게 태어난 것을 한탄할 뿐이었다. 바로 그 무렵에 몸이 몹시 떨리면서 밖으로 접령 하는 기운이 있고 안으로 신기한 말씀에 의한 가르침이 있었다. 그러나 보려 해도 보이지 아니하고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아니하므로 마음은 더욱 이상스럽기만 하였다. 이윽고 마음을 가다듬고 기운을 바로잡은 뒤에 "어찌하여 이처럼 저에게 나타나십니까?"라고 물었다. "내 마음이 곧 네 마음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이를 어찌 알리오. 천지는 안다 해도 귀신은 알지 못하였으니 귀신이라는 것도 나니라. 너에게 무궁 무궁한 도를 미치게 하노니, 이를 닦고 다듬어서 그 글을 지어 사람을 가르치고 그 법을 바르게 하여 덕을 펴면, 너로 하여금 장생하여 천하에 빛나게 하리라


擧此一一不已故 吾亦悚然 只有恨生晩之際 身多戰寒 外有接靈之氣 內有講話之敎 視之不見 聽之不聞 心尙怪訝 修心正氣而問曰 何爲若然也 曰 吾心卽汝心也 人何知之 知天地而無知鬼神 鬼神者 吾也 及汝無窮無窮之道 修而煉之 制其文敎人 正其法布德則 令汝長生 昭然于天下矣


오랜 수도의 여정을 통해 깨달음을 득하는 순간 天語를 듣게 되고 자신의 천명을 자각하는 내용입니다.


내가 동에서 나서 동에서 도를 받았으니, 도는 비록 천도라고 하지만 학인즉 동학이라. 하물며 땅이 동서로 나뉘었는데 서가 어찌 동이 되며, 동을 어찌 서라고 말하겠는가. 공자는 노나라에서 나서 추나라에 교화를 이루었으므로 추로의 풍화가 이 세상에 전하여졌다. 우리 도는 이 땅에서 받아 이 땅에서 폈으니 어찌 서학이라고 이름 하겠는가.


吾亦生於東 受於東 道雖天道 學則東學 況地分東西 西何謂東 東何謂西 孔子生於魯 風於鄒 鄒魯之風 傳遺於斯世 吾道 受於斯 布於斯 豈可謂以西名之者乎


동학의 이름을 정한 연유에 대해 밝히고 있는데 이는 단순히 서학에 대해 상대적인 의미로 한 것이 아니라 우리 땅에서 난 우리의 도라는 자부심과 자주적 의지의 표현으로써 정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묻기를 "주문의 뜻은 무엇입니까?" 대답하기를 "지극히 한울님을 위하는 글이므로 주문이라 이르는 것이니, 지금 글에도 있고 옛 글에도 있는 것이니라." 묻기를 "강령의 글 뜻은 어떤 것입니까?" 대답하기를 至라는 것은 지극한 것이오, 氣라는 것은 허령이 창창하여 모든 일에 간섭하지 아니함이 없고 모든 일에 명령하지 아니함이 없으며, 모양이 있는 것 같으나 형상하기 어렵고 들리는 듯하나 보기는 어려우니 이것은 또한 혼원(混元)한 한기운(一氣)이니라. 今至라는 것은 도에 들어 처음으로 至氣에 접하게 됨을 안다는 것이요, 願爲라는 것은 청하여 비는 뜻이오, 大降이라는 것은 氣化를 원하는 것이다.


侍라는 것은 안에 신령이 있고 밖에 기화가 있어 온 세상 사람이 각각 옮기지 못할 것임을 아는 것이오, 主라는 것은 존칭해서 부모와 같이 섬긴다는 것이오, 造化라는 것은 무위이화요, 定이라는 것은 그 덕에 합하고 그 마음을 정한다는 것이오, 永世라는 것은 사람의 평생이오, 不忘이라는 것은 생각을 보존한다는 뜻이오, 萬事라는 것은 수가 많은 것이오, 知라는 것은 그 도를 알아서 그 지혜를 받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밝고 밝은 그 덕을 늘 생각하여 잊지 아니하면 지기의 경지에 이르게 되어 지극한 성인에 까지 이르게 된다는 뜻이다.


曰呪文之意 何也 曰至爲天主之字 故以呪言之 今文有 古文有 曰降靈之文 何爲其然也 曰至者 極焉之爲至 氣者 虛靈蒼蒼 無事不涉 無事不命 然而如形而難狀 如聞而難見 是亦渾元之一氣也 今至者 於斯入道知其氣接者也 願爲者 請祝之意也 大降者 氣化之願也 侍者 內有神靈 外有氣和 一世之人 各知不移者也, 主者 稱其尊而與父母同事者也 造化者 無爲而化也 定者 合其德定其心也 永世者 人之平生也 不忘者 存想之意也 萬事者 數之多也 知者 知其道而受其知也 故明明其德 念念不忘則 至化至氣 至於至聖


동학의 수법인 주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글입니다. [시천주] "하느님이 내 안에 있어 조화를 이루니 영원토록 잊지 않아 만사가 절로 깨달아지도다.(侍天主造化定 永世不忘萬事知)"의 상세한 주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수도법의 전부이고 이것이 깨달음을 얻어 천지와 합일하는 유일한 길임을 여러 글에서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동학은 다른 것이 아니라 깨달음의 길이라는 것을 이 같은 맥락에서도 깊이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산하의 큰 운수가 다 이 도에 돌아오니, 그 근원이 매우 깊고 그 이치가 심히 깊은 뜻을 지녔노라. 내 마음 속에 바른 기운이 있고 줏대가 떳떳해야, 우리 도의 참 진미를 알고, 오로지 하느님을 위하는 한 가지 생각이 있어야 모든 일이 뜻과 같이 되느니라. 나쁘고 옳지 못한 기운을 모두 떨쳐버리고 맑고 바른 기운을 , 하느님의 마음을 받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어린아이의 깨끗한 마음처럼 닦도록 하라. 우리 도를 행함의 바른 방법은, 오직 하느님을 위하는 지극한 마음으로 되어야하고, 하느님께서 주신 마음을 바르게 하는데 있느니라.


풍부하고 지혜로운 총명은, 자연 속에서 사는 신선의 마음에서 나오고, 밝은 지혜로 크게 이루는 모든 일은 오직 하느님의 바른 이치로 돌아가느니라. 남의 조그만 허물을, 나의 바른 마음에 두지 말 것이며, 나의 바른 마음의 작은 지혜일지라도, 남이 본받도록 베풀어주어라.


이와 같은 큰 도를, 사사로운 자신의 욕심을 위하는 작은 일로는 정성을 삼지 말 것이니라. 하느님을 도와 하느님의 덕을 펴는 일에 자신의 정성을 다하면 자연히 하느님의 도움이 있느니라. 하느님의 무한한 창조의 힘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능력에 따라서 모두 다르니, 하느님과의 약속을 굳게 지키고, 마음을 조급히 하지 말 것이로다. 그러면 공을 이루는 다른 날에 하느님과의 연분을 짓게 되느니라. 하느님의 마음은 본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이어서 물건과 응하여도 자취가 없는 것이니라.


하느님의 바른 마음을 받아서, 그 마음을 닦아야 하느님의 무한한 베푸심인 덕을 알고, 그 덕이 오직 밝아야 하느니라. 오직 이것이 하느님의 올바른 가르침이니라. 그러므로 우리의 도는, 한 결 같이 하느님의 무한한 베푸심에 있으며 사람에게 있지 아니 하느니라. 우리의 도는, 하느님을 지극히 위하는 믿음에 있으며, 사람이 갖고 있는 재주에 있지 아니 하느니라. 우리의 도는 가까운데 있으며, 먼데 있지 아니 하느니라. 우리의 도는, 하느님을 위하는 지극한 정성에 있으며, 사람이 자신의 욕심을 위하여 구하는데 있지 아니 하느니라. 이것은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그런 것이고, 먼데 있는 것처럼 느껴 질 수도 있으나 절대 멀리 있지 아니 하도다.


간신히 한 가닥 길을 얻어서, 걷고 또 걸어 험하고 어려운 난관을 극복했도다. 산 넘어 산이 다시 나타나고, 물 건너 또 물을 만났도다. 다행히 물을 건너고, 간신히 산 너머 산을 넘어 왔도다. 넓은 들판에 거의 이르러 비로소 큰 길 있음을 알았노라.


봄소식을 몹시 기다려도 봄빛은 끝내 오지 않도다. 봄빛을 좋아하지 않음은 결코 아니나, 오지 아니하면 때가 아니로다. 이르러 올 계절이 되면 기다리지 않아도 자연히 오리라. 봄바람이 간밤에 불어와, 모든 나무들이 봄소식을 모두 알도다. 하루에 한 송이 꽃이 피고 이틀에 두 송이 꽃이 피고 삼백예순 날에 꽃송이 만발하도다. 한 몸이 다 꽃이요 온 집 안이 다 봄이로다.


병속에 신선의 술이 있으니 백만 사람을 살릴만하도다. 빚어 넣기는 천년 전인데, 쓸 곳을 대비하여 이를 간직하도다. 부질없이 봉한 뚜껑을 열면 향기는 흩어지고, 맛도 또한 희박해 지리라. 지금 우리 도를 위하는 사람들은 말조심하기를 이 술병같이 지켜야하느니라


山河大運盡歸此道其源極深其理甚遠固我心柱乃知道味一念在玆萬事如意消除濁氣兒養淑氣非徒心至惟在正心隱隱聰明仙出自然來頭百事同歸一理他人細過勿論我心我心小慧以施於人如斯大道勿誠小事臨勳盡料自然有助風雲大手隨其器局玄機不露勿爲心急功成他日好作仙緣心兮本虛應物無迹心修來而知德德惟明而是道在德不在於人在信不在於工在近不在於遠在誠不在於求不然而其然似遠而非遠

裳得一條路步步涉險難山外更見山水外又峯水幸渡水外水僅越山外山且到野廣處始覺有大道苦待春消息春光終不來非無春光好不來卽非時玆到當來節不待自然來春風吹去夜萬木一時知一日一花開二日二花開三百六十日三百六十開一身皆是花一家都是春甁中有仙酒可活百萬人釀出千年前藏之備用處無然一開封臭散味亦薄今我爲道者守口如此甁


최제우는 한문보다도 오히려 한글 가사를 널리 도를 알리고자 했는데 이는 서민과 부녀자와 아이들에게도 많은 관심과 노력을 경주하였음을 알 수 있게 합니다.


나는 도시 믿지 말고

하울님만 믿어서라

네 몸에 모셨으니

捨近取遠한단말가

나 역시 바라기는

한울님만 전혀 믿고

해몽 못한 너희들은

서책은 아주 폐코

수도하기 힘쓰기는

그도 또한 도덕이라

문장이고 도덕이고

歸於虛事 될가보다

열석자 지극하면

만권시서 무엇하며

心學이라 하였으니

不忘其意 하여서라

현군자 될 것이니

도성덕립 못 미치까

이같이 쉬운 도를

자포자기 한다말가(...)

이 글보고 개과하여

날 본 듯이 수도하라

부대부대 이 글보고

남과 같이 하여서라. -[敎訓歌] 4절 일부


사상적인 면에서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분량 면에서 {용담유사}가 더 많은 양을 차지할 뿐 아니라 민중적이고 정서적인 생생한 목소리는 가사에서 더 많이 느낄 수 있는 면이 있다 하겠습니다.


4. 동학을 열매 맺게 한 최시형

동학의 씨를 최제우가 뿌렸다면, 崔時亨(1827 순조27∼1898)은 동학의 열매를 찬란하게 거둔 이라 할 것입니다. 그는 최제우보다도 더 몰락한 집안이었고, 5세 때 어머니를, 12세 때 아버지를 여의게 되어 매우 어려운 유년기를 보냈다고 합니다. 최제우가 동학을 편 1861년에 동학에 입교하였고, 수도정진에 누구보다 열심이었다고 합니다. 63년에 최제우로부터 도통을 전수 받아 동학의 2대 교주가 되었습니다. 그는 98년 72세의 나이로 순교하기까지 평생을 혹독한 고난 속에도 교세의 확장과 구국안민을 위해 일생을 바친 인물입니다. '최보따리'라 불리우리 만치 그는 일생을 쫓겨 다니며 고난의 가시밭길을 걸었지만 진리 빛을 밝히기 위해, 세상의 구원을 위해 찬란한 혼불을 밝힌 다시없는 성인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5. 동학의 성전 {해월신사 법설}

동학의 사상은 실로 {해월신사법설}에서 이루어졌다고 할 만큼 {해월신사법설}(총38장)은 동학사상의 골자를 담고 있는 동학의 찬란한 꽃이요 열매라 할 수 있는 경전입니다. 그 내용 중 일부 내용을 통해 동학의 사상적 특질을 살펴볼까 합니다.


밝게 분별하여 말하면 처음에 기운을 편 것은 이치요, 형상을 이룬 뒤에 움직이는 것은 기운이니, 기운은 곧 이치라 어찌 반드시 나누어져 둘이라 하겠는가. 기란 것은 조화의 원체 근본이요, 이치란 것은 조화의 현묘이니, 기운이 이치를 낳고 이치가 기운을 낳아 천지의 수를 이루고 만물의 이치가 되어 천지 대정수를 세운 것이니라.


明辨初宣氣理也 成形後運動氣也 氣則理也何必分而二之 氣者造化之元體根本也 理者造化之玄妙也 氣生理 理生氣 成天地之數 化萬物之理以 立天地大定數也


이 글은 동학의 이기론이라 할 수 있는 글로 이와 기가 떨어질 수 없는 하나의 유기체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천지는 곧 부모요 부모는 곧 천지니, 천지부모는 일체니라. 부모의 포태가 곧 천지의 포태니, 지금 사람들은 다만 부모 포태의 이치만 알고 천지포태의 이치와 기운을 알지 못하느니라.


한울과 땅이 덮고 실었으니 덕이 아니고 무엇이며, 해와 달이 비치었으니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며, 만물이 화해 낳으니 천지이기의 조화가 아니 무엇인가.


천지는 만물의 아버지요 어머니이니라. 그러므로 경에 이르기를 '主란 것은 존칭하여 부모와 더불어 같이 섬기는 것이라'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예와 이제를 살펴보면 인사의 할 바니라' 하셨으니, '존칭하여 부모와 더불어 같이 섬긴다' 는 것은 옛 성인이 밝히지 못한 일이요 수운대선생님께서 비로소 창명하신 큰 도이니라. 지극한 덕이 아니면 누가 능히 알겠는가. 천지가 그 부모인 이치를 알지 못한 것이 오만년이 지나도록 오래 되었으니, 다 천지가 부모임을 알지 못하면 억조창생이 누가 능히 부모에게 효도하고 봉양하는 도로써 공경스럽게 천지를 받들 것인가.


천지부모를 길이 모셔 잊지 않는 것을 깊은 물가에 이르듯이 하며 엷은 얼음을 밟는 듯이 하여, 지성으로 효도를 다하고 극진히 공경을 다하는 것은 사람의 자식 된 도리이니라. 그 아들과 딸 된 자가 부모를 공경치 아니하면, 부모가 크게 노하여 가장 사랑하는 아들딸에게 벌을 내리나니, 경계하고 삼가라.


내가 부모 섬기는 이치를 어찌 다른 사람의 말을 기다려 억지로 할 것인가. 도무지 이것은 큰 운이 밝아지지 못한 까닭이요 부지런히 힘써서 착한데 이르지 못한 탓이니, 참으로 개탄할 일이로다.


사람은 오행의 빼어난 기운이요 곡식은 오행의 으뜸가는 기운이니, 젖이란 것은 사람의 몸에서 나는 곡식이요, 곡식이란 것은 천지의 젖이니라.


부모의 포태가 곧 천지의 포태니, 사람이 어렸을 때에 그 어머니 젖을 빠는 것은 곧 천지의 젖이요, 자라서 오곡을 먹는 것은 또한 천지의 젖이니라. 어려서 먹는 것이 어머님의 젖이 아니고 무엇이며, 자라서 먹는 것이 천지의 곡식이 아니고 무엇인가. 젓과 곡식은 다 이것이 천지의 녹이니라.


사람이 천지의 녹인 줄을 알면 반드시 食告하는 이치를 알 것이요, 어머님의 젖으로 자란 줄을 알면 반드시 효도로 보양할 마음이 생길 것이니라. 식고는 반포의 이치요 은덕을 갚는 도리이니, 음식을 대하면 반드시 천지에 고하여 그 은덕을 잊지 않는 것이 근본이 되느니라.


어찌 홀로 사람만이 입고 사람만이 먹겠는가. 해도 역시 입고, 입고 달도 역시 먹고 먹느니라.


사람은 한울을 떠날 수 없고 한울은 사람을 떠날 수 없나니, 그러므로 사람의 한 호흡, 한 동정, 한 의식도 이는 서로 화하는 기틀이니라.


한울은 사람에 의지하고 사람은 먹는데 의지하나니, 만사를 안다는 것은 밥 한 그릇을 먹는 이치를 아는데 있느니라.


사람은 밥에 의지하여 그 생성을 돕고 한울은 사람에 의지하여 그 조화를 나타내는 것이니라. 사람의 호흡과 동정과 굴신과 의식은 다 한울님 조화의 힘이니, 한울님과 사람이 서로 더부는 기틀은 잠깐이라도 떨어지지 못할 것이니라.


1. 天地卽父母父母卽天地天地父母一體也父母之胞胎卽天地之胞胎今人但知父母胞胎之理不知天地之胞胎之理氣也

2. 天地盖載非德而何也日月照臨非恩而何也萬物化生非天地理氣造化而何也

3. 天地萬物之父母也故經曰主者稱其尊而與父母同事者也又曰察其古今則人事之所爲稱其尊而與父母同事者前聖未發之事水雲大先生主始創之大道也非至德孰能知之不知天地其父母之理者五萬年久矣皆不知天地之父母則億兆蒼生孰能以孝養父母之道敬奉天地乎

4. 天地父母永侍不忘如臨深淵如履薄氷然至誠至孝極盡極敬人子之道理也爲其子女者不敬父母則父母大怒降罰於其最愛之子女戒之愼之

5. 吾事父母之理何待人言而强爲哉都是大運未明之故也勤勉不善之致也實是慨嘆之處也

6. 人是五行之秀氣也穀是五行之元氣也乳也者人身之穀也穀也者天地之乳也

7. 父母之胞胎卽天地之胞胎人之幼孩時唆其母乳卽天地之乳也長而食五穀亦是天地之乳也幼而哺者非母之乳而何也長而食者非天地之穀而何也乳與穀者是天地之祿也

8. 人知天地之祿則必知食告之理也知母之乳而長之則必生孝養之心也食告反哺之理也報恩之道也對食必告于天地不忘其恩爲本也

9. 何獨人衣人食乎日亦衣衣月亦食食

10. 人不離天天不離人故人之一呼吸一動靜一衣食是相與之機也

11. 天依人人依食萬事知食一碗

12. 人依食而資其生成天依人而現其造化人之呼吸動靜屈伸衣食皆天主造化之力天人相與之機須臾不可離也


2장 천지부모의 전문으로 동학 특유의 범신론적인 만물일체 사상과 조화와 공경 정신을 읽을 수 있는 글입니다.


사람의 일동일정이 어찌 한울님의 시키는 바가 아니겠는가. 부지런하고 부지런하여 힘써 행하면 한울임이 감동하고 땅이 응하여 감히 통하게 되는 것은 한울님이 아니고 무엇이리요.


人之一動一靜 豈非天地之所使乎 孜孜力行則天感地應 敢以遂通者 非天而何(3장 도결-12)


천지인은 도시 한 이치기운뿐이니라. 사람은 바로 한울 덩어리요, 한울은 바로 만물의 정기이니라. 푸르고 푸르게 위에 있어 일월성신이 걸려 있는 곳을 사람이 다 한울이라 하지마는, 나는 홀로 한울이라 하지 않노라. 알지 못하는 사람은 나의 이 말을 깨닫지 못할 것이니라.


天地人都是一理氣而已人是天塊天是萬物之精也蒼蒼在上日月星辰所係者人皆謂之天吾獨不謂天也不知者不能覺斯言矣(4장 천지인-2)


사람의 일거일동이 하늘이며 오직, 하늘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천인합일의 사상을 피력하고 있는데 이것이 동학의 메시지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라 할 것입니다.


사람이 바로 한울이요 한울이 바로 사람이니, 사람 밖에 한울이 없고 한울 밖에 사람이 없느니라.


人是天 天是人 人外無天 天外無人(4장 천지인-7)


마음은 어느 곳에 있는가 한울에 있고, 한울은 어느 곳에 있는가? 마음에 있느니라. 그러므로 마음이 곧 한울이요 한울이 곧 마음이니, 마음 밖에 한울이 없고 한울 밖에 마음이 없느니라. 한울과 마음은 본래 둘이 아닌 것이니 마음과 한울이 서로 화합해야 바로 侍定知(하늘이 내 안에 있음을 앎)라 이를 수 있으니, 마음과 한울이 서로 어기면 사람이 다 侍天主라고 말할지라도 나는 시천주라고 이르지 않으리라.


心在何方 在於天 天在何方 在於心 故心卽天 天卽心 心外無天 天外無心 天與心本無二物 心天相合方可謂侍定知 心天相違則 人皆曰侍天主 吾不謂侍天主也(4장 천지인-8)


경에 이르기를 "마음은 본래 비어서 물건에 응하여도 자취가 없다"라 하였으니, 빈 가운데 靈이 있어 깨달음이 스스로 나는 것이니라. 그릇이 비었으므로 능히 만물을 받아들일 수 있고, 집이 비었으므로 사람이 능히 거처할 수 있으며, 천지가 비었으므로 능히 만물을 용납할 수 있고, 마음이 비었으므로 능히 모든 이치를 통할 수 있는 것이니라.


經曰心兮本虛 應物無跡 虛中有靈知覺自生 器虛故能受萬物 室虛故能居人活 天地虛故能容萬物 心虛故通萬理也(5장 虛實-1)


마음이라는 형이상학적인 그릇은 비움 있음을 통해 우주와 하느님까지 담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천지를 에워싸고 우주를 담을 때 진정한 시천주의 의미를 알게 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내가 청주에 지나다가 서택순의 집에서 그 며느리의 베 짜는 소리를 듣고 서군에게 묻기를 "저 누가 베를 짜는 소리인가"하니, 서군이 대답하기를 "제 며느리가 베를 짭니다" 하는지라, 내가 또 묻기를 "그대의 며느리가 베 짜는 것이 참으로 그대의 며느리(하늘)가 베 짜는 것인가"하니, 서군이 나의 말을 분간치 못하더라. 어찌 서군뿐이랴. 도인의 집에 사람이 오거든 사람이 왔다 이르지 말고 한울님 강림하셨다 말하라.


余過淸州 徐淳家聞其子婦織布之聲 問徐君曰 彼誰之織布之聲耶 徐君對曰 生之子婦織布也 又問曰君之子婦織布 眞是君之子婦織布耶 徐君不卞吾言矣 何獨徐君耶 道家人來勿人來言 天主降臨言

(7장 待人接物-4)


도가의 부인은 경솔히 아이를 때리지 말라. 아이를 때리는 것은 곧 한울님을 때리는 것이니 한울님이 싫어하고 기운이 상하느니라. 도인집 부인이 '한울님이 싫어하고 기운이 상함'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경솔히 아이를 때리면, 그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니 이제 아이를 때리지 말라.


道家婦人輕勿打兒 打兒卽打天矣 天厭氣傷 道家婦人不畏天厭氣傷而輕打幼兒則 其兒必死矣 切勿打兒(7장 待人接物-5)


사람을 대할 때에 언제나 어린아이 같이 하라. 항상 꽃이 피는 듯이 얼굴을 가지면 가히 사람을 융화하고 덕을 이루는데 들어가리라.


待人之時 如少兒樣 常如花開之形 可以入於人和成德也(7장-12부분)

누가 나에게 어른이 아니며 누가 나에게 스승이 아니리요, 나는 비록 부인과 어린아이의 말이라도 배울만한 것은 배우고 스승으로 모실만한 것은 스승으로 모시노라.


孰非我長 孰非我師 吾雖婦人小兒之言 可學而可師也(7장-13)


동학의 행동지침을 읽을 수 있는 글로 모든 이에 대한 <하늘같은 공경>은 동학의 가장 대표적인 표상이라 할 것입니다.


우리 사람이 태어난 것은 한울님의 영기를 모시고 태어난 것이요, 우리 사람이 사는 것도 또한 한울님의 영기를 모시고 사는 것이니, 어찌 반드시 사람만이 홀로 한울님을 모셨다 이르리오. 천지만물이 다 한울님을 모시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저 새소리도 또한 시천주의 소리니라.


吾人之化生 侍天靈氣而化生 吾人之生活 亦侍天靈氣而生活 何必斯人也 獨謂侍天主 天地萬物皆莫非侍天主也 彼鳥聲亦是侍天主之聲也

(8장 靈符呪文-11)


우리의 도의 뜻은 한울로써 한울을 먹고, 한울로써 한울을 화할 뿐이니라. 만물이 낳고 나는 것은 이 마음과 이 기운을 받은 뒤에라야 그 생성을 얻나니, 우주만물이 모두 한 기운과 한 마음으로 꿰뚫어졌느니라.


吾道義 以天食天 以天化天 萬物生生 稟此心此氣以後得其生成 宇宙萬物總貫一氣一心也(8장-12)


사람뿐만 아니라 만물존중 사상을 독특하게 들어내 주고 있습니다. 흙 한줌도, 물 한 방울도 모두 우리의 형제이며, 나이며 하늘인 것입니다.


내 마음을 공경치 않는 것은 천지를 공경치 않는 것이요, 내 마음이 편안치 않는 것은 천지가 편안치 않은 것이니라. 내 마음을 공경치 아니하고 내 마음을 편안치 못하게 하는 것은 천지부모에게 오래도록 순종치 않는 것이니, 이는 불효한 일과 다름이 없느니라. 천지부모의 뜻을 거tm르는 것은 불효가 이에서 더 큰 것이 없으니 경계하고 삼가라.


我心不敬天地不敬 我心不安天地不安 我心不敬不安 天地父母長時不順也 此無異於不孝之事 逆其天地父母之志 不孝莫大於此 也戒之愼之

(9장 守心正氣-7)


모든 것과의 일체감을 느끼고 하늘같은 공경을 할 수 있으려면 우선 내 마음이 먼저 하늘로 깨어나야 할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 한 조각 한 조각도 모두 하느님이 마음이니 어찌 경솔히 그 마음을 대하겠습니까.


남편이 화애롭고 아내가 정순함은 우리 도의 제일 종지니라.


夫和婦順 吾道之第一宗旨也(17장 夫和婦順-1)


도를 통하고 통하지 못하는 것은 도무지 내외가 화순하고 화순치 못하는 데 있느니라. 내외가 화순하면 천지가 안락하고 부모도 기뻐하며, 내외가 불화하면 한울이 크게 싫어하고 부모가 노하나니, 부모의 진노는 곧 천지의 진노이니라.


道之通不通 都是在內外和不和 內外和順則天地安樂 父母喜悅 內外不和則天大惡之 父母震怒矣 父母震怒卽天地之震怒也(17장-2)


묻기를 "우리 도 안에서 부인 수도를 장려하는 것은 무슨 연고입니까?" 신사 대답하시기를 "부인은 한 집안의 주인이니라. 음식을 만들고, 의복을 짓고, 아이를 기르고, 손님을 대접하고, 제사를 받드는 일을 부인이 감당하니, 주부가 만일 정성 없이 음식을 갖추면 한울이 반드시 감응치 아니하는 것이요, 정성 없이 아이를 기르면 아이가 반드시 충실치 못하나니, 부인 수도는 우리 도의 큰 근본이니라. 이제로부터 부인 도통이 많이 나리라. 이것은 일남구녀를 비한 운이니, 지난 때에는 부인을 압박하였으나 지금 이 운을 당하여서는 부인 도통으로 사람 살리는 이가 많으리니, 이것은 사람이 다 어머니의 모태 속에서 나서 자라는 것과 같으니라.


問曰吾道之內婦人修道奬勵是何故也 神師曰婦人家之主也 爲飮食製衣服育孀兒待賓奉祀之役 婦人堪當矣 主婦若無誠而俱食 則天必不感應 無誠而育兒 則兒必不充 實婦人修道吾道之大本也 自此以後婦人道通者多出矣 此一男九女而比之運也 過去之時 婦人壓迫 當今此運婦人道通活人者亦多矣 此人皆是母之胞胎中生長者如也(18장 婦人修道)


동학은 증산도와 함께 지극한 여성 존중 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성이 제대도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 그 사회는 미개의 사회입니다. 中正의 조화가 이미 깨어졌으니 결코 진실이 바르게 깨어나지 못할 것은 살펴볼 필요도 없는 일일 것입니다. "산도 이롭지 않고 물도 이롭지 아니하리라. 이로운 것은 밤과 낮, 활을 당기는 사이에 있느리라. 山不利 水不利 利在晝夜 挽弓之間(36장 降詩-9)"이라 했으니 중정의 조화는 역의 진리이자 깨달음의 진리입니다.


 

1. 사람은 첫째로 敬天을 하지 아니치 못할지니, 이것이 先師의 創明하신 道法이라. 敬天의原理를 모르는 사람은 眞理를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니, 왜 그러냐하면 한울은 眞理의 衷을 잡은 것이므로 써 이다. 그러나 敬天은 결단코 虛空을 向하여 上帝를 恭敬한다는 것이 아니요, 내 마음을 恭敬함이 곧 敬天의 道를 바르게 하는 길이니, 「吾心不敬이 卽 天地不敬이라」함은 이를 이름이었다. 사람은 敬天함으로써 自己의 永生을 알게 될 것이요, 敬天함으로써 人吾同胞 物吾同胞의 全的理諦를 깨달을 것이요, 敬天함으로써 남을 爲하여 犧牲하는 마음, 世上을 爲하여 義務를 다할 마음이 생길 수 있나니, 그러므로 敬天은 모든 眞理의 中樞를 把持함이니라.


2. 둘째는 敬人이니 敬天은 敬人의 行爲에 의지하여 事實로 그 效果가 나타나는 것 이다. 敬天만 있고 敬人이 없으면 이는 農事의 理致는 알되 實地로 種子를 땅에 뿌리 지 않는 行爲와 같으니, 道닦는 자 사람을 섬기되 한울과 같이 한 후에야 처음으로 바르게 道를 實行하는 者니라. 道家에 사람이 오거든 사람이 왔다 이르지 말고 한울님이 降臨하였다 이르라 하였으니, 사람을 恭敬치 아니하고 鬼神을 恭敬하여 무슨 實效가 있겠느냐. 愚俗에 鬼神을 恭敬할 줄은 알되 사람은 賤待하나니, 이것은 죽은 父母의 魂은 恭敬하되 산 父母는 賤待함과 같으니라. 한울이 사람을 떠나 別로 있지 않는지라, 사람을 버리고 한울을 恭敬한다는 것은 물을 버리고 解渴을 求하는 자와 같으니라.


3. 셋째는 敬物이니 사람은 사람을 恭敬함으로써 道德의 極致가 되지 못하고, 나아 가 物을 恭敬함에까지 이르러야 天地氣化의 德에 合一될 수 있느니라. (셋째는 물건을 공경함이니 사람은 사람을 공경함으로써 도덕의 최고경지가 되지 못 하고, 나아가 물건을 공경함에까지 이르러야 천지기화의 덕에 합일될 수 있느니라.)


天·人·物에 대한 동학의 삼경사상입니다. 결국 어느 글을 보아도 다 같은 맥락의 말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나이므로 모든 것을 나처럼 사랑하라!


1. 내 恒常 말할 때에 天語를 이야기 하였으나 天語가 어찌 따로 있으리오. 人語가 곧 天語이며 鳥聲도 亦是 侍天主의 聲이니라. 그러면 天語와 人語의 區別은 어디서 分別되는 것이냐 하면, 天語는 大槪 降話로 나오는 말을 이름인데 降話는 사람의 私慾 과 感情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요, 公理와 天心에서 나오는 것을 가리킴이니, 말이 理에 合하고 道에 通한다 하면 어느 것이 天語 아님이 있겠느냐. (주: 내 항상 말할 때에 한얼말씀을 이야기 하였으나 한얼님말씀이 어찌 다로 있으리오. 사람의 말이 곧 한얼님 말씀이며 새소리도 역시 한얼님의 소리이니라. 그러면 한얼님 말씀과 사람의 말이 어디서 분별되느냐 하면 한얼님말씀은 대개 강화로 나오는 말씀을 이름인데 강화는 사람의 사욕과 감정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요 공리와 천심에서 나오는 것을  가리킴이니)


1. 내 恒常 말할 때에 物物天이요 事事天이라 하였나니, 萬若 이 理致를 是認한다면 物物이 다 以天食天아님이 없을지니, 以天食天은 어찌 생각하면 理에 相合치 않음 과 같으나, 그러나 이것은 人心의 偏見으로 보는 말이요, 萬一 한울 全體로 본다하면 한울이 한울 全體을 키우기 爲하여 同質이 된 자는 相互扶助로써 서로 氣化를 이루게 하고, 異質이 된 者는 以天食天으로써 서로 氣化를 通하게 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한울은 一面에서 同質的氣化로 種屬을 養케하고 一面에서 異質的氣化로써 種屬과 種屬의 連帶的 成長發展을 圖謀하는 것이니, 總히 말하면 以天食天은 곧 한울의 氣化作用 으로 볼 수 있는데, 大神師께서 侍字를 解義할 때에 內有神靈이라 함은 한울을 이름이요, 外有氣化라 함은 以天食天을 말한 것이니 至妙한 天地의 妙法이 도무지 氣化에 있느니라. ( 주: 내 항상 말할 때 사물과 사물이 한울이요, 일과 일이 한울이라 하였나니, 만약 이 이치를 시인한다면 사물이 다 한울이 한울을 먹는 것이 아님이 없을 지니, 한울이 한울을 먹음은 어찌 생각하면 이치에 상합치 않음과 같으나 이것은 사람 마음의 편견으로 보는 말이요, 만일 한울 전체로 본다면 한울이 한울 전체를 키우기 위하여 같은 성질이 된 자는 서로 도움으로써 서로 기운이 화합함을 이루게 하고, 성질이 다른 자는 한울이 한울을 먹음으로써 서로 기운이 상통하게 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한울은 일면에서 동질적기화로서 종속을 기르게 하고, 일면에서 이질적기화로서 종속과 종속의 연대적 성장발전을 도모하는 것이니, 총체적으로 말하자면 한울이 한울을 먹는 것은 곧 한울의 기화작용으로 볼 수 있는데, 대신사께서 侍자를 해설하실 때 내유신령(안에 있는 신령)이라 함은 한울을 이름이요, 외유기화라 함은 한울이 한울을 먹는 것을 말한 것이니, 지극히 신묘한 천지의 묘법이 도무지 기화에 있는 것이다.) 

宇宙는 一氣의 所使며 一神의 所爲라, 眼前에 百千萬像이 비록 其形이 各殊하나 其理는 一이니라. 一은 卽 天이니 天이 物의 組織에 依하여 表顯이 各殊하도다. 同一의 雨露에 桃에는 桃實이 結하고 李에는 李實이 熟하나니 是 天이 異함이 아니요, 物의 種類 異함이로다. 人이 氣를 吸하고 物을 食함은 是天으로써 天을 養하는 所以니라. 무엇이든지 道아님이 없으며 天아님이 없는지라, 各各 順應이 有하고 調和가 有하여 宇宙의 理此에 順行하나니, 人이 此를 從하는 者는 是正이요 此를 逆하는 者 是惡이니라.(주: 우주는 한 기운의 쓰인바 이며, 일신이 계신바라, 눈앞에 삼라만상이 비록 그 모양이 각기 다르지만 그 본바탕은 하나이니라. 하나는 곧 한울이니 한울이 사물의 짜임에 의하여 표현됨이 각기 다르다.  같은 비와 서리에 복숭아에는 복숭아 열매가 열고, 오얏에는 오얏열매가 익어가나니, 이것은 한울이 달라서 그러함이 아니요, 사물의 종류가 달라서 그러함이다. 사람이 기를 마시고 사물을 먹음은 한울로서 한울을 길러내는 바이니라. 무엇이든지 도가 아님이 없으며 한울 아님이 없는지라, 각각 순응이 있고 조화가 있어 이에 우주의 이치에 순행하나니, 이에 사람이 이를 따르는 자는 올바른 자요. 이를 거역하는 자는 악한자니라.)


我의 一氣 天地宇宙의 元氣와 一脈相通이며, 我의 一心이 造化鬼神의 所使와 一家活用이니, 故로 天卽我이며 我卽天이라. 故로 氣를 暴함은 天을 暴함이요, 心을 亂함은 天을 亂케 함이니라. 吾師 天地宇宙의 絶對元氣와 絶對性靈을 體應하여 萬事萬理의 根本을 明하시니, 是乃天道며 天道는 儒佛仙의 本原이니라.(주: 나의 일氣는 천지우주의 원기와 일맥으로 상통하며, 나의 일심이 조화귀신의 쓰이는 바와 한가지로 활용되니, 그런고로 한울이 곧 나이며 내가 곧 한울이라, 그런고로 기운을 난폭하게 쓰면 한울에 난폭하게 함이요, 마음을 어지럽힘은 한울을 어지럽힘이니라. 스승께서 천지우주의 절대원기와 절대성령을 몸소 순응하여 만 가지 일과 만 가지 이치의 근본을 밝히시니, 이는 한울의 도이며 한울의 도는 유불선의 본원이니라.)


個人各個가 能히 神人合一이 自我됨을 覺하면 이는 곧 侍字의 本이며, 侍의 根本을 知하면 能히 定의 根本을 知할 것이요, 終에 知의 根本을 知할 것이니, 知는 卽通이므로 萬事無爲의 中에서 化하나니, 無爲는 卽 順理順道를 이름이니라.(주:  개인 각개가 능히 신과 사람이 합하여 하나 됨이, 자기 스스로 됨을 깨달으면, 이는 곧 侍(모실시)자의 근본이며, 시의 근본을 알면 능히 마음 정함의 근본을 알 것이니, 아는 것은 곧 통함이므로, 만사를 하지 않는 가운데서도 그렇게 되나니, 무위는 즉 순리순도를 이름이니라.)


이 글들은 최시형의 구술을 담은 내용인데, 동학의 실천 강령은 결국 '모든 것이 하나의 하느님임을 알아서 하느님으로 살아라.'는 것을 여러 가지 측면으로 달리해서 각성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 생명과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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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동학혁명가의 후손이셨네요.

그러하기에 동학에 대한 이해와 자부심이 크셨을 거라 생각됩니다. 또한 삶 속에서 그 정신을 충분히 실천하셨습니다. 


다른 나라 국가원수들을 만났을 때 '동학혁명에 대해서 아시느냐'고 자주 물었다는 일화도, 우리 역사와 선조에 대한 자긍심이 묻어나는 대목입니다.


밑에 글은 노무현님과 수운 최제우, 유시민님과 해월 최시형을 같은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는 글입니다. 

의미있는 시각이라 생각되어 옮겨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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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응규(盧應奎, 1861년 3월 15일 ~ 1907년 1월 4일)는 조선말기의 문신, 유학자이며 구한말의 의병장이다.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의 종증조부이기도 하다. 동학 농민 운동에 가담하였고, 을미사변 당시에는 일본의 만행에 분개하여 의병을 일으킨 공로로 규장각 주사와 동궁시종관 등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그의 수하 의병들 중 일부는 진주와 안동에서 약탈과 난리를 일으켜 물의를 빚기도 했다. 본관은 광주(光州)으로 호는 신암(愼菴)이다.


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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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에게 길을 묻다.


수운 최제우의 개벽세상과 노무현의 사람 사는 세상


수운 최제우가 만든 동학(東學)의 요체는 한마디로 '시천주(侍天主)' 사상이다. 시천주라는 말은〈동경대전>의 21자 주문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최제우가 종교체험을 할 때 상제(上帝)로부터 받은 '지기금지원위대강시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至氣今至願爲大降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至)이 원문(주문)이다. 시천주 사상이란 하늘님을 모심(侍天主)이라고 하는 것은 곧 인간이 자신의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 바로 이 <하늘님의 자유>를 가지신 하늘님을 모시고 있음을 자각하는 것이다. 하늘님을 모심(시천주)이라고 하는 것은 곧 가장 본질적인 자유를 자각하여 획득하는 것을 의미한다. 평등이 성취된 인간의 가장 본질적이고 존엄적인 자유사상이다. 


수운 최제우는 이 한울님이 바로 양반, 상민, 천민 등의 신분차등 없이 모든 사람이 자기 몸 안에 한울님을 모신 존재라는 인간 존엄의 신분평등 사상을 설파했다. 실제로 수운은 이를 몸소 실천하여 노비문서를 없애 모든 노비를 해방시켰다. 더 나아가 노비 중 한 여자(朱씨부인)를 수양딸로 삼기에 이른다. 이는 신분제가 공고했던 조선왕조 후기를 감안해보자면 가히 상상할 수도 없는 혁명적 사건이며 동시에 기득권들에게는 좌빨(?) 수괴로 처단해야할 죄인 중에 죄인이 아닐 수 없었다.


수운은 150년 전 외세의 침탈과 조선왕조의 권력과 관권의 폐해, 먹물들의 삽질로 인한 백성들의 고통을 목도하고 백성들에게 민중해방의 이정표를 제시하는데 그것은 후천개벽을 통한 ‘새로운 세상’이었다. 이 새로운 세상은 세상의 모순을 치유하는 수단이었으며 민중 각자가 ‘삶의 틀’을 바꿔나가는 참세상의 전형이자 실천적 규범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 도대체 동학이 무엇이었기에 민중들은 그렇게 폭발적 반응을 보이며 다투어 경주 용담으로 몰려갔을까? 민중들은 동학으로, 동학으로 다투어 달려갔다. 그리하여 경주 용담은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며, 아비가 아비답지 못하고, 자식이 자식답지 못하던” 세상을 안타깝게 여기는 조선 민중들의 귀의처가 되었고, 수운은 그런 민중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는 신인(神人)이자 진인(眞人)이 됐다. 그러나, 당시의 지배층들은 이 같은 민중들의 마음을 헤아릴 만한 안목이 없었다. 그들은 도리어 수운을 체포해 처형함으로써 민중들의 마음에 불을 질렀다. 


따지고 보면 여러 정황들이 수운이 살던 때와 지금이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강대국(청, 일, 척양)들의 틈바구니에서 허우적대던 조선 왕조, 매관매직이 성행하여 백성들의 등골을 빼먹고 사는 관리들의 부패상, 경도된 지방 호족들의 왜곡된 여론몰이 등 국제적, 정치적, 사회적인 모든 부면에서 성상과 인걸만 바뀌었을 뿐 그때나 지금이나 양상은 비슷했다.


수운과 노무현의 진단과 고민은 대체로 일치한다. 이 두 선각자가 꿈꿨던 세상이 곧 '사람 사는 세상'이었다. 동학농민혁명에서 3.1운동으로 5.18광주항쟁에서 6.10항쟁으로 그리고 참여정부에서 촛불로 관통하며 기저에 흐르는 아젠다가 곧 ‘사람 사는 세상’이었다.  동학의 민중 민주주의적 성격, 만민평등, 함께 살아가는 세상, 사람이 사는 세상. 구시대 질곡의 개혁 등, 동학적 가치관은 참여정부를 이끌었던 노무현 대통령의 가치관과 일치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실제적으로 동학정신의 실천자였던 것이다. 참여정부(동귀일체), 평등사상(시천주), 통일지향성(동귀일체),탈권위주의(무위이화). 그가 지향한 가치는 바로 동학이 지향하는 가치와 일치하였다. 노무현 대통령에게서 수운 선생의 모습을 본다. 노무현 대통령에게서 수운의 향기가 난다.



수운을 부활시킨 해월과 노무현을 부활시킬 유시민 


해월 최시형은 1827년 3월 경주 황오리에서 태어났다. 해월은 온몸으로 사람 사랑과 만민의 평등사상을 실천한 겨레의 스승이자 민중의 힘을 북돋우며 동학의 기틀을 다잡아낸 위대한 혁명가이며, 탁월한 종교사상가였다. 그는 스승 수운 최제우가 연 개벽의 길을 더욱 뚜렷이 했으며, 동학의 기틀을 잡았을 뿐만 아니라 동학농민운동을 이끈 강력한 지도자였다. 언제나 가장 낮은 곳에 엎드려 지내면서도 사후 가장 높은 평가의 자리를 차지했다.


해월은 33세 때(1861년, 철종12년) 친구들과 경주 용담정에 찾아간 게 동학과 인연을 맺는 계기가 됐다. 이후 2년 만에 북도중주인(北道中主人)으로 임명됐고, 이어서 수운의 도통을 이어받아 35세의 나이로 동학의 2대 교주가 될 정도로 뛰어난 수행력과 인간됨됨이를 드러냈다. 이 때 수운의 나이 40세. 처형되기 직전이었다. 죽음을 예감하고 제자에게 자신의 모든 걸 전수한 것이다.


그는 우리 역사상 가장 긴 수배생활을 하며 평생을 도망다니면서 조직을 짜고 교세를 넓히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 땅의 외진 골짜기마다 그의 발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가는 데마다 새끼를 꼬고, 짚신과 멍석을 짰고 나무를 심었다. 이를 통해 “도는 높은 곳에 있는 게 아니라 생활하는 그 속에 있다”는 자신의 철학을 몸소 실천했다. 언제나 남을 위해 기도하고, 베푸는 자세를 흩트리지 않았다. 그런 자세로 억눌린 백성들에게 평등과 인간존엄의 원리를 제시했다. 


또한 동학사상을 당대 현실의 대안으로 확실하게 인식시켜 근대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민중운동으로 꼽히는 동학농민운동의 사상적, 조직적 기반을 다졌다.


해월 사상의 근간은 ‘사람의 곧 하늘’이란 말로 집약된다. “사람 섬기기를 하늘처럼 하라”는 사인여천(事人如天) 사상은 사람은 곧 평등하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당시 우리 사회 전반을 지배하던 반상의 계급을 인정하지 않고, ‘상놈’이든 여성이든 누구나 ‘한울님’ 곧 삶의 주체자로서의 존엄성을 가진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당시 현실에서는 가히 개벽과도 같은 혁명적인 사상을 들어보였다.


“땅을 소중히 여기기를 어머니의 살같이 하라” “밥 한 그릇에 세상만사가 다 들어있다”고 평소 그가 강조했던 말은 곧 생태주의적 관점과 생명사상의 요체로서 최근 크게 대두되고 있는 환경문제를 풀어낼 사상의 기반으로 재평가되기도 한다. 또한 “새 세상이 되는 것은 자연적인 것이니, 인위적으로 폭력을 행사해선 안된다”고 무저항 사상을 주장하기도 했다. 해월 사상의 위대성은 이처럼 논리적이거나 현학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민중 속에서 일하고 함께 도모하는 데서 구하고 드러낸 것에 있다.


1년 전 노무현 대통령이 봉하마을 귀향보고를 하는 자리에서 나와 같은 과에 속하는 정치인이 한사람 있는데 그가 바로 유시민이라며 애써 그를 무대에 세웠다. 자신의 뜻을 이을 정치인으로 대중 앞에서 유시민을 당당하게 선언한 셈이다. 절차야 어떻든 수많은 지지자 앞에서 ‘나와 똑 같은’이라고 했으니 당신(유시민)은 내 뜻을 상속하여 실천하라는 노 대통령의 준엄한 명령으로 봐야한다. 


이런 사실만 가지고 유시민을 해월과 병치시킨다는 것이 다소 무리한 비교일지는 모르겠으나 노무현의 유지를 실천할 정치인으로는 유시민이 가장 적자라는 점에는 어느 누구도 이의를 달 사람이 없을 게다. 


흥미로운 사실은 해월과 유시민은 똑같은 경주 태생이다. 수운은 효수되기 1년 전에 많은 제자들 앞에서 해월에게 대통을 물려주는 요식을 거친다. 일종에 대통 전수식을 통해서 지지자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선언하게 된다. 수운은 해월의 고향과 가까운 경상도 경주시 현곡면 가정리가 고향이다.  경주 용담서사는 동학의 창도지요 시대 담론의 시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학의 실천적 운동은 되레 전라도에서 가장 왕성했다는 점은(동학 농민 운동)은 의미심장하게 시사하는 바이다.


자,

이제 나는 유시민에게 길을 묻는다.


*이랑


출처: http://blog.daum.net/tea4u/16318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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