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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의사의 고백 | 원제 Confessions of a Medical Heretic (1979년)
나는 현대의학을 믿지 않는다 
로버트 S. 멘델존 (지은이) | 남점순 (옮긴이) | 박문일 (감수) | 문예출판사 | 2000-12-15



등산가가 높은 산을 보면 자꾸 오르고 싶어지듯이 의사는 부은 편도선을 보면 자꾸 자르고 싶어지는가 보다. 이럴 때 의사의 신념은 '거기에 편도선이 있기 때문이다.'라는 것이다.

건강을 자부하던 사람도 병이 날 수 있으며, 서서히 진행되는 노화라는 숙명적인 흐름을 생각해 보면 우리는 모두 잠재적인 환자이다.

자연치유력이나 가족의 소중함을 경시하게 만드는, 건강한 사람조차 병자가 되고 마는 위험한 의료행위(과(過)투약, 불필요한 수술의 남발, 방사선의 과다한 사용 등)는 건강이나 행복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중국 편작(죽은 사람도 살려냈다는 유명한 의사)은 의사인 두 형이 있었는데 동생만큼 알려지지 않았다.  
어느 날 위나라의 임금이 편작에게 물었다.

"그대 3형제 가운데 누가 병을 제일 잘 치료하는가?" 임금이 묻자 이렇게 대답 했다.

"큰형님은 어떤 이가 아픔을 느끼기 이전에 얼굴빛을 보고 그에게 병이 있을 것임을 예감하고 병의 원인을 제거해서 환자는 아파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치료받고 자기의 고통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해서 의술이 가장 훌륭한데 명의로 소문나지 않고, 둘째 형님은 상대방의 병세가 미미한 상태에서 그의 병을 알아보고 치료해주어 환자는 둘째 형님이 자신의 큰 병을 낫게 해주었다고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다음으로 훌륭하고 저는 병이 커지고 환자가 고통 속에서 신음할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병을 돌봅니다. 환자의 병이 심하므로 그의 맥을 짚고 진기한 약을 먹이고 살을 도려내는 수술도 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저의 그러한 행동을 보고 제가 자신의 병을 고쳐주었다고 믿게 됩니다. 제가 명의로 소문이 나게 된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자연으로의 회귀' 태초에 인간들이 어떤 의학 기술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살아가던 시대의 지혜들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역사속에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며 저절로 검증된 수많은 민간요법과 식물(약초)들을 과학이라는 미명하에 무차별적으로 경시하고 배척하며, 대신 현대의학을 거의 맹목적으로 받아들여 신앙(信仰)시 해온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고백한다 - 의학박사 로버트 S. 멘델존

처음부터 현대의학을 믿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믿지 않기는커녕 열렬한 신자였다.

의과 대학생 시절, DES(디에틸스틸 베스트롤)라는 여성 합성 호르몬제 연구가 활발했는데, 20년 후 임신중에 이약을 투여받은 여성이 낳은 아이들에게서 자궁경부암이나 생식기 이상이 지나치게 많이 발견되었다.

연구생 시절, 미숙아에 대한 산소요법이 최신 의료 설비를 자랑하는 큰 병원에서 시행되었다.

그러나  이 치료를 받은 약 90퍼센트의 미숙아에게서 약시(弱視)나 실명(失明) 등 중증의 시력장애(미숙아 망막증)가 발생했다. 한편 의료수준이 열악한 근처 병원에서는 미숙아 망막증 발생률이 10% 미만이었다. 미숙아 망막증이 고농도 산소의 투여로 인해 발생했다는 사실을 안 것은 그로부터 1, 2 년 후의 일이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병원은 최신식의 고가 플라스틱제 보육기를 설치했기 때문에 산소가 새지 않고 보육기 안에 가득하여 미숙아를 실명시켰지만, '수준 미달의 병원'에서는 구식의, 틈이 많은 덮개가 달린 욕조 같은 보육기를 사용해 산소가 많이 샜고 이것이 미숙아를 실명에서 구해준 것이다.

호흡기 병에 테라마이신을 사용하는 문제에서 '이 약에는 부작용이 없다'고 주장했는데 테라마이신을 비롯한 모든 항생제는 미숙아 호흡기감염증에는 별로 효과가 없을뿐더러 테라마이신이 함유한 테트라사이클린계 항생제에 대해 수천명의 아이들 치아가 황녹색으로 변색되고, 뼈에 테트라사이클린 침착물이 생기는 것이 확인되었다.

편도선, 흉선(흉골 뒤쪽에 있는 내분비선의 하나), 림프절에 방사선 치료가 효과가 있다고 믿었다.

이 치료법에 대해 교수들은 '방사선을 쬐는 것은 위험하지만 치료에 사용되는 정도의 방사선은 전혀 해가 없다'고 단언했기 때문에 나는 그 말을 믿었다.

그러나 '전혀 해가 없는' 방사선이라도 10~20년 후에도 갑상선종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이 그 후의 연구에서 판명되었다.

마침내 현대의학이 몰고 온 무수한 불행의 씨앗을 잘라낼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이렇게 깨닫자마자 내가 방사선으로 치료했던 환자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첨단 의료란 멋진 것이고, 그 기술을 가진 명의에게 치료받으면 건강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것은 대단한 착각이다.

현대의학에서 행하는 치료는 효과가 없는 경우가 많다. 효과는 커녕 치료받은 뒤에 오히려 위험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현대의학을 구성하는 의사, 병원, 약, 의료기구의 90%가 사라지면 현대인의 건강은 당장 좋아질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현대의학은 언제나 과잉진료에 몰두하고 있으며, 그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중증의 환자에게만 하도록 되어있는 특수한 치료를 가벼운 증상의 환자에게도 당연한 듯이 행하고 있다.

임산부는 병원에 가지 않는 것이 좋다. 환자로 취급받을 뿐이다. 의사에게 있어 임신과 출산은 9~10개월에 걸친 '병'이고, 임산부는 환자일 뿐이다.

정맥주사와 태아 감시 장치, 각종약물, 거기다가 필요도 없는 회음절개 같은 치료를 받고 나면, 마지막에는 의료 공장의 단골상품인 제왕절개가 기다리고 있다.

감기에 걸린 사람도 병원에 안 가는 것이 좋다. 의사는 대부분 항생제를 투여하지만, 항생제는 감기나 인플루엔자에 거의 효과가 없으며 오히려 그것이 원인이 되어 감기를 악화 시킬 뿐 이다.

산만한 아이가 선생님을 귀찮게 한다고 해서 병원에 데려가면 큰일 난다. 지나친 약물투여가 반복되어 결국에는 아이들을 약물 중독자로 만든다.

신생아가 꼬박 하루 동안 모유를 안 먹었다고, 혹은 육아 책에 씌어진 대로 체중이 증가하지 않았다고 해서 의사의 말대로 할 필요는 없다. 의사는 모유의 자연적인 분비를 억제하는 약을 줄지도 모른다. 모유가 잘 안 나오게 된 엄마는 아기를 분유로 키우라는 지시를 받게 되고, 결국 위험한 결과를 초래한다.

건강 검진은 의미 없는 행사다. 접수 때부터 함부로 취급받다가 정작 의사에게 진찰 받을 때는 긴장하여 혈압이 평소보다 올라가게 되고, 결국 혈압을 내리기 위해 대량의 강압제를 맞고 돌아오는데, 이렇게 해서 성 생활에 종지부를 찍게 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임포텐스는 심리적인 원인보다 이러한 강압제 등의 약물 부작용에 의한 것이 많다.

의사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대의학이 종교라는 사실을 알면 보다 효과적으로 자신을 지킬 수 있다.
물론 현대의학은 절대 스스로 종교라고 말하지 않는다. 병원도 종교가 아니라 사람을 고치는 의술 또는 과학을 위한 건물인 것처럼 가장하고 있다.

현대 의학은 환자의 신앙이 아니면 존재할 수 없다. 모든 종교가 그렇겠지만, 현대의학교의 경우는 신자들의 신앙심에 의존하는 정도가 크기 때문에 사람들이 단 하루라도 믿음에 회의를 느낀다면 의료제도 자체가 붕괴해 버릴 정도이다.

이런 사정은 다음의 세 가지 의문에 대해 생각해보면 바로 이해할 수 있다.
다른 곳에서라면 당연히 의심받을 만한 행위가 의료행위라는 이유만으로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다.
환자들은 대부분 수술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면서 선뜻 수술에 동의하고 있다.
사람들은 약 성분인 화학물질이 어떤 작용을 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연간 몇 천톤에 달하는 약을 소비하고 있다.


의사가 환자를 진찰할 때

건강검진은 일종의 의식이다.
병에 대한 자각 증상이 없다면 굳이 건강 검진을 받을 필요가 없다.
검사를 받으면 받을수록, 그 검사가 철저하면 철저할수록 몸은 좋아진다고 믿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진찰에는 늘 위험이 동반되고,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몸에 해를 끼치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청진기의 정체
청진기는 의사가 성직자 흉내를 내기에 좋은 소(小)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피부에 직접 닿는 그 청진기에 의해 감염되는 경우도 있다.
정말 심각한 병이라면 청진기를 사용하지 않고 육안으로도 충분히 판단할 수 있다.

마네킹도 살리는 기술
심장 발작을 일으킨 환자가 관상동맥질환 집중 치료실에 누워있다.
이 환자는 매우 안정되어 있고 차분한 상태이다. 그에게 주사기를 든 간호사가 다가온다.
그것을 본 환자는 매우 놀라 당황한다.

간호사는 '심전도에 이상이 나타나 응급처치를 시행 하겠습니다.' 이 간호사는 심전도에 종종 오차가 생기는 것과 심전계의 누전에 의해 심전도가 이상을 나타내는 경우를 지적하는 연구 보고가 여러 차례 발표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환자는 필사적으로 호소한다  '간호사님, 부탁합니다. 나는 정상입니다.  맥을 짚어 보면 알겁니다.'
그러나 간호사는 아무런 동요도 없이 이렇게 대답한다.
'맥을 짚어봐도 소용없습니다. 심전도가 가장 정확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간호사는 환자의 팔에 주사를 놓는다.

뇌파계를 사용하여 검사하는 뇌파검사는 간질 진단을 받은 환자의 20%가 뇌파도에 전혀 이상을 나타내지 않는 반면, 정상인의 15~20%가 이상을 나타냈다.
마네킹의 머리에 젤리를 넣어 뇌파계를 접속시켜보았더니 `살아 있다'라는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엑스레이에 의한 의식
의사가 다루는 의료기구중에서 가장 많이 보급되어 있으면서, 위험도에 있어서 다른 것에 비할 수 없는 것으로 엑스레이 장치를 들 수 있다.

소아 백혈병이 태아 때의 치료 피폭, 즉 엑스레이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이 실증 되었지만, 의사들은 그러한 걱정은 전혀 하지 않는다.

20~30년 전에 머리, 목, 가슴의 상부에 방사선을 맞은 사람들 중 수 천명에 달하는 사람들에게서 갑상선 질환이 발생하였다. 갑상선 암은 치과의사에게 엑스레이 검사를 10회 정도 받는 방사선 양보다도 적은양의 피폭으로도 발생할 수 있다.

아무리 적은 양의 방사선이라도 인체에 비추게 되면 유전자를 손상시키고, 현 세대뿐만 아니라 그 이후의 세대에 걸쳐 큰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

엑스레이는 당뇨병, 심장병, 뇌졸중, 고혈압, 백내장 같은 나이가 들수록 걸리기 쉬운 병의 원인이 된다.
암이나 혈액의 이상, 중추신경계 종양의 원인이 방사선에 있다고 지적하는 연구보고는 이외에도 얼마든지 있다.

점(占)의 의식과 신(神)의 계시
환자에게 이익보다 불이익이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임상검사다.
일찍이 미국 질병대책센터(CDC)는 전국의 검사실에서 발생한 실수에 관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검사 실수가 발생한 비율이 평균 25%가 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세포검사 10~40%
2, 임상 생리 검사 30~50%
3, 혈액형 검사 12~18%
4, 혈액검사 (헤모글로빈. 혈청전해질) 20~30%

충격을 받기에는 아직 이르다. 질병 대책 센터는 미국내 전체 검사실의 채 10%도 조사하지 않았다.
여기에 올려진 숫자는 최고 수준의 검사실의, 최고 수준의 연구실태이다.

한 여성이 이런 편지를 보내왔다.

"최근에 받은 건강검진에서 변에 피가 섞여 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의사는 저에게 바륨(Barium)을 마시게 하고선 엑스레이 검사를 받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그 밖의 온갖 검사를 받도록 하였습니다.
결과는 `이상 없음'이었습니다.

저는 숱한 검사로 상당한 고통을 맛보았습니다만, 의사는 만족하지 못한 모양인지 저에게 검사를 좀더 받아볼 것을 권했습니다.
반년 후, 저는 몸이 너무나도 허약해지고 말았습니다. 결국 의사의 최종적인 진단은 `위산 과다" 였습니다.

숫자에 집착하는 의사들
의사는 오직 수치에만 신경을 쓴다. 모유를 먹고 크는 아기의 경우 체중이 의사가 이상치라고 믿고 있는 정도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때 의사는 엄마에게 우유를 먹이라고 지시하지만, 이것은 아이에게도 엄마에게도 해만 될 뿐이다.

임신부도 체중계를 의식할 필요가 없다. 임신부에 올바른 체중의 증가라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임신부가 영양이 풍부한 음식을 섭취하고 있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지, 적절한 분량 등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눈금이 붙어 있는 우유병도 문제이다. 의사가 정해진 양만큼 우유를 먹이도록 일러주기 때문에 아기엄마는 일정량의 우유를 아기에게 무리하게 먹이려고 한다. 대부분의 우유병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어서 엄마가 어르고 달래서 강제로 먹여도 아기들은 대부분 토해 버린다.

아기가 아파서 병원에 전화를 하면 의사는 틀림없이 체온을 묻지만, 이 질문에는 별 의미가 없다.
예를 들면 장미진(피부에 발생하는 붉은색 발진)이 그것이다. 갓난 아기에게 종종 나타나는 병으로 40도 가까운 고열이 나는 경우가 자주 있지만, 사실 열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고열은 자연 치유의 과정이고, 하룻밤 자고나면 대체로 나아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고열이 동반되지 않는 위험한 병도 있다. 결핵성 수막염은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는 병이지만 발열을 느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정상 체온인 상태가 많다.  

환자는 실험 대상인가
모든 건강검진에는 환자가 의사에게 이용당할 위험이 항시 도사리고 있다.
 
어떤 병원의 외래 병동 소장으로 취임했을 때의 일이다.
그곳의 의사들이 아이 엄마에게 "배변훈련을 시키고 있습니까?" 하고 꼬박꼬박 묻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네 살이 되도록 배변훈련을 받지 않은 남자 아이들에게 방광경 검사까지 겸한 비뇨기관련 검사를 하고 있었다.

방광경 검사는 중장년의 방광암, 전립선암, 자궁암 등의 검진에 자주 이용되는 검사로 방광경이라는 일종의 내시경을 요도에서 방광내에 삽입해 방광 내부의 이상 여부를 조사하는 것이다.

이 가혹한 검사를 이제 겨우 네 살밖에 안 된 아이에게 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즉시 이러한 것을 못하게 하였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비뇨기과 부장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나의 친구였지만 매우 흥분하며 말했다.

"왜 비뇨기 검사를 폐지하게 한거야? 이 검사가 아니면 기질성 이상을 동반하는 어려운 병례를 찾을 수가 없잖아."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 말도 안되는 이유는 통하지 않아. 아무리 희귀한 증상이라도 방광경검사 보다 훨씬 안전한 방법으로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고."

그제서야 그는 자신의 본심을 털어 놓았다.

"실은, 자네가 질문을 못하게 하는 바람에 내 전문의 실습생 교육계획이 엉망이 되게 생겼어. 실습생이 자격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매년 정해진 수만큼의 방광경 검사를 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1년에 150회 정도는 해야 하는데, 그 검사를 중지하는 바람에 할당량을 채울 수 없게 돼서 실습생들이 몹시 곤란해 하고 있어."

병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
건강과 병은, 의사의 생각과 사정에 따라 어떻게라도 해석될 수 있다.

약의 조절은 의사의 처방 여하에 달려있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환자의 주치의가 의도하는 대로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하다.

의사는 이상이 발견되지 않더라도 병을 만들어 낼 수 있다. 100명의 어린아이를 검사해서 신장, 체중, 소변, 심전도를 측정하면, 통계상 '이상'이라고 여겨지는 아이가 반드시 나온다. 검사로 얻어진 평균으로부터  초과된 수치에 틀림없이 몇 명은 속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몇가지 검사를 거듭하면, 전원이 어떤 검사에서 이상이라고 판명된다. 그 결과 위험에 노출될 수 있는 갖가지 검사를 풀코스로 받는 함정에 빠지게 된다.      

의사는 과격한 치료를 좋아해
건강 검진을 받으면, 의사는 경미한 것이라도 바로 이상한 점을 발견해낸다.

혈당치에 조금이라도 변동이 있으면 당뇨병의 예비증상이라고 겁을 줘 당뇨병 예비군으로 진단된 환자는 결국 당뇨병 치료제를 받아 귀가하는 처지가 된다.

근처에서 제트기가 날아 심전도가 흔들려도 심장병의 예비 증상이라 하며 협심증 예비군으로 진단한다. 귀가해서 협심증 치료제를 먹고 있으면 약의 부작용에 의해 몸과 마음에 현저한 이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침침해지는 눈, 착란, 동요, 환각, 마비, 결국에는 간질 발작과 심각한 정신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다고 진단되면 '아트로미드'라는 약물이 처방되는 경우도 있다. 이 약에는 콜레스테롤을 저하시키는 작용이 있어 복용하면 확실히 콜레스테롤 수치는 낮아지지만, 동시에 여러가지 부작용도 나타난다.
피로, 허약, 현기증, 근육통, 탈모, 침침해지는 눈, 떨림, 발한, 임포텐스, 성욕감퇴, 빈혈, 소화성궤양, 류머티스성 관절염, 홍반성 낭창(결핵성 피부염의 일종) 등등.

혈압이 다소 높을 때 의사는 강압제를 무조건 처방한다. 그 강압제는 어떤 효능이 있는가? 거의 아무런 효능이 없다.
그 대신 부작용은 두통, 졸음, 권태감, 구토, 임포텐스 등 실로 다양하다. 관상동맥질환 약물 조사반은 강압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있다.
 
"생명에 별 지장이 없을 정도의 심근경색, 폐색전증과 같은 부작용을 수없이 일으키며, 복용 했을 시 사망률을 저하시키기 보다는 심한 부작용을 초래한다.

건강검진에 얽힌 환상
의사가 건겅검진의 중요성을 선전하기 시작한 것은 세계 대공황에 즈음해서이다.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불황 타계 대책이었다. 환자를 속이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환자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는 것이다.

"왜 좀더 일찍 오시지 않으셨습니까? 좀더 일찍 오셨더라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기발견, 조기치료의 중요성을 믿고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한다.

환자에게 있어 가장 불행한 일은, 의사가 수많은 치료 메뉴 중에서 보다 극단적인 치료방법을 택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 경향이 지나쳐, 환자의 상태는 안중에도 없고 불필요한 치료를 무리하게 행하려 드는 의사도 있을 정도다.

그냥 놔두면 자연히 낫는 병이지만 환자가 감기를 빨리 고쳐달라고 항생제를 요구 한다거나, 관절이 아프다고 극약인 소염 진통제를 원한다거나, 혹은 10대 젊은이가 여드름이나 뾰루지를 고쳐달라고 호르몬제를 원한다고 말할 경우 의사들은 순순히 책임을 인정할리 없다.

환자가 원하는 것은 배려와 정성이 담긴 치료와 자연 치유를 중요하게 여기는 치료이고, 약에 의존하지 않는 치료에 관한 정보 제공이다.

의사만 믿고 있어서는 안된다
편도선 비대, 유아제 헤르니아(유아 배꼽 탈장), 특히 아무런 문제가 없는 심장잡음 등은 대부분이 여섯 살 이전에 없어지는 증상이다.

의사의 위험한 진찰로부터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배워둬야 할 마음가짐과 대책은 이외에도 많이 있다.

물론 사고에 의한 부상, 급성 맹장염과 같은 긴급사태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런 응급치료를 요하는 사태는 의료행위 전체의 불과 5%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병의 자각증세가 전혀 없다면 의사를 찾을 필요가 없다. 만약 자각 증세가  있거나 실지로 병인 경우, 그 병에 대해서 의사보다 더 많이 알아둘 필요가 있다.

병에 대해 공부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먼저 의사가 사용하는 책을 입수한다. 아마도 의사는 책의 내용을 거의 잊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병에 대해 씌워진 일반인을 위한 책을 읽어본다.

정보면에서 의사와 대등하거나 혹은 그 이상의 입장에서 대화할 수 있도록 자신의 병에 대해서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검사를 받으라면 검사로 무엇을 알 수 있는지에 대해 알아둘 필요가 있다.
조사해보면, 특별한 의의는 거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50세 미만의 여성, 흉부에 특별한 증상이 보이지 않는 여성, 유방암으로 고생한 적이 없는 여성의 유방은 엑스레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의사로부터 내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치료법을 결정할 때는 거기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을 찾아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이 좋다. 예전에는 의사가 지성과 교양이 넘치고, 사려깊은 사람으로 여겼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병에 대해서 잘 알고 있으면서 상담 상대로 어울리는 사람은 같은 병을 앓았던 사람들이다.
또 그 친구나 주변사람, 가족의 말에도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의사는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말은 믿지 말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의사는 자신의 권위를 지키려고 그렇게 말하는 것 뿐이다.

병이라고 여겨지면, 바로 친구나 친척, 주변의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과 신중히 대화를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하면 의사가 없어도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것을 알 게 될 것이다.


의사가 약을 처방할 때

항생제의 허구
세균성 뇌막염으로 고생한 환자 대엽성 폐렴 환자들은 심한 기침, 호흡곤란, 떨림, 오한, 격렬한 가슴 통증 등은 페니실린의 등장과 함께 이런 증상으로 고통 받는 일은 없어졌으며, 열이나 기침은 단 며칠만에 가라앉게 되었다. 의사들은 이 광경을 목격하고는 기적의 의료를 실감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병은 거의 볼 수 없고 있다하더라도 이미 정해진 치료법대로 환자를 돌보면 된다.
 
현재 많은 의사들이 감기와 비슷한 증상을 가지고 있는 환자에게도 페니실린을 투여하고 있다.
그러나 페니실린이 효과를 나타낼 수 있는 것은 세균성 감염증에 한해서이며, 감기나 인플루엔자와 같은 바이러스성 감염증에는 투여를 해도 별 효과가 없다.

항생제는 감기에는 효과가 없다.
감기나 인플루엔자에 대한 항생제의 작용은 피부 발진, 구토, 설사, 발열, 과민성 쇼크 등으로 고통 받을 뿐이다.
과민성 쇼크란 심혈관 이상, 발한, 의식불명, 혈압저하, 부정맥 등의 심한 부작용이 일시에 일어나는 것이다.

"어린아이의 감기는 마이코프라즈마 폐렴으로 전이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테트라사이클린을 투여할 필요가 있다”고 의사는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근거 없는 말이다.

마이코프라즈마라고 하는 것은 세균과 바이러스의 중간에 위치하는 자기 증식 기능을 가진 최소의 미생물인데, 어린아이 감기의 대부분이 그것에 감염일 리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 식품의약청(FDA)은 테트라사이클린의 과잉투여를 염려하여, 의사에게 주는 설명서에 그 약에 대한 다음과 같은 경고를 필히 명기하도록 제약회사에 요청했다.

"치아 발육기(젖먹이부터 여덟 살 까지)에 있는 어린아이가 테트라사이클린계의 항생제를 복용하면 치아가 황색, 갈색, 재색으로 영구히 변색될 우려가 있습니다."

항생제가 죽음을 부른다
항생제의 과잉 투여에 의한 부작용보다 더욱 무서운 것은 항생제가 체내에서 특정 세균과의 싸움을 반복해가는 동안에 그 항생제에 대해 내성을 갖는 새로운 세균이 변종으로 만들어져, 그것이 더욱 심한 감염증을 일으킨다.

세균은 적응력이 강한 미생물로서, 약제에 접하면 접할수록 그 이후 세대의 세균은 그 약에 대해 내성을 갖추게 된다.
일찍이 임질의 치료는 소량의 페니실린으로 충분했으나, 지금은 다량의 항생제 주사를 두 번이나 맞지 않으면 낫지 않게 되었다.

문제는 의사의 대부분이 지금도 항생제 같은 강한 약을 환자에게 투여하고 있다는데 있다.

환자를 위한 약인가 제약회사를 위한 약인가 
의학과 약의 역사를 되돌아 보자.

1890년, 근대 세균학의 창시자 독일의 로베르트 코흐(R.Koch)는 결핵균의 배양액으로부터 어떤 물질을 추출하여, 그것이 결핵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몇 명의 환자에게 실지로 주사를 해보았더니, 환자의 상태는 오히려 악화되어 사망자까지 나오게 되었다.

1928년, 트로트라스트(산화트리움의 현탄액이라고 하는 방사성 조영제)가 장이나 비장, 림프절의 방사선 촬영에 처음으로 사용되었고, 그 약물이 적은 양으로도 암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판명된 것은, 그로부터 19년 후의 일이었다.

1937년, 새롭게 개발된 항균제를 투여받은 어린아이들이 사망했다.
그 약제가 독성이 강한 화학물질로 오염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후에 판명되었다.

1955년, 불활화한 소아마비 바이러스를 포함한 예방주사(솔크 왁친)가 과잉 투여되어 죄 없는 유아들이 죽거나 빈사 상태의 중증환자가 되는 사건이 100건 이상 발생했다.

1959년, 임신 초기에 탈리도마이드라고 하는 안정제를 복용한 임산부들로부터 독일에서는 약 500명, 독일 이외의 국가들에서는 약 1000명이 넘는 심각한 정도의 기형아가 탄생했다.

1962년, 트리파라놀이라고 하는 고지혈증 치료제가 백내장을 비롯한 수많은 부작용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밝혀져, 시장에서 회수되었다.

교감신경 억제제의 일종인 레셀핀계의 강압제가 유방암의 발병률을 3배나 높이는 부작용이 있다는 것이 연구에 의해 판명되었다. 그러나 그 약은, 그런 일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환자에게 지금도 변함없이 투여되고 있다.

또한 인슐린은, 당뇨병 환자를 실명시키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는 합성 호르몬제이다.
그러나 그 약은 `의학의 기적'이라고 까지 극찬되었으며, 여전히 계속 사용되고 있다.

약물 남용이 초래한 비극
의사가 집행하여 행한 `약남용의 의식'은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도 하는 위험성을 갖고 있다. 실지로 의사가 투여한 약은 불법인 마약이나 각성제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위해를 안겨주고 있다.

미국의 의료조사에서, 약물 남용으로 인한 사망률은 마약이나 각성제에 의한 것이 26%이며, 바륨과 바비추레이트계의 수면 진정제 등에 의한 것이 23% 라고 보고되고 있다.

그러나 그 조사에는 연간 2~3만명에 이르는, 처방약의 부작용으로 인한 사망자수가 계산되어 있지 않은 점과 사망자 수가 1만 명이나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이는 본래의 사인이 약물에 의한 것일지라도 의사가 적당히 둘러대어 속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가령 말기 환자가 그 치료를 받지 않았다면 생존해 있었을 것이나 약물요법 도중에 죽은 경우, 의사는 부작용사(약물요법에 의한 사망으로 의료사 중의 하나)가 아닌 병사로 진단한다.

중요한 사실은 입원환자의 대부분이 통원 단계에서 의사로부터 처방받은 약을 복용하고, 그 부작용이 원인이 되어 입원하게 된다는 것이다.

스테로이드제제의 부작용
스테로이드제(부신 피질 호르몬제)는 항생제와 마찬가지로, 본래는 중증환자에게만 한하여 사용되는 것이었으나 근래에는 증세가 가벼운 환자의 치료에까지 투여되고 있는 극약이다.

부신은 대사를 조절하는 인체 최대의 장기이다. 따라서 이곳에서 분비되는 부신피질 호르몬은 체내의 거의 모든 장기에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영향을 준다.

일찍이 스테로이드제의 투여는 극도의 부신 기능 저하, 뇌하수체의 기능 저하, 홍반성 낭창, 궤양성 대장염, 한센씨병, 호지킨병(악성 림프종의 일종), 림프종과 같은 중증의 위독한 병에 한정되어 있다.

그러나 현재는 단핵증, 여드름, 발진과 같은 아주 흔한 증상 뿐만 아니라  볕에 탄 피부에까지 사용되고 있다.
게다가 이들 증상에 관한 진단이 그 정확성마저 결여되어 있다.

의사용 약품편람은 미국에 인가된 약을 일괄하여 정리한, 약의 성전이라고 부를만한 책인데 그중에는 프레드니손이라는 스테로이드제에 대한 예비지식과 부작용 리스트가 올라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들 보면 다음과 같다.

고혈압, 근력저하, 천공과 출혈을 동반할 우려가 있는 소화성 궤양(위나 십이지장벽에 구멍이 뚫려 출혈 하기도하는 궤양), 외상의 치유능력저하, 발한, 어지럼증, 경련, 생리불순, 어린아이의 발육 장애, 정신 장애, 녹내장, 당뇨병이다.                                 
애틀란타에 살고 있는 어떤 부인이 내 앞에서 보낸 편지의 사연도 그런 것이다.

그 부인의 스무살난 딸이 아직까지 생리가 없는데, 열한 살 때 손톱 끝에 발진이 생겼었다고 한다. 그래서 피부과에 데리고 갔더니, 의사는 프레드니손을 투여해주었으며, 그 후 3년간 그 약을 복용했다는 것이다.

"뭔가 딸에게 해줄 만한 일이 없을까요?”

그때 피부과 의사가 프레드니손이 생식기능의 변조를 가져올 우려가 있다고 설명해주었더라면, 나는 딸의 발진을 그대로 두었을 것입니다.        

또한 오아이오 주의 젊은 여성이 기고한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체험이 씌어 있었다.       

"옻이 올라 피부과에 갔더니 프레드니손을 투여해주었으며, 그 후 다시 케나 로그라고 하는 별도의 스테로이드제를 주사해주었습니다.

극심한 두통, 근육경련, 흉부 압박감, 자궁내 출혈로 25일간이나 고통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산부인과에 갔더니 `자궁 내 출혈은 옻을 억누르기 위한 약 때문에 일어난 것이므로 자궁내 소파수술을 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자궁 내 소파수술이란, 자궁내막을 긁어내어 환부조직을 제거하는 치료법이다)


경구피임약과 에스트로겐은 안전한가
경구피임약을 복용하고 있는 여성은 심장병 뿐만 아니라 간 종양, 두통, 우울증, 암등을 일으킬 수도 있다.
경구 피임약 복용자는 비복용자와 비교하면 심근경색으로 사망할 확률이 40세 이상에서는 5배, 30대 에서는 3배이다.

그 밖의 병의 발병률을 연령을 불문하고 비교해 보아도 뇌졸중 4배, 혈전색전증(피가 굳어 혈관을 막는 증상) 5배 이상, 고혈압이 6배이다.                  

미국에서는 폐경기에 있는 500만 명 이상의 여성이 에스트로겐을 복용하고 있다.
이 약은 담낭염과 자궁암의 발병률을 5~12배 까지 높게 할 위험성이 지적되고 있어, 미국 식품 의약품 국으로서는 경구 피임약과 마찬가지로 의사와 환자에게 이를 경고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대부분의 병원에서 이 약은 폐경기의 불쾌한 증상을 예방한다는 이유로 일상적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도 강압제를 복용할까
의사는 `강압제의 복용은 고혈압에 반드시 필요한 치료법'이라고 역설하여 환자에게 그렇게 믿도록 할뿐, 부작용에 관한 경고는 충분히 하지 않는다.

물론 부작용이 있다는 것을 의사들은 잘 알고 있다.

강압제의 부작용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발진, 수명(광선 과민증), 어지러움, 허약, 근육경련, 혈관 염증, 찌르는 것 같은 피부통증, 관절염, 정신장애, 의식장애, 집중력 저하, 경련, 메스꺼움, 성욕감퇴, 성적 불능(남성의 경우는 임포텐스) 등이다.

이 세상의 어떤 치료법으로도 약이 원인이 되어 생긴 성욕 감퇴와 성적 불능은 치료할 수 없다.

중대한 부작용을 알고 있으면서도 강압제를 투여하는 의사는, 혹시 자신이 고혈압이라는 것을 알 게  되었을 경우, 자신도 과연 그 약을 복용 할 것인가?  

신약(新藥)의 수상한 계략
현대의학의 불문율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신약은 부작용이 나타나기 전에 처방전을 써서 재빠르게 팔아치워라'. 관절염 환자에게 소염진통제를 처방하고 있는데 최근 몇 년 동안 소염 진통제에 의한 부작용이 신기록을 수립했다.

관절의 통증을 완화시켜야 할 이 약제는 항생제와 호르몬제와 마찬가지로 위험한 화학물질 이었으며, 우리 몸에 투여되어 셀 수 없을 정도의 사람들에게 참기 어려운 격심한 통증을 안겨 준 것이다.

'부타조리딘'이라는 약제의 사용 설명서에 씌어 있는 내용을 인용해 보겠다.

'이 약을 환자에게 투여할 경우에는 더더욱 주의해 주십시요. 사용법을 지키지 않을 시엔 중대한 부작용을 일으킬 위험이 있는 극약입니다.복용 기간에 상관없이 백혈병을 초래한 부작용의 예가 여러 차례 보고 된 바 있습니다. 환자의 대부분은 40세 이상이었습니다. 게다가 부작용으로 두통, 현기증, 혼수, 고혈압, 망막의 출혈, 간염 등 전부 92종의 예가 있다’고 씌어져 있습니다.

왜 제약회사는 이런 위험한 약을 일부러 파는 것일까? 어떤 의사가 환자에게 이런 독물을 복용 시키려는 것일까?

제약회사에 관한 한, 답은 명백하다.
부타조리딘으로 수백만 달러를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의사는 어떠한가?  추측을 할뿐이다.

약에 찌드는 아이들
텍사스의 어떤 초등학교에서 실지로 있었던 일이다. 이 초등학교에서는 뇌손상의 치료 명목으로 지급되는 정부의 보조금을 얻어내기 위하여, 적당한 진단 기준만으로 1년 동안 전교생의 40%를 `경미한 뇌 손상'으로 진단하여 보고를 올렸다.

2년 후 결국 보조금 지급은 중단 되었는데, 언어 장애를 갖는 아동이 지급 대상으로 결정되자 경미한 뇌손상을 가진 학생은 모습을 감추고 이번에는 35%의 학생이 `언어 장애'라고 진단되는 웃지 못할 일이 있었다.

수업중 어른같이 행동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아동을 주의결함, 다동성 장애라는 진단으로 낙인찍힌 어린아이들은 약에 매이는 신세가 되고 만다.

게다가 이때 복용한 약에는 심각한 부작용이 있다. 어린아이의 성장을 방해하고 고혈압, 신경과민, 불면증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약물 의존증을 초래하는 무서운 약품인 것이다.

네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포함한 저명한 과학자들로 구성된 위원회가 약에 관한 문제를 연구한 결과, 다음 두 가지 점이 판명되었다.
1. 모든 악의 근원은 임상실험을 행하고 있는 의사와 연구자들에게 있다.
2. 신약의 임상실험은 엉터리이다.

미국 식품의약청은 임상 실험을 행하고 있는 의사를 무작위로 추출하여, 그 실험의 진행을 조사하는 느닷없는 검사를 시행하였다.

그 결과가 미국 의사협회지(JAMA)1975년11월 3일에 보고 되었다.

1. 전체의 약 20%가 부정확한 분량을 사용하거나 데이터를 변조하는 등 온갖 부정행위를 행하고 있다.
2. 전체의 약 30%가 실지로는 임상 실험을 행하고 있지 않다.
3. 전체의 약 30%가 진찰 기록과 다른 데이터를 사용하고 있다.
4. 전체의 약 30%만이 임상 실험 결과의 과학성을 인정받는다.

제약회사와 의사의 유착이 부패와 약물 피해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은 명확하다.

의사가 곧잘 하는 말이 있다
 
"환자에게 약에 관한 설명을 일일이 하고 있자면, 아무리 시간이 많아도 모자란다." "환자가 부작용에 관하여 모두 알아 버린다면, 약을 절대로 복용하지 않게 된다.”

의사가 약에 연연하는 이유
일반적으로 의사가 약물요법에 의지하는 것은 경제적 효율성을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되고 있다.

진찰하는 도중에 영양상태, 근래의 운동상황, 직업, 정신 상태까지 일일이 질문하고 있으면 받을 수 있는 환자의 수가 확실하게 한정되어진다.

그에 비해 약물요법은 어떤가?  처방하나로 손쉽게 진찰을 소화해낼 수가 있다.

그리고 가능한 고가의 약을 선호하는 이유는 투약에 의한 `즉석요법'이 의사자신에게도 돈을 벌게 해주고 약제사의 주머니도 두둑하게 만들어주며, 제약회사의 이윤도 높여준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의사는 식생활의 중요성을 처음부터 무시하며, 이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의사는 이상한 사람이나 돌팔이 의사로 매도하고 만다.

한편 동양의학에서는 음식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여, 일찍부터 그 지혜를 건강을 위해 활용 해왔다.

부작용 없는 약이 있을까?
해열진통제인 아스피린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약은 그 약리 작용의 전부가 해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판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너무 오랫동안 가정용 상비약으로 복용되어 왔기 때문에, 아스피린이 부작용이 있는 위험한 약이라는 주장이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다.

위(胃)의 내출혈이라는 비교적 자주 일어나는 부작용을 비롯하여, 출산전 72시간 이내에 임산부가 이 약을 복용하면 신생아의 두피 내부에 출혈이 일어날 위험성조차 있다.

약의 작용과 부작용
현대에는 한 번에 여러 종류의 약을 복용하는 다제(多劑) 병용요법이 많아졌다.

함께 복용하는 것에 따르는 위험성(약물의 상호작용)은 다음과 같다.
어떤 약이 1회 복용으로 장기 A에 3~4%, 장기 B에 2%, 장기 C에 6%의 확률로 부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고, 그 약과 함께 복용하는 약에는 장기 D에 3%, 장기 E에 10% 확률의 부작용이 인정되었다고 하자, 그러면 이 두가지 약을 동시에 수차례 복용하면, 부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은 거의 모든 장기에서 100%에 이르게 된다.

더욱 위험한 것은 약의 `상승작용'이다.
한 가지 약의 부작용이 5%의 위험성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함께 복용함으로써 부작용의 발병률이 2배, 3배, 4배, 5배로 증폭 되어 가는 것이다.

미국에서 기록적인 판매를 나타낸 정신 안정제(항불안제) 바륨이다.

이 약의 의사용 설명서를 보면 적응증과 부작용이 거의 같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1. 적응증: 불안, 피로, 우울 상태, 격한 감정의 동요, 떨림, 환각, 골격근의 경련
2. 부작용: 불안, 피로, 우울 상태, 격한 흥분 상태, 떨림, 환각, 근육의 경련

약과 사이좋게 지내기 전에 약의 작용을 감시하는 것은 환자의 몫이다.

사소하다고 생각되는 부작용이라도, 부작용이라고 느끼면 곧 의사에게 연락한다.
부작용이 발견되면 복용을 중지해야한다는 것을 의사들은 알지 못한다.
환자가 부작용을 호소하거나 특정의 약을 거부하면, 의사는 다른 약을 처방하는 경우가 종종있다.
그러나 다른 것은 이름뿐, 주된 작용은 같으므로 철저한 주의가 필요하다.

의사가 이러한 처치를 하는 것은 약에 대해 거의 모르고 있든가, 환자를 속이고 있든가, 둘 중 하나인 것이다.

약의 피해로부터 아이들을 지키려면
어린아이의 행동이 병적인 증상을 나타낸다면 `화인 골드식 식사법'을 시도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효과가 입증된 식사법으로, 제창자인 벤 화인골드 박사는 카이저 재단의 알레르기 진료소의 연구원이자 소아과 의사이다.

박사의 식사법은 합성 착색료 등의 합성 첨가물과 일부 가공식품을 일체 먹지 않는 것으로, 그들 식품이 포함하고 있는 어떤 물질이 특히 과민 체질의 어린아이에게 자극을 준다는 판단에 기초하고 있다.

이는 이치에 맞는 생각이지만, 약물요법의 신봉자들로부터 심한 공격을 받고 있다.

주의 결함, 다동성 장애로 판정받은 어린아이를 약물 남용으로부터 지키는 방법은 의사와 떨어뜨려놓는 것밖에 없다.

의사라고 하는 사람들이란 처음에는 부모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학교 선생님과 상담하여 환경을 바꾸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라고 말하지만 종국에는 반드시 약물요법을 권해오기 때문이다.

상식을 저버리는 의사들의 논리
약물요법을 싫어하는 고혈압 환자에게는 우선 운동요법으로 체중을 줄이라고 할지 모르나, 그것이 의사의 본심은 아니다. 두가지 이유 때문이다.

우선 의사들이 운동요법 등의 효과를 절반은 믿고 있지 않고 있다는 사실, 또 하나는 영양이라든가 생활습관의 개선에 관해서 환자에게 조언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을 갖추고 있지 않다는 사실 때문이다.

정확한 지식을 지니고 있는 의사도 없지는 않으나, 50명에 1명 정도에 불과하다.

환자의 입장에서 보면 약을 사용하지 않고 치료하기를 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의사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당치도 않은 요구인 것이다.

수술 도중에 환자의 배안에서 이전의 수술에서 잃어 버렸던 거즈가 발견되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환자가 사망한 경우를 생각해보자. 일반 상식으로는, 환자의 가족에게 그 사실을 먼저 알리는 게 순서이다.

그러나 외과 의사는 수술에 참가한 전원에게 "이 일은 누구에게도 말해서는 안된다"고 입조심을 명한다. 이 명령을 무시한 간호사가 유족에게 진상을 전한다면, 그 간호사는 해고 될 것이다.


의사가 메스를 잡을 때

의미 없는 수술이라니
기적이라고까지 칭찬받던 페니실린이나 코티손이 약의 남용이라는 의료를 탄생시켰으며, 살아 있는 신체를 메스로 갈라 벌이는 만행이 매년 수백만회나 연중행사처럼 행해지고 있다.

미국 의회 소위원회가 제출한 자료에는, 미국내에서 행해진 수술실태가 다음과 같이 보고되고 있다.

"매년 240만 회 이상이나 필요도 없는 수술이 시행되고 있으며, 그 때문에 40억 달러 이상이 낭비되고 있다. 수술 중 수술 후에 사망한 연간 25만 명에 다다르는 환자 중, 5%에 해당하는 1만2000명 이상의 사망자는 불필요한 수술의 희생자이다"

독립 기관인 건강조사 그룹의 조사에 의하면, 필요하지 않은 수술이 연간 300만회 이상이나 시행되고 있으며, 그 수는 전체 수술의 11~30%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수술을 권장받은 환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연구에 의하면, 그 대부분에게서 수술의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았을 뿐더러 조사대상이 된 환자 중 반수가 원래 의료처치 그 자체가 불필요했던 것으로 판명되었다.

수술로 절제된 조직을 조사하는 위원회가 결성되자, 그 결과 놀랄 만한 통계가 발표되었다.

어떤 병원에서 위원회가 결성되기 전 해에 262차례의 충수 적출 수술(맹장수술)이 행해졌으나 그 다음해에는 78회로 감소했고 불과 몇 년 만에 62회까지 격감했다.

게다가 빈번하게 행해지고 있는 암수술이나 관상동맥 바이패스 수술, 자궁 적출수술 등은 조사 대상에 넣지 않았다.

필요도 없는 수술의 피해를 제일 많이 받고 있는 것은 어린아이들의 편도(편도선)적출 수술이다.
그러나 그 유효성은 한번도 증명된 예가 없다.

여성의 자궁적출 수술과 제왕절개 수술은 불필요한 수술 중에 하나다.
이대로 간다면 미국 여성의 반 정도가 65세쯤이면 자궁을 잃어 버릴 것이다.

뉴욕 시내의 여섯 개 병원에서 행해진 43%의 수술을 조사한 결과, 역시 정당한 의료행위가 아니었음이 밝혀졌다.

자궁으로부터의 이상 출혈이 이 수술의 근거가 되고 있으나 이러한 증상에는 수술이외의 치료법도 유효하며, 원래 치료할 필요가 없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의사는 어떻게 하여 출산에 관계할 수 있었던 것일까
중세 유럽에서 의학의 주류는 약으로 치료하는 내과로 수술이 의사의 영역 이라는 인식은 일반적으로 희박했다.
 
수술은 이발사가 가위와 면도칼을 메스와 면도칼로 바꾸어 들고, 지금 말하는 외과 의사의 일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의사가 분만에 개입하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16세기 영국의 악명 높았던 이발소 외과의 첸 바렌 형제는 분만실에 항상 커다란 나무상자를 갖춰놓고 그 안에 커다란 핀셋으로 태아를 끄집어내었다.

이를 계기로 진통과 분만을 수술대상으로 취급하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은 당연한 것처럼 되어 있는 회음절개를 의사들은 "수술로 회음부를 절개 해두면, 자연히 발생할 수 있는 회음열상보다 상처자국이 똑바르기 때문에 빨리 낫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분만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부터 지도를 받으며, 정신적, 육체적으로 분만 준비를 완벽하게 갖춘다면, 회음에 열상이 생기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의 출산 신생아가 산도를 통과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어떤지는 상관없이 산부인과 의사 본인의 사정이 우선되어 진통 촉진제가 투여되는 것이다.

태아는 아직 나갈 준비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모니터에 이상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데도, 결국 그것을 이유로 질을 통한 자연 분만을 포기하고 제왕절개로 바꾸는 것이다.

유도 분만은 미숙아 출산에 동반하는 폐결핵, 발육불량, 육체적 장애, 지적장애등의 발병률을 높인다.
집중치료실에 수용되어 있는 신생아의 4%는 유도 분만에 의해 출생한 아기들이다.

미숙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이들은 초자막증(히아린막증)이라고 하는 호흡긴박을 동반한 중증의 폐 장애가 일어날 위험이 항시 붙어 다닌다.
이것이 때로 신생아의 생명을 빼앗을 수도 있는 병으로, 그 적절한 치료법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자연출산에서는 태아가 산도를 지나는 동안 자궁의 수축작용에 의해 흉부와 폐를 조여주게 되고, 그리하여 폐에 고여있던 체액과 분비물은 기관지를 통해 입으로 나가게 된다.
그러나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기의 경우, 이러한 일련의 경과가 생략되어 버리고 만다.

의사의 사정에 따라 행해지는 수술
수술은 환자의 증상을 개선하고, 병을 제거한다는 지극히 건전한 목적에 입각해서 행해져야 한다.
그러나 실지로는, 의과 대학생의 중요하고 귀중한 교재로서, 인체를 사용한 여러 가지 실험을 할 수 있다는 숨겨진 목적이 있다.

일리노이 주 정신보건국 소아과 상급 고문이었을 때, 나는 심장에 장애를 가진 다운증 어린이들에게 행해지고 있던 수술을 중지 시켰다. 그 수술은 뇌에 산소를 `원활'하게 공급한다는 이유로 시행되고 있었으나, 본래의 목적은 의과 대학생에게 심장 수술의 실험 대상을 원활하게 공급한다는데 있었다.

그 증거로, 다운증 어린아이들이 그 수술을 받은 뒤에도 전혀 차도가 없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집도하는 의사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 수술은 다운증 어린아이들을 사망에 이르게 할 정도의 치명적인 것이었다.

수술로부터 내 몸을 지키려면
요즈음엔 수술이 지나치게 많이 행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치의에게 권유받은 수술이라도 실은 불필요한 수술일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수술밖에 치료법이 없다"고 의사가 말했을 때는 특히 위험하다.

그 판단이 틀렸을 경우가 많으며, 수술이 치료법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틀렸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어쩌면 자신의 몸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수집한 정보, 그리고 의견이나 감정을 의사에게 확실하게 말하라.

의사의 반응으로부터 무언가를 느끼고 알 게 될 것이다.

또한 친구, 이웃, 가족들 중에서 지혜를 빌려줄 사람을 찾아내고, 그 사람들에게서도 들어보는 것이 좋다.
이러한 의견을 들은 후에 수술은 필요 없다 받지 않겠다는 판단이 서면, 곧 의사와 인연을 끊는 것이 좋다.


병원에 있으면 병이 생긴다.

왜 아이들은 병원을 싫어할까
어린아이도 노골적으로 병원을 싫어하고 그 기분을 숨기지 않는다.
"병원은 무서워서 가고 싶지 않아". 어린아이의 날카로운 직감력은 병원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것이다.

의사를 두려워하는 어린아이들의 심리에서 무엇인가 배울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왜 그런지 물어 보아도, 어린아이들은 그것을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것은 어른도 마찬가지다.

어른도 병원에 대하여 뭔지 모를 공포를 느끼고 있으나, 그것을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하지 못한다. 게다가 어른은 자신이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병원은 병원균 투성이
병원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세균이 무수하게 웅성대고 있다. 병원의 먼지나 티끌은 보통의 것이 아니다.

우선 생활 폐기물 - 조리장에서 버려진 고기, 생선, 야채, 남은 밥, 먼지, 몸의 때, 배설물, 담, 타액, 그리고 의료 폐기물 - 수술이나 해부에서 적출된 태반이나 장기, 절단된 수족, 실험동물의 사체, 사용하고 버린 기저귀나 종이들, 마스크, 소독 솜, 위생 냅킨, 깁스, 주사기, 붕대, 거즈 등 하나의 건물에서 이 정도로 많은 종류의 폐기물이 대량으로 쏟아져 나오는 곳은, 병원이외에는 아마 없을 것이다.

워싱턴 공립병원에서 환자를 운반하는 들 것이 해부용 유체 운반에도 쓰여지고 있다는 사실이 발각되고 말았다. 이것만으로도 놀랄 일인데, 들 것에는 해부시의 여러 가지 잔해물이 처리되지 않은 채 들러붙어 있었다.

구급 처치실이나 병상, 사체 보관소로부터는 장기나 배설물이 나왔으며, 먼지가 쌓여 있던 병실에서는 배설물이 들러붙은 의복과 주사바늘이 발견되었다.

청결주의의 함정
병원에서는 내성균(약을 반복하여 사용할 경우, 그 약에 대해 저항력을 갖게 된 세균 등의 병원체)이 발생하고 있다.
항생제를 수프처럼 마시게 하고 있는 현대의 병원처럼 내성균의 번식에 이상적인 환경은 아마 없을 것이다.
세균 중에는 항생제를 먹이로 삼을 정도의 순응성을 갖춘 것도 있는 실정이다.

병원의 직원은 `걸어다니는 세균 배양 그릇'이라고 불러 마땅한 존재들이다.
의사들이 손을 씻는 것은 수술 전 뿐으로, 그것도 의례적인 행위에 불과하며 그 외에는 거의 씻으려고 하지 않는다.

의사는 압설자(혀를 누르는 주걱 모양의 기구)나 주사기를 아무렇게나 취급하여, 환자의 몸에 병균이 옮겨가게 한다
마스크는 10분만 사용하면 오염되어 세균을 제거하기는 커녕 세균을 끌어 모으는 역할을 한다.

감염을 일으키는 병원내 물질
종합적으로 보면, 병원내의 감염은 20명당 1명꼴로 발생하고 있다.
원인의 반수는 소변배뇨관이나 정맥 주사장치 등의 오염된 의료기구에 의한 것이다.
미국에서는 병원 내 감염에 의한 사망 환자가 매년 상당한 수에 이르고 있다.

수술로 입원한 경우는 메스로 갈라 벌려진 것에 더하여 병원 내 감염의 위험이 있다.
수술 후에는 세균에 대한 저항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전염병이 병원내에 순식간에 퍼져, 직원도 환자도 모두 피난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예를 나는 수차례 보아왔다. 이런 경우, 소아과 병동과 신생아실이 가장 큰 피해를 받게 된다.

병원은 위험해
병원에서 혼란이란 일상적인 일이다. 환자의 다리를 잘못 수술하거나, 다른 약을 환자에게 투여하거나, 식사요법 중인 환자의 식사를 잘못 제공하는 등 의료기구나 의약품 취급에 있어서만이 아니라 환자를 취급하는 데 있어서도 위험한 사고가 자주 일어난다.

몇 년전 여동생이 탈장 수술 때문에 병원에 입원했다.
수술은 오전 11시 예정이었다. 오전 9시30분에 병실에 갔는데 동생이 보이지 않았다.
어리둥절해진 나는 수술실로 향했고, 예상대로 동생은 거기에 있었다. 기가 막히게도 여동생은 자궁을 들어내려는 참이었다.

병원에서는 대형 사고도 일어나기 쉽다.

펜실베니아 주 교외의 어떤 병원에서는 구급 처치실에 가스관을 설치할 때, 공사를 맡은 업자가 산소와 아산화질소의 라벨을 바꾸어 붙여놓았다.

이러한 실수가 발견될 때까지 반년 간 아산화질소(외과용 마취제)를 공급 받아야 할 환자들은 산소를, 산소를 공급받아야 할 환자들은 아산화질소를 흡입해야 했다.
병원은 5명의 사망자에 관해서만 과실을 인정했다.

영양 실조에 걸리는 환자들
보스턴의 어떤 공립병원에서 병원 영양 실태에 관한 본격적인 조사를 벌인 적이 있다.
대상은 이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전체 입원 환자들이었다.

조사결과, 전체의 반수에 해당하는 환자에게서 단백질과 칼로리 섭취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그 반수의 환자가 극도의 영양실조에 빠져 있다는 사실이 판명되었다.

이것은 영양실조가 원인이 되어 환자의 회복이 늦어지고, 그 결과 입원이 필요이상으로 길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후에 행해졌던 다른 많은 조사에서도, 영국이나 미국의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환자의 25~50% 가까이가 영양실조인 것으로 판명되었던 것이다.
병원에서 사망한 고령자의 주된 사망 원인의 하나로 영양실조를 들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병원에 있으면 병이 생긴다
환자는 병원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나오는 순간(혹은 실려나오는 순간)까지, 살아 있는 시체가 된 듯한 기분에 빠져든다.

고통에 신음하며 병상에 누워있는 환자들의 비참한 얼굴과 그것을 보고 있는 환자들의 음울한 얼굴을 눈앞에서 보지 않으면 안된다.

여러 가지 정신적인 중압을 받으면, 환자는 자신의 건강관리를 자신이 행하겠다는 용기를 잃어버리고 만다.
병원은 환자에게 고립감, 소외감, 상실감, 우울감을 맛보게 하여, 결국엔 자신들의 온갖 요구에 따르게 한다.

대학병원에 가면 정말 병을 고칠 수 있을까
가장좋은 병원은 대학병원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 의과 대학생들이 공부하고 의료진도 많다.

게다가 연구는 앞서가고 있다는 생각을 갖던 시대는 지나갔다.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생물수업에 사용되는 개구리나 가재, 돼지의 태아같은 신세가 되고 싶지 않으면 대학병원이 최고라는 믿음은 버리는 편이 좋다.

병원내 감염의 발생률이 가장 높은 곳이 대학병원이며, 임상 검사나 약제 제조의 실수도 많다. 수술의 적합여부를 실증하기 위해 소위 치료라고 칭하는 실험에 까지 사용된다.

연구 대상이 되는 것이 환자의 뻔한 종말인 것이다.

대학병원에 관한 잘못된 상식이 하나 더 있다.
난치병, 기이한 병의 중증 환자는 대학병원에 가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대학 병원이라는 곳은 의과 대학생이나 연수의에게 정통한 치료법이 아닌 유효한 치료법을 구한다면, 비교적 소규모의 병원이나 현대의학이라는 종교를 신봉하지 않는 나라의 병원에 가야만 한다.

병원에 맞서 환자를 돌보는 법
옆에서 돌보는 사람은 간호사나 의사가 검사를 이유로 식사를 주지 않거나 중단시킬 경우, 환자 대신 항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다른 환자의 약과 혹시 바뀔 수 있기 때문에 환자가 복용하는 약의 관리도 돌보아 주어야하고 수술순서를 확인하고 환자가 있는 장소를 파악해두며, 검사를 할 때에는 환자와 함께 행동 하도록 한다.

방사선 검사를 할 때에는 검사실까지 동행하고, 환자가 혼자서 적적하게 기다리는 일이 없도록 신경을 쓰며, 적절한 검사인지 아닌지를 확인한다.

그 외에 치료의 방침과 경과에 관해서 의사에게 질문하고, 간호사에게는 정맥주사액의 상태를 확인해 달라고 하고, 감염증 환자와 같은 병실에 있지 않도록 배려해 주기를 청한다.


의사가 가정에 관계할 때

출산에 개입한 산부인과 의사
임산부를 밀실로 데리고 들어가면, 그곳은 산부인과 의사의 진지로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임신부는 우선 질 주위의 음모를 제거 당한다.
1930년대 이후 출산에 앞서 행해지는 이런 행위가 박테리아균의 발생을 감소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증가시킨다.

분만실의 침대에 누워 좌우의 발걸이에 다리를 올려놓고 다리를 크게 벌린다.
이러한 체위는 산부인과 의사의 욕구를 채우기 위한 의미밖에 없어 보인다.

마취로 임산부는 감각과 기억을 잃어버리고, 아기를 낳는다는 실감마저 잃는다.
산부인과 의사가 임신부에게 마취를 시키는 것은 도마 위의 잉어에게 칼을 대기위한 것이다.

자연분만이 아닌 아기와 엄마 사이에는 애정이 싹트기 어려우며, 그 때문에 엄마에 의한 학대가 나타나기 쉽다.

아기에게서 모유를 빼앗아 가는 사람
엄마에게는 모유라고 하는 은혜가 충분히 주어져 있으나 소아과의사는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한다.
따뜻한 물로 섞어 흔들어야만 하는 우유는 칼로리만 지나치게 높고 영양가는 열악한 인스턴트 식품의 원조이다.
우유는 어디까지나 송아지를 위한 모유이다. 사람의 아기는 사람의 모유로 기르는 것이 생물학적인 법칙이다.

소와 사람의 모유는 조직의 성질과 성분이 서로 다르다.
같은 포유류라고 해도 - 예를 들어 송아지에게 돼지의 젖을 먹였더니, 송아지가 병에 걸려 죽고 말았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모유의 성질은 다른 것이다.

우유로 길러진 아기가 걸릴 가능성이 높은 병명을 열거하자면, 설사, 배앓이(발작성의 격심한 고통), 위장의 감염증, 호흡기계의 감염증, 뇌막염(뇌와 척수를 싸고 있는 막의 염증으로 고열, 두통, 구토, 경련, 의식 장애 등의 증상을 나타내며 사망률이 높다. 가령 나았다 하더라도 장애가 남을 위험이 있다), 천식, 발진, 알레르기, 폐렴, 기관지염, 비만, 고혈압, 동맥경화, 피부염, 발육장애, 테타니(긴장성 근육경련), 갑상선기능 저하증, 조직의 국부적인 죽음을 일으키는 전 장기의 염증, 젖먹이 유아의 돌연사(SIDS)등이다.

소아과식 이중사고
소아과에서는 모유를 권하면서도 엄마들에게 가루분유의 무료샘플을 건넨다.
 
모유만으로는 영양이 부족하다며, 우유의 혼합 영양을 권하면서 수유 용품 일체를 내미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소아과 의사는 모유를 먹임으로써, 갓난아기가 모체로부터 면역 능력을 전해 받아 여러가지 감염증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다는 사실은 가르쳐 주지 않는다.

갓난아기가 유두를 빨 때 엄마와 아기의 상호작용이 이루어지고, 젖을 빨림으로써 엄마의 체내에서는 프로락틴이나 옥시토신이 분비된다.

이들 호르몬에는 산후의 출혈과 불쾌감을 완화시켜주고, 자궁을 빨리 수축시켜서 본래의 상태로 되돌릴 뿐만 아니라, 엄마가 된 기쁨을 실감케 하는 작용이 있다.

육아 노이로제에 걸리는 엄마들
갓난아기를 안고 퇴원 시 소아과 의사와 보육실 직원들은 이런 육아지도를  해준다.

"이것만은 잊지 않도록 하세요. 혹시 아기가 울기 시작하면, 울고 싶은 만큼 울 게 내 버려두세요. 아기는 울어야 폐가 튼튼해집니다. 그리고 엄마는 무언가 요구하는 몸짓을 해도, 울면 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이런 지도는 아기의 본능뿐만 아니라 모성 본능까지 무시한 폭언이다.
아기가 우는 것은 무언가 원하기 때문이다. 의사는 그렇게도 자연의 섭리가 틀렸다고 말하고 싶은 것인가?


죽음을 위한 의학
 
의사가 일을 하지 않으면 환자가 준다는데
현대의학이라는 종교가 얼마나 맹위를 떨치고 있는가는, 의사단체가 파업에 돌입할 때에 확실하게 나타난다.

의사가 일을 그만두면 세상이 평온해지는 것이다.

1967년 남미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현 산타페데보고타)에서 의사가 52일간 파업에 돌입하여, 구급 의료 이외에는 일체 치료를 행하지 않았다.

현지의 신문은 파업이 미치는 기묘한 '부작용'을 보고했다.
파업기간 중, 사망률이 어쩐 일인지 35%나 격감했던 것이다.

같은 해,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에서도 의사들이 파업을 결행했다.
그 때도 사망률이 18%나 감소했다.

파업이 끝나고 의료기기가 다시 가동을 시작하자, 사망률은 파업 이전과 같은 수준으로 돌아 왔다.

현대의학은 생명에는 관심이 없다
현대의학에서 사람의 죽음을 담당하는 것은 언제나 성장 산업이다.

의학 잡지를 펼치면 반드시 눈에 들어오는 것은 피임, 중절, 불임수술, 유전, 카운셀링, 유전자 진단, 양수 검사, 인구의 제로성장, 존엄사, 삶의 질, 안락사 등에 관한 최신 보고 들이다.

죽음을 장려하는 의사들
의사를 포함한 죽음의 상인들은 왜 암환자와 상담을 '가능한한 가족이 없는 곳에서 행한다'는 것일까?

나는 그 이유를 확실히 알고 있다.
가족의 목적은 환자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이므로, 그 가족의 영향으로 환자가 죽음으로부터 멀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미국 의사에게는 이러한 가족의 존재가 사악한 마귀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혹시 말기 환자가 자신의 죽음에 대해 깨닫지 못한 채 죽음과 직면하게 되면, 생에 대해 체념한 상태에서도 죽음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병이 길어져 고통도 길어지게 된다."

당신은 이제 희망이 없고 죽음을 수용하라고 이야기 하는 의사는 환자에게 있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의사가 '이 병에는 아직까지 효과적인 치료법이 없다'고 환자에게 솔직히 인정하고 '현대의학이외의 대체요법으로 자연 치유력을 살린다면,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다'라고 정직하게 고백해 버리면, 환자는 더 이상 의사를 신뢰하지 않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늙는 것은 병이 아니다
의사는 병에 걸린 노인들을 방해가 되지 않는 장소에 집어넣어 죽어가도록 격려하고 있다.

그것은 길고 완만한 죽음의 판결을 내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나이를 먹었기 때문에 생기는 병에 대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어요" 라는 의사의 말은 나이가 들어 생기는 병에 대해서는 숙명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노인들도 그것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고, 그들의 주문에 의해 결국 그대로 되어간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몸에 나타나는 문제는 사전에 얼마든지 대비 할 수 있고 또 개선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의사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완화처치라는 명목하에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는 진통제를 다량으로 투여 한다.


의사라는 사람들의 정체

어처구니 없는 성직자들

미국 의사협회나 그 외의 단체에 소속된 의사들은 "우리들은 환자에 대하여 특별한 힘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나는 언제나 웃으며 이렇게 묻는다.
"의사가 옷을 벗으라고 하면, 상대는 순순히 벗는다. 이러한 힘을 가진 인간이 의사 외에 누가 있겠는가."

세상 사람들은 의사를 성직자로 우러러 받들고 생명까지 맡겨 버린다. 상원 보건문제소위원회의 공청회에서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 의원은 젊은 시절 스키를 타다 어깨에  상처를 입었을 때의 체험을 이야기 했다.

그의 부친은 일류 전문의를 4명이나 불러 자식을 진찰하게 했고, 해야 할 처치를 물어보았다.
3명의 의사가 수술을 권유했으나, 1명의 의사만은 달랐다. 그 의사의 의견에 따라 수술을 받지 않기로 했다.
상처는 결국 치료되었다

속임수와 날조로 점철된 의학 연구
약물이 원인이 되어 생기는 암과 기형아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케이스웨스턴리저브 대학의 새뮤얼 엡스타인 박사는, 1972년 미 상원 영양 문제특별위원회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미국 과학 아카데미는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조직이다. 식품첨가물과 같은 중요한 문제를 결정할 토론회에 규제대상에 해당하는 업계 대표자나 그 입김이 작용하는 사람들이 참여하는 경우가 실지로 많다. 미국에서는 돈만 있으면 자기들에게 유리한 데이터를 얼마든지 입수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 식품의약청이 세부적으로 검사를 했을 때, 사용량과 데이터의 조작, 날조 등이 반복되어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밝혀졌다.

이러한 부정행위의 배경에는 제약회사에 고용된 의사들이 있다.

그들은 식품의약국에 제출하는 연구보고서를 통해 자신들이 속해있는 제약회사의 약품이 신약 인가 기준에 부합된다고 거짓 증언을 하는 것이다.

연구비 경쟁이 치열해지다보니 의사들이 오로지 연구비 획득만을 목적으로 연구보고를 작성하는 경우도 자주 있는 형편이다.

의사는 실패를 관(棺)속에 묻는다
태아 감시장치가 이상을 나타내면, 의사는 생사가 걸린 상황이라며, 제왕절개를 행한다.
그러나, 정말로 위험한 것은 의사가 제왕절개를 시작하려고 하는 바로 그 순간이다.

산모와  태아가 모두 살면 자신은 영웅, 둘 중 한쪽 혹은 양쪽이 생명을 잃으면 그것은 `생사가 걸린 상황' 이기 때문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 이것은 의사가 책임회피를 위해 사용하는 당치않은 억지이론이다.

보육기의 미숙아가 실명하는 경우가 빈번해져도 "치료하지 않으면 죽기 때문에, 그것에 비하면 실명정도는 운이 좋은 것이다."고 발뺌하며 "체중이 1000g이 되지 않는 미숙아는 전원이 실명하였지만 그래도 치료를 하지 않으면 죽게 됩니다"라고 대답한다.

이 기묘한 이론은 당뇨로 인한 실명에도 악용된다.
실명하는 환자가 많은 것은 "당뇨병 환자의 생명을 구하고, 생명을 연장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라고 의사는 말하는 것이다.


예방의학이 예방하는 것

예방접종의 허와 실
전염병 왁친 접종, 여러 가지 예방접종이 그 전형으로서, 접종이 원인이 되어 사망하는 사례를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시카고에서 디프테리아가 크게 유행하여 16명의 희생자가 생긴 일이 있었다.
시카고 공중 위생당국에 의하면, 그 당시 희생자 16명 중 4명이 디프테리아 예방접종을 받았으며 그 4명에게는 완전한 면역이 있었다고 한다.

백일해 왁친 접종을 받은 어린아이들의 반수 정도에 유효성이 인정은 되었으나 고열, 경련, 경풍뇌증 (고열 때문에 발생하는 의식 장애)등의 부작용을 야기할 확률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높게 나타났다.

홍역에 걸리면 실명한다고 믿지만, 실지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수명(눈이 부셔 강한 빛을 보지 못하는 병)이라는 증상은 단지 빛에 대한 감수성이 강해지는 것뿐이므로, 창문에 블라인드를 치는 처치를 하면 효과를 볼 수 있다.

홍역 왁친은 홍역뇌염이라는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나, 홍역을 몇십년 씩이나 치료한 경험이 있는 의사라면 이 전염병이 보통 어린아이에게서 1만분의 1이나 10만분의 1정도의 지극히 낮은 발병률로 나타난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왁친에는 100만분의 1의 확률로 뇌증이 발병하거나 그보다 높은 확률로 운동 실조증(수족의 근육이상), 지적 장애, 정신박약, 정신지체, 주의력결함, 다동성 장애, 정서불안, 무균성 뇌막염, 간질, 경련, 반신불수와 같은 신경계에 치명적일지도 모르는 신경성 장애 등의 부작용이 나타난다.

때를 놓쳤습니다
환자에게 죄를 전가하기 위한 방법으로 의사는 이런 말을 곧잘 한다.

"당신의 병은 생활습관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원인은 조기발견, 조기치료를 철저히 하지 않은데 있습니다. 병원에 너무 늦게 왔습니다."

예방의학이라는 가면
사람을 죽음에 몰아넣는 병의 대부분은 육체적인 문제에만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다.
정치나 경제적인 측면, 또는 지역이나 가정, 게다가 개인의 심리적인 측면에도 병의 원인이 잠복해있다.

따라서 참된 예방의학이라면, 건강문제를 논할 때 위의 원인들을 검토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의사는 병은 어디까지나 의료의 문제라고 인식하고 치료를 받으면 고칠 수 있다고 장담한다.


새로운 의학을 위하여

생명의 핵심을 보는 시각
우선 해야 할 일은 집에서 아이를 낳고, 모유로 키우고, 아이에게 예방접종을 시키지 않고, 직장이나 학교의 건강 검진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리고 왜 수술을 권하는지 의사에게 물으며, 약을 쓰지 않고 자기와 자기 아이를 치료하고 싶다고 확실히 의사 표시를 하는 것이다.

생명을 축복하는 의학
생물학이야말로 새로운 의학의 윤리와 가치관의 핵이 되는 것이다.

새로운 의학은 무릇 살아있는 모든 것을 축복한다.
 
임신중에 체중 증가를 제한하는 일, 경구 피임약의 사용이 임신보다 안전하다고 잘못알고 자유롭게 복용하는 일, 정기 건강 검진을 매년 받는 것, 영양식에 대해 무지하든지 아니면 잘못된 사고 방식을 갖는 것, 어린아이에게 예방접종을 정기적으로 받게 하는 것 등은 현대의학이라는 종교의 미덕으로 장려해온 죄악이다.

새로운 의학이 이러한 것들을 `죄'라고 경고하는 이유는 생명을 위태롭게 할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몸에 담겨 있는 생명은 적절한 생명구조를 가질 수 있는 조건만 갖추면 자연 치유력이라는 훌륭한 복원 능력을 발휘한다.

따라서 새로운 의학이 사람들로 하여금 앞에서 서술한 것들을 `죄'라고 인식하게 하는 것은 자연 치유력을 발휘하는 조건을 갖추게 하기 위해서이다.

생명의 중개자로서의 의사
현대의학이 의료 기기에 의존하여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형식만의 의학이라면, 새로운 의학은 인간에게 희망을 주는 의학이다.

새로운 의사가 목표하는 것은, 최후에는 자신의 일을 없애 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의사에게 의존하는 것을 하루하루 줄여나가도록 지도한다.

마음과 몸의 관리는 개인들에게 주어진 책임이다.
그중에서도 식생활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탄수화물이나 단백질, 식물성 섬유, 비타민 등 영양의 문제만을 따질 게 아니라 순수한 자연의 음식을 먹고, 순수한 자연의 물을 마시는 것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과 조화하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떠한 식생활이 자기에게 가장 좋은지를 충분히 알아둘 필요가 있다.

식생활과 같이 `영양의 균형'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올바른 `영양 보급'을 할 수 있는지 여부는 살아가는 이상 건강의 실현에 있어 절실한 문제이다.

새로운 의학의 씨앗
어떻게 이 혁명을 시작하면 좋을까요? 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오늘부터 각자 집에서 시작하면 된다.

친구 만들기는 중요한 활동이다.
의견이 맞는 사람을 찾고 찾게 되면 더욱 친하게 지내고, 그럼으로써, 친구의 범위를 넓혀가라.

주변의 가까운 사람이 영향을 받았을 때. 내 가족과 친구가 건강은 우연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생활 습관을 개선함으로써 필연적으로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그 기쁨을 표현했을  때, 내 가족들이 집에서 출산하고 모유 육아를 하고 있을 때, 주위 사람들이 의사의 수술지시를 몇 번이나 거절하며 곰곰이 따져 본 끝에 마침내 쓸데없는 수술을 피했을 뿐만 아니라, 주사조차 놓지 않고 치료 해주는 의사를 찾아서 치료해 나갈 때 승리를 거두어 가고 있음을 느낄 것이다.

내 가족도 포함하여 이러한 친구들과 그 가족들은, 자신의 건강은 자신이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인식하고 있다.

내일에 대한 불안 없이, 만족한 기분으로 오늘을 살고 있다.

새로운 의학을 만들어갈 의사들
현대의학의 의학부가 전문의를 양성하는 교육을 추진하는 것에 반해, 여기서는 일반의의 중요성이 강조 된다.
새로운 의학의 의과 대학생은 의사의 강의뿐만이 아닌 정골요법, 자연요법의 전문가나 영양사의 강의도 받아야 한다.
이러한 대체요법과 바른 영양학을 새로운 의사들과 일반인들이 탁상공론이 아닌, 자신의 몸으로 체득해 가는 것이다.


의학박사가 솔직히 고백하는 현대의학의 맹점

대부분의 사람들은 첨단 의료란 멋진 것이고, 그 기술을 가진 명의에게 치료받으면 건강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대단한 착각이다. 의료 행위의 당사자인 의사들이야말로 건강을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현대의학에서 행하는 치료는 효과가 없는 경우가 많다. 효과는커녕 치료받은 뒤에 오히려 위험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게다가 병이 없었던 환자라도, 충분히 검토하지도 않은 채 치료부터 하려 들기 때문에 그 위험성은 점점 커진다. 현대의학을 구성하는 의사, 병원, 약, 의료기구의 90퍼센트가 사라지면 현대인의 건강은 당장 좋아질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로버트 S. 멘델존  

사람은 무서운 일이 있으면 피하고, 무시하고, 도망가고, 애써 대단한 것이 아닐 거라고 치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누군가 적당한 사람을 찾아 위로받으려 한다. 환자의 이러한 성향이 결국 의사로 하여금 주도권을 쥐게 만드는 것이다. -로버트 S. 멘델존

종교란 자연 본연의 모습과 인간의 삶의 방식에 방향을 부여하여 관리할 수 있다고 믿는, 인간을 초월하는 힘에 의지하려는 행위이다. -제임스 프레이저(영국의 인류학자)

건강 검진에 확실히 동반되는 위험성을 고려하면, 의사를 멀리한 쪽이 건강할 것으로 여겨진다. -로버트 S. 멘델존

의사는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말은 믿지 말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의사는 자신의 권위를 지키려고 그렇게 말하는 것뿐이다. 병이라고 여겨지면, 바로 친구나 친척, 주변의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과 신중히 대화를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하면, 의사가 없어도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로버트 S. 멘델존

현대의학은 경증 환자에게까지 안이하게 과잉 치료를 행함으로써 오히려 중증 환자의 치료에 유효한 치료법을 무력화시켜버리는 실로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의사가 일찍이 자랑으로 여기고 있던 기적의 의료가, 이제는 다량의 약제를 함부로 투여하여 환자에게 해를 입히는 의료로 전락한 것이다. -로버트 S. 멘델존

의사가 지키고 있는 것은 환자 본인이 아니고 환자와의 신뢰관계이며, 게다가 그 관계란 환자에게 사실을 곧이곧대로 알려준다면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의사와 환자의 신뢰관계라고 하는 것은, 환자의 맹신에 의존하는 것이다. -로버트 S. 멘델존

신체의 대사를 생각하면, 먹는 음식은 입으로부터 나오는 언어와 같은 정도로 중요한 것이다. 사실, 음식이 그 사람의 성격을 좌우하는 일조차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하는 의사는 의학계에서 이단자라든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눈총을 받게 된다. 현대의학에서, 성스러운 힘을 가진 '음식'은 혈액에 실려 전신으로 순환하는 화학물질밖에는 없는 것이다. -로버트 S. 멘델존

세상 사람들은, 의학은 항상 진보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있다. 새로운 수술이 개발되어 그 효과가 입증되면, 일일이 의료에 응용되어 기적을 낳으며, 기적이 의학을 더욱 진보시킨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당치도 않은 오해이다. -로버트 S. 멘델존

돈에 대한 욕심과 무지도 무시할 수 없지만, 수술의 지나친 시행을 부르는 가장 큰 원인은 의사들의 '잘못된 신념'이다. 의사는 스스로 수술에 의의를 부여할 뿐만 아니라, 메스로 사람의 몸을 갈라 여는 것에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매력을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그 매력을 만족시킬 온갖 기회를 놓치지 않고 환자를 수술대로 불러들이는 것이다. -로버트 S. 멘델존

현대의학이라는 종교는 기성 종교의 성직자까지 신자로 바꾸어 놓는다. 기독교, 유태교, 이슬람교, 불교 등 전통적인 종교의 성직자들조차, 수술대라는 현대의학교의 성궤 위에 머물러야만 비로소 몸이 치유된다고 믿고 있다. -로버트 S. 멘델존

병원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세균이 무수하게 웅성대고 있다. 이것은 병원이 극히 비위생적인 장소라는 것을 말할 뿐만 아니라, 현대의학의 병적일 정도의 '청결 의식'이 얼마나 근거 없는 것인가를 단적으로 드러내주는 결과이기도 하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사실이다. -로버트 S. 멘델존

약의 피해에 의해 장애자가 되거나 사망하는 사고가 종종 일어나고 있다. 거기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환자의 건강을 해치는 화학약품의 사용에 있어서 의사는 어떠한 규제도 받지 않는다. 약을 사용하지 않는 의사도 드물게는 있으나, 거의 대부분의 의사는 약을 지나치게 좋아한다. 덕분에 실험실이나 청소 시설에서 사용되고 있는 독성이 강한 용제(溶劑)나 가연성 화학물질, 방사성 폐기물이 입원 환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이다. -로버트 S. 멘델존

병원에서는 가능한 방법을 총동원하여 갖가지 진단과 치료를 행하고 있으며, 입원 환자는 결국 점점 식욕을 잃어간다. 병원에서 입은 정신적 타격은 육체적인 타격과 마찬가지로 환자를 죽음에 이르도록 하는 원인 중의 하나인 것이다. -로버트 S. 멘델존

현대의학이라는 종교는 전쟁터인 병원을 편안한 '가정'이라고 사칭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라면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을 일상적으로 행하고 있다. 어떤 의식이든, 일단 그것이 당연시되어 버리면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게 된다. -로버트 S. 멘델존

현대의학은 우상숭배의 종교이다. 현대의학이 신성시하여 숭배하는 것은 환자의 생명이 아니라, 기계에 의존한 의료 행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현대의학이 자랑하는 성과는 '병든 정신과 생명을 어느 정도 구했는가'가 아니라, 얼마만큼의 의료 기기를 사용하여 얼마만큼의 이윤을 올렸는가에 지나지 않는다. -로버트 S. 멘델존

의사가 구급의료에 전념하고, 불필요한 의료 행위를 삼가는 것은 올바른 선택이다. 전부터 나는, 의사는 영원히 파업을 계속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해왔다. 의사가 의료 행위의 90퍼센트를 그만두고 구급 의료에 달려든다면, 사람들의 건강 상태는 틀림없이 개선될 것이다. -로버트 S. 멘델존

의과 대학생들이 현대의학으로 성공하고 싶으면 죽음을 장려하거나 사람의 죽음에 관해 연구하는 분야를 찾아본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빛나는 장래를 약속할 것이다. -로버트 S. 멘델존

현대의학의 악영향을 받지 않는 문화권에서는, 사람들은 나이를 먹어도 생활 능력을 유지하고 당당히 생명을 구가하고 있다. 현대의학은 누운 채로 꼼짝 못하는 노인들을 만들어내고, 연명(延命) 치료라기보다, 오히려 연병(延病) 치료라고 불러야 마땅할 처치에 의해 사람의 죽음을 연장하고, 죽음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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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에서 발견한 과학

흔히 비판적 사회의식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한의학에 친밀도가 높다고 한다. 실제로 그런 사람 중에는 단순히 수동적으로 한의학적 치료를 선호하는 것만이 아니고 직접 한의대에 들어가 한의사가 된 사람이 적지 않다. 한의학 이외에도 한의학과 뿌리를 같이 하는 단전호흡이나 여러 가지 기공 수련을 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을 두고 단순한 민족적 의식의 발로로만 해석할 수는 없다. 
 
우리가 배웠던, 그리고 지금도 현실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분명 근대 서양적 가치관이다. 이에 비해 한의학은 전근대의 동양(정확하게는 동아시아)에서 형성된 이론이며 그 동안 한의학 자체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의학의 근간이 되는 세계관과 방법론은 아직도 전근대의 동양이다. 
 
따라서 오늘날 제도권의 ‘정상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한의학을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다. 필자 자신도 한의학을 처음 접하면서 느낀 당혹감은 일반적인 상상을 넘어선 것이었다. 필자는 3대째 한의학을 업으로 하는 집안에서 태어나 다른 사람에 비해 한의학적인 분위기에 익숙했음에도 막상 들어가 본 한의학의 세계는 너무도 이질적인 것이었다. 
 
이런 차이 때문에 대부분 한의대에 들어간 학생들은 최소 1-2년의 방황기를 갖게 되고 때로는 이를 극복하지 못하여 자퇴하거나 그럭저럭 졸업을 하더라도 한의학의 진수에 다가서지 못하고 무늬만 한의사인 사람도 적지 않다. 이러한 사정을 필자는 오래 전에 이렇게 쓴 적이 있었다. 
 
나의 직업은 한의사다. 한의대가 없는 대학 출신으로는 좀 드문 직업의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경제과를 나와 한의학이라는 매우 생소한 분야를 접하면서 당혹스러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가장 먼저 부딪친 것이 그때까지는 ‘숨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생각했던’ 나의 인식 체계가, 한의학이라는 거울에 비춰지면서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대상화되어 버리고 만 것이었다. 이는 한편으로는 어색한 것이기도 하였다. 학문에서는 물론 일상생활의 모든 부분에서 자신의 인식 행위를 스스로 대상화하고 느껴야 한다는 것은 어색함을 넘어서 괴롭기까지 한 일이다. 
 
그전까지는 음양(陰陽), 오행(五行), 기, 천지인(天地人), 우주, 운기(運氣) ... 이 모든 것들이 ‘이상한 것들’로써 ‘비과학적인 어떤 것’ 아니 별다른 관심의 범주에조차 끼어들지 못했던 것이었으나 이제는 책 속에서는 물론 강의실과 진찰실에서 언제나 논의되고 이에 의해 모든 것을 판단해야 하는 것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이런 당혹감은 꽤 오래 지속되었다. 그러나 바로 그걸로 밥 벌어먹어야 한다는 비감한(!) 현실 앞에서 우선은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외우고 시험보고 나면 빨리 지우고 또 외우고 ... 그것도 서양 과학과 서양의학을 포함하여. 이런 세월이 지났다. 가뜩이나 외우는 데는 재주 없던 나에게는(그 열등감을 없애기 위하여 나는 늘 외우는 것만큼 미련한 짓도 없다고 늘 주장해 왔던 터였다) 너무도 과중한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거기에 날로 먹어만 가는 나이와 이에 비례해 늘어만 가는 주력(酒歷+酒力)은 나를 더욱 곤경에 몰아넣었다. 
 
그러나 이런 ‘이상한’ 논리들을 받아들이면서 점점 나를 당혹스럽게 한 것은 바로 그 ‘이상한’ 논리나 개념들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바로 우리의 일상생활은 아니었던가 하는 깨달음이었다. “기가 막힌다” “감기(感氣) 걸렸다” “간(肝)이 부었다” “대담(大膽)하다” “비위(脾胃)가 좋다” “간담(肝膽)이 서늘하다”는 말들은 정확히 한의학 용어이면서 동양 사상의 바탕에서 자연스럽게 생활 속에 융해되었던 말들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왜 한의학은 아니 동양 사상은 이질적인 어떤 것으로 바뀌어 버렸는가. 그 자리에 무엇이 들어와 있는가. 피클은 감칠맛이 나지만 김치는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것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치즈는 감미롭고 된장은 구린내가 나는 것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더욱 더욱 나를 혼란시킨 것은 내가 그토록 열망하던 ‘과학’이 바로 그 이상하던 한의학 속에서 발견된 것이다. 그것도 기존의 과학관을 포괄해 버리는 거대한 것으로 다가온 것이다. 이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이는 한의학으로도 난치병을 고치는 수가 있고, 양방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면도 있고 하는 따위의, 그야말로 소가 뒷걸음질치다 쥐 잡는 격으로 한의학에도 ‘어쩌다 과학’이 있다는 식의 발견과는 정반대로, 한의학을 기초로 하지 않으면 오늘의 의학은, 나아가 모든 과학은 진정한 과학에서 점점 멀어질 뿐이며 새로운 과학의 기초는 바로 한의학에서 구할 수밖에 없다는 발견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김치와 된장이 아닌 피클과 치즈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게 되었는가, 더욱 심각하게는 왜 이런 사실조차가 여태껏 아무런 반성 없이 숨쉬듯 당연한 사실로 받아 들여져야 했는가 하는 충격이 나를 사로잡았다. 여기에는 ‘제국주의의 논리’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이는 곧 주체의 문제이다.

지금 ‘집’이어야 할 우리의 집은 ‘집’이 아니라 ‘한옥’이라 해야 하며 옷도 ‘한복’이고 의학도 ‘한의학’이다. 서양의학을 일상생활 속에서 ‘양의학’이라고 부르는 것이 너무도 불편해져 버린 현재의 기원은 제국주의에 있지만, 이를 생명의 양식으로 생활화한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인 것이다. 
 
나는 지금 우리 것이 최고라는 고루한 국수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우리 것도 좋으니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자는 저급한 절충주의를 말하는 것도 아니다. 이제는 과학을 찾아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세밀한 부분을 보되 완전한 전체를 놓치지 않는 과학, 격렬한 투쟁을 보되 궁극적인 조화를 지향하는 과학, 정신과 물질을 통일하여 이론에서나 실천에서나 하나인 과학을 찾자는 것이다. 이것의 가능성을 한의학에서 본다. 새로운 과학의 패러다임을 한의학에서 본다. 
 
물론 그러한 패러다임이 무엇인지를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그때로부터 10년도 더 지난 요즘의 일이고 당시로서는 말 그대로 ‘가능성’만을 보았을 뿐이었다. 


신경(神經) 개념의 도입과 기

“똑같은 몸을 보고 똑같은 병을 치료하면서 한의학과 근대 서양의학은 왜 그렇게 다른가? 혹은 서로 합쳐질 수 없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몸과 병을 보는 각 의학체계의 관점이 무엇인지를 말해야 한다. 두 체계의 관점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아니면 동일한 것인지를 밝히지 않는다면 위의 질문에 적절하게 답할 수 없다. 
 
모든 이론에는 그 이론이 탄생하고 실현되는 바탕이 되는 각자의 시대와 사회의 각인이 찍혀 있다. 이론의 사회 구속성이라는 말처럼 사회를 떠난 이론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인류의 역사를 거시적으로 볼 때 사회의 성질은 전근대와 근대를 경계로 결정적으로 달라진다. 근대 사회는 경제적으로 생산주체를 생산수단으로부터 해방시켰으며 사회적으로는 봉건적 속박으로부터 개인을 해방시켰다. 
 
그리고 근대 사회가 완성한 근대적 분업은 생산과정에서 전체와 부분을 분리시켰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인식체계를 포함하여 문화, 예술 등 사회의 모든 분야를 지배하게 된다. 이제 봉건 사회를 유지시켰던 자기 완결적 구조나 유기적 총체라는 개념은 생산은 물론 일상생활에서도 성립될 수 없게 되었다. 
 
근대 사회는 전체와 부분을 분리시켰을 뿐만 아니라 주체와 대상도 분리시켰다. 생산주체가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되었다는 것은 단순한 소유관계에서의 문제만은 아니다. 생산수단으로부터 생산주체가 분리됨으로써 생산주체는 생산수단을 나와 분리되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대상으로 보게 된다. 근대 사회는 우리의 인식 자체를 변화시켰던 것이다. 대상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하는 차원에서 전근대 사회와 근대 사회는 결정적으로 다르다. 
 
우리는 보통 내가 보는 것처럼 다른 사람도 볼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동일한 어떤 정치적 사건을 보는 사람들의 관점이 다른 것처럼, 언뜻 객관적인 것으로 보이는 사람의 몸과 병에 대해서도 관점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차이는 마치 정치적 입장의 차이가 보는 관점의 차이를 가져오듯이, 무엇을 보려고 하는가 하는 그 사람의 실천적 관점의 차이에서 온다.

본다는 것은 눈에 비치는 그대로를 본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저 한낱 돌멩이에 불과한 것을 아이들은 소중한 보물로 삼기도 하고, 스쳐가는 눈빛 하나에 짝사랑하는 상대는 큰 상처를 입기도 한다. 
 
결국 본다는 것은 무엇을 보려고 하는가의 문제이며 이는 곧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하는 실천의 문제다. 그 실천적 관점은 사회 구성원의 사회적 지위나 입장에 따라서도 다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이론이 탄생한 시대에 따라서도 변한다. 
 
물론 관점의 차이가 대상 자체의 차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주체와 독립하여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대상이라는 관점과, 주체와 본원적으로 결합된 대상이라는 관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대상은 여전히 동일하다. 
 
권력의 한 형태인 의학은 역사상 다양한 모습으로 변해왔으며 오늘도 변하고 있다. 권력은 단순히 정치적인 의미에서의 타인에 대한 배타적 지배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권력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실현되는 사회의 모든 구성원의 인정은 물론 그 사회와 그 사회의 바탕이 되는 자연에 대한 관계까지도 지배해야 한다.

정치가 자연에 대한 적절한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면 그 권력은 유지될 수 없다. 그러므로 정치는 인문과학이나 사회과학은 물론 자연과학까지를 자신의 영역으로 삼는다. 
 
이런 전제하에 이 글은 동양의 전근대 사회에 ‘신경(神經, nerve)’이라는 개념이 도입되면서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특히 ‘기(氣)’ 개념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살펴봄으로써 한의학(漢醫學)이 보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밝히려고 한다.


마음, 몸, 신경 그리고 근대적 개인의 탄생

한의학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는 매우 어려운 문제이지만 여기에서는 논의의 편의상 ‘한의학(漢醫學)’을 동양, 특히 한중일 삼국의 전근대사회에 탄생하여 실천된 의학체계를 지칭하는 용어로 한정해서 사용하고, ‘한의학(韓醫學)’은 현재 실천되고 있는 다양한 내용을 지칭하기로 한다. 이하 이 글에서 사용된 한의학은 따로 한의학(韓醫學)으로 지칭하지 않는 한 모두 전근대 사회에서의 한의학을 말한다. 
 
 
번역의 어려움 
 
번역(飜譯)은 말 그대로 뒤집는 것이다. 뒤집어서 뜻을 가리는 것, 고르는 것이다. 그러나 번역은 손바닥 뒤집듯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번역이 어려운 이유는 번역의 대상이 되는 언어가 특정 시대와 사회라는 바탕에서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쏘싸이어티society’라는 말은 오늘날 ‘사회(社會)’로 번역된다. 물론 사(社)와 회(會)는 기존에 있던 말이지만 ‘사회’처럼 연용해서 쓰인 예는 드물며 더욱이 오늘날의 사회라는 의미로는 사용되지 않았다.

‘사(社)’는 원래 토지의 신을 의미하여, 새 왕조를 세우면 반드시 토지의 신인 ‘사’와 곡물의 신인 ‘직(稷)’에 제사를 지냈기 때문에 사직(社稷)은 곧 국가를 의미했다. 행정단위로는 25가(家) 또는 사방 6리(里)를 ‘사’라고 했다. 조선 중기 한 ‘가(家)’의 구성원 수가 100-200명을 상회하기도 했던 사실에 비추어 보면(미암 유희춘의 경우) 그런 ‘가’가 25개씩 모여 있는 ‘사’는 매우 큰 조직인 셈이다.

또 사회에서의 ‘회(會)’는 원래 고기와 같은 음식을 담아 요리를 할 수 있는 그릇을 의미하며, 여럿이 함께 모여 밥을 먹는다는 데서 모인다는 말로 뜻이 넓어졌다. 이처럼 ‘사’와 ‘회’는 각각의 의미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만들어진 말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넓은 의미에서든 좁은 의미에서든 전근대 사회에 도입된 ‘사회’라는 말은 근대적 개인의 결합을 기반으로 한 관계에서 형성된 관계를 말한다는 점이다. 이에 비해 전근대 사회에서는 당연히 근대적 개인이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이런 번역어들이 당시에 이해되기 힘들었음은 자명한 일이다. 
 
왜냐하면 전근대에서의 사회는 개인의 결합이 아니라 ‘가(家)’의 결합이었고 그것도 봉건제를 바탕으로 하는 결합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이라는 의미의 ‘자(自)’나 ‘기(己)’라는 단어는 있었지만 그것은 독립된 사회적 존재로서의 개인이 아니라 ‘가’에 속한 구성원으로서의 개별적 존재에 불과한 것이었다.

특히 나를 가리키는 ‘아(我)’ 자의 어원은 낫처럼 생겨서 벨 수 있는 무기인데, 글자 속의 ‘과(戈)’는 적이 아니라 아군 혹은 공동체 내의 배반자를 처단하거나 결속력을 다지기 위해 쓰였던 무기였고 동물을 희생(犧牲)으로 쓸 때도 썼다. 희생 역시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기 위한 것이다. ‘아(我)’는 오늘날 나를 의미하는 글자지만 원래의 의미는 ‘우리’라는 공동체를 의미하는 글자였던 셈이다.

따라서 전근대에서 ‘가’를 떠난 개인은 있을 수 없었다. 오늘날에도 부모와 자식의 인연을 끊는다는 의미의 ‘호적을 판다’는 말이 있지만, 당시로서는 호적에서 빠지는 것은 곧 사회적인 의미에서만이 아니라 실제로 육체적인 죽음까지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마치 전근대 ‘사회’에 근대적 개인으로 구성된 사회가 있었던 것처럼 착각한다. 
 
‘자연’이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전근대 문헌에서 자연은 오늘날의 ‘네이춰nature’의 번역어가 아니다. ‘자연’은 스스로 그러함, 자연스러움이라는 의미로, 여기에는 오늘날의 자연도 포함되지만 그것은 더 넓은 개념이다.

외부에서의 충격이나 자극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운동을 하면서 거기에 일정한 법칙, 곧 도(道)를 실현하고 있는 것, 그러면서도 그 실현이 자연스러운 것이 바로 자연이다. 그러므로 ‘도법자연(道法自然)’이라고 하면 “도는 스스로 그러함을 본받는다”는 의미로, 도는 자연에서, 스스로 그러함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라는 의미다. 
 
또한 전근대의 ‘자연’은 명사적으로 사용될 경우에도 주체인 나와 분리된 대상이 아니다. 곧 ‘자연’은 주체와 대상의 합일을 전제로 하고 있다. 전근대의 ‘자연’은 이를테면 내 몸 속으로 들어온 자연이며 내 마음까지 투영된 자연이다. 이에 비해 ‘네이춰’는 주체와 대립하는 대상이면서 정신과 대립한다. 
 
기(氣)의 경우는 번역의 어려움이 더 크다. 우리는 ‘氣’를 그냥 ‘기’라고 하지만 영어로는 ‘vital force’ 혹은 ‘vital energy’ 등으로 번역한다. 영역에도 문제는 있지만 적어도 ‘氣’를 ‘기’라고 그냥 말하는 것보다는 한 단계 올라선 번역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영역된 용어는 적어도 기를 외국어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말을 외국어로 인식하는 것과 자국어로 인식하는 데에는 큰 차이가 있다. 외국어로 기를 보게 되면 적어도 기를 반성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설혹 기 본래의 의미는 알 수 없거나 일면적인 이해에 그친다고 해도 대상을 대상화할 수 있다는 것은 곧 자기 자신에 대한 자각을 의미한다.

그러나 ‘氣’를 모국어로 보게 되면 ‘氣’ 본래의 뜻과 기존의 모국어로서의 기의 뜻이 뒤섞이게 되어, 마치 ‘nature’를 자연이라고 번역하면서 본래의 ‘自然’이라는 뜻을 혼동하는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온다. 이런 점에서는 차라리 ‘Ch'i’ 같은 방식으로 표기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수도 있다. 

 
번역이 어려운 이유 
 
번역이 어려운 것은 어학상의 단어나 문법의 문제만은 아니다. 어려운 영어나 한자 단어 때문에 해석이 안되는 것만은 아니다. 또한 문법을 잘 몰라서 해석이 안되는 것만도 아니다. 번역이 어려운 것은, 사실은 번역이 될 글의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내용이란 곧 그 글을 사용하는 사람의 인식 체계를 말한다. 바로 이 인식체계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번역에 어려움이 생긴다. 
 
위에서 말했던 기를 예로 들어보자. 
 
기는 무엇인가. 많은 정의가 있어왔지만 오늘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근대 서양과학의 인식, 곧 대상은 주체와 독립하여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는 인식과 대비하여 말한다면, 기는 주체의 몸으로 느끼는 현상이며 이런 점에서 신체적 인식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기를 에너지로 정의하든 물질로 정의하든 아니면 물질도 정신도 아닌 어떤 신비한 것으로 정의하든 기는 몸을 통해 느껴지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기는 객관적으로 주체와 독립한 존재가 아니라 오로지 몸을 통해서만 느껴지는 어떤 것이다. 이런 관점은 사실 전근대 사회에서는 동서를 막론하고 보편적인 사고방식이었다.

그리고 근대에 와서도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가장 보편적인 사고방식이기도 하다. 
 
일상적인 삶에서 우리는 오로지 생산과 유통과정, 곧 교환가치를 만들고 그것을 실현한다는 의미에서의 경제활동(직업으로서의 정치나 외교 등도 포함된다)과 이를 위한 여러 가지 이론 작업, 곧 근대 서양과학(자연과학은 물론 인문과 사회과학을 포함한다)의 학습과 그 실천과정에서만 대상을 객관화한다.

그러나 이런 경우를 제외한 일상의 모든 부분에서 대상이 객관화되는 일은 없다. 특히 소비에서는 철저하게 대상과 하나가 되어 소비한다. 교환가치를 생산하기 위해 열심히 일한 당신과 이제는 사용가치를 즐기기 위해 떠나야 하는 당신이 완벽하게 분리된다. 교환가치의 생산을 위해 머무는 곳(이곳도 자연이다)과 사용가치를 즐기기 위해 머무는 곳(이곳도 자연이다)도 분리된다. 
 
인간관계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는 아무도 어머니나 아버지, 가족은 물론 친분관계를 갖는 사람들을 대상화하지 않는다. 몸무게 몇 킬로그램에 키 몇 센티 등으로 수학화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적어도 사회적으로는 모든 것이 대상화된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

이렇게 일상의 삶과 사회적인 삶이 분리됨으로써 사람들은 교환가치의 생산을 위해 일할 때는 자신을 하나의 동물, 기계로 느끼고 그 일에서 벗어났을 때 비로소 사람임을 느낀다. 일은 그 일을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서만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전근대에서의 자연은 나와 관계없이 존재하는 대상이 아니라 내 몸을 통해 느껴지는 대상이다. 다시 말해서 내 몸 안에 들어와 있는 대상이다. 이런 점에서는 대상이라는 표현도 사실상 부적절하다. 동서양의 전근대 사회에서는 보통 대우주(자연)와 소우주(몸)를 말하는데, 이런 발상은 바로 자연과 몸이 하나라는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크고 작은 차이, 다른 말로 하자면 위계질서는 있어도 모두 하나의 우주일 뿐이다. 
 
기를 제대로 번역하려면 바로 이런 인식의 차이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번역하려는 사람은 물론 번역된 글을 읽는 사람도 이런 인식의 차이를 이해할 때 그 말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 근대에 들어서 서양의 근대적 용어를 번역하면서 생긴 혼란과 어려움은 바로 이런 인식의 차이에서 생긴 것이다. 

 
신경(nerve)이라는 역어는 무엇을 도입했는가 
 
이제 ‘신경’이라는 말이 어떻게 도입되어 번역되었는지를 보자. 
 
1815년에 발행된 로버트 모리슨(Robert Morrison)의 중영사전 1권은 ‘nerve’ 라는 영어를 중국에 소개한 최초의 책이다. 그는 기(氣)를 ‘nervous fluid’라고 번역했다. 기를 신경의 흐름(액체)으로 이해한 점이 특이하다. 모리슨의 기에 대한 이해 방식은 고체로서의 신경이 아니라 신경과 연관을 갖는 액체이다. 이는 기의 한 측면, 곧 몸 안에 흐르고 있는 무엇이라는 기의 특성이 반영된 것이다. 
 
이에 비해 1851년에 벤자민 홉슨은 전체신론에서 신경계를 중국어로 최초로 번역하면서 신경을, 뇌의 활력을 전달하는 건(腱), 또는 근육이라는 의미에서 뇌기근(腦氣筋)으로 번역하였다. 모리슨의 번역과 비교해보면 여기에서는 액체라는 개념이 배제되어 있다. 
 
홉슨이 신경을 뇌기근으로 번역한 것은 분명히 선교상의 이유에서였다. 홉슨은 인간이 느끼는 모든 의식과 경험, 감각은 모두 신경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점을 말함으로써 그때까지 모든 의식과 경험, 감각이 사람에게 선천적으로 주어진 성(性)이며 이것이 사건을 통해, 곧 몸과 사물과의 관계를 통해 정(情)으로 드러난다는 인식체계를 부정한 것이었다. 이는 뇌를 정신의 본원으로 내세우기 장치였다.

이를 더 설명하기 위해 홉슨의 말을 들어보자. 
 
“눈에 뇌기근[신경]이 없으면 볼 수 없고, 귀에 뇌기근이 없으면 들을 수 없으며, 코에 뇌기근이 없으면 향과 악취를 가릴 수 없고, 혀에 뇌기근이 없으면 달고 쓴 맛을 알지 못한다. 온몸의 손발이 아픔과 가려움, 차고 뜨거움, 부드러움과 단단함, 껄끄러움과 미끄러움을 알고, 고금을 기억하고 만사에 응하는 것은 뇌가 지도하지 않음이 없다.

이렇게 묻는 사람이 있다. “뇌는 머리뼈 안에 있는데 어떻게 온몸을 운용할 수 있는가?” 나는 이렇게 답한다. “뇌는 매우 높은 곳에 있어 한 몸의 주재자이다. 다만 그 기근이 새끼처럼 줄처럼 실처럼 나뉜 것을 함께 ‘뇌기근’이라고 말하니, 모두 온몸을 휘감아 5관(五官)·백체(百體)·피육(皮肉)·근골(筋骨)·장부(臟腑)의 내외로 이르지 않는 곳이 없다.

그러므로 온몸은 뇌가 시키는 것을 따르고, 뜻에 어긋남이 없게 하니 만일 손과 발과 살의 뇌기근이 망가지면 폐해져 쓸 수 없다.”(合信, '全體新論', 8 '腦爲全體之主論') 
 
“모든 사람의 영혼은 두뇌의 가운데 있고 영혼은 묘하게도 바탕이 없이 온몸의 뇌기근을 빌어 그 쓰임을 운용한다. 남녀노소할 것 없이 피차 모두 같으니 그 쓰임은 눈에 볼 것이 있으면 뜻하여 보게 하고, 귀에 들을 것이 있으면 뜻하여 듣게 한다. 언어 또한 이와 같고 행동 또한 이와 같다.”(合信, 앞의 책, 40 '靈魂妙用論')
 
여기에서 홉슨은 전통적으로 사고와 생명은 심장이 주관한다는 심주설(心主說)을 부정하고 뇌주설(腦主說)을 내세운다.

그는 자율신경의 작용을 예로 들면서 “뇌기근이 있어서 항상 스스로 행동할 수 있으니, 그 작용은 사람의 뜻이 명령함을 기다리지 안는다”(合信, 앞의 책, 8 '腦爲全體之主論')고 말한다. 나아가 홉슨은 “폐가 항상 호흡하고, 심장이 항상 열리고 수축하고, 위가 소화하며, 신장이 오줌을 만들고, 성기가 정(精)을 만드는 등의 이치가 이것이다.

충분히 잠에 푹 빠진 사람의 입에 물을 넣으면 입이 스스로 삼킬 수 있고, 그 발을 간질이면 그는 반드시 움츠린다. 그 눈을 들쳐서 불로 비추면 그 눈동자가 반드시 작게 수축하고 빛을 피한다. 이와 같은 종류가 뇌근이 스스로 감각하고 운동할 수 있기 때문에, 그 기력(氣力)을 전할 수 있는 것이니, 또한 그 사람의 의지가 아니다”(合信, 앞의 책, 8 '腦爲全體之主論')라고 말한다.

이제 사람은 마음과 분리되지 않은 몸으로 대상이 나에게 작용하는 효과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자율신경이 그러한 것처럼 나라는 주체와는 별개의 객관적으로 독립된 물질, 곧 신경에 의해 느끼는 존재가 된다. 이 신경은 영혼이 작용하는 기틀이다. 
 
홉슨은 영혼을 두 가지로 나눈다. 하나는 ‘각오(覺悟)’로, 대상에 대해 이해하고 분별하며 사려하고 기억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심성(心性)’으로, 욕망이나 바람, 성정(性情), 의지 같은 것이다.

영혼은 시작은 있으나 끝이 없어서 태어나 선한 일을 한 사람은 위로 올라가고 나쁜 일을 한 사람은 아래로 내려가 벌을 받는다. 영혼을 더럽힌 사람은 문둥병 같은 병에 걸린다. 그리스도는 영혼의 좋은 의사이고 '성서'는 좋은 약이다. 그러므로 이 영혼은 신(God)에 의해 구원받을 수 있다. 
 
선교사로서의 홉슨의 목적은 여기에서 우리의 관심이 아니다. 우리의 관심은 홉슨이 신경(뇌기근)의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그때까지와는 전혀 다른 인식체계를 도입했다는 점이다. 

 
전근대 사회에서의 기(氣) 
 
전통적으로 인식의 출발점인 ‘의(意)’는 마음[心]속에 어떤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靈樞 本神第八) 여기에서 말하는 마음[心]은 외부의 대상과 접하여 반응하고 작용하는 것이다.

외부의 자극은 신경을 통해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마음[心]을 통해서만 전달된다. 마음이 외부와 작용하는 통로가 아홉 개의 구멍[구규(九竅), 곧 눈, 코, 입, 귀, 항문, 요도]이며 이런 통로를 통해 나는 외부를 인식할 뿐만 아니라 외부를 느낀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이 아홉 개의 구멍은 내 몸의 기가 외부의 기와 상호 교통하는, 교제하는 곳이다.

이 교제는 몸 내외의 기를 전제로 한다. 사물은 빛이 있어야 볼 수 있는 것이지만 몸 안에 빛을 볼 수 있는 기가 없으면 눈으로 사물을 볼 수 없다. “안광(眼光)이 지배(紙背)를 철(徹)한다”는 표현은 몸에 대한 이런 인식을 잘 보여주는 말이다. 
 
이런 안 밖의 교제 과정을 통해 몸으로 느끼는 효과가 바로 기이다. 곧 기는 몸 밖의 대상이 나에게 작용하는 힘이나 작용(이것도 기이다)이 몸 안의 기와 작용한 결과 효과로서 느낀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는 외부의 기와 내부의 기가 상호 작용한 결과다. 예를 들어 전근대 사회에서 음식의 성질을 나타내는 용어로 기미(氣味)가 있는데 여기에서 기는 차고 더운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때의 차고 더움은 그 음식 자체가 갖고 있는 객관적인 성질로서의 물리적 온도가 아니라 그것이 내 몸에 들어가 몸 안의 기와 작용하여(그리고 근본적으로는 사계절의 기에 의해 규정되면서) 내 몸에 차거나 더운 효과를 가져온다는 의미에서의 온도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외부의 사물이 나를 미혹하게 할 수 있지만 그 유혹은 내 몸 안의 기와 작용하여 일정한 작용을 해야 느낄 수 있다(한의학에서는 이러한 작용의 결과 나타난 내 몸의 기를 상화(相火)라고 한다).

마음의 변화는 마음 자체의 변화가 아니라 몸이라는 기 덩어리의 변화일 뿐이다. 따라서 이런 작용에 따른 변화나 효과를 느끼는 것은 특정한 몸의 한 부분이 아니라 몸 전체다.

다시 말해서 몸 자체가 하나의 기이기 때문에 외부의 작용은 그것이 음식이든 기후든 아니면 사건이든 그것 자체가 역시 또 하나의 기로서 내 몸의 기와 작용을 주고받게 되고 그 결과 변화된 기의 상태가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마음은 그것이 슬픔이나 기쁨과 같은 정서든(한의학에서는 슬픔이나 기쁨도 역시 하나의 기일 뿐이다), 아니면 판단과 같은 사고과정이든 모두 몸의 기라는 차원에서 설명된다. 
 
기를 이렇게 이해할 때 우리는 세계를 통일된 하나의 전체, 곧 기일원론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더운 곳에 사는 사람들은 양념이 많이 된 음식을 좋아한다. 그 양념 중에서도 특히 매운 맛을 좋아한다.

이런 현상을 설명할 때 자연을 내 몸에 들어와 있는 것으로 설정하지 않으면 아무리 자연과 인간의 밀접한 관계를 강조한다고 해도 자연은 자연 그 자체로 설명해야 하기 때문에, 위의 예에서 음식보관의 필요성 이상의 설명을 할 수 없다. 날씨가 덥기 때문에 음식이 쉽게 상하고 그러므로 음식을 소금에 절이거나 갖은 양념을 해서 부패를 막아야 한다는 식의 설명은 날씨와 음식과의 관계만을 고려하여 분석한 다음 사람을 거기에 결합시킨 것이다.

이런 설명은 자연을 주체인 몸과 분리시켜 자연은 자연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분석한 뒤 소위 종합한 결과다. 그러나 이런 관점으로는 말리거나 훈제하는 방법도 음식보관에 유리한데 양념, 그 중에서도 왜 매운 맛을 선택했는지를 설명할 수 없다. 
 
이에 비해 한의학에서는 더운 곳의 사람들이 매운 것을 좋아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여름과 같이 더운 날씨에는 사람의 몸속은 상대적으로 차게 된다(이를 복음(伏陰)이라고 한다). 날씨라는 자연은 이미 내 몸속에 들어와 있다. 거기에 따라 내 몸도 이미 변했다. 그러므로 내가 섭취할 자연은 아무 것이나 일 수 없다.

자연의 흐름에 따라 음양의 질서를 맞추기 위해 내 몸에는 필연적으로 속을 덥히는 자연이 필요하다. 그 자연은 매운 맛이다. 그러므로 더운 곳의 사람들은 음식을 말리거나 훈제하지 않고(물론 전혀 그렇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매운 맛을 중심으로 양념을 진하게 한다. 우리가 더운 여름에 삼계탕을 먹는 이유도 내 몸이 자연과의 교류를 통하여 닭고기와 인삼의 더운 기운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설명 방식은 기일원론의 세계에서만 가능하다. 자연이 분석과 종합의 대상이 아니라 이미 내 몸과 하나인 세계, 자연과 몸의 상호작용을 하나의 원리로 설명할 수 있는 세계, 자연에 대한 실천이 곧 몸에 대한 실천이고 몸에 대한 실천이 곧 자연에 대한 실천인 세계, 그럼으로써 자연과 몸이 서로를 해치지 않고 서로 작용하면서 조화될 수 있는 세계(만일 조화되지 않으면 그것은 곧바로 병이라는 몸의 현상으로 나타난다)가 기일원론의 세계다. 

 
순환적 발전과 관계의 세계 
 
동양의 전근대 사회에서는 모든 사물을 오행의 논리로 설명한다. 오행은 현실에 존재하는 다양한 기의 양태를 각각의 성질에 따라 분류한 것이다. 여기에서 분류라고 했지만 이 분류는 배제를 위한 분류가 아니라 그렇게 분류된 것들 사이의 관계를 설정하기 위한 분류다. 이는 생식이 가능한지 아닌지에 따라 하나의 종(種)을 다른 종과 구분하고 배제하는 근대 서양 식물학의 분류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세계의 모든 사물을 하나의 기로 보는 관점은 모든 사물을 그것이 생겨나 발전하고 성숙해져서 다시 쇠퇴하게 되는 일련의 순환과정으로 이해하게 한다. 오행에서 말하는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는 현실의 나무나 불 등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은 현실에서 하나의 기가 생장화수장(生長化收臧)하는 운동 양식을 정식화한 것이다.

생겨나서 자라며 무르익어 거두어지는 발전과정을 다섯 단계로 나눈 것이다. 그리고 이런 단계들은 서로에 대해 상대의 기를 낳아서 키워주거나[相生] 반대로 억누르는 작용[相克]을 한다. 예를 들어 사계절은 기후라는 하나의 기의 발전과정이지만 봄의 기는 여름의 기를 낳아 키우며[木生火] 여름의 기는 겨울의 기에 의해 제압된다[水克火]. 
 
또한 오행의 논리는 다양한 층차를 갖는 다양한 사물들을 다섯 단계의 기의 양태로 분류함으로써 같은 기의 발전단계에 있는 사물 사이에 마치 같은 음(音)이 공명하듯 동질적이면서 서로 작용하게 되면 그 기를 더 강화하는 관계를 형성하고 다른 발전단계에 있는 사물 사이에는 낳아서 키워주거나 반대로 억누르는 관계를 형성한다.

이런 오행의 체계가 완성되면 이제 마음이나 색깔, 계절, 오장육부와 같이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사물들 사이의 관계가 기의 상호 작용이라는 측면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그래서 두렵고 무서운 감정은 여름의 기를 억누르기 때문에[水克火], 음양의 조화라는 측면에서 공포영화는 여름에 그 효과가 극대화된다. 

 
마음과 몸, 그리고 신경 
 
마음의 경우에도 장기의 오행분류에 따라 예를 들어 성내는 감정은 간과 같은 기이고 기쁜 감정은 심장의 기와 같다는 식으로 배속된다. 같은 기라고 하지만 그것이 지나칠 때는 오히려 같은 기를 상하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성을 지나치게 내면 간을 상하게 된다. 이러한 작용은 상호 작용과 반작용이 가능한 열린 관계다.

따라서 간이 나빠지면 성을 잘 내게 된다. 다양한 감정 상호간의 관계 역시 오행에 따라 성립된다. 그러므로 성내는 감정은 슬픈 감정에 의해 누그러지게 된다. 이런 식의 관계는 이 세상의 모든 사물 사이에 성립하는 것이어서 이 세계가 하나의 기로 이루어졌다는 전근대의 사고가 완성된다. 
 
이러한 세계관에서는 마음과 몸을 나눈다는 것은 다만 기의 양태의 차이 혹은 기의 발전 단계의 차이를 나누는 것뿐이다. 전근대 사회에서 사유를 담당하는 뇌를 따로 설정하지 못한,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설정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사유 역시 몸 전체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뇌에 대한 언급은 있지만 그것은 생명의 근본 물질인 정(精)이 변화하여 만들어지는 수(髓)가 모이는 곳일 뿐이다.

전근대의 사유가 어떻게 이루어지는 지를 두고 심주설(心主說)이라고 하지만 이것도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심(心)은 사유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기는 하지만 역시 오장의 한 부분으로서 역할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 한의학에서의 사유는 몸 전체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런 의미에서는 심주설이 아니라 몸주설(主說)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바로 이런 세계 속에 홉슨은 신경이라고 하는 객관적으로 독립된 물질을 도입함으로써 몸과 마음은 물론 세계는 기로 이루어졌다는 기일원론을 정면에서 부정하게 된다. 이제 세계는 상호 관계를 갖지 않는, 혹은 배제의 관계를 갖는 사물들의 세계가 된다.

홉슨이 도입한 신경이라는 개념과, 감각을 느끼는 몸과 관계없이 오로지 신경을 통해서만 작용하는 영혼이라는 개념은 바로 마음과 몸을 분리시키는 작업일 수밖에 없다. 이는 곧 기 개념의 부정이며 나아가 모든 전근대적 사고의 부정이었다. 

 
감각을 상실한 물질 
 
데모크리토스는 물질의 성질을 두 가지로 분류했다. 그에 따르면 물질의 제1성질은 물질에 속해 있으면서 인간의 감각기관의 인식과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객관적 성질이다. 크기나 모양, 운동 등이 그러한 성질에 속한다. 이에 비해 물질의 제2성질은 인간의 감각기관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주관적인 성질이다. 여기에는 맛, 소리, 냄새, 색 등이 속한다. 
 
근대 서양의 과학은 데모크리토스가 말하는 물질의 제2성질을 배제함으로써 성립한다. 물질의 제2성질을 부정함으로써 자연은 주관적인 감각을 벗어나 객관적으로 수학화할 수 있는 대상이 되었다. 대상을 양적(量的)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은 대상에 대한 임의적인 작용을 가능하게 하면서 동시에 표준화를 가능하게 한다.

이는 자본주의적 상품생산의 기초다. 어떤 상품이 자본주의적으로 생산되기 위해서는 표준화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자본주의적 생산이 가장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려면 나아가 질적인 것도 표준화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의 감각이 표준화되어야 한다. 특정한 색이나 냄새, 맛과 같은 것에 대한 인간의 감각이 동질적인 것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똑같은 입맛을 갖게 되며 입맛 이외의 다른 감각에서도 똑같은 대상에 대해 똑같은 느낌을 갖도록 강요당한다. ‘미스 코리아’라는 미(美)의 정형이 탄생하는 것도 이런 표준화의 요구다. 이제 사람들은 파블로프의 개처럼 36-24-36이라는 숫자만으로도 아름답다는 느낌을 갖는다. 
 
거칠게 말한다면 인식 주체의 감각에 기초한 주관적인 물질의 제2성질은 상품의 가치라는 측면에서는 사용가치를 충족시키는 것이며 반면에 제1성질은 교환가치를 만드는 것이다. 데모크리토스가 말한 물질의 제2의 성질을 배제하면 이제 그것은 더 이상 유용한 쓰임이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오로지 교환을 위한 것으로 변한다.

그런데 어떤 상품이 다른 것과 교환되기 위해서는 거기에는 교환의 기준이 되는 동가(同價)의 무엇(동일한 단위)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환원되어야 할 무엇이 있어야 한다. 이는 바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찾았던 ‘등질부분’이기도 하다('동물지'). 
 
이런 동가의 무엇은 노동이라는 측면에서는 구체적 노동이 아니라 추상적 노동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구체적인 노동은 주체에게 ‘유용하다’는 의미에서의 사용가치를 만드는 노동이고, 추상적 노동은 노동의 구체적 형태나 그 결과물의 유용성과는 관계없이 상품의 가치를 만드는 노동이다. 추상적 노동의 경우, 그것이 아름다운 옷을 만드는 것이건 살기 좋은 집을 만드는 것이건 모두 단순한 인간 노동력의 지출로 파악된다.

옷을 만드는 노동과 집을 만드는 노동은 질적으로 다른 것이지만 추상적 노동이라는 측면에서는 인간의 두뇌, 근육, 신경, 손과 같은 것들을 생산적으로 사용한 결과일 뿐이며 오로지 양적인 측면(노동 시간의 양)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이에 비해 물질의 제2성질을 만드는 구체적 노동의 생산 결과물은 나에게 유용한 것이다. 그것은 교환을 전제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오로지 소비하는 주체의 감각을 통한 것,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 그러므로 유용한 것이다. 
 
기는 바로 이러한 물질의 제2성질, 감각에 기초한 개념이다. 이는 근대적 상품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또한 기는 객관적으로 독립해서 존재하는 보편적인 추상적 물질로도 환원되지 않는 것이다. 기는 주체의 감각에 기초하여 성립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주체의 기의 상태에 따라 늘 변화한다. 같은 부류끼리는 통하며(공명하며) 다른 부류의 기와는 오행의 논리에 의해 상호 작용한다.

하나의 기(의 양태)를 다른 것과 교환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교환을 위한 기준, 곧 동가의 무엇이 없기 때문이다. 환원이 되기 위해서는 양적으로 비교가 가능한 어떤 것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기는 그 자체가 양화(量化)될 수 없는 감각에 기초한 것이기 때문에 환원은 불가능하다. 
 
데카르트는 감각적인 신체적 인식을 배척한다. 물질에서 정신을 배제함으로써 데카르트는 물질을 해방시킴과 동시에 물질에서 독립한 정신을 바탕으로 진정한 자기 인식을 추구할 수 있게 하였다. 이는 추상적 노동의 대상으로서의 물질을 확보함과 동시에 사유의 자립성, 곧 근대적 주체를 확립했다는 의미가 있다. 이는 가장 정확한 의미에서 인식의 근대화다.
 
이는 감각적 인식, 신체적 인식에 기초한 전근대 사회의 부정이면서 동시에 봉건적 질서[家]에 예속된 전근대적 개인의 해방, 곧 근대적 개인의 탄생이기도 했다. 
 


"민중의료는 독자체계 구축 못하고 소멸"

오늘날 한의학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으며 그 내용에서도 과거의 한의학과는 다른 다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한 모습 중 가장 특징적인 것은 한의학의 근대 서양의학과의 결합 내지 근대 서양의학적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의학을 포함한 모든 학문은 변할 수밖에 없다. 이는 학문의 대상 자체가 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학, 특히 한의학의 변화는 불가피한 것이며 또 시대의 흐름에 따른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것이기도 하다. 다만 그러한 변화가 과거와 어떤 점에서 다르며 어떻게 다른가를 규명하지 않으면 오늘의 변화를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고 또 나아가 미래의 변화를 예측하기도 어렵다는 점에서 전근대 사회 속에서의 학문 체계로서의 한의학을 이해할 필요가 생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 논문은 과거, 정확하게는 전근대 사회 속에서의 한의학이 어떤 모습이었는가를 규명함으로써 한의학의 현재와 미래를 전망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전근대의 한의학을 한마디로 규정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한의학의 내포와 외연을 확정짓는 것은 한의학의 전부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문헌이나 제도에 의해 전승되어 온 이론이나 임상이 사실은 전근대 사회의 일부분에 한정되어 이해되고 실천되었다는 점, 따라서 대다수 민중의 삶과는 일정한 거리가 있었다는 점, 또한 대다수 민중의 의료를 담당한 계층과 그러한 임상 실천의 내용, 이론적 구성은 기존의 한의학과 일정한 층차를 갖고 있다는 점 등으로 인해 전근대 한의학이 무엇이었는지를 규명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다.

전근대와 근대를 구분 짓는 잣대는 무엇인지, 그러한 잣대의 차이에 따른 근대와 전근대의 이해가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 또한 전근대 사회 속에서의 한의학이 무엇인가를 규명하는 일을 어렵게 만든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황제내경 이전은 말할 것도 없이 그 이후의 발전 과정에서 나타난 다양한 이론적 경향과 분파의 성립은 무엇을 한의학의 기준으로 삼을 것인지를 어렵게 한다. 
 
위의 몇 가지 어려움에 대해 본 논문에서는 나름대로의 입장을 세우고 연구를 시작하려고 한다. 
 
첫째는 한의학이 전근대 사회의 모든 부분을 포괄하고 있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한의학은 당대의 사회에 기반하고 있으며, 그리고 가장 선진적인 이론과 실천 체계라는 점에서 다른 맹아단계 혹은 기술 수준에서의 의료를 대표할 수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하자면 한의학은 자신의 고도한 이론과 임상 체계로, 당시 사회에서 적어도 양적인 면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여러 의료 체계 혹은 기술 체계를 모두 포괄할 수 있다는 것이며, 역사에서 양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비록 數的으로 적지만 그것이 미래의 변화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면 그 역사성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한의학은 당대의 시대정신이었다. 양적으로 다수를 차지하던 것이 다음 시대에 소멸되거나 아니면 다른 체계로 흡수되어 버렸다면 그 존재 자체는 과거의 역사적 사실로서의 의미는 갖지만 현재와 미래의 역사에서는 그만큼 그 의미가 축소되기 마련이다. 이런 점에서 한의학은 과거만이 아니라 현재 그리고 미래를 준비하는 의학 체계로서의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소위 민중 의료의 역사적 경과에 관한 부분이다. 소위 민중 의료는 부분적으로 뛰어난 기술을 보여주기도 하고 이론적으로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결국 자신의 독자적인 체계를 구축하지 못하고 결국 한의학이라고 하는 거대한 용광로 속에 융해되어 가거나 아니면 자신의 전승 체계를 갖지 못함으로써 소멸되어 갔다는 사실이다.

이는 최근 대체의학 혹은 대안의학(심지어는 보완의학)이라는 이름으로 과거에 행해지던 민중 의료의 내용이 근대 서양의학의 틀 속에 융해되어 일부는 소멸되어 갔지만 일부는 다시 부활하는 현실과 연관하여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부분이다. 
 
두 번째로 전근대와 근대를 구분하는 잣대에 대해서 본 논문에서는 사회경제사적인 관점을 택한다. 이는 기본적으로는 소유관계의 변화와 거기에 따르는 사회구조의 변화에 바탕을 두고 이러한 바탕 위에서 나타나는 문화 양태의 차이를 잣대로 삼는다. 구체적인 내용은 본문에서 언급할 것이다. 
 
세 번째 문제는 의학사에 대한 전반적인 논구를 통해 검증되어야 할 작업이지만 일단 본 논문에서는 '황제내경'과 '상한론' 그리고 그 이후의 임상과 이론적 발전의 산물인 금원사대가, 이를 다시 종합한 '동의보감'에서 완성된 한의학을 대상으로 삼는다.

이는 중국의 경우, 금원사대가를 종합한 시도가 두드러지게 보이지 않으며 명말청초에 도입된 근대 서양의학의 영향과 그에 따른 다양한 변모라는 사정이, 본 논문에서 다루고자 하는 전근대 사회 속에서의 한의학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며, 일본의 경우에는 금원사대가로부터의 일탈(그리고 이에 대한 반작용)이 더 강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이유는 '동의보감'이 '황제내경' 혹은 금원사대가의 이론과 임상이 바탕으로 하고 있는 봉건적 사회 구조에 가장 적합한 의서라는 판단 때문이다. 
 
그러나 '동의보감' 자체도 매우 방대한 체계를 갖고 있으며 또 그 안에는 매우 다양한 편차를 갖는 이론과 임상이 포함되어 있어서 한 마디로 규정하기 쉽지 않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먼저 동의보감의 이해를 위한 전제로, 동아시아 전근대 의학의 일반적인 특징을 알아보려고 한다.

이는 '동의보감'이 무엇보다도 동아시아 전근대 의학으로서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동아시아 전근대 의학의 일반적인 성격을 전제로 하지 않고서는 '동의보감'에 접근할 수 없다. 그리고 이는 의학만이 아니라 삶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전근대를 근대의 관점에서 보는 오늘날의 무반성적이며 비역사적인 관점에 대한 비판을 포함한 것이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반성적 인식을 기본으로 하는 철학계에서조차 이런 태도가 보인다. 따라서 동아시아 전근대 의학에 대한 본고의 접근은 그러한 학문 풍토에 대한 직간접적인 비판이 될 것이다. 
 
전근대 시대에 대한 비역사적 접근은 특히 한의학계에서는 ‘상식적인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황제내경을 황제가 직접 지은 것으로 간주한다거나(의학의 聖人 창조설) 그것을 절대적인 진리체계로 간주하는 연구자 혹은 임상가가 적지 않은 것이 한의계의 현실이다.

전근대의 한의학은 ‘완성된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임상에서의 변화나 발전은 무의미하다는 의미에서 과거의 이론과 처방을 그대로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오히려 한의학계에서는 한의학에 대한 역사적 접근을 백안시하거나 문제가 있는 것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한의계에서 이러한 비역사적 접근이 가능한 것은 과거나 지금이나 사람의 몸이라고 하는 조건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없었다는 점과 한의학은 서양의학에 비해 상당히 오래 전에 상대적으로 완결된 이론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는 점, 한의학 이론의 유기적 성격으로 질병에 대한 다양한 접근이 가능하다는 점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회는 전근대와는 다르며 거기에 살아가는 사람의 삶의 방식과 인식, 그리고 총체적으로 문화가 바뀌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음양오행을 믿지 않으며 자연을 그리워하면서도 현실적인 자연에 대한 태도는 정복과 약탈 이상의 것은 아니다. 오늘날 자연에 대해 전근대적인 접근을 한다는 것은 경쟁에서 뒤지는 일이며 경쟁에서 뒤진다면 더 이상 생존 자체가 어려워지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더 직접적으로는 무엇보다도 의학이 실현되는 사회구조가 바뀌었고 또 명백한 현실로 근대 서양의학이 압도적인 헤게모니를 장악한 상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한의학은 변화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동의보감에 대한 연구는 크게 임상적 측면에 대한 연구와 실험실적 연구가 주류를 이루어 왔다. 일부 의사학적 측면에서의 연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매우 작은 흐름에 불과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기존의 '동의보감'에 대한 연구는 '동의보감'이 탄생하여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종적 연관(역사성)과 그것이 실현되는 당대의 횡적 구조(사회성과 철학성)를 도외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근대에 형성되고 사용되었던 개념들을 근대적인 것으로 이해하거나 아니면 보편적인 것으로 이해함으로써(비역사성) '동의보감'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어렵게 한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역사성과 철학성을 담보한 연구가 한의학, 좁게는 '동의보감'에 대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연구는 아직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특히 본고에서 다루려고 하는 전근대와 근대라는 문제의식이 결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본고를 통하여 밝혀지겠지만, 전근대를 전근대로 이해하지 않는 관점은 전근대 혹은 근대를 초역사적인 것으로 설정하려는 경향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지금까지의 동의보감에 대한 연구는 대부분 비역사적이며 비철학적인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원래 동아시아의 전통에서 文史哲은 동시에 이루어졌다. 공자는 '시경'을 정리했으며 주희의 글을 집대성한 '朱熹集'은 詩를 비롯한 文으로 시작되고 있다. 그럼에도 오늘날은 근대적 학문 체계 속에서 文은 문학으로, 史는 史學으로, 哲은 철학으로 해체되었다. 그럼으로써 전근대를 전근대로 볼 수 있는 틀을 벗어나버렸다.
 
따라서 본고에서는'동의보감'이라고 하는 의학 분야를 다루지만, 그것을 전근대를 역사로서 볼 뿐만 아니라 철학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그럴 때에만이 전근대 의학으로서의 '동의보감'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거꾸로 말하자면 지금까지 누구나 '동의보감'을 보아왔고 누구나 '동의보감'에 의거해서 임상실천을 해 왔지만 그것은 근대의 관점에서 본 '동의보감'이거나, 아니면 자신의 독자적인 해석을 통한 나름대로의 '동의보감'일 뿐, 정작 '동의보감'을 '동의보감'으로서는 이해하지 못했다는 한계를 지적하는 것이기도 하다. 
 
역사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면 먼저 과거에 대한 역사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새로운 변용이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먼저 동아시아의 전근대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전근대 의학의 특징과 전근대 의학의 대표적인 예로서 '동의보감'의 역사성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려 한다.

이를 '동의보감'의 구조적 특징을 보여줄 수 있는 목차와 '동의보감'의 사상적 이론적 구조를 집약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동의보감' 제일권 '내경편'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 한의학은 漢醫學, 韓醫學, 동양의학, 중국의학, 중의학, 한방, 한방의학, 전통의학, 민족의학 등으로 불린다. 그러나 한의학은 그냥 ‘醫學’이었다. ‘漢醫學’은 거란족의 국가인 遼에서 자신들의 國醫인 契丹醫와 구분하여 漢族의 의학이라는 의미에서 ‘漢醫學’ 혹은 ‘中原醫’라고 한데서 유래한 말이다.

그러던 것이 제국주의와 함께 서양의 문물, 특히 근대 서양의학이 들어오고 식민지화 과정과 함께 그것이 헤게모니를 장악함에 따라 ‘西醫’, ‘洋醫’ 등으로 불리던 근대 서양의학은 그냥 ‘의학’으로 불리게 되고 상대적으로 기존의 의학은 ‘漢醫學’으로 불리게 된다.

특히 우리나라는 일본의 지배를 받음으로써 한의학 말살정책을 편 명치유신의 정책 그대로 우리나라에서도 기존의 의학은 단순한 기술에 불과한 ‘漢方’으로 불리게 된다.

그러므로 ‘漢方’이라는 말에는 기존의 의학을 멸시하는 의미가 들어 있다. ]


"교환가치를 얼마나 생산할 수 있는 몸인가"


1절. 전근대 사회의 일반적 특징 
 
전근대 사회를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인식론적 측면에서 보자면 대상과 주체를 분리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유기적 총체성(organic totality)에 기초한 사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과 사회와 사람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작동하는 구조, 그리고 거기에서 발생하는 인간 사유의 양식도 유기적 총체성을 띈 사회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전근대 사회에서 대상은 인식하는 주체와 분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한 귀결로서 대상 자체에 대한 질문을 포함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내 눈 앞에 대나무가 있다고 할 때 대나무 자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대나무는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곧 대나무와 나의 관계는 무엇인가라는 질문만이 가능하다. 
 
왕양명이 하루 종일 대나무를 보고 있었지만 아무 것도 깨달을 수 없었던 것은 그가 대나무 자체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대나무와 나와의 관계라는 차원에서 문제를 던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왕양명은 대나무와 나와의 관계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곧 대나무에 대한 실천을 매개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나무와 나와의 관계가 성립될 수 없었고 따라서 대나무를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대상과 주체가 분리되지 않은 조건에서 대상과 주체와의 관계에 대한 인식론적 해결, 소위 진리에 대한 문제는 儒家의 경우 다음의 두 가지 중 하나의 해결책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것은 리가 내 마음 속에 이미 들어와 있다고 간주하거나[心卽理] 아니면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理[이를테면 天理]를 주체인 내가 일정한 틀을 갖고 궁구해나가는[格物] 방법이다. 주체와 관계없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물 자체에 대한 궁구는 그 어느 경우에도 제기될 수 없는 문제였던 셈이다. 
 
道家의 경우에도 대상 자체에 대한 탐구라는 문제는 제기되지 않는다. 대상과 주체의 관계에서 볼 때, 도가는 대상의 진리는 道이며 주체인 나는 다만 도를 내 몸에서 실현하는 것, 곧 자연스러운 실천이 문제가 될 뿐이다. 유가와 도가의 차이는 유가의 理가 만물의 理라고 해도 그것은 거의 전적으로 사회적인 차원[특히 도덕]에 한정되고 있는데 비해[修己治人] 도가의 그것은 자연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도 물 자체라는 문제는 제기되지 않는다. 

 
2절. 근대란 무엇인가 
 
이에 비해 근대 사회는 전근대와 근본적인 점에서 차이를 갖는다. 
 
먼저 본고에서 말하는 근대란 경제사적 측면에서는 전자본주의 사회와 대비되는 것으로서의 자본주의를 의미한다. 그것은 노동주체의 사회적 존재형태에서는 이중적 의미에서의 자유로운 노동력이 존재하고 있으며, 생산관계의 형태에서는 인간과 인간의 사회관계가 物象的 관계로 전화되어 物과 物의 관계로 현상한다는 특징을 갖는다.
 
인식론적 측면에서 말하자면 전근대 사회와 달리 근대의 인식에서는, 위와 같은 조건 하에서 필연적으로 나오는 것으로, 주체와 객체가 분리되면서 인간과 사회 혹은 자연과의 관계는 物化되어 객체는 물론 주체 역시 대상화된다. 이러한 주체와 객체의 분리를 통하여 이제 대상은 분석의 대상(곧 인간에 의한 자의적인 작용의 대상)이 된다. 
 
이 분석은 보편적으로, 또한 等價的으로 통용될 수 있는 것을 창출하기 위한 것이며, 이는 다시 대상의 질적 측면까지를 量化하거나 아니면 양화될 수 없는 부분은 배제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대상을 분석함으로써 객관적으로(흔히 ‘과학적’이라는 표현을 쓴다) 양화된 대상은 예를 들면 물리학에서는 세포, 물리학에서는 분자, 사회에서는 가치와 같은 것으로 환원된다. 
 
이제 객체와 분리된 주체는 대상화되어 특정한 요소로 환원되게 되며, 스스로도 생산과정에서의 분업에 필요한 한 부품 혹은 요소와 마찬가지로 생각하게 된다. 원자론적 사고가 일상의 사고를 지배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근대의 특징이다.
 
다른 한편 생산과정이라는 측면에서 말하자면 전근대 사회에는 性的, 사회적 분업이 주요한 분업의 형태였음에 비해 근대 사회는 생산과정에서의 분업이 더 중요한 형태가 된다. 이에 따라 생산과정에 참여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분업의 분해 정도만큼 분해되며 소외 역시 확대된다. 
 
근대적 분업에 기초한 소외는 이론에서도 반영되어 이론의 분석적이며 분절적인 경향이 강해진다. 물리학적으로 참인 것이 화학적으로도 참인지, 나아가 자연이나 사회, 그리고 몸에서도 참임인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것이 교환가치를 얼마나 생산할 수 있는 것인지가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의학에서 개별성[情]보다는 보편성[性]을 추구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한의학에서도 증상들을 변증하여 병의 본말을 가리고 개개인이 자연과 사회와의 연관 속에서 드러내는 神을 알아내기보다는 病名이라는 보편성을 선호하게 한다. 
 
식물의 분류에서도 이런 예를 찾을 수 있다. '주례'에서 식물을 그것이 서식하는 토양에 따라 분류한 것은 그 식물을 자연과의 연관 속에서 분류한 것이다. 그 식물이 어떤 토양에서 자라는가 하는 문제는 그 식물의 성장조건뿐만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그것이 주체인 ‘나의 몸에 어떤 효과를 가져오는가’ 하는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

습한 곳에서 자라는 식물은 습기를 많이 가지고 있으므로 그것은 나에게 습기라는 기를 준다. 나는 기를 매개로 그 식물과 끊을 수 없는 연관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대상에 대한 이해방식은 우주 전체에 대한 보편적 인식으로 그 영역을 넓혀간다. 다음의 글은 대상에 대한 전근대적인 이해가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아침저녁으로 화초들을 보니 그 性이 습기에 마땅한 것과 건조함에 마땅한 것이 있고, 또 차가움에 마땅한 것과 따뜻함에 마땅한 것이 있었다. 그래서 심고 물을 주고 햇볕을 쪼일 때마다 한결같이 옛날 방법대로 하였고, 옛 법에 없는 것은 혹 전해들은 것을 참고하였다. ... 그런 뒤에야 제각각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서 본래의 자태를 드러내었다. 이것은 다만 화초 각각이 타고난 천리[天]를 온전하게 하고 각각의 성을 따랐을 뿐이지만 처음에는 그것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아, 화초는 식물이다. 지식도 없고 움직이지도 못한다. 그러나 그들을 기르는 이치와 갈무리하는 방법을 모른 채, 습한 데에 맞는 것은 마르게 하고 추위에 맞는 것은 따뜻하게 하여 그 天性을 거스른다면 반드시 시들어 말라죽게 될 것이니, 어찌 다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 그 본래의 자태를 드러내겠는가.

식물조차 그러한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마음과 몸을 피곤하게 하여 성을 해쳐서야 되겠는가. 나는 그런 뒤에야 양생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이 방법을 확충한다면 무슨 일을 하든 안 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전근대의 인식은 습기나 한열과 같은 대상이 갖고 있는 자연과의 연관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그것은 주체인 나와 결합된 인식이기 때문에 그것을 확충하여 양생법으로 내 몸을 다스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면 나라를 다스리는 법과도 통하게 된다. 
 
이에 비해 근대적 인식은 대상을 대상 자체로 분리한다. 근대 학문에서 내거는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cetreris paribus)’이라는 전제는 바로 이러한 분리를 전제로 하지 않으면 근대 학문 자체가 성립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근대 학문에서 ‘다른 조건’은 불순한 요소로 배제되어야 한다. 끊임없이 다른 조건이 변한다면 분석은 처음부터 불가능하거나 변화하는 모든 조건 하나하나에 대해 그 조건 이외의 다른 조건을 고정시킨 분석(아마도 무한한 경우가 나오겠지만)을 행해야 한다. 
 
그러므로 근대 학문에서 얻은 진리는 ‘다른 조건이 변한다면’ 더 이상 진리가 될 수 없다. 그러한 ‘조건’은 아주 사소한 것일 수도 있고 근본적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는 전제는 현재 분석할 대상 이외에 그 대상에 영향을 주는 모든 요소를 배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땅은 또 하나의 비유기적 육체"


3절. 전근대 한의학의 지리경제학적 특징
 
한의학은 동아시아 전근대의 모든 이론과 실천이 그러하듯이 농경사회에서 탄생한 의학이론이며 임상 체계다. 물론 한의학의 형성과정에는 인도의학과 티베트의학의 영향1)이 없을 수 없으나 기본적으로는 농경사회를 배경으로 탄생한 것이다. 농경사회는 다른 사회, 특히 유목사회와 비교할 때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첫째, 농업은 특정한 지역의 토지에 긴박(緊縛)되어 행해지는 경제행위다. 일정한 기간 동안 특정한 지역에서 경작(耕作)과 수확이 반복되는 농업의 특성상 전쟁이나 계절과 같은 조건에 따라 그때마다 이동해야 한다면 농업은 이루어질 수 없다.
이러한 정착에 대한 요구는 전근대 사회에 적용되었던 직업관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고 하여 상업을 가장 천시했던 것은 상업이 본질적으로 이동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업은 자연, 특히 토지라는 조건을 떠나서는 성립될 수 없다. 여기에서 말하는 토지는 땅과 그 의미가 다르다. 땅은 거주를 위한 장소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하늘이 준 식량의 거대한 창고다. 땅은 인간의 모든 생산활동이 그 위에서 이루어지는 곳(작업장)이면서 최초의 생산수단을 제공하는, 모든 생산활동의 전제가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땅은 또 하나의 비유기적 육체라고도 할 수 있다. 토지는 그러한 땅 중에서 생산활동을 위해 인간에 의해 점취(占取)된 땅을 가리킨다. 특히 인류의 초기 단계, 원시 공동체 단계에서는 인간 자신이 가축과 더불어 객관적인 자연물의 계열 중 하나를 이루어 땅의 부속물로서 매몰되어 나타난다.
 
둘째로 농업이 토지에 긴박되어 이루어지는 경제행위라는 조건은 거기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곧 농민의 의식을 규정한다. 그러한 규정의 하나는 사람 중심, 땅 중심의 세계관이다. 농경사회에서의 세계는 땅에 묶여 있는 나를 중심으로 운동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봄여름가을겨울의 사계절은 내가 뿌리박고 살고 있는 지금 이곳을 중심으로 순환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유목사회에서는 자연의 변화, 곧 목초지의 이동에 따라 나도 이동해야 하는 구조를 갖고 있으며 이런 점에서 유목사회의 세계관은 하늘 중심의 세계관이다.

셋째로 농경사회라는 특수성은 폐쇄적 공간을 전제로 한다. 농업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고정적으로 점취된 땅이 있어야 하며 그것은 외부에 대해 열린 공간이 아니라 고립된 공간이어야 한다. 농사를 지으려면 물을 가두고 도랑을 쳐야 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유목사회는 끝없이 움직이는 열린 공간을 생존의 필수적인 조건으로 한다. 정착 생활에 필수적인 상하수도 시설이나 관개시설은 유목사회의 개방성을 위협하는 것일 뿐이다.
 
넷째는 기본적으로는 농경사회의 폐쇄성에서 오는 것이면서 봉건제라는 정치, 경제 체계에 의해 더욱 강화된 것이기도 하지만 폐쇄된 공간 속에서의 생활을 위해 자기 완결성을 강조하게 되며 폐쇄된 공간 속에서의 긴밀한 유기체적 관계를 불가결하게 요구하게 된다. 
 
이에 비해 유목사회는 외부사회를 자신의 생존 조건의 하나로 하며 톱니바퀴와 같은 완결된 유기적 관계보다는 각 조직 사이의 다양하면서도 신속한 교통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다섯째로 농경사회는 관개의 필요성과 노동집약적인 전근대 농업의 특성상 상명하달식의 조직화를 필요로 한다. 이 조직화는 봉건제의 구조가 전형적으로 보여주듯이 '가'(家)라고 하는 사회조직으로 나타나며 사회의식(조직을 포함하는 것이지만)에서는 '례'(禮)로 나타난다. 동아시아에서 영어의 ‘state’를 '국가'(國家)로 번역한 데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국(國)은 '가'(家)가 확대된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농경사회가 다른 사회를 지배하고 그 지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는 철저하게 ‘가’와 ‘예’의 체계로 재편되어야 했다. 그리고 ‘가’와 ‘예’를 지탱해주는 이데올로기로서 유교, 특히 주자학이 강요되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 사회는 모두 무례(無禮)한 야만사회로 간주된다. 
 
이에 비해 유목사회는 그러한 ‘가’나 ‘예’의 체계가 없었다. 거기에는 끊임없이 이동하며 경쟁하는 부족 혹은 나라가 있을 뿐이었으며 칭기스칸과 같은 강력한 구심점이 마련되면 곧바로 그들의 압도적인 군사적 우위를 바탕으로 정복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유목사회가 다른 사회를 지배하게 되었을 때 필요한 것은 그 사회의 최고 지배자를 지배하는 것 뿐이었다. 그러므로 그 사회가 갖고 있던 기존의 질서와 이데올로기는 거의 그대로 유지되며 각 사회의 독자성과 다양성이 인정된다.

 
4절. 전근대 한의학의 봉건제적 특징
 
전근대 사회의 특징을 살피기 위하여 경제적인 측면 외에 정치적인 측면도 중요하다. 전근대 동아시아 의학의 배경을 알기 위하여 본고는 주(周)나라 당시의 봉건제적 상황을 검토한다.
 
주나라의 봉건제는 은나라의 '읍'(邑)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읍은 물가에 가까운 남향의 구릉 위에 수혈의 주거취락으로 형성되고 거주지는 동조동혈(同祖同血)의 관념 하에 공동생활을 영위하는 씨족 내지는 분족(分族)이었다. 
 
읍에는 씨족적 결속을 위한 각 씨족마다의 사당이 있었고 읍 주위에는 경지나 목지, 임야 등이 있고 경지는 '전(田)이라고 하여 읍의 공유지가 있었다. 이 경지는 다른 목지나 임야 등과 함께 씨족 공동체에 의해 공동체적으로 소유되어 공동적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읍은 상호간에 연합하여 씨족연합으로 성장하여 원시국가를 형성한다. 이것이 이른바 읍제(邑制)국가다. 읍제국가의 지배체제는 지배적인 씨족에 의한 지배 피지배 관계였다. 
 
이러한 읍제국가라는 틀 속에서 주나라로 왕권이 교체되게 되며 주나라는 새로운 지배질서로서 은나라 말기에 발전되어 오던 '봉건제'(封建制)와 '종법제'(宗法制)를 확립한다. 봉건제와 종법제는 중국의 서북지역 모퉁이에 거주한 낙후된 가족으로 출발한 주왕조로서 광대한 동방의 선진 지역을 통치할 경륜이 없었기 때문에 나온 자구책이기도 했다. 
 
‘봉건’은 주왕실이 새로이 자기의 지배권내에 편입된 분족(分族)을 그 지역의 지배자로서 파견하여 설치케 한 것이었으며, 그 분족의 중심이 된 것이 제후(諸候)다. 제후의 분봉은 실제로는 가족조직을 지방 행정조직으로 대체하여 새로운 점령지를 통치하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제후가 '봉건'(封建)된 지역을 '국'(國)’이라고 하며, ‘국’이란 바로 성곽으로 둘러싸인 읍을 말한다. 
 
따라서 봉건이란 주왕실을 분읍(分邑)과 동시에 분족(分族)의 과정이었다. 이처럼 새로운 점령지를 통치하는 방식을, ‘읍(邑)을 설치하고 종(宗)을 세운다’고 한다. 이렇게 분읍된 읍은 다시 분족되어 도(都)라는 읍이 되고 국이나 도가 아닌 읍을 비(鄙)라고 했는데, 이러한 주실(周室), 국(國), 도(都)를 결속시키는 원리는 분족이라는 혈연적 연대의 관념이며, 현실적 혈연관계가 없는 경우에는 의제화(擬制化)되었다. 
 
이러한 혈연적 연대를 나타내는 것이 '종'(宗)이었으며, 주실을 종주(宗周)라고 하였다. 종묘(宗廟), 종족(宗族) 등과 같은 것은 모두 이러한 관념에 기초한 것이었으며 이 관념을 규범화한 것이 바로 종법(宗法)이라고 하는 예제(禮制)였다. 
 
주나라에서 봉건제와 종법제가 시행되었지만 사회를 유지하는 기본은 은나라에서부터 시작된 읍제국가의 원리인 씨족 상호간의 지배 - 피지배 관계였다. 따라서 읍의 전답은 지배자층인 씨족의 공동체적 소유에 속하고 궁극적으로는 주실의 소유로 간주되었다. 여기에서 왕토(王土)사상이나 왕신(王臣)사상이 성립한다. 
 
그러나 이러한 읍을 단위로 하는 계층적 지배관계에서 왕 또는 제후의 지배력이 반드시 절대적인 것은 아니었다. 왕이나 제후의 정치적 지위는 동족(同族)에 의해 보장된 것인 만큼 국인(國人)이라고 불린 그 종족의 지배자층에 의해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주왕(周王)은 ‘국’의 백성 혹은 제후가 도민(都民. 都의 피지배층)을 직접 지배할 수 없었다. 다시 말하자면 왕권은 아직 신장되지 않았으며 중국의 중앙집권적 통일국가라는 실체도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성립된 봉건제와 종법제는 그 기초가 읍이었으며 읍은 다시 ‘가’라는 체계를 기초로 하고 있다. 읍의 지배적인 친족 관계는 부자간의 차별과 남녀간의 차별, 적서(嫡庶)간의 차별이다. 이러한 차별은 뒤에 유교적 례(禮)의 질서를 만드는 기초가 된다. 



한의학은 ‘아직’ 살아남은 거의 유일한 동아시아 과학


5절 전근대 한의학의 황로학적 특징
 
주나라의 易인 『주역』은 소위 고대적 중국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그 사상적 근원이 된다. 『주역』은 역사상 다양하게 해석되어 왔지만 오늘날 이해하고 있는 『주역』의 모습은 전국시대의 『주역』이다. 그러나 『주역』에는 전국시대에 발전한 陰陽이나 五行의 사상이 없다. 특히 오행은 주나라의 문화권에서는 배척하던 것이었다.

음양오행사상은 非周文化圈에서 연원할 수밖에 없었다. 이 비주문화권은 바로 산동성 북쪽을 포함한 발해만 주위의 여러 나라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 중심은 齊나라였다. 이곳은 周 문화와는 다른 黃老學이라는 독자적인 문화가 성립한 지역이다. 바로 여기에서 음양과 오행이 결합하여 음양오행이라는 동아시아 고유의 사고체계가 탄생했던 것이다. 황로학은 이를테면 해안문화라고도 할 수 있는 것으로, 이는 소위 내륙문화라고 할 수 있는 주문화와 여러 측면에서 차이점을 갖고 있다. 
 
황로학의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지만 황로학은 人事를 중시하는 주문화에 비해 자연(우주)과 사회, 그리고 몸의 관계를 총체적으로 파악한다. 인사를 중시하는 전통에서는 의학이 발전할 수 없다. 그런 전통 속에서 의학은 단순히 병을 고치는 기술에 불과한 것이다. 
 
황로학에서의 天은 우주, 자연, 역사, 인생 등을 포함하며 이는 氣象이나 物象을 통해 드러난다. 황로학에서의 ‘천’은 이를테면 자연의 질서다[自然天]. 그것은 사람의 자의적인 뜻으로 변화될 수 없는 것이며 그 질서는 예를 들어 봄여름가을겨울, 風寒暑濕燥火, 자연에서의 다양한 변화를 통해 드러난다.

사람은 그 스스로 자연의 하나로서 이러한 질서에 따라 함께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유체계 속에서 건강은 자연의 흐름에 따를 때 얻어지는 것이다.  


반면 주문화에서의 ‘천’은 역사적 의지나 사회적 운명을 말하며 그것은 ‘덕(德)’이나 백성의 ‘民心’ 등으로 드러난다[人格天]. 맹자는 마음[心]을 다하면 性을 알 수 있고 ‘성’을 알 수 있으면 ‘천’을 알 수 있다고 했다.

결국 주문화에서 ‘천’은 도덕의 근거가 되는 것이며 이런 의미에서 ‘천’은 사람의 마음과 같은 수준에서 자의적 해석이 가능하게 된다. 그러므로 가뭄이나 홍수, 유행병, 전염병과 같은 재해가 일어났을 때 이를 곧바로 정치적 상황과 연결한다. 그것이 바로 역사상 지속적으로 나타났던 災異論이다. 재이론은 흔히 미신이라고 치부되지만 그렇게 단순한 것은 아니다.

다음의 글은 재이론의 본질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무릇 하늘과 인간은 한 가지 기로 되어 있고, 기가 통하기 때문에 感하는 바가 있으면 반드시 應하는 것은 자연스런 이치입니다. ... 상서란 하늘의 기쁨이며, 變이란 하늘의 노함인 것입니다, 하늘의 기쁨과 노함이란 하늘의 기쁨이나 노함이 아니라, 바로 세상 사람들의 기쁨과 노함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기쁨과 노함은 임금님의 하시기에 달려 있습니다.

임금님의 하시는 일이 至善이 아님이 없다면 세상 사람들은 반드시 기뻐할 것이고, 기쁜 마음은 和氣를 낳아 이 화기가 위와 아래에 충만할 것입니다.”

첫째, 재이론은 황로학에 비하면 소박한 수준이지만 자연과 사회, 그리고 몸의 보편적 연관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러한 보편적 연관이 전제되지 않으면 어떤 사회에서도 자연이나 몸에서 일어나는 재이를 곧바로 정치와 연결시킬 수 없다. 재이론은 자연과 사회를 객관적인 대상으로 분리하여 보지 않는 전근대적 사유의 한 전형을 보여주는 셈이다. 
 
둘째, 재이론은 주로 왕권과 臣權 사이에서의 정치투쟁의 수단이었다. 재이론이 논의되던 시기의 천문이나 의학 등의 문헌에서는 재이를 정치와 직결시켜 설명하지 않는다. 재이론은 대개 역사서와 같은 정치 문헌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7) 당시의 사람들이 미개하여 자연이나 몸에서의 재이를 정치와 직결시킨 것이 아니라 주문화의 전통을 이어받아 ‘천’의 의지가 자연이나 몸에서 드러난 것으로 해석한 것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한 민심 조작용으로서 재이론이 역할했던 것이다. 황로학의 전통 속에 있는 한의학에서는 유행병이나 전염병의 원인을 자연 질서 자체의 어그러짐이나 자연의 질서를 어긴 사람의 잘못으로 말하고 있을 뿐이다. 
 
황로학을 道家와 法家의 결합이라고 평가하는 데에서도 알 수 있듯이, 황로학은 자연의 질서를 중요하게 여기면서 정치에서는 엄격한 법의 질서와 힘에 의한 질서의 유지를 강조한다. 정치 역시 하나의 자연적 흐름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일견 자연의 질서와 인간의 질서, 곧 법은 서로 상반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황로학에서의 자연은 대상화된 자연의 법칙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사회와 같은 차원에서 파악된 것이며, 사람 역시 그러한 질서의 하나라는 점을 상기해 보면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법 역시 자연의 질서로 이해된다. 
 
이에 비해 주문화에서는 禮를 중시하고 德을 숭상한다. 법은 일정한 사회적 틀[刑]을 벗어나는 것에 대해 강제하지만 예는 일상생활을 규제하며 덕은 그 사람의 마음가짐까지 규제한다. 물론 황로학에서 마음가짐에 대해 말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황로학에서는 무엇보다도 마음을 비울 것을 요구한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아무런 의식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외부의 대상에 의해 내 마음이 흔들리거나 어느 하나에 집착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자연의 질서를 올바로 볼 수 있고 거기에 올바로 대처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비해 ‘예’와 ‘덕’은 항상 타인에 대한 것이다. 내가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것[修身]은 자연의 질서와는 직접적인 관계없이 집안[家] 사람들을 다스리기 위한 것[齊家]이며 나아가 나라 사람들을 다스리고 천하의 사람들을 다스리기 위한 것이다[治國平天下]. 몸을 다스리는 원리와 집안을 다스리는 원리, 나라와 천하를 다스리는 원리는 모두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같다. 그것은 예에 따르면서 덕을 키우는 것이다. 
 
황로학의 또 하나의 특징은 다양성의 포용에 있다. 이러한 다양성은 그 발생 초기에서부터 공자로부터 ‘怪力亂神’으로 불렸으며 맹자는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제나라 동쪽 野人들의 말’이라고 하였다(『맹자』 「만장」 상). 육로에 비해 자유로운 해상교통을 통해 해안문화는 다양한 문물을 받아들였으며 그런 과정에서 경제만 발전한 것이 아니라 풍부한 문명도 함께 발전하였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주문화권에서는 왕도가 무너지니 제자백가가 분분히 출현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나 황로학은 바로 그러한 다양성을 포함하여 용광로와 같이 새로운 사상을 융합해내었다. 그리고 그러한 황로학의 結晶이 바로 한의학이었다.

 
6절 한의학의 탄생 
 
한의학은 바로 이러한 총체적 맥락에서 형성되어 발전되어 온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농경사회와 그에 기초한 봉건제의 세계관과 방법론을 통하여 성립한 것이 바로 한의학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의학은 자기 완결적 구조를 지향하며 이론의 유기적 정합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이론이 그러하듯이 한의학이 오늘날의 모습으로 나타나기까지에는 외부와의 교류가 없을 수 없었다. 그리고 전근대로부터 하나의 국가가 오늘날의 근대적 민족국가로 일직선상의 발전을 해온 것이 아닌 것처럼 한의학 이론의 형성과정에는 다양한 종족과 나라 사이에서의 경합과 융합이 오랜 시간에 걸쳐 진행되었다. 
 
본고에서는 한의학의 탄생이 지리사회학적인 융합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을 함의한다. 다시 말해서 한의학은 농경문화인 황하와 양자강지역에서 발생한 의학과 유목문화인 북방의 의학 , 유목문화를 계승하면서 농경문화를 집대성한 발해만을 둘러싼 지역의 의학, 인도의학 등이 융합되어 주로 중국과 한국, 그리고 베트남과 일본에서 발전된 의학체계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융합의 중심은 발해만을 중심으로 한 지역의 의학이었다. 

이러한 지리적 융합과 더불어 의학은 인류학적 역사의 총체적 산물이다. 흔히 생각하듯이 한의학은 단순한 인류의 의학적 경험을 종합한 경험의학이 아니다. 그것은 장구한 세월 동안 축적되어 온 인류의 경험과 이론을 종합한 것이다. 북방의 유목문화가 쌓아온 유산과 주문화로 대표되는 농경문화의 유산이 발해만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 융합되어 나타난 결정이 바로 한의학이다. 
 
한의학은 춘추전국시대 해안문화의 황로학이라는 토양 속에서 발원하여 한나라, 특히 後漢 때에 현재와 같은 체계를 구축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거기에는 고대로부터 내려온 무수한 임상경험이 있었다. 그 중에서 중요한 인물은 잘 알려진 扁鵲이다.

편작에 관한 기록을 보면 이미 그 때에 한의학의 기본적인 진단법이 어느 정도 완비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으며 치료에서는 침을 주로 사용하고 있는데, 문헌의 기록으로는 외과적인 수술을 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경험과 이론이 축적되어 『황제내경』을 이루게 된 것인데, 대체로 진한시대에는 한의학의 이론과 더불어 임상에 관한 대부분의 기본적인 내용이 정리된다. 
 
한의학에서 쓰이는 약재를 本草라고 부르는데, 이는 약재의 상당 부분이 식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약재로 쓰이는 것은 식물만이 아니고 동물과 광물은 물론 몸의 배출물이나 몸의 일부(예를 들면 머리카락이나 치아 등)도 사용된다. 그럼에도 약재를 가리키는 말로 본초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한의학이 기초하고 있는 농경사회가 식물을 중심으로 생활하고 있었던 사정을 보여주는 한 예이다. 이러한 약재에 관한 지식은 東漢 시대에 『神農本草經』이라는 책으로 집대성된다.
 
한편 남부 지역에서는 고온 다습한 지역적 특성상 각종 전염병이나 유행병이 많았고 이런 사정으로 외부의 나쁜 기운에 의해 생긴 질환의 진단과 치료를 집대성한 『傷寒雜病論』이 나온다. 이처럼 한의학은 다양한 문화와 풍토 속에서 축적된 경험을 황로학이라는 틀 속에서 융합해낸 총체적인 이론 및 임상체계다.

여기에는 독자적인 진단 체계와 변증 체계, 그리고 치료체계가 있으며 치료의 방법으로는 침구와 약물요법은 물론 기공이나 방중술, 음악과 미술, 문학 등 거의 모든 분야를 포괄하는 방대한 체계인 것이다. 
 
한의학은 그 출발에서부터 유목문화와 농경문화, 그리고 해안문화를 아우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체계를 이룬 이후에도 불교의학(아유르베다 의학), 한의학과 출발을 같이 했지만 독자적인 체계를 이룬 도교의학, 그리고 근대에 와서는 근대 서양의학과의 만남을 통해 끊임없는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특히 근대 서양의학과의 만남은 한의학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 충격은 근대 서양의학이 거의 모든 면에서 전근대의 한의학과 배치될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근대화가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지화와 함께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더 강화되었다. 불교가 중국에 도입되었지만 불교는 기존의 문화를 배척하지 않았다. 오히려 불교는 그것이 도입된 지역의 전통 문화와 융합되어 새로운 모습의 불교로 재탄생하는 면모까지 보이고 있다.

유목민의 국가인 金元시대에는 오히려 한의학이 더욱 융성하여 전근대의 한의학 이론을 한 단계 높인 것으로 평가받는 金元四大家를 배출하였다. 그러나 제국주의와 함께 들어온 근대 서양의학은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유일신을 강요하였으며 기존의 전통문화를 배척하고 나아가 말살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한의학은 ‘아직까지’ 살아남은 거의 유일한 동아시아의 과학이다. 
 
오늘날 우리는 ‘근대’라는 관점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탈근대를 말하면서도 거기에는 근대의 입장에서 보는 전근대만 있을 뿐 전근대를 전근대로 보는 시각은 없다. 한의학을 올바로 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전근대를 전근대로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이는 근대 서양의학의 담당자에게만 해당하는 일은 아니다.

전근대의 전통 속에서 근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일일 뿐만 아니라 특히 한의학을 담당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절실한 시각일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한의계의 변화는 자신의 역사를 고려하지 않은 근대서양과학 일변도의 시각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제도적, 법적 의미에서가 아니라 현실적인 의미에서 자신의 전통을 갖고 있는 세계의 모든 국가에서는 의료가 다원화 되어 있다. 이는 스스로 근대화를 이룬 나라에서조차 근대와 전근대의 문제가 완전하게 해결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해주며 또 어떤 면에서 그것은 해결되어서도 안 되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현실적으로만이 아니라 법적으로도 또 하나의 의료제도로 존재하는 한국의 한의학의 역사를 올바로 아는 일은 오늘날의 의료제도와 미래의 의료에 대한 전망에서 불가결한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한의학의 역사와 철학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7절 철학적 사유구조의 차이에서 오는 개념의 혼란
 
모든 개념과 이론은 그것이 만들어지고 실천되는 사회의 산물이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든 이론이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다양한 차원에서 실천되어야 하고 이때 그 실천은 항상 총체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모든 실천은 자연과 사회와 사람의 몸이라는 조건을 항상 동시적으로 포함하며 그런 의미에서 자연과 사회와 몸 사이의 유기적인 관계가 깨졌을 때는 더 이상 그 사회에 적합한 이론 혹은 실천으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순한 정책이나 간단한 기술에 불과하게 보이는 것일지라도 거기에는 항상 자연과 사회와 몸에 대한 관계가 동시적으로 실현되어 있는 것이다. 어떤 정치나 경제 이론 혹은 그 이론에 기초한 실천이 단순히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에만 기반하고 있다면, 그래서 이를테면 자연에 대한 관계를 고려하고 있지 않다면 그 이론이나 실천은 머지않아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파괴하고 인간과 사회의 관계를 파괴하여 이론이나 실천 자체가 파기되든가 아니면 자연 혹은 사회, 나아가 몸이 파괴되는 수밖에 없다. 

몸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실천을 의미하는 의학 역시 그 시대의 아들일 수밖에 없다. 오늘날 생명복제나 안락사와 같은 문제가 의학의 주요한 쟁점으로 떠오르는 것은 의학 자체가 사회적인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단순히 잘못된 혹은 일정 定度를 넘어선 실천의 결과로서 윤리문제가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 의학 이론이나 실천 자체에 이미 사회적인 문제를 야기할 여지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목이 마르고 나서 우물을 파고 전쟁이 나서야 무기를 만드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으려면 그러한 가능성을 미리 없애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바로 이런 데에 있다. 역사는 단순한 史實이 아니라 그러한 역사적 사건이 벌어진 총체적 연관을 분석함으로써 현재를 되돌아보고 나아가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의학의 철학적 사유구조를 알아보는 것은 한의학이 과거의 사회에서 실천되었던 총체적 연관을 분석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러한 분석을 통하여 현재의 한의학과 또 하나의 의학 체계인 근대 서양의학의 모습, 그리고 양자의 관계를 살펴보고 현재를 되돌아보면서 미래 의학을 발전적으로 축조할 수 있을 것이다. 
 
사유구조의 차이는 번역에서 극명하게 볼 수 있다. 과거의 역사에 접근할 때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은 전근대를 보는 근대의 시각을 자각하는 것이다. 모든 연구는 일정한 틀을 전제로 할 수밖에 없다. 서양의 과학(science)이라는 말이 초기에 ‘格物’로 번역되었던 것처럼 모든 과학적 연구는 일정한 틀을 전제로 한다.

격물이란 物을 格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대상을 일정한 액자, 틀 속에 넣는 작업이다.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은 틀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연구자 자신이 일정한 틀을 갖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음을 자각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반성적 연구가 필요한 것이다. 그 틀은 사회적으로는 그것이 적용되는 사회의 역사적 발전단계에 의해 규정되며 주체의 측면에서는 그것을 적용하는 주체의 실천적 입장에 의해 결정된다. 이렇게 본다면 틀 자체의 진리성은 역사적이며 상대적이다.
 
번역의 문제는 이러한 틀의 차이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예이다. 본고에서는 이를 전근대 의학에 없었던 ‘신경’이라는 번역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그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알아보기로 한다. 
 
飜譯은 말 그대로 뒤집는 것이다. 뒤집어서 뜻을 가리는 것, 고르는 것이다. 그러나 번역은 손바닥 뒤집듯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번역이 어려운 이유는 번역의 대상이 되는 언어가 특정 시대와 사회라는 바탕에서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쏘싸이어티society’라는 말은 오늘날 ‘社會’로 번역된다. 물론 社와 會는 기존에 있던 말이지만 ‘사회’처럼 연용해서 쓰인 예는 드물며 더욱이 오늘날의 사회라는 의미로는 사용되지 않았다. ‘社’는 원래 토지의 신을 의미하여, 새 왕조를 세우면 반드시 토지의 신인 ‘사’와 곡물의 신인 ‘稷’에 제사를 지냈기 때문에 社稷은 곧 국가를 의미했다.

행정단위로는 25家 또는 사방 6里를 ‘사’라고 했다. 조선 중기 한 ‘家’의 구성원 수가 100-200명을 상회하기도 했던 사실에 비추어 보면(미암 유희춘의 경우) 그런 ‘가’가 25개씩 모여 있는 ‘사’는 매우 큰 조직인 셈이다. 또 사회에서의 ‘會’는 원래 고기와 같은 음식을 담아 요리를 할 수 있는 그릇을 의미하며, 여럿이 함께 모여 밥을 먹는다는 데서 모인다는 말로 뜻이 넓어졌다. 이처럼 ‘사’와 ‘회’는 각각의 의미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만들어진 말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넓은 의미에서든 좁은 의미에서든 전근대 사회에 도입된 ‘사회’라는 말은 근대적 개인의 결합을 기반으로 한 관계에서 형성된 관계를 말한다는 점이다. 이에 비해 전근대 사회에서는 당연히 근대적 개인이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이런 번역어들이 당시에 이해되기 힘들었음은 자명한 일이다. 
 
왜냐하면 전근대에서의 사회는 개인의 결합이 아니라 ‘家’의 결합이었고 그것도 봉건제를 바탕으로 하는 결합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이라는 의미의 ‘自’나 ‘己’라는 단어는 있었지만 그것은 독립된 사회적 존재로서의 개인이 아니라 ‘가’에 속한 구성원으로서의 개별적 존재에 불과한 것이었다.

특히 나를 가리키는 ‘我’ 자의 어원은 낫처럼 생겨서 벨 수 있는 무기인데, 글자 속의 ‘戈’는 적이 아니라 아군 혹은 공동체 내의 배반자를 처단하거나 결속력을 다지기 위해 쓰였던 무기였고 동물을 犧牲으로 쓸 때도 썼다. 희생 역시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기 위한 것이다. ‘我’는 오늘날 나를 의미하는 글자지만 원래의 의미는 ‘우리’라는 공동체를 의미하는 글자였던 셈이다.

따라서 전근대에서 ‘가’를 떠난 개인은 있을 수 없었다. 오늘날에도 부모와 자식의 인연을 끊는다는 의미의 ‘호적을 판다’는 말이 있지만, 당시로서는 호적에서 빠지는 것은 곧 사회적인 의미에서만이 아니라 실제로 육체적인 죽음까지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마치 전근대 ‘사회’에 근대적 개인으로 구성된 사회가 있었던 것처럼 착각한다. 
 
‘자연’이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전근대 문헌에서 자연은 오늘날의 ‘네이춰nature’의 번역어가 아니다. ‘자연’은 스스로 그러함, 자연스러움이라는 의미로, 여기에는 오늘날의 자연도 포함되지만 그것은 좁은 의미의 자연만이 아니라 人事 등을 포함하는 더 넓은 개념이다.

외부에서의 충격이나 자극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운동을 하면서 거기에 일정한 법칙, 곧 道를 실현하고 있는 것, 그러면서도 그 실현이 자연스러운 것이 바로 자연이다. 그러므로 ‘道法自然’이라고 하면 “도는 스스로 그러함을 본받는다”는 의미로, 도는 자연에서, 스스로 그러함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라는 의미다. 
 
또한 전근대의 ‘자연’은 명사적으로 사용될 경우에도 주체인 나와 분리된 대상이 아니다. 곧 ‘자연’은 주체와 대상의 합일을 전제로 하고 있다. 전근대의 ‘자연’은 이를테면 내 몸 속으로 들어온 자연이며 내 마음까지 투영된 자연이다. 이에 비해 ‘네이춰’는 주체와 대립하는 대상이면서 정신과 대립한다. 
 
氣의 경우는 번역의 어려움이 더 크다. 우리는 ‘氣’를 그냥 ‘기’라고 하지만 영어로는 ‘vital force’ 혹은 ‘vital energy’ 등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영역에도 문제는 있지만 적어도 ‘氣’를 ‘기’라고 그냥 말하는 것보다는 한 단계 올라선 번역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영역된 용어는 적어도 기를 외국어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말을 외국어로 인식하는 것과 자국어로 인식하는 데에는 큰 차이가 있다. 외국어로 기를 보게 되면 적어도 기를 반성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설혹 기 본래의 의미는 알 수 없거나 일면적인 이해에 그친다고 해도 대상을 대상화할 수 있다는 것은 곧 자기 자신에 대한 자각을 의미한다.

그러나 ‘氣’를 모국어로 보게 되면 ‘氣’ 본래의 뜻과 기존의 모국어로서의 기의 뜻이 뒤섞이게 되어, 마치 ‘nature’를 자연이라고 번역하면서 본래의 ‘自然’이라는 뜻을 혼동하는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온다. 이런 점에서는 ‘氣’를 차라리 ‘Ch'i’ 같은 방식으로 표기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수도 있다.



‘해체신서’는 무엇을 해체했는가?

‘해체신서’(1774)는 일본에 번역된 최초의 서양 해부학 책이다.

이 책은 서양의 해부학이 본격적으로 동아시아에 소개되었다는 점에서도 그 의의가 크지만 한국이나 중국에서 오늘날에도 사용되고 있는 기본적인 의학 용어를 번역해냈다는 점에서도 그 의의가 크다. 또한 일본으로서는 이 책을 계기로 네덜란드의 학문인 난학(蘭學)이 대중화되면서 본격적인 근대 서양문물의 도입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에서도 큰 의의를 갖는다. 
 
일본에는 18세기에 들어서면서 실용성을 추구하는 내재적 흐름도 있었지만 난학은 이를 강화하고 발전시켜 동양에서는 유래가 없을 정도의 근대화를 이루어낸 오늘의 일본이 있게 한 바탕이 되었다는 점에서 ‘해체신서’는 적어도 일본에서는 근대화의 상징이라고도 할 만한 책이다. 여기에서는 이 책의 발간을 둘러싼 사정과 그 의미를 알아봄으로써 전근대와 근대를 대비하고자 한다. 
 
이 책은 독일의 쿨무스(Johann Adam Kulmus, 1689-1745)가 1722년에 펴낸 책(Anatomische Tabellen)의 네덜란드 번역서(Tabulae Anatomicae. 1743)를 기본으로 번역한 것이다. 네덜란드어-일어 사전 하나 없는 상황, 거기에다 그나마 네델란드어를 안다고 하는 마에노 료오다쿠(前野良澤, 1723-1803)가 겨우 7, 800 단어 정도를 알고 있는 상황에서 번역의 어려움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려움이 문제가 아니라 이런 정도의 상황이라면 번역은 거의 무모한 일이었겠지만 이들은 3년 반 정도의 짧은 시간 내에 번역을 마치고 출판을 한다. 그런데 이처럼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하도록, 이들을 몰아넣은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오늘날 한국에서는 서양 근대의대에서만이 아니라 한의대에서도 해부학은 기초과정으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해부학의 도입과 그 의미에 대해서는 그만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규경(李圭景, 1788-?)에 의해 최초로 아담 샬(湯若望. Joannes Adam Shall von Bell, 1591-1661)의 ‘주제군징(主制?徵)3)’의 내용이 ‘서의(西醫)’로 소개되었고 그 뒤 최한기(崔漢綺. 1803-1872)는 홉슨의 ‘전체신론(全體新論)’을 비롯한 의서오종(醫書五種)을 소개하였다. 이 중 대표적인 ‘전체신론’은 해부학을 포함한 서의의 전반에 관한 해설서였다. 
 
그러나 이런 의서의 소개가 당시 대부분의 의사들에게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서양에서도 그랬지만 해부학 자체가 아직은 의학의 영역과 직접적인 연관을 갖고 있지 않았으며 더군다나 이런 서적이 번역, 출판되었다고 해서 곧바로 그것이 도입된 나라에 적응하여 발전해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당시 조선을 비롯한 중국에 소개된 서의서(西醫書)들은 대부분 사상가들의 관심에 그쳤다. 

 
‘신경’이라는 번역어 
 
문법도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의 번역은 모든 것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지만 ‘해체신서’를 번역한 사람들이 부딪친 가장 큰 어려움은 아마도 기존에 없던 개념을 만드는 일이었을 것이다. 사실상 번역은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문제다. 모든 언어는 그 언어가 바탕으로 하고 있는 사회의 문화를 담고 있다.

사회가 다르고 따라서 문화가 다른 언어를 번역한다는 것은 곧 번역하려는 언어가 담고 있는 문화를 어떻게 인식하고 그것을 자신의 언어, 곧 자신의 문화로 옮기는가 하는 것, 그리고 이런 과정 전체를 어떻게 인식하고 실천하는가 하는 것이 문제로 된다. 
더군다나 자신의 사회에 전혀 존재하지 않던 개념을 옮긴다는 것은 언어적으로 새로운 창작일 뿐만 아니라 그러한 새로운 개념, 곧 새로운 인식체계와 문화를 자신의 사회에 도입하게 된다는 의미를 갖는다. 
 
예를 들어 유일한 인격신과 같은 신(神)의 개념이 없었던 중국이나 한국의 전근대에 기독교의 신이라는 단어를 번역한다는 것은 단순한 언어상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현실에서는 그 신의 승인 여부를 둘러싸고 분열되는 사회 집단 간의 사상적인 대립을 유발할 수 있는 문제였으며 이러한 사상적 대립은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대립을 유발하거나 반영한다. 실제 신이라는 개념의 도입은 역사상, 사상적인 대립을 넘어서 그 나라에서는 사회 집단 간의 분열과 분쟁을 야기했고 국가 간에서는 제국주의와 식민지주의를 초래했다. 
 
이러한 예는 신만이 아니다. 성(性. sex)이나 예(禮)와 같이 그 문화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곧 사람들이 몸으로 바로 느낄 수 있는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의학이다. 
 
‘해체신서’를 번역한 사람들을 괴롭혔을 단어 중의 하나가 ‘신경(神經)’이라는 단어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신경은 전근대의 동아시아에서는 없었던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을 포함하여 동아시아의 전근대에서도 분명히 해부가 있었고 또 분명히 전쟁과 같이 인체의 속을 들여다 볼 기회가 많았음에도 신경이라는 개념은 나오지 않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는 전근대 사회의 이론 자체가 해부를 기초로 한 체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의학은 기의 의학이다. 기는 객관적으로 독립해서 존재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그런 것들을 몸을 통해 느낀 것이다. 그러므로 기 의학에서는 해부와 해부학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일본에서 해부학이라는 관념이 생긴 데에는 당시 일본의 사상적 풍토가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본은 18세기가 되면서 사변적인 성리학을 부정하고 실증적인 경향으로 흐른다. 일본에서 흔히 고방파(古方派)라고 부르는 고의방파(古醫方派)의 ‘상한론’ 중시 경향은 이러한 사상적 흐름과 직접적인 연관관계가 있다. 이들은 내경의학(內經醫學)의 아들이라고 할 수 있는 소위 ‘이주(李朱)의학’을 강하게 비판한다. 
 
야마와끼 도우요우(山脇東洋, 1705-1762) 역시 이러한 흐름의 하나로, 그는 의학을 공부하면서 가졌던 의혹을 해부를 통해 해결하고자 하였다. 야마와끼에 의한 해부학 책, '장지(藏志)'(1759)라는 책은 이러한 흐름의 한 결절점이었다. 물론 일본에 '상한론'을 중심으로 한 의학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 이전에는 오히려 '내경'을 기본으로 의학이 형성되었으며 이런 점에서는 동아시아 3국이 거의 비슷한 체계를 갖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8세기가 되면서 3국 공통적으로 전근대적 사유에 대한 회의와 의문이 일면서 후에 ‘근대적’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사상적 흐름이 나타난다. 
 
이런 상황에서 '장지'가 나오자 비판이 없을 수 없었다. 심지어는 같은 고의방파 내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요시마스 토오도(吉益東洞, 1702-1773)는, 해부학의 지식은 병의 치료에 어떠한 가치도 가지지 않는다고 했고, 사노 야스사다(佐野安貞)는 '비장지(非藏志)'(1760)를 출판하여 죽은 내장의 관찰은 전혀 의미가 없다고 했다. 
 
즉 ‘장(藏)’의 의미는 외적인 형태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 가지 기능을 가진 기(氣)가 들어 있는 장소이고 기가 없어진 후에는 빈 통과 같은 존재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사노의 견해다. 그는 기를 ‘기능을 가진’ 어떤 것이라고 보았다. 장은 단순히 그런 기능을 갖는 기가 들어 있는 장소일 뿐이다. 
 
기는 실체가 아니라 기능이라는 것이며 대부분의 근대적 관점에서 기능과 실체를 하나의 짝으로 보는 것과 달리 기능과 실체는 서로 분리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발언은 전근대에서 기를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사람이 죽으면 기가 없어지고 기가 없어지고 난 뒤의 그릇(장부)은 더 이상 담을 것이 없기 때문에 아무 의미가 없다. 기는 몸으로 느껴지는 기능 내지는 효과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런 관점에서는 해부나 해부학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해부학은 기 의학인 한의학(漢醫學)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해부는 병의 치료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요시마스의 말은 바로 이러한 기 의학의 관점에서 나온 말이다. 
 
신경이라는 말은 기존의 의학에 없던 개념이다. 신경이라는 개념이 없었다는 것은 신경을 의학의 대상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의학의 대상은 신경이 아니라 기의 흐름인 경락이었다. 이에 비해 근대 서양의학은 신경을 비롯한 해부학의 내용을 의학의 대상으로 한다.
 
‘해체신서’에서의 ‘해체’는 ‘장분(臟分)’을 말한다. 장을 나누어 갈라본다, 해부(解剖)한다는 말이다. ‘해체신서’에 따르면 해부의 방법은 여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뼈와 관절을 조사하는 것이고 둘째는 선(腺. 편도선과 같이 분비작용을 하는 기관)이 있는 장소를 조사하는 것, 셋째는 신경을 조사하는 것, 넷째는 맥관(脈管)의 주행과 맥이 닿는 곳을 조사하는 것, 다섯째는 장기(臟器)의 형상과 그 작용을 조사하는 것, 여섯째는 근육의 주행을 조사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해체신서’의 역자인 스기다 겐바쿠(杉田玄白, 1733-1817)는 선(腺)과 신경에 대해, 이것은 중국인도 지금까지 기술한 적이 없는 것이라고 주를 달고 있다. 또 혈관을 의미하는 맥관도 중국에서 말하는 것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이를 보면 스기다는 자신이 하고 있는 작업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스기다 등이 해부학 책을 번역하기로 한 것은 무엇보다도 당시 네덜란드의 뛰어나 기술에 대한 감명이었다. ‘해체신서’의 도판을 그린 화가 오다노 나오다케(小田野直武, 1749-1780)는 범례에서 이렇게 말한다. “생각컨대 네덜란드의 기술은 대단히 뛰어나다. 지식이나 기술의 분야에서 사람의 힘이 미치는 한 궁구(窮究)를 다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신속하게 세계에 은혜를 줄 수 있는 것은 의학이다”.
 
이러한 감명은 상대적으로 기존의 한의학(漢醫學)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중국의 치료법이나 학설을 연구해 보면 그것은 무리한 억지가 많고 더구나 모자란 곳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명백히 하려고 하면 점점 알 수 없게 되고 이것을 바로잡으려고 하면 더욱 틀려버리게 되어서 일상적으로 쓸 수 있는 치료법은 하나도 없다”.
 
'영추'에도 ‘해부해서 관찰한다’는 구절이 있고 또 해부도 분명히 이루어졌지만 제대로 전해지지 못하여 마시(馬蒔)나 손일규(孫一奎), 활백인(滑伯仁), 장중경(張仲景)이 말하는 삼초나 추절[椎節. 등뼈]에 관한 학설이 서로 엇갈린다(이상 범례)고 보는 것이다. 

 
'기' 철학의 해체 
 
그런데 ‘해체신서’를 번역하게끔 추동한 최대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현실에 대한 변혁 의지였다. 이들에게 기존의 한의학(漢醫學)은 완전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근본적인 한계를 갖고 있었다. 
 
이러한 판단의 근거는 무엇일까. 그것은 이들의 질병 관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이들은 기존의 한의학(漢醫學)이 갖고 있던 질병관, 곧 병은 자연 속에서 자연의 일부인 몸 안의 음과 양이라고 하는 기가 어긋난 것이 아니라 특정한 장소에 있는 몸의 구조의 이상에서 오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들이 이러한 질병관을 갖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역사적인 배경이 있다. 첫째는 기존의 한의학(漢醫學)이 외과가 아니라 내과를 중심으로 발달되어 왔다는 점이다. 한의학(漢醫學)은 기 의학이기 때문에 거기에서는 몸으로 느끼는 기가 중요한 것이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적 실체로서의 내장(內臟)과 신경은 의미가 없고 오로지 기의 작용 기전을 밝힐 수 있는 내경(內景)과 경락만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해부를 했어도 내장이나 신경을 보려고 하지 않았다(혹은 볼 필요가 없었다). 이런 점에서 외과라는 과목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구조적 실체에서 직접적으로 발생하는 질병, 예를 들면 골절과 같은 질환에서 일정한 한계를 보였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에 도입된 초기의 서양의학은 남만류(南蠻類)나 화란류(和蘭類)라고 하는 외과가 중심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렇게 도입된 외과는 의학만이 아니라 네덜란드의 학문과 문명을 가리키는 난학(蘭學) 전반에 대한 신뢰와 명성을 가져왔다. 
 
세 번째는 17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고의방파의 성립이다. 고의방파는 기존의 사변적인 한의학(漢醫學) 이론을 부정하고 오로지 병 자체의 진행과정과 그에 대한 치료에 중점을 두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내경’과 ‘상한론’이 재해석되고 수많은 저작과 논쟁이 꼬리를 물었다.

특히 고의방파를 만든 고또오 곤잔(後藤艮山, 1659-1733)은 모든 병은 하나의 기가 머물러 막혀서 생긴다는 일기류체설(一氣留滯說)을 주창했다. 이는 일견 전통적인 기 개념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그 속에서 한의학(漢醫學)의 기는 이미 부정되고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그에게는 일기(一氣)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특정한 장소에 머물러 막혀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이런 데서 복진(腹診)이 중요한 진단의 수단으로 발전한다. 이런 점에서 서양의 근대의학이 도입되기 이전에 일본에서는 단순히 서양의 근대의학을 받아들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기를 부정하면서 해부를 받아들일 내재적인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외에도 사상적인 측면에서 일본의 고학파(古學派)인 이토 진사이(伊藤仁齋, 1627-1705)와 오규 소라이(荻生沮徠, 1666-1728)의 영향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해체신서’를 번역한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열정은 바로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나왔다. ‘한 방울의 기름을 넓은 호수에 떨어뜨리면 그것이 퍼져서 연못을 가득 채우듯’이 ‘의도(醫道)’의 위대한 경전이자 위대한 근본[大經大體]인 신체의 내경(內景)을 다룬 책’을 하루라도 빨리 번역하여 세상에 퍼뜨리고 그럼으로써 치료에도 실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려는 열망이 이들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바로 이런 열망이 있었기에 네덜란드 언어를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들이 감히 번역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들의 열망은 단순한 해부학의 도입에 그치지 않았다.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해체신서’의 발행은 난학, 나아가 근대 서양의 문물을 본격적으로 도입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는 곧 일본 근대화(서구적 근대화)의 바탕이 되었다. 
 
그러면 한의학(漢醫學)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이 문제는 복잡하면서도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어서 다음의 과제로 삼기로 하고, 여기에서는 우선 질병관에서의 변화를 간단히 살펴보기로 한다. 
 
‘해체신서’를 번역한 사람들은 고의방파에 속했거나 그러한 흐름 속에 있던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질병관은 앞에서도 본 것처럼 병의 원인을 특정한 장소에서 찾는, 이를테면 질병국재론(疾病局在論)이라고 할 만 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들의 관심은 기의 상태가 아니라, 아마도 객관적 실체로서 인식했을, 기가 어느 장소에서 막혔는지에 있었다. 이렇게 되면 기는 질병을 이해하는데 과정에서 별 의미를 가질 수 없다. 이제 기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어떤 것이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해체학, 곧 해부학의 도입은 그동안의 한의학(漢醫學)의 단점으로 간주되는 외과를 보충하는 것은 물론 기를 배제한 내과의 성립을 가능하게 하는, 곧 한의학(漢醫學)을 근대 서양 의학화 하는 획기적인 계기가 된다. 결국 ‘해체신서’가 해체한 것은 단순한 인체가 아니었다. 그것은 철학의 해체였으며 나아가 한의학(漢醫學)의 해체였던 것이다.
-박석준의 의학철학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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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S'는 영어로 "미라클 미네랄 서플리먼트" 
우리말로는 "기적의 미네랄 보충제"라고 하면 될것 같다.

원래는 물 속의 세균을 죽이는 수질정화제로 쓰였다고 한다. 그것을 "짐 험블"이란 미국 학자가 우연한 기회에 물 속의 세균 뿐 아니라 인체 내의 병원균들도 박멸해서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짐 험블은 수질정화제를 질병 치료용으로 연구 개발해서 MMS라는 상당수 세균성 질환에 탁월한 효과를 보이는 대체 의약품을 발명하였다. 감기에서 암까지 대부분의 질병에 뛰어난 치료 효과를 보이기에 "기적의 미네랄 용액" 이란 이름이 붙었다. 

그러나 MMS가 점차 알려지고 의사들도 진료에 사용하기 시작하니, 수익 감소를 우려한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방해공작을 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MMS가 세계에 널리 퍼지지 못하고 사장될 것을 우려한 짐 험블은  MMS 제조법을 모두 공개해 누구나 만들수 있게 하였다.
 
- 아래 자료는 다음 MMS요법 카페에 있던 것이며 MMS에 대한 여러가지 정보를 추려서 요약한 것이다. 


21세기 기적의 미네랄 용액과 그 활용사례

원저자: 짐 험블
21 세기 기적의 미네랄 (Jim Humble 저) 요약 번역
본 요약서는 원본의 목차와 편집 방식을 따르지 않았으며, 일부 내용과 그림은 원본에 없는 내용이 있음을 밝힙니다.


제1부. MMS(Miracle Mineral Supplement)소개
 
1) MMS 의 발견 경위 
· 1996년. Jim Humble 이라는 사람이 금을 캐기 위해 남미의 Guyana 라는 나라의 한 정글로 들어감.

· 정글 속에서 2 명의 대원이 말라리아에 감염되어 쓰러지는 일이 발생함. 약품을 구하는데 걸리는 최소한의 시간은 이틀. 그것도 약이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는 상황. 지니고 있는 약품이라고는 수질정화제인 Stabilized Oxygen 몇 병.

· 순간, Jim Humable 은 ‘물 속에 있는 병균을 죽이는 수질정화제가 체내에 있는 병균이라고는 마다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 다급한 김에 Stabilized Oxygen을 몇 방울 떨어뜨린 물을 마시게 함.

· 4 시간 후, 놀랍게도 그 물을 마신 두 명의 대원 모두 증상이 완화되었고, 다음 날 정상적으로 일을 시작함. 
그 이후로도 정글을 돌아다니며 말라리아에 감염된 사람들을 치료해 줌.

도대체 Stabilized Oxygen에는 무엇이 들어있었나?
· Stabilized Oxygen 이라는 수질정화제는 지난 75 년간 미국에서 팔리고 있는 화학약품으로 현재도 건강식품상점에서 판매되고 있다.

2) Stabilized Oxygen
Stabilized Oxygen과 관련하여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은 이 화학약품이 그 명칭과는 달리 산소가 아닌 다른 물질을 생성시킨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산소는 생성되지 않는다.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어느 누구도 이 화학약품(Stabilized Oxygen)이 산소와는 완전히 다른 산화제인 과산화염소(Chlorine dioxide)를 생성한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이 과산화염소는 산소 보다 훨씬 효과적인 항균작용을 하나, 아쉽게도 Stabilized Oxygen이 생성하는 과산화염소의 양은 아주 적다.

· Stabilized Oxygen의 주요 성분의 화학공식은 'NaClO2'이다. 그리고 이를 Sodium Chlorite 라고 부른다. 얼핏 소금을 칭하는 이름처럼 들리지만, 사실 소금은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소금의 화학공식은 'NaCl'이고 이를 Sodium Chloride 라고 한다. Stabilized Oxygen 의 냄새를 맡아보면 염소(Chlorine) 냄새가 난다. 그러나 실제로는 염소와는 완전히 다른 과산화염소(Chlorine Dioxide)가 들어있다.
 
· Stabilized Oxygen, 즉 Sodium Chlorite 는 강 알카리성 물질로 중화될 때 상태가 불안정해지면서 산소가 아닌 과산화염소를 배출한다. 과산화염소의 화학공식은 ClO2다. 산소이온이 방출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는 이미 산화 기능을 상실한 이온 상태의 산소일 뿐 우리 몸에서 사용하는 산화제로서의 산소는 아닌 것이다.
 
3) MMS 란 무엇인가?
Sodium Chlorite를 용해시킨 Stabilized Oxygen은 물과 반응하여 아주 천천히 과산화염소를 방출한다. 통상 Stabilized Oxygen에는 3.5% Sodium Chlorite가 들어있는데, 내가 MMS라고 이름붙인 것에는 28%의 Sodium Chlorite가 들어 있다. 즉, Stabilized Oxygen보다 8배가 강력한 항균솔루션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식용 가능한 산(예:구연산)의 첨가로 과산화염소가 지속적으로 방출되게 함으로써 그 효과를 더욱 강력하게 하였다.
 
4) 과산화염소(Chlorine Dioxide)란?
염소(Chlorine)와 과산화염소는 약 100 년 이상 소독제로 사용되고 있는 화학약품으로 거의 모든 병원균을 파괴하는 것으로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이 두 물질은 지난 50 년 동안 정수시스템에 사용되어 오고 있고, 최근에는 과산화염소가 염소보다 더 많은 장점을 갖고 있어서 주로 과산화염소가 정수시스템에 쓰이고 있다.
 
1998년 미국 화학협의의 분석화학분과는 과산화염소가 이제까지 알려진 그 어떤 물질보다도 강력한 항균 물질임을 공표한 바 있다. 이는 염소의 산화작용과는 완전히 다른 화학적 반응을 하며 그 산화물 역시 무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모른 채, 과산화염소가 용해되어 있는 건강음료를 100 년 동안 마셔오고 있다. 전기적으로 처리된 소금 용해 음료가 다양한 이름의 “건강음료”로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으며, 그 중 “Willard Water”라는 제품은 현재까지 판매 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의 건강음료는 electrolytic treatment의 결과로 낮은 수위의 과산화염소를 포함하고 있다.
 
5) 과산화염소가 체내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가?
식초의 원료인 아세트산(acetic acid)이나 구연산 (citric acid)의 첨가로 인해, Sodium Chlorite 는 최장 12 시간동안 과산화염소를 지속적으로 방출한다. 이 때, 위산 (stomach acid)은 과산화염소의 지속적 방출에 큰 저해 요인이 되지 않는다. (저자의 최근의 수정본에 의하면, 지속시간은 1시간 남짓이라고 한다.)
 
인간의 신체를 구성하고 있는 메커니즘 중 산소와 과산화염소를 구별할 수 있는 메커니즘은 극히 일부이다. 적혈구의 경우도 이를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임상 실험 결과에 따르면, MMS 가 위(stomach)로 들어오면 위벽의 흡수 메커니즘을 통해 적혈구가 과산화염소를 흡수하여 체내 다양한 곳으로 산소 이온과 함께 운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혈액 내에 있는 정상적인 수준의 산소는 병이 발병한 상태 하에서 모든 종류의 병원균을 파괴하지 못한다. 그러나 산소와 함께 흡수된 과산화염소의 경우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즉, 과산화염소 이온(ion)이 인체에 해로운 병원균을 만나게 되면 즉각적으로 그 병원균으로부터 5 개의 전자(electron)를 빼앗는데(즉, 병원균을 산화시킴), 매우 작은 크기수준에서는 이는 “폭발”에 해당하는 화학반응이다.

이 산화작용으로 병원균은 염소 이온에 의해 파괴되고(즉, 산화되고) 염소는 무해한 염화물 (chloride. 소금)이 된다. 두 개의 산소 원자는 이온으로 방출되어 수소 이온과 함께 물이 되거나 탄소 이온과 함께 이산화탄소로 방출된다.
 
과산화염소가 병원균을 만나면 동일한 과정이 신체 내에서 반복된다. 이 때 과산화염소는 무해한 박테리아나 건강한 세포는 공격을 하지 않는데, 이들 건강한 세포들은 유해한 병원균들과는 달리 pH 가 7 이상이기 때문이다. 과산화염소가 병원균이나 여타 다른 독소들과 접촉하지 않을 경우, 과산화염소는 인체에 유용한 소금이나 하이포염소산 (hypochlorous acid)으로 치환된다.
 
렌텍이라는 회사가 인터넷에 발표한 한 과학 논문에 의하면, 과산화염소의 산화 반응 강도가 다른 여타 산화제들과는 상이함을 설명해주고 있다. 즉, 과산화염소는 산화제들 중 가장 약한 산화제에 속하나 5개의 전자를 빼앗는 능력으로 가장 강력한 산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강력한 산화제인 오존 (Ozone)의 경우는 모든 물질을 산화시키는 능력을 갖고 있으나 오직 3 개의 전자만을 빼앗을 수 있다. 

가장 약한 산화제인 과산화염소는 오직 미생물, 중금속 그리고 체내에 산화되기 용이한 병든 세포만을 산화시키며, 건강한 세포 혹은 인체에 유익한 호기성 박테리아를 산화시킬 정도의 산화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아주 효과적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림프절(Lymph node)은 혈액이 산소를 방출하여 다양한 독소들을 산화시키는 곳으로 이 산화된 독소들은 간으로 전달된다. 적혈구에 의해 이동된 과산화염소 역시 산소와 마찬가지로 이 림프절에서 방출되어 정상적인 세포는 건드리지 않고 그 곳에 있는 병원균들을 파괴하는 것이다.
 
6) 과산화염소와 면역시스템
인간의 몸을 치료하는 것은 우리 신체의 다양한 면역 메커니즘이다. 즉, 우리 몸 자체가 스스로 치유하는 것이다. 그 어떤 약도, 그 어떤 영양제도 우리 몸을 치유할 수 없다. 약이라는 것은 단지 몸의 치유 과정을 도울 뿐이다. MMS 역시 마찬가지다. 일단 인체 내의 병원균이나 세포가 파괴되기 시작하면 놀라운 속도로 빠르게 진행된다.
 
'MMS'는 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면역 시스템을 지원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인체 내에 극소량의 과산화염소가 자연적으로 생산되어지기도 하는데, 과산화염소는 인체의 면역시스템이 필요로 하는 화학물질인 myeloperoxidase의 생성에 도움을 준다.
인체의 면역시스템은 바로 이 myeloperoxidase이라는 화학물질을 사용하여 Hypochlorous acid를 생성한다. 정상적인 상태의 인체는 이 Hypochlorous acid를 이용하여 기생충, 박테리아, 진균류, 바이러스, 암세포 등을 죽이고 불필요한 노폐물들을 파괴한다. 그러나 질병으로 인해 허약해진 신체는 병원균을 파괴할 수 있는 Hypochlorous acid의 결핍을 초래하게 된다. 의학용어로 이를 myeloperoxidase결핍증이라고 한다.
 
우리 인체의 면역시스템은 웬만한 질병을 극복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말라리아와 같은 극단적인 질병들의 경우에는 그 병원균을 죽이기에 충분한 Hypochlorous acid를 우리 면역시스템은 갖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과산화염소에 의해 생성되는 Hypochlorous acid를 체내에 비축시킬 수 있는 또 다른 메커니즘이 필요한 것이다.

마시자 MMS!!!
 
7) 과산화염소의 부작용은?
과산화염소가 체내에서 화학반응을 일으킨 후 남는 결과물은 다음의 두 가지 경우 중 하나이다. 즉, 인체의 면역시스템이 필요로 하는 화학물질로 치환되거나, 아니면 극소량의 소금과 물로 변한다. 따라서 부작용을 일으킬 그 어떠한 물질도 만들어내지 않는다.
 
지난 100 여년 동안 과산화염소는 병원의 바닥, 의자, 장비 등의 소독에 사용되고 있으며, 정수 및 식용 고기의 살균 등에도 사용되고 있다. 이제까지 그 어떠한 병원균도 과산화염소에 면역력을 갖는 변종으로 진화한 사례가 발견되지 않았다. 과산화염소의 화학반응 특성상 병원균이 과산화염소에 대해 면역력을 기른다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는 마치 수류탄이나 다이너마이트에 대해 면역력을 기를려고 시도하는 것과 같다.
 
의학박사 Thomas Lee Hesselink의 논문 “과산화염소의 산화 메커니즘에 대하여” (2007 년 8 월) 초록 중 Humble씨의 테크닉이 참신하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점은 1)사용의 간편성, 2)빠른 반응, 3)탁월한 효능, 4)독성 및 부작용이 없음, 5)저렴함 등일 것이다. 이 치료방법이 계속해서 그 효과를 입증하게 된다면 이제까지 알려진 모든 질병들 중에서도 가장 지독한 질병을 지구상에서 제거하는데 일조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바야흐로 가장 강력하고 광범위한 항생물질의 발견 직전 단계에 와있는 것 같다. 그의 발견을 기꺼이 세상 사람들과 나누고자 하는 Humble 씨에게 특별한 감사를 드린다.


제2부. MMS 음용법
 
I. 준비편 
 
준비물 확인
- MMS (28% Sodium Chlorite) (반드시 직사광선을 피해 보관할 것) 
- 50% 구연산(Citric acid) 용액 
- 점적기 (Dropper) - 스포이드
50% 구연산 용액 만들기(파우더로 구입했을 경우) · 구연산 1 : 정수물1의 비율로 배합
 
MMS 와 구연산의 배합 및 음용 방법
· 우선, 물기 없는 잔을 준비한다. 

· MMS 1방울 : 구연산 1방울의 배합 원칙 준수. (즉, MMS 1 방울을 음용할 경우에는 구연산 1방울, MMS 2방울을 음용할 경우에는 구연산 2방울을, MMS 3 방울을 음용할 경우에는 구연산 3방울을 섞는다.)

· 준비한 잔에 MMS와 구연산을 각각 떨어뜨려 잘 배합한 후, 반드시 20초(조금 초과해도 무관함)를 기다린다.

· 20초가 지난 후 물을 부어 (물의 양 : 잔의 1/3 혹은 2/3) 즉시 한 번에 마신다.

· 역겨운 맛을 피하기 위해 물 대신 주스를 타서 마셔도 되나, 비타민 C 가 포함되지 않은 주스여야 한다. (비타민 C는 MMS의 효능을 무력화 시킴.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주스에는 비타민 C 가 들어 있음. 따라서 물 대신 주스를 섞을 경우에는 오렌지 주스를 제외한 생과일 주스를 권장함.)


II. 음용편
1)MMS 음용 전에 알아 두어야 할 일반 사항
· 무엇보다도 우리 인체의 “자연 치유력”을 신뢰하는 것이 중요하며, MMS 가 구연산과 반응하여 발생하는 과산화염소(Chlorine dioxide)의 역할과 작용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MMS는 약이 아닙니다. 단지, 우리 몸의 면역 시스템을 강화시켜 “자연 치유”를 도와주는 “미네랄 드링크”일 뿐입니다.
 
· 따라서 특정한 음용법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으며, 자기 몸의 상태를 보아가며 몸 상태가 호전될 때까지 스스로 MMS 의 방울 수와 하루 음용 횟수를 조절해 나가면 됩니다.
 
· MMS 를 음용하기 2 시간 전부터는 가능하면 다른 미네랄이나 약물을 복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 통상 건강한 사람의 경우에는 나타나지 않으나,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MMS 음용 후 메스꺼움, 구토, 설사 등의 증상이 나타나고 피곤함 및 무기력함을 느끼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부작용이 아니라 면역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는 좋은 신호이니 걱정하시지 마시고 중단 없이 계속해서 음용하시기 바랍니다. 음용 후 수면을 취하는 것도 아주 좋은 방법 입니다. 설사가 날 경우에도 절대로 설사약을 복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는 일반적인 설사가 아니라 몸 안의 독소 등이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 메스꺼움 등의 증상을 오히려 MMS의 방울 수와 하루 음용 횟수를 조절하는 자신만의 기준으로 삼으시면 됩니다.
 
· 처음 시작하시는 분들은 MMS 1방울부터 시작하시고, 차츰 MMS의 방울 수를 늘려 나가시면 됩니다.
 
· 최대 MMS의 방울 수는 15방울이 권장되고 있으나, 필요한 경우에는 초과해도 무관합니다.
 
· MMS 음용 후 메스꺼움 증상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한 경우에는 찬물을 많이 마시면 메스꺼움이 완화됩니다. 그리고 다음 번에는 MMS의 방울 수를 한 방울 줄여서 음용을 하시면 됩니다. (예를 들어 MMS 6방울을 음용한 후 메스꺼움 증상이 심하다면, 그 다음 번에는 MMS를 5방울로 줄임)
 
· 메스꺼움 등을 이유로 음용을 절대 중단하지 마세요.
 
· MMS 음용 이후에도 상태가 호전되지 않는다는 것은 MMS 를 충분히 음용하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즉, 퇴치되어야 할 바이러스나 병원균의 증가 속도를 MMS가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MMS의 방울 수와 음용 횟수의 조절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2)MMS 음용법
 
- 암 치료 목적
MMS의 방울 수와 하루 음용횟수 조절이 관건입니다. 즉, MMS의 방울 수를 증가시켜 나가는 것과 하루 음용 횟수를 늘려나가는 것을 상황에 맞게 잘 조합해야 합니다.
 
우선, 아침 저녁으로 하루 2회 식후 1 시간 뒤에 음용하는 것을 기준으로, 처음 MMS 2 방울부터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MMS 는 공복 상태에서 더욱 효과적이나 메스꺼움 등을 유발하기 때문에 식후에 음용하시기 바랍니다.)
 
예를 들어, 아침 식사 후에 MMS 2방울과 구연산 2방울을 배합하여 음용하고 메스꺼움 등의 증상이 나타나지 않으면, 그날 저녁 식사 후에는 MMS 3방울과 구연산 3방울을 배합하여 음용을 하세요. 메스꺼움 등의 증상이 보이지 않으면, 다음 날 아침에는 MMS 4방울(구연산 4방울)을 음용하고, 저녁 때는 MMS 5방울. 이런 식으로 MMS의 방울 수를 최대 15 방울까지 늘려가도록 합니다.
 
만약, 처음 MMS 2방울을 음용한 후 메스꺼움 등의 증상이 나타나고 참을 수 없을 정도라면, 다음 번에는 MMS 1 방울로 줄여 음용하시기 바랍니다. 두 세 차례 계속해서 MMS 1 방울을 음용하신 후 다시 MMS 2 방울로 늘리도록 시도하시기 바랍니다.
 
만약, 메스꺼움 등의 증상이 없다면 하루 음용 횟수를 함께 증가시켜 나가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하루 3 회 혹은 4 회)
MMS 의 방울 수를 늘려가다 보면 메스꺼움을 느끼는 때가 오게 됩니다. 이 때는 MMS 의 방울수를 줄이시기 바랍니다.

예를 들어 저녁에 MMS 를 5방울로 늘려 음용한 후 메스꺼움을 느꼈다면, 다음 날 아침에는 MMS 를 4방울로 줄여 음용을 하되, 음용 횟수를 하루 2회가 아닌 하루 3회 (매 8시간마다) 혹은 4회 (매 6시간마다) 혹은 5회 (매 5시간마다)로 늘리시기 바랍니다.
그 다음 날에는 다시 MMS를 5방울로 늘려보고 메스꺼움이 없다면 마찬가지로 계속 MMS의 방울 수를 늘려 나가도록 합니다.
MMS의 방울 수가 15방울에 도달하게 되면, 약 일주일 동안은 하루 2회 아침 저녁으로 MMS 15방울을 음용하시고, 그 다음 주에는 음용 횟수를 하루 3회로 늘립니다.
 
여전히 상태가 호전되지 않는다면, 즉 여전히 암세포가 버티고 활동하고 있다면, 암세포들이 완전히 박멸될 때까지 MMS 의 방울 수를 최대 30방울까지 늘려 나갑니다. 물론 이 경우에도 메스꺼움 등의 증상이 나타나면 MMS의 방울 수를 한 단계 줄이고 음용 횟수를 늘립니다.
참고로, “인디언 허브 (Indian Herb)”와 MMS 를 함께 음용하면 더욱 효과적입니다. (인디어 허브구입처 : 미국 텍사스 Tel : 806-647-1741)
 
- 감기, 폐렴, 관절염, 당뇨 등 대부분의 일반적인 병 (성인 기준)
처음 MMS 1 방울부터 시작하여 하루 2회 식후에 음용합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메스꺼움 등을 기준으로 삼아 최대 MMS 15방울까지 MMS의 방울 수를 점차 늘려나갑니다. MMS의 방울 수가 15방울에 도달하면, 하루 음용 횟수를 3 회로 늘려 최소 1주일 간 음용합니다.
 
이후, MMS의 방울 수를 6방울로 줄여 노인의 경우에는 하루에 한 번씩 매일 꾸준히 음용하고, 젊은 사람의 경우에는 일주일에 두 번씩 꾸준히 음용하도록 합니다.
 
특정한 병을 앓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현대인은 면역시스템의 약화를 초래하는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MMS 의 꾸준한 음용은 현대인이 처한 열악한 환경에서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 유아 및 어린이 (11kg 미만)
처음 MMS ½방울부터 시작합니다. (MMS ½방울은 MMS 1 방울과 구연산 1방울로 배합하여 20초뒤 물을 부은 후, 반은 버리고 반만 마시게 하면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루 2회 식후에 음용하도록 하며, 다만 최대 MMS 3방울을 넘기지 않도록 합니다.
 
- MMS를 이용한 구강 건강 유지
MMS 10방울과 구연산 10방울을 배합하여 20초를 기다린 후, ¼가량의 물을 섞은 후, 아침 저녁으로 치아와 잇몸을 양치질합니다.
 
- MMS를 이용한 화상시 응급조치 
MMS 는 화상으로 인해 발생하는 산(acid)을 중화시켜 줍니다. 
구연산을 배합하지 않은 MMS 원액을 그대로 화상 부위에 도포합니다. (병 뚜껑을 이용하여 그대로 원액을 떨어뜨릴 것)
도포 후 1 분을 기다린 후, 깨끗한 물로 MMS 원액을 완전히 씻어 내는 것을 잊지 마세요. 
1분 이상 MMS가 피부에 남아 있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MMS로 인한 또 다른 화상을 입게 되기 때문입니다.
 
- MMS를 이용한 식중독 치료 
MMS 12방울 (구연산 12방울)을 처음 음용하고, 이후 매 30 분 마다 MMS 6방울 음용합니다.
 
- MMS를 이용한 애완 동물 사랑 
MMS 3방울을 마시게 합니다. 말과 같은 덩치 큰 동물들에게는 몸무게 10kg 마다 MMS 1 방울을 계산하여 마시게 한다. (즉 90kg이면 MMS 9 방울) 순순히 마시려 하지 않을 경우에는 강제로라도 마시게 하시기 바랍니다.

 
3)질병에 따른 MMS 사용정량
MMS를 처음 사용하시는 분은 1방울로 시작하시고 1시간에 1방울씩 늘려가면서 자기 몸에 적당한 양을 파악하시는 게 좋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3방울로 시작하여도 아무런 느낌이 없으나 많은 양을 드시게 되면 메스꺼움이나 설사의 증상이 일시적으로 생길 수 있으며 그것은 몸 안의 나쁜 독소들이 배출되는 긍정적인 현상으로 물을 많이 마시고 몇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증세가 없어지니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치료가 어려운 아주 심각한 질병들은 아래의 암(Cancer)에 해당하는 프로토콜을 사용하시고 중간정도의 질병이나 증세에는 4방울씩 하루에 4번 정도 드시며 대부분의 다른 질병들은 나을때까지 1시간에 한번씩 3방울 정도 드시면 됩니다.
MMS를 드실 떄는 항상 Citric Acid와 활성화 시키셔야 하며 기타 각종 질병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mmsanswers.com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암 : MMS양을 조금씩 늘려가며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방울을 1시간에 한번씩 하루에 10번을 드시기 바랍니다. 예를 들어 15방울 정도까지 차츰 차츰 올려가시며 구토와 설사증세가 심하게 되면 다시 조금씩 방울 수를 줄이시되 MMS사용을 중지하시지 마시고 암수치가 떨어지고 병세가 호전될 때까지 자신이 참을 수 있을 만큼의 양을 계속 꾸준히 섭취하시면 됩니다.
 
플루(독감): 증세가 완전히 나을 때까지 HIV, AIDS와 똑같이 1시간에 한번씩 3방울씩 드시면 됩니다.
 
HIV,에이즈 : 1시간에 한번씩 3방울을 3주 동안 섭취하시고 속이 메스꺼우면 방울의 양을 조금 줄여주시기 바랍니다.
 
말라리아, 뎅기열: 15방울이나 18방울을 한번 드시고 1시간 후에 한 번 더 15방울 혹은 18방울을 드시면 4시간 안에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라리아 증세에서 벗어나게 되나 간혹 증세가 남아있을 경우 6방울씩 1시간에 한번씩 3번을 더 드시면 됩니다.
 
눈의 염증: 물 한 컵에 3방울을 넣은 다음 그 물을 하루에 네 번씩 한두 방울 정도 눈에 넣어 주시면 됩니다.
 
코의 염증: 물 반컵에 6방울을 넣어 그 물을 하루에 여러 번 누워서 코 안으로 넣어 주시면 됩니다.
 
인후염: 2시간에 한번씩 6 방울을 넣은 물로 가글을 하고 1시간에 한번씩 3방울씩 드시면 됩니다.
치통 및 구강문제: 물 반 컵에 10방울을 넣어 1시간에 한 번씩 문제가 호전될 때까지 치아와 잇몸을 닦아주며 호전된 이후에도 치아와 잇몸이 완전히 건강해질 때까지 하루에 두 번씩 닦아 줍니다.
 
고혈압: HIV, AIDS와 같은 방법으로 하시되 나은 이후에도 1주일 더 드시기 바랍니다.
 
천식, 심장병, 당뇨병, 간질 등 모든 불치병으로 알려진 질병들: HIV/AIDS와 같은 방법으로 병이 나을 때까지 드시기 바랍니다. 당뇨병 등은 MMS사용 후 병이 사라진 경우가 많이 알려져 있으며 기타 다른 질병에도 뛰어난 효과를 많이 보이고 있습니다. 인터넷상에 검색해 보시면 MMS로 병이 나은 수많은 증언(testimonial)들이 올려져 있으므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일반 감기 및 신종 플루 뿐만 아니라 원인을 모르는 질병, 두드러기 및 피부병, 장티푸스, 간염, 식중독, 몸의 마비, 뱀이나 거미, 광견 등에 물렸을 경우를 포함해 거의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질병에 놀라운 효과를 가지고 있으므로 집에서 한두 병 정도는 항상 갖추고 있는 것이 온 가족의 건강을 위해 최선의 방법입니다.
  


MMS가 왜 보다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까?

필자는 음모론자가 아니다. 하지만 현실에 대한 감각은 가지고 있다. 제약회사들은 연간 2000억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고, 이 중 40억 달러를 광고비로 지출하고 있다. 그런데 제약회사들이 1회 복용 당 수 백달러의 비용이 드는 자사의 제품들과는 달리 수 센트에 불과하고 질병 치료에 훨씬 효율적인 약품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과연 달갑게 여길까?
 
제약회사들이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비용은 벌어들이는 수익의 5%미만에 그치고 있다. 수익금 중 상당 부분이 전용 제트기를 타고 다니는 대주주들 그리고 제약회사들을 보호하기 위해 열심히 뛰는 고액 연봉의 로비스트들에게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제약회사에서 공급하는 약품은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증상을 완화시키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아마 다른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도 이런 얘기를 들어봤을 것이다. 필자는 몸이 아픈 친지들이 제약회사의 약을 복용하기 시작한 후 상태가 더욱 악화되는 것을 많이 보았다. 첫 번째 약에 의해 발생한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 다른 종류의 약을 또 복용하고 그리고 이에 따라 몸이 더욱 안 좋아지고..결국 건강과 돈을 동시에 버리는 행위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필자의 외삼촌께서 예전에 암에 걸리셨다. 수술에 앞서 병원측은 외삼촌이 그 동안 모은 전 재산을 사실상 병원에 넘기도록 하는 계약서에 서명할 것을 요구했다. 수술 후 외삼촌의 상태는 급격히 악화되었고 결국 1주일도 채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나셨다.

현재의 의학계는 사람들이 대체의학에 대한 지식을 얻는 것을 억제하고 자가치료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체제로 굴러가고 있다. 우리는 안전하고 저렴한 치료 방식을 손에 넣게 되었을 때 제약계의 황제들이 손해 보게 될 금액을 한 번 상상해 보라. 그들은 당신과 당신의 가족이 어찌 되는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입가에 미소를 활짝 띤 사람들이 등장하는 제약회사 광고를 보면서 오늘의 낙후된 의학시스템때문에 매일같이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려보라.
 
암환자들에게 화학요법을 권유하는 의사들 중 75%가 사실은 화학요법 자체를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당신은 알고 있는가?
이 의사들은 본인이 암에 걸렸을 경우 절대 이 방법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왜 남들에게는 이를 권유하는 것일까?
{이 글은 MMS미국 공급자중 한명의 글의 번역본으로 그는 어머니의 유방암을 MMS로 치유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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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의료 포탈인 Web MD에서 여성들이 호소하는 피로에 대해 기사를 내보냈는데요, 그 내용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피로를 호소하는 여성들의 7가지 원인인데 심장내과, 산부인과 등 전문의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정리한 기사입니다. 몇 가지의 원인으로 정리되는 제목은 상당히 정리된 느낌을 주고 해당 내용을 강조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만 실제로는 그 이상의 다양한 원인이 있을 수 있다는 당연한 말씀을 드립니다.

우선 이 피로의 원인이 되는 질병을 알아보기 전의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과로로 인한 피로나, 수면 부족으로 인한 피로는 제외하고 이야기해야 말이 되겠죠. 이 것은 질병이라고 하기 보다는 당연한 생리적 현상입니다. 하지만 7-8시간 정도의 충분한 수면과 휴식 후에도 지속되는 피로감이 수 주간 지속되고 그 원인을 알 수 없다면 의사와 상담이 필요할 것입니다.



피로의 원인 #1. 빈혈 (Anemia)


여성 중에서 생리 혈이 많은 경우 이로 인한 빈혈이 가능합니다. 생리 혈이 많아지는 상황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추후 산부인과 선생님께서 기회가 되면 다시 포스팅 해주시리라 믿습니다. 과도한 생리 이외에도 위장관 출혈 등으로도 빈혈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주제가 여성에 맞춰지다보니 과다한 생리 혈이 있는 경우가 그 예로 나온 것 같습니다.

빈혈이 피로감은 적혈구에 있는 철분이풍부한 단백질인 헤모글로빈의 부족으로 생깁니다. 산소를 조직으로 공급하는데 호흡을 하면 폐에서 산소와 결합해 몸속 구석구석으로 전달합니다. 하지만 빈혈이 심해지면 충분한 산소를 공급하지 못 하게 되고 이는 피로감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빈혈의 다른 원인은 앞서 말씀드린 위장간 출혈 뿐 아니라 철분 부족, 엽산 (folic acid) 부족,Vitamin B12부족으로도 생길 수 있습니다. 기타 질환으로 인해 빈혈이 야기되기도 하는데 만성 신부전이 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erythropoietin 이 신장에서 분비되고 이 것이 부족하면 빈혈이 생깁니다.

확진은 병원에 가서 의사의 진찰과 검사를 통해 받을 수 있습니다. 치료는 원인에 대한 치료와 철분제 보충을 하는 것이고 철분이 풍부한 음식(육류, 브로컬리와 같은)을 권하는 것인데요, 원인을 교정하지 않고 철분제만 먹는 것은 문제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간혹 자가 진단으로 철분제 드시는 분들도 있으신데 빈혈로 확실히 진단 받고 드세요. 또 철분제 드시는 기간이 충분하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가장해결 안되는 것은 원인 교정 없이 철분제만 드시는 겁니다.


피로의 원인 #2. 갑상선 기능 저하증

제대로 진단되지 않은 갑상선 질환 역시 여성들의 만성 피로의 원인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미국의 갑상선 재단(AmericanThyroid Foundation에 따르면 60세 여성의 16%에서 갑상성 관련 질환을 가지고 있으나 본인이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갑상선 질환의 종류는 상당히 많은데 그 중에서 자가 면역질환(Hashimoto's thyroiditis 와 같은)이 가장 흔하다고 하는데요, 이에 대해서는 추후 내분비 내과 선생님을 찾아 부탁드리겠습니다.


피로의 원인 #3. 진단되지 않은 요로 감염(UTI)

요로감염은 소변이 나오는 통로의 감염입니다. 그 중 하나인 방광염의 경우 배뇨시의 통증, 타는 느낌, 급하게 소변이 마려운 증상이 나타납니다. 때로는 명확한 요로 감염 증상이 없을 수 있습니다. 간단한 소변 검사로 요로감염을 확인할 수 있고 쉽게 치료됩니다만, 만성적이고 반복적인 감염이 있다면 전문의 진료를 받는 것이 좋겠습니다.


피로의 원인 #4. 과다한 카페인 섭취

많은 에너지 드링크에 카페인이 들어있고, 커피에도 카페인이 들어있습니다. 탄산음료나 기능성 음료, 차, 초컬릿 등에도 들어있습니다. 때로는 카페인의 각성효과를 기대하고 먹기도 합니다만, 일부 여성의 경우 그 반대의 효과를 보이기도 한다고 합니다. 특히 카페인을 과다하게 섭취할 경우 오히려 역효과를 보일 수 있다는 연구가 US Pharmacist란 의학 저널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과다하게 섭취하면 오히려 피로감을 느낄 수 있다고 하니 평소 습관을 잘 살펴보시는 것도 좋겠네요.


피로의 원인 #5. 음식 알레르기

음식 알레르기 또는 불내증(intolerance)의 경우 피로감을 호소할 수 있다고 합니다. 확실한 알레르기가 아닌 불내증의 경우피로감이나 졸음 등의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하는데요, 이전 MSG 알레르기 포스트가 생각나네요. 중국집 증후군(Chineserestaurant syndrome)이라고 부르는 다양한 증상이 MSG 불내증으로 인해 생기는 것이란 포스팅이였습니다.'Your Hidden Food Allergies Are Making You Fat'책을 쓴 Rudy Rivera 박사의 말에 따르면 특정 음식에 대해 불내증을 가진 경우 졸릴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해결 방법은 해당 음식을 안 먹는 것이겠죠.


피로의 원인 #6. 수면 중 무호흡증

코를 골다가 숨을 딱 멈추고 한 참 뒤에 내쉬는 분들 많이 있을 겁니다. 수면 중 무호흡증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냥 치료하지 않을 경우 뇌혈관 질환이나 심혈관 질환 발생률이 높아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가장 흔한 증상이 잠을 자고 나서도 피로감이 지속되는 것이라고 하네요. 특히 비만이나 비만인 경우 더 많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이런 증상이 있다면 병원을 방문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피로의 원인 #7. 진단되지 않은 심장 질환

모든 피로감을 심장 질환과 연관시킨다는 것은 사실 좀 무리입니다. webMD에서 이 기사의 자문을 해준 분이 여성 심혈관 질환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는 심장내과 의사였기 때문에 포함된 원인일 수 있겠죠. 하지만, 일상생활을 함에 있어서 (청소등) 심하게 힘이 들고 숨이 차고 피로감을 느낀다면 적어도 의사의 진료는 받아봐야 합니다. 특히 활동 후에 나타나는 눈에 띄는 피로감이 있다면 심장도 의심해봐야겠죠.



앞서 글의 시작에 이야기 했듯, 피로의 원인을 몇 가지로 정의하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감기에 걸려도 피곤합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결핵은? 암은? 일에 대한 스트레스는? 끝이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저처럼 무지한 의사에게 상식을 리마인드하는 글로 적합할 수는 있겠죠. 그런데 최근에는 이 피로감 자체를 질병처럼 대하기도 합니다.

대체의학에 서 이 피로 회복에 대한 연구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고 그에 따른 치료제나 치료 방법에 대한 것들도 많이 나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피로 자체를 질병 상태처럼 여기고 치료를 해야 한다는 주장과 질병에 대한 감별 진단이 먼저라는 주장이 맞서기도 합니다. 의학적으로 감별 진단이 먼저 이뤄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렇게 질병 감별을 위해 검사를 한다고 해도 질병이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 때문에 환자들도 피로 회복제제를 찾고 일부 의사들도 그런 제제를 먼저 투약하기도 합니다.

최근에 집 앞 병원에 다녀오신 저의 어머님도 만성적인 피로감에 시달린다고 이야기하자, '경락 태반 주사를 맞으라.'는 권유를 받으셨다고 하네요. 하지만 피로 회복을 위해서는 이런 것들에 의존하기보다 원인에 대해 생각해보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우선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노인들의 피로에 대한 연구를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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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로법의 기적' 을 추천드립니다.
'의사가 권하는 요로법' 은 실행방법의 내용이 부족하다는 평이 많습니다.
'요로법의 기적' 은 일본인이 쓴 책인데 내용이 충실합니다. 



1. 소변요법 (요료법)


대부분의 사람들은 요료법에 대해서 한 두번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요료법은 인체를 통과하면서 체내의 세포가 지닌 생체정보를 수집한 채 배출된 소변을 사용하여 자연 치유능력을 유도 해내는 치료방법이다.

BRS를 사용하여 인체의 생체정보를 분석하기 위해서 인체를 직접 측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혈액, 타액, 소변, 정액, 머리카락 등을 측정하는 것도 바로 혈액, 타액, 소변, 정액, 머리카락에도 필요한 생체정보가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생체정보분석(BRS,QRS) : 양자역학의 원리를 응용한 생체정보분석으로 신체의 전반적인 건강상태 검진 및 암을 비롯한 난치병 조기발견 및 치료

단순히 보면 "소변은, 배설물이므로 일종의 쓰레기인데 이것을 어떻게 약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 도대체 말이 되질 않는다. 소변은 한마디로 더러운 배설물일 뿐이다."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요료법은 옛날부터 민간요법으로 우리에게는 너무나 친숙한 치료방법이다.

옛날에는 노인들 중에 자신의 손자의 소변을 받아서 매일 아침 상복하는 분들이 많았다. 이를 쉽게 해석하자면 아이들의 건강한 생체정보가 각인된 소변을 노인들이 복용함으로서 건강한 생체정보를 흡수하는 방편으로 활용한 것이다.

과거에는 주로 어린아이의 소변이 좋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자기 자신의 소변이 가장 좋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를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소변은 인체를 완전히 순환하고서 배출되는 물이기 때문에 인체에서 모든 생체정보를 흡수한 상태이다. 그런데 인체에는 면역기능이 있어서 스스로를 보호한다.

2. 생생한 생체정보를 가지고 있다

인체에서 질병이 발생한 환부를 지난 물은 다시 인체의 다른 장기나 조직을 거치면서 그 신호를 인체에 가하므로 인체는 이러한 생체신호를 제거하고 건강을 회복하기 위한 생체정보(면역기능)를 강력하게 발휘한다.

이때, 그곳을 지나는 물은 그러한 생체신호를 흡수한 상태에서 일정한 순환을 마치면 마침내 소변의 형태로 체내로 배출된다. 그러므로 자신의 소변에는 자신에게 가장 좋은 생체정보가 최적의 조건으로 각인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소변을 마시면 가장 좋은 생체정보를 다시 흡수하게 된다.

이제 자신의 건강을 회복할 수 있도록 북돋아주는 생체정보를 충분히 흡수하였으므로 인체는 다시 활력을 회복할 수 있다. 이러한 개념에 입각하여 요료법을 효과적인 치료방법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현대 약 제조사들은 오래 전에 많은 중요한 화학적 합성물질이 소변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소변은 보통 인간, 말 그리고 다른 동물들로부터 원하는 성분을 분리시키고 응축시킬 목적으로 수집된다.

3. 소변은 수많은 치료약의 원료가 되고 있다 

예를 들어 호르몬 대체 요법에 사용되는 에스트로겐의 일종인 프레마린(premarin)은 임신한 암말의 소변으로부터 얻어진다. 일반적으로 진행된 동맥경화증에 걸린 환자들을 치료하는데 쓰이는 유로키나제(urokinase)는 휴대용 화장실에서 수집된 소변으로 생산된다. 대부분의 샴푸와 화장품은 소변의 성분, 요소, carbamide로 알려진 소변의 합성 대체물을 포함한다.

소변은 물, 요소(단백질과 아미노산의 파괴 생성물), 호르몬, 효소, 미네랄, 소금으로 구성되어 있고 개인마다 특성을 가지고 있다. 사람의 소변의 화학적 성분은 개인의 건강상태를 반영해 준다.

이 생리학적인 '지문'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포함하는데, 감염 병원체들의 흔적과 그 병원체들과 싸우는 특별한 종류의 항체, 순환 면역 합성물(항원 그 자체나 이물질에 붙인 항체), 면역반응을 시작한 물질들, 호르몬 그리고 몸의 기능을 조절하고 지배하는 통제하는 다른 자연 화학물질을 가지고 있고, 합성 비타민과 다른 영양물질도 있다.


4. 전세계에서 수천만명이 실시하고 있다   

현재 전 세계에서 수천만명이상이나 되는 사람들이 이 요료법을 시행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의 병을 치료, 예방하고 심지어는 60이 넘는 나이에도 건강하고 탱탱한 피부를 자랑한다.

사실 요료법은 문명(文明)이란 이름과는 별로 친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이론만을 인정하면서부터 요료법은 배척받았다.  결과가 좋은 줄은 알지만 과정이 설명이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인도의 요가 수행자나 그밖의 몇몇에 의해 명맥만 이어져 오게 되었으나 근대에 이르러 영국에서 그리고 최근에는 일본, 독일 등지에서 효과가 알려지면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조금씩 요료법의 진가가 알려지고 있다. 심지어는 현대의학의 대표자인 내과의사가  요료법으로 자신의 병을 치료하고선 그 효능에 놀라 책(의사가 권하는 요료법)까지 냈다. (강릉내과 원장인 이영미 씨등)

우리의 정서상 어지간히 아프지 않고서는 자신의 요를 마신다는 것이 쉽지 않다.요료법을 알고 있더라도 대개는 병의 막다른 골목에서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요료법을 하는 것이 현실이다.

생명의 불꽃이 꺼져가기 전에(자연 치유력이 남아 있을 때)하는것이 중요하다.

일본에서 현대 요료법의 창시자라 불리는 의사 나가오 료이치는 2차 세계대전중 미얀마에서 부상한 군인들에게 요료법을 권장하였다. 그는 요료법으로 임질이 치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당시에 일본은 전쟁에서 패색이 짙었으며 따라서 식량과 의료보급품이 아주 부족한 실정이었다. 수천명이나 되는 군인들은 요료법의 결과로 생존할 수 있었다. 그는 요료법에 대한 광범위한 경험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현재 MCL연구소 회장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요료법 보급에 앞장서고 있다.

또한 일본의 다테이탕요법의 창시자 다테이시가즈박사는 다테이탕에 소변을 섞어 마심으로서 수많은 난치병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영국의 자연요법가이면서 근대 요료법의 아버지로 불리는 암스트롱은 요료법을 널리 보급하는데 힘썼다. 그는 자신의 요료법에 대한 경험을 담은 '생명의 물'이란 책을 내기도 하였다.

전 인도의 수상이었던 데사이(1977-1979간 재임)씨는 요료법界에서 가장 유명한 인사였다. 그는 아침마다 한컵의 요를 마셨다. 그는 99세까지 혈기왕성한 피부를 자랑하며 건강한 삶을 유지하였다.

소변요법은 다테이탕과 혼합하여 마실 때 최고의 효과를 볼 수 있는데 아침에 맨처음 나오는 환자 본인의 소변을 받는데 처음 시작부분 것은 버리고 그 다음것부터 받아서 냉장고에 밀봉하여 넣어두고 다테이탕과 1/3씩 섞어서 마시며 이와같이 하루에 3회를 마신다


5. 치료 사례  로이터 통신 보도 ( 1996년 3월 20일) 

인도의 퇴역장성인 L. Ramdas는 오줌을 마신다. 일본의 의사 나카오 료이치씨는 매일 아침 그의 요로 가글링을 한다."난 얼굴을 닦습니다. "  네덜란드의 Coen van der Kroon의 말이다. "아주 좋은 애프터쉐이브가 되죠"

오줌이 단순한 배설물이 아닌 그 이상의 유익함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들 말고도 수백만명이 있다.

요료법 애호가들은, 전통의학에 염증을 느껴 믿음만을 가지고 치료에 임하는 무리들과는 다른 그  이상의 무엇이 있다. 그들 지위도 향상되고 있다. 그들은 기구를 조직하고 있으며 제약업계에도 요를 이용하는 것이 엄청난 가치가 있음을 알아 차리도록 촉구하고 있다.

"요(尿)는 엄청난 정치적 ,경제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서독의 라디오 저널리스트인 Carmen Thomas씨는 말한다. 그는 750,000부나 팔린 "아주 특별한 음료"란 제목의 책을 비롯한 3권의 책을 썼다.

600명이나 되는 의사,과학자,치료사들이  최근 서남 인도에 있는 고아주(州)의 수도 Panjim에 모였다. 그것은 세계최초로 열리는 요료법 세계 학회(World Conference on Auto-Urine Therapy)를 위한 것이었다.

참가자들은 前인도의 수상이었던 모라지 데사이를 추모했다. 데사이는 매일 아침 자신이 한컵의 요를 마신다고 언론에 공개해 세계를 놀라게 한 장본인이다. 그는 작년 99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인도의 요료법 재단(Water of Life Foundation)의 사무총장인 G.K. Thakkar는 열성적인 참가자들의 참석을 독려했는데 그는 "요로 인해 아메바성 이질,습진이 다 나았으며 순식간에 아주 활기를 되찾았다" 고 말한다.

Thakkar는 요를 '생명의 치료약'이라며 AIDS를 포함한 거의 모든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호주에서 온 Tara Eich는 말기암을 선고받았는데 요를 마시기 시작해서 암에서 회복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스웨덴에서 온 Claude Jacot는 정맥동염을 50년 동안 앓아 오다가 코안에 요를 넣기 시작한 이후로 증상이 사라졌다고 한다. 초심자는 요가 아주 심한 뒷맛을 남기며 짜다고 하지만 그것은 그가 전날의 숙취가 남아 있거나 그 전날의 강한 향신료를 썼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회의론자들은 요료법 얘기를 들으면 코를 찡그린다. "아주 좋은 얘기지만 대개의 사람들은 오줌을 아직도 가까이 하면 안될 그 무엇으로 여기고 있다"고 미국의 지압치료사겸 요료법 시술자인 John Wynhausen씨는 말한다.

봄베이 Jaslok병원에서 온 의사 R.D. Lele는요료법운동이 강력한 과학적 이론으로 뒷받침 되지 못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그도 요료법에는 알지 못하는 그 무언가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600명이 모였을 때 당신은 아주 호기심이 생겼을 겁니다. 그것을 좋아하던 그렇지 않건간에 말이죠"그는 회의석상에서 말했다. Van der Kroon은 요의 맛이 항상 안좋은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가 쓴 "생명수: 요료법 완벽 안내서"란 책에서 그는 우리 모두는 태어나기 전 양수속에서 떠있는 상태로 있으며 그 양수의 대부분은 요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1747년에 독일 저술가인Johann Heinrich Zedler는 "젊은이에게서 나오는 요를 가볍게 끓여서 거기에 꿀을 녹이인 것은 눈의 상처를 치료하는 데 가장 좋은 약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18세기에 프랑스와 독일 의사들은 황달,류마티스성 질환,통풍,좌골신경통,천식을 치료한는데 요를 이용하였으며 Cannoniers는 가까운 곳에 요를 두고 이용하였다.  불을 지피다 화상을 입으면 재빠르게 요에 담금으로써 통증을 완화시킬 수 있었다.

영국태생인 암스트롱은 1925년에서 1944년 동안 암에서 폐결핵으로 고생하는 4만명의 환자들을 치료하였다. 1940년대에 독일의사들은 홍역이나 small pox를 앓는 어린이들에게 요를 처바하였으며 오늘날에도 van der Kroon에 따르면 에스키모 여인들은 샴푸대신 자신의 요를 사용한다고 한다.

Johann Abel박사에 의하면 500만명의 독일인들이 요료법에 매료되었으며,그들중 상당수는 요를 주사하기도 한다." 독일에서 그것은 아주 거대한 물결이었죠"라고 말한다.

1991년에서 1993년까지 인도해군 참모총장이었던 Ramdas장군은 1989년에 한 친구로부터 요료법으로 신장과 간이 망가진 것을 치료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주 건강한 상태였음에도 그는 아주 호기심이 많아서 한컵의 요를 마시기 시작하였다. "하루에 한컵이면 건강을 유지 할 수 있습니다. "라고 토론토에 본부를 둔 국제 성인교육협회장인 Lalita는 말한다.

63세의 퇴역 장군은 자신이 결코 요료법을 선전하지 않았으며 해군 동료들에게 조용히 전하기만 하였다고 한다. "예상했던 반응들이었죠. 인상들을 찌푸렸으며아주 회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요료법을 시행했습니다. "

딸도 요료법을 하는 람다스씨는 요료법 덕분에 정력적으로 일정관리를 해 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창피해 할 것 없습니다. 어려서부터 요가 지저분한 것이라는 세뇌를 다시 고쳐서 마음의 장벽을 먼저 낮춰야만 합니다.  요료법을 하는 데는 아주 큰 용기와 의지가 필요하지요. "

요에 대한 관심을 최근에는 기업들 쪽에서도 갖기 시작했다고 토마스씨는 말한다.

미국 효소 지주회사에서는 10,000개의 이동식 화장실에 있는 남성의 요에서 발견된 단백질을 추출하는 필터를 개발했으며  PortaJoh라는 미국의 한 회사는 혈전을 녹이고 심장마비를 다스리는 데 쓰이는 유로키나아제를 요에서 추출해서 상품화 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van der Kroon 은 말했다. "이런 물질들에 대해서 연간 5억달러의 시장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토마스는 몇몇 제약회사들이 이 사업에 나서고 있다고 말한다. 상하이에서는 공공화장실에서 요가 모아지고 그것은 유로키나아제를 추출해서 해외로 수출하는 제약회사에 팔린다. "유럽의 몇몇 회사에서는 '요소가 들어있습니다.'란 구절로 광고를 하면서 스킨크림같은 제품을 팔고 있기도 하다."고 토마스는 말했다.

 한 네덜란드 회사에서 는 간호사들의 요를 임신부의 요와 섞어서 불임부부들을 위한 시약으로 쓴다고 van der Kroon은 말했다. 어떤 이들은 요가 의료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수천만의 사람들을 위한 미래의 약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가장 싼 약이며 의사도 필요가 없습니다. "고 고위관리인 Wilfred d'Souza는 말했다



요로요법이란

한방에서 오줌은 상약으로 되어 있다. 한나라 시대의 의학서에도 오줌의 효용에 대해 <토혈, 내출혈에 효과가 있으며 폐를 강화하고, 담을 없애며, 목의 통증을 없애 주면서 강장 작용도 있다.>라고 기재되어 있다. 한방의 경우에는 오줌이라면 누구의 것이든 효과가 있다고 여기고 있다. 그 오줌 중에서도 가장 귀중히 여겼던 것이 동뇨, 즉 건강한 어린아이의 오줌 이었다. 우리 나라 한의학에서도 '눈병에는 동정녀의 오줌으로 눈을 씻어라' 라고 쓰여 있다.
그리고 현대의학에서도 오줌으로부터 약효성분을 추출해서 약품으로 판매되고 있는 것도 적지 않다. 현재 중국에서는 오줌에서 추출하여 만든 CPAⅡ라는 암 치료약이 생산되고 있다.

오줌은 혈액의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한 여분 물질이며 생리 활성 물질의 보고이다.
모든 생물에 있어서 신체의 내부 환경을 일정하게 유지 하는 일은 필요 불가결한 일로서 이것을 몸의 항상성 유지,자연 치유력이라고 한다. 이 내부 환경을 담당하는 것은 바로 혈액과 체액 이다.
혈액을 정화하고 체액의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오줌 생성을 관리하는 것이 신장의 역할이다. 신장은 혈액의 항상성을 유지하고 위한 필요 성분을 남기고, 그 이외의 것을 오줌으로 배설함에 따라 혈액은 항상 거의 일정한 조건하에서 그 이외의 성분을 유지할 수 있다. 이러한 유지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 신장 속에 있는 여과 장치, 즉 그물눈 모양의 세포 혈관의 덩어리인 사구체라고 불리는 부분이다.

혈액 속의 염분은 섭취량에 상관없이 항상 일정한 농도를 유지하고 있다. 염분 섭취량이 적으면 오줌 속의 염분은 적어진다. 사구체에 의해 여과될 때 혈액 속의 염분을 일정하게 만들기 위해 재흡수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이 섭취했을 경우에는 과잉분을 오줌 속에 배설해 혈액의 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한다. 그러므로 꽤 많은 염분을 섭취하더라도 혈액 속의 염분 농도는 거의 일정하게 유지될 수 있다.

이와 같이 혈액의 항상성 을 유지하기 위해 오줌 속에는 혈액의 잉여 물질이 함유 되어 있으며, 생리 활성 물질 또한 많이 함유되어 있다. 생리 활성 물질은 소량이라도 상당히 큰 생리 작용을 하는 기능을 지니고 있다. 더욱이 그 소량의 물질 속에는 그 사람의 질병을 치유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정보가 삽입된 항체와 호르몬 등이 함유되어 있다. 이것을 다시 한번 몸에 투입하므로써 여러 가지 놀라운 효과가 나타난다.


오줌에는 어떤 성분이 있는가?

하루 동안 오줌의 평균 배설량은 1500~2000ml이며,고형 성분은 약 50~70g이다.
오줌 성분을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유기성분 1일 30~40g, 무기성분 20~25g, 당질, 아미노산, 효소, 색소성분, 세포성분(항체), 비타민, 부신피질 호르몬, 멜라토닌 호르몬, 그밖의 다종의 호르몬.
오줌 중 유기성분(평균 1일 배설량):요소 14.7g, 요산 0.18g, 클레아틴 0.58g, 암모니아 0.49g, 마뇨산 0.6g, 뮤로크롬 0.4g~0.7g 등


요로법의 효과

요로법은 그 체험을 증언하는 데 있어서도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체험담을 발표한는 것만으로 친구와 아는 사람으로부터 질타를 받거나 가족에게도 좋은 얘기를듣지 못하는 경우도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료법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었인가? 그것은 그 사람들이 요료법으로 오랫동안의 고민으로부터 해방되어 기적적으로 질병을 치료한 경이의 체험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체험을 좀더 많은 사람들, 특히 자신과 같은 질병으로 고생하는 사람에게 알려 주고 싶다는 사명감을 가진 것 외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


자연치유력을 높이는 일이 건강의 열쇠

인간은 일정한 상황하에 놓여지면 신체 기능이 그 이상 사태에 대해서 일정한 반응을 난타낸다. 즉, 이상 사태에 대한 방어 반응이 일어나는 것이다. 방어 반응에 의해 우리의 몸은 항상성을 유지할 수가 있다. 그 힘이 강하면 같은 이상에 대해 강하게 반응하고, 그것을 재빨리 원래의 상태로 되돌린다. 이 때문에 질병이라고 하는 상태까지는 이르지 않게 된다. 반면에 그 힘이 약할 경우에는 이상에 대해서 방어할 수 없는 것은 물론 항상성을 흐트려 버리므로써 더욱 질병을 일으키게 된다.
그러면 방어 작용의 정체란 무엇일까? 이것은 모든 생물이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지니고 있는 생명의 기본적인 능력이라고도 할 수 있다.
수면이 필요하면 자연히 잠을 자게 되고, 필요한 만큼의 수면을 취하면 자연스럽게 눈이 뜨인다. 추워지면 체온의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모공이 수축해서 열의 발산을 적게 한다. 반대로 체온이 상승하면 땀을 내어서 체온을 발산시킨다.
이것은 우리들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그리고 외부 환경에 영향받는 일 없이 몸을 항상 일정한 조건하에 두려고 하는 자연의 반능이다.
이 활동을 자연 치유력이라고 한다. 이 자연 치유력이 충분하게 움직이느냐 움직이지 못하느냐에 따라서 같은 조건에 있더라도 인간은 건강하게 살 수 있느냐 없느냐가 결정된다.


호르몬은 자연 치유력이다

동양 의학에서는 자연 치유력을 활요하는 방법을 옛부터 가지고 있었다. 동양 의학에서는 자연 치유력 활용이 의술의 생명이기 때문에 설사 원인은 모르더라도 그 힘을 증강시킴에 따라서 이상을 회복하는 일에 가장 중점을 둔다.
서양 의학에서도 자연 치유력은 존재한다. 면역 작용 호르몬 밸런스 그리고 자율 신경 실조 등은 모두 이 자연 치유력이다. 호르몬의 경우 호르몬이 발견된 것은 금세기 초 무렵이다. 처음에 호르몬은 혈액 속에 분비되어 다른 기관을 자극하는 물질로서 다루어지고 있었으나, 현재는 특정한 세포에서 분비되고, 혈액 등에 의해 운반되어 다른 세포를 자극해서 스스로 세포를 활성화하거나 억제하는 물질이라고 알려져 있다.(그러나 서양 의학에서 호르몬이 주목받게 된 지는 20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 호르몬에 의해서 세포의 활동을 활발하게 하거나 억제함에 따라 내부 환경을 일정하게유지하고, 외부 환경에 적응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 치유력은 호르몬에 의해서 관리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호르몬이 세포로 만들어지고, 혈액에 의해 운반되고있는 이상 세포가 정상적으로 가동되지 않으면 호르몬 생산도 충분하게 이루어지지 못한다. 세포에 충분한 영양과 산소를 보급하고, 새포로부터 노폐물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정상적인 혈액이 충분하게 보급되지 않으면 안된다.


면역요법은 자연 치유력을

인간의 몸은 외부의 적의 침입에 대해 방어하는 작용이 있다.
뱀에게 한번 물렸다가 살아난 사람은 그 이후 다시 물려도 끄떡없다는 사실이 옛부터 알려져 있다. 이와 같이 체내에 침입한 외부인 적에 대해서는 인체 내부에서 대항하는 물질이 생긴다. 이 물질이 바로 항체이다. 세균, 바리러스, 진균(곰팡이) 등이 외적에 해당하는데, 이러한 외부의 적들은 일상 생활 속에 충만해 있다. 그러나 우리들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살고 있다. 그것은 이러한 병원균에 대한 저항력이 인체에 있기 때문이다. 이 저항력이란 태어남과 동시에 갖추어져 있는 힘이며, 이것을 비특이적 면역 현상이라고 한다.

혈액은 자연 치유력과 매우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다. 영양소와 산소를 충분하게 함유하고, 몸 구석구석 세포까지 그 혈액이 미치며, 노폐물을 회수해 올 수 있다면 자연 치유력은 활성화되어 질병을 막고, 설사 질병에 걸렸다고 하더라도 자연스럽게 치유될 수가 있다 이것은 암까지도 정복할 만큼 강한 힘이 된다. 이렇게 되면 인류의 숙명이기도 한 혈액의 오염을 정화한다.
자연치유역을 높히는 일이 질병에 대한 예방이며 치료법이다. 혈액 정화를 위해 갖가지 약품이 시판되었다. 혈류를 촉진하는 약품도 있으며, 혈전을 용해시키는 약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화학 합성된 약품에는 그 나름의 부작용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약품을 사용해서 국소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되지 못한다.
그래서 혈액을 정화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인체의 힘으로 인체의 질병을 예방, 치료하는 요료법이다. 왜냐하면 오줌 속에는 외부의 적으로부터 대항할 정보가 들어 있는 호르몬과 항체가 모두 들어 있기 때문이다. 즉, 오줌 속에는 개인의 상태에 맞춰서 특이적인 상태로 들어가 있기 때문에 요로법은 다른 부차적인 방법이 필요없는, 효과적인 혈액 정화법 이라고 할 수 있다.
오줌속에는 인체에 효과적인 물질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 물질들의 작용을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오줌 속 물질들의 작용

1,면역항체 증강작용

홍역을 한번걸리면 두 번다시 걸리지 않는 것처럼 한번 질병에 걸리면 그때 저항력이 생겨서 두 번다시 걸리지 않는 항체가 생기는데 이것을 특이적 면역이라고 한다. 그 항체로는 백혈구 중의 임파구, b-임파구 등이 있다.
특히 자신의 오줌에는 자신의 모든 병을 퇴치하는 정보가 입력된, 가장 유효한 항체가 들어있다. 자신의 오줌을 마시는 큰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2,호르몬 밸런스의 조정작용

호르몬은 체내에 있는 세포로만 만들어진 물질이다. 극히 소량이며, 특정한 세포에 활동해서 자연 치유력을 조정 하는 중대한 기능을 하고 있다.
호르몬을 분비하는 기관을 내분비샘이라고 하는데, 하수체, 송과체, 갑상선, 상피 소체, 뇌샘, 췌장, 정소, 난소, 신장, 사상 하부, 말초 신경 등으로부터 방출되고 있다.


3,혈류 촉진 작용 (칼리크레인)

오줌의 성분 중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물질이 몇 가지 있다. 그중의 하나가 칼리크레인이다. 이 물질은 1925년에 독일의 외과 의사인 페리 박사가 발견한 것으로서, 개에게 인간의 오줌을 주사하면 혈압이 강하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특히 발견 당초부터 혈압 강하 작용 등의 약리 효과를 주목받는 물질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칼리크레인 은 순환계 작용 효소로서 췌장, 갑상선, 신장, 오줌, 혈액 등에 널리 분포해 있는 물질이다. 단독으로 작용하기보다는 뒤에 나오는 프로스타클랜딘계등과 상호 관련해서 혈액의 순환 조절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역할은 다음과 같다.

1) 생태 고유의 순환계 작용 효소이며, 뛰어난 혈관 확장 효과 가 있다.
2) 순환 혈액량을 증가 시켜 말초 세포로의 영양 보급을 촉진한다.
3) 미소 순환계의 대사를 개선해 순환 장해를 개선한다.

즉 혈유를 촉진시키고, 순환 불량이 되어 있는 말초 혈관의 혈액 통과를 촉진해서 체내 구석구석에까지 영양소와 효소를 운반할 수 있도록 한다.


4. 혈관 확장 작용 (프로스타글랜딘)

오줌 성분 가운데 가장 신비적인 존재가 프로스타글랜딘이다. 생체 내에서 생산되는 생리 활성 물질로서, 생리 작용을 위해서 최근 의학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물질이다. 앞에서 설명한 칼리크레인과 함께 상호 작용을 하며, 혈관 확장, 혈압 강하 작용 을 하는 호르몬이다. 국소 호르몬이라고 불리며, 필요한 장소에서 필요할 때에 만들어진다.


5. 혈전 용해 작용 (유로키나제)

오줌 속에서 발견된 플러스미노겐 활성화 인자의 하나인 유로키나제는 신장에서 생산되어 오줌을 통해 배설된다.유로카마제는 프러스미노겐을 플러스민으로 만든다. 이 프러스민은 피브린을 가용화하는 작용이 있다. 혈전은 피브린에 의해 일어난다. 그러므로 유로키나제는 혈전을 용해하기 위해서 매우 중요한 물질이다.
오줌 속에는 유로키나제가 많이 함유되었기 때문에 오줌을 마시면 혈전이 용해되어 심근 경색과 협심증인 사람에게 뛰어난 효과가 있다.


6. 조혈작용

건강한 오줌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 재생 불량성 빈혈 환자의 오줌 속에만 발견되는 물질 이 에리트로포에틴이다. 이 물질은 후기 적아 전추 세포에 특이적으로 작용하고, 분화, 증식해서 적혈구 작용을 보인다.
이 물질은 특정한 질병일 때에만 배설되는 물질이다. 그것은 어떤 특정한 질병에 대해 호르몬 분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증거로서, 이는 곧 자신의 오줌 속에는 자기 자신 특유의 질환 변조에 의해 호르몬이 분비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7. 이뇨작용

프로스타글랜딘e1이 이뇨 효과가 있기 때문에 오줌을 마시면 오줌이 상당히 잘 나오며, 체내 정화에 도움이 된다.


8. 수면작용

미국 하버드 대학 의학부 연구에서 수면 중에 발생하는 spu라는 요성 수면 물질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이물질이 면역 기능을 강화 한다는 사실 또한 알아내었다. 이 물질이 오줌속에 함유되어 있다.





요료법 의학적 진실 1


당신 자신의 완벽한 약 - Martha Christy | 오줌요법에 관한 글

의학적 진실
당신 자신의 완벽한 약 - 요(尿)
당신 자신의 완벽한 약 - 마사크리스티 씀

아마 당신이 대체의학에 대해서 듣기라도 한다면 당신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 '그런 것은 이미 다 들어서 알고 있다.
하지만 여기 당신이 아마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을 천연의 치료법이 있다. - 이 치료법은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강력하고, 가장 잘 연구되었으며 가장 의학적으로 증명된 자연치료법 중의 하나이다. 당신이 받아들이기 아주힘이 들 수도 있지만 이것은 사실이다. 즉 이 놀라운 자연물이 이제껏 알려진 건강정보 중에서 가장 효과적인 것 중의 하나라는 것 말이다.

수세기동안 의학계에서도 이 치료법의 놀라운 효능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도 누구도 그것에 대해서 언급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왜일까? 아마도 의학계 종사자들은 그 치료법이 너무 논란의 여지가 많다고 생각한 때문이리라. 혹은 이것이 더 정확한 추측이겠지만, 과학자들이 밝혀낸 세상에서 가장 치료효과가 뛰어난 물질중 하나에 대해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이 돈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하지만 기성의학계에서 이 가치있는 정보를 비밀로 부치기로 결정했다 하더라도 이제는 사람들이 이것을 알 때가 되었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공짜로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건강물질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 당신에게 이렇게 권하고 싶다. 조용히 앉아서 마음을 열고 인간의 요(尿)에 대한 놀라운 의학적 진실을 들어보라고 .. 이 정보가 당신의 삶을 바꿔놓을 것이다. 당신이 몰랐던 것이 해를 끼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우리몸에서 가치있는 양분과 치료의 물질이 나온다는 것을 알 권리가 있다.
그리고 그 물질로 병을 치료하고 , 일상에서나 위급한 상황에서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알 권리가 있다.
내 책상에서 우연히 발견한 오래된 두 기사를 통해서 얼마나 대중들이 제대로 된 정보를 모르는지, 그리고 우리몸자체에서 나온는 약에 대해서 얼마나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1992년 10월 16일 NBC 저녁뉴스의 탐 브로코우 기자.
"이집트에서 , 지진현장구조대는 무너진 더미 속에서 37세된 남자가 살아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는 거의 82시간을 자신의 오줌을 마시면서 버텼다. 그의 아내와 딸,그리고 어머니는 오줌을 마시려고 하지 않았으며 결국 죽었다. "

1985년 6월 연합뉴스
' 나는 확실히 이 여인들과 아이들이 이런 사실을 몰라서 사망했다고 생각한다. 즉, 자신의 요는 해롭지 않으며 사실은 그 요야 말로 구조대가 올 때까지 양분과 필수적인 면역성분을 균형있게 제공해 줄 물질이라는 사실 말이다."


의학적 증거

20세기 전체에 걸쳐서 대중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지만 , 의사들과 의료연구가들은 실험과 임상실험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증명했다.
자신의 요는 필수양분, 비타민, 호르몬, 효소, 그리고 꼭 있어야할 항체의 보고이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은 다른 것을 통해서는 복제되거나 추출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요를 암, 심장병, 알레르기,자가면역질환, 당뇨병,천식,불임,전염병,상처 등의 치료에 사용한다.
-하지만 우리는 요가 아주 독하고 쓸모없는 물질이라고 배워왔다. 이토록 요에 대해서 의학적 진실과 일반상식 간에 괴리가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리고 방금 읽은 보도자료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이 이러한 차이는 당신과 당신이 사랑하는 가족으로 하여금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갈라놓을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 장애와 불치병을 가지고 있으면서, 전통의학과 대체의학에서 할 수 있는 온갖방법으로 몇 년씩을 두고 해보았다. 하지만 치료는 되지 않았다.
한번은 아는 사람이 요료법을 해보라고 했다. 그 때 나는 그 여자가 미쳤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은 모두 해본 상태였으므로, 선입견을 접고 한번 시도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내 병세가 하도 빠르고 광범위하게 좋아져서, 난 요료법을 완전히 믿게 되었다. 그리고 기존 의학계에서도 이 놀라운 체내물질에 대해서 더 알아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 의사들은 우리가 생각하기 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더 많은 것을 말이다.
나는 몇 달을 두고 대학도서관을 뒤졌다. 수많은 마이크로필름자료를 보고, 의학잡지를 쌓아두고는 보고 또 봤다. 그리고는 요를 치료약으로 쓰는 데 대한 놀라운 연구자료와 발견들,화일들을 수집했다.

나는 수많은 다른 자료들에서 이런 사실을 발견했다.
요가 독성을 가진 노폐물은 절대로 아니며,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신장에서 혈액이 걸러져서 순수하게 된 추출물임을 , 그리고 우리몸이 만들어낸 요는 체내 노폐물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필수영양분,효소,호르몬, 자연항체와 면역물질을 담고 있다는 것임을 말이다.
연구 막바지에서, 책상앞에 수북이 쌓인 자료들을 보면서, 난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의료계는 역사상 가장 큰 눈속임을 해왔다.'

그 예로 다음과 같이 밝힌 의사의 경우를 들어보자.
"요는 훌륭하고 안전한 자연백신역할을 하며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간장염,심한 기침,천식,건초열,두드러기,편두통,내장기능장애등을 포함한 광범위한 질병에 대해 치료효과가 있다. 그것은 정말로 안전하고 부작용이 없다. "( 의학박사 J. Plesch , 1947년 메디칼 프레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보고한 oncologist의 경우도 있다.

"난치성 난소암 환자가 사람의 오줌으로 치료되어서 지금은 아주 건강하고 생을 즐기고 있다."(의사 M. Soeda, 1968년 동경대).
이러한 주목할 만한 발견들은 의학잡지에 수록이 되었다. 하지만 언제 이런 것들에 대해서 들어보신 적이 있는가?

그리고 넓은 임상실험, 실험실 연구를 한 후 이렇게 말한 면역학자는 어떤가. " 희석하지 않은 요를 마실 경우면역적 치료에 있어서 치료학적인 효과가 있었다. 그래서 알레르기 상태가 통제불능이 되었을 때 요를 마시게 하였다."(의사 C.W. Wilson , 1983년 스코틀랜드 Law 병원)
또한 "하버드대학의 의료연구가들은 전염된 환자의 몸에서 나온 농축하지 않은 요에서, 콜레라, 장티푸스, 디프테리아,폐렴,소아마비,렙토스피라,그리고 살모넬라와 같은 병에 대한 활발한 항체가 발견하였다."( Lerner, Remington & Finland 1962년 하버드 의대)

그리고 이런 스칸디나비아의 연구가는 어떤가? 그는 1951년에 결론적으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증명하였다. 즉 인간의 요는 폐결핵을 치료할 수 있다. 그 폐결핵은 아주 위험한 병이고 그 균이 항생제에 저항력을 가져 버렸는데 말이다. 누군가가 우리에게진실을 말해줄 때가 된 것이 아닐까? 자신의 요가 의학적으로 증명된 폐결핵 항생제라고.

이번에는 상처와 화상에 요소(요를 이루는 주된 고체 성분)를 이용한 연구가 있다. 다른 많은 연구가 있지만 한가지만 에를 들면 이렇다. "미국에서는 전염병으로 생긴 여러 상처를 치료하는 데 요소를 썼고 , 그 결과는 아주 좋았다.... 심지어는 아주 깊은 상처도 효과적으로 치료되었다..... 다른 치료법이 모두 실패했을 때도 요소치료는 성공적이었다. 포도상구균 외상감염에도 요소를 쓰는 것이 다른 어떤 것을 바르는 것보다 낫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 효과에 대해서는 반론이 있을 수 없다. (의사 L. Muldavis, 1938년 로얄 프리병원, 런던)
이런 의학자료는 내가 그동안 모아서 당신자신의 완벽한 치료약 이란 책에서 밝힌 자료의 양에 비하면 아주 작은 것이다. 하지만 이 자료만으로도 그동안 의학계에서 요료법에 대해 말해주지 않은 사실의 중요성을 알리는 데는 충분할 것이다.

1954년에 미국 의학협회보 6월호에서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다른 어떤 우리몸의 성분보다 요에 대해서 더 많은 연구논문들이 출판되고 있다.
다른 출판물에서는 이렇게 쓰고 있다. "1년에만 1,000개가 넘는 논문들이 요 안의 미소물질에 관련된 주제로 발표된다."

한가지 물질에 대해서 이렇게 소란법석을 떠는 것을 두고 단순히 우리몸의 노폐물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요에 대해서 내가 발견한 가장 재미있는 사실은 자궁안 태아를 싸고 있는 양수가 주로 요라는 것이었다. 사실 아기는 요로 채워진 양수속에서 "숨을 쉰다" 그리고 이런 액체가 없다면, 태아의 폐는 생성되지 않는다.

의사들은 아기의 피부가 그토록 부드럽고, 태중에 수술을 했을 때에도 상처가 남지 않고 빠르게 치료가 되는 것은 요로 채워진 양수의 치료성분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요를 외용으로 썼을 때 얻을 수 있는 효과에 대한 보고 또한 많다. 치료가 어렵고 만성적인, 중증 습진이 요료법으로 "기적적으로" 치료된 경우도 의학연구자료에서 찾을 수 있다. 요는 항바이러스성과 항박테리아성이 있어서, 절개부분과 상처, 온갖 찰과상에 더없는 약이 된다.
여드름, 뾰루지,무좀, 균으로 인한 피부병은 요를 적시고 습포를 하면 놀랍도록 잘 치료된다.( 당신자신의 완벽한 치료약 책에 보면 요를 내용과 외용으로 쓰는 방법을 잘 설명해 놓았다. -우리나라에선 아직 발간되지 않았음-역자注)

집에서 상처가 생겼을 때 , 쏘이거나 물려서 독이 생긴데, 그리고 심지어는 뼈가 부러졌을 때에 조차 요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으면서, 검증된 자연치료성분이 된다. 그것은 어떤 경우에도 즉각적인 치료효과를 발휘한다. 수년간 사람들은 나한테 이렇게 말했다. "글쎄, 나도 사람들이 요를 마셔서 살아났다는 말을 듣긴 했는데, 그건 단지 미신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것은 미신이 아니다. 그것은 의학적인 진실이다.

1980년에 발간된 뉴욕주의학지 6월호에서 John R. Herman 박사가 언급한 것을 보자. '요료법은 세계 여러곳에서 꽃을 피웠다. 오늘날에도 활발히 행해지고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요료법에 대해서 폭넓은 사용사례와 유용한 정보가 있다. 이러한 것은 요료법의 다양한 적용례를 보여준다. 사실, 아래에 적은 요의 성분은 주의깊게 검토될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이 먹는 음식에서 찾을 수 없는 성분은 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번역을 운영자가 잘못한 듯 - 음식에 효소는 없지만 요에서는 발견된다는 것을 보면....-역자注)
퍼센트는 다르지만, 요의 성분은 신진대사에 아주중요한 물질이다.

당신의 몸에서 나오는 超영양분 치료법
1975년, 마일즈 연구소의 창립자중 한사람인 A.H. Free 박사는 의학실험실습으로 밝힌 요성분분석이란 책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밝히고 있다. "요는 몸을 구성하는 무균한 물질(증류수보다 더 무균한)일 뿐만 아니라, 그 안에 수천가지의 화합물을 담고 있다. 그리고 새롭고 정교한 분석도구가 발달함에 따라, 요의 구성성분이 앞으로 더 밝혀질 것이다." 라고.
Free박사가 쓴 논문에서 밝힌 요의 성분을 적은 목록을 보면 당신의 생각을 바꾸어 줄 것이다. Free박사는 아래에 적은 목록은 요에서 발견된 중요성분 중의 극히 일부일 뿐임을 밝히고 있다.


요료법 의학적 진실 2

만약 당신이 길거리에서 사람들에게 요산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들은 틀림없이 몸에서 나오는 독성분이며 단지 노폐물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다고 버클리의 캘리포니아대학의 연구팀은 밝히고 있다. 그 팀은 1982년, 인체에 해를 주며 암을 유발하는 근본물질을 요산이 제거하며 한편 요산은 인체로 하여금 다른 포유동물보다 오래 사는 것이 가능하게 하는 생리물질 중의 하나라고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요소는 어떨까? 요소는 요안에 있으면서 요독증을 일으키지 않는가? 사실, 의료연구진은 수십년 전에 요소가 인체의 노폐물은 절대 아니며, 오히려 아주 놀랍도록 여러곳에 유익하고 , 신체 구석구석까지 미치며, 효과있는 약제임을 밝혀냈다. 수많은 의학연구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이 밝혀졌다. 즉, 요소는 지금까지 발견된 물질 중 가장 강력하고 독성이 없는 항바이러스 제제라는 것이 그것이다.

한 특별한 연구에서 , 응축된 요소를 적용하였더니 광견병이나 척수성 소아마비를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죽었다는 것이 밝혀졌고, 그 결과 과묵한 연구자들조차 놀라 이렇게 말했다. "요소는 상대적으로 바활동적인 물질이다. 그리고 대개의 항바이러스 물질이 세포질에 독성을 가지고 있는 것과는 달리 독성이 없어서 광견병과 척수성 소아마비 바이러스가 요소 제제로 그렇게 쉽게 박멸되는 것은 경이롭다."(1936년, 실험생물학 모임, 맥케이 와 슈뢰더)

실제로, 요소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공인했으며, 의사와 연구자들이 각종 치료 형식에 적용하고 있는 의약품이다. 요소가 종양을 억제하는 효과가 하도 뛰어나고 광범위해서, 그것은 현재 항암제제로 쓰이고 있고, 암치료에 사용할 목적으로 널리 연구되고 있다. 병원에서는 요소를 포함한 약품인 glicazide를 인슐린이 필요하거나 또는 인슐린에 의존하지 않는 당뇨병 환자를 치료하는데 사용해서 성공적인 결과를 보고 있다.
천연 이뇨제로서, 요소만한 것이 없다. 그리고 요소는 부종, 과도한 대뇌와 척수의 압력,녹내장,간질,수막염, 그리고 심지어는 월경전의 부종과 같이 체내 점액질 과도로 인해 발생하는 수 많은 질병 치료에 일반적으로 많이 쓰이는 물질이다.
한 미국 신경외과의사는 뇌수술 합병증으로 거의 죽어가는 한 환자를 보고 나서 이렇게 보고 한 바 있다.

" 요소를 응급처치의 일환으로 정맥주사 하였다. 그 결과 주사를 시작하고 20분 내에 그녀이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왔다.....이때부터 그녀의 회복에는 이상이 없었다. 이런 경우에, 요소는 절대적인 구급약이 된다. 왜냐하면 그렇게 요소를 정맥주사 하기 전에는 그 환자의 회생이 거의 가망없었기 때문이다. 유사한 많은 경우에 요소는 생명을 건지는 약이 되었다. ( Javid박사, 위스콘신 대학)

놀라운 치료효과에 대한 생리학적인 설명
오줌과 그 성분에 대해서 의학적으로 밝혀낸 사실들은 아주 경이로운 것이다. 그리고 아직 대개의 보통사람들은 왜 우리 몸이 그토록 건강과 행복에 정말 가치있는 물질을 내보내는지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자주 한다. "만약 당신 오줌이 그렇게 좋다면, 당신의 몸은 왜 그 좋은 걸 내보내는 거지요?"라고 . 이 질문은 우리 신장의 작동 원리를 알면 풀린다.
피는 몸을 순환하는 과정에서 분당 1200ml의 양으로 신장을 통해 걸러진다. 신장 안에서 혈액은 네퓨론이라 불리는 미세한 관으로 된 거대한 시스템을 통해 걸러진다. 그 네퓨론은 몸에 남아도는 수분, 비타민,미네랄,효소,염분, 항체와 요소, 요산이 들어있는 수많은 물질을 배출한다.
이런 주요 생리물질 중에서 상당부분이 우리 몸에 다시 흡수된다. 하지만 아주 중요한 혈액성분의 상당량이 신장에 모아지고, 그것은 다시 흔히 의사들이 "극도로 걸러진 플라즈마"(우리는 그것을 오줌이라고 부른다.)라고 부르는 액체로 변하게 된다.
이렇게 무균하고, 영양분이 많은 오줌의 상당량은 재흡수되고, 또 상당부분은 한동안 신장에 남아, 방광으로 보내지고 최종적으로는 urethra라 불리는 관으로 보내진다.

이제 당신은 아마도 왜 우리 몸이 몸에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영양분,물, 호르몬,효소등을 배출하는지 궁금할 것이다.
'이런 물질들을 잡아두는 것이 더 이치에 맞는 것이 아닌가?'하고.
만약 오줌이 그토록 생명을 유지하는 물질들의 집합이라면, 왜 우리 몸은 그것을 버릴까?
그에 대한 대답은 이렇다.

우리 신장은 혈액속에 있으면서, 그 당시에 필요하지 않은 특정한 핵심 요소를 제거하는 방편으로 일정량의 오줌을 배출한다. 예를 들어, 당신이 조깅을 하러 나갔다고 하자. 당신은 집에 오고 물을 대접으로 한두사발 들이켰다고 한다면, 그 순간에 당신은 실제로 몸이 필요로 하는 물의 양보다 많이 마셨을 수가 있다. 하지만 걱정할 것 없다. 바로 신장이 혈액속으로 전달되 물의 양을 조절할 것이다. 그리고 오줌을 통해서 바로 당시에 필요치 않은 물은 배출할 것이다.
당연히 물은 생명유지에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왜 몸 밖으로 배출되는가? 답은 명확하다. 당시에 몸안에는 과도한 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시에 필요없는 물은 배출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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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추석에 MBC에서는 특집으로 침사(침을 놓는 사람)인 구당 김남수옹에 대한 방송을 내보냈습니다. 그런데 한의사협회에서 침과 뜸은 기존의 면허를 가진 의료인인 한의사가 담당하는 것이 옳다며 이런 민간의술을 홍보(?)한데 대해서 반발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논란을 MBC의 시사프로그램인 ‘뉴스후’에서 다시 다루면서 인터넷이 들썩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김남수옹은 기존의 침사면허만 가지고 있었는데 뜸 술에 대한 허가 없이 뜸까지 시술한다는 사실이 방송을 통해 알려지면서 무면허 의료행위에 대한 부분이 알려지게 되어 45일의 영업정지 처분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최근 다시 인터넷을 통해 김남수옹이 표면적으로는 봉사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뜸 요법 교육과 침술원 운영으로 수백억의 이익을 취하고 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김남수옹이 뜸요법사 강좌를 통해 초, 중, 고급반에 따라 55만원에서 120만원까지의 수업료를 받고 있다는 것과 현재까지 159차 강의에 302개 반이 개설되어 9060명이 수강한 것으로 미루어 수입이 217억 4천4백만 원에 달한다고 추산을 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비슷한 셈법으로 김 옹이 운영하는 침술원의 연 매출을 8억7천5백만원으로 추산을 했습니다.

봉사의 삶이냐, 수백억대의 재산 증식이냐

위 추정이 진실보다 열 배 이상 악의적으로 부풀려졌다 하더라도 어쩐지 국민정서상 봉사의 삶을 펼치는 것과 수백억 대의 수입을 올리는 것은 잘 어울리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제 개인적으로는 돈을 잘 버는 것을 자체를 가지고 거기에 걸맞은 실력이 있다면 그 사람을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일각에서는 MBC가 황금 시간대에 특정인을 수 차례에 걸쳐 무료 홍보해주는 것이 옳으냐고 의문을 제기하기도 합니다만 이것 역시 숨겨진 전통의학의 가치를 재조명한다는 의미에서 반드시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봅니다. 문제는 구당 선생의 침술과 뜸 술이 그만한 가치를 가진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구당 선생과 관련된 기사가 나오는 신문이나 블로그에는 어김없이 치열한 공방전이 오고 갑니다. 일단 김남수옹을 옹호하는 측에서는 한의사들이 그만한 기술(?)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김남수옹이 부각되는 것이니 한의학계는 김남수옹을 훼방 놓지 말고 오히려 배워야 한다는 의견이 많고 반대측에서는 김남수옹의 치료에는 새로운 것이 없으며 이미 한의원에서 시행되고 있는 치료에 불과한 것이라면서 자가진료와 치료의 위험성을 부각시키며 면허를 가진 검증된 의료인이 아닌 사람의 치료는 불법화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제 3자의 입장은 역시나 밥그릇 싸움이 신물 난다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안타까운 것은 이런 종류의 논쟁이 벌어질 때마다 학문적 진실성은 오간 데 없고 항상 밥그릇싸움이냐 아니냐를 놓고 끝없는 말싸움과 방어를 벌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실정법을 위반한 사안에 대해서 적절한 제재의 필요성은 공감은 하면서도 만약 구당 선생의 뜸 법이나 침 법이 기존의 한의학계가 할 수 없는 부분을 채워줄 수 있다면 적극적인 연구와 발굴이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자신이 의사이지만 같은 원리로 한의학이 현대의학이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면 연구와 발전을 통해 현대의학으로 채용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노하는 한의학계

그런데 뉴스후에서 최근 흥미로운 내용이 방송되었습니다. 김남수옹에게 치료를 받고 병세가 호전되었다는 유명인들의 증언이 쏟아진 것입니다.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님이 팔이 일시적으로 마비되는 증세가 나타났는데 병원에서는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김남수옹의 치료로 완쾌가 된 것입니다.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도 무릎 때문에 15년을 고생하다가 구당 선생의 치료로 호전이 되었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나 수영영웅 박태환 선수도 구당 선생에게 치료를 받았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게다가 최근 위암판정을 받고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고 알려진 영화배우 장진영씨도 암 치료와 병행된 침뜸 치료로 큰 도움이 받았다고 밝히면서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유명인들이 증언하는 구당 선생의 치료법

아마 일반인들에게는 이 정도의 증거를 대면 구당 선생의 치료법이 검증된 것이 아닌가 하고 확신이 생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다는 것이 지금 현재 학문적으로 내릴 수 있는 최선의 결론입니다. 의 학논문을 보게 되면 가장 초보적이고 신뢰가 적게 가면서 단지 참고의 의미만을 가지는 것이 소위 사례보고(case report)라는 것입니다. 이런 유명인의 진술은 그들의 진정성에도 불구하고 논문적 가치로 생각하면 사례보고에 불과합니다. 논문에도 등급이 있다면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새롭게 들리겠지만 등급이 엄연히 존재하며 사례보고는 가장 하위의 논문입니다.

이 사례보고는 예를 들어 이런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 사례입니다.) 어떤 아이가 두통이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이 아이의 부모와 의사는 이 두통이 객관적으로 검증하기가 어려울뿐더러 검사를 통해 뇌종양과 같은 원인이 될만한 병변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상태입니다. 이런 경우 최선은 약한 진통제를 써서 통증을 조절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미국 캘리포니아의 이 소아과 의사는 수지침을 통해서 두통치료를 시도합니다. 그리고 침을 놓자마자 아이는 거의 즉시 통증의 회복을 알려옵니다. 이 사례는 모 학회 지에 사례보고가 되었고 수지침이 일정한 효과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논점을 던져줍니다.

기존 한의학계의 시기인가, 희대의 사기인가

어떤 사람은 효과가 있으면 되지 도대체 더 이상 무슨 검증을 할 것인가 하고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 위의 사례와 똑 같은 식으로 수지침의 효과를 증명하기 위해서 제대로 연구를 하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용어가 좀 어려운데 전향적 이중맹검 무작위 환자-대조군 연구가 현재 받아들여지는 표준(gold standard)입니다. 위에 소개한 사례보고가 이런 '제대로 된' 논문이 되려면 다음과 같은 과정으로 논문 디자인을 새로 해야 합니다. 일단은 두통을 평소에 잘 호소하는 소아를 가능한 한 많이 모아야 합니다. 이들은 무작위로 추출해서 두 군으로 나눕니다. 그리고 한 군에는 두통이 있을 때마다 수지침 요법을 시행하고 다른 한군에는 수지침의 지압점이 아닌 엉뚱한 곳에 침을 시술하는 식으로 시술을 받는 소아가 두 치료의 차이가 없도록 느끼게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이런 것을 환자-대조군 연구라고 하는데 이 기법이 중요한 이유는 치료를 받으면 비록 본질상 그 치료가 별 효과가 없다 하더라도 치료를 받는 사람은 치료효과를 경험하는 위약효과 때문입니다. 어렸을 때 할머니 손이 약손인 이유도 이런 원리고, 비타민을 먹으면 감기가 어쩐지 빨리 낫는다고 하는 분들은 이런 효과의 덕을 본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구당의 치료, 검증이 가능하다

그리고 통계분석 기법을 통해서 두 집단간의 치료효과가 정말 의미가 있는 정도로 차이가 나는가도 중요합니다. 비록 수지침 군에서 치료효과가 좋게 나오더라도 가짜 수지침 군과 통계분석에서 통계적으로 큰 차이가 나지 않으면 인정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의사들은(학자들은) 이런 차이가 단지 우연에 의해서 생길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날아가는 비행기에서 텔레비전을 집어 던졌다고 하죠. 이 텔레비전이 병원 옥상에 떨어질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아니면 가정집 지붕에 떨어질 확률은요. 아니면 땅에 떨어질 확률은요.

병원 지붕에 떨어질 확률에 비해서 땅에 떨어질 확률이 비교도 안되게 높을 겁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10개의 텔레비전을 던졌는데 텔레비전이 그 지역에 위치한 몇 몇 병원 옥상에 5개나 떨어지고 나머지는 가정집 지붕, 땅, 주차장, 호수 등에 골고루 떨어졌다고 해보죠. 그럼 비행기에서 던진 텔레비전 수상기가 병원에 떨어질 확률이 50%라고 단정할 수 있습니까. 할 수 없습니다.


위키에 나오는 글, 이중맹검 환자 대조군연구가 최선의 방법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 실험을 다시 해보면 해볼수록 텔레비전이 병원 같은 특정 사업체의 옥상에 떨어질 확률은 병원의 지붕이 그 도시 전체에서 차지하는 면적의 비율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에 운좋게 텔레비전이 병원 옥상에 집중적으로 떨어진 것은 진정한 자연현상과 거리가 먼 우연으로 쉬운 말로 황소가 뒷걸음치다가 생쥐를 밟은 것이 되겠지요. 물론 제가 구당 선생의 침뜸이 황소가 뒷걸음치다가 생쥐를 밟은 격이라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저는 김남수옹의 치료가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몇몇 유명인사의 사례를 들어서 구당 선생의 치료가 검증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통계학을 아는 사람이라면 실소가 터질만한 주장입니다. 문제는 한의사이건 방송국 PD건, 유명인사건 이런 것을 알만한데도 과학적인 검증이 이런 의문을 풀어줄 것이라는 사실은 외면하고 하나마나 한 논쟁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구당 김남수옹의 치료로 병원에서 고치지 못한 병을 고쳤다는 것은 검증이 되지 않은 상황임을 고려하더라도 저 같은 사람에게 상당한 호기심을 줍니다. 저도 의학은 환자의 병을 고치는 것이 최종 목적이기 때문에 방법이 한의학적이건 뜸이건 효과가 검증이 된다면 배우고 싶고 시술하고 싶습니다.

아쉽게도 우리나라의 상황은 환자들에게 꽤 잔인합니다. 환자들은 대체/유사/전통 의학과 현대 의학 사이에서 스스로 알아서 선택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귀가 얇은 사람에게 가장 잘 먹히는 것은 입소문입니다. 저는 평소 주위의 사람에게 병 치료에 관한 입소문은 가장 잘 확인해야 하는 위험한 정보라는 것을 말합니다만 누가 누가 말기 암인데 어디어디서 치료를 받고 좋아졌다면 병원에서만 치료를 받는 것이 뭔가 부족한 느낌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해볼 수 있는 것을 다 해본다는 취지로 자신을 실험대상으로 삼는 도박을 하게 되지요. 비록 돈이 엄청나게 들어가도 사람은 위약효과로 인해서 어쩐지 좋아진 것처럼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이 돌팔이는 더 입소문이 나게 됩니다.

미국 환자들에게 공개된 대체의학 정보

미국의 경우 이런 대체 의학을 검증하는 프로젝트가 NIH에 의해서 상식적으로 가동되고 있으며 대체의학의 검증을 위해서 의사들이 연구비를 지원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검증 결과는 투명하게 공개됩니다. 물론 의사들이 아니면 이런 검증에 관심을 갖기가 쉽지 않습니다만 자신이 이 치료법의 대상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최소한 의사와 상의하거나 자신이 직접 이런 정보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체의학이든지, 겉보기에 아무리 돌팔이처럼 보이는 방법이라 할지라도 이중맹검의 전향적 환자 대조군 연구 결과상 효과가 거듭 검증되고, 위험도가 낮으면서 다른 윤리적인 문제가 없다면 권할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 바로 된 의사라고 봅니다.


대체의학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미국 국립보건원 웹사이트

한가지 제가 다시 한 번 경계하는 것은 효과가 검증이 되지 않았다고 효과가 없다고 단정해버리지는 말자는 것입니다. 구당 김남수옹의 치료에도 마찬가지로 적용이 되겠는데 구당 선생의 치료는 제대로 검증을 받을 적이 없으나 효과가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다만 모르는 것뿐이죠. 한의학계에서 자신들의 방법이 (그 무엇이 되었건) 구당 선생의 치료법에 대비해 우월하다면 즉시 이중맹검의 전향적 환자 대조군 연구에 착수해서 효과를 가려야 합니다. 가능하면 같은 질환에 대해 현대의학적인 치료법도 포함시켜서 셋 중에 누가 가장 효과가 있는지 가려보면 더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결과가 나오면 과연 어떤 방법이 더 안전하고 효과적인지 국민들에게 공개하고 그 질환에는 그 방법이 표준 치료법으로 채택되도록 심사평가원에 국민들이 압력을 넣어야 합니다. 그리고 환자는 의사에게 가건, 한의사에게 가건, 침사에게 가건 그 질환에는 그 방법이 표준이라는 말을 솔직하게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의학에 전문가가 아닌 국민들이 최선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치료방법을 스스로 선택하고, 운이 좋은 사람은 좋은 방법을 선택하여 덕을 보고, 운이 없는 사람은 자기 선택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면서 피해를 보고 좌절하는 잔인함은 이제 끝내야 합니다.
-뉴욕에서의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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