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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진화(共進化)는 한 생물 집단이 진화하면 이와 관련된 생물 집단도 진화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진화생물학의 개념이다. 공진화는 작게는 아미노산의 합성에 관여하는 유전자의 돌연변이에서부터 크게는 진화의 과정에서 서로 다른 종들 사이에 일어나는 형질 변화에 이르기까지 생물학의 모든 규모에서 관찰된다. 공진화에 관여하는 한 생물의 진화는 이와 관련이 있는 생물에 대해 자연선택의 요소로서 작용하여 진화를 촉발시킨다. 숙주와 기생 생물의 관계, 상리 공생을 하는 생물의 관계 등이 공진화의 사례이다.


공진화는 포식자와 먹이 생물, 숙주와 기생 생물, 공생 생물 등과 같이 생물 간에 일대일 관계가 형성되어 서로 영향을 주는 진화 과정이다. 따라서 기후 변화와 같은 비 생물적 자연환경의 변화로 인한 진화는 공진화에 포함되지 않는다. 생물의 상호작용이 진화에 뚜렷한 영향을 준 사례가 있는 반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호작용으로 인해 상호작용의 영향이 뚜렷히 드러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와 같이 뚜렷히 드러나는 공진화를 "종 특유의 공진화"(llang|en|species-species coevolution}}이라하고 뚜렷하지지 않는 공진화를 "확산공진화"(영어: diffuse coevolution)라 한다. 자연환경에서는 확산공진화가 보다 일반적인 현상이다.


공진화의 개념은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에서 처음으로 제시되었고《난초의 수정》에서 다시 소개되었다.


미국의 진화생물학자 리 반 발렌은 1973년 공진화의 한가지 모델로서 붉은 여왕 가설을 제시하였다. 한편, 프랑스의 생물학자 시에리 로데는 적대적 공진화가 성 경쟁을 촉발한다고 보았다.


공생과는 달리 공진화는 생물 간의 상호의존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포식자와 먹이, 숙주와 기생 생물의 경우에서 처럼 서로의 생존을 위해 적대적인 관계에서도 공진화가 발생한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핵과는 다른 별도의 DNA를 가지고 있어 진핵생물의 발현과정에서 이루어진 공진화의 결과 세포소기관으로 편입되었다고 이해되고 있다. 이를 세포내 공생설이라 한다.


공진화의 개념은 인공생명에도 도입되었는데 데니얼 힐스는 소프트 프로그램 인공생명에 공진화 알고리듬을 사용하였고 칼 심스는 컴퓨터 상의 가상 생물에 공진화의 개념을 도입하였다.



진화하는 가상 생명의 동영상





더불어 산다

조개와 물고기의 공생


물은 물고기의 집일뿐더러 조개의 집도 된다. 온 세상의 강과 호수에 사는 물고기와 조개, 곧, 어패류(魚貝類)는 절묘한 ‘더불어 살기’, ‘서로 돕기’를 한다. 공생(共生), 공서(共棲)라는 것 말이다. 조개는 물고기 없으면 못 살고 물고기 또한 조개 없으면 살 수 없다. 불가사의하다고나 할까,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오면서 ‘공진화’를 한 탓이다. 

 

 

공진화, 조개는 물고기 없이 못 살고 물고기는 조개없이 못 산다

여기서 공진화(共進化,coevolution)란 생물들이 서로 생존이나 번식에 영향을 미치면서 진화하는 것이다. 포식자와 피식자, 기생자와 숙주끼리 한 쪽의 적응적 진화에 대해서 대항적 진화 또는 협조적인 진화를 하는 것을 말한다. 한마디로 긴 세월 질곡의 삶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나 없인 너 못 살고 너 없이는 내가 못 산다? 악연이던 선연(善緣)이던 간에 둘이 이렇게 연을 맺고 산다니 정녕 신묘하다.

 

우리나라 강에 살고 있는 민물고기 210여종(외래종 포함) 중에 유독 납자루아과(亞科)에 속하는 납줄개속(屬) 4종, 납자루속 6종, 큰납지리속 2종 등 12종과 모래무지 아과의 중고기속 3종, 모두 합쳐 15종의 어류가 조개에 알을 낳는다. 물고기는 다 물풀이나 돌 밑에다 알을 낳는데 이 무리들은 기이하게도 반드시 조개에 산란한다. 그런가 하면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17종 조개 중에서 말조개, 작은말조개, 칼조개, 도끼조개, 두드럭조개, 곳체두드럭조개, 대칭이, 작은대칭이, 귀이빨대칭이, 펄조개 등 6속 10종의 석패과(石貝科,Unionidae)의 돌처럼 야문 조개들은 유생(幼生)을 물고기에 달라 붙인다. 조개는 껍대기 2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매패라고 한다. 조개를 꼭지 끝이 위로 가게 두고 볼 때 오른 쪽 끝에 수관 두 개가 있다. 위에 자리 잡은 가는 것이 출수관(出水管)이고 아래 굵은 것이 입수관(入水管)이다. 물은 입수관으로 들어와서 아가미를 거쳐 출수관으로 나간다.


두드럭조개, 한국고유종, 멸종위기야생동물1급.<사진: 최병래 명예교수>

 

 

물고기가 조개 속에 알을 낳는다


임실납자루 수컷. 혼인색이 선명하다.<사진: 김익수 명예교수>


앞서 이야기 한 이들 물고기들은 산란시기가 되면 갑작스레 암수 몸에 변화가 일어난다. 수컷은 몸 색이 아주 예쁜 혼인색(nuptial color)을 띠어 멋쟁이가 된다. 암컷은 여태 없던 산란관(産卵管, 알을 낳는 관)이 항문 근처에 늘어나니 줄을 길게 달고 다니는 산불 끄는 헬기 꼴이 된다. 산란관의 길이는 종(種)에 따라 달라서 큰 조개에 산란하는 놈은 제 몸 길이보다 긴가 하면 작은 것에 산란하는 녀석들은 제 몸길이의 반이 안 된다. 이 산란관은 수란관(輸卵管)이 길어진 것이고, 산란 후엔 몸으로 빨려 든다. 이렇게 멋진 혼인색과 긴 산란관은 발정의 신호다.

 

잘 생기고 건강해야 좋은 짝을 만날 수 있고, 그래야 훌륭한 후사를 보게 되는 것이니 ‘성(性)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곱씹어 말하지만 물고기나 사람이나 후손을 잇지 못하면 도태하고 만다. 헌데, 요상하게도 이 물고기들은 언제나 산 조개에만 알을 낳는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진짜 닮은 가짜 조개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물론 조개를 찾아내는 것은 수놈 몫이다. 제가 차지한 조개 가까이에 다른 수컷이 나타났다가는 난리가 난다. 휙~~휙! 주둥이로 들이박거나 몸을 비틀어 후려쳐 텃세를 부린다. 그러다가 관심을 보이는 암놈이 나타나면 가까이 다가가 부라린 눈에 몸을 부르르 떨기도 하고, 방아 찧기, 곤두박질치기, 지그재그로 갖은 교태(嬌態)를 다 부려 암놈을 산란장(조개)으로 유인한다. 다 그런 거지! 곡진한 애정이다.

 

눈치 빠른 암놈은 순간적으로 벌어진 조개수관에 산란관을 꼽아 넣어 알을 쏟고 내뺀다. 어물거리면 조개가 입을 닫으니 동작이 재빠르다. 그러기를 반복하면서 여기저기에 알을 낳는다. 중고기 무리는 입수관에, 납자루 무리는 출수관에 산란한다. 옆에서 지켜본 수놈은 잽싸게 달려가 입수관 근방에다 희뿌연 정자를 뿌린다. 입수관으로 물과 함께 들어간 정자는 외투강(중고기 무리의 알이 듦)이나 아가미관에 끼어있는(납자루 무리의 알들임) 알을 수정시킨다. 아가미에 가득 끼어있는 물고기 알들이 조개의 숨쉬기를 힘들게 하는 것은 당연하다.


임실납자루 암컷. 산란관이 늘어져 있다.<사진: 김익수 명예교수>

 

 

조개에서 태어난 물고기는 다시 그 조개를 찾는다

물고기의 모정과 부정이 가득 고여 있는 조가비, 조개는 피 한 방울 안 섞인 다른 자식을 품은 대리모(代理母)가 된 셈이다. 무슨 이런 기구한 운명인가! 조개 몸 속의 알(한두 개에서 30~40개 정도)은 다른 물고기에 먹히지 않고 고스란히 다 자라서 나오는 지라 여읜 자식이 하나도 없다. 강물에는 조개를 통째로 꿀꺽 삼키는 동물이 없지 않은가. 인큐베이터(incubator) 속에서 자라 나온 미숙아(未熟兒)라고나 할까. 그래서 이들 물고기는 다른 물고기들에 비해서 알을 적게 낳는다. 예로, 붕어 한 마리가 평균 67,827개를 낳는 것에 비해 이들은 알을 300~400여개 정도밖에 안 낳는다. 이런 것을 보상작용이라고 하는데, 요새 사람들이 유아사망률이 낮아진 것 때문에 출산을 적게 하는 것과 똑 같다. 수정란(受精卵)은 조개 속에서 약 한 달간 자라서 약 1cm정도의 어린 물고기가 되어 밖으로 나온다.

 

이 어린물고기가 다 자라 어른 물고기가 되어 새끼 칠 때가 될라치면 제가 태어난 안태본(安胎本)인 조개를 찾는다. 연어가 모천(母川)을 찾아들 듯이 자기를 탄생시켰던 바로 그 조개들을 찾아가 알을 낳는다. 유전인자(DNA)에 각인되어 있는 것으로 일종의 귀소본능이요 회귀본능인 것이다. 너무나 신비로운 어류들의 비밀스런 생태다.

 

 

조개 유생은 새끼를 낳으러 온 물고기를 따라 여행을 떠난다 

아무튼 세상에 공짜 없다. 반드시 갚음을 한다. 그래서 이제는 조개가 물고기에게 신세를 질 차례다. 우연일까 필연일까? 물고기와 조개의 산란시기가 거진 반 일치하니 말이다. 석패과 조개는 어린 물고기 시절 한 달 가까이 붙어 살았던, 돌아온 어미 물고기(母魚)의 향긋한 젖내를 잊지 못한다.

 

글로키디움. 왼쪽 위쪽으로 유생사를 볼 수 있다.<사진: 권오길 명예교수>


물고기가 조개에 산란키 위해 주변에 얼쩡거리면 재빨리 알을 훅 훅! 내뿜는다. 여기서 '알'이라고 했지만, 실은 이미 꽤나 발생이 진행한 1.5mm가량의 '유패(幼貝)'로, 이를 갈고리라는 뜻의 ‘글로키디움(glochidium)'이라 부른다.

 

클로키디움에는 이미 두 장의 여린 껍데기가 있고, 그 끝에 예리한 갈고리(hook)가, 그 갈고리에 수많은 작은 갈고리(hooklet)가 있다. 그 갈고리로 물고기의 지느러미나 비늘을 쿡 찍어 물고 늘어진다. 그뿐 아니다. 글로키디움은 가늘고 긴 유생사(幼生絲,larval thread)라는 실을 늘어뜨려 놓는다. 일종의 올가미인 셈인데, 종에 따라서는 몸길이의 60배나 된다. 물고기가 근방을 지나치면서 올가미에 걸리면 몸을 감아서 무전여행(無錢旅行)을 한다. 

 

물고기는 숙주이고 글로키디움은 기생충이다. 녀석들은 물고기의 몸 속 깊숙이 헛뿌리(haustorium)를 박아서 체액이나 피를 빤다. 글로키디움이 더덕더덕 떼거리로 많이 달라붙으면 까뭇까뭇 육안으로 보일 정도이다. 이러면 숙주인 물고기가 기진맥진 죽는 수도 있고, 2차 세균 감염으로 생채기가 심해 형편없는 몰골이 되기도 한다. 정말 갚음하기 어렵다! 한편 조개마다 글로키디움의 크기나 모양이 다르기에 종(種)분류의 검색(檢索)열쇠(key)가 된다. 새끼를 물고기에 붙여놓은 조개는 제 새끼가 다른 동물들에게 잡혀 먹힐 걱정이 없다. 게다가 기동성 좋은 물고기 배달부가 종횡무진 새끼들을 멀리까지 옮겨주니 얼마나 좋은가. 신천지를 개척하는 유리한 적응방산(adaptive radiation)을 하는 것이다. 조개 유생은 역시 근 한 달간 탈바꿈하여 조개 모양새를 갖추면 강바닥에 떨어져 거기서 살아간다. 제2의 탄생인 것이다.

 

 

조개와 물고기의 주고 받기는 숙명적 만남, 뗄 수 없는 상생이다

이들 두 동물의 주고받기는 유전인자에 프로그래밍(programming)되어 있는 것. 숙명적인 만남, 뗄 수 없는 상생(相生)이다. 그래서 강에 조개가 절멸하면 물고기가 잇따라 전멸하고 물고기가 없어지는 날에는 조개도 따라 사라진다. 도미노 같은 것이다. 찬탄이 절로 나온다. 서로 없이는 못사는 이런 관계를 두고 인연이라 하는 것. 모든 사물은 다 연에 의해서 생멸(生滅)한다. 넌 물고기 난 조개, 부디 우리의 귀한 연분을 가볍게 여기지 말자.



생물 환경은 ‘공진화’하므로 물리적 환경 변화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나는 지난 글에서 자연선택이 생명체를 완벽하게 만들 수 없는 첫째 이유로 환경 변화를 꼽았다. 생물의 환경이 늘 변한다고 말할 때 ‘환경’은 온도, 습도, 일조량 등의 이른바 물리적 환경(physical environment)이다. 하지만 생물의 환경에는 물리적 환경뿐 아니라 함께 살고 있는 다른 생물들이 형성하는 생물 환경(biotic environment)도 있다. 생물 환경에 대비하여 물리적 환경은 다른 말로 비생물 환경(abiotic environment)이라고도 한다. 비생물 환경과 생물 환경간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다. 생물 환경은 그것이 둘러싸고 있는 생물과 함께 변화한다, 즉 공진화(coevolution)한다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물리적 환경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공진화의 예로 가장 잘 알려진 관계는 단연 현화식물과 그들에게 꽃가루받이(pollination)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꿀을 얻는 벌, 나비, 박쥐, 새 등의 동물이 맺고 있는 관계이다. 꽃가루받이는 서로 이득을 주고 받는 상리공생(mutualism) 형태의 공진화이지만 서로 쫓고 쫓기는 관계인 포식(predation)과 기생(parasitism)의 상대들도 끊임없이 밀고 당기며 함께 진화한다. 날로 속도가 느는 치타의 추격을 따돌리려 영양도 점점 빨라지고, 늘 새로운 무기를 개발하여 공격하는 기생생물에 대항하여 기주생물(host)도 새로운 유전자 조합으로 면역력을 키운다. 이 관계는 마치 옛날 소련과 미국이 벌였던 군비경쟁을 방불케 한다. 소련이 새롭고 더 강력한 미사일을 개발하면 미국은 그걸 공중에서 격침시킬 수 있는 요격미사일을 개발하곤 했다. 진화생물학자들은 이와 흡사하게 자연계에서 벌어지는 군비경쟁을 진화적 군비경쟁(evolutionary arms race)이라고 부른다.



유전자-문화 공진화(gene-culture coevolution)

"...문화는 공동의 마음에 의해 창조되지만 이때 개별 마음은 유전적으로 조성된 인간 두뇌의 산물이다. 따라서 유전자와 문화는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이 연결은 유동적이다. 얼마나 그런지는 불명확하지만 말이다. 또한 이 연결은 편향되어 있다. 즉 유전자는 인지발달의 신경회로워 규칙적인 후성 규칙(後成規則, epigenetic rules)을 만들어 내고 개별 마음은 그 규칙을 통해 자기 자신을 조직한다. 마음은 태어나서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성장한다. 물론 자기 주변의 문화를 흡수하면서 성장한다. 하지만 그런 성장은 개체의 두뇌를 통해 유전된 후성 규칙들의 안내를 받아 이뤄진다.


 문화는 유전자/문화 공진화의 부분으로서 각 세대 구성원 개인의 마음 속에서 집합적으로 재구성된다. 구전 전통이 글쓰기와 예술을 통해 증보되면 문화는 무한히 성장할 수 있고 세대를 건너 뛸 수도 있다. 그러나 후성 규칙이 주는 영향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유전적인 것이며 제거될 수 없기 때문에 일정하게 유지된다.


어떤 이들은 주변 문화와 환경에 더 잘 생존하고 번식하도록 해 주는 후성 규칙들을 대물림한다. 그리고 그런 규칙을 전혀 갖지 않은 사람이나 있어도 약한 규칙을 가진 이들은 생존과 번식에서 밀려난다. 바로 이런 방식으로 좀 더 성공적인 후성 규칙들은 많은 세대를 거치면서 그 규칙들을 규정하는 유전자들과 함께 개체군 내에서 널리 퍼지게 된다. 결과적으로는 인간 두뇌의 해부/생리적 구조가 진화해 왔듯이 행동도 자연 선택에 의해 유전적으로 진화해 왔다.


 유전적 속박의 본성과 문화의 역할은 이제 다음과 같이 더 잘 이해될 수 있다. 어떤 문화 규범은 경합하는 다른 규범들보다 더 잘 생존하고 번식한다. 이때문에 문화는 유전적 진화와 유사한 방식으로 진화하지만 그 속도는 일반적으로 훨씬 더 빠르다. 문화적 진화의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유전자와 문화 사이의 연결은 더 느슨해진다. 하지만 그런 연결이 완전히 끊어지는 법은 없다. 문화는 정확한 유전적 처방 없이 고안되고 전달되는 정교한 적응들을 통해 완경 변화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은 다른 모든 동물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 에드워드 윌슨, 통섭, 232-233p 



공진화의 개념 확장과 산업적 의미

공진화 개념이 발전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공진화의 사례들이 발견되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사례들은 기업 및 산업의 발전에 대한 통창력을 제공하여 준다.

 

내성의 증가에 대한 대비

인체와 세균과의 관계도 경쟁적 공진화는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인류는 1928년 페니실린의 발명 이후 세균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듯이 보였으나, 세균이 다시 진화하여 어떤 항생제로도 치유할 수 없는 치명적인 슈퍼박테리아가 등장하였다. 따라서 항생제를 남용하여 세균이 진화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는 교훈을 인류에게 제공하고 있다.

이는 조직 및 사회 발전에도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사회악 등 조직이나 사회에서 억제하고 싶은 행동이나 조직들도 억제책에 대응하여 진화할 수 있으므로, 초기에 너무 강한 억제 정책을 시행하는 것에 대하여서는 다시 한 번 생각하여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악 억제책이 사회악을 억제하기 보다는 다른 곳으로 이전시킨다는 ‘풍선 효과’와 같은 점을 고려하여 정책을 입안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급진적 변화의 부작용에 대한 대비

공진화의 사례 연구는 오랜기간 공진화한 부분들은 예상하기 어려운 복잡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으므로,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제거하였을 경우,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대표적인 연구가 기생충과 인체의 공진화에 관한 연구이다. 영국과 베트남 연구진은 기생충을 가지고 있는 어린이들이 알레르기 발생률이 매우 낮은 것을 파악하고, 이들에게 구충제로 기생충을 제거한 결과 집먼지진드기에 대한 알레르기가 급격히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기생충이 수백만 년 동안 인간과 공진화하면서 인체의 면역반응을 무디게 해 더 오래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하였기 때문에, 몸 안에 기생충이 없어지면 면역체계가 균형을 잃으면서 알레르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기업이나 사회에서 급진적인 개혁이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하는 점을 깊이 고려하여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켜준다. 2006년 나이키는 축구공을 만드는 과정에서 인도 어린이들의 노동을 착취한다는 비난에 직면하였다. 이후 나이키는 수제 축구공을 하청생산하던 인도의 사가 스포츠가 노동시간과 근로 환경 기준 등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계약을 종료시켰다. 사가의 형편없는 경영으로 나이키가 어린이 노동과 다른 노동위반 행위와 관련 있는 기업처럼 인식되는 점에 대한 부담이었다. 사가 스포츠 노동력의 70%가 나이키 제품 생산을 위해 고용되었기 때문에 나이키와의 계약 종료는 이 어린이들에게 더 어려운 환경에 놓이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니스벳(Nisbett)과 코헨(Kohen)은 미국의 남부 지역이 북부보다 폭력적인 이유를 사례로 문화가 유전자에 미친 영향을 설명하였다. 미국 남부는 이민 초기에 주로 목축업자들이 정착하였고, 목축업의 특성상 서로 멀리 떨어져 살고 있었기 때문에 경찰력 등의 공식적인 보호를 받기 어려웠고, 소유하고 있는 동물이 전 재산이기에 그 재산을 지키기 위하여 어떠한 위험이라도 감수하는 특징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남부사람들은 자신의 재산을 보호하는 일이라든지, 모욕적인 언행에 대항할 때는 기꺼이 폭력을 행사하는 경형을 갖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명예를 중요시하는 문화(Culture of honor)'로 인하여 자신이나 가족 등에 대한 모욕에 대항하기 위한 범죄가 다른 지역보다 월등히 높게 나타났다. 또한 통제된 상황에서 진행된 실험에서 남부 사람들은 모욕을 당했을 때 북부 사람들에 비해 코르티졸과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훨씬 올라가는 것으로 나타나서, 문화가 유전자에 영향을 미친 것을 증명하였다. 이러한 ‘명예를 중요시하는 문화(Culture of honor)'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폭력을 감소시키려는 노력은 예상외의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을 인지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로버트 보이드(Robert Boyd)와 피터 리처슨(Peter J. Richerson) 교수는 문화를 인류의 진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생물학적인 개념으로 보고, 유전자의 변형은 심리학적, 동물행동학적 요인뿐 아니라 문화적 환경에 따라서도 영향을 받는다고 보았다. 즉 인간을 개개인이 모인 집단인 개체군으로 보고, 이 개체군의 문화가 다시 그 안의 개개인을 변형하면서 인류가 진화한다고 주장하면서, 인간 행동을 유전적ㆍ문화적ㆍ환경적 원인의 상호 작용으로 설명하였다. 통섭(consilience)'의 주창자로 유명한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은 ‘유전자·문화 공진화 이론(gene-culture coevolution)’을 주장하면서 문화의 단위(모방자)가 의미 기억의 연결점과 그것의 뇌 활동이 빚어낸 산물이라고 말하였다. 인간의 마음이 작용해 만들어진 문화가 인간의 유전자에 새겨지고 인간의 유전자는 다시 인간의 마음을 만들어낸다는 설명이며, 이 과정을 통해 마음도 문화도, 유전자도 진화를 경험한다는 것이다. 즉, 문화적 진화와 생물학적 진화가 서로 피드백 관계로서 공진화한다는 것이다.

 

다양성의 확보를 위한 준비

예측 못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하여서는 조직이나 기업내에 다양한 자원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경영전략에서는 순혈조직으로 구성된 경영진이 운영하는 기업들은 이질적인 배경을 가진 경영진이 운영하는 기업들보다 변화에 대한 적응을 잘 하지 못하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이러한 다양성을 확보하는 데, 공진화는 많은 역할을 한다.


지구에 다양한 광물이 존재하는 것도 생명체와 광물간의 공진화 결과로 설명할 수 있다. 태양계 행성이 만들어지던 45억 6천만년 이전에는 겨우 60여 종의 광물만이 존재했지만, 지구 행성이 생긴 뒤 화산 폭발과 물의 작용 등으로 광물의 종류가 수백 종으로 늘어났고, 이후 원시생물이 탄생하고 바다에 조류와 말류가 번창하면서 광합성 작용으로 산소가 배출됐고, 대기 중에 자유산소(O₂)는 금속산화물의 출현을 촉진했다. 조개류가 죽고 나서 쌓이며 생긴 석회 광물도 지구에 흔하게 됐으며, 미생물의 신진대사를 통해 생긴 점토 광물도 지구에서만 볼 수 있는 광물로 자리 잡았다. 특히 20억 년 전 무렵에 지구에 금속산화물을 만들 만큼 충분한 산소가 만들어진 후, 4,200여종인 지금의 상태로 진화해 왔다.


카우프만(Kauffman)은 공진화 원리를 기업과 기업, 혹은 기업과 시장 또는 기업과 소비자 등 개체 수준을 넘어선 집단 범주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으로까지 확장되었고, 비생명체인 기술 영역까지 확대하였다. 그는 생명의 기원에서 시작해서 수정난의 형태형성에 이르기까지, 캄브리아기의 대번성에서 기술혁명에 이르기까지 여러 다양한 주제들의 근저에 깔려있는 질서를 보여주면서 공진화 원리를 설명하였다.



자기조직화

'자기조직화는 복잡성 과학의 이론을 토대로 하여 출현한 이론이다.


자기조직화를 행정시스템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자기조직화(self-organization)란 시스템의 구조가 외부로부터의 압력이나 관련이 없이 스스로 혁신적인 방법으로 조직을 꾸려나가는 것을 말한다. 즉, 한 시스템안에 있는 수많은 요소들이 얼기설기 얽혀 상호관계나 복잡한 관계를 통하여 끊임없이 재구성하고 환경에 적응해 나간다.


자기조직화의 대표적인 사례로 일리아 프리고진의 사례를 들 수 있다. 그는 점균류 곰팡이를 관찰하여 자기조직화 이론을 도출해내었는데, 점균류 곰팡이는 영양분이 모자라게 되면 서로 신호를 보내어 수만 마리가 일제히 요동을 시작하여 한 곳에 모여 어떤 수준에 도달하게 되면 그들은 응집 덩어리를 형성하고 하나의 유기체가 되어 기어다니며 영양을 섭취한다. 이 후에, 환경이 다시 나아지면 다시 흩어져서 단세포 생물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처럼 자기조직화 이론은 과학적인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혁신을 주도하는 세계의 흐름속에서 주목 받는 이론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동물행동학의 근원은 유전자에 있다

윌슨의 가장 주목할 만한 이론 중의 하나는 많은 동물 집단에서 관찰할 수 있는 이타적 행위조차도 자연선택의 과정을 통해 진화되었을 것이라는 제안이었다. 다윈의 진화 이론에 의하면 자연선택은 각각의 생물 개체에 작용하여 그 개체로 하여금 생식의 기회를 증가시키는 육체적․행동적 특징들을 발전시키도록 하는 원동력이다. 따라서 한 생물체가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을 구하기 위해서 스스로를 희생하는 이타적 행위는 자연선택과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렇지만 윌슨은 그런 이타적 행위들이 사실상 서로 밀접한 혈연관계를 맺고 있는 동물 집단 속에서만 나타난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그래서 비록 자신은 죽지만 결과적으로 자신과 동일한 유전자를 공유하는 다른 개체들에게 보다 많은 생존의 기회를 부여한다는 점을 간파했다. 동물들의 이타적 행위도 진화적 입장에서 본다면  결국 후손들에게 더 많은 자신의 유전자를 전달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적 행위라는 것이다. 윌슨은 진화의 전략이 개체보존이 아닌 유전자 보존에 있다는 사실을 적시했다.


사회생물학에서는 우리 인간을 비롯한 모든 동물들의 사회적 행동이 진화의 과정에서 자연선택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확립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런 사회적 행동의 대부분은 각 개체들에 내장된 유전자들에 의해서 통제된다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서, 개미들이 여왕개미를 중심으로 엄격한 위계질서를 구축하고 고도의 분업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나 대부분의 동물들이 자식을 끔찍이 사랑하는 행위나 최고의 배우자를 차지하기 위해서 수컷끼리 생명을 걸고 혈투를 하는 행동 등이 모두 그 내면에는 자신이 소유하는 유전자를 보다 많이 후대에 전달하기 위한 전략전술에 다름아니라는 것이다.


사회생물학이 등장한 이래 1970년대를 거치면서 사회적으로 커다란 물의를 일으켰던 이유는 분명하다. (1975년 이후 30년 동안 사회생물학을 주제로 해서 발간된 책만 해도 수백 권을 간단히 뛰어넘는다.) 우리 인간도 동물계의 일원인 분명한 바, 인간이라고 해서 사회생물학이 제시하는 이론에서 자유로울 수는 결코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사회생물학은 불가피하게 인간 본성에 대한 논쟁을 유발하게 되었는데, 이런 논쟁의 중심에 선 연구자의 입장에서 윌슨은 1978년 또 한번 화제의 책 <인간본성에 대하여(On Human Nature)>를 내아서 전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게 된다. 이 책의 발간으로 윌슨은 처음으로 퓰리처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그의 두 번째 퓰리처상 수상은 1990년 <개미들(The Ants)>의 출간으로 이루어졌다.



인간행동 역시 결국은 진화의 산물이다

<사회생물학>과 <인간본성에 대하여>라는 두 책에서 윌슨은 일관된 입장을 피력한다. 인간은 행동과 사회 구조를 획득하는 성향을 유전에 의해서 조상으로부터 물려받는데 이런 성향은 말하자면 대개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인간의 본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특성에는 남녀간의 분업, 부모자식간의 유대, 가까운 친척들에게 행하는 고도의 이타성, 근친상간 기피, 여러 다양한 윤리적 행동들, 이방인에 대한 의심, 부족주의, 집단내 순위제, 남성 지배 등이 포함된다. 사람들은 비록 자유의지를 가지고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는 선택을 행사하지만 이런 결정에 관계하는 심리적 발달의 경로는 비록 우리 자신이 아무리 다른 길로 들어서고자 발버둥을 친다고 해도 우리 몸 속에 깃들어있는 유전자들에 의해서 어떤 일정한 방향을 지향할 수밖에 없도록 한다는 것이 윌슨의 주장이다.


윌슨에 따르면 인류 문화가 제아무리 다양하다고 해도 결국은 이런 특성을 향해 부득이 수렴되는 것이 당연하다. 예를 들어서 서울 도심에 사는 사람이나 남태평양의 원시부족의 일원이나를 막론하고 설령 그들이 수만 년을 격리되어 있었다고 해도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공통적인 유전자들로 인해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인간본성에 대한 이런 윌슨의 관점은 1970년대의 시대조류에서 볼 때 대단히 예외적인 관점이었다. 사실상 서구사회에서는 20세기 내내 천성인가 양육인가 하는 논쟁이 끊이지 않았는데 당시에는 양육론이 승리를 거둔 것처럼 보였다. 그런 와중에 제기된 윌슨의 사회생물학은 천성론에 더할 수 없는 힘을 실어주게 되었는데, 이 논쟁은 지금까지도 곧잘 과학논쟁의 주제가 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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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시기

이전의 글에서도 밝혔지만, 저는 지금을 패러다임이 변하는 시기로 보고 있습니다.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기에 우리의 대처 방식도 새롭게 바꿀 것을 요구하는 시기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변화는 이전부터 꾸준히 진행되어 왔었고, 변화의 단서들은 이미 전부터 우리에게 나타나곤 했었습니다.
다만, 이전의 패러다임에 빠져있던 우리들은 이러한 단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못하고 그냥 무시하고 넘어갔습니다.

결국 패러다임의 변화를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단서들을 보아도 정작 변화를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인식하든, 하지 못하든 패러다임의 변화는 계속 진행되어 왔었다는 점입니다.
 

2. 독점에서 다양성으로

저는 패러다임이 변화하면서 나타나는 여러 현상 중 한 가지로 "독점의 약화" 즉 "다양성의 약진"을 생각합니다.

지금까지가 독점의 시대였다면, 독점의 시대는 점점 그 막을 내리고 있습니다.
독점에서 다양성의 시대로 무게중심이 옮겨지고 있습니다.

물론 여전히 독점은 그 힘이 강력합니다.
앞으로도 독점은 여전히 적지 않은 힘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독점의 힘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패러다임이 변화하면서 독점의 영향력, 힘은 지금과 비교하면 현저히 줄어들 것이 분명하며, 또 실제로 독점의 영향력은 상당히 줄어들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TV, 신문 등 거대 언론매체의 영향력이 점점 떨어지고, 다양한 매체(블로그 등)가 그 자리를 대신해 가고 있습니다.
광고는 점점 그 힘을 잃어가고 있으며 다양한 사용자의 적극적인 평가가 점점 더 힘을 얻어가는 형국입니다.
기획사에 의하여 철저하게 기획된 수퍼스타 중심의 문화에서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매니아 스타가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습니다.

권위있는 전문가가 독점적으로 주도하던 형태에서 일반인들이 자신의 위치에서 시도하는 해석이 환호를 받는 시대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거대 생산품을 일괄적으로 소비하던 패턴을 벗어나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고, 이를 존중하는 시대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독점이 점차 그 힘을 잃어가고 다양성이 그 자리를 메워가고 있는 중입니다.

멀리 가지 않아도 바로 여러분의 지금 행동에서 발견하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이미 기존에 강력한 독점적 매체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까지 찾아와서 글을 읽고 토론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경제 정보에 대한 기존 매체의 독점적 영향력이 여러분에게서부터 이미 약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3. 패러다임의 변화에 휩쓸린 경제

경제 또한 패러다임의 변화에 진입하였다고 봅니다. 
사회 전반에 흐르는 거대한 패러다임의 변화가 이제 조금씩 경제 분야에도 미치는 것으로 봅니다.

다만 경제 분야는 우리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분야인데, 다른 분야와 다르게 과격한 형태로 변화를 시작했기에 우리가 크게 인지한 것이라 봅니다.

경제 또한 이미 독점에서 다양성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미국 소비 중심의 일극 체제에서 다양성의 시대로 옮겨갈 조짐을 보이며, 자국 통화 중심 체제에서 타국 통화까지 이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으며, 종이돈 체제에서 새로운 거래 수단이 등장하는 시대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동안 별 비판없이 받아들이던 독점 경제 시스템 즉, 미국 소비 중심 경제 체제, 달러 중심의 경제 체제, 자국 화폐 중심 경제 체제, 종이돈 체제 등의 독점 시스템에 대하여 의문을 가지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내가 꼭 그것을 따르고, 써야 하는 이유가 있는가?" 하고 말입니다.

결국 각자가 이러한 독점의 시대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추구하기 시작할수록 경제적 독점 체제 또한 다양성의 시대로 진입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멀리 가지 않아도 바로 여러분의 지금 행동에서 발견하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이미 헷지라는 이름으로 자국화폐의 독점적 지위를 해체하고 있습니다.
종이돈 체제의 독점적 지위를 해체하고 있습니다.
경제 전문가의 독점적 정보를 해체하고 있습니다.
 



4. 언제까지 우물 깊이만 바라보고 있을 것인가?

지금은 패러다임 변화의 진입 시기입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제임스 즉 미국 소비 중심의 경제 시스템에 의존하여 경제성장을 해왔습니다.
그러한 패러다임에 잘 적응하여 꽤 큰 이득을 얻어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패러다임, 게임의 규칙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제임스의 위 용량이 줄어들었듯, 미국의 독점적 소비 중심 경제, 달러 중심 경제 등이 분명 약화되면서 새로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아직 그것이 어떠한 형태일지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제임스의 위 용량이 이전과는 확연히 다르게 줄어들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는 미국의 소비에 의존하여 성장해온 경제 체제 또한 상당 부분 약화하게 됨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제임스에 의존적인 경제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우리는 과연 어디에 관심을 두어야 할까요?
제임스의 위 용량이 다시 나아지기를 기다리며 시스템을 유지하는데 에너지를 써야 할까요,
아니면 제임스의 위 용량에 의존적인 부분을 줄여 우리 스스로 변화에 적응, 선도하기 위해 에너지를 써야 할까요?

옆집 우물에 물 길러 갔는데, 우물 바닥이 너무 깊어졌으면, 두레박 줄 짧은 것을 탓해야 할까요, 아니면 우물 깊은 것을 탓해야 할까요?

변화는 어디에서부터 올까요?
바로 내 두레박 줄을 고치는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물 깊은 것은 우리가 어찌할 수 없으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에서 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제임스의 위 용량에 목숨 걸고, 제임스의 위 용량이 되돌아 올 때까지 어떻게든 버텨보자 하는 식입니다. 

물론 당장은 버틸 수 있겠지요. 버티기가 힘을 발휘하고, 제임스가 잠깐 과식하면 경제가 살아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요.

하지만 버티는 과정에서 자본은 계속 소비되고, 행여 버텼다 하더라도 제임스의 위 용량이 줄어든 만큼 우리의 경제 또한 쪼그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의존성에서 탈피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패러디임은 계속 변화하는데, 그 패러다임에 맞추어 구조를 변경하지 않고, 계속 버티기가 지속될수록 새로운 패러다임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게 되고, 그만큼 기회를 잃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신경써야 하는 더 중요한 것은 제임스의 위 용량이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응하여 앞서가느냐의 문제입니다.


5. 자본을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향후 성패를 좌우

저는 패러다임에 잘 적응하고 이를 선도하게 되면 어떤 식으로든 자본이 몰려오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현재 미국은 위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자본으로 하여금 새로운 둥지를 찾게 만드는 요소가 될 것입니다.

물론 당장은 아니지만, 앞으로 상당 기간, 상당한 자본이 미국을 떠나 새로운 둥지를 찾게 될 것이라고 봅니다.

문제는 이러한 자본이 어디에 안착하느냐입니다.
미국에서부터 이탈하여 나오는 자본이 어느 경제 체제에 둥지를 트느냐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이것이 향후 성패를 좌우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결국 향후 이탈하는 자본을 유인할 수 있는 경제 체질을 갖추는 것이 향후 오랜 기간 동안의 주도권을 가지게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자기 자본을 확보해야 합니다.
자기 자본 없이 외국 자본을 유인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아무리 사업계획서가 좋다 하더라도 무일푼인 사람에게 자본이 몰리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무일푼인 사람에게는 이자가 높게 책정됩니다.
그만큼 위험이 크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자가 높으면 고수익을 노리는 투기자본은 몰릴지 몰라도 안정적으로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자본의 비율은 낮을 수 밖에 없습니다.
자기 자본이 안정적으로 있어야 외국 자본도 안심하고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존 패러다임에 묶여 있으면서 버티기 위해 자기 자본을 자꾸 소진한다면 어찌 될까요?
향후 외국 자본의 유인 요소를 스스로 줄여버리는 셈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 앞으로도 버블 경제와 부동산 버블의 패러다임이 유지된다고 하면 지금의 버티기 정책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시대는 이제 종말을 고하고 있는 시대에 그동안 수출을 통해 벌어들인 자기 자본을 버블 유지에 투자하는 것은 향후 외국 자본의 유인을 막아서는 행동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는 곤란합니다.
자기자본의 규모는 외국 자본의 유인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새로운 경제 체제에 맞지 않는 것은 과감히 도려내야 합니다.
특히 지금의 버블 중심의 경제는 이제 그 규모가 급격히 줄어들 것이 명백합니다.
이를 지금 도려내지 않는다면 향후 빨리 달려야 할 때 이것이 족쇄가 되어 우리 경제를 묶어둘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 더 달릴 수 있는데, 엉뚱한 곳에 에너지를 쓰다 보니 정작 달리기에는 힘을 쓰지 못해 성과를 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지 않는 것이 있어야 비로소 하는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놓거나 줄여야 비로소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습니다.

IMF 시절 구조개혁하겠다고 해놓고, 잠깐 하는 듯 하더니 1년만에 경제가 나아지는 듯 하자 주인만 바꾸는 식으로 땜질식 구조조정했습니다. 그러다가 9.11 테러가 일어나면서 전 세계적으로 유동성 확장 시기가 찾아오니 다들 자산 가격 상승에 취하여 구조조정은 뒤로 미루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도 살아남아서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지 않습니까?
자동차 산업이 그러하고 반도체 산업이 그러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너도나도 부동산에 뛰어들고 나니 기업인도 기업하기 보다는 부동산 투자에 정열을 쏟고 노동자도 노동하기 보다는 부동산 투자에 정열을 쏟는데, 얼마나 우리 경제가 빨리 성장할 수 있겠습니까?

많은 사람이 생산적인 일을 등한시 하는 경제 구조라면 패러다임의 변화에 얼마나 빠르게 적응할 수 있으며 또 적응했다 하더라도 얼마나 효율적으로 성장할 수 있겠습니까?

과거의 패러다임에 묶여 있으면서 단순히 주가가 좀 올랐다는 이유로 만약 기존의 체계에 안주하려 한다면 무슨 비전이 보여서 자본이 들어오겠습니까?

한 번의 실수는 그렇다 쳐도 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해서는 곤란합니다.
지금은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기이고, 새로운 둥지를 찾는 자본이 늘어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단성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지금 괴롭다 하더라도 미래의 안정적 자본을 유인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구조 개혁에 더욱 고삐를 당겨야 합니다.


패러다임이 변화하는데 과거의 패러다임에 묶여 지금의 구조를 유지하는데 자본을 소비하는 국가

                     VS

패러다임의 변화에 적응 대응하여 지금 뼈를 깎는 구조 개혁을 통해 새로운 변화에 자기 자본을 투입하는 국가


여러분이라면 이 두 국가 중 어디에 자본을 투입하겠습니까?


6. 패러다임에 부적응하는 것은 안 보일까?

투자란
지금 소비를 억제하고서라도 미래에 얻을 것을 생각하여 자본을 투입하는 것입니다.
외국 자본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아직 패러다임의 변화에 부적응 상태임에도 만약 주가가 오른다면 이는 마냥 즐거운 일일까요?
우리의 상태가 장기적으로 패러다임의 변화에 부적응 상태라면 외국 자본의 유입도 장기적이 아니라, 단기적일 뿐입니다.

그래도 분명 다행입니다.
단기적으로라도 들어온다면 그만큼 시간과 기회를 번것일 수 있으니 말입니다.

저의 주된 관심은 주가에 있지 않습니다.
저의 주된 관심은 우리가 과연 패러다임의 변화에 적응하고 있는가, 앞으로 다가올 기회를 위해 자기 자본을 확보하는지, 행여 낭비하지는 않는지, 구조 개혁은 속도를 내는지, 행여 조금 나아졌다고 풀어져버리지는 않는지.
이런 것에 주된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만약 주가가 오르면 기회와 시간을 더 얻었으니 더욱 자기자본 확보와 구조 개혁에 힘을 써야 하며, 만약 주가가 떨어지면 기회와 시간을 얻지 못했으니, 더욱 자기자본 확보와 구조 개혁에 힘을 써야 할 뿐입니다.

기회를 얻든, 못 얻든 주가가 어떻게 되든, 우리가 자기자본 확보와 구조 개혁에 신경쓰고 매진할 때 비로소 우리의 두레박 줄을 바꾸는 것이고, 그럴 때 우리 뿐 아니라, 우리 미래세대까지 비로소 시원한 우물물을 마실 기회를 얻게 될 것입니다.
by 양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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