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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식 아뢰야식(阿賴耶識)과 제9식 아마라식(阿摩羅識) 


1) 아뢰야식(阿賴耶識/alaya-vijnana)이란


   불교에서는 우리 인간의 인식활동을 안(眼) ‧ 이(耳) ‧ 비(鼻) ‧ 설(舌) ‧ 신(身) 다섯 가지 감각기관(5근/五根=5관/五官)이 인식하는 ‘전5식(前五識)’과 정신부분인 제6식인 의식(意識)을 합해서 6식(六識)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제6식인 의식의 뿌리가 되는 것이 제7식인 말나식(末識;manas -vijnana)이다. 


   말나식은 자아의식(自我意識)으로서 제6식보다 한 단계 깊은 마음의 세계이다. 그리고 제7식 말나식보다 더 심층에 숨어있는 잠재의식이 제8식 아뢰야식(阿賴耶識, alaya-vijnana)이다. 헌데 아뢰야식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프로이드가 말하는 무의식(Unconsciousness) 정도로 생각해도 크게 잘못될 것은 없다. 


   인도에서 유식학도들이 인간의 심리를 관찰해 학문적으로 정리하는 가운데 가장 큰 업적을 세운 것이 말나식과 아뢰야식의 발견이라고 한다. 이 제1식부터 제8식까지를 통틀어 생각 혹은 마음이라 한다. 

 


   제8식 아뢰야식은 인간의 모든 활동을 총괄한다는 점에서 정(淨)과 염(染), 선과 악 모두의 의지처가 되며, 마음이 정이나 염이 되고, 행동이 선이나 악이 되는 것은 그 근저에 아뢰야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뢰야식 자체가 오염(汚染)의 근원일 수도 있고, 청정(淸淨)의 근원일 수도 있다. 


   이 아뢰야식(제8식, 心)은 자아의식(제7식, 意)과 대상의식(제6식, 識)을 총괄해서 마음의 흐름에서 주체가 되는 잠재의식이다. 6식의 활동은 인식된 것을 계속해서 보존할 수 있는 보존성이 없기 때문에 어느 때 어느 곳을 막론하고 항상 변하지 않고 그 존재가 이어져 갈 수 있는 궁극적인 실체로서의 존재를 따로 상정하고 있다. 즉 업의 저장소로 윤회의 주체가 되는 그것이 바로 제8식인 아뢰야식이다. 


   범어 아뢰야(alaya)는 ‘저장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 무엇을 저장한다는 말인가? 종자(種子, bija)를 저장하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을 통해서 하는 생각과 행동은 하나도 빠짐없이 종자로 변해 아뢰야식에 저장된다. 


   모든 일어난 일이나 생각들을 전부 받아들여서 기록하고 저장하는 카메라의 필름과 같은 역할을 하는 무의식이 아뢰야식이다. 여러 행위가 필름에 찍히듯이 업이 돼 아뢰야식에 전부 저장되게 된다. 그래서 아뢰야식을 업장(業藏=업의 창고) 혹은 장식(藏識)이라고도 한다. 즉 6식을 통해서 얻어지는 모든 작용이 제7식 말나식을 통해 아뢰야식으로 저장된다. 그래서 아뢰야식이 바로 말나식의 근거이기도 하다. 


   무시이래 각자가 해온 정신적 육체적 행위는 하나도 빠짐없이 종자(種子)가 돼 제8식 아뢰야식에 차곡차곡 저장된다. 아뢰야식에 저장되는 것을 훈습(薰習)이라고 하며, 종자를 습기(習氣)라고도 한다. 종자는 좋은 종자와 나쁜 종자가 있는데, 나쁜 종자와 좋은 종자 모든 종자를 훈습시켜 담아둔다. 그래서 아뢰야식을 종자식(種子識)이라고도 한다. 

 


   이와 같이  아뢰야식은 과거 행위의 온갖 잔상(殘像)들을 저장하는 훈습작용을 한다. 우리가 잠자다가 꾸는 꿈은 제6 의식의 영역인데, 전생 또는 이전에 내가 지은 행위(업)가 하나도 빠지지 않고 제8 아뢰야식에 저장돼 있다가 꿈을 꿀 때 제6의식을 통해 다시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잔상들이 미래의 업을 일으키는  행위의 씨앗(종자)을 형성하기도 한다. 종자는 아뢰야식 속에 있으면서 스스로 자기 결과(업)를 일으키는 특수한 에너지(氣)이다. 


   이처럼 아뢰야식은 모든 존재의 생명과 신체를 유지시켜 나가는 업력(業力)과 윤회의 심종자(心種子)가 저장돼 있는 곳으로 일생동안 끊어지지 않고 존재의 밑바탕에 붙어 있다가 알맞은 환경과 조건 등의 연(緣)을 만나면 업력이 원동력이 돼 다시 생각하고 행동한다. 


   저장된 종자가 다시 생각과 행동을 일으키는 것을 ‘현행(現行)’이라 하는데, 현행은 종자를 낳고, 종자는 현행을 낳는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통해서 행한 나쁜 생각과 행동은 나쁜 종자를 낳고, 선한 생각과 행동은 선한 종자를 낳는다. 이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렇다. 종자가 현행으로 나타날 때도 악한 종자는 반드시 악한 행동과 생각을 낳고, 선한 종자는 선한 행동과 생각을 낳는다. 


   여기에서 인과응보(因果應報), 업보(業報)사상이 나온다. 자기가 한 행동과 생각이 빠짐없이 아뢰야식 속에 기록으로 남아 있다가 그와 유사한 환경에 처하면 의식으로 살아나서 그것을 바탕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계속되고 있으며, 저장된 종자는 지워지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전생에서 이생으로, 이생에서 내세로 계속 이어지면서 세세생생(世世生生) 윤회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의 의식 가운데 하나인 아뢰야식에는 모든 행위(업)가 발생 즉시 자동적으로 저장 입력된다. 행동하는 즉시, 생각하는 즉시 저장되는 의식의 저장 탱크, 선악의 저축 뱅크다. 그리하여 육식(六識)의 심층에 아뢰야식이 있으며, 이 아뢰야식은 육체는 죽어도 사라지지 않고 내생으로 이관된다고 한다. 이 아뢰야식에 저장된 종자가 바로 업(業)이다. 그래서 전생의 업이란 전생의 아뢰야식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즉, 인간이 죽으면 종자(아뢰야식)는 다른 모태를 만나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다. 이 현상이 바로 윤회이다.  


   따라서 여기에 저장돼 있는 업에 의해 내생이 결정된다. 그래서 아뢰야식이 윤회의 주체, 혹은 실체라고 하며, 이것을 아뢰야식연기설(阿賴耶識緣起說)이라고 한다.  즉, 아뢰야식에 저장된 종자에 의해 일체 만법이 연기하는 것이 아뢰야연기설이다. 


   업이란 과거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한 모든 것들이 우리 몸속(아뢰야식)에 입력된 의식을 말하는데, 이 아뢰야식에 저장된 업이 어떤 계기로 움직여 일어나는 생각을 업식(業識)이라 한다. 따라서 아뢰야식은 불변의 요소가 아니고 우리 마음 작용에 의해 변하며, 수행 정진에 의해 소멸도 된다. 이와 같이 아뢰야식은 고정된 실체의 개념이 아니라서 업이 소멸되면 아뢰야식 또한 없어지는 것으로 수행을 통해 자기 업장을 다 소멸시키면 아뢰야식 또한 소멸되는 것이니, 고정된 실체 혹은 자아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없는 것이다. 


   따라서 불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기의 심신을 오염된 상태에서 청정한 상태로 질적 변화를 시키는 것이다. 그것이 수행이며, 수행을 통해서 아뢰야식 속에 있는 악한 종자를 남김없이 소멸시켜야 완성된 인간인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유식불교에서는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고 계속 반복해서 선정 수행을 함으로써 아뢰야식 속의 악한 종자를 다스려 나아가야 한다고 본다. 



   예를 들면, 길을 가다가 만 원권 돈다발을 발견했다고 하자. 이 때 어떤 사람은 남이 볼가 봐 빠른 동작으로 호주머니에 넣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남이 보든 말든 돈을 주워서 돈 주인을 찾아주기 위해 경찰관서로 가지고 가서 신고를 할 것이다. 이 두 사람은 왜 이런 차이를 보일까? 그 차이는 그들이 과거에 정신적 육체적 경험에 의해 축적돼온 종자의 차이 때문이다. 자식이 부모를 닮는다는 것도 어려서 어른들이 하는 짓을 봤기 때문에 그 본 것이 종자로 저장돼 있다가 그와 같은 상황이 닥치면 자기네 부모가 했던 짓을 자식도 따라서 하기 때문이다. 


   선행은 선종(善種)을 낳고 다시 선행을 가져오며, 악행은 악의 종자를 낳고 다시 악한 행동을 생산한다. 한번 훈습된 종자는 언젠가는 반드시 현행되는데 선을 쌓으면 좋은 결과를 가져오고, 악을 쌓으면 악의 결과를 가져온다. 악의 종자는 업장소멸을 위한 수행과정을 거치지 않는 한 결코 사라지지 않고 괴로운 결과를 가져온다. 불교의 수행은 바로 아뢰야식에 저장된 악의 종자를 소멸해 가는 과정이다.   


   헌데 원래는 8식까지만 있다고 했으나 인간의 육신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의식도 진화해 후대에 제9식인 아마라식(Amala)의 단계가 있다고 하는 이론이 성립됐다. 

    


2) 제9식 아마라식(阿摩羅識/Amala-vijnana)이란 


   제9식 아마라식을 암마라식(菴摩羅識) ․ 아말라식(阿末羅識)이라 음역하기도 하고, 무구식(無垢識), 진여식(鎭如識), 혹은 백정식(白淨識)이라 의역하기도 한다. 제8식 아뢰야식 이외에 반야(般若)의 지혜가 곧 제9식 아마라식이다.  


   양나라 무제(武帝) 때 인도에서 중국으로 온 진제(眞諦, Paramartha, Gunarata 499∼569) 계통의 섭론종(攝論宗)에서는 9식설을 주장했고, 당나라 현장(玄奘, 602-664) 계통의 법상종(法相宗)에서는 8식설을 주장했다. 


   그리고 신라 유식의 대가 문아(文雅)=원측(圓測)은 구유식의 9식설을 취하지 않고 신유식의 8식설을 취함으로써 종래의 섭론종이 주장하는 제9 아마라식을 제8 아뢰야식의 정분(淨分)으로 이해했다.


   제8식 아뢰야식까지로 모든 식을 마무리하는 주장은 아뢰야식 가운에 염(染) ‧ 정(淨), 곧 오염된 식과 청정한 식이 같이 아울러 있다. 그러니까 청정한 식 즉 백정식(白淨識)의 요소가 아뢰야식 가운데 다 갖추어 있으니 새삼스레 무슨 필요로 9식설을 낼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9식설을 말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오염된 식과 청청한 본래 식은 차이가 있으므로 마땅히 별도로 시설해야 한다고 한다. 즉 유식론에서 인간의 마음을 설명하는 8식 중, 제8식인 아뢰야식이 미망에서 완전히 벗어나 깨끗해진 상태에 이른 것을 아마라식이라는 것이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참 나’를 의미하고, 전생과 이생을 연결하는 종자(種子)의 역할을 한다고 하며, 인간의식의 가장 저변에 있다고 한다. 


   제6식의 저변에는 제7식인 말나식이 있고, 그 7식에서 보다 깊이 들어가면 제8식인 아뢰야식이 있으며, 그 아뢰야식의 근본으로 아마라식이 있다는 것인데, 이 아마라식이 이른바 불성(佛性)이어서  제9식이 곧 부처님의 경지라고 한다. 


   현장(玄裝) 이후에 <해심밀경(解深密經)> 같은 유식론파 경전에서 이러한 제8식에 가려 있는 무명이 없어진 깨끗한 식을 상정(想定)해서, 제8식 외에 감추어진 식을 제9식 아마라식이라고 했다. 제9식이라고 해서 식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사실은 반야(般若)이고, 8식이 성불하면 제9 백정식이 되며, 제9식 백정식에 이르면 곧 부처가 된다는 것이다.        


   아마라식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제8식은 모두 허망한 것이며, 제9식인 아마라식만이 진실한 것이라 한다. 즉 제8식인 아뢰야식이 미망(迷妄)을 버림으로써 청정 상태에 이른 것이 제9식이라는 것이다. 



아카식레코드(우주도서관, Akashic Records)


사람의 기억의 창고(도서관)가 뇌에 있는 것처럼 우주에도 기억의 창고 같은 것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는 것이 일부 사이킥능력자(영능력자), 예지능력자들의 주장이다. 그 기억의 창고, 우주도서관같은 것을 ‘아카식레코드(Akashic Records)’라고 한다. 

아카식레코드라는 개념이 근래에 처음 등장하게 된 것은 ‘신지학(神智學)협회’를 창설한 브라바츠키(1831~1891)와 ‘인지학(人智學)협회’를 세운 루돌프 슈타이너(1861~1925)와 관련이 있다. 브라바츠키는 20세기 신비주의의 토대를 마련한 러시아 출신의 영매이고 루돌프 슈타이너는 신지학의 신비주의적 요소를 제거하고 그것을 더욱 합리적으로 학문화해 ‘인지학’의 틀을 마련한 인물이다. 


슈타이너는 브라바츠키의 신지학처럼 유체이탈, 영적 의례(채널링 등), 마술 같은데 의거하지 않고, 명상과 도덕적 수양만으로도 ‘초감각적 인식’에 도달할 수 있다는 인지학 이론을 세웠다. 그는 타고난 투시 능력자, 영시 능력자인데다가 논리적 사고능력, 언어표현능력도 뛰어났다. 


신지학의 브라바츠키같은 순수한 영매와는 달리 자연과학자의 눈과 철학자의 논리적 사고능력에다가 예술가다운 문장력을 갖춘 영적투시 능력자인 슈타이너는 신비학도 학문으로서 성립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사람이 스스로 ‘초월적 인식’을 획득할 수 있을 때에야 ‘인지학’은 하나의 학문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슈타이너는 인지학의 방법에 따라서 수련, 특히 그 ‘명상’과 ‘집중’ 수련을 매일 15분씩 꾸준히 계속하면 초월적 인식능력의 발현은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슈타이너는 ‘아카샤연대기(Akasha chronicle)’라는 저서를 남겼다. 그는 거기서 우주의 창생부터 혹성의 진화, 고대의 아틀란티스 대륙과 무 대륙 등의 존재에 관해 이야기를 했는데, 아카식레코드와 접촉해 정보를 얻었다고 했다. 바로 이로 인해 아카식레코드라는 용어가 ‘정신세계’ 관련자들 사이에서 곧잘 쓰이게 됐다. 

그런데 이 아카식레코드 즉 우주도서관은 사실은 우리의 내부에 있는 것이라는 주장이 그후에 심심찮게 제기되어 왔다. 미국의 뇌과학자인 존 C. 릴리 박사는 의식의 심층을 끝까지 탐구한 학자이기도 한데, 그는 자신의 내적 체험의 기록에서 심층의식의 가장 깊은 데에 아카식레코드같은 우주적인 기억층이 존재하는 것 같다고 했다. 


스위스 출신의 분석심리학자 칼 융 박사가 말하는 ‘집합적 무의식’이라는 사람의 가장 깊은 의식층이 릴리 박사가 말하는 우주적인 기억층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꿈 속에서 체험하는 다양한 세계와 직관의 세계, 죽음의 순간에 주마등처럼 체험한다는 ‘자기의 일생’의 광경도 이 심층의식을 체험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언하거나 예지하는 것도 그 일부분은 자기의 심층의 정보를 읽고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슈타이너도 아카식레코드에 접근하는 능력을 개발하는 수단으로서 명상을 수련할 것을 강조했다. 알다시피 명상은 심층의식과 접촉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의 하나이다. 


결국 슈타이너도 자기의 심층의식에 담겨있는 정보에 접근해 ‘아카샤연대기’를 썼다고 할 수 있다. 영적투시 능력자나 예지 능력자 가운데는 특별한 수련을 하지 않았는데도 능력을 발휘하게 된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어떤 일을 계기로 자기의 심층의식과의 통로가 활짝 열려버렸거나 타고난 심층의식 연결자일 수 있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명상을 효과적으로 열심히 하는 것만이 심층의식 속의 우주도서관, 무한한 지혜의 세계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이다. 


우리의 심층의식은 우주만물의 의식과 하나로 이어져 있다. 우주만물에는 모두 의식이 있으며 그것은 균질적인 것이다. 사람도 에고(자아의식)가 형성되기 전인 갓난아이 때에는 우주만물의 의식과 균질적인 의식인 심층의식만을 가지고 살아 우주만물과 하나로 이어져 있었다. 우주도서관의 문이 그대로 열린 것 같은 상태에서 사는 것이다. 

말을 할 줄 몰라 표현을 하지 못할 뿐 그들은 아카식레코드를 모두 읽을 수 있는 지혜의 덩어리이다. 나이가 들면서 에고(자아의식)가 형성되어 감에 따라 우주도서관이며 지혜의 덩어리인 심층의식은 깊은 심층으로 밀려들어가게 된다. 그래도 심층의식이 완전히 덮혀 있는 어른들과는 달라서 언뜻언뜻 우주도서관과 연결되는 일이 있다. 아이들 가운데 자기의 전생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예언·예지의 소리를 하는 아이들이 그런 아이들이다. 



※ 아카식레코드(우주도서관)에 접근하는 법


아카식레코드라고 불리는 집합적 무의식층(심층의식층)에 접근하려면 자아의식(표층의식)을 제어하여 집합적 무의식층으로 녹아들어가는 일이 필요하다. 

집합적 무의식은 우주의식이기도 하기 때문에 거기에는 만물의 정보가 다 들어 있다. 거기서 필요한 정보를 가져오려면 자기의 책임과 자유의지로 아카식레코드에 접근하겠다는 자기의 결의가 필요하다. 


아카식레코드는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정보만을 내주는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스피릿가이드(지도령)나 고차원적 존재(천사, 장군신 혹은 조상령, 옛 성자 등)에게 지금 필요로 하고 있는 정보만을 열람할 수 있게 해달라고 청원을 해도 좋을 것이다. 


1) 긴장 이완할 수 있는 자세

긴장 이완이 될 수 있는 상태라면 누워도 좋고, 앉아도 좋다. 음악을 들으면서 하는 것이 긴장 이완이 더 잘된다면 음악을 틀어도 무방하다. 


2) 호흡에 의식을 집중한다

보통보다 느린 호흡을 마음이 가라앉을 때까지 계속한다. 호흡의 길이는 마음의 상태가 변하는데 따라서 적당히 조절하도록 한다.


3) 빛 구슬을 이미지로 만든다.

이마 한 복판에 탁구공 정도의 크기의 구슬을 이미지로 만든다. 그 구슬은 청자색이고 그 둘레는 흰 구름으로 둘러싸여있다. 구슬이 돌기 시작하면 그 높이를 유지한 채로 머리의 중앙까지 평행으로 이동시킨다. 

회전운동이 잘 되지 않을 때에는 안쪽의 색(청자색)과 바깥쪽의 색(흰색)을 반전시키고, 머리 한복판에서 빛의 구슬을 곧바로 떨어뜨리는 이미지를 그린다. 


4) 지구의 빛

발밑을 통해 숨을 들이마시는 이미지로 호흡을 해본다. 숨을 내쉴 때에도 그 흐름은 멈추는 일이 없다. 숨을 들이쉬고 있을 때에도 숨을 내쉬고 있을 때에도 발밑에서 지구의 빛이 들어온다. 

이런 호흡에 익숙해지면 다음에는 지구의 빛에 색채를 붙여보도록 한다. 색은 전부 10가지이다. 각 색마다 최저 한 번씩의 호흡을 해보도록 한다. 이미지가 잘 떠오르지 않는 색은 여러 차례 계속해서 해보도록 한다. 

빛은 좌회전의 나선을 그리면서 적색, 오렌지색, 황색, 녹색, 청색, 남색, 자색, 로즈핑크, 은백색, 마지막은 밝은 황금색이다. 황금색은 서너 차례 호흡을 해보도록 한다. 

온몸을 황금색 빛이 가득 채워간다. 그 빛은 한 번씩 숨을 쉴 때마다 점점 더 커져가다가 두 팔을 벌린 크기만한 계란 모양이 되었다. 


5) 우주의 빛

정수리를 통해 숨을 들이마신다는 이미지로 호흡을 해보도록 한다. 숨을 내쉬고 있을 때에도 그 흐름은 멈추는 일이 없다. 숨을 들이쉬고 있을 때나 내쉬고 있을 때나 머리 위 30센티쯤 되는 곳에서부터 우주의 빛이 쏟아져 들어와 양팔을 벌린 크기의 공간을 가득 채워간다. 이 호흡에 익숙해지면 다음에는 우주의 빛에 색을 붙여 간다. 

색은 전부 열 가지이다. 각 색마다 최저 한 번씩의 호흡을 해보도록 한다. 우주에서 들어오는 빛은 지구의 빛보다 섬세하기 때문에 투명한 색을 이미지로 그리도록 한다. 

색은 투명한 적색, 투명한 오렌지색, 투명한 황색, 투명한 녹색, 투명한 청색, 투명한 남색, 투명한 자색, 투명한 로즈핑크, 투명한 은백색, 그리고 마지막은 투명한 황금색이다. 

이 투명한 황금색의 알이 차원을 넘어설 때의 우주복(우주를 여행할 때 입는 옷)으로 바뀌어 우리의 육체, 마음, 정신, 혼을 지켜준다. 


의식을 가지고 하는 여행에서는 우리의 내부로의 여행은 동시에 우리의 외부인 우주로의 여행과 같은 것이다. 우주는 하나의 의식으로 통일장을 이루고 있다. 


6) 빛의 바퀴

머리 위에서는 우주의 빛이, 발밑에서는 지구의 빛이 들어오는 것을 이미지로 그리면서 호흡을 계속한다. 

앞에서 머리 중앙에다 만들었던 구슬을 심장 언저리까지 천천히 수직으로 이끌어내린다. 그리고 지구의 빛과 우주의 빛을 그속에서 융합시키는 이미지를 그리면서 호흡을 해본다. 

두 개의 흐름을 융합시킴으로써 구슬 속은 제로포인트가 된다. 심장에다 의식을 집중하면 언제나 ‘조화’ 속에 머물러 있을 수가 있다. 


7) 33계단

언뜻 보니 눈앞에 계단이 있다. 모두 33계단이다. 수를 세면서 올라가 보자. 1, 2, 3,…, 11계단째는 자아의식의 최고영역이다. 여기서 잠시 발을 멈추고 주위의 경치를 구경한다. 

그 다음에는 자아의식을 넘어서 12, 13, 14, …, 22. 만약 피로를 느끼면 잠시 휴식을 취해도 된다. 준비가 되었으면 경계선을 넘어서 앞으로 나아간다. 23, 24, 25…, 점점 우주도서관이 보인다. …, 29, 30, 31, 32, 33.


8) 우주도서관의 입구

문 좌우에는 돌의 대좌가 있고 오른쪽 대좌에는 ‘지혜의 문장’이라는 상형문자, 왼쪽 대좌에는 ‘용기의 문장’이라는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다. 각각 ‘너 자신을 알라’, ‘너 자신이어라’라는 의미의 말이 쓰여져 있다. 

그 앞에서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속으로 ‘열려라, 문이여’하고 외웠더니 우주도서관의 문이 소용돌이를 치기 시작한다. 도서관으로 한 걸음 발을 옮겨보았더니 깊은 바다 밑에 있는 것 같은 고요함이 느껴진다. 이미 차원을 넘어서 있기 때문이다. 

돌아가고 싶다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돌아갈 수가 있다. 거기서 스피릿가이드나 고차원의 존재를 불러보아도 좋을 것이다. 부르면 언제나 와줄 것이다. 


9) 수정구(水晶球)

똑바로 걸어가면 수정구가 보인다. 수정구에 손을 대고 소리를 내 질문을 하거나 마음 속으로 질문을 떠올리거나 하면, 목적하는 책이 나온다. 도서관에는 거울과 같은 테이블이 있으니 거기에 손을 대고 책을 내와도 된다. 만약 읽을 수 없는 문자로 되어 있는 책이면, 읽을 수 있는 문자의 책으로 바꿔달라고 청원해도 된다. 

우주도서관의 정보는 머리로 읽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다 만든 제로포인트의 영역에서 읽도록 해보자. 머리로 이해하려고 하면 알 수 없는 문자가 있지만 가슴의 영역에서 읽으면 알 수 없었던 문자도 차츰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10) 개인의 책

개인의 책을 읽을 때에는 수정이나 테이블에 손을 대고 자기의 이름을 말하도록 한다. 그래도 책이 나오지 않을 때에는 생년월일을 덧붙인다. 표지를 펼치고 손을 대면 필요한 페이지가 저절로 열릴 것이다. 

당신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전생이나 상처받은 기억같은 것은 결코 열리지 않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말한다면 펼쳐진 페이지는 당신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것 뿐이니 용기를 내서 읽어나가기 바란다. 

펼쳐진 페이지에는 한 장의 사진과 문자가 늘어서 있다. 해독하기 어려운 문자는 스피릿가이드 혹은 고차원의 존재에게 읽어달라고 부탁한다. 사진에는 당신의 전생의 모습이 찍혀있다. 


11) 돌아오기

우주도서관에서의 검색이 끝났으면 스피릿가이드에게 돌아간다고 하자. 검색에 몰두하고 있으면 가이드가 돌아가기를 재촉하는 때도 있다. 여기는 또 다시 올 수 있는 곳이니까 온 길을 그대로 되돌아가자.

우주도서관의 문을 나서니 눈 밑으로는 별들을 거느리고 소용돌이치고 있는 은하가 보인다. 하나하나의 별이 서로 다른 빛을 방사하고 있으면서도 모두가 연결되어 있는 것 같은 일체감을 맛보기 바란다. 

여기서 보이는 광경은 우주의 집합적 무의식이며 이 계단은 우주와 지구를 잇는 다리가 된다. 33, 32, 31, … 22계단째는 인류의 집합적 무의식이다. 여기서 조금 휴식을 취해도 무방하다. 이곳에서는 태양계와 이웃 별들이 보인다. 21, 20, 19, …, 11계단째는 당신의 의식이다. 지구로의 귀환이 다가왔다. 이 지구에 처음으로 내려선 날의 일을 회상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확인하듯이 계단을 내려가도 좋을 것이다. 10, 9, 8, …, 1.


12) 심장의 영역

대지에 단단히 발을 딛고 발바닥에서 대지의 숨결을 느껴보도록 하자. 혹성인 지구와의 조화가 느껴지면 심장에 만든 빛의 구슬을 황금색으로 바꾸어 곧바로 발밑으로 내려보낸다. 우주에서 얻은 정보를 지구의 중심에 가라앉혀 가는 이미지를 그리자. 당신이 우주에서 가지고 돌아온 것은 혹성 지구의 진화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빛이 된다. 그 빛을 이용해 혹성 지구가 녹색이 넘치는 별이 되도록, 다툼질이 없는 별이 되도록… 당신 자신의 소원을 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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