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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와 칼 - 일본 문화의 틀 | 원제 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
루스 베네딕트, 오인석 (지은이), 김윤식 (옮긴이) | 을유문화사




국화(평화)를 사랑하면서도 칼(전쟁)을 숭상하는 일본인의 이중성을 해부한 책.1946년,미국의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 여사가 미 국무부의 의뢰를 받아 2년 간의 자료 수집과 연구 끝에 내놓은 이 일본 문화 연구서는 서구인이 결코 이해할 수 없었던 일본인의 '이중성'을 연구 주제로 삼고 있다.

적국을 현지답사할 수 없었던 베네딕트는 일본에 관한 기존 연구서와 2차문헌을 폭넓게 독파하고, 소설과 같은 문학적 자료들과 전시 선전용 영화까지 섭렵해 인류학적 데이터를 추출했다. 일본을 방문하지 않고 객관적인 입장을 유지하면서 일본문화의 핵심을 지적해낸 이 책은 일본을 이해하는 고전으로 자리하고 있다.


루스 베네딕트 (Ruth Benedict) - 1887-1948. 미국 뉴욕 출생. 1905년 바사대학에 입학, 졸업 후 몇 년간 캘리포니아의 한 여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영어를 가르친다. 그러나 1919년 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에 입학하여 새로이 인류학을 배우기 시작했고, 이후 컬럼비아대학으로 옮겨 프란츠 보아즈 교수의 지도 아래 본격적으로 인류학 공부에 전념한다.
1923년 3학기 만에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북아메리카 수호 신령의 개념〉으로 학위를 받으며, 보아즈 교수의 지도 아래 뛰어난 연구 업적을 거두며 미국 인류학의 대표적인 학자로 컬럼비아대학의 교수가 된다.
1934년 자신의 대표적인 저작인 <문화의 패턴(Patterns of Culture)>을 발표, 문화상대주의자로서의 자신의 입장을 강화해 나갔고, 1940년에는 <종족(Race:Science and Politics)>을 발표하여 국내에서 대단한 반응을 일으켰다.
1943년 미국 전시정보국 해외정보부 문화연구기초분석 책임자로 부임한다. 그리고 1944년 해외전의분석과로부터 일본에 대한 연구를 위촉받는데, 당시는 태평양전쟁이 말기로 접어들 무렵으로 일본과의 심리전을 위해 일본인의 행동 패턴을 연구할 필요성이 강하게 대두되던 때였다. 1946년 그녀는 <국화와 칼>을 출간했고, 책은 미국에서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킨 동시에 일본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1948년 6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칼도 국화와 함께 한 그림의 일부분이다. 일본인은 최고로 싸움을 좋아하면서도 얌전하고, 군국주의적이면서도 탐미적이고, 불손하면서도 예의바르고, 완고하면서도 적응력이 있고, 유순하면서도 귀찮게 시달림을 받으면 분개하고, 충실하면서도 불충실하고, 용감하면서도 겁쟁이이고, 보수적이면서도 새로운 것을 즐겨 받아들인다. 그들은 자기 행동을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놀랄 만큼 민감하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이 자기의 잘못된 행동을 모를 때는 범죄의 유혹에 빠진다. 그들의 병사는 철저히 훈련되지만 또한 반항적이다. - p.21 중에서

극단적인 의무의 변제와 철저한 자기 포기를 요구하는 일본의 도덕률은, 당연히 개인적 욕망은 인간의 가슴속에서 제거해야 할 죄악이라고 낙인찍을 것처럼 생각된다. 전통적 불교의 가르침이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도덕률이 그처럼 관대하게 오관五官의 쾌락을 허용하고 있는 이중성은 의외라는 느낌을 준다. 일본은 세계 유수의 불교 국가 가운데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그 윤리는 이런 점에서 석가 및 불교 경전의 가르침과 두드러진 대조를 이룬다. 일본인은 자기 욕망의 충족을 죄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청교도적이지 않다. 일본인은 육체적 쾌락을 좋은 것, 함양할 만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쾌락은 추구되고 존경받는다. 그렇지만 쾌락은 일정한 한계 내에 머물러야 한다. 쾌락은 인생의 중대 사항의 영역을 침범해서는 안 된다. - p.239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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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불황에 더이상 일자리 찾는 것을 포기하고 쉽게 돈을 벌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는 청년들이 늘고 있는 것 같다.

최근 도쿄에서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호스트클럽에 대해 강력한 단속을 벌이고 있는데 이 호스트클럽에는 돈벌이를 위해 불법체류자가 될 각오까지 하고 건너오는 한국 청년들이 대다수라고 한다.

오늘 산케이신문은 최근 단속중인 한국인 호스트클럽 수사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기사를 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불황을 맞은 한국 내에서는 '도쿄에 가면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여 불법체류자까지 각오하고 입국하는 젊은 남성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올해 들어서는 호스트를 하기 위해 입국하는 한국 젊은 남성들이 증가하고 있다.
한국인 호스트클럽이 생긴 것은 약 15년 정도 되었는데, 처음에는 한국인 호스테스들을 상대로 했지만 이후 한류 붐이 일자 한국계 음식점이 증가하고 이에 편승하여 호스트클럽도 증가하더니 일본인 여성들도 이런 클럽들을 드나들게 되었다.
특히 올해 들어서는 이를 위해 일본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더욱 늘어 '한달에 100~200명이 호스트가 되기 위해 입국하고 있다'고 수사관계자는 말한다. 한국 내에서는 '일본 호스트클럽에 가서 일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진 듯하다.

한편 지난달 28일 새벽에는 도쿄의 가부키쵸에 있는 한 음식점 '비너스포트'에 경찰이 일제히 호스트 클럽 단속을 나갔는데 가게에 있던 남녀 손님 34명 중 22명이 한국인 호스트였다. 그들 중 한명은 도주하다가 건물에서 떨어져 목숨을 잃기도 했다.
신주쿠 일대에는 한류 호스트클럽들이 수십 곳에 이른다. 경찰은 한국인 호스트클럽 적발은 올해만 5건이었는데 9월에는 우에노와 아카사카의 2곳에서 50명이 적발되었고 그 중에는 전 J리그 출신의 호스트도 있었다.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입는 일본의 호스트들과 달리 한국 호스트들은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이어서 적발시 누가 손님인지 누가 호스트인지 알아보기 어려운 점을 노렸으며 여성 손님들도 이런 캐주얼한 차림을 선호한다고 한다. 한국에서 호스트를 하기 위해 들어오는 남성들이 증가하게 된 배경에는 비자 없이 단기체류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이다. IMF 이후 최악의 상황을 겪고 있는 한국 청년들은 20대 중 200만명 가까이가 취업을 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실업난은 소위 말하는 스카이대학을 나와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호스트 뿐만 아니라 호스테스를 하기 위해 일본으로 입국하는 여성들도 전에 비해 증가했다. 한국인 호스테스들은 대부분 일본 남성과 결혼하여 정주자격을 갖게 되지만 남성들은 불법체류자 신세가 많아 적발될 경우 리스크도 더 크다.
그래도 일본은 돈을 벌수 있는 나라라고 생각하는 건가? 엔고 때문에 생활이 어려워도 돈을 모아 한국에 가면 몇배가 되니까 다들 조금 힘들어도 꾹참고 돈을 벌어가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고 관계자는 말한다.


참,,,
유흥업에 종사하는 사람 중에 누구 하나 사연 없는 사람 없겠지만 어쨌든 일본인 시선으로 본 한국 청년들의 모습이 저렇다니 뭐라 할말이 없네요... 이런 현실을 누굴 탓해야 할지 마음이 아프네요.

초등 6년, 중학 3년, 고등 3년, 대학 4년을 나와도 일자리가 없어 취업을 못한다는데
아이들에게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하는게 맞는 말일까요?
-B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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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화딱지나네 2009.09.02 12:58 신고

    대학. 다니면 다닐수록 등록금과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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