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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스미스 Adam Smith' 제대로 알기



오늘 소개할 책 <지금, 애덤 스미스를 다시 읽는다>는 2008년 <일본경제신문> 선정 ‘올해의 책’ 1위에 뽑히고 일본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산토리학예상 정치경제 부문을 수상한 대중성과 전문성을 고루 갖춘 명저이다. 고전학파 경제학의 재정 정책 연구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의 연구 논문을 쓴 바 있는 저자 도메 다쿠오는 이 책을 통해 피상적으로만 드러나 있었던 아담 스미스의 진면목에 보여준다. 


특히 일반 경제사상서들이 아담 스미스에 대해 <국부론> 중심으로만 기술하는 데에 반해 이 책은 아담 스미스의 또다른 저작인 <도덕감정론>을 <국부론>의 연장선상에 놓고 상세히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는 저자의 작위적인 기획이 아니다. 실제 아담 스미스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아담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의 최종판에서 ‘독자에게’라는 제목의 서문을 추가하고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이 책의 초판 마지막 구절에서 나는 정의와 관련된 것, 생활행정, 공공수입, 군비 등과 같이 법의 대상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 이런 것들과 관련된 법과 국가의 일반 원리와 이 원리가 서로 다른 시대와 시기에 겪었던 변혁을 또 다른 논문에서 설명해야겠다고 말했다. 


각국 국민의 부의 성질과 원인에 관한 연구에서 나는 이 약속을 부분적으로 적어도 생활행정, 공공수입, 군비에 관한 한 수행했다.”


이 글에서 스미스가 ‘각국 국민의 부의 성질과 원인에 관한 연구’라고 한 것은 <국부론>을 말한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질서와 번영을 기초 짓는 인간 본성은 무엇이고 또한 그것들이 서로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해 해명했다. 그리고 그 다음 단계로서 질서와 번영을 인도하는 일반 원리의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지 논하려고 했다. 


그 일부가 <국부론>이다. 결국 아담 스미스의 두 저작인 <도덕감정론>과 <국부론>은 독립적인 책이 아닌 스미스의 웅대한 철학을 이루어 갈 연속적인 책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담 스미스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저작을 함께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고 바로 이 책 <지금 애덤 스미스를 다시 읽는다>가 그것을 친절하게 도와주고 있다.


이번 서평은 책의 내용을 그대로 전하기보다 우리가 미처 몰랐던 아담 스미스의 면모와 그의 사상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전개하겠다. 



아담 스미스


“저는 무료한 시간이나 달랠 생각으로 책을 한 권 쓰기 시작했습니다.”


아담 스미스(Adam Smith)가 프랑스 남서부 도시인 툴루즈(Toulouse)에 체류하는 동안 근대 합리주의 철학의 거두이며 경험론의 선구자인 데이비드 흄에게 보낸 한 짤막한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스미스가 스스로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쓴 책의 이름은 보기만 해도 따분한 <국가의 부의 본질과 원인에 대한 연구(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eh Wealth of Nationns)>라는 제목을 갖고 있었다. 이후 사람들은 이 책을 줄여서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이라고 불렀다.


아담 스미스는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지루한 책을 쓰겠다는 비범한 마인드의 소유자였다.



1723년 스코틀랜드의 작은 항구 도시인 커칼디(Kircaldy)에서 태어난 아담 스미스는 세관원이었던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난 탓에 어머니 손에서 자랐다. 어려서부터 뛰어난 재능을 가졌던 스미스는 열 네살의 나이에 명문대학으로 손꼽히는 글래스고 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그리고 3년 후 장학생으로 선발돼 옥스퍼드 대학교 발리올 칼리지에 들어간다. 하지만 스미스는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다 마치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버린다. 스미스가 옥스퍼드를 떠난 이유를 <국부론>에 나온 다음과 같은 내용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옥스퍼드대학 교수들은 몇 해째 가르치는 시늉조차 아예 그만두었다.”


특히 스미스는 학문의 자유를 억압하는 옥스퍼드의 검열제도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실제로 스미스는 데이비드 흄의 <인성론>을 읽다가 압수당하는 일을 당하기도 했는데 이 일을 두고두고 친구들에게 불평을 했다고 한다. 옥스퍼드 또한 이런 스미스의 언사를 못 마땅한 탓에 끝내 스미스에게 명예 박사 학위를 주지 않았다고 한다. 


고향으로 온 스미스는 수사학과 법학에 대해 대중 강연을 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으며 1748년에는 모교인 글래스고 대학교의 강단에 서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은사이자 아일랜드 계몽주의 철학자 프랜시스 허치슨(Francis Hutcheson)을 이어 도덕 철학 교수직을 이어 받는다.


옥스퍼드의 경험을 반면교사 삼은 스미스는 그 어떤 교수보다도 열정을 다해 일했다. 철저한 준비와 흥미로운 강의로 학생들의 졸음을 퇴치했으며 세심한 관심과 배려로 학생들을 지도했다. 학생들은 스미스를 사랑했으며 스미스의 명강의를 듣기 위해 심지어 러시아에서 온 명사들도 있었다. 스미스의 이상한 걸음걸이와 말투는 사람들 사이에 유행했고 심지어 스미스의 작은 흉상이 서점의 진열대에 놓이기도 했다. 그러나 스미스를 진정한 학자로서 큰 명성을 준 것은 1759년에 출간한 <도덕감정론(Theory of Moral Sentiments)>이었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을 통해 주로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만족시키는 도덕적 판단을 하며 사회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답변을 내 놓았다. 스미스는 이 책을 통해 영국에서 철학자로서 선두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이후 1764년 스미스는 교단을 떠나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연간 500파운드의 보수와 평생 연금으로 연간 500파운드를 지급받는 조건으로 젊은 공작의 가정교사로 일하게 된다. 가정교사로 일하면서 스미스는 젊은 공작을 데리고 약 3년동안 프랑스로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그 여행을 통해 스미스는 18세기 유럽의 지식인 사회를 휩쓸었던 자유주의, 합리주의 사상의 대가들을 만나며 프랑스의 산업 발전과 경제적 변화를 직접 목격하게 된다. 프랑스 여행을 마친 후 스코틀랜드에 돌아온 스미스는 경제현상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를 실시했고 교단을 떠난 후 12년 만인 1776년에 <국부론>을 출간한다.

 


국부에 대한 재정의


스미스가 태어나기 전 17세기에는 거대한 지적 변환이 일어나고 있었다. 유럽 중세를 지배하고 있었던 종교적 교리보다 합리적 이성에 근거해 자연 현상을 설명하고자 하는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과 지동설을 주창한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의 혁명적 관점이 지성인들 사이에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이탈리아의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와 영국의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은 성서의 도움 없이 수학과 실험만으로 자연의 법칙을 증명했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르네 데카르트(Rene Descartes)는 자신의 저서 <방법서설(Discourse on Method)>에서 인간은 실용 학문을 통해 자연의 지배자이자 소유자가 될 수 있다고 선언하며 신과의 결별을 선언했다. 바로 인본주의적 세계관과 과학적 방법론에 입각한 계몽주의가 만개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중세를 지배하고 있었던 종교적 세계관에서 서서히 벗어나게 된 유럽인들은 경제문제 또한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죄였으며 부를 쌓으려고 하는 것은 악마가 추구하는 탐욕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고리대금업자는 추악한 죄인이었으며 상인들은 저급한 인물이자 불신의 대표주자였다. 하지만 기술발전과 상인들의 활발한 교역으로 국가의 부가 실질적으로 증가하자 이를 계몽주의적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성이 점증되었다. 


경제사학자 하일브로너의 말을 빌리자면 ‘이익이라는 사상에 철학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런 역사적 흐름속에서 아담 스미스라는 철학자가 나타나 경제현상의 진짜 그림이 담긴 책을 세상에 선보였다. 그 책의 이름이 바로 <국부론>이다.  


900페이지가 넘는 <국부론>의 원제는 앞서 언급했듯이 <국가의 부의 본질과 원인에 대한 연구>이다. 다시 말해 국부론은 무엇보다 ‘국부’에 대한 연구이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국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국부는 모든 국민이 해마다 소비하는 생활 필수품과 편의품의 양이다. 국민들의 연간 노동은 원래 그 국민이 해마다 소비하는 모든 생활 필수품과 편의품을 공급하는 자원이며, 그 생필품과 편의품은 언제나 이러한 노동의 직접적인 생산물이거나 그 생산물로 다른 국민들에게서 구입한 물품이다.”


스미스의 이같은 주장은 당시 정부 각료들과 많은 철학자들에게 받아들여졌던 중상주의와 중농주의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다. 중상주의자들은 국부란 국가가 보유한 금과 은의 양에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수입은 억제하고 수출을 장려해야 한다. 실제로 중상주의에 영향을 받은 여러 유럽 국가들은 국부를 증진시킨다는 명목으로 관세와 규제조치를 통해 수입을 억제하고 장려금제도나 식민지 건설을 통해 수출을 촉진시켰다. 그 결과 상인과 생산자들에게는 막대한 이익이 있었던 반면 그 나라의 일반 소비자들은 값 싸고 질 좋은 제품을 제대로 얻을 수 없었다. 


중농주의자들은 국가의 부는 오로지 ‘토지’에 있음으로 농민만이 부를 생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스미스는 여러 공장들을 관찰한 인물이다. 그는 공장에서 노동을 통해 부가 매일 생산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정리하면 스미스는 국부란 왕궁에 쌓아 놓은 금과 은이 아니라 그 국민이 해마다 소비하는 생활 필수품과 편의품의 양이며 그 소비품들은 노동을 통해 창조된다는 것으로 주장함으로써 당시의 낡은 편견에 대항했다. 결국 <국부론>이 널리 받아들여지면서 중상주의와 중농주의는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보이지 않는 손


그러나 스미스가 정말 위대한 점은 중앙정부의 계획이나 명령 없이도 사회 전체가 필요로 하는 재화나 서비스가 생산되고 소비되는 전체 경제가 어떻게 하나의 통합된 체계로 작동하는지를 최초로 설명했다는 점이다. 스미스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이기심과 경쟁으로 작동되는 ‘보이지 않는 손’인 시장을 무대 전면에 내세운다. 경제학의 모든 학파가 시장의 작동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스미스는 경제학의 창시자로 여겨진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 양조업자, 빵 굽는 사람들의 호의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서 스미스의 놀라운 견해를 발견할 수 있다. 핀공장에서 일하는 영성군이 오늘 생일을 맞아 저녁 식사로 빵과  작은 스테이크로 기분을 내고자 한다고 해 보자. 생일 때 와인이 빠지면 섭하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영성군이 자신의 저녁식사에서 직접 생산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고기는 푸줏간 주인에게서, 빵은 빵굽는 사람에게서, 와인은 양조업자에게서 받았다. 그렇다고 영성군이 그 모두를 잘 알고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우리는 사람들이 저마다 생활에 필요한 서로 다른 물건을 생산하는 ‘노동분업’을 통해 타인과 경제적으로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맺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저 세사람이 영성군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호의로 제품을 만들었느냐하면 그것도 아니다. 이들은 자신이 잘 먹고 잘 살고자 한 이기심으로 생산을 했을 뿐이다. 스미스는 경제 주체들 각자의 개인적 이기심에 맡겨 놓더라도 사회의 노동 분업을 조정하는 문제가 잘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당시로서는 매우 혁명적인 발상이었다. 왜냐하면 이기심은 사회 질서를 무너뜨리는 죄악 중에 하나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구심이 생긴다. 


정말 각자의 이기심에 맡겨도 사회 전체의 이익과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까? 이기심에 매몰된 푸줏간 주인, 양조업자, 빵 굽는 사람들이 영성군에게 질이 나쁘고 양도 적게 두면서 더 비싸게 팔지는 않을까?


걱정할 필요 없다. 아담 스미스의 세계는 ‘경쟁’이 지배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푸줏간 주인, 양조업자, 빵 굽는 사람들이 경쟁을 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이기심을 채우기 위한 최대의 이익을 내기 위해서는 영성군이 원하는 상품을 생산할 수 밖에 없다. 영성군이 원하는 상품이란 적정한 가격과 적정한 양을 갖고 있는 상품이다. 경쟁이라는 무기를 사용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상품의 가격과 양을 조절하게 된다는 것이다.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을 시장은 스스로 만들 수 있게 함으로써 희소한 자원의 낭비를 최소화게 되고 이는 곧 사회 전체의 이익에 부합하게 된다. 결국 이러한 견해를 하나로 모으면 다음과 같은 역사적 메세지가 도출된다.


“시장을 내버려두라(Let the market alone)!”



그에 대한 오해


<도덕감정론>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인 존재라 하더라도 그 천성에는 분명히 이와 상반되는 몇 가지가 존재한다. 이 천성으로 인해 인간은 타인의 운명에 관심을 가지게 되며 단지 그것을 바라보는 즐거움 밖에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타인의 행복을 필요로 한다. 


연민(pity)과 동정심(compassion)이 이런 종류의 천성에 속한다. 이것은 타인의 고통을 보거나 또는 그것을 아주 생생하게 느낄 때 우리가 느끼는 종류의 감정이다. 우리가 타인의 슬픔을 보고 흔히 슬픔을 느끼는 것은 굳이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들 필요조차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의 원제에서 도덕감정을 ‘The Moral Sentiment’라고 하지 않고 ‘Moral Sentiments’라고 하였다. 즉 도덕 원리는 하나의 특수한 감정이 아니라 여러 가지 감정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스미스는 인간이 이기심만으로 점철된 존재로 보지 않았다. 게다가 국부론에서는 이런 대목도 나온다.


“수 많은 이익을 가져오는 분업은 원래, 그것이 낳는 일반적인 풍족을 예상하고 의도한 인류의 지혜의 결과가 아니다. 분업은 그와 같은 폭 넓은 효용을 예상하지 못한 인간성의 어떤 성향으로부터 비록 매우 천천히 그리고 점진적이긴 하지만 필연적으로 생긴 결과이다. 그 성향이란 곧 하나의 물건을 다른 물건과 바꿔 갖고 거래하고 교환하는 성향(propensity to exchange)이다.”


<국부론>이 출판되기 전에 애덤 스미스가 글래스고 대학교에서 행한 강의에 관한 어느 학생의 필기노트에는 재화의 교환에 있어서 ‘설득 성향’까지 언급되었다. 정리하면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교환에서조차 스미스는 이기심이 주된 본성인 것은 사실이지만 교환성향, 설득성향 등의 다양한 본성이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


스미스에 대한 또다른 오해는 그가 자본가를 대변하고 정부의 개입과 규제를 부정한 보수주의 자유시장 경제학자들의 선조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부론>을 열렬히 환영했던 인사들도 신흥 자본가계급이었다. 하지만 스미스로서는 매우 억울한 일이다. 스미스는 부자들을 옹호하거나 변론하지도 않았으며 그는 국가의 부의 증진적 차원에서 일반 소비자와 노동의 가치를 매우 높게 샀다. 게다가 당시에는 정부의 개입과 규제가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경우가 더 많았다.


<국부론>에는 스미스가 핀공장에서 분업을 통해 작업을 전문화하고 세분화함으로써 놀라운 생산성을 낳는 장면을 예찬하는 대목이 나온다. 하지만 현재에 사는 우리는 이 장면을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와 연결시키며 스미스가 생산성을 위해 인간을 희생시키는 것처럼 느끼는 것 같다. 스미스의 진심은 무엇이었을까? 18세기 영국으로 가보자. 


18세기 영국의 인구는 1200만명이었는데 무려 2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빈민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조상 대대로 살던 땅에서 쫓겨나 도시로 흘러든 농민들이었기 때문에 일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숙련도조차 없었다. 그런데 분업을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일의 복잡성이 줄어들며 낮은 숙련도로도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스미스의 말을 빌리자면 ‘하층민에까지 확산되는 보편적 부’를 증가시키게 되는 것이다. 


물론 스미스는 분업을 통해 단순한 작업만 반복하다보면 생산성은 올라가지만 노동자들의 지능과 정신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여기서 정부의 역할을 명시한다. 스미스는 노동분업을 통한 정신적 부작용을 막기 위해 정부가 공교육(public education)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스미스는 또한 민간부분에서 수행하기 힘든 도로 건설 등의 공공투자의 유익성을 명백히 인식하고 있었다. 스미스는 이렇게 말했다.


“정부는 좋은 사회에 매우 유익하기는 하지만 개인이나 소규모 집단들이 그로부터 이윤을 얻어 비용을 보상받기 어려운 성격을 가진 공공기관과 공공사업을 설립하고 유지하는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스미스가 당시 공교육이나 공공투자 이외에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지 말라는 이유는 정부가 도제법이나 길드의 경쟁 제한 등을 통해 특정 집단의 이익을 옹호했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는 현재와 같은 거대 기업이 존재하지 않았다. 대부분 공장은 규모가 작았고 사업은 매우 경쟁적이었기에 시장의 자율 매커니즘이 잘 작동할 수 있었다. 기업들 사이의 힘의 균형이 있었기 때문에 어설프게 정부가 개입하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손’에 맡기는 편이 사회 전체를 위해서 더 나았다. 아마도 거대한 대기업들이 즐비하고 힘의 균형이 깨진 현재의 자본주의를 아담 스미스가 봤다면 그는 분명 정부의 역할을 재정의 했을 것이다.


‘구성원의 다수가 가난하고 비참한 사회는 결코 번영하고 행복할 수 없다’고 말한 시대의 대표적인 도덕철학자이자 최초의 위대한 경제학자인 아담 스미스는 3천권의 장서만을 남긴 채 1790년 7월 17일 세상을 떠났다.

 

‘나는 내 책들의 애인일 따름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아담 스미스. 스미스는 이제 경제학을 사랑하는 모든 이의 애인이 되었다.


# 참고문헌

<경제의 교양을 읽는다>, 홍훈 외, 더난출판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 유시민, 푸른나무

<세속의 철학자들>, 로버트 L. 하일브로너, 이마고

<자본주의 이해하기>, 새뮤얼 보울스, 리처드 에드워즈, 프랭크 루스벨트, 후마니타스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토드 부크홀츠, 김영사

<지금 애덤 스미스를 다시 읽는다>, 도메 다쿠오, 동아시아


팟캐스트 - 경제경영 읽어주는 남자 고영성

출처: http://blog.naver.com/justalive/220269705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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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신문을 보면 가슴이 따뜻해지고 희망이 샘솟는 훈훈한 기사들이 가득합니다. 신문만 읽고 있으면 경제위기는 남의 나라 이야기 같고, 우리가 서로 돕기만 한다면 어떤 어려움도 쉽게 극복할 듯한 낙관적인 생각으로 가득찹니다. 조선일보만 해도 오늘 1면 머릿기사로 교사가 방과후 학생들을 지도해 미술반 학생들이 입시학원에 가지 않고도 미대에 들어갔다는 "방과후 수업혁명"에 관한 기사를 실었고, 그 바로 밑에는 일자리 나누기에 참여하는 회사가 1327개로 늘었다는 내용을 "나누면 따뜻해지네"라는 제목으로 실었습니다. 한쪽 옆으로 "올 성장 전망 -2%로 낮춰"라는 기사가 보이긴 하지만, 두 개의 커다란 기사에 눌려 자세히 살펴야 눈에 들어옵니다. 이런 신문 편집만 보면 조선일보가 정말 몇 년 전 경제성장률 5%이던 시절, 경제파탄의 책임을 정부에 묻던 신문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은 학원비가 없어도 노력만 하면 대학에 가는 사회도 아니고, 일자리를 나누는 노력에 의해 실업문제가 해결되는 사회도 아닙니다. 오히려 -2% 경제성장 조차 장담하기 어려울 만큼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 한국의 현실입니다. 그러면 왜 신문들은 이렇게 따뜻한 위기 극복의 이야기만을 실을까요? 그것은 대부분의 신문이 정부와 친하고, 따라서 경제가 회복되어 정부 지지율도 올라가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런식으로 "위기를 극복하자"는 캠페인이야 말로 시장을 왜곡해 경제위기를 장기화한다는 점입니다.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이 중요한 가장 큰 이유는,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벌이는 경제활동이 결국 공공의 선을 위해 작동한다는 사실을 밝혔기 때문입니다. 그 전까지는 개인의 이익과 공공의 이익은 정반대이고, 따라서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는 개인의 자유를 억눌러야 한다는 사상이 유럽을 지배하였죠. 그런데 아담 스미스는 "개인이 이익을 추구하면 보이지 않는 손 (invisible hand)이 작용해서 공공의 선도 자연히 이루어진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렇다면 정부는 개인의 경제활동을 자꾸 통제해서 경제를 살리려고 하지 않아도 되고, 오히려 개인이 마음껏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도록 허용하면 국가에도 이익이 된다는 말이 성립하죠. 실제로 아담 스미스 이후로 유럽과 미국의 정부들은 개인에게 경제적 자유를 대폭 허용하고, 이는 유럽과 미국이 경제발전을 이루는 원동력이 되지요.

물론 저는 개인이 경제적 이익을 극단적으로 추구할 자유가 있다고 믿지는 않습니다. 개인이 이익을 지나치게 추구하면 경쟁이 심해져 사회의 조화가 깨어지고, 경쟁에 탈락한 사람들의 삶이 힘들어져 사회가 분열하기 마련이죠. 따라서 정부는 사회가 균형을 유지하도록 세금과 복지정책 등을 통해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야 합니다. 하지만, 경제 내부만 놓고 보자면, 개인이 자유롭게 활동해야 전체에도 이득이 된다는 아담 스미스의 주장은 분명히 설득력이 있고, 이는 역사가 증명하는 바입니다.

이러한 아담 스미스의 주장과 반대로, 정부가 개인의 경제적 자유를 억압해야 한다는 주장은 파시즘, 공산주의, 그리고 개발독재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는 경제적으로 자유가 없을 뿐 아니라 개인이 집단을 위해 봉사하도록 정신을 개조해야 하기에 계속 캠페인을 벌입니다. 북한에는 곳곳에 선동적 내용을 담은 간판이 서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는 나치 치하의 독일도 마찬가지였고, 70-80년대 군사독재시절 한국도 정도만 다를 뿐, 캠페인으로 국가를 끌고 갔다는 점에서 크게 차이가 없었다고 봅니다. 그에 비해 미국이나 유럽에는 캠페인이 적고, 특히 경제적인 내용의 캠페인 (외화를 아끼자, 경제를 살리자 등)이 거의 없습니다. 경제는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데 살아나는 법이지, 캠페인을 벌인다고 살아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죠.

물론 경제 위기가 닥치면 "캠페인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하자"는 생각의 유혹을 이겨내기가 힘듭니다. 하지만 위기 극복 캠페인조차, 장기적으로 보면 경제에 해가 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자 "금을 모아 수출해 외환을 벌자"는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실제로 꽤 많은 양의 금이 모였고, 이를 수출해 외화도 많이 벌었을 것입니다 (몇년 후, 이 과정에서 벌어진 탈세 등의 각종 범죄가 드러나긴 했죠). 하지만, 금값이 별로 높지 않은 당시에 금을 이미 팔아버렸기 때문에, 지금처럼 금값이 높은 상황에서 팔 수 있는 금이 한국 가정에 많이 남아 있질 않습니다. 즉, 경제적으로 보자면 금값이 낮으면 금을 팔려는 사람이 줄어들고, 금값이 높으면 금을 팔려는 사람이 늘어야 정상인데, 캠페인 때문에 낮은 가격에 금을 팔게 되고, 높은 가격에선 금을 팔지 못해서 모두가 손해를 본 것입니다.

이러한 실수는 미국에서도 발생했습니다. 2001년 9/11 사태로 미국 경제가 주가가 폭락하는 등 위기가 발생하자, 미국인들은 자발적으로 애국 소비에 나섰습니다. 즉, 내가 소비를 해야 내수가 살아나고, 따라서 소비가 애국이라는 생각이었죠. 그 결과 미국 경제는 빠른 시일 내에 회복이 되긴 했는데, 문제는 당시 미국 경제는 닷컴 버블이 꺼지면서 어차피 경제 수축기였는데, 인위적인 소비의 증가로 (물론 이에는 경제 살리기에 나선 FRB의 영향도 컸죠) 거품이 충분히 빠지지 못했고, 그 결과 2008년까지 슈퍼 버블이 발생해 지금의 경제위기가 찾아온 것입니다.

결국, 경제는 가만히 둘 때 알아서 살아나는 법이고, 인위적인 캠페인은 경제를 왜곡시킬 뿐입니다. 신문들도 경제를 살리려는 마음에서 각종 캠페인을 벌이는 것이겠지만, 이는 경제를 왜곡할 뿐이고, 특히 신문에 대한 신뢰만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by cim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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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을 어떻게 볼 것인가?

네덜란드에서 17세기에 튤립 투기 광풍이 불던 때였다. 돌연변이로 꽃의 색깔이 기묘한 튤립 구근 한 개가 집 세 채 값으로 팔려나가던 어처구니 없던 시절. 어느 갑부가 값 비싼 구근을 택배로 주문했던 모양이다. 그날 택배를 받은 요리사가 양파인줄 알고 썰어서 요리 재료로 넣어버렸다. 그날 저녁에 그 요리사 뒤지게 맞고 당장 해고 되었다. 집 세 채를 입 속으로 털어 넣어버렸으니 말이다. 투기의 역사를 거론하면 항상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사례가 바로 네덜란드 튤립 투기 사태였다. 결말은 파산. 그 후로 자본주의 역사는 투기적 광란과 그 후폭풍으로 인한 비참함이 반복되는 시간이 계속되었다. 그렇다면 왜 이처럼 투기와 좌절의 역사가 반복되는가?  인간의 탐욕은 어떻게 제어될 수 있는가?

< 국부론>의 저자 아담 스미스는 시장에서 보이지 않는 손을 이야기 한다. 보이지 않는 손이 경제를 스스로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끈다고 함으로써 시장 자유주의 선구자가 되면서 자본주의 작동 방식에 대한 신뢰를 심어줬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손이란 인간의 이기심을 말한다. 인간이 각자 이기심을 갖고 경제적 행위를 하도록 놔두면 경제는 알아서 잘 돌아 간다는 것!  인 간이 이기적으로 행동할 때 최적의 솔루션을 만들어 낸다는 생각은 경제학설사에서 혁명 같은 주장이었다. 이기심을 풀어 놓으라, 그러면 경제는 지가 알아서 잘 돌아간다, 아담 스미스 사상은 오스트리아인 프리드리히 하이예크로 이어지고 그가 시카고 대학에서 밀턴 프리드만이라는 수제자를 길러낸다. 레이건 대통령이 당선되자 극단적 시장 자유주의자 밀턴 프리드만이 밑그림을 그린 세상이 펼쳐지고 세상은 아수라장이 된다.


<쇼크 독트린> 이 말하는 신자유주의 참상

나는 요즘 나오미 클라인이 쓴 <쇼크 독트린>을 읽으면서 밤잠을 설치고 있다. 이 책은 밀턴 프리드만의 극단적 시장 자유주의 이론이 세상을 어떻게 황폐화 시켰는지, 남미에서 그의 이론을 실험하면서 10만 명이 넘는 무고한 인민을 살해했는지, 페루에서 민주주의자 아옌데 정권을 몰락시키고 독재자 피노체트를 등장시키면서 경제를 작살 냈는지를 소상하게 추적한다. 아직 전부를 읽지 않았지만 프리드만이라는 사악한 경제학자 한 사람에 의해 세상이 이렇게 망가질 수도 있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손이 부들부들 떨리곤 한다. 내가 블로그에 올리는 글들은 허접 쓰레기에 불과하다. 왜 이 세상이 이렇게 망가졌는지 알고 싶다면 이 책 <쇼크 독트린>을 읽어라!  아 직도 신자유주의가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고 믿는 자들이 있다. 요즘 미국에서 규제 강화를 추진하려고 하자 벌써 반발이 거세다. 힘들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다. 내가 <쇼크 독트린> 독서를 권하는 것은 아직도 신자유주의가 뭔지, 왜 세상이 망가졌는지를 잘 모르는 분들에게 이 세상을 요지경으로 만든 경제사상의 실체를 직시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책이라서다.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선행된다는 전제 하에서 도출된다. 근래에 어떤 책보다도 나를 쇼크 상태로 빠뜨리고 있다. 일독을 권한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잘못한 부분도 있지만 개개인들도 돈에 눈 멀어 투기 판에 뛰어 들었으니 개인 잘못도 크다. 주식 광풍이 불자 한탕을 위해 주식과 펀드에 투자한 사람들 탐욕도 문제 아닌가?  투자는 자기 책임이라는 원론적 측면에서 이 말을 부정하지는 못하리라. 그러나 이러한 시각은 아주 큰 잘못을 간과하고 있다.


정부가 규제를 강화 해야하는 이유

인간은 왜 교육을 받는가?  인 간은 탐욕을 갖고 있으면서도 선한 마음을 갖는 이중적인 존재다. 성악과 성선. 탐욕적이면서도 선한 인간. 선한 마음을 끌어내고 사악하고 탐욕적인 마음이 튀어나오지 못하도록 규율를 가르치는 것이 바로 교육이다. 정부나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지도층, 신문 등은 이러한 인간의 선함을 이끌어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래서 일정한 규제가 필요하고 탐욕을 제어할 사회적 컨센서스가 요구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카지노 도박장을 보자. 요즘 언론에 기사화 되지 않아서 그렇지 강원랜드에서 패가망신한 자들이 과연 얼마나 많은가?  정부가 폐광지역을 살린다는 명분 하에 내국인 카지노라는 도박판을 만들었다. 강원도 세수 증대에 혁혁한 기여를 했으리라. 그 이면엔 카지노로 돈을 잃고 자살과 이혼을 한 자들이 부지기 수다. 절단 난 가정은 누가 책임지나?  카지노가 없었다면 해외 원정 카지노가 가능한 사람 몇 명 외엔 크게 다치지 않았을 것이다. 정부가 내국인 카지노 허용이라는 조치 하나만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사지에 몰아넣을 수 있다는 것!  카지노 자본주의다.

선물 옵션 시장도 그렇다. 레버리지를 과대하게 쓰도록 판을 벌려주면 좋은 쪽은 도박판 수수료를 챙기는 증권사들이다. 투자자들은 장기적으로 모두 나가 떨어진다. 고스돕 판에서 돈 따는 사람은 고리 뜯는 사람 밖에 없듯이 말이다.  한 해에 1 조 원씩 개인투자자들은 선물옵션 시장에서 잃는다. 물론 따가는 사람도 있다. 외국인, 증권사 선물옵션 팀, 극히 일부 전문가들. 나머지 90% 이상 개인들은 매년 잃는다. 정부의 제도 하나가 개인들 주머니를 깡그리 털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직시하자. 물론 메스컴은 돈 잃고 자살하는 사람보다는 천문학적 수익률을 올린, 극히 이례적인 투자사례를 대서특필해서 투기판에 어서 뛰어들라고 부추기는 일을 정기적으로 나발 분다. 이러한 상황에서 니가 그 판에 뛰어들었으니 너의 개인적 잘못 아냐, 하고 비난할 수는 있다. 그러나 정부는 개인을 보호할 공적 책임이 있다. 그럼 누구 책임이 무거운가? 둘 다 잘못이 있다고 양비론을 끌어내야 옳은가?  도 박판을 벌인 정부 책임이 절대적이다. 양비론을 내세우며 물타기를 하는 자들을 유심히 살펴보라. 그들은 돈을 따는 자들이며, 신자유주의자들이며, 미국 똥구녕에 입을 대고 있는 자들이며, 막강한 정보력을 갖고 시장에서 지배적인 위치에 있는 자들일 가능성이 높다. 이 세상에 양비론을 붙이면 안될 사안이 단 하나도 없다. 양비론에 결코 속아서는 안된다.


국민 혈세로 은행을 살리는 게 온당한가?

오바마의 미국은 신자유주의자들이 작살낸 시장에 규제를 도입하겠다고 선언했다. 바른 방향이다. 규제가 능사는 아니지만 무한대로 시장을 자유롭게 놔둬서도 안된다. 레버리지를 과도하게 쓰면서 망하는 은행이 있다면 레버리지 규제가 합리적이지 않은가?  씨티은행이 망가지자 세금을 투입해서 부실채권을 사준다. 은행의 탐욕이 불러 온 부실을 전혀 잘못이 없는 일반 국민들이 세금을 내서 막아준다면 이것이 제대로 돌아가는 세상인가?  요 즘 우리 나라도 은행 BIS 비율이 초미의 비상이다. 후순위채를 발행하고 지랄을 해도 부실기업이 늘어나면서 아무 소용이 없는 상황이다. 급기야 정부가 공적 자금 투입을 검토한다고 했다. 공적 자금 하면 잘 이해가 안될 것이다. 국민의 세금을 말한다. 왜 우리국민이 은행의 부실을 책임져야 하나? 은행 부실경영을 책임지고 은행장들과 임원들 목아지가 날아갔나?

은행의 탐욕, 개개인의 탐욕을 규제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바로 정부의 몫이다. 탐욕은 언제든지 밖으로 뛰어나올 만반의 채비를 갖추고 있다. 적절한 규제와 교육으로 탐욕을 제어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자본주의는 탐욕을 밖으로 끌어내면 시장과 탐욕이 결합해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든다고 선전했다. 이러한 극단적인 사상이 바로 밀턴 프리드만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이다. 이명박 정권은 이처럼 최악의 경제사상이며 글로벌 경제를 망친, 폐가해야 할 신자유주의의 뒷 꽁무니에 죽기살기로 매달리고 있다.  산업은행도 민영화하고, 인천공항도, 수돗물도 철도도 모두 민영화 할 모양이다. 더 말을 보태면 욕이 튀어 나오면서 내 입이 더러워진다.

세상 돌아가는 것이 뒤숭숭해서 인터넷을 돌아다닐 시간이 있으면 <쇼크 독트린>을 읽으시라. 600 페이지가 넘는 책이지만 인터넷을 떠도는 허접 쓰레기 같은 자료에 눈 버리지 마시고 이 책 한 권만 읽어도 왜 세상이 갑자기 망가졌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다고 나는 장담한다.
-포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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